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김 주임과 최 대리-34화 (34/60)

34화. 마른 숨과 젖은 눈

“갑자기 그건 왜 물어.”

“몰랐던 걸 알게 된다더라도, 좋아할 수 있을 거 같아?”

시우가 그렇게 말하며 차가운 눈을 했다.

거리를 두는 사람들 사이에 느끼는 동질감이 있다.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이 두려워 먼저 거리감을 재고 있는 사람들은, 아주 급격히 가까워지는 순간을 무서워한다.

급격히 좁아진 거리감을 끊임없이 경계하고 있는 눈이었다. 지금 시우의 눈은.

“원래부터 몰랐던 사람이야.”

“….”

“내가 오로지 알 수 있는 건, 그 사람에 대해서 모르는 게 훨씬 많다는 것뿐이지.”

사람 사이의 관계가 유착되는 순간은, 그 거리감을 인정하면서부터 시작된다. 시우가, 눈을 키웠다. 차가운 눈동자의 색이 조금 달아올라 있었다.

“나도 그걸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배 안 고프냐?”

더 이상 묻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김신은 시우의 어깨를 끌어당기며 머리 위에 자신의 턱을 올려놓았다. 차갑게 숨을 오르락내리락 쉬던 시우가 김신을 올려다보고는 다시 피식 웃었다.

“내가 어렸을 때 너 좋아했단 이야기 했냐.”

“거짓말하고 있네.”

“눈치는 빠른 새끼.”

“술 마시고 싶으면 언제든 연락해. 멍청아.”

포슬포슬하고 곱슬거리는 앞머리를 헝클였더니 시우가 금방 눈꼬리를 접고 웃었다.

강하고 매몰차 보이지만 한없이 여린 친구.

김신은 한숨을 쉬었다. 애정을 과다하게 받아, 차고 넘치도록 주변에게 나눠주고 자기 자신은 사랑받지 못할까 봐 늘 불안해하는 정시우.

갑자기 시우가 김신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입을 열까 말까 하는 순간 시우가 먼저 목소리를 밖으로 끄집어냈다.

“강지훈.”

“갑자기 그 사람은 왜?”

“강지훈 소개 좀 시켜줘. 나.”

그렇게 말하는 시우의 눈빛에서 아무런 행간을 읽을 수 없어 김신은 아찔해졌다.

***

우진은 자신의 옆에서 빠르게 타이핑을 치고 있는 지훈의 책상 날개를 툭, 하고 두 번 두드렸다.

그러자 듀얼 모니터를 번갈아보며 엑셀을 정리하고 있던 지훈이 고개를 들어, ‘왜?’ 하고 입모양으로 물었다.

“옥상에서 잠시 볼까.”

“…웬일로 먼저?”

“10분 뒤에 봐.”

우진은 그렇게 말한 뒤 의자를 밀고 일어섰다. 강지훈은 분명 우진의 복귀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제법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는 중이었다.

이유를 알지 못했지만, 사실 우진은 알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집안 어른들은 우진이 사라진 사실조차 몰랐다. 물론 알면서도 함구할 확률이 높긴 했다.

팀장은 병가를 낸 우진에게 가타부타 말이 없었고, 오로지 김신만이 그의 존재를 달가워하는 것 같았다.

- 강지훈이 지랄한 건 네가 좀 알아둬야 해.

- ….

- 너한테 유난히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 알고 있지?

신기했다. 아주 오래알고 지낸 사람은 자신의 부재에 대해 격노했고, 이제 알아가기 시작한 단계의 사람은 자신의 부재보다는 존재를 더욱 달가워했다.

성격의 문제일 거라 생각은 했지만, 우진은 김신과 자신의 관계를 흔쾌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지훈이 껄끄러웠다.

지훈은 우진에게 그저 수많은 사람들 중에 한 명, 자신에게 시선을 주는 얼마 안 되는 사람이었다. 그 시선은 오래전부터 느꼈지만 집착이라 생각해본 적은 없었다. 강지훈은 대외적으로 사교적인 남자였다.

그의 사회성을 두드러지게 만드는 기제 중 하나가 자신이라 여겼다. 사실은 그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에너지가 달리는 일이라 피하긴 했었다만.

“옥상까지? 춥지 않아?”

“공기가 탁해서.”

옥상문을 닫으며 추운 듯 수트 재킷을 여미는 지훈의 사원증을 얌전히 바라보던 우진이 무심하게 바람에 흐트러진 지훈의 머리칼을 만졌다.

그러자 지훈이 미간을 찌푸리며 그 손길을 피했다. 자신이 피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는 놀란 듯 눈을 키우는 지훈에게 우진은 자주 그랬듯 무심한 눈으로 말을 이었다.

