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가위바위보
요즘 원우는 힘이 아주 펄펄 남아도나 보다.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사람들한테 치이고 매니저한테 시달려서 집에 와서 잘만 쳐 자던 새끼가 이제는 꼭 하루 일과처럼 나를 붙들고 쪽쪽 빨아먹느라 신이 나 있다. 처음이 어려웠지 두 번째부터는 일사천리다. 그러면서 나는 슬슬 길들여진다는 게 어떤 건지 깨닫고 있었다. 예전에는 만져도 별 느낌이 없던 곳인데도 원우가 만지기만 하면 반응이 왔다. 허리가 저릿저릿하고 이상한 소리가 튀어나와서 당황스러웠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심지어 평소처럼 원우가 깍지를 껴서 손을 잡기만 해도 느낌이 생소했다. 그나마 차원우가 아주 조금 멍청해서 다행이었다. 손을 잡을 때마다 빼내려고 하고 안을 때마다 밀쳐내면 볼 거 다 본 사이에 쑥스러워서 그러냐고 히죽거리며 좋아하기만 하지 진짜로 왜 그런 건지는 궁금하지도 않은 것 같다.
아무리 그래도 나도 남잔데 그런 식의 스킨십을 하는 게 싫은 건 아니었다. 사실은 좋은 편에 가까웠다. 자취를 같이 하게 되면서 그런 걱정도 하기는 했었다. 혹시라도 나중에 야동이 보고 싶다거나 갑자기 밤에 본능이 들끓는다거나 하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 말이다. 원우가 없을 때 어떻게든 해결하면 될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는데 이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나보다는 차원우의 본능이 들끓는 적이 더 많아서 좀 버겁기는 하지만.
그러나 그 다음 문제는 다르다. 본격적으로 다음 단계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고민이 많아졌다. 여자하고 할 때는 그렇다 치겠는데 남자랑 하면 그걸 어떻게 하지, 구멍이 하나밖에 없으니까 거기에 넣긴 하겠는데, 근데 왜 내 의사는 묻지도 않고 차원우는 나한테 넣으려고 하는 걸까. 아무리 체급에서 차이가 난다고 해도 그렇지, 진도를 쫙쫙 빼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분위기가 뭔가 미묘하게 당연히 차원우가 나한테 넣는 쪽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꼭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중학생 꼬맹이를 데리고 영어 단어를 외우게 하느라 진이 다 빠져서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온 날이었다. 오늘도 하자고 하면 너무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해야겠다. 두뇌 노동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네가 매니저한테 두 시간 동안 꼬박 일대일로 마주앉아서 잔소리를 듣는 기분일 거라고 설명을 해 주려고 준비까지 했다. 그리고 집에 들어가자마자 화장실에서 막 씻고 나오던 원우와 마주쳤다.
“어, 왔냐. 나 씻었어. 얼른 씻고 나와.”
“나 오늘은 피곤해.”
“왜, 중딩 새끼가 너 괴롭혔어?”
“딱히 오늘만 괴롭힌 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오늘은 그냥 자자.”
대답을 안 하는 걸 보니 조금 삐진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재워주긴 할 모양이다. 아침에 샤워 했으니까 그냥 자야지. 이를 닦고 세수만 하고 나와서 침대에 뭉그적거리며 누웠는데 옆에 있던 원우가 갑자기 내 위에 올라탔다.
“야, 나 진짜 피곤하다니까?”
“그냥 가만히 있으면 안 되냐, 내가 알아서 할게.”
“뭘 알아서 해 새끼야, 싫다고.”
“그냥 누워 있으라니까.”
그러면서 뒤통수를 붙들고 키스를 하기 시작한다. 아 새끼가 진짜, 피곤, 아 씨 피곤한데… 원우가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자꾸 닿는 아래가 또 본능적으로 반응하고 있었다. 숟가락 들 힘만 있으면 그 짓을 할 생각을 한다더니 내가 딱 그 꼴이다. 키스는 또 왜 이렇게 잘해, 오늘도 말려들었다. 결국 목을 내주고 어깨를 붙들었다. 쪽쪽 소리를 내면서 핥아 내려가던 원우가 티셔츠 속으로 손을 넣는다. 원우와 진도를 빼면서 제일 의외였던 곳이 가슴이었다. 평소에는 있는지 없는지도 생각 안 하고 살았던 곳인데 원우가 손만 대면….
“아으, 야, 꼬집지, 읏, 꼬집지 마, 아파….”
머리카락이 쭈뼛거릴 정도로 느낀다는 게 문제다. 말로는 아프다고 하는데 밑에선 무릎이 후들거리고 있는 언행불일치의 나를 내려다보면서 원우가 씩 웃는다. 쪽팔리게 진짜. 팔을 들어 얼굴을 가리고 있다가 흡, 하고 숨을 참았다. 피곤하다고 하니까 배려를 해 주는 건지 아니면 그냥 지가 급해서 그러는 건지 바로 손을 내린다. 눈을 감고 있는데도 꼭 빙글빙글 시야가 도는 것 같았다. 평소보다 빠르게 아래에서부터 훑어가며 쭉쭉 짜 올린다. 나는 오래 버티지 못하고 그대로 쏟아 냈다. 오늘은 웬일로 같이 안 하지, 슬그머니 팔을 치우고 내려다보았다가 벌떡 일어났다. 원우가 로션을 손바닥에 짜고 있었다.
“뭐하냐 지금?”
“한 번만 해 보자. 손가락으로 풀어주면 된대.”
“미쳤어? 죽을래?”
“하나만 넣을게.”
