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김 주임과 최 대리-31화 (31/60)

31화. 숨바꼭질

우진은 숨바꼭질이 싫었다. 어릴 때 또래들이 했던 그 놀이가 영 마음에 차지 않아 멀리서만 바라보고, 하자는 아이들의 얼굴을 가끔 모르는 척했다.

어머니는 그런 우진을 그냥 내버려두곤 했는데, 어느 날 자신과 유난히 닮았던 아버지가 우진을 빤히 바라보고는 물었다.

‘숨바꼭질이 왜 싫으니?’

아버지는 자식인 우진에게 관심이 없는 편에 속했다. 그는 만사에 거리감을 두는 사람 같았다. 심지어 어머니에게도 늘 일정간의 거리를 두곤 했다.

어머니는 그 애정의 거리마저도 사랑했다. 어머니의 아버지에 대한 맹목적인 애착은 우진이 이해할 수 없는 것 중 하나였다. 동시에 그런 애착에 거리감을 두고 관찰하던 아버지도 정상은 아니란 생각을 하곤 했다.

‘못 찾을 거 같아서요.’

그 대답에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다 이해한다는 듯이.

***

“강지훈, 너 진짜 우진이 어딨는지 몰라?”

“…머리 터질 거 같으니까 저기 가서 앉아.”

지훈은 자신의 방 안을 미친 듯이 종횡하는 이준에게 사나운 얼굴로 으르렁거렸다.

이준은 그런 지훈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다, 한숨을 쉬며 방 중앙에 놓여있는 커다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이준의 시선을 받으며 한손으로 관자놀이를 끄응, 하고 짚던 지훈이 눈을 감으며 입을 열었다.

“어머니가 움직였을 가능성은?”

“제로야.”

“…확신해?”

이준은 자신과 그 자신의 어머니까지 의심하는 강지훈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지훈은 태어날 때부터 겁이 많은 사람이었다.

“불쌍한 개자식.”

“…너무하네. 그 욕은.”

“침착한 척하지 말고. 네가 가진 정보나 내놔.”

“없으니까 너한테 연락한 거 아니겠어?”지훈은 그렇게 말하며 피식 웃었다.

“어머니가 움직이지 않았다는 증거를 대 봐.”

“국내로 못 들어오고 계신 건 알잖아.”

“그거야 그 여자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거 아니었나?”

약간 삐뚜름하게 이준을 바라보던 지훈이 성대를 긁으며 물었다. 이준은 미간을 찌푸렸다가 한숨을 몰아쉬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회장님 지시로 아버지와 함께 계셔. 스웨덴에.”

“…감시?”

“그런 셈이지.”

“너네 아버지 괜찮으실까 몰라. 그 미친 여자 때문에.”

혐오와 동경. 지훈은 자신의 어머니를 애증했다.

눈가를 신경질적으로 문지르던 그는 입술을 씹으며 협탁 아래 둔 생수를 하나 꺼내 이준에게 던졌다.

“약 좀 그만해.”

“잔소리 하려면 나가.”

“네가 가진 정보는?”

“늙은이한테 안 일러바친다고 약속하면.”

“…약속해.”

“말만 하면 무슨 소용인가.”

지훈은 그렇게 이야기하며 웃었다. 이준이 본 강지훈은 여러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어렸을 때는 수줍음이 많은 소년이었고, 자라면서 어딘지 모르게 삐뚤어졌다. 그 삐뚤삐뚤한 모양을 둥그렇게 다듬기 위해 마련되었던 많은 장치들 덕에 강지훈의 주변은 늘상 어지러웠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잠잠해졌다. 그것은 폭풍을 몰고 올 것만 같은 잠잠함이었다. 자신도 모르게 눈썹을 모로 세우자, 지훈이 손을 들어 이준의 뺨을 쥐었다.

“놔.”

“넌 최우진이 좋냐, 내가 좋냐?”

“그 질문을 지금 하고 싶냐?”

“넌 내가 더 좋지?”

“아니.”

“다행이네.”

지긋지긋한 개새끼의 운명.

이준은 지훈을 쳐다보다 혀를 끌끌 찼다. 자신이 믿는 우진의 행복이 행복이라 생각하는 강지훈은 어리석었고, 애정에 목말라 있었다. 사각형 박스에 들어 있던 알약을 입안에 털어놓고 씹어내는 지훈의 남자다운 턱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다가 이준이 입을 열었다.

“하나만 묻자.”

“뭐?”

“김신한텐 왜 그랬어?”

“…무슨 뜻인지 통 모르겠는데?”

