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바다라면 이 꽝철이님이 나서야 하는 일인데! 나만 빼놓고 둘이서 불장난을 하다니, 너무하다!”
객정의 좁은 마루에 남자 셋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과메기를 김에 싸먹고 있는 도사 고도. 고도가 먹을 과메기를 손수 쌈을 하여 먹여 주는 고급 비단 차림의 어여쁜 도령, 청사. 그리고 쑥대머리에 불쾌한 얼굴을 가진 매서운 눈매의 불지네, 꽝철이까지. 꽝철이는 불같이 화를 내며 앞에 앉은 두 남자를 다그치고 있었다. 마을의 불장난 벼락이라 말하며 고도의 죽통에 붙잡힌 십이지괴들이 들었으면 서러워할 소리를 내뱉었다.
“마지막은 신명 나게 놀고 싶었건만.”
마지막이란 말에 과메기를 우물우물 씹던 고도가 꽝철이를 바라봤다.
“웬 마지막 타령인고.”
“나도 이만 가봐야 하지 않겠느냐.”
“귀향이냐.”
“도깨비를 설득하지 못했어. 앞으로도 설득하지 못할 거고. 그러니 너와 같이 다닐 이유가 없겠구나.”
음식물을 마저 씹어서 삼킨 고도가 고저 없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고향으로 돌아가겠다면 보내주마. 붙잡지 않겠다.”
“그럼 있지, 떠나기 전에 네게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될까?”
“얼마든지.”
“너와 도깨비가 어떻게 만나고 지금까지 같이 지내 왔는지 말해 주지 않을래.”
“흐응?”
“솔직히 도깨비 우두머리가 제령과 퇴마를 업으로 삼는 도사와 함께 다니는 건 누가 봐도 이상하잖아. 조합이 얼마나 신기한데.”
우물우물, 제 말을 먹어 버리듯 끝을 흐린 꽝철이는 고도의 눈치를 살폈다. 괜히 민감한 부분을 건드려서 고도가 예측 못 할 반응을 보이진 않을까 지레 조심스러워했다. 하나 꽝철이의 걱정과 달리 고도는 여전히 평온한 얼굴이었다. 십이지괴를 잡는다고 도력을 써서 조금 지치고 피곤해 보였지만, 꽝철이의 질문에 기분이 상하거나 예민한 대응을 보이진 않았다.
“꽝철아.”
“응?”
“옛날이야기 좋아하느냐.”
옛날이야기라 함은 꽝철이도 간혹 주인공이 되는 민담과 전설을 뜻하는 것인가. 딱히 좋을 것도, 싫을 것도 없었다. 어른들이 어린애들을 빨리 재우거나 울음을 그치게 만들려고 지어 낸 이야기 혹은 실재하는 것을 각색하여 부풀린 이야기에 호오를 갖다 붙일 필요는 없었다. 굳이 호오를 꼽으라면, 글쎄다, 꽝철이는 옛날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 부류이지 않을까.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꽝철이 자신은 언제나 못된 요괴로 사람들을 괴롭히고 결국 영웅에게 혼쭐나서 한산뫼에 처박힌 내용뿐이니.
“나와 연관된 이야기는 싫어하지만, 너와 도깨비가 얽힌 옛이야기라면 곶감이라도 가져다 놓고 얘기하고 싶구먼.”
“곶감이라. 객정 안주인에게 부탁하면 구할 수도 있을 듯한데, 어디 갔을꼬.”
“곶감 타령 그만하고 얼른 얘기해 보아라. 어서, 어서.”
“네놈도 변태였느냐. 이야기 하나에 그렇게 열렬히 좋아할 필요는 없을 텐데.”
“뭐라 생각해도 좋으니까 들려줘라. 응?”
꽝철이의 어린애 같은 보챔에 고도는 자리에서 일어나 똑바로 앉았다.
“한 50년 전이었을 거다. 나와 소가 만난 게 말이야.”
예고도 없이 시작된 이야기에 꽝철이와 청사 모두 고도를 주목했다. 고도는 머리를 벽에 기대어 하늘을 가만히 쳐다봤다. 그러다 피식 웃음을 흘렸다.
“너희 둘처럼 사이가 지지리도 나쁘게 만났었지.”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옛날 옛적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아니, 호랑이가 담배 피우는 시늉까지 도술로 만들어 내곤 했던 고도가 강문을 처음 만났던 때였다. 강문은 젊고 잘생긴 승려였다. 듣기론 왕가의 핏줄이라는데 어미가 천출이라 도성에서 살 수 없었기에 한 바닷가 마을로 도망쳤다고 한다. 그 이야기의 사실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왕가에 사생아가 있었다는 사실과 어린 나이에도 세상 이치에 밝은 현명함은 군왕의 자질로 보기에도 충분했기에 제법 신빙성이 있었다. 강문은 고도가 첫눈에 호감을 가진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러나 어디 고도가 마음에 드는 인간이라고 쭐래쭐래 쫓아가서 좋아한다 고백할 치인가. 고도는 지금도 그렇듯 당시에도 쉽게 사람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네놈이 나와 친해지면 불행한 일에 휘말린다. 옥황상제가 내게 그런 저주를 내렸거든.’
터무니없는 변명을 대며 히죽 웃기만 하는 고도에게 먼저 다가올 사람이 없기도 하고 말이다. 처음엔 고도를 참으로 허풍이 심한 도사라 생각했던 강문은 차츰 고도에게 호감을 가지기 시작했다. 자꾸만 피하려는 고도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는 시도를 했다. 그때마다 고도는 질색을 하고 강문을 피했다. 무언가에 겁먹은 사람처럼 자꾸 거리를 두면서도, 선뜻 강문을 떠나지 못한 것은 고도 역시 강문 못지않게 그를 마음에 들어 해서라. 강문은 나무에서 내려오지 않고 멀찍이서 소리 없이 따라오는 고도를 보며 그렇게 말하곤 했다.
‘너는 마치 고양이 같구나. 잔뜩 털을 세워 경계하면서 졸졸 따라오는 꼴이 딱 들고양이로다.’
