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드래곤의 땅
아델 강은 대륙의 허리께쯤에서 시작해 바다로 흘러드는 거대한 강으로, 대지의 여신 로요라의 젖줄로 불린다. 까마득히 오랜 역사를 요요히 흐르며 그 깊은 바닥에서 키워낸 수많은 물의 생명들은 그대로 역사가 되어 강 하구에 쌓였다. 모래뿐이던 삼각주에는 나무의 새싹이나 새들이 싼 똥에서 발아한 풀씨들이 정착하고 자라나기 시작했다.
아주 오랜 세월이 흘러 삼각주는 더 이상 삼각주가 아니게 되었다. 그것은 이미 하나의 섬이고 평야였으며, 매우 규모가 작기는 했지만 숲과 샘도 생겨났다. 사람들은 그것에 로요라의 아들 라퓨타의 이름을 붙였다. 삼각주는 더 이상 삼각주가 아닌, 라퓨타가 되었다.
라퓨타가 섬으로 공식 발표되었을 때, 리코 에니슨이라는 어느 부유한 대상인이 무슨 생각인지 섬을 통째로 사들였다. 그는 라퓨타의 첫 소유주가 되었다.
그리고 그 이듬해, 아델 강 하구의 사람들은 해수면 가까이를 스치듯 날아가는 생물을 발견했다.
드래곤.
그리고 델토르와 디날의 본격적인 경쟁이 시작되었다.
드래곤은 날카로운 발톱과 무시무시한 어금니 외에도 중력을 거스르는 날개와 비상한 두뇌를 가졌다. 전쟁에서 드래곤은 가장 강력하고 가장 잔인한 살상 병기였다.
그러는 한편 주인으로서 각인이 되면 수족처럼 움직이며 주인의 의지라면 무엇이든 따르는 심복이 된다. 주인의 말만 듣기 때문에 드래곤을 부리는 기사들은 드래고니안이라고 불리며 특별 대접을 받았다.
지금은 라퓨타 조정 위원회가 있어 정기적인 협상을 통해 평화를 유지하고는 있지만, 라퓨타- 이 저주받은 축복의 대지는 지금 델토르와 디날 사이 국경에 위치해 두 나라의 분쟁을 조장하고 있는 것이다.
"알겠네. 내 엘페소 경을 봐서 특별히 노력해 보도록 하지."
"감읍합니다, 폐하."
엘페소 경이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비안테 공작이 한시름 놨다는 듯 엘페소 경을 향해 감사의 눈짓을 보냈다.
"원래 일정대로라면 다음 주에 델토르-디날 협정 공식 원정이 있습니다. 원정은 길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드래곤을 다루는 방법에 대해서는 숙지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흐음."
제르멘이 생각에 잠겼다. 현재 라퓨타는 델토르와 디날의 협정 하에 아슬아슬한 공국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다. 처음 드래곤이 발견되었을 때 리코는 엄청나게 돈을 벌었지만 곧 드래곤들이 까다롭고 포악하다는 것이 밝혀지자 대륙에서는 라퓨타에 공국의 이름을 달아 관리하도록 했다.
드래곤의 주인이 된다면 평생 드래곤의 반려로서 살아가는 영광을 얻게 되지만, 드래곤 자체가 매우 도도하며 까탈스러울 정도로 긍지가 높아 다루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그 발톱 앞에는 국왕이든 왕자든 똑같았다. 거드름을 피우다 그 발톱 앞에서 허겁지겁 도망간 귀족 자제들도 많았다.
"...알겠다. 그럼 내일부터 시작하도록."
"예, 폐하!"
비안테 공작의 목소리가 오랜만에 밝게 들렸다. 그리고 그 안에는 어쩐지-약간의 복수심이 슬쩍 묻어났다.
"...해서, 드래고니안이 되는 방법은 단 하나, 드래곤이 인정하는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해하셨습니까?"
"...까다롭군."
반쯤 초점을 잃은 벽안이 지루한 듯 멍했다. 조용한 서재, 느긋한 오후, 게다가 주문을 외듯 낮고 단조로운 목소리는 확실히 집중하기 힘든 환경이었다.
"드래고니안은 확실히 우리 델토르에도, 디날에도 중요한 병력이지만 아직 주인을 정하지 않은 드래곤만 해도 백여 마리 정도 됩니다. 현재 드래고니안으로 등록된 대륙인은 대략 오십여 명 정도로, 델토르의 드래고니안은 열세 명이 고작이랍니다."
"확실히 엄청 까다롭겠군. 발로아, 이것 좀 봐. 자네의 검 따윈 이쑤시개로 쑤시는 것 같겠어."
나른한 제르멘의 목소리에 이아네는 웃음을 참느라 혀를 깨물어야 했다.
드래곤의 생리와 라퓨타에 대해 가르치고 있던 내무부 대신 타레사 경은 억지로 제르멘의 말을 못 들은 척 말을 이어 갔다.
"42년 전, 밀라레 선왕 폐하의 조카뻘 되는 바르디니 공작이 새끼 드래곤을 억지로 타려다 목뼈가 부러졌습니다. 드래곤은 영리하기 때문에 그전서부터 함부로 각인하려다 죽는 사람이 너무 많아 결국 그 일을 계기로 드래곤 관리국이 세워졌지요. 라퓨타 내의 드래곤을 돌보고 관리하는 것 뿐 아니라 드래고니안의 등록도 그곳에서 이루어집니다. 무허가 드래고니안이 가끔 있다고는 합니다만, 적발 시 즉결처분이 원칙이라고 합니다."
제르멘이 생각에 잠긴 듯 뺨을 톡톡 쳤다. 그리고 오늘 저녁 식사 메뉴를 정하듯 간단하게 결론을 내렸다.
"거기로 가면 드래곤을 볼 수 있겠군."
"예. 하지만 폐하께서 가실 일은 없으실 겁니다."
"그럼 가 보도록 할까."
"네, 그럼 다음... 예?!"
이아네는 자신이 뭔가 잘못 들었나 했다. 타레사 경도 자신이 제발 잘못 들었길 바라는 마음으로 제르멘을 응시했다. 그러나 제르멘은 느긋하게 이아네를 돌아보며 빙긋 웃었다.
"라이오넬과 함께라면 안전하잖나."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타레사 경의 얼굴은 분명 그렇게 말하고 있었으나, 제르멘은 그에게 망설임 없이 폭탄을 던졌다.
"내 충직한 기사들이라면 믿을 수 있지."
발끝부터 저릿해오는 행복감에 이아네는 숨을 몰아쉬었다. 폐 깊숙이 무언가가 꽉 차오른다. 제르멘의 신뢰는 자기도 모르게 미소가 흐를 정도로 짜릿했다.
겨우 숨을 들이쉰 타레사 경이 필사적으로 말을 이었다.
"마, 말도 안 됩니다!"
타레사 경의 눈이 울 것 같았다. 안 돼, 나 비안테 공한테 혼난단 말야!
"라퓨타에 기사단을 데려간다면 그것은 명백히 적의로 간주됩니다! 게다가 드래곤은 변덕스러운 동물입니다. 흥분하면 무슨 짓을 할 지 모르니 부디 그것만은..."
"그럼 발로아와 칼릭 경만 데려가면 되겠군. 아무리 드래곤이 포악하다고 해도 한 번쯤 둘러보는 정도는 괜찮겠지. 그 건도 함께 준비하라고 이르도록."
