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김 주임과 최 대리-4화 (4/60)

4화. 기시감

-2005년 강남구에서 발생한 총격 살인사건은 10여 년이 넘는 끈질긴 수사 끝에, 상속재산분할 청구로 인한 친족끼리의 다툼에서 비롯된 것으로 결국 밝혀졌습니다. 200억 원대의 자산가인 C씨의 장녀가 직접 청부살인을 의뢰하여 자신의 친오빠를 살해하였다는 사실이 검찰의 수사를 통해 알려지면서….

구내식당에 설치되어 있는 텔레비전 스크린을 보며 점심을 먹던 김신은 자신의 앞에 앉아 끊임없이 수다를 떨고 있는 연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오랜만에 동기들과의 점심이었다. 팀 발령을 받고 난 뒤에는 매번 점심시간은 팀원들과 함께였는데, 간만에 민재가 동기들과 점심을 먹자고 했던 것이 사달이었다.

“네 번인가, 다섯 번인가 봤어요. 거절하는 거.”

“대박!”

밥을 먹으며 연우는 우진의 이야기를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홍보팀의 김슬기 주임이 매번 점심시간마다 최우진의 자리에서 서성거린다는 것이었다. 연신 장단을 맞춰주는 민재와는 달리 김신은 이상하게 창자가 배배 꼬이는 느낌이 들었다.

자신이 원하던 홍보팀으로 발령이 난 것까지는 좋았다. 같은 층 정책실에 근무하게 된 지연우는 첫날, 최우진에 대해 한마디로 차갑다고 평했다.

같은 실의 강지훈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라며, 사수가 지훈이라 다행이라는 이야기를 몇 번이나 했던 것 같다.

우진이 말 붙이기가 힘든 타입이랬나, 말을 붙여도 무시한다고 했나. 아마도 둘 다겠지.

김신은 아무런 맛이 나지 않는 뭇국을 몇 번 떠먹었다. 목이 깔깔했다.

“그냥 만사 피곤해하는 거 아냐?”

“신 오빠. 그 사람 되게 싸늘한 느낌이 좀 있어.”

직원 구내식당에서 이렇게 남의 뒷말을 해도 되는지는 모르겠다만, 연우는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이며 우진을 그렇게 평했다.

안 그래도 홍보팀의 김슬기 주임이 몇 번이나 점심시간에 자리를 비우는 걸 목도한 김신은 이처럼 그녀가 열렬하게 최우진과 점심을 먹고 싶어 하는 줄 전혀 몰랐었다.

생각보다 인기가 있나. 여자들이 좋아하게 생긴 건 아니었는데.

“거기다 근무 시간 내내 한마디 하는 걸 못 봤다니까.”

그러니까, 약간 실리콘 인형 같은 느낌이야, 그렇게 말하는 연우의 목소리가 귓가에 웅웅거렸다.

‘요즘 실리콘 인형은 만지면 붉어지고 열이 오르고 이러나 보지.’

뭔가 불만 가득한 목소리가 나올 것 같아 김신은 밥을 꾸역꾸역 입으로 밀어 넣었다.

결국, 슬기 주임이 안됐다며 이것저것 말하는 연우에게서 시선을 돌린 김신은 구내식당 입구로 천천히 걸어 들어오는 인영에 미간을 찌푸렸다.

볼 것도 없이 최우진이었다.

아무 곳에나 자리를 잡는 우진을 김신은 빤히 쳐다보았다.

남자치고는 하얀 편이라 생각했는데, 뺨이나 이마 같은 곳에서 핏줄이 들여다보일 정도라 가끔 얼굴에 푸른빛이 비칠 정도였다.

식판을 힘겹게 내려다 놓고, 한참을 쳐다만 보고 있는 걸 목격한 것도 이번이 세 번째다.

뭐가 저리 멕아리가 없는 걸까.

이상한 건, 워낙에 마른 체형인데도 우진에게는 질감 같은 것이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마치 주변이 입체적으로 변하는 것 같았다.

밥을 내려다보는 무미건조한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김신은 자신도 힘이 다 빠지는 것 같았다.

“강 대리님한테는 그래도 이것저것 말을 하시는 거 같던데.”

“그래?”

거슬려.

이상하게 밥알이 입안에서 데굴데굴 굴러가는 거 같아 김신은 미간을 찌푸렸다. 지척에 당사자를 두고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 일은 생각보다 고역이었다.

김신은 순간적으로 먹다만 식판을 들고 일어났다. 늘 충동은 예고도 없이 찾아오곤 했다.

“어 신 오빠, 벌써 다 먹었어?”

“….”

연우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김신은 말없이 걸어가 우진의 앞에 섰다.

