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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것은 뭔가 잘못되었다. (24/27)

6. 이것은 뭔가 잘못되었다.

날씨가 좋았다. 화창하게 갠 하늘을 하얀 새 두 마리가 나란히 가로질렀다. 작아져가는 새의 궤적을 쫓던 초록색 눈동자가 소리 없이 살짝 휘어졌다.

"뭔가 재미있는 거라도 있어?"

"...아무것도요."

"흐음."

창밖을 바라보던 에밀이 엘리어트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상냥한 미소를 지었다. 엘리어트가 푹신한 베개에 기대어 침대에 앉아 있다가 에밀 쪽으로 손을 내밀자, 에밀이 서둘러 달려가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에밀."

"네, 전하."

에밀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엘리어트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아직도 거짓말을 해야 해?"

에밀의 입가가 움찔 떨렸다. 엘리어트가 긴장이 풀린 부드러운 눈으로 에밀을 바라보았다. 최근 보았던 그 어떤 표정보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얼굴. 에밀의 눈에 다시 습막이 차올랐다. 5년 전의 엘리어트다.

"거짓말은..."

"그래, 안 했어. 하지만 진실을 말하지도 않았지."

"......"

엘리어트의 목소리에는 힘이 풀려 있었다. 5년 동안 너무나 그리워했던 친근한 목소리에 에밀이 눈물을 참으며 고개를 돌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 엘리어트가 다른 손을 내밀어 에밀의 얼굴을 당겼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로, 에밀이 그의 제비꽃 색 눈동자를 마주본다.

"날 사랑하지?"

에밀이 눈을 감아 버렸다. 아니라고 해야 하는데. 아니라고,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얘기해야-

"내 후계가 그렇게 걱정됐어?"

에밀이 눈을 크게 떴다. 엘리어트가 피식 웃으며 에밀의 뺨을 어루만졌다. 약간 차가운 듯한, 그러나 소중한 것을 만지는 손길.

"어떻게..."

"그녀가 얘기하는 걸 들었어."

"어...어디서부터 들으신 거예요?"

"음..."

엘리어트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호쾌하게 대답했다.

"로열 나이트쯤?"

...그렇다면 거의 모든 대화를 들었다는 얘기다.

"...죄송...해요."

더 이상 아무것도 핑계 댈 수 없다는 걸 알고서 에밀은 솔직하게 잘못을 시인했다. 엘리어트의 시선이 느껴지자 에밀은 다시 눈물이 나오는 것 같아 입술을 깨물었다.

"그치만... 그치만 리트는... 국왕이 될 거고... 난 아이를 낳을 수 없으니까..."

가늘게 손끝으로 전해지는 떨림이 사랑스럽다. 물기가 가득 찬 초록색 눈동자가 엘리어트의 보랏빛 눈동자를 마주 보아 왔다.

그때, 엘리어트는 드디어 에밀이 제대로 자신을 마주 보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진지하고 올곧은 눈빛은 오직 엘리어트만을 담고서 그를 바라본다. 뒤통수가 짜릿할 만큼 기분이 좋아서, 엘리어트는 조심스럽게 에밀의 손을 당겼다.

"리트?"

"괜찮아."

"하지만..."

엘리어트가 조심스럽게 에밀의 손을 깍지껴 잡았다. 에밀이 울 것 같은 얼굴이면서도 손을 빼지 않자, 엘리어트는 비로소 조금 안심한 얼굴로 웃었다.

"후계에 대한 것은 아버지와 상의할 문제야. 넌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래도..."

"에밀."

엘리어트가 부드럽게 에밀의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 댔다. 에밀이 처진 눈으로 엘리어트를 바라보자, 그가 살짝 웃으며 손가락을 세워 에밀의 입술선을 쓰다듬었다.

"내 반려는 너 하나뿐이야. 이전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너 외의 사람을 인정할 생각은 전혀 없어."

"...리트."

"지금은 날 믿어."

에밀이 고민하다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착하게도 자신을 따라 주는 그 얼굴이 사랑스러워 엘리어트가 조심스럽게 맞잡은 손을 끌어당겼다. 아무 저항도 없이 다가오는 에밀의 입술에 입을 맞춘다. 깨지기 쉬운 것을 대하듯 소중하게, 그러나 노골적인 욕망을 채 숨기지는 못한 엘리어트의 입술이 에밀에게 닿았다.

에밀의 눈이 커졌다가 다시 조용히 감겼다. 오랜 시간을 건너 마침내 닿은 마음이 입술 끝의 호흡으로 서로에게 전해졌다.

작은 새가 모이를 쪼듯 가볍게 부딪던 입술이 서서히 서로의 타액으로 젖어갔다. 천천히 엘리어트가 에밀의 뺨을 쓰다듬자, 에밀이 움찔하며 몸을 떨었다. 그 반응이 재미있어 엘리어트가 살짝 입술을 떼고 조금 웃었다. 타액으로 젖어 반질한 입술이 요염하게 호선을 그리는 순간 에밀이 숨을 헉 들이키더니 태도를 바꾸어 맹렬히 달려들었다.

"음...?"

깜짝 놀랄 만큼 강하게 침범해 오는 혀에 엘리어트가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그러나 에밀의 손이 어느새 강하게 그의 뒤통수를 감싸 안고 있어서 도망갈 수 없었다.

장난이 아니라, 정말로 격렬했다. 거침없이 입안을 헤집는가 하면 엘리어트의 혀를 휘어감아 끌어당기기도 하고, 그런 와중에도 부드럽게 혀뿌리까지 빨아올리며 마음껏 날뛰었다. 엘리어트의 모든 것을 삼켜 버릴 것 같은 기세로, 에밀은 엘리어트의 입술을 진하게 누르며 무방비한 혀를 농락했다. 에밀의 손이 어느새 엘리어트의 어깨를 지나 가슴으로 내려가는 순간 놀란 엘리어트가 살짝 에밀의 어깨를 붙잡자 에밀이 아쉽다는 듯 그의 아랫입술을 깊게 빨아들였다 놓으며 고개를 들었다.

서로의 얼굴이 코앞에 있었다. 아까보다 더워진 호흡이 코앞에서 섞이며 좀 더 진해진 눈동자가 마주쳤다.

먼저 입을 연 것은 엘리어트였다.

"...에밀?"

"네."

"...이런 거 어디서 배웠어?"

엘리어트의 눈이 살짝 찌푸려졌지만 에밀은 대답하지 않고 맑게 웃었다. 아까의 격정적인 키스가 거짓말인 것처럼 순진한 미소에 엘리어트는 왠지 뒤통수가 쭈뼛해졌다.

"배우다뇨?"

"...너무 익숙한데."

엘리어트는 왠지 뱃속이 차가워지는 것 같았다. 혹시, 혹시라도, 달리 경험이 있었다거나?

엘리어트의 눈에 떠오르는 의심을 눈치 채고, 에밀은 다시 웃으며 태연하게 대답했다.

"기분 가는 대로 한 것뿐인걸요."

"...기분...?"

"네. 이렇게 하고 싶다, 같은."

엘리어트는 문득 에밀의 초록색 눈동자 너머 일렁이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말았다. 그것은 여러 가지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분명 지금의 이름은 아마도-

"나, 리트를 갖고 싶어요."

욕정.

엘리어트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부끄러워서 그렇다기보다는 어딘지 억울해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거...거짓말!"

"정말인데."

"그런 문제가 아니라! 으윽."