제르멘의 천사 같은 미소를 바라보며 타레사 경은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결국 비안테 공작의 심정을 이해하고 말았다.
서재를 나와 침실로 돌아가면서 제르멘은 오늘 저녁 메뉴는 뭔지에 대해 몇 마디 잡담을 늘어놓았다. 그러나 이아네는 시종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침실 가까이 가서야 겨우 입을 떼었다.
"...꼭...가셔야 합니까?"
"응?"
대신이며 재상이며 장군들을 한 달 동안 잠도 못 잘 정도의 격무로 굴려 놓고서 국왕이라는 인간은 참도 태연했다. 전혀 걱정이 서리지 않은 천진하고 아름다운 얼굴을 바라보다 이아네는 한숨을 내쉬었다.
"너무 위험합니다."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작은 코끼리만한 육중한 덩치와 어린아이 키만 한 어금니. 펼치면 주위가 어두워지는 넓은 날개, 사람 한둘은 우습게 찢어발기는 강인한 발톱. 혹시라도 드래곤의 심기를 거슬러 제르멘이 그 발톱에 꿰뚫리기라도 한다면? 이아네는 그냥 혀 깨물고 그 자리에서 죽어버릴지도 몰랐다.
"아아...괜찮아. 뭐, 여차하면 안이 도와줄 테니까."
"제롬, 신뢰는 감사하지만 그걸 말하려는 게 아닙니다."
"나도 알아, 안."
제르멘이 부드럽게 웃으며 이아네의 턱을 꾹 잡았다 뗐다.
강인한 손길에 나른하게 풀어지는 한숨을 눌러 참으며 이아네가 엄하게 말했다.
"어물쩍 넘어가지 마세요."
"쳇, 들켰나."
제르멘이 재미없다는 듯 입술을 비죽 내밀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이아네는 묻고 싶었다. 난 당신과 무슨 사이죠, 제롬?
"드래곤을 막을 순 없겠지만 넌 목숨을 걸고 내가 도망갈 시간을 벌겠지."
"......"
반박할 수 없었다.
"난 분별력 있게 행동할 거고, 억지로 드래곤에게 각인하지도 않을 거야. 약속할게."
말이라도 못하면. 이아네가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에 섞인 체념의 의미를 재빨리 알아차린 제르멘이 킥킥대며 이아네를 뒤에서 끌어안아 드러난 목덜미에 입을 맞추었다.
"제롬!"
이아네가 새치름히 눈을 뜨자 제르멘이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진지하게 이아네에게 속삭인 뒤 그 동그란 귀를 살짝 깨물었다.
"아무도 다치지 않을 거야, 안. 그러니 지금은 나만 생각해."
제르멘의 손이 옷자락을 들춘다. 화들짝 놀라는 이아네를 강하게 끌어안고서 제르멘이 제 허리를 이아네의 등허리에 바짝 붙였다.
"하, 안... 대체 어떻게 해야, 내가 네 앞에서 태연할 수 있을까?"
"윽, 그, 그만..."
"너무 늦었어, 안. 나와 단둘일 때부터 이 정도는 예측했어야지?"
낮은 신음과 함께 제르멘의 손이 이아네의 손목을 잡아 제 샅으로 가져갔다. 난데없이 손에 닿아온 열기에 순간 흠칫 손을 오므린다.
"자, 잠깐만요, 제롬..."
"왜...?"
대답과 함께 뜨거운 한숨이 이아네의 귓가를 데웠다. 흠칫 허리를 떨며 이아네가 손을 빼려 하지만 제르멘은 집요하게 이아네를 옭아 왔다.
"왜 그래, 안?"
"제롬, 이건..."
어쩔 줄 모르는 이아네가 귀엽긴 하지만 제르멘이 바라는 건 그것이 아니었다. 살짝 미간을 찌푸린 제르멘이 다시 달콤하게 속삭였다.
"부끄러운가?"
"...네..."
작게 울리는 목소리. 풋, 하고 살짝 웃은 제르멘이 이아네의 앞섶으로 손을 가져가 우악스레 남성을 쥐었다.
"하악-"
"이것 봐, 난 널 만질 수 있어. 난 네가 즐겁다면 뭐든 해줄 수 있는데, 안은 아닌가 보네."
"앗, 하으... 그, 그게 아니라..."
"아니라면, 뭔데? 사실 안은 나랑 이러는 게 싫어?"
제르멘의 목소리에 힘이 꺾인다. 이아네가 소스라치게 놀라 뒤를 돌아보자 살짝 슬픔을 담은 푸른 눈동자가 이아네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아,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말아주세요.
"아니...아닙니다."
"어떻게 믿지, 그걸? 사실 날 만지는 것이 싫은 게 아니었나?"
"아닙니다!"
자기도 모르게 큰소리가 나와 버렸다.
어떻게 싫을 수가 있을까. 반짝이는 실버 블론드와 하얀 피부, 부드럽게 일렁이는 푸른 눈까지 모두가 사랑스러워 미칠 지경인데 어떻게 그를 거부한단 말인가!
이아네는 자기도 모르게 허리를 놓으려는 제르멘의 팔을 붙잡았다. 필사적으로 붙잡은 손끝이 하얗다. 제르멘이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자 이아네는 눈물마저 글썽한 눈으로 제르멘을 바라보며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그게, 아닙니다... 그게 아니에요. 그냥, 제롬을 만지면... 너무 기분 좋아서, 내가 아닌 것 같아서... 조금... 무서워서..."
"...바보구나, 안. 난 널 해치지 않아. 그건 당연한 거잖아."
제르멘이 이아네를 토닥이며 끌어안았다. 이번에는 쉽게 끌어안긴 이아네가 뺨을 비비며 제르멘에게 매달려 온다. 아랫도리가 불끈하는 느낌에 제르멘은 얕은 한숨을 내쉬고 이아네의 머리통을 쓰다듬었다. 이아네가 진정된 후에도 그 손은 오래도록 이아네의 머리카락 위를 떠나지 않았다.
"...제롬?"
"...미안해, 안. 정말 못 참겠어."
정말 미안하다는 듯 배시시 웃으며 이아네의 머리를 눌렀다. 갑작스런 압력에 자연스레 무릎을 꿇은 이아네가 의아한 눈으로 제르멘을 올려다보았다. 제르멘이 귀엽다는 듯 이아네의 턱을 쓰다듬더니 갑작스레 정복 바지의 벨트를 풀었다.
"?! 제, 제롬?"
"하아, 미안...하지만, 입으로..."
초록색 눈동자에 경악이 감돌았다.
아아, 어쩌면 너는 놀라는 것도 이리 사랑스러운지. 킥킥대면서도 제르멘은 착실하게 풀어진 앞섶에서 자신의 남성을 꺼내 이아네의 코앞에 들이밀었다. 귀두 끝에 살짝 스친 코끝이 짜릿하다.
"제... 제롬..."
서로의 것을 만진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눈앞에서 보기는 처음이었다. 적당한 색소와 쭉 뻗은 모양새가 잘 생기긴 했지만 그 물건은, 그러니까, 이건...
"부탁해, 안..."
제르멘의 목소리에 갈증이 섞여 있었다. 조금 망설이던 이아네가 눈을 질끈 감고서 입을 살짝 벌렸다.
잇새로 보이는 젖은 혀에, 참을 수 없어진 제르멘이 붉은 동굴을 향해 허리를 밀었다.
