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10/36)

*

전옥에서 빠져나온 초고리는 부리를 벌렸다. 벌린 부리 밖으로 숨을 헐떡헐떡 몰아쉬었다. 지친 새가 속도를 내지 못하는 사이 금부가 바싹 추격해 왔다. 여기저기서 팽팽한 활시위가 당겨지더니 날카로운 화살촉이 새의 몸뚱어리를 아슬아슬하게 비껴갔다.

새의 금빛 눈은 꽁지를 바싹 쫓고 있는 무리에 고정됐다. 본디 어둠 속에서 잠들어야 할 겨울 산이 환하게 깨어난 모습이다. 수천의 사람들이 손에 든 횃불 때문에 산길 곳곳은 하늘의 은하수라도 한 허리 끊어다 펼친 양 화려했다. 횃불을 들고 뛰어오는 이들의 발걸음 소리가 바로 지척에서 들렸다. 그 뒤로 말발굽 소리가 바싹 뒤쫓았다. 컹컹 짖어대는 개들의 소리는 더욱 가까워졌다. 새는 조금 더 높이 날아올라서 도망치던 방향을 바꿨다. 더 깊은 산속으로 숨는 대신 인가가 밀집한 도읍 중심부로 향했다.

지척까지 따라붙었던 기마병들 사이에서 동요가 퍼졌다.

“전하, 새가 마을로 향합니다!”

새는 ‘전하’라는 소리에 움찔하며 몸을 굳혔다. 도망갈 활로만 찾던 눈이 처음으로 수십 마리의 말들을 살폈다. 왕의 곤룡포나 군복은 보이지 않았다. 그의 친위대인 좌장수와 우장수만이 보일 뿐이다. 장수적이 왕에게는 기별을 넣지 않고 옥에 가둔 고도를 직접 처리하러 왔었는데, 그 일을 왕이 알게 된 것 같다. 어쩌다 알게 됐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차라리 상대가 장수적이었으면 나았을 것을, 임금이라면 자신을 추격하는 기동력부터가 달라지지 않는가. 하면 이 많은 군대는 금부라도 된다는 말이다. 왕이 직접 추격대를 지휘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새는 끝없이 펼쳐진 금부를 보더니 몇 번 망설이다가 산등성이를 미끄러지듯이 내려갔다. 다급한 새의 움직임을 본 군대도 동요하며 곧장 말머리를 돌려 새의 변경된 도주로를 따랐다. 한꺼번에 뭉쳤다 흩어지는 병사들의 소리와 말발굽 소리가 새의 뒤를 바싹 뒤쫓았다. 새는 다친 날개를 쉼 없이 저어 마을 위로 날아올랐다. 상처 난 날개를 위태롭게 퍼덕거리던 새는 창공을 가로지른 후 눈에 익은 양반집 지붕 위에 내려앉았다.

때마침 마당에 나와 있던 여인이 새의 날갯짓 소리에 고개를 들어 지붕 위를 쳐다봤다. 소향의 종년이다. 그녀는 곱게 물든 비단옷을 종종걸음으로 나르다 말고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지붕 위에 내려앉은 새가 부풀어 올랐다. 호랑이 무늬의 깃털이 위로 솟구쳐 날리자 그 아래 검은 천이 펄럭였다. 사방으로 펼쳐 오른 검은 두루마기 밑으로 사람의 손과 발이 드러났다. 금색 새털 대신 검은 머리카락이 자리 잡은 머리통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사람의 형상은 중심을 잡지 못하더니만 그만 지붕 밑으로 굴러떨어졌다.

소향의 종년은 겁을 먹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지붕에서 사람이 불현듯 나타나 굴러떨어진 것도 기괴하나, 그 이전에 새 한 마리가 사람으로 변모한 과정을 선뜻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녀는 품에 들고 있던 비단으로 입을 틀어막고 간신히 비명을 삼킨 후에야 검은 형상으로 다가갔다. 두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고 어깨가 달달거렸다.

“이보오, 이보오.”

발끝으로 톡톡 건드리니 남자가 팔을 떨면서 엎어져 있던 상체를 일으켰다. 종년은 사내의 얼굴을 확인하자마자 에구머니나 하며 뒤로 홀라당 넘어져 버렸다. 고개를 든 남자는 소향이 거두어 준 고도라는 도사였다. 그러나 자신이 봤던 고도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도사의 눈이 신비로울 만큼 아름다운 금색을 띠고 있다. 아무리 좋게 봐도 인간의 눈이 아니다. 마치 요괴나 신령의 눈을 뽑아다 박은 것처럼 기이하기 짝이 없었다.

“소랑 미호, 청사는 어디 갔느냐.”

가쁜 숨이 섞인 목소리가 몹시 지쳐 있었다. 남자의 금색 눈에 홀려 있던 종년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아녀자의 몸으로 사내를 부축하지는 못하고 쩔쩔맸다.

“도, 도사님 아니신지유. 이게 뭔 일이랍니까?”

“내 일행의 행방을 물었다.”

“신시 즈음 방을 닦으려고 들어가 보았습니다유. 일행분은 이미 자리를 비우셨지라. 급한 일인가유? 하면 아이들에게 찾아보라 이르겠으니…… 에그머니나, 도사님!”

고도는 자리에서 일어나 사랑방 문을 벌컥 열었다. 지난 저녁 청사와 함께 있었던 방은 차게 식은 상태였다. 다른 사랑채로 옮겨 가 주인의 허락 없이 방문을 열어도 청사는 물론, 소와 미호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고도의 다급해 보이는 행동에 졸졸 쫓아 붙던 여인은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어디선가 독한 냄새가 풍긴다 싶더니만 검은 두루마기에 가려져 있는 어깨에서 피가 흘러 팔등을 타고 흙바닥 위로 뚝뚝 떨어지고 있지 않은가. 몸도 성치 않은 상태에서 일행들을 바삐 찾으니 무언가 큰일이 났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녀는 피로 붉어진 고도의 손등을 쳐다보고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무슨 일이신지 쇤네에게 알려주시면 마님께 전해드리겠습니다.”

고도는 여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금색 눈을 마주하자 저도 모르게 황급히 시선을 내려 버린 여인은 어딘가 경직되어 있었다. 이 눈에 어떠한 신성한 믿음이라도 부여하는 듯싶었다. 못에서 잠들어 있는 용을 만났다든가, 선녀 폭포에서 하늘에 사는 사람들이라도 직접 마주했다든가. 인간이 아닌 존재에게 뜻하지 않는 화를 입거나 복을 얻을까 하여 몸을 사리는 모습이었다. 고도는 여인의 새하얀 정수리만 한참 응시한 끝에 등을 돌렸다.

“안 된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나를 봤다고 얘기하지 마라. 이 집 식구들이 말려든다.”

“하, 하오나 도사님 몸도 성치 않으신데 어찌…….”

쩔쩔매는 종년의 등 뒤로 두 사람분의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집 모퉁이를 돌아서 길게 이어진 남녀 한 쌍의 그림자다.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자 고도는 여인의 팔을 잡아당겼다. 여인이 놀라서 까무러치려는 것을 제압하고 황급히 손바닥으로 입을 막았다. 버둥거리는 여인을 붙잡아 사랑방 안으로 들어갔다. 모퉁이를 돌아선 두 남녀의 오순도순 목소리가 문지방 하나를 사이에 두고 흘러 들어왔다.

“어찌 이 야심한 시각에 나가신다는 것인가요. 저도 서방님을 따라가겠습니다.”

소향의 목소리가 아닌가?

고도는 이 집안 작은 마님이자, 자신과는 기연으로 얽힌 여인을 생각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제게 붙잡혀서 버둥거리는 종년의 입은 손바닥으로 세게 틀어막고 귀를 쫑긋 세웠다. 소향은 제 서방과 화기애애한 대화를 나누었다.

“부인. 어찌 아녀자가 장옷도 없이 외출하겠다는 거요. 걱정하지 말고 주무시오.”

“장옷이야 챙겨 나오면 그만이지 않습니까. 글공부하지 않는 밤에도 서방님께선 밖을 나다니시는데 제가 두 발 뻗고 자겠습니까. 혹시 제게 숨기는 것이라도 있으신가요?”

고도의 손바닥에 입이 틀어막힌 종년이 제 작은 마님을 불렀다. 그러나 이름이 되어야 할 소리가 손바닥에 막혀 읍하는 신음으로만 들리니, 고도는 이렇게 발버둥치는 계집을 놔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종년은 걱정과 분노가 뒤섞인 눈으로 고도를 바라봤다. 창호지를 은은하게 비추는 달빛에 고도의 눈이 달보다 더 아름다운 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 눈은 창호지에 가려진 문밖을 응시했다. 소향과 장영 부부의 대화를 몰래 엿듣는 그 모습이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했다.

“하는 수 없구려. 그럼 오늘은 함께 가보겠소?”

“물론입니다!”

사랑방 창호지에 비친 그림자 둘이 대문 쪽으로 몸을 튼다. 긴 치맛자락을 움켜쥔 소향이 수줍은 몸짓으로 제 서방을 쫓아 사라졌다. 두 사람이 사라진 문밖은 철 지난 풀벌레 소리만 울렸다. 집안을 지키는 노비의 인기척도 들리지 않는 고요함이었다. 입이 틀어막힌 여인이 고도의 손등을 벅벅 긁으며 화를 냈다. 고도는 그제야 여인의 얼굴을 움켜쥐었던 손을 풀었다.

종년이 씩씩거리며 화를 내려 했지만, 고도는 한숨처럼 긴 숨을 내뱉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인은 수심이 깊은 고도의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어찌하여 금실 좋은 부부의 화기애애한 모습에 저리도 슬픈 표정을 짓는지 모를 일이었다. 고도의 묘한 분위기에 휩쓸려 화를 낼 기회를 놓치고 만 여인을 뒤로한 채, 고도는 사랑방 문을 열고 나가면서 그리 말했다.

“집주인에게 인사도 없이 떠나게 되어 유감이라 전해 주거라.”

금색 눈동자가 허공에 잔상을 남기고 사라졌다.

사랑방에 오도카니 선 종년은 눈 깜짝할 새 사라진 고도의 빈자리를 보았다. 허상인가 진짜인가. 한밤중에 귀신에라도 홀린 것처럼 감쪽같이 사라진 고도의 도술에 혼백이 놀란 듯 꿈쩍도 못하는 여인이었다. 혈흔을 남긴 모랫바닥만이 유일하게 고도의 존재를 증명하고 있었다.

*

고도는 낮처럼 환한 야시장을 가로질렀다. 인파를 헤치고 나아가느라 몸이 부딪힌 나머지, 여기저기서 원성이 쏟아져 나왔다. 고도는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청사나 미호의 옷자락 하나 보이지 않는다. 매번 마을로 내려가 부엌을 엉망으로 만들던 말썽쟁이 소는 대체 어딜 갔는지, 그 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그들을 찾고자 자량을 샅샅이 뒤지기엔 꼬박 하룻밤이 지나도 부족한 시간일 터. 조그마한 시골 마을도 아니고 도읍 자량을 전부 들추어 찾는 일은 불가능하다.

고도는 초조해졌다. 언제 산을 타고 내려온 금부가 저잣거리 곳곳에서 나타날지 몰라 입 안이 바싹 말랐다. 어찌해야 할지 몰라 한참이나 고민하던 고도는 결국 걸음을 멈추었다. 차가운 삭풍 속에서도 턱 끝에 땀이 고여 흐를 만큼 한바탕 움직인 고도가 쓰고 있던 삿갓을 목 뒤로 넘겼다. 저잣거리 한가운데를 막아 선 고도를 보고 사람들이 힐끔 시선을 주는데도 움직이지 않았다.

고도는 사람들의 시선 따위 신경 쓰지 못할 정도로 정신을 집중했다. 초고리로 둔갑해 있을 때부터 금색으로 일렁거리던 눈이 하얗게 빛을 발했다. 고도를 쳐다보며 지나치던 사람이 밝게 빛나는 금안을 보더니 기겁했다. 비명소리는 옆 사람으로 옮겨지면서 순식간에 시장 바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었다.

“요, 요괴가 나타났다!”

사람들이 그 외침을 듣자 썰물이 빠지듯 한꺼번에 우르르 뒤로 물러났다. 사람들의 소란에 놀란 아이가 커다랗게 울음을 터뜨리며 분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혼란스러워졌다. 고도만이 침착함을 유지했다. 저를 보고 도망가는 사람들에게 시선을 줄 틈도 없이 도력을 사방으로 퍼뜨렸다. 도술로 만들어 낸 거대한 바람이 저잣거리를 돌아 산중턱까지 닿았다가 메아리처럼 되돌아왔다. 바람에 미호와 청사, 소의 기운이 섞여 있지 않는가를 면밀히 살폈다.

바람을 따라 기운을 추적하던 고도가 북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북쪽에서 날아온 바람에 고도가 찾는 것이 섞여 있었다. 고도는 북쪽으로 달렸다. 사람들이 관청에 신고하라는 겁에 질린 목소리를 뒤로한 채 거리를 가로질렀다.

고도가 향한 곳은 오작교였다. 봄이 되면 못 주변을 감싼 벚나무에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꽃눈이 내리는 풍경으로 유명한 곳이다. 그러나 겨울이 되면 얼어붙은 못과 앙상한 나무만이 남아서 오작교 특유의 운치는 찾아볼 수 없으니, 다리를 찾아오는 이가 없는 황폐한 곳이다. 그 다리 위에 기대어 서서 장죽을 피어 올리는 남자의 모습은 단연 눈에 띄었다.

고도는 달리던 걸음을 멈추고 숨을 몰아쉬었다. 남자를 부르고 싶었지만 숨이 턱까지 차올라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고도는 오작교를 건너다 말고 다리에 힘이 풀려 제자리에 주저앉고 말았다. 청사가 그 소리에 다리 밑만 내려다보던 시선을 돌렸다. 새까만 옷을 입은 사내가 어깨까지 들썩이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는 두 눈이 함지박만 하게 커졌다.

“고도?”

장죽을 내팽개친 청사가 고도에게 달려왔다. 고도는 다리 위에 납작 엎드린 채 숨만 몰아쉬었다. 청사는 고도의 팔을 붙잡아 몸을 일으키려다 고도에게서 앓는 소리가 터지자 깜짝 놀라 손을 뗐다. 청사의 손바닥에 끈적거리는 것이 묻어났다. 손을 확인해 보니 온통 시뻘건 피가 묻어났다.

청사의 얼굴이 대번에 굳어졌다. 고도의 허락도 구하지 않고 두루마기를 잡아당겼다. 몸을 감싼 천을 뒤로 넘기자 커다란 관통상을 입은 어깨가 드러났다. 겉으로는 화살에 찔린 평범한 상처처럼 보였지만, 고도의 놀라운 회복 능력을 알고 있는 청사는 그 심각성을 깨달았다. 상처가 쉽게 아물지 않고 흉측하게 벌어져 꾸역꾸역 피를 뽑아내고 있었다. 옷이 검어서 눈치 못 채고 있었건만, 두루마기 상체가 피에 흠뻑 젖어 있었다.

“어떻게 된 거야?”

청사의 목 너머가 울렸다. 송곳니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는 얼굴이 초조해 보였다. 청사는 관통된 상처를 손으로 감쌌다. 터진 살결 사이로 쉼 없이 흘러내리던 피가 청사의 요력을 따라 역행하기 시작했다. 상처 속에 피가 고인다. 흐르는 대신 붙잡혀 뭉친다. 구멍 난 피부와 근육을 붙일 순 없어도 피가 새나오지 않게끔 요령을 부린 것이다. 고도는 기이한 장면을 보고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호오, 무척 신기한 재주구나. 지혈하는 데에 이렇게 큰 도움이 될 능력을 왜 그간 보여 주지 않았을꼬.”

동시에 청사가 도끼눈을 뜨고 고도를 나무랐다.

“웃어? 넌 지금 이 꼴이 되고도 웃음이 나와?”

“하하하하.”

청사의 질책에도 고도는 잔웃음을 흘리며 키득거렸다. 버럭 화를 내려던 청사는 입술을 오물거렸다. 이마 주변이 땀으로 얼룩지고 지독한 피 냄새를 풍기는 남자가 아이처럼 해맑게 웃었다. 평소 실없는 소리만 담던 입술도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며 두 볼을 당기니, 긴장감 없는 미소가 순진하게까지 보였다.

청사는 땀에 젖은 고도의 볼을 손으로 가만히 감쌌다. 고도는 그 손길을 따라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청사의 예상대로 웃음기를 머금어 반짝거리는 조약돌 같던 눈동자가 청사를 향했다. 허공에서 시선이 마주쳤다. 지척에서 바라보는 고도의 얼굴에 그만 얼굴이 붉어지는 청사였다. 그러나 두 볼에 홍조를 띠고 시선을 돌리려던 청사가 멈칫하며 고도의 두 눈을 들여다보게 되니, 금안이 청사를 사로잡았다.

상서로운 빛이다. 인간이 가질 수 없는 빛을 인간이 두 눈에 박고 있다. 두 눈과 눈의 주인이 조화되지 못하고 이질적으로 서로 겉돌고 있어서 감탄사보다도 거부감이 먼저 일었다. 청사가 고도의 앞머리까지 넘기며 두 눈을 심각하게 바라봤다. 고도는 청사가 관심을 보이자 미소가 번져 있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갔다. 푸른 눈동자에 비친 제 모습을 보고 피하듯이 눈을 돌렸다. 조금 전의 편안함과 웃음기는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부드럽게 풀어져 있던 어깨에 긴장이 서리고 목 주변이 꼿꼿해졌다.