숟가락을 들고 가만히 있던 우진이 자신의 앞으로 길게 그늘이 지자, 천천히 고개를 들어올렸다.

확실히 파리한 얼굴이다. 거기다 며칠 잠을 못잔 건지 눈 아랫자리가 붉었다.

동공이 커지는 걸 보고 있는 게 나름 흥미로워 김신은 이제야, 어쩌면 자신이 이 사람에게 관심이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날, 미친 듯이 자신을 쳐다보던 눈빛, 손을 대면 더 뻗어 달라는 듯이 퍼지는 열기라든가, 동시에 매번 복도에서 마주치면 도망치듯 사라지는 그림자들이 그랬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디선가 마주친 적이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것은 아주 이상한 기시감이었다. 중요한 것을 잊은 것 같다가도 곧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닐까 싶어지는.

“최 대리님.”

“….”

“같이 식사하시죠.”

뒤에서 동기들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고 있을 때쯤, 김신은 분명 우진이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았다. 모든 사람의 손길을 거부하고, 자신에게만 내뻗는 시선은 누구에게나 매혹적일 것이라고 김신은 순간 생각했다.

***

이틀째 이렇다 할 것을 먹은 기억이 없었다.

우진은 편의점까지 갈 힘이 나지 않아 결국 구내식당으로 향했다.

회사 식당은 오랜만이었다. 혼자 먹는 사람들이 별로 없고 팀원들이 자주 우진에게 밥을 먹자고 청했기에 구내식당은 불편한 장소에 속했다.

특히 오늘은 밥을 먹자고 했던 김슬기 주임이 구내식당에 있을지도 몰랐다. 걸음이 점점 더 느려지는 것 같았지만, 우진은 밥을 먹어야만 했다.

이제 더 이상 살이 빠지면 안 된다는 걸 우진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식판에 어느 정도 밥을 담고 걸어와 숟가락을 드는데 한숨이 먼저 나왔다. 그 순간 앞으로 길게 그늘이 드리웠다.

“최 대리님, 같이 식사하시죠.”

꿈에서 자주 봤던, 화사한 얼굴 하나가 우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짙은 눈썹과 콧대가 얼굴에 이리저리 음영을 만들어내는 게 신기했다.

잠시 멍한 얼굴로 김신을 쳐다보던 우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고개를 저었더라도 김신은 분명 자신의 앞에 앉아 밥을 먹었을 것이다. 그러나 최우진은 처음부터 거절할 생각이 없었다.

요즘, 우진은 김신이 나오는 꿈을 꾸지 않았다. 꿈을 꾸지 않으니 마음이 묘하게 뒤틀렸다. 실제로 얼굴을 보면 도망가기 바쁘면서도 마주치길 바라는 마음들이 이상했다.

우진은 자신이 그 꿈을 꾸지 못하는 건, 이 사람이 현실에 나타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생각마저 들었다.

“회식 때 보고 처음이네요.”

“…네.”

“저 보고 싶지 않으셨어요?”

“….”

반찬으로 나온 알 수 없는 볶음요리를 뒤적이다가 황당한 질문에 우진이 고개를 들어 김신을 봤다. 이런 대화의 패턴은 처음이라 놀란 얼굴을 하자 김신이 화사하게 웃었다. 웃으니 볼우물이 패이면서 장난스럽게 눈꼬리가 접혔다. 무표정일 때와는 달리 놀랄 정도로 어린 얼굴이었다.

우진이 할 말을 잃어 우물쭈물하자 김신이 먼저 입을 열었다.

“같은 층이라도 마주칠 일이 별로 없더라고요.”

“….”

“손은 괜찮으세요?”

벌써 일주일 전이라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우진은 그제야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들어서 쳐다보았다. 약을 발랐나, 집에 와서 그냥 잠이 들었나.

공처럼 튀어 올랐던 감정들이 다시 심장 아래로 가라앉는 데는 시간이 그다지 많이 걸리지 않았다. 스쳐 지나갈 감정이라고 치부했던 짧은 순간들이 발밑 아래로 조금씩 모여들었다. 발끝이 간질간질했다.

“괜찮습니다.”

“원래 좀 입이 짧으세요?”

김신은 어디엔가 질문지 같은 걸 숨겨두고 있는 것 같았다. 우진이 계속되는 질문에 미간을 찌푸리자, 김신이 웃으면서 젓가락으로 우진의 식판을 가리켰다.

“잘 안 드시는 것 같길래.”

“….”

“다 먹을 때까지 충분히 기다려 드릴 테니, 오늘은 깨끗하게 다 드셔야 합니다.”

