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2/36)

#제일장. 누이의 여우구슬

탐스럽고 새빨간 석류다. 알알이 박힌 붉은 열매는 입에 넣고 와그작 씹으면 시큼한 즙과 향이 입 안을 가득 메울 것처럼 보였다. 어린아이들은 산 위에 올라가 석류 서리를 했고, 밭을 지키라 명을 받은 노비들은 아이들을 쫓아내느라 한바탕 전쟁을 벌였다. 노비들이 빗자루를 들고 왁자지껄 몰려다니는 아이들과 술래잡기를 하는 동안에 둔덕 아래에서는 아낙들이 치마폭에 석류를 담고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석류들을 치마폭에 감싸자 치마가 금세 붉게 물들었다. 석류는 태반이 너무 잘 익은 열매라 바닥에 떨어지는 즉시 반으로 쩍 갈라졌다. 덕분에 일일이 치마폭에 감쌀 때마다 월경 앓는 소녀처럼 치마는 짙은 색으로 젖어들었다. 치마가 묵직해지고 더 이상 머리에 이는 바구니에도 석류를 담지 못하는 지경이 되자 아낙들은 조잘거리며 수다를 떨면서 산길을 내려왔다.

고도는 마을을 지켜 준다는 삼백 년 된 삼나무 위로 올라가 그 풍요로운 풍경을 바라봤다. 그 어느 것 하나 모난 데 없는 평범한 마을 모습이었다. 아이들은 기운찼다. 아녀자들은 제 할 일에 충실했다. 집집마다 즐겁게 살아가는 모습에서 어떠한 문제점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고도의 눈에 밟히는 집이 한 채 있었으니, 이 마을 제일가는 부자라는 한 진사 댁이다.

한 진사 댁에는 소향이라 불리는 열여섯 계집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몸이 약했다는 소향은 체구가 또래보다 작았다. 햇빛을 못 받은 안색은 창백하고 표정도 밝지 않지만, 곱상한 이목구비로 남심을 흔들어 놓는 미인이기도 했다. 특히 사슴처럼 가느다랗고 긴 목이 고상하여 뒷덜미에 홀린 도령이 한둘이던가. 담벼락 너머로만 볼 수 있는 그녀는 항상 화선지에 붓으로 난을 치고, 비단에 수를 놓기만 할 뿐 또래와 잘 어울리지 않아 외롭고 쓸쓸해 보였다. 그런 그녀가 시집간다는 소문이 돈 것이 바로 세 달 전이었다.

상대는 자량이라는 도읍 안에 사는 잘나신 도련님이었다. 한 진사 댁이 시댁에 관해서는 쉬쉬하기 때문에 그 도령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없다. 남편 될 사람이 전쟁 나가서 팔 한쪽을 잃은 불구라느니, 벌써 과거에 급제한 나라의 재원이라느니 헛소문만 무성했다.

그런 소향을 위해 한 진사는 손수 고도를 불렀다. 비에 쫄딱 젖어 산을 넘는 그에게 몸을 말릴 곳을 마련해 주면서 친히 부탁을 했다.

‘얼마 전부터 산 입구에서부터 사람들이 사라지는 괴현상이 일어나오. 이게 무당을 불러 굿을 해도 소용없는지라. 날이 갈수록 소문은 흉흉해지니, 사람들이 산길을 오고 다니지도 않게 되지 않소. 더욱이 보름 후면 손녀딸은 혼인을 하기 위해 산을 넘어야 하는데, 혹여나 불상사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밤에 잠도 오지 않더이다. 그러니 도사님이 직접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게 어떠하오.’

갈 길은 멀고 남은 시간은 많으니 그 정도 부탁이 대수일까. 고도는 한 진사의 부탁을 선뜻 들어주기로 했다. 문제는 그 이후부터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마을사람들이 실종된다면 괴괴한 암운이 감돈다고 마땅히 생각할 텐데 마을 자체는 평화롭기 그지없었다. 아이들은 태평하게 석류 서리를 한다. 노비들이 그런 아이들을 쫓는 데 충실하다. 아낙들은 잘 익은 열매를 주우며 까르륵 웃는다. 누가 이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사라진다 할는지.

“이것이야말로 귀신이 곡할 노릇이구나.”

고도는 흐음 하며 목울대만 울렸다. 보자기에 석류를 담아 집으로 돌아가는 아낙들 뒤로 그 붉은 열매 같은 노을이 지평선을 물들이고 있었다.

*

쫑긋, 귀를 세운 소녀가 고개를 들었다. 오늘 밤은 만월이라 쏟아지는 달빛을 받은 소녀의 머리가 유독 창백하게 빛났다. 소녀는 노인보다 더한 백발과 그 안에서 달린 짐승의 귀 두 짝을 연신 쫑긋거렸다. 털이 보송보송해 아직 다 자라지 못한 새끼 여우의 뾰족하고 커다란 귀였다. 그 귀를 푸득 털던 소녀는 어떤 소리를 들은 듯 담 너머로 고개를 쭉 뺐다. 자박자박 느긋한 발걸음 소리에 맞춰서 무언가 다가오고 있었다. 소녀의 붉은 눈동자가 월하의 훤한 외길을 따라 걸어오는 것을 응시하더니 곧 드러난 그림자를 보고 반색했다. 삿갓을 턱 밑까지 푹 눌러쓴 검은 두루마기 차림의 사내였다.

“고도!”

툇마루를 펄쩍 뛰어넘은 소녀가 한달음에 문밖으로 튀어 나갔다. 뒷짐을 지고 어슬렁거리며 길을 올라오던 사내가 그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고도라고 불린 사내는 손에 쥔 검 자루로 시야를 가린 삿갓을 들췄다. 환하게 트인 시야로 소녀 하나가 달려오고 있었다. 커다란 바위가 굴러오듯, 저돌적으로 달려오는 탓에 퍽 무섭게까지 느껴졌지만, 고도는 소녀를 받아주려는 것처럼 가만히 서 있었다. 소녀가 꺅꺅거리며 사내의 품에 안기려는 순간, 고도의 등 뒤에서 새파랗게 빛나던 불덩이가 펑, 하고 소녀의 앞길을 가로 막았다.

“츠츠츠츠! 조신해야 할 계집이 이게 무슨 짓이더냐!”

험상궂은 산도적 꼬락서니의 도깨비였다. 그는 헐겁게 틀어 올린 상투머리를 흔들면서 고도에게 안기려드는 소녀의 이마를 한 손으로 턱 막았다. 허공에서 두 팔을 허우적거리던 소녀가 홍옥처럼 붉은 눈동자를 세로로 가늘게 뜨고 도깨비를 노려봤다.

“아저씨가 반가워서 이런 거 아니니까 놔주지?”

“고도가 곤란해하는 거 안 보이느냐.”

“뭐가 곤란해. 고도는 이런 적극적인 거 좋아해, 그치?”

도깨비의 시선과 고양이 눈동자가 동시에 고도의 얼굴에 박혔다. 얼떨결에 둘의 대화 속 주인공이 된 남자가 “음?”하고 지극히 관망하는 어투로 소리를 냈다. 그 얼굴과 목소리에서 도깨비가 말하는 곤란함도, 소녀가 말한 즐거움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새까만 눈을 태평하게 깜빡이면서 고개만 갸웃하는 모습이 도깨비와 소녀의 신경전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듯이 보였다.

도깨비는 동공 없는 새파란 안광을 빛냈다. 곧이어 누런 이를 드러내어 씨익 웃으며 소녀의 목덜미를 달랑 잡아 올렸다.

“이놈은 네 마음 받아 줄 생각조차 없나 보다.”

“으으, 미워, 고도.”

도깨비가 달랑 집어 든 소녀를 제 목에 태웠다. 목말을 탄 소녀가 도깨비의 상투머리를 잡고서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하고 나서야 고도는 멈추었던 걸음을 옮겼다. 그의 목적지는 소녀가 툇마루에 앉아 하루 종일 저를 기다리던 폐가였다. 고도는 폐가의 황량함이 무섭지도 않는지, 태평하게 툇마루에 걸터앉았다. 삿갓을 풀어 옆에 두고 나막신을 벗어 양반다리를 하는 모습에서 그 어떤 거리낌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 집은 십수 년 전에 장원급제한 생원이 살던 곳이다. 그 생원에게는 일가친척이 하나도 없었기에 과거에 급제하고 자량으로 올라가자, 주인 잃은 초가집은 아무도 찾지 않는 폐가가 됐다. 고도는 한 진사의 도움으로 당분간 이곳에 머물 수 있게 된 것이다. 마을 주민들이 사는 곳과 외따로 떨어져서 스산한 분위기가 적잖이 풍기지만 조용하고 남의 눈치 보지 않아도 되니, 고도에게는 불편할 것이 없는 곳이었다.

고도는 툇마루에 드러누워서 가만히 보름달을 구경하다가 눈을 감았다. 몸이 피곤해서인지 이대로 스르륵 잠에 빠질 것만 같았다. 머릿속이 뿌예지면서 잠결에 취하려는 찰나, 닫힌 눈꺼풀 너머로 아른거리는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마치 고도의 눈 감은 얼굴을 구경이라도 하는 것처럼 쭈뼛거리던 것이 조그마한 손으로 고도의 이마를 콩 때렸다. 고도는 몽롱한 눈을 뜨고 머리맡에 쭈그려 앉은 백발의 소녀를 쳐다봤다. 그녀는 입이 댓 발이나 튀어나온 뚱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고도, 못됐어. 고도는 나만 내버려 두고 소 아저씨랑은 만날 밖을 싸돌아다니더라. 날 데리고 다니는 게 싫어? 그래서 여기에 이렇게 가둬 두는 거야?”

어린애 같은 투정에 짚신 도깨비 ‘소’가 대신 대꾸했다.

“그럼 너도 짚신으로 변해라.”

“내가 어떻게 그래?”

“츠츠츠츠. 그러니 같이 못 다니지. 사람들이 네 머리랑 귀를 보면 무슨 생각을 하겠어.”

그녀는 냅다 두 손으로 제 귀를 가렸다. 귀신처럼 새하얀 머리와 쫑긋 솟은 두 귀는 빈말로도 인간의 형상이 아니다. 그러니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도깨비불 형상으로 고도의 어깨에 타고 다니는 소를 탓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언제까지 이렇게 혼자 시간을 보내야 하는 걸까 싶어서 코를 훌쩍이는 소녀를 보고 고도는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그는 이대로 한숨 곤히 자고 싶을 만큼 피곤해 보였으나, 머리맡에 붙어서 풀이 죽어 있는 소녀를 귀찮아하거나 밀치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저 때문에 이 흉가에 쭈그려 앉아서 하루 종일 기다렸을 생각을 하자 소처럼 장난으로라도 비난하는 소리를 할 수 없었다.

고도는 손을 뻗어 소녀의 볼을 손바닥으로 감쌌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소녀가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떴다. 고도의 눈빛이 무감정했던지라 설렘을 느끼긴 어려웠지만 말이다.

“지진아.”

참으로 못된 별명 짓기로다. 소녀는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지진아 아니야. 미호야, 미호. 예쁜 이름으로 불러 줘.”

“그래, 우리 팔미호. 이번 일은 인간들 보는 눈이 많아서 너를 데리고 다닐 수가 없다. 이것만 끝나면 산에서 같이 토끼 사냥을 하자꾸나. 내 친히 널 위해 엉덩이가 토실토실한 놈으로 잡아 주지.”

굳이 제 동료들보다 꼬리수가 하나 부족한 것을 들춘 것은 미웠지만, 뒤이어 토끼 사냥 이야기는 참으로 군침 도는 제안이었다. 미호는 조금 전까지도 느꼈던 서운함이 눈 녹듯 사르르 없어진 기분이 들었다. 고도를 쳐다보며 헤헤 웃은 미호는 고도의 곁으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오늘 별일 없었어?”

미호가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색동 치마 위에 억지로 고도의 머리통을 올려놓았다. 처음에는 몸을 돌려 미호와의 접촉을 피하던 고도도 끈질긴 무릎 베게에 어느 순간 얌전해졌다. 고도는 여덟 살 남짓한 어린아이 다리에 머리를 올려놓고 있으려니 어색하고 무안한 탓에 끙 하고 불편한 소리를 냈다. 자꾸만 몸을 뒤집어대는 고도를 보면서 미호는 가만있으라며 이마를 찰싹 때리는 것으로 응징했다.

“칠복산 서쪽 산길에 결혼 안 한 처자들이 사라진다면서. 그거 해결한다고 의뢰금까지 받더니 어떻게 된 거야? 말 좀 해줘.”

미호는 잘 익은 찹쌀떡이라도 되는 양, 고도의 볼을 잡고 쭉쭉 잡았다 늘였다를 반복하면서 물었다. 고도는 볼을 가지고 노는 손길에는 딱히 신경을 쓰지 않으면서 눈을 굴려 무언가를 생각했다. 머릿속을 정리하고 결론을 내린 고도가 어눌한 발음으로 말했다.

“일주일 동안 그 근처를 샅샅이 둘러봤지만, 특이한 점을 못 찾겠다.”

고도와 미호 옆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은 소도 그 말을 거들었다.

“내가 봐도 영 평범한 것들이야. 요괴니 도깨비니 귀신이니 하는 기운이 하나도 없지. 츠츠, 이매망량도 없는 산이라니. 그게 오히려 이상하지 않누?”

고도는 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외진 산길을 다시금 떠올렸다.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지는 곳이란다. 혹여나 사람들이 멧돼지나 곰한테 습격을 받아 죽었으면 그 시체라도 보여야 할 텐데, 시체는커녕 핏자국 하나 떨어진 곳이 없었다. 살인이 아닌 납거(拉去)가 유력하다는 생각이 자연스레 떠올랐다. 하나, 이렇게 가설을 세워 놔도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 인간이 인간을 잡아끌고 간 흔적도 없었다. 지금까지 사라진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이 성인 여성이나 남성이지 않나. 그들은 끌려가지 않으려고 적지 않은 저항을 했을 터. 그 저항의 표시가 산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으니 이것이 참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산짐승이 벌인 짓도 아니다. 인간이 벌인 짓도 아니다. 그렇다면 결국 요괴의 소행이라는 소린데 그 어디에도 요괴의 힘은 없지 않은가.

재복, 인복, 행복, 건강복, 아이복, 처복, 지아비복을 가져다준다 하여 칠복산이라 불리는 그곳은 가을의 풍광이 빼어난 4대 절경 중 하나로 손꼽힌다. 굽이쳐 흐르는 산줄기가 몹시 용맹하고 단단해 장군산이라고도 불리는 칠복산은 요괴나 귀신, 도깨비가 살 만큼 터가 음습한 곳이 아니다. 풍수지리적으로도 사람이 살기 적합하고, 땅을 일궈 농사를 짓기 풍요로운 형태를 지니고 있다. 한 가지 흠이라면 산세가 지나치게 높아서 한번 구름이 몰려오면 산마루에 걸려 반대편 계곡으로 잘 넘어가지 못한다는 것뿐. 다른 지방에 이틀 내릴 비가 삼 일 내리는 그 차이를 딱히 단점이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이렇듯 인간과 살기 좋은 조화를 가진 산에 갑자기 요괴가 출몰하여 인간을 흔적도 없이 데리고 가는 경우가 있기는 할까. 고도는 부적을 발에 붙이고 축지법을 부려 일각에 십 리의 거리를 돌아다녔지만 산은 평범했다. 지나치게 평범해서 사라졌다는 사람들의 기운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만큼이나.