“무슨 일인지 나중에 설명하마. 미호와 소 보았느냐.”

눈에 얽힌 사연을 알려 주려 하지 않는다. 본디 자신의 이야기를 잘 하는 사람은 아니었어도, 이렇듯 부담스러워하고 경직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의외였다. 눈에 대한 부담감. 아니, 그보다는 열등감. 알듯 모를 듯 숨어버린 고도의 감정을 찾지 못해 청사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금안은 서해를 다스리는 용왕도 갖지 못하는 상서로운 눈이다. 만물을 제 소관으로 두고 있는 옥황상제와 그가 인정한 이들만이 가지는 눈으로 알려져 있다. 상제와 신선들만 갖는 눈을 어찌 인간인 고도가 가지고 있는가. 고도는 하늘에 사는 인간이었나. 천인이 하계에 내려올 수도 있는 건가. 청사는 묻고 싶은 욕구를 억눌렀다. 시선을 피하는 고도를 보건대, 묻는다고 순순히 대답해 줄 것 같지도 않았다.

“미호와 소의 행방을 못 찾겠다. 대롱아, 너는 아느냐.”

“구미호는 산속으로 들어갔다. 도깨비는 나도 모르겠고.”

“찾아야 하는데.”

“급한 일이야?”

“으음. 아무래도.”

“무슨 일인데.”

“일단 도망치고 나서 얘기해 주마.”

고도는 고개를 내빼 청사의 뒤편을 바라봤다. 어둠이 깔린 골목 곳곳이 어수선하다. 군데군데 소란 섞인 외침과 빠른 장단의 말소리도 들려 소란스럽게 들릴 정도였다. 사람들은 행여나 그 소란에 자신이 말려들까 싶어서 빠르게 걸음을 옮겨 집 안으로 피했다. 그들은 한 번씩 오작교에 앉아 있는 고도와 청사에게 시선을 줬지만 지레 놀라 겁먹은 표정으로 숨기 바빴다. 이상한 낌새를 알아챈 고도가 눈매를 가느다랗게 접었다. 그는 시간이 얼마 없음을 깨닫고는 바삐 몸을 일으켰다.

“사람들이 관청에 신고했다면 잡히는 것도 시간문제다. 한시바삐 도읍을 벗어나야 한다.”

한참 동안 사람들의 행동을 관찰하던 청사가 고도를 올려다봤다.

“누구한테 쫓기고 있는 거야?”

“음흉한 노인네가 내 간을 빼먹으려고 달려들지 뭐냐.”

“간이라니?”

“제가 모시는 용왕님이 아프다고 날 잡아 죽이려 든다. 집에 간을 놓고 왔다고 농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글쎄 이놈은 별주부전 자라만큼 어수룩하지 않아서 말이야. 군사까지 풀 정도로 행동력이 좋구나.”

“……무슨 소린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누가 널 죽이려고 한다는 거지?”

“글쎄.”

“뭐가 또 글쎄야. 어깨가 이 꼴이 난 것도 그 때문이잖아.”

“용왕님이 직접 행차할 줄은 나도, 그 늙은 자라도 몰랐지 뭐냐. 일이 조금 꼬여서 말이다. 용왕님이 토끼를 죽이려 할지는 겪어 보질 못해서, 원.”

“그 용왕님이 이 나라 임금이렷다.”

“우리 대롱이 눈치가 더 빨라졌어.”

모퉁이 너머에서 창을 든 병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저잣거리를 한바탕 뒤집어 놓는 일사불란한 금부 탓에 거리 상인들은 겁을 먹고 저마다 집에 들어가 문을 잠갔다. 행동이 굼뜬 몇몇 아낙들을 밀치며 달려온 병사들은 오작교 위에 서 있는 고도를 발견하고 와르르 달려왔다. 잠깐 사이에 다리 양옆이 포위됐다. 못 주변을 빼곡히 채운 병사들이 화살까지 겨누자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한 청사가 고도의 손목을 잡아당겼다. 다리 양옆에서 병사들이 거리를 좁혀 왔다.

청사는 고도를 숨기듯 품에 안았다. 어느새 몰려든 병사들을 보고는 고도를 등 뒤로 돌려서 아무도 볼 수 없게끔 했다. 그러고는 다리 한가운데로 조금씩 이동했다. 다리 끝에서부터 병사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막무가내로 창을 휘두르며 다가오지는 않는데, 그 절제된 모습을 보아하니 그들은 누군가의 명령을 기다리는 것처럼 보였다. 죽일지, 생포할지 위에서 아직 명령이 떨어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청사는 이 많은 군사가 왕실 소속이란 얘길 듣자 지금의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

“왕은 네 벗이라고 들었는데, 아니었나? 벗이 왜 널 잡으려는 게냐.”

“나의 벗은 오래전에 죽었다. 그의 하나뿐인 아들이 친우의 뒤를 이었지.”

“이런 경망한 경우를 봤나. 선친의 벗을 군대까지 풀어 잡으려 한다니. 그 어린놈에게 따끔하게 말해라. 무례한 행동이 도를 넘었다고 말이야.”

“못 한다.”

“왜? 천하의 고도가 그깟 말 하나 못 하는 게 말이 되나?”

“그 천하의 고도라는 작자가 유일하게 충성을 맹세한 주군이다.”

“선왕에게 맹세한 게 아니었나?”

“그의 핏줄 모두에게 맹세했다. 그들을 영원히 모시기로.”

청사는 고개를 돌려 등 뒤에 숨긴 고도를 바라봤다. 고도의 표정은 씁쓸했다. 충성을 맹세했다고 했나. 표정으로 보건대 군주를 향한 마음이 자의적인 것 같지 않다. 고도가 군신의 의리를 거들먹거리며 왕을 섬기는 부류가 아님을, 청사는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저를 구속하는 왕에 대해 어떠한 불만이나 모욕감도 받지 않고 있다. 금색 눈동자에 호전적인 의지는 담겨 있지 않았다. 청사의 시선을 무덤덤하게 마주할 뿐이다.

“어째서?”

요괴에게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잔악무도한 도사. 인간과는 이렇다 할 인연도 맺지 못하는 주제에 그들에겐 결코 해를 끼치지 않는 이해할 수 없는 남자. 산 귀신처럼 구천을 떠돌며 요괴를 잡아들이는 인간이 어찌하여 옛 친우였다는 임금과 그의 아들을 이리도 순순하게 따르는 것인가. 벗도 아니다. 고작 그 벗의 아들일 뿐인데 한참이나 어린놈에게 쫓기면서도 대항할 의지가 없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모르겠다. 청사는 억눌린 목소리로 말했다.

“대체 왜?”

때마침 각을 맞춰 공격 준비를 하던 병사들 사이가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땅을 울리자 고도를 내려다보던 청사가 소란스러운 군부 사이를 돌아봤다. 몇 마리 안 되는 말들이 오작교로 다가오자 금부가 길을 열어 준다. 기마병으로 보이는 무관들이었는데, 선봉에 선 이는 보통 병사와는 다른 무관복을 입고 있었다. 그의 뒤를 따르는 기마병들이 갑옷이나 갑주를 몸에 대고 있는 것과도 확연히 비교됐다.

초립을 쓴 선비 행세를 하지만, 그 얼굴빛과 꼿꼿이 세운 등허리를 보노라면 선비처럼 글공부만 꿰는 한량이 결코 아님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사내는 병졸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여 그를 맞이해도 말 위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초립을 장막 삼아 옅게 퍼지는 달빛 아래로 중년 남성의 얼굴이 드러났다. 주름이 옅게 진 얼굴엔 오랫동안 세상을 호령해 온 권위가 물들어 있었다. 실세를 손에 쥔 자 특유의 거만함과 오만함도 보였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인상이다. 웬만한 고관들보다 강인한 인상이다. 붕당에 휘둘려 이리저리 끌려다니기보단, 끝까지 제 의지를 관철해서 문무 대신들과의 마찰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부류로 보였다. 고위 문무 대신들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젊은 남자라면 하나밖에 없을 터. 저자가 인간들의 왕인 것이다. 본디 인간의 우두머리는 실제적인 힘이 없다. 정치 세력의 망석중이거늘, 이 임금은 그러한 세력과 정면으로 대치할 만한 능력과 배짱이 있는 듯싶었다.

청사는 사내가 풍기는 분위기를 가늠하면서 두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저자가 고도의 주군이자 벗의 아들이란 사실이 몹시 불쾌한 표정이었다.

“숨바꼭질은 즐거웠는가.”

근엄한 목소리가 좌중을 압도했다. 청사는 고도의 분위기를 살폈다.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 할 방법을 모색해야 할지, 이대로 저 사내가 계속 말을 하도록 내버려 둬야 할지 고도를 보고 판단할 생각이었다. 고도는 시종일관 표정 없는 얼굴로 말 위의 사내를 바라보기만 했다. 사내가 어깨에 메고 있던 화살을 병졸에게 건넨 뒤에 말에서 내려올 때까지도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하지 않았다. 사내의 발걸음 소리가 다리 위를 울렸다. 고도와의 거리가 좁혀질수록 부동자세로 서 있던 군들도 하나둘 걸음을 떼어 포위망을 좁혔다.

“이 많은 병졸이 그대 하나를 쫓고자 궐을 나섰다. 보이는가.”

사내가 친히 팔을 벌려 주변의 병사 숫자를 상기시켜 준다. 하지만 고도는 사내에게서 시선을 피하고는 흰 서리가 내린 연못 위를 응시했다. 얼음 속엔 거미줄처럼 언 자국이 남아 있었다. 사내의 얼굴을 잔상으로라도 기억하지 않으려는 듯, 고도는 얼음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말했다.

“이 많은 군을 움직이려면 백성에게서 더 많은 세전을 걷어야 하지 않는지요. 왜 혈세를 낭비하는지, 원.”

“쫓기는 상황에서도 입만 산 점은 변함이 없구나. 그대가 말하는 혈세가 누구 때문에 낭비되고 있는가?”

“그러게 누가 의금부 장수를 풀라고 했답니까.”

“그대가 자량에 돌아왔다는데 짐이 친히 군대와 함께 와봐야 하지 않겠나.”

고도는 입을 다물었다. 고집스럽게 얼음을 내려다보고 있지만 손끝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초립을 쓴 사내는 그런 고도의 손끝을 응시하며 동요하는 심정을 꿰뚫었다. 태연하게 말하는 고도가 실은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날 보아라, 고도.”

고도의 어깨가 움츠러든다. 주먹을 쥐면서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말을 타고 올 때도 얼핏 보기만 할 뿐, 눈 한 번 마주하지 않은 고도였다. 사내와 얼굴을 마주할 때도 그의 눈 대신 인중이나 턱 밑을 보며 부러 시선을 피했었다. 의도적으로 눈을 마주하지 않으려 한 사실을 들킨 것 같았다. 고도는 지금 가까워지는 사내의 발소리와 쿵쿵 울리는 심장의 소리 중 무엇이 더 큰가를 가늠이라도 하는 것 같았다. 눈이 마주치는 것조차 거부하는 고도에게 중후한 목소리가 다시금 명령을 내렸다.

“날 보라고 했다.”

원하지 않는다고 도망칠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고도는 결국 고집을 꺾었다. 반쯤 체념한 얼굴로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얼음만을 내려다보노라고 눈꺼풀 속에 가려졌던 금안이 처음으로 사내를 똑바로 쳐다볼 때였다.

어둠이 고도의 두 눈앞을 가렸다. 급작스러운 일에 멈칫한 고도는 그대로 누군가의 품에 끌어당겨졌다. 고도의 시선이 왕과 섞이기 직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고도는 눈앞을 가린 것을 붙잡았다. 청사의 손이다. 차가운 손바닥에 눈앞이 새까매진 고도가 뒷걸음질 쳤지만, 반걸음 물러서기도 전에 청사가 허리를 꽉 잡아 더는 뒤로 갈 수가 없었다.

임금이 친히 누군가와 말을 하겠다는데 그 일을 방해한 청사를 신하들이 가만둘 리 없다. 좌장군이 칼을 뽑자 그 뒤에 있던 병사들이 저마다 칼을 꺼내어 청사에게 겨누었다. 하나, 그들 중 누구도 섣불리 달려들지 못했다. 이 세상 사람 같지 않은 새파란 눈이 짐승처럼 세로로 가느다랗게 찢어졌기 때문이다.

“불쾌하다, 인간들의 왕.”

청사는 고도의 눈을 가린 손의 반대편 손을 들었다.

“정말 불쾌해.”

다리 아래가 우르르 울린다. 발바닥 아래가 흔들리고 어디선가 거대한 목 울음소리가 웅웅거리듯 주변을 감쌌다. 임금을 위해 시선을 한껏 낮추고 있던 장수들이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멀쩡한 벚나무가 좌우로 흔들렸다. 나무들의 뿌리가 단단하게 붙잡고 있어야 할 흙은 주변을 사정없이 굴러다녔다. 연못의 얼음은 가뭄 때 땅처럼 갈라지더니 조각난 얼음이 물속으로 가라앉거나 물줄기가 갈라진 얼음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발아래가 흔들리고 고요한 못의 수면이 뒤집히는 기현상에 병사들의 얼굴은 겁에 질렸다.

쾅.

산등성이에 떨어진 거대한 벼락소리에 사람들이 까무러치듯이 놀랐다. 어두운 밤하늘은 어느새 몰린 구름 떼로 뿌옇게 흐려져 손바닥만 하던 보름달도 사라졌다. 우르릉 마른번개가 하늘을 가르자 군은 손에 쥔 창을 저마다 바닥에 떨어트렸다.

“저, 전하!”

장군들이 황급히 임금을 잡아 다리 밑으로 내려갔다. 동시에 청사가 손을 들었다. 청사의 손짓 한 번에 오작교 아래의 거대한 못이 파랑 맞은 물살처럼 거칠게 출렁였다. 못가에서 창과 화살을 겨누고 있던 병사들은 종아리까지 적시는 거센 물살에 당황했다. 임금을 둘러싼 군사들은 급히 그의 안전을 확보하면서 뒤로 물러섰다.

다리 밑의 물은 소용돌이치며 물기둥을 만들었다. 사방으로 솟구치는 거대한 물줄기에 사람들은 더는 똑바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몇몇이 들고 있던 무기를 떨어트렸다. 겁에 질려 뒤로 물러서거나 주저앉는 이도 심심치 않게 보였다. 눈이 가려져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는 고도가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청사의 손을 떼어 내려 했다.

“대롱이, 너, 뭐 하는 거야, 지금.”

청사는 고도의 눈을 더 단단하게 가리고 품에 안았다.

“안 죽여. 걱정하지 마.”

“손 치워라.”

“괜찮아. 아무것도 보지 말고 내 품에 있어.”

“대롱아.”

“한 번쯤은 날 믿어도 된다. 너 혼자 감당하기 내켜 하지도 않으면서 고집부리지 말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병사들 속에서 비명이 터졌다. 고도가 청사의 손을 치우려 하자 청사는 손에 더 큰 힘을 줬다. 비명을 지른 병사들은 청사와 고도를 감싼 형상을 보고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못의 물이 모조리 소용돌이치며 물기둥을 피어 올리더니만 그것들이 한데 뭉치고 응집하면서 물 비늘을 지닌 용으로 변한 것이다. 수룡은 날카로운 물 비늘을 털면서 청사와 고도 곁을 빙빙 돌았다. 용의 목 너머에서 울리는 위협적인 소리가 천지를 흔들었다.

병사들 대부분이 엉덩방아를 찧고 바닥에 자빠졌다. 청사의 기괴한 술수에 뒤로 물러선 임금과 그를 호위하는 장군 몇 명을 빼면 청사를 똑바로 마주 볼 수 있는 이가 없었다. 임금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청사를 노려봤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서 날벼락을 치고 물로 용의 형상을 만드는 남자. 입을 콱 다물어 버린 임금의 서슬 퍼런 시선이 청사에게 박혀 움직이지 않았다. 청사 역시 매서운 눈으로 왕을 마주했다. 사태를 모르는 고도만이 청사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격렬하게 저항하고 있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임금의 목소리는 청사를 향했지만, 고도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청사를 밀어내려던 고도가 그 목소리에 반응해서 움직임을 멈췄다. 청사는 왕의 목소리 하나 들었다고 얌전해진 고도가 못마땅한 나머지 고도의 목 언저리에 입술을 가져갔다. 움찔, 눈이 가려져 촉각이 곤두선 고도의 반응이 평소보다 민감하다. 어쩌면 어제저녁에 사랑방에서 벌인 낯 뜨거운 행각이 떠올라서일지도 모른다. 사방은 어두웠고, 보이는 것은 미약한 달빛에 의지한 몸의 윤곽 정도였으니. 지난밤을 기억하듯 예민한 고도의 반응이 청사를 대담하게 바꿨다. 청사는 보란 듯이 고도의 살결에 입술을 묻고 임금을 노려봤다. 고도가 어깨를 움츠리면서 눈을 가린 손가락을 잡아 뜯으려 했다. 임금은 고도와 청사를 도끼눈으로 노려봤다.

“내가 누구냐고?”

청사를 노려보는 임금의 시선에는 노여움이 섞여 있었다. 때와 시를 가려 장난을 걸라는 엄중한 경고다. 청사는 고도의 머리를 끌어당겨 제 가슴에 묻어 버렸다. 고도의 신비로운 금색 눈을 임금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다. 자신만이 아는 비밀처럼 대하고 싶었다. 고도의 소중한 것을 누구와도 공유하고 싶지 않았다. 그것이 더더욱 저 시건방진 인간들의 왕이라면. 청사는 고도를 끌어안고 왕을 향해 말했다.