괘씸한 인간 같으니라고. 자신처럼 악명 높은 도사를 한낱 미물로 취급하는 강문에게 발끈한 고도는 그 길로 나무에서 내려와 강문의 옆에 서게 되었다. 그리고 난생 처음으로 자신과 친해진 인간 중 유일하게 강문만이 아프거나 다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넌 다치지 않는구나.’
고도의 그 말에 강문은 웃어 보였다.
‘강하니까 다치지 않지.’
강한 자는 곁에 두어도 다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약한 자들은 모두 죽거나 사라졌건만, 강하면 괜찮았다. 처나 아이처럼 잃지 않아도 된다. 그 자체가 고도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 고도는 사람의 온기에 많이 굶주려 있었다. 처음으로 정이 통한 강문에게 미움 받고 싶지 않아 애를 쓸 정도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천방지축으로 장난을 걸던 악행을 멈추었다. 강문이 시주를 하러 다니는 마을에서 작게나마 사람을 돕기도 했다. 강문이 마을 여자들을 모아놓고 부처의 경전을 읽어 줄 때는 고도도 근처 나무 위에 올라가 그 온화한 얼굴과 목소리에 집중했다. 설법을 하는 강문 주변으로는 어느새 제자들이 하나둘 생기기 시작했다. 강문이 가는 곳을 따라가며 부처의 선행을 베풀고 그 무리에 고도가 끼어 있으니 오랜 세월 고도 하나로 엉망이 되었던 세상이 평온을 되찾은 것만 같았다.
“잠깐, 잠깐, 고도.”
이야기를 듣던 꽝철이가 냉큼 손을 들어 고도의 이야기를 저지한다. 고도가 들려준 이야기를 잠자코 듣기엔 꽝철이가 참으로 성미 급한 짐승이었다.
“그 이야기가 너랑 도깨비 사이에 무슨 관련이 있는 거야?”
“사람 말은 끝까지 듣는 습관을 기르도록.”
“하지만 나는 강문에 대해 궁금한 게 아닌데…….”
“그럼 요지만 기억해라. 강문과 나는 둘도 없이 사이가 좋은 친우였고, 강문은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인정할 정도로 훌륭한 덕망을 지닌 불자였다는 걸.”
강문을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는 고도를 알기에, 꽝철이는 정반대였던 과거 이야기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했다. 청사도 마찬가지다. 강문과 고도가 실은 둘도 없는 절친한 사이였다니 머릿속으로도 그 감정이 그려지지 않았다. 그렇게 좋아하던 사람을 죽이려고 달려드는 건 어떤 심정일까.
“그렇게 나도 강문의 제자 중 하나로 전국을 한 삼 년쯤 돌아다녔을 때였어. 어느 날 우연히 도깨비 우두머리를 만나게 되었다.”
꽝철이가 귀까지 쫑긋하며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소 말이지?”
“그래.”
고도는 달빛이 어스름한 길거리에서 커다란 도깨비 하나랑 마주쳤다. 강문에게는 잠깐 달구경하고 온다면서 빠져나온지라, 제때 돌아가지 않으면 강문이 걱정을 할 시간에 조우를 한 것이라. 그다지 달갑지 않은 인연에 고도가 자리를 얼른 피하려고 술법을 전개했다. 상대가 꿔다 놓은 보릿자루나 망태에 귀신이 붙어 만들어진 도깨비도 아닌, 그 도깨비들을 모두 총괄하는 우두머리다 보니 알량한 도술로는 소의 시야에서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했다. 도깨비불은 고도가 사라지는 족족 따라붙었다.
‘아주 신기한 인간이다! 아주 강한 인간이야! 인간아, 나랑 씨름 한 판 하자!’
‘싫어, 새끼야.’
고도가 감자를 내지르고 자리를 뜨려 했다. 도깨비는 끈질기게 달라붙었다. 츠츠츠츠, 특유의 괴악한 웃음을 토하면서 나름 진지하게 도술을 부리는 고도를 쉽게 보내지 않았다. 결국 한 시진 가까이 쫓고 쫓기는 술래잡기를 한 끝에 고도는 길 한복판에 멈추어 섰다.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 정도로 어지럽게 날아다니던 도깨비불도 펑 소릴 내며 거대한 사람 형상으로 변해 고도의 앞에 마주섰다. 고도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제 옷고름을 풀고 두루마기와 안에 입은 상의를 벗었다. 홑바지 차림에 마른 근육이 균형 있게 잡힌 상체가 드러났다.
‘한 판에 끝내 주겠다. 이 거머리 같은 도깨비 새끼.’
‘츠츠츠츠! 씨름, 씨름, 씨름!’
도깨비가 기다렸다는 듯 고도의 허리를 붙잡으니, 둘의 덩치가 족히 다섯 배나 차이가 났다. 도깨비가 너무도 가볍게 고도를 발라당 뒤집으리라 예상했다. 하나, 예상과는 달리 고도가 쉽게 넘어가지 않았으니, 세상을 혼란스럽게 만든 실력의 소유자다웠다.
고도는 씨름에 대한 기술을 알지 못한다. 상황에 맞춰서 어깨나 다리를 힘으로만 밀어붙이는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미흡한 기술에도 불구하고 소의 완벽한 씨름 기술에는 걸려 넘어지지 않았다. 소는 그것이 이상했다. 씨름을 모르는 이가 씨름 도깨비를 상대로 대등하게 경기했다.
‘이게 우두머리의 실력인가. 내가 그대를 과대평가했군, 흐음. 별것도 아니구먼.’
바지 하나만 달랑 걸친 고도는 그렇게 소를 도발했다. 땀에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새까만 눈을 빛내면서 호흡은 단정치도 않은 것이 본인도 힘에 부쳐 씨름을 계속할 상태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뭐가 그리 자신감이 넘치는지 당당하게 소를 욕보였다. 소는 자기보다 훨씬 작은 인간을 넘기지 못한 것이 분했다. 이깟 놈은 다리 하나만 걸어도 발라당 뒤집어져야 하거늘, 어찌도 이리 꿋꿋하게 서 있단 말인가. 씨름을 잘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요령 좋게 버티고 기술을 피하는 게 고작이었다. 소는 자신을 궁지로 몰아세운 인간을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건방진 인간!’
