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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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극이 파하기 전에 고도와 청사는 은행나무에서 내려왔다. 둘은 더는 둘러볼 것이 없다며 우물동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장터에서 마을까진 걸어서 반나절이 걸린다. 먼 길은 아니지만 그마저도 귀찮은 고도는 부러 사람들이 없는 장터 뒤쪽으로 향하더니만 소매 안에서 부적 네 개를 꺼내 던졌다.

가을 하늘을 수놓고 있던 높새구름들이 부적 위로 몰려들었다. 복스러운 옆집 개 솜털 같기도 하고, 밥 지을 때 모락모락 피어나는 김 같기도 한 구름들이 부적 위에서 한데 뭉쳐지고 얽히며 사람 둘은 거뜬히 태울 만한 것으로 변모했다. 청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도가 구름 위로 뛰어오르는 모습을 구경했다.

“구름 도사란 건 말로만 들었지, 실제로 보긴 처음이야.”

“그래, 그 소감은?”

“신기해.”

청사의 해맑은 감탄에 고도는 팔짱을 꼈다. 두 손을 겨드랑이 사이로 끼운 채 청사를 지그시 쳐다보는 눈빛이 장난스러웠다.

“그 표현은 나보다 너에게 더 잘 어울리겠다만. 자, 잡아라.”

고도는 어서 타라며 손을 내밀었다. 청사가 고도의 손을 잡고 구름에 올라타자마자 구름은 하늘 위로 높게 떠올랐다. 청사가 하늘에서 내려다본 인간 세상은 가히 장관이었다.

이제 추수가 한창인 논에는 무거운 낱알로 고개를 숙인 벼들이 바람 따라 금빛 물결로 출렁였다. 그 옆에는 감이나 밤을 수확하는 손길도 있었다. 대형 축사에는 흑돼지들이 올망졸망 모여 산중턱에서 풀을 뜯고 있었다. 울긋불긋 단풍이 물든 산의 모습도 논밭의 따뜻하고 포근한 금색 물결에 동참했다. 단풍나무의 이파리가 많이 떨어진 산등성이 부근에는 노루나 사슴들이 돌아다니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다. 넉넉하고 평화로운 풍경이다. 보름만 지나면 싸늘한 초겨울 날씨로 돌입하는데, 이만하면 겨우내 먹을 걱정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사는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풍경에 흠뻑 취해 있다가 고도를 쳐다봤다. 금빛 세상만 아름답다 여겼더니, 진정 아름다운 것을 깜빡 잊을 뻔했다. 저무는 태양이 끌고 온 노을빛에 반사된 고도의 모습은 저 아래 풍경과 비할 바가 못 되었다. 느긋하게 뜬 눈으로 하늘을 구경하는 옆모습이 한 폭의 그림이다.

청사는 몸을 일으켜 고도 곁에 바싹 붙어 앉았다. 고도의 손을 꼭 잡았다. 하늘을 올려다보던 고도가 청사를 바라보자 청사는 고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비녀에 헐겁게 묶여 있던 머리카락이 창고의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다.

“다 왔다.”

청사의 날리는 머리칼만 매만져 주던 고도가 구름 아래 펼쳐진 우물동 모습을 보고 그리 말했다.

“금방 도착하네.”

“도술을 쓰면 편하지.”

“그럴 거면 장에 나설 때도 쓰지 그랬어.”

“가는 길도 모르는데 아무 데서나 막 남용하면 누구 좋으라고.”

“호오, 고도, 네가 그런 쪽으로 절제한단 말이지.”

“구름으로 네놈을 모셔 줘도 불만이고, 모셔 주지 않아도 불만이구나. 이런 변덕스러운 뱀 같으니라고.”

장난스럽게 타박하는 고도에게 청사는 씩 웃어 보이기만 했다. 구름이 주막 위에 도착하자 고도는 그 높이를 낮춰 주었다. 덕분에 청사는 둔덕 위로 가볍게 뛰어내릴 수 있었고 고도는 손에 쥐고 있던 네 개의 부적에서 도력을 풀었다. 구름을 만들어 냈던 부적이 효력을 잃자 정교하게 그려진 도술문양이 차츰 흐려졌다. 고도는 어느새 쓸모없는 종이쪼가리로 변해 버린 부적들을 허공에 가루로 날려 버렸다. 오랜 시간 능력을 방출하고 있던 탓에 고도의 얼굴은 제법 피곤하게 보였다. 고도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내뱉으면서 둔덕 위의 주막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아, 이제 왔어?”

모락모락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부엌 앞에서 녹두전을 맛있게 뜯어먹던 미호가 청사를 발견하자마자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고도보다 앞서 주막에 들어섰던 청사는 자신은 물론, 뒤따라오는 고도까지 맞이해 주는 미호에게 장터에서 산 선물을 들어 보였다. 때깔 좋은 옥색 옷감이었다. 저 천방지축 머슴아이나 다름없는 미호가 과연 바느질을 해서 옷을 지어 입을지 혹은 오색빛깔 실로 수를 놓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하지만 과거에 성인 여성이었다는 말처럼 어느 여인이 그러하듯 예쁜 옷감을 보고 좋아라 했다.

옷감을 받으려고 냉큼 달려오던 미호는 금동이를 쳐다봤다. 아이는 개구지게 달려오는 대신 진지한 표정으로 곡괭이를 들고 성큼성큼 걸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선물을 달라고 조르려는 기색이 아니었다. 비장한 얼굴이 심상치 않았다. 금동이는 처음에는 조금 빠르게 걷던 수준이었다. 그 움직임이 단숨에 속도가 붙었다. 청사의 발치로 쌩 하는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은 청사를 뒤따라오던 고도를 향해 돌진했다. 청사는 기겁하여 외쳤다.

“고도!”

쨍.

두 개의 쇠가 부딪히는 소리가 울렸다. 한쪽은 녹슨 검이었고, 반대편은 곡괭이였다. 고도가 민첩하게 서전검을 뽑아 대응하지 못했다면 저 시퍼렇게 날이 선 곡괭이는 고도의 허벅지에 박혔을 터다. 고도는 이 상황에 놀라 눈만 동그랗게 떴다. 금동이가 대뜸 곡괭이를 들고 달려든 것도 놀랐으나, 그 실력이 어린아이라고 보기 힘들 만큼 대단했다. 곡괭이처럼 중심을 잡기도 힘든 농기구로 어른이 든 검을 상대한 것이다.

쇠붙이가 날카롭기론 이가 빠진 검보단 곡괭이 쪽이 한수 우윈지라, 철끼리 접전이 길어질수록 이 빠진 칼날이 녹 가루를 떨어트리며 부들부들 떨렸다. 고도는 금동이가 장난으로 덤벼든 것이 아님을 파악했다. 아이는 진심이었다.

“대롱이 나서지 마라. 우리 둘만의 굿판이다.”

청사가 짐을 내려놓고 다가오려다 그 소리에 발걸음을 멈추었다. 고도는 두 눈을 부리부리하게 뜬 금동이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어린 녀석이 벌써 자존심과 신념을 가지고 있다. 손에 쥔 것은 곡괭이이나, 눈빛은 어느 장군이 대검을 다룰 때와 다를 바가 없었다. 크게 될 위인이다. 두려움 없이 다가오는 용기를 가지고 있지 않나. 처음 만난 날, 대추나무에서 내려올 때부터 알아봤으나 이 정도로 배포가 큰 줄은 몰랐다.

“손님맞이가 퍽 거칠지 않느냐. 다짜고짜 괭이를 들고 덤비는 경우는 처음 보는구나. 안 그러나, 소년.”

퍽 거리감이 드는 말투였다. 금동이는 고도가 거리감을 두고 물러서는 행동에 동요하지 않으려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미안. 이럴 작정은 아니었는데 어머니가 부탁하셔서.”

어머니란 말을 듣고 고도는 슬쩍 아이 너머를 바라봤다. 부엌에서 밥 짓던 주모가 손에 묻은 물기를 치마에 닦고 나와 고도와 제 아이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녀는 아이가 갑자기 어른에게 달려든 것보다도, 그 기습 공격을 유연하게 대처한 고도에게 더 놀란 듯 보였다.

고도의 목구멍 너머에서 흐음, 하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돌아가는 꼴이 제법 기이하였다. 마을 꼴도 이상하더니만 그 마을에 사는 주모와 주모의 아들도 여간 이상한 게 아니다.

고도는 주모에게서 시선을 뗀 후, 서전검을 살짝 비틀었다. 칼날의 각도가 달라지자 얇은 곡괭이 날이 변화된 검의 무게중심을 감당하지 못해 뒤로 밀렸다. 아이가 뒤로 밀리자 고도가 검을 잡은 손을 바꾸어 방어가 아닌 공격의 자세를 취했다. 아이도 눈을 빛내며 공격으로 일관하던 자세를 방어에 힘 쏟았다.

아주 기묘한 일이었다. 고도와 금동이가 바꾼 자세는 조금 전과 정반대였다. 고도가 방어할 때의 자세를 금동이가 취하고 있었고, 금동이가 공격할 때의 자세를 고도가 똑같이 따라하고 있었다. 거울이라도 앞에 세워 둔 양 똑같은 둘의 모습에 청사는 물론, 주모와 미호도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무학관 무술?”

주모의 입에서 탄성과 경악이 섞인 말이 나왔다. 미호가 놀람을 금치 못한 눈으로 휙, 고개를 돌려 주모를 올려다보았다. 주모는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무학관이란 말을 정년 저 여자가 발설한 것이 맞다면 어찌 한낱 아녀자의 몸으로 궁중 최고 무예의 이름을 아는 건가. 그것도 자세 한 번 본 것만으로 구분할 수 있을 만큼 자세하게.

미호의 두 눈이 흉흉한 기운을 머금었다. 심상치 않은 주모의 정체에 열 손가락의 손톱들이 길게 늘어나 여차하면 목줄을 따버릴 채비를 단단히 했다. 미호가 주모를 붙잡아 왕실 무예를 아는 연유에 대해 낱낱이 캐묻기 전이었다. 뜻하지 않은 기합 소리에 고개가 절로 돌아갔다. 아이와 고도의 대련이 이전보다 더 날카로워졌다.

고도는 왼발을 앞으로 뻗어 검을 잡지 않은 왼손을 함께 움직였다. 권법과 검술이 조화된 특이한 무술이었다. 한 번도 이러한 무술을 상대해 본 적 없는 사람이라면 퍽 당황하여 뒤로 내빼야 할 텐데, 금동이는 달랐다. 아이는 자신의 상박을 가격하려는 재빠른 고도의 공격을 오른팔을 세워 막았다. 그러고는 오른팔을 세운 채 손에 쥐고 있던 곡괭이를 돌려 잡아 고도의 왼팔에 찍었다.

고도는 곡괭이 날을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금동이는 곧바로 몸을 돌려 오른발과 오른손을 앞으로 뻗었다. 아이의 오른발이 고도의 왼쪽 발목을 걷어차는 동시에 손에 쥔 곡괭이가 다시 한 번 허벅지를 내려찍었다. 그러자 고도는 아이의 발을 발바닥으로 차버리고, 곡괭이는 손목을 돌려 그 날의 방향 역시 급선회해 버렸다.

아이는 고도보다 힘이 부족한 대신 짐승처럼 민첩하게 움직였다. 고도는 일격 하나하나가 힘 있고 절제된 대신 아이 같은 기민함은 없었다. 누구 하나 제대로 된 유효타를 주지 못하고 공격과 방어를 수십 번도 더 주고받을 뿐이었다.

“하아, 하. 아저씨, 꼭 우리 아부지 같아.”

아이의 숨결이 거칠어지고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아이의 몸도 차츰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고도는 눈에 띄게 무뎌진 곡괭이를 가뿐히 막으며 금동이의 말을 받았다.

“날 닮았다면 네 아버지는 필시 미남이셨을 게다.”

이런 상황에서 농담이나 하다니. 금동이는 숨을 가삐 몰아쉬며 불만을 토했다.

“헉, 헉. 울 마을에서 검 좀 다룬다는 어른들도, 하아, 이 정도로 나를 갖고 놀진 않는데.”

“마을 사람 중에 검을 다루는 이가 있더냐.”

“후우, 무, 물론.”

“그렇다면 비교 상대가 잘못되었다. 이 마을 사람들은 고깃살과 거죽을 얻기 위해 살생을 위한 검을 다루고 있다. 너와 내가 주고받는 무학관 무술이 추구하는 목표와는 다르다.”

“무, 뭐? 어? 어떻게…… 허억.”

어른을 상대하기 벅찬 아이가 그사이 호흡이 흐트러지며 움직임이 둔화되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고도는 서전검을 고쳐 잡아 칼등으로 아이의 손을 철썩 쳐 내렸다. 녹슬고 무딘 검 등이라지만 그 철의 무게마저 세월의 풍파에 씻기진 못한 법이다. 아이는 검에 손등을 얻어맞고 곡괭이를 땅에 떨어트렸다. 고도가 안다리를 걸어 아이를 자빠트리자 금동이는 그 자리에서 뒤로 벌러덩 넘어지고 말았다. 어린아이가 다칠까 봐 걱정하는 세심한 움직임 따위 찾아볼 수 없었다. 고도는 사력을 다한 아이를 진심으로 상대했다. 바닥에 대자로 뻗어 가쁜 숨을 몰아쉬는 아이를 일으켜 주지도 않을 만큼 말이다.

“무학관 무술은 말이다.”

고도의 목소리가 차분하고 조용하게 울렸다. 조그만 가슴이 오르락내리락, 숨을 바로 쉬느라 정신없는 아이가 숨소릴 죽이고 고도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원래 힘없는 노약자와 아녀자 그리고 신체 일부에 이상이 있는 자들을 위한 무술이었다. 몸과 마음을 단련하는 다른 무술과 달리, 있는 그대로의 상태에서 적을 상대하지. 검을 손에 쥐어도 찌르고 가르지 않는다. 상대의 공격을 막고, 피하고, 흘려야 한다. 적을 공격하고자 개발한 기술이 아니라 나를 보호하고자 만든 것이다. 그 뜻을 알겠느냐.”

어린 금동이는 고도가 하고자 하는 말을 완벽하게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께 직접 하사받은 무학관 무술을 고도처럼 근본도 모르는 객인이 안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그 객인은 오히려 아버지보다 무술의 본질을 명확하게 꿰뚫은 듯했다.

“아저씨가 그걸 어떻게 알아? 아저씨도 무학관 소속이야?”

고도가 잠깐 하늘을 보다 아이를 내려다봤다. 아버지의 친구라는 대답을 바랐던 금동이에게 고도는 무심하게 한마디를 던질 뿐이었다.

“지나가는 한량이다.”

거짓말도 그런 거짓말이 없다. 아이가 왜 사실을 말해 주지 않느냐고 되묻기도 전에 고도가 미호에게 눈짓을 보냈다. 녹두전을 쥔 채 넋이 나가 있던 미호가 그 눈빛에 번쩍 정신을 차렸다. 고도가 더 말하지 않아도 어떤 의미에서 자신을 부른지 알았다. 같이 다닌 세월이 얼만데, 그 정도 눈치채는 건 일도 아니다. 미호는 빙글 몸을 돌려 주모를 붙잡았다. 금동이와 고도의 접전을 홀린 듯이 바라보고 있던 주모가 미호의 손길에 꺅하고 비명을 질렀다. 미호의 여덟 개 꼬리가 맹렬하게 흔들렸다. 음산한 요기가 주모를 사정없이 옭아맨 채 놔주지 않았다. 그제야 고도가 아이를 지나쳐 주모를 향해 다가왔다.

“이보오, 주모. 아들에게 직접 내게 공격을 하라 일렀다 들었소만.”

자그락, 자그락. 마당의 상판을 피해 다가오는 발길에 자갈들이 밟혀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발걸음은 느리고 여유로웠지만 오히려 그것이 주모의 얼굴을 창백하게 만들었다. 미호의 요기에 붙잡혀 오도 가도 못하던 주모는 두 손으로 입을 막고 부들부들 떨다가 자리에 주저앉았다. 풍성한 치마를 쥐고 무릎을 꿇어앉은 자세에 고도는 다가가던 걸음을 멈췄다. 아이는 고도를 공격하고, 어미는 고도 앞에 무릎을 꿇다니. 갑작스런 사태에 청사와 미호는 끼어들 틈조차 없었다. 고도 역시 이런 상황이 낯선 듯 쉬이 입을 떼지 않았다. 제 앞에 머리를 조아린 주모의 정수리만 가만히 쳐다볼 뿐이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어르신을 알아뵙지 못하고 이런 뒤숭숭한 짓을 벌이고 말았습니다. 부디 노여워하지 마소서.”

고도는 여전히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혹여나 고도의 노여움으로 제 목이 떨어질까 봐 겁을 먹은 주모는 파르르 떨리는 몸을 가누지도 못한 채 재빨리 말을 이었다.

“어르신의 차림새와 풍기는 분위기를 보고 도력이나 법력을 사용할 수 있는 분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여, 실력이 출중하시다면 우리 마을 문제를 해결해 주십사 부탁을 드리려 했습니다. 설마 무학관 무술을 아시는, 왕실에 계시던 분이실 줄은 몰랐습니다. 생각이 짧았습니다. 어르신을 시험하려 하다니, 제가 어리석었습니다. 부디 노여움 거두어 주소서.”

고도의 표정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마을 사람도 풀지 못하는 마을의 문제를 외간 남자의 실력을 시험해 본 뒤 부탁하려 했다는 말이렷다.

“그대는 누구지?”

마을 문제에 앞서 주모의 정체와 그 아들이 누구에게서 무학관 무술을 배웠는지 알 필요가 있었다. 왕실 밖으로 함부로 유출할 수 없는 비급을 이런 시골 마을의 아녀자와 아들이 알아선 안 된다. 고도가 문제 삼는 부분이 어떤 것인지를 깨달은 주모의 얼굴은 파랗게 질렸다. 바른 대로 고할 수도, 그렇다고 거짓을 지껄일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저, 저는…….”

꿀꺽, 침을 삼킨 주모가 조아리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열 걸음도 더 밖에 서 있는 고도를 쳐다보는 얼굴에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그녀는 고도의 눈치를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답했다.

“십 년 전까지 자량의 기녀로 있던 금분이라 하옵니다.”

자량의 기녀! 도읍에서 체계적으로 기녀 수업을 받아 왕과 관료들을 상대하던 여자가 어찌 도읍이 아닌 이런 산골 마을에서 주막 일을 한단 말인가.

미호는 기겁하여 입을 쩍 벌렸다. 왕에게 평생을 바쳐야 하는 기녀가 시골로 도망친 것도 모자라, 다른 남자의 씨를 받아 아이를 낳아 기르고 있다. 아니, 왕과 배를 맞추고 아이를 임신한 채 여기로 도망쳤다 해도 큰일이다. 궁에서 이 소식을 알면 두 모자만 목숨이 위태로운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지엄한 국법을 어긴 것도 모자라 왕실을 우롱한 대역죄를 물어 이 마을 전체를 불지를 수도 있는 건이었다.