“당신도 붙잡지 못한 고도를 가진 남자다.”

청사는 임금을 가차 없이 욕보였다. 이미 죽은 선왕과 고도가 어떤 사이였는지 몰라도, 친우의 아들이란 놈이 고도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는 확실하게 깨달은 청사였다. 백성과 나라를 가졌으면서 욕심만 많은 임금 같으니라고. 그는 고도를 원하고 있었다. 고도가 지닌 능력을 빼앗고도 싶고, 그 능력을 소유한 인간 자체를 가지고도 싶을 테고. 뭐든 취할 수 있었던 자신의 권위를 이용해 고도를 곁에 붙잡아 두려는 것이다.

청사는 제 주변을 감싸듯 돌고 있는 용에게 손가락을 까딱였다. 으르릉, 사람들 모두를 겁먹게 했던 용은 순한 강아지처럼 제 머리를 얌전히 내밀었다. 청사는 고도를 끌어당겨 용 위에 앉았다. 물컹거리는 운송 수단의 느낌에 고도가 본능적인 거부감을 표했다. 청사가 무슨 요술을 부렸는지 확인하려 할 때마다 청사는 머리통을 더욱 꽉 끌어안고 시선을 어디에도 주지 못하게 했다.

청사와 고도를 태운 용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주변의 공기를 압박하듯 일어난 형상은 허공을 부드럽게 휘감고는 토월산을 향했다. 엎드린 병사들의 위로 떠오르자 수룡의 몸에서 튀긴 물방울이 병사들의 등을 적셨다. 병사들은 머리를 조아린 채 유유히 날아간 용을 차마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하고 바들바들 떨었다. 가뭄 때도 마르지 않은 못이 처음으로 바닥을 드러냈다. 임금은 텅 비어 버린 못을 내려다보다 산 위로 날아가는 용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는 화를 눌러 담아 간신히 말했다.

“쫓아라.”

옆에 있던 장군 하나가 깜짝 놀라 외쳤다.

“하, 하오나 저런 신기를 부릴 수 있는 자는―.”

“그자가 무슨 상관인가. 감히 짐의 일을 훼방 놓은 놈이다. 죽이진 못해도 철저히 응징해야 한다. 쫓아라. 쫓아서 그자를 포박하고 고도를 당장 내 앞에 다시 데려와라.”

망설이는 장군은 얼어붙은 병사들을 일으켜 산속으로 향한 용을 따라갔다. 그 형체가 몹시 크고 아름다워서 승천하는 것 같은 수룡의 모습을 놓치려야 놓칠 수 없었다. 겁에 질린 병사들이 간신히 정비를 다시 갖추고 산속으로 이동했다. 이동하는 무리의 행렬이 길게 이어진 끄트머리로 왕의 걸음이 닿았다. 임금은 움직이는 무리 속에서 유일하게 멈춰 있는 사내에게 다가갔다. 중년의 남성은 임금이 다가오자 그의 발을 내려다보며 고개를 숙였다. 임금의 중후한 목소리가 그의 머리 위에서 울렸다.

“장수적.”

이름의 주인이 고개를 더 숙였다.

“예, 전하.”

“그대는 어이하여 고도를 붙잡은 즉시 짐에게 보고하지 않았는가. 짐이 내시를 통해서 이 일을 알면 기분이 어떨지 생각해 보지 않았는가.”

“…….”

“그대의 죄는 반드시 추궁할 것이다.”

왕은 좌장군이 고삐를 붙잡고 있던 백마 위에 올라탔다. 곧바로 말의 옆구리를 발로 차 토월산의 입구를 향했다. 장수적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 왕이 달려 들어간 산의 초입을 응시했다. 조금만 시선을 올리면 토월산 중턱에서 낮게 날고 있는 용을 볼 수 있었다. 투명하게 빛나는 수룡은 앙상한 겨울 나뭇가지 사이를 파고들어 꼬리만 남겼다. 장수적은 물 비늘이 맺힌 나뭇가지를 황망한 눈으로 바라봤다. 산속에 안착한 수룡의 모습은 금세 시야에서 사라지고 더는 찾아볼 수 없었다.

*

청사가 만들어 낸 용은 토월산의 중턱에 닿자 물보라를 일으키며 사라졌다. 오작교 아래의 못에 있던 물이 건조한 겨울 산 한쪽을 흠뻑 적셨다. 수룡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 나서야 청사는 끌어안고 있던 고도의 머리를 놔줬다. 숨도 못 쉴 만큼 꽉 안겨 있던 고도는 청사의 팔이 풀리자마자 비틀거리다 젖은 땅에 주저앉고 말았다. 청사가 옆에 쪼르르 다가와 앉아 고도를 살폈다. 고도는 어지러운 머리를 흔들어 털고는 청사의 긴 머리를 확 잡아당겼다.

“아야!”

청사는 눈매를 매섭게 치켜떴다.

“갑자기 당기면 아프잖아!”

“그 고통으로 정신도 확 깨어나면 좋겠구나. 네 녀석 대체 무슨 생각인 거냐.”

“내가 뭘!”

“내 앞을 보지 못하게 하고는 무슨 술수를 부린 게야.”

“네가 나보고 도와달라고 했잖아. 그래서 도와준 거야.”

“굉장히 수상쩍은 방법으로 말이지?”

“그런 상황에선 과격한 본보기가 최고니까 그랬지!”

“그 과격한 본보기가 뭔지 좀 들어 보자.”

“넌 몰라도 돼. 기껏 도와줬더니 고맙다는 말은 못할망정 이렇게 으름장이나 놓을 거야?”

“네가 눈을 가릴 때마다 뿌리치지 않았다. 널 믿으니까 네가 원하는 대로 눈감아준 것이다. 그런 내게 끝까지 말하지 않겠단 말이냐. 우리의 신뢰를 네 쪽에서 먼저 깨트릴 셈이군.”

“그 뜻이 아니야! 내가 요술을 부렸을 뿐이다. 네가 하도 나보고 뱀 요괴가 아니라고 뭐라 하니까 더 보여 주기 싫었던 거뿐이야.”

“흠. 오히려 오해 살 짓을 자처했단 말이지.”

“윽, 그러니까 내 말뜻은 그게 아니래도.”

고도는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청사를 노려봤다. 계속해서 말을 돌린 청사는 뜨끔해서 고도의 눈치를 살폈다. 아무 말도 않고 저리 쳐다보니 청사의 심장이 벌렁거렸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뭐가 이리 찔려서 시선을 피하게 되는지 모를 일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억울한 청사였다. 도와준 것이다. 고도가 영 제정신을 못 차리고 임금에게 휘둘리는 꼴이 보기 싫어서 그 왕에게 화풀이하듯 으름장을 놓아 본 것뿐이다. 그게 무어 대수라고 죄인 추궁하듯 고도의 쫙 찢어진 눈빛을 감당해야 하는 건지. 청사는 억울한 마음에 구시렁거렸다.

“쳇. 네게 고맙다는 인사 듣기 참으로 어렵네.”

마냥 고마워하기엔 찝찝한 구석이 많지 않은가. 고도는 청사의 수작을 떠올리자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갑자기 일렁이던 물소리와 무언가에 깜짝 놀라서 비명을 지르던 사람들. 건조한 겨울 공기에 어울리지 않는 축축함이 앞을 보지 못하던 고도 주변을 감싸고 있었다. 무언가 알 듯하면서도 알지 못하는 그 기묘한 느낌을 다시 생각할수록 불확실한 기분만 커졌다.

고도는 입술을 삐쭉 내밀고 툴툴거리는 청사를 가만 내려다봤다. 철없는 소녀처럼 보이는 청사를 한참이나 쳐다보더니 손을 뻗어 청사의 머리를 다시 잡아당겼다. 또다시 심술을 부리느냐며 찌릿, 화를 내려던 청사가 곧 이은 고도의 행동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고도는 심술 맞게 머리끝을 잡아당기는 대신 뒤통수를 자신 쪽으로 끌고 왔다. 그러곤 청사의 동의도 없이 얼굴을 붙였다.

입술에 포근한 감각이 남았다. 고도는 입술을 아주 잠깐 붙였다가 떨어트렸다. 청사가 멍한 눈으로 그런 고도를 바라보다가 고도의 멱살을 잡아당겼다. 청사의 갑작스런 대응에 도리어 당황하여 주춤거리던 고도는 멱살이 끌어당겨져 강하게 입술이 부딪혔다. 아파서 입술을 벌린 사이에 기다란 혀가 잇몸을 훑고 입안으로 들어왔다. 고도는 눈가를 찌푸렸다. 숨을 쉬기도 버거울 정도로 밀어붙이는 청사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청사의 뒤통수를 붙잡아 당겼다. 잡아먹힐 듯이 탐해지던 입술을 간신히 떼어낼 수 있었다. 고도는 거친 숨을 한꺼번에 몰아쉬었다. 청사의 젖은 입술에서 시선을 떼기 힘들다. 본래 먹을 것을 받아먹기 위해 발달했을 사람의 입이란 곳이거늘, 청사가 눈앞에 있으면 원래 기능을 잃고 같은 모양의 입술과 맞붙는 용도로만 쓰는 기분이었다. 고도는 감정을 조절 못 하는 청사가 매번 당혹스러웠다. 그런 청사를 앞에 두면 냉정함을 찾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하기도 했다.

“네가 먼저 입술 문댔으면서 이제 와서 빼는 게 어디 있어.”

청사가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를 낮게 울렸다. 다시 한 번 고도에게 입술을 가져가려고 고개를 쭉 내밀었다. 고도는 손으로 냉큼 청사의 얼굴을 밀어냈다.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 것이다. 감히 내 성의를 왜곡하다니.”

“왜 굳이 입을 맞춰서 고맙다는 걸 표현한 건데?”

“그건…….”

고도가 대답을 못 하고 망설이는 모습을 보자 청사의 얼굴에 피어 있던 불만기도 자연스레 사그라졌다. 고도는 왜 이렇게 귀여운 걸까. 누가 볼까 겁이 난다. 다들 반해서 고도의 말랑거리는 볼을 잡고 흔들지나 않을지. 청사는 고도의 볼에 도장처럼 입술을 꾹 찍었다.

“너도 이젠 내가 의식되는 모양이다.”

청사의 팔이 고도의 허리를 휘감아 바싹 끌어안았다. 고도는 청사의 허벅지에 올라탄 채 두 손으로 청사의 어깨를 잡았다. 엉성한 자세다. 둘 다 흠뻑 젖어서 언제 고뿔에 호되게 당할지도 모르는데 금부에 쫓기는 상황도 잊고 태평하게 서로 얼굴이나 들여다보고 있다니. 유례없이 얌전한 고도의 반응에 청사는 몸을 더 바싹 맞댔다. 물에 젖은 차가운 몸이 서로의 온기에 포근함을 띠었다.

춥지 않다. 젖은 채 겨울 산중을 헤매는 몸이 타인의 온도에 따뜻해지는 것보다 겨울나무처럼 황량하던 마음이 포근해지는 기분이었다. 소와 다닐 때는 일찍이 느껴 본 적 없는 기분이다. 무엇이 이리도 마음을 따뜻하게 데우는지 모르겠다.

고도는 청사의 어깨에 얹힌 손에 조금 더 힘을 줬다. 문득 청사가 사랑스럽게 보여서 끌어안으려고 한 것인데, 팔에 힘이 들어가니 절로 상처 난 어깨에서 통증이 심해져서 눈살이 찌푸려졌다. 상처는 젖은 두루마기에 감춰져 보이지 않았다. 청사가 요력으로 피가 더는 흐르지 못하도록 처치했으니 출혈로 고도가 위험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리해도 아픈 상처의 통증을 없앨 순 없어서 끄응 하고 작은 신음을 흘리니, 청사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물었다.

“어깨 많이 아파?”

“이 정도는 참을 만하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해도 돼. 내 앞에서는 힘들다고 솔직하게 말해 줬으면 좋겠거든.”

“정말 괜찮다. 내가 살아 있는 존재라는 걸 알려 주는 고통이기에 참을 만하다. 이보다 상처가 심하면 차라리 죽고 싶을 테고, 이보다 상처가 얕으면 하찮게 생각할 테니, 지금의 상태가 얼마나 적절한가.”

“그래서 그렇게 함부로 몸을 굴리는 거냐.”

“어차피 잘 죽지도 않는데 그게 대수냐.”

“……너.”

“그런 표정 지을 필요 없다. 잘 죽지 않는 몸 덕분에 남들은 하지 못하는 짓을 할 수 있지 않느냐. 내 목숨에 대한 소중함을 잃은 대신 또 다른 귀한 것을 얻었다. 난 이것이 나쁘다고 보지 않아.”

고도는 청사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물에 젖은 손은 차게 얼어 있었지만 청사의 얼굴에 닿은 순간 따뜻해진 것만 같았다. 청사는 고도의 손등 위에 제 손을 포갰다. 고도에게 고개를 내밀어 입을 맞추었다. 얼굴을 붉게 물들이는 것이 단순히 추위 때문만은 아닌 듯싶다. 청사는 고도의 입술에 이어 볼과 눈가까지 소리를 내어 입술을 묻었다. 피부 위를 간질이는 입술의 행적에 고도가 부끄러움을 느꼈다.

하지 말라고 말리는 손길까지 붙잡은 청사가 얼굴 곳곳에 입술을 쪼듯이 붙였다. 고도의 얼굴이 화끈 붉어졌다. 의식한다. 그 말을 입에 담았더니 고도가 그 말이 언령이라도 된 듯 착실히 반응을 보였다. 청사의 얼굴도 덩달아 붉어졌다. 고도의 반응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했다. 결국, 청사는 앓는 소릴 내고는 고도를 꼭 끌어안았다. 참으로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감정이 뭔지 알 것만 같았다.

“좋아해, 고도.”

이런 상황에 면역이 없는 고도는 붉어진 얼굴로 쩔쩔맸다. 청사 역시 볼에 띤 홍조를 지우지 못하고 쑥스러워하는 고도의 입술을 깨물었다. 고도의 금색 눈이 눈꺼풀 아래에서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당혹스러움보다도 더 큰, 어떠한 설렘이란 존재가 숨어 있었다. 청사는 혀를 내밀어 고도의 입술 사이를 파고들었다. 고도가 머뭇거리다 마침내 입을 벌려 청사의 혀를 제 혀로 감쌌다. 서로의 입술을 물었다가 놓으면서 혀를 잡아당기기도 하고 또 끌려가기도 하는 입맞춤이 부드러웠다.

“네가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고 하니까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청사는 입술을 맞댄 채로 속삭였다. 나지막한 목소리에 담긴 무게가 그의 감정을 한없이 닮아 있었다.

“나는 포기하지 마라.”

*

토월산에서 가봉정자까지 향하는 길은 낮고 평평하다. 산삼 캐러 다니는 심마니들이 그 길을 일러 ‘도읍 사람들의 변덕과 냉담함에 질린 한량들이 신선놀음하러 오기 좋은 곳’이라고 불렀다. 정자 주변에는 나무가 많지 않아 달빛이 고스란히 내리쬐니, 횃불을 들고 달빛을 물러가게 함은 죄악으로 느껴질 만큼 밝고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다.

밤이라 언덕을 넘는 행인조차도 모습을 감춘 적막한 곳을 장영과 소향이 함께 걷고 있었다. 소향은 장옷으로 얼굴을 가린 채 연방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제가 떼를 써서 한밤에 산속에 들어오게 되었나니, 아녀자의 몸으로 험한 야산을 걷는 모습을 누가 보면 흉흉한 소문이 돌지도 모른다. 근처에 임금이 머무는 궐이 있어서 병사들이 항시 순찰을 하기 때문에 산적을 만나 변을 당할 일은 없겠으나, 그래도 잡다한 걱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다행히도 소향은 장 가(家)네 시집오기 전까지는 산골 처녀였다. 몸이 약해 외할아버지 댁에서 요양했지만, 산천을 맨발로 돌아다닌 덕에 건강을 되찾았다. 이런 평평한 산길을 걷는 것이야 일도 아닐 만큼 익숙해져 힘들지는 않았다. 걱정이라면 자신이 떼를 부려 남편의 명성에 누가 되는 일을 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점이다.

소향은 달빛이 훤히 내리비춰지는 길을 둘러보다가 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두 눈을 휘둥그레 뜨고 저 먼 곳의 나뭇가지 사이를 쳐다봤다. 하늘에서 웬 물줄기가 춤을 추고 있었다. 이 무슨 천지 만물이 개벽할 기괴한 일인고. 넋이 나가 올려다보자 그 물줄기는 단순한 물이 아닌 용의 형상을 띤 게 아닌가. 저것이 전설로만 듣던 용의 승천인가! 당장에 무릎이라도 꿇고 소원을 빌어야 하나 갈팡질팡하던 소향은 장영의 옷깃을 잡아당겼다.

“서방님, 저기 봐요, 저기.”

장영이 그 몸짓에 가던 길을 멈췄다. 소향이 손가락으로 하늘 끄트머리를 가리켰다. 무얼 보고 그런가 싶어 고개를 쭉 내빼고 하늘을 살피려는데 산중을 빙글빙글 돌던 용이 돌연 산마루를 빙 돌아 장영의 시야 밖으로 벗어났다. 장영의 시선 반대편 산줄기에서 미끄러지듯 내려오던 용은 그대로 자취를 감췄다. 가봉정자로 향하는 이 길에서 몇 리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사라졌지만 용이 내려앉을 땐 소리도 없었기에 장영은 용을 끝내 보지 못했다.