“내가 여러 번 말했지만.”

“….”

“넌 이상하게 네가 손을 뻗을 자리에 있는 것들이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걸 싫어하더라.”

“그런 게 아니라….”

“넌 너희 엄마랑 진짜 닮았어.”

“최우진.”

“나 도망간 거 아냐. 도망 갈 생각도 없었어. 심지어 너한테서는 더욱더.”

“….”

“묻지 않길래 답하는 거야. 뭐 알고 싶지 않을 수도 있지만.”

“왜 하필이면 김신이야.”

“넌 왜 하필이면 나인데?”

“뭐?”

“너희 엄만 왜 하필이면 우리 아버지였을까.

”“최우진.”

“우리 아버지가 정말 아프셨는지도 난 잘 모르겠어.”

“….”

“김신이랑 나랑 그렇고 그런 사이야.”

“최우진!”

“너랑은 상관없는 일이지.”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하는 법을, 우진은 배워나가는 중이었다.

그것이 거칠고 표현이 잘 되지 않더라도 말을 하는 게 나았다. 말을 않으면 그것은 곪아 결국 자신을 아프게 했다.

침잠하는 생각의 늪에서, 우진이 마주한 진실 중에 하나가 그것이었다.

“여기서 보자고 한 건.”

우진은 숨을 몰아쉬며 이마에 손을 가져다댔다. 하고 싶은 말을 한다는 건 생각보다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는 일이었다.

지훈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우진을 다시 쳐다봤다.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하는 얼굴. 그러나 강요는 늘, 그들이 먼저 했었다. 이제는 우진 자신도 강요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말할 작정이었다.

“이 사람이 널 보고 싶어 해.”

우진은 명함 하나를 건넸다.

“…정시우?”

“김신 친구야.”

“뭐?”

“널 만나보고 싶다는데.”

지훈의 표정이 어지럽게 표류했다. 읽어내기 힘든 감정이었다. 집착, 욕망, 수치, 그리고 엉망으로 비틀어진 우정이나 애정 같은 것들.

“이걸 부탁하고 싶었던 거야?”

“응.”

“최우진.”

잇새로 으르렁 거리는 목소리가 비져 나왔다. 우진이 아는 한, 지훈은 화를 쉽게 내는 성격이 아니었다.

집안 어른들이 아무리 강지훈을 걱정해도 최우진은 그가 온화하고 참을성이 많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틀렸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지금에 와서야 했다. 이준이 했던 이야기가 조금씩 머리에서 살아났다.

- 머리가 고장난 건 네가 아니야.

- ….

- 예전에도 지금도, 그건 네가 아니라고.

“난 네가 내 옆에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어.”

복잡 미묘한 얼굴이 사라지지 않은 채 지훈의 얼굴에 그대로 떠올라 굳게 자리 잡았다. 낯선 얼굴이었다. 처음으로 보이는 솔직한 표정에 우진은 처음으로 강지훈의 시선을 제대로 마주했다. 여러 겹의 거짓된 웃음과 미소, 씁쓸함과 슬픔들이 가라앉고 격노의 인상이 그것을 대신했다.

증오.

강지훈은 마음 안에 분노를 안고 있었다. 누구에 대한 것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것은 애정으로 변하기도 했고 집착의 모습을 하기도 했다.

집안사람들은 마음에 의심의 병을 갖고 있었다. 누군가가 발현하게 될지도 몰라. 그 ‘발현’이라는 것이 또 다른 집착이 되었음을 아버지의 모습으로 우진은 똑똑하게 기억했다.

“근데 꼭 김신을 우리 사이에 넣어야 되겠어?”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지?”

“뭐?”

“너와 나 사이는 혈연관계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야.”

“….”

“난 사실 너를 가족으로도 생각하지 않는 편이지.”

쫘악, 우진의 뺨이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엄청난 힘이었다. 반대쪽으로 고개가 끝까지 돌아갔는데, 맞자마자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우진은 아무렇지 않은 듯 천천히 지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지훈은 자신의 손을 쳐다보며 멍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우, 우진아.”

“….”

아주 세게 맞은 모양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뺨을 씹었는지 침을 뱉었더니 핏물이 고여 나왔다. 우진은 뺨을 쓸어보고는 명함을 지훈의 손에 쥐어주었다.

“난 네가 좋아지질 않아.”

“….”

“만나 봐. 연락 기다리겠대.”

차갑게 돌아서며 말했다. 스치듯 보인 지훈의 그림자마저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것 같았다.

***

“미쳤어.”

우진은 지훈과의 만남 이후 복도를 내려오다 김신과 마주쳤다.