너무 당황해서 환자라는 것을 잊고 있었다. 엘리어트가 배를 감싸 쥐고 인상을 쓰자 에밀이 깜짝 놀라 그의 곁으로 가까이 다가앉았다.

"괜찮으세요?!"

"괘... 괜찮...아. 소리를 지르니까 몸이 울려서..."

그러나 엘리어트의 얼굴은 완전히 빨개져 있었다. 당황한 것이 역력한 얼굴이었다. 그 부끄럼 많은 얼굴을 훔쳐보며 에밀은 속으로 그를 귀엽다고 생각했다.

5년 전의 엘리어트도 그랬었다. 냉철하고 엄격한 왕자의 얼굴로 있다가도, 에밀 앞에서는 감정을 날것으로 드러내곤 했다. 그때는 그것이 당연한 줄만 알았었지. 물론, 지금도 당연하다.

"지금, 그러니까, 나를 덮치겠다는 얘기야?"

"문제가 되나요?"

에밀이 정말 모르겠다는 얼굴로 되물었다. 키는 엘리어트가 좀 더 크긴 하지만 에밀은 아직 성장기였다. 기사 특훈도 충실하게 받을 테고, 체력적인 부분이나 힘에 대한 거라면 에밀은 절대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러나 엘리어트 역시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던가 보다.

"무...무엄하다!"

"갑자기 그렇게 얘기하셔도..."

"지금 국왕이 될 사람을 범하겠단 얘기냐!"

갑자기 웬 명령조인가 했더니, 어지간히 당황한 모양이었다. 그러나 에밀은 여전히 뭐가 이상한지 모르겠다는 듯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마도요?"

"아, 아, 아, 아마도라고?"

엘리어트가 말을 더듬는 건 오랜만에 본다. 에밀이 생긋 웃으며 엘리어트의 뺨에 손을 대었다. 엘리어트가 흠칫 놀랐지만 에밀의 손은 느릿하고 다정하게 엘리어트의 뺨을 쓰다듬었다. 부드러운 감촉이 손끝으로 전해지자, 에밀은 왠지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해 버렸다.

"그럼, 리트가 가져요."

"음?"

"리트라면, 난 어떤 쪽이든 상관없어요."

엘리어트가 물끄러미 사심 없이 미소 짓는 에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곤란하게 해서 미안하다는 듯, 그러나 기쁘다는 듯 엘리어트를 향해 보내는 애정 어린 미소가 가슴 아프도록 사랑스럽다.

...하지만 아무리 에밀이라고 해도 이건 확실하게 하고 넘어가야 했다.

"...나중에 무르는 건 안 돼."

"네에."

에밀이 목소리를 낮춰 킥킥댔다. 엘리어트가 긴장이 풀린 얼굴로 어쩔 수 없다는 듯 피식 웃자, 에밀이 엘리어트의 손을 잡아 왔다.

"리트."

"응."

"부탁이 있는데요."

엘리어트가 눈을 깜박이자, 에밀이 살짝 몸을 숙여 엘리어트의 입술에 가볍게 다시 입을 맞추었다.

"아까 하던 거, 마저 해도 돼요?“

* * *

왕세자가 되면서 엘리어트는 레뮤엘의 업무를 인계받고 실제로 국정에도 참여했다. 몇몇 건은 어린 왕세자가 해내기에 버거울 정도였지만 그는 늘 확실하고도 깨끗하게 차기 국왕으로서의 재능을 빛냈다.

아버지 레뮤엘처럼 훌륭한 왕이 되기 위해 노력해온 그가 늦잠을 자는 것은 아주 드문 일이었지만, 지금처럼 배에 칼이 꽂혔던 상황이라면 늦잠 정도의 어리광은 부려도 괜찮을 일이었다.

...그러나 그런 엘리어트의 꿀 같은 단잠은 매일 아침 들려오는 명랑한 아침 인사에 박살이 났다.

"좋은 아침. 잘 잤어요?"

"...으응..."

확 걷어진 커튼으로 아침 햇살이 쏟아지자 엘리어트가 느릿하게 눈을 떴다. 에밀이 환하게 웃으며 엘리어트의 침대로 다가와 아직 졸음이 덜 가신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살짝 뻗친 잿빛 머리카락을 눌러주며 명랑한 목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일어나셔야 돼요. 아침 먹고, 약 먹어야죠."

"...졸려."

엘리어트가 뭔가 불만스런 얼굴로 투덜댔다. 그러나 에밀은 아랑곳 않고 그의 뒤로 베개를 겹쳐 쌓으며 엘리어트가 앉기 쉽게 도와주었다. 바쁘지만 꼼꼼한 손길이 엘리어트를 배려하며 움직이자 그도 결국 한숨을 쉬며 고개를 흔들어 남은 잠을 떨궈냈다.

엘리어트의 상처는 빠르게 호전되고 있었다. 바로 어제 환부를 소독하고 새로 붕대를 감은 의원이 빙긋 웃으며 이대로라면 흉터도 안 남겠다고 반농담조로 말했을 정도다. 그리고 거기에는 에밀의 공이 아주, 아아주 컸다.

"비슈나, 식사를 들여보내세요. 약도 잊으시면 안 돼요."

"...에밀."

"남기시면 안 돼요. 회복과 영양을 생각한 식사니까 다 드세요."

"고마워, 에밀. 그런데..."

"참, 이제 씻으셔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어요. 이따 점심 후에-"

"에, 밀."

엘리어트가 못마땅한 얼굴로 에밀을 단호하게 부르자, 초록색 눈동자가 귀엽게 휘어지며 그에게 화답하듯 웃었다.

"네, 전하."

"...리트라고 불러도 돼. 그리고 난 어린애가 아니야."

"하...하지만..."

에밀이 금세 시무룩해진 눈으로 엘리어트를 바라보았다. 살짝 처진 눈꼬리가 어딘지 강아지를 연상케 해서, 엘리어트는 무심코 그의 말린 장밋빛 머리카락을 쓰다듬고 말았다. 손가락 사이로 감겨드는 붉은 곱슬머리의 느낌이 좋았다.

"이제 그다지 아프지도 않아."

"하지만... 저 때문에... 아프신 거잖아요... 제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흔들리는 초록색 눈동자가 애처로웠다. 엘리어트가 안 된다고 세게 나가면 정말 울기라도 할 것 같아서 그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에밀이 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에밀이 그런 눈을 할 때마다 엘리어트는 결국 질 수밖에 없었다. 여전히 엘리어트는 그 눈에 약했다.

"...마음대로 해."

"네에!"

언제 풀이 죽었냐는 듯 금세 해사하게 번져가는 미소. 오직 엘리어트만을 위해 지어지는 미소는 예전과는 달리 단 한 점의 거짓도 없다. 인형처럼 습관적으로 짓는 미소가 아니라, 정말 빛이라도 날 듯이 환한 미소에 엘리어트가 결국 못 말리겠다는 듯 마주 웃었다.

"그럼 리트, 일단 식사부터 하세요. 귀찮다고 빨리 먹지 말고 천천히 씹어서-"

"어린애가 아니라니까."

엘리어트가 쿡쿡 웃으며 스푼을 들었다. 에밀이 턱을 괸 채 싱긋 웃으며 그의 식사를 지켜보는 동안, 비슈나는 살짝 미소를 띠고서 조용히 뒤로 물러나 방을 나왔다.