순식간에 입안을 가득 채워오는 콤콤한 향기. 살짝 기침을 하면서 입안의 물건이 다치지 않도록 입술을 말아 물었다. 처음에는 건조하던 표피가 이아네의 타액으로 젖어갔다.
"음, 좀 더 깊이..."
제르멘의 손이 부드럽게 이아네의 뒤통수를 눌러 왔다. 귀두가 목젖에 닿는 것이 느껴지고 이아네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입을 더 벌렸다. 목젖을 눌러와 순간 숨이 막힌 이아네가 힘겹게 침을 삼키자 꼴깍 목구멍이 요동치며 물건을 조여 왔다.
"윽-"
제르멘의 깨끗한 이마에 살짝 주름이 갔다.
작은 신음에 살짝 눈을 치켜뜨고 제르멘을 바라본 이아네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야한 얼굴을 한 왕을 보고서 조금 흥분해 버렸다.
조금 익숙해지자 이아네는 혀를 움직였다. 입 바깥에 조금 남은 기둥을 혀를 내밀어 뿌리부터 쓸어내며 일부러 목구멍을 조여 귀두에 압박을 가하자 큭, 하며 제르멘이 허리를 튕겼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았다. 적당한 습기와 찰진 입술은 빈틈없이 꼭꼭 물건을 물어 오며 압박을 가했고 젖은 페니스를 따라 느껴지는 말캉한 혀가 정말 죽여주게 좋았다.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흘리며 제르멘이 이아네의 머리카락 사이로 손가락을 찔러 넣어 두피를 강하게 움켜잡았다. 제르멘이 흥분한 것을 눈치챈 이아네가 입술을 말아 물고 성기를 살짝 물었다. 그 발끝 저릿한 압박감에 제르멘은 결국 이를 악물었다.
"하아, 안... 윽, 이, 요부 같으니..."
"?! 읍-"
이아네가 놀라 고개를 들려는 순간 제르멘이 이아네의 뒤통수를 강하게 잡아당겼다. 순식간에 샅에 얼굴이 처박힌 이아네가 숨을 고를 새도 없이 코끝이 기둥 끝 가칠한 음모에 파묻힌다.
"으음...! 흐으읍-"
"큭...하, 아, 좋아, 안-"
정말 섹스를 하는 것처럼 제르멘이 허리를 앞뒤로 흔들며 이아네의 머리를 잡아당긴다.
일정한 리듬을 따라 목구멍을 찔러오던 성기는 뺨과 입천장을 마구잡이로 훑으며 점점 거세게 짓쳐들어 왔다.
"음, 음-"
"아, 큭... 하으- 아! 안, 안-"
성기가 지나간 곳마다 붉은 열기가 치솟았다. 깊숙이 찔린 목구멍에 살짝 토기가 올라와 이아네의 눈동자에 눈물이 맺히자 제르멘은 더 흥분한 것 같았다.
퍽 허리를 들이민 제르멘이 신음을 흘리며 제 음모를 이아네의 코끝에 비벼댔다. 츱, 하며 이아네의 혀가 불편하게 움직이는 것이 느껴지자 제르멘의 성기 끝에서 말간 액이 흘렀다.
"하아, 최고야, 안... 윽..."
살짝 이마를 찌푸린 제르멘이 급히 이아네의 입에서 성기를 빼내었다.
이아네가 멍해진 눈을 한 채 제르멘을 올려다본다. 반쯤 벌려진 입술은 타액으로 엉망이었다. 늘 얼음처럼 냉막하고 차가운 무표정이 이렇게나 망가지다니 반칙이었다. 불현듯 성기 끝이 요동치는 것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선단에서 흐른 백탁액이 이아네의 뺨으로 흘렀다.
"앗..."
이아네가 밤꽃 향기를 동반하는 끈적한 액체에 조금 놀라 어깨를 움츠린 순간 방금까지 제 입안에 들어가 있던 성기가 반대편 뺨에 닿았다. 사정이 다 끝나지 않았던 것인지 아직 빳빳한 성기 끝은 다시 이아네의 볼을 찌르며 백탁액을 내보냈다.
아직도 타액으로 미끈거리는 입가와 땀에 젖은 콧등까지 모조리 성기로 훑고 나서야 제르멘은 길게 숨을 내쉬며 이아네의 검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여전히 울상으로 제르멘을 올려다보는 단아한 얼굴이 깊은 욕망으로 붉어져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득하였다.
"안...안..."
"흑...제롬..."
문득 넘쳐흐를 듯한 눈물이 사랑스럽다. 제르멘의 푸른 눈에 정액이 잔뜩 묻은 이아네의 얼굴이 비쳤다. 정복욕이 차오른 눈동자를 반짝이며 제르멘이 이아네의 이마에 입을 맞춘다. 짧은 순간, 이아네는 입술이 아닌 이마라는 것에 조금 실망했다.
"일어서, 안. 이제 씻을 시간이야."
눈동자 가득 열기를 담고서 하는 말 치곤 냉정했지만 이아네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서 제르멘의 뒤를 따랐다.
"더러워져 버렸네."
이아네의 머리를 쓰다듬는 제르멘의 눈이 웃고 있었다.
.
.
.
라퓨타의 드래곤 관리국 사람들은 하나같이 두꺼운 프로텍터를 입고 상처투성이 팔로 델토르의 손님을 맞이했다. 드래곤을 실제로 사육하는 안쪽 숲에 이르기까지 관리국장 지크의 잔소리가 이어졌다.
"드래곤 목장은 매일 엄중한 감시 하에 있습니다만 이 목책을 지나면 저희도 책임질 수 없습니다. 절대 눈을 마주치지 마십시오. 새끼를 낳은 어미보다는 덜하지만, 드래곤은 기본적으로 포악한 놈들입니다. 눈을 마주치면 시비를 건다고 생각할 겁니다."
이아네와 칼릭 경의 눈이 불안해졌다. 위험하다곤 생각했지만 제르멘의 고집으로 두 사람만 대동하게 된 터라, 그들은 제르멘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목숨으로 사죄할 것을 각오하고 있었다.
"알겠네."
기어이 제르멘에게서 대답을 받아낸 지크가 마침내 목장으로 들어가는 두터운 목책의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마자 더 크게 들려오는 그르렁거리는 소리와 파충류 특유의 체취가 확 끼쳐 왔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놀랍군."
드래곤들은 각양각색의 모습을 뽐내며 간식을 받아먹고 있거나 자기들끼리 장난을 치고 있었다. 지크가 주변을 둘러보다 살짝 휘파람을 불자, 드래곤들은 사나운 노란 눈을 굴리며 이방인을 바라보았다. 호기심이 가득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포악한 눈매다. 코끼리 두어 마리 정도의 덩치는 가까이서 보니 더 위협적이었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비늘을 보며 이아네는 자신의 검이 과연 소용이 있을지 몰래 가늠해 보았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대단하군."
"저 길 끝에 둥지가 있습니다. 드래곤의 휴식 공간이자 산란 장소기도 하죠."
지크가 안내한 곳에는 어른 다섯이 들어가 앉을 만한 아담한(?) 둥지가 지어져 있었다. 제르멘이 흥미로운 듯 물었다.
"이것이 드래곤의...?"
"예. 드래곤은 잠을 자거나 알을 낳을 때가 아니면 둥지로 들어오지 않는답니다. 가끔 이상한 것을 물어올 때도 있지요."
"이상한 것?"