원우가 힘이 풀려 있던 내 무릎을 접어 올렸다.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나는 그대로 원우의 어깨를 발로 걷어찼다. 힘 조절이고 나발이고 그냥 직격으로 날아간 발차기에 맞은 원우가 침대 밑으로 굴러 떨어졌다.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하고 끙끙거리더니 고개를 휙 쳐들고 나를 노려본다.
“뭘 잘했다고 야려!”
“야, 내가 지금… 아 존나 진짜.”
“존나 뭐, 존나 뭐 씨발!”
때린 건 미안했지만 성질이 나기는 났다. 어떻게 하는 건지 제대로 아는 것도 아니고, 한 번 해 보자고 미리 말을 해서 합의를 본 것도 아니고, 그 전에 왜 나한테 먼저 넣으려 드냐는 말이다. 성질이 나서 그대로 일어났다. 아래만 대충 닦고 옷을 입는 나를 가만히 보던 원우가 운동화를 신는 걸 보고 나서야 내 팔을 붙들었다. 홱 뿌리치고 밖으로 나왔다.
열은 받는데 풀 길이 없고, 학교에는 당연히 사람이 없을 거고, 골목길을 배회하다가 나는 결국 주머니에 있는 돈을 탈탈 털어서 포장마차로 갔다. 과외 가느라 저녁도 못 먹었는데 이게 무슨 개뻘짓인지 모르겠다. 우동 한 그릇을 게눈 감추듯이 먹고 소주를 땄다. 속은 열이 확 오르는데 머리는 오히려 차분해지고 있었다. 좀 세게 찬 것 같은데, 멍들었을 것 같은데… 그러니까 왜 미리 이야기도 안 하고 하겠다고 덤비고, 이게 다 차원우 때문이다. 씩씩거리면서 남은 소주를 다 먹고 나니까 돈이 없었다. 지갑이라도 가지고 나올걸. 술도 마음대로 못 먹고 존나 처량하다. 아줌마한테 외상 안 되나 물어볼까. 눈치를 보고 있는데 포장마차 비닐 문을 열고 원우가 들어왔다. 귀신같은 새끼, 여기 있는 거 어떻게 알았지, 나는 모르는 척하고 젓가락으로 우동그릇의 남은 건더기를 집어먹었다.
“…밥 안 먹었냐?”
앞에 와서 앉았던 원우가 텅텅 빈 우동 그릇을 보더니 다시 일어났다. 주문을 하는 소리가 들렸다. 계란말이랑 멸치국수, 멸치국수 국물 많이요, 소주 한 병하고, 아 침 흐를 것 같다.
“노은율.”
“…….”
“일단 미안.”
“미안이면 미안이지 일단 미안은 뭐야.”
“어깨가 아직도 존나 아파서 화가 나긴 나는데 미안하니까 일단 미안.”
“…맞을 짓을 했으니까 맞아도 싸.”
“좀 적당히 때리지 그랬냐. 탈골되는 줄 알았다.”
원우가 팔을 휘휘 흔들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리 화가 났어도 손도 아니고 발로 차는 건 좀 심했나. 괜히 국물만 남은 우동 그릇을 휘적휘적 저었다. 말없이 나를 쳐다보고만 있던 원우가 곧 음식 접시를 가지고 왔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계란말이와 멸치국수를 보니까 자존심은 상하는데 너무 배가 고파서 결국 손을 댔다. 왜 이렇게 또 맛있고 난리야, 아줌마 음식 솜씨 존나 사기다.
“노은율.”
“뭐.”
“하기 싫어서 그래?”
“…….”
“나 처음 너한테 진도 더 빼자고 했을 때도 고민 되게 많이 했거든. 지금도 싫어하는 거 괜히 하자고 했나 싶어서 머리 터질 것 같으니까 그냥 싫으면 싫다고 솔직하게 말해라.”
“안 싫어.”
“그럼….”
“근데 왜 나한테 넣냐고.”
원우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겨우 그것 때문에?”
“겨우라니, 씨발, 난 진지하거든?”
“그럼 네가 나한테 넣으려고 했냐?”
“못 넣을 게 뭐가 있는데.”
“너 자세히 본 적이 없어서 모르나 본데 내가 네 꺼보다 커.”
“그럼 잘됐네. 괜히 큰 거 넣다 찢어지지 말고 내 꺼 넣으면 되겠네.”
겁도 없이 음담패설을 지껄이다가 손님 두어 명이 들어오는 바람에 정신을 차렸다. 평소 같았으면 말도 못 꺼낼 이야기였겠지만 열이 받은 상태라 그런지 말을 너무 안 가리고 한 것 같았다. 원우도 신경이 쓰였는지 헛기침을 하더니 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나 너 때문에 야동 존나 많이 봤다니까.”
“꺼져.”
“내가 사내새끼들이 엎치락뒤치락 하는 영상을 살면서 볼 일이 있나 싶었는데 그래도 존나 열심히 봤다고.”
“그래, 잘 저장해뒀다가 나도 보여 줘라. 나도 연습 열심히 할 테니까.”
“진짜 이러기냐?”
“아니, 저러긴데?”
소주 한 잔을 털어 넣은 원우가 한숨을 쉰다. 나도 이건 양보 못하겠다. 팔짱을 낀 채로 더 지껄여보라고 쳐다보았다. 입술을 일자로 꾹 다문 채로 고민을 하더니 원우가 말했다.
“가위바위보 하자.”
“뭐?”
“가위바위보. 단판. 이기는 사람이 넣는 걸로.”
이렇게 중요한 문제를 가위바위보로 정하다니, 하지만 여기서 빼다가는 왠지 말릴 것 같았다. 손가락을 두둑 꺾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물리기 없기다.”
“너나 물리지 마라.”
“단판이야. 묵찌빠 안 된다.”
“어.”
