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김 주임과 최 대리-3화 (3/60)

3화. 발화점

어릴 때부터 우진에게 무감이라는 단어는 늘 색과 함께 조합되었다.

우진에게 감정이 없다는 건, 마치 색의 파동이 없는 것과 같았다. 세상은 늘 흑백이었다. 눈을 감거나, 뜨고 있어도 늘 감정의 온도는 같았고, 뜨겁게 열이 오르거나 차갑게 식는 법이 없었다.

“아이가 표정이 없네요.”

“….”

“대답도 잘 안 하고.”

우진은 어릴 때의 자신을 사진처럼 명확히 기억했다.

시간은 차곡차곡 몸에 쌓였으나, 그 흐름에 바래지도 선명해지지 않았다.

감정이 없다는 것은 그런 것이었다. 더하고 덜할 것이 없는 것. 선명해지거나 희미해지지 않는 것. 모든 것이 일정하고 똑같은 것.

“그렇게 쳐다보면 술잔 깨진다.”

“….”

우진은 받아놓은 소주잔을 빤히 쳐다만 보고 있는 자신에게 한마디 하는 지훈을 올려다봤다.

지훈은 늘 타인에게 관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5년간 봐왔던 그 얼굴을 우진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왜?’ 하고 입모양으로 묻는 지훈에게서 시선을 돌려 우진은 아래만 보았다.

투명한 소주잔 위를 손가락으로 둥글게 그려보다가 문득 우뚝 솟아 있는 머리통에 시선을 던졌다.

그러자, 조금씩, 손끝으로 퍼지는 열기. 전혀 다른 기분.

그러니까 생경한 감각.

그건 통증과 비슷했다. 우진은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똑같네.”

“뭐가?”

고기를 굽다 말고 지훈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우진에게 물었다.

“아냐.”

“싱겁긴.”

정말 거짓말같이 똑같았다.

가끔 꾸는 자신의 꿈에서 김신만 가위로 도려내 세상 밖으로 꺼낸 듯한 느낌이었다.

단지, 그때보다 좀 더 자라고, 질감이 생긴 것 같았다. 그리고 꿈보다 훨씬, 더 많은 표정을 지었다.

잘 웃는구나. 분명, 이렇게 눈썹이 조금 올라가 화난 얼굴이었는데.

우진은 또다시 왼쪽 가슴부터 찌릿, 하게 울리는 통증에 숨을 몰아쉬며 눈을 감았다 떴다. 눈을 좀 더 보고 싶었다. 밤 같은 눈동자를 좀 더….

“야, 최우진!”

“어?”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따라 몸을 움직인 모양이었다.

우진의 새끼손가락 끝이 뜨거운 돌판에 치익, 하고 닿았다. 다행히 지훈이 발견하고 손목을 잡아끌지 않았으면 큰 화상을 입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야, 너 뭐한다고 이렇게 정신이 팔려서!”

지훈이 큰 소리를 내는 바람에 사람들의 시선이 이쪽 테이블로 옮겨졌다.

옆에 놓여 있던 물 컵에 차가운 물을 잔뜩 따른 지훈이 우진의 손을 가져와 마구잡이로 넣었다.

우진은 한숨을 몰아쉬며 잡히지 않은 다른 손으로 벨을 눌러 침착하게 사람을 불렀다. 이럴 땐 당황하지 않는 자신의 성격이 도움이 되곤 했다.

“마른 수건 좀 가져다주세요.”

“약 발라야지.”

“…밥 먹어.”

사람이 안 하던 일을 하니까 이런 거라며, 지훈이 잔소리하는 걸 뒤로한 채 우진은 수건을 받아들고 일어섰다.

원채 먹는 것도 마시는 것도 챙기는 게 귀찮아 저녁은 대개 건너뛰는 터라서 입맛이 없었다.

오로지, 김신의 얼굴을 자세히 보겠다고 여기까지 온 것뿐이었다. 일어서자 머리가 어지러운 듯 천장이 비잉 돌았다. 에너지를 꽤 많이 쓴 모양이다.

시끄러웠다. 다들 시도 때도 없이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토해내고 늘, 논리가 없는 형태의 단어들만 뱉어냈다.

비척거리며 화장실로 걸어 나가는데, 누군가 뒤따라 일어섰다. 지훈인가 하고 미간을 찌푸린 채 뒤돌았을 땐 기대와는 다른 얼굴이 있었다.

“괜찮으세요?”

…김신이었다.

예상했던 인물이 전혀 아니었던 탓에, 우진은 멈춰서 여러 번 눈을 깜박였다. 또 꿈인가. 김신은 술을 좀 마셨는지, 귓불이 분홍색이었다.

시선을 높여야만 그 밤 같은 눈과 마주할 수 있어서, 우진은 도리어 고개를 숙였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꿈에서의 목소리를, 그리고 눈앞에 떨어진 현실의 그림자를, 자신에게로 쏟아지는 색색의 화려한 얼굴을.

자신과는 정반대의 느낌이라서, 색을 입은 그가 자신의 세상도 물들이는 것이 아닌가 했던, 그날 밤을.