가끔, 지훈은 이준에게만 날이 선 표정을 보여줬다. 그건 우진도 알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이준이 선뜩한 느낌에 몸을 떨자, 지훈이 웃으며 천천히 손가락으로 이준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늙은이는 나한테 재산을 넘길 심산이 아니야.”

“그건 내가 더 잘 알지.”

“우진이가 받을 거 같냐?”

“….”

“난

김신이라는 애가 한국에 잘 붙어 있어줬음 좋겠어.”

“….”

“그런데 선은 넘진 말아줬으면 하지.”

“….”

“우진이는 아마 독일로 돌아갈 생각이었던 거 같긴 해.”

“뭐라고?”

이준이 눈을 키우자 지훈이 약기운이 도는지 목을 제끼며 어깨를 자신의 손으로 주물렀다. 건강한 색을 띠고 있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김신 옆에 안 남겠지.”

“….”

“우진이는 김신을 좋아하니까.”

“….”

“다시는 상처주고 싶지 않을 테지.”

“너….”

“우진인 어딜 간 걸까. 이준아.”

우는 건가. 손바닥으로 자신의 얼굴을 덮어버리는 지훈을 쳐다보고 있다가 이준은 등을 돌렸다. 감정과잉 상태인 지훈은 질색이었다.

건강하고 수줍음이 많아서, 늘 웃을 때 입을 가리던 소년이 떠올랐다가 어둠으로 사라졌다.

***

“왜 이러고 있어. 바보처럼.”

오늘 RS에는 드물게 사람이 없었다. 히든이 온더록 글라스를 닦다 말고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와 조용히 김신의 옆에 앉는 시우에게 눈인사를 했다.

바텐더들은 눈치가 빠르고 입이 무거웠다. 히든은 경험 많은 바텐더 중 하나였다.

“야, 너 지금 바카디 시켰냐?”

시우가 히든에게 눈으로 치우라는 표시를 했다. 그러자 히든이 말없이 술병을 김신의 앞에서 조금 떨어트려 놓았다. 그러자 김신이 웃었다.

“내가 애도 아니고.”

“애가 아닌데 왜 이러고 있어.”

김신은 표정의 변화가 다채로운 사람이었다. 내면의 폭풍이 그대로 얼굴에 나타내서, 마치 발끝부터 색채가 피어오르는 느낌을 주는 화려한 감이 있었다.

그러나 시우가 만난 오늘의 김신은 무감한 얼굴이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고, 그걸 표현할 힘도 없어 보이는 얼굴의 김신은 수술 이후 처음이라 시우는 숨을 몰아쉰 뒤 자신의 몫으로 놓인 글라스를 앞으로 당겨 술을 따랐다.

입에 털어넣는 순간 식도가 타오르는 것 같았다. 바카디는 확실히 통각으로 취하는 술이었다.

“2주째야.”

“….”

“어딨는지 모르겠어.”

“유진 선배?”

“유진 선배 아니야.”

“….”

“최우진이야.”

누구든 사실 상관이 없었는데, 라고 김신은 낮게 읊조렸다. 사실 자신이 생각해도 근 2주간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살았다. 아주 짧은 연애였지만 실마리가 있었고 그 실마리의 끝에는 기억이 있었다. 그것들이 모두 풀리려는 순간, 최우진은 사라졌다.

강지훈은 원하는 답을 주지 않았고, 배이준은 김신을 피했다. 오전에는 일을 하고, 퇴근을 하고는 받지 않는 핸드폰으로 전활 걸어 연결음을 듣곤 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심장이 터져버릴 거 같았다.

아직 시작도 안 했잖아, 우리. 최우진.

“한 달만 만나자고 했거든. 그 사람이.”

“뭐?”

시우가 히든이 건네주는 올리브를 받다 말고 미간을 구기며 김신을 돌아봤다.

“네가 그걸 오케이할 인간이라고 생각 안 하는데?”

“하자고 했어. 절박했으니까.”

“미쳤냐?”

“원래 연애는 미쳐서 하는 거지, 안 그래?”

김신은 웃으며 시우의 뒷통수를 쓱, 하고 쓰다듬었다.

“너 여유 있다?”

“여유 있어 보이냐?”

“회사는 그 사람 증발했다는데도 아무 말 안 해?”

“출장 갔다고 그러더라. 기안문도 없는 출장이라 신기했어.”

겨울이 너무 성큼 다가왔다. 지난주에는 눈이 펑펑 내렸는데 김신은 퇴근을 하다 말고 코트위로 떨어지는 눈을 한동안 바라봤다.

겨울은 질색이었다. 눈 아래 퍼지던 분홍빛 피웅덩이가 기억나 머리를 털었는데, 시우가 옆에서 김신의 손을 잡아 꾸욱, 하고 마디마디에 힘을 넣어 손가락을 구겨넣었다.