고도는 미호와는 다른 의미로 놀란 상태였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 고도는 그 자리에서 굳어 버렸다. 손에 헐겁게 쥐고 있던 서전검을 세게 움켜쥐고는 한참이나 그 충격에 눈을 깜빡이지도 못했다. 금분이라 자칭한 주모는 고도가 감정을 억누르는 반응에 놀라 파드득 떨며 고개를 다시 조아렸다. 무언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되었다. 고도의 심상치 않은 모습에 주모의 사색은 물에 빠진 시체처럼 창백하게 질려만 갔다.

한참이나 서슬 퍼런 기운을 풍기며 서 있던 고도가 서전검을 검집에 꽂았다. 스르릉, 울리는 공명음이 녹슨 칼답지 않게 맑았다. 고도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주막을 벗어나려 했다.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기자 청사와 미호도 당황했다. 청사는 얼떨결에 고도에게 다가가 그의 팔을 잡았고, 미호는 주모를 붙잡고 있던 요기를 풀면서 쩔쩔맸다.

“고도.”

청사가 말리는 손길도 뿌리친 고도가 주막 문을 밀어내고 나가려는 순간, 미호의 요기에서 풀려난 주모가 재빨리 고도를 향해 뛰었다. 그녀는 고도의 앞길을 막아서서는 다시 한 번 무릎을 꿇고 앉았다. 고도가 그녀를 피해 주막을 벗어나려 하자 주모가 큰 소리로 외쳤다.

“어르신, 살려 주십시오, 살려 주십시오! 이대로 나가시면 안 됩니다. 관아에 저와 제 아이를 고발하지 말아 주십시오. 아이를 데리고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 화전만 일구며 조용히 살겠습니다. 살려 주십시오, 어르신!”

바짓가랑이를 잡고 몸을 바닥에 붙인 주모가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 납작 엎드려 어깨를 떨며 흐느끼는 주모는 고도의 발등에 이마를 붙인 채 말을 이었다.

“아이의 아버지는 무학관 제 일 정규군 소속 최산해 영감이십니다. 현재 아흔이 넘어 낙향하시고 무학관 무술을 적은 ‘무학도감’을 엮고 계십니다. 아이는 바깥 영감에게서 무술을 배웠습니다. 영감이 우리 모자를 돌봐 줄 수가 없으니, 몸을 지킬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살려 주십시오, 어르신 부디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이야기를 잠자코 듣던 고도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적잖이 화가 나서 표정은 야차처럼 무시무시했지만, 그 울분을 주모에게 모두 쏟아 내진 않았다. 고개를 조아리고 있던 주모가 때마침 고개를 들다 고도와 정면에서 눈을 마주쳤다.

곱상한 아낙네였다. 시골에서 논밭을 일구거나 마을 사람들처럼 짐승을 잡아다 고기나 거죽을 장에 내다 팔 백정이 아니었다. 사근사근한 주모라 생각했건만 고작 십 년 전까지 왕 앞에서 예기를 보이는 기녀였던 것이다. 자량 기녀로 무학관이 있는 왕실까지 출입했다면 외모가 검증된 것은 물론, 집안도 확인되었고, 글도 읽고 쓸 줄 알 것이다. 아니, 글만 다룰 뿐이랴. 시를 읊고 금도 뜯으며 춤도 추었겠지. 그 편하고 아름다운 생활을 포기하곤 무관 사람과 배가 맞아 이런 시골 마을로 도망친 기구한 팔자에 절로 미간이 좁혀졌다.

하필 친아비랄 것이 무학관 장(長)이었던 최산해 영감이라니. 고도는 한참이나 주모의 얼굴을 복잡한 심경으로 쳐다보았다. 분노가 앞섰으나 그 뒤에는 안타까움이 이어졌다. 이런 곳에서 만날 여자가 아니었다. 그녀나 자신이나 뜻하지 않은 기연으로 얽힐 팔자인 듯싶었다.

“하나 묻겠다. 왜 저 아비의 이름을 고도라고 일렀느냐.”

고도가 처음으로 주모를 피하지 않고 똑바로 진실을 물었다. 주모는 대답을 지체하지 않았다.

“바깥사람께서 지극히 존경하시던 스승의 존함이 바로 ‘고도’라 들었습니다. 저는 전하가 아닌 다른 남자와 정을 나눌 수 없는 몸입니다. 하여 제 사정상 친부의 진명을 아이에게 알려 줄 수가 없어서 생각해 낸 것이 영감의 어르신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름의 의미를 잘못 알려 주었다. 최산해에게 무술을 사사한 이는 외로운 섬(고도孤島)이 아니다.”

“금동이가 그리 말했습니까. 제 아비의 이름이 ‘외로운 섬’이라고 말입니다.”

“그렇다.”

주모는 수차례 입을 떼었다 붙였다 하며 대답하길 망설였다. 어찌하면 좋을지 몰라 고도와 제대로 눈조차 마주치지 못했다. 어미가 눈물이 흥건한 얼굴을 푹 숙이고 쩔쩔매는 모습에 불안함을 느낀 금동이는 몸을 추스르자마자 어머니의 품에 가 안겼다. 어머니가 머리 짧은 아저씨와 검을 섞어 보라 했을 땐, 이 정도까지 일이 커지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자세한 사정은 몰라도, 어머니가 임금께 큰 죄를 지은 것만은 눈치로 아는 금동이었다. 그만큼 눈치 빠른 금동이가 보기에 저 머리 짧은 남자는 어머니에게 있어서 임금만큼이나 어려운 상대임이 분명했다.

“제, 제가 왕실에 있을 때, 고도라는 분의 이야기는 많이 전해 들었습니다. ‘선왕의 벗이자 아버지였고 스승이셨던 그분은 늙지도 죽지도 않는 불가사의한 이라. 손을 하나 휘두르면 천지가 개벽하고 호랑이와 매가 그를 감싸며 지킨다. 신선들은 항상 그의 행동에 집중했고 옥황상제와 염라대왕, 바다용왕은 그를 단군이 보낸 사자(使者)라 칭했으니, 그 어찌 세상을 바꿀 인간으로 부족함이 있겠는가.’”

침을 꼴깍 삼킨 주모가 창백한 얼굴로 고도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그녀는 입술을 달싹이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저는 선대의 임금께서 남기신 글귀를 보고 그 정체불명의 고도라는 분을 바깥영감 성함으로 대신 사용한 것입니다.”

“선왕이 남긴 글귀라고?”

“‘그대는 외로운 섬이라, 그 섬에 들어갈 수 있는 이는 짐뿐이니.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허락지 말고 오직 짐만을 받아 들여라.’”

고도보다 청사가 더 불쾌한 감정을 표했다. 주모의 저 말이 그 어떤 왜곡도 없이 왕의 입을 통해 그대로 구현된 것이라면, 왕은 고도에게 굉장히 집착하고 있었다는 소리나 다름없다. 고도를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는 하나의 섬으로 만든 것도 모자라, 그곳에 갈 수 있다는 게 왕뿐이라니. 청사는 고도의 손을 붙잡았다. 손이 붙잡힌 고도는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주모는 눈앞의 남자를 왕이 남긴 글귀 속의 ‘고도’와 관련된 이라곤 추호도 생각하지 못했다. 단지 무학관 무술을 배울 만큼 왕실과 관계된 이라, 이대로 보냈다간 자신과 아들의 생사가 불분명하단 사실만 짐작할 뿐이었다.

고도는 주모를 일으켰다. 허겁지겁 달려 나와 무릎을 꿇은 탓에 치마 밑단이 찢어지고 무릎이 깨져 피가 나는 모습이 보였다. 고도는 치마를 털어 주고 피가 흐르는 아녀자의 다리를 차마 만지지는 못한 채 소매로 그 핏물을 닦아 주었다.

“나와 이야기 좀 하겠소.”

고도는 나직하게 청했다. 그 목소리에는 아무런 감정이 묻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명령에 가까운 청이란 사실을. 궐내에서 배워 온 기녀 출신 주모였다.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고도를 방 안쪽으로 안내했다. 청사의 손을 뿌리친 고도는 주모를 따라 마당을 가로질러 방으로 들어갔다. 청사는 방문을 닫고 시야에서 사라지는 고도의 모습을 눈 하나 깜짝 않고 지켜봤다. 그의 어깨는 축 쳐져 있었다. 구름을 타고 여기까지 오게 된 피곤함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무엇이 그를 이토록 피로하게 만든 것인가.

조그마한 방 안에 촛불이 켜지고 두 남녀의 그림자가 창호지에 아른거리자, 미호는 꼬리를 흔들면서 심란한 기색을 내비추었다. 고도에 이어 미호까지 전에 없이 진지하고 복잡한 태도를 취하자 청사는 더 이상 가만히 있지 못했다.

“미호, 이게 다 무슨 일이야? 고도가 왕실이랑 무슨 일 있었어?”

주모의 이야기는 맥락만 얼추 유추한 정도였다. 왕실에서 지냈던 금분이란 기녀와 고도라는 당사자들 외에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비유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이 많았다. 그 때문에 가슴이 답답해진 청사는 미호를 붙잡아 다그쳤다. 이게 왜 또 시비를 거냐며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꼬리털을 바짝 세워야 할 새끼 여우가 이번에는 잔뜩 풀이 죽어서 입술만 우물거렸다. 미호가 기가 죽은 모습은 처음 봤다. 청사가 도리어 놀라서 눈을 함지박만 하게 뜰 정도였다.

“고도는 선대 임금의 벗이었어. 왕에게 있어 고도는 지음(知音)이자 어버이이자 정인보다 소중한 사람이었어. 문제는 왕이 고도에게 집착이 심했단 거야. 고도가 진지한 인간관계를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가 정도 이상으로 고도만을 바라보던 친구의 영향이라 들었어. 그의 아들 역시 아비의 병을 물려받아서 결국 고도가 왕실을 나왔다 들었지만. 이게…… 생각보다 심각했던 일이더라고. 자세한 건 소밖에 몰라.”

왕 얘기만 나오면 악몽을 꾸고 더 깊은 산속으로 숨어들던 고도의 전적이 떠오른 미호는 머리를 흔들어 털었다. 그녀는 오래전에 죽은 사람의 망령에 시달리고 싶지 않았다. 왕이라는 이야기 자체에 진절머리를 치면서 지붕 위로 뛰어올랐다.

“왕과 관련된 일만 생기면 침착함을 유지 못 하던데. 이번에도 무슨 실수 할까 봐 겁나네.”

초가지붕 위에 치마를 펼치고 드러누운 미호는 달구경을 하면서 남은 녹두전을 입 안에 털어 넣었다. 청사는 미호 말에 대꾸하지 못하고 창호지만 바라봤다. 주모가 한 말이 자꾸만 머릿속에 되풀이되었다.

그대는 외로운 섬이라, 그 섬에 들어갈 수 있는 이는 짐뿐이니.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허락지 말고 오직 짐만을 받아들여라.

몹시도 불쾌하고 열 받게 만드는 말이었다.

*

삼경이 되자 종소리가 울렸다. 복작거리며 활기가 넘치던 마을의 거리가 순식간에 조용해지더니 집집마다 촛불을 끄고 숨소리를 죽였다. 불을 켠 집안은 몇 곳 없었다. 푸줏간과 주막 단 두 채뿐이었다. 푸줏간이야 높게 쌓은 나무 담 때문에 안이 보이지 않았지만 주막은 달랐다. 금동이가 제 방에 들어가 불을 끄고 취침하고 남은 불빛은 안채뿐임을 마을 아래에서도 훤히 알 수 있었다.

어른거리는 촛불이 창호지 위에서 흔들렸다. 그 빛 속에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앉아 있는 남녀 그림자가 있었다. 간혹 차를 마시는 손길이 있는 것만 제외하면 참으로 미동 없는 두 사람이었다. 목소리도 조용하여 무슨 대화를 하는지 밖에 있는 이들은 듣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이야기를 시작하고 두 시진이 지나고서야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초가지붕 위에 앉아 일 각에도 수십 번씩 불빛이 보이는 창을 쳐다보던 청사는 그림자가 일어나자 따라서 몸을 일으켰다. 고도가 문을 열고 나왔다. 생각이 깊어진 표정이 여간 심상치 않았다. 청사는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고도가 이대로 주막을 벗어나 어디론가 사라질까 봐 재빨리 지붕 밑으로 손을 벌렸다.

“고도.”

청사가 부르자, 고도는 지붕 위에서 손을 뻗은 청사를 바라봤다. 얼른 손을 잡으라 보채고 있었다. 고도는 청사의 손을 붙잡고 지붕 위까지 올라갔다. 청사는 누가 고도를 빼앗아 가기라도 할 것처럼 그를 품에 꼭 안은 팔에서 힘을 풀지 않았다. 고도는 청사의 어리광을 받아 주면서 함께 히히덕거릴 겨를이 없었다. 청사 품에 안긴 채로 지붕 위를 휘휘 돌아보더니만 미호에게 손짓했다.

“굿 한판 하러 가야겠다. 모두 방울과 소금 대신에 요기(妖氣) 잘 챙겨라. 가다 흘리지 말고.”

“굿이라니? 내가 널 도와야 할 만한 문제 생겼어?”

“그래, 퍽 안타깝게도 네 고사리 손을 빌려야겠구나.”

“인간들 왕이랑 관련된 문제야?”

“으음? 여기서 임금 이야기가 왜 나오지?”

“네가 주모랑 왕 얘기를 하더니만 금세 표정을 바꿨었잖아. 갑자기 굿판 하자는 것도 그거랑 관련된 거 아니야……?”

뒷말을 흐리면서 눈치를 보는 미호를 향해 고도는 손을 뻗었다. 미호의 머리를 마구잡이로 헝클어뜨렸다. 그녀는 움찔거리며 두 귀를 흔들었다. 고도는 미호의 귀마저 쭉쭉 잡아당겼다.

“이 커다란 귀는 장식이로구나.”

“으, 으익! 뭐얏?”

“귀는 큰데 제대로 듣는 게 없으니, 원.”

놀림 받은 미호가 얼굴을 확 붉히고선 목소리를 높였다.

“왕 때문에 굿하려는 거 아니야?”

“내가 언제 도사에서 박수무당으로 직업을 옮겼다더냐. 왜 왕을 위해서 굿을 하느냐.”

“너, 구, 굿한다고…….”

“굿판처럼 신명나는 요괴 퇴치가 기다리고 있다는 소리였다. 마음대로 내 직업 바꾸지 마라.”

고도는 미호의 귀를 한 번 더 잡아당기고 나서야 손을 놨다. 미호는 위로 쭉쭉 늘어난 귀를 부여잡고 입 안에 바람을 불어 넣었다. 빵빵해진 볼을 보고 고도가 손가락으로 푹 찔러 바람기를 빼는 등 제법 우스운 상황을 연출했다. 하지만 청사는 둘의 장난질에 동참하지 않았다. 그는 진지한 표정으로 고도를 한참이나 응시했다. 고도는 저를 무섭게 쳐다보는 청사와 허리에 둘러진 청사의 팔을 번갈아 쳐다봤다. 달래려면 미호보다는 청사가 먼저였던 것 같다. 아무래도 순서가 바뀐 모양이다.

“우리 대롱이가 뭐에 그리 삐쳤는지 모르겠구나. 내 조금 있다 달래 주마.”

그래도 끌어안은 팔을 놓을 생각을 않자 고도는 청사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소야, 이리 오너라.”

손가락을 입술에 대고 휘익 바람을 부니 휘파람 소리를 듣고 푸른 도깨비불 하나가 어디에선가 날아왔다. 넘실거리며 날아온 도깨비불이 지붕 위에 멈추었다. 그것은 앉을 자리를 찾는 것처럼 한동안 그 주변을 배회했지만 도깨비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오는 대신 불길 속에서 두꺼운 눈썹과 턱수염의 형태만 만들었다. 달 밝은 저녁에 지붕 위에서 도깨비 꼴로 있다간 주모가 보고 거품을 물 것이다. 이렇게 얼굴 표정만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화력을 조절하는 게 최선이라 생각했다.

“무슨 일이냐.”

시퍼렇고 뻘건 불길 속에서 콧수염에 가려진 입술이 달싹였다. 불길이 타오르는 눈동자는 평소처럼 기세등등했다. 도깨비불의 모습이나 본연의 모습이나 우직하니 힘을 앞세우는 도깨비의 분위기는 변함없었다. 고도는 도깨비불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고도의 두 손바닥에 조심스럽게 내려앉은 도깨비불이 혹여나 고도에게 불길이 옮겨 붙을까 봐 화력을 줄였다.

“밤중 씨름 한판 하자꾸나. 상대는 요괴다.”

씨름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게 도깨비라는 종족의 습성이다. 호랑이에게 떡 던져 주는 것만큼이나 씨름판 보여 주면 눈이 뒤집히는 것이 도깨비거늘. 씨름이란 소리에 좋다고 방방 뛰어야 할 도깨비는 그 일반적인 반응과 달리 불길만 화르륵 피워 올렸다. 어제 밤중에 온 마을을 돌아다니며 요괴를 찾던 고도가 반나절 만에 그 요괴를 찾았다 한다. 소는 불신 어린 표정을 지었다.

“요괴가 누군지 찾았다는 뜻이냐?”

“방금 제보를 받았다. 이 마을에 아이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나, 삼경이 되면 종소리가 울리는 것, 마을 사람들이 이곳에 갇혀 밖으로 나가지 않는 것이 모두 그 요괴와 관계되어 있구나. 귀신들을 붙잡아 취조할 필요도 없겠다. 최종 우두머리가 누군지 밝혀졌으니 말이다.”

“그래? 어떻게 잡는지도 알고 있고?”

“말했잖느냐.”

“요괴를 상대로 씨름을 하겠다는 그거 말이냐.”

“정답이로다. 내가 본디 정정당당한 싸움을 즐기는지라, 요괴 하나 두고 넷이 들러붙는 건 모양새가 빠져 싫다 생각했지만, 이번만큼은 본새 챙길 겨를이 없겠구나. 자, 우선 달라붙고 보자.”

소는 고도의 대답이 마음에 안 들었다. 차분히 생각을 즐겨야 할 놈이 속전속결로 일을 처리하려 했다. 어울리지 않는 짓이다. 고도가 바쁠 일이 있는 사람인가. 뭐하러 일을 후딱 끝내려고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이상하군. 왜 서두르지? 꼭 무슨 일이 생긴 사람처럼 급박하게 굴고 있구나.”

“씨름이 달갑지 않느냐? 아님 지금 나를 걱정해 주는 것이냐?”

“둘 다 아니다. 네가 여유 없이 구니 재미가 없어서다.”

“어허, 도사를 놀리다니. 당장 죽통에 처박아도 시원찮을 건방진 도깨비로소이다.”

고도가 죽통을 흔들어 보여도 별 위협이 되지 않는 듯, 소는 흥하고 콧방귀만 뀌었다. 그는 고도에게서 시선을 떼고 미호와 청사 편을 바라봤다. 미호는 평소와 다름없다지만 청사는 고도의 행동에 불만의 기색이 완연했다. 유독 고도의 언행에 예민하게 반응하던 청사의 전적으로 보건대, 저 발칙한 요괴가 기분이 잔뜩 가라앉아 미간만 험악하게 구기고 있는 모습을 보니 심상치 않았다.