단순한 요괴 소행인가 싶은데, 도깨비도 모르겠다 하고 산에게 물어도 산은 대답하지 않으니.

고도는 휘영청 밝은 달을 응시하다가 항상 몸에 들고 다니는 죽통을 바라봤다. 평소 때는 얌전하다가 밤만 되면 달그락거리며 요동을 치는 놈이었다. 이 영험한 죽통 안에서 온갖 난리를 치는 이가 누군지는 쉽게 추측할 수 있었다. 고도는 흔들리는 죽통을 신중하고도 집요하게 쳐다보다가 미호에게 시선을 옮겼다.

“지진아.”

“으익! 미호래도, 이 사람이!”

고도는 펄쩍 뛰는 새끼 여우의 심정은 안중에도 두지 않고 물었다.

“요괴는 오래 살수록 요력이 강해지지?”

“어……, 아무래도 그렇지. 요력뿐만 아니라 지력이나 인격도 모두 높아져. 요괴 중에 신령이 되는 경우도 왕왕 있으니까.”

“오래 산 요괴는 다른 요괴들의 습성 같은 것도 잘 알고?”

“당연하지. 나만 해도 세상 요괴들은 다 아는 걸. 신령 급은 빼고. 아저씨도 알지 않아?”

“츠츠츠츠, 난 도깨비랑 이매망량 한정.”

고도의 머릿속에 몇 가지 가설이 떠올랐다. 칠복산 서쪽 산길에서 사라진 사람들, 그 주범이 요괴라는 소문이 흉흉하나 실제로 그들 짓이라는 흔적은 없다. 고도가 요괴에 대해서 전문가라 할지라도 세상 모든 요괴를 훤히 다 아는 것은 아니다. 부족한 지식을 보충하고자 도깨비를 데리고 산을 뒤져 보았지만 소에게서 큰 도움을 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미호를 데리고 다니자니, 머리며 눈이며 십 리 밖에서도 눈에 띌 만큼 화려한 계집인지라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될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도깨비나 인간보다 요괴에 대해 잘 알면서 미호처럼 눈에 띄는 외양이 아닌 존재에게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소리인데.

“그런데 그건 왜 물어, 고도?”

미호가 턱 밑을 만지작거리며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고도에게 물었다. 별안간 요괴의 특징에 대해 묻더니 그 이유도 말해 주지 않고 자기만의 생각에 푹 빠진 이유가 궁금했다. 고도는 미호의 궁금증을 속 시원히 풀어 주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머리를 토닥여 주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미호는 닫힌 문만 멀뚱히 바라보다가 소에게 고개를 돌렸다. 소 역시 고도가 왜 저러는지 몰라 어깨를 으쓱였지만 말이다.

“자는 거야? 벌써 자게?”

미호가 닫힌 문을 도로 열어 빼꼼 고개를 들이밀자, 때마침 고도가 허리춤에서 검을 풀고 있었다.

“밤이 늦었다.”

고도는 주술이 걸린 검을 품에 안고 벽에 등을 기댄 채 앉았다. 달그락거리는 죽통은 왼편에 얌전히 두고 고개를 조금 숙였다. 벽에 기대어 앉은 형상처럼 보이나 저것이 고도 특유의 잠자는 버릇임을 아는 미호는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고도가 집에 오자마자 놀아 주지도 않고 잠을 잔다며 심통을 부렸다.

“나랑 안 놀아 줄 거야? 하루 종일 기다렸는데?”

“소랑 놀아라, 소랑.”

“우우, 난 고도랑 놀고 싶어.”

“소야, 이 귀여운 아씨랑 놀아 주려무나.”

고도의 말에 소가 냉큼 미호의 뒷덜미를 잡았다. 양쪽 귀가 축 쳐진 미호가 서러운 표정을 지었지만 고도는 피곤한 얼굴로 손만 흔들 뿐이었다. 고도가 손가락을 까딱이니 밤바람에 운율을 맞추어 삐그덕, 삐그덕 울리던 문이 스르륵 닫혔다. 미호가 손톱을 세워 방문을 긁어도 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고도의 도술은 때로는 너무 강력해서 이렇게 손톱으로 긁어 보아도 격자무늬 창호지조차 찢을 수가 없다. 몇 차례 더 캥캥, 울어대던 미호가 제풀에 지쳐 시무룩해졌다. 그녀는 툇마루에 걸터앉아서 땅에 닿지 않는 발을 앞뒤로 흔들었다.

“고도.”

처량 맞게 불러보아도 대답은 없다. 대신 소가 미호의 머리통을 툭툭 치며 말했다.

“저 인간은 하루 한 시진밖에 못 잔다. 내버려 둬라. 심심하면 나랑 같이 마을 갈까? 인간들 좀 골려 보자.”

“아저씨 혼자 해.”

소는 싫음 말라면서 도깨비불로 변해 저 마을 밑으로 내려갔다. 보나마나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해가 뜰 때까지 씨름을 하거나, 여염집 부엌으로 몰래 숨어 들어가 물건들을 난장판으로 만들 것이다. 소는 그런 어린애 장난질을 삶의 활력소로 여기는 도깨비였다.

어쩐지 마을 어귀에서 여자 비명 소리가 들린 것 같다며 귀를 쫑긋거리던 미호는 두 다리를 끌어 모아 품에 안았다. 눈이 시릴 만큼 커다란 만월 때문에 기분이 몹시 우울해졌다. 달은 원래 만물의 어머니라 태초의 기억마저 상기시키는 힘이 있다. 쓸데없는, 아니 몹쓸 기억까지 상기시키는 힘이. 이런 날은 누군가 옆에 있어 주면 좋겠는데 그 바람을 들어줄 유일한 인간은 방문 너머에서 눈을 붙이고 있다.

“우울해.”

여덟 개뿐인 꼬리가 힘없이 살랑거렸다.

*

이른 아침부터 땅 지킴이 노비들을 피해 와르르 몰려다니며 석류 서리를 하는 아이들이 한바탕 요란법석을 떨었다. 고도는 어른과 아이들의 쫓고 쫓기는 꼬리물기 풍경을 멀찍이서 구경했다.

평소라면 해가 뜨자마자 이 지역 산을 샅샅이 뒤지고 다녔을 테다. 일주일간의 조사에서 아무런 소득이 없자 더 이상 발품을 팔러 다니지 않았다. 대신 조금 더 효과적인 다른 방법을 강구하기 위해 마을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는 나무 위로 풀쩍 뛰어올랐다.

삼백 년이 되었다는 삼나무는 장승처럼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사람들이 나무 주위에 금줄을 달고 무당의 부적까지 붙여 놓고 신적인 존재로 취급하고 있건만 고도는 겁 없이 그 나무의 꼭대기에 걸터앉은 것이다. 누가 보면 저 후레자식 당장 끌어내라 하겠건만 정작 죄책감을 가져야 할 당사자는 따사로운 아침햇살에 나른하게 하품만 하고 있었다.

마을은 지극히 평범하고 산은 응답이 없으니 마을 사람 실종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런데 딱히 떠오르는 술수가 없다. 이렇게 시간만 보내다가는 실종 사건을 의뢰한 한 진사가 사기꾼이라면서 노발대발할 듯싶었다. 고도는 턱밑을 긁적이다가 결국 그리 결론 내렸다.

하는 데까지 해보고 안 되면 포기하자. 여차하면 그냥 도망가지 뭐.

물론 돈을 돌려줄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서는 깊이 고민하지도 않았다. 이미 받은 걸 돌려주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 않은가.

“안녕하신가, 흑의 선생.”

문득 어디선가 들어 본 목소리가 나무 밑에서 울렸다. 처음에는 저를 부르는 소린지 몰랐던 고도가 흑의라는 말에 입고 있던 두루마기 색을 확인하게 되었다. 아무래도 목소리가 찾는 이가 고도가 맞는 모양이었다.

삼나무 꼭대기에 앉아 마을을 보던 고도가 발밑으로 시선을 내렸다. 나무 밑동에는 흰머리를 상투 틀고 망건까지 쓴 노인 하나가 뒷짐을 지고 서 있었다. 허실하게 웃는 모습으로 보아 고도에게 의심 많은 시선을 던지는 뭇 마을 사람들과는 다른 종류의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다. 고도는 나무에서 내려가는 대신 자세만 고쳐 앉았다. 얇은 나뭇가지 몇 가닥이 고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흔들리다 부러져 나무 밑으로 떨어졌지만 몸이 추락하지는 않았다.

“호랑이인가 보군, 한 진사.”

호랑이?

한 진사는 난데없는 호랑이 타령에 눈만 껌뻑였다. 고도는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는 말을 비유하고자 그리 말했으나 진사가 그러한 고도의 속사정을 알 리 없다. 그는 호랑이가 무언고 몇 차례 고민을 하더니만 결국은 답을 찾지 못하고 이야기의 화제를 돌렸다.

“허허, 그 삼나무는 우리 마을의 수호수요. 그렇게 올라가 마을을 구경하는 전망대는 아니외다.”

“그건 걱정 말도록. 이 아이는 내가 앉는 것도 영광이라고 생각한다.”

거 무슨 자신감인지 모르겠다. 마을을 수호하는 나무에 올라간 일이 오히려 영광이라고 말하는 뻔뻔함에 한 진사는 웃지도 울상을 짓지도 못했다. 자신에게 하대하는 것이야, 도사라는 족속들이 언제나 을의 입장보다는 갑의 입장에 있으니 고개를 숙이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나무를 밟고 있는 것은 마음에 걸렸다.

“날 기억하오? 내, 소향이 할아비 되는 사람이오.”

암 기억하고말고. 서쪽 산길에서 여자들이 사라지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궁극적인 이유가 되는 사람이었다. 칠순을 넘긴 할아버지가 손녀딸 문제로 직접 행차한 것은 간단한 용건 때문은 아닐 터. 돈까지 쥐어 주면서 실종 사건을 해결하라 일렀는데 아직까지 깜깜무소식이라 고도를 보채기 위해 온 것일지도 모른다.

고도는 몸을 일으켜 풀쩍, 나무 밑으로 뛰어내렸다. 여덟 장은 되는 높이에서 떨어지는 고도를 보고 한 진사가 놀라서 뒤로 까무러쳤지만 다리나 팔이 부러져야 정상인 고도는 멀쩡했다. 한 진사는 귀신에 홀린 기분이었다. 상식적으로 벌어질 수 없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고도가 신기하고 두려웠다. 저자를 어찌 대해야 할지 몰라 속으로 끙끙거리던 한 진사는 간신히 마음을 다잡고 나서야 고도를 최소한의 어색함만으로 대할 수 있게 되었다.

“혹 아직 조반을 잡수지 않았다면, 울 집에 가서 한 상 했으면 하는데, 어떤가, 선생.”

밥은 명분이고 다른 중요한 볼일이 있는 모양이다. 고도는 딱히 거절할 말도 없고, 거절할 만큼 불편함을 느끼지도 않아 고개를 끄덕였다.

“떡이 먹고 싶은데 그것도 함께 준비해 줄 수 있나?”

“떡이라. 마침, 소향이 혼례로 오늘 저녁에 잔치를 벌인다 하여 시루를 찌고 있네. 것도 괜찮으면 상에 올리겠네.”

“이왕이면 불덩이를 삼키는 기분이 드는 것으로 부탁하지.”

막 쪄낸 뜨거운 떡을 대접해 달라 말하는 것인가. 한 진사는 화법이 특이한 도사라는 생각과 더불어 길을 안내하듯 먼저 앞서 걸었다. 일정한 간격을 벌리고 따라오는 고도에게서 발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귀신인가, 사람인가. 꼭 허공을 밟는 것처럼 오묘하기 짝이 없는 느낌이다. 힐끗 고개를 돌려 고도를 바라봤다. 놀랍게도 그는 지극히 평범한 걸음으로 한 진사를 따라오고 있었다.

고도는 계절 나물과 이 지역에서 보기 드문 생선 요리로 칠첩반상의 대접을 받았다. 진사쯤 되면 이 정도 밥상 마련도 무리가 없나 보다 생각한 고도는 소화가 채 되기도 전에 술이며 떡을 준비하라 시키는 성급한 노인을 묵묵히 지켜봤다. 그는 재작년에 담근 석류주를 내밀었다. 안사람으로 보이는 노년의 여성이 갓 찐 수수떡도 대접해 주었다. 그러곤 노인네가 이야기를 하기 앞서서 계집종을 시켜 안채에 있는 소향을 건너오게 했다.

소향은 처음에는 누가 손으로 왔는지 전해들은 바가 없어 영문을 모른 채 할아비가 시킨 대로 방을 건너왔다. 그러다 곧 조부와 함께 앉아 있는 고도를 보며 몹시도 불쾌한 기색을 보였다. 그 불편함의 정도가 조부만 없었다면 당장 문을 열고 돌아가려 할 정도였다. 도사라는 신분 때문에 꺼려하는 기색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보다 근본적인 불쾌감과 당혹스러움을 느끼는 듯했다. 그녀의 부정적인 감정을 눈치챌 수는 있어도, 감정의 이유를 정확하게 알 바 없는 고도는 복잡한 여심에 고개만 갸웃거렸다.

자신이 무슨 실수라도 한 걸까. 눈이 마주치자마자 이렇게 거부감을 나타내는 경우는 처음이다.

“아가, 이리 와서 앉아 보거라.”

굳은 표정으로 고도의 시선을 피하던 소향이 조심스레 장지문을 열고 들어와 제 할아비 옆에 앉았다. 그러자 허허실실 탁주와 과실주에 관한 의미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던 한 진사의 표정이 달라졌다. 그는 자기로 만든 잔을 상에 내려놓고 침울하게 말했다.

“이 아이를 본 적 있는가.”

고도는 외간 남자와 눈을 마주치지 않는 소향을 쳐다봤다. 흑단 같이 고운 머리를 가지런히 땋아 묶은 열여섯 소녀였다. 이 마을에 오자마자 얼핏 봤을 때와 다름없이 생기 없는 표정을 지니고 있었다. 몸이 약해 시집살이를 할 수는 있을지, 지아비 내조는 잘할 수 있을지, 벌써부터 어른들 걱정을 사게 만드는 외모였다. 유독 긴 목과 저고리 속 봉긋하게 솟은 가슴에 눈이 갔지만 이렇다 할 감흥은 들지 않았다.

“내게는 재회인데 본인은 모르는 것 같군.”

고도의 목소리를 듣고 소녀는 어깨를 움츠렸다. 너무도 긴장해 저러다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게 아닐는지 걱정이 될 정도였다. 소향의 상태를 알아채지 못한 한 진사는 그녀를 시켜 고도의 빈 잔에 술을 채워 주었다. 아침부터 술판이라도 벌이자는 건가 싶어서 고도는 한 진사를 쳐다봤다. 혼례를 앞둔 처녀에게 술시중을 드는 경우는 처음 봤다는 눈빛이다. 그것도 제 손녀를 시키는 경우는 더더욱.

“예전에 흑의 선생을 만나서 부탁을 한 게 있었지. 그땐 경황이 없어서 선생의 직함도 묻지 못했구려. 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묻겠네. 이름 석 자 알려 주게나.”

고도는 소향이 채워 준 술잔을 마시지는 않고 만지작거리다가 대답했다.

“비싼 이름이라 그건 좀.”

“하하. 알려 줄 수 없다는 겐가?”

“사람들이 별호처럼 내게 붙여 준 이름이 있긴 하지. ‘고도’라고, 언제 어디서 그렇게 불려 왔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옆에 있던 사람들이 어느 날부터인가 나를 고도라고 부르더군.”

