35화. 침묵의 늪과 분열의 전조
강지훈은 평생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어머니를 기다리는 일, 자신이 사랑하는 유진을 기다리는 일. 반복적인 기다림은 이상한 형태의 감각을 만들어냈다.
가끔, 망상을 봤다. 그건 마치 진실처럼 다가와 꿈으로 끝났고, 그 꿈은 여운이 길게 남아 상흔을 만들어냈다.
약에 손을 댄 건 그때부터였다. 꿈을 계속 꾸고 싶다는 욕망은 많은 것들을 변화시켰다. 멀쩡해지는 낮과 침묵의 늪, 그리고 분열되는 자아가 숨 쉬는 밤이 있었다.
‘숨 쉬는지 확인해 봐.’
처음엔 조절이 어려웠다. 가끔 호흡이 불안정해져서 뇌에 산소가 부족하면 더 명확하게 유진을 봤다. 유진은 자신에게 웃기도 했고, 앞에서 울기도 했으며 가끔 자신의 귓가에 좋아한다고 속삭였다.
현실 같았지만 망상이었다. 현실의 유진은 온도가 없었고, 색소가 옅었고, 잡히지 않았다. 모든 사람에게 그랬다. 유진은 살아 있는 인형 같았다. 평생 열이 오르거나 내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명백한 지훈의 착각이었다.
“정시우입니다.”
“강, 지훈입니다.”
처음 보는 순간, 지훈은 시우에게서 스치듯 분노를 읽었다. 손이 마주치며 색을 갈아입는 시우의 얼굴이 화려하게 빛났다. 약기운이 제법 오래가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처음 봤던 분노가 어느새 사라져 있어, 지훈은 어지러움을 느꼈다. 시우의 호감을 띠는 입술이 호선을 그리며 지훈을 쳐다봤다.
“회사 앞에서 마주친 적 있는데, 기억하세요?”
목소리가 중저음이었다. 악수를 청하기에 지훈은 아무 생각 없이 손가락을 얽었는데, 손톱이 손등의 표면을 부드럽게 긁고 지나갔다. 묘한 사람이었다.
“워낙 미남이시라서 기억해요.”
거짓말. 표면적인 인사치레였다. 사람 좋게 웃으니 시우가 가만히 들여다보고는 소리를 내서 웃었다. 웃으니 얼굴 전체의 색소가 옅어졌다.
신기했다. 무표정한 얼굴은 너무 화려해서 숨이 막힐 정도였으나 웃으니 눈꼬리가 휘면서 사라질 것처럼 젖어드는 얼굴을 했다. 어딘지 모르게 우진을 닮은 듯도 했다. 극적으로 상반된 얼굴이었는데, 참 묘한 인상이었다.
“거짓말을 잘 못하시네요.”
자리에 앉아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던 시우는 고개를 왼쪽으로 갸웃하면서 지훈에게 앉으라는 시늉을 했다.
명함에 적힌 핸드폰 번호로 문자를 보냈더니 대뜸 당일 저녁 약속이 있냐고 물었다. 없다고 했더니 회사 근처에 있는 식당의 위치를 보내면서 7시에 만나자고 했다.
의외였다. 이 자리에 나온 강지훈, 그 자신이.
분명 어느 정도 거절의 용의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나오고 싶은 욕망 같은 것들이 있었다.
무엇보다 우진의 뺨을 때린 것이 마음에 걸렸다. 나오기 전에 시우와 만난다는 이야기를 문자로 보내놓긴 했는데 우진에겐 답이 없었다. 늘 그랬지만 늘, 상처받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거짓말 아닌데요?”
“그것도 거짓말.”
“…무슨 일로 만나자고 하셨죠?”
이상하게 신경줄을 긁어대는 소리가 싫어, 본론을 꺼내자 시우가 메뉴판을 지훈의 앞으로 꺼내놓았다.
“식사부터 고르죠.”
“네?”
“전 집밥이 좋거든요. 그래서 한식당에서 보자고 했어요. 전 순두부찌개 먹을 겁니다.”
다부진 입술이 앙다물렸다. 고집이 센 듯했지만 이상하게 밉지 않아 강지훈은 얼결에 메뉴판을 받아들고는 식사 메뉴를 읽어 내렸다.
손가락이 왔다 갔다 하며 메뉴를 추천하기에 어이가 없어 눈을 마주쳤더니 또 묘하게 웃었다. 이상한 미소였다.
“웃는 게 묘하네요.”
“그래요?”
“예, 좀….”
“묘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네요. 나를.”
눈을 쳐다보는 순간 지훈은 깨달았다. 이 사람은 확실히 자신에게 ‘접근’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것도 한번에.
스텝을 밟을 생각이 전혀 없는 모양이었다. 자신의 성적 취향을 알고 있는 사람은 가족 중에서도 드물었고, 충분히 감추고 있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몇 번을 만난 파트너들은 강지훈을 모를 리 없었다. 이채를 띠는 검은색 눈동자를 마주 보며 강지훈은 입술을 물었다. 저건 자신을 알고 있는 자의 눈이었다.