씨름이나, 그 발음을 살짝 바꾼 것과 다를 바 없는 싸움이나 요괴는 무엇이든 몸으로 부닥치고 힘을 겨루길 즐긴다. 그런 요괴가 고도가 외친 씨름 단체전이란 것에 잔뜩 불만을 품고 고개를 팩 돌리고 있는 모습을 보였다. 고도가 어지간히도 막무가내로 자기의 뜻을 밀어붙인다는 뜻이다. 소는 요괴들의 분위기까지 파악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물었다.

“급박하게 구는 이유를 말해라. 그러지 않으면 다른 곳으로 가버릴 테다.”

조용한 협박에 고도는 잠시 고민하는 기색을 보였다. 고도는 대답을 회피할까 싶다가도 소처럼 눈치 빠른 도깨비를 상대로 영양가 없는 농담이 통할 것 같지 않아 순순히 대답하기로 했다.

“일을 끝내고 자량으로 바로 떠나려 한다.”

자량이란 말에 소가 불길 속에서 눈을 껌뻑였다. 음? 하고 목을 울리는 것이 갑자기 자량이라는 도읍 타령을 하는 고도를 이해할 수 없는 눈치다.

“어차피 한산뫼가 목적지가 아니었더냐? 동해에 가기 전에 한산뫼에 들려서 꽝철이 좀 만나 본다더니만. 거 가려면 좋으나 싫으나 자량은 지나게 되어 있다.”

“목적지 변경이다. 바로 자량이다. 한산뫼나 동해는 그 뒷일이다.”

“자량에는 왜 가야 하는지 물어봐도 되겠느냐.”

“그곳에서 도움을 받을 일이 생겼다.”

“네놈이 평범한 인간한테 도움 받을 일이 있단 말이더냐?”

“물론이지. 이번에 드디어 ‘강문’의 흔적을 잡았다.”

강문이라는 말에 도깨비불이 활활 타올랐다. 고도의 손바닥 위에 얌전히 떠있던 불덩이가 곧 사방으로 튀어나가더니만 주변으로 불티를 날려댔다. 격분한 소의 모습에 미호는 혹시 저 불똥이 튀어 지푸라기에 불이 붙지는 않을까 걱정했다. 소가 거칠게 흥분할수록 청사의 눈빛은 더욱 어두워졌다.

강문. 그자가 어떤 인간인지는 몰라도 고도가 일을 처리하고자 자신과 미호는 물론, 소의 손까지 빌리는 일이다. 고도에게 이상한 집착을 보인 왕도 마음에 안 들건만 강문이란 이까지. 통 모르는 인간들과 고도와의 관계를 간접적으로 접하게 되자 청사는 고도에게 얽힌 사연이 불쾌하다 못해 화가 나기 시작했다. 왕은 뭐고 강문은 뭐야. 청사는 가슴이 탁 막힌 듯 답답해져서 고도만 더 꼬옥 끌어안았다. 그러는 동안 소는 목소리를 높였다.

“너 지금 강문이라고 했느냐, 강문이라 했냐고! 그 미친놈을 드디어 찾았단 말이냐!”

“거 참 목청 우렁찬 도깨비로다. 사내대장부답군.”

“네 이놈! 내가 묻는 말에 썩 대답하지 못할까?”

“흔적을 찾았댔지, 누가 당사자를 찾았댔느냐. 아직 도망간 토끼 귀나 꼬리도 못 본 상황이다. 놈이 싸고 간 작고 동그란 똥들만 이 주변에 뿌려져 있는 것만 알겠구나. 걱정 마라. 이 정도로 뒤쫓으면 거의 다 왔다고 본다. 토끼 사냥은 원래 몰아서 잡아야 백미 아니겠나.”

“강문을 토끼 사냥에 비유하는 인간은 너밖에 없을 것이다!”

소는 부르르 불똥을 한 번 더 튀기더니 마당 밑으로 쪼르르 내려갔다. 소가 눈치를 주는 모습에 고도는 지붕에서 폴짝 뛰어내렸다. 청사와 미호가 그 뒤를 따르자 고도는 소의 뜻대로 목 뒤에 매달고 있던 삿갓의 끈을 풀었다. 고도는 삿갓을 공중으로 날렸다. 오래되어 삭은 삿갓의 살들이 파르르 떨렸다. 금방 부러질 듯이 위태롭게 흔들리던 삿갓 아래로 도깨비불이 쏙 들어갔다. 그것은 처음에는 잠자코 아무런 반응도 없더니만 곧 눈이 휘둥그레 떠질 만큼 기이한 일이 벌어졌다.

삿갓 아래로 어슴푸레한 형상이 쑤욱 생겨났다. 처음에는 귀신처럼 투명하고 희미한 외곽만 가지고 있더니, 시간이 지나자 부피가 생기며 윤곽이 뚜렷하게 주조되었다. 덩치가 크고 복실거리는 털을 가졌다. 두 눈은 새파란 불똥이 튀었다. 강인하게 뻗은 등뼈와 그 끝에 매달린 단단한 꼬리까지. 기지개하듯 고함을 치자 사방으로 쩌렁쩌렁 위협적인 목소리가 뻗어나갔다. 그것은 고도의 삿갓을 쓴 호랑이였다.

고도는 변신한 소에게 손을 뻗었다. 호랑이의 등을 쓰다듬는 감촉이 진짜와 별반 다르지도 않았다.

소가 등허리를 낮춰 고도와 청사 미호를 모두 태울 준비를 했다. 고도가 먼저 그 위에 뛰어올라 앉고, 청사와 미호가 이어서 호랑이 등에 엉덩이를 붙였다. 소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만 사방을 둘러보았다. 고도가 소의 왼쪽 볼을 탁탁 두드리니, 소의 시선이 왼쪽을 향했다. 어두운 밤중 마을에 유독 불빛 한 점이 눈에 띄는 집이 보였다.

소는 주막 문밖으로 재빨리 튀어나갔다. 네 다리로 뛸 때마다 요동치는 어깨뼈와 근육이 느껴졌다. 호랑이는 사람 하나 없는 조용한 마을 골목을 마음껏 뛰었다. 큰 길을 일직선으로 돌파하는가 하면, 좁은 담벼락 사이를 몸을 낮춰 뛰기도 하고, 가끔은 담벼락을 발톱을 세워 뛰어넘기도 했다. 마당에 벌려 놓은 식기들을 와장창 넘어트려 집 안에 숨을 죽이고 있던 이들의 간을 콩알만 하게 만들기도 했다. 사람 사는 구석으로 더 깊이 들어갈수록 아기 우는 소리가 울렸다. 그것은 낮지만 또렷하게 마을 골목골목에 울려 퍼졌다.

“응애, 응애.”

섬뜩한 메아리는 미호의 꼬리털을 빳빳하게 서게 만들었다. 미호가 사방에서 메아리치는 아기 울음소리에 경계심을 잔뜩 세웠다. 어디서 우는 아이 소린가. 어디선가 아기는 우는데 그를 달래 주는 소리는 없다. 울음소리는 공허하게 마을의 골목 곳곳을 메웠다.

푸줏간 앞에 도착하자마자 소가 몸을 낮춰 일행들이 다치지 않고 등에서 내려오도록 했다. 고도는 지체 없이 등에서 뛰어내려 문 앞에 섰다. 뒷짐을 지고 푸줏간 주변을 살폈다. 산에 근접한 푸줏간은 오가는 인적도 없고, 분위기도 음산했다. 코를 찌르는 짐승 썩는 악취와 피 비린내가 여기저기서 풍겼다. 산에서 해온 나무를 장작으로 쓰지 않고, 길게 잘라 붙여 성벽보다 높은 담을 쌓은 것도 퍽 괴이했다. 고도는 하늘을 찌를 듯 날카롭게 세워진 나무담을 올려다보다가 웃었다.

“사 대 일 씨름을 하기 전에 일러 줄 것이 있다. 아주 간단한 씨름의 규칙이지. 씨름은 모름지기 공명정대한 힘겨루기 아니겠나. 씨름의 가장 중요한 규칙은 ‘상대를 다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 얼마나 평화로운 겨루기더냐. 그러니 상대가 요괴라 할지라도 씨름의 규칙은 통용된다. 상대를 해치지 말거라. 해치면 아니 된다.”

고도가 나무문 고리를 잡고 흔들었다. 덜컹덜컹. 단단한 문짝이 제대로 이가 맞물리지 않은 경첩 때문에 크게 흔들렸다. 간혹 나무끼리 비비적거리며 끼익끼익, 처녀 웃는 소린지 못으로 철판을 긁는 소린지 모를 이상한 소리가 나기도 했다. 음산한 분위기에 미호는 소의 다리 뒤에 숨어 불안한 듯 눈만 굴렸다. 고도는 다시 한 번 문을 두드렸다.

“게, 안에 아무도 없느냐.”

고도가 외치자, 불빛이 아른거리던 푸줏간 안쪽에서 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끼이익, 문설주가 흔들릴 정도로 위태롭게 문이 열리더니 그 안에서 덩치 큰 아낙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곰처럼 둔해 보이는 몸집을 지니고 있었는데, 살집만큼이나 푸근한 얼굴이 사람 됨됨이가 좋은 인상이었다. 그녀는 낯선 남자 셋과 소녀 하나를 보고는 눈을 껌뻑였다. 그러곤 곧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뉘슈? 이 마을에선 첨보는 얼굴인데.”

“안녕하신가. 내, 여기에 다급한 일이 있어 찾아왔다.”

“일이요? 아, 혹시 고기 사러 오셨나요. 이걸 어쩌죠. 저희 가겐 문 닫은 지 오래되었어요.”

고도가 그녀의 몸집만큼이나 푸근한 미소를 골똘히 바라보았다. 참으로 사람 좋은 인상이었다. 누구라도 그녈 보면 험한 생각은 못 할 만큼이나.

“어, 어찌 이런! 이게 무슨 짓인가요!”

푸줏간 안주인이 기겁을 하고 외쳤으나, 고도는 여자를 밀치고 집 안으로 성큼 들어갔다. 그녀가 난리를 치려는 걸 소가 날카로운 이로 붙들어 세웠다. 거대한 호랑이가 옷자락을 물고 늘어지자 히익 하고 헛숨을 들이킨 여자는 더는 어떠한 소리도 내지 못하고 몸만 발발 떨었다. 고도는 좁은 푸줏간 앞마당을 쳐다보다가 문득 느껴지는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끼익, 끼익.

별거 아닌 바람결에도 낡은 문짝이 소릴 내며 흔들리고 있었다. 고도는 흔들리는 문 너머를 가만히 응시했다. 노파 하나가 흔들리는 문지방 안쪽에 반듯하게 앉아 있었다. 덩치가 왜소하고 작아 자칫 어린아이처럼 보일 형상이었다. 다만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앉아 있는 모습에서 세월의 풍파가 느껴지니. 자글자글한 주름 속에 묻힌 두 눈은 떴는지 감았는지를 구분하기 퍽 힘들었다.

정수리까지 벗겨진 하얀 머리에는 동백기름을 바르고 참빗으로 가지런히 빗어 쪽을 튼 모습이 늙으나마 고와 보였다. 고도는 절로 문이 닫히는 와중에도 노파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앉은 채 죽은 것처럼 미동 하나 없는 노파의 모습이 닫히는 문 너머로 사라졌다.

“뉘, 뉘신데 이러는 건가요. 저희가 뭘 잘못했다고요.”

산에서 내려와도 이보단 크지 않을 호랑이 때문에 여자는 턱을 달달 떨면서 말했다. 여자가 조금이라도 수상쩍은 짓을 할라치면 소는 망설이지 않고 목 너머를 울렸다. 으르르르릉. 그 위협적인 소리를 듣고 여자는 기절할 것처럼 창백한 표정을 지었다. 고도가 마음대로 안방 문을 열어젖히고 노인에게 접근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고도는 겁먹은 여인을 힐끔 보더니만 노파가 있는 문 안쪽을 턱 끝으로 가리켰다.

“자네 어머니신가.”

여자가 그걸 왜 자기가 대답해야 하냐면서 반발하려다, 호랑이의 날카로운 송곳니가 목덜미를 움켜쥐니 찍소리도 못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건강이 썩 좋아 보이진 않는데.”

고도의 그 말에 여자가 깜짝 놀라 바늘구멍 같은 눈을 크게 홉떴다.

“나리 혹시 의원님이신가요?”

“흐음? 의원을 찾고 있나 보지?”

“아이고, 그럼요. 이 동네에 의원 나리가 안 계셔서 아랫마을까지 내려가야 해요.”

“그렇다면야, 내가 자네 어머니를 좀 봐도 되겠군.”

“어…… 정말 의원님 맞으시지요?”

“의원보다 낫지. 사람 보는 눈은 웬만한 인간이나 요괴보다 정확하거든.”

기이한 답변에 그게 뭔 소리냐고 물을 참도 없었다. 고도가 노파가 있는 방 쪽으로 가까이 다가가자 거센 바람이 휘몰아쳤다. 푸줏간 안사람과 미호는 치마가 뒤집히는 강풍에 놀라 허겁지겁 옷을 붙잡고 난리를 부렸다. 자연적으로 불어온 바람이 아니었다. 인위적으로 조작된 바람이었다. 소와 청사가 그 바람의 근원을 알고 진지하게 상황을 살필 때, 고도는 어깨에 매단 죽통이 요란하게 흔들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바람 때문에 흔들리는 것이 아니었다. 죽통이 흥분하여 몸을 마구 떨어대는 것이었다.

고도는 바람결에 흩날리는 머리를 정리하지도 않고 문고리를 잡았다.

“자넨 탈 극 좋아하나? 나는 싫어한다. 말하고 보니 난 참 싫어하는 것도 많은 못난 인간이로구나.”

누구한테 말을 거는지도 모를 소리에 너울처럼 일어나던 바람이 잠시 주춤했다.

“탈을 쓴다는 것은 참으로 음흉한 짓이라 싫다. 탈 너머에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모르지 않느냐.”

그 누구보다 극적으로 살아왔고, 언제나 그 극의 중심에 서서 주인공 역할을 하는 주제에 가면극의 취향에 대해 말하는 폼은 역설적이었다.

고도는 붙잡고 있는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푸줏간 전체에 휘몰아치던 바람이 사라졌다. 고도가 열어젖힌 방 안쪽에는 노파가 앉아 있었다. 아이처럼 작은 몸을 힘없이 세우고 두 다리를 접어 앉았다. 앉은 채 죽은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동백기름으로 곱게 머리를 넘긴 하얀 정수리를 보던 고도가 방 안쪽으로 한 걸음 옮겼다.

어두운 방에서 흘러나오는 기류가 고도의 몸을 감쌌다. 오랜만의 손님을 반기듯 축축하고 끈적거리는 손길이 고도의 몸 곳곳을 어루만졌다. 밀폐된 방 안에서 흘러나오는 바람에 목덜미를 간신히 덮은 머리카락이 휘날렸다. 살랑거리는 바람 속에서도 노파는 고요하게 눈을 감고 있었다. 고도가 그런 노파에게 과장된 가면극 어투로 말을 걸었다.

“썩 눈을 뜨지 못할까. 네놈 벌주려고 취발이가 왔도다.”

노파가 천천히 눈을 떴다. 동공이 없는 새빨간 눈은 지난날 박우물에서 소멸해 버린 애기 귀신들과 똑같았다. 갈라진 논두렁처럼 주름진 얼굴이 고도를 담았다. 노파의 얼굴이 일순 일그러졌다. 그녀는 입을 커다랗게 벌렸다.

“응애, 응애!”

“어머니!”

안주인이 소리를 질렀다.

“거짓말을 하다니! 의원이라면서! 의원이라면서어!”

“응애, 응애, 응애!”

아이 울음소리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퍼지자 집집마다 개들이 짖어댔다. 불길함을 견디지 못한 짐승이 발악하듯이, 개들의 울음소리는 잔뜩 겁을 먹어 흐느끼듯이 들렸다. 여자의 비명 소리와 아기 울음소리, 그리고 사방의 개가 짖는 소리까지.

고도가 천천히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댔다.

“쉿.”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세상이 정적에 휩싸였다. 소리를 내고자 입을 벌린 여자나 노인은 더 이상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미친 듯이 짖어대던 개들도 마찬가지다. 불어오는 가을바람과 그 바람에 몸을 싣고 굴러다니는 낙엽의 바스락거리는 소리만이 울릴 뿐, 귀를 괴롭히는 그 어떤 소란도 용납하지 않는 정적이 강요되고 있었다.

고도는 제법 여유로운 구색을 유지한 채 입술을 누르고 있던 손가락을 천천히 떼었다. 강요되었던 침묵은 사라졌지만 더 이상 개 짖는 소리나, 푸줏간 안주인의 비명은 이어지지 않았다. 노파 역시 아이처럼 울지 않았다. 정적은 마치 관성처럼 이어졌다.

고도는 노인을 앞에 두고 마루에 걸터앉았다. 노인의 시뻘건 눈은 여유로운 고도의 모습을 좇았다. 고도를 하나하나 살펴보는 시선에는 적개심이 가득했다. 하지만 섣불리 입을 떼거나 움직이지도 않았다. 방금 전에 손가락 하나로 세상을 조용하게 만들었던 고도의 능력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네는 거동이 썩 불편해 보이는 구려. 그 노쇠한 몸을 이끌고 밤마다 마실 다닌다 들었네만.”

고도의 태평한 물음에 노인은 시뻘건 눈만 뜨고 있었다. 귀청이 찢어져라 울어대던 아이 같은 노인은 그 목청 좋은 소리를 다시금 들려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대신 몸을 기우뚱 흔들더니만 무릎으로 기어 고도에게 다가왔다. 앙상한 겨울 나뭇가지에 찰흙으로 얇게 거죽을 만들어 덮어 놓은 듯, 좀처럼 산사람 손으로 보기 힘든 것이 고도의 얼굴을 매만지려했다.

지켜보던 청사가 움직였다. 청사는 고도를 노파의 손이 닿지 않는 곳으로 끌어내려 했다. 하지만 그 단순한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 힘에 저지당했다. 고도를 담고 있던 붉은 눈이 청사를 힐끔 쳐다본 것뿐인데, 마치 고도와 노인을 둘러싸고 보이지 않는 막이 형성된 것 같았다.

청사는 갑작스런 술수에 놀라 허공에 손을 댔다. 딱딱한 것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주먹을 쥐고 허공을 쳤다. 쿵, 하고 돌 벽보다 더 단단한 것과 부딪힌 소리가 났다. 대기가 수면처럼 파장을 만들며 흔들렸지만 단지 그뿐이다. 그것은 결계였다. 술수를 부린 이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으면 누구도 안쪽으로 들어올 수 없는 일종의 결계나 다름없었다. 당황한 청사가 고도의 이름을 불렀지만 고도는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고도는 입만 벙긋거리는 청사의 모습을 보곤 노인이 제 볼을 쓰다듬는 손길에 신경을 돌렸다. 청사가 더 급하게 쾅쾅 허공을 두드리는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고개를 돌릴 수 없었다. 고도의 손가락보다 절반 가까이 깡마른 열손가락이 깔짝깔짝, 벌레 다리처럼 고도의 얼굴을 더듬었다. 고도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나와 밀회라도 즐기고 싶으냐? 어찌 허공을 막아 소리를 차단하고 내 얼굴만 더듬고 있느냐.”

