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해가 기울어지는 노을녘이었다. 소년들이 올라가 앉은 나무 위로, 바람이 날카롭게 이마를 핥던 가을.
'18살이 되면, 내 반려가 되어 줄래?'
반짝이는 보랏빛 눈동자는 노을의 황금빛에 젖어 신비롭게 빛나고 있었다.
'반려가 뭐예요?'
'음, 평생 함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야. 죽을 때까지.'
호기심 어린 초록색 눈이 금세 환해지며 붉은 고수머리가 위아래로 흔들렸다.
'좋아요!'
해사한 미소를 마주보는 보랏빛 눈에 살짝 긴장이 감돌았다. 조금 붉어진 볼과는 달리 단호한 목소리가 붉게 물든 입술에서 새어나온다.
'그럼 맹세의 키스를 해야 해.'
'어떻게 하는 건데요?'
'눈, 감아봐.'
초록색 눈동자가 일말의 의심조차 없이 감겨졌다. 자신을 향한 입술이 유난히 눈에 들어와 자기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켰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하얀 손이 뺨을 감싼다. 참을성 있게 자신을 기다리는 사랑스러운 입술에 머뭇머뭇 또 다른 입술이 포개졌다.
-라는, 꿈을 꿨다.
"......"
멍하니 눈을 깜박였다.
매일 아침 보는 익숙한 무늬의 천장이 시야 가득히 들어왔다. 멍하니 졸음이 덜 가신 눈을 깜박이다, 무언가 중요한 것을 깨달은 듯 아랫입술을 깨문다.
아주 어릴 적의 꿈을 꿨다. 가장 달콤하고 반짝거리던, 어린 날의 '꿈'.
그의 손이 머리카락을 신경질적으로 헝클었다. 신비로운 보랏빛 눈동자와 잘 어울리는 잿빛 머리카락이 아무렇게나 흩어졌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의 이름은, 엘리어트 샤를리 디날.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영광스런 해상 무역 왕국 디날을 물려받게 될 유일한 왕세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