그러면서 김신이 손을 내밀어 멍하니 앉아 있는 우진의 손목을 잡았다. 갑작스러운 스킨십에 우진이 당황한 얼굴로 김신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자 김신이 자못 심각하게 미간을 찌푸리며 얼른 손을 거뒀다.

“손목이 이렇게 얇아서야 어디다가 씁니까.”

“….”

“식사 거르지 마세요.”

일주일 전보다 더 마른 것 같아요, 라고 덧붙이는 김신의 얼굴을 한참 쳐다보다가 우진은 입을 열었다.

“왜 신경 쓰시죠?”

“네?”

우진에게 무언가를 묻는 사람들은 늘 있었다.

자신이 아무리 사람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유형이라도 그랬다. 사회는 그런 곳이었다. 남과 다른 자신에 대한 초반의 관심들과 질문.

그러나 답을 해줄 의무도, 그에 대한 그들의 마음을 이해할 여유 같은 것들도 우진에게는 없었다. 우진은 사실, 무엇보다 상대방에 대한 욕구 비슷한 게 없었다. 질문이라는 건 상대방에게 감정이 있어야 가능한 법이다.

그러나 묻고 싶었다.

처음으로, 말끝을 올려 물은 뒤 김신의 눈을 쳐다보았다. 우진은 이것이 현실이라고 몇 번을 곱씹었다. 꿈에서 자신은 김신에게 한마디도 하지 못하고 숨을 몰아쉴 뿐이었다.

“신경 쓰지 말까요?”

“그건 답이 아닌데요.”

이번에는 김신이 놀란 눈을 했다. 뭐랄까, 오기 같은 것이 생긴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람 사이의 선이라는 것 자체에 감이 없는 우진이라도 김신이 가지고 있는 얇은 층의 흥미는 느낄 수 있었다.

최우진이라는 사람의 반응이 얼마나 희소가치가 있는지 알고, 그 가치를 얻고자 하는 욕구 같은 게 눈동자에 일렁이는 것 같았다.

어쨌든 대답이 없자 우진은 다시 식판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신의 질문은 늘 어려운 것일까. 우진이 드물게 뭔가를 물었을 때에는 답을 해주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부모도, 그리고 단 한순간에 결정해버린 자신의 미래도 그랬다.

그때였다.

“신기해서요.”

“….”

“저, 매번 쳐다보시잖아요.”

순간, 우진은 김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김신은 웃고 있지 않았다. 늘 사람들에게 웃고 있는 표정이었던 그가, 미간을 찌푸린 채 우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렇게, 머릿속을 헤집는 거처럼요.”“….”

김신은 자신의 관자놀이를 두 번째 손가락으로 짚고는 뱅글뱅글 돌리며 바깥으로 던져내는 시늉을 했다.

꿈에서 본, 그 표정이었다.

한층 채도가 낮아진 눈동자가 우진을 빤히 바라봤다.

“그때마다 기분이,”

“….”

“나쁘고,”

“….”

“묘하다고요.”…그러니까, 신경이 쓰인다고요, 최우진 대리님.

우진은 김신의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지는 걸 말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곧, 김신은 아무렇지 않은 듯 다시 식판으로 수저를 가져갔다.

“다음에 만날 땐, 대체 절 보며 무슨 생각 하는지 알려주세요.”

다시 천천히 밥을 먹으며 김신이 웃었다. 우진이 밥을 한 숟가락 뜨자, 코끝에서 아직 따뜻한 기운과 함께 밥 냄새가 훅 끼쳤다. 우진은 이틀 만에 처음으로 배가 고프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날 처음으로 우진은 점심을 남김없이 먹었다.

***

푸른 밤.

우진은 끊임없이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눈앞이 흐물흐물해지는 이유를 알지 못해서 무작정 팔을 막 움직였다. 바닥으로 가라앉는 것 같았는데,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우진은 숨을 쉬는 것을 포기했다. 손을 들어 올리자, 손목에서 보라색 빛 무리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확실히 꿈인 것 같았다. 희미해지는 의식 사이로, 푸른 밤이 보랏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 순간이었다.

“대리님.”

“….”

“최우진 대리님?”

“….”

“최우진….”

…우진아,

김신이 그렇게 말하며 우진에게로 다가왔다. 분명 보랏빛이었던 그 공간이 다시 푸른색이 되었다. 김신은 천천히 걸어와 우진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숨을 쉬지 못해 헐떡이던 자신의 심장 아래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김신이 미간을 찌푸리며 우진에게로 한 걸음 더 다가왔을 때였다.

“숨 쉬어.”

김신의 입술이, 우진에게 닿은 것은.

푸른 밤이 휘몰아치며 우진의 입술로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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