“너 나 알지?”
“…반말이네.”
어디서 봤지. 아무리 기억을 헤집어봐도 본 적이 없는 얼굴이었다.
시선을 마주하자 피하지 않고 다시 받아치는 타입이라 기억을 못할 리가 없는 부류의 사람.
입술을 깨물었더니 시우가 손가락을 들어 자기 자신의 입술을 눌렀다. 아프겠어요, 하고 말하며 웃는 꼴이 여우같았다.
“나 배 엄청 고파.”
“그래서?”
“밥부터 먹고 이야기를 해볼까.”
“술은?”
“나쁘지 않지.”
손을 들어 소주를 시키는 곱상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지훈은 다가오는 시간들이 기대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사랑하고 사랑하지 않는 시간들이 아닌, 모든 것을 흥분으로 채울 수 있는 밤이 다가올 듯 했다.
강지훈은 그런 이유 없는 관계들을 좋아했다. 쓰고 버릴 수 있는 관계는 망각을 가져다줬다. 더 이상의 망상을 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적어도 오늘 밤은.
***
“뭘 봐요?”
김신은 샤워를 갓 마친 상태였다. 우진이 야근 때문에 늦어질 것 같다고 했더니 굳이 함께 하겠다고 우기는 바람에 같이 퇴근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우진의 집으로 함께 오게 된 것이었다.
요즘은 우진이 자주 김신의 집에서 잠을 자곤 했기 때문에 집이 썰렁했다. 김신은 우진이 옷을 갈아입는 동안 보일러를 돌리고, 히터를 틀었다.
두 사람이 같이 움직이다 보니 집이 금방 데워졌다. 신기한 일이었다.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동안 김신이 보송한 머리를 갖다 대며 웃었다. 막내라 그런지 자연스럽게 튀어나오는 애교 같은 것들이 있었다.
“연말에 받고 싶은 선물 같은 거 있어요?”
“없는데.”
“해주고 싶은데요.”
우진은 그런 김신의 눈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김신.”
“왜요?”
“시우 씨가 강지훈과 만났나 봐.”
“네?”
우진은 그렇게 말하며 김신의 손을 찾아 쥐었다. 따끈한 체온이 금방 손가락 사이로 머물렀다. 놓치고 싶지 않아서 떠나기로 마음먹었던 날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놓치고 싶지도, 떠나고 싶지도 않았다. 이준은 여러 번 우진에게 경고했었다.
‘네가 모르는 것이 있어.’
‘….’
‘강지훈 조심해야 해. 우진아.’
망상과 예감은 무엇이 다른 것일까에 대한 고민을 우진은 하고 있었다.
아픈 건 누굴까, 늘 재고 있었던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 앞에 놓인 제물로 아버지가 있었고, 아버지는 결국 치료를 받다가 돌아가셨다.
우진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김신이 손을 들어 뺨을 감싸고 자신을 향하게 했다.
“무슨 생각하는지 나와 나눠주고 싶은 마음이 들면.”
“응.”
“언제든 이야기해요.”
“응.”
지훈에 대해 이야기 하는 이준은 두려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이든, 건드리고 싶지 않아 무서웠던 날들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그걸 알아야만 했다. 아버지는 우진을 멀리하면서도 그 말을 잊지 않았다.
사랑하는 것들을 지켜야 해.
그것이, 그들로부터 멀어지는 일이라 할지라도.
그 말을, 우진은 잊지 않았다.
***
김신은 아담하고 한적한 병원이 신기했다. 최소한의 것들만 갖추어진 공간은 생각보다 따스했다. 한번 마주한 적 있었던 윤일과의 만남은 이상하게 어색하지 않았다.
이 사람은 무색무취의 느낌이 있었다. 윤일은 어떤 관계에 있어 부담을 주지도, 어려운 감각을 남기지도 않았다.
우진은 잠시 기본적인 검사를 하러 나간 상태였다. 매달 있는 검진에 김신의 동행을 추천한 건 윤일과 이준이었다. 배이준은 우진이 나간 뒤 테이블 위에 있는 재스민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잘도 따라온다?”
“애인이니까요.”
그 순간 이준이 마시고 있던 차를 뱉어낼 뻔하려는 걸 간신히 참아내고는 미간을 찌푸린 채 김신을 올려다봤다. ‘미쳤어?’ 하고는 김신을 쳐다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너네들 사귀는 거 일일이 다 말하고 다닐 생각이야?”
“아뇨.”
“그런데 왜 그래?”
“이준 주임님은 이미 알고 계시는 거 같아서요.”
김신은 강지훈보다 이준이 좋았다. 솔직하고 뒤탈 없는 성격에 숨기는 게 없는 표정이 그랬다. 투명한 사람을 찾는 건 힘든 일이었다. 특히나 우진의 곁에 있는 사람들은 더욱 그랬다.