레뮤엘은 특별히 엘리어트의 간호를 위해서 에밀이 그의 곁에 있는 것을 허락했다. 엘리어트의 곁을 지키느라 거의 성 밖으로 나갈 수는 없지만 아픈 엘리어트를 두고 멀리 갈 것도 아니니 에밀에게는 오히려 상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마 레뮤엘도 그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써."

"약이니까요. 여기요."

작은 종이봉투에 든 가루약을 한 입에 털어넣고 물로 넘긴 엘리어트가 인상을 쓰자 에밀이 웃으며 그에게 작은 초콜릿 조각을 내밀었다. 엘리어트는 잠시 에밀이 정말로 자신을 어린애처럼 느끼는 건 아닌가 고민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처지는 시무룩한 눈꼬리에는 당해낼 수가 없었다. 낮게 한숨을 쉬고 초콜릿을 받아들려는 순간, 에밀이 좋은 생각이 났다는 듯 눈을 반짝였다.

"먹여 드릴까요?"

"아니, 괜찮아. 그렇게까지 안 해도-"

그러나 엘리어트는 그 뒤를 말할 수 없었다. 에밀이 싱긋 웃으며 초콜릿을 입에 물더니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두 손으로 엘리어트의 뺨을 감쌌다. 의외로 단단한 손아귀 힘에 엘리어트가 당황하는 순간, 에밀의 얼굴이 가깝게 보였다.

"...!"

마치 당연하다는 듯 엘리어트의 입술을 비집고 잇새로 떨어진 초콜릿 조각은 체온 덕에 금방 녹아내렸지만 에밀의 입술은 떨어지지 않았다. 기도를 타고 올라온 초콜릿 향기가 비강을 가득 메우자 엘리어트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며 뭐가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없어졌다.

에밀의 혀가 초콜릿을 묻힌 채 부드럽게 쓴맛이 나는 입천장을 쓰다듬었다. 가지런한 치열을 거쳐 멍하니 굳어 버린 혀뿌리를 조심스럽게 빨아 당기자 엘리어트가 살짝 어깨를 떨었다.

에밀의 혀는 그 자체로 마치 커다랗고 뜨거운 초콜릿 덩어리 같았다. 달콤 쌉싸름한 향기를 실은 혀끝이 엘리어트의 입안을 샅샅이 훑었다. 엘리어트의 콧등에 에밀의 날숨이 흩어졌다. 어딘지 달큰하고, 살짝 뜨거워진 체온에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음..."

자기도 모르게 목으로 울리는 침음에 엘리어트는 스스로 놀라 버렸다. 녹아버린 초콜릿은 이제 흔적도 없이 목 뒤로 넘어갔지만 에밀은 여전히 그 여운을 즐기기라도 하는 양 엘리어트의 입안을 진득하게 핥았다.

에밀이 엘리어트의 혀를 휘어 감자 젖은 혀가 야한 소리를 내며 입술 사이에서 부딪혔다. 살짝 떨어졌던 입술을 다시 비비고 탐하며 초콜릿 향이 나는 키스가 한참 동안 계속되었다. 떨어질 것 같다가도 에밀이 다시 입술을 부딪혀오면 엘리어트는 속수무책으로 혀를 내어줄 수밖에 없었다. 에밀이 집요하리만치 엘리어트의 입안을 구석구석 훑으며 진한 욕망을 전할 때마다 엘리어트는 왠지 뱃속이 뜨거워졌다.

"에밀... 아... 그만..."

"하아... 리트."

머릿속이 이상해질 것 같아 겨우 에밀을 밀어내자, 에밀은 코끝이 살짝 맞닿을 것 같은 거리에서 여전히 엘리어트의 얼굴을 잡고서 생긋 웃었다. 방금 그렇게 농염하게 혀를 놀린 사람이라고는 전혀 생각할 수 없는 순수한 얼굴이었다.

"...달콤해요."

초콜릿이? 아니면 내가? 엘리어트는 순간적으로 그렇게 묻고 싶었지만 에밀은 여전히 그 해맑은 얼굴로 엘리어트의 젖은 입술을 마지막으로 핥고는 몸을 일으켰다.

"약도 다 드셨으니까, 이제 푹 쉬세요. 이따가 다시 올게요."

"...응."

에밀이 비슈나를 부르고, 식사 쟁반이 치워지고, 침대에 다시 눕게 되자 엘리어트는 그제야 느긋하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에 안도했다.

에밀이 다시 커튼을 쳐서 어두워진 방안은 잠들기 딱 좋았지만 엘리어트는 잠들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아까의 여운을 생각하다, 문득 엘리어트는 이 상황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다.

에밀이 그의 간호를 맡으면서부터 부쩍 둘만 있는 시간이 늘었다. 그것은 좋았지만, 문제는 에밀의 태도였다.

에밀이 마냥 순진하고 명랑하게 엘리어트를 대하고 있다고 해도 때때로 엘리어트는 왠지 모를 오한에 소름이 돋았다. 기분이 나쁘다기보다 맹수에게 노려지는 사냥감 내지 먹잇감이 된 듯한 느낌의 긴장감이었다. 에밀이 곁에서 웃고 있는데도 그렇게 긴장하는 게 이상했지만 최근 엘리어트는 그 느낌의 원인이 바로 에밀이라는 것을 눈치 채고 말았다.

방금도 그렇다.

에밀이 자신을 원하는 것은 좋았다. 5년간의 못다 한 정해를 풀려는 것처럼 에밀은 둘만 남을 때면 키스나 포옹을 자주 해왔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닿는 게 왜 싫겠냐마는, 가끔 아까처럼 격렬하게 엘리어트를 밀어붙여 올 때면 그 엘리어트조차 살짝 불안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이상할지도 모르지만, 그러니까, 어떤 느낌이라고 딱 꼬집어 얘기하자면...

"...잡아먹힐 것 같아."

귀까지 붉어진 엘리어트가 괜한 부끄러움에 얼굴을 이불 속으로 파묻었다. 자신을 원하는 에밀의 입술을 떠올리자 뱃속 깊은 곳이 움찔거려서, 엘리어트는 약기운에도 불구하고 결국 잠이 들 수 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점심식사를 끝내고 에밀이 따뜻한 물이 담긴 대야와 수건을 가지고 방으로 들어왔을 때, 엘리어트는 그야말로 질겁을 했다. 점심 후에 씻어도 된다고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당연히 다른 시종들이 시중을 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에밀은 굳이 자신이 하겠다고 꾸역꾸역 우겼다.

"싫다."

"안 돼요. 제대로 씻지 않으면 나중에 덧날지도 모른단 말이에요."

"내가 하겠다. 굳이 네 손을 빌리지 않아도 괜찮아."

"하지만 등에는 손이 안 닿으시잖아요."

"상관없어!"

벌써 15분째, 엘리어트의 침실에서 때 아닌 실랑이가 벌어지고 있었다.

엘리어트는 침대 속으로 들어가 농성 중이었고 에밀은 그 앞에서 간편한 셔츠와 바지로 갈아입고 소매를 걷은 채 엘리어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고집스런 보랏빛 눈동자가 에밀을 노려보는 동안 에밀의 입에서 애처로운 신음이 새었다.

"...히잉."

"그래도 소용없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 나가봐."

에밀의 눈꼬리가 티나게 처지기 시작하자, 엘리어트가 애써 고개를 돌렸다. 지면 안 돼. 절대 지면 안 돼. 이것만큼은-

"리트..."