“무얼 보고 그런 것이오?”

“아, 아니, 아까까지만 해도 용이 있었어요.”

“용? 성수 용 말이요?”

소향은 제 말이 얼마나 해괴한 소리로 들릴지 깨닫고는 얼굴을 붉혔다. 누가 보면 미쳤다고 보기 딱 좋을 헛소리다.

“아, 아니어요.”

부끄러워하는 소향의 모습을 보고 장영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부인, 귀신에게 홀렸나 보오.”

고개를 푹 숙이고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소향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장영은 부인의 배자를 더욱 단단하게 여며 준 뒤에 붉게 얼어붙은 손을 잡아 줬다. 소향은 토끼털로 만든 남바위를 머리에 쓰고, 물범 털배자를 걸치고 있었다. 목에는 여우 털목도리를, 양팔에는 토시까지 끼우니 추위가 무섭지 않은 차림새다. 소향은 목도리에 두 볼을 묻었다. 부끄러운 기분을 감추지 못한 채 장영의 손을 마주 쥐었다. 장영의 나지막한 웃음소리가 들려 소향의 얼굴이 조금 더 붉어졌다.

“여태껏 달구경을 위해서 밤중에 산에 올라온 것인가요.”

땅이 평평하게 고른 길이지만 목적 없이 올라오려면 제법 수고스러운 길이기도 했다. 대과에서 낙방한 남편이 매일 같은 시간에 저녁 산행을 할 이유가 무엇일까. 걱정과 우려가 담긴 소향의 물음에도 장영은 그저 기분 좋게 웃기만 했다. 시집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새색시가 밤마을 나가는 남편의 부정을 한 번쯤은 의심해 봐도 좋으련만, 이 순박한 산골 처녀는 제 남편을 올곧게 신뢰하고 있었다. 질투도 의심도 없는 순수한 믿음을 보자 장영 역시 그녀를 진심으로 대했다. 그녀를 속일 바에야 차라리 입을 다물자고 생각했던 장영이 처음으로 솔직한 사정을 털어놓았다.

“부끄럽게도 내 여기까지 오는 것은 시험에서 요령을 부리는 것과 다르지 않소.”

“네? 요령을 부리다니요?”

소향은 깜짝 놀랐다. 언제나 정직한 남편이 시험에서 요령을 부렸다는데 그 말을 어떻게 믿나. 장영의 말에 넋이 나갔던 소향은 이내 장영의 말을 농담으로 여겼다. 그녀는 사르르 표정을 풀고 웃었다.

“당신은 항상 정직하게 공부하고 전하 앞에서 공부한 결과를 확인받아 오셨습니다. 그 정진 정명한 수학에 어찌 요령이나 요행이 있다고 말씀하시나요.”

“부인 말대로 수학에는 정도만이 있소. 허나 아주 간혹 그 정도에도 지름길이 있는 경우가 존재하오.”

“비록 제 학식이 부족하나 그러한 지름길이 없다는 것은 압니다. 학문에 어찌 지름길이 존재한단 말인가요?”

“통행료가 다른 길보다 조금 더 비쌀 뿐, 지름길은 존재하오.”

“제가 서방님과 함께 걷는 이 길이 바로 그 지름길이옵니까.”

장영은 손가락으로 가봉정자를 가리켰다.

“수년 전에 저곳에서 지름길을 찾았소.”

“어떤 지름길인가요?”

“대과 시험 따위 능히 통과할 수 있는 부적을 말하오.”

소향이 예상했던 답변이 아니다. 정도만을 고집하며 사도를 배척하는 유학자가 어찌 저런 말을 하는지 소향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장영의 얼굴은 순수하고 티끌이 없었다. 농을 던진다고 여길 만한 익살스러운 빛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소향은 남편이 시아버지와 학문에 대해 이야기하는 모습을 종종 보아 왔다.

실학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남편과 성리학의 유지를 우선시하는 시아버님 사이에 자잘한 의견 차이는 존재하곤 했다. 홍익인간의 가치에도 엄연히 서로의 사상이 맞부딪혔는데, 아버님은 사람을 이롭게 하는 방법에 관심이 많았고, 남편은 사람이 이롭게 되는 결과에 흥미를 보였다. 따라서 대과 시험의 합격에 가치를 두는 남편과 배움의 과정을 터득하길 바라는 아버님 사이의 의견은 좁혀들지 않았다.

아버님은 언제나 불안해하셨다. 아들의 도전적인 성격은 사내대장부로서 능히 가져야 할 부분이나, 때론 그것이 지나쳐 도를 넘는 경우가 생길 것만 같다고. 소향은 아버님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오늘에서야 알 수 있었다. 남편은 그릇된 방법으로 입신양명의 꿈을 품어 온 것이다.

“……걱정됩니다, 서방님.”

소향이 심정을 담아 떨리는 목소리로 말해도 장영은 웃을 뿐이다. 그는 희게 질린 부인의 손을 다정하게 만져 주면서 제 고집을 꺾지 않았다.

“소원을 말하면 무엇이든 들어주는 요괴의 물건을 부인에게도 보여 줄 수 있다면 좋겠소.”

마른 나뭇가지 사이로 오래된 정자가 어슴푸레하게 드러났다. 현판은 다 낡아 금이 가 있고, 바위 위에 굳건히 박은 지렛대도 중심이 기울었다. 정자 아래에는 빠른 물살을 자랑하는 계곡 하나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음산한 곳이다. 계곡의 운치를 구경할 만큼 아름답지도 않거늘 밤중에 매번 이곳을 오르내렸다는 이야기일까. 소향은 조금씩 가까워지는 가봉정자를 근심 어린 마음으로 대했다. 남편의 기이한 집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른 풀과 부러진 나뭇가지를 밟고 정자까지 다가왔다. 장영은 언제나처럼 쓸쓸한 정자를 생각했다. 텅 빈 그곳엔 아무도 없고 자신만이 다가가 앉아 까마득히 먼 계곡 아래만 구경하리라고.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가까이 다가온 정자에는 장영과 소향보다도 누군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등을 돌려 앉은 조그마한 어깨를 가진 소녀. 달빛이 창백하게 내려앉은 새하얀 머리를 양 갈래로 묶은 아이. 걸음을 멈춘 장영 대신 소향이 탄성을 내질렀다.

“미호 씨?”

아이가 고개를 돌렸다. 새빨간 눈동자가 부부를 응시했다. 오랫동안 이 자리에 앉아서 기다려 온 것처럼 그녀는 예기치 못한 곳에서 장영 내외를 만났다 하여 놀라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입꼬리를 올리면서 웃었다. 다만 세로로 길쭉해진 짐승의 눈동자엔 그 웃음기가 묻어나지 않았다. 그녀는 입으로만 웃었다. 뾰족한 송곳니를 살짝 드러내면서.

“안녕?”

미호의 고혹적인 목소리가 두 사람을 자리에 얼어붙게 했다. 키득키득 울리는 요사스러운 웃음소리가 한동안 정자 안을 맴돌았다.

*

‘여우는 본디 잔정이 많은 동물이라 저를 싫어하는 이를 쉽게 미워하지 못하니. 반성해라. 여우에게 미움받는 것만큼 잘못 살아온 사람도 없느니라.’

소향은 문득 할머니의 옛이야기가 떠올랐다. 할머니는 살아생전 사향노루를 잡으려고 덫을 놓은 산에서 죽은 여우를 발견하고 손녀 방에 들어와 그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여우 털은 부잣집 마나님들에게 비싼 값으로 팔리는 사치품이라 시골 사람들은 덫에 여우가 걸리면 횡재했다고 여겼다. 하지만 털 값으로 집안에 어떤 부귀영화가 찾아오든, 그것은 소향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죽은 여우를 손에 들고 오는 마을 어른들을 볼 때마다 소향은 까무러쳤다. 저 예쁜 동물을 왜 죽이느냐고 철없이 엉엉 울기도 했다. 할머니는 그런 소향을 달래 주며 여우를 잡고 좋다고 하는 사내들을 향해 쯧쯧, 혀를 튕겼다.

‘몹쓸 짓이야. 암. 몹쓸 짓이고말고.’

문득 여우의 잔정이 떠오르는 이유는 한때는 가엾게 여겼던 여우를 제 목에 두르고 있기 때문이요, 툴툴거리면서도 다정다감하게 말을 붙였던 여우인간 미호가 서슬 퍼런 눈으로 저와 남편을 보기 때문이다. 까만 숯등걸처럼 꽉 들어찬 동공 주변으로 새빨간 안광이 빛났다. 토끼처럼 핏줄이 훤히 보이는 빨간 눈에서 절치부심한 무언가가 엿보인다. 모골이 송연하다. 여우털이 덮인 목덜미에 소름이 돋았다. 소향은 당황한 제 꼴을 들키지 않기 위해 몸가짐을 바로 하려 애썼다.

“미호 씨가 여긴 어쩐 일인가요?”

다행히 미호를 대하는 목소리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빨간 시선 때문인지, 불현듯 떠오른 할머니의 이야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소향은 흐트러졌던 몸과 마음을 추스르자 더는 미호를 기이하게 대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미호의 눈빛은 변함없었다. 토끼처럼 새빨간 눈동자가 세로로 길어져 정수리 부근에 달린 두 귀를 쫑긋거리는 모습이 마냥 귀엽게 볼 수 없는 경계심이 보였다. 정자의 음산한 분위기 때문일까. 미호가 저를 경계할 리가 없는데 어찌 예민하게 반응한단 말인가. 영 불안해하는 소향에게 미호가 조막만 한 손을 펼쳤다가 접으며 슬그머니 손짓했다.

“달구경 왔어. 그쪽도 어서 와. 같이 구경하자.”

망설이는 소향과 달리 장영은 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소향이 황급히 손을 뻗어 장영을 붙잡아 “서방님.”하고 걱정 어린 음색으로 속삭였다. 장영은 빙그레 미소 지으며 부인의 걱정을 덜어 줬다. 장영은 신을 벗어 돌 위에 놓고 정자에 올라섰다. 도포 자락을 가지런히 정리하여 미호의 맞은편에 앉는 모습이 인간의 것으로 보이지 않는 하얀 두 귀라든가, 새빨간 눈과 날카로운 송곳니 따위에 당황하는 것 같지 않았다. 마음에 불안이 없으니 목소리 역시나 단정하고 가지런했다.

“새벽에 푸른 눈의 선생에게서 소개받은 아씨로군요.”

장영은 자정이 넘어서 청사와 함께 간 국밥집을 떠올렸다. 청등 홍등이 미려하게 밤거리를 수놓은 곳에서도 단연 돋보이던 청사는 늦은 시각까지 돌아다니던 한 소녀를 장영에게 소개해 줬었다. 그저 순진하고 어려 보이기만 하던 소녀가 귀신이라도 만난 양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는 황급히 달아난 탓에 제대로 말을 섞을 기회가 없었건만,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다. 어쩌면 평생 보지 못하고 넘겼을 아이다. 이 정자에서 만날 줄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미호를 향한 장영의 우호적인 미소를, 그의 부인인 소향이 어지러운 마음으로 바라봤다. 붙임성이 좋은 남편이라지만 겉보기에 요괴가 분명한 소녀에게 선뜻 다가가는 모습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런 남편을 향해서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미호의 반응 역시나 소향의 마음을 어지럽혔다. 소향은 조심스레 정자에 한쪽 엉덩이를 붙였다. 구면인 소향을 향해서 미호가 반갑게 인사했다.

“다시 만나서 반가워.”

방긋 웃는 미호의 얼굴에 볼우물이 파인다. 곰살맞은 인사에 소향은 안절부절못했고, 장영은 밝은 미소로 마주했다.

“어제는 제대로 인사를 못 드렸습니다. 제 이름은 기억하십니까?”

“장영.”

“아, 기억하고 계시는 군요. 갑자기 달려가셔서 깜짝 놀랐지 뭡니까. 혹 급한 일이 있으셨습니까.”

“그럴 만한 일이 있었어. 그보다 혼인한 몸인 듯한데, 이 시간에 여긴 무슨 일일까.”

미호의 시선이 소향에게 향했다. 소향은 미호를 대하기 퍽 어려웠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오히려 정갈한 미소를 지어 남편의 가문에 누가 되지 않는 마님의 모습을 보였다.

“저희도 달구경을 나왔습니다. 여기서 미호 씨를 뵐 줄은 몰랐네요.”

“반갑지 않은 것 같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혹시 그렇게 느끼셨다면, 아씨께서 홀로 산행을 했나 하는 염려가 묻어 나와서 그럴 겁니다.”

“어머, 걱정해 주는 거야?”

쿡쿡거리는 웃음소리가 목구멍 너머에서 울렸다. 샐쭉하게 눈을 접고 웃는 모양새가 어찌 그리도 요사스러운지 남자고 여자고 할 것 없이 정신이 쏙 빠질 만큼 홀릴 기세다. 소향의 시선이 절로 미호의 두 귀와 치마 속에서 살랑거리는 꼬리들을 향했다. 고도와 함께 있을 때는 염두하지 않았던 사실이 떠올랐다. 그녀는 실은 요괴며, 인간의 생간을 먹고 수명을 연장한다고 알려진 구미호다.

“미호라고 했습니까. 예쁜 이름을 가졌군요.”

바늘방석에 앉은 듯 불안해 보이는 소향과 달리, 그의 남편은 느긋해 보이니. 장영이 밝고 활기찬 목소리로 미호에게 관심을 보였다. 그녀는 두 남녀의 태도가 상이한 게 퍽 재밌어서 까르륵 웃음을 터뜨렸다.

“부부가 이리 다를 수가. 아저씨. 아저씨는 나 안 무섭나 봐. 나한테 궁금한 게 많은 눈치네.”

“요괴를 직접 만나서 대화를 나눈 적은 처음이라서 말입니다.”

“정말로? 흐응―. 난 구미호야. 구미호는 인간을 잡아먹지. 설마 몰라서 이러는 건 아니지?”

미호는 양손을 동그랗게 말아서 고양이처럼 위협했다. 뾰족하게 길어진 손톱 열 개가 달빛을 받아 음산하게 반짝였지만 장영은 통 두려움을 모르는 얼굴이다. 그는 오직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미호를 바라보고 있었으니, 부인과 함께 가봉정자에 온 본래 목적마저 잊은 듯했다. 장영은 무릎걸음으로 미호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구미호라니, 정말이오?”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가도 모자랄 판에 한 걸음 더 다가오다니. 미호의 옥빛 청상 속에서 여덟 개의 꼬리가 서로 다른 궤적을 그리며 흔들렸다. 바닷속의 해초처럼 흔들리던 꼬리가 펼쳐졌다.

달빛을 받아 희게 빛나는 여덟 개의 꼬리는 근사했다. 수컷 꿩의 꼬리보다 더 화려하고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비단 눈처럼 하얀 털색뿐만은 아닐지어다. 다른 짐승도 아닌 구미호의 꼬리기 때문이다. 구미호의 목숨이라고도 일컬어지고, 혹은 소원을 들어줄 만큼 커다란 영기를 머금고 있다고도 알려진 아홉 개의 꼬리. 영롱하게 반짝이는 꼬리는 소향의 목에 둘린 여우털이 비할 바가 안 되었다. 큰돈을 치르고 부인을 위해 사준 여우 목도리의 가치가 순식간에 바닥으로 떨어졌다.

장영이 슬쩍 손을 뻗어서 꼬리를 잡으려 했다. 미호가 빙글 몸을 돌렸다. 장영의 손길을 약 올리듯이 빠져나갔다. 미호의 사뿐 거리는 걸음이 소향 옆에 멈췄다.

“이 주변에 전설이 하나 내려오는데 들어 본 적 있어? 가봉정자에서 생긴 전설이라 해서 가봉전설이라 불리거든.”

소향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슨 이야기인지 알려 주시면 즐거이 듣겠습니다.”

미호는 소향에게 다가올 때만큼이나 가벼운 몸짓으로 일어났다. 그녀가 발끝을 세워 한 바퀴를 빙글 도니 옥빛 치마가 떠올라 커다란 접시처럼 부풀었다. 돌고 도는 옷자락에 몸이 휘감기기도 전에 미호는 꼬리를 흔들며 정자 기둥 뒤로 숨었다.

미호가 꼬리를 휘두를 때마다 정자에 안개가 일어났다. 정자 아래쪽에 계곡이 자리 잡고 있어서 물보라가 일어나면 이 높이까지 안개가 끼는 일은 종종 있지만 겨울에는 그런 일이 없다. 안개는 미호의 요술이 만들어 낸 환상이었다. 미호는 기둥 네 개를 옮겨 다니며 꼬리를 휘둘렀다. 안개가 짙어졌다. 바람 소리가 잦아지고 그 틈을 적막이 파고들었다.

어느샌가 정자를 감싼 나뭇가지마저 보이지 않게 됐다. 그것은 눈앞이 흐리거나 뿌옇다는 것과는 달랐다. 흰색 이물질이 허공에 가득 채워진 것처럼 불투명하고 두터운 벽이 하나 세워진 셈이다. 소향은 우유처럼 하얗게 변한 하늘로 손을 뻗었다. 허공을 한 움큼 잡아 보려는 것처럼 주먹을 쥐었지만 손바닥에 남는 것은 없었다. 정자에 앉은 소향과 장영이 서로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만 세상이 하얗게 변했다.

“미호 씨?”

