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김 주임과 최 대리-14화 (14/60)

14화. 포토 보이스

“가을 오면 힘들어하는 거 알지만.”

“네.”

“수면제는 조금씩 줄이세요.”

“….”

“식사 잊지 말구요. 어머님이 일주일에 한 번씩은 전화로 늘 확인하시니까.”

우진은 그렇게 말하는 자신의 주치의,

윤일을 바라보며 미간을 마른 손가락으로 길게 문질렀다.

어머니의 요청으로 우진이 심리 상담을 받기 시작한 지도 이제 5년째였다. 대학 때는 간신히 견뎌냈던 일들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사람들과 부딪히며 크게 아프기 시작했다.

윤일은 이제 갓 마흔이 넘은 정신과 의사였다. 우진과 알고 지낸 지는 10년 차로, 독일에서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넘어와 신경정신과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었다.

우진의 어머니와는 독일에서 처음 만났다고 들었다. 독일에서 한국어로 심리 상담을 할 수 있는 의사는 극히 드물었다. 우진의 어머니는 지금까지도 독일어를 어려워했다.

짙은 색의 캔버스 소파에 파묻혀 있던 우진이 몸을 일으키자, 윤일이 차트를 덮고 파일을 꺼내들었다. 윤일은 행동 하나하나에 군더더기가 없는 편이었다. 섬세한 손끝이 보이스 레코더의 버튼을 살짝 눌렀다.

“지난달에 이어서 포토보이스 치료를 시작하죠. 사진 세 장을 보여 드릴 거예요. 떠올릴 수 있는 기억이나 하고 싶은 말들을 자유롭게 하면 됩니다.”

윤일의 목소리가 마치 레코딩한 오토보이스 같아서 우진은 무감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석 달 전부터 시작한 심리치료였는데, 말을 많이 해야 하는 과정이라 우진이 제법 힘들어했다. 레코딩이 시작되고, 윤일이 날짜를 읊는 목소리를 뒤로 우진은 메마른 표정으로 테이블 위에 놓인 세 개의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뭐가 떠오르시나요?”

처음 보여준 사진은 집이었다. 정원이 넓은 주택. 두터운 문. 그리고 강아지 세 마리.

“집.”

“….”

주치의가 텀을 늘이는 건, 면담자에게 더 많은 대답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강아지.”

“단어를 나열하지 말고 문장을 말해보세요.”

윤일이 단조롭게 이야기했다.

“개 세 마리가 문 앞에 서서 짖습니다.”

“왜죠?”

“낯선 사람과 차가 있었어요.”

“우진 씨는 어디에 있었죠?”

“….”

“좋습니다. 그럼 이걸 보면 뭐가 떠오르나요?”

사진이 전환되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손가락이 사라지고 사진이 전면에 드러났다.

다른 사진 하나는 여자였다. 눈썹이 둥글고 검은색 머리카락이 어깨까지 내려오는 여자. 얼굴이 보이지 않는 사람 하나.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갑자기 손끝이 차갑게 식는 것 같아 우진은 숨을 몰아쉬었다. 숨이 급해졌다. 폐가 끝까지 부풀었다가 쪼그라드는 듯한 느낌이 들어 우진은 가슴 쪽으로 손을 가져다댔다.

어디 한군데가 부서지는 느낌이 났다. 피, 구토, 총 소리. 칼들이 머리 안으로 헤집고 들어왔다. 갑자기 심장 한가운데가 푸욱 하고 쑤셔지는 느낌이 들어 우진은 손을 부들부들 떨었다. 매번 똑같았다.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면서 우진은 입을 열었다.

“여자.”

“….”

“얼굴이 없는 사람.”

“….”

“도망가야 해요.”

우진은 끊어지려는 목소리를 가까스로 끌어냈다.

“아파요.”“….”“숨, 숨을 못 쉬겠….”

“그만할까요?”

윤일은 한숨을 쉬며 사진을 덮었다. 그리고 재빠르게 옆에 있던 사진 하나를 우진의 앞으로 가져다놓았다.

학교, 빨간 벽돌로 만들어진 학교였다. 푸른 하늘과 대비되는 건물이 반짝거렸다.

우진은 소파에 몸을 묻고선 눈을 감고 있었다. 두통이 시작되려는지, 손가락으로 이마 부위를 만져 댔다.

윤일은 그 앞으로 미지근한 물이 담긴 유리잔을 건넸다. 우진은 눈을 뜨고 컵을 바라봤다. 마시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동시에 두통도 사라졌다. 뜨겁게 치올랐던 아픔도 사라져서, 기억에서 없어졌다. 늘 그랬다.

