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꿈
“강지훈 어디 갔어? 강 대리!”
정책실의 하루 일과는 강지훈을 찾는 것으로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앉아 있던 계약직 인턴 하나가 당황하며 지훈의 빈자리를 돌아봤다.
오늘 오후부터 출장이라 자리를 비운 것일 텐데 실장이 화를 내는 건 지훈이 어제 올린 정산자료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었다.
“우진 대리님, 지훈 대리님 어디 가셨어요?”
우진이라고 불린 남자가 모니터를 한참 바라보고 있다가 인턴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얼굴이 하얗다 못해 파랗게 질린 느낌이었는데, 여자 인턴은 늘 피곤해 보이는 그 얼굴을 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정책실의 이현수 실장은 성격이 다분히 다혈질이라 아랫사람들이 어려워하는 타입이었다. 탁 트인 9층 사무실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전화통화를 하거나 문서를 집어던지곤 했다. 특히나 계약직 인턴들이 그를 무서워했다.
“우진 대리님….”
“….”
우진은 한숨을 내쉬고는 마른 몸을 더 부각시키는 애시그레이 수트 버튼을 하나 풀며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장은 요즘 한참 나오는 슬림 타입이었지만 워낙 가는 체형이라 몸에 붙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여름이 지나가고 있는 터라 밖은 무더웠으나 사무실 안은 와이셔츠 하나만 입기에 약간 추운 감이 있었다.
“강 대리 어디 갔느냐니까?”
우진은 여전히 강 대리를 찾는 실장의 책상 앞으로 걸어가 말없이 섰다.
이현수 실장은 우진을 힐끗 올려다보고는 문서철로 파티션 가장자리를 탁탁, 하고 쳤다. 짜증 날 때마다 나오는 이 실장의 버릇이었다. 그걸 가만히 보고 있던 우진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강 대리 출장 갔습니다.”
“뭐야? 말도 없이 출장이야?”
“어제 결재하셨습니다. 문서 번호 1331번입니다.”
뭐, 하고 미간을 찌푸린 이 실장은 우진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우진은 아무런 표정 없이 목례를 하고 다시 등을 돌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려고 했다. 그러자 당황한 이 실장이 우진을 불러 세웠다.
“최 대리?”
“네.”
우진이 자신의 시선을 마주하자, 이 실장은 미간을 찌푸리며 우물쭈물했다.
아마도 직속 상사의 잘못을 지적한 점에 대해 한소리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별달리 꼬투리 잡을 만한 건수가 없었다.
우진은 늘, 깔끔하게 일을 처리하는 걸로 정평이 나 있었다.
“…아니야. 오늘 오후에 넘기기로 했던 용역 업체 기획서 좀 빨리 진행해주면 고맙겠어요.”
“네, 점심 이후에 바로 전달하고 기안 올리겠습니다.”
인사를 다시 하고 돌아 나오는데, 우진의 귀에 나지막한 실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인간미 없는 새끼.”
인간미라.
실장은 우진에게 늘 인간미가 없다고 소리를 질렀다.
정말 말도 안 되는 꼬투리라며 입사 동기 지훈은 욕을 붙여서 이현수 실장의 뒷말을 해댔지만 우진은 가만히 있었다. 분노나, 감정 같은 것들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피곤하다.’
우진은 피곤했다. 그것뿐이었다.
천천히 자신의 자리로 걸어 들어오는 우진에게 계약직 인턴이 다가와 감사해요, 라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우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곤 의자에 털썩 앉았다. 피곤한 하루가 또 시작되고 있었다.
***
“또 혼자 드세요?”
“…네.”
무기력한 대답. 홍보실의 김슬기 주임은 늘, 최우진 대리에게 밥을 같이 먹자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팀원들이 나가고 난 자리에 가만히 서 있던 슬기가 다가와 우진의 네임태그를 만지작거리며 입을 열었다.
그녀의 까만 눈이 두 번 깜박였다. 우진은 “같이 안 가실래요?” 하고 묻는 붉은 입술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누군가에게는 귀엽게 보일지도 모를 행동이었다. 그러나 우진은 곧, 고개를 옆으로 저었다. 부족한 사회성, 사교성,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지.
어쩌면 자신에게는 감정이라는 게 없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조금 들었다.
“아닙니다. 전 괜찮아요.”
“알겠습니다아.”
늘 하는 거절이지만 슬기는 매번 밝은 얼굴로 받아들였다.
우진은 또 누군가는 저런 얼굴에 감동을 받을 수도 있겠구나, 라고 어렵게 인지했다.