“빨리 찬물로 씻어야 하지 않아요?”

“아….”

멍하니 있는 자신에게 손짓으로 화장실을 가리키는 김신의 옆모습을 보며 우진은 고개를 돌렸다. 순간적으로 색색의 감정들이 일어나 심장이 다양한 색으로 깜빡이는 것 같았다.

허둥거리며 화장실로 향하는데, 김신이 따라왔다.

“저도 화장실 가려고요.”

멈춰서 올려다보자, 그렇게 대답하며 김신이 입 꼬리를 올렸다. 마치 스트레이트로 도수 높은 알코올을 마셔버린 것 같아, 우진은 훅하고 숨을 뱉었다.

그걸 알아차리고 김신이 또 한 번 웃었다. 쌍꺼풀이 없이 큰 눈이었는데 웃으니까 눈꼬리 부분이 접혔다. 배꼽 아래가 간질거렸다.

“수건 들어 드릴까요?”

화장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김신은 세면대 옆에 기대서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빨리 움직이지 못하는 자신을 계속 쳐다보고 있는 듯했다. 고개를 저으려는데 김신이 우진의 손에 들린 수건을 옮겨 들었다. 팔과 팔이 부딪혔다.

숨을 못 쉬겠어.

“어서, 씻으세요, 대리님.”

우진이 멍하니 있자, 김신은 눈썹을 꿈틀거렸다. 숱 많은 일자 눈썹이 아주 자연스럽게 휘었다. 확확 바뀌는 감정의 색 때문에 당황해하던 우진의 손목을 잡은 건, 정말 순간이었다.

김신은 말없이 우진의 셔츠 단추를 풀고 소매를 걷어 올렸다. 손끝이 피부 결에 순간적으로 닿았다가 떨어졌다. 소름이 돋았다.

“손이 많이 가는 분이시네요.”

태어나 그런 이야기를 들은 건 처음이었다.

당황하는 사이 차가운 물이 싸아, 하고 우진의 손으로 떨어져 내렸다.

세면대가 낮아, 허리를 굽힌 김신이 유연하게 우진의 손등과 손바닥을 이리저리 돌리며 찬물로 열기를 식혔다. 잡힌 손목이 화끈거렸다. 결국 멍하니 김신의 얌전한 정수리를 내려다보고 있자,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원래 말이 그렇게 없으세요?”

“….”

“아니면 말 대신 눈빛으로 대신하는 건가.”

“네?”

우진이 결국 입을 열자, 김신이 세면대에서 쏟아지던 물을 잠그고 고개를 들었다.

거울에 비치는 우진을 바라보는 김신의 시선이 노골적이었다. 고개를 갸웃하던 그가, 아주 천천히 우진을 향해 웃었다.

미소 비슷한 것을 보고서, 우진은 자신도 모르게 그 밤 같은 눈을 똑바로 마주했다. 또 아랫배가 간질거렸다.

“저는 또 저만 쳐다 보시길래.”

김신이, 마른 수건으로 우진의 손등을 덮으며 접었던 허리를 폈다.

“하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 줄 알았는데.”

“….”

“아니에요?”

우진은 잠깐 숨을 멈추었다.

김신은 아무렇지 않게 우진의 손을 마른 수건으로 천천히 물기를 닦아냈다. 그러고는 손목을 들어 올려 새끼손가락 근처를 가까이에서 쳐다보았다.

“물집이 잡힌 거 같은데….”피부 표면 위를 천천히 손가락으로 쓰다듬는 순간이었다. 순간적으로 오싹했다. 그건 기분 나쁜 느낌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심장 소리가 귀 안쪽을 파고드는 것 같았다.

당황한 우진이 김신의 손을 세게 뿌리쳤다.

“…괜찮습니다.”

목소리가 떨리는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우진은 등을 돌려 당장 화장실에서 빠져나왔다.

타닥타닥, 하고 구두굽이 복도를 울리는 동안 우진은 숨이 가빴다.

손이 닿았어. 스파크가 일 정도로, 기묘한 감각이었다. 마치 순간적으로 다양한 색들이 심장 위로 떠올랐다가 가라앉고, 또다시 터져 나오는 기분.

정신없이 자리로 돌아왔을 때, 지훈은 신입사원들과 건배를 하던 중이었다.

“뭐야? 너 얼굴이 왜 이렇게 빨갛….”

“나 간다.”

‘뭐?’ 하고 놀란 얼굴로 일어나려는 지훈에게 손을 들어 올려 보이고선 우진은 급하게 가방과 벽에 걸려 있던 재킷을 꺼내들었다. 인사팀 부장에게 급하게 손에 화상을 입었다고 말하고 나가려는데 지훈이 쫓아 나왔다.

“진짜 가는 거야?”

“….”

“뭐야, 많이 덴 거야? 병원 가야 돼?”

우진은 지금 집에 가서 자신의 감정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뭔가 찝찝했다. 속이 울렁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 눈을 감았다 뜨면서, 숨을 몰아쉬는데 지훈이 손목을 잡고 놓아주질 않았다.

“…들어가.”

“최우진.”

“내일 얘기해.”