깜짝 놀랄 만큼 처연한 목소리에 엘리어트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돌릴 뻔했다. 에밀이 완전히 풀이 죽은 채 우물쭈물하며 말을 이어갔다.

"제가... 불편하신 거예요?"

"그런 게 아니야."

"...그럼... 혹시... 이제 저를 사랑하지 않으세요?"

엘리어트가 깜짝 놀라 에밀을 돌아보았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듯한 커다란 초록색 눈동자가 우울하게 가라앉으며 엘리어트를 바라보자, 엘리어트는 지금 어떤 상황인지도 잊고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절대 아냐!"

"하지만 리트... 손도 못 대게 하시고..."

"그... 그건!"

에밀이 처량하게 엘리어트를 올려다보자 엘리어트가 잠시 이마를 손으로 짚었다. 돌아버리겠네, 이거.

"...이... 이번만이다."

"에?"

목까지 빨개진 얼굴을 숨기기 위해 엘리어트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에밀은 엘리어트의 잿빛 머리카락 사이 붉어져버린 귀를 발견하고 말았다.

"다... 다음부턴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네에!"

저것 봐. 금방 또 해사하게 웃는 얼굴에, 엘리어트는 이번에도 에밀에게 졌다는 걸 깨달았다.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에밀에게 알몸을 보이는 것이 왠지 부끄러워 때 아닌 실랑이가 벌어지긴 했지만 결국 엘리어트는 에밀을 이길 수 없었다. 그러나 에밀의 우울한 눈을 보는 것보다는 그저 자신이 조금 참는 편이 나았다. 점점 에밀을 응석받이로 만드는 건 아닐까 생각하면서도 결국 엘리어트는 에밀의 손에 몸을 맡겼다.

엘리어트가 침대에 걸터앉자, 에밀이 그 앞에 서서 엘리어트의 옷을 벗겼다. 걸치고 있던 가운이 아주 쉽게 엘리어트의 어깨에서 미끄러져 내리고, 이어서 에밀의 손이 엘리어트의 배를 감은 붕대를 조금씩 풀어냈다. 조심스럽고도 신속한 손놀림이었다.

그러나 붕대를 풀어내는 그 짧은 시간이 엘리어트에겐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희미하게 느껴지는 에밀의 호흡과, 살짝 피부에 닿는 손가락이 이상할 만큼 농염하게 느껴졌다. 약간 긴장된 어깨 위로 살짝 소름이 돋자 에밀이 부드럽게 속삭였다.

"추우신가요?"

"아... 아니, 아니..."

에밀의 목소리가 너무 가깝게 들려서 더 놀라 버렸다. 은근하게 속삭이는 에밀의 목소리가 나긋하게 귓바퀴를 돌자 엘리어트는 왠지 아랫배가 다시 뜨거워졌다.

아, 안 돼, 안 돼. 여기서 흥분할 수는 없어. 엘리어트가 눈을 감고 호흡을 정리하는 동안, 에밀은 속으로 웃으며 엘리어트 모르게 그의 몸을 훑어보았다.

엘리어트의 벗은 몸은 아름다웠다. 기사를 목표로 하는 자신처럼 잔근육이 붙어 있거나 뼈대가 큰 것은 아니었지만 적당히 마르면서도 균형 잡힌 몸매는 남자답다기보다 아름답다는 말이 어울렸다. 하얗고 매끄러운 등을 내려다보며 에밀은 자기도 모르게 그 등에 흔적을 남겨보고 싶은 욕구를 살짝 억눌렀다.

붕대가 다 풀리고 나자 에밀은 조심스럽게 엘리어트의 발치에 무릎을 대고 앉아 상처를 살폈다. 아물어 가고는 있었지만 커다란 딱지가 앉은 자리가 보기만 해도 가슴이 욱신거렸다. 에밀이 한숨을 내쉬며 상처 근처를 쓰다듬자 엘리어트가 당황하며 낮게 소리쳤다.

"뭐, 뭐 하는 거야?"

"...아직도 아프세요?"

"...괜찮다. 심하게 움직이지만 않으면..."

에밀이 안타까운 웃음을 지었다. 그 미소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기에, 엘리어트가 자신 앞에 눈높이를 맞춘 에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다정한 손길에 뺨을 비비던 에밀이 생긋 웃으며 그의 손에 입을 맞추었다.

"씻으셔야죠."

따뜻한 물을 적신 수건이 먼저 목에 닿았다. 선이 확실한 턱과 목을 지나 일자로 뻗은 쇄골을 닦은 수건이 천천히 가슴으로 내려갔다. 분명히 에밀은 젖은 수건으로 자신의 몸을 닦아줄 뿐인데도 불구하고 그 움직임이 너무 은근해서 엘리어트는 왠지 애무당하는 느낌이 들었다.

"...읏."

수건 끝이 유두에 닿자 엘리어트가 낮게 신음을 삼켰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에밀은 그 목소리를 듣지 못한 것 같았다. 수건이 빙글 돌며 유두 근처를 배회하자 엘리어트의 하체가 주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에밀, 이제 그만..."

"...네."

에밀이 조용하게 대답하며 수건을 움직였다. 살짝 안도하는 것도 잠시, 이번에는 다른 쪽 유두에 가 닿는 수건 때문에 엘리어트는 완전히 당황해 버렸다.

"에밀, 저기..."

"쉬잇..."

에밀이 조용히 하라는 듯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댔다. 엘리어트가 자기도 모르게 입을 다물자 에밀이 여전히 부드럽게 손을 놀리며 중얼거렸다.

"제대로 닦으려면 가만히 계셔야죠."

"...그... 그렇긴 한데... 웃..."

수건 끝이 유두를 미묘하게 문지르자 엘리어트가 에밀의 어깨를 짚었다. 빨개진 얼굴이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은 흥분하기 시작한 몸을 에밀에게 들키지 않는 게 먼저였다.

"거긴 이제 됐으니까, 드, 등을 닦아줘."

"? 네."

드디어 수건이 가슴에서 떨어지자, 엘리어트가 에밀 몰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새로 수건을 적신 에밀이 엘리어트의 팔 아래로 손을 넣어 끌어안는 듯한 자세로 등을 닦기 시작하자 그는 과연 자신이 잘못된 건지 에밀이 잘못된 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에, 에밀, 그렇게 하면 불편하니까..."

"괜찮아요. 흐음, 리트, 좋은 냄새가 나네요..."

엘리어트의 어깨에 코를 묻은 에밀이 숨을 들이키자 엘리어트가 약하게 몸을 떨었다. 살짝 떨리는 등을 끌어안고 젖은 수건으로 닦아내며 에밀이 느릿하게 속삭였다.

"역시, 추우세요?"

"추...춥다기보다..."

오히려 뜨거웠다. 엘리어트는 필사적으로 허리 아래의 사정을 들키지 않으려 입술을 깨물었다. 순진한 에밀이 이걸 알게 된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상상하자 엘리어트는 자신을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배에 칼이 꽂힌 상황에서도 욕정한다고, 자길 짐승처럼 볼지도 모른다.

그건 안돼!

"에밀, 나머지는 내가 할 테니까..."

"...역시 저를 사랑하지 않으시는 거죠."

"그, 그게 아니야!"

"......"

그러나 이미 상처받은 에밀은 우울한 눈빛으로 엘리어트를 올려다보았다. 가련하고 처량한 눈. 엘리어트는 이제 반쯤 미쳐 버릴 것 같았다. 에밀을 안고 싶다. 그를 만지고 마음껏 자신의 것으로 하고 싶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엘리어트는 생각 끝에 에밀의 목을 끌어안았다.