태연하게 남 얘기 하듯 말을 하니 한 진사는 자칫하면 그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뻔했다. 별호만 있고 이름이 없단다. 남들이 불러 주는 이름은 있는데 그것이 진명은 아니고 가명이란다. 도자기 잔을 손에 끼우고 빙글빙글 돌리는 유유자적한 태도하며 제 이름 역시 방관자처럼 툭 던져 놓는 말투가 기이하다 못해 재밌을 정도였다. 한 진사는 도사라 하여 꺼림칙하던 일전의 마음을 털어 버리더니 몹시도 호감 가는 눈빛으로 고도를 쳐다봤다. 그는 고도라는 두 자를 입 안에 굴린 뒤 옛이야기를 하나 들추었다.

“고도 선생. 이 아이는 오 년 전에 어미를 잃었다네.”

갑작스런 가정사에 고도가 술잔만 응시하던 까만 눈을 들었다. 돈을 쥐어 주면서 일을 처리하라 시킨 사람에게 집안 사정을 털어놓는 것은 무슨 경운가 하여 한 진사의 의도를 짐작하는 모양새였다. 그러나 한 진사에게서는 그 어떤 악의도 묻어 있지 않았다. 고도에게 단순히 이야기를 들어 달라는 허허실실한 웃음만 보이고 있었다.

고도는 도포처럼 소맷부리가 넓은 두루마기 안쪽으로 두 손을 교차해 넣었다. 속내를 알기 힘든 검은 눈은 노인에게 고정되었다. 허리를 비스듬히 구부려 이야기를 들을 준비를 보이니 한 진사는 안도의 한숨을 푸욱 내쉬며 입을 뗐다.

“아이는 원래 제 어미와 함께 자량에서 살았었네. 그러다 어미는 오 년 전에 죽었어. 무인에게 살해를 당한 건지, 아니면 안 좋은 일에 휘말려 죽었는지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았어. 다만 제 딸과 함께 도읍에서 지내던 엄마가 그리 죽으니 안 그래도 몸이 약했던 소향이 큰 상처를 받고 시름시름 앓더군. 요양을 위해서 내, 이리로 데려왔네만 도읍에서 알고 지낸 도령이 혼사를 청했다네.”

고도는 노인이 털어놓은 특이한 가족사를 들으면서도 술잔을 빙글빙글 돌렸다. 오 년 전에 자량에서 사람이 죽었다. 어떠한 사고보다는 살인에 무게를 두는 죽음이다. 다른 곳도 아닌 도읍 자량에서 살인을 당했다면 그것은 입막음을 위해 처단한 것과 다르지 않았다. 소향이나 그 어미나 자량에서 알아서는 안 될 사람들과 엮였다가 봉변을 당한 것이 분명했다.

고도는 지극히 불편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소향에게 힐끔 시선을 줬다. 그녀는 고도의 시선을 느끼고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고도의 무엇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지 아랫입술까지 살짝 깨물면서 불쾌한 기색을 보일 뿐이었다. 그녀의 할아버지가 손녀딸의 미묘한 감정 소모를 알지 못한 채 말을 이었다.

“과거가 딱한 아이이지 않나. 나는 이 애가 어미를 잃은 슬픔을 잊고 정인의 사랑 담뿍 받아 행복하게 지내길 바란다네. 그러니 선생이 부디 우리 마을의 괴현상을 해결해 주고, 이 아이가 안전하게 자량으로 갈 수 있게 해주게.”

결국은 이렇게 아침상을 차리고 고도를 맞이한 이유가 사건을 얼른 해결하라고 보채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고도는 손안에 돌리고 있던 술잔을 상 위에 도로 내려놓았다. 그는 소향을 응시하던 눈을 돌려 노인을 바라봤다.

“자네가 내게 이야기를 털어놓았으니 나도 그 답례로 재밌는 이야기를 하나 해주지.”

고도가 술잔 대신 젓가락을 집었다.

“요괴들의 식성은 인간과 비슷하다.”

인간과 가축을 무작위로 잡아먹는 요괴들에게 식성이랄 것이 있던가. 한 진사가 눈살을 찌푸리고 말뜻을 이해하려 할 때, 고도가 수수떡을 한 조각 떼어내 마당으로 던졌다.

“고수레.”

그리 말하며 떡을 던지는 행동에 한 진사는 이게 다 뭔고 싶어서 눈만 껌뻑였다. 고도가 수수떡을 한 젓가락 더 떼어내 마당에 던지며 말했다.

“요괴들도 똑같아. 다 식어빠진 딱딱한 떡보다 갓 쪄낸 따끈따끈한 떡을 좋아한다.”

처마 위에서 지지배배 울어대던 참새들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떡 조각을 보고 마당에 내려앉았다. 귀엽고 앙증맞게 생긴 날짐승들이 그 귀여운 모습과는 사뭇 대조되게 치열한 날갯짓으로 떡을 한 부리라도 더 쪼기 위해 접전을 벌였다. 삽시간에 몰려든 참새들과 그런 참새를 보고 신이 나서 왕왕 짖으며 달려든 누렁이 때문에 마당에는 한바탕 소동이 일어났다.

고도는 짐승들의 소동에서 눈길을 거두고 소향을 바라봤다. 그녀는 고집스럽게 탁상 끄트머리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고도와 눈을 마주칠 생각이 전혀 없다는 의사였다.

“갓 쪄낸 떡이 산으로 들어오면 당연히 물어뜯을 것이다.”

언중유골을 깨달은 한 진사가 두 눈을 부릅떴다.

“지금 내 손녀를 한낱 맛 좋은 먹잇감에 비유한단 말이오, 선생?”

고도는 길길이 날뛰는 한 진사를 모른 체하고 사뿐히 마당 밑으로 내려갔다. 사람의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놀라서 달아나 버리는 참새들이 어인 일인지 고도가 지척에 다가와도 도망가지 않았다. 오히려 지붕 위에서 동료들의 치열한 부리다툼을 구경하던 다른 참새들마저 고도의 어깨나 머리 위로 날아와 앉을 정도였다. 한 진사는 감히 손녀딸을 요괴들 맛 좋은 먹잇감에 비유한 고도를 쫓아가 응징하려다 말고 놀라서 눈만 크게 떴다. 어깨에 앉은 참새들을 손가락에 태운 고도가 슬쩍 한 진사를 바라보다가 웃었다.

“걱정 마라. 그 떡 운반은 내 친히 안전하게 해주마.”

“아니, 글쎄 사람을 떡으로 말하는 게 어디 있소!”

“여물어 가는 석류라고 하기는 좀 그렇지 않나.”

“실례라는 생각은 안 하오!”

“이런, 사사로운 것에 신경 쓰면 큰일을 못 하네.”

“사사롭다니!”

“이 몸은 큰일을 하러 가보겠네.”

“아니, 이보오, 도 선생, 도 선생!”

눈 깜짝할 사이에 고도가 서 있던 자리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한 진사는 귀신에 홀린 것처럼 멍한 눈으로 마당을 살폈다. 마당에는 아직도 떡 조각을 두고 부리를 쪼아대는 참새와 고도의 손가락에 앉아 있다 말고 푸드덕 날아오른 참새들 그리고 그런 참새들을 보고 꼬리를 치는 누렁이로 난리가 나 있었다. 이 모든 소동의 주동자만이 발을 빼고 사라진 요란 법석한 풍경 속에서 한 진사는 입을 쩍 벌렸다.

고도. 이름만큼이나 참으로 기이한 도사였다.

“어라, 오늘은 일찍 돌아왔……, 어어, 고도?”

미호가 툇마루에 앉아 있다가 깜짝 놀라 외쳤다. 해가 뜨면 짚신 외짝으로 변하는 도깨비 소를 가지고 놀던 것도 멈춘 채 성큼성큼 다가오는 고도를 쳐다봤다. 고도는 툇마루에 올라서자마자 미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 한 뒤에 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방구석에 내팽개쳐 두었던 행장을 풀었다. 그 안에는 수백 장의 부적 묶음과 화선지, 먹과 벼루, 세필 붓이 있었다. 고도는 자리에 앉자마자 화선지를 넓게 펼쳤다.

“지진아, 물 좀 떠 오거라.”

문지방 너머에서 고도가 하는 양을 쳐다보던 미호가 그 소리에 길어 놓은 물을 접시에 받아 왔다. 고도는 벼루에 물을 넣고 먹을 갈기 시작했다. 검은 두루마기가 아니라 백색 비단 학창의를 입고 있었다면 문예에 소질 있는 선비로 보일 정도로 먹을 가는 솜씨가 기가 막혔다. 하지만 먹을 갈 때의 차분하고 안정적인 분위기는 세필 붓을 든 후 팽팽한 긴장감으로 반전됐다.

화선지에 닿은 붓을 따라 검은 흔적이 남았다. 글자들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하얀 세상을 검게 물들였다. 그중에는 간혹 글자의 형태를 넘어서는 주술적인 문양으로 탈바꿈하기도 했다. 문양들은 다른 글자들을 묶어 두듯이 일정한 틀 속에서 무리를 지으며 글자들을 주도했다.

오랫동안 고도의 일을 지켜보아 온 미호의 눈에도 그것은 신기한 장면이었다. 고도는 일상적인 도술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능력을 부적의 힘에 의지했다. 자주 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닌지라, 진귀한 부적도술에 미호가 눈을 떼지 못했다.

고도는 화선지에 그린 주술진들과 부적을 방의 네 귀퉁이에 붙였다. 그러고는 글자들이 향하는 방 한가운데에 섰다. 좁은 방임에도 부적들이 내뿜는 도력으로 인해 방 안이 꽉 찬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고도는 바람이 들어오지 않는데도 희미하게 펄럭이는 부적들을 꼼꼼하게 살피자마자 등에 메고 있던 죽통을 풀었다. 그 모습에 미호의 털이 쭈뼛 섰다. 지금부터 벌어질 일이 고도의 목숨을 앗아 가리만큼 위험한 일이라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눈치챘다.

“고도!”

아무래도 그를 말리는 게 낫다 싶어 큰 소리로 이름을 불렀다. 이름의 주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애초에 미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듯했다. 그는 죽통의 뚜껑을 천천히 여는 데만 집중했다. 죽통이 당장이라도 깨질 듯 흔들렸다. 죽통을 둘러싸고 있는 부적들이 바람 한 점 없는 방 안에서 쉼 없이 퍼덕였고, 금줄을 꼬아 단단하게 매어 둔 죽편에 금이 생기며 갈라지기 시작했다.

벽에 붙여 둔 주술진들과 부적이 그 격렬한 움직임을 붙잡아 두고 있었다. 좁은 죽통 입구에서는 나찰의 세계에서나 들을 수 있을 법한 기괴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소리의 주인들이 죽통 입구 너머로 손을 뻗었다. 입구 자락에 드러난 손은 털이 뒤덮여 있거나, 손톱이 검거나, 피부가 문드러졌거나, 살점이 떨어져 앙상한 뼈만 드러나 있었다. 그것들은 하나같이 억지로 얼굴을 내밀고 입을 벌려 고도를 잡아먹을 듯이 꿈틀거렸다. 고도는 정신을 잃어도 이상치 않을 장면 속에서 표정 한 번 변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수많은 요괴들 중 자신이 찾고자 하는 것을 느긋하게 훑는 여유를 보였다.

고도는 죽통 안으로 손을 쑤욱 집어넣었다. 비명소리가 더욱 요란해졌다. 천지가 울리는 끔찍한 귀곡성에 안 그래도 부실한 초가집이 흙가루를 날리며 무너질 기세였다. 지진이라도 한바탕 휩쓸고 가듯 엄청난 충격으로 떨림이 전해졌다. 선반 위 물건들은 죄 쏟아져 바닥을 뒹굴고 미호는 자신이 감당 못 할 요력에 겁이 나 바닥에 주저앉아 덜덜 떨었다. 하지만 겁먹은 요괴와 달리 인간인 고도는 조금의 동요도 없었다. 두려움은 물론, 거부감 하나 찾아볼 수 없는 단조로운 표정을 지닌 얼굴이 죽통 내부를 샅샅이 훑다가 한 지점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 순간 고도의 두 눈이 반짝 빛났다.

“찾았다.”

고도는 손에 잡힌 것을 단번에 잡아 뽑았다. 커다란 흑색 구렁이였다. 두께는 성인 남성의 팔뚝만 했고, 그 길이는 고도의 키를 훌쩍 넘을 정도였다. 죽통에서 쑤욱 잡아 뽑은 구렁이를 바닥에 던진 고도는 단숨에 죽통의 뚜껑을 닫았다. 흑색 먹구렁이를 붙들고 함께 죽통에서 빠져나오려던 수십 마리의 요괴들이 부적과 주술진에 막혀 손만 허우적거렸다. 인간 세상으로 나올 문이 닫히고도 죽통은 요란스럽게 덜그럭거리며 기괴한 소리를 내뱉었다. 하지만 고도는 그것에 더는 신경을 쓸 수 없었다.

바닥에 던졌던 구렁이가 사람 모습으로 탈바꿈해 고도에게 달려들었다. 재빠른 움직임이었다. 고도는 며칠 전에 이 구렁이와 전쟁에 가까운 난리를 쳤던 사실을 떠올렸다. 그의 움직임이 익숙해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대응하지도 못한 채 꼼짝없이 뱀 요괴에게 목이 졸렸을 것이다. 고도는 침착하게 자신의 검을 풀어 몸을 날린 요괴의 어깨에 사선으로 찔러 넣었다.

“제기랄!”

거친 신음성이 터졌다. 일주일 넘게 죽통에 봉인돼 제 힘을 찾지 못한 뱀 요괴가 칼에 찢긴 어깨를 붙잡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새빨간 피가 어깨를 타고 뚝뚝 흘러내리는데도 요괴는 뾰족한 이를 드러내면서 다시 달려들었다. 제 몸이 다친 것을 알면서도 물러서지 않는 요괴의 기백에 고도는 쯧 하고 혀를 찼다.

“역시 고아서 삶아 먹으면 건강에 일품이겠어.”

팔팔한 뱀 요리에 대한 농담을 던진 고도는 이번에는 검 대신 두 손으로 뱀 요괴를 제압했다. 팔이 뒤로 돌려지고 멱살이 잡힌 요괴가 이를 빠드득 갈았다. 고도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던 뱀은 씩씩거리며 흥분을 숨기지 못하더니만 이내 몸에서 힘을 뺐다. 그는 날카로운 숨소리를 뱉으며 고도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세로로 가늘어진 뱀의 눈은 명백한 살기를 띠고 있었다. 같은 요괴인 미호조차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할 만큼 그 요력이 어마어마했다. 그런 요괴를 마주볼 수 있는 고도의 능력과 배짱에 새삼 감탄할 정도였다.

“죽여 버린다, 망할 도사 자식아.”

“입이 가벼운 녀석이군. 살인은 예고해선 안 되는 법이다.”

“내 말이 농담으로 들리나 보지?”

“농담이었나? 미안하다. 죽인다는 말을 누가 가벼이 듣겠나.”

“속 긁어 놓는 소리냐!”

“그런 거 아니다. 환장하지 마라. 네놈이 제 성질 못 이겨 끽 죽어 버리면 내 손해 아니겠는가.”

