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김 주임과 최 대리-21화 (21/60)

21화. 밤을 읽는 시간

“이제 어디로 갈까요?”

저녁 식사를 마친 뒤 김신이 차에 시동을 걸며 우진에게 물었다.

보조석에 앉아 나른하게 숨을 쉬고 있는 우진에게선 묘한 향기가 났다.

김신은 요즘 자제력을 상실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소유욕을 가진 것 자체가 처음인 것처럼 몸이 반응했다.

그건 관계에 대한 욕심과는 조금 달랐다. 사적인 공간 안에 최우진이 있다는 생각만으로 모든 것이 예민해지는 건 분명 감정과 몸의 화학작용 때문인 듯했다.

김신은 가끔 특정 호르몬이 우진을 보고 있자면 과도하게 많이 나오는 것은 아닌지 고민했다.

“피곤해요?”“…아뇨.”

손을 가져다대면, 달라붙을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하는 사람이었다.

김신은 자연스럽게 몸을 기울여 입 맞췄다. 우진의 눈동자가 잠시 커졌다가 눈꺼풀이 아래로 떨어져 그 모습을 감췄다.

목덜미 아래나, 귓불이 숨을 몰아쉴 때마다 떨렸다.

우진에게서는 가끔 물풀 향기가 났다. 반짝거리는 태양 아래 반짝거리며 물 아래에서 찰랑이는 느낌이었다.

김신은 기꺼이 뜨겁게 번지는 열기에 손을 가져다댔다가, 갑자기 불현듯 떠오른 생각에 손으로 우진의 턱을 들어올렸다.

조금 멀찍이 쳐다보자, 얼굴 전체가 눈에 들었다. 희고, 푸르고, 어딘지 안쓰러운 인상이었다. 동기들은 우진을 ‘메마른 사람’ 정도로 생각했지만, 김신에게는 전혀 달랐다. 그건 마치 식물의 잎사귀나 줄기가 해를 보면 뻗어 오르는 것 같았다. 손에 감기는 종류였다.

“물어볼 거 있는데.”

“….”

우진은 습관적으로 고개를 아래로 숙이는 편이었는데, 가끔 턱을 손으로 잡아 올리면 눈을 빤히 쳐다보곤 했다. 답을 않고 쳐다보는 눈동자에 물기가 약간 보였다.

“강지훈 대리님이랑 무슨 사이죠?”

“네?”

지훈은 생각보다 김신에게 관심이 많았다. 그건 김신 자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기보다 분명 우진으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거기다 주차장에서 마주쳤을 때 김신은 분명 지훈이 어딘가 묘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는 걸 기억해냈다. 그건 질투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차라리 슬픔 같은 것들이었는데 그것이 김신은 못내 마음에 걸렸다.

몇 번을 망설이다 물어본 것이었지만 우진의 표정이 담백해 왠지 김신은 말을 주워 담고 싶어졌다.

“저도 이런 질문하는 거 엄청 어이없다는 거 아는데….”

“….”

“강지훈 대리랑 사귀었어요?”

기본적으로 취소하고 싶은 말들은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와 부끄러움을 남기는 법이었다. 질문의 의도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표정의 우진을 바라보던 김신은 말없이 고개를 돌려 보조석에 몸을 묻었다. 머리끝까지 열이 몰렸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수치심이었다.

“….”

“남자 사귀어본 적 없는데, 나.”

우진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뒷머리를 만지작거렸다. 처음 보는 모습이라 김신은 자기도 모르게 몸을 일으켰다. 오늘은 우진의 다양한 면을 볼 수 있는 날이었다.

물론, 가장 많은 시간을 단둘이 보내고 있기도 했다. 우진은 고개를 돌려 밖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사람을 사귀어본 적이 없는 건가.”쨍, 하게 머리끝이 울려, 김신은 숨을 몰아쉬었다.

“좀, 어려워요.”

까만 밤 같은 날들이 있었다. 그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지 않고, 어렵기만 해서 얼른 지나가길 바랐던 날들. 김신은 그런 날들이 누구에게나 다 있을 거란 생각을 그때는 못했다.

다만 나이를 먹고, 사람들과 거리감을 두는 일들이 쉬워지면서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을 다 말할 필요도 없고, 듣더라도 마음에 담아둘 필요도 없는 관계가 대부분이었다.

김신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컴퍼스 같았다. 사람들과 일정 정도 거리감을 두고 끊임없어 뱅글뱅글 돌며 원을 그리는. 더 이상 멀어지지도 좁아지지도 않는.

“관계라는 게 뭔지 잘 모르겠어요.”

사실상 그건 김신도 마찬가지였다. 누구나 만났지만 마음 한구석이 서늘했다.

연애도 그랬고, 친구들도 그랬고, 수영을 못 하게 되었을 때 자신을 바라보던 가족들도 그랬다. 한 뼘씩, 혹은 한 움큼씩, 아니면 저 먼발치씩은 떨어져 있었다.