노인은 한마디 대꾸 없이 연신 고도의 얼굴을 더듬기만 했다. 결계에 막힌 청사가 결계를 부숴 버리려 하자 미호가 말리는 소란이 벌어졌다. 결계의 정체도 모르고, 이런 특이한 힘을 가진 요괴가 지금 고도 옆에 딱 달라붙어 있는데 억지로 힘을 썼다간 고도가 위험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렇다고 저 둘을 내버려 둘 것인가. 요괴들이 말다툼하는 동안, 고도는 얼굴에 들러붙어 있는 노인의 손가락을 떼어 냈다. 그는 뒤에 매고 있던 죽통을 풀었다.

“이곳에 오기 전에 동자삼 하나를 잡았었다.”

고도가 금줄에 부적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오래된 죽통을 열었다. 그 속에서 음산한 요기가 쏟아졌다. 노인이 흠칫 놀라 뒤로 물러났다. 고도가 하는 짓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처럼, 몸을 사리며 피하기 급급했다. 고도는 그런 노파의 모습을 살피면서 죽통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죽통 안을 휘휘 젓더니만 곧이어 끼이이익, 비명 소리가 울렸다. 고도가 그 비명 소리의 머리끄덩이를 잡아당기자, 붉은 삼꽃의 봉우리가 진 동자삼 하나가 딸려 왔다. 갓난아기 같은 얼굴을 한 삼이 이중으로 날카롭게 자란 이빨을 드러내며 끼익끼익 울어댔다. 고도는 그런 동자삼의 머리, 아니 꽃이 핀 줄기를 붙잡고 흔들며 말했다.

“자네 형제로 보이는데, 음. 이리 보니 닮은 구석은 없구먼.”

노인은 동자삼에게 얼굴을 들이밀어 쳐다보기 급급했다. 고도가 동자삼을 오른쪽으로 들면 고개가 따라서 오른쪽을 향했다. 왼쪽으로 옮기면 고개는 또 왼쪽을 따라왔다. 빙글빙글 돌리니 노인 고개도 함께 돌았다. 동자삼이 어지러운 듯 신경질적으로 울자, 그제야 고도는 장난을 멈추었다.

“재밌는 얘기 하나 해줌세. 옛날 옛날에 한 스님이 살았다. 법력이 높아 순식간에 서원을 세워서 보살이 된 인간이었지. 혜안이 밝고 소승에 박식하여 딱딱하기로 소문난 조정 관료조차도 그자만큼은 도성 내의 출입을 허락할 정도였어. 허나 그 위대한 인간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져서는 사람들을 괴롭혔으니, 그 짓궂은 장난이 무엇인 줄 아느냐?”

노인은 고도의 손에 들린 동자삼과 함께 뚜껑이 닫힌 죽통을 바라보다 고도에게 시선을 돌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통 알 수 없는 기묘한 얼굴이 고도를 한참이나 응시했다. 고도는 제 말에 관심을 보이는 노인에게 히죽 웃으며 자문자답을 마쳤다.

“이런 동자삼 홀씨를 뿌리고 다닌 것이다.”

고도는 노인 앞에 동자삼을 던졌다. 철퍽, 방바닥에 떨어진 동자삼이 부리나케 달아나려 하자 노인이 반사적으로 그런 동자삼의 머리를 잡아챘다. 삼이 다시 한 번 울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울음이 오래가지 않았다. 노인이 가차 없이 동자삼의 배와 허리를 한입에 뜯어먹은 것이다.

끼이이이이이이이이익.

동자삼의 몸에서 시뻘건 피가 뚝뚝 흘렀다. 이중으로 된 날카로운 이빨은 저들끼리 딱딱 부딪히더니만 금세 경직되어 움직임을 멈췄다. 노인은 마루에 후두두둑 떨어지는 피마저 핥아먹으며 동자삼을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씹어 삼켰다. 아무리 식물과의 요괴라지만 갓난아기의 모습을 한 녀석이다. 같은 요괴라 할지라도 동족을 저리도 잔인하게 잡아먹지는 못할 것이다. 그것은 자연을 따르는 요괴들에게 있어서도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는 죄였다.

“죽통, 이상한 검. 검은 남자. 알아. 예전에 들었어. 나, 너 알아.”

노인은 애기 같은 목소리로 어눌하게 말했다. 입을 뻐끔거릴 때마다 시체 썩는 악취가 쏟아졌다. 고도는 시커먼 아궁이 같은 입 안을 응시했다.

“날 알다니. 내가 그렇게 유명세가 높았나. 이거 부끄러운데.”

노인은 시뻘건 피로 칠갑이 된 입을 벌리면서 고도에게 다가갔다. 노쇠한 몸을 일으키질 못해 무릎으로 엉금엉금 기는 형상이었다. 청사가 더 거세게 허공을 두드렸다. 이젠 안 되겠다 싶었는지 미호가 요력으로 허공에 처진 결계를 갈라 버리려 했다. 하지만 땅을 떡 썰 듯 자르고, 사람들을 흔들어 쓰러트리게 만드는 기묘한 힘을 가진 구미호도 이 무형의 결계만큼은 부수지 못했다. 미호는 몹시 당황했다. 같은 요괴일진대, 자신이 깨지 못하는 요술이 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그사이에 노인은 고도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왔다.

“너 알아. 너 유명해. 너 잡으면 좋대. 너 맛있대. 맛있대.”

결계 밖에 있던 청사가 심상치 않은 힘을 피워 올렸다. 미호와 소가 흠칫 놀라 뒤로 물러서는 정체불명의 힘이었다. 하지만 결계 안이 안락한 둥지라도 되는 것처럼 청사의 힘은 고도의 피부에 와 닿지 않았다. 고도는 청사와 미호가 어떤 행동을 취하든 둘에게 시선을 돌릴 수도 없는 팽팽한 긴장감에 표정을 굳혔다. 고도가 자리에서 일어나 뒷걸음질 쳤다.

쿵.

일정 지점까지 도망가던 고도의 몸이 허공에 막혀 더 이상 나아가질 못했다. 바로 등 뒤에 청사와 미호가 서 있는데 그들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손짓 역시 몸에 닿지 않았다. 노인은 턱 밑으로 피를 뚝뚝 흘리면서 고도를 향해 손을 뻗었다.

“너 몸에 좋대.”

너무 늙어 움직이지도 못할 것 같던 노파가 갑자기 빨라졌다. 고도를 향해 달려오는 속도가 범상치 않았다. 신속한 움직임이 젊은이들 못지않았다. 육체의 노화를 무시한 움직임은 고도도 예측하지 못한 것이라, 어느새 다가와 손목을 움켜쥐는 힘에 손뼈가 부러질 뻔했다. 고도가 다급히 도망치지 않았다면 노인은 동자삼을 잡아 뜯어먹을 때처럼 고도의 손모가지 역시 씹어 먹으려 했을 것이다. 노인은 붉은 눈을 도르르 도르르 굴리면서 물었다.

“도사, 너 이름 뭐지? 이름. 이름 생각 안 나, 이름.”

“저런, 유명하다며 내 이름도 모르고 있다니. 허풍쟁이로다.”

“이름. 네 이름. 네놈 이름.”

고도는 소매에서 부적을 꺼냈다. 한꺼번에 수십 장을 꺼내서 허공으로 던지자 좁은 결계 안에 한 가닥 회오리바람이 일어났다. 거센 바람을 따라 허공으로 솟구치던 수십 장의 부적에서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것은 공중에서 빙글빙글 돌더니만 연기가 흩어지면서 고도의 모습을 똑 닮은 환영 분신들이 생겨났다. 분신들은 하나같이 서전검을 꺼낸 상태였다. 분신들은 성격이 제각각이라서 서전검을 들고 까불거리다가 저희들끼리 찔러 죽이는 불상사도 벌어졌다.

모르는 이가 본다면 분신 하나 조작하지 못해서 서로 죽이기나 한다고 비웃겠으나 노인은 달랐다. 이렇게 완벽하게 개성이 세분화되어 하나의 인격체로 움직이는 분신은 난생 처음 본 탓에 감탄사가 절로 일었다. 환영술수에 참으로 능통한 도사. 그 단서가 고도의 이름을 기억해 내는 데 실마리가 되었다.

“흐흐, 흐히, 흐히히히히”

노인은 무척이나 즐거워했다. 진심으로 기뻐하면서 발바닥으로 바닥을 쿵쿵 밟아대고 웃기 바빴다. 고도는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노인의 기이한 행동을 여유롭게 구경이라도 하고 싶다만 그럴 만한 상황이 아님을 파악한 후였다. 생각보다 강한 요괴를 앞에 두고 빈틈을 보이고 싶지 않았기에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분신들을 향해 손을 휘저었다. 고도의 손짓 하나에 저마다 천방지축으로 날뛰던 분신들이 벌떼처럼 노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쏟아지는 서전검 속에서 노인이 웃음을 뚝 멈추더니만 섬뜩하게 말했다.

“그래, 고도였어. 네 이름은 고도야.”

노인의 몸에서 폭발할 듯 터지는 힘에 달려들던 환영분신들이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그 요기들은 잠시의 틈도 없이 분신들을 집어삼켰다. 벗어나려던 분신들은 온몸을 옭죄는 요기에 눌려 바닥에 철푸덕 떨어지더니 차례차례 연기를 피워 올리며 부적으로 돌아갔다. 고도는 낭패라는 얼굴로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한 채 사라진 분신들을 바라보던 고개를 들었다. 노인이 기다란 손톱이 달린 손가락을 까딱였다.

“이리 와, 도사야.”

까딱이는 손가락질 하나에 고도의 몸이 쭈욱 미끄러지듯 노인에게 끌려갔다. 제대로 힘을 쓰지 못하는 고도를 보고 노인은 붉은 눈을 번들거리며 빛냈다. 낄낄낄 웃는 노파의 웃음소리가 좁은 결계에 부딪혀 메아리처럼 울렸다.

쾅, 결계를 부수듯 요기를 발산하던 청사가 소리쳤다.

“고도!”

청사의 목소리를 듣고도, 결계를 뒤흔드는 청사의 요기를 짐작하면서도, 고도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고도에게는 지금 결계 밖을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고도는 노인의 요기에 끌려 들어가 기습 공격을 당한 탓에 목 근처에서 시뻘건 피를 쏟고 있었다. 노인은 고도가 벗어나지 못하는 힘으로 몸을 속박하고는 그대로 피가 흐르는 목에 고개를 묻었다. 이를 세운 노인이 살점째 고도의 목을 물어뜯었다. 살이 뜯겨져 나가 피를 쏟고, 그 쏟은 피를 핥아먹는 노인의 기괴한 행동에 청사가 돌아 버릴 지경이었다.

고도는 육탄전에 약하다. 원거리에서 부적을 이용해 눈을 속이는 환영을 부리는 도사라서 근접전에는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 붙어 싸우는 것보다 멀찍이서 싸우는 게 익숙하고 또 잘하는 고도에게 있어서 지금처럼 사방이 결계로 둘러싸인 좁은 공간은 독 안에 갇힌 것이나 다름없었다.

노인의 밑에 깔려 있던 고도가 간신히 빠져나왔다. 다시금 달려드는 노인을 상대하기 위해 서전검을 뽑았다. 그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고도는 자신의 입으로 무학관 무술은 공격이 아닌 방어를 위한 기술이라 말했다. 그 무술을 사용하는 고도가 노쇠한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엄청난 악력을 상대하기란 쉽지 않았다. 막고 피하려고 해도 어느 정도의 공간이 있어야 가능하지, 저 좁은 곳에선 마음 놓고 검을 휘두르기도 전에 보이지 않는 벽에 쿵쿵 부딪히기만 하지 않나.

청사는 결계에 붙어 서서 이만 빠득빠득 갈던 흥분을 가라앉혔다. 자신과 처음 만났을 때의 고도를 기억해 보았다. 고도가 마음먹고 사력을 다해 싸운다면 자신을 봉인했을 때처럼, 저 늙은 요괴 역시 상대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환갑 이상을 살아온 도사가 요괴 한 마리한테 속수무책으로 당하진 않으리라. 빙글, 몸을 돌린 청사가 소를 향해 걸음을 옮기자, 결계 안에서의 혈전에 발만 동동 구르던 미호가 화들짝 놀라 외쳤다.

“어? 대롱아!”

청사는 미호를 무시하고 소 앞에 똑바로 멈추어 섰다. 소는 호랑이 눈동자를 굴렸다. 시퍼런 도깨비불이 넘실대는 안구 속에 청사의 진지한 모습이 비쳤다.

“이봐, 인간 여자.”

소의 입에 대롱대롱 물려 있던 푸줏간 안주인은 젊은 남자가 제 턱을 붙잡자 깜짝 놀라 어깨를 움츠렸다. 그녀는 코앞까지 얼굴을 들이민 청사의 분위기에 압도당했다. 아름다운 남자가 얼굴을 들이밀었으나 가슴이 콩닥거리고 설레며 부끄러운 마음은 들지 않았다. 눈도 마주치지 못할 만큼 지배적인 분위기에 발끝이 저릴 뿐이었다.

안주인이 식은땀을 흘리며 시선을 정신없이 흔들자 청사가 여자의 턱을 잡고 있던 손에서 살짝 힘을 풀었다. 강압적으로 움켜쥔 턱을 부드럽게 고쳐 잡고 고개를 살짝 비틀었다. 반쯤 내리깐 눈으로 쳐다보는 눈길에 안주인의 표정이 단박에 굳었다. 여자보다 더 길고 섬세한 속눈썹이 한 올 한 올 모두 셀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거리였다. 그 속눈썹 아래 반쯤 뜬 푸른 눈동자는 그 어떤 여자가 보아도 혼을 빼앗길 정도로 아름다운 보석 같았다. 청사는 눈을 느리게 깜빡이며 속삭였다.

“요괴를 보살피고 돌보고 있던 자네는 알 것이야. 저 요괴 정체가 뭐지?”

애간장을 녹이는 부드러운 목소리에 안주인은 입술을 덜덜 떨었다. 계속 쳐다보면 정신을 차리지 못할 것만 같았다. 맑고 푸른 눈동자에 깊게 빠져 버릴 듯해 아예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턱을 쥔 손길에 감각이 몰려서 어깨가 떨렸다. 귀 가까이에서 속삭이는 음성 역시 황홀하면서도 곤욕스러웠다.

“어서.”

창백하게 질려 있던 여자가 더듬더듬 말했다.

“모, 모릅니다. 저는 아무것도 몰라요. 쇤네들 같은 백정 나부랭이들은 배운 게 없어서 어르신 같은 분들께 가르쳐 드릴 게 없어요.”

“내가 그대에게 공자와 맹자의 가르침을 물었나? 자네가 돌봤던 어미의 정체를 묻는 것이야. 무엇인지도 모르고 돌봤다는 말은 아닐 텐데?”

“몰라요. 정말 몰라요.”

고개를 도리질 치는 안주인은 고집스러웠다. 아무것도 모른다며 귀도 틀어막고 도리질만 반복했다. 화가 난 청사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보석 같다던 아름다운 눈동자는 순식간에 세로로 가늘어져서 음산한 요기를 뿜었다. 요사스러운 기운이 여자를 휘감자, 여자는 숨을 헐떡였다.

“당장 눈 떠.”

턱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던 손이 억센 힘으로 볼과 아귀를 한꺼번에 움켜쥐었다. 여자는 턱과 광대가 부서질 듯한 악력에 더는 버티지 못하고 시키는 대로 했다. 눈을 뜨자 푸른 호수나 창공, 보석을 연상시키던 눈은 온데간데없이 독사보다 강렬하고 날카로운 눈동자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숨이 꼴깍 넘어갈 것처럼 공포가 엄습했다. 얼굴을 터뜨릴 것처럼 움켜쥔 손도 무섭고, 귀신보다 섬뜩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얼굴도 무서웠다. 쉬쉬하고 귓가에서 뱀이 혀를 날름거리는 소리까지 더해지니 여자는 오금이 저렸다. 겁이 나 시선을 돌리고 싶었지만 그마저도 허락받지 못했다. 청사는 여자에게 더 얼굴을 바싹 붙였다. 입술이라도 붙을 만큼 다가온 그는 위협적으로 말했다.

“좋게 대할 때 말해라. 난 인내심이 많지 않다. 지금 당장 네 옷을 찢어발겨 길바닥에 내동댕이쳐서는 억지로 입을 열게 만들 수도 있어. 시간 끌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 네 어미 정체가 뭔지.”

안주인은 결국 눈물을 터뜨렸다. 미호와 소는 청사가 이토록 강압적으로 나오는 경우는 처음 본 탓에 퍽 당황하여 말을 걸지도 못했다. 그들이 본 청사는 매번 고도 뒤를 쫓아가기만 하고, 고도가 눈길을 주거나 손이라도 잡아 주면 얼굴을 발그레 물들이면서 헛기침을 하기만 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느라고 잊은 것이 있었다. 청사는 사실 보릿마을에서 고도가 기절한 사이 태풍과 비바람을 몰고 오는 기이한 술수를 부리던 정체불명의 요괴지 않은가.

늙은 요괴가 만든 결계 안에서는 이미 수세가 기울어 노인이 고도를 완벽하게 압박하는 형상이었다. 고도가 나름 부적을 이용해 도술을 부리고 서전검을 휘두르나, 좁은 공간에 한정되어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하지 못했다. 노인의 공격을 막고 잠시 도망가는 게 전부였다. 목이 뜯겨 나가서 피가 멈추지 않는 탓에 몸도 많이 무거워 보였다. 안주인은 청사가 누구 때문에 서두르는지를 깨닫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알려 주었다.

“저희들을 모른 척해주시면 안 되나요. 어머니께 부탁 드려 나리들을 무사히 보내드리겠습니다. 아무 것도 묻지 마시고 물러가 주세요.”

안주인이 눈물을 흘렸다. 고도에게 눈물로 호소했다면 먹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상대는 인간들 사정에 관심 없는 청사였다. 그는 인간사에 관심 없을뿐더러, 인간들이 사사로운 정에 얽매이는 것도, 눈물로 인정을 바라는 것도 싫어하는 이였다. 청사는 안주인의 얼굴을 더 세게 움켜쥐고 속삭였다.

“자네 어머니 때문에 이 마을이 어찌 되었는지 아느냐? 마을 아이들이 모두 잡아먹혔다. 처음에는 갓난아기들만 먹었겠지. 먹고 남은 뼈나 오물 등은 각 마을의 우물에나 버렸을 게다. 그 어린아이들이 우물의 지박령이 되어 밤중에 곡을 한다. 아이를 잡아먹어 요기를 불린 네 어미는 마을 전체에 음습한 기운을 내뿜어서 마을 사람들 심성을 악독하게 만들었다. 지금 이 마을 모습이 정상으로 보이느냐? 파탄이 났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이러고도 네 어머니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른다고 잡아뗄 것이냐?”

구구절절 옳은 말뿐이었기에 안주인은 반박할 수가 없었다. 어디서 저렇게 자세한 마을 사정을 들었는지 몰라도 청사가 마을 사람들보다 이 사정에 정통하단 걸 알 수 있었다. 안주인은 반박할 여지가 없는 만큼 마음만 절박해져 청사를 밀어내는 데 급급했다.