순간 화장실에서 나오던 김신과 눈이 마주쳤다. 지훈과 우진을 바라보던 김신의 눈썹이 묘하게 휘었다.

“집에 가시나 봐요?”

“아, 김신이라고 했나요? 최 대리가 손을 다친 것 같은데.”

“가볼게.”

결국 지훈의 손까지 뿌리친 우진은 급하게 회식 장소에서 빠져나왔다. 숨이 너무 가빠서 어지럽고, 몸 안에서 형형색색으로 색깔이 뒤섞여 엉망이었다. 대체, 이게 무슨….

“하아… 하아….”

검은색의 밤이 푸르게 바뀌고,

여름이 아무렇지 않게 다가오는 가을빛 바람을 머금은 날.

처음으로,

우진은 세상의 모든 색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심장은 늘 같은 온도의 혈액을 뿜어내고 있었는지 몰라도, 오늘만은 달랐다.

피가 푸른색으로, 가을빛으로, 그리고 색색이 변하는 구슬처럼 혈관을 타고 굴렀다.

***

“뭐야? 진짜 가버렸네.”

“…그러게요.”

김신은 그렇게 말하는 지훈에게 시선을 돌렸다. 골목으로 사라지는 우진의 뒷모습은 생각보다는 침착해 보였다.

워낙, 움직임 자체가 느린 사람이긴 했다. 좀 놀리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도망갈 것까지야.

김신은 갈비뼈 근처가 뻐근해지는 것 같아 몸을 쭉 폈다.

“회사생활 내내 저러는 건 처음이네요. 아마, 몸이 좀 안 좋은 가 봐요.”

말이 많군.

김신은 자리에 앉을 때까지 우진에 대해 이것저것 말하는 지훈을 보며 생각했다. 트리거를 당긴 건, 사실 최우진이라기 보다 강지훈이었다.

여우같이 생기긴 했지만, 기집애 같진 않았는데.

‘이상한 느낌이 드는 구석이 있단 말이지.’

손을 대자 가늘게 떨리는 속눈썹이라든가, 입술을 깨무는 습관 같은 게 미묘한 곳을 자극하는 면이 있었다. 거기다 손만 가져다 대도 불긋불긋한 열기 같은 게 퍼졌다.

순전히 충동적으로 우진을 따라 일어섰던 김신이었다.

직설적인 사람인 줄 알았는데, 떨어져 앉아서 관찰해보니 그런 것도 아니었다. 누가 말을 걸거나 쳐다봐도 굉장히 느리게 반응했다.

자세히 보니 늦게 알아차려서 그런 것이 아니라, 아예 대놓고 무시하는 것 같았다.

신입들이 돌아가면서 파도를 타며 원샷을 하는데, 반대편에 앉은 최우진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고기를 굽거나, 술을 따르거나 누군가가 말을 하는 것을 듣지도 않았다.

신기했다. 주변 사람들은 익숙한지 그대로 내버려두는 모양이었다. 그러고도 별달리 튀는 느낌이 없었다.

“오, 신 오빠 어디 다녀왔어요?”

천천히 걸어 들어오는 김신에게 연우가 묻자, 그는 일부러 답을 하지 않고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 그러자 연우가 부끄러워하며 자신에게 눈을 마주쳐왔다. 시선을 마주하자, 방긋 웃는 게 귀여웠다. 색기가 있는 편이랄까, 눈 아래가 묘하게 촉촉했다. 컬이 자연스럽게 들어간 단발머리가 목 뒤로 감겨, 하얀 얼굴에 귀여운 연우의 얼굴과 잘 어울렸다.

‘대체로 이런 반응인데 말이지.’

반대로 우진은 당황해했다. 온몸에서 다양한 감정을 한 번에 내뿜는 사람은 처음 보는 것 같아, 김신은 자신도 모르게 이마를 찌푸렸다.

뭐 이건 완전 애도 아니고. 손목이 잡히자 가만히 있는 것도, 목덜미가 붉게 변하는 것도, 아프다는 소리를 안 하는 것도. 대체, 무슨 속셈인 건지.

흰 손목에 울긋불긋 자신의 손자국이 남은 게, 이상하게 뇌리 속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조금, 화가 난 거 같기도 했다.

“표정 안 좋아졌어, 오빠.”

“노노, 아냐.”

짠, 하고 술잔을 마주치며 김신은 야살스럽게 웃었다. 사내연애는 할 생각 없지만 썸은 타도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는 와중에, 그 대상이 약간 헷갈렸다. 연우, 아니면….

색색이 변하는 최우진.

이상하게, 귓가가 먹먹해졌다.

그건, 처음 수영장에 뛰어들었을 때와 같은 느낌이었다. 모든 소음과 배경이 사라지고, 자신의 심장 소리가 들리는 순간.

그 순간을 김신은 늘 사랑했다. 이제는 더 이상 그 순간을 바랄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왠지, 그 순간이 기억났다. 총의 트리거를 당기고, 스타트 소리가 들리던 그 순간. 물속으로 침잠하는 그, 먹먹한 순간이.

최우진, 그 사람을 처음 마주한 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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