"별 건 없습니다. 드래곤은 반짝이는 물건을 좋아하거든요."
제르멘이 흐음 하며 낮은 침음을 흘렸다.
확실히 매력적인 동물이었다. 여건이 된다면 한 마리쯤 길러 보아도 될 것 같다고 생각할 정도였지만 제르멘은 원래 동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지크가 또 다른 목책 앞에 섰다.
"여기서부턴 드래곤 자유구역입니다. 이 구역에 있는 드래곤들은 목줄은 물론, 어떤 구속구도 하지 않습니다. 즉..."
"위험하겠군."
"...예. 조심하십시오."
목책 너머에서 불길한 울음소리가 아주 가까이 들렸다.
드래곤이라면 이 따위 목책은 그냥 뚫어버릴지도 몰라. 이아네는 자기도 모르게 검자루를 꽉 쥐었다. 제르멘이 웃으며 지크를 돌아본다.
"금방이라도 뭔가 튀어나올 것 같군. 이 너머에 드래곤이 있는 건가?"
"예, 하지만 아직은 안전합니다. 오늘은..."
-쿵.
지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딘지 육중한 것이 바닥에 떨어지는 듯한 진동이 느껴진다. 주변의 드래곤들이 한꺼번에 후루룩 날아오르자 하늘이 동시에 어두워졌다. 어딘지 불길해진 이아네가 검을 뽑아들고 제르멘 곁에 붙었다. 칼릭 경도 마찬가지였다.
"폐하, 물러나십시오. 기척을 죽이시고, 천천히-"
-쾅!
무언가 무거운 것이 목책에 부딪혔다. 제르멘이 물러날 새도 없이, 다시 한 번 목책에 육중한 것이 부딪히더니 어이없을 정도로 간단하게 목책이 무너졌다.
"제롬!"
놀란 이아네가 제르멘을 끌어당겼다. 뒤에서 당겨진 제르멘이 몇 걸음 물러나는 사이 칼릭 경이 그 앞으로 뛰어나온다. 자신이 죽는다 해도 제르멘은 지켜야 했다.
-키에에에에에에에에!
소름끼치는 포효가 바로 코앞에서 들려왔다. 귀청이 터질 듯한 소리에 이아네는 자기도 모르게 제르멘을 감싸 안았다.
"눈을 마주치지 마세요!"
지크의 외침이 어쩐지 멍멍하게 들려왔다. 이아네가 헐떡이며 제르멘을 등 뒤로 밀친다. 지금은 어떻게든 칼릭 경과 시간을 벌어야 했다.
"지크 씨! 폐하를 데려가십시오!"
"움직이면 안 됩니다!"
지크와 이아네가 외친 것은 거의 동시였다. 거대한 앞발이 목책 바깥으로 내밀어졌다.
-쿵.
가마솥만한 머리가 서서히 이아네와 칼릭 경 가까이 내려오는 순간, 반들거리는 금빛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고양이처럼 동공이 세로로 갈라진 눈동자는 사납게 이아네를 노려보고 있었다. 온통 붉은색과 검은색 비늘로 둘러싸인 드래곤은 사나운 눈으로 이아네와 지크를 노려보았다. 단단해 보이는 앞발에 서슬 퍼런 발톱이 빛났다.
순간적으로 정신이 아득해졌지만 이아네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리고 칼릭 경의 망토를 당겼다. 칼릭 경이 서서히 뒷걸음치며 드래곤과 거리를 벌렸다. 검은색과 붉은색이 섞인 드래곤의 화려한 몸체가 이아네와 칼릭 경의 번쩍이는 검날을 따라 움직인다.
이거, 잘못 걸렸군.
그르릉대던 드래곤이 이를 드러냈다. 이아네가 급히 지크에게 물었다.
"대체 저게 뭡니까?"
"이글 드래곤. 현존하는 것 중 가장 사나운 녀석입니다. 하지만-"
잘못 걸렸다, 젠장. 이아네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러나 여기서 물러설 수는 없다. 이아네가 조금 뒤를 돌아보며 제르멘에게 외쳤다.
"폐하, 위험합니다. 돌아가십시오!"
"싫어."
쌈박한 거절에 얼이 빠진 것은 오히려 지크 쪽이었다. 호기심이 많은 왕의 성정을 잘 아는 이아네는 오히려 익숙하게 말을 받아쳤다.
"재미있다고 생각하실 때가 아닙니다!"
그러나 제르멘의 눈은 이미 호기심과 흥미를 가득 담고 눈앞의 드래곤을 바라본다. 바위도 날려 버릴 듯한 단단한 날개와 잘 벼린 검처럼 빛나는 발톱, 명백한 적의를 품고 있는 눈동자는 살의로 일렁이고 있었다.
죽은 자에게 마지막 은혜를 베풀듯 거만하게 목을 치켜든 드래곤이 날개를 활짝 펼치며 하늘을 향해 포효를 뿜어냈을 때, 이아네는 제르멘과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생각했다.
"샤사!"
단발의 외침이 허공을 가른다.
-키에에.
거짓말처럼 드래곤이 포효를 멈추었다. 저 멀리 수풀이 바스락대는 것이 보이더니 이윽고 드래곤의 옆구리 부근에서 누군가가 튀어나왔다.
"샤사, 당장 그만둬!"
일단 깊은 심해처럼 짙은 블루블랙의 머리카락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화를 내는 듯, 높이 올라간 목소리 톤은 아무리 들어도 여자다.
"넌 '집'으로 돌아가면 근신이야!"
-키이이...
놀랍게도 그토록 사납던 드래곤이 마치 주인에게 잘 보이려는 강아지처럼 몸을 사렸다. 어른 남자 두 명만 한 키를 가진 주제에 조그만 체구의 여성에게 쩔쩔매는 드래곤이라니 이건 이것 나름대로 상당히 어색한 광경이었다.
"내가 항상 말하잖아, 쓸데없이 겁주지 말라고! 네가 그러니까 사람들이 날 슬슬 피한다구! 애교 부려도 소용없어, 돌아가면 각오해!"
드래곤의 금빛 눈이 축 처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여성은 한참 동안 드래곤에게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다. 언제쯤 철이 들 거냐, 네가 언제까지나 아기인 줄 아느냐, 드래곤의 품위를 지켜라...
한참 화를 낸 여성은 드래곤이 완전히 풀이 죽은 것을 보고서야 이아네 쪽을 돌아보았다. 처음 보는 사람이 셋. 그중에서 지크를 알아본 여성은 한숨을 내쉬며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우리 샤사가 실례를 범했습니다. 오랜만의 방문이라 흥분해서... 너그럽게 용서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조...조심하십시오, 플로렌스 양. 오늘은 안 그래도 손님도 계셨습니다."
지크가 목이 멘 듯 더듬거렸다. 고운 아미 가득 미안함을 담은 여성이 이번에는 이아네 쪽으로 돌아섰다.
"정말 죄송합니다. 원래는 이렇게 사나운 녀석이 아닌데..."
이아네는 그녀가 이쪽을 돌아볼 때 약간 충격을 받았다.
깨끗한 피부와 야무지게 다물린 입술, 살짝 치켜 올라간 눈꼬리가 고양이를 연상케 하는 눈은 머리카락과 같은 깊은 심청색. 이쪽을 똑바로 바라보며 다가오는 여자는 델토르에서도 찾아보기 드문 미인이었다.