그러나 남들은 다 그럴 줄 몰라도 자신은 예외였다. 귀찮은 질문을 매번 하는 사람. 같은 대답을 매번 해야 하는 그 상황. 당황스럽고 숨이 막혔다.
사실 저 얼굴에 감동은 받은 건 강지훈 대리였다.
지훈은 사람이 좋다는 평을 자주 들었다. 여자 직원들에게도 거리낌 없이 말을 잘 걸었고, 장난꾸러기 같은 얼굴에 인기도 많았다. 동기지만 먼저 승진했고, 리더십도 있었다. 우진과는 정반대의 성격이었다.
“한 번 같이 먹어주지 그랬냐.”
“…뭘.”
“점심 말이야. 귀엽잖아 감동적이고.”
거절당하면서도 매번 물어보는 것도 대단한 거다. 지훈은 그렇게 덧붙이면서 뒤돌아나가는 슬기의 뒤통수에 대고 중얼거렸다. 귀여운데, 왜 그러나 몰라 너는.
우진은, 누가, 어떻게, 무엇이, 얼마나 감동적인 건지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감정이 바닥에 가라앉아 떠오를 생각을 안 했다. 부모에게도 그랬다. 형제는 없어서 동기간의 감정도 잘 몰랐다. 말이 없었고, 숨소리도 옅었다.
사람들은 우진을 잘 기억하지 못했다. 3년 동안 같은 반이었던 고등학교 동창도 우진을 떠올릴 때면 ‘누구?’라고 말하며 자신의 얼굴을 다시 한번 살펴봤다. 마치 투명한 공기층이 우진의 앞에서는 유난히 두터워진 기분이었다.
사실, 우진은 그게 더 편할지도 모르겠다고 마음먹고 있었다. 그 누구도 자신을 알아봐주길 바란 적 없었다.
어떤 사건이 계기가 된 것이든, 아니면 타고난 천성이었든.
이제는 모두 희미해질 대로 희미해졌다. 늘 그러했듯, 조용히 살 수 있으면 그걸로 족했다.
단 한 번 있었던 그때 그 일을 제외하면 실제로도 그렇게 살 수 있을 터였다.
늘, 꿈은 꿈으로 끝나기만 했다.
“휴우….”
회사 근처 편의점을 가는 길에 그늘이 몇 번, 우진의 얼굴 위를 검게 물들였다가 밝히길 반복했다.
제법 가로수가 울창했고, 여름이 지나가는 달이라 간간히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그러고 보면 그때도 그랬다.
딱 한 번.
늘 무심하고 무감했던 최우진에게 열기를 불러일으켰던 숨소리.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한쪽 손목과 심장 한구석이 저릿해오는 바람에 우진은 주먹을 몇 번 쥐었다 펴보았다.
그 무엇도 색을 입지 않았던 그때.
여전히 세상은 흑백인데, 그 기억만은 선명했다. 천천히 숨을 들이쉬면, 그날의 물비린내가 나곤 했다. 어깨를 움켜쥔 손가락 마디마디가 상흔처럼 남아 있었다.
“…왜 갑자기 그 기억이?”
자주 꾸는 꿈은 아니었는데.
어젯밤 무더운 열기가 다시 새삼스러워 우진은 가슴을 들썩여 숨을 크게 쉬고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가늘게 뜬 눈동자가 잠시 허공을 바라보다 또다시 바닥을 찍었다.
가라앉는 감정의 잔흔들. 무감한 시간들.
우진은 천천히 들고 있던 편의점 BLT 샌드위치의 셀로판 포장을 벗겼다. 손가락 사이로 감정이, 욕구들이, 시간들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
“최우진 대리?”
“네?”
인사팀 과장이 우진을 불러 세운 건 혼자 점심을 먹고 자리에 앉아 읽다 만 『타인의 고통』을 읽고 있을 때였다. 고개를 끄덕이자, 올드한 느낌의 얇은 금테 안경을 쓴 인사팀 교육 담당자가 안경을 내리고 우진을 다시 한번 확인하듯 쳐다보았다.
“회사가 큰 편도 아닌데, 왜 처음 보는 얼굴인거 같지?”
“….”
“오늘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이 있는데, 최 대리가 아무래도 시간 좀 내야 할 거 같아.”
우진은 자신의 눈동자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교육 담당자의 눈썹 사이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거절을 잘 못 하는 우진의 성격을 사람들이 모르진 않았다. 아니, 너무나도 잘 아는 게 문제였다.