스읍, 숨을 들이쉬었다. 일생일대의 한판 승부. 장판파 다리 위에 홀로 선 장비가 아마 이런 심정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물러서면 끝장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평소에 차원우랑 가위바위보나 하고 놀 걸, 뭘 낼지 감이 안 온다. 남자는 주먹. 그러니까 차원우는 주먹을 낼 거고, 나는 보자기를, 근데 내가 보자기를 낼 줄 알고 차원우가 가위를 내면, 그럼 주먹을, 근데 차원우가 보자기를 내면, 아 씨발 어차피 운이다. 가위 바위 보, 나는 손을 쫙 펴서 앞으로 확 내밀었다. 그리고 눈을 부릅떴다. 가위를 낸 원우가 씩 웃으면서 일어났다. 다급하게 따라 일어났다.
“야 잠깐만.”
“아줌마, 여기 포장 돼요?”
“차원우.”
“아 그냥 봉지에 담아주셔도 되는데.”
“원, 원우야. 원래 가위바위보는 삼세판….”
“네, 자취방 여기 바로 앞이라 괜찮아요.”
“원우야아….”
안 돼, 제발, 한 번만 더 기회를 줘, 팔을 붙들고 매달렸지만 원우는 광속으로 음식을 포장한 아줌마에게 봉지를 받아들고 나를 잡아끌었다. 안 나가려고 버티다가 원우가 허리를 감고 엉덩이를 만지는 바람에 식겁을 해서 튕겨져 나가듯이 포장마차 밖으로 나왔다.
“야, 사내새끼가 치사하게 가위를 내냐?”
“넌 사내새끼 아니라서 보자기 냈냐?”
“…한 판만 더 하면 안 돼?”
“어, 안 돼.”
“워누워누야….”
내 애절한 목소리가 들리지 않느냐 이 나쁜 놈아,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계단을 올라가는 원우를 올려다보았다. 돌아선 원우가 내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은율아.”
“응.”
“애교 한 번 부려봐.”
“…….”
“싫음 말고.”
“자, 자기야.”
오늘을 굴욕의 날로 지정해서 평생 기억하며 살 테다. 나는 이를 악물고 억지웃음을 지었다. 원우가 고개를 저었다.
“억지로 하는 거 다 티난다.”
“…자기야아아. 워누야아.”
“…….”
“한 번만 봐주세요, 자기야.”
허리를 붙들고 눈웃음을 쳤다. 원우가 고개를 끄덕인다. 어휴 살았….
“애교 별로네. 빨리 가자. 국수 불어 터지기 전에.”
“…야 이 씨발놈아, 얻어터질래?”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가는 원우의 등을 퍽퍽 내리치다가 억울함을 못 이기고 으허엉, 하고 소리를 질렀다. 누군가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고 조용히 좀 하라고 욕을 했다. 오늘 나 건드리지 마라 이 새끼들아, 고래고래 되받아치는 내 입을 틀어막은 원우가 말했다. 힘을 왜 여기서 빼냐, 들어가서 빼야지. 손이 잡혀서 질질 끌려가면서도 나는 분통함을 못 이기고 쌍욕을 줄줄 내뱉었다.
***
그래도 그날은 유야무야 넘어갈 수 있었다. 그 다음날 차원우는 나에게 그동안 수집한 야동을 공개했다. 혹시라도 내가 보면 놀랄까봐 다른 파일명으로 저장해놨다는 폴더들에는 갖가지 종류의 동영상 자료가 가득했다. 논병아리 동고비 개개비, 새장이 되어 있는 화면을 못 쳐다보겠어서 삭제를 하려다가 딱 걸려서 한 번 혼나고 나니까 의욕이 안 생겼다. 토익 보카 제 일 강, 국제 경영의 이해 인강 자료, 건전한 영상 제목을 하나씩 클릭할 때마다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저 자세가 편한가.”
몰라 씨발놈아. 살다 살다 남자 둘이 떡치는 걸 구경하게 되다니 아이고 내 팔자야. 엄마 그냥 집 근처 학교 들어가서 장학금 받고 엄마 밥 먹으면서 다닐 걸 그랬어요. 앞에 앉혀놓는 바람에 고개도 못 돌리고, 나는 앙앙거리는 남자를 도저히 못 보겠어서 눈을 질끈 감았다.
“좀 진지하게 봐라. 잘 익혀둬야 써먹지.”
“…….”
“저 자세가 되나? 아플 것 같은데.”
밑에 깔린 남자를 엎어놓고 뒤에서 퍽퍽 뒤치기를 하는 걸 보더니 원우가 일시정지를 했다. 공부를 그렇게 했어봐라, 기숙사에 들어가고도 남았지.
“근데 한 번 하고 나면 다리랑 허리 존나 아프겠다.”
“…….”
“왜 말이 없어?”
“…말 시키지 마.”
“너무 그러지 마라. 정정당당하게 가위바위보로 승부를 봤으면 결과에 승복을 해야지.”
뒤에서 목덜미에 입술을 비비던 원우가 영상을 껐다. 살았다. 벌떡 일어나려는데 허리를 붙들어 다시 앉힌다.
“아 왜!”
“하나만 더 보자. 마주 보고 하는 거 있….”
“혼자 실컷 봐 새끼야!”
뒷머리로 박치기를 해서 원우를 떼어놓고 나는 후다닥 도망쳤다. 도서관 가서 공부나 해야지. 이딴 공부 말고 매체기호학에 대한 건전한 공부. 주섬주섬 가방을 싸서 나가려고 하다가 현관문 앞을 딱 막아선 원우 때문에 멈칫했다.
“노은율.”
“…….”
“오늘 과외 없지.”
“…….”
“내일 토요일이고.”