모두가 말이 없는 것에 무안한 미소를 지으며 여자가 허리를 살짝 숙여 용서를 구했다.
"혹시라도 저희 샤사가 누를 끼친 것은 없는지요?"
"...그런 것은 아니지만, 거의 그럴 뻔했소. 다음부터는 똑바로 관리해 주시길 바라오."
스스로도 깜짝 놀랄 정도로 무뚝뚝한 말투였지만 사실 이아네는 그녀를 용서하고 싶지 않았다.
놀람이 가시고 난 뒤 이아네가 느낀 감정은 분노였다. 이 여자가 자기 드래곤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아 델토르는-심지어 아직 후사조차 없는-국왕을 잃을 뻔했다!
"정말... 죄송합니다. 원래는 이렇게 사나운 아이가 아니에요. 더 철저히 가르치겠습니다."
"사람이 다쳤다 해도 그런 사과로 무마가 될 줄 아시오? 이 분이 어떤 분인 줄 알고!"
"그만."
제르멘이 이아네의 팔을 잡았다. 보기 드물게 분노와 흥분으로 붉게 물든 이아네의 얼굴이 볼만했지만 제르멘은 지금 이아네보다 다른 것에 더 관심이 쏠려 있었다.
"그만이라니요? 폐하께서 다치실 뻔하셨습니다!"
"...폐하?"
제르멘이 눈가를 찡그리자 그제서야 이아네가 아차 싶어 입을 다물었다. 여자는 여전히 눈을 동그랗게 굴리며 뜻밖의 존칭에 당황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아네, 넌 돌아가서 보도록 하지."
이아네가 야단맞은 드래곤처럼 눈꼬리를 늘어뜨렸다. 그러나 제르멘의 명령은 절대적이다. 이아네는 속수무책으로 여자에게 다가가는 제르멘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괜찮습니다. 다행히 다친 곳은 없었으니."
"다행입니다."
여자가 겨우 한숨 놓았다는 듯 조금 웃었다. 제르멘도 마주 웃으며 입을 연다.
"아주 멋진 드래곤입니다. 주인의 맹약을 맺으신 겁니까?"
"아... 네에... 샤사라고 합니다."
여자가 조금 난처한 듯 눈길을 피했다. 어딘가 불편한지 지크 쪽을 슬슬 곁눈질한다. 그 이상한 태도를 유심히 관찰하던 제르멘이 다시 입을 열었을 때였다.
"그런데-"
"델러!"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놀란 것은 제르멘보다 이아네였다. 깜짝 놀라 자기도 모르게 소리가 나는 쪽으로 검을 치켜든 이아네는 길 건너에서 수풀을 헤집고 나타난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짧은 순간이지만 인상적인 눈이었다. 여자와 같은 블루블랙의 머리카락에, 제르멘보다 진한 푸른 눈이 우수를 담고 날카롭게 빛났다.
이아네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전율에 미묘하게 몸을 떨었다. 그 강렬한 눈동자는 제르멘의 부드러운 눈동자보다 훨씬 마주하기 어려웠다.
"......"
"......"
잠시간의 정적. 그러나 그 정적 속에서 남자의 눈동자로 차오르는 당혹을 눈치채고 이아네는 의아해졌다. 놀란 건가? 왜? 어째서?
정적을 깬 사람은 드래곤의 주인이었다.
"오...오라버니."
"오라버니, 라고요?"
제르멘이 묻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이아네는 제르멘을 등지고 낯선 남자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있어 그의 얼굴을 보지 못했다.
"이아네, 검을 내려."
"하지만..."
"이 이상 그에게 검을 겨누게 되면 그의 호위대가 왔을 때 네가 무사하지 못해. 검을 내려."
이아네가 천천히 검을 내리며 처음으로 남자에게서 눈을 떼고 제르멘을 바라보았다. 푸른 눈 가득, 이 흥미로운 상황에 대한 즐거움이 넘실댄다. 대체 이게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 거지? 왜 제르멘이, 델토르의 국왕이, 저 사내를 알고 있는 것처럼 구는지 이아네는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델러, 이쪽으로."
여자도 영문을 모르고 둘을 번갈아 보다가 조심스레 사내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그 짧은 순간에도 제르멘과 낯선 사내는 마주친 눈을 피하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물러난 이아네가 작게 속삭였다.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호위대라니요."
그러나 이아네의 속삭임을 무시한 채, 제르멘은 눈앞의 남자를 뚫어지게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결례를 범했습니다."
"아닙니다, 제 누이가 경거망동했습니다. 혹여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전 괜찮습니다. 그럼 조심히 돌아가시길."
"...예, 그럼."
남자가 아주 약간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드래곤 샤사가 머리를 땅에 바짝 숙이자, 남자와 여자가 그 어깻죽지를 타고 올라앉았다. 그것을 보고서야 이아네는 드래곤의 등에 작은 안장이 채워진 것을 알아챘다.
"...다음에 또."
여자가 조심스레 고개를 끄덕인 뒤 가볍게 박차를 가하자 마차만 한 날개가 순식간에 펼쳐졌다. 두어 번 펄럭이며 주변에 모래먼지를 날리던 샤사는 곧 땅을 박차고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윤기가 흐르는 붉은 빛이 완전히 안 보일 때가 되어서야 제르멘은 철수 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이젤다 성으로 돌아올 때까지 깊이 생각에 잠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폐하."
"......"
"...폐하?"
"...응? 불렀어?"
이아네는 겨우 한숨을 내쉬었다.
환궁한 국왕을 마중하려 비안테 공작이 허겁지겁 뛰쳐나왔지만 제르멘은 웃지 않았다. 옷을 갈아입고 씻을 때조차 제르멘은 생각에 잠겨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아네의 참을성이 부족한 편은 아니었지만 이런 제르멘의 변화는 묵묵히 참고 넘기기 힘든 것이었다. 그러나 기특하게도 이아네는 참아냈다.
지금까지 어떤 일이라도 제르멘은 이아네에게 다 말해왔다. 이번에도 그럴 것이다. 시간이 조금 걸린다면 기다린다. 그것이 이아네의 방식이었다.
그러나 제르멘은 목욕이 끝난 후 바로 집무실에 들어가 한참 동안 나오지 않았다. 늘 제르멘 곁에 있어야 하는 이아네도 이번만큼은 집무실 바깥에서 제르멘을 기다려야 했다.
제르멘이 집무실 바깥으로 나왔을 때는 이미 해가 지고 난 뒤였다. 보좌관마저 퇴근한 보좌관실에는 이아네 혼자 제르멘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오랜 기다림 끝에 국왕의 침실로 돌아와서야 겨우 이아네는 용기를 내어 제르멘을 불렀다. 그러나 무슨 생각을 그리 깊이 하는지 푸른 눈동자는 아무런 감정도 기복도 없이 고요히 가라앉아 있다. 조금 겁이 난 이아네가 두 번이나 그를 부른 뒤에야 제르멘은 겨우 정신을 차린 것처럼 보였다.
"괜찮으십니까?"
"아아... 응. 괜찮아. 걱정해줘서 고마워."
제르멘이 겨우 웃었다. 그 모습에 덩달아 안도한 이아네의 입가에도 살짝 미소가 피었다.
"안."
"네, 제롬."
제르멘이 안이라고 부르는 것은 단둘이 있을 때뿐. 이아네는 이 시간이 좋았다. 둘만의 비밀, 아무도 모르는 그들만의 공유. 그것은 어딘지 죄악의 과실을 조용히 따 한 입 베어무는 순간과 닮아 있었다.