고도는 살의로 이글이글 타오르는 뱀 요괴를 살폈다. 제일 눈에 띄는 것은 단연 푸른색 눈동자다. 평소에는 인간의 둥근 동공과 다를 바 없지만 이렇게 흥분하여 요력을 방출하는 상태에서는 파충류의 특색을 띠고 세로로 가늘어진다. 다행히 피부가 갈라지고 비늘이 일어서는 흉측한 몰골은 보지 않아도 된다. 여자들을 홀릴 만큼 아름다운 얼굴인데 고작 흥분했다고 얼굴에 비늘들이 모조리 일어나서 파르륵 떨리는 모습은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새파란 눈동자에 이어 두 번째로 시선이 가는 것은 허리까지 오는 검고 긴 머리. 상투를 틀지 못할 만큼 짧게 자른 고도와 대비되는 아름다운 머리였다.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 인간의 도리를 아는 자가 오히려 요괴로 보이는 모습이지 않은가.

고도는 기분이 묘했다. 아름답지만 유약하지 않은, 건장한 사내 모습을 한 요괴였다. 여자에게 천하제일색이란 칭호가 붙는다면 남성체인 그에게는 어떠한 말이 수식이 붙을 수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고도는 신중한 고민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구렁아.”

몹시 덜떨어지는 칭호라며 미호가 급속한 동지애를 느꼈다. 그래도 지진아라 불리는 것보단 저쪽이 나을지도 모른다.

“표정이 왜 그런가. 호칭이 마음에 안 드나?”

“……뭐하는 거지, 인간?”

“가만 보자. 예쁘고 화려하니 구렁이보다 나은 게 필요하겠구나. 그럼 대롱아. 어떠냐, 딱이구나. 귀엽기까지 해. 완벽해.”

“무슨 헛짓거리냐고 물었을 텐데.”

“앞으로 얼굴 보고 지낼 사이다. 이름 하나 붙여 줘야 부르기 편하지.”

“내가 네 가축인가, 그딴 덜떨어진 이름을 붙여 주고? 그리고 뭐? 얼굴을 보고 지낼 사이? 이거 참 재미있군.”

혐오스러운 시선을 던지며 웃는 구렁이 혹은 대롱이에게 고도는 별다른 감정적인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주술에 의해 속박당한 요괴가 요력을 방출해 벗어나려 할 때마다 그의 팔을 비틀며 위협하기만 했다. 그 태도는 몹시 호전적이고, 일처리에만 신경 쓰는 사무적인 느낌이었다. 하지만 무심한 표정으로 입에 담는 얘기는 농담뿐이니 뱀 요괴는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어떤 이유에서 자신을 죽통에서 빼냈는지 좀처럼 짐작할 수가 없다.

그는 천천히 사방을 살폈다. 어느 허름한 집 안으로 보이는 곳에 부적과 주술진들이 잔뜩 그려져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리 요력을 방출해도 제 살 깎아 먹기밖에 되지 않는다. 상대가 허술한 도사도 아니고, 자신과 호각을 벌일 수 있는 뛰어난 대사라면 이 정도 방어막을 쳐두고 전투에서 질 리가 없다. 힘을 비축해 기회를 엿봐 달아나는 것이 최선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몸에서 힘을 뺐다. 재빠르게 상황 파악을 하고 불필요한 전투를 포기한 요괴의 행동에 고도는 제법 감탄했다.

머리 돌아가는 게 빠르긴 빠르다.

“대롱아.”

고도가 애정을 듬뿍 담아 불러도, 그는 발끈하여 기분 나쁘다는 얼굴을 했다.

“그 어쭙잖은 호칭 당장 집어치워. 청사라고 불러라. 너희 인간들이 내게 붙인 이름이다.”

“어허, 그런 고급스런 이름은 어울리지 않는다. 넌 이제부터 대롱이다.”

제멋대로인 고도의 모습에 청사는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자기보다 키나 덩치 면에서 열등한 인간에게 가축 취급 받는 것은 자존심이 몹시 상하는 일이었다.

“농담이나 하자고 날 다시 부른 건가? 퍽이나 할 것 없는 도사네.”

“이런, 어디서 웃어야 할지 모르겠대도.”

“젠장! 말귀 더럽게 못 알아듣네! 날 왜 불렀냐고, 이 빌어먹을 놈아!”

날 선 청사의 반응에 미호가 저 멀리서 박수를 쳤다. 고도에게 저토록 사납게 대거리하는 요괴는 단연코 청사가 처음이었다. 박수를 치는 미호를 힐끔 쳐다본 고도는 손가락을 퉁겨 장지문을 쾅 소리 나게 닫았다. 밖에서 여우가 캥캥 짖는 소리가 들렸지만 성난 미호를 달래는 일은 나중으로 미루기로 했다. 고도는 손을 휘둘러 밖에서 들리는 소리까지 차단한 후에 청사를 다시 응시했다.

“맞춰 봐라.”

진지한 얼굴로 정말 어울리지 않는 짓을 한다며, 청사는 고도의 언행 불일치에 극심한 혐오감을 느꼈다. 능력도 좋고 잘생긴 젊은 도사가 말하는 건 병신 천치다.

“너랑 영양가 없는 문답할 기분 아니다. 내가 필요해서 날 잡아 뺐다면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 이따위로 제압할 생각 말고.”

“합당한 대우라. 음. 그럼 어서 가마솥에 물을 얹어야겠군.”

“뭐?”

“뱀 요리는 정력에 좋지 않나. 여차하면 너를 요리 삼아 내 몸보신에 쓸 수도 있다. 그게 뱀을 대하는 합당한 대우 아닌가?”

고도는 할 말을 잃은 청사에게서 비켜섰다. 청사는 언제든 달려들 수 있는 자유를 얻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도술로 만든 부적과 그림 안에서 도사는 무적이다.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어서 덤벼들지 않는다기에는 지나치게 전의를 상실한 표정이었다. 황망한 표정으로 고도를 보는 것이 살다 살다 이런 인간은 처음이라는 것 같다.

“네 장기를 잠깐 빌리려 한다.”

“……내 장기……?”

“그래, 내 옆에서 날 좀 도와줘야겠다. 대가는 잘 치러 주마. 널 놔달라는 것만 빼고.”

“…….”

“안 그러면 지금 바로 부엌 가서 솥에 물을 얹어도 되고.”

청사는 새파란 눈을 가늘게 접으며 성질을 죽였다. 고개까지 옆으로 살짝 뉘고 “요즘 기력이 쇠하고 낮에도 노곤노곤 잠이 오는 것이, 네 육수를 달인 국물을 마시면 딱 좋겠건만.”하고 중얼거리는 도사는 정말로 뱀의 똬리를 말아서 솥에 넣고 뚜껑을 닫을 기세였다. 뱀 요괴를 보고 몸보신밖에 생각 못 하는 애늙은이 같은 생각은 차치하고, 저 태연함과 가증스러움은 또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다. 청사는 도사의 언변에 말려들어 흥분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제기랄. 그래, 뭐야. 나한테 부탁할 게 뭔데 이래?”

이 망할 도사를 돕다 보면 언젠가 도망갈 기회가 생길 터. 죽통에 하염없이 봉인되어 있기보단 차라리 부탁을 받아 인간 세상에 발붙이고 있는 게 낫다. 저놈의 뱀 요리 타령하는 입만 닫아 준다면 청사에게도 불리할 것 없는 요구였다.

청사의 물음에 고도가 웃었다. 항시 무표정만 고집하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떠오르자, 청사는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생각보다 귀염성 있는 얼굴이라는 착각이 들 뻔했다.

“맛있고 뜨끈뜨끈한 수수떡 찾기다.”

산속에서 사라진 처녀들이 이 말을 들었다면 통탄할 일이었으리라.

“모락모락 피어오른 김이 식기 전에 찾아보자, 우리.”

*

청사는 도포를 걸치고 툇마루에 양반다리를 한 채 장죽을 뻐끔뻐끔 피워댔다. 이리저리 눈치를 보던 미호가 청사에게 다가왔다. 그의 긴 머리를 비단 끈으로 대신 묶어 주었을 때, 청사는 대추나무 위를 바라보고 있었다. 대추나무 위에는 고도가 앉아 있었다. 높은 나뭇가지는 인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휘어졌다. 금방이라도 부러질 듯이 위태로웠다. 하지만 어떠한 발칙한 술수를 썼는지 초록색 열매가 알알이 달린 풍성한 대추나무는 부러질 듯 부러지지 않으며 고도를 떠받치고 있었다. 고도는 풍성한 이파리 속에서 태연하게 마을을 굽어보았다.

봉인했던 요괴를 인간계로 다시 끌고 오는 데 많은 힘을 허비했을 텐데도 그의 얼굴에 피곤한 기색은 없었다. 낮길보다 밤길을 좋아하는 요괴를 상대하다 보니 햇볕을 자주 쬐지 못한 얼굴은 도자기처럼 하얗지만 병색으로 보일 만큼은 아니었다. 그저 조금 나른해 보이는 정도다. 기약 없는 것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양 휘어진 나뭇가지처럼 늘어져서 하품이나 쩍쩍 내뱉는 것이 천하제일의 한량 같았다. 청사는 눈살을 찌푸렸다. 고도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눈치만 보는 자신의 입장 때문에 짜증만 더해졌다.

고도를 신경 쓰는 것은 당연하다. 그는 자신을 이상한 죽통 안에 봉인한 유일한 인간이며, 또 불시에 그 봉인을 풀어 준 변덕쟁이기도 했다. 풀어 준 이유가 영 께름칙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그의 눈을 피해 언젠간 도망칠 꼼수를 떠올리는 게 좋다. 그러려면 고도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펴야만 했다. 지금처럼 고도가 지금 뭘 보고 있나, 언제쯤이면 도망쳐도 쫓아오기 힘든 기회를 잡을 수 있나를 재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놈은 다짜고짜 자신을 봉인에서 풀어 놓고는 시킬 일이 있다면서 대추나무 위에 올라가 여섯 시진 동안 꼼짝도 안 하고 있다. 대체 뭐하자는 건가 싶었다.

“망할 인간 자식.”

그는 장죽에 쌓인 담뱃재들을 발아래 탁탁 털었다. 펄럭이는 도포 자락을 쥔 청사가 가볍게 몸을 숙였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의 파란 옷자락이 툇마루에서 고도가 앉아 있는 대추나무 가지 옆으로 옮겨 갔다. 청사의 머리에 비단 끈을 매어 주던 미호는 놀라서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찌 이곳에서 그곳으로 순식간에 옮겨 갔냐고 묻고 싶은 눈치나, 대답해야 할 청사는 나무 기둥에 삐딱하니 기대어 서서 고도에게 따져 묻기 바빴다.

“이봐, 도사. 대체 수수떡 찾기는 언제 하려고 이렇게 여유를 부리는 거냐?”

망부석처럼 줄곧 마을만 굽어보던 고도가 그제야 고개를 돌려 청사를 바라봤다. 청사는 까만 눈동자를 살짝 덮고 있는 앞머리를 보자 괜스레 움찔했다. 바람결에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는 머리칼과 그 때문에 훤히 드러난 목덜미가 신경이 쓰였다.

“여유라니. 난 지금 몹시 신중을 기하고 있어.”

다행히 청사의 이상한 반응을 눈치채지 못한 듯, 고도는 몸을 더 깊숙이 나무 기둥에 기대며 말했다. 대체 그 태도 어디에 신중함이 깃들었단 건지. 청사는 피했던 시선을 다시 고도에게 고정시키고 으르렁거렸다.

“농담할 기분 아니다. 내가 필요해서 죽통을 열었다면 제대로 된 설명이라도 해줘야 할 것 아니냐. 지금 벌써 해가 져가는 모습이 안 보이느냐?”

“그래. 이제야 겨우 해가 지는군. 기다리느라 지칠 뻔했다.”

“그러니까 대체 무엇을 기다리느냔 말이다.”

“성급한 대롱이로고. 왜 이렇게 조바심을 내는지 모르겠구나. 그렇게 죽통으로 되돌아가고 싶은가.”

“그게 아니라 무슨 일을 하는지 말은 해줘야 할 거 아니야. 내가 빨리 되돌아가고 싶어서 보채냐?”

“그럼 기다려라. 아직 때가 아니다.”

“얼마 동안?”

“미끼가 될 수수떡이 여기로 찾아오기 전까지.”

수수떡이란 게 이 마을 뒷산에서 사라지는 처녀를 지칭함은 청사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마을에 남은 처녀 중 누가 자진해서 뒷산 요괴의 미끼가 되겠다고 걸어올는지 알 도리가 없다. 이게 실은 할 말이 없어서 아무렇게나 막 말을 끼워 맞추는 건 아닐까. 청사는 의심 가득한 눈으로 고도를 흘겨봤다.

“그 미끼가 될 여자애를 붙잡아 오면 되잖아. 뭐 하러 기다리는 거지?”

청사의 순수한 물음에 고도는 한참이나 고심한 끝에 대답했다.

“나도 그러고 싶지만 이번 수수떡은 소녀라서 안 돼.”

이번 수수떡은 소녀라서 안 된다라. 그건 또 무슨 기괴한 이윤가.

“어린 여자아이들은 조심스럽게 대해 줘야 한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전혀 알 수가 없어. 알 수만 있다면 참 재밌을 것을.”

“그런 걸 굳이 이해할 필요 없다고 본다. 미끼는 미끼야. 데려와서 이용한 다음에 집으로 보내면 끝이다.”

“안 돼. 소녀는 완벽하게 이해한다고 해도 반밖에 이해할 수 없기에 소녀인 것이다. 내가 관여할 수 없는 부분이지.”

대체 뭔 궤변인지. 청사는 이거 실은 미친놈 아닌가, 하는 눈으로 고도를 한참이나 노려보았다. 고도는 제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청사에게 딱히 부가 설명을 해주지 않았다. 대신 손끝으로 이쪽을 멀뚱멀뚱 쳐다보는 미호를 가리킬 뿐이었다.

“소녀이기 때문에 난 저 지진아도 건드리지 않아. 때리라고 왼쪽 뺨을 내밀어도 오른쪽 뺨에 뽀뽀를 하는 이들이 소녀들이기 때문이지.”

졸지에 대화의 화제가 된 미호가 눈만 껌뻑이며 “엥?”하고 엉뚱한 소리만 뱉었다. 말을 하면 할수록 이해하기 힘든 대화였다. 청사는 잠깐 미호의 색동치마 속을 쳐다봤다. 하나, 두이, 서이, 너이. 총 여덟 개의 꼬리가 보인다. 꼬리 하나가 잘렸거나 아직 자라지 않은 어설픈 구미호라는 의미다. 그런 요괴를 어린 계집이라며 인격적으로 칭한 것도 모자라, 소녀란 신비로운 존재이기 때문에 그 마음을 헤아리지도, 건드리지도 못한다고 말하다니. 청사는 고도의 속뜻을 이해하길 포기했다. 이렇게 영양가 없는 대화만 주고받다가는 제풀에 지치거나 화병만 얻어 가슴을 퉁퉁 치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결론은 계집 손님을 기다린다?”

고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의 이야기를 함구해 버린 고도를 청사는 얼마동안 쳐다보다가 고도 옆에 나란히 앉았다. 고도는 옆에 다가온 요괴를 조금도 의식하는 기색 없이 마을의 갈림길만 쳐다보았다. 청사 역시 자신에게 무관심한 고도는 무시하고 입에 장대를 물었다. 송송 뚫린 나뭇잎 사이로 청사가 내뱉는 담배 연기가 올라갔다. 청사는 그 담뱃재가 하얗게 변하고 나서야 고개를 나무 기둥에 기대고 고도를 빤히 응시하기 시작했다.