우연이라고 하기엔, 조금 계획적인 부분이 없지 않아 있었다. 어마어마하게 부었던 모양이었다. 김신은 눈을 키우더니 입술을 깨물고선 손을 잡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약국에서 붓기를 가라앉히는 약을 사서, 회사 지하주차장에 차를 댔다.

“지금 근무 시간인데.”

“곧 점심이에요. 어차피 연말이라 다들 바쁘고.”

“…아.”

‘지금 그걸 걱정할 때라고 생각해요?’라고 면박을 주는 김신의 손가락이 파르르 떨렸다. 뺨에 닿는 손이 연고로 끈적했는데, 따스한 감이 있어 눈을 내리감자, 쯧, 하는 소리를 냈다.

“강지훈 손찌검도 해요?”

“처음이야.”

“진짜예요?”

화가 난 목소리를 짓누르는 모습이 생경하면서도 나쁘지 않아 우진이 빤히 쳐다보자 김신이 미간을 금방 찌푸렸다. 손가락으로 얼굴의 주름 이리저리 펴주자, 김신이 그 손을 잡고 한참을 쳐다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내가 뭐라고 하면 안 되는 거예요?”

“난 강지훈이 무서워.”

이전까지는 몰랐던 감정의 태그. 그것은 두려움이나 무서움에 가까웠다.

지훈은 늘, 우진의 근저에 있었다. 그 여자를 피해 독일로 도망갔을 때를 제외하곤 손에 뻗는 곳에 지훈은 우진을 두고 아주 오랫동안 지켜봤다.

처음에 강지훈은 우진을 유리인형 대하듯 했다. 깨어질 것 같은 얼굴로 들여다보고, 뭐든지 함께하길 원했다.

그리고 사춘기가 지나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자, 지훈은 마치 그림자처럼 우진의 뒤를 밟았다. 그걸 몰랐다고 하기엔, 지훈은 들키길 원하는 사람처럼 굴었다.

“이전까지는 무서워도 괜찮았는데.”

“….”

“누군가를 마음에 둔다는 것은 더 무서운 일인가 봐.”

김신이 사라지는 건 싫었다.

“그러니까, 나중에….”

“….”

“나중에 다 말해줄게.”

습윤하게 젖어드는 눈동자가 푸르렀다. 사랑이라는 건, 답이 없는 것이라 이것이 사랑인지 우정인지 아니면 그저 타이트한 애정의 관계인지 헷갈렸다.

걱정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이 사람을 바라봤다.

우진은 처음, 사랑은 슬픔과 맞닿아 있는 기분이 들었다. 행복의 순간에도 상실의 두려움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김신이 손을 뻗어 우진의 어깨를 만졌다.

“그렇게 짠한 얼굴로 쳐다봐도, 강지훈 대리님 한 대 치고 싶은 마음 있다는 걸 안 잊었으면 좋겠네요.”

“풋.”

큰 손이 뒤통수를 문질문질, 목덜미를 기분 좋게 주물렀다. 웃자마자 근육이 움직였던 뺨 근저가 데인 듯 아팠다. 그걸 알고 있는 김신의 눈이 차갑게 식었다.

“정말이지, 시우는 왜 강지훈을 만나고 싶어 하는 건지 모르겠네요.”

“어렸을 때 본 적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

자신이 모르는 강지훈의 모습이 시우에게는 남아 있었다. 자세한 기억은 김신이 꺼리는 얼굴이라 더 이상 묻지 않았지만, 김신이 말하는 지훈의 모습은 확연히 자기에게 보였던 얼굴과는 다른 것이었다.

1년에 두어 번 미국으로 건너가기 전 지훈이 가끔 독일에 들렸을 때도 서로는 오래 보지 않았다. 그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는 것이 문제였지만.

“그랬다고 하는데, 느낌이 안 좋아요.”

“….”

“사람을 기억하기가 그리 쉽지 않으니까.”

어릴 적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걸 미안해하는 김신의 표정이 싫어서 우진은 맞은 뺨 반대쪽을 김신의 어깨 위로 갖다 대며 입을 열었다.

“진짜 어려운 일이죠.”

“그러니까, 시우 씨는 어떻게 해서 지훈을 기억하게 되었을까. 조금 궁금해.”

“궁금한 것도 있어요?”

“난 네가 늘 궁금한데.”

“나만 궁금해합시다. 그럼.”

그렇게 말하며 웃는 김신의 얼굴을 우진은 오래 바라보았다. 뺨이 아픈 것을 잊은 건, 기억을 위해서였다. 지금은 저렇게 웃는 얼굴만 봐도, 좋기만 했다.

“그리고, 어디 도망갈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

“도망가도 좋으니 언젠가 돌아올 거라고 말해줘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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