“…….”
“오늘 하자. 나 아르바이트 시간 바꿀 테니까.”
그래, 아주 선전포고를 해라. 내용증명이라도 보내지 그러냐. 나는 원우를 밀치고 밖으로 나왔다. 오늘 술 먹자고 할까, 밤새서 먹자고 하면 누구 하나는 먹어주지 않을까, 근데 그랬다가 차원우가 쫓아와서 그거 하기로 했는데 왜 안 오냐고 난동을 부리면… 내가 왜 이런 신세가 됐을까.
결국 수업이 끝나고 나는 자취방으로 갔다. 차라리 차원우보다 먼저 와서 문을 걸어 잠가 놓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실패했다. 오늘 차원우가 오전 강의만 있었다는 걸 잊고 있었다. 침대 맡에 뭔가를 차곡차곡 쌓아 놓고 있는 원우를 보고 문을 쾅 닫고 뛰어나오려고 하자마자 뒤에서 붙잡혀 집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올 것이 왔구나. 혼이 너울너울 날아가고 있었다. 멍한 채로 샤워를 하고 멍하게 침대에 앉아서 멍하게 허공을 쳐다보며 넋을 놓고 있는 동안 준비를 다 했는지 원우가 옆에 와서 앉았다.
“은율아.”
“…….”
“싫은 거 아니라며.”
“…어.”
“그럼 가위바위보 한 판 더 할래?”
“어.”
잽싸게 옆으로 돌아앉았다. 원우는 어이없어 하고 있었지만 내 알 바 아니었다. 손가락을 풀면서 가위바위보를 할 준비를 했다. 이번엔 머리 안 굴려야지.
“이번엔 진짜 끝이다.”
“알았어.”
“삐지기 없어.”
“어.”
심호흡을 했다. 가위, 바위, 보.
“악!”
“삐지기 없다고 했다.”
지난번에 가위를 내길래 두 번은 안 낼 줄 알았다. 나는 손가락을 쫙 펴고 있는 내 손을 부여잡고 크흑, 하며 침대에 엎어졌다. 망할 보자기, 내가 두 번 다시 가위바위보 할 때 보자기 내나 보자,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똑같은 걸로 두 번을 지니까 더 열이 받았다.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침대 위로 올라온 원우가 머리카락을 살살 쓰다듬는다.
“아프다고 하면 안 할게.”
처음 하는 주제에 차원우는 자신감이 넘치고 있었다. 조금만 아프면 바로 엄살떨어야겠다. 나는 정자세로 침대에 누웠다. 슬금슬금 가까이 온 원우가 씩 웃는다.
키스를 하는 동안에도 내내 그 생각이었다. 엄청 아프다고 하던데, 피도 난다고 하던데, 제대로 걷지도 못한다고 하던데, 차원우가 정말 아프다고 하면 그만두려나, 눈 뒤집혀서 계속 하겠다고 하면 어떡하지, 나는 적당히 발차기 각도를 조절했다. 그러다가 혀를 깨물렸다. 입을 손으로 막고 노려보자 원우가 머리를 쓸어 넘겼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딴생각 좀 그만해라. 나 좀 서운하려고 그런다.”
“…….”
“억지로 하는 거 아니잖아.”
“…안 해 봐서, 아프다고 그러니까.”
“안 아프게 하겠다니까.”
“너도 안 해 봤다며.”
“원래 하다 보면 하게 돼 있어.”
조별 수업을 할 때 꼭 저런 놈들이 하나씩 있다. 발표 안 해 보셨잖아요, 하다 보면 하게 돼 있어요, 그러다가 발표를 말아먹고, 점수는 개떡이 되고, 나는 분노하고….
그래도 중간 단계까지는 많이 해 봐서 그런지 원우는 꽤 능숙하게 진도를 뺐다. 유두를 빨고 허벅지를 쓰다듬는 게 괜찮기는 한데 걱정이 태산이라 그런지 딱히 엄청 좋지는 않았다. 딴에는 열심히 공을 들이고 있어서 조금 미안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무서운데 어떡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다가 아까부터 반응이라곤 하나도 없는 내 것을 쓰다듬던 원우가 결국 몸을 일으켰다. 아, 화났다. 화난 표정이다.
“그냥 자라.”
“어?”
“못하겠다.”
“…….”
“나 혼자 좋아 죽는데 뭘 하냐. 나중에 하자.”
“아니, 야, 그러니까… 내가 너무 긴장해서….”
“그러니까 너 나중에 긴장 안 할 때 하자고.”
“…….”
“나 도서관 가서 리포트 좀 쓰고 올게. 책 빌릴 거 있는데 그냥 왔거든.”
내 위로 이불을 덮어 놓고 원우가 나가버렸다. 멀뚱히 앉아 있다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자국은 잔뜩 남았는데 아직도 반응이 없다. 내가 고자도 아니고 이게 뭐냐 대체. 나는 머리카락을 마구 쥐어뜯었다.
그 뒤로 원우는 나를 건드리지 않았다. 그냥 건드리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키스도 안 하고 심지어 손도 안 잡았다. 화가 많이 나서 그러나 싶었지만 행동은 평상시와 똑같았다. 자기 전에 같이 누워 있다가 조금이라도 옆으로 붙으려고 하면 아예 벽으로 싹 피해버리면서도,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밥을 차려주고 열람실까지 책 셔틀도 해 줬다. 점점 마음이 불편해지고 있었다. 사귀는 사이에 당연히 그렇고 그런 걸 해야 한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렇게 하고 싶어 했는데 내가 너무 싫어하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화가 날 것도 같았다. 정작 내가 싫어서 그렇게 굳어 있었던 게 아니라는 것이 더 문제다. 싫지는 않다고 하면서 하자고 하면 벌벌 떨기나 하고. 나라고 그렇게 긴장하고 싶어서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지만 생각을 할수록 점점 미안해졌다.
