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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주임과 최 대리-25화 (25/60)

25화. 관계와 이해의 상관관계

“최 대리님, 왜 여기 있어요?”

김신은 자신의 품에 안겨든 우진의 목덜미에서 옅은 소나무 향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손에 닿은 패딩의 감촉이 차가운 거 같아 김신은 오피스텔 비밀번호를 빠르게 눌렀다. 손을 잡아당기자, 그야말로 얼음장이다.

“얼만큼 기다린 거야 대체.”

화난 얼굴로 김신이 금방 자신의 오피스텔 건물로 우진을 잡아끌었다. 손을 주물러줘도 금방 온기가 전해지지 않을 정도로 차가웠다.

손을 호호 불자 우진이 간지럽다는 듯이 숨을 몰아쉬었다.

“웃음이 나옵니까? 감기 걸리면 어떡하려고 그래요?”

엘리베이터가 땡, 하고 1층으로 떨어지자마자 김신은 우진을 이끌면서 팔을 들어 자신의 품 안으로 밀어 넣었다.

다행히 늦은 시각은 아니라 그런지 오피스텔 안은 인적이 드문 편이었다. 얌전히 자신을 감싸고 있는 김신을 올려다보던 우진이 뒤통수로 김신의 어깨를 눌렀다.

“안 하던 짓을 하네요.”

“….”

“이상한데?”

김신은 웃으면서 우진의 흐트러진 앞머리를 살짝 넘겨주었다. 우진이 간지러운 듯 눈을 감으며 손바닥에 얼굴을 비볐다. 그러고 보니 유난히 오늘따라 스킨십에 유연한 느낌이라 김신이 눈을 가늘게 뜨고 우진을 바라보았다. 뺨이 조금 붉었다.

“설마 술 마셨어요?”

“….”

“대답해봐요.”

“네.”

“정말?”

“네. 많이.”

많이, 라고 다시 한 번 말하며 눈을 접어 웃는 우진이 신기해서 김신은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린 줄도 모르고 가만히 서 있었다.

분명, 한두 번 같이 술을 마셨던 거 같은데 주정을 부리는 모습은 처음이었다. 의외의 얼굴에 웃음이 비집고 나올 거 같아 김신은 급하게 손으로 입 주변을 가렸다.

“우선 내립시다.”

어딘지 모르게 당황한 얼굴의 김신을 멍하니 바라보던 우진이 자신의 손목을 잡아끄는 그와 함께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묘하게 김신은 가슴 언저리가 쿵쾅쿵쾅 뛰는 걸 느꼈다. 사람을 좋아하면, 금방 열이 오르는 모양이다. 태어나서 연애라는 걸 이제야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다는 생각을 하며 김신은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재빨리 눌렀다. 문이 반쯤 열린 현관에서 소리 없이 오렌지 빛을 밝혔다.

“아픈데.”

눈을 찡그리며 잡혀 있던 손목을 돌려 찬찬히 빼내는 표정이 평소와 다르게 보인다고 생각하면서 멍하니 우진을 내려다봤다.

이전까지 그에게 우진은 뭘 생각하는지 뭘 좋아하는지 알기 힘든 상대였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갑자기 얼굴에 열이 확 올랐다. 화난 표정까지 섹시할 필욘 없잖아, 그렇게 생각하며 우진의 손목을 놔주었다.

그러자 금방 그가 입꼬리를 올렸다. 신발 벗어요, 했더니 네, 하고 화사하게 웃었다. 미칠 지경이었다.

“얼마나 마신 거야? 대체.”

“많이 마셨다고 말 했는데.”

말꼬리를 잡는 게 어이가 없어서 김신은 코트를 벗다 말고 우진을 돌아보았다.

“지금, 웃어요?”

“아마도.”

“환장하겠네.”

김신은 자기 코트를 행어에 건 뒤에, 뒤따라 패딩코트를 벗는 우진의 뒤에서 옷걸이를 건넸다.

한동안 하얗고 까만, 선은 또렷하지만 왜인지 훅 사라질 것 같은 우진의 얼굴을 보고 있던 김신은 얌전히 옷걸이에 옷을 걸고 있던 우진을 잡아끌어 안았다. 충동적이었다.

“왜 이렇게 많이 마셨을까.”

“….”

“속상한 일 있었어요?”

“….”

우진은 고개를 젓고선 한동안 그저 김신의 가슴팍에 코를 묻고는 숨을 쉬었다.