“스무 번째 레코딩입니다.”

“….”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진은 이 상담의 모든 레코딩을 번호로 매겨 카피해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두 번 다시 들을 자신이 없었다.

가끔, 이렇게 숨을 몰아쉬면서 기억을 헤집으면 그 헤집은 순간 또한 머릿속에서 사라졌기 때문이다. 윤일은 이것 또한 기억하고 싶지 않아하는 우진의 무의식 때문이라고 여러 번 말했지만 우진은 알고 있었다. 그건 의식과 무의식의 문제가 아니었다.

“다음 사진, 보시겠습니까?”

질감이 느껴지지 않는 물음에 우진은 눈을 뜨고 사진을 내려다봤다. 사진은 태양이 내려쬐는 배경의 학교였다.

우진은 손을 내려 학교의 건물 벽을 더듬거렸다. 손끝에 까칠한 흙의 표면이 느껴지는 듯 했다.

“…최우진 씨?”

“네.”

“이 사진에 대해서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세요?”

윤일의 얼굴이 조금 변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우진은 사진의 귀퉁이를 만지작거렸다. 신기하게도 순간에 찾아왔던 흉통이 가라앉았다. 밤처럼 까만 눈과, 공기 중에 멈춰 있는 특유의 물기가 느껴졌다. 우진은 숨을 크게 한 번 쉬고 입을 열었다.

“수영장.”

“….”“수영장이 있어요, 학교에.”

처음 하는 이야기였다. 윤일은 좀 더 의자를 당겨 앉았다.

“아침 조례를 해요.”

“….”

“늘, 앞에서 상을 받는 수영 선수가 있었어요.”

“조례 시간에?”

“네.”

윤일의 진단에 의하면 우진은 타인에 대한 관심이 극도로 적고,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 중에 하나였다. 윤일이 재빨리 몇 가지를 체크했다.

“어느 날은 피곤해 보이는 얼굴을 했어요.”

“….”

“어느 날은 웃기도 했어요.”

남들보다 한 움큼은 큰 키. 이제 고작 고등학교 1학년이었는데, 교복이 타이트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몸에 붙었다. 그건 남들보다 훨씬 큰 덩치 때문인 듯 했다.

그 덕분에 그가 움직일 때마다 어깨 근육들이 물결치듯 움직였다. 여학생들이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우진의 귀에 들렸다.

몸에 비해 얼굴을 앳되었고,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이어서 묘한 느낌이었다. 우진은 이상하게 그를 보면, 눈길이 가는 자신을 기묘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우진과 정반대의 느낌을 가져서 그런 것일지도 몰랐으나, 그가 가끔 나른한 얼굴을 할 때마다 이상하게 우진은 손을 가져다 만져보고 싶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우진은 그가 조례시간에 단상에 오르는 일을 기다리게 됐다. 사람들의 시선이 꽂히는데도 불구하고 신경 쓰지 않는 그의 얼굴이 우진의 무감한 마음에 이상한 열기를 느끼게 만들었다.

“이름을 기억할 수밖에 없었죠. 매번 불리니까.”

“….”

“메달을 목에 걸어줄 때마다 선생님들이 힘들어했어요. 까치발을 해야 했거든요.”

키가 커서 선생님들은 늘 힘겨워했고, 그는 가끔 그걸 보고 웃었다. 우진은 그때마다 어딘가가 간지러웠다.

아직 미소가 지워지지 않은 얼굴로 그가 휘적휘적 걸어서 자리로 돌아갈 때면 우진은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따라가곤 했었다. 그건 최우진이 태어나 처음 겪는 감정이었다.

그리고 기억이 조각조각 났다.

검은 세단, 문을 열고 내려온 사람들. 짖던 강아지. 발목을 잡는 손. 그리고, 차갑게 내려다보던 눈.

“그게 다예요.”

아니, 그게 다는 아니었다.

“더 말하고 싶은 건 없나요?”“없어요.”

우진은 그렇게 말하며 탁자 위에 놓여 있는 유리잔을 들어올렸다. 안정제가 섞여 있을 것이다. 윤일은 마시지 말라는 눈빛을 했지만, 우진은 잔을 기울여 입술에 가져다댔다. 투명한 유리잔 안의 미지근한 물은 매번 그랬듯 약간 탁한 색을 띄고 있었다.

“링거 놔줘요?”

“…네.”

“언제 깨워 드릴까요?”

“한 시간 뒤예요.”

숨이 천천히 잦아들었다.

“요즘에도 전혀 욕구가 없어요?”

“….”

