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국외출장 신청서
“이준 주임님은 두꺼운 옷 챙겨오셨어요?”
“아니요. 아직 9월인데, 추울까요?”
“독일은 제법 일교차가 심한 편이라….”
“오, 김신 주임님, 독일 다녀오신 적 있으세요?”
“아, 전지훈련 때문에.”
김신은 함께 출장을 가게 된 영업 1부의 배이준 주임과 먼저 공항에서 만나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던 참이었다.
국외출장이라 심의 절차가 까다로웠지만, 다행스럽게도 이번 출장 건은 직속 상사들이 직접 나가지 않아 주임과 대리급이 전부였다.
임원급 의전을 안 하는 것만해도 다행이라는 이준의 말에 김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영업 1부의 배이준 주임은 김신보다 1년차 선배로, 영업팀답게 사회성이 어마어마했다.
키는 중간 정도로, 큰 편이 아니었는데 타탄체크 티셔츠 위에 웜 그레이 니트를 받쳐 입은 그에게는 여유가 묻어났다.
대학을 영국에서 나와 유럽 출장엔 자주 차출이 된다는 게 이준의 첫 자기소개였다.
어젯밤, 채팅창으로 연락을 한 그는 공항에서 두 시간쯤 여유 있게 만나자는 이야길 했다. ‘따로 가도 상관은 없지만, 그래도 첫 만남이잖아요. 미팅도 잘 부탁드린다는 이야기도 할 겸, 안면 익히죠.’라고 말한 그는 실제로 만났을 때도 사근사근해 보이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전지훈련? 체육 전공했어요?”
“고등학교 때까진요.”
“아 그러고 보니 여사원들이 피지컬 어쩌고,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말하며 이준은 눈웃음을 쳤다. 웃으니 눈가에 묘한 주름이 잡히는 사람이었다.
“인기 많더라고요. 김신 주임님.”
“…네?”
“회식하면 꼭 말 나오는 사람 있잖아. 사내 꽃미남 4인방.”
“….”“충격받은 얼굴이네. 네 명 있어요. 원래는 세 명이었는데 김신 주임님 입사 이후로 네 명으로 바뀌었어.”
너무나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김신의 앞으로 이준이 들고 있던 항공권을 팔락이며 말을 이었다.
“마케팅 2부 고현우 대리 알아요? 중화권 미남형.”
“아뇨. 저는 9층이라.”
“아 9층이지 홍보팀? 그 층에도 두 명 있잖아.”
“….”
“강지훈 대리랑 김신 주임.”
김신이 애꿎은 손에 들고 있는 커피를 연거푸 마셨다.
중화권 미남형? 꽃미남 4인방이라니, 사내문화는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었다. 알 수 없는 수치감에 김신이 미간을 찌푸리자 이준이 또 사람 좋게 웃었다.
“ 엄청 어색해하네.”
“….”
“왜 대학 때 4대 미녀 이런 거랑 비슷한 거예요. 여자만 있으란 법은 없잖아.”
“아, 네….”
“어, 저기 여왕님 온다.”
이준은 그렇게 말하며 반가운 듯 손짓을 했다. 김신이 여왕님은 또 누구지 싶어 고개를 돌리는데, 게이트 안으로 다름 아닌 최우진이 걸어 들어오고 있었다.
짙은 코발트블루의 터틀넥을 입은 우진이 이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캐주얼하게 입었지만 어딘가 모르게 긴장감이 느껴지는 건, 김신이 우진의 얼굴을 보고 굳어버렸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파란 옷은 우진의 흰 피부를 더 창백하게 만드는 듯했다.
“여왕님이잖아요. 우리 회사에 유일한.”
이준은 그렇게 말하며 은색 작은 캐리어를 끌고 천천히 자신들 쪽으로 걸어오는 우진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국외출장 갈 체력이 아닐 텐데. 어찌 보면 대단해요, 우리 여왕님.”
“….”
“독한 건지, 별생각 없는 건지.”
‘여왕님…이라.’
소름 끼치게 잘 어울리는 별명이었다. 가벼운 흰색의 컨버스가 검은색 슬랙스와 잘 어울렸다.
일주일 만인가.
그가 가까이 다가오는 것만으로도 김신은 몸이 조금씩 경직되는 느낌이 들었다.
“안녕하세요? 최우진 대리님.”
“잘 부탁드립니다.”
우진은 가볍게 목례하며, 김신과 이준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조금 살집이 오른 것 같기도 했다. 우진은 그날 이후 일주일 동안 회사에 출근하지 않았다. 병가를 냈다고 했다. 응급실에서 눈을 감고 있는 걸 본 뒤로 딱 7일이 지나 있었다.
일주일 만에 첫 회사 스케줄이 국외 출장이라니. 다들 말릴 만도 했는데 정책실 이현수 실장은 별 이야기 없이 출장을 진행시켰다. 이상한 일이었다.
“못 가시는 줄 알았는데, 몸은 괜찮으세요?”“걱정 끼쳐 드릴 정도는 아닙니다.“
김신이 우진의 시선과 마주치려 고개를 숙이며 물었는데, 우진은 고개를 숙여 시선을 피하며 걸음을 옆으로 옮겼다.