그렇기에 제르멘의 입에서 '안'이라는 이름이 나오는 순간을 기다린다. 그가 '안'이라고 부를 때마다, 이아네의 입가에는 묘한 긴장이 어리고 알 수 없는 기대감에 속이 울렁거렸다.
"...이리 와, 안."
말없이 제르멘에게 다가가자 제르멘의 손이 이아네의 손을 잡아 당겼다. 저항 없이 부드럽게 끌려가 제르멘의 침대 위에 앉는다. 이렇게 밤늦게까지 둘이서만 있어본 적이 없었던 이아네의 심장이 고동쳤다.
"...오늘 너도 보았던 그 남자가, 누구인지 알겠어?"
"...?"
뜬금없는 제르멘의 물음에 이아네가 눈을 살짝 찌푸리며 머릿속에서 남자의 얼굴을 찾는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도 기억나는 얼굴이 아니었다. 기억나는 것이라곤 찌를 듯 강렬했던, 제르멘보다 짙은 푸른 눈동자.
"모르겠습니다."
"...그럴 테지."
후후 웃으며 제르멘이 이아네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목께에 코를 묻고서 몇 번 심호흡을 하던 제르멘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레뮤엘 다프니스 디날. 누구인지 알겠어?"
"디날...이라면?"
"7년 전 왕위에 오른, 디날의 현 국왕이지."
이아네가 입을 딱 벌렸다. 초록색 눈동자가 너무 놀라 동공을 크게 편다. 그것이 귀여워, 제르멘은 또 후후 웃었다.
"이상도 하지. 왜 그 같은 자의 누이가 그날 그곳에 있었던 건지. 그리고 왜 그 드래곤과 함께 있었던 건지."
제르멘의 눈이 파랗게 빛났다. 이거, 위험하다. 이아네의 머릿속에서 비상등이 켜졌다. 제르멘은 지금 위험할 만큼 흥분해있었다.
"...괜찮으십니까?"
"그럼, 괜찮고말고."
그러나 제르멘은 몇 번 더 숨을 고르고 난 뒤에야 이아네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하지만 이건 괜찮을 수 없군."
"제롬...? 윽-"
거칠게 이아네를 침대로 밀쳐 눕힌 제르멘이 이아네의 배를 타고 앉았다. 갑작스런 움직임에 놀라 이아네가 반사적으로 제르멘을 밀어내려는 순간 제르멘이 이아네의 손을 잡았다.
"저항하지 마. 안."
"제롬..."
"미칠 것 같으니까. 부디 날 막지 말아줘."
제르멘이 이아네의 귀에 짓씹듯 속삭인다. 늘 부드럽고 평정을 잃은 적이 없던 제르멘이라, 이아네는 조금 놀라 손에서 힘을 뺐다. 이런 제르멘은 처음이었다. 알 수 없는 열기에 둘러싸인 눈동자가 태워버릴 듯 이아네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 제롬- 윽..."
"쉿- 겁내지 마, 안. 난 그저 네가 어떤 얼굴이었는지 잊어버렸을 뿐이야."
제르멘이 이아네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이아네의 머리 옆에 팔을 짚고 손을 내렸다. 여전히 시선은 이아네의 초록색 눈동자에 고정한 채, 제르멘은 날씬한 배를 거쳐 단단히 잠긴 허리띠에 손을 대었다.
"윽, 거긴..."
"아프면 말해. ...그만두진 않겠지만."
"아윽-"
이아네의 깨끗한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허리띠를 푼 손이 바지 속으로 쑥 들어왔다. 약간 차가운 듯한 체온에 흠칫 이아네가 몸을 움츠리지만 제르멘은 아랑곳 않고 다리 사이 자리 잡은 성기를 잡아채었다.
"겁내지 마, 안..."
달콤하게 속삭이면서도 제르멘의 눈동자는 이아네의 일그러진 눈가를 놓치지 않고 응시한다.
살짝 일그러지는 눈가와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흠칫 감기는 눈꺼풀. 아아, 이거야.
"여기를 좋아하지?"
"흑-!"
이아네가 불현듯 잇새로 교성을 흘렸다. 서서히 열기가 느껴진다. 단단해지기 시작한 살갗을 아프지 않게 꼬집으며 제르멘이 후후 웃었다.
"귀여워, 안. 좀 더 솔직해져 봐..."
"읏... 아윽, 아...아파요, 제롬... 앗..."
약한 신음을 흘리고 있긴 하지만 이아네는 착실히 반응하고 있었다. 제르멘의 손 안에서 열기를 피운 남성은 점점 단단하게 머리를 든다. 제르멘이 엄지로 귀두 밑을 훑어주며 손을 위아래로 크게 휘두르자 이아네가 허리를 튕기며 이를 악물었다.
"으흣-"
"좋은 얼굴이야."
당혹과 욕망이 섞여 피어난다. 혼란한 속에서도 기분 좋아 어쩔 줄 모르는 듯 허리를 튕겨 올리며 이아네가 부끄러워 고개를 돌렸다. 제르멘이 그 뺨에 입을 맞추자 눈만 살짝 치켜뜨며 제르멘을 곱게 흘기는 눈.
-요것 봐라?
"하윽! 제... 아응, 제롬, 그...그렇게, 앗, 빨리..."
"우리 귀여운 기사님은 귀엽지 않은 버릇이 있단 말이지."
꾹꾹, 선단 끝을 쥐어 오며 살살 손을 비틀어 돌려 위아래로 재차 세게 휘둘러 온다.
그 손길이 못내 기분 좋아, 이아네는 조금 울 뻔했다.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며 이아네가 울먹이듯 겨우 입을 연다.
"아니...하으... 아닙니다, 윽... 이건..."
"기분 좋아 보이네, 안..."
제르멘이 뭔가 새로운 생각을 한 것 같다. 활짝 미소를 지으며 이아네를 내려다보는 눈이 어째 불길했다.
"일어나, 안. 혼자서 즐겁기엔 내가 너무 가엾잖아?"
제르멘이 손을 멈추고 무릎을 세워 일어났다. 다리 사이에 이아네를 눕힌 채 위에서 그 초록색 눈동자를 내려다보는 기분은 정말이지 최고다. 이아네가 조금 질린 듯 눈을 가늘게 뜨며 허리띠를 조이려 했지만 그대로 놔둘 제르멘이 아니다.
"아니, 안 돼, 안."
"하지만..."
이아네가 곤란한 듯 살짝 몸을 일으켰다. 흐트러진 하의지만 상의는 여전히 정복 차림인 채다. 그것이 우스꽝스러우면서도 묘하게 선정적이었다.
생긋, 웃은 제르멘의 붉은 입술에서 단 한 마디가 흘렀다.
"벗어."
어스름한 불빛 아래 하얀 나신이 드러난다. 여자의 몸과는 확연히 다른 탄탄한 몸. 살짝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으며 제르멘이 이아네의 허벅지를 잡아 벌렸다.
"츱... 흐으, 움... 후... 웅...!"
"후..."
어두운 실내에는 겨우 하나 켜 둔 스탠드 불빛이 어스름하게 비쳐든다.
흐릿한 빛이지만 침실 안의 벗은 인영을 비추기엔 충분했다. 어른어른 비치는 실루엣은 부드럽거나 나긋한 몸은 아니었지만 잘 조각한 소년상처럼 아름답고 균형 잡혔으며 매끈했다.
