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화. 꿈과 꿈 사이
열일곱에서 열여덟이 되던 겨울, 김신은 교통사고를 당했다. 뺑소니였다.
새벽 조깅은 김신에겐 습관 같은 것이라, 그날따라 유난히 안개가 짙었지만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게 잘못이었는지도 몰랐다고, 김신은 몇 년이 지난 후에야 후회했다.
처음 보는 차였다. 번호판을 기억하지 못했고, 바닥에 후두둑 떨어지는 자신의 피가 웅덩이가 되어 고였다.
그중 흘러나온 핏줄기 하나가, 뺨에 닿았다. 굉장한 이질감이었다. 생각보다 뜨끈해 김신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아픈 것도 몰랐다. 숨이 쉬어지질 않아 손가락으로 바닥을 긁었다. 숨을 쉴 때마다 폐가 찔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땐, 창백한 얼굴의 아버지와 어머니가 보였다.
현실을 망각한 채 깨어났다가 다시 잠들기가 여러 번이었다. 어느 날,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마치 가까이 다가왔다가 멀어지기를 반복하는 거 같아서 김신은 자신이 지금 꿈을 꾸다 지쳐 가위에 눌리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멍한 기분이었다.
어디지. 지금이 언제지. 생각을 되뇌며 눈을 뜨려는데 눈이 떠지질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앞이 보였다. 눈을 감고 있는 순간에도 색채가 흘러 눈동자 사이로 가라앉았다.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이것이 꿈인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여기입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커튼이 펄럭펄럭했다. 까만 머리칼이 김신의 시선에 들어온 건 순간이었다. 하얀 커튼만큼이나 창백한 사람이 김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동안 시선을 맞추자 그가 보조의자를 당겨 침대 앞으로 다가와 김신의 곁에 앉았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
숨이 옅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아 눈을 크게 떴는데 그가 손바닥으로 김신의 눈동자를 덮었다. 손이 파리하게 떨리고 있었다.
“죽을 거 같아.”
후두둑, 뭔가가 김신의 손등 위로 떨어졌다. 눈물이라는 걸 김신은 금방 알아차렸다. 피부색은 차가워 보이는데, 눈물이 너무 뜨거워서 위화감이 들었다. 꿈인가.
그 사람은 색소가 너무 옅어서,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았다.
“왜 울어?”
김신의 눈동자를 덮었던 손을 치워내고 그 사람이 젖은 얼굴로 시선을 맞춰왔다. 하얀 목이 조금 움직여 끄덕이는 걸 김신은 보고 있었다.
신기하게도 얼굴선은 명확하지 않은데 시선의 온도는 정확하게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누군데?”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다. 폐를 크게 다쳐서 의사 선생님이 말을 하면 안 된다고 했다. 입만 벙긋했던 거였는데 그가 김신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들린 걸까. 손을 움직였더니 조심스럽게 김신의 손목을 잡고는 제지했다.
“….”
그 당시 김신은 많은 단어들을 알지 못해 그 사람을 명확한 단어로 수사할 순 없었지만 서늘하고 처연한 눈빛이었다.
또 눈물방울들이 떨어져 뺨 위를 굴렀다. 울어본 적이 없는 것 같은 얼굴이었다. 주르륵, 흐르는 눈물을 닦지도 않고선 계속해서 흘려보내기만 했다.
마치 온 몸으로 마음에 가득한 슬픔들을 토해내는 것 같았다. 그것은 김신을 향한 것인 한편, 그 사람의 온연한 슬픔에서 비롯한 것인 듯했다.
시선을 움직여 그의 손목을 본 것은, 아마도 그 슬픔의 한가운데에 느껴지는 익숙한 언어들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살았어?”
손목에 감겨진 밴드. 그렇게 묻자 그가 놀란 눈을 했다.
눈동자의 색이 완연하게 변했다. 기쁘면서도 또 슬픈, 우울함이 저변에 깔려 있는 행복. 여러 색이 담기는 그 눈동자에 손을 뻗자, 그가 다시 손목을 잡았다. 계속 떠는 것 같았다.
“말, 하지 마.”
손가락이 길고 예뻤다. 손바닥이 유난히 작아 손가락이 더 길어 보였는데, 어쩐지 김신은 그게 안타까워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자신의 손으로 가두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러자 그가 고개를 숙였다.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다.
“아프지 말고….”
“….”
“내가 다 잘못했어.”
잘못했어. 신아.
뚝뚝 떨어지던 눈물의 의미가 뭔지 몰라 손을 좀 더 세게 쥐었더니 손바닥 안에서 심장 소리가 났다. 그 사람의 손에 가두어진 심장과 자신의 손에 가두어진 심장이 서로 맞부딪힌 진동이었다. 서로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 바람이 커튼 사이로 불었다.
