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김 주임과 최 대리-29화 (29/60)

29화. 끝과 시작의 타래

유진 선배.

사실 김신에게 유진의 존재는 선배라고 말을 붙이기에도 애매한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전까지 유진이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어떤 마주침이었는지 모든 것이 불분명하고 흐렸으니까.

그땐 그랬다. 자기 자신의 선명함을 제외하고, 타인의 색 같은 걸 알 수 없었던 때.

그 사람이 각인 된 건 분명, 그 수영장의 기억 때문이었다. 붉게 퍼지던, 그 비릿한 내음과 침잠하던 인간의 눈동자.

그건 어린 김신에게는 끔찍한 장면이었다.

‘그래, 유진. 분명. 그 얼굴.’

시우의 목소리가 김신의 귓가에 웅웅거렸다. 그건 마치 수영장 한가운데에 손과 발을 움직이지 않고 가라앉는 순간과 닮아 있었다.

어느 순간 기억이 뚝 끊어지는 느낌이 났다. 시우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귓가에서 차차 멀어졌다. 현재의 시간 또한 점차 늘어나 김신에게서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러니까, 그 눈동자.

‘살고 싶어.’

분명, 그 붉은 눈동자는 김신에게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

10대의 김신은 20대 후반의 김신과 많은 부분이 달랐다. 그때는 모든 것이 손에 쥘 수 있을 정도로 선명했고, 그 색채의 중앙에 서 있었던 것도 김신 자신이었다. 사고를 당하기 직전까지도 김신은 자신이 평생 트라우마 같은 것에 시달리지 않을 거란 확신이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특별히 유능했고, 타인은 거리낌 없이 자신에게 마음을 열고 친절을 베풀었다. 그리고 그들은 선망의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봤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색은 자신의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그런 시선들로 인해 덧입혀진 것일지도 몰랐다.

“혼자 방 쓰는 선배 있잖아. 그, 3학년 선배. 성적 우수자.”

“누군지 모르겠는데.”

어느 날이었다. 트레이닝을 마치고 나오는 길에 마주친 시우가 이온 음료를 던져주며 무심하게 말을 걸었다.

“너랑 안 친해?”

“누굴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니까.”

“왜 그 이상하게 아지랑이 같은 선배.”

아지랑이라니. 시우는 김신이 처음 보는 범주의 사람이었는데, 친해지기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 서로 신기해하는 중이었다.

시우는 몸짓이나 스킨십의 농도, 목소리의 점도도 어딘지 모르게 그 나이 또래 남자아이들과는 달랐다. 의아하게도 타인들은 그걸 잘 인지하지 못했다. 아마도 화려한 얼굴 때문에 모든 특이점이 가려지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김신은 은연중에 하고 있었다. 원래 김신은 자신과는 좀 다른 것들에게 호기심이 많았다.

“너 수영장 들어갈 때마다 창문 밖으로 쳐다보길래, 아는 사이인 줄.”

“…좀 무서운데?”

그 기억이 전부였다. 그러니까, 시우가 처음 말을 꺼낸 것도 지금에 와서야 아주 조금 더운 기운을 내뿜으며 기억났을 뿐이다. 시우가 손가락을 들어 올려다본 작은 창문에는 이미 그 사람의 얼굴은 없었다. 김신이 기억나는 건, 단 하나.

붉은 빛의 수영장.

아침에 일어나 등교 전 수영장에 가는 건 김신의 오랜 습관이었다. 전국 체전을 앞두고 그날따라 일찍 나와서 다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이후에 아주 연약한 감각으로 해봤을 뿐이다.

이상하게 잠에서 일찍 깼다. 새벽 4시 반. 달과 태양이 서로 꼬리를 물고 학교 뒷산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락커룸에서부터 비릿한 향이 끔찍하게 코를 찔러댔는데, 김신은 애써 무시하며 뜨거운 물로 짧게 샤워한 후 수영장으로 내려갔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그 애매한 계절감에 몸이 으슬거렸다. 그리고 수영장을 가득 메운 붉은 빛을 보았다.

“….”

옅은 붉은색을 타고 중앙에 시선이 머물렀을 때 어느 한군데에서 검은 빛의 액체가 일렁이고 있었다. 물을 타고 피어오르는 검은 피. 김신은 순간 수영장에서 뒷걸음 쳤다. 그러나 수영장 입구 아래에서 퍼지던 붉은 물결이 피라는 사실을 알고 아래를 내려다봤을 때, 눈에 들어온 인영이 하나 있었다.