“전 따로 발권하겠습니다. 경유지인 암스테르담에선 두 시간 대기이니 그냥 만날 필요 없이 함부르크에서 뵙죠.”
“아, 네. 그러겠습니다.”
“그럼.”
얼음장이네 아주.
그렇게 말하며 이준은 풋, 웃었다.
“따로 발권이라뇨?”
“VIP석일걸요, 최우진?”
“네?”
“몰랐어요? 최우진 대리, 회장 직계잖아요.”
김신은 그 자리에서 우뚝, 서버렸다.
“…뭐라구요?”
“차기 회장이지. 죽은 아들의 하나뿐인 자식이니깐.”
“….”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서 몰랐나 보네. 하긴 9층에선 쉬쉬 한다고 하더라고요.”
우리도 이제 입국심사나 밟죠, 라고 말하는 이준의 얼굴에서 김신은 시선을 떼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림자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옅은 느낌이 드는 사람이라고들 했다. 숨소리도 잘 들리지 않아, 몇 번이고 응급실에서 그의 코 아래에 귀를 대어보았다.
‘회사 복귀하라는데요, 김 주임?’
그렇게 말하는 강지훈의 미간이 제멋대로 구겨져 있었다.
하는 수 없이 회사로 돌아온 다음날 바로 정책실에 찾아갔을 땐 강지훈도, 최우진도 없었다.
병가를 냈다고만 했다. 어느 병원으로 옮겼는지, 몸은 괜찮은지 9층의 그 어느 누구도 몰랐다.
사람들은 그 일에 대해서 입을 다물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 비늘이 벗겨지듯 떨어져 속살을 드러냈다.
순간적으로 피가 식었다.
“김신 주임, 얼른 와요!”
배이준의 목소리에, 김신은 그제야 자신의 얼굴을 손바닥으로 덮었다. 모든 감정들이 바닥에 널브러지는 기분이었다.
***
“진아, 밥은 먹었니?”
“방금 전에도 물으셨잖아요.”
“볼 때마다 마르니까 그렇지. 닥터 윤도 너 몸무게 때문에 걱정이라더라.”
“건강하시죠?”
아니, 건강하지 않단다, 라고 말하는 그 차분한 목소리를 우진은 몇 번이고 곱씹었다. 우진은 VIP 라운지에 앉아 공항 밖을 바라보며 전화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우진은 어머니를 닮아 자신이 무감한 것은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어머니는 사람과의 관계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는 사람이었다.
다만, 하나의 관계에 유난히 집착했는데 그게 우진의 아버지였다. 나이 차이가 꽤 났는데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아버지를 사랑했고, 그것이 그녀로 하여금 행복감을 느끼게 했다.
아들이었던 자신은 그저 아버지와 연결된 하나의 관계라고 어렴풋이 인지하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누군가의 어머니가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몰랐다. 유난히 겁이 많은 사람이기도 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어머니는 한국 땅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3년 만이네. 진아.”
난, 아직도 네가 한국에 있는 게 싫단다, 라고 말하는 어머니의 목소리를 우진은 무표정한 얼굴로 듣고 있었다. 라운지에 앉아 우진은 관자놀이를 두 손가락으로 짚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싫은 것 같아요.”
“돌아와, 그럼.”
“….”
“한국에 있는 게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거냐?”
“네.”
“되도록 사적인 관계는 만들지 않는 게 좋아. 주변에 늘 사람을 정리하고.”
“알고 있어요.”
독일은 늘 흐렸다. 해가 비치는 날이 별로 없었다.
독일의 한적한 도시 뒤셀도르프 근처에 있는 대학을 나온 우진은 낮잠을 자거나 커피를 마시거나 책을 읽는 게 전부인 삶을 살았다.
어머니와 떨어져 지내는 건 나쁘지 않았지만 치료를 받는 과정은 고통스러웠다. 원래 인간과 부딪히며 지내는 걸 극도로 꺼리던 우진이었지만, 그때만큼은 인간의 온기가 필요했다. 끔찍할 정도로 메마른 사포처럼 지내던 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잠시, 김신의 얼굴이 스쳤다.
“이제 곧 비행기 탈 것 같아요.”
“약은 챙겼니.”
“네.”
윤일이 지난주 포토 보이스의 결과를 어머니에게 넘겼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목이 조금 탔다. 우진은 앞에 덩그러니 놓여 있던 식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조심히 오렴.”
조심히, 조심히.
아버지가 유난히 우진에게 많이 말했던 형용사. 우진은 김신을 보면 그 ‘조심’이라는 것들이 무너졌기 때문에 두려웠다. 한 달간, 자신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조심하지 못했는지 우진은 잘 알고 있었다.
“알겠어요.”
시선을 맞추려 허리를 숙이던 김신의 얼굴을 피한 건, 쏟아지는 색채 때문이었다.
조심할 수 없는 마음은 갈비뼈를 가르고 튀어나올 것처럼 진동해댔다. 전화를 끊고 나서 옆에 두었던 서류가방 안에서 작은 정사각형의 케이스를 꺼낸 우진은 커피와 함께 푸른빛의 알약 두 개를 삼켰다.