결국 나는 새장 폴더를 열어서 먼저 공부를 시작했다. 어떻게 하는지 보고 나면 좀 괜찮을 것 같아서였다. 근데 보면 볼수록 엄두가 안 났다. 영상을 몇 개 보지도 못하고 끄고 나니까 더 심란해졌다. 어디 털어놓을 곳이 있다면 털어놓기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털어놓을 곳이 없었다. 답답함이 차곡차곡 쌓인 채로 시간이 흘렀다. 시험 기간은 바빠서 신경을 못 쓰고, 시험이 끝나고 나서는 진이 빠져서 집에 오면 잠만 쳐 자고, 그러다가 공모전 준비하는 사람들끼리 모임이 있어서 강남까지 나갔다 오던 날이었다. 든든한 아군이 하나 생겼다. 충동적으로 애인이 남자라고 고백을 했는데도 네 애인이 남자라서 다행이라고, 그럼 수업 같이 들을 수 있는 거냐고 생뚱맞은 소리를 한 소정이었다.
그동안 원우에 대한 이야기를 아무한테도 못하고 살았더니 답답해 죽을 지경이었는데 한 번 물꼬기 트이고 나니까 못할 말이 없었다. 어떻게 사귀게 되었는지 지난 몇 달 간의 역사를 줄줄 털어놓다가 최근 하고 있는 고민까지 꺼내놓게 되었다. 분명 아까 전까지는 술 때문에 토할 것 같다고 하더니, 역시 소주를 먹고 난 다음엔 맥주로 갈증을 해소해 줘야 한다며 오백 두 잔을 순식간에 해치운 소정이는 나름대로 진지하게 내 고민을 들어주었다. 누군가에게 말을 하고 나니까 속이 다 시원했다. 답이 따로 안 나와도 그냥 이야기를 한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졌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나도 하고 싶기는 한데 잘 안 된다고 말하면서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키자 가만히 나를 보고 있던 소정이가 빙긋 웃었다.
“네 애인이 지난번에 그 친구야? 죽 사가지고 왔던 애.”
“응.”
“걔가 너한테 신경 많이 쓰나 보다. 보통 그런 것까지 일일이 신경 써서 챙기진 않던데.”
생각해 보니 그때 죽까지 사왔는데도 고맙다는 말 한 번 안 하고 그냥 넘어갔었다. 미안할 일이 하나 더 생겼다.
“어쨌든 그럼 분위기를 한 번 잘 잡아봐.”
“첫키스할 때도 생각한 건데 남자는 분위기가 아니라 그냥 꼴릴 때… 아니, 땡길 때 해야 돼.”
“그 땡길 때라는 게 분위기로 생기는 거라니까. 땡길 만한 분위기를 만드는 거라고.”
“그게 마음대로 되냐.”
“땡기는 것도 마음인데 왜 마음대로 안 돼?”
귀가 마구 팔랑거리기 시작했다. 그런가?
“작정하고 자 이제 하자, 준비, 시작, 이렇게 하지 말고 좀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응.”
“…근데 소정아, 너 이런 얘기 들으면 기분 나쁘지 않아?”
“안 나쁜데? 왜?”
“아니, 내가 좀 너무 급하게 얘기를… 많이 했나 싶어서.”
그냥 적당한 선에서 자를 걸 그랬나. 입이 방정이다. 기껏 말은 다 해놓고 후회를 하게 되는 내가 참 멍청하다 싶어서 속으로 셀프 면박을 주고 있는데 소정이가 나를 불렀다.
“은율아.”
“어.”
“네가 네 얘기 해 줬으니까 나도 내 얘기 조금만 할게.”
“어? 어.”
맥주잔을 테이블에 탁 내려놓은 소정이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없었다. 나는 괜히 긴장해서 테이블 밑에서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나 검정 봤잖아.”
“아, 어, 알아.”
“고등학교 자퇴했거든. 왜 자퇴한지 알아?”
“아니.”
“내가 정말 친하다고 생각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걔한테 내 비밀을 다 털어놨거든. 내가 사실 중학교 때 왕따를 당했다. 그래서 우울증이 좀 있었다. 지금도 가끔 힘들다. 그래도 네가 친구라서 다행이다, 이렇게.”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매일 웃고 다녀서 그런 일이 있었을 줄은 몰랐다. 나는 눈만 깜빡이면서 아무 말도 못했다.
“근데 걔가 여기저기 다 떠벌리고 다녔더라고. 쟤 중학교 때 왕따였다더라, 정신병자라더라. 그 이후로 아무한테도 내 얘기 안 했어. 남한테 내 비밀 얘기하는 게 그렇게 무서운 일일 줄 몰랐거든.”
“…어.”
“너도 무섭지만 답답해서 나한테 얘기한 거잖아.”
처음에는 그냥 친한 같은 과 친구 정도로 생각했다. 성격이 밝고 착한 데다 책임감도 있고 공부도 잘해서 어차피 같은 과니까 계속 같이 학교 다니면 괜찮겠다, 하고 생각했었고. 그런데 한소정은 내 생각보다 속이 깊은 녀석이었다. 여태까지 아무도 나를 이렇게 대해 준 적이 없었다. 같이 어울리면서 돌아다니는 친구들은 많았어도 속을 털어놓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원우를 만나기 전까지, 그리고 소정이와 이런 이야기를 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는 아마도 그래서 내가 혼자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외로웠고, 그래서 쓸쓸했다. 이제는 아니지만.