"미안, 에밀... 하지만 이런 모습은 보여주고 싶지 않아."

"...네?"

"......"

엘리어트는 아무 말도 없이 한숨을 내쉬었다. 에밀이 눈을 깜박이다 엘리어트의 손에서 빠져나왔다. 순진한 초록색 눈동자가 엘리어트를 훑다, 아까보다 부피를 키운 앞섶을 보고 이제 알겠다는 듯 빛났다.

"흥분하셨구나."

"그... 그게, 아니, 저..."

"그래요, 그러고 보니 이쪽도 닦아드려야죠."

"아니! 괜찮아! 헉, 으앗!"

에밀이 생긋 웃으며 엘리어트의 속옷을 아주 쉽게 벗겨냈다. 엘리어트가 순식간에 알몸이 되며 그의 분신이 차가운 공기 중으로 쑥 튀어올랐다. 얼굴뿐 아니라 온몸이 빨개진 엘리어트가 자신을 가리기도 전에, 에밀이 그의 손목을 한 손으로 단단히 틀어쥐었다.

"...단단해졌네요."

"그, 아, 알았으니까, 이 손 좀-"

"싫어요."

에밀이 단호하게 대답하자, 엘리어트가 눈을 크게 떴다. 에밀이 이런 식으로 말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가 놀라고 있는 틈을 타서 에밀이 빙긋 웃고는 젖은 수건을 들었다.

설마, 하고 생각한 순간 에밀이 그 '설마'를 시작했다.

"웃, 자... 잠깐... 으읏, 에밀-"

"쌓이신 것 같아요. 벌써부터 미끈거리네요."

"히잇!"

부드러운 수건 끝이 음모를 문지르나 싶더니 곧 고관절과 고환 아래 편평한 곳까지 내려갔다. 잔뜩 성이 난 성기는 전혀 건드리지 않은 채, 에밀은 교묘하게 그 주변을 닦아내었다. 그러나 민감한 포피 끝으로 느껴지는 에밀의 호흡이 너무 선명해서 엘리어트는 속수무책으로 몸을 떨었다. 이만큼 직접적인 자극을 받은 적이 별로 없어서 엘리어트의 몸은 무방비했다.

"그마... 앗..."

"이쪽은 더러워지기 쉬우니까, 꼼꼼히 닦아드릴게요."

꼼꼼하지 않아도 되거든! 그러나 엘리어트의 외침은 고환을 문질러오는 수건의 느낌에 삼켜지고 말았다. 맥없이 떨리는 허리를 단단히 받친 에밀이 사랑스럽다는 듯 엘리어트의 납작한 아랫배에 입을 맞추었다. 천천히, 엘리어트가 느끼는 곳으로 에밀의 손길이 침범해왔다.

"흐윽... 그만, 에밀...!"

"괴로워 보여요, 리트... 도와드릴게요."

"그, 읏... 흐아앗!"

난데없이 기둥을 휘어잡는 손길에 자기도 모르게 허리가 튀어 올랐다. 뱃속이 움찔거리며 좀 더 강한 자극을 원했다. 눈앞에 생긋 웃는 초록색 눈동자로 머릿속이 가득 차서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어때요? 기분, 좋아요?"

"그... 아... 그마... 아응...!"

에밀의 손가락이 귀두 아래를 문지르자 엘리어트가 다시 낮게 신음을 내질렀다. 기분 좋게 귓가로 퍼지는 달뜬 음성에 에밀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리트, 목소리가 야해요."

네가 그렇게 만들었잖아! 라고 소리치려는 순간, 엘리어트는 에밀의 행동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눈을 홉뜨고 말았다.

에밀의 입술이 벌어지며 그 사이로 젖은 혀가 보이는가 싶더니, 그 끝이 엘리어트의 선단에 닿았다. 부드럽고 말캉하면서도 따뜻하고 촉촉한 그 접촉에 엘리어트가 허리를 경직시키는 순간 할짝이는 젖은 소리가 고요해진 방안을 데우며 따뜻해진 콧숨이 귀두 바로 위로 퍼졌다.

"뭐, 뭐, 뭐 하는- 하윽-"

"도와드린다고 했잖아요."

방금 엘리어트의 고간을 핥은 얼굴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만큼 순수한 미소를 지으며 에밀이 엘리어트를 올려다보았다. 열에 달아올라 빨개진 엘리어트의 피부가 사랑스러워, 에밀은 살짝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먹어버리고 싶다.

"그, 그, 그렇게까진 안 도와줘도 괜찮아!"

"으음-"

"하으, 윽... 그만, 에밀... 흐앗..."

이미 늦었다. 살짝 적신 입술을 벌려 엘리어트의 분신을 한 번에 머금은 에밀이 혀를 움직였다. 뜨겁고 축축한 입 안에서 엘리어트의 분신이 부피를 키워가자 에밀이 만족스러운 듯 눈꼬리를 휘며 혀로 부드럽게 기둥을 핥아 올렸다.

"으응-!"

엘리어트가 급히 입을 막았다.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강렬한 자극에 신경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밀어내야 하는데, 그만해야 하는데 몸은 솔직하게도 에밀이 자신의 욕망을 좀 더 위로해주길 원했다. 바들바들 떨리는 손끝이 다리 사이로 고개를 숙인 에밀의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윽, 흐읏... 그... 에밀... 그마... 앗, 아!"

분명히 자신이 내는 목소리인데 이런 소리를 낼 수 있었나 싶을 만큼 야한 신음이 성대를 비집고 혀를 타고 올랐다. 한손은 입을 막고 다른 한 손은 에밀의 머리카락을 쥐며 엘리어트는 혼란스러워했다. 밀어내야 하는데, 본능은 좀 더 좀 더를 외치며 에밀이 다시 자신을 보듬어 주기를 바란다. 목구멍 깊숙한 곳까지 자신의 분신을 삼키고 핥아서 더 기분 좋게 해 주기를 원했다.

에밀의 혀가 기둥을 타고 오르다 귀두 아래쪽을 강렬하게 핥아 올리자 찌릿한 쾌감이 등허리를 달렸다. 저절로 허리에 힘이 들어가며 자기도 모르게 다리가 벌어졌다. 에밀이 엘리어트 모르게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들고 질척해진 선단을 엄지로 부드럽게 비볐다.

"흐읏-"

고개를 들자, 원망과 욕구를 동시에 담은 자색 눈동자가 보였다. 살짝 아랫입술을 깨문 치아가 보이자 에밀은 순간적으로 허리께가 쭈뼛해지는 것 같았다.

"기분 좋아 보이네요."

"흐... 그만... 으응...!"

그만이라고 말하기 무섭게, 에밀이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부드럽고도 강하게 귀두 아래를 쳐올리자 엘리어트가 말을 다 잇지 못하고 에밀의 어깨를 짚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그지없이 금욕적이던 얼굴은 에밀의 손가락이 주는 쾌감에 맥없이 무너진다. 그 순간이 에밀을 황홀하게 했다. 엘리어트가 갈등하는 모습이 더 보고 싶어, 에밀은 다시 손에 힘을 주었다.

타닥, 기둥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며 다시 강하게 움직였다. 엘리어트가 헉 하고 숨을 들이키며 애타게 에밀을 바라보았다.

"윽... 제발... 에밀...!"