열네 시간 동안 미동 없이 잠들 것이다. 비행은 질색이었다.
***
“PPT 작성 다 됐어요?”
“10분 안에 마무리될 것 같아요.”
“한 시간 뒤에는 나가야 하는데. 부탁드릴게요.”
우진은 이준에게 그렇게 말하며 앞에 놓은 커피 잔 중 비어 있지 않은 것을 골라 끝까지 마셨다.
이틀째, 밤샘 작업이었다. 함부르크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도 못한 채 셋은 우진의 호텔룸에서 밤새 미팅 준비를 하는 중이었다.
프레젠테이션 작성은 이준이, 데이터 취합은 우진이 했고 회의록 보고는 김신이 맡아 하는 중이었다. 한 시간 뒤면 또 다른 업체와의 미팅이 있었다.
새벽에 한 시간 정도 쪽잠을 자고 바로 뜨거운 물로 샤워를 했다. 호텔은 별로 좋은 편이 아니라 뜨거운 물이 세차게 나오질 않아 셋 모두 고생이었다.
셋 다 빳빳하게 다려둔 정장을 입고 와이셔츠가 구겨지지 않게 타이핑을 쳐댔다. 블랙코미디가 따로 없었다.
“김신 주임님, 고생이 많네요. 첫 국외출장부터 타이트함이 지속이라. 팔로업하기 힘들 텐데.”
“저만 고생인가요.”
우진은 이준의 말에 마주보고 앉은 김신을 잠시 쳐다봤다. 피곤한 기색 따윈 없는 얼굴이었다. 체력이 워낙 좋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날카로워 보이는 분위기 탓도 있었다.
함부르크 공항에서 합류했을 때도, 김신은 우진을 향해 시선 한 번 던지지 않았다. 갑자기 변한 김신의 분위기에 우진은 왠지 마음 한쪽이 이상하게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포기하려는 순간, 느껴지는 감각이 발목을 잡는 듯했다. 우진은 벗어놓았던 안경을 다시 들었다. 아무래도 데이터를 좀 더 살펴봐야할 듯 했다.
“김신 주임, 이거 로비에 내려가서 프린트 좀 부탁해요.”
“네.”
“프린트되자마자 첫 부는 읽으면서 크로스 체크 꼭 해주고.”
“알겠습니다.”
이준의 요청에 김신은 USB를 받아서 바로 자리를 떴다. 이준이 그런 김신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 다시 PPT 자료를 체크하면서 입을 열었다.
“힘드네요. 미팅을 하루에 세 건 이상 잡는 건 무리예요. 대리님.”
“영업 1부에서 먼저 그렇게 해 달라고 요청을 하셨습니다.”
“우리 본부장님 너무하시네.”
“하반기 실적 때문이죠.”
“우리 대리님 팩폭도 장난 없으시고.”
그렇게 말하며 이준은 노트북에서 시선을 떼고 우진을 쳐다봤다.
우진과 이준은 전년도 내내 유럽 출장을 함께 다니던 페어이기도 했다. 영업 1부에선 꼼꼼하고 일처리 잘하기로 소문난 정책실의 최우진을 미팅 때마다 고집했고, 전년도 입사자인 이준은 눈치가 빠르고 스피치에 능숙한 전문가라 실적이 좋았다. 이준이 영국에서 대학을 나와 유럽 문화에 익숙한 것도 큰 장점이었다.
“어제 미팅 때 왜 영어로 말씀하셨어요? 우진 대리님.”
“….”
“원래 독일어 잘하시잖습니까?”
“굳이 할 필요 없는 상황에선 안 하는 것도 예의라고 생각합니다.”
“그나저나, 건강은 좀 괜찮으세요?”
우진은 고개를 들어 살갑게 웃는 이준의 얼굴을 쳐다봤다. 이준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어차피 둘 뿐인데 존댓말 어색하지 않아?”
“배 주임님이 먼저 시작하셨잖습니까.”
“네네, 여왕님.”
굽신 거리는 흉내를 내던 이준이 혼자 킥킥 하고 웃더니 으아아아, 하고 소리를 지르며 기지개를 켰다.
“노네 집 강아지는 왜 안 따라왔냐?”
“….”
“강지훈 말야. 강지훈.”
할아버지의 변호사이자, 절친의 손자인 배이준과는 어렸을 때부터 집안끼리 잘 아는 사이였다. 우진은 그렇게 말하는 이준의 얼굴을 쳐다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화났냐?”
“….”
“하긴, 요즘엔 강지훈 대신에 김신으로 바뀐 거 같더라.”
“…아무 사이 아니야.”
“회장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우리 할아버지가…”
“닥치라고!”
결국 책상 위에 올려두었던 서류를 전부 집어던지는 우진을 가만히 보고 있던 이준이 어깨를 으쓱, 하고 올려보였다.
“너 화내는 거 20년 만에 보는 거 같다?”
“하아…하아….”
“머리 좀 식혀. 참 그리고.”
“….”
“내가 김신한테는 말했어. 이 회사 네 거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