‘나도 못 이기는 게 뭐가 건방져. 주둥아리에 주리를 틀까 보다.’
‘무슨 허튼수작을 부리는 거지!’
‘수작이란 자고로 도사의 덕목이지. 승부를 내지 못하겠으면 깨끗하게 인정할 줄 알아야지 끝까지 물고 늘어지려 하느냐. 떠나는 임 걸음걸음 꽃을 뿌리는 여인도 있는데 사내대장부로 태어나 샅바자락에 매달릴 셈이냐.’
‘사랑하는 임을 보내는 것과 이 승부가 무슨 상관이라고!’
‘인정하는 것이 같지.’
‘이상한 말장난으로 본질을 흐리지 마라. 너와 나 둘 중 하나가 쓰러질 때까지 다시 겨루자! 승부가 나면 깨끗하게 승복하겠다!’
이번에야말로 승부를 내겠다며 잔뜩 벼르고 있던 소는 갑작스레 명치에 충격을 받고 뒤로 넘어졌다. 잠시 숨을 쉬지 못했던 소가 뒤늦게 기침을 하며 호흡을 찾았다. 상황을 파악한 소는 머리끝까지 화가 났다. 정당한 승부를 겨뤄야 하는 장에서 감히 비겁한 술수를 사용한 것이다.
씨름을 준비하는 도깨비의 명치를 발로 차다니. 벌떡 일어나려던 소는 자신을 다시 발로 차 뒤로 넘어뜨린 고도를 향해 이빨을 세웠다. 한 번만 더 이런 굴욕을 주면 물어뜯을 셈이다. 불타는 야차처럼 일그러진 소의 얼굴을 보면서 고도는 이번에도 당황하는 기색 없이 태연하게 말했다.
‘씨름도 모르는 인간인 나한테 이겨서 뭘 어쩌려고. 하여튼 무식한 도깨비야.’
‘정정당당한 승부에서 도망치려는 게냐!’
‘아, 내가 진다고. 난 지는 건 딱 질색이야.’
깔끔하고 무식한 답변이다. 싸우기도 전에 패배를 인정했다. 소는 황망한 표정으로 고도를 바라봤다. 얼굴이 절로 일그러질 만큼 황당한 승복인데, 어찌하여 패배를 인정한 상대는 아직도 당당할 수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뭐 이런 비겁한 인간이 다 있어!’
지기 싫다고 반칙을 하나! 소가 참지 못하고 일어나 달려들었다. 인간이 하기 싫다고 해도 억지로 씨름을 할 생각이었다. 씨름 경기로 이겨야만 도깨비의 ‘제약’을 발동시킬 수 있다. 씨름에서 이겨야만 상대를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는 것이다. 단지 말로만 승복을 받아 봤자 헛수고다. 소가 고도의 허리를 낚아채서 그대로 뒤집으려는 참이었다. 소의 손아귀에서 연기를 뿜으며 사라진 고도는 소의 뒤편에서 나타났다. 빈손에는 어느샌가 검 하나가 들려 있었다.
‘그대가 제안한 대로 씨름에 응했고, 승부를 보기 전에 내가 패배를 시인했다. 그럼에도 네가 승리를 받아들이지 않으니,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 아닐쏘냐. 그럼에도 두 번째 경기를 하고 싶다면 이번 종목은 내가 선택해야 정당하지 않겠나. 고로 두 번째 경기를 선언하마.’
고도는 휘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차가운 눈을 빛냈다.
‘한쪽이 죽을 때까지의 혈투다. 무기는 무엇이든 좋다. 한쪽을 죽이기만 하면 되니.’
태연하게 죽음을 입에 담은 고도는 소의 오른쪽 허벅지를 검으로 슬며시 찔렀다. 바느질하던 아낙이 손끝을 살짝 찔린 것처럼 약한 한수였다. 그 끝에 한 방울 피만 맺혀 나왔다. 소는 피를 보자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피와 붉은 팥은 도깨비에게는 천적이다. 소는 혈투의 혈자만 들어도 기절할 것 같았고, 실제로 제 몸에서 뿜어지는 붉은 피를 보고는 그대로 뒤집어졌다. 까무룩 정신을 잃는 소를 보며 고도는 제법 사악하게 웃었다.
‘손톱만큼 찔린 것 가지고 엄살은. 쯧쯔.’
언젠간 기필코 씨름으로 이겨서 ‘제약’을 걸고 말리라. 꼭두각시처럼 조종해서 부려 먹고 말겠어. 그 다짐을 마지막으로 소는 기절했다. 그리고 그때 내지 못한 승부를 위해서 고도를 쫓아다니게 되었다. 강문이 기묘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도깨비와 친우가 된 도사라니…….’라고 중얼거릴 만큼 말도 안 되는 상황임은 분명했다.
“둘에게 어울리는 첫 만남이었네.”
꽝철이는 유쾌한 첫 만남에 낄낄거리며 웃어댔다. 고도가 약점이라고 일러 준 왼쪽 허벅다리의 상처는 그때 생겨서 아물지 못한 것이라는 생각이 언뜻 들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아니라 금방 잊고서 다시 배를 잡고 낄낄 웃었는데 그때를 생각하는 고도는 넌덜머리를 치면서 싫어했다.
“난 도깨비가 그렇게 끈질긴 줄은 몰랐다. 대체 몇 달 동안 옆에 붙어서 씨름을 하자고 졸라대던지. 그냥 확 져줄까 하는 생각까지 했다.”
“그러게. 그렇게 귀찮으면 한 번 해주고 져주지 그랬냐?”
“환영도사 체면이 있지. 입 나불거리기 좋아하는 게 도깨비다. 그 말 많은 것들을 내가 믿을 수가 있나. 내가 져주면 소는 곧장 도깨비 사이에서 영웅담처럼 말을 퍼트릴 테고 그 이야기는 인간과 요괴 사이에서도 퍼질 것이다. 그럴 수는 없지.”