그러고는 기억이 없다. 숨을 몰아쉬며 바깥으로 그 몸뚱아리를 꺼내어 왼쪽 가슴에 귀를 가져다 댄 그 순간 후욱 끼쳐든 더운 김만 기억났다.

덜덜 떨리는 다리로 락커룸에 뛰어가 핸드폰을 꺼냈다. 119를 불렀다. 조각조각 쏟아지는 기억들. 등교하던 아이들이 피를 뒤집어쓴 수영장을 보지 못하게 하려고 둘러진 테이프. 경찰. 의사. 손목. 뼈가 도드라지던 팔목. 엉망으로 그어진 피부.

김신이 숨을 몰아쉬며 털썩 바닥에 주 앉았을 때, 실려가던 인영의 눈꺼풀이 떨렸다. 이상하게 새벽 어스름처럼 푸른 얼굴이었다. 잔뜩 맞은 듯 부어 있던 얼굴이라 대체 누구인지, 어떤 얼굴이었는지 알 수도 없었는데, 숨을 탁, 몰아쉬며 그가 손을 들었다.

‘살려줘.’

그 순간을 기억하는 건 분명 누가 봐도 자살시도였던 그 상황에서 가라앉은 눈동자가 말하던 이율배반적인 언어 때문이었다.

죽고 싶어 하던 정황들과 어긋난 시선의 움직임. 김신은 피를 뒤집어쓴 채 건네주는 타올을 받아들고선 그 공간을 빠져나가면서 생각했다.

살았을까.

그토록 살고 싶어 하던, 그가 살아났을까.

그리고 그를 마주한 건, 얼마 지나지 않아 이어진 끔찍한 사고 직후였다.

***

“점심은?”

“약속.”

우진은 지훈과 외근을 마치고 회사 주차장 안으로 들어오는 길이었다. 점심을 먹고 들어가도 나쁘지 않은 시간대였는데 우진은 조금 서둘렀다.

정책실의 외근은 다수가 전문가 회의 일 때가 많았고, 식사시간대를 물고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우진은 주말이 금방 가버린 탓에 김신을 보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렸다. 자기도 모르게 미팅과 회의를 빨리 진행했던 탓인지 애매한 시간에 회의가 종료되어버렸다.

김신이 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를 보면 어딘가 붕 떠 있던 손과 발들이 찬찬히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아니, 반대로 떠오르는 것인지도.

“잘 좀 챙겨 먹어라. 식사 모임에서도 네 건강 이야기 나왔잖아.”

“같은 자리에서 들었는데 왜 반복하지?”

“반복이 나쁠 건 없어.”

곧 죽을 거 같은 사람처럼 자신을 보는 지훈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지훈의 차가 부드럽게 지하 주차장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햇빛이 가려지고 순식간에 어둠이 가라앉는 순간 왜인지 모르게 한숨이 쉬어졌다.

“웬 한숨?”

“강지훈.”

“응?”

“숨 막혀. 좀.”

지훈과 있으면 가끔 숨이 막혔다. 다정한 눈길, 섬세한 손. 따뜻하고 온정이 넘치는 말투. 저렇게 딱 떨어지는 고급스런 스트라이프 셔츠에, 단색의 타이를 매치하는 감각. 코트는 구겨지지 않게 팔목 가운데에 두고, 가끔 능글거리면서도 저급하지 않은 농담을 잘 하는 사람. 환하게 웃으면 눈이 접히는 타입인데, 어딘가 모르게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면이 약간

끈적했다. 그건 아마도 유전일 것이다.

“먼저 올라갈게.”

주차를 하기 전, 텀을 두고 서 있는 지훈에게 우진은 좀 망설이다 핸들 위의 손을 겹쳐 얹고선 말을 이었다. 지훈이 누구보다 자신의 행복을 바란다는 것을 우진은 알고 있었다. 문제는 그 행복이 우진의 것이 아니라 지훈이 확정한 것이란 것. 그것이었다.

‘개. 개지. 감시견.’

술이 잔뜩 취한 배이준이 말하며 웃었다.

‘난 그 개가 좋았어. 문제는 주인이 하나라는 것이었지만.’

뒤엉킨 관계들이 실타래처럼 우진의 심장 아래서 꼬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빨리 이 공간을 벗어나고 싶었다.

굳어진 표정의 지훈을 무시하고 차에서 내리려는데, 사원증을 찍고 내려오는 익숙한 인영이 보였다. 김신이었다. 떠올릴 때마다 나타나는 일이 제법 있는 편이라 우진의 표정이 자신도 모르게 희미하게 풀어졌다.

그 순간 잔뜩 굳어진 얼굴의 김신이 정차되어 있는 붉은색 차 앞에 섰다. 처음 보는 차였다.

