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김 주임과 최 대리-2화 (2/60)

2화. 리비도

“저 대리, 왜 미친 듯이 널 보는 거냐?”

“….”

“아는 사이 아냐?”

“…닥쳐.”

“와씨, 니가 쳐다보니까 얼굴이 존나 시뻘게졌….”

그 순간 김신은 옆에서 종알거리고 있는 동기 민재의 입을 손바닥으로 세게 막았다.

아, 또 쳐다본다. 김신은 아무렇지 않은 듯 시선을 외면하고는 책상 위에 놓여 있는 OT 자료집을 괜히 팔락거렸다.

몇 초나 되었을까, 다행히 순간적으로 뜨겁게 달라붙었던 눈동자 두 개가 떨어져나갔다.

김신은 미간을 찌푸린 채 시선의 사각지대에서 그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최우진.

사원증 가운데 또박또박 적혀 있는 이름은 김신이 태어나 마주한 적 없는 것이었다.

강당에 들어올 때 사원 하나가 이번 OT를 진행하는 대리 중 한 명이라고 말해주기 전까지 김신은 우진이 다른 팀의 신입인 줄 착각할 정도로 동안이었다.

심지어 목소리가 너무 작아 옆에 있던 사원 하나가 마이크를 바꿔줬는데, 그때는 땅을 보고는 고개를 숙여 뒷목이 들여다보였다. 드러난 목덜미가 놀라울 정도로 희고 가늘었다.

하긴, 엘리베이터에서 처음 눈이 마주쳤을 때 하얀 얼굴에 분홍 크림이 퍼지듯 붉은 기운이 퍼졌지. 화선지에 핏물이 화아악 하고 번져 드는 것 같아서, 보는 김신까지 기분이 이상해지는 느낌이었다.

‘여우같이 생겼는데 말이야’

우진은 눈가가 길고 턱이 짧은 여우상이었다. 특히 머리카락이나 눈동자 색이 다른 사람보다 옅어서 같이 서 있는 사원들 중에서도 제일 눈에 띄었다. 평생 먹은 것이라곤 없는 것인지 손가락 마디와 손목의 턱 부분에도 둥글게 뼈가 튀어나와 있었다.

여자라도 저런 속을 알 수 없는 혈압 낮은 타입은 딱 질색이었다.

하물며 피트하게 떨어지는 딱딱한 정장을 입은 우진은 남자였다.

어마어마하게 마른 편이었는데 이상하게 둥근 느낌이 드는 건 날카로운 얼굴선이나 눈가에 비해, 얼굴이 짧은 데다 입술 부분이 도톰하고 둥글기 때문인 듯했다.

또,

시선이 마주쳤다.

어색해하면서도 우진은 김신의 눈동자를 놓치지 않고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 시선이 너무 노골적이라 김신은 자기도 모르게 두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당황스러웠다. 처음 보는 사람한테 원래 저렇게 시선을 던지는 부류인가.

철저하게 이성애자는 아니었지만, 대체적으로 여자들과 사귀어온 김신은 우진과 연애사로 묶일 일도 없었다.

혹시, 전에 잠시 만났던 여자 중 하나의 애인이었나. 뇌리를 헤집어봐도 적당한 명칭의 관계가 보이질 않았다. 뭐지, 어디서 만났지?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김신은 민재가 자신의 팔을 탁, 치는 바람에 정신을 차렸다.

고개를 들어보니 강당에 모여 있는 신입사원들과 멘티들이 자신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자기소개하래, 하고 일어서 있던 민재가 털푸턱 앉으면서 김신의 팔을 잡아끌었다.

얼결에 일어나자, 모든 사람이 박수를 쳤다. 강당 앞으로 나가는 와중에도 시선이 따라붙어 고개가 절로 돌아가고 있는 걸 최우진, 그 사람은 모르는 것 같았다.

“김신입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운동선수였는데 건강 문제로 그만두고,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게 됐습니다. 그러다보니 스물여덟에 첫 직장을 갖게 되었습니다. 술, 사람, 다 좋아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김신은 어릴 때부터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지 자연스럽게 알았다. 그건 천부적인 거였는데, 마음만 먹으면 사람들의 관심을 자신에게로 온전히 옮겨올 수 있었다.

아무래도 그건 사람은 시각적인 동물이기 때문인 듯 했다. 김신은 타고난 신체도 좋았고, 이목구비도 화려했다.

김신은 자신의 과거를 기억할 수 있을 그 시기부터, 늘 물과 함께였다. 태어날 때 몸이 약했던 걸 계기로 시작한 수영 덕분에 체격 역시 얼굴만큼이나 화려한 스펙을 갖게 되었다.

사고로 폐를 다치기 전까지, 김신은 자신이 평생 수영을 하게 될 것이라 은연중에 생각했다. 중학교 때부터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활약했고, 주변의 기대도 엄청났다.

지금도 스타트 소리와 함께 물 안으로 뛰어들어 귓가가 먹먹해지는 그 순간을, 김신은 기억했다.