눈을 감았다 뜨자, 모든 것이 정지된 상태였다. 아무도 없었다. 꿈과 꿈 사이에 간극이 길게 늘어졌다.
***
“입술 튿어질 거 같은데.”
웃으면서 말하는 김신은 운전 중이었다. 우진은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향해 웃고 있는 김신과 퇴근 후 저녁을 먹으러 나가는 중이었다.
- 메시지 늦게 확인했어요. 저녁 같이할까요?
어딜 갔다 왔느냐고 묻지는 않았다. 우진은 그런 질문을 할 수 있을 만큼 이 관계에 자신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마음이 뜨끔해서 고개를 숙이자 김신의 손이 우진의 턱을 들어 자신을 향하게 했다. 손끝에서 싸늘함이 느껴졌다. 왜인지 몰랐다.
“고개 자주 숙이네.”
“….”
“입술에 피났어요. 잠깐 이쪽 봐요.”
심장이 현이라면, 활로 죽죽 긋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신호를 기다리면서 김신은 꼼꼼하게 우진의 입술선을 만져주고 두 번째 손가락으로 몇 번 튕기더니 아이처럼 웃었다. 화려한 얼굴이 자신을 보고 웃는데도 우진은 이상하게 긴장감이 들었다.
“아프겠다.”
“….”
“그쵸. 유진 선배.”
순간, 우진이 김신의 손을 탁, 하고 쳐냈다. 부웅, 하고 기어가 변환되며 신호가 바뀌었다.
초록불로 바뀐 직후 김신은 아무렇지 않게 운전했다. 속력이 점점 올라갔다. 우진의 심장 박동도 빨라지기 시작했다.
“뭐, 뭐라고.”
“왜요. 우진 선배. 아 선배라는 말이 어색해서?”
“….”
“그냥 불러봤어요. 형이라고도 불러볼까.”
입꼬리가 올라가 있었는데 눈이 웃고 있질 않았다. 착각이었나. 잘못 들었나. 어떡하지.
우진은 순간 쏟아지는 생각이 머리를 잠식해 더 이상은 김신을 바라보기 힘들었다.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면서 입술을 다시 물었다. 비릿한 맛이 났다.
“저녁을 다 먹으면.”
“….”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
“….”
“말해줄 겁니까?”
쏟아지고 부서지고 찢어진 기억들이 우진의 얼기설기 접합되어 있던 손목의 상흔을 타고 흘렀다. 심장이 귓가에서 울린다. 숨이 찼다.
우진이 왼쪽 가슴 부근에 손을 올리며 숨을 가쁘게 쉬자, 김신이 미간을 찌푸리며 금방 길가에 차를 정차했다.
“우진 대리님!”
“자, 잠시만, 흐…하….”
김신이 허겁지겁 우진의 입을 손바닥으로 막았다.
“아니야, 하… 자, 잠시만.”
우진이 손을 뻗어 김신의 목을 감아 얼굴을 묻었다. 숨이, 급하게 차올랐다가 횡경막이 갈비뼈를 터트릴 것처럼 팽창했다. 김신의 손이 마구마구 떨리고 있었다.
“벼. 병원 가요. 우진 씨.”
“하…아, 하…아.”
당황하는 얼굴. 눈물이 쏟아질 것같이 습윤한 눈동자. 우진은 입술을 깨물며 김신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숨을 몰아쉬었다.
심각하지 않은 호흡이었지만 좀 더 걱정해주길 바랐다. 이토록 이기적이고 난잡한 마음이라니.
우진은 떨리는 손을 들어 김신의 뺨을 쥐었다. 피로 얼룩지는 상상을 했다. 수영장 아래로 침잠할 때도 피가 뚝뚝 떨어지는 손으로 김신의 얼굴을 만지고 싶었다.
“아, 아파요?”
떨리는 목소리에 우진은 안심했다. 고개를 저으며 숨을 천천히 몰아쉬었다. 발작은 아니었다. 그걸 알고서도 우진은 좀 더, 좀 더 앓았으면 했다. 그럼 김신의 시선이 온연히 자신에게로 머물 것을 아는 교활한 마음 때문이었다.
“….”
답을 하지 않았다. 아픈 것은 오로지 김신 때문이었으니까.
“미안, 미안해요. 우진 씨.”
“…하아.”
내가 널 망쳤는데, 뭐가 미안하지.
내가 널 망가트렸는데 뭐가 미안하지.
우진이 숨을 급하게 몰아쉬자 김신이 손을 들어 우진을 당겨 안았다.