“김신이네.”

나가려던 우진의 발목을 잡은 건, 지훈의 가라앉은 목소리가 아니라 그 차에서 내리는 사람 때문이었다. 지난번에도 마주친 적 있는 색소가 짙은 사람. 그 사람은 차에서 금방 내려 김신의 손목을 잡아 태운 후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이잉, 하고 주차장에 남은 공기들이 서로 부딪히며 바람소리를 냈다.

“점심은 나랑 먹어야겠다. 우진아.”

좋아하는 마음은 왜 행복감만을 주지 않을까, 고민한 적이 있었다.

행복은 기저에 우울을 데리고 다녔다. 평생 그랬다.

아마도 슬픔이 우울을 데리고 다녔으면 살고 싶지 않았을 텐데, 늘 마주하는 행복이 우울을 데리고 다녀 우진은 더 살고자 했던 거 같다.

마음 안에서 열기가 뻗쳤다. 이유를 알 것 같기도, 모를 것 같기도 했다.

***

“주말에 주완이가 어릴 때 사진 보고 싶다고 해서 발견한 거야.”

“….”

“졸업 앨범에 동아리 활동한 게 여러 가지 있었는데, 1학년 때 찍은 사진부터 3학년까지 차례로 나와 있더라고.”

“….”

“봐봐.”

수영부는 체전이 마치면 수영장에 모여 사진을 찍곤 했다. 입학 직후 메달을 딴 시기였을 것이다. 다들 정신없이 메달을 들고 카메라를 보고 있는데, 그 옆을 무심하게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 하나 있었다.

“우연하게 찍힌 거네.”

“…너 너무 침착한 거 아니야?”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입을 열면 심장 같은 것들이 다 쏟아져 내릴 것 같은 기분이었다. 끈적끈적했던 핏방울들 말이다.

“너 그 사고 이후에 수영장 근처에도 안 갔잖아.”

“….”

“그리고 교통사고 때문에….”

“그만하자.”

시우가 유진, 그러니까 우진을 기억하게 된 건 김신보다 먼저였다. 스토커 아냐, 하고 장난스럽게 웃던 시우가 그 선배가 자살시도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곤 제일 먼저 달려왔다.

물론 김신을 가장 걱정하긴 했지만, 그 뒤로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도 없는 그 사람의 이야기를 가끔 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신은 유진을 잊고 살았다. 아니 기억한 적이 없었다.

“나 다시 들어가봐야 해.”

“점심 먹고 들어가.”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테이크아웃해다가 차 안에서 시우가 가져온 앨범을 보던 김신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시우는 그런 김신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손을 들어 턱을 자신에게 향하게 하는 시우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왜 그런 얼굴인지 말 안 해도 알 거 같은 기분인데.”

시우는 그렇게 말하며 김신을 쳐다봤다.

“이 사람이 사내연애의 장본인이지?”

“….”

동일인일거라고 생각해본 적 없었다. 우진의 손목에 그인 자욱을 봤을 때도 우연히 겹쳐 기억난 것일 거란 생각을 갖고 있었다.

우선 김신은 유진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했고, 우진과 아주 유사한 이름이었지만 접점 같은 것들도 없었다. 무엇보다 유진은, 그러니까.

“너 사고 나서 아팠을 때.”

“….”

“분명 나한테 말했어.”

“뭘.”

왜 같은 얼굴인데 몰랐을까. 너무 희미해서 마치 같은 공간과 시간을 공유하지 않았던 거 같은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너무 선명해서 뇌리 속에서 뛰쳐나올 것만 같았다.

“신아.”

“우선 이름이 달라.”

“….”

“그 사람 이름이 아니야.”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숨을, 숨을 못 쉬겠어. 바닥을 긁어대던 손톱이 자신의 눈에 보였다. 차가운 공기, 패딩에서 터져 나온 깃털들이 바닥에 진득하게 붙어 있었다. 너무 숨이 쉬어지지 않아서 그 모든 것들이 객관화가 되어 보이기 시작했다.

마치 자신의 일이 아니라, 멀리 떨어진 느낌으로, 영화를 보는 것 같은 그런 기분.

“분명 그 얼굴이야. 이상하게, 침울해 보이는 그 얼굴.”

그 얼굴이, 하얀 커튼 아래로 왔다 갔다 했다.

‘왜 울어?’

물었더니,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데?’

‘….’

말하지 않았는데, 손목에 감고 있는 밴드로 알 수 있었다.

‘살았어?’

‘말, 하지 마….’

꿈.

꿈에서 상대를 본 건 우진이 아니라,

김신 자신이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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