그것이 더 멀리멀리 가버리기 전에 손에 움켜쥐거나, 손에 쥔 것들을 버려야만 했다.

“우리 집 갈래요?

‘나랑 섹스할 수 있어요?’

한참이 지나, 김신이 그 말을 꺼냈을 때, 우진은 고개를 돌려 자신의 눈을 바라보았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그 눈에서 열기를 찾은 건 김신이지만, 동시에 우진 그 자신이기도 했다. 어떤 사람에게 깊이 빠지게 되는 건 시간이 문제는 아닌 듯 했다. 서로의 영혼에서, 자신의 모습들을 찾는 것. 그 순간이 오면 알 수 있었다.

좀 더 닿고 싶은 마음은,

몸은,

열감기가 옮아오는 것처럼 얽혀들었다.

고개를 끄덕이는 우진의 목덜미를 엄지손가락으로 문지르며 김신은 숨을 몰아쉬었다. 시동을 걸면서 김신은 생각했다.

좀 더 닿아버린 건 몸이나 마음이 아니라, 어쩌면 그 시간을 헤아리던 자신일지도 모른다고.

***

“편하게 앉아 있어요. 커피 마실래요?”

우진은 어색하게 코트를 벗어 소파 팔걸이에 얹어두고선 오피스텔을 둘러보았다. 김신의 집은 원룸이라기보다는 스튜디오처럼 생긴 넓은 공간이었는데, 전신 거울과 데스크, 그리고 아일랜드 식탁이 전부였다.

거기다 스튜디오 중앙에는 킹사이즈 베드가 딱 하나 있었다. 가구는 전부 원목에 블랙으로 디자인되어 있어서 심플하고, 차가웠다. 거울 앞에는 운동기구 같은 것들이 크기대로 얌전히 놓여 있었다.

“혼자 살아요?”

“누구랑 살까 봐 걱정돼요?”

모카포트에 커피 가루를 눌러 담으며 김신이 물었다. 웃는 얼굴이라 농담이란 걸 알았지만, 우진은 왠지 긴장감이 들어 소파에 앉으면서 무릎에 손을 가지런히 올려놓았다.

훈기가 돌 때까지는 좀 기다려야 할 것 같다며 김신이 가스버너에 불을 당기던 중 말을 걸었다.

“스물한 살 때 독립했나?”

“….”“돈을 좀 빡세게 모았어요. 물론 월세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김신이 스튜디오를 가로질러 우진의 옆으로 와서 앉았다. 두 명이 앉을 수 있을 만큼 넉넉하진 않은 소파라, 어깨가 서로 닿았다. 우진이 깊은 숨을 몰아쉬자 김신이 그를 내려다봤다.

“또 궁금한 거 없나?”

“….”“난 최우진이 어마어마하게 궁금한데.”

김신은 그렇게 말하며 우진의 무릎에 손을 얹었다. 손바닥의 열기가 얇은 옷을 밀어내고 마치 도장을 찍듯, 우진의 맨살에 닿는 느낌이 들어 고개를 외로 꼬자 김신이 웃었다.

“수영 그만두고 가족들이 걱정을 너무 해서, 부담스러워서 나와버렸어요. 본가는 여기서 가깝고.”

“….”

“그리고 전 시끄러운 건 딱 질색이라서요. 누나가 너무 시끄럽게 굴어대기도 했고.”

누나가 있구나. 나지막이 중얼거리자 김신이 우진의 얼굴을 빤히 내려다봤다.

“설마 우리 누나한테 관심 있는 건가?”

“아니요.”

“이럴 때는 대답을 잘하네.”

김신은 그렇게 말하며 손을 들어 우진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착하네요.”

“….”

“얌전하고.”

“….”

이해할 수 없는 단어의 조합이라 우진은 조금 혼미한 기분이었다.

우진이 고개를 들어 김신을 올려다보자, 김신은 천천히 허리를 굽혀 우진의 뺨에 자신의 뺨을 가져다댔다.

솜털이 닿아 간지러워 몸을 움츠리자, 한손으로 우진의 뒤통수를 당겨 안았다. 후욱, 하고 끼쳐든 체온에 우진이 뺨을 문지르자 고개를 약간 비끄러트리면서 김신이 조그맣게 속삭였다.

“…그리고 야하고.”

손이, 제멋대로 떨렸다. 얼굴을 보고 싶어 뒤로 물러나자 김신이 다른 한손으로 허리를 잡아 당겨 자신의 몸 쪽으로 안았다.

김신의 어깨에 이마가 부딪혔다. 아프지 않을 만큼의 악력이라 우진은 숨이 가팠다.

“남자가 자기 집으로 가자는 건 무슨 의미인 줄 알긴 해요?”