“우리 마을 일이에요! 나리들이 무슨 상관인가요!”

“그래, 나랑 직접적으로 상관없지.”

“그럼 상관하지 마셔요!”

“젠장! 나도 그러고 싶어! 그런데 고도가 얽혔잖아!”

청사가 분을 참지 못하고 외치는 소리에 안주인은 깜짝 놀랐다. 얼굴을 쥐고 있던 손이 어느새 멱살을 쥐었다. 숨도 못 쉴 만큼 목이 졸린 탓에 여인은 켁켁거리며 기침을 토했다. 청사는 여인의 괴로움 따위 조금도 배려할 생각이 없기에 씨익씨익, 숨을 거칠게 몰아쉬며 분풀이처럼 말을 이었다.

“네년이 네 어미를 아끼는 만큼, 나도 고도를 아껴! 그런 고도가 지금 네년과 네년 어미 때문에 발이 묶여서 무슨 꼴을 당하고 있는데! 난들 좋아서 이렇게 나서는지 알아? 하찮은 인간 따위 요괴 밥이 되든 죽이 되든 관심 없어!”

꺄악! 미호가 갑자기 휘몰아치는 바람에 견디지 못하고 담벼락 대용으로 세워 둔 나무판자에 처박혔다. 소 역시 몸을 바싹 낮추어서 바람에 떠밀리지 않도록 안간힘을 써야 했다. 다만, 자신이 날아가지 않기 위해 애쓰는 사이에 입에 물고 있던 안주인을 놓쳤다. 안주인이 바람에 휩쓸려 대문 밖 길거리에 내동댕이쳐졌다. 의문의 바람을 일으킨 주인은 청사였다. 소와 미호가 끙끙거리며 바람의 힘을 버티는 데 급급한 와중에도 그는 도포자락과 머리카락만 휘날리며 대범하게 바람길을 가르고 나아갔다. 청사는 길거리에 나동그라진 여인을 붙잡아 흔들었다.

“말해. 저 요괴 정체가 뭔지 말하라고!”

여인은 바람에 떠밀려 바닥을 뒹군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흐느껴 울었다. 그녀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같은 말만 반복했다.

“보, 보살님, 보…… 살님, 강문 보살님.”

엉엉 울면서도 다급하게 도움을 요청하는 소리는 청사가 주막 지붕에서 들었던 이름이었다. 자신만 모르고 도깨비도, 구미호도 알고 있던 이름. 심지어 처음 만난 마을의 푸줏간 안주인조차 그 이름을 알고 있다. 세상의 장난질도 이리 잔인하진 않을 터다. 누구보다 고도에 대해 알고 싶은 청사가 누구보다 그에 대해 아는 것이 없지 않은가.

“재밌네, 아주 재밌어.”

청사는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여자를 내팽개친 청사의 날카로운 시선이 결계 안에 있는 고도에게 박혔다. 노인을 아슬아슬하게 상대하고 있는 고도를 보면서 양손의 주먹을 꽈악 움켜쥐었다.

*

고도의 몸이 튕겨져 결계에 부딪혔다. 입에서 쿨럭하고 피가 쏟아졌다. 결계 속을 좌로 우로, 앞으로, 뒤로, 심지어 위아래로 쫓겨 다니던 고도는 이제 도망치기도 지쳤는지 결계에 등을 기댄 채 서 있었다. 움직이지 않는 고도에게 노인이 주먹을 내질렀다. 고도는 명치 부근에 일격을 맞고 거세게 기침을 하더니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힘 풀린 다리가 꺾여서 바닥에 철푸덕 앉아 버리자 무식하게 공격을 하던 노인의 움직임도 멈추었다. 고도는 이제 얼마 남지 않은 부적을 소매 속에서 꺼내다 말고 노인을 쳐다봤다. 고도는 몸이 힘들 텐데도 그 표정만큼은 고집스럽게도 평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손가락 사이로 잡히는 부적들을 퉁기는 의미 없는 행동을 시작했다.

“사냥의 묘미를 아느냐.”

노인은 부적을 퉁기는 손끝에 눈을 고정했다. 역시나 대답은 없었고, 고도 역시 대답이 들릴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았다.

“자고로 토끼를 잡으려면 굴속으로 몰아야 하고, 고기를 잡으려면 낚싯줄이 당겨질 때의 묘미를 즐겨야 한다. 그럼 요괴를 잡을 땐 어디서 즐거움을 구해야 하는 줄 아느냐. 능히 그들의 공포를 내 즐거움으로 삼는 것이다.”

손으로 장난치던 부적이 곧 팔랑팔랑, 바닥으로 떨어졌다. 도사가 부적을 손에서 놓고 유유자적 결계에 기대어 있는 모습에 노인의 미간에 골이 깊어졌다. 도사가 부적을 포기한다는 것은 곧 패배를 인정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의 고도 태도는 싸움에서 진 사람이 아니었다. 패배자가 어찌 저리 여유만만이란 말인가.

목은 살점이 잡아 뜯겨져 피로 흥건했고, 좁은 결계 안에 이리 쫓기고 저리 내몰리면서 진이 다 빠진 상태다. 또한 소득 없는 부적 사용만 남발했거늘, 상황이 노인에게 퍽 유리한데도 노인은 기묘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수세에 몰린 이는 분명 고도였는데 누가 결계에 태평하게 앉아서 부적을 주변에 버린 저 인간을 수세에 몰려 결국 패배를 인정했다 보겠는가.

고도는 쉬이 덤비지 않고 신중하게 저를 살피는 노인을 보면서 바닥에 뿌린 부적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이어지는 고도의 목소리는 귓가에 속삭이듯 부드럽고 친절했다.

“자, 부적은 버렸다. 그러니 걱정 말고 내게 더 가까이 와 보거라.”

여태껏 도망만 다니던 패배자의 그 어리석은 유혹이라니! 노인은 우스꽝스러운 상황에 배를 잡고 낄낄거렸으나 얼마 가지 않아 거짓말처럼 웃음을 멈추었다. 어느새 노인의 얼굴에서 승리에 대한 확신이 사라졌다. 여전히 결계에 기대어 앉은 고도의 여유로운 모습을 보자 머릿속이 복잡해지기까지 했다.

허풍이 아니다. 고도는 지금 허풍을 부리는 게 아니었다. 진심으로 부적이 없이도 노인을 상대하는 데 어려움이 없다는 태도였다.

“그르르릉.”

고도를 공격하는 것은 자신일진대, 어째서 고도의 손바닥 위에서 재롱을 부리는 기분이 드는가. 이는 마치 벼랑 끝까지 몰려 한 발자국만 뒤로 헛디디면 낭떠러지로 떨어질 만큼 위태로우나, 그 한 발자국을 기필코 사수하는 것과 같았다. 그것도 힘겹게 버티는 것이 아닌, 일부러 수세에 몰린 상황을 즐기는 것 같았다.

“이상하다. 너, 이상해.”

노인은 좁은 보폭으로 고도에게 느리게 다가갔다. 노인이 한 자 거리까지 다가왔지만 고도는 동요 없이 결계에 삐딱하니 기대어 앉아 있기만 했다. 수세에 몰린 인간에게서 볼법한 두려움과 걱정 따윈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너 인간 맞아? 아니지? 요괴지?”

“원, 농담도.”

“인간 아냐.”

“인간이 아니면 무엇이겠느냐. 인간을 닮은 환영?”

“고도. 고도? 인간 아냐?”

“네가 아니라고 보면 아닐 수도 있겠다만, 지금 그게 중요한가.”

고도는 부적을 손끝으로 매만졌다. 노인의 눈동자가 마구잡이로 흔들리기 시작했다. 노인은 퍽 불안한 표정으로 안절부절못하더니만, 혼란스러운 상태를 대변하듯 사방을 정신없이 돌아보다가도 끼익 하고 이를 세워 울었다. 노인은 뒷걸음질을 치다가 다시 고도에게 달려들었다. 이번엔 옆구리를 정확하게 파고들어 이를 세웠다. 옷감 채 옆구리 살을 확 물어뜯으니 쌀을 가득 담은 자루가 터지듯 시뻘건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뜨끈한 피를 정수리에서부터 뒤집어쓴 노인이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든 순간이었다. 그는 그대로 하얗게 질려 굳고 말았다.

“내가 무서운가.”

한 뼘 거리에 있는 새까만 눈이 옆구리에 들러붙어 있는 노인을 무감정하게 내려다보고 있었다. 노인은 가까운 거리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눈동자 속 감정을 깨닫고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다.

새까만 눈에 비친 감정은. 그것은 즐거움이었다.

귀신에 홀린 듯 크게 당황한 노인은 제 이빨로 물어뜯었던 옆구리로 시선을 돌렸다. 경악스럽게도 물어뜯어 피를 쏟게 만들었던 터진 옆구리는 멀쩡했다. 심지어 옷자락의 천 한 올조차 뜯어진 자국이 없었다.

히익, 숨을 다급히 들이쉰 노인이 몸을 빼려 하자 그보다 고도의 손이 더 빠르게 노인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덥썩, 저고리 앞섶을 잡힌 노인은 고도를 감히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살아생전 느껴 본 적 없는 위화감에 온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고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자 벌레처럼 바르작거렸다. 고도가 노인만이 들을 수 있을 만큼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줄을 당기는 맛에 낚시를 하고 활을 쏜다만, 그 쾌락이 지속되면 지겨운 법이다. 난 흥미가 쉽게 바뀌는 인간이라 요괴가 인간에게 겁을 먹은 모습을 즐기는 것도 찰나다. 계속 그리 무서워하면 재미없어서 죽일지도 몰라.”

“히익, 히익.”

“고하라. 익합사 강문 보살. 네 주인이자 어버이로, 네가 이 세상에 나올 수 있게끔 생명을 준 이 말이다. 그자가 언제 이곳을 왔다 갔느냐.”

“너, 너, 이, 인간 아냐. 요, 요괴? 아니, 신선?”

“그렇게 겁먹으면 재미없대도.”

고도가 생긋 미소를 짓자 노인의 얼굴은 반대로 시체처럼 창백해졌다. 두려움에 몸서리치며 뒤로 물러나는 노인은 집중력이 흐트러졌다.

쩌적, 쩌적.

하늘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균열이 생기던 하늘은 곧바로 챙 소릴 내며 모래알처럼 부서졌다. 고도의 머리 위로 달빛이 뿌려지는 것처럼 부서진 결계 조각이 쏟아졌다. 결계가 부서지고 그 밖에 있던 청사 일행과 소통할 길이 열렸는데도 고도는 난리를 부리던 미호나, 푸줏간 안주인을 붙잡고 있던 청사에겐 일말의 시선조차 주지 않고 여전히 노인의 멱살만 잡고 있었다. 노인의 얼굴이 무에 그리 흥미로운지 자꾸만 뒤로 빼는 몸을 단단하게 붙잡고 얼굴을 요모조모 살피는 데 여념이 없었다. 그는 이곳에 일행을 데리고 온 사실조차 잊은 듯했다. 노인의 얼굴을 아니, 주름진 피부 안쪽에 숨어 있는 ‘강문의 씨앗’을 살피는 모습은 집착에 가까웠다.

“고도.”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깨달은 이는 소였다. 그는 단 세 발자국 만에 달려와 고도의 뒷덜미를 물었다. 호랑이의 날카로운 이빨이 두루마기 깃을 잡았으나 눈 깜짝할 사이에 고도는 호랑이 입 속이 아닌 노인의 앞으로 옮겨와 있었다. 고도가 들고 있던 부적은 모조리 바닥에 버려져 있는데도 고도는 아무 어려움 없이 도술을 부렸다.

“소야, 알아보겠느냐. 이 요괴는 강문의 씨앗이다. 즐겁지 아니한가.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인간의 흔적 아닌가.”

주저앉은 노인 주변을 빙글빙글 돌면서 고도는 히히덕거렸다. 개구지고 천진난만한 것이 꼭 어린아이 같았다. 하나, 덜덜 떠는 노인을 내려다보는 눈길은 잔혹하기 그지없었다. 산 채로 저와 같은 종족인 동자삼을 씹어 먹을 때 노인이 짓던 눈빛보다 더욱 무섭고 공격적이었다.

“여기서 자량의 퇴기(退妓)와 무학관 무술장의 아들을 본 것도 기연일진대, 강문의 연까지 닿았구나. 이제야 모든 게 끝나 가는 길조인가 보다. 안 그러느냐.”

빙글빙글빙글빙글.

고도가 가볍게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 밑으로 바람이 불어왔다. 모래 바닥이 움푹 파일 만큼 날이 잘 선 바람은 고도의 발자취를 따라 넘실거렸다. 소는 그러한 고도의 앞에 버티고 섰다. 네 다리에 날카로운 바람이 스치고 피가 배어 나왔지만 결코 물러나지 않았다.

“진정해라, 고도.”

고도가 그 무슨 말이냐고 고개를 들어 웃었다.

“내가 흥분한 것 같으냐.”

“정신 차려라. 지금 넌 미친놈 같다.”

“미치지 않았다.”

“아니다, 미쳤다. 강문 얘기만 나오면 넌 미친다.”

“소, 네 녀석 익살이 늘었구나.”

“정신 차려라! 강문 얘기에 휘둘리는 것도 이제 그만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

휘익, 호랑이의 수염을 잡아당긴 고도가 소의 두 눈을 똑바로 보고 말했다.

“미치지 않았다.”

결코 정상이라 볼 수 없는 눈이 새까만 돌처럼 반들반들하게 빛을 냈다. 고도는 소에게도 히죽 웃어 보이더니만 손가락 몇 개를 까딱여 돌풍을 만들었다. 커다란 호랑이가 순식간에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그대로 담벼락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갑작스런 충격에 헛기침을 토한 호랑이는 곧 연기를 풍기고는 도깨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소가 시퍼런 눈을 활활 태우며 노려보아도 고도는 이 이상 참견 말라는 듯 돌풍을 일으켰던 손가락을 좌우로 흔들어 보였다. 소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려도 고도는 막무가내였다. 그는 소의 경고도 무시한 채 뒷짐을 지고 노인의 앞에 멈추어 섰다. 고도가 뜻하지 않게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자, 네 주인 얘기를 해보아라.”

잔혹성을 그렇게 미소로라도 지워 보려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결코 지워지지 않는 섬뜩함을 남기며 조근조근한 말투로 협박했다.

“어서.”

달달 떨기만 하던 노인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 노인은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리더니 고도의 팔을 덥썩 붙잡았다. 그는 입을 쩌억 벌리고 갓난아기처럼 울기 시작했다.

“응애……!”

시커먼 입 안에서 터진 애기 울음소리를 따라 잠잠하던 푸줏간에 다시금 바람이 불어닥쳤다. 바람이 마당에 심은 대추나무 가지를 꺾고 흙바닥을 죄 뒤집어 놓았으나, 고도는 여유롭게 왼손에 들고 있던 서전검을 휘둘렀다. 칼날이 유려하게 허공을 가르자 요기와 함께 넘실거리던 바람이 반대편으로 튕겨 나갔다. 칼로 바람을 베기란 불가능하지만 지금의 바람은 노인의 기운을 통해 운용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고도의 기운을 머금은 서전검과 요괴의 기운이 허공에서 부딪히며 반목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었다.

고도는 시간을 끌 생각이 없는 듯, 왼쪽 다리로 몸의 중심을 잡고 자세를 낮춰 공격할 의사를 표했다. 검을 쥔 손목을 틀어 검날을 자유자재로 바꾸자 그 움직임이 마치 검무(劍舞)처럼 아름답고 유려했다. 날아든 바람을 죄 가르거나 옆으로 흘려 낸 고도는 꿋꿋이 버티던 왼발을 뗐다. 그러자 고도의 팔이 붙잡힌 채 있던 자세가 역전되어 노인을 도리어 속박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고도는 그 순간 가차 없이 검을 휘둘렀다.

노인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검날을 단지 감에 의존해서 두 손으로 막아냈다. 녹슨 서전검은 노인의 손을 닭 모가지 치듯 싹둑 잘라 내진 못했지만 그래도 늙은 뼈를 두 동강 낼 만한 저력이 남아 있었다. 검에 잘린 손목이 바닥으로 떨어지면서 허공으로 피와 살점이 솟구쳤다.

“강문의 씨앗 주제에!”

고도답지 않은 격렬한 목소리가 터지는 동시에 검날의 끝이 정확하게 갈비뼈 너머의 심장을 겨눴다. 고도는 심장을 꿰뚫기 위해 검에 온 힘을 실었다. 검이 무뎌 심장을 잘라내지 못한다면 녹슨 날로 모조리 파헤치고 뜯어 버려 죽일 작정으로 말이다.

죽이지 마라.

푸줏간에 들어오기 직전, 다짐처럼 중얼거렸던 그 문장은 새까맣게 번들거리는 두 눈에 잠식된 지 오래였다.

“안 돼요!”

서전검이 노인의 심장을 꿰뚫기 직전이었다. 고도의 등 뒤에서 안주인의 목소리가 하늘 높이 울렸다. 동시에 고도의 몸이 뒤쪽으로 잡아당겨졌다. 강한 힘은 아니었으나, 검을 휘두르기 불편할 정도는 되었다. 고도가 고개를 돌리자 안주인이 고도를 뒤에서 끌어안아 허리를 붙잡고 있었다. 검을 휘둘러야 할 때를 놓친 고도는 그제야 아차 싶었다. 뭐하는 짓이냐고 따질 겨를도 없었다. 뒤통수가 오싹하여 시선을 옮기니, 고도에게 목숨을 위협받던 노인은 안주인의 도움으로 오히려 공격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노인이 이가 다 빠진 입을 벌려 웃자, 고도가 맥이 빠져서는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이런.”

날카로운 바람이 날렸다. 요기를 머금은 바람이 얼마나 강했던지 안주인과 함께 고도의 몸이 저 멀리 미끄러져 날아갔다. 붕 뜬 몸이 땅에 부딪힐 때, 안주인은 억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을 데구르르 굴렀고 고도는 왼쪽 가슴에서 느껴지는 충격에 잠시 숨을 멈추었다.

고도는 흙먼지 속을 미끄러졌다. 바로 앞에서 미호와 청사의 경악한 얼굴이 스치듯이 비춰졌지만 그들에게서 시선을 떼곤 제 가슴팍을 쳐다봤다. 두루마기의 가슴팍이 뜨겁게 젖어들고 있었다. 조심스레 손을 들어 가슴을 더듬어 보니, 손바닥을 시뻘겋게 물들인 것이 손목을 타고 내려 소매까지 적셨다.

“고도!!”

저만치 굴러갔던 안주인이 기겁하고 무릎걸음으로 다가오려다가 청사에게 선수를 뺏겼다. 청사는 쓰러져 있는 고도를 품에 안았다. 상체를 억지로 끌어안으니 동공이 열리는 눈가가 파르르 떨리다 말고 확 찌푸려졌다. 고도는 극심한 기침을 하며 청사의 얼굴로 피를 토했다.

“쿨럭!”