“은율아. 속마음 털어놨다가 그렇게 되는 기분이 어떤 건지 내가 너무 잘 알아.”
“…응.”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구구절절 미사여구가 붙은 말도 아니었다. 걱정하지 마, 그 한 마디에 나는 거짓말처럼 안심하게 되었다.
“…뭐 더 먹을래?”
“닭강정.”
“어, 시켜.”
자취생의 피 같은 돈을 빼서 비싼 닭강정을 사줄 가치가 있는 상담이었다. 그리고 닭강정을 백만 개를 사줘도 아깝지 않을 친구가 생겼다. 나는 바보처럼 웃었다. 정말로 속이 편해졌다.
다음날 나는 아침부터 줄줄이 이어지는 시험을 보러 갈 준비를 하는 원우를 붙들었다. 팔을 빼내려고 하는 걸 꽉 붙잡고 진지하게 말했다.
“차원우. 오늘 너 피곤한 거 알겠는데, 그래도 오늘 하자.”
원우가 흠칫하더니 내 머리를 툭 밀었다. 장난인 줄 알았나 보다.
“됐다, 억지로 그럴 필요 없….”
“억지 아니니까 오늘 하자. 내가 진짜 하고 싶어서 그래.”
“…….”
“카페로 갈게, 이따가. 같이 오자.”
“오지 마. 새벽에 끝나는데.”
“괜찮아. 너 알바 하는 거 보고 싶어.”
눈을 동그랗게 뜬 원우가 곧 피식 웃었다. 땡기는 분위기를 조성해 보기 위해 한 번 해 본 말인데 됐는지 안 됐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정말 오랜만에 웃는 원우를 보니까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루 종일 집에서 이것저것 찾아보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 씻는 것도 공들여서 씻었고, 관장인지 뭔지 해야 된다고 해서 그것도 하고, 원우가 사다 놓은 젤과 콘돔도 꺼내 놓고, 침대에 얇은 이불도 하나 더 깔아 놨다. 그리고 원우가 아르바이트를 할 시간이 되었을 때 슬슬 집에서 나왔다.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안에서 뭔가 큰 소리가 났다. 가게 구석에서 매니저가 허리에 손을 얹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그 앞에서 쓴소리를 듣고 있는 사람은 뒷모습만 봐도 알아볼 내 애인이다. 다른 아르바이트생들이 눈치를 보며 슬슬 피하고 있다. 다른 직원들도 있고 손님들까지 있는데 왜 저렇게 대놓고 혼을 내냐, 기분이 나빠졌지만 어쭙잖게 말렸다가는 원우에게 더 좋지 않을 것 같아서 일단 근처 테이블에 앉아 지켜보았다.
“그래서 내가 주문 똑바로 받아야 된다고 했지, 이 새끼야. 자꾸 넋 빼고 다녀라, 어?”
“…죄송합니다.”
“말귀 못 알아 듣냐? 카페라떼, 이게 어려워? 라떼가 어려워? 영어라서 존나 어려워?”
병신아 라떼 영어 아니거든, 멍청한 새끼가 무식 인증 하고 있네, 나는 혼자서 중얼중얼하면서 매니저를 노려보았다.
“월급을 받으면 일을 똑바로 해야지, 너 아까 커피 내리다가 엎었지, 그게 다 얼마인 줄 알아?”
얼마 안 하겠지, 원가 존나 싼데 자릿세 처받는 게 어디 하루 이틀이냐.
“너 아니면 쓸 사람 없는 줄 알아?”
지랄 때문에 나간 아르바이트생이 몇 명인 줄은 아냐, 내가 원우한테 다 들었다.
“멍청한 새끼가 귓구멍이 쳐 막혔나, 아니면 눈병신이냐? 주문서를 똑바로 못 봐?”
아니 근데 보자보자 하니까 저 새끼가 남의 멀쩡한 애인한테 병신 소리를….
“넌 뭔데 자꾸 꼬라봐 이 새끼야!”
강렬하게 노려보고 있던 내 눈빛을 알아챘는지 나한테 불똥이 튀었다. 나는 어이가 없어서 입을 떡 벌렸다. 새끼? 나한테 지금 새끼라고 했냐?
“손님인데요.”
“손님이면 다야?”
“다인데요.”
“뭐 이 새끼야? 어, 그래. 너 지난번에 대타 뛰러 왔던 그 새끼구나, 씨발 아주 쌍으로 일은 더럽게 못해서…!”
“일 못한다고 매장에서 직원한테 쌍욕을 합니까? 손님들 다 보는 데서?”
“그래, 쌍욕 좀 했다, 못하는 직원 관리하는 게 내 업무인데 뭐 문제 있냐? 어디서 말대꾸…!”
“못하는 직원한테 쌍욕하는 업무도 있어요?”
성큼성큼 다가온 매니저가 내 멱살을 콱 잡았다. 그래, 한 대 쳐라, 합의금이나 받자, 합의금 받아서 우리 원우 고기 사줘야지,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쳐다보고 있는데 팔이 휙 떨어져 나갔다. 헉, 나는 뒤로 몇 발자국을 물러났다. 차원우 열 받았다. 미리 말하는 걸 까먹고 있다가 당일에 엠티 간다고 했을 때 분노해서 상다리 부숴 먹고 그릇 집어 던지던 그 차원우다. 말리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
“야 이 개새끼야.”
“…차원우, 너 지금 나한테 개새끼라고 했냐?”
“그래 이 호로새끼야, 내가 죄송하다고 굽실대니까 아주 존나게 만만하냐? 이 개병신 새끼가….”