가끔 심리학을 전공한 심리상담사나 정신과 의사를 만나면 우진은 자신이 정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들은 일정 정도 거리 이상으로 들어오지 않았고, 말에도 전혀 리듬감이나 색채가 느껴지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마치 자신 같았다.

“노코멘트?”

“….”

가슴 아래로 그인 상처들이 욱씬, 했다. 우진은 입을 몇 번 달싹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이 올 것 같았다. 우진은 윤일이 자리에서 일어나 간호사를 호출하는 것을 희미하게 감기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꿈과 현실의 경계가 앞으로 떨어졌다. 휘적휘적 걸어가는 걸음걸이가 생기 넘쳤던 그날의 아침이 기억났다. 넓은 등이 있었다. 푸른 냄새가 났다. 떨어트린 학생증을 줍던 손. 웃는 얼굴. 그리고….

‘눈 떠봐요! 제발!’

***

“인사팀에서 별말 없었어?”

지훈이 기안문을 작성하다 피곤한 듯 어깨를 주무르며 옆 자리 우진의 의자를 툭툭 찼다. 출장이 잦은 탓에 출장결과 보고서를 한꺼번에 올리느라 제법 힘에 겨운 모양이었다. 졸리는지 크게 하품을 하던 지훈이 우진의 옆에 와서 가만히 섰다.

우진은 심의 자료들을 검토하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우진은 이번 주 안으로 국외 출장 심의를 마치고 다음 주, 독일로 출국할 예정이었다.

점심을 건너뛰려고 했는데, 지훈이 가만히 내버려두질 않았다. 결국 지훈이 끌고 간 식당에서 함께 죽을 먹었다. 전혀 식욕이 느껴지지 않아 숟가락으로 뜨는 둥 마는 둥 했는데, 지훈은 남은 죽을 포장하여 우진에게 넘겨주었다.

그 바람에 손끝이 서로 잠시 닿았다. 우진은 아무렇지 않게 닿았던 손끝을 털었다.

지훈이 씁쓸하게 웃었다. 이상했다. 저런 표정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커피 한 잔 마시자. 옥상에서.”

“바빠.”

“워크샵 일정 걸리면 우리가 교육 담당해야 하잖아. 그 건으로 이야기 좀 하자.”

“내 담당 아니야.”옆에서 연우가 그 이야기를 듣고 적잖이 당황한 얼굴로 우진을 바라보았다. 이미 연우는 우진에게 품의서 검토를 맡긴 상태였다. 우진의 검토가 끝나면 팀장의 결재라인을 타게 되어 있었다.

“너 국외 출장 건 때문에 그래?”

“….”“출장은 2주 뒤로 미루고 다음 달 초 워크샵 교육 준비 해. 인사팀에서 먼저 기안 올라왔잖아. 협조문 걸면서….”

“내가 맡은 업무가 아닌데, 왜 내가 해야 하지? 하겠다고 한 적 없는데?”연우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우진은 한 번도 누군가에게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른 적이 없었다. 그랬던 우진의 표정이 기묘하게 변했다.

새카만 눈동자는 그대로였지만 처연하게 내려왔던 눈썹이나, 얼굴 뼈 같은 것들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훈은 그걸 한참 바라보다가 입 꼬리 한쪽을 올리며 물었다.

“너 지금 화냈냐?”

“….”

“와, 내가 살다보니까 최우진 화내는 것도 보게 되네.”

재빠르게 찌푸렸던 미간을 펴고서 우진은 금방 고개를 숙였다.

분명, 이건 기분이 나쁘다는 신호였다. 가슴 아래서부터 열이 올랐고, 숨이 조금 가빴다.

우진이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자, 지훈은 손을 들어 우진의 손목을 아래로 내렸다. 가려졌던 얼굴이 드러나자 지훈은 마치 놀리듯 우진의 가까이로 몸을 숙였다.

“너 뺨이 울긋불긋한 게 이쁘다 아주.”

“…놔.”

“인사팀에 내가 말해줄게.”

그렇게 말하던 지훈이 우진의 머리카락을 슥슥 쓰다듬었다. 느슨하게 타이를 풀고 있던 그가 우진의 책상 위로 걸터앉으며 뺨에 주름이 지도록 웃었다.

“출장 심의 올리고 출장 다녀와. 나머지는 내가 처리해볼게.”

“….”

“평소에도 화 좀 내고, 웃기도 하고 좀 그래주라.”

지훈은 느긋하게 웃으며 일어서서 와이셔츠의 버튼을 한 개 풀었다. 으아, 하고 크게 기지개를 키던 그가 자리로 돌아갈 때쯤, 우진은 멍한 얼굴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모든 것이 피곤했고, 동시에 마음이 한순간 가벼워진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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