갑자기 갈비뼈 아래가 시큰거려, 김신은 이마를 찌푸리며 가슴에 손을 얹었다.

“잘생겼어.”

“김신이래, 이름도 잘생겼네.”

스태프로 서 있던 여자 사원들이 다들 혼이 나가 입 밖으로 중얼거리는 소리가 김신에게까지 들렸다.

면접을 볼 때도 그랬다. 문밖으로 큰 몸을 접어 들어오는 걸 보는 순간부터 같은 공간에 있는 여자들뿐만 아니라 남자들도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러나 그 누구도 방금 전 최우진만큼은 쳐다보지 않았던 것 같다. 유독 흰 살결이 두드러져, 붉은 입술에 시선이 갔다.

“김, 신.”

조그맣게, 그 입술이 움직여 자신의 이름을 중얼거리는 걸 김신은 분명 보았다.

그 순간 폐가 당기는 기분이 들어 숨을 몰아쉬었다.

기분이 나쁜 건가, 아지랑이가 바닥에서 피어오르는 것처럼, 열기가 심장으로 번지는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분명히 차가운 얼굴이었는데.

옅은 눈썹과 둥근 코 마디, 그리고 도톰한 입술로 내려오는 그 시선을 따라가자 열이 돋았다.

분명, 이건 기분이 나쁜 것이어야만 했다. 진득하게 달라붙는 시선과, 울림. 습기가 있는 목소리.

이상했다.

“…기분 나빠”

“뭐가?”

강당을 빠져나가면서 김신이 중얼거리자, 민재가 돌아보았다. “나?” 하고 개구쟁이처럼 웃는 민재를 쳐다보며, 김신은 이마를 찌푸렸다.

그래, 대부분의 사내 새끼들은 이런 느낌이었는데. 무감하고, 무색이고 배경 같은, 그런 느낌.

그런데 자신의 등에 따라붙은 시선의 주인은 그렇지 않았다.

물풀처럼 발목에 휘감기는 열기의 시선을 느끼며, 김신은 후끈하게 달아오른 목덜미를 만졌다.

처음 느끼는 종류의 인상이었다. 이상하게, 진득하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최우진. 이름조차 입술에 달라붙어 도통 떨어지질 않았다.

***

“회식이래.”

“어떻게 알았냐?”

지겨운 여덟 시간이었다. 김신은 자신의 어깨를 치며 가방을 고쳐 메는 민재에게 기지개를 켜며 물었다.

뼈에서 우두둑, 하고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1개월의 인턴 기간 동안 민재와는 제법 친해져서 반말과 존대를 섞어 쓰고 있지만, 나머지 신입들과는 어느 정도 벽이 있었다.

민재를 제외하고 서울 본사에 발령받은 나머지 여섯 명의 신입은 전부 여자였다. 자기 스타일이 몇 명 있었던 거 같아, 김신은 조금 거리를 두고 있는 편이었다.

사내연애라니, 큰일 날 소리였다. 뺨 맞고 회사 그만두네 마네, 하는 꼴을 주변에서 제법 봐온 터라 김신은 나름 조신하게 굴고 있는 중이었다.

“연우가 그러던데?”

“아 그 꼬맹이?”

“귀엽지?”

“너 여친 있다고 하지 않았냐?”

“흠흠, 내일부터 정식 발령 난다더라.”

말꼬리를 돌리는 민재를 뻔한 시선으로 보던 김신은 옷걸이에 걸어둔 정장 재킷을 집어 들었다. 지긋지긋한 인턴 생활도 끝이었다.

희망 부서는 홍보팀. 여자들이 많아서 일하기 편했고, 자신 또한 사람 만나기를 좋아하는 편이라 선택한 곳이었다.

기본적으로 이성에게 호감을 잘 사는 타입이었던 김신은 자신과 타인의 파악에 재능이 있는 편이었다.

“회식이라니 벌써부터 지친다.”

“그으래? 난 공짜 술 먹으니까 좋던데.”

민재는 살집이 좀 있는 편이었는데, 그건 전부 알코올 때문인 듯했다. 인턴 때도 종종 동기들을 모아 술 마시는 걸 좋아했다.

여자들을 민재의 옆에 서 있는 김신을 꼭, 한 번은 쳐다보고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안타깝게도 김신은 그때마다 이유를 대곤 회식에서 빠졌다. 어차피 회사에서 나가기 전까지 꾸준히 만날 사이들이었다.

지겨워. 김신은 그렇게 생각하며 복도를 천천히 걸었다.

“넌 술 잘 마시게 생겨놓곤, 이때까지 한 번도 안 모였지?”

“잘 마시게 생긴 건 또 뭐냐?”

술 보다 좋아하는 게 섹스였을 뿐이다. 생각보다 사회생활은 스트레스가 쌓이는 과정이어서 김신은 늘 섹스가 고팠다.

타고난 신체에 리비도도 꽤 높은 편이어서 김신에게는 늘 파트너(라 생각하지만 상대방은 동의하지 않는)가 있었다.

수영을 그만두고 나서는 미친 듯이 섹스에 몰두하기도 했다. 남다른 발육만큼이나 남다르게 첫 경험도 빨랐다.