“그래도 귀찮은 건 딱 질색이라는 너답지 않게 도깨비를 옆에 데리고 다녔네. 용하다, 용해!”
“같이 다니다 보니 정이 쌓이더라. 나중엔 강문보다 그놈이 더 좋아서 같이 다니기도 했고.”
‘씨름하자, 씨름!’
같이 지내다 보니 미운정이 든 고도가 어느샌가 소를 구워삶기 시작했다.
‘칼부림 하자, 칼부림!’
피만 보면 으앙 하고 도망가 버리는 소에게 칼부림이란 기겁할 짓이었다. 알면서도 약 올리는 고도가 미워서 한동안 그와 말싸움을 벌였다.
‘못되고 고약한 도사 놈!’
‘말 많고 씨름밖에 모르는 도깨비 놈!’
‘안다리로 넘겨 버릴 테다!’
‘칼로 그 다리를 푹 찔러 버릴 테다!’
‘잔인해!’
‘무식해!’
그러다 보니 서로 씨름과 칼부림이란 금지어에 합의하곤 방정맞게 산과 들을 돌아다니며 놀았다. 고도는 덩치 큰 소의 어깨나 머리에 앉아서 돌아다니는 것에 재미를 붙였다. 소는 인간과 이렇게 어울려 노는 게 처음이라 제 머리채가 고도 손에 쥐어잡혀 쭉쭉 잡아당겨져도 좋다고 ‘츠츠츠츠’ 웃어대기 바빴다.
고도는 소와 어울리면서 강문과 그의 제자들에게 소홀해졌다. 설법에 관심을 기울이고 선행을 실천하던 일에 흥미를 갖는 대신, 소가 보는 인간 세상의 면면에 눈을 돌렸다. 사람이기에 그 속에 속한 인간으로서는 객관적으로 볼 수 없는 세상이 도깨비 눈에는 거대하고 위험해 보이면서 때론 경이로운 발전에 놀랍기도 하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으로 인지했다. 도깨비는 수다스러운 만큼 구천을 떠도는 혼령과도 곧잘 친하게 지내고, 꽃과 나무와도 이야기를 나누었다. 수다쟁이 소를 통해 친해진 또 다른 존재들과 인간 세상을 말하는 것이 어찌나 즐겁던지, 고도에게는 아주 놀라운 경험이었다.
고도가 그간 별생각 없이 부수고 망가뜨렸던 세상이 실은 아주 소중하다는 걸 배웠다. 이 세상은 무구한 옛날부터 이어진 무언가로 얽히고설켜 있어서 그 연관성과 존재성을 지켜야만 했다. 세상을 만드는 것은 인간이 만들어 낸 건물과 도구이기도 하고 때론 정신이기도 하다. 첩첩이 쌓여 온 인간의 역사는 고도 같은 인간이 함부로 깨부술 수 없는 위대한 것이었다. 그런 걸 함부로 짓밟고 다녔으니, 고도의 행동은 얼마나 오만방자했는가.
그때부터 고도의 마음속에 의심이 한 줄기 피어났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강문에 대한 의심이다. 강문은 기본적으로 인간들의 세상을 부정적으로 본다. 그것은 고도도 마찬가지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고도는 세상이 악랄하게 느껴지더라도 그것이 인간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라면 굳이 바꿀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고, 강문은 나쁜 세상을 좋게 만들어야 한다는 개혁 의지가 있다는 점이다.
진보적인 강문이 언제나 대단해 보였다. 임금도 이루지 못한 세상의 변화를 강문이라면 민중들의 의식을 바꾸는 것에서부터 이룩해 낼 것만 같았다. 하나, 도깨비와 귀신과 꽃과 나무와 바람이 말한다. 지금 인간의 세상이 나쁜 면도 많지만 이곳이 천계가 아닌 하계라는 점을 잊지 말라고 말이다. 천계가 아닌 이상 선과 악은 공존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건 어쩌면 자연의 섭리와도 같아서 영원히 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고도는 그 말이 틀리지 않는다 생각했다. 그래서 세상을 좋게 바꾸려는 강문의 의지에 의심을 품고 몇 개월 뒤에는 반발하게 되었다.
‘강문. 좋아지는 게 과연 뭘까.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는 걸로는 부족한 걸까.’
‘저런, 도사가 그런 말을 하다니 놀랍구나.’
‘좋게 변한다는 게 뭔지 모르겠어서 그래.’
‘행복해지는 것이지.’
‘그렇다면 지금 이대로도 행복한 사람에겐 좋아질 필요가 없지 않느냐.’
‘혼자가 아닌 여럿이 행복해지는 것이지.’
‘다 같이 행복해진다고.’
‘그래. 그것이 사치와 향락처럼 잠깐 빛을 냈다 사라지는 것이 아닌, 어떠한 영원불멸의 행복이라면 어떻겠느냐. 저기 하늘의 별처럼 아주 오랫동안 빛나는 것 말이다. 죽어서도 오랫동안 그 빛을 다른 이들이 지켜볼 수 있는 행복.’
‘그렇게 완전무결한 행복이 과연 존재할까.’
‘설령 존재하지 않으면 어떻느냐. 그것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만 있어도 지금보다 낫지 않느냐.’
‘정말 그럴까.’
‘고도. 네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나는 도통 모르겠구나.’
도깨비와 함께 다니느라 인간됨을 잃는 건 아닐지, 강문은 친우로서 고도를 걱정했다. 전에 없이 풀이 죽어 있는 고도에게 손을 뻗는 일이 늘기 시작했다. 제자들에게 설법하는 시간이 아니면, 고도를 찾으러 다녔다. 밤하늘을 올려다보거나, 대낮에 높은 나무 꼭대기에 올라 마을을 내려다보는 고도를 부르고, 무표정하게 돌아보는 고도를 꼭 안아 주기도 했다. 고도는 그 포근하고 따뜻한 품속에서 몇 번이고 망설였다.