별장에서 발견된 것도 관리인 덕분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는 법도, 받는 법도 모르는 사람이 최우진이었다.
늘 혼자였고, 그 혼자임이 익숙해져서 누군가와의 관계를 맺는 법을 몰라서 서툴렀다. 그 서투름이 김신에게는 예뻤지만, 어딘가 모르게 슬프기도 했다.
“무슨 치료를 받는 거죠?”
“정신과 치료.”
“….”
“기억을 못 하거든.”
“무슨 기억이요?”
“아버지를 죽인 범인.”
아무렇지 않은 톤으로 말한 것과는 달리 이준은 유독 한숨을 길게 쉬었다. 아주 오랜 숨이라 김신은 자기도 모르게 긴장감이 들었다.
“집안사람 말고 말하는 건 네가 처음이야.”
“….”
“난 물론 그 ‘집안사람’ 축에 끼지도 못하지만.”
“최우진 씨가 기억해야 하는 이유가 있어요?”
“우진이가 아프지 않다는 증거가 될 수 있으니까.”
“네?”
후, 하고 숨을 길게 쉰 이준이 세 장의 사진을 꺼내들었다.
하나는 남자, 다른 하나는 여자, 그리고 강지훈. 사진 속의 강지훈은 무표정이었는데, 지금보다 훨씬 어린 얼굴이었다. 지훈의 옆에 놓인 사진속의 여자는 하얗고 색소가 옅은 사람이었는데 놀라우리만큼 우진을 닮아 있었다.
“우진 씨 어머니예요?”
“아니.”
“너무 닮았는데요?”
“강지훈 엄마야.”
김신이 놀란 얼굴로 이준을 바라보자, 이준이 말없이 입술을 늘어뜨렸다.
“우진이가 닮았을 수밖에 없지.”
“왜요?”
“고모니까.”
최우진이 말하기를 꺼리던 상대. 고모라고 부르지 않고 우진은 늘 그 여자라고 했다. 자신을 싫어하던 여자, 아버지의 하나뿐인 여동생. 그럼….
“그럼 강지훈은, 우진 씨의 사촌이에요?”
“응.”
“….”
“유전이 한 대를 거슬러 나타나는데, 우진이 할아버님이 병을 앓지 않으셨으니 자식들에게는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지.”
“그런데요?”
“그런데 둘 다 없었어. 유전병이.”
끊임없이 의심과 치료를 가장한 테스트가 지속되었다. 이준은 그때를 보지 않았지만 할아버지와 아버지로부터 들은바가 있었다며 몸서리를 쳤다.
“우진이 아버님은 결혼을 안 하려고 하셨어.”
“….”
“되게 끔찍했을 거야. 병원을 매달 가야 한다는 게.”
“….”
“여튼 둘 다 없었는지, 둘 중에 하나는 있는데 숨기고 있는 건지 둘 다 그 병을 앓고 있는 건지 알 수 있는 바가 없어서 회장님은 늘 의심의 촉을 세우고 계셨었어. 둘 중에 하나는 후계자로 삼고 싶으셨을 테니까.”
“그래서요?”
“우진이 아버님은 포기했어. 상속을.”
“….”
“그런데도 불안했던 거지. 고모님은.”
“….”
“특히 최우진을 불안해했어.”
그것이 비극의 서막이었다. 끊임없는 집착의 발현.
“우진이네 집의 유전병은 정신병에 가까운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정도가 심해져서….”
“…심해져서?”
“망상을 보게 돼.”
“그게 유전이 된다고요?”
“뇌신경의 한군데가 잘못되는 모양이야. 환각처럼 끊임없이 나타난대. 유전병인지 유전에 가까운 형질이 그런 정신병을 유발하는 건지는 알 수 없어.”
“그래서요.”“아버님이 환각을 본 건지, 정말로 누군가가 아버님을 죽이러 온 건지는.”
“….”
“그 자리에 있었던 최우진만 알아.”
피투성이의 얼굴이 기억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최우진은 그날을 기억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아.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을 의심하고 있지.”
“왜 의심하죠?”
“만약 아버님이 병을 앓지 않았다면, 최우진이 앓을 가능성도 있는 거라서.”
“뭐라고요?”
“난 고모님을 살인자로 지목하고 있는 중이야.”
빠르게 이준이 대답하며 김신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래서 이 집안사람들이 나를 싫어하지.”
“….”
“특히 강지훈이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인데.”
“….”
“난 강지훈도 제정신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는 중이라서.”
“뭐요?”
“최우진 잘 지켜. 나도 사방이 적이고.”
“….”
“윤일이도 믿기는 힘든 구석이 있어. 정말로 기억을 다시 재생시키는 건지, 지우고 있는 건지 난 아직 의심하고 있으니까.”
이준이 흔들리는 눈빛으로 김신을 쳐다봤다. 모든 것이, 암흑으로 빨려가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