고도의 관심 밖인 청사는 언제든 도망칠 기회가 있다. 움직임을 구속하는 주술진이나 도술이 주변에 있지도 않고, 그런 주의를 기울여야 할 도사는 멍청하게 혼이 빠진 얼굴로 마을이나 쳐다보고 있다. 하지만 달아난다 할손, 저렇게 무감각하게 마을만 내려다보는 고도의 손바닥 위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수떡이 어떻고, 소녀의 신비로움이 어떻고 이상한 말만 하는 남자인데 그 말장난 때문에 본래 실력을 전혀 가늠할 수가 없었다. 도력이 얼마나 뛰어난 도사인지는 일주일 전에 직접 겨루어 봐서 똑똑히 알고 있다. 하지만 싸워 봤는데도 여전히 확신이 서지 않았다.

대체 어떤 스승에게 사사 받았기에 그리도 뛰어난 도력을 가진 것인가. 도사라는 족속들은 귀찮은 일이 딱 질색이라 깊은 산에 들어가 도 닦기만 하거늘, 어째서 이 인간은 퇴마라는 번거로운 일을 자처하는 것일까. 저 죽통은 어디서 났으며 저 이상한 검은 무엇이고 또한 서역 사람처럼 머리를 자른 이유는 무언가.

모든 게 지나치게 모호하고 비상식적인 남자였다. 청사가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인간아. 네 정체는 무엇이냐.”

아름다운 목소리는 고도의 귀를 즐겁게 해줬으나 그 음색에 담긴 진지하고 또한 차가운 감정마저 편안하게 받아들이기는 힘들었다. 고도는 위협적으로 묻는 청사를 힐끔 바라보더니 고개를 모로 뉘었다.

“날 모르는 상태에서 이전에 죽통에 잡혔던 거냐? 덜떨어진 대롱이로다.”

저 무심하게 신경 긁어대는 주둥아리를 확 꿰매 버리고 싶다. 청사는 애써 울분을 삭히면서 다시금 물었다.

“네 진짜 정체 말이다!”

“그러고 보니 내 정체를 일일이 따져 본 적이 없군. 보자. 내 정체라면 요괴 잡는 도사다. 도사라고도 불리고, 머리를 짧게 자른 모습을 본 어른들은 자식 된 도리를 어겼다고 망나니라고도 부르지. 아주 가끔은 무당들이 나보고 액이 꼈다고 팥이나 소금을 뿌리면서 저주받은 귀라고도 불러. 그 어느 것이든 정답이다.”

“……젠장, 뭐 대화가 통해야 반응을 하지.”

“이상하군. 난 네 궁금증에 충실히 대답했을 뿐인데 뭐가 문제지?”

“다 문제다! 그 문제란 것이 너무 많아서 일일이 말해 주기 입 아플 정도야. 게다가 정체라는 것들이 왜 하나같이 좋은 뜻은 없어?”

“정체란 원래 그런 거다. 좋으면 어찌 정체라고 부르며 쉬쉬하고 숨기겠나. 감투처럼 떵떵거리며 다녀야지.”

“아, 답답해.”

“어허, 눈치 빠르고 똑똑한 대롱인 줄 알았더니, 영 오리무중이구나. 무슨 생각을 하고 뭐 때문에 이렇게 감정적으로 구는지, 원. 대롱아, 왜 그리 틱틱대는 것이냐.”

“한 번만 더 대롱이라 하면 죽여 버린다!”

청사는 저 망할 도사 입에 붙은 대롱이 타령을 더는 들어줄 수가 없어 날카롭게 반응했다. 뾰족한 이를 드러내고 쉬익, 쉬익 짐승처럼 거센 숨결을 뱉었다. 짜증을 내는 청사를 멀뚱히 쳐다보던 고도는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너도 가만 보니 소녀 같다. 반응을 이해하기 힘들어.”

“하!”

“왼쪽 볼을 내어 줄까?”

“물어뜯어 버리기 전에 닥치지 그래.”

고도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 청사가 신경질을 팩 부리는지 모르는 눈을 멀뚱거렸다. 그런 고도의 표정에 청사는 얼굴이 뜨끈해졌다.

저 새낀 지금 멀쩡한 요괴 하나 병신 만들고 있는 거다.

마음 같아서야 처음 죽통에 붙잡혔던 때처럼 죽기 살기로 도력 싸움이라도 벌이고 싶었다. 그럼 이렇게 답답하지도 속이 터지지도 않지. 그러나 짜증나는 대로 행동하고 싶은 충동성을 억누를 수밖에 없었으니, 청사는 얌전히 고도가 시키는 대로 움직인 뒤 그가 말한 ‘대가’라는 것을 얻을 생각이었다. 굳이 박 터지게 싸우지 않아도 이 도사에게서 벗어날 방법이 있다. 비록 완전한 자유를 달라고 하기는 힘들겠지만, 그에 버금가는 대가를 요구하면 그만이다. 지금 이 시간을 참으면 앞으로 얼굴 안 보고 살 수도 있다는 소리였다. 청사는 애꿎은 대추나무 가지를 꺾으면서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려 애썼다.

고도가 무언가 인기척을 느끼고는 고개를 돌렸다. 그는 진지한 시선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들 사이를 헤쳐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걸음을 옮기는 이들을 바라봤다.

장옷을 머리에 뒤집어쓴 여자가 꼬부라진 비탈길을 따라 빠르게 걷고 있었다. 그녀를 따라 시종 계집 하나가 품에 행장 따위를 안고 허겁지겁 아씨를 따라붙는 형상이었다. 비탈길은 여러 갈래로 나 있지만 중간 이상을 넘으면 외길로 변한다. 외길의 끄트머리에는 현재 고도 일행이 머무는 낡은 초가집이 있었다.

“왔다, 수수떡.”

고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조금 전까지 대화를 하던 청사는 안중에도 없는 태도로 나무 위에서 뛰어내렸다. 청사는 퍽이나 기분이 상해서 저한테 관심 없는 고도를 노려봤다. 방금 전까진 말장난을 주고받던 이가 낯모를 사람처럼 등을 돌려 버리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고도가 반갑게 기다린 여인은 누가 볼까 황급히 고도가 머무는 초가집으로 총총 걸음을 떼고 있었다. 문 앞에 당도하기 전까지 수십 차례 주변 상황을 살피고 몸을 사린 끝에야 머리에 둘러쓴 치마를 풀었다. 장옷 속에 숨겨져 있던 얼굴은 고도에게도 익숙한 여인이었다. 유달리 긴 목이 애달파 보이는 소향인 것이다. 조부가 손님으로서 고도를 집 안에 들였을 때만 해도 무슨 끔찍한 것과 마주한 것처럼 꿋꿋하게 시선을 피했건만 지금은 고도를 찾느라 다급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녀는 옷자락을 목 근처에서 꼭 쥐고 입을 열었다.

“도사님 계십니까.”

가냘픈 목소리가 문 초입에서부터 울려 퍼졌다. 그녀의 부름에 제일 먼저 미호가 귀를 쫑긋거렸다. 열려 있는 문 너머로 빼꼼 고개를 내미니 소향이 서 있는 게 보였다. 소향은 마당에 버젓이 서있는 여우 요괴를 보고 종이보다도 더 하얗게 얼굴이 질렸다. 그러다 곧, 나무 위에 서 있는 남자를 보고 황급히 장옷을 다시 썼다.

고도를 찾으러 왔는데 웬 모르는 도령 하나가 대추나무 위에 올라가 있었다. 동행했던 시종 순덕이가 입을 헤 벌리고 쳐다볼 정도로 아름다운 남자였다. 어찌 저리 높은 데까지 올랐는지는 몰라도 그림 속의 허상처럼 신비롭고 아름다운 모습에 눈을 떼지 못했다. 청색 도포로 보아 신분이 높은 고귀한 분이리라. 서로 다른 이유로 혼비백산한 두 여자의 이목을 집중시킨 이는 고도였다.

“달이 떠야 오실 손님들이 일찍 행차하셨군.”

소향이는 이미 한 번 본 적 있는 고도에게 눈을 내리깔며 인사할 수 있었으나 그의 시종 계집은 달랐다. 나무 위에 서 있는 도령에게 정신이 팔려 있던 순덕이는 인기척도 없이 마당 한가운데에 서 있는 검은 남자를 보고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참으로 기이하게도 사내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온통 먹색으로 휘갈긴 듯 시커멓기만 했다. 하얀 얼굴에는 감정이 없어서 한밤중에 보면 저승사자라 오해할 소지가 다분했다. 저희들을 해치려는지, 도와주려는지 의중도 파악하기 힘든 모습이었다.

순덕이는 품에 안고 있는 짐을 더욱 꽉 끌어안았다. 그 안에서 철그렁 소리가 나는 것으로 보아 동전이나 은화 따위가 뒤섞인 모양이었다. 돈 보따리를 든 묘령의 여인들이 행차한 이유는 일찍이 눈치채고 있었다. 고도는 덕분에 어린 계집의 머리에서 떠오르는 것이 이런 방법뿐이라는 순진함에 즐거워할 수 있었다.

소녀는 알기 어렵기에 소녀지만, 때론 투명하고 올곧아서 배움을 받고 싶은 존재였다.

“대접할 건 없지만 거, 밖에 서 있기보단 안으로 들어와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게 편할 것이오.”

뒷짐을 진 고도가 그렇게 두 여인을 반겼다.

“아침에는 큰 결례를 끼쳤습니다. 소녀가 당황하여 도사님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매몰차게 대했더군요. 하여 미리 서편도 찔러 넣지 아니하고 이리 찾아와 용서를 구하고자 합니다.”

문지방 너머에 다소곳이 앉은 소향이 고개를 숙였다. 고도가 그녀의 진심 어린 사과를 받아 주기도 전에 아까부터 심통이 난 듯한 청사가 대신 대꾸했다.

“이게 소녀라고? 다 큰 처녀잖아.”

자신을 어물전 생선 보듯 이리저리 살피는 시선에 소향은 어깨를 움츠렸다. 고도가 처음 마을에 들어올 때부터 일행이 없는 홑몸이었기에 이 생원집을 복작거리게 만드는 주변인들을 보고 퍽이나 당황한 소향이었다. 흰머리 소녀는 그 귀엽고 앙증맞은 외모와 달리 머리 위에 봉긋 선 두 귀를 가지고 있었다. 대추나무 위에 서 있던 청안의 미남자는 생김새와 차림새부터가 이 나라 사람이 아닌 듯했다.

소향은 가급적 도사하고만 본론을 이야기하고 황급히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청안의 미남자와 하얀 소녀를 무시할 수 없었기에 이름을 조심스럽게 말하게 되었다.

“저는 소향이라고 하옵니다. 늦었지만 이렇게 인사 올립니다.”

청사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소향의 언행을 살폈으나, 그 외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진 않았다. 저쪽에서 인사를 했으니 이쪽에서 받아 주는 것이 인지상정. 청사는 그것이 뭐가 어렵다고 한참이나 입에 물고 있는 연죽만 뻐끔대며 대답을 꺼렸다. 소향이 식은땀까지 삐질 흘리며 울상이 되고 나서야 뒷머리를 벅벅 긁다가 그리 툭 말할 뿐이었다.

“대롱이다.”

소향은 처음에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녀는 눈을 끔뻑이면서 “예?”하고 되물었다. 그러자 청사가 고도를 사정없이 노려보고는 반발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다시금 말했다.

“대롱이라 불린다고.”

저 서늘한 미남자 이름이 대롱이? 이 무슨 망측한 조환가 싶어서 넋이 나간 소향네와 달리, 툇마루에 앉아 방 안 돌아가는 꼴을 구경하던 미호가 깔깔 웃으면서 주먹으로 바닥을 쳤다. 자지러지게 웃는 미호를 향해서 청사가 손가락을 한 번 퉁겼다. 갑자기 매섭게 몰아친 바람에 미호의 몸이 대추나무까지 날아갔다. 자신이 무슨 이름으로 불리든지 이름에 의미가 없으면 신경 쓰지 않는 종족이 요괴다. 그런데 같은 요괴가 의미 없는 이름에 뜻을 부여하기라도 한 것처럼 좋고 싫다는 감정을 명백하게 보이는 모습이 꼴 보기 싫었다. 미호는 대추나무 가지에 거꾸로 매달려 저를 차갑게 노려보는 청사를 희번뜩한 시선으로 마주했다.

“어우씨, 저 못된 뱀 요괴 같으니라고!”

“인간이랑 붙어 다니더니 요괴이길 포기하고 인간들 풍속을 따라가는 거냐? 뭐가 그리 우스워?”

“대롱이라는데 그럼 안 웃기냐!”

“기어오르지 마라, 새끼 여우야. 속 긁어 놓는 놈은 저 도사 하나로 족하니까.”

뒤집혀진 치마 안쪽에 보이는 여덟 개의 여우 꼬리를 보고 소향은 눈앞이 깜깜했다. 미남자의 정체는 뱀 요괴고 백발소녀의 정체는 여우 요괴라니. 당장이라도 눈을 까뒤집고 정신을 놓고 싶었다. 앞으로 이자들이 무슨 짓을 벌이려는 걸까. 이대로 마을에 머물게 해도 되는 걸까. 소향은 상상만으로도 속이 거북해졌다. 산중 요괴를 퇴치하기 위해 또 다른 요괴를 들인 모양새라 순수하게 기뻐할 수 없는 노릇이다.

청사와 미호가 한바탕 말싸움을 벌이고, 손님으로 찾아온 소향의 얼굴은 피죽도 못 쑨 것처럼 질리고 마니, 이쯤 되자 고도가 나설 수밖에 없었다. 고도는 뿔이 난 청사의 손목을 턱 잡았다. 갑작스런 신체 접촉에 파득 놀란 청사가 반사적으로 이를 드러내며 으르렁거렸다. 청사의 매서운 위협에도 고도는 태평하게 그런 농담이나 던졌다.

“소녀가 셋이 모이니 감당이 안 된다. 너라도 내 편이 돼 주거라.”

이게 아까부터 소녀는 이해하기 어려워 소녀라더니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말만 늘어놓는다. 청사는 붙잡힌 손목을 신경질적으로 쳐내려다 잠깐 멈칫했다. 붙잡힌 손목이 낯선 듯 고도의 얼굴과 함께 번갈아 보더니만 곧 입매를 찡그렸다.

“꼬마 여자애는 저 팔미호밖에 없잖아. 다 큰 처녀한테 소녀라고 하는 것도 실례야.”

“소녀는 겉모습으로 판단하면 안 돼. 너도 소녀잖아.”

“뭔 개소리야.”

“이 중에 네가 으뜸가는 소녀다.”

마음 같아서야 불같이 짜증을 내며 너랑 더러워서 말 섞기 싫다 하고 싶은데 붙잡힌 손목 부근이 뜨끈뜨끈해서 자꾸만 해야 할 말이 목구멍 너머로 도로 들어갔다. 고도에게 붙잡힌 손목이 이상하게 신경 쓰였다. 여자들은 먼저 남정네의 손을 잡으려 들지 않고, 같은 남자에게는 쉽게 손을 내어 준 적 없는 청사였던지라 이렇게 타인의 따뜻한 손길이 닿기는 단연 처음이었다. 청사는 복잡한 심정으로 붙잡힌 손목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휙 돌려 버렸다.