나아진다는 게 뭔지 모르겠다. 줄곧 지키는 일만 해보고, 잃어 보기만 해서, 절친한 친우가 바라는 세상이 머릿속에 잘 그려지지 않았다. 친우는 대의를 위해서 작은 것의 희생을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말했는데, 그러다 보면 사람들이 죽거나 피해를 입는 일도 있어서 고도로선 이게 맞는 일인지 알 수 없는 지경에 다다랐다. 혼란스러워하는 고도의 뺨에 입술을 묻으면서 강문은 속삭였다.
‘고도. 너는 큰일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다. 사소한 것으로 발목이 잡힌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나아지기 어렵단다. 내 곁에서 그것을 줄곧 지켜보지 않았느냐.’
고도는 제 볼에 입을 맞추는 강문을 복잡하게 바라보다가 결국 그리 말하고 말았다.
‘나는 모르겠다. 어린아이가 울고 있는데 안아서 달래 주지 않으면서, 그 애에게 귀한 비단 치마를 선물하는 것이 과연 행복한 일인지 모르겠다.’
‘얻고 잃는 것엔 경중이 있지 않느냐.’
‘강문.’
‘네가 직접 겪어서 알지 않느냐. 잃어선 안 되는 것을 잃었기에 지금 네 모습이 이리 된 것 아니느냐.’
잃어선 안 되는 것. 그것이 처와 자식이라는 걸 상기한 고도는 더 이상 강문과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뺨에 입을 맞춰 주는 강문을 밀어낸 고도는 그 후로 소의 곁에 머물며 강문을 멀리했다. 자꾸만 멀어지고 거리를 두는 고도를 처음에는 참고 기다리던 강문도 서서히 고도를 괘씸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인간 된 도리도 없이 세상을 혼란에 빠트렸던 환영도사 고도가 인간 세상을 점점이 밝히는 강문보살을 지지하지 않으니, 그 얼마나 괘씸한 일이 아닐쏘냐.
‘고도, 괘씸하구나. 내가 너를 거두었는데 감히 네가 나를 따르지 않다니. 세상을 혼란으로 물들이던 네가 어찌 선행의 가치를 논할 수 있느냐. 세상을 그저 흘러가는 대로만 내버려 두면 이 세상은 오직 임금과 임금 밑에서 조정을 돌보는 이들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바뀔 것이다. 군신이 원하는 변화는 민중이 원하는 것과는 다르다. 이 세상의 주인은 군신이 아니야, 민중이야. 하여 민중이 원하는 변화가 필요한 것이다.’
‘내게 인간다운 삶을 가르쳐 준 것은 고맙다. 그 마음만큼은 진심이다. 하나, 세상에 주인이 있다는 네 생각 자체를 이해할 수가 없다. 너는 이 세상을 군신과 민중의 대립으로 보지만 근본적으론 네가 그렇게 혐오하는 인본주의의 틀에서 벗어나질 못하는 구나. 어찌 인간을 근원으로 보느냐. 이 세상의 주인은 땅과 바람과 태양이다.’
‘네 주장은 인간을 원시의 상태로 돌리는 것과 같다. 나는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며 세상의 소유권을 인간에게 붙들어 두는 것이 아니야. 우매한 민중들이 계몽되길 원하는 것이지.’
‘그 변화를 위해 너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만나 부처의 말씀을 설파하는 것이냐? 그런 사소한 방법으로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민중의 힘은 훨씬 거대하다. 나는 위에서부터의 개혁을 믿지 않아. 아래에서부터 변화해야 올바른 세상이 된다.’
‘아니다. 변화는 이렇게 작위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변화는 마치 흐르는 물과 같아 물방울이 모여 물줄기를 이루고 그 물줄기가 모여 개울과 하천이 되며 종국엔 강과 바다가 되는 것이다. 네가 물방울이 떨어지는 방향을 바꾼다고 바다 전체가 변하지 않는다. 또, 변해서도 안 돼. 그런 것으로 바다가 변한다면 그 물방울은 아주 독성이 강한 오염물질일 것이다.’
오랜 설전 끝에도 합의점을 찾지 못한 둘은 결국 서로를 설득하길 포기했다. 인간의 수명 이상을 살아와 세상의 흐름에 몸을 맡기는 법을 아는 고도. 지나치게 현명하여 세상의 변화를 준비할 능력이 있는 강문. 서로 가장 먼 대척점에 서 있는 이들이나 다름없었다. 급기야 강문을 따르는 제자들과 크게 싸움을 벌여 몇 명이 죽는 사고가 터지자 강문은 고도를 포기했다.
‘고도, 네가 원하는 길을 가거라. 그렇다고 곱게 보내줄 수는 없겠지. 또다시 네 멋대로 세상을 농락하고서 훗날 후회가 된다며 찾아오면 내가 네 뒤치다꺼리를 하는 것밖에 더 되지 않겠느냐. 그러니 너와 네 뜻을 함께하는 도깨비를 묶어 두겠다. 둘은 이 시간 이후로 결코 떨어지지 못할 것이다. 떨어지고 싶다는 마음을 먹는 순간 네 몸은 도깨비불에 영원토록 타들어 갈 것이며, 도깨비는 영원히 왕국을 찾지 못해 그 입구와 문턱에서 빙글빙글 돌게 될 것이다. 죄 많은 인간인 고도와 인간을 골탕 먹일 줄만 아는 도깨비가 감히 사람의 마음에 대해서 논하는 것을 용서 못 한다. 너희들이 얼마나 그릇되었는지를 알게 되면 그때 찾아와라. 너희에게 묶인 속죄를 풀어 주마. 고도, 네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게 된다면 거두어 주마. 널 가장 잘 받아들일 수 있는 인간이 이 세상 천지에 나 말고 누가 있겠느냐. 그동안 다시금 외로움에 사무쳐 보아라. 널 진정으로 아낀 자가 누구였는지 떠올리고 오거라.’
꽝철인 고도의 이야기를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머리가 아팠다. 세상의 변화에 대해 논하는 인간이 있다니. 그런 생각을 하는 것도 신기하지만, 그만한 능력을 갖춘 것도 놀랍기 그지없었다. 고도와 강문의 주장 중 무엇이 옳은지도 모르겠다. 내버려 둬도 그만이고, 더 좋게 바뀌면 좋은 것이고. 그리 단순하게 생각하는 꽝철이 머리로는 뭐가 더 옳은지를 판단할 근거가 조악했다.