소향은 앞을 분간하기 어려운 하얀 안개 속에서 미호를 불렀다. 순식간에 옆에 앉아 있던 남편의 모습도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저도 모르는 사이에 혼자가 되어 버린 소향은 덜컥 겁이 났다. 구미호라곤 해도 고도의 일행이다. 그녀가 연유도 없이 소향 내외에게 위해를 가하진 않을 것이다. 그래도 영문을 알 수 없는 요술에는 적잖이 당황했다.

하얗게 변한 세상에는 미호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낡고 습기 찬 나무 바닥을 탁탁 꼬리까지 치며 오가는 소리였다. 어디선가 까르륵 웃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너무 멀고 또 아득하게 들리는 기괴한 소리다.

소향은 엉거주춤 남편 곁으로 다가가 보이지도 않는 손을 더듬어 잡았다. 장영은 겁먹은 부인을 달랠 생각도 않고 기괴하게 변한 주변을 바삐 둘러봤다. 장영의 표정엔 소향의 얼굴 가득 드러난 공포나 두려움은 없다.

“옛날에 밤만 되면 이 정자에 와서 원을 비는 처자가 있었어.”

소향은 미호의 목소리가 들린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깜짝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 희뿌연 안개 사이로 웬 여인의 옷자락이 보였다. 훤칠한 키에 저고리로도 가려지지 않는 봉긋한 가슴을 가진 여인은 단아한 손끝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던 자색의 보자기를 들췄다. 복사꽃처럼 붉은 홍조를 띤 하얀 얼굴이 드러났다. 뽀얗고 맑아 어린아이처럼 티 없이 맑은 피부였다. 분칠한 눈매는 고혹적으로 뻗어 소향과 장영을 매혹하듯이 바라봤다. 곱게 다듬어진 반달눈썹이 살짝 들리며 눈가가 웃음기를 띠었다. 까르륵 웃음을 삼키며 몸을 빙글 돌리는 것이 몽환적이었다.

그 순간 장영이 벌떡 일어났다. 홀연히 나타난 것처럼 슬쩍 모습을 감춘 여인을 보고 장영의 행동이 괴팍해졌다. 그는 잡고 있던 소향의 손을 뿌리치고 여인이 사라진 방향으로 다가갔다. 장영은 형언할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놀란 것인지, 아님 당황한 것인지 알기 어려울 만큼 얼굴이 일그러졌다. 콧잔등을 잔뜩 찌푸리고 미간을 모은 것이 격한 감정을 다스리느라 곤욕스럽게 여겨졌다. 그런 장영의 반응이 소향은 생소했다. 굳건하고 이성적인 남편이 폭발적으로 분출된 감정을 다스리느라 호흡을 고르고 있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여인은 무엇이며, 미호는 어디 갔으며, 남편이 어찌하여 저리도 격렬하게 반응하는 것인지. 소향은 결국 울상을 지었다. 소향이 장영의 옷자락을 움켜쥐고 당기는데도 장영은 부릅뜬 눈을 허연 공간에 고정했다. 그때 소향의 어깨너머에서 가지런한 손가락이 스르륵 나타났다.

“처자에겐 사랑하는 부군이 있어서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가길 빌었는데, 글쎄 사랑을 약속한 지 구십구 일째 되는 날에 남자가 배신하는 게 아니겠어?”

“꺅!”

소향이 비명을 질렀다. 갑작스레 나타난 흰 손이 소향의 어깨를 두드리더니 말을 마치자마자 또다시 까르륵 웃음을 터뜨리며 사라졌다. 장영은 오들오들 떠는 소향을 부릅뜬 눈으로 쳐다봤다. 그녀가 서방님, 서방님 하고 매달려도 그녀를 다정하게 안아 줄 수가 없었다. 그녀를 보살피기엔 머리가 어지럽고 정신이 혼미해 제 몸을 가누기조차 어려운 탓이다. 장영은 사방이 구별되지 않는 주변을 거칠게 고개를 꺾으며 둘러봤다. 어디선가 여인의 발걸음 소리가 들리고 높은 웃음소리가 울렸다.

어디서 울리는가. 어디서 들리는 것인가. 메아리인가.

멀리서 들리는 듯도 싶고 바로 귓가에서 속삭이는 듯도 싶은 기이한 소리에 정신이 팔릴 무렵이다. 소향의 발목이 흰 손에 턱 잡혔다. 그녀가 비명을 지르기도 전에 흰 손이 하얀 안개 속에서 상반신을 내밀었다. 자색 보자기에 얼굴을 가리고 있던 바로 그 여인이다.

“알고 보니 처자가 구미호였던 거야. 남자는 구미호와의 사랑을 지킬 수가 없어서 꼬리마저 하나 잘라가 버렸고. 남자는 그 꼬리에 소원을 빌어 작은 시험에 합격했지. 그리고 버림받은 팔미호는 이 정자에서 백 일을 울다가 사라졌다고 하고.”

“미, 미호 씨예요? 미호 씨 맞죠?”

전설이 어떠하든 이 공포에서 벗어나고 싶은 소향은 자색 보자기의 여인을 보며 울먹였다. 어린 소녀가 어찌 성숙한 여인으로 모습을 바꿀 수 있나 싶었지만 미호는 구미호다. 구미호가 마음을 먹으면 사람을 홀리고 제 모습도 바꾸는 건 일도 아니라고 들었다. 이게 모두 미호의 섬뜩한 장난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구미호에 홀려 간이 빼먹혀 죽을지도 모른다. 여인은 소향의 바람을 비웃듯, 그녀의 발목을 조금 더 세게 잡고 붉은 입술을 위로 올렸다. 여인은 가느다란 발목이 저항하지 못하는 걸 알고 있는 것처럼 힘껏 잡아당겼다. 두 팔로 몸을 지탱한 채 엎드려 있던 소향의 몸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철퍼덕 정자 바닥에 나동그라진 그녀의 몸이 순식간에 발밑으로 끌어당겨졌다. 그녀가 깜짝 놀라 장영에게 손을 뻗었다. 그녀가 높다랗게 외쳤다.

“서방님!”

외마디 비명이 여운도 없이 도중에 끊어진다. 소향의 몸이 흰색 안개로 빨려 들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장영은 자신의 숨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부자연스러운 침묵 속에서 식은땀을 흘렸다. 휙휙 소리가 날 만큼 거세게 고개를 사방으로 돌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어느새 제 손을 내려다봐도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하얀색 공간에 갇혀 버렸다.

“그동안 행복했니?”

귓가에서 울린 목소리에 공포를 느꼈다. 장영은 소름이 오싹 돋는 왼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기대했던 여인의 모습은 오간 데 없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오른 방향에서 이어졌다.

“출세도 하고, 사랑도 얻고, 행복해 보이는구나, 요망한 것.”

장영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번에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장영은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꽉 쥐고 있는 주먹에 땀이 고였다. 어깨가 오들오들 떨려서 몸을 가누기도 어려웠다. 장영은 뒤로 한 발짝 더 물러나면서 가까스로 입을 벌렸다.

“가연……, 가연 그대요?”

떨리는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린다. 하늘에서 깔깔 웃는 화답이 들렸다. 장영이 휙 고개를 들었지만 뿌연 안개 너머로 정자의 지붕만이 흐릿하게 보일 뿐이었다.

“낭자, 모습을 드러내 보시오. 이러지 말고 나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십시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장영 앞에 옥색 치마가 펄럭였다. 치마를 왼쪽으로 여민 가느다란 손가락과 그 아래로 봉긋이 솟은 흰색 덧버선 코가 보인다. 몸을 모로 돌리고 서 있는 여인은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웃었다. 사방에 장막처럼 쳐진 안개에 거리감을 잃은 장영은 손을 뻗어도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는 여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은 장영의 착각이다.

멀리 있다 여긴 여인은 한 걸음 앞에 서 있었다. 그녀는 날카로운 손끝으로 장영의 턱 끝을 추어올렸다. 손톱으로 목 아래를 사르르 긁어내는 것이 묘하게 위협적이다. 장영은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여인을 내려다봤다. 여인의 깊은 눈매 안에는 홍옥 색 눈동자가 자리 잡고 있었다. 홀릴 정도로 아름다운 색이었다.

“네가 날 배신했어도, 그 허물을 용서하려 했다. 난 그대를 진심으로 사랑했어. 헌데 내 꼬리를 하나 떼어 내 시험을 통과했으면서도 또다시 요력을 탐내고 있다는 얘길 들었다. 정녕 사실인가?”

장영은 꿀꺽 침을 삼켰다. 파리하게 떨리는 손이 제 턱 끝을 올린 여인의 손을 감쌌다. 여인의 눈매가 매서워졌다. 그녀가 입을 벌려 양옆에 난 날카로운 송곳니로 위협했다. 그럼에도, 장영은 바싹 마른 입술을 벌려 간신히 대답했다.

“그대가 맞아. 꿈이 아니라 정말 그대구나.”

여인은 불쾌함을 여실 없이 드러냈다. 그녀는 붙잡힌 손을 뿌리치고 뒤로 물러나 이를 세우고 위협했다.

“경망하도다. 지은 죄를 반성하긴커녕, 스스럼없이 부인이 아닌 여인의 손을 잡다니. 그대의 허물을 내 일찍이 알아보지 못하고 용서한 것이 가장 큰 죄다!”

“아니오! 아니오, 가연! 난 정말 그대를 사랑했어!”

“닥쳐라. 가증스럽다. 혼약을 맹세한 사랑이 그리도 쉽게 변할 수 있다면, 그대에겐 날 때부터 믿음이란 것이 붙어 있지 않은 모양이다!”

“적어도 그대가 인간이라고 생각했을 때까지는 사랑했소.”

여인의 두 눈이 수축했다. 그녀는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자존심이 상했다. 상처 난 자존심에 소금을 뿌리는 기분이었다. 기껏 한다는 말이 인간일 때는 진실로 사랑했다는 소리라니. 요괴라는 정체가 밝혀지면 그 진실된 사랑이 단숨에 식어 퇴색된다는 이야기를 어찌 받아들이면 된단 말인가.

여인은 오래도록 정인의 배신을 마음에 품고 있었다. 무슨 이유로 사랑했던 여인을 버리고 떠났는지를 몰라 하염없이 울었다. 요괴라서 문제였다면, 단 하루만 버텼으면 됐다. 그걸 참지 못하고 도망쳐 버렸으면서 이제 와 인간일 때는 진심으로 사랑했다니 한 번 더 속은 기분이었다. 구차한 변명이다. 여인은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날카로운 송곳니가 도톰한 입술을 찌르면서 한줄기 가느다란 선혈이 턱밑으로 흘러내렸다.

“하루만……. 하루만 더 견뎠으면 인간 여자가 될 수 있었는데 그대는 그것도 견디지 못하고 도망쳤다. 그걸 사랑이라 말하더냐. 사랑이란 말 함부로 쓰지 마라.”

“인간이 된다고 해도 본질이 요괴인 여자를 집에 들일 수는 없지 않겠소.”

“그대는 얼마나 더 나를―!”

장영은 여인에게 한 걸음 성큼 다가갔다. 여인은 말을 맺기도 전에 다가온 장영을 보고 뒤로 물러섰지만 장영은 끝내 따라붙었다.

“아버지는 판서 장수적이라 불리오. 대대로 임금을 위해 일해 온 집안이고 나 역시 그 기대에 부응해 궁에 입궐할 몸이오. 그런 내가 아무리 사랑한다 한들, 어찌 요괴를 부인으로 맞을 수 있겠소?”

여인은 치맛자락을 움켜쥐었다.

“혼인한 시골 처자와 내 처지가 무엇이 다르다 생각한 것이냐.”

“집사람을 욕보인다면 과거에 사랑했던 그대라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오.”

“적어도 내가 본 그대는 집안을 핑계 삼아 나와의 사랑을 일방적으로 저버리고 꼬리까지 떼어 가는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았단 말이다.”

“요괴의 허물은 나라도 덮어 줄 수 없소.”

“그놈의 허물, 허물, 허물! 내가 그대보다 무엇이 못하다고! 내가 그대의 출세가도에 어떠한 발목을 잡는다고!”

여인은 두 눈을 부릅떴다. 수려하게 뻗어 있던 눈매가 푸들푸들 떨렸다. 촉촉하게 젖어 가는 눈가는 붉은빛을 머금었다. 금방이라도 슬픔과 증오가 뒤섞인 눈물이 또르르 흘러내릴 듯싶었다. 여인은 가녀린 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눈을 깜빡이지도 않았다. 혹여나 눈물이라도 흘러 두 볼이 젖는다면, 장영의 기억 속에서 가연이란 여인은 사랑에 상처받아 마음이 다친 사람 그 이상이 될 수 없을 것이다.

그녀는 필사적으로 감정을 정제하고 억눌렀다. 제 마음을 다스리는 능력이 탁월했던 고도를 본보기로 삼아 어지러운 마음을 정돈하려 애썼다. 애쓸 뿐이다. 감정이란 놈은 머리가 시킨다 하여 곧이곧대로 이야길 따르는 종놈이 아니다. 제멋대로 반발하고 또 상소를 올리는 놈이라 심장을 다스리려고 하면 할수록 더 거세게 뛰었다.

여인은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이렇게 추악하게 만나려고 그간 복수를 꿈꾼 것이 아니었다. 어째서 장영은 지나치게 여유롭고 저는 흔들리고 있는가. 슬프고 괴로워해야 할 이는 자신이 아닌 장영이다. 여인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상황이 속상했다.

“난 당신에게 하찮은 취급 받을 존재가 아니야. 그대에게 내 마음을 보답받지 못한 대가를 요구해도 정당할 만큼, 그만큼 그대에게 뒤처지지 않는 가문과 신분을 가진 여인이라고.”

흥분은 떨리듯이 흘러나왔다. 비록 입술을 꼭 깨물었으나, 목소리는 차분하고 정갈하게 들리게끔 애를 썼다. 손톱과 이빨을 세우며 달려드는 짐승의 모습 대신 인간으로서의 처우를 택한 것이다. 그녀의 반응은 놀랍도록 이성적이라 장영은 지금까지 지껄였던 ‘허물’에 대해 더는 입에 담지 않았다. 그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새 나왔다.

“이런 모습으로 재회하게 되어 부끄럽소. 그동안 잘 지냈느냔 안부를 묻고 싶었소만 내가 어른스럽지 못했소.”

“그런 소소한 인사를 주고받고자 온 것이 아니다. 그대에게 내 고통의 절반이라도 알려 주기 위해 온 것이다.”

여인이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장영은 똑같은 거리를 벌리고 물러났다. 그녀는 귀신같다. 귀신은 산 사람 같지 않은 처녀를 칭하는 괴담의 주인공이나, 그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분위기만으로도 귀신을 닮을 수가 있다. 여인의 얼굴에는 한이 서려 있었다. 어떻게든 마음속에 품은 복수의 검날을 끄집어낼 기세였다. 그 의지가 어찌나 확고하던지, 장영은 눈앞의 여인이 정말 가연이라 불리던 그녀가 맞는지, 아니면 죽어서 혼백이 되어 자신을 괴롭히러 나타난 것인지 좀체 분간하지 못했다. 하얀 안개로 뒤덮인 정자가 여인의 분위기를 더욱 음산하게 하여 장영은 침을 꼴깍 삼켰다. 여인의 두 눈에 맺힌 서슬 퍼런 안광을 보고 장영은 그녀가 흥분하지 않도록 최대한 부드럽게 타일렀다.

“내게 많은 상처를 입은 듯하오.”

“그걸 이제야 인정하는 건가!”

“그대를 상처 입힌 것은 내 몹시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만, 어찌하여 상처받은 즉시 내게 죄를 추궁하지 않고 수년이 지난 지금 나타나 위협을 하는 게요.”

“사람 마음이 그대의 말처럼 계산이 가능한가. 나 또한 지금 나타나 그대의 죄를 물을 생각은 없었다.”

“허면 왜 다시 나타났소.”

“그대는 내 꼬리를 잘라간 것도 모자라 한 번 더 욕심을 부렸다. 여전히 이 정자에 와서 구미호 꼬리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호시탐탐 탐욕스러운 눈을 빛내고 있더구나! 고약하고 추악하여 도저히 그냥 넘어갈 수가 없었다!”

“괘씸죄란 말이군.”

가연이 왜 화를 내는지 알게 된 장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인은 뻔뻔하고도 이기적인 장영의 행태에 할 말을 잊었다. 속이 답답해서 가슴을 퉁퉁 두드리고 싶었다. 차라리 장영이 자신을 잊었더라면 나을 뻔했다. 잊고 지냈더라면 복수를 결심한 마음이 이렇게 분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뒤끝 없는 통쾌함만 건지고 깔깔 웃었을 텐데, 장영은 과거의 정인을 앞에 두고도 진정한 사과 한마디 꺼내지 않았다.

아주 조금이지만 기대하던 것이 있었다. 자신을 보고 놀라거나 슬퍼하거나 자책하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러나 장영이 보여 주는 태도는 지극히 꼿꼿하고 기품 넘치는 선비의 모습이다. 요괴인 여인을 어찌 사랑하느냐고 물었고, 요괴였던 정인을 버리는 게 무슨 잘못이냐고 고개를 갸웃했다. 가연에게 상처를 준 일은 미안하나 그것은 자신을 속이고 인간 행세를 한 죗값으로 묻어 두라는 투였다.

가연은 분노를 넘어 마음이 공허해졌다. 이런 사람을 위해 그동안 인간 세상을 떠돌며 가슴 아파했다. 가슴을 앓았던 지난 세월이 모두 부질없어졌다. 그녀는 조금 힘이 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당신 따위 죽였어야 했는데.”