청사의 언짢아 보이는 모습에 불안감이 증폭된 소향은 울상을 지었다. 이젠 뭐가 뭔지 모르겠다. 요괴들끼리 신경전을 벌이고, 짜증을 내고, 도사는 무슨 얘기를 하는지 도통 그 뜻을 이해할 수 없는 말만 뱉어대서 소향의 머릿속이 아득해질 지경이었다. 소향이 아주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겁을 먹자 청사는 이러다 인간 여자 하나 울리겠다며 고도 대신 짜증을 가득 담아 말했다.

“이 인간이 좀 특이해서 이렇다. 신경 쓰지 마.”

얘기하다 보면 진만 빠지는 인간이니 그러려니 내버려 두라고 말하려는데 고도가 웬일로 청사의 말에 반박을 했다.

“특이한 게 아니야. 나이 먹으면 다 이렇게 돼.”

“너 자꾸 헛소리할래?”

“하지만 아직 노망 들 나이는 아니고.”

입을 뗄수록 상황을 악화시키는 고도의 언변에 청사는 질린 듯이 얼굴을 찌푸렸다. 고작 해봤자 이립에 조금 못 미치는 젊은 남자가 나이가 먹었다느니, 노망이 났다느니 이상한 소리만 해댄다. 도사란 족속들은 하나같이 이리도 정신머리가 올곧지 않은 건가, 심각하게 고민하던 청사였다.

고도는 청사보고 짜증을 풀라면서 손목을 만지작만지작 주물러 주었다. 청사는 낯간지러운 접촉에 얼굴마저 화끈 달아올랐다. 청사가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하는 사이에 고도는 청사의 손목으로 장난을 치던 것을 그만두고 소향을 돌아봤다.

“낭자가 이 높은 집까지 온 것은 대단하네만, 하나 물어보지.”

한동안 청사와 고도의 신경전에 눈치를 살피던 소향은 뒤늦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에, 물어보시지요.”

“그 꼬락서니로 여기까지 온 것이 낭자 본인의 의지였소, 아니면 조부가 등을 떠밀어 어쩔 수 없었던 것이오?”

꼬락서니라는 부적절한 단어에 소향은 물론 순덕이와 청사, 미호의 얼굴마저 대번에 일그러졌다.

소향의 모습은 몹시 아름다웠다. 저물어 가는 노을이 닿은 두 뺨은 살구처럼 빛났고, 연지를 찍은 입술은 촉촉하니 물기를 머금은 꽃잎처럼 생기 있었다. 머리는 단아하게 땋아 등허리 너머로 곧게 펼쳤다. 꽃과 나비가 수놓인 벚꽃 색 치마와 붉은 저고리 또한 평상시에 입을 만한 복장으론 보이지 않았다. 그것을 꼬락서니라 비유한 이유는 고도의 이어진 말을 통해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나한테 잘 보이고자 그런 꼴로 온 것은 아니잖소?”

아름답게 가꾼 겉모습은 일차적으로 상대에게 호감을 주기 위함이다. 이미 조반 자리에서 고도에게 명백한 불쾌감을 표현했던 소향이 두 번째 만남에서 갑자기 차려입고 온들, 그 의도를 좋게 받아들이기는 힘들다는 뜻이었다. 하물며 동전다발까지 챙기고 왔으니 의심 많은 도사가 속 편하게 ‘예쁘구먼.’이란 칭찬을 할 리 없지 않은가. 소향은 당황하여 옷자락을 두 손으로 꼬옥 붙들었다.

“그, 그게, 저……, 말씀드렸다시피 도사님께 잘못을 사과하고자 함이었습니다.”

“사과를 돈으로 무마하려는 것은 그대 집안의 풍습인가.”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허면, 저 행장 속 돈의 정체는 뭔가.”

소향과 고도의 시선이 동시에 순덕이의 품을 향했다. 깜짝 놀란 순덕은 화급히 품속에 있던 행장을 던지듯이 놓았다. 바닥에 퉁 하고 떨어진 보따리는 매듭이 풀어지면서 그 속에 들은 돈을 와르르 쏟았다. 바닥에 온통 굴러다니는 은전과 동전들을 보고 옆에서 구경하던 청사의 눈이 가늘어졌다. 인간사 그리 많이 겪어 보지는 못했지만 저 정도 단위의 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요괴인 그도 잘 안다는 시선이었다.

양반이 물건 끊어다 파는 중인들처럼 돈부터 보였으니 그 부끄러움을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울상이 된 소향은 아직도 방구석으로 데구르르 굴러 들어가는 동전들을 보면서 작게 한숨을 삼켰다.

“……사례금입니다.”

체면치레도 포기하고 순순히 돈의 용도를 말하는 소향이었다. 그런 그녀의 대답에 고도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만 갸웃했다.

“산길 실종사건의 의뢰금이라면 낭자의 조부한테 모두 받았소.”

“이것은 제 할아버지의 정성이 아닌, 저의 정성입니다.”

“정성이 과한 듯한데.”

“과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제가 도사님께 많은 신세를 질 테니 말입니다.”

이쪽이 잉어를 잡고자 처녀를 지렁이 미끼로 삼으려는데, 미끼 당사자가 어부에게 신세를 진다는 소릴 하는 건가. 이거 참 흥미롭다며 고도가 눈을 반짝였다.

“오호라, 이건 혹시 낭자의 목숨 값으로 치르려는 건가?”

“목숨 값이라뇨?”

“미끼는 되어 주겠지만 부디 잉어 입에 들어가지 않게 해주세요, 라면서 내민 거 아니냐는 소리지.”

고도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소향은 순덕을 바라봤다. 그녀 역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잠깐 고민하던 소향은 방금 무슨 소리를 했냐고 고도의 말꼬리를 잡기보다는 자신의 의사 표현을 조금 더 확실히 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린다는 의미에서 치르는 값입니다.”

“무엇을 잘 부탁하려고.”

“도사님. 저를 서쪽 산 입구까지만이 아닌, 도읍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주세요.”

고도는 기연미연 농담인가 하여 가만히 소향을 바라봤다. 그녀의 두 눈동자에 거짓은 서려 있지 않았다. 그녀는 진심을 말하고 있었다. 자신에게 도읍까지 바래다달라는 말은 즉, 줄줄이 시종들을 대동하고 가마에 올라타 산 고개를 넘을 수 있는 편한 상황을 마다한 채 맨발로 산을 건너야 할 어려움을 택한다는 소리다.

소녀이기 때문에 더욱 재밌는 상황이구나. 이러니 그녀들을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되느니. 자신을 싫어하는 것 같은 시집갈 처녀가 요괴들을 대동하는 젊은 남자 도사를 따라가겠다니, 그 어찌나 황당한 이야기인가.

고도는 피식 웃고 말았다.

“낭자는 내가 뭐하는 사람인지 아나?”

“도사님이시죠.”

“그래. 이렇게 요괴들을 데리고 다니며 도술을 부리는 종자란 뜻이지.”

“무엇이 문제입니까.”

“너무 많은 문제가 즐비해 있다 보는데.”

소향은 고도의 눈짓을 따라 백발의 소녀와 청안의 남자를 바라봤다. 요사스러울 만큼 아름다운 두 남녀였다. 인간이 아닌 종족. 자신은 그런 그들과 함께 산을 넘겠다는 당돌한 요구를 한 것이다. 사례금이라며 돈까지 내밀고 말이다.

“나도 요괴와 다를 바 없거늘, 이런 우리와 동행을 하겠단 말인가.”

소향이 울먹이면서 대꾸했다.

“저는 칠복산을 무사히 넘어야 합니다.”

“그 사정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지.”

“할아버지껜 너무도 죄송하지만, 저는 저를 호위해 주는 남자들을 믿지 못합니다. 그들이 얼마나 무술 수련에 게으름을 피우고 실력이 없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들을 믿고 움직였다가 혹여나 사랑하는 낭군도 뵙지 못하고 산에서 봉변을 당하게 되면 저는 귀신이 되어서도 눈을 감지 못할 겁니다.”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면 무엇을 믿을 수 있겠나. 동물에게 정을 주겠나, 집에 널브러진 물건들을 신뢰하겠나. 낭자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주변 사람들만큼은 믿어야 하네. 혹, 그들의 실력이 낭자의 기대치에 못 미치더라도.”

“제 목숨이 걸려 있더라도요?”

“아무렴, 그래야지.”

“그러다 제가 죽으면 그 원한을 누구에게 쏟으면 됩니까?”

“그렇다고 자넬 믿는 모든 사람들을 배반해서라도 혼자 살길 바라겠다는 건가? 그렇게 큰 야망으로 살다간 제명에 못 죽지. 팔자에 없는 삿된 것들이 잔뜩 꼬이지 않겠는가.”

“하오나.”

“사람을 믿어라. 주변 사람을.”

사람을 믿어야 한다. 마치 자신이 살면서 알게 된 교훈이라도 설파하는 말투였다. 소향은 알 듯 모를 듯한 표정으로 고도를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고도는 바닥에 흩뿌려진 동전들을 모아 보따리 안에 밀어 넣었다. 그것을 묶어 다시금 순덕의 품으로 넘겨주었다. 순덕은 얼떨결에 행장을 받아 드느라고 고도의 이어지는 행동에 대응하지 못했다. 그녀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뜬 장면은 다름 아닌, 고도가 소향의 가느다란 손목을 붙잡고 자리에서 일으킨 모습이었다. 지아비 될 사람이 있는 여인에게 겁도 없이 그것도 맨 손목을 붙잡은 것이다. 이 무슨 해괴망측한 일이냐며 기함하려는 찰나, 고도가 소향을 밖으로 잡아 뺐다.

“어제는 만월이었고 오늘도 그 영향을 비껴가지 못하는 날이로다.”

은은한 노을빛을 받고 선 고도가 하늘을 보며 말했다. 구름 한 점 없는 붉은 하늘에 동쪽에서 머리를 들이미는 달덩이가 언뜻 보였다. 그는 툇마루에서 굴러다니는 짚신을 집어 들었다. 아직 본래의 형상으로 돌아오지 못한 짚신 도깨비 소의 본체였다. 짚신 한 짝을 두루마기 안쪽에 쑤셔 넣고는 소향을 잡아끌었다. 고도는 놀라서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하는 소향을 잡고 막무가내로 문을 나섰다. 그러다 깜빡 잊은 듯 자리에 멈추어 서서 미호에게 말했다.

“아씨는 네가 잘 돌보고 있거라.”

순덕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기 무섭게 미호가 벌떡 일어나 외쳤다.

“잠깐, 고도! 어디 가는 거야?”

“떡 식기 전에 산으로 고수레하러 가야지. 괜찮겠소, 낭자.”

“괘, 괜찮지 않습니…….”

애초에 대답을 구하고자 던진 질문이 아니란 것처럼 고도는 소향을 억지로 잡아끌었다. 구불구불한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꺾자 칠복산을 향해 나 있는 오솔길이 보였다. 어두워지는 하늘에 스산한 밤공기가 퍼져 나오는 밤중 산. 그런 곳을 힘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자신이 성인 남자의 손에 붙잡혀 끌려가는 형상이다. 소향은 도사의 도움으로 산을 넘을 각오는 하고 왔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다짜고짜 산으로 쳐들어갈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그녀는 불안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고도를 말렸다.

“도, 도사님. 곧 있으면 저희 집에서 혼례를 축하하는 잔치가 벌어집니다. 제가 가지 않으면 조부모님께서 몹시 걱정할 것입니다.”

“혼롓길에 산중에서 사라지는 것보단 덜 걱정할 테니 염려 마시게.”

“그렇지만…… 어머낫!”

고도의 돌발 행동에 크게 당황한 소향은 발을 헛디뎠다. 고무신이 벗겨져 저 밑으로 굴러가자 그녀는 그것을 줍기 위해 허둥지둥 몸을 숙였다. 하지만 고도가 소향의 수고를 덜어 주었다. 그는 손가락을 한 번 까딱인 것만으로 벗겨졌던 고무신을 소향의 발에 다시 끼워 줬다.

“걱정 마라. 금방 끝날 것이니.”

소향은 귀신에 홀린 것처럼 어수룩한 표정으로 고도를 바라봤다. 신발을 주워 주는 사소한 배려에서부터 사례금을 마다하고 소정의 의뢰금만으로 마을 문제를 해결해 주려고 애쓰는 점까지. 비록 미끼 운운하며 소향의 마음을 불안하게 만들었지만 고도를 보고 있노라면 그가 실패하거나 요괴에게 지는 일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향은 이런 도사의 모습도 몰라보고 제집에서 괘씸하게 굴었던 행동이 떠올랐다. 자신의 행동이 민망하고 송구스러워 낯을 붉혔다. 초면에 조반상 앞에서 불쾌하다는 감정을 풀풀 내비추지 않았나. 보통 사람들이라면 그런 소향을 건방지게 여겨서 직접 찾아와도 내쫓기 망정이거늘, 고도가 이리도 넓은 아량으로 자신을 받아 줄 줄 몰랐다. 미리 알았다면 아침에 그리도 성급하게 감정을 내비추지 않았을 것이다.

두 볼을 발그레 붉힌 소향을 보고 한 남자가 심히 불쾌한 듯 인상을 찌푸렸다. 제 한 팔은 품이 넓은 도포 소매에 찔러 넣고, 다른 하나는 연죽을 든 채 담배 연기를 후욱 피워 올리며 느긋하게 쫓아오던 청사였다. 그는 뱀처럼 가늘어진 눈으로 소향을 노려보았다. 고도가 꼭 붙잡고 있는 손목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대롱아 뭐하느냐. 너도 얼른 와라. 네가 그렇게 보채던 일을 이제 하러 가야 하지 않느냐.”

고도의 나지막한 부름에 청사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감히 자신을 부려 먹는 말투였다. 청사는 자존심이 상했지만 뻐끔 담배 연기를 피워 올리던 연죽은 요술로 사라지게 만들고 신을 질질 끌며 고도의 뒤를 따랐다.

청사는 매서운 눈으로 두 남녀가 잡고 있는 손을 봤다. 몹시도 언짢은 표정으로 말이다.

*

칠복산의 초입에는 두 개의 장승이 우뚝 서 있다. 사람들은 그리 나란히 선 것을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라 칭했다. 마을의 악귀를 내쫓는 본래 목적에 충실하여 둘의 표정은 어슴푸레 뜨는 달빛 아래서도 흉악하게 보였다. 요즘 어른들 말씀을 따라 서쪽 산에는 얼씬하지 않았던 소향은 어깨를 움츠리며 종종걸음으로 고도를 따랐다.

세상을 따뜻하게 물들이던 노을이 태양과 함께 사라진 후로는 한 치 앞도 볼 수 없을 만큼 어두컴컴해졌다. 칠복산에도 어둠이 낮게 깔려 낮에는 느낄 수 없던 스산함이 감돌았다. 그 서늘함이 소향의 어깨에 내려앉아 온몸을 짓누르는 기분이다. 사람들이 오고 다니는 길목이 끊기고 더 깊숙한 곳으로 향하게 되자 고도는 겁에 질린 소향에게 앞일을 설명해 주었다.

“이제부터 낭자가 미끼가 될 것이다.”

그 설명이랄 것이 머리, 꼬리 모두 잘라먹은 몸통뿐이라 이해할 수 없다는 게 문제다. 소향은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다.

“생원 댁에서도 그 비슷한 말씀을 하신 듯하온데 대체 미끼가 무엇입니까?”

“저런, 한 번도 낚시를 해본 적 없나? 미끼가 뭐에 쓰는 물건인지 모르나 보군.”

“아, 아닙니다. 그 용도는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어째서 미끼가 되느냐는 것입니다.”

