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04. 미안해, 괜찮아) (17/43)

04. 미안해, 괜찮아

01

어두운 회의실 안을 밝히고 있는 빔 프로젝트 앞에 선 철호 형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회의실 안은 조용했다. 옆에서 정아가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다리를 떨다가 정아에게 허벅지를 한 대 맞고 나서 나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면서 초조함을 견디고 있었다. 한참 그렇게 적막하던 회의실에 학수고대하던 말이 울렸다.

“오케이, 됐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마 이 정도의 파워풀한 인사는 예비군 훈련 끝날 때나 나올 것이다. 너무들 좋아하는 거 아니냐면서 최 실장이 허허 웃건 말건 축제 분위기가 된 회의실 안에서 사람들은 서로 축하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산더미 같은 업무에서의 해방에 대한 축하 인사였다. 당분간 철야 없다, 당분간 야근 없다, 넋이 나간 사람처럼 기획안 자료를 정리하며 중얼거리는 정아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전시회 홍보 건으로 최 실장과 회의를 하는 것은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다른 전시회 기획 때문에 프랑스로 들어가 봐야 한다고 뜬금없이 이야기를 해서 우리를 당황시키더니 어제는 아예 자기 업무를 봐줄 후임을 데리고 와서 미리 인사까지 시켰다. 그나마 우리 팀에서 해야 될 일은 거의 마무리되었고 실행팀에서 해야 할 업무만 남았기에 망정이지 하마터면 새로 온 후임과 처음부터 회의를 다시 해야 할 뻔했다. 어쨌거나 우리가 할 일은 끝났다. 끝난 거다. 끝나는 날이 오긴 오는구나.

그동안 고생한 것도 있고, 지금까지는 일이 잘 흘러가고 있으니까 마지막으로 이차 삼차에 막판까지 쏜다면서 최 실장이 카드를 꺼내 흔들었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최 실장으로부터 벗어날 수만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 것 같았던 사람들의 눈빛이 갑자기 초롱초롱해졌다. 무서운 속도로 오늘의 코스를 짜는 걸 보면서 나는 피식 웃었다. 잘하면 최 실장 오늘 차 팔고 걸어 들어가야 될지도 모르겠다. 처음 일을 맡기면서 밥을 살 때부터 이 인간이 먹고 노는 데에 돈을 안 아끼는 인간이라는 것을 다들 머릿속에 접수한 상태이기 때문에 오늘 아마 작정을 하고 처먹고 처마실 텐데.

기획안을 정리해서 나오는 사이 인파에 둘러싸여 있던 최 실장이 쏙 빠져나와서 나를 불렀다. 그냥 무시할까 하다가 어차피 오늘 지나면 볼 일도 없을 것 같아서 져주는 셈 치고 휴게실로 갔다. 최 실장이 커피를 뽑는 동안 나는 원우에게 짤막한 문자를 보냈다. 회식있음, 새벽귀가, 퇴근하기 직전이라 바쁜지 답이 바로 오지 않길래 핸드폰을 막 집어넣었을 때 최 실장이 따끈하게 김이 나는 자판기 커피를 내밀었다.

“김 팀장 오면 잘 부탁한다고 실행팀 팀장님께 전해 주세요. 그 친구가 회사 시스템에는 익숙하지 않을지 몰라도 이쪽에 조예가 깊어서 실행팀 업무에는 그 친구가 나을 겁니다. 아는 게 엄청나서 아이디어도 많을 거고요.”

“실행팀 팀장님 성격 좋으니까 알아서 잘해 주시겠죠. 인수인계 때문에 짜증이야 내시겠지만.”

“그게 성격 좋은 겁니까?”

“성격 좋은 사람은 짜증도 못 내요?”

“그거야 그렇지만요. 어쨌거나 잘 부탁합니다.”

갑자기 담당자가 바뀌는 건 복잡해져서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래도 최 실장과 마무리 작업까지 내내 같이 했다가는 차원우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이렇게 된 게 다행인가 싶기도 했다. 뭐 후임이 괜찮은 놈이라고 하니까… 근데 그건 최 실장 기준이라 믿음이 안 가기도 하고.

