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화 (3/3)

3. 개와 악마의 시간

  

  

  하운드는 모든 가족을 잃었다.

  사랑하던 이들을 잃은 것은 둘째치고 가장 큰 문제는, 어린 그의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에게는 조언을 해 줄 스승도,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줄 친우도 없었다.

  그는 자연스럽게 그 과거에 머무른 채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좀 더 자란 남자의 곁에는 여러 사람이 머물렀었지만, 오직 복수 하나밖에 모르는 그의 곁에 오래 남아 있을 사람은 없었다. 하운드는 다른 것은 생각할 줄 몰랐다.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고, 찾아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죽지 않았기에 살아 있는 것뿐이었다. 누군가는 남자를 동정했지만 그뿐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끝을 맺을 줄 알았는데…….

  “윽.”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머리가 깨질 것 같다는 것이었고, 두 번째로 든 생각은 천국이 이런 곳이냐는 의문이었다. 물론 꼭 천국에 갔으리라는 보장도 없지만, 그래도 마물을 그렇게나 열심히 잡고 다녔는데 문턱에 발 정도는 걸쳐 볼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하운드는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어깨까지 덮어져있던 이불이 흘러내린다. 그는 지금 무척이나 호화스럽기 그지없는 방에 누워 있었다. 천장에 달린 샹들리에는 전부 보석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하다못해 옆의 탁자에 올려져 있는 컵도 비싸 보인다.

  신은 사실 엄청나게 사치를 부리는 작자였던 것인가? 하운드의 오해가 점점 깊어 갈 때쯤 문이 열렸다.

  “일어났느냐?”

  하운드는 멍청한 얼굴로 칼렙을 바라보다가 물었다.

  “당신 죽었습니까?”

  “이게 뭔 헛소리야?”

  “여기 천국 아닙니까?”

  “너 내가 악마라는 거 까먹었냐?”

  “아니 당신이 그럼 왜 여기 있습니까?”

  “이게 구해 줘도…….”

  칼렙은 그에게 다가와 신경질적으로 탁자 위에 쟁반을 내려놓았다. 그 위에는 먹음직스러운 수프와 한 입 거리로 잘린 빵이 접시 위에 올려져 있었다. 하운드는 한 박자 늦게 되물었다.

  “……구해 줬다고요?”

  “내가 너 같은 것의 수명도 못 늘릴 줄 아는가? 고작 인간 하나 정도야, 내 마력을 주입하면 되는 일이다.”

  “잠깐, 당신이 날 구했다고요?”

  하운드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칼렙을 바라보며 말했다.

  “왜?”

  “뭐?”

  “왜…… 날 구했습니까? 난 당신에게…….”

  하운드는 뒷말을 잇지 못했다. 칼렙이 잔뜩 짜증을 내더니 허리를 숙여 대뜸 그의 입술을 부빈 탓이었다. 그것은 아주 거칠고 서툴기 짝이 없는 행동이었지만 하운드가 당황하기엔 충분한 것이었다.

  칼렙은 당황한 하운드의 얼굴을 보며 오만하게 고개를 들어 올리고는 웃었다.

  “내 마음이다.”

  “네?”

  “내 마음이라고. 그냥 했다. 왜, 불만 있느냐? 하긴, 네놈은 이제 내 마력이 필요한 몸이니 이곳에서 벗어나지도 못할 것이다. 네놈은 이제 내 것이나 다름없다.”

  칼렙은 그것이 몹시 만족스럽다는 듯한 눈치였다. 하운드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얼굴로 그를 보았다.

  “그러니 네놈이 날 위해 좀 움직여야겠다. 어차피 지상계에 남은 가족도 없으니, 상관없겠지?”

  “……상관없기는, 한데…… 움직인다고요?”

  “그래.”

  칼렙은 침대에 걸터앉으며 말했다.

  “여긴 짐작했다시피 마계다. 그런데, 마물만 우글거릴 뿐 악마는 눈에 보이지도 않아.”

  “그 말은…….”

  “악마들이 모습을 감춘 이유가 따로 있다는 것이겠지. 그래서 너와 같이 마계의 심장부로 갈 거다. 정확히 무엇이 원인인지 알아야겠어.”

  “왜 저를 데려가는 겁니까?”

  “네놈이 내 힘을 먹어 치웠지 않느냐? 그럼 가서 밥값을 해야지.”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칼렙에 하운드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 남자가 재밌어 죽겠다는 듯 악마의 꼬리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완벽하게 힘을 갖춘 칼렙에게서는 지배자의 냄새가 났다.

  “여전히 바보 같은 얼굴이군.”

  하운드는 눈가를 찡그렸다. 머뭇거리며 입술을 달싹이다가, 결국 순순히 내뱉는다.

  “아직도 당신이 왜 나를 살렸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허?”

  “정말 왜 그런 겁니까? 그냥? 당신이 그런 이유로 나를 살렸다고?”