섹스도 슬슬 물릴 때가 된 것 같아 김신은 요즘 헬스클럽을 끊었다. 체력이 좀 떨어진 것 같아서였다.

가끔 섹스하다가 숨이 찬단 말이지, 김신은 머릿속으로 중얼거렸다.

“넌 왜 애인 없냐? 세상 화려하게 생겨 가지고.”

“신 오빠, 진짜 애인 없는 거 맞아요?”

동기 무리와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눈치 없게 묻는 민재 덕분에 연우가 입을 열었다. 한 번도 사적인 자리를 가져본 적 없는 사이였지만, 쾌활하고 사교적인 김신을 모두들 따랐다.

연우가 생글거리며 묻자, 민재가 입을 삐죽였다. 아주 겉과 속이 똑같은 놈이었다.

“오빠가 너무 잘생겨서 없나 보다.”

“농담이지?”

“오빠는 가끔 겸손을 가장한 무의미한 대답을 잘하시더라고요.”

연우는 똑똑한 아이였다. 학부 졸업 후 바로 입사한 케이스였는데, 가끔 무서울 정도로 김신의 속내를 잘 파악해서 지내기 편한 축에 속했다.

김신은 어릴 적부터 속과 겉이 같은 스타일들을 늘 선호했다. 직선적이고, 시선을 회피하지 않는 사람들이 좋았다.

반면, 자신은 겉과 속이 어떤지 잘 알지 못했다. 분명 거울 속의 자신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찾는지 알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데, 늘 마음 한구석이 서늘했다.

그래서 자신을 먼저 파악하고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들을 좋아했다. 결핍인가. 눈가가 떨리는 것 같아, 눈썹을 손가락으로 스윽 훑었다.

“오빠 되게 잘생겼어, 진짜야.”

“고맙다.”

민재의 표정이 일그러지는 게 눈에 보일 정도라 김신은 속으로 웃었다. 연우는 확실히 김신의 타입이었다. 강아지 같은 얼굴에 육감적인 스타일이라, 꽤 흥미가 당겼다.

“팅….”

그 순간 엘리베이터가 9층에 섰다. 순간적으로 끼치는 풀 냄새에 김신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하얀 피부에, 가는 눈. 낭창한 몸의 선.

…최우진이었다.

여전히 푹 숙인 고개 때문에, 연한 갈색 머리로 뒤덮인 목덜미가 보였다. 목이 길고, 뼈가 두드러져 뒷덜미가 올록볼록 둥글었다.

만지면 어떤 느낌일까, 자기도 모르게 생각하고 있는 찰나 우진의 어깨를 감으며 “안녕하세요.” 하고, 뒤따라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는 남자가 눈에 띄었다.

“신입들이죠? 정책실 강지훈 대립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회식 저희도 같이 가요!”

자신만큼은 아니지만, 화려한 스타일이었다.

옆에 서 있던 우진과는 비슷한 키인 듯했는데, 덩치 차이가 있어 훨씬 커 보였다. 어깨나 가슴선이 벌어졌고, 이마를 덮은 곱슬머리가 상당히 남성다운 느낌을 주는 사람이었다.

지훈은 우진에게 고개를 숙이고선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최우진 니가 회식에 참석을 다하고 별일이다.”

“….”

우진은 대꾸 없이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와는 반응이 전혀 달라 김신은 저도 모르게 우진의 얼굴을 쳐다봤다.

“….”

나른한 얼굴. 어떻게 보면 지루해 보이기까지 했다.

지훈이 살갑게 말을 걸었는데도 시선이 전혀 움직일 줄 몰랐다. 어떻게 보면 사람을 무시하는 것 같은 느낌이라, 기분이 나쁠 만도 했는데 지훈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만큼 익숙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거겠지, 생각하자 김신은 기분이 이상해졌다.

“술 마실 거냐?”

“…내려.”

“아, 예에, 예.” 하고 장난스럽게 대꾸하는 지훈의 옆에서 가만히 걸어가는 우진을 보자, 강당에서의 일이 꿈처럼 느껴졌다.

착각이었나. 아니면 정말 아는 사람이라서 그랬던 건가.

이것저것 생각을 하다, 바닥을 보며 걷던 김신이 결국 앞서가던 우진의 등에 부딪힌 건 한순간의 일이었다.

“아, 죄송합니다.”

우진의 키가 작은 편은 아니었는데, 185센티미터를 웃도는 장신의 김신에게는 좀 작은 편이라, 정수리를 멀뚱하게 쳐다보고 있자, 우진은 잠시 멈춰 섰다.

“….”

그러나 정말, 잠시였다. 우진은 대꾸도 없이 곧장 다시 걸음을 옮겼다.

김신은 이마를 찌푸리며 속으로 웅얼거렸다. 사회성이 전혀 없나, 하고 생각하던 순간이었다.

화아아악, 번져드는 목덜미.

붉은 꽃물이 퍼지듯, 분명 우진의 흰 와이셔츠 아래에 묻어난 것은 열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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