“아이고, 어려워라. 어렵다, 어려워. 인간들은 왜 이런 걸 생각하고 공부하는지 모르겠구나.”
꽝철이는 머리가 어지러워 눈동자가 빙글빙글 돌아갔다. 결국 생각하길 포기하고 두 손을 들었다. 이에 반해, 청사는 심각한 얼굴로 몇 번이고 고도의 이야기를 곱씹었다. 군신들의 탁상공론이라면 모를까, 고도는 이미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면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수준에 도달한 도사였다. 자세하게는 몰라도 일개 인간이 도술을 배운 것만으로 신선을 스승으로 삼고 천계의 관심을 받으며 동해 용왕과 얽힌 것은 결코 가볍게 여길 문제가 아니다. 게다가 늙지도, 죽지도 않는 상태로 보건대 명계와도 얽혀서 주어진 수명대로 살지 못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런 인간이 불법을 설파하는 강문이란 승려에게 벌을 받아 도깨비 우두머리와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그 말인 즉 고도보다 우위의 힘을 가진 인간이 존재한다는 것 아닌가.
“고도.”
청사는 고도의 머리를 쓸어 넘겨주며 말을 붙였다.
“강문이란 법사가 너처럼 도술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닐진대, 어떻게 너에게 제약을 걸 수 있느냐. 그것도 위대한 도깨비 왕과 함께 엮어서.”
고도는 제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매만지는 청사를 빤히 쳐다보았다. 고도를 만지는 손길은 조심스럽고 또 다정했다.
“맞다. 강문은 나처럼 도술을 부리는 능력도, 신선술도, 요술도 할줄 모른다. 한데, 그를 믿고 따르며 모시는 이들은 내가 전력을 다해도 이기기 어려운 이들이거든.”
“뭐? 네가 상대하기 힘든 존재가 있어?”
“세상.”
“……세상?”
“세상이 그에게 힘을 빌려 준다. 내가 무슨 헛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지. 나도 직접 겪어 보기 전엔 믿지 못했다. 강문과 만나면 네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거라. 내가 아무리 악명 높은 환영도사라 할지언정, 이 세상을 이길 수는 없으니.”
청사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근심과 걱정이 가득 담긴 눈으로 고도를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그 애정 어린 눈빛에 고도가 슬며시 미소 지었다.
“날 걱정하는구나.”
“그럴 수밖에. 나는 네가 누구한테 지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데, 네가 패배를 인정한 상대랑 다시 싸운다니…… 그것도 세상에 맞선다고. 무슨 이야기인지 엄두도 안 나.”
“그렇게까지 걱정해 주다니 착하구나. 심각하게 받아들일 필요 없다.”
“충분히 심각하거든?”
“친한 친구와의 다툼일 뿐이지. 한번 대판 싸웠으나, 우여곡절 끝에 화해할 수도 있으니, 누가 알겠느냐. 너무 거창하게 생각 마라. 나와 함께 강문을 상대해야 하는 소 역시 진지함이라곤 팥을 쒀서 버린 양 관심도 없잖느냐.”
“그렇게 가벼운 문제를 네가 죽자고 매달릴 리 없잖아.”
“죽음만큼 가벼운 게 어디 있을꼬. 죽음에 추를 달아 봐라. 하늘 위로 연등처럼 두둥실 떠오를 테다. 가볍게 생각해라, 가볍게.”
청사가 고도의 머리를 걱정스레 쭉쭉 잡아당기는 것처럼 고도 역시 청사의 머리카락을 손에 휘감고 당기면서 웃었다. 고도의 편한 표정과 행동을 봐도 청사는 좁아진 미간을 풀 수가 없었다. 괜찮다, 괜찮다 염을 외는 고도에게 괜찮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일 수도 없는 노릇이라, 청사는 한숨만 푹 내쉬었다.
정말로 문제가 생긴다면 그때 가서 청사가 고도를 지켜야겠다. 지금 역성 내며 다퉈 봤자 강문이라는 당사자도 없으니 해결을 볼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청사는 고도의 말대로 긴장한 어깨에서 힘을 풀었다. 전처럼 다시 고도를 조물딱 만지면서 고도와 함께하는 시간에 집중했다. 청사가 억지로 웃어 보이자 고도도 눈을 깜빡이며 청사의 시선을 받아주었다. 서로를 애정이 담긴 시선으로 바라보는 고도와 청사와 달리, 꽝철이는 아직도 불편한 표정으로 끝내 걱정을 토로했다.
“만약 강문에게 지면 어떻게 되는 거야?”
“글쎄, 생각해 본 적 없는데. 굳이 질 걸 가정하고 싸울 필요는 없지 않느냐.”
고개까지 갸웃하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어린아이처럼 까만 눈만 굴리는 게 연기력 하나는 가면극의 놀이꾼들 못지않다. 편한 자세로 청사에게 기대어 서로의 머리를 만지작거리는 고도에겐 긴장감 따윈 보이지 않았다. 고도를 이전부터 알고 지낸 꽝철이기에 다행이지, 누가 봐도 깜빡 속았을 출중한 연기력이다.
거짓말을 하고 있다. 고도는 꽝철이의 부탁대로 강문과 얽힌 소의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말하지 않았다. 강문은 고도와 소를 ‘불순한 죄’라는 이름으로 서로 떨어지지 못하는 벌을 내렸다. 그 벌을 풀기 위해서 강문을 죽인다는 것만 알려 줬다. 그 속에는 고도보다 우위의 힘을 가진 강문을 어떻게 이길지에 대한 방법이 없고, 소가 씨름 중에 언질해 준 이야기도 들어 있지 않았다. 무슨 죄인데. ‘죄’라고 할 정도의 무슨 큰일을 저지른 건데. 그것만 쏙 빼고 말하느냐.