차가운 몸과는 달리 더운 숨이 김신의 목덜미와 심장을 감싼 근육과 뼈 위로 눈처럼 쌓였다.

예전부터 느꼈지만 우진은 숨이 얕은 사람이었다. 처음 같이 잘 때에는 숨소리가 거의 안 들리는 바람에 영화에서처럼 코끝에 손가락을 대봐야 하나 했다.

한동안 안겨 있던 그가 얼굴을 떼고선 거실 중앙을 걸어가 소파에 앉았다. 눈을 감고 고개를 젖히더니만 돌아보지 않은 채로 자신의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툭툭, 하고 두드렸다. 일단 걸어가서 소파에 앉자, 우진이 눈을 뜨고는 김신의 손을 바투 잡았다.

차가운 손이, 뜨거운 체온에 얽혔다.

“항상 속상하니까.”

“….”

“속상한 게 뭔지 모르게 된 거 같아.”

숨소리만큼이나 얕은 목소리가, 무거운 이야기를 했다.

“신아.”“….”

“난 네가 날 만나주지 않을까봐 엄청 걱정했는데. 만나줘서….”

우진은 약간 웃고 있는 것 같았다.

“고마워.”

그 말끝의 호흡이 유독 길었다.

김신은 그런 우진의 턱을 손가락으로 잡았다. 얼음처럼 녹을까, 싶었다.

“만나자고 해줘서, 더 고마운 건 이쪽이라고요.”

서로 엄청 간지러운 소리 하고 있구나, 하고 김신은 가볍게 웃었다.

그러고는 곧바로 진지한 얼굴을 하면서 눈썹을 찌푸렸다.

“다른 남자랑 술 마시고 와서 주정 부리지 말고.”

“….”

“질투 나거든요.”

“질투도 해?”

“항상?”

“사실은… 나도 그래.”

어? 김신은 정말 놀란 얼굴로 우진을 봤다. 대체 자신에 대해 질투할 포인트가 어디 있단 말인가. 김신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내 뭐에 대해서 질투해요?”

“넌 너무 친절해.”

“뭐?”

“김슬기 주임이랑도 늘 붙어 있고.”

“무슨….”

“지연우 주임도.”

“….”

“그리고 오늘 만난 사람, 흡.”

듣고 있던 김신이 손바닥으로 우진의 입을 꾹 막았다. 눈을 동그랗게 뜨는 우진의 시선을 쳐내며 김신은 결국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만해요. 진짜.”

“화났어?”

“….”

“억지가 심했나…?”

자기 입을 가리고 있던 김신의 손바닥을 내리며 우진이 물었다.

“아뇨. 더 이상 듣고 있다간 진짜 부끄러워서 죽을 거 같거든요.”

그러고 보니 목덜미가 붉어진 거 같아 김신은 손으로 자신의 목 근처를 가렸다.

어디까지 귀여울 예정이지. 멋있고 예쁜 건 금방 사라지지만 귀여운 데에는 답이 없다던 시우의 쓰잘 데 없는 연애 팁이 생각났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술 먹지 말란 이야긴 안 할 텐데, 그래도 이렇게 귀여운 건 나한테만 해요.”

그렇게 말하며 김신은 우진의 한쪽 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었다.

“다른 이야기 하나 할까요?”

아직 한기가 남은 우진의 뺨에 손을 갖다 대며 김신이 웃었다. 머뭇거리지는 않았지만, 조금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는 걸, 알아채주기를 바라면서.

“왜 속상한데요, 항상?”

“….”

“술 취한 김에 나한테 말해봅시다.”

파란 기가 도는 검은 눈동자가 그 말에 일순 깊게 잠겼다가 다시 떠올랐다.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 시선이 빼앗긴다는 것은 순간적인 면이 있다. 그러나 마음이 움직이는 건 다르다. 처음에 날카롭게 파고들었다가 서서히 번지듯 물드는 것이다.

어딘가 모르게 우진과 마주할 때면 처음 수영장에서 수영을 배우던 시간이 떠오르곤 했다.

물이 자신을 감싸 안고 천천히 현실이 가라앉던 그 순간, 한참 뒤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을 때 터지던 희열 같은 숨과 귓속을 파고들던 현실의 잡음들.

늘 그 순간이 기억났다. 꼭 파열음 같았다.

“항상 속상했어. 난.”

“….”

“아버지는 집에 잘 안 계셨고, 어머니는 그런 아버지를 너무 사랑했고.”