눈에서 불꽃을 일으키고 있던 원우가 숨을 한 번 삼켰다. 욕 폭탄이 나오기 직전이다. 나는 얼른 원우의 입을 막고 뒤로 질질 끌었다. 욕 폭탄이 한 번 나오기 시작하면 물건 부수는 건 예삿일인데 이 가게에 물건 값까지 물어주게 되면 속이 더 뒤집힐 게 뻔했다. 매니저가 삿대질을 해가며 쫓아 나오는 걸 다른 아르바이트생이 말렸다. 덕분에 돈은 안 물어줘도 되겠다. 가게 밖으로 나와서까지 팔다리를 휘적거리면서 분노 표출을 하고 있는 원우를 뒤에서 껴안았다. 씩씩거리면서 콧김을 내뿜던 원우가 휙 돌아본다. 원우가 뭐라고 말하기 전에 내가 먼저 선수를 쳤다.
“자기야.”
이글거리던 눈빛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애교 별로라며, 새끼가 뻥치기는. 아 쪽팔려.
“집에 가자.”
“…….”
“안 가? 나 혼자 가?”
눈까지 새빨개질 정도로 열이 받아 있던 원우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너 때문이야.”
헐, 내가 뭘, 기껏 말려놨더니, 나는 억울해졌다.
“네가 아침에 그러는 바람에 오늘 하루 종일 시험도 말아먹고 일도 제대로 못 했다고. 설레서.”
“그게 왜 내 탓이냐, 네가 설렌 탓이지.”
“안 설레겠냐 그럼, 네 입에서 하고 싶다는 소리가 나왔는데.”
“…….”
“왜 웃어, 좋냐?”
입술을 꾹 깨물고 너무하다는 눈빛을 따갑게 쏘아 보내는 걸 보니까 웃음이 안 나올 수가 없었다. 집에서 화내는 차원우는 차원수 같아서 짜증이 났었는데 밖에서 이러는 걸 보니까 은근 좀 멋있기도 하고 말이지. 원우의 볼을 살짝 쓰다듬었다. 아, 진짜 땡기는 분위기가 이런 거구나. 귀여워서 뭐라도 해 주고 싶어진다.
“어, 좋아.”
“…….”
“좋아한다고, 원우야.”
대답도 안 하고 한참 쳐다보기만 하더니 원우가 내 손을 잡았다. 손 한 번 참 오랜만에도 잡는다. 애인 사이가 뭐 이래, 나는 원우에게 끌려가면서도 실실 웃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키스를 하거나 뭐라도 할 줄 알았는데 원우는 얌전히 나를 침대에 데려다 놓고 샤워를 하고 나왔다. 그동안 나는 계속해서 전화가 오는 원우의 핸드폰을 아예 배터리까지 분리를 해서 던져 놨다. 번호를 보아하니 가게에서 전화가 오는 것 같은데 어차피 때려 칠 거 관심도 없고, 여태까지 일한 월급 안 준다고 하면 노동청에 신고를 해버릴 거다. 혹시 몰라서 내 핸드폰까지 아예 꺼 놨다. 화장실에서 나온 원우는 속옷도 안 입고 수건으로 대충 아래를 두르고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쳐다봤다가 헉, 하고 고개를 돌렸다. 수건이 존나 입체적이네, 하하.
침대로 올라오자마자 손을 잡아서 옆에 붙들어놓고 키스를 하는 걸 받아내느라 고개가 다 뒤로 꺾일 지경이었다. 들어올 땐 안 그러더니 급하기는 급했나 보다. 등을 토닥이면서 달래자 원우가 입술을 떼어내더니 그르렁거리면서 말했다.
“너 나한테 함부로 손대지 마라.”
“왜?”
“지금 참느라 죽을 것 같거든.”
“죽지 마. 해 보지도 않고 죽으면 되겠냐.”
“…말도 하지 마.”
그러더니 아래를 콱 잡는다. 말을 하고 싶어도 못 하겠다. 으헉, 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건성으로 목을 타고 내려간 입술이 바로 가슴에 닿았다. 지난번에는 아무리 건드려도 반응이 없더니 오늘은 닿기만 해도 등까지 땀이 나는 것 같았다. 다른 건 하지도 않고 그냥 빨기만 했는데 나는 결국 또 잔뜩 세운 채로 허리를 떨었다.
“한 번 빼고, 하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알아서 하겠지. 어떻게 하는 건지 몰라서 고민을 했었는데 될 대로 되라는 식이 되니까 마음이 편했다. 원우 말이 맞다. 하다 보면 다 되는 거지. 원우가 자기 것을 몇 번 문지르더니 내 것을 겹쳐 쥐었다. 아, 처음 이렇게 하자고 한 건 나인데 할 때마다 못 견디겠다. 허리가 저절로 흔들리기 시작한 걸 알았지만 참을 수가 없었다.
손에 한 번 쏟아 내고 나서 나는 힘이 빠져 늘어졌다. 다음 단계를 나갈 차례가 되니까 또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이번엔 안 된다. 긴장을 풀기 위해 소정이가 알려준 라마즈 호흡을 시작했다. 근데 이거 임산부가 하는 거라고 했는데, 어쨌든 일단 하고 보자. 그때 축축한 게 밑에 닿았다. 엉덩이를 꽉 움켜쥔 원우가 몸을 겹치더니 키스를 해 왔다. 키스보다 아래에 신경이 쏠려 있어서 집중이 안 됐다. 곧 끈적거리는 손가락이 입구를 슬슬 문지르더니 푹 찌르고 들어왔다. 입을 떼지 않았으면 소리를 지르다 원우의 혀를 깨물 뻔했다.
“악!”
“아파?”
“기, 기분 나빠, 아!”