"...알았어요."

에밀이 미안하다는 듯 웃으며 엘리어트의 뺨을 어루만졌다. 이제 그만하려나 싶어 엘리어트가 살짝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순간, 에밀이 눈을 반짝이며 말을 이었다.

"좀 더 강한 걸 원하시는 거죠?"

"! 그, 그게 아니- 하윽! 응, 으, 아아응!"

에밀이 빙긋 미소지으며 다시 고개를 내려 한 입에 엘리어트의 것을 삼켰다. 당황한 엘리어트가 에밀의 머리를 잡는 순간 에밀의 입안이 좁아지며 엘리어트의 분신을 압박해왔다. 귀두 끝으로 느껴지는 좁은 목구멍 속 묘한 주름의 감촉에 엘리어트는 그만이라고 말해야 할지 더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게 되었다. 아까보다 더 습기를 머금은 날숨이 맥없이 공기 중에 흩어졌다.

"그... 거기...는! 아... 흑, 안 돼, 아응...!"

억누른 교성이 악문 잇새로 흘렀다. 에밀이 혀로 기둥을 길게 핥아 올리다 귀두 아래를 강하게 누르자 엘리어트의 허리가 다시 움찔거렸다.

솔직해지면 더 귀여울 텐데. 에밀이 입술을 말아 물고 엘리어트의 분신을 강하게 압박해오자 엘리어트가 다시 숨을 몰아쉬며 에밀의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에밀이 귀두 아래와 요도 근처를 핥고 누를 때마다 짜르르한 쾌감이 엉덩이와 허리를 울렸다.

이제 아니라고 할 수도 없었다. 엘리어트의 몸은 더 많은 쾌락을 원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닌 에밀이 자신을 이 쾌락의 끝으로 데려가주길 원한다.

"흐응, 에... 밀...!"

어느새 엘리어트의 손이 에밀의 뒤통수를 감싸 안고 더 깊게 삼켜달라는 듯 끌어당기고 있었다. 한껏 벌린 하얀 허벅지 사이로 에밀의 코가 음모에 닿자 엘리어트가 몽롱하게 중얼거렸다.

"하, 아... 응, 거기... 깊게... 아, 읏... 기분, 좋아..!"

"으음..."

에밀이 목을 울리며 단단한 입천장으로 엘리어트의 귀두를 압박하자 엘리어트가 다시 신음을 내지르며 허리를 움찔했다. 그러나 에밀은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목을 움직였다. 눈앞으로 별이 튀며 엘리어트가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왠지 갈증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런 건, 싫어. 좀 더, 좀 더 강한 것을-

"하아읏!"

엘리어트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에밀이 야무지게 말아 문 입술을 강하게 앞뒤로 움직였다. 엘리어트가 바르작대며 몸을 젖히는 순간 에밀이 재빨리 다시 목을 움직이자 엘리어트가 살짝 떨리는 손끝으로 에밀의 머리와 어깨를 밀어내려 용을 썼다. 어차피 힘은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았지만.

"자, 잠깐, 아... 나, 나올 것 같... 하윽! 아, 아아!"

츱, 하고 젖은 소리가 울리며 에밀이 다시 혀끝으로 세게 요도를 눌렀다. 점점 고조되던 쾌감이 강렬하게 뇌를 치며 엘리어트의 허리가 뻣뻣해졌다.

"아... 흑...!"

입안이 끈적하게 젖어오며 비강으로 어딘지 익숙한 밤꽃 향기가 확 끼쳐 오자 에밀이 조심스럽게 숨을 고르며 살짝 눈동자를 굴려 엘리어트를 올려다보았다. 약간 찡그린 미간과 살짝 깨문 아랫입술,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관능적인 눈빛이 방금 맛본 쾌락으로 얼룩져 깜짝 놀랄 만큼 음란해 보였다.

에밀이 천천히 혀와 입술로 분신을 훑으며 고개를 들었다. 목구멍 안쪽에 들러붙은 정액은 꽤 쌓였던 건지 진하고 끈적거렸다. 삼켜버릴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면 엘리어트가 정말 괴로워할 것 같아서 에밀은 엘리어트의 몸을 닦던 수건으로 입을 닦았다. 진득하게 입술에서 이어진 하얀 액체가 이상할 만큼 야했다.

"어때요? 좀 괜찮아졌어요?"

목소리만 듣는다면 마치 오늘 점심이 맛있었냐고 묻는 것 같다. 나른한 열감에 침대에 널브러진 엘리어트가 멍한 눈을 들어 에밀을 올려다보다 퍼뜩 정신이 들었다. 아직 엘리어트는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다. 엘리어트가 허둥지둥 무릎을 당겨 끌어안으며 빨개진 얼굴로 삿대질을 했다.

"너, 너, 너-"

"꽤 양이 많던데, 쌓아두면 병나요."

"그, 그런 건 또 어디서-"

"기분 좋았어요?"

에밀이 진지하게 물으며 엘리어트 앞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와 잔잔한 초록색 눈이 지금 에밀이 그지없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엘리어트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니까, 그게..."

"아니면, 기분 좋아질 때까지 한 번 더-"

"기, 기분 좋았어! 좋았으니까!"

에밀이 이렇게 심각한 얼굴이라면 절대 농담이 아닐 것이다. 엘리어트가 에밀의 입을 막으며 마구 고개를 끄덕이자, 에밀이 생긋 웃으며 자기 입을 막았던 엘리어트의 손을 잡아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기뻐요."

엘리어트가 멍하니 해사하게 웃는 미소를 바라보았다. 그저 엘리어트를 기분 좋게 했다는 것이 기쁜 듯한 부드러운 얼굴에 엘리어트가 살짝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사실은, 엘리어트도 기분 좋았다. 자신이 욕정하는 단 한 명인데, 그가 무엇을 한들 기분 좋지 않을 리가 없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에밀이 한마디 덧붙였다.

"다음에도, 기분 좋게 해 드릴게요."

"응. ...응?"

"리트가 좋아하는 곳이 어딘지 알았으니까, 다음엔 더 잘 할 수 있어요."

"자, 잠깐만."

"쌓아두면 좋지 않지만, 지금은 몸도 아프시잖아요. 설마 혼자 해결하실 생각은 아니시죠?"

엘리어트의 얼굴이 다시 빨개졌다. 이대로는 안 된다. 뭔가 항변하기 위해 엘리어트가 입을 여는데 에밀이 타이밍 좋게 선수를 쳤다.

"명색이 왕세자인데 욕구를 혼자서 해결하다니 말도 안 돼요. 앞으로는 제가 도와드릴게요."

아니, 말 되거든! 지적할 곳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할 말이 없었다. 엘리어트가 멍하니 입만 뻐끔대고 있는 동안 에밀이 새 수건을 적시며 쐐기를 박았다.

"그럼 마저 닦아드릴게요. 팔 주세요."

멍하니 자신의 팔다리를 부드럽게 닦아내는 수건을 느끼며, 엘리어트는 왠지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꼈다. 분명 뭔가 잘못됐다. 잘못됐다는 건 아는데,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알 수가 없었다.

방금 사정해서 나른해진 몸은 깊게 생각하기엔 너무 피곤했고 머리는 너무 무거워서, 엘리어트는 결국 에밀이 몸을 다 닦아내기도 전에 잠이 들고 말았다.