“미리 확인도 받아놨으니까 따로 컨펌 준비할 필요 없이 오늘 회의한 대로 그냥 진행해 줘도 되고요. 나랑 취향 비슷한 녀석이니까 그렇게 깐깐하게 굴지는 않을 겁니다.”

“최 실장님 겁나 깐깐하거든요.”

“전 원래 남자 보는 눈만 깐깐합니다.”

“최 실장님 후임으로 오시는 분도 남자 보는 눈이 똑같이 깐깐하신 건 아니죠? 저 긴장 좀 미리 해두게요.”

“은율 씨 도끼병 좀 있나 봐요?”

“네, 애인이 절 워낙 어화둥둥 우쭈쭈 해가며 키워놔서요.”

“말로는 못 이기겠네요.”

뭘 새삼스럽게, 나는 우쭐해졌다. 못 이기겠어서 말을 안 하는 건지 아니면 또 다른 승부수를 생각하고 있는 건지 최 실장은 조용히 커피만 마셨다. 침묵이 어색하기도 하고 무슨 말이 나올지 슬슬 부담스러워서 자리를 피해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같이 일하는 동안 즐거웠습니다.”

“전 죽는 줄 알았는데 한 사람이라도 즐거웠다니 다행이네요.”

“그래도 안 죽었잖아요.”

“그래요, 그거 참 좋은 일이네요.”

“크지 않은 회사여서 처음 광고 맡길 때 고민 많이 했었습니다. 그래서 더 채근한 것도 있고요. 이왕이면 우리 쪽에서 찍 소리도 안 나오게 잘해 줬으면 했어요. 그래야 제가 어디 가서 은율 씨 자랑하기 편하지 않겠습니까.”

덕분에 일이 줄줄 들어와서 우리 이사님이 요즘 기분 최고조이긴 하다. 이번 일을 잘만 하면 더 많은 기회가 생길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다들 그 지옥 같은 스케줄도 견디고 악착같이 달라붙어 일을 했던 거였다. 좋은 방향으로 마무리할 수 있게 되어 나도 고맙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내가 진지하게 고맙다는 말이나 감사하다는 말을 꺼내면 최 실장은 그걸 나 너한테 관심이 좀 생겼다는 정도로 확대해석 할 것 같은 인간이다.

“최 실장님 가시니까 좀 서운하네요.”

최 실장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보았다. 역시 그 속이 뻔하지, 기대할 걸 기대해라, 나는 한숨을 쉬었다.

“우리 팀이 기껏 최 실장님 같은 사람한테 시달리면서 소처럼 일해서 만든 기획안인데 실행팀은 후임으로 오시는 분하고 편하게 일할 거 아닙니까. 이왕 개고생을 시키려면 다 같이 개고생을 시키지 왜 우리 팀만 개고생을 시키고 그러세요?”

“고백했다가 차여서 복수 좀 했습니다.”

“누가 호구 아니랄까봐 되게 찌질하시네요.”

“마지막까지 애칭 불러줘서 고맙습니다.”

와, 이번엔 내가 밀렸다. 사람 좋게 웃고 있는 최 실장을 힐끗 보다가 괜히 남은 커피를 후루룩 들이켰다. 소고기와의 전투 준비를 마친 팀원들이 우르르 나오는 것이 보였다. 내가 최 실장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본 정아가 어느새 챙겨 나온 내 가방과 코트를 들어 보이면서 바디 랭귀지를 했다. 나한테 죽기 전에 지금 빨리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순순히 오늘의 계산 담당을 보내라, 뭐 그런 뜻인 것 같았다. 그냥 휴게실을 나가려다가 결국 안 되겠어서 에이 씨, 하고 뒤를 돌아보았다. 따라 나오려던 최 실장이 멈칫한다.

“아 진짜 이 말 하기 싫었는데.”