덕분에 까다로운 자료 취합이나 엑셀파일 정리는 우진의 담당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의도와는 달리 성과 평가가 늘 좋았다.
우진은 다른 사람에 비해 일도 빨리 처리했고, 자료 정리도 깔끔한 편이라 주변에서 문의가 잦았던 걸 인사팀 교육 담당자도 잘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생각에 잠길 때면 으레 그렇듯 우진이 눈을 가늘게 뜨자, 교육 담당자가 미간을 약간 찌푸렸다.
“원래는 미리 안내를 했어야 하는데 강지훈 대리, 갑자기 출장 건이 잡혀서….”
“….”
“쉬운 거야, 우리 회사 회계 시스템이랑, 그룹웨어 안내랑 사내 문화 관련 멘토링 좀 하면 돼.”
“….”
“시간 내기 어려운가?”
“아닙니다.”
인사팀 실장 하나가 “최 대리는 원래 좀 뾰루퉁한가?” 하고 물었던 일이 기억났다.
인상이 남는 스타일은 아니었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각인되지 않아도 문제가 있는 모양이었다.
성과만 좋아서는 안 되는 게 회사였다. 사람들과의 어느 정도 선을 지키며 친해지고, 그들과 말을 섞고, 잘 웃고. 그래야만 튀지 않았다.
우진은 손끝을 살짝 오므렸다. 손톱이 손바닥에 서서히 박혀들었다. 한동안 멍하니 서 있던 우진은 재빠르게 오후 일정에 대해 메모를 남기고선, 사무실을 빠져나와 복도로 걸어 나왔다.
“휴우….”
선이라는 게, 어떤 건지 우진은 잘 몰랐다.
그 선이 늘 문제였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선.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그 선들이 우진에게 고민을 안겼다. 자신은 관계의 경계를 잘 모를 때가 많았다. 누군가에게는 숨 쉬듯 자연스러운 그 경계를 배우는 과정은 우진에게 가장 어려운 것 중에 하나였다.
어릴 때 우진은 자폐증일지도 모른다는 진단을 받았다. 말이 없고, 표정이 없는 아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한 어머니가 병원을 찾아간 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우진은 선생님이 묻는 질문에 답을 하지 않아서 혼이 났다. 부모님이 학교로 호출되고 나서야, 우진은 선생님의 묻는 말에는 반드시 답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친구라는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자신과 타인은 전혀 달랐다.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그들과의 대화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웃고 싶지 않고, 이야기 나누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스스로 왕따가 되어버리는 상황이 매년 연출되었다.
다행히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고, 시키는 일은 반드시 해내는 성격 탓에 우진은 모범생이었고, 친구들은 그런 자신을 자연스럽게 무시했다.
그렇게 우진은 배경처럼 묻혔다. 그 자리, 그 공간, 혹은 흘러버린 그 시간처럼 아무 색도 띄지 않았다.
어쩌면 그렇게 태어나 아무도 모르는 채로 어딘가에서 서서히 숨을 잃는다 해도 어느 누구도 우진을 기억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렇게, 서른 해.
무색무취의, 서른 해가 지났다.
1층 강당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 우진은 입술을 조금 씹었다.
준비되지 않은 일들 중에서도 새로운 사람과 만나 말을 섞는 일이 달갑진 않았다. 정책실에 지원한 까닭도 그 때문이었다. 정책실의 업무 대부분은 협업이 필요 없는 일들이었다.
이처럼 무계획적인 일들을 처리할 때마다, 피곤이 몰려왔다. 결국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우진은 자연스럽게 1층을 눌렀다.
관자놀이 께가 욱신거리는 것 같아 두 눈을 감고 이마에 손을 올리는데, 탱,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정책실이 있는 9층에서 1층까지는 꽤 시간이 걸리는 터라,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뜨는데 순간 마주치는 눈동자가 있었다.
“….”
푸른
밤.
밤 같은 눈동자.
우진은 숨이 막혀 넋 놓고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 밤은 새까맣지 않고 늘 푸르렀다. 물기를 머금은 밤 같은 눈동자가, 우진을 한 번 내려다보고 가볍게 목례했다.
그 순간이 너무나도 선명해서 우진은 한꺼번에 모든 사물이 색을 입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우진은 지금, 이 시간이 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파도가 밀려오듯, 그의 눈빛이 밀려오는 것 같았다.
그날의 밤.
풀 냄새와 물비린내가 섞여, 시간 한가운데로 쏟아지던 밤.
그날, 그 숨소리처럼 뜨거웠던 목소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