“…그래서요.”

“그런데 나를 사랑하진 않았던 거 같아.”

아무렇지 않게 말하면서도 입술은 일자로 굳어 있었다. 다시 물기 하나 없는 메마른 얼굴이 되는 걸 가만히 보고 있는 건, 조금 가슴이 쓰렸다.

“사랑받는 거 관심 없었는데, 막상 받아보니까 좋네.”

“….”

“넌 아니어도.”

나에겐 이번 게, 처음이었는지도 몰라.

그렇게 말하며 눈을 깜박이는 걸 가만히 보고 있던 김신이 손을 들어 눈 아래를 문질러주었다. 손을 크게 둘러 품에 가득 안아주자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습하고, 뜨겁고, 동시에 차가운 숨결이 김신의 어깨와 가슴, 그리고 팔 언저리에 닿았다.

“더 어리광도 피우고, 우는소리 해줘요.”

“….”

많이 울어도 괜찮아요. 김신은 그렇게 말하며 우진의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예전에 시우가 술을 마시다 꺼내든 대화가 문득 떠올랐다.

‘주변에 배리어가 높은 타입들이 없지? 넌?’

‘…배리어?’

‘왜, 사람들이랑 마주하기 싫어하는 부류.’

‘없지. 어려우니까.’

‘왜 어려운 줄 알아?’

‘….’

‘방어벽 높은 사람이 무너지기 시작하면 천천히 무너지는 게 아니더라고, 한순간 부서져버려. 그때 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책임을 져야 되고.’

‘….’

‘그게 무서운 거야.’

‘….’

‘그게 어려워서지.’

‘….’

‘너도 방어벽이 높은 사람 중 하나야. 멍청아.’

그렇게 말하던 시우가 생각나, 김신은 안고 있던 팔에 힘을 주었다.

손에서 놓기 힘들 것 같다는 감이 처음부터 들었는데 아무래도 감이 정확했던 모양이다.

떼어낼 수도, 이제 더 이상 내버려 둘 수도 없었다. 끈적한 감정이 심장 아래로 뚜욱뚜욱 흘러내렸다.

***

“어색한가?”

김신은 거울 앞에서 검은 터틀넥 스웨터를 입은 자신을 한참 쳐다보고 있었다. 아직 시계는 9시를 가리키는 중이다.

평일 아침,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고 늑장을 부린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주중에는 이렇게 평상복을 입을 일이 전혀 없었다.

중학교 때까지 트레이닝복이나 단체복 신세였던 김신은 옷을 사거나 꾸미는 데 일절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매일같이 교복처럼 정장을 입는 사내문화가 편하기도 했다.

대학 이후에 만났던 파트너들이 부쩍 김신의 패션에 관심을 보인 게 시작이었다. 무엇보다 대학 동기였던 시우는 쇼핑하는 데 김신을 꼬박꼬박 불러 옷을 여러 벌 추천해주곤 했다.

시우는 김신의 피지컬을 누구보다도 아까워했다. 그러고 보니, 저녁 식사 이후로 시우에게 연락이 없었던 것 같아, 김신은 가방을 챙기면서 핸드폰 메시지를 체크했다. 민재에게서 메시지가 한통 와 있었다.

- 오늘 10시까지 사당역 1번 출구지?

회사 워크샵 첫날이었다. 사당역에서 출발하는 셔틀은 무주의 한 리조트로 향할 예정이라고 했다. 회사는 부서끼리의 화합을 위해 상반기에 한 번, 1박 2일로 워크샵 일정을 잡았다.

합숙이 지긋지긋했던 김신은 단체 활동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했으나 이번에는 달랐다. 지원 부서에서 보내준 워크샵 안내 메일에는 엑셀파일로 참석 여부 확인 및 숙소 배정 명단이 첨부되어 있었다.

그는 우진의 이름이 참석 리스트에 올라 있는 걸 확인했다. 심지어 숙소 명단에는 김신과 최우진이 한 그룹으로 분류되어 있었다. 본부별로 숙소를 배정받는다는 건 알았지만, 왠지 기분이 묘했다.

- 일어났어요?

요즘 일어나면 김신은 꼬박꼬박 우진에게 문자를 했다. 차라리 같이 사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패딩을 골라 입고 있는데, 금방 메시지 창에 알람이 떴다.

- 가기 전에 같이 커피 마실까요?

스스럼없이 다가서는 우진의 변화가 놀라워 김신은 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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