엘리어트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밤이 늦은 시간이었다. 멍한 머리로 눈을 깜박이다 좀 더 자기로 마음먹고 살짝 몸을 비틀었다. 오랫동안 누워 있었던 건지 허리가 뻐근했다.

배의 상처가 아프지 않도록 조심하며 옆으로 돌아누운 엘리어트가 낮게 한숨을 내쉬었다.

에밀이 닦아준 것이 효과가 있었던 모양인지 몸이 개운했다. 살짝 웃으며 나른하게 눈을 감은 엘리어트는 왠지 모를 위화감에 다시 눈을 떴다.

시트의 모양이 이상하게 불룩해져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물론 엘리어트 혼자 눕기엔 충분히 큰 침대여서 불편한 부분은 없지만, 감히 왕세자의 침대에 허락도 없이 들어올 만큼 간이 큰 위인이 누군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딱 한 명 있긴 했다.

엘리어트가 침을 꿀꺽 삼키며 시트를 살짝 들추었다. 손길을 따라 걷어지는 엘리어트의 손길이 엷게 떨렸다. 시트 안, 붉은 고수머리의 끝이 보이자 엘리어트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몰라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창으로 비쳐드는 달빛에 희미하나마 오밀조밀한 이목구비가 빛났다. 눈을 꼭 감은 채 단잠에 빠진 그 얼굴을 바라보며, 엘리어트는 못 말리겠다는 듯 피식 웃었다.

엘리어트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리려다 같이 잠이 든 모양이었다. 왜 침대 안으로 들어와 있는지는 의문이긴 하지만 그거야 일어나서 물어봐도 늦지 않다. 지금은 그저 에밀의 얼굴을 마음껏 바라보고 싶었다.

단정하게 감긴 눈을 바라보다, 엘리어트는 피식 미소를 지었다. 어렸을 때도 그는 에밀의 자는 얼굴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형아, 나 잠 와...'

어른들이 일로 바쁜 동안 둘은 자주 만나 함께 놀거나 간식을 먹거나 책을 읽었다. 간식을 먹고 나면 에밀은 꼭 낮잠을 잤다. 마치 맞춘 것처럼 그 시간만 되면 눈을 깜박이는 게 귀여워서, 엘리어트는 에밀이 낮잠을 자는 동안 곁에서 그 얼굴을 지켜보다 함께 잠이 들곤 했다.

'다 먹어도 된다.'

'정말?'

'음, 난 배부르니까.'

'형아가 제일 좋아!'

제 몫의 간식을 다 먹곤 엘리어트의 몫을 노리던 초록색 눈동자. 몇 번이나 자기 몫의 간식을 양보했어도, 엘리어트는 아깝지 않았다. 에밀이 행복해하며 입가에 크림을 묻히고 자신에게 지어 주는 미소로도 혀끝이 달았다.

그렇게도 어렸던 에밀이, 지금은 자신과 같은 침대에 누워 있다. 여전히 아름답고, 여전히 빛나고, 여전히 소중한 단 하나뿐인 연인.

엘리어트가 살짝 손을 내밀어 에밀의 조금 벌린 입술을 엄지로 쓸었다. 탄력 있는 붉은 입술이 손가락을 밀어내는 감촉이 기분 좋았다. 엘리어트가 경계심 없는 부드러운 얼굴로 에밀에게 조금 다가갔다. 깨지 않도록 손을 내밀어 에밀의 머리를 끌어안아 본다. 턱 아래 느껴지는 보드라운 곱슬머리가 어쩐지 꿈결 같았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자신의 것이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연인이 자신의 품에서 잠들어 있었다.

엘리어트가 기분 좋은 한숨을 내쉬며 에밀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따뜻하게 전해지는 체온이 사랑스러웠다. 엘리어트가 빙그레 웃었다.

언제까지나 함께. 이전에도,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사랑해."

엘리어트가 안타까울 만큼 절절한 진심을 담아 속삭였다. 에밀이 잠에 빠진 이상 듣지 못할 것이 분명할 텐데도, 엘리어트는 외치고 싶었다. 지금 이 순간 가슴 속에 차오르는 뜨거운 만족을 어떻게든 분출하고 싶었다.

"사랑해. ...에밀."

조심스럽게 에밀의 머리를 끌어안은 팔에 힘을 주자 가슴에 순순히 안겨드는 보드라운 머리카락에서 좋은 향기가 났다.

"...리트..."

"?!"

엘리어트가 흠칫 놀라며 팔에 힘을 풀었다. 아래를 내려다보자, 반쯤 풀린 눈의 에밀이 엘리어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깨, 깼어?"

"......"

멍한 초록색 눈동자가 엘리어트를 담았다. 아무 말 없이 엘리어트를 빤히 바라보던 에밀이 눈을 깜박이다 입맛을 다셨다.

"...리트."

"응?"

입술을 핥는 혀가 왠지 탐욕스러웠다. 엘리어트는 왠지 당황스러워져서 에밀을 살짝 밀어내며 난처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거 어쩐다. 에밀이 눈을 뜨긴 했는데, 왠지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다.

"...싶어..."

엘리어트는 자기가 잘못 들었나 싶어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 얼굴을 본 에밀의 표정이 어딘지 모르게 살짝 달라졌다. 아니, 엄밀히 말하자면 표정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왠지 눈빛이-

"...먹고 싶어."

"뭐...?"

엘리어트가 다시 묻는 순간, 에밀의 팔이 강하게 그의 허리를 휘어감아 왔다. 상처가 찡 하고 울려왔지만 엘리어트는 상처에 대한 것보다 목덜미에 뿜어지는 더운 콧숨에 더 당황했다.

"앗, 아, 아파, 에밀!"

"...냠."

"으앗!"

에밀이 입을 벌리더니 하얀 목덜미를 한 입에 물어왔다. 단단한 치아가 부드러운 살갗을 파고들자, 엘리어트는 완전히 당황한 얼굴로 에밀을 밀어내려 했다. 그러나 상처 때문에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는 저항은 에밀을 어설프게 자극시킨 것 같았다.

"하윽!"

목덜미를 깍 깨문 치아는 그대로 그 자리에 박혀 맛있는 것을 빨듯 엘리어트의 살갗을 빨아들였다. 에밀의 입 안에서 느껴지는 혀의 움직임이 너무 적나라해서 엘리어트는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혼란스러워졌다. 무엇보다도, 자다 깨서 제일 먼저 하는 게 왜 엘리어트의 목덜미를 무는 것이어야 하는지 당최 이해가 가질 않는다!

"에...밀!"

"...맛있어..."

틀렸다. 이건 이미 틀렸어. 완전히 맛이 갔다. 멍하게 풀린 에밀의 눈은 여전했지만 허리를 감은 팔은 강하게 엘리어트를 압박하고 있었다. 상처가 벌어지지는 않을 정도지만 딱 맞닿은 허리와 얽힌 다리가 신경 쓰였다.

"리트... 맛있어..."

"먹는 게 아니... 아얏..."

에밀이 이번에는 쇄골로 입술을 내렸다. 여린 피부를 입안으로 빨아들여 살짝 깨물거나 첩첩 소리를 내며 핥는 것이 정말 맛있는 사탕이라도 먹는 것 같았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왠지 그의 손길에서 뭔가 위험한 냄새가 났다.

본능적으로 엘리어트의 머릿속에서 누군가가 외쳤다. 벗어나야 해!

"리트... 으응..."