청사가 다급하게 두루마기의 가슴팍을 벌렸다. 왼쪽 가슴에 커다란 상처가 나 있었다. 정확히 심장 부근이었다. 치명상을 피했다 하더라도 이 정도면 많은 피를 쏟고서 죽을 수준이었다. 아니다. 피를 쏟다가 죽는 것이 오히려 희망적인 이야기였다. 상처의 크기가 워낙 커서 이미 심장의 반은 뜯어져 나간 것 같았다.

“아, 아아, 나는, 나는…….”

고도의 상태를 보자 안주인은 자리에 주저앉은 채 비명도 신음도 아닌 소릴 흐느끼면서 온몸을 떨었다. 그녀의 두 눈에는 겁에 질린 눈물이 차올랐다. 청사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고도의 얼굴만 살폈다.

눈을 반개하고 있는 고도가 숨쉬기 힘겨운 듯 호흡을 헐떡이는 모습이 낯설었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입은 벙긋거리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입에서는 바람이 빠지는 소리만 났다. 폐에 구멍이라도 난 것 같았다. 안고 있는 고도의 몸에서 힘이 풀리고 고도의 두 눈도 까맣게 초점을 잃어 눈꺼풀이 무거워지니, 이는 죽어 가는 이들의 전형적인 모습 아닌가.

“고도. 정신 차려. 장난치지 말고.”

눈앞이 깜깜해진 청사가 고도의 볼을 톡톡 쳤다. 고도의 손에 들린 서전검이 바닥으로 툭 떨어지며 푸줏간에 휘몰아치던 바람도 잠잠해졌다. 미호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고도를 보고 눈을 홉떴다. 설마하고 입만 벌린 채 굳어 있는 그녀처럼, 청사 역시 충격으로 숨마저 멈추고 있었다.

“고도, 고도.”

청사가 반쯤 넋이 나가서 고도의 볼을 다시금 톡톡 쳤다. 손길에 따라 고개가 크게 흔들렸다. 청사는 현실감 없는 모습에 손끝에서 피가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만을 느꼈다.

“헤에, 헤헤, 헤헤?”

노인은 자신이 벌인 일을 스스로도 믿기 힘든지 나지막이 웃음을 뱉었다. 노인은 청사 품에 안겨서 차게 식어 가는 고도에게 다가왔다. 고도는 반쯤 눈을 뜬 채 죽어 있었다. 노인은 넋이 나간 청사는 안중에도 없이 고도를 발로 툭 찼다. 심장을 관통당한 시체는 움직이지 않았다. 물건처럼 청사 품에 푹 묻힌 채 덜컹거리기만 했다. 노인이 히죽 웃었다. 그는 혈색이 사라진 고도의 얼굴을 바라보다 고도의 등에 매달린 죽통으로 손을 뻗었다.

노인은 죽통을 붙잡고 있는 새끼줄을 끊어 버리곤 그것을 머리 위로 번쩍 들어 보았다. 죽통은 달빛이 없는 어두운 하늘 아래에서도 영롱하게 빛이 났다. 온갖 부적과 금줄에 봉인되어 있지만 그 안에서 생기 있게 흘러넘치는 강력한 요기가 느껴졌다. 이 세상 모든 요괴들이 두려워하면서도 탐내는 그 유명한 고도의 죽통이 분명했다. 구미호의 구슬보다 탐스럽고 신선의 지팡이보다 희귀하며 용의 여의주보다 값진 고도의 죽통!

노인은 히히덕거리면서 죽통의 뚜껑을 돌려 보았다. 그 안에 봉인된 강력한 요기를 흡수할 만반의 준비를 하면서.

하지만 있는 힘껏 뚜껑을 돌렸지만 손만 미끄러지고 뚜껑은 열리지 않았다. 억지로 잡아 열려는데도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죽통을 봉인해도 단단히 봉인했나 싶어서 바람의 힘까지 빌려 잡아 뜯어 보았다. 소용없었다. 바닥에 내려쳐도 깨지지 않고 데구르르 굴러가 버리니. 고도를 죽일 수 있을 만큼 강한 바람이었는데도 고작 대나무 통 하나 부수지 못했다.

“왜 안 열려. 뭐야, 뭐야.”

노인이 죽통을 바닥에 내려놓고 발을 들어 쾅쾅 밟아 봤지만 죽통엔 금 하나 가지 않았다. 이럴 리 없는데, 이럴 리 없는데. 말도 안 된다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노인은 당혹스러움에 얼굴을 붉혔다. 핏줄이 터질 만큼 눈을 홉뜨고 죽통을 노려보던 노인은 씩씩거리다 말고 휙 고개를 돌려 고도를 바라봤다. 넋이 나간 청사 품에 고도가 얌전히 안겨 있었다. 시체는 창백하고 하얗게 질려 미동조차 없었다. 심지어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지도 않으니 저건 죽은 것이 분명했다. 한데 주인이 죽은 물건이 어찌 부서지지도 않는 것인가.

“궁금한가.”

노인은 두 눈을 부릅떴다. 고도는 놀란 청사의 품에 가만히 안긴 채 눈만 뜨고 노인을 보고 있었다. 그 눈은 여전히 초점이 없이 흐렸다. 죽은 이 특유의 썩은 동태 눈깔이 분명했다. 또한, 바람구멍이 난 왼쪽 가슴에서도 여전히 피가 꿀럭꿀럭거리며 흘러내리고 있었다. 시체가 살아서 움직이는 것이다. 기겁을 한 노인과 달리 고도는 이 정도의 죽음 따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 어떻게.”

고도는 힘 하나 까딱하지 못하는 몸으로 도술까지 부렸다. 눈꺼풀을 한 번 깜빡였을 뿐인데 노인의 발목이 으스러지고 노인은 휘청이며 뒤로 넘어갔다. 콰당, 소릴 내며 쓰러진 노인을 보고 있던 고도가 청사의 어깨를 잡고 몸을 일으켰다. 청사가 다급히 고도를 도로 안아서 품에 앉혔지만 고도는 억지로 몸을 세웠다. 노인은 이 상황을 믿을 수 없어 붕어처럼 입만 뻐끔거렸다.

“내가 원래 잘 안 죽는 족속이다. 그리 억울해하지 말거라.”

고도는 피가 흘러내린 턱을 손등으로 닦고 바닥에 떨어진 죽통을 집어 들었다. 뚜껑을 잡고 돌리자, 노인이 그렇게 난리를 부리며 깨부수려 해도 소용없던 죽통이 순순히 열렸다. 그 속에서 숨 막히는 탁한 기류가 쏟아져 나왔다. 죽통이라는 좁은 입구에서 온갖 요괴들이 서로 세상으로 나오기 위해 앞다투어 손발과 얼굴을 내밀었다.

같은 요괴마저도 오싹 소름이 돋을 만큼 섬뜩한 비명소리가 울렸다. 주막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오금을 저리게 만드는 강력한 요괴들의 힘이 죽통에서 흘러넘쳤다. 썩은 검은 손톱이 죽통에서 나와 거미 다리처럼 깔짝거리며 고도의 목을 움켜쥐고, 피부가 흘러내린 여섯 개의 손가락이 고도의 상처 난 가슴을 향했다. 누구 것인지도 모를 거대한 철퇴가 죽통에서 나와 산 사람 세상에서 휭휭 돌려졌다.

마치 지옥도의 풍경 같았다.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풍경에 노인은 벌레처럼 몸을 말고 떨었다. 고도는 그 끔찍한 모습의 한가운데서도 지나치게 태평했다.

“말도 안 돼……! 믿을 수 없어! 어째서, 어째서!”

고도는 온갖 요괴들이 죽통에서 반쯤 몸을 빼내어 자신에게 엉켜든 와중에도 바닥에 굴러다니는 부적을 하나 집어 들어 노인의 이마에 붙였다. 거죽밖에 남지 않은 피부 위에서 부적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부적에 그려진 주술문이 금색으로 빛났다. 그 고귀한 색상이 어둠으로 넘실거리는 푸줏간 전체를 환하게 밝혔다.

노인의 썩은 입 안에서 악취와 함께 끔찍한 비명이 터졌고, 노인의 전신이 녹아내렸다. 노인이 멍하니 주저앉아 있는 안주인에게 손을 뻗었다.

“응애, 응애!”

어머니를 살리기 위한 방법은 마 밭에서 캔 동자삼을 푹 고아 삶아 먹이는 것뿐이니.

가마솥에 물을 얹고 아기를 집어넣었을 때와 똑같은 울음소리가 들렸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어머니의 몸이 가마솥에 넣었던 동자삼처럼 녹아 흐르고 있었다.

“응애……!”

찢어지는 울음소리와 함께 시체가 되어 쓰러진 노인의 몸에서 다리가 하나뿐인 아기가 나타났다. 뿌리털이 가득하여 머리 위에 핏빛 꽃을 피우고 있는 갓난아기였다. 아이는 세상이 없어질 듯이 목청껏 울더니 곧 죽통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고도가 힘을 방출하자 몸에 들러붙어 있던 요괴들이 비명을 지르며 아이와 함께 죽통 안으로 되돌아갔다. 고도는 죽통의 뚜껑을 덮었다. 살풍경이던 지옥도가 사라지고 기묘한 침묵이 감돌자, 고도의 전신을 음습하게 감싸고 있던 어둠 역시 흩어지게 되었다.

“쿨럭.”

고도가 어깨를 떨며 기침을 뱉었다. 그 속에 피가 섞여 검은 두루마기에 묻었다.

“쿨럭!”

다시 반복된 기침에 시체가 살아서 움직이는 모습을 꿈인 양 구경만 하던 청사가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휘청하는 고도의 몸을 간신히 받아 낸 청사가 고도의 얼굴을 살폈다. 여전히 시체처럼 창백하고 굳어 있는 얼굴이었다. 극심하게 기침을 할 때마다 뚫려 있는 왼쪽 가슴에서 피가 꾸물꾸물 흘러나왔다. 청사가 조심스레 상처 난 가슴 위에 손바닥을 대었다. 역시나였다. 심장은 뛰지 않았다.

고도는 흐릿한 눈으로 청사를 바라봤다. 언제나 수줍게 웃던 청사가 어쩐 일인지 굳은 표정을 풀지 못하고 있었다. 왜 그리 심통 났느냐. 아니, 크게 화가 났구나. 놀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고도는 정신을 잃기 직전에 미호의 비명소리를 들었다. 소가 다급하게 달려와 자신의 뒷덜미를 물어 등에 태우는 감각도 느꼈다. 안주인이 흐느껴 우는 소리와는 조금 다른, 청사의 물기 오른 목소리가 귓가에서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하지만 고도는 눈을 뜨지 못했다. 그는 볼을 세게 때리는 손길에 화끈한 통증도 느끼지 못하고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

고도는 한동안 꾸지 않았던 꿈을 다시 꿨다. 꿈의 시작은 언제나 파도가 부드럽게 부서지는 바닷가였다. 그 속에 등장하는 사람은 열 살 남짓한 소녀였다. 긴 머리가 어머니보다 예쁘다며 고도에게 안겨들어 함께 짠 바닷물에 젖어들곤 하던 아이. 그 꿈이 길어질라치면 아이의 어머니가 저 멀리서 걸어왔다. 그러면 아이는 엄마를 부르며 고도를 붙잡고 뛰었다.

예전에는 너무 자주 꿔서 현실과 꿈속을 헷갈리던 때도 있었건만, 요즘엔 그 꿈을 까마득히 잊고 지냈다. 이번에 꾼 것이 반갑다기보다는 생소하게 느껴졌다. 차라리 눈을 떴을 때 꿈의 내용을 잊었으면 좋겠는데, 이것도 참 부질없는 희망이지 않은가. 몹쓸 기억력이다. 과거 시험 보러 갈 땐 제법 유용하겠으나 그럴 일이 없으니 꿈마저 정확하게 기억하는 기억력은 참으로 저주스러웠다.

짹짹짹짹. 새들이 맑은 소리로 조잘거렸다. 고도는 참새가 내려앉은 창틀을 멍한 눈으로 내다봤다. 창틀에 부리를 닦으며 상쾌하게 울던 참새는 고도와 눈이 마주치자 놀라서 푸드덕 날아올랐다. 고도는 참새가 있던 자리만 쳐다보다 곧 태양이 중천에 뜬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차가운 바람결이 간혹 이마 위 머리카락을 헤집어 놓고 있었다.

고도는 손끝에 힘을 주어 간신히 손가락을 꿈틀거려 보았다. 엄지부터 새끼손가락까지 차례대로 움직이는 데만도 많은 시간이 걸려서, 팔 자체를 가눌 때는 비 오듯 땀을 쏟기까지 했다. 요괴와 싸울 때조차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던 고도는 이제야 그때 잊고 지낸 고통을 느낀 사람처럼 힘겹게 숨을 내쉬었다. 팔을 움직여 목 부근을 더듬어 보자 누군가 깨끗한 천으로 상처를 단단하게 여며 둔 흔적이 짚어졌다.

이렇게까지 안 해도 금방 다 나을 텐데.

고도는 혼잣말을 중얼거리곤 다시 창밖을 쳐다봤다. 느리게 흘러가는 구름을 보니 절로 눈꺼풀이 감겨 잠에 빠질 것 같았다.

“고도? 일어난 거야?”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듣고 고도가 누워 있는 방문을 열었던 미호는 고도가 정신을 차린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후다닥 뛰쳐나갔다. 그녀는 주모를 닦달한 끝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그릇 하나를 들고 들어왔다. 미호의 손에 들린 그릇 안을 보니, 내용물은 잣과 깨가 뿌려진 따뜻한 죽이었다.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럽고, 냄새 역시 고소했으나 고도는 죽을 입에 대지 않았다. 아니, 댈 수 없었다. 상체를 일으키는 것만으로도 큰일이라서 그저 똑바로 누워 있는 것이 다였다. 이 상태론 죽에 입을 대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죽 먹어야 해.”

고도는 눈앞까지 들이민 그릇을 보며 사뭇 안타깝다는 듯이 말했다.

“입이 손끝에 달려 있으면 찍어서 먹기라도 할 텐데 이 상태로는 무리이지 않느냐.”

“일어나서 먹으면 되지.”

“조금도 못 움직이겠다. 에구구구.”

다 늙은 사람처럼 앓는 소리까지 냈다. 고도가 실제로 아픈 것보다 더한 엄살을 부리고 있다지만 그게 얄밉다고 뾰족한 말로 되받아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고도는 환자다. 그것도 죽다 살아난 중환자.

미호는 한참이나 근심 걱정 어린 표정으로 꼼짝도 못 하는 고도를 보더니만 “내가 입으로 떠먹여 줄까?”라는 망발을 뱉은 탓에 고도가 반사적으로 도술을 써 미호를 날려 버리는 일이 벌어졌다. 덕분에 갑작스런 도력 사용으로 고도는 피까지 토하면서 기침을 냅다 뱉어야 했다.

벽에 처박히고 나서야 히잉, 하면서 울먹이던 미호가 고도 옆에 얌전히 앉았다. 그녀는 죽을 한 숟가락 떠 제 입에 물고는 고도에게 입을 맞췄다. 뜨끈거리고 물컹한 것이 입술을 타고 넘어오자 고도가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 말라고 머리통을 밀어내는데도 미호는 그릇의 반이 빌 때까지 고도의 어깨를 단단하게 내리누르고 죽을 입으로 넘겨 주었다.

“이틀 동안 눈을 못 떴어. 뭐라도 안 먹으면 못 일어날 거야. 이렇게라도 먹으라고.”

고도는 황망한 얼굴로 미호를 올려다보다가 그녀 입술 근처에 묻은 밥풀을 엄지손가락으로 쓱 훔쳐 주었다. 손끝에 묻은 밥풀을 어디 버리지 않고, 미호의 입술 안으로 밀어 넣었다. 짭조름한 손가락의 맛과 잣죽의 달짝지근함이 겹쳐지니, 고도의 손가락을 물고 있는 미호의 상태가 퍽이나 이상하게 보이는 상황이었다. 그제야 미호는 오해하기 충분한 상황임을 깨닫고 어버버 입만 벙긋거렸다. 고도가 그런 미호를 보며 피식 웃었다.

“지진아. 네놈이 나랑 그렇게 입이 맞추고 싶었다니.”

“그, 그게 아니라!”

얼굴색이 홍당무가 된 미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안절부절못하면서 제 상황을 어찌 설명해야 할지 몰라 두 팔만 파닥거리며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숟가락으로 넘기니까 네가 계속 토했단 말이야. 계속 먹질 않으니 억지로라도 먹여야겠다 생각한 거고. 너한테 이상한 감정 갖는 거 아냐. 그냥, 나는 그냥 네가 이대로 진짜 죽을까 봐 걱정돼서 그런 거야.”

울상인 표정을 보니 더 놀리고 싶어도 이쯤에서 그만둬야 할 것 같다. 이 이상 놀리다간 정말 상처받아서 울며불며 뛰쳐나갈 판이니. 고도는 미호가 어떠한 흑심을 품어서 입을 맞춘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몸도 가누지 못하는 저를 가여이 여겨 본능적으로 친절을 베푼 것뿐이었다.

“넌 정말 지진아다.”

고도는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을 뻗어 미호의 손을 잡아 주었다.

“이렇게 착한 요괴가 세상에 어디 있겠느냐.”

얼굴을 붉힌 미호는 머리카락 사이에 얼굴을 푹 묻어서 감추었다. 귀와 목까지 새빨개진 모습은 참으로 귀여워, 미호가 영원히 성체가 아닌 유아체로 있길 바라는 마음이 생길 정도였다. 민망하기도 하고 쑥스럽기도 해서 고도 옆에 얌전히 앉아 있던 미호는 손가락만 꾸물거리다 고도를 힐끔 봤다. 저 정도로 다치면 힘들어서 어리광이라도 부릴 법 한데, 고도는 처음의 엄살 외에는 아프다는 내색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슬그머니 고도의 가슴에 손을 얹어 보았다. 두근두근. 손바닥 아래서 심장이 뛰었다. 멈추었던 심장이 다시 힘차게 박동하자 이제야 제법 산사람 태가 나는 것 같다.

“있지……. 청사가 너 많이 걱정했어.”

미호는 무릎을 붙이고 앉아 그 위에 턱을 얹고 말했다. 하늘에 두둥실 떠다니는 구름만 응시하던 고도가 미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너 엊그제 정신 잃고 나서 정말로 죽은 줄 알았거든. 심장이 안 뛰어서 얼마나 놀랐다고. 정말 다행이야.”

“새삼스럽긴. 난 원래 잘 안 죽는다.”

“사람 일은 모르는 거야. 그렇게 자만하다가 큰일 난다고.”

“차라리 그런 큰일이 났으면 하는군.”

“얘가 정말.”

“팔자도 날 비껴가지 않더냐. 너무 걱정 마라. 죽으면 그거야말로 하늘의 덕인 게다.”

“그런 게 어디 있어!? 말뿐이라도 그런 소린 하지 마.”

제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고도가 미워 미호는 철썩, 가슴을 때렸다. 손길이 제법 매워 고도가 쿨럭이며 잔기침을 뱉었다. 그 소리에 지레 겁을 먹은 미호가 천을 쓸어내리면서 쩔쩔 매는 우스운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좀 더 잘래?”

고도가 쉬는 게 좋겠다 생각한 미호는 죽이 남은 그릇을 들고 일어나 물었다. 고도가 습관처럼 창밖의 하늘을 보더니만 고개를 슬쩍 저었다.