  악마는 한숨을 내쉬었지만, 특별히 설명을 해 주기로 마음 먹었다. 이 얼마나 상냥한지. 인간의 목숨까지 구해 주고, 궁금증의 답도 이야기해 주고, 심지어 먹을 음식까지 챙겨다 줬으니. 천사마저 감복하여 눈물을 흘리지 않고야 배기겠는가?

  “네놈이 나의 목숨을 구했다.”

  칼렙은 다리를 꼬며 말했다.

  “물론 애당초 네가 헛짓거리를 벌이지만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을 일이었지만. 어쨌든 내가 잠시나마 네게 신세를 졌다는 사실이 달라지진 않는다.”

  칼렙의 말투는 덤덤했다. 말 그대로였다. 전후 사정이 어쨌든 간에 하운드는 자신을 위해 달려왔으며, 목숨을 내놓기까지 했다. 칼렙은 그런 남자를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아무리 그 모든 것이 하운드의 행동으로 일어난 것이었다고 하더라도.

  이상하게 그의 죽음을 용납할 수 없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비이성적이었다. 그럼에도 그만둘 수 없었다. 그렇기에 악마는 정말 자신의 뜻대로 했을 뿐이다.

  “그러니 내 특별히 자비를 베풀어 네게 생명을 선사한 것이다.”

  지금도 저 표정을 보라. 어찌 저런 작자를 죽도록 내버려 두겠는가. 어차피 이제 수작도 부릴 수 없을 것이다. 하운드는 이제 완벽하게 칼렙의 소유였다. 헛되게 목숨을 쓸 일도, 복수를 하겠다고 멍청한 짓을 할 일도 없을 터다.

  무엇보다 인간 주제에 오만하게 굴던 남자를 제 발밑에 무릎 꿇릴 생각에 그는 기분이 좋아졌다.

  “감격하여 눈물을 흘리는 것 정도는 허용해 주지.”

  하운드는 그런 남자를 가만히 올려다보다 손을 뻗어 그런 악마의 허리를 감싸쥐며 끌어당겼다. 생각지도 못한 행동에 칼렙의 눈이 크게 뜨였다.

  “……?!”

  “혹시 날 좋아합니까?”

  “뭐, 뭐?”

  “아니면 내가 박아 주는 게 마음에 든 건가요?”

  외설적인 소리에 칼렙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는 하운드를 밀어내지도 못하고 머뭇거리며 입술을 달싹였다. 터무니없는 말이었다. 좋아하냐니? 자신이 그런 멍청한 생각으로 그를 살렸을 리가 없었다.

  “허, 헛, 헛소리……를, 지, 지껄…….”

  “난 당신을 제법 좋아하는 것 같은데.”

  칼렙의 움직임이 멈췄다. 그가 믿을 수 없다는 듯 인간을 내려다보았으나, 하운드의 표정은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네, 네놈, 미쳤, 미쳤……느냐?”

  “방금 반했습니다.”

  “뭐?”

  “그러니 당신도 나를 좋아해 줬으면 좋겠군요.”

  “이게 죽다 살아나더니 머리가 돌아 버린, 헉……!”

  칼렙의 허리를 바치고 있던 손이 자연스럽게 내려가 남자의 둔부를 세게 움켜쥐었다. 악마의 꼬리가 쭈뼛 서며 화들짝 놀란다. 그리고 그 사이로 채 빼내지 못한 정액이 주르륵 미끄러지며 새어 나왔다.

  “역시 안 빼고 있었군요. 아니, 못 빼고 있던 거겠죠. 차마 여기에 직접 손가락을 넣기 무서워서.”

  “너, 너……너, 정말……!”

  칼렙은 하운드의 머리를 후려치고 싶다는 표정을 했으나, 차마 죽다 살아난 환자에게 그렇게는 못하는지 주먹만 세게 움켜쥐었다. 그런 칼렙을 바라보며 하운드의 푸른 눈이 휘어지듯 웃음 짓는다.

  그것에서부터 조금도 숨기지 않은 욕망이 드러나, 칼렙은 움찔거릴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게도, 이 인간은.

  정말로.

  “마계의 심장부인지 뭔지는 조금 나중에 가야 할 것 같지 않나요?”

  “……하…….”

  칼렙은 이를 아드득 갈고는 하운드의 어깨를 밀어 눕혔다. 악마의 새하얀 눈이 건방진 인간을 담는다. 자신보다 덩치나 힘이 배는 커다란 악마가 몸을 내리누르고 있음에도 하운드의 얼굴은 오히려 여유로워 보였다.

  “……가만두지 않을 거다, 네놈. 언젠가 내 손으로 죽여 버리겠어.”

  “기대하겠습니다, 칼렙.”

  “개새끼…….”

  하운드가 상냥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애정 표현이 좀 거치네요.”

  칼렙은 더는 못 참겠다는 듯 몸을 숙여 하운드의 입에 입술을 부볐다. 타액으로 젖은 살덩이가 문질러진다. 질척거리는 소리가 울리는 것과 동시에 나른한 숨을 터트렸다. 악마의 날개가 커다랗게 펼쳐지며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개새끼> 마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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