“우리 김신이 이제야 첫사랑을 하나 보네.”

“뭐래.”

“찾을 수 있을 거 같아?”

“나타날 거 같은 느낌은 있는데.”

기다리는 게, 좀 힘드네, 라고 말한 김신은 무리하지 않을 셈인지 앞에 놓여 있던 물을 한잔 마셨다. 목이 깔깔했다.

“안 나타나면 어쩔 거냐.”

“기다리지 뭐.”

“그래도 안 나타나면?”

“기다리는 게 습관이 되어버리면 되지 않을까.”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나, 밤이 되면 잠이 드는 것처럼, 최우진을 기다리는 것이 습관이 되면 괜찮지 않을까.

물어보고 싶은 것이 많았고 여전히 유진 선배의 얼굴을 가진 최우진의 기억들도 헤집어보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냥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런데 김신.”

“왜?”

“최우진 씨 옆에 있었던 남자 있잖아.”

“강지훈?”

“그래, 그 이름. 내가 예전에 본적 있었다던.”

“그 사람 이야긴 하고 싶지 않은데.”

요즘 강지훈은 늘 날이 서 있었다. 그렇게 사람 좋아 보이던 사람이었는데 숨겨둔 예민함이 어디서 나온 건지, 연우는 매번 김신과 민재를 찾아와 울상을 했다.

잦은 외근은 물론이고, 가끔 정신도 없어 보인다는 것이었다.

그에 비해 김신은 침착했다. 그 모습을 봐주기 힘들다는 듯 지훈은 틈만 나면 시비를 걸었다. 어른인 줄 알았는데, 아직 마음에 무언가가 자라지 않은 부분이 있는 걸 알게 되고 나서부터 김신은 지훈을 객관적으로 보게 됐다.

“왜 하기 싫은데?”

“요즘 나한테 엄청 시비 털거든.”

“그 남자 우리 주완이랑 아는 사이더라?”

“….”

“가끔 주완이 레스토랑에 예약을 걸더라고.”

김신의 눈이 커졌다.

“근데 신기한 게 혼자 와. 그리고 주완이랑 밥을 먹어.”

“뭐?”

“어제 내가 말 안하고 갔더니 서빙하는 애가 그러더라고. 지금 저녁 먹으러 들어갔다고. 뭐 투자자들 왔나 싶어서 말 않고 기다렸는데,”

“….”

“그 남자가 나오더라.”

그 말을 하는 시우의 손끝이 조금 떨리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예약 명단을 뒤졌는데 반복되는 이름이 있길래 찾아봤어.”

“….”

“한 달에 한 번. 꼭 그 시간대에 오더라고.”

“….”

“생각해보니 주완이는, 늘 그때마다 나한테 선약이 있다고 했던 거 같아.”

***

“주임님, 외부 협력처 관련 문의 전화인데요.”

홍보팀에서 인턴을 하는 사원 하나가, 전화를 전환시켜 주고 싶다고 김신에게 말했다. 연말이라 바쁜 정도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슬기 주임은 오전은 외근, 오후는 업무 보고로 바빴고, 손이 늘 모자라다고 투덜댔지만 팀장 또한 연말이라 마무리할 미팅들이 있는 모양으로 회의에 참석한 참이었다.

김신이 “나?” 하고 묻자 인턴이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저는 도통 모르겠어서.”

“제 자리로 돌려줘요.”김신은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말했다. 네, 하고 대답하는 인턴이 전환을 돌리자 삐이이익, 하고 김신의 사무전화기가 바로 울렸다.

뒤로 허리를 젖히며 전화를 받았다. 무심결에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니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올해는 유난히 눈이 많이 오는 바람에, 지독한 불면에 시달렸다. 눈은 질색이었다. 올해는 좀 나아지려나 했지만 여전했다.

“감사합니다. 홍보팀, 김신 주임입니다.”

“….”

상대편은 답이 없었다. 침묵이 길어지는 것 같아, 김신이 흠, 하고 헛기침을 했다. 사무실로 오는 전화 중에 제법 이런 전화가 많았다. 문의하는 척하고서 받으면 홍보성 전화가 다수였다.

“그럼 전화 끊습니다. 감….”

“김신 주임님?”

“그렇습니다.”

김신은 미간을 찌푸렸다. 젊은 남자의 목소리였는데, 왠지 어딘지 모르게 꺼림칙한 느낌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어떤 일로 문의 전화 주셨는지요?”

“최우진.”

…순간 귓가에서 이명이 울리기 시작했다.

“최우진 어딨는지 알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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