꼬리를 잘라 갈 때. 아니 그 이전에 멱을 따버렸어야 했는데. 왜 사랑에 잡혀 단호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는가.

그녀의 혼잣말을 곱씹은 장영은 지극히 평온한 말투로 화답했다.

“과거형이군. 지금은 그러지 못한다는 것인가.”

“지금이라도 죽여 버리고 싶구나. 죽이겠다고 달려들면 그대는 겁을 먹을 것이냐?”

“내게 복수하려고 다시 나타난 게 아니오? 그럼 죽이겠다고 날뛰어 보시오. 그대의 한을 내가 다 받아 주리라.”

“두렵지도 않느냐! 무섭지도 않아? 어찌 그리도 태평할 수 있지?”

“내가 죽으면 누가 손해일지 알기 때문이오.”

손해라니. 그야 당연히 생을 마감하게 된 장영의 손해 아닌가. 장영의 말을 이해할 수 없는 가연은 눈살을 찌푸렸다. 가연의 표정을 보고 장영은 생긋 웃었다.

“날 죽인 그대의 일족은 이 산 어딘가에 살고 있지. 아마 아버지께서 이 산을 모조리 불태워 구미호 사냥을 벌일지도 모른다. 나 같은 한낱 인간의 목숨과 그대 일족의 사활 중 무엇이 중하다고 보나?”

가연이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끔찍한 협박이었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기다란 손톱을 꺼내 장영의 목을 잘라 버리고 싶었지만, 머릿속까지 하얗게 만드는 장영의 언행에 온몸을 파들파들 떨기만 했다. 장영의 쌍꺼풀 없이 둥그런 눈엔 죄책감에 대한 동요가 담겨 있지 않다. 순해 보이는 강아지처럼 동그란 눈을 보면 아무리 모진 마음을 가진 이들이라도 금세 언 마음이 녹아 장영을 사랑스럽게 대했다.

혼인을 맺기 전에 그의 가솔은 장영을 도련님이라 부르며 졸졸 따랐고, 혼행을 마치고 한 가족을 꾸린 지금도 나이가 지극한 이들은 여전히 도련님이란 호칭을 썼다. 그는 생김새부터가 상대로 하여금 마음을 열게 한다. 또, 그 큰 눈망울에 학자의 신념과 정치에 대한 믿음이 있어 마냥 어린애처럼 보이지 않고 믿음직스럽게 느껴졌다.

처음 보는 이들에게도 호감을 주는 그 얼굴에는 눈을 씻고 찾아도 가연이 찾는 감정은 없었다. 장영이 조금이라도 가연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면, 그걸 확인한 것만으로도 가연의 기분은 한결 가벼워졌을 것이다. 작은 기대마저도 저버린 장영의 태도에 그녀는 소리를 죽여 웃었다.

장영을 만나면 죽이려고 했었다. 진심으로 장영의 목을 쳐버려서 자신을 배신한 인간 따위 기억 속에서 영영 잊으려고 했다. 인간에게 정을 준 가연 자신이 밉고, 그런 정을 매몰차게 저버린 옛 정인을 용서할 수 없었다.

죽이자. 그 생각만 수천수만 번을 하면서 사랑의 아픔을 속으로 삭였건만, 고도를 보고는 조금씩 생각을 바꾸기 시작했다. 지난 사랑에 오랫동안 괴로워하던 고도를 옆에서 가만 쳐다보면서 사랑을 배신한 놈들을 어떻게 처단해야 확실한지를 깨달았다. 자신 때문에 사랑하던 이가 죽었다고 생각한 고도는 언제나 악몽에 시달렸고, 결국 밤에 잠을 자지 않게 되었다. 하루 두 시진밖에 잠들지 않는 그는 꿈속에서 정인을 만나는 것을 가장 괴로워했다. 고도를 보니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이란 게 있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가연은 장영에게 새로이 복수할 방법을 찾았다. 죽음보다 더 큰 고통. 그 고통의 이름은 죄책감이다.

“잔인한 그대에게 내 마지막 선물을 주겠다.”

여인의 손가락이 장영의 미간을 향한다. 곧 희뿌연 안개가 목숨을 가진 짐승이라도 되듯 꿈틀거렸다. 시야가 일그러지고 사방의 공기가 탁하게 목을 조여 왔다. 장영은 온몸을 압박하는 기묘한 분위기에 놀라 뒷걸음질을 쳤다. 여인이 새빨간 눈을 뜨고 송곳니를 드러내어 말했다.

“앞으로 네 썩어빠진 눈엔 모든 여자가 불여우로 보일 것이다. 여자들은 하나같이 흉측한 귀와 꼬리를 달고 다니며, 얼굴은 기다란 수염과 털로 뒤덮여 있겠지. 네 부인은 특히 새까만 털을 가진 여우로 만들어 주마. 여우와 평생을 부대끼며 자식을 낳아 네 핏줄을 보존해 보아라. 네 아이의 얼굴이 털로 뒤덮여 있어도 그것이 환상인지 실제인지 분간도 못 할 만큼!”

치마 속에 가려져 있던 꼬리들이 요동을 쳤다. 우르릉, 우르릉, 공기와 정자와 산이 포효하듯 떨리는 속에서 장영은 두 눈을 크게 떴다. 섬뜩한 분위기를 자아내던 하얀 안개들이 섬광처럼 장영의 눈 속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장영은 커다랗게 비명을 질렀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지진이라도 난 양 흔들리는 정자 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머릿속에 박혀 있던 단아하고 참한 부인의 인상이 왜곡되었다. 추위에 목이 상하면 어찌하겠느냐며 특별히 사준 여우 털목도리가 온몸을 뒤덮었다. 동그랗고 앙증맞았던 눈은 세로로 길게 찢어지고, 오뚝 솟은 코는 인중 밑까지 늘어나 턱과 입이 한데 모여 짐승의 것으로 바뀌었다. 매일 창포물에 씻은 것처럼 윤기가 흐르던 머리에는 지푸라기보다 거친 털을 가진 귀가 솟았다. 하늘거리는 치마 속에는 커다란 꼬리가 드러나니, 그 모든 모습이 평생을 함께 살 부인이라도 참기 견딜 만큼 흉측했다.

부인에서 어머니로, 어머니에서 저잣거리 상인 아주머니로. 기억하던 여자들의 모습이 모두 여우로 바뀌었다. 서슬 퍼런 짐승의 눈깔이 저를 빤히 쳐다보는 잔상으로 말미암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장영은 식은땀이 흥건하게 배인 얼굴에서 손을 떼어 냈다. 두 손이 파르르 떨렸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못해 터질 것만 같았다. 설마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눈을 뜨자 가연의 모습이 보였다. 장영은 절망했다. 아름답던 여인은 온데간데없이 눈앞에는 흉측한 몰골의 여우 인간이 서 있었다.

여인이 배를 잡고 웃었다. 깔깔깔 터진 웃음소리가 오금을 저리게 만든다. 고개까지 젖히며 웃는 그녀의 파안대소에 장영은 식은땀이 흘러 들어간 두 눈을 깜빡였다. 점차 악이 받치면서 곱던 인상이 단숨에 찌푸려졌다. 장영은 두 손을 바들바들 떨 정도로 주먹을 쥐었다.

“가연, 그대는 옛이야기를 좋아했지. 특히나 선한 사람이 잘살고, 악한 사람은 벌 받는 이야기를 좋아했소.”

악이 받쳐 오른 목소리가 이성적인 장영과 어울리지 않는다. 분명 가연이 그렇게 보고 싶어 하던 장영의 모습이었다. 장영이 망가져서 제 몸을 추스르지도 못하는 모습을 죽기 전엔 꼭 보고 싶었다. 그럴 작정으로 이런 수고스러움을 하지 않았는가. 가연은 묵은 체증도 내려앉은 편안한 얼굴로 장영의 말을 들었다. 어금니를 악물며 말을 토해 내는 장영과 여유로이 웃고 있는 가연의 모습은 극심한 대조를 이뤘다.

“그런 그대가 생각하기에 벌해야 할 악인은 바로 나이기에 그만한 대가를 취한다고 보는 모양이오.”

“참으로 딱하다. 이제야 본질을 꿰뚫었구나. 그래 놓고 이 나라를 이끌 사람이 되겠다니, 머리도 나쁘고 눈치도 없어서 어디 쓰임새가 있겠는가?”

“비웃어라. 그래, 마음껏 조롱해라. 나 역시 그대의 어리석음을 알려 줄 것이다. 그대가 내 집사람에게 했던 전설의 교훈이 무엇인지 아시오?”

교훈 따위 관심 없다. 그리 내치려던 가연은 눈앞까지 다가온 장영의 분노를 직면하고 잠시 주춤했다. 장영이 더 가까이 다가왔다.

“요괴에게조차 사랑을 베풀었던 인간. 그 인간의 심성에 하늘이 감복하여 시험에 합격할 수 있는 상을 내렸으니. 한낱 금수가 인간과의 영원한 사랑을 꿈꾸었다는 허무맹랑한 바람에 대한 처단이요, 그런 요괴의 허물마저 감싼 인간의 사랑을 대대손손 알려 준다는 것이오. 요괴가 어찌 인간과 함께 지낸다는 거요. 그런 걸 어찌 상상할 수 있단 말이오.”

굳어 버린 가연을 장렬하게 비웃듯이 장영이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인간에게 당신들은 존재 자체가 악인 것을.”

가연은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뒷걸음질 쳤다. 장영의 비열한 얼굴이 보인다. 순한 강아지 같던 얼굴이 지옥도에나 그려지던 저승사자를 닮아 있었다. 야차 같은 얼굴로 욕설보다 더 심한 이야기를 입에 담아 가연에게 상처 주길 서슴지 않았다.

인간에게 당신들은 존재 자체가 악인 것을.

살아가는 것 자체를 부정하는 그의 말에 가연은 지금껏 보이지 않던 눈물을 한 방울 떨어트렸다.

바람이 바뀌었다. 높새바람이 차가운 밤공기에 눌린 듯 아래를 향하며 정자 주변을 감쌌다. 날카롭게 벼려진 바람이 외따로 분리된 듯한 가봉정자 안까지 휘몰아쳤다. 부자연스러운 기이한 바람이 눈물을 흘리는 가연을 감싼다. 그리고 영원히 걷힐 것 같지 않던 하얀 안개를 가르고 검은 물체가 튀어 들어왔다.

그것은 짐승처럼 야만스러웠다. 거침없이 달려드는 몸짓은 사냥개와 같았다. 저돌적으로 달려든 것이 장영의 몸을 올라탔다. 검은 짐승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장영은 쿵 소릴 내며 장자 바닥에 머리를 찧었다.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어지러운 머리를 흔들어 털자 제 몸을 내리누르고 있는 검은 것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도사님?”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금안이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 금안에 시선을 떼지 못하는 장영은 그 때문에 허리춤에서 검을 푸는 고도의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했다. 가연의 비명이 터졌다. 그녀가 고도에게 달려들어 허리에 매달렸지만 그보다 빠르게 고도의 검 끝이 장영의 얼굴을 향했다. 녹슬어 이가 빠진 흉측한 검은 사람을 죽이기도 어려울 만큼 낡아 있었다. 그 낡은 검은 장영의 왼쪽 눈을 정확하게 찔렀다.

“장영!”

가연의 비명은 장영의 고통에 찬 울음에 묻혔다.

“아아아아악!!!”

칼이 찌른 왼쪽 눈에서 피가 철철 흘렀다. 얼굴 한쪽이 함몰되어 흉측한 시체 형상과도 같았다. 장영은 왼쪽 얼굴을 감싸고 바닥을 뒹굴었다. 가연은 얼굴이 온통 눈물범벅이 되어 장영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시도뿐이다. 고도에게 뒷덜미가 잡힌 가연은 정자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땅바닥을 두어 바퀴 구른 여인의 몸이 하얀 연기를 뿜으며 작아졌다. 고혹적이던 얼굴과 여물어 있던 성인의 몸이 부피를 줄이고 쪼그라들며 자라지 못한 소녀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언제나 양 갈래로 묶었던 머리칼은 소녀의 등허리를 덮으며 떨어졌다.

산발이 된 소녀, 미호는 바닥을 구르느라 까져 버린 손바닥과 무릎에서 아픔을 느끼지도 못했다. 자신을 이리도 험하게 다루는 고도의 태도에 놀랐다. 그의 싸늘한 금안이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장영을 노려보고 있는 섬뜩함에 몸이 굳었다. 고도는 얼굴을 감싼 장영의 왼손을 발로 찼다. 이번에는 검 끝을 세워 왼손에 꽂아 넣었다. 다시금 터진 비명이 무색하도록, 고도는 지극히 표정이 없는 얼굴을 하고 그리 말했다.

“공자와 맹자가 그러더냐. 그들이 설파하고자 한 인본주의가 인간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그 외의 것을 모두 악으로 정하라고?”

무거운 목소리가 끝을 맺기도 전에 저만치 수풀이 바스락거리며 청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고도의 돌발 행동에 퍽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미호와 소향을 발견하자 잠깐 멈추어 섰다. 그러다 정자에서 벌어진 사태를 보고 급히 달려 나왔다.

“고도, 안 돼!”

달려오는 청사의 목소리도 듣지 못한 양 고도는 검을 세워 장영의 목을 겨눴다.

“너희 성리학자들은 하나같이 다 똑같다. 사람의 이로움만 따진다. 무리의 이익만을 계산한다. 그 속에서 희생당하는 다른 존재의 사정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겠지. 나와 미호는, 너희 말처럼 존재 자체가 악이고 징벌해야 할 대상이니까.”

달려오는 청사보다 한 발 먼저 고도의 검이 장영의 목을 내리 찔렀다. 안개 밖에 있던 탓에 미호와 남편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소향도, 고도의 손힘에 안개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던 미호도 얼굴을 가리고 비명을 질렀다. 뒤늦게 정자 위로 뛰어오른 청사가 고도를 뒤로 붙잡아 당겼지만 녹슨 검날은 이미 장영의 목을 관통한 후였다.

칼이 꽂힌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쏟아진다. 폭포처럼 쏟아진 피가 정자의 바닥을 적시며 나뭇결 사이사이를 메운다. 흘러넘친 비릿한 액체들은 나무 틈새로 떨어져 그 아래 흙바닥까지 물들인다. 목과 위팔이 분리가 되어 뒹구는 시체.

당연하게 떠올렸던 상상은 실체가 되어 눈앞에 펼쳐지지 않았다. 고도의 검은 분명히 장영의 목을 가르고 정자의 바닥까지 부쉈지만 장영의 목을 자르지는 못했다. 검이 목을 쳤는데도 목이 잘려 나가지 않다니. 장영은 꼼짝 없이 죽음을 기다리다 말고, 놀라서 굳어 버린 채 누워 있다. 목숨에는 이상이 없는 멀쩡한 모습이었다.

고도가 어떠한 도술을 부렸는지는 청사조차도 모르는지라, 청사 역시 당혹감을 숨기지 못하고 고도의 눈치를 살폈다. 고도는 돌연 뛰어온 청사의 힘에 밀려 검을 놓친 채 주저앉아 있었다. 검을 쥐어야 할 손은 비어 주먹만 움켜쥐고 있다. 분하고 화가 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다. 좀처럼 흥분하지 않는 고도가 입을 꽉 물고서 호흡을 고를 정도로 격렬하게 반응했다. 이런 상태로는 고도가 도술을 부려서 장영의 목숨을 살린 것 같지 않았다. 죽이려고 겁만 주고 물러났다고 하기엔, 도술을 시전한 고도의 상태가 그런 장난을 부릴 만큼 여유롭지 않았다. 검이 스스로 사람의 목숨을 잡아먹길 거부한 것 외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하나 제아무리 명검이라도 사람 목숨을 살리고 말고를 검 스스로 정할 수 있을 것인가.

장영에게 달려들어 그의 얼굴에 검을 찔렀는데도 고작 눈알 하나 터진 점. 목을 자르려고 칼을 세웠지만 상처 하나 입히지 못한 점. 모든 것이 의문이어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수 없으니, 지금은 그 호기심을 충족하기보다 고도를 추스르는 게 더 중요했다. 청사는 검을 챙겨 고도의 손에 쥐여 줬다. 어깨 너머로 고개를 돌리고 미호를 불렀다.

“미호, 얼른 이리 와!”

미호는 멍한 얼굴로 청사의 채근을 바라봤다. 청사가 다시 불렀다.

“빨리 오라고, 지진아!”

그녀는 반사적인 움직임만 보였다. 목이 잘렸어야 할 장영이 아직도 멀쩡한 모습에 시선을 떼지 못했다. 결국 느리게 움직이는 미호가 답답한 나머지, 청사가 직접 그녀의 손을 잡아당기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서방님……. 서, 서방님.”

심약한 소향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을 가까스로 추스른 뒤에 정자 위로 엉금엉금 기어갔다. 장영의 팔을 잡고 흔들었다. 얼이 나가 정자의 지붕만 올려다보던 장영이 소향을 보자 흠칫 놀라 엉덩걸음으로 물러났다. 공포에 질려 부인을 거부하는 모습이 퍽 심상치가 않다. 소향은 눈물까지 보이며 장영에게 다가갔지만 장영의 반응은 그대로였다.

“오, 오지 마라!”

“서방님!”

“오지 마라 하지 않았느냐!”

“대체 무슨―.”

“오지 말라고, 이 괴물 같은 년아!”