“이제 와서 나 좋다고 하면 안 됩니다. 비행기 표 하나밖에 안 끊었어요. 물론 시간을 옮기면 어떻게든 되겠지만….”

“내가 참도 그러겠네요. 그냥 고마웠다고요.”

“뭐가 말입니까?”

“내 애인 남자인 거 알고도 다른 사람들한테 얘기 안 하셨잖아요. 솔직히 걱정돼서 여태까지 밖에서는 계속 친구라고만 했었거든요. 물론 최 실장님도 그거 설명하다 보면 곤란해질 수도 있으니까 그러신 거겠지만… 어쨌든 고맙습니다.”

원우에 대해서 같이 사는 친구, 대학교 때부터 죽마고우, 이 정도로밖에 설명을 못할 때마다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를 정당화 시키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었다. 그 말이 틀린 건 아니니까, 같이 사는 친구이기도 하니까, 대학교 때부터 죽마고우이기도 하니까, 그렇게 생각했지만 가끔은 이런 녀석이 내 애인이라고 자랑도 하고 싶었고 누군가에게 당당히 보여 주고 싶기도 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처음 애인 자랑을 하고 애인이 남자라고 말할 수 있게 된 대상이 나 좋다던 최 실장이 되어서 최 실장한테는 좀 미안하… 진 않았다. 뭐 누가 나 좋아하라고 했나, 지가 좋아해놓고.

오그라드는 말을 마치고 괜히 민망해져서 휴게실을 나가는 내 뒤를 최 실장이 졸졸 쫓아오더니 은율 씨, 하고 어깨를 잡는다. 몸을 기울인 최 실장이 다른 사람들은 못 들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그만큼 은율 씨를 좋아했다는 것만 알아둬요.”

내 뒷머리를 가볍게 쓰다듬고는 사람들 틈으로 들어가는 최 실장을 뒤에서 바라보다가 피식 웃었다. 알아뒀다가는 질투 폭발 분노 대방출의 차원우한테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인데 목숨 걸고 그런 걸 알아두고 싶지는 않고, 그냥 조금 호구 같고 찌질하긴 했지만 일이 없어 잉여가 되어 가던 회사 사람들을 신나게 일할 수 있게 도와줘서 아주 조금 고마운 사람 정도에서 끝내야겠다. 아마 최 실장은 그 정도도 감지덕지할 거니까.

정아한테서 코트와 가방을 건네받고 주섬주섬 나갈 준비를 하다가 뒤늦게 온 원우의 답장을 확인했다. 너무 늦지 마라, 최 실장하고 같이 가는 거면 일찍 들어와라, 술 많이 먹지 말고 정신줄 놓지 마라, 그 새끼 생긴 것부터가 뭔가 심상치 않다, 온통 잔소리로 가득한 문자에 네 아버지, 하고 문자를 보냈더니 득달같이 분노의 전화가 온다. 최 실장이 간다는 걸 알려주기 전에 조금 더 놀려야겠다. 나는 낄낄 웃으면서 핸드폰을 무음으로 돌렸다.

***

집에서는 속옷만 입고 돌아다니거나 배를 벅벅 긁으며 TV를 볼지는 몰라도 만나는 시간에는 최대한 잘 꾸미고 가꾸고 즐겁게 데이트를 하는, 그런 연애를 한다면 알콩달콩 즐겁게 지내는 시간이 더 많을지 모르지만 나와 원우 사이는 그런 사이가 아니다. 처음 같이 살 때처럼 눈만 마주쳐도 은근해지고 질투 때문에 아웅다웅하는 건 잠깐 뿐이다. 왜냐하면 그런 귀여운 짓들을 하고 앉아있기에는 연애 생활이 지나치게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아침에 나오면서 도대체 왜 셔츠를 벗어 놓을 때 한쪽 팔은 꼭 뒤집어서 벗어놓는지에 대해 백분토론을 하는 것처럼 열렬히 싸우고 왔더니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 피곤해졌다. 빨래할 때마다 그 셔츠 팔 도로 빼는 것도 일이라 짜증난다고 했더니 그거 하는 데 시간이 천 년 만 년 걸리는 것도 아닌데 왜 신경질이냐고 대꾸를 해서 또 한바탕 했다. 풀스윙 등짝 스매시를 두어 번 후려 맞고는 너나 밥 좀 싹싹 긁어 먹으라고 설거지통에 그릇 담겨있는데 밥풀 붙어 있으면 얼마나 짜증나는 줄 아냐고 뜬금없는 지랄을 해서 열 받아서 태워다준다는 것도 뿌리치고 그냥 회사로 와 버렸다. 아니 그깟 밥풀 좀 붙어 있는 게 뭐가 그렇게 짜증이 난다고, 어차피 물에 담가놓는 거 그냥 씻으면 되지, 요즘 복근 만든다고 기를 쓰고 있는 그놈의 뱃가죽에 수세미질을 빡빡 해버릴까 보다.