"이런, 안... 벌써부터 젖어가고 있잖아. 사실은 꽤 음란하구나."
"아, 아니... 앗... 잠깐, 하응..."
주홍빛 불빛에 비친 초록색 눈동자는 주체할 수 없는 욕정을 담고 제르멘을 바라본다. 늘 단정하던 인형 같은 얼굴은 완전히 무너지고, 어쩔 줄 몰라 자신을 바라보는 눈동자만 남았다. 제르멘이 혀를 내밀어 살짝 윗입술을 핥으며 발을 좀 더 세게 밀었다.
"아니긴. 발이 젖을 정도로 축축한데."
"아...제발, 흑... 제롬..."
"아아, 입이 멈췄어."
원망을 담은 이아네의 코가 다시 제르멘의 다리 사이로 묻어졌다.
혀를 내밀어 그 선단을 찌르듯 혀로 훑는다. 제르멘이 만족스러운 침음을 내자 이아네는 눈을 감고서 다시 수컷 냄새를 풍기는 귀두를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혀를 한껏 내밀어 쫄깃한 표피를 당겨 핥고, 머리를 내려 목구멍 깊숙이 귀두가 닿도록 '삽입'한다.
"크...으..."
제르멘이 탄성을 터뜨리자 이아네가 목구멍을 꿀럭 조였다. 그간의 경험으로 제르멘이 이렇게 조여 주는 것을 좋아한단 걸 알았다.
아니나 다를까 제르멘의 손이 이아네의 검은 머리카락 위를 거칠게 덮으며 허리를 앞으로 밀었다. 욱, 하며 토기가 올라오지만 그전에 코끝에 비벼지는 음모의 체취에 그만 묘한 배덕감과 쾌감을 느껴 버렸다.
"하음... 읍... 햐아... 츱, 읍..."
머리를 앞뒤로 흔들자 제르멘의 성기가 입 밖으로 보였다 사라진다. 규칙적으로 머리를 흔들며 입을 한껏 열고 제 것을 머금는 이아네를 내려다보다 제르멘은 다시 발을 옮겨 이아네의 다리 사이로 가져갔다.
완전히 알몸인 이아네는 침대에 앉은 제르멘의 다리 사이에 꿇어앉아 있었다.
처음엔 벗는 것도 부끄러워한 주제에 지금은 첩첩 소리까지 내가며 제르멘을 만족시키는 작태가 매우 마음에 든다. 다리 사이 자리 잡은 건강하고 매끈하며 균형 잡힌 아름다운 몸은 제르멘의 기분을 들뜨게 했다. 아아, 이 얼마나 흡족한 광경이냐.
제르멘은 허리띠를 풀었을 뿐이지만 이아네가 유일하게 옷을 입은 부분은 등 뒤로 돌려져 타이로 묶인 손목뿐이었다. 괴로운 듯 어깨를 들썩이긴 했지만 이아네는 어차피 제르멘을 거역할 수 없다.
거기까지 생각하자 참을 수 없는 정복감에 몸이 부르르 떨렸다. 이아네가 반쯤 뜬 눈을 올려 제르멘을 바라본다. 계속하라는 듯 제르멘이 이아네의 뒤통수를 지그시 누르자 이아네는 다시 입안의 흉기를 입술로 조이고 선단을 핥았다.
"아, 좋아, 안..."
검은 머리카락을 흐트리며 제르멘이 우악스레 이아네의 뒤통수를 붙잡고 사타구니로 밀어붙였다. 욱, 하며 이아네의 신음이 들렸지만 뜨겁고 축축하며 꽉 조여 오는 이아네의 목은 황홀했다.
"큭, 이런...아, 후아, 웃...!"
목구멍의 주름에 귀두가 닿는다. 그 울퉁불퉁한 매끈함에 제르멘은 이아네의 코로 허리를 비비며 그 머리를 앞뒤로 흔들었다.
치아에 쓸리는 일 없이 이아네의 입안을 온통 엉망으로 휘젓는다. 괴로운 듯 녹색 눈동자에 눈물이 어리지만 제르멘을 더 미치게 만들 뿐이다.
이아네가 토기를 느꼈는지 헛구역질을 했다. 그 순간 짜릿하게 조이는 열감에 제르멘은 자기도 모르게 성기를 목 깊이 쑤셔 넣으며 쾌감에 몸을 떨었다. 멋져. 정말 멋져!
"큭...! 흐..."
울컥울컥 간헐적으로 허리를 경련하며 드디어 이아네의 입안에 토정한다. 순식간에 코끝까지 차오르는 비릿함에 이아네가 고개를 뒤로 뺐지만 제르멘은 토정이 끝난 후 여운이 사라질 때까지도 이아네의 머리를 꽉 잡고 누르고 있었다.
"흐...아..."
"쿨럭, 컥... 푸흐..."
드디어 압박이 사라지자 이아네는 서둘러 고개를 젖혔다. 목구멍으로 넘어간 정액에서 쓴 내가 올라온다.
입은 타액으로 엉망이 된 주제에 눈가에 눈물을 가득 매달고서 꿇어앉은 알몸이라니. 제르멘이 킥킥 웃으며 이아네의 입가를 손으로 훔쳤다. 진득한 타액과 정액이 함께 묻어난 손을 이아네의 뺨에 문지른다.
"아주 좋아, 안... 이리 와."
이아네가 울먹이며 겨우 무릎을 세워 제르멘의 무릎에 앉았다.
탄탄한 허리를 끌어안으며 목덜미에 이를 박아 넣은 제르멘이 귀 뒤까지 길게 핥아 올리자 이아네가 어깨를 떨며 제르멘의 품으로 무너져 내렸다. 기사라고는 생각할 수도 없을 만큼 가녀린 움직임이었다.
뒤로 묶여 있던 손을 풀어주자 그제야 타이 자국이 선명히 남은 손목을 제르멘의 어깨에 걸치며 이아네가 흐느꼈다.
"흑... 읏, 제... 롬..."
"누워."
제르멘은 단 한 마디를 했을 뿐이지만 이아네는 홀린 것처럼 그 말에 따랐다.
"윽, 뭐 하시는..."
"나만 즐겁기엔 미안하니까. 해 봐."
재미있다는 듯 반짝이는 푸른 눈을 마주하며 이아네는 불안해졌다. 가끔 이럴 때는 정말 그가 제르멘이 맞는지 의심마저 든다.
"무...엇을..."
"자위. 네가 가는 게 보고 싶어."
이아네가 경악 섞인 눈으로 제르멘을 올려다보는 순간 제르멘은 재빨리 이아네의 허벅지를 옆구리에 끼고 다리 사이를 점령했다. 제르멘이 말한다.
"어서. 착하지..."
울상이 된 채 제르멘을 원망스레 올려다본다. 그러나 곧 체념한 듯 질끈 감은 눈과 머뭇머뭇 샅으로 가져가는 손에 제르멘은 웃고 말았다.
"읏... 하..."
활짝 벌려진 다리 사이, 제르멘의 시야 바로 아래에 이아네의 손이 자신의 성기를 쥐었다. 긴장으로 떨리고 있었지만 거기에 제르멘의 시선이 섞이면 전혀 다른 자극이 된다.