신경질적인 장영과 그런 장영에게 상처받아 더는 다가가지 못하는 소향 내외를 뒤로한 채, 청사는 고도를 등에 업었다. 미호에게 눈짓하자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이고 청사의 뒤를 따랐다. 눈앞을 가로막은 무성한 나뭇가지들을 모조리 부러뜨리며 길도 나지 않은 산속으로 더욱 깊숙하게 들어갔다. 산세가 워낙 험해서 어두운 밤에 이동하기란 쉽지 않았다. 어둠 속에서도 형형히 빛을 내는 청사의 두 눈이 아니었다면 이렇게 쉬이 발길을 옮기지 못했을 터다.

“야, 팔미호. 네가 어마어마한 요력을 내뿜으며 난리를 부린 통에 널 찾을 수는 있었지만 덕분에 금부까지 이쪽으로 오게 됐어. 고도가 지금 쫓기고 있으니 우선 자리를 피하고 보자.”

미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힘없이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청사가 뒤를 돌아봤다. 가봉정자 근처에 수많은 횃불이 일렬로 늘어서 있었다. 일렁이는 불빛들의 행렬에 더는 지체하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쯤, 등에 업은 고도가 청사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 청사의 어깨에 얼굴을 묻은 고도가 소리를 죽여서 웃었다.

“하하하. 똑같구나, 똑같아. 아하하하.”

억눌린 웃음소리가 슬프게 들려, 무슨 소리냐고 묻지도 못했다. 고도는 혼잣말처럼 웃음을 이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도 세상은 그대로구나. 나도 그대로야. 겉보기만 바뀐 것을. 내가 우민하여 아무것도 몰랐다. 하하하.”

엉망이다. 도읍에 오고 나서 고도도, 미호도 모두 엉망이다.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무리해서 일을 키우고 또 수습하지 못해 고통받고 있지 않은가.

“……멍청한 놈.”

청사는 고도를 고쳐 업었다. 달빛마저 들지 않은 산의 품속으로 파고드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

헐벗은 나뭇가지에 쌓인 눈이 바람을 맞아 나무 밑동으로 쏟아졌다. 우수수 떨어지는 눈은 희고 깨끗하여 다람쥐나 청설모가 지나간 흔적도 남지 않았다. 하지만 쌀가루처럼 보드랍고 포근해 보이는 눈은 겉모습과 달리, 뼛속까지 에는 추위를 선사했다. 눈밭을 밟는 미호의 발끝이 파랗다. 그녀는 추위에 꽁꽁 얼어붙은 발을 끌면서 고도의 뒤를 따랐다.

고개를 들면 하늘도 가릴 만큼 무성하게 자란 나무들의 모습이 을씨년스럽다. 고도를 추격하는 금부들이 닿지 못할 깊은 산이다. 멧돼지나 호랑이가 출몰해도 여상할 만큼 스산한 주변인 것이다. 달빛이 반사된 환한 눈길을 헤치던 미호는 우두커니 멈추어 섰다. 아무런 말도 없이 걷기만 하던 고도가 뒤를 돌아보았다. 미호는 소매로 눈가를 닦고 있었다. 억눌린 울음소리 같은 것이 들린다. 참으려 해도 꽉 막힌 목을 비집고 꾸역꾸역 흘러넘치는 흐느낌을 말리기는 쉽지 않았다. 바람 소리만 휘휘 부는 산속에 크지 않은 미호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심해.”

멈추어 선 미호가 결국 자리에 주저앉았다. 무릎을 세워서 고개를 푹 묻고서는 조그마하게 흐느꼈다. 울음소리가 텅 빈 산을 울렸다. 그 공허함이 서러워진 그녀의 두 눈에 커다란 눈물방울이 아롱졌다. 두 볼을 타고 쉴 새 없이 흐르는 눈물을 멈추지 못하겠다. 그녀는 코를 삼키고 입술을 악물면서 눈물을 멎게 하려 해보았지만 모두 말짱 도루묵이라. 장영 때문에 힘들어했던 세월이 비참하게 흘러내렸다.

“한심해. 한심해 죽겠어. 고작 이러려고 내가…… 내가…….”

목이 메어 뱉지 못한 말이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조금 더 매몰차게 버리고 싶었고, 그렇게 버려진 장영이 크게 충격을 받은 얼굴로 미호 자신을 바라보길 꿈꿨다. 상상 속에서 장영은 눈물을 흘리면서 미호에게 지난날을 사죄하곤 했다. 미호는 그런 장영에게 행여나 옷자락이라도 붙잡힐까 싶어서 거리를 두고 조소를 흘렸다.

조금 더 비참해져라. 서러워하고 힘들어하고 미안해하고 용서를 구하라. 장영이 나락까지 떨어져 더는 회생하지 못할 정도로 깊은 감정의 구렁텅이에 갇히길 바라지 않았던가. 지난 수년 간 상상해 왔던 그 모든 과정이 엉망이 되었다. 정작 눈물을 흘려야 할 사람은 오히려 두 눈에 맹독을 담고 미호를 증오했다. 미호는 사랑했던 이가 자신을 그렇게 볼 줄 몰랐기에 두렵고 겁이 나 뒷걸음질을 쳤다.

아등바등 여기까지 와서 보고자 한 게 고작 이런 결과라니, 미호는 가슴이 답답하여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 미워하고 또 미워했던 이가 고작 사납게 저를 쳐다봤다고 해서 그간 품어 왔던 한(恨)이 한순간에 무너질 줄 몰랐다. 미호는 단지 장영이 제게 사과하길 바랐다. 그냥 그 정도면 충분했다. 미움이고 한이고 복수고, 그 모든 것이 장영의 입에서 진심으로 속죄하는 ‘미안하다.’라는 한마디면 풀릴 일이었던 게다.

웅크려 앉아 울고 있는 미호의 앞으로 뽀드득, 눈을 밟는 소리가 다가왔다. 눈물로 여울진 미호의 시선 끝에 검은색 옷자락이 밟혔다. 소매에 눈물을 꾹 눌러 훔치고 고개를 들자 고도가 한쪽 무릎을 꿇어앉고 있었다. 표정이 없는 고도의 얼굴을 보자 미호는 다시 눈물이 났다. 고도를 보니 장영이 생각나서 고장 난 눈물샘에서 물을 콸콸 쏟아 냈다.

“마을에 내려가 엿이나 당과라도 사다 줄까. 단 걸 먹으면 기분이 나아진다고들 하지 않느냐.”

고도가 젖은 볼을 닦아 주며 그리 말하니, 미호가 잠긴 목소리로 애써 대답했다.

“……괜찮아. 됐어.”

“본디 현명한 여인은 남자가 뭘 갖다 바친다 하면 아닌 척하면서 다 받아들이는 거다.”

“됐거든? 너도 누구한테 쫓긴다면서 마을에 내려가 엿이나 살 상황이니?”

“저런, 실속도 챙길 줄 모르는 무식한 지진아로고. 때론 너 자신을 위해서 이기적으로 굴어도 된다. 지금이 바로 그 상황이다. 내가 허락하니, 나를 마음대로 부려 먹어 보아라.”

울적하던 미호의 얼굴에 약간이나마 생기가 돈다. 슬픔에 젖어 있던 표정이 어린아이처럼 뽀로통해져서는 조그마한 손으로 고도의 양 볼을 잡고 흔들었다.

“너나 실컷 먹어. 너야말로 기분을 좀 다스릴 필요가 있으니까.”

“내가 뭘 어쨌다고 시비냐.”

“아닌 척 굴어도 다 알아. 난 네가 그렇게 화내는 거 처음 봤으니까.”

한 번도 인간에게 악한 감정을 품어 본 적 없던 고도가 검을 들고 장영을 죽이려 했다. 인간에게 있어서만큼은 언제나 중도의 길을 걸으려던 고도가 말이다. 서전검은 인간을 죽일 살생능력이 없는지라, 고도가 장영의 목을 베려고 해도 그럴 수 없었겠지만 과연 고도의 손에 서전검이 아닌 평범한 검이 들렸어도 똑같이 행동했을까.

미호는 굳은 표정의 고도에게 손을 내밀었다. 고도가 마주 잡아 준 손은 차가웠다. 핏기가 빠져 희게 질린 손은 장영을 죽음으로서 단죄하려고 한 제 잘못과 나약함을 여전히 마음에 걸려 하는 것 같았다. 미호는 자신 때문에 고도가 순간 흔들려서 고도 스스로 믿고 있는 가치를 져버렸다는 것이 못내 미안하면서도 고마웠다. 고도가 감정적으로 나약해질 만큼, 그의 마음속에 미호라는 팔미호가 크게 자리 잡고 있다는 걸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라. 한 번도 좋아한다, 아낀다는 말도 없던 주제에 인간보다 요괴 편을 들어주다니. 이 무심한 남자는 이렇게 한 번씩 저를 감동시킨다.

“고도. 날 위해 웃어 봐. 내 얼어붙은 마음이 사르르 녹을 정도로 예쁘게 웃어 봐.”

고도는 의아함이 가득한 눈을 깜빡였다.

“어서.”

미호는 진심으로 보챘다. 고도의 얼굴을 잡아당기고 늘리고 비틀면서 억지로 웃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엉뚱한 부탁의 의도를 파악한 고도가 허탈한 듯 웃었다. 기분을 풀어 주겠다고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했더니만, 미호 이놈이 그 기회를 놓칠세라 머리 꼭대기까지 기어오르는 게다.

고도는 미호를 책망하는 대신 뒤를 돌아 청사를 바라봤다. 청사는 나무 위에 올라앉아서 고도가 챙기지 못한 서전검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다. 청사의 눈에 비친 서전검은 잔뜩 녹이 슬어 밝은 달빛도 반사하지 못했다. 이가 다 빠져 오래된 유물처럼 변해 버린 검에서 더는 살상능력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용왕의 눈을 찔러 전설이 되었다는 검이거늘, 명검의 모습은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초라했다. 제아무리 오래된 검이라도 이 정도로 부식하려면 수천 년은 족히 걸리지 않을까 싶었다. 청사는 검 자루를 잡았다가 놓으면서 비범한 검 특유의 느낌을 찾아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무리 봐도 볼품없는 검인데, 이게 조금 전에 보여 주었던 비범한 능력이 생각났다.

고도는 진심으로 장영에게 검을 휘둘렀다. 그만한 거리에서 검날이 어긋날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검날이 지나간 장영의 목은 멀쩡했다. 검이 스스로 사람을 살리고 죽일지를 결정한 건가. 아니, 그런 게 가능하긴 한가.

청사는 도통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검을 들여다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누군가 저를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진다 싶었더니만 나무 밑에서 고도가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 하며 청사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뜸을 들이는 사이에 고도가 갑자기 웃어 보였다. 입술만 호선을 그리는 작은 웃음인데도 청사는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왜 갑자기 고도가 저를 보고 웃냐고 묻기라도 할 셈인지 미호를 보며 눈을 깜빡였다.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청사와 달리, 미호는 눈을 반만 뜬 채로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그녀는 고도를 원망하듯 중얼거렸다.

“날 위해서 웃으랬지, 누가 다른 놈을 보고 그렇게 예쁘게 웃으래? 쳇.”

툴툴거리는 미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고도였다. 고도는 불순한 방법을 이용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미호가 원하는 표정을 지어 줬다. 상대의 웃는 얼굴을 보고도 미간을 찌푸리거나 화를 낼 정도로 심정이 모질지 않은 미호이기에 고도의 노력에 조금이나마 기운을 차렸다. 그녀는 고도를 일으켜 세웠다. 눈 위에 무릎을 꿇고 있느라고 젖어 버린 두루마기를 털어 주었다.

“있지, 고도. 인간들은 모두 요괴를 싫어해? 요괴와 사랑했던 과거를 수치스러워할 만큼?”

전보다 한결 밝아진 목소리다. 고도의 옆에 쪼르르 붙어 서서 고개를 올리고 묻는 것이 평소 대찬 여장부처럼 굴던 모습과 가히 흡사했다. 기운을 차려서 다행이다. 그럼에도, 고도는 미호의 물음에 쉬이 대답하지 못했다.

미호는 겉보기에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다. 또한, 하는 짓도 천둥벌거숭이 같아 사방팔방을 어지럽게 하고 나 몰라라 도망가곤 한다. 그래도 본질은 천 년 먹은 구미호인지라 인간보다 세상의 이치에 통달한 요물이다. 간혹 특유의 천진난만한 성격 때문에 세상의 본질을 까먹을 때는 있지만, 그것을 영영 잊을 정도로 어리석지 않다. 그녀는 장영을 단순한 사랑의 시련으로 여겼었다. 꼬리를 잘리고도 실패한 사랑에 대한 충격과 슬픔에 잠시 요괴의 본분을 잊고 지냈다.

그녀가 실패한 것은 낭만적인 사랑도, 종족을 초월한 인간과의 결실도 아니다. 요괴와 인간은 합일할 수 없다는 만고불변의 이치를 사랑에 빠진 여심 때문에 외면하고 있던 것이다. 고도는 고민한 끝에 미호의 질문에 대답했다. 그 소리는 사뭇 뜬금없기까지 했다.

“요괴가 살아가는 이유가 무엇이더냐.”

미호는 걸음을 멈췄다.

“중요한 질문이야?”

“내가 언제 허튼소리를 한 적 있더냐.”

“항상 그러잖아.”

“난 언제나 본질을 꿰뚫지.”

“그 본질이란 놈이 한심하네. 너 같은 인간에게 꿰뚫리고.”

“누구도 못 뚫으니 내가 뚫지 않겠느냐.”

“또 헛소리.”

“본질이다.”

진지하게 부정하는 얼굴을 보니 눈이 금색으로 번쩍이는 것만 빼면 평소와 다름이 없다. 어떤 음흉한 꿍꿍이나 삿된 마음을 가지고 한 질문은 아니었다. 아무렴, 고도에 대한 신뢰가 높은 미호는 눈을 또르르 굴려 최대한 정성스레 대답했다.

“환생하고 윤회하는 인간과 달리, 요괴는 한번 태어나면 그것으로 생에 마침표를 찍어. 세월을 거듭하며 덕과 업을 쌓는 인간과는 달라. 우리의 삶은 한 번뿐이고 이 혼은 한번 죽으면 영원히 소멸해. 그래서 너희보다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하며 쾌락과 즐거움을 위해 과감한 행동을 하는 것이다. 살아가는 이유를 물었지? 대답은 간단하구나. 한 번뿐인 여생을 즐기고자 함이야.”

말하고 나니 그것이 정녕 맞는 말인지라. 어째서 스스로 알고 있던 사실을 그 오랜 세월 잊고 지냈는지, 미호는 허탈한 웃음을 짓고 말았다. 웃다 보니 눈물이 차올랐다. 차오른 눈물이 미호의 붉은 눈동자를 더욱 충혈되게 만들었다. 그 어떤 흐느낌도 없었고, 두 눈에 차오른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지도 않는다. 다만 두 눈에 고여 있는 모습이 속 시원하게 제 슬픔을 토로하지 않은 미호의 심정을 닮은 듯하여 안쓰러웠다. 고도는 미호의 두 볼을 감쌌다. 눈가에 닿은 손가락이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잊지 않았구나. 나와 함께 다니면서 네가 인간처럼 나약해졌을까 봐 걱정했다. 내 걱정은 기우였구나. 넌 누가 뭐라 해도 완벽한 요괴다.”

“……응, 나 요괴 맞아. 고작 한 남자 때문에 엉엉 울면서 가슴에 상처가 사무치는 그런 연약한 인간 여성들과는 달라.”

미호는 첫 정인에 대한 상처에 심신의 기력이 다한 듯 보였다. 고도는 미호의 얼굴을 부드럽게 만져 줬다. 미호가 무리를 해서 강한 척하지 않길 바랐고, 이번 상처에 남은 생이 엉망이 되지 않기를 원했다. 미호는 씩씩하고 강한 모습 그대로 남아 주길 바랐다.

“고작 인간 따위에게 상처 입지 마라. 인간은 마음 가는 대로 움직이는 덧없는 존재라 언제나 모순과 변덕을 일삼는다. 네 말대로 환생과 윤회를 거듭하기 때문에 덕과 업을 반복해 쌓아 가니 장영이란 자 역시 그런 허물에서 벗어나지 못한 게다. 너희와 다르게 인간은 참으로 나약하다. 내 곁에서 그 증거들을 보지 않았느냐.”

“너는 그런 인간들과 달라.”

“다르지 않다. 나 역시 모순덩어리다. 나는 진심으로 장영을 해하려고 했다. 그의 목숨 값을 기어코 받아 내려고 검을 휘둘렀다. 정말로 그를 살해했다면 나는 끝없는 죄책감에 빠져 두 번 다시 헤어 나오질 못했을 것이다.”

“죽이려고까지 한 건 날 위해서였어?”

“네가 아니었다면 그렇게까지 이성을 잃지 않았겠지.”

“아냐. 너 자신을 위해서였을 거야. 장영의 삐뚤어진 인간관에 고도, 너란 존재도 포함되잖아. 너 역시 그들에겐 악한 존재로 여겨지니까. 그러니까 화내도 돼. 죽이려고 한 것도 너무 자책할 필요 없어. 네 존재를 부정하는 놈을 죽이려 한 게 뭐 어때서. 그래도 장영이 죽지 않은 건 네게 더없이 잘된 일이야. 소향에게서 그녀의 어머니는 물론, 남편까지 앗아 갔으면 넌 지금보다 더 힘들어했을 거야.”

화젯거리가 소향으로 넘어가자 미호의 표정에 수만 가지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한때는 순박한 시골 처녀로, 어제까지는 잠자리를 제공해 주는 보은을 아는 처자로, 이제는 과거에 사랑을 나눴던 남자의 부인으로.