당황해서 나는 원우의 목을 붙들고 매달렸다. 사실 좀 아프기도 한데 아프다고 하면 안할 것 같아서 말을 못하겠다. 안에서 꿈틀거리기 시작한 손가락이 두 개로 늘어났다. 눈도 못 뜨고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동영상 보니까 막 야한 소리도 내고 하던데 내 입에서는 낑낑거리는 멍멍이들 신음소리가 나왔다. 가위바위보 한 판만 더 하자고 할 걸, 기분 진짜 나쁘다. 나도 모르게 안에서 원우를 밀어낼 때마다 손가락을 꾸역꾸역 쑤셔 넣고 잘게 흔들던 원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이론 가지고는 안 되나.”
“되겠냐, 윽!”
“그럼 실전을 좀 많이 해 보면 되지 않을까.”
“실전이고 나발이고, 안, 안 돼, 넣지 마.”
“풀어줘야 된대. 조금만 참아봐.”
손가락으로 이러면 내 건 어떻게 들어가냐, 귓가에서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하얗게 질렸다. 그러게, 네 건 어떻게 넣냐, 말도 안 된다. 그래도 그 와중에 젤을 엄청 쏟아 부어서 그런지 아래가 조금 느슨해지긴 했다. 원우가 손가락을 한 번에 빼냈다. 벌어졌던 구멍이 오므라드는 느낌에 몸이 덜덜 떨렸다. 그리고 곧 뭉툭한 끝이 닿았다.
“야, 아파!”
“뻥치지 마, 안 넣었거든.”
“아, 아플 예정이야.”
“알았어, 진짜 아프면 말해.”
“잠깐만, 원우야, 아플 것 같… 허억.”
아프면 말을 하라니, 뭐 이런 개소리를. 말을 할 수가 없다. 나는 숨도 못 쉬고 고개를 젖혔다. 기어이 반 정도를 집어넣은 원우가 내 등을 쓸었다. 숨통이 트였을 때 간신히 한 마디를 뱉었다.
“아, 아프….”
“미안, 안 들려.”
“원, 우야….”
“응. 그건 들려.”
이 씨발놈이, 아프면 안 한다며, 안 들리는 게 어디 있냐, 아프다고 하면 안 할 것 같아서 걱정을 했던 내가 한심해졌다. 원우의 어깨를 손으로 내리치다가 또 들어오는 것 같으면 때리지도 못하고 그대로 살을 쥐어뜯었다. 내장이 압축 파일이 되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넣어도 되나, 안 되지 않을까, 안 될 것 같다, 그러니까 제발 그만 넣어, 언제까지 넣을 건데, 왜 안 끝나….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가 다리가 벌어지는 것 같아 눈을 뜨자 땀을 뚝뚝 흘리고 있는 원우가 보였다. 내가 눈을 뜬 걸 보고는 원우가 귓바퀴를 입술로 문질렀다. 흐윽, 하고 몸을 떨었다. 다 넣었어, 하고 말하는 걸 멍청하게 진짜로 믿고 조금 안심을 하고 숨을 내쉬려던 때였다. 어중간하게 걸쳐 있던 원우의 것이 한 번에 끝까지 밀려 들어왔다.
“아으윽!”
“미안.”
“아, 아프, 진짜 아파, 악!”
찢어졌다. 이건 백 퍼센트 찢어졌다. 나는 침이 흐르는 것도 모른 채로 입을 벌리고 떨었다. 아픈 것도 아픈 건데 벌어진 감각에 도저히 적응을 할 수가 없었다. 내 몸도 그걸 느끼고 있었는지 알아서 원우를 밀어내려고 내벽이 좁혀졌다. 그러자 원우가 한 번을 더 콱 찔렀다. 비명도 못 지르겠다. 눈물이 펑펑 솟았다.
“은율아, 후우… 울지 마.”
그래도 네가 양심은 있구나. 원망스러운 시선으로 원우를 올려다보았다.
“너 우니까, 존나… 좋아서 미칠 것 같아.”
양심도 없는 새끼였다. 그걸 너무 늦게 알았다. 그리고 원우가 내 허리를 두 손으로 붙들었다.
번개를 한 열 번 정도 맞은 것 같았다. 너무 아파서 눈앞이 번쩍거렸던 것도 그렇고, 몸이 쪼개질 것 같은 것도 그렇고. 아예 원우가 움직일 때의 기억이 통째로 날아갔다. 정신을 차린 건 한참 뒤였다. 내 다리를 접어 올리고 밑에다 약을 바르고 있던 원우와 눈이 마주쳤다. 씨발, 놈아, 간신히 뱉은 목소리는 죄다 쉬어 있었다. 원우가 머쓱하게 웃더니 내 옆에 누워서 나를 껴안았다. 그거 조금 움직인 것뿐인데도 온몸이 죄다 난리를 쳤다. 허리를 꾹꾹 눌러 주면서 원우가 말했다.
“대충 알았어.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다음엔, 안 해….”
“진짜야. 오늘은 너무 덜 풀고 들어가서 그래. 내가 좀 급해서.”
“죽을래….”
“한 번 밖에 못해 봤는데 죽으면 되겠냐.”
다음엔 진짜로 기분 좋게 해 줄게, 요령 생기면 괜찮을 거야, 여태까지 들었던 목소리 중에 제일 다정한 목소리로 속삭이면서 등을 토닥이는 손길에 열은 받는데 잠이 오기 시작했다. 억울하다. 더 욕하고 싶은데. 뻣뻣한 팔을 들어서 원우의 등을 껴안았다. 좋냐, 나쁜 놈아, 난 죽겠는데, 잠이 들기 직전에 웅얼거리자 원우가 웃었다. 이 새끼가 이렇게 상냥한 새끼였나 싶을 정도로 따뜻한 손길을 받으며 피식피식 웃다가 겨우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