“이 산에 있는 요괴가 젊은 처자를 좋아하지 않느냐.”

그 말에 소향은 붙잡힌 손목을 잡아 빼며 완강하게 말했다.

“지금 저보고 그것의 유인책이 되라는 소리십니까?”

“걱정 마라. 아무 탈 없다.”

“제가 도사님의 무엇을 믿고 따른단 말입니까?”

“나는 상대의 정체를 알면 결코 패하지 않는다. 믿어라. 아까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나. 사람 좀 믿어야지, 다른 헛것 믿으면 안 된다고.”

자칫하면 그의 말이 하나의 신앙이 되고, 그는 교리를 설파하는 높으신 분이라도 될 판이었다. 대책 없는 자신감과 그것이 진심이라는 듯 진중하기만 한 표정에 소향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고도의 말을 뒤집어 해석하면 상대의 정체를 모르는 지금은 언제든지 탈이 날 수 있다는 소린데 그런 걱정은 안 드는 걸까.

“대롱아.”

황망해진 소향을 내버려 둔 채 고도가 고개를 돌려 청사를 불렀다. 둘의 뒤를 느긋하게 따라오던 청사가 눈썹만 슬쩍 움직였다.

“왜 불러.”

“이제부터 할 일이 있다. 이 산속에서 여자들의 기척을 찾는 것이지.”

“미안하지만 산 전체를 수색하기에는 범위가 너무 넓어. 바로 찾지 못할 거다.”

“우리가 찾아다닐 필요 없다. 그쪽에서 반응을 보일 것이다.”

고도의 말뜻을 이해한 청사가 소향을 바라봤다. 미끼라는 게 이럴 때 이용하라고 있는가 보다.

“그렇다면야.”

청사는 산길에서 한참이나 벗어난 주변을 살폈다. 평범한 산의 풍경이 아니라는 것을 안 게 바로 그때였다. 여자들이 속속들이 사라진다 하여 자신 역시 요괴의 짓이라 단정 지었건만 이것은 일개 요괴가 부릴 술수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단순히 어두워 잘못 본 것인 줄 알았다. 하지만 산은 분명하게도 일그러져 있었다. 산 전체가 어딘지 모르게 기묘하게 뒤틀려 있는 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고도, 여자, 잠깐.”

두 사람이 걸음을 멈추고 청사를 바라봤다.

쏴아아아아.

계곡에서 불어온 바람과 함께 발밑에서 부스럭거리던 나무 이파리들이 데굴데굴 굴러 내렸다. 청사가 눈앞을 어지럽게 가리는 머리를 쓸어 올리면서 무언가를 가늠해 보자 고도가 제법 즐거운 듯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우리 대롱이 촉각 좀 곤두세울 줄 아나 보지?”

그런 건 더듬이 있는 곤충한테서나 찾으라면서 청사는 눈살을 찌푸렸다.

“나한테 바란 게 이런 거 아닌가? 이 산속에서 이상한 기운을 감지하라는 것.”

“그래서 칭찬하고 있지 않나.”

“촉각 세우는 게 칭찬이라니.”

“그럼 예쁜 얼굴을 칭찬해 줘야 하나?”

청사는 화끈, 얼굴을 붉히다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저 기묘한 화법에 걸리면 진이 빠질 때까지 당하기만 하던 전적을 상기했다. 청사는 요점만을 간단히 짚었다.

“여자 기운은 잘 모르겠는데 심상치 않은 게 하나 있군. 이 소리 들려?”

청사가 고갯짓을 까딱하자 고도는 머리를 외로 꼬며 물었다.

“소리라니.”

“산이 즐거워 웃는 소리.”

청사의 뜻 모를 소리에 고도뿐만 아니라 겁먹은 소향마저 어안이 벙벙해졌다. 적막하여 바람 부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산이다. 그 흔한 밤 부엉이 울음조차 들리지 않건만 청사는 어떤 웃음을 가리키는 것일까.

고도는 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일주일 전부터 둘러본 그 산이 이 산이 맞았다. 나무 한 그루, 흙 한 점 변함없는 바로 그 산. 청사의 주의대로 가만 귀를 기울이고 있노라니 무언가 특이한 기척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만 발견할 수 있는 특이한 것이 아니었다. 고도와 소향, 청사가 밟고 선 이 땅 전체가 변한 것이다.

“오호라.”

고도가 짧게 감탄했다. 누가 보면 낮에 둘러봤던 그것과 서로 정반대의 산이라 오해하겠다. 마을 사람들이 사라지는 형상을 물었을 때는 쥐죽은 듯 조용하여 아무리 묻고 불러도 대답이 없던 산이 밤이 되니까 흥분하여 온 나뭇가지를 털어대고 있었다. 여자가 제 구역 안에 들어오자 바로 반응하는 것이다. 하도 마을 사람들이 산속에서 사라지니 산을 지나다니던 아녀자들의 발길은 오래전에 끊겼다. 따지자면 이렇게 싱싱한 사람이 제 발로 산에 들어오기는 마을 처녀가 마지막으로 실종된 3주 전 이후 처음이었다.

이리 보면 산 자체가 요괴로 보이지 않는가. 이토록 젊고 싱싱한 인간 여자를 잡아먹고 싶어 할 줄이야.

“도, 도사님. 소녀 무슨 탈이 날까 봐 겁이 납니다.”

불길하고 스산한 바람 소리에 소향은 고도의 뒤로 숨었다. 돈으로 행장을 꾸려 와 댁들과 함께 산을 넘겠다는 포부를 밝힐 때와는 영 다른 모습이었다.

이렇게 배짱이 없어서 무슨 요괴들과 여행을 하겠다고.

고도는 달달 떠는 소향을 보면서 혀를 차더니만 품에 담아 왔던 짚신짝을 꺼냈다.

“소야, 어서 나와라.”

평범하기만 한 낡은 짚신짝이 고도의 손바닥 위에서 움직이는 모습에 소향이 까무러치듯 비명을 질렀다.

“꺄아아악!”

그 비명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산골 깊숙한 곳까지 울려 퍼지기 무섭게 손바닥 위에서 춤을 추듯 이리저리 흔들리던 짚신이 곧 푸른빛을 뿜었다. 새하얀 연기가 주변을 자욱하게 감싸더니 바닥에 떨어진 짚신이 거대한 형상으로 탈바꿈했다. 그것은 인간의 형상을 하고 걸걸한 웃음을 뱉었다. 머리에는 감투를, 등 뒤에는 도깨비 방망이를 짊어지고 있는 산도깨비였다.

“츠츠츠츠, 고도가 이 이른 시간에 나를 소환하고, 무슨 일인고.”

동공이 없이 안광만 빛내는 얼굴은 산적처럼 험상굳기 그지없다. 입고 있는 복식도 거지꼴과 다름없어서 등에 매고 있는 도깨비 방망이와 머리에 뒤집어쓴 도깨비감투만 아니라면 그 정체를 능히 오해했을 터. 열 척이 넘는 거구의 남자를 소향이 혼이 빠진 사람처럼 올려다봤다. 그녀는 지독한 비현실감에 할 말을 잃은 입만 벙긋거렸다.

“이 낭자 좀 지켜 주겠나. 미처 신경 쓰지 못할 일이 생길 듯하거든.”

소의 시퍼런 안광이 소향을 향했다. 파리하게 질린 소녀를 보고 소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심술궂게 웃었다.

“내가 어제 앞마당에서 한바탕 장난을 벌였던 여염집 규수시네.”

“허, 함부로 인간들을 골탕 먹이지 말라고 누누이 말했거늘.”

“츠츠, 한 번 봐주게. 내 고도 부탁이니 특별히 이 낭자를 잘 지켜 주겠구먼.”

기괴한 웃음소리를 토한 소가 머리에 쓰고 있는 감투를 소향의 머리 위에 턱하니 씌웠다. 소향의 작은 머리 둘레에 맞지 않는 거대한 감투였다. 감투를 머리에 쓴다기보다 감투에 머리가 푹 파묻힌다 여긴 쯤에 눈앞에서 소향의 모습이 사라졌다. 도깨비감투의 효력을 처음 목격한 청사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분명 여자의 인기척이 눈앞에서 느껴지건만 그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모습이 어떤지를 모르던 소향이 곧 손도 발도 눈에 보이지 않자 고도의 옷깃을 와락 붙잡았다.

사대부 여식인지라 놀라서 비명을 지르는 대신 그 놀람을 가슴으로 삼켰다. 하지만 두려움을 숨길 수는 없는 탓에 고도의 옷을 잡으며 속으로 울먹이고 있음이 분명했다. 고도는 제 옷깃이 우그러져 붙잡힌 형상을 보고 침착하게 그녀를 달랬다.

“낭자.”

눈에 보이지도 않을 텐데 고도는 허공의 한 점을 직시했다. 곧이어 소향이 몸짓을 바르게 했다. 보이지 않는 손이 잡고 있는 옷깃의 주름은 선명하여 아직도 겁에 질려 있음이 보이지만 더 이상 이전처럼 허둥거리는 기색은 느껴지지 않았다. 고도가 슬그머니 허공 어딘가로 손을 뻗었다. 그는 보이지도 않는 도깨비감투를 소향의 머리에서 반쯤 벗겨 주었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눈앞에 소향의 모습이 다시 드러났다. 제 손발이 다시금 보이는 현상에 화색이 돌아온 소향을 보고 고도가 진지하게 말했다.

“혹여나 무슨 일이 생길 수 있어 미리 말하겠네.”

제 몸 상태를 살피느라 고도의 말을 뒤늦게 인지한 소향이었다. 그녀는 머뭇거리며 고도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이 도깨비 곁에서 절대 떨어지지 마시오. 나보다 강한 녀석이니 믿어도 좋소.”

고도는 들고 있던 감투를 도로 소향의 머리 위에 씌워 주었다.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이던 소향의 모습이 감투 속으로 사라졌다.

“소야. 낭자를 모시고 우리를 잘 따라와라.”

감투로 모습을 감춘 소향을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짚신 도깨비가 파란 안광을 빛내며 물었다.

“우리라니?”

고도가 청사에게 고개를 돌렸다. 소 역시 고도의 시선을 따라 청사를 바라봤다. 한 걸음 물러나서 저들이 하는 양을 지켜보던 청사가 도깨비와 고도의 시선을 동시에 받자 한 발로만 삐딱하게 선 자세 그대로 굳고 말았다. 고도는 긴장한 청사 곁으로 다가가 팔짱까지 끼면서 히죽 웃었다.

“나와 대롱이 말이다.”

처음 보는 뱀 요괴의 동행에 묻고 싶은 말이 한두 가지가 아닌 듯 소는 제법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요괴 잡는 도사가 요괴를 데리고 다니다니. 그건 미호만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싶었다. 하지만 궁금증을 채 해소하기도 전에 고도가 품에서 부적 두 장을 꺼내 청사의 발목에 붙였다.

“축지술을 사용할 수 있는 부적이다. 기운을 따라가 보자꾸나.”

그는 소향의 손목을 잡을 때처럼 이번에는 청사의 손목을 덥석 움켜쥐었다. 덕분에 청사만 움찔했다.

얜 아까부터 왜 자꾸 손목을 쥐고 그러냐. 요괴 간 떨어지게…….

손 한번 잡히는 게 뭐가 대수인가 싶기도 하지만, 청사는 고도가 가까이 다가올수록 자꾸만 놀랐다. 오지 말라고 밀어낼 새도 없이 성급히 옆에 다가오니까 따질 겨를도 없었다. 아무래도 한 마디 해야겠다 생각하던 청사가 입을 열려던 찰나에 고도가 움직였다. 청사의 손목을 움켜쥔 고도가 갑작스레 축지법을 전개하자 소는 냉큼 감투를 쓴 소향을 붙잡았다.

“어머낫!”

그녀가 깜짝 놀라 비명을 질렀다. 그럴 만했다. 소는 무식하게 소향을 들어 올려 어깨에 들쳐 멘 것이다.

“감투 단단히 붙들고 계시오. 잃어버리면 내 친히 노여움을 풀 것이외다.”

소의 언질에 소향은 허겁지겁 감투를 두 손으로 붙잡았다. 소는 소향이 준비를 마치자마자 고도의 뒤를 따랐다. 고도는 힐끔 뒤를 돌아 소가 쫓아오는 것을 확인한 뒤에 청사를 바라봤다. 고도의 도술에 함께 묶여 덩달아 축지를 하게 된 청사는 순식간에 제 시야를 휙휙 지나가는 나무들의 모습에 순순히 감탄사를 뱉었다. 축지법을 할 줄 모르는 청사는 도사들이 천 리를 내달리는 걸 그저 신기한 재주라고만 생각했다. 사실 축지란 것은 단순히 날듯이 빠르게 달리는 것만이 아니라, 세상을 전부 둘러볼 수 있는 유쾌한 경험을 주는 도술이 아닌가. 축지를 하는 고도를 따라붙는 도깨비의 능력도 대단했다. 소는 어느새 도깨비불로 변해 고도와 청사를 바싹 쫓아오고 있었다.

“능력 좋네?”

“음? 나 말인가. 이제 알았나 보군.”

청사는 저도 모르게 피식 웃고 말았다. 저 자신감의 근원도 이제는 슬슬 인정해야겠다 싶은 청사였다. 고도가 청사를 잡은 채로 휙휙 달리다 말고 물었다.

“대롱아, 이 산에서 요력은 느껴지나, 그 방향이나 크기를 가늠할 수 없구나. 산 전체가 요기에 휩싸인 것 같다. 너는 이 근원이 어디 있는지 아느냐?”

청사는 자신에게 조력을 바라는 새까만 두 눈동자가 마음에 들었다. 그래도 또 고도가 바라는 대로 순순히 대답을 해주기는 싫어서 콧방귀를 뀌면서 말했다.

“흥, 음흉한 놈이라 생각했건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잘 모르는 놈이라 여겼던 평가를 철회했다. 청사는 자신을 잡아끄는 고도를 반대로 붙잡아 당겼다. 빠른 속력으로 산을 뛰던 고도는 뒤에서 당기는 힘에 몸이 크게 기울었다. 어 하는 사이에 상황이 역전되었다. 청사가 별안간 고도를 들더니 품에 안고 움직이는 것이다. 달리던 두 다리가 허공에 붕 떠서 허리와 무릎 밑을 청사가 받쳐 든 꼴이라니. 이 무슨 보쌈 당하는 처자 입장인가 싶었다.

“목적지까지 똑바로 옮겨다 주마.”

얼떨결에 청사의 품에 안겨서 이동하게 된 처지를 보고 고도는 제법 당황한 눈치였다. 제 도술만 믿고 지금까지 살아온 도사가 요괴의 도움을 받아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움직이기는 처음이다. 고도가 이 품에서 벗어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하고자 한다면 청사보고 건방지다고 하면서 자세를 역전시킬 수도 있었다. 하지만 가만 고민하던 고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용한 가마로구나.”

이젠 가마 취급까지 당한 청사지만 제 품에 얌전히 안겨 있는 고도를 보니 화가 나지도 않았다. 그는 키득키득 웃었다. 이런 구석은 또 제법 귀엽게도 보이고 말이지. 얌전히 있으리라 기대조차 않은 자가 가마 운운하면서 남자 품에 안긴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게 익살맞아 보였다.

“인간아, 너는 왜 하필 나를 골라서 봉인을 풀어 준 것이냐?”