“아프지 마요.”
널 아프게 한 건
나였는데.
***
‘최우진이 한국에 더 이상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 하나 있죠.’
‘그게 뭐지.’
궁금해서 물어봤던 건 아니었다고, 그때의 어머니는 말했다.
‘뭐 애착의 대상을 없애는 것 정도.’
돌아오지 말아줬으면 해. 우진아.
그날 밤 너는 죽었어야 했거든.
어머니가 손을 들어 우진의 얼굴을 만지며 말하는 걸, 지켜보던 지훈은 자신이 끔찍한 환영을 봤을 뿐이라고 생각했다.
‘엄마, 난 우진이가 밉질 않아.’
최우진과 똑같이 생긴 그 얼굴이 지훈의 뺨을 때렸다. 뺨에 생채기가 났는데, 어머니는 손을 들어 닦아주질 않았다. 웃었다. 입술이 붉었다. 검은 머리칼이 허리 부근에서 찰랑거렸다. 창백하고 아름다운 어머니. 어머니와 최우진.
최우진과, 김신.
“하아, 하아.”
디리리링.
숨을 몰아쉬며 악몽에서 지훈은 깨어났다. 이 꿈을 꾼 건 실로 오랜만이었다. 침대 옆 협탁을 뒤져 알약을 세알 꺼냈다. 협탁 아랜 늘 생수 다섯 병이 놓여 있었는데, 그건 약간의 강박 같은 것들이었다. 차가운 생수를 따고 입에 알약을 넣고 씹었다. 물도 함께 마셨다. 쓴맛이 위 벽으로 떨어졌다.
“약도 먹어?”
지훈은 자신의 방에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인영을 쳐다보았다.
“함부로 들어오지 말아줬으면 하는데.”
“오오 차가워.”
지훈의 침대 맡에 손을 가져다댔다 떼어내는 흉내를 내던 남자가 환하게 웃으며 소파 근처에 털썩 앉았다.
“네가 알려 달라고 했잖아. 최우진에 대해서는 언제, 어디서든.”
“…뭐?”
“최우진 오늘 새벽에 집 나갔어.”
“김신 집?”
“아니, 최우진 집. 짐 싸서 나가던데. 아주.”
지훈의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악몽에서 깨어나자마자 또 다른 악몽의 시작이었다.
***
김신은 주차장에서 차를 대고 사원증을 찍고선 여느 날과 다름없이 홍보팀으로 올라오는 중이었다.
메시지 하나가 다랑, 하고 울렸다. 예전 같으면 바로 확인했을 텐데, 엘리베이터 안이 조금 복잡하기도 하고 금방 사무실에 도착할 것 같아 재킷 위로 울리는 진동만 확인하고는 얼른 내렸다.
어제 우진이 밥도 먹지 않고 금방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기에 얼굴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급하게 정책실을 체크하는데 우진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손목시계를 확인하니 출근시간 10분 전이었다.
‘몸이 안 좋나.’
그제야 핸드폰을 꺼내 김신은 메시지를 확인했다. 배이준이었다.
- 김신 주임, 회사 출근했어?
국외출장 결과보고서는 이미 올린 지 꽤 됐는데, 문제가 생긴 것인가 싶어 자리에서 일어날 때였다. 강지훈이 홍보팀 앞으로 뛰어 들어왔다.
“김신 주임.”
목소리가, 흔들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미간을 찌푸리자 지훈이 숨을 크게 몰아쉬고는 입술을 짓이겼다.
“혹, 최우진과 연락됩니까?”
“네?”
“표정 보니 알겠네요.”
안 좋은 예감이 머리끝까지 뻗쳤다. 김신이
핸드폰을 꺼내 최우진에게 전화를 걸 때였다. 강지훈이 금방 사무실 밖으로 나가려 하기에 전화를 걸면서 쫓아나갔다.
“뭐야?”
“잠시만요.”
강지훈의 거친 모습을 꽤나 봐왔다고 생각했는데, 사나운 얼굴이 약간 잔인해 보일 정도로 구겨져 있었다.
“최우진이 왜요?”
“전화 안 되잖아. 놔.”
분명, 다른 얼굴이었다. 진득진득한 타르처럼 어두운 구석이 있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에 김신이 미간을 찌푸리자 지훈도 숨을 몰아쉬며 김신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난 네가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우진이에게 연락 오면 그때 이야기해요. 나 지금….”
“….”
“아주 열 받았으니까.”
김신은 서 있는 바닥이 와르르 무너져 기억 속으로 떨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수화기에서는 여전히 응답이 없는 것을, 김신은 애써 무시하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