꽝철이 보기에 고도가 대답을 회피하는 것은 청사 때문이다. 아무리 눈치가 없더라도 그 정도는 알 수 있다. 고도는 청사가 저를 걱정하는 걸 원치 않았다. 과연 언제까지 숨길는지는 꽝철이도 모른다. 어쩌면 영영 말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강문과 대결에서 이기면 그때 ‘사실 이러했어.’라고 털어놓을 수는 있을 수도 있겠다. 하나, 강문과 대결하기 전에는 먼저 설명하지 않을 것 같았다. 고도 역시 청사와 마찬가지로 현재의 시간에 충실하고 싶어 했으니까.
꽝철이는 고도와 청사 사이에서 풍기는 따뜻한 감정과 배려 깊은 행동에서 시선을 뗐다. 어째선지, 더 이상은 둘의 행복을 보고 싶지 않았다. 부럽거나 혐오스러운 감정 때문이 아니었다. 언제 깨어질지 모르는 위태로움처럼 보여서 차마 똑바로 보기 힘든 것이다.
꽝철이는 엉덩이를 털고 일어났다. 비록 속 시원하게 모든 것을 알지 못했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소가 왜 고도 곁에 있을는지 알 만했다. 어째서 왕국까지 버리면서 친우의 곁을 지키려는지도. 소는 고도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길동무, 즉 혼백과도 함께할 수 있는 도깨비이다.
“얘기해 줘서 고맙다, 고도야.”
꽝철이는 마당 아래로 내려섰다. 그에 따라 고도도 청사에게 기대 있던 자세를 바로하고 꽝철이를 응시했다.
“만족스러운 이야기는 아니었을 게다. 세상 모든 이야기가 속히 풀어 놓으면 재미가 반감되는 것이니라. 이야기 속 행간을 상상할 만한 여지를 남겼으니 네놈 취향대로 살을 덧붙이고 빼내어라.”
“난 그럴만한 상상력도 이해력도 없다. 그러니, 고도 네놈이 다음번에 다시 한산뫼로 찾아와 나머지 이야기를 들려주어라.”
“글쎄.”
“뭐가 글쎄야, 글쎄는! 망할 놈! 기다릴 테니 꼭 와라!”
“시간 나면 들르고.”
“들르는 수준이 아니라, 와서 날 찾으라니까?”
“네놈도 열렬한 내 신도가 된 게냐. 뭘 그렇게 집착을 하고 있어.”
꽝철이는 잠시 뒷말을 망설였다. 청사의 눈치를 힐끔 보면서 말할 내용을 입 안에서 고르고 또 골랐다. 단순무식하고 불같은 성미를 가졌다 일컬어지는 꽝철이라도 이 순간만큼은 모든 신중함과 인내력을 쥐어짜서 가장 근사한 작별 인사를 해냈다.
“내가 네 이야기를 세상 사람들 입을 통해 풍문으로 듣지 않도록 네가 들려줘. 꼭이야.”
그 풍문 속에 악명 높은 환영도사가 위대한 강문 법사에게 죽음을 당했다는 말이 없길. 그 바람은 청사와 고도 사이를 생각해서 함구해 버렸다.
꽝철이는 훌쩍 몸을 돌렸다. 계속 쳐다보다간 눈물이 날 것 같아서 고도의 인사는 받지 않았다. 꽝철이는 몸을 납작 엎드려 흙바닥에 붙였다. 황색 무명옷이 노란 흙가루로 화하더니 옷 속의 몸도 붉은색으로 변했다. 꽝철이는 팔뚝만 한 지네로 변해 땅과 한 몸이 되었다. 흙속으로 꾸물거리며 사라지는 모습은 여운이 남을 정도로 아름답거나 이무기다운 화끈함도 없었다. 일상적이고 조용한 이별이다. 지금이라도 다시 땅속에서 불쑥 집게가 달린 머리를 내밀고 “고도!”하고 특유의 성난 목소리를 높다랗게 울릴 것만 같았다.
고도는 지네가 땅 길을 통해서 북서쪽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기운을 느꼈다. 이 정도 속도라면 일주일 후에 고향에 도착하여 도깨비 지우들을 만나, 그간의 여정으로 지겹고 따분한 겨울밤을 달래리라.
“갈수록 일행 수가 줄어드네. 저번엔 구미호더니 이번엔 불지네. 이러다가 도깨비도 떠나는 건 아니겠지.”
청사는 고도를 끌어안고 섭섭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소리로 중얼거렸다. 고도가 이놈이 왜 이런 소리를 하나 싶어서 쳐다보니 청사는 큼큼 목을 가다듬으면서 조심스럽게 눈길을 피했다. 두 볼에 해사하게 핀 홍조를 보니 뒷말을 듣기 무서워진다.
“어차피 도깨비는 밤에만 활동하니 우린 낮에 누구 눈치 보지 말고 실컷 즐길 수 있겠다, 그치?”
그 소리에 고도의 두 눈이 게슴츠레 가늘어졌다.
“엉큼한 놈 같으니라고.”
“왜에에.”
“말꼬리 늘여도 안 귀엽다. 어려서 밝히기만 하고.”
“네가 먼저 그런 말을 했잖아. 이번 일 끝나면 실컷 하자고. 귀매 일도 마무리 되었는데 언제쯤 실컷 할 거야?”
청사는 고도의 허리를 바싹 끌어안고 볼에 입을 쪽 맞추며 속삭였다.
“집도 비어 있겠다, 하고 갈래?”
“흠. 그러고 보니 이 안주인은 대체 어딜 간 건고. 기별도 없이 집을 비울 처자는 아닌 듯했는데.”
“남의 여자 신경 쓰지 말고, 응응? 고도.”
“신경이 쓰이는 구나. 한번 찾아보는 건 어때.”
“별것에 신경을 쓰네. 김장독 묻어 둔 곳이라도 둘러보러 갔겠지. 지금밖에 기회가 없다, 고도야. 보는 눈이 없을 때 냉큼 하자.”