“잠을 자는 게 더 고통이다.”

“왜?”

“몸은 편할지 모르지만, 여기에 온갖 생각이 떠오르거든. 잊고 싶어도 잊지 못하는 것들이.”

고도가 제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톡톡 두드리자 미호가 뭔 소리냐는 듯 눈만 껌뻑였다. 일일이 제 말에 주석을 달아 주는 친절함과 거리가 먼 사람이 고도였다. 그는 미호에게 자세하게 설명하는 대신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꼼짝도 못하는 애가 무리한다면서 미호가 펄쩍 뛰었으나, 기침을 뱉고 피를 토하면서도 고도는 고집을 부렸다. 그는 조심스럽게 가부좌를 틀고서는 아픈 몸을 힘겹게 바로 세웠다.

“대롱이랑 소는 어디 갔느냐.”

“어……. 소는 여기 있어. 그런데 소 상태가 되게 안 좋아. 어제 푸줏간 갔다 오고선 말도 없고 표정도 무겁고, 왜 그런 걸까?”

미호가 치마폭에서 짚신을 꺼내 보이자 고도는 한동안 고민하더니 가부좌 튼 다리를 잡고 눈을 감았다. 미호가 쳐다보는 시선에도 눈꺼풀을 들지 않고 조용히 숨만 골랐다. 마치 수행하는 승려처럼.

“나와 강문 때문이겠지. 내가 또 강문을 쫓을 흔적 하나에 흥분해서 날뛰는 걸 보고 얼마나 착잡했을까. 내 자신이 한심하구나.”

법력 높은 승려와 도깨비들이 잘 어울린다는 소문은 들어 보기만 한 미호였다. 소가 씨름 도깨비들의 우두머리여서 도사나 승려, 임금과 조정 신료들과 몇 번 만날 일이 있었다는 것 역시 얘기로 들어서 안다. 그런데 강문이란 자 때문에 골이 아프고 신경을 많이 쓰는 걸로 보아, 우두머리였던 시절에 무슨 깊은 인연을 맺은 듯했다. 고도도 그런 강문이란 자와 잘 아는 눈치지 않은가. 미호는 그 승려가 누구냐고 물어보려다가, 눈을 감고 기를 운용하는 고도를 보고는 물어보길 그만두었다. 대신 고도의 흥미를 끌 만한 이야기를 입에 담았다.

“대롱이는 푸줏간 잠깐 갔다 온다던데. 불러 줄까?”

역시나 미호의 예상은 들어맞았다. 보통 한 가지에 관심을 두지 않는 고도이다. 특히 이렇게 자신만의 도술에 취해 있을 때는 옆에서 뭐라 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남자다. 그런데 기를 온몸에 돌리던 고도가 대롱이란 말에 멈칫하고 눈까지 뜨는 게 아닌가.

“그 녀석이 푸줏간엘 왜 갔느냐.”

언제부터 청사를 그렇게 애지중지하게 됐는지.

괜히 샘이 난 미호는 부루퉁하니 대답했다.

“나도 몰라. 그냥 일이 있어서 간다고만 말했어.”

무릎에 얹은 손을 톡톡 두드리던 고도가 다시 눈을 감았다. 그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내쉬면서 몸속을 정갈히 했다.

“해 지면 바로 이동할 준비하고 기다려라. 난 몸이 좋아지는 대로 대롱이를 만나고 오겠다.”

저 심한 상처가 가부좌 틀고 기를 운용한다고 당장 움직일 수 있을 만큼 좋아지겠나. 일반적인 상식이라면 허풍도 정도껏 떨라며 화를 내는 게 정상이다만, 미호는 순순히 짚신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심장이 뚫려도 죽지 않는 인간이다. 상처를 스스로 고치는 건 그에게 큰일이 아니었다.

“그럼 쉬어.”

조용히 닫히는 문 사이로 고도는 자세를 바로 한 채 인사도 하지 않았다. 열린 창밖에서 흘러드는 바람결에 고도의 머리카락이 하늘하늘 흔들렸다. 지상에 사는 신선이라던 지상선이 바로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부평초처럼 마음 가는 대로, 몸 가는 대로 움직이긴 딱 고도와 같고, 아무리 어렵고 고된 일이 눈앞에 닥쳐도 허허실실 웃으며 새로운 경험이자 재미로만 생각하는 것이 신선과 무에 다를까 싶었다. 하나 그에겐 신선이 추구하지 않는 특징이 있었다. 바로 인간들 특유의 세속적인 고통과 번민이었다.

미호는 고도를 지켜보던 문틈을 닫았다. 날씨는 얄밉도록 맑고 주모와 주모에게 대드는 금동이의 왁자지껄한 소란이 평화로운 일상처럼 들렸다. 미호는 대청마루에 앉아서 주모가 가져다준 숭어 새끼만 냠냠쩝쩝 뜯어먹었다.

*

“참말로, 염치도 없으시네요. 여가 어디라고 또 오셨어요? 가세요! 두 번 다시 오지 마세요!”

“강문이란 자에 대해서 들으면 바로 가겠다.”

“할 얘기 없습니다!”

해가 훤한 대낮에 말싸움이 벌어졌다. 마을 사람들은 길을 가다 말고 멈추어 서서 소란이 들리는 대문 안을 기웃거렸다. 언제나 높은 나무 담에 가려져 있어 그 내부를 본 적이 없던 사람들은 비밀스럽던 푸줏간 안쪽 풍경을 목도하자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집은 풍비박산이 나 있었다. 지붕이 벗겨져 짚들이 마당에 날아다녔고, 간밤에 삽질이라도 했는지 마당 곳곳이 우물처럼 움푹 파여 있기도 했다. 대청은 반쯤 뜯겨져서 그 밑이 훤히 드러날 정도였고, 황토와 짚, 나무를 섞어 바른 벽은 구멍이 뻥뻥 뚫려 앞으로 다가올 겨울을 나기엔 퍽 부족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아수라장이 된 집 안 풍경보다도 가던 길을 잡아끌었던 말다툼의 주인공들에게 더 큰 관심을 보였다.

한 명은 집 안에 꼭꼭 숨어들어 얼굴 볼 길이 없었으나, 임금에게까지 효심을 인정받았던 푸줏간 안주인 김 씨였다. 하지만 그녀와 마주 선 남자는 마을에서 본 적이 없는 이였다. 보통은 망건을 틀거나 갓을 써야 할 머리를 그 남자는 길게 풀어 헤치고 있었다. 입고 있는 의관이 한눈에도 중앙 고위 자제인지라, 혹여나 대국에서 유학 온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사람들이 남자의 정체를 두고 속닥거리면서 실랑이를 벌이는 동안, 졸지에 왕실 사람에 버금가는 취급을 받게 된 청사는 귀를 간질이는 속닥거림에 짜증이 나서 휙, 문밖을 내다보았다. 서역 사람처럼 새파란 눈이 매섭게 노려보자 사람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후다닥 도망갔다. 몇 시진 안 지나서 이 마을 사람들 모두가 파란 눈에 고급 옷을 걸친 남자, 청사에 대해 온갖 추측 섞인 수다를 떨 것이라 짐작이 되는 대목이었다. 청사는 유난스러운 마을 사람들 태도에 짜증을 부리려다가 푸줏간 안주인을 보고 화를 눌렀다.

“이런 짜증나는 말싸움하고 싶지 않아. 나도 들을 얘기만 듣고 바로 갈 터이니, 그렇게 귀 닫고 눈 닫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태도 때려치워.”

“그러니까 할 말 없다고 하지 않았나요!”

안주인 고집이 여간내기가 아니었다. 결국 청사는 평화로운 대화를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 양 소매에 손을 찔러 넣고 느긋하게 서서 안주인을 내려다보던 청사가 몸을 움직였다. 청사는 눈을 깜짝할 사이에 안주인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녀의 손목을 꺾어 반대로 돌렸다. 팔이 꺾여서는 안 될 방향으로 휘어지자 안주인이 비명을 질렀다. 그 소리에 높은 나무 담벼락에 앉아 있던 참새나 지빠귀들이 후드득 날아올랐다. 사람들이 무슨 큰일이라도 났나 하여 달려오려 하자, 청사는 열려 있는 문을 손짓 하나로 쾅 닫아 버리고는 위협적으로 속삭였다.

“순순히 말하거나, 이대로 사지를 하나하나 꺾여 고통 속에 죽거나 선택해라. 물론 내게 자비는 바라지 마라.”

“알겠어요! 말할게요! 놔주세요!”

고래고래 악을 쓰던 안주인이 항복하자 청사는 미련 없이 팔을 놓아주고 한 걸음 물러났다. 여인은 앓는 소리를 참으면서 꺾인 팔을 매만졌다. 두 눈엔 독기가 가득 차올라 청사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지만, 제 형평상 요괴를 죽일 수도 없고 그럴 만한 실력자를 고용할 수도 없으니 다 헛된 바람에 지나지 않았다. 여인은 이를 앙다물고 말했다.

“나리들은 제 어머니를 해치는 게 목적 아니었습니까. 그 목적을 이루시고 어찌하여 애먼 사람까지 괴롭히십니까. 힘이 없어서 당신네들한테 어머니 복수를 하지 못하는 것이 분하고 원통합니다.”

그 말에 청사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장난하나? 지금 요괴인 네 어머니 퇴치했다고 복수하겠다는 말을 했나?”

인간이 요괴를 옹호하다 못해 정을 주고 집에 들여 몰래 돌본 죄를 인정하긴커녕, 어머니 탈을 쓴 요괴를 죽였다고 독을 뿜어내는 꼴이었다. 여인은 제 잘못을 알기에 더 이상의 이야기는 않고 입을 함구했으나 눈물이 가득 찬 시선을 청사에게서 돌리진 않았다. 요괴를 돌본 것이 죄라면 죗값을 치를 터다. 허나, 그 죗값을 치른다고 어머니가 되돌아오지 않기에 부득불 청사와 고도를 원수처럼 여기는 것이었다. 청사는 짜증이 나서 썅, 하고 가벼이 욕을 뱉었다.

“꼴값이다. 아주 꼴값이야. 요괴가 다른 마을 사람들 잡아먹은 건 죄송하지도 않고, 그 요괴가 죽은 것만 원통하고 한이 맺히나 보지. 인간들은 참으로 어리석어.”

“나리 같은 요괴는 인간 맘 모르겠지요!”

“그래, 몰라. 알고 싶지도 않아. 죽은 사람 살리자고 요괴한테 의지하는 것 자체가 참으로 어리석고 나약한지라, 이해할 수가 없어.”

“지금 사람 염장 지르러 왔나요? 그렇게 열 받게 하실 거면 가시라고요!”

“나도 이런 말도 안 되는 짓 하고 싶지 않지만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아. 그러니까 직접 귀찮은 짓을 하는 것이다.”

무엇을 알고 싶어서 이해할 수 없는 인간과 대화를 자청했는지, 안주인은 깊이 파고들지 않았다. 이들이 강문 보살에 대해 집착하는 것으로 보건대, 그와 관련된 도사 때문이라고만 대충 짐작할 뿐이었다. 강문에 대해서 말하면 더는 저를 괴롭히지 않을 거라 여긴 안주인은 순순히 아는 바를 털어놓았다.

“보살님은 아이 없는 제게 아이를 가질 수 있도록 조언을 주신 고마운 분이었습니다.”

이제야 소모적인 말다툼 끝내고 본론을 꺼내는구나 싶어서 청사는 팔짱을 끼고 이야기를 들었다. 저를 업신여기는 걸 알면서도 안주인은 화를 눌러 담고 말했다.

“동자삼을 캐내어 키우다 보면 정말로 인간 아이가 된다고 하셨어요. 그래 갖고 그 말을 믿고 따라서 삼을 캤지요. 그 삼을 금지옥엽처럼 대해 주니 어느샌가 한 다리가 두 다리로 늘어나고 머리에 달려 있던 꽃 봉우리가 활짝 피어서는 온몸의 털이 사라지고 인간이 되는 게 아니겠어요? 어머니와 함께 친아들처럼 키웠어요. 어머니가 노환에 몸져누우시기 전까진요.”

그녀는 두 손을 꽈악, 주먹 쥐었다. 아팠던 어머니를 생각하니 절로 눈가가 촉촉해지고 손발에 힘이 들어가는 모양이었다.

“몸이 노쇠한 어르신을 다시 젊고 건강하게 만드는 비책이 있다지만 그건 북질뫼에 있는 인형산삼뿐이라 말하셨어요. 불행히도 인형산삼은 50년 전에 한 의원에게 먹힌 후로, 아직 성숙하게 자라지 않아서 지금 캐내어 먹어 봤자 효력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천 년을 기다려야 한댔어요.”

그놈의 인형산삼은 이전 마을에서 만났던 덕규라는 의원의 뱃속에 들어갔다. 덕분에 육갑이 넘는 나이에도 환골탈퇴해서 젊고 건강하게 잘 살고 있다만. 이런 이야기까지 할 필요는 없기에 청사는 잠자코 고개만 끄덕였다.

“어머니의 노환이 깊어져서 아이를 삶아 먹일 수밖에 없었어요. 동자삼은 백 년 묵은 산삼이 화한 것이니까요. 귀한 약재나 다름없습니다.”

삼 종류의 요괴는 두 가지라, 하나는 북질뫼에서만 나는 천 년 묵은 산삼으로 젊은 여자의 몰골을 하고 있는 인형산삼이다. 다른 하나는 온 산에 깔려 있지만 온순하고 수줍은 어린아이의 형상을 하고 있어서 인간들 눈에는 잘 띄지 않는 백 년 묵은 삼, 동자삼이다.

청사는 여인이 말한 강문 보살은 법력이 대단한 중이었던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동자삼을 마 밭에서 캘 수 있게 조언한 것만으로도 요괴를 감별할 수 있는 눈을 가졌다는 방증이었다. 하나, 고도가 직접적으로 말하진 않았어도 대충의 분위기로 보건대 강문이란 자는 단순히 요괴를 알아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요괴를 직접 다루는 힘까지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니 죽은 노인의 탈을 뒤집어쓴 동자삼을 보고 ‘강문의 씨앗’이라며 전에 없이 살벌한 눈으로 으르렁거리는 것이 아니겠나.

속세를 떠나 번민을 다스리고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 중이 어찌 요괴의 씨앗을 인간 세상에 뿌리고 다니는 것인가. 그 정도 법력이라면 대사(大師)라 일컬을 만하거늘, 불가에서 장려한 것 중 ‘선민과 중생들을 돕는다.’는 계율에 어긋나는 짓을 했다. 가능성은 한 가지로 일축할 수 있었다. 아무리 뛰어난 중이라 할지라도, 모종의 이유가 생겨 파계를 당한 뒤에 그 특출 난 능력을 인간 세상을 어지럽히는 데 사용하는 것이다.

청사는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파계당한 뛰어난 중과 고도와의 관계. 그 둘의 정확한 사정까진 알아내지 못해도, 신선들이 주목하는 고도라면 법력이 높은 중과 어떠한 문제가 있었으리라 추측할 수 있었다.

“보살님이 어떤 분이신지는 잘 몰라요. 하루만 저희 집에 머물다 가셨던지라, 무척 다정하고 인정 깊고 생각이 깊으신 정도밖에요. 이만하면 됐나요? 이만 나가 주시지요.”

안주인의 격렬한 거부 반응에 청사는 흐음, 하고 목 안쪽만 울렸다. 안주인이 품고 있는 독기가 오뉴월에 서리를 내리게 할 만큼이나 대단했다. 여차하면 원수라 칭한 고도와 청사 자신을 죽을 때까지 독기로 쫓아다닐 기세였다. 물론, 이러한 하찮은 인간 여자에게 당할 고도와 청사가 아니나, 청사는 저 악의가 언젠간 저주가 되어 고도 일행의 발을 잡을 것 같단 막연한 생각을 했다.

죽일까. 죽이면 구천을 떠도는 귀신이 되어 쫓아오겠지만 산 사람의 원한보다야 나을 듯싶은데. 무엇보다 이쪽 일행에는 도깨비가 있어서 귀신이 꼬일 일도 없을 테고.

청사는 잔인한 방법을 아무렇지 않게 떠올리면서 손가락을 움직였다. 이대로 손가락 하나 휘둘러 허공에 물보라를 일으킨 뒤 여인을 익사시키면 그만이다. 구천을 떠도는 귀신의 한도 귀찮다고 생각하면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치게 하여 이것이 바로 애꿎은 사람들을 해친 요괴를 먹고 돌본 벌이라고 납득시키면 된다. 방법은 무궁무진했으며, 청사는 인간의 목숨 따위 중하게 여기는 위인이 못 됐다. 이대로 손을 휘둘러 어떤 방식으로든 여인을 죽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청사는 생각대로 하지 않았다. 대신 무너진 대청 중 가장 멀쩡한 곳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소매에서 장대를 꺼냈다. 대 끝에 불을 붙이고 담배 연기를 피우는 모습을 보니, 여인은 화딱지가 나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당장 나가십시오!”

여인이 손에 잡히는 돌멩이를 집어던졌다. 청사는 그것을 한 손으로 받아내서는 위로 던졌다가 떨어지는 것을 다시 잡아내는 가벼운 장난을 반복했다. 청사는 구부정하게 허리를 숙여 두 팔을 무릎에 올리고 담배 연기만 길게 내뱉었다.

“얘기를 더 들어 봐야겠다.”

“보살님에 관해선 아는 게 없다고 말했는데요!”

“강문 말고 자네와 자네 어머니 말이야.”

“네?”

“어머니를 홀로 모시는 것도 이상하고, 남편도 없는 몸으로 손자 보여 주겠다고 요괴 힘을 끌어들인 것도 우스워. 늙으면 죽는 것이 인간이다. 그 이치를 거스르는 이유가 무엇이냐? 죽었는데도 성불하지 못하고 요괴의 힘을 빌어서까지 인세에 붙잡아 두려 할 정도로 그렇게 어머니를 좋아했느냐?”

“그, 그걸 왜 궁금해하시죠.”

“그냥 궁금한 것이다.”

“그냥 궁금하시다고요?”

“그래. 요괴들 사이에선 결코 없는 일이야. 아무리 소중한 이라도 죽으면 그만이다. 어찌 악독한 일도 감수하면서까지 곁에 두려 하는지 궁금해서야.”

순수하게 궁금할 뿐이라고 말하는 청사의 두 눈은 진심이었다. 어떠한 다른 이유도 없이, 단지 “인간들은 왜 그런가?”라는 호기심 하나만으로 묻고 있었다. 덕분에 안주인은 얼이 나가서 입만 벙긋거렸다.

인간들이 그렇게 체면을 차리고 도의를 운운하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숨기고 싶은 사실이나 슬픈 일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누가 죽었건, 집안에서 반대하는 혼인을 하려고 부모님을 저버리고 도망쳤건, 자세한 사정을 캐물어 드는 것은 예의가 아니다. 청사는 그러한 간단한 상식을 깡그리 깨부쉈으니, 안주인은 투지처럼 불타오르던 청사에 대한 원한에 맥이 빠지는 기분이었다.