미호는 그녀를 다시 만난다면 결코 예전처럼 살갑게 대할 자신이 없다. 장영에게 퍼부은 저주처럼, 그녀에게도 저주를 부을지 누가 알까. 어찌 인연의 고리가 꼬여도 이렇게 복잡하게 꼬일 수 있는지 세상이 야속하기만 했다. 미호는 저와 소향의 처지를 떠올리다가 슬그머니 고도의 눈치를 살폈다. 어쩌면 악연의 끈으로 단단하게 묶인 이는 자신과 소향 그리고 장영이 아닐지도 모른다. 소향과 고도는 그보다 더 큰 죄로 묶여 있을 것만 같았다.

“그 여자에겐 아무 설명도 안 해줄 거야? 단지 널 고향 마을의 은인쯤으로 착각하게 두고 떠날 거야?”

고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모로 눕히며 묘한 시선을 줄 뿐이다. 오랜 시간 고도와 함께 지낸 미호조차도 쉽게 가늠할 수가 없는 반응이다. 미호는 고도의 왼손을 응시했다. 검을 다루는 무인답지 않게 손바닥엔 굳은살이 없다. 요령을 부리며 시도 때도 없이 도력을 낭비하는 도사의 고운 손으로 여기기에도 비약이다. 깨끗하고 보드라운 손바닥은 그의 태생을 반영하는 천민의 손도 아니오, 도사나 무인의 손도 아니다. 고도의 말처럼 모순덩어리인 손이다.

미호는 고도의 왼손을 아플 정도로 세게 잡았다. 손바닥 전체를 잡던 힘이 손가락을 향했다. 힘은 곧 분산되어 네 번째 손가락으로 향하니, 온기와 생기가 감도는 다른 네 손가락과 달리 약지의 감촉은 차갑고 딱딱하기만 했다. 그것은 생명이 없는 손이었다. 죽은 자 특유의 살덩어리일 뿐이다.

“그거 알아? 여기서 북쪽으로 몇 고개만 더 넘으면 내가 살던 마을이 나와.”

높낮이가 없는 덤덤한 목소리로 그리 말하는 미호를 향해서 고도가 느리게 맞장구를 쳐준다.

“그렇겠지. 토월산은 오래전부터 구미호들의 고향이었으니.”

“널 만나고부터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드네. 지쳐서 조금 쉬고 싶다는 생각. 네가 말한 대로 나 자신한테 조금 이기적으로 변해 볼까 하는 그런 생각. 집에 돌아가면 먹먹한 가슴이 나아지진 않을까.”

고도와 미호의 이야기를 무덤덤하게 듣던 청사가 그 순간만큼은 두 눈을 함지박만 하게 떴다. 그는 재빨리 나뭇가지를 껑충 밟으며 뛰어내렸다. 하얀 눈보라가 미호와 고도의 옆으로 튀었다. 앗 차가워, 미호는 꼬리털을 빳빳하게 세우고 청사에게 반발했다.

“너 지금 고도 버리고 어디 간다는 거야?”

“뭐니 대롱이, 분위기 파악도 못 하고 끼어드니.”

“분위기고 뭐고, 갑자기 왜 집에 돌아간다고 그래? 그 장영이란 작자 때문에 그래? 내가 죽여 준다니까?”

“그런 거 아니야.”

“그럼 왜 그래.”

“내가 한심해서 그래. 내가 한심해서 너희랑 같이 못 다니겠어.”

미호는 입술을 오물거리며 한참을 망설였다. 그 이유를 말하자니 수치스럽기까지 해 쉬이 입을 뗄 수 없었다. 두 뺨에 불그스름한 열이 올랐다. 매혹적으로 뻗은 눈매마저 일그러뜨렸다.

“내가 이런 것까지 생각하는 게 너무 부끄럽다. 내 자신이 너무 꼴불견이잖아. 정말이지, 집에 들어가서 부모님께 흠씬 두드려 맞고 싶을 지경이야. 이렇게 나약한 내가 분하고 한심해서 잠도 안 올 지경이라고.”

힘들거나 지쳐서 이제 가족 품으로 돌아간다 말하면 멍석말이라도 해주리라 마음먹은 청사였다. 어디서 어울리지 않게 약한 척이냐며 잔소리를 해주려 했다. 그러나 미호가 자신에게 분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보고 그만 당황했다. 고고한 구미호가 스스로 나약함이 부끄럽다고 인정하고 있다. 그 자존심 강한 요괴가 비참한 표정으로 울먹인다. 첫 정인이 배신했다 하여 아프고 슬프다 하기 전에 그런 정인에게 미련과 집착을 거두지 못하는 자신을 보고 못마땅해서 훌쩍였다.

“고작 사랑 따위에 이렇게 휘둘리는 게 어디 있어. 정말 싫어. 나란 애 너무 싫어…….”

미호는 할 말을 잃고 쳐다보는 청사에게 시선을 주었다. 뭐라 위로해야 할지 몰라서 그저 망부석처럼 서 있는 청사를 빤히 올려다봤다. 착하기론 청사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듯싶다. 어쩌면 사랑에 상처받아 한심한 꼬락서니가 되는 일은 자신보다 청사가 더 호되게 겪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것이다. 상대가 고도라면 더욱더 확실하게.

미호는 고도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무 말 않고 고도를 한참이나 응시하다가 그의 왼손을 바라봤다. 미호는 손을 뻗어 고도의 왼쪽 약지를 만지작거렸다. 말랑말랑한 살 안에 딱딱한 뼈가 심지처럼 박혀 있는 네 번째 손가락이다. 미호는 그 손가락에 살포시 입을 맞췄다.

“너 동해 갈 때까지 손가락은 내가 책임지기로 했는데…… 약속 못 지키겠다. 미안해. 더는 힘들어서 너랑 같이 못 다니겠구나.”

……손가락?

이야기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한 청사가 고도의 왼손으로 시선을 옮길 때였다.

미호의 몸에서 빛이 났다. 환하고 밝은 빛이다. 미호가 가진 백발의 머리칼보다 찬란하여 새까만 산속을 대낮같이 비추었다. 미호를 둘러싼 희고 고운 빛이 커졌다. 그것은 커다랗게 부풀어 금세 한 장 길이에 다다랐다. 빛이 가루처럼 날리는 가운데 거대한 흰색 여우가 모습을 드러냈다.

몸통은 한 장 길이로 산골 호랑이에 버금가는 덩치다. 그 뒤로는 몸보다 더 큰 꼬리들이 공작새의 깃털처럼 나풀거렸다. 여덟 개로 갈라진 꼬리가 부드럽게 허공을 휘저을 때마다 산속에 머문 갖가지 혼들이 숨을 죽이고 뒤로 물러나게 했다. 보는 것만으로도 신비롭고 경이로운 흰색 구미호다. 홍옥 같은 붉은 눈동자가 잠깐 고도와 청사를 바라보았지만 뽀드득 눈 소리만 울리는 조용한 발걸음으로 어둠 속을 향했다.

“가연아.”

어둠 속에서도 환하게 빛을 발하는 여우가 멈춰 섰다. 그것은 어깨 너머로 고개를 돌리고 고도를 응시했다. 고도는 그녀를 향해 웃어 보였다.

“연꽃은 진흙탕 속에서 자라는데도 그 더러움이 때 타지 않는 단아하고 기품이 있는 꽃이다. 네 모습 또한 그 수많은 연꽃 무리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게 빛나는 것일 텐데. 내가 모자라서 그런 널 지켜 주지 못했다.”

청순하고 고결하며 단아하고 기품 있는 꽃으로 대표되는 연꽃. 그중에서도 군계일학이었던 미호를 향해 고도는 진심으로 작별 인사를 했다.

“미안하다.”

여덟 개의 꼬리가 살랑거린다.

“정말 미안하구나.”

꼬리들이 다시 한 번 서로 감싸듯이 부드럽게 엉키며 흔들렸다. 꼬리들은 눈송이처럼 하얀빛을 흩뿌렸다. 인간보다 더욱 인정을 잘 알았던 백여우는 나무 사이를 걸었다. 하얗게 빛나는 동물은 서서히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처음에는 꼬리와 몸통이 흐려졌고, 그다음에는 어둑한 나무 사이를 밝은 점처럼 비추던 빛이 작아졌다. 아무런 말도 없이 구미호는 산속의 어둠에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다. 구미호가 지나갈 때까지 숨을 죽이고 있던 산이 비로소 평소의 기운을 되찾았다.

청사는 미호가 사라진 어둠에서 눈을 돌리지 못했다. 한낱 요괴일 뿐인데도, 그녀와의 이별을 쉽게 인정할 수 없었다. 미운 정이 붙은 가슴이 공허하다. 몇 밤을 함께 지새우고 토끼를 잡아먹고 고도를 사이에 둔 채 신경전을 벌이던 깐깐한 여우의 빈자리가 지나치게 컸다. 지금이라도 어둠 속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고 “농담이었어!”하고 달려와도 이상치 않을 정도였다. 청사 자신이 이 정도로 허한 마음이 드는데, 그녀와 함께 수년을 같이 지낸 고도는 어떠할까. 청사는 고도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쳐다봤다.

“……고도.”

청사의 목소리에서 침중한 그의 심정이 묻어났다. 고도는 미호가 사라진 방향을 응시하며 침묵을 지킬 뿐이다. 주변을 빼곡하게 매운 나목(裸木)처럼 고도도 뿌리를 내린 양 미동도 않고 가만 서 있길 반 시진째. 천천히 발걸음을 떼어 미호가 사라진 반대 방향을 향했다.

“가자.”

평온하고 일상적인 목소리다. 미호와의 이별에 감흥이 없는 무덤덤한 표정이다. 참으로 잔인한 인간이다. 어찌 인연의 맺고 끊음이 이리도 한결같을 수 있느냐. 질책이라도 늘어놓으려던 청사는 곧 고도의 붉어진 눈시울을 보고 합죽이가 되었다. 인간은 때론 말과 표정과 몸짓으로 다 표현하지도 못하는 감정에 함몰되어 비틀거린다는 사실을 잠시 잊고 말았다.

“어디로?”

청사는 불안정해 보이는 고도의 손목을 꼭 잡았다.

“어디로 갈 거야?”

“……서쪽으로.”

“도깨비는 데려가지 않을 셈이야?”

“여태껏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보면 그놈이 무슨 생각이 있는 모양이다. 괜찮다. 소와는 쉽게 끊어질 연이 아니다. 그와는 반드시 만날 수 있을 거다.”

“하지만 팔미호는…….”

“요괴는 요괴들 틈에서 살아야 하는 게 이치에 맞다. 그녀가 몇 년 동안 지진아처럼 방황했지만, 이렇게라도 깨닫고 돌아갔으니 그녀의 결정을 존중해 주어라. 혹여나 소가 제 왕국으로 되돌아간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그렇게 이성적으로 말하면서도 두 눈에는 슬픔을 가득 담고 있으니 이처럼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경우가 또 어디 있을까. 청사는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는 고도를 뒤쪽으로 끌어당겼다. 주춤거리면서 끌려온 고도를 품에 안았다.

빠르고 불규칙적으로 뜀박질하는 심장 소리가 들렸다. 고도는 청사의 급작스런 포옹을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몸에서 힘을 풀었다. 청사는 고도의 가슴이 안정을 되찾을 때까지 침묵으로 포옹해 주었다. 그는 곧 고도의 다리 옆에 힘없이 떨어트린 왼손을 보고 입매를 괴롭게 일그러트렸다.

미호가 한참이나 만지작거렸던 네 번째 손가락. 고도의 그 네 번째 손가락이 보이지 않았다. 왼손에 붙어 있는 손가락이라고는 달랑 네 개뿐, 약지는 아주 오래전에 잘린 듯 뭉툭한 돌기처럼 솟아 있었다. 그동안 구미호의 요력을 이용해서 없는 손가락을 있는 것처럼 행세했던 것일까. 그러한 거짓 손가락의 전의도 목적도 모르지만 청사는 몹시 속상하고 슬픈 기분이 들었다.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게 있다. 죽지 않는 몸을 가진 대신에 죽음에 준하는 상처에 익숙해져야 했다.

고도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죽음과 고통에도 익숙하고 만남과 이별도 자연스러워진 고도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아팠다. 보통 사람이라면 평생 한두 번 겪을 이별과 고통스러운 일을 고도는 일상처럼 겪고 있다. 그래서 고도는 이별이든, 신체적인 고통이든, 모든 종류의 아픔에 익숙해지고 초연해지려고 애를 쓰는지도 모른다. 고도는 청사의 어깨에 이마를 푹 묻은 채로 물었다.

“대롱아, 너는 내가 끔찍한 살인자라면 어찌할 것이냐.”

“약속했잖아. 나는 너와 계속해서 함께 있겠다고. 네가 어떤 죄를 지었다 해도 곁에 있을게.”

“말처럼 쉬운 문제가 아니다. 인간들 법도를 따르면, 나 같은 인간은 삼 대를 멸하다 못해 가문의 핏줄 자체를 끊어 버릴 만큼 커다란 죄를 지었다.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세상을 혼란스럽게 했다. 그래도 나를 좋아할 수 있겠느냐?”

“응.”

“덜떨어진 녀석 같으니라고. 조금은 신중하게 생각해 보란 말이다.”

“나는 네가 살인자건, 괴상한 도사건, 금안을 가진 이상한 인간이건 중요하지 않아. 지금 나한테 중요한 건 너랑 계속 같이 있고 싶다는 거니까.”

“맹목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감정이다. 네 두 눈과 귀가 먹게 되는 감정인데, 대체 내 어디가 좋아서 그러는 게냐. 난 그런 과분한 관심과 사랑을 받을 자격이 없다.”

“나도 모르겠어. 네가 원한다면 이유를 찾아볼게. 그래서 널 이해시킨다면 그땐 나를 믿어 줄 것이냐?”

청사의 어깨에 푹 묻혀 있던 고개가 들렸다. 고도는 자신을 한 점 흔들림 없이 내려다보는 청사를 보면서 힘없이 웃었다. 지친 것처럼 보이는 미소였다. 그럼에도, 체념하거나 포기하는 기색은 없으니 그 위태로운 감정에 청사는 고도를 안고 있는 팔을 풀지 못했다. 세상에서 가장 복잡하고 어려운 인간 같으니라고. 그런 남자 때문에 하루하루가 행복한가 하면, 마음 졸이는 긴장의 연속이기도 하며, 속상함까지 더불어 알게 되니 자신의 감정을 모두 가져간 그를 어찌하면 좋겠는가.

고도는 청사의 턱에 살포시 입을 맞췄다.

“이유가 없는 지금도 널 밀어낼 생각은 없다.”

그만 가자. 속삭이듯 부탁하는 고도를 위해서 청사는 스르륵 두 팔을 풀었다. 고도가 눈에 젖어 얼어붙은 신발로 눈길을 헤쳤다. 그 누구도 밟지 않아 살얼음이 진 딱딱한 눈밭에는 고도와 청사의 발자국이 남았다. 두 사람이 만들어 낸 흔적은 나뭇가지가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떨어트린 눈 덩어리들에 지워졌다.

사람 간을 파먹는 구미호. 고 요망한 것들은 언제나 인간이 되길 꿈꾼다. 부처께서 이르길 요괴에겐 윤회와 환생의 기회가 없으니 태어나서 일생만 살아갈 수 있는 죄 많은 존재라 하였다. 그리하여 요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인간이 되길 소망한다. 인간만이 유일하게 윤회를 할 수 있다 하니 환생을 통해 자신이 지은 죄를 씻고 업을 가벼이 하며 극락에 들 기회를 어찌 마다하겠는가. 하나, 그 많은 요괴 중에서도 구미호는 인간이 되는 것보다도 인간과의 사랑 자체를 꿈꾼다.

수많은 전설 중, 유일하게 구미호만이 ‘사랑’을 위해 인간이 되길 소망한다.

제사장. 안녕 미호 끝

1661020410302.jpg

한산뫼는 산마루가 구름에 닿을 만큼 높고 가파르기로 유명하다. 수십 년 전에 이 산의 북녘 외딴 마을에서는 아이 하나가 태어났다. 아이는 겨드랑이 밑에 날개가 돋아 하늘을 날아다니는 천인의 일족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가난한 무지렁이 집안에 비범한 장수가 태어나면 왕의 노여움을 사고 마을 전체에 역귀가 돈다며 아이를 죽이기로 했다. 아이는 커다란 돌에 깔려 죽기 전에 말했다.

“제가 죽거든 무덤에 콩 닷 섬과 팥 닷 섬을 함께 묻어 주십시오.”

뒤늦게 아기 장수 소식을 전해 들은 관군이 몰려와 무덤을 파헤쳤다. 그 안에는 아이와 함께 묻은 콩 닷 섬은 말이 되고 팥 닷 섬은 군사가 되어 막 일어나려는 참이었다. 무너진 무덤 안으로 햇빛이 비추자 곡식으로 만들어진 말과 군사들은 스러졌고, 아이 역시 비통하게 울었다. 아기 장수를 태우려고 날아온 용마는 완전한 부활을 이루지 못한 아이를 등에 업고 한산뫼 골짜기로 사라졌다.

한산뫼에 사는 사람들은 아직도 두려움과 걱정에 쉬이 잠을 자지 못한다. 죽지도 살지도 못한 아기 장수가 저를 죽인 마을 사람들을 벌하러 언제 다시 나타날는지, 그것이 가장 큰 근심과 걱정거리라 하더라.

*아기 장수 설화에서 모티브를 차용했습니다.

1661020410302.jpg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