“….”“얌전히 따라오면 안 된다고 누가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닌가.”

김신의 손이 우진의 셔츠 안으로 밀고 들어왔다. 맨살에 닿는 손바닥의 감촉이 너무 자극적이라 허리 부근의 근육이 떨렸다.

그러자 김신이 우진의 갈비뼈 부근을 쓸었다. 자신도 모르게 신음이 흘렀다.

“이렇게 얌전히 있으면 안 되는 건데….”

“으…응.”

키스를 하고 싶어서 턱을 당겼는데 김신이 먼저 우진의 목을 물었다.

읏, 하고 소리를 내자 김신이 씹었던 목 아래를 혀로 천천히 쓰다듬었다. 축축하고 뜨거워서 자신도 모르게 우진의 몸이 소파 뒤로 젖혀졌다.

김신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우진의 위로 올라왔다. 하반신이 서로 마찰했는데, 무게감이 제대로 느껴져서 우진은 심장이 빨리 뛰었다.

대체, 언제 누가 자신을 무성애자로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심각하게 흥분되는 상황이라 어찌할 바를 모르고 우진은 김신의 팔을 긁어내렸다.

“보채지 마요.”

“아, 아니.”

그게 아니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두 눈이 마주쳐서 우진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김신이 숨을 몰아쉬며, 우진의 아랫입술을 물었다. 잘근잘근 씹는 통에 우진이 몸을 뒤척거리자, 김신이 손바닥으로 가슴 부근을 문질렀다.

“나랑 섹스하는 상상해본 적 있어요?”

숨을 몰아쉬며 묻는 김신의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어 더 흥분됐다.

확실히 김신은 보통 사람보다도 신체의 더욱 깊은 어느 부분에서 나오는 목소리를 갖고 있었다. 공기층으로 분산되는 음성을 가진 우진과는 확연히 다른, 묵직하면서도 질감을 가진 목소리였다. 쉬어 있는 느낌이 드는 그 목소리에 우진이 고개를 저었다.

“거짓말.”

거짓말이었다. 요 며칠간, 출장 마지막 날 밤에 있었던, 그 시간들이 잠에 들 때마다 머릿속에 맴돌았다.

성적인 부분에 있어서 자신이 담백하다고 생각했던 건 우진의 착각이었다. 뜨겁게 달아오르는 몸뚱이가 자신의 것이 아닌 것 같았다.

“거짓말이지?”

“….”

“대답해.”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우진이 붉어진 얼굴로 숨을 몰아쉬자, 김신이 몸을 천천히 일으켰다.

자신만 안절부절못하는 거 같아 누운 상태로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김신이 손을 들어 우진의 얼굴선을 따라 그렸다. 간지러워 몸을 웅크리자, 김신이 찬찬히 웃었다.

“커피 끓었나 보고 올게요.”

우진이 멍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김신이 몸을 일으켜 주방으로 걸어갔다.

커피를 따르는 김신의 얼굴을 보고 있다가 우진이 갑자기 소파에서 일어났다. ‘왜?’ 라고 묻는 그 얼굴을 보면서 우진은 거실을 가로질러 걸어가 커피를 따르는 김신의 옆에 섰다. 아직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 숨을 몰아쉬며 김신의 소매 끝을 잡았다.

“응?”

“….”

“뭐 필요해요?”

넌, 아무렇지 않은 걸까. 난 이렇게 온몸이 떨리는데.

“너무, 느, 능숙한 거 같아.”

자기도 모르게 목소리가 떨렸다. 김신이 따르던 모카 포트를 다시 식탁에 내려두고 우진을 내려다봤다.

“나, 나만….”

“….”

“나만….”

질투 같은 거였나. 우진은 말하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유연한 김신은 싫었다. 자기에게만, 온연한 것이기를 바랬다.

너무 솔직한 감정이 튀어나오는 바람에 당황한 건 최우진, 그 자신이었다. 이 섬세한 손끝이, 커다랗고 뜨거운 손바닥에 스쳤던 모든 곳의 혈관이 세차게 뛰고 있었다.

아직도 다리가 후들거려, 거실을 걸어오면서도 몇 번이고 무릎이 꺾일 것 같았다.

“나만?”

“….”

다시 되묻는 그 얼굴을 도저히 쳐다볼 수 없을 거 같아 우진이 고개를 숙이자, 김신이 한숨을 몰아쉬었다.

우진의 손목을 들어 올린 김신이 손바닥을 찬찬히 펴고 입술을 묻었다. 축축한 입술 끝이 우진의 손바닥 구석구석에 깊게 묻혔다.

“….”

그 손을 당겨 김신은 천천히 자신의 아래로 가져갔다. 뜨겁고 단단한 물건이 손에 잡혀들었다. 김신은 아무렇지 않게 그 손을 다시 들어올려, 손가락 사이로 맞물리게 잡았다.

“누가 너만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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