안주인은 기운이 빠져서 허망하게 웃었다. 청사는 담배를 뻐끔뻐끔 피우면서 대답은 안 하고 왜 웃느냐 눈썹을 꿈틀거렸다. 뻔뻔해도 정도가 있지 남의 사정을 조심스럽게 묻는 것도 아니고 캐묻고 있지 않나. 안주인은 시건방진 청사를 보면서 다시금 어이없이 웃고 말았다.

“지는 열여섯 때 먼 곳으로 시집을 갔어요. 피붙이 하나 없는 낯선 곳에서 시집살이 하기란 몹시 힘들었어요. 남편은 푸줏간에서 마을 사람들을 위해 돼지나 소, 가끔은 사슴이나 고라니 따위를 잡아 고기를 잘라 파는 일을 했고요.”

의외로 쉽게 이야기를 털어놓는 안주인을 보면서 청사는 담배 끝만 더 새빨갛게 불태웠다.

“고기를 해체하는 일은 참으로 천한 일이라 백정이라며 타지에서 어찌나 많은 모욕을 당했는지 몰라요. 이 몸이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라 시어머니의 구박도 심했어요. 결국 참지 못하고 시댁에서 도망쳐 친정으로 돌아왔어요. 그간 남편의 어깨 너머로 배운 고기 해체 작업을 여서 써먹고 있었고요.”

마을 사람들이 저마다 마당에 고기를 걸어 놓은 이유를 이제 알겠다. 백정이라 무시했지만 이 마을 유일한 고기 써는 사람이 요괴에게 잡아먹혔으니 고기를 맡길 곳이 없어 제 집에 방치한 것이다.

“꼬장꼬장한 노친네라 잔소리가 어찌나 심한지, 그래도 아이를 낳지 못해서 시댁에서 쫓겨난 저를 어머니가 그리 잘 챙겨 주셨어요. 자식, 남편 모두 포기한 제게 어머니는 유일한 가족이었단 말입니다.”

먼 데 시집가 고된 시집살이를 하면서, 밖으로는 천한 것이라 욕먹고 안으로는 그나마 믿고 의지해야 할 남편까지 잃었으니 자식 없다고 구박 받던 것까지 더해져 친정으로 도피한 심정을 피상적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아픈 어머니 살아생전 손주 보여 드리자고 동자삼을 캤고, 그 동자삼마저 포기할 정도로 어머니를 살리고 싶었나 보다.

“밭에서 얻은 아이는 제 배 아파 낳은 아이처럼 소중했지만, 어머니가 더 중했어요. 울면서 아이를 삶아 어머니께 드렸을 때, 어머니가 자리를 털고 일어나셨어요. 그때 기뻐서 눈물을 한 바가지나 쏟았어요.”

안주인은 고개를 푹 숙였다. 입고 있는 치마를 움켜쥐는 손길이 한 번도 남에게 털어놓은 적 없는 제 속마음을 내보이고 그 후련함과 괴로움에 어쩔 줄을 몰라 하는 것처럼 보였다. 생각하는 것과 그 생각을 입에 담아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은 천지 차이인지라, 안주인은 속으로만 삭혔던 감정의 응어리를 보이자마자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요괴 앞에서 이 무슨 해괴한 짓거리냐며 스스로를 타박하면서도 아무 감정 없이 덤덤하게 쳐다만 보는 청사가 오히려 고마워 눈물을 더 쏟았다. 말없이 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마음의 위안을 느끼고 있던 것이다.

“저는 어머니가 제 자신보다 더 좋았어요. 그래서 저세상으로 보낼 수가 없었어요.”

히끅거리며 눈물을 삼키는 목소리로 쌓인 감정을 모두 토로했다.

“제가 정말 잘못한 건가요.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고 싶어서 그랬어요. 사람들에게 폐를 끼치는 건 알았지만, 그래도 미련이 남아서. 도저히 그렇게 보낼 수가 없어서.”

청사는 히끅거리며 흐느껴 우는 소리를 가만 듣다가 빨갛게 태우던 장대를 요술로 없앴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정리하고 대청 아래로 내려섰다. 그동안에도 안주인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억울하고 답답하고 마을 사람들에게 죄송스럽고 미련한 짓을 했던 자신의 감정이 꽉 뭉친 가슴만 주먹으로 퉁퉁 두드렸다. 허끅, 허끅, 숨넘어가듯 우는데 그 울음이 몹시 서럽게 들려 같은 인간이 보았다면 저도 모르게 눈시울을 붉혔을 것이다. 하지만 청사는 여전히 덤덤한 눈으로 안주인을 바라볼 뿐이었다. 허리가 끊어질 듯 숙이고 엉엉 우는 모습에서 그 어떤 슬픔이나 괴로움을 공감하지 못했다.

“네 노모가 잡아먹은 아이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부모 형제들이 있었다. 너는 그들에게 너와 똑같은 고통을 안겨 주었다. 네 행동은 소중한 사람과 오래토록 행복해지고자 다른 이들의 희생을 강요한 욕심과 미련에 불과하지. 네가 이끈 살인죄는 평생에 걸쳐 속죄하라.”

어머니, 어머니.

허리를 숙이고 울다 못해 대청 밑으로 굴러떨어져서 바닥을 치며 우는 모습이 실신할 듯 괴로워 보였다. 청사는 괜한 짓을 했다며 혀를 쯧 찼다. 입맛이 써서 더 이상 담배도 못 피우겠고, 괜히 인간들 사정에 개입했다가 뒤끝만 개운치 않아서 짜증이 났다.

두 번 다시 이런 짓 안 하리라. 뭐 때문에 이렇게 인간들 감정에 관심을 두었는지, 그 근본을 떠올리던 청사는 푸줏간의 문을 열고 나오다 그 자리에서 딱 멈춰 섰다.

머릿속에 떠오른 이는 고도였다. 자기 얘기는 죽어도 해주지 않는 남자가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 인간을 이해하고 싶어서 다른 인간들 이해하려고 애써 봤는데 기분이 나쁘고 찝찝하기만 했다. 이래서야 어찌 고도에게 한 발자국 더 다가갈 수 있는지.

신경질적으로 한숨을 팍 내쉬던 청사는 머리를 흔들어 털었다. 푸줏간 담벼락을 빙 돌아서 큰길을 따라 주막으로 돌아가려 할 때였다. 청사는 꺾인 담을 돌다 말고 발을 떼지 못했다. 청사는 눈앞에 서 있는 것을 보고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잘못 봤나 싶어 눈까지 비볐는데 그것은 귀신도 환상도 아니었다. 여기 있어서는 안 될 사람이 어찌 벽에 기대어 서서 느긋하게 하늘이나 구경하고 있다는 말인가.

“고도?”

청사는 황급히 고도에게 달려갔다. 하늘만 멀거니 쳐다보던 고도가 눈앞에 선 청사를 마주했다. 청사는 퍽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을 지었다. 이틀 동안 고열에 시달리며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는 고도를 직접 봐왔기에 그가 이렇게 툴툴 털고 일어나 걸어 다닐 상태가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던 것이다. 청사는 고도의 이마를 짚어 열을 재고 옷깃을 젖혀 상처를 살펴본 후에야 그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어쩐 일이야. 움직일 수 있겠어? 무리하는 건 아니지?”

걱정이 지긋한 청사를 고도는 뚫어져라 쳐다만 보았다. 아픈데 왜 여기까지 왔느냐고, 좀 더 푹 쉴 것이지, 이 망할 지진아 팔미호 새낀 나서는 널 말리지도 않았느냐고 세심하게 챙기기까지 했다. 걱정과 안도가 뒤죽박죽으로 섞여 아무렇게나 쏟아 내는 감정을 듣던 고도가 손을 뻗었다. 청사는 제 목에 둘러지는 팔을 보고 잠시 말을 멈추더니 곧 입술에 닿는 말캉한 것에 혼을 쏙 빼놓고 말았다. 눈이 동그랗게 떠져서 입만 뻐끔거리니 가볍게 입술을 맞추었던 고도가 귓가에 대고 웃음을 흘렸다.

“대롱아.”

처음에는 이게 뭔지 몰라 멍하니 있던 청사가 정신을 차렸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얼굴에 불이 붙었다. 속삭이는 목소리가 그렇게 부끄러울 수가 없다. 얼굴이 새빨개진 청사는 고도가 평소답지 않게 먼저 안겨 오는 것을 보고 손을 어디에 둘 줄 몰라 쩔쩔 맸다. 고도가 청사의 가슴에 얼굴을 기대고 눈을 감자, 그제야 청사도 허공만 더듬던 손으로 조심스럽게 고도의 허리를 안아주었다. 편안하게 기대어 오는 고도를 보고 눈가까지 붉혔던 청사가 고도의 머리카락 사이로 입술을 가져갔다. 햇빛을 받아 포근한 향내가 나는 머리에 쪽 하고 입을 맞추니, 고도가 얼마나 여기에 홀로 서서 저를 기다리고 있었는지 알 수 있었다.

“대롱아.”

다시 부르는 소리에 청사가 응, 하고 작게 대답하자 고도는 청사의 도포 속으로 더 파고들었다. 고도는 가슴 부근에 묻고 있던 고개를 들어 청사의 턱에 살짝 입을 맞추었다. 가볍고 간지러운 느낌에 청사의 심장이 크게 뜀박질했다. 홍조를 띤 얼굴로 한 뼘도 채 되지 않는 가까운 거리의 고도를 내려다보다가 결국 욕심껏 고개를 숙여 입을 맞췄다. 고도는 그 입맞춤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고개를 살짝 틀어서 청사가 혀를 섞기 편하도록 해주었다. 고도는 먼저 입을 떼고 청사와 눈이 마주칠세라 그의 품에 고개를 묻었다. 청사는 고도의 사랑스러운 행동에 아랫입술만 질끈 깨물었다. 확 어떻게 하고 싶은 이상한 충동이 이성과 힘겨루기를 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지 못하는 마음, 누구보다 내가 더 잘 안다.”

여기 서서 푸줏간 안주인 이야기를 모두 들은 모양이었다. 고도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던 부끄러운 짓이었는데, 그에게 딱 걸린 셈이었다. 고도는 이 일로 청사를 대견해하고 있었다. 아니, 대견하다 못해 아주 사랑스러워하고 있었는데 청사가 자발적으로 인간에게 관심을 가진 것 때문에 그런 듯했다.

“널 잃어서 후회할 짓 하지 않도록 내가 노력 많이 하겠다.”

본심을 숨기고, 감정을 속이면서, 세상 그 어떤 것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도록 껍질을 온몸에 두르고 있던 남자. 그런 남자가 아마 처음으로 속마음을 보이고 타인의 접근을 허락한 것이 아닐는지. 청사는 방금 전 느꼈던 사랑스러움보다도 더 큰 감동과 고마움에 수줍게 웃어 보였다.

“나도.”

품에 안긴 것은 고도이거늘. 어느새 매달리는 쪽은 청사가 되어서 그의 벅차오르는 감정을 달래는 쪽이 고도가 되었다. 고도는 청사의 목에 둘렀던 팔을 풀어 대신 등을 토닥여 주었다. 청사의 검은 머리카락이 가을 햇빛에 완전히 익을 때까지, 그 포근한 품에서 고도는 슬며시 미소를 짓고 있었다.

*

해가 뉘엿하고 서산으로 넘어갈 무렵, 고도는 행장을 다 꾸리고 나와 마루에서 신을 갈아 신었다. 고도가 떠날 때를 맞춰서 주모는 미호가 좋아하는 녹두전과 당과, 사탕을 한 보따리 싸서 주막 문 앞에 서서 기다렸다. 주모는 가까이 다가온 고도에게 음식 보따리를 내밀면서 정중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몰래 아이를 키우기 좋지 않았던 우물동 마을 환경. 그렇다고 이사를 하자니, 다른 곳에 가서도 주막 일을 순탄치 않게 할 자신이 없어서 이곳에 눌러 살려면 마을의 이상 현상을 없애야겠다고 마음먹었었다. 그런 주모가 무리를 해서 고도에게 부탁을 한 것인데, 일이 다행스럽게 잘 풀렸다.

그녀는 이것이 하늘의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냐며 고도를 존경하고 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음식을 정중하게 내밀었다. 음식 보따리를 보고는 고도보다도 미호가 더 좋아하며 폴짝 뛰었다. 그녀가 자기 상체만 한 보따리를 받아 들자 고도는 주모에게 눈으로 감사의 인사를 했다. 그러곤 주막을 나서기 전에 주모 치마폭 뒤에 숨어서 쭈뼛거리며 눈치를 보는 금동이에게 다가갔다.

“아이야.”

고도는 금동이의 눈높이에 맞춰 한쪽 무릎을 꿇었다. 금동이는 며칠 전에 고도와 검을 섞는 큰 무례를 범했다 생각한 탓인지, 고도를 대하기 무척 어려워했다. 더욱이 제 어미가 무릎까지 꿇고 울고 불며 매달린 사람이어서 혹 해코지는 하지 않을지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고도는 그런 금동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아비 없는 하늘 아래에서 혼자 크긴 힘들 것이다.”

금동이는 우물쭈물하다가 얘기했다.

“아부지 있어. 어무니가 아부지 있다 말했는걸.”

“널 낳아 주신 아버지는 있을지 몰라도, 키워 주는 아버지는 없을 것이다.”

아이는 눈을 크게 뜨고 어머니를 바라봤다. 이 말이 사실이냐는 눈빛에 어머니는 차마 대답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아이는 크게 낙심하여 발끝으로 마당의 흙을 파헤쳤다.

“아부지가…… 아부지가 직접 검술을 가르쳐 주셨는데…….”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아버지께 받은 배움이 될지 이 어린아이가 어찌 알았을까. 고도는 상심한 아이의 손을 잡았다. 미호보다 작고 여린 손을 매만지다가 억지로 주먹을 쥐게 했다. 사내대장부의 손은 이래야 한다는 걸 알려 주려는 것처럼, 힘 빠진 손을 주먹으로 꽉 쥐어 주면서 말했다.

“네가 네 어미를 지켜야 한다.”

아이는 고도 손에 잡힌 제 주먹을 쳐다봤다.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지만 그것이 마음에 와 닿지는 않는 것처럼. 같은 하늘 아래 있을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고 볼 수도 없다는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홍길동전을 아느냐.”

아는 이야기가 나오자 그제야 기운이 빠져 있던 두 눈에 빛이 감돈다.

“응! 알아.”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는 모습을 보고 고도가 다시 물었다.

“길동이가 어려서 어찌 지냈느냐.”

“서자라서 아부지를 아부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했어.”

“그렇게 힘들게 지냈지만 커서 어찌 되었지?”

“나라 하나 세웠지! 백성들을 풍요롭게 하고, 또또, 좋은 일도 많이 했어! 의로운 사람이야!”

“그래. 호부(呼父)를 하지 못하긴 너도 마찬가지며, 믿을 만한 것이 검 하나 휘두르는 것밖에 없다는 것도 이하 동문이로다. 소중한 이를 지키기 위해 휘두르는 검이 세상에서 가장 강하고, 또 의로운 행위다. 네 이 손으로 어머니를 지키고, 마을을 지켜 주거라. 알겠느냐.”

고도의 손에 쥐어진 주먹을, 금동이는 가만 내려다보았다. 곧 아이는 제 힘으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그러곤 들고 있는 젓가락이 홍길동이 휘두른 칼이라도 된 양, 힘차게 쥐었다. 아이는 입을 합 다물고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응!”

고도는 무릎을 털고 일어났다. 주모가 건네주는 행장을 꾸리고 정리하곤 문밖을 나서기 전에 고갯짓으로 인사했다.

“행복하시오.”

눈물이 그렁그렁 매달린 주모가 작은 소리로 “감사합니다.”라고 하였다. 마을을 지켜 준 것에, 본인과 아이의 사연을 알면서도 관군에 고하지 않은 것에, 그리고 아이의 용기와 희망을 지켜 준 것에.

고도는 터덜터덜 길을 따라 걸으며 산속으로 사라졌다. 언제나 고도의 등 뒤만 바라보고 걷던 청사가 고도의 옆에 나란히 붙어 미호와 투닥거리는 모습은 저무는 해 속에 가려 금세 시야 밖으로 벗어났다.

소중한 것은 지킬 때 그 빛을 발한다. 하지만 소중한 것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보다 지키려는 행위 자체에 무게를 두게 되면 그 어찌 의롭다 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갖고 의를 행한다 해도 사사로운 정과 욕심이 개입하면 그것은 다만 자기 합리화에 지나지 않는다. 남을 공격함으로써 내 의지와 생각을 지키는 것은 폭력에 불과하니, 맞부딪히기 전에 피하고 물러나길 먼저 행하고 다시금 생각하라. 지켜야 하는 것은 그대의 욕심이 아닌 소중한 것 그 자체이다.

무학도감 서문, 최산해 제1정규군 전(前) 장이 스승의 말을 남기며.

제삼장. 푸줏간 안주인의 비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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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꽃이 아름답게 피던 춘삼월, 자량 도읍 최고 번화가인 화서가(街)에 삿갓을 쓴 젊은 선비 하나가 가던 길을 멈추었다. 선비 눈에 하늘하늘 떨어지는 배꽃보다 더 희고 아름다운 여자의 모습이 들어왔다. 여자는 자주색 보자기를 머리에 써 얼굴을 가렸으나 물빛 저고리와 옥빛 치마로도 숨기지 못하는 매혹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때마침 바람이 불어 보자기가 뒤집히니 얇은 천 너머에 가려 있던 얼굴이 드러나 복사꽃처럼 고운 볼을 가지고 초승달보다도 아름다운 눈썹을 볼 수 있었다. 혼기가 꽉 찬 나이로 보이는 여인에게 남자는 한눈에 반하고 말았다. 그는 여인을 쫓아가 그녀 앞에 멈추어 섰다.

“서생, 글공부를 하는 장영이라 하오. 예가 아닌 줄 아나, 그대를 보고 이대로 놓칠 수 없어 부득이 말을 걸게 되었소. 그대의 이름과 함께 만날 날과 시를 약조해 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소.”

과거시를 위해 힘써야 할 선비는 입신양명의 꿈보다 더 들끓는 사랑에 꿀꺽 침을 삼키며 빌었다. 서생의 저돌적인 표현에 당황한 기색을 보이던 여인은 곧 눈을 가만히 내리깔고 단아하게 대답했다.

“소인, 가연이라 하옵니다.”

장영은 아름다운 연꽃(가연 佳蓮)이란 이름에 몹시 기뻐했다. 장영이 조심스럽지만 단호하게 가연의 손을 움켜쥐니, 여인은 살며시 손을 떨면서도 두 볼에 발그레한 홍조를 띠었다. 다시 만날 날을 약조하고 공부방으로 돌아가는 장영은 가던 걸음을 수십 번도 더 멈추면서 뒤를 돌아 가연에게 손을 흔들었다. 도령이 사라질 때까지 치마폭을 잡고 배꽃이 흩날리는 바람을 맞고 서 있던 여인은 몸을 돌려 화서가 뒤, 토월산으로 향했다. 콧노래를 부르는 그녀의 발걸음은 가볍고 경쾌했다. 또한 그녀의 옥빛 치맛자락 밑으로 아홉 개의 여우 꼬리가 발걸음에 맞춰 흔들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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