눈을 감자 촉각이 더 예민해졌다. 조심스럽게 말랑한 포피와 여린 살갗을 쓸어내리자 손끝에 따라 서서히 열이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조심스레 실눈을 뜨고 제르멘 쪽을 살핀다. 이아네가 눈을 뜬 것도 모른 채 제르멘의 시선이 다리 사이에 고정되어 있었다.
"하윽..."
제르멘이 보고 있다. 그 사실에 이아네의 아랫배가 찌르르하니 울렸다. 살짝 허리가 튕겨 올라가며 낮은 신음이 흐르고 서서히 모양을 갖춰가는 성기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음... 응... 하아, 아..."
시작이 어려울 뿐이다.
불이 지펴지자 그 다음은 빠르게 번지기 시작한다. 이아네의 허리가 들썩였다. 성기를 쥔 나머지 손이 더 아래로 내려가 고환을 잡아 굴렸다.
제르멘의 눈이 반짝인다. 귀두 끝에서 액이 흘러 그 머리가 반질반질했다.
"응, 앗... 아앗, 제...롬, 아..."
평소 제르멘이 만져 주었던 곳, 기분 좋았던 손을 떠올리자 자기도 모르게 입술 새에서 제르멘을 안타까이 부른다. 제르멘이 칭찬하듯 손을 들어 이아네의 왼쪽 유두를 살짝 꼬집었다.
"아응, 응... 제롬, 하... 앗...!"
덜덜 떨리는 손가락이 성기를 쥔 채 상하운동을 했다. 엄지를 세워 귀두 끝 갈라진 부분을 문지르고 축축해진 액에 젖은 성기는 질척한 소리를 냈다. 찰찰 소리가 야했다.
"하응, 응, 제로...옴, 앙... 하아, 좀 더... 아..."
"좀 더, 뭘?"
"흑... 좀 더, 읏... 마... 만져 주세요..."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부끄러운 요구를 하자 제르멘이 낮게 웃으며 손가락에 힘을 주어 유두를 꾹 눌러 둥글게 돌렸다. 도톰히 솟아오른 유두가 뭉개지며 척추를 따라 저릿한 감각이 흘렀다.
"아, 아응- 제롬, 아, 하아, 제롬-"
급기야 허리를 들썩이며 이아네는 무아지경으로 손을 흔들었다. 타닥타닥 소리가 점점 빨라지자 제르멘의 미소도 짙어졌다. 유두를 눌렀던 손가락은 두세 개로 늘어나 작은 꽃잎을 짓뭉개듯 잡고 돌린다.
"하아, 아, 읏-"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이아네의 눈이 흐릿해지며 사정하려는 순간, 갑자기 제르멘이 이아네의 손목을 잡았다.
움직임이 제지된 손에 놀란 것보다 내보내고 싶은 욕구가 더 컸다. 허리를 퉁퉁 튕기며 어떻게든 내보내려 조르지만 제르멘은 이아네의 두 손목을 한 손에 모아 쥐고는 풀린 허리띠 사이 어느새 발기한 남성을 꺼냈다. 그리고 촉촉이 젖어 애처로이 빛나는 이아네의 것과 한꺼번에 모아 잡았다.
"응, 으흣-"
"안, 뜨거워... 이런 야한 몸으로 기사라니, 안 어울려."
"그... 그런... 아흑..."
이아네의 약한 반발은 제르멘의 손이 움직이며 사라졌다. 두 성기를 함께 비비며 쭉쭉 위로 훑는다. 이아네가 자지러지며 허리를 튕겼다.
"좋아, 안?"
"흐아, 앙, 조... 좋아요, 좋아... 흐윽-"
감질나던 차에 이렇게 강하게 훑어주니 좋을 만도 하겠지. 제르멘이 손에 힘을 주어 두 선단을 쥐고 마찰시키자 이아네가 숨을 헐떡였다.
손목을 놓아주자 자동적으로 제르멘의 것을 쥐며 자기 물건과 비벼댄다. 굳이 손을 더럽힐 필요는 없었으므로 제르멘이 손을 떼자 이아네는 흑흑 느껴 울면서도 부지런히 손을 움직였다.
"흐아, 좋아요, 흑... 제롬, 아아-"
"좋아, 안? 후후..."
귀엽다는 듯 이아네의 반대편 유두를 꼬집는 제르멘의 뺨에도 열기가 올라 있었다. 허리를 들이밀자 고환이 맞닿는 감촉이 상당히 기분 좋았다.
이아네의 손은 따뜻했고 쾌락과 배덕에 젖어 우는 눈동자는 마음에 들었다. 최고다, 이아네. 그야말로 '충직'한 나의 기사.
"같이, 갈까?"
"하아, 아- 흑, 제롬, 제롬- 앗..."
제르멘이 이아네의 손을 덧잡고 힘을 주자 이아네가 허벅지를 닫으며 제르멘의 옆구리를 조여 왔다. 빈틈없이 밀착된 밀부는 뜨겁게 절정을 향해 달렸고 결국 이아네는 참지 못했다.
"앗, 아... 아윽, 흑-"
순간 이아네가 숨을 멈춘다. 뒤늦게 제르멘이 분출했다. 잠시 고요에 둘러싸인 열락은 이아네가 숨을 탁, 내뱉으며 비로소 끝이 났다.
"하아... 하..."
"이런... 손을 더럽혀 버렸잖아."
제르멘의 손등에 정액이 튀어 있었다. 제르멘의 눈 사이가 살짝 좁혀지자 이아네는 덜컥 겁이 났다.
"더...더러워졌...습니까?"
"흐음. 어떡한다."
한번 세탁하기에도 벅찬 킹 사이즈 침대의 시트에 대충 문질러 닦으려던 제르멘은 손목을 잡아오는 손길에 무심코 고개를 돌렸다가 놀라고 말았다. 어느새 침대에서 일어난 이아네가 조심스럽게 제르멘의 손등으로 입을 가져간다. 붉은 혀가 나오는가 싶더니 촉촉하고 말캉한 감촉이 끈적한 정액 위를 쓸었다.
"하... 안. 너란 녀석은..."
"...?"
저렇게 순진무구한 눈을 하고서 정액을 망설임 없이 핥다니, 어떤 의미로 대단한 녀석이었다. 제르멘이 킥킥대며 이아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이아네가 혀 위로 정액을 머금은 채 단정하게 목례를 했다.
입지도 않은 기사 정복이 보이는 것 같다. 방금까지 다리를 벌리고 하체를 붙인 채 제르멘의 아래에서 자위를 했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절도 있는 목례였다.
이것 봐, 이래서 난 널 포기할 수가 없어. 제르멘이 이아네의 이마에 키스하고서 허리띠를 도로 채웠다.
"시간을 빼앗아서 미안, 안. 이제 가봐도 좋아. 칼릭 경에게는 너랑 밤새도록 체스를 뒀다고 할게."
"...예?"
"비밀을 들켜서는 안 되니까 말야."
제르멘이 눈을 찡긋했다.
이아네가 멍하니 제르멘을 바라보다, 그의 눈짓에 천천히 일어나 바닥에 흩어진 기사 정복을 다시 입었다. 바지를 다리에 꿰고, 셔츠를 걸치고, 단추를 잠근다. 허리띠를 채우고 블레이저까지 갖추고 나자 제르멘은 다시 한 번 이아네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그 귓가에 달콤하게 속삭였다.
"내일 봐."
홀린 듯 문 바깥으로 향한다. 왕의 침실이 닫혔을 때, 이아네의 머릿속에 불현듯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이아네는 체스를 둘 줄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