고도의 시선이 흙을 헤쳐서 무언가를 덮어 놓은 듯한 바닥을 향했다. 청어라도 잡았나. 꽁치라도 여기서 손질을 했나. 핏자국으로 보이는 흔적이었다. 고기 비린내보다도 강한 피내음. 생선 몸에서 흐른 것치곤 지독한 냄새였다. 고도는 그것을 가만히 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열린 싸리문이 해풍에 흔들리며 끼익끼익 울었다. 마치 들어오길 기다려도 오지 않는 누군가를 맞이하려는 것처럼.
고도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사람 피라.”
주술이라도 벌였는지. 그게 아니라면 집밖으론 나갈 기미도 보이지 않던 안주인이 어딜 갔으려나. 찾아보고 싶으면서도, 자매끼리 나눌 이야기가 있어서 집을 비운 건 아닐까 추측하니 선뜻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십이지괴의 힘을 빌어 아름다움을 유지하던 꽃님이 도사를 객에 머물게 해준 동생 옥님을 만나 그냥 넘어갈 성격은 아니었으니. 그러한 집안 싸움까지 도사가 끼어들어 봤자 꽃님의 화만 돋우고 옥님의 걱정만 키우지 않을까.
한참 고민하던 고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말고 다른 데에서 생각해 보자.”
“응? 왜?”
“부정 탈 것 같다.”
“부정?”
“아마도…….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거기까진 끼어들면 안 되겠지.”
옥님의 분위기와 수줍게 웃는 얼굴을 보노라면 바닷속으로 사라진 전처가 물보라를 치듯 일어났으나, 이제 그런 것에 미련을 두지 않으려 했다. 다른 여자를 보면서 날카로운 향수를 떠올리는 짓은 청사에게도 실례가 되는 일이었다. 잊어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그런 것이리라. 고도는 다시금 생각했다. 현재에 충실하고 싶다. 다른 것도 아닌 청사에게.
“가자, 대롱아.”
고도가 내민 손을 청사가 잡았다. 기억 속 여자보다, 그 여자를 닮은 그녀보다 더 밝고 따사로운 햇살처럼 보이는 미소가 청사 입가에 걸려 있었다.
“응.”
고도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고도의 시선은 마을 한복판을 향했다. 기와가 무너졌다고 요란법석을 떠는 대부호지주네 집이었다. 그러나 그뿐. 고도는 시선을 거두었다. 그는 행장을 챙겼다.
“더 나아지려는 욕심의 결과가 이러한데, 아직도 이들의 바람을 들어주는 게 세상을 옳게 바꾸는 일이라고 생각하나, 강문.”
끼익끼익, 싸리문만 고도의 혼잣말에 대답하듯이 웃었다.
화롯불에 넣어 둔 알밤이 딱총소리를 내며 껍질이 벌어지던 겨울밤이었다. 할머니는 어린 꽃님, 옥님 자매를 앉혀 두고 군밤 속살을 호호 불며 입에 넣어 주었다. 마지막 하나 남은 알맹이가 동생 입으로 쏙 들어가자 언니는 울먹이며 목소리를 높였다.
‘할멈은 왜 만날 동생만 챙겨! 나도 좀 달란 말이야, 나도!’
꽃님이 다리로 바닥을 쿵쿵 구르면서 억울해하자 옥님은 화가 난 언니가 얄밉다는 이유로 머리를 쥐어박을까 봐 벌써부터 기가 죽어 눈치를 살폈다. 할머니는 씩씩거리는 꽃님이를 달래면서 나긋한 어조로 말했다.
‘우리 꽃님이는 이 늙은이가 아니어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단다.’
‘그런 말이 어디 있어?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다니!’
‘그렇지 않단다. 사랑이란 건 아주 특별한 감정이라 좋아하는 마음 두 개가 서로 만나 마주본다는 건 정말 기적 같은 일이야. 우리 꽃님이는 누구보다 많은 사랑을 받을 테니 주는 것을 배웠으면 하는 거란다.’
누구에게나 예쁨받으리란 이야기를 들으니 옛이야기 속 공주님이 된 것 같다. 꽃님은 군밤을 동생에게 빼앗겨 입술을 내밀고 툴툴거렸지만 더 이상 짜증을 내진 않았다. 대신 아직도 시무룩한 얼굴로 소심하게 제 눈치를 살피는 동생의 손을 콱 잡고 외쳤다.
‘그럼 우리가 서로 아끼면 되겠네? 나는 주는 걸 배우고, 옥님이는 받는 걸 배우는 거야! 에이, 뭐야. 사랑이라는 거 쉽잖아!’
환하게 미소 짓는 꽃님이를 보며 옥님은 눈까지 붉히며 부끄러워했다. 씩씩한 꽃님의 행동에 흐뭇한 미소를 지은 할머니는 밤이 새도록 손녀딸들을 무릎에 앉혀 놓고 공주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제팔장 강문이 남긴 흔적 마침
문자경은 동해 지역에선 신통력 있기로 유명한 요승(妖僧)이다. 절간의 여종이었던 편모슬하에서 자라 중으로서 십 세까지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또래의 동자승과 어울리지 못하고 따돌림을 받자 스스로 파계했다. 자경은 이후 부당한 계급사회와 부패한 정치를 개혁하고자 전국을 돌아다녔다. 민가에선 자경을 파계승이다, 요승이다 쉬쉬하며 거리를 둔 탓에 자경은 나라 개혁의 뜻을 펼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산간에 버려진 양반집에서 잠시 눈을 붙이는데 세력이 쇠한 그 집의 가신들이 모습을 드러냈으니 성주신, 삼신메, 조왕신, 터주신, 업신, 측신이 자경 앞에 몸을 낮추었다.
「스님을 지키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아니, 가신들이 누구의 명을 받는단 말인가. 자경은 깜짝 놀라 그들의 보호를 한사코 거부했지만 가신들은 의지를 쉽게 굽히지 않았다. 삼경이 지나도록 승강이를 벌이던 자경은 결국 그들의 뜻을 따르기로 했다. 자경이 물었다.
“나를 보호하라는 명은 누가 내린 겁니까.”
「스님과 뜻을 함께하는 모든 이들입니다.」
* ‘신돈’과 ‘최치원’의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따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