에밀이 꼼지락대며 엘리어트의 쇄골에 코를 비볐다. 평소라면 커다란 대형견 같다고 생각했겠지만 지금은 밤이고, 같은 침대에 누워있는데다, 무엇보다도 엘리어트를 맛있어하는 대형견이라니 꿈에서라도 절대 사절이었다!

"에밀, 착하지... 이제 그... 그만..."

"우우응..."

에밀이 애교스러운 콧소리를 내며 엘리어트를 좀 더 가까이 끌어안았다. 그 순간 엘리어트의 허리가 뻣뻣해졌다. 얇은 나이트가운 너머로 느껴지는 열기는, 그러니까, 그게-

"...리트..."

에밀의 목소리가 끈적해졌다. 약간 두려워진 눈으로 에밀을 바라보자, 에밀이 여전히 멍하면서도 그윽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좋아해. 좋아해..."

"웃..."

에밀이 허리를 움직였다. 느릿하고 여유롭게 엘리어트의 하체에 문질러지는 에밀의 중심은 얇은 옷감 너머로도 알 수 있을 만큼 뜨겁고 단단했다. 마치 교합할 때처럼 에밀의 허리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앞뒤로 흔들렸다.

"에, 에밀, 잠시만..."

"하아... 리트..."

"웃...!"

에밀이 엘리어트를 끌어안으며 그의 목덜미를 핥았다. 깜짝 놀란 엘리어트가 그를 밀어내려 했지만 에밀의 허리는 점점 농염하고 빈틈없이 엘리어트에게 비벼져 왔다. 에밀의 얼굴이 열기를 띠며 색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좋아... 좋아해, 리트... 하..."

나긋하게 속삭이는 고백에 섞여 한숨 같은 신음이 잇새로 흘렀다. 에밀의 하체가 엘리어트의 아랫배에 비벼지며 에밀이 괴로운 듯 엘리어트의 목덜미를 다시 물었다.

"아얏...!"

"으응... 리트... 뜨거워..."

아니, 뜨거운 건 넌데요! 엘리어트가 속으로 비명을 지르며 에밀의 어깨를 잡자 에밀이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엘리어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멍한 동공 안에 욕망만은 활활 타오르는 눈이 왠지 위험하게 느껴져서 엘리어트가 고개를 돌리려는 순간, 에밀이 엘리어트의 어깨를 잡아 누르더니 그 위로 순식간에 타고 올랐다.

"에, 에밀?"

"...리트... 좋아..."

"정신 차려!"

한 번도 본 적 없는 에밀의 나사 빠진 모습에 엘리어트는 살짝 두려움마저 느끼기 시작했다. 이거 혹시 몽유병 같은 건가? 아니면 그냥 단순히 잠꼬대인 걸까?

엘리어트의 떨리는 두 눈을 응시하면서도 에밀은 아직 잠이 덜 깬 것 같았다. 천천히 엘리어트에게 입을 맞추며, 에밀이 속삭였다.

"...내 거야."

"!"

"내 거야... 아무한테도 안 줘."

강렬한 소유욕이 더운 숨으로 느껴졌다. 에밀이 탐욕스럽게 엘리어트의 입술을 빨더니 고개를 내려 엘리어트의 하얀 목을 다시 물었다. 이미 울긋불긋해진 목덜미와 쇄골에 새로운 꽃잎이 새겨졌다.

"읏... 에밀..."

"내 거..."

에밀의 혀가 뜨겁게 엘리어트의 쇄골을 핥더니 가운 사이로 에밀의 손이 들어왔다. 엘리어트가 흠칫 몸을 떨자 에밀이 낮게 중얼거리며 가슴을 쓸었다. 손가락 끝으로 작은 유두가 걸리자 에밀이 다시 고개를 내리며 가운 사이로 입술을 박았다.

"아...하윽...!"

"츱..."

젖은 소리가 나며 부드러운 살덩이가 유두를 밀어냈다. 빙글빙글 돌리고, 누르고, 밀었다가 살짝 깨물며 붉은 과실을 쉬지 않고 맛본다. 그럴 때마다 엘리어트는 신음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입을 막고 몸을 떨었다. 낮에 느꼈던 것과 비슷한 쾌락이 스물스물 등허리를 타고 올랐다.

"아...응...!"

"맛있어... 리트."

"아, 알았으니까 그만... 읏..."

"좋아..."

에밀이 다른 쪽 손으로 엘리어트의 가슴을 더듬었다. 엘리어트가 헉, 하고 숨을 몰아쉬며 에밀의 손목을 잡았다. 멍한 표정의 에밀이 잡힌 손목을 바라보더니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리트..."

흐리멍덩해진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가운이 풀어헤쳐진 하얀 날가슴을 드러내고 자신의 밑에 누워 있는 엘리어트를 내려다보던 에밀이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맛있겠다..."

엘리어트가 숨을 몰아쉬었다. 갑작스럽게 이 모든 상황이 이해되었다. 에밀은 지금 잠에서 덜 깬 채다. 아마 이 상황을 기억하지도 못할 테고, 기억한다 해도 꿈이라고 생각할 것이 뻔했다.

그러니까, 에밀은 지금 진심이었다.

그래, 그건 정말 고맙긴 한데.

엘리어트는 엄청난 갈등을 겪으며 고민에 빠졌다. 에밀에게 약하긴 하지만 엘리어트 역시 암살이 난무하는 왕궁에서 살아남은 만큼, 호신술이라면 자신 있었다. 배의 상처쯤 신경 쓰지 않는다면 잠에 절어 있는 에밀을 기절시키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아마 에밀도 잠에서 깨면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한동안 뒷목이 뻐근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엘리어트의 정조(?)가 위험했다는 걸 설명하면 이해하지 못할 에밀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리트... 좋아해..."

잠이 덕지덕지 붙은 눈을 해 놓고도 리트를 좋아한다고 속삭이는 목소리에는 욕망이 진득하게 묻어 있었다. 탐욕스레 엘리어트를 원하는 그 얼굴이 사랑스러워서, 엘리어트는 에밀의 뒷목에 손날치기를 날리는 대신 조심스럽게 그의 얼굴에 손을 대었다.

엘리어트의 손이 닿자, 에밀이 스르르 눈을 감는다. 그대로 엘리어트의 손길을 느끼며, 에밀이 미소를 지었다. 만족스러운 것 같기도 하고, 아직 부족한 것 같기도 한 미묘한 미소였지만 에밀은 몇 번 고개를 끄덕이다 그대로 엘리어트의 위로 엎어졌다.

"윽...!"

상처가 살짝 벌어진 것 같다. 뱃속을 찡하게 울려오는 고통이 조금 가라앉고 나자, 엘리어트는 자신 위에 누워버린 에밀의 표정을 살폈다.

얌전히 감긴 두 눈과 규칙적인 숨소리로 보아, 잠든 것 같다.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잠시 숨을 죽이고 에밀의 동태를 살폈다. 한참이 지나도 에밀이 움직이지 않자 그제야 발끝까지 퍼져 있던 긴장이 풀렸다.

뭔가 분명히 잘못되었다. 뭔지는 모르지만.

하지만 이제 아무렴 어떠냐는 생각이 들었다. 자다 일어나서 목덜미에 온통 자기의 흔적을 새길 만큼, 에밀이 엘리어트를 사랑한다는데. 결국 엘리어트는 에밀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어릴 때부터 골백 번도 더 했던 생각을 되풀이하며, 엘리어트가 낮게 한숨을 쉬곤 에밀의 어깨를 다독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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