죽통에 쌓여 있던 수천 마리의 요괴들 중에서도 유독 자신을 지목하여 꺼낸 이유가 있지 않겠나. 또한 요괴 잡는다고 설치는 도사랍시고 이렇게 요괴에게 제 한 몸 맡기는 덜떨어진 놈은 없다. 고도의 괴짜 같은 행동들은 모두 고도가 청사 자신에게 관심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라 생각했다.

“신경이 쓰여서 그랬다. 너는 이상한 뱀 요괴다. 이렇게 보면 유용한 가마 같기도 하고 어느 소녀보다도 깜찍한 대롱이기도 하다.”

“내 능력이 여자 한정인 줄 알았건만, 남자들한테도 먹히는 모양이네.”

“여자들 홀리는 그 기술 말이더냐. 아서라, 네 두 눈을 아무리 바라봐도 가슴이 설레지 않는다. 시푸르딩딩한 그 눈은 뭔고 싶다.”

“하여튼 말을 해도 꼭.”

“그래도 얼굴은 예쁘니 그건 인정하마.”

“엎드려 절 받기로구나.”

“뒤로 누워 절해 주마.”

“아, 진짜.”

고도가 축지술이 이끈 바람 때문에 나풀거리는 머리칼 사이로 하얀 이마를 드러내자, 청사는 저도 모르게 그 이마를 자신의 이마로 쿵 찍어 버렸다. 위협이라곤 눈곱만치도 없는 공격이었다. 고도는 제 이마를 손바닥으로 지그시 누르더니만 퍽 기괴한 표정을 지었다.

“박치기의 의미는 무엇이지?”

“글쎄. 이 상태로 네 허연 이마에 남길 수 있는 흔적이 멍밖에 없어서.”

“흔적이라……. 가축의 과도한 애정 표현은 주인의 사랑을 잃기 마련이다.”

“호오, 주인이라고? 네가 지금 내 주인이라도 될 셈이냐?”

“뱀 주인은 달갑지 않은데 너는 하는 짓이 고양이 같아서, 원.”

이마를 박은 행동을 그렇게밖에 해석하지 못하는 고도가 순진한 건지, 능청스러운 건지 모르겠다. 전자일 것이라고 톡톡히 믿는 청사는 씩 웃으며 고도를 고쳐 안았다. 밀착된 몸 때문에 고도가 마른기침을 뱉으며 거부감을 보였다. 청사는 그러한 고도의 불편한 감정 때문에 오히려 짓궂은 마음만 커져 더 괴롭히고 싶어졌다.

“잊지 마라, 내 소원.”

그리 말한 청사가 가파른 바위와 협곡 사이를 질주했다. 고도가 그의 말에 의문을 제기한 것은 목적지가 가까워지고 나서였다.

“웬 소원이란 말이냐? 언제 소원이라고 했지? 이번 일만 잘 도와주면 대가를 준다고 했을 뿐인데.”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던 청사도 이번만큼은 입을 다물었다.

속으로 대가든 소원이든 피차일반이라고 우기면서.

*

청사가 걸음을 멈추어 선 곳은 높은 절벽 근처였다. 산은 시간이 지날수록 여자에 대한 욕심을 부렸다. 온몸으로 바람을 만들어 내고 나뭇잎을 털어내며 고도 일행을 도발했다. 자신을 무서워하며 이곳에서 썩 꺼지길, 대신 여자만은 이곳에 두고 나가길 바라는 기색이었다. 고도는 피부를 저릿하게 감싸는 산속 요기를 둘러보았다. 요괴 짓보다는 요괴에 씐 무언가가 기묘한 현상을 만들어 내는 듯했다. 일그러진 산의 모습이 그 기묘함 중의 하나였다.

고도는 청사에게 안겨 오느라 그의 목에 두르고 있던 자신의 팔을 풀었다. 청사는 고도를 내려 주자마자 그가 앞서 걷지 못하게 손목을 잡아당겼다.

“고도.”

이름의 주인이 청사를 올려다봤다. 청사는 그 또렷한 눈빛을 바라보며 경고했다.

“여기선 네 능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을 수도 있어.”

“음? 어째서? 덫을 놓은 주술진이나 포박진도 보이지 않는데.”

“현실적인 곳이 아니라 그렇다. 여긴 요력으로 만들어 낸 산의 허상 일부거든.”

그래서 주변 일대가 요력에 잠식되어 있는 것일까. 요력 속에 여자들이 갇혔기 때문에 일주일 동안 산을 뒤지고 다녀도 찾지 못한 것이고. 생각하니 이런 요술을 부린 자들이 제법 궁금해졌다. 산의 형상을 띄면서 처자들을 사라지게 만드는 요력의 주인은 누굴까.

“그러니까.”

요괴의 정체에 대해 추측하던 고도는 청사의 목소리를 듣고 생각에서 벗어났다. 대신 산 요괴에 대해 골똘히 생각하던 의식이 절로 손목까지 옮겨졌다. 청사의 손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탈탈 흔들어 털어 보아도 손을 놓지 않으니, 고도가 고개를 갸웃하면서 청사를 올려다보게 됐다. 청사가 고도의 시선을 피해 고개를 휙 돌리고는 큼큼하면서 목을 가다듬었다.

“내가 널 좀 도와주지. 감개무량하게 생각하라고. 난 아무나 도와주지 않아.”

도와주는 것과 손목을 잡는 건 무슨 상관인가?

청사를 빤히 쳐다보던 고도가 가히 딱하다는 표정으로 혀를 찼다.

“아아, 대롱아. 네가 사람 정이 많이 그립구나.”

“또 뭔 헛소리야?”

“손목이 잡고 싶었다면 마음껏 잡고 있거라. 뭣하면 옷깃도 내어 주마.”

퍽 자존심이 상하는 대우인데도 고도가 손수 제 옷깃을 잡고 눈앞에서 흔드는 모습에 청사는 입만 꾹 다물었다. 화를 내지 않는 청사의 모습이 오히려 이상해서 고도가 멈칫했다. 고도는 청사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어째 쑥스럽거나 당황해하는 기색이 보이는 것도 같았다.

“둘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느냐.”

도깨비불의 형상으로 쫓아온 소가 펑, 하고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오자마자 둘의 기이한 짓을 타박했다. 그는 손목을 잡고 있는 청사와 청사의 눈앞에서 옷깃을 흔들고 있는 고도를 보며 퍽 떨떠름한 기색을 보였다. 아직 친분이 쌓인 사이 같지도 않은데 서로를 친근하게 대하는 것이 이상하긴 이상했다.

“보면 고도는 요괴들한테만 인기가 많단 말이야.”

소의 혼잣말에 청사가 희번뜩 눈을 뜨고 소를 노려봤다.

인기가 많다고?

청사는 묻고 싶은 것이 많은 듯 미간까지 찌푸리며 소를 응시했다. 소는 의미심장하게 씨익 웃을 뿐이었다. 고도는 둘의 심리 상태를 전혀 알지 못했다. 그저 요괴들에게 인기 많다는 게 무슨 뜻인지만 고민했다.

“저, 저기, 도깨비님. 저도 내려 주시면 안 될까요?”

남자들의 대화에서 잊혀 있던 소향의 목소리가 울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도깨비의 어깨너머에서 들린 처량 맞은 음색이었다. 소는 어깨에 들쳐 메고 온 소향을 바닥에 내려 주었다. 그녀는 쌀가마니처럼 소의 어깨에 매달려 온 덕분에 땅을 딛고 서자 비틀거리며 멀미를 했다. 감투를 벗지 않아 헛구역질이라도 하는지 확인할 길이 없었다. 고도의 귀에는 풀썩 주저앉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소야, 네가 말한 인기가 참 쓸모없지 않느냐. 이왕 인기가 넘친다면 이 산요괴도 소향 처자가 아닌 나를 노렸으면 하건만. 그리하면 일 처리가 훨씬 수월했을 것을.”

그러자 소가 기괴하게 웃으며 되받아쳤다.

“혹시 아나. 자네가 여자 한복이라도 입고 이곳에 발을 들였으면 산이 반응했을지.”

“호오.”

고도의 저 심각해 보이는 얼굴은 소의 말을 농담으로 넘기지 못하고 진지하게 그 일을 왜 고려 못 했지, 하는 뜻이었다. 이제 와서 치마를 구해 오긴 늦었으므로 고도는 지금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생각하기로 했다. 고도는 청사에게 붙잡힌 손목을 풀어내고 앞으로 몇 발자국 걸어 나갔다.

“여자가 들어왔다고 산이 반응을 보이긴 하나 딱히 뒤숭숭한 짓을 꾸미진 않는구나. 참으로 알 수 없어. 이 산 요괴는 무엇을 원하는 걸까.”

울창한 나무로 둘러싸인 주변은 산의 초입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요력의 근원점’이라 조금 특이한 요력은 느껴지지만 이곳까지 쳐들어온 자신들을 해코지할 의도는 느껴지지 않았다. 여자라는 미끼를 던졌으니 그 찌를 물기 위해 반응을 보여야 하거늘. 수면 위로 잔잔한 물살만 만들어 내고 잉어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꼴이었다.

고민하던 고도가 절벽 끝으로 걸어갔다. 절벽 근처로 다가가기도 전에 청사가 붙잡은 손목을 잡아당겼다.

“그러다 떨어진다. 조심해라.”

도사에게 절벽이 위험하다고 말하는 요괴가 세상에 과연 몇이나 있을는지.

하여튼 대롱이가 제 주인 걱정은 지극정성이라며 고도가 청사의 머리를 토닥여 줄 때였다.

“어머.”

소향이 보이지 않는 모습으로 감탄을 내뱉었다. 무슨 일인가 하여 그녀의 모습을 찾았지만 도깨비감투를 뒤집어쓰고 있어서 눈에 보이지 않았다. 다만 소의 시선이 가있는 곳을 보고 그녀의 위치를 짐작할 뿐이다.

“도사님, 예쁜 구슬이 떨어져 있사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얼굴로 고개를 갸웃하던 고도는 소향이 있을 법한 지점을 바라보며 물었다.

“무슨 구슬 말인가.”

“글쎄요. 저도 처음 보는 것이네요. 아이 주먹만 합니다.”

“그게 대체 어디 있다는 거지?”

“아, 제가 들고 있는데요. 도사님 안 보이세요?”

도깨비감투를 쓴 사람은 그 손에 닿은 물건마저 모습을 감추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녀가 땅바닥에 떨어진 구슬을 잡았다면 구슬 역시 감투의 힘을 받아 보이지 않는 것일 테다. 이 깊은 산속에 어찌 구슬이라는 장난감이 떨어져 있다는 말인가.

“이리 줘봐라.”

아무래도 이상하게 생각한 고도가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소향은 고도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녀는 구슬이 참으로 곱다면서 화아, 화아, 하며 감탄사를 그치지 않았다.

“참으로 영롱한 빛을 띠고 있습니다. 오색찬란하여 대체 무슨 돌을 깎아 이리도 아름답게 만들었는지 궁금하옵니다. 마치 달이나 별이 이 산에 떨어진 것 같습니다. 무척 신비로운 색이어요.”

구슬에 대한 찬양을 대수롭지 않게 듣던 고도의 몸이 불현듯 뻣뻣하게 굳었다. 고도는 위화감을 느꼈다.

“영롱? 오색찬란?”

이번에는 소향의 반응이 없었다. 홀린 듯이 구슬을 보며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늘어놓던 여자가 갑자기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그쯤 되니 고도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아차하고 다급히 소향에게 달려가려 했지만 때는 늦었다.

작게 불어오던 산바람이 태풍처럼 휘몰아쳤다. 바닥을 긁듯이 굴러다니던 나뭇잎들이 하늘로 솟구쳤다. 흉흉한 낌새만 내비추던 산이 마치 폭발할 듯했다. 발밑이 우르르 울리고 하늘을 가리고 있던 길고 두꺼운 나뭇가지들이 쩍쩍 소릴 내며 갈라졌다. 광풍과 지진이 동시에 자신의 구역에 들어온 이들을 덮쳤다. 고도가 다급하게 외쳤다.

“소! 낭자를 붙잡아!”

감투를 쓴 사람을 유일하게 볼 수 있는 소가 화살처럼 튀어나갔다. 곰처럼 투박한 손이 눈앞을 휘두르는 순간, 소의 시선이 고도에게로 옮겨졌다. 그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고도!”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라 가만 서 있기만 하던 고도가 갑작스런 충격을 받고 뒤로 밀려났다. 뒷걸음질을 치자 한쪽 발이 아무것도 디딜 곳 없는 허공까지 내몰렸다. 고도의 손목을 붙잡고 있던 청사가 다급히 붙잡아 끌지 않았다면 고도는 그대로 추락했을 것이다.

청사의 도움으로 인해 가까스로 절벽을 미끄러지지 않은 고도는 두루마기 속에서 부적을 꺼냈다. 그것을 들고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자기를 밀친 자를 눈으로 빠르게 찾았다. 몇 척 앞에서 파사사삭, 나뭇잎 밟히는 모습이 보였다.

고도는 나뭇잎이 밟히는 곳을 향해 재빨리 부적을 날렸다. 사방에서 불똥이 튀며 화염이 치솟아야 하는 도술이었다. 하지만 진기한 힘은 나타나지 않고 부적은 한낱 종이쪽지가 되어 팔랑거리며 가라앉았다. 갑자기 무능력해진 자신의 상황에 고도가 눈에 띄게 동요했다. 그가 뒤늦게 허리춤에 차고 있던 검을 뽑으려 했지만 일전에 고도를 밀어내려던 힘이 더 빨리 고도에게 돌진했다.

쿵!

지지대가 되어 주던 청사의 손에서 떨어져 나갔다. 맨 몸뚱어리가 부딪힌 힘을 이기지 못해 허공까지 퉁겼다. 고도에게 달려와 어깨로 부딪힌 충격은 상대방에게도 고스란히 되돌려져 제 머리 둘레에 맞지 않던 커다란 감투가 날아갈 정도였다. 감투가 벗겨진 소향은 한 손에 구슬을 잡고 있었다. 눈은 무언가에 잠식된 듯 동공을 까뒤집은 하얀 면만이 보였다. 발 디딜 곳 없는 허공에서 고도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여우 구슬.”

천 년 동안 인간의 정기를 모아 요력으로 갈고 닦은 구미호의 구슬. 그것은 신령들도 탐을 낼 만큼 강력한 힘이 있어서 누군가가 진실 되게 소원을 빈다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다. 설마 이 산중에 주인 잃은 구슬이 굴러다닐 줄이야. 그리고 그것이 인간 여자들을 꼬아 내고 있을 줄이야.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여기선 네 능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않을 수도 있어.’

청사의 충고대로였다. 환영과 환상 능력이 탁월한 구미호와 그런 구미호의 품에서 애지중지 천 년 동안 힘을 축적한 구슬은 고도의 도력을 제한시켰다. 강력한 여우구슬에 홀린 소향이 입을 쩍 벌렸다. 그녀의 입을 빌어 귀곡성에 비할 수도 없는 끔찍한 비명소리가 터졌다.

-남자들이란, 남자들이란! 다 죽어 버려야 해에에에!

소향에 덧씌워진 누군가의 원귀가 들끓는 감정을 포효하듯이 뱉었다. 고막을 터뜨릴 듯 날카로운 외침이 고도의 귓가에서 아득해졌다. 그 뒤를 잇는 소의 비명소리. 그리고 세 요괴들의 혼탁하게 충돌하는 기운들. 산이 요란하게 떨리는 충격까지.

그 모든 것이 멀어지면서 고도는 절벽 밑으로 추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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