컴퓨터 앞에 반쯤 누운 채로 늘어져서 일을 하다가 점심시간이 되어 슬슬 나갈까 하고 있을 때 전화가 왔다. 보통 특별한 일이 있는 게 아니면 연락을 잘 안 하는 은지의 전화였다. 순간적으로 집에 무슨 일이 있나 하는 불안감부터 생겼다. 정아한테 잠깐 나가 있으라고 하고 빈 사무실에서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았다. 그러나 내가 조심스럽게 전화를 받은 보람도 없이 노은지의 목소리는 쌩쌩 그 자체였다. 심지어 기겁을 할 만한 소리까지 했다.

- 오빠! 나 지금 오빠네 집 가고 있어, 집에 아무도 없지?

“뭐? 왜? 왜?”

- 나 엄마한테 오빠네 집 가서 자고 온다고 그랬거든. 미리 가 있을게, 비밀번호 뭐야?

“아니 대체 왜 갑자기, 근데 야, 네 집이냐? 우리 집인데 왜 네가 마음대로 자고 간다고 그래?”

- 치사하다, 좀 재워주면 안 되냐? 동생이 서울까지 왔는데?

“그러니까 왜 왔냐고.”

- 학교에서 방학 때 대학교 탐방하고 오라고 숙제 내줬거든. 그래서 친구들하고 서울 왔어. 아, 집에는 나 혼자 갈 거야, 애들은 갔어. 고맙지?

고마워서 딱밤을 한 열 대는 때려주고 싶다. 말을 하는 동안에 나는 오늘 미처 다 못 치우고 나온 집안을 머릿속으로 빠르게 스캔했다. 그래도 거실은 괜찮았었는데, 잠깐, 콘돔 꺼내놓은 게 있었던 것 같은데, 젤도 그냥 침대 옆에 올려두고 온 것 같은데, 안방 쓰레기통에 콘돔 쓰고 묶어놓은 거 그냥 있을 텐데, 지난주에 산 젤 박스 분리수거함에도 안 넣고 그냥 현관 옆에 둔 것 같은데, 아 나 진짜.

“퇴근하고 바로 갈 테니까 일단….”

- 설마 나 혼자 서울 구경하고 있으라고? 오빠는 걱정도 안 되냐? 나 서울 길 잘 모른단 말이야. 아까 대학교 구경 갈 때도 지하철 타면서 두 번이나 잘못 탔다고. 그리고 나 같이 예쁜 애를 누가 막 납치해가면 어떡하려고 그래? 지하철에 치한도 많다며, 누가 지하철에서 나 보고 반해서 막 쫓아오면 어떡해?

차원우가 애 버릇을 단단히 잘못 들여놨다. 코웃음도 안 나올 헛소리를 지껄이더니 빨리 비밀번호를 내놓으라고 독촉을 한다. 밖에서는 정아가 배가 고파 죽겠으니까 빨리 나오라고 성화다. 미쳐 버리겠네 진짜, 고민을 하다가 은지가 미처 뭐라고 말대꾸를 할 새가 없이 빠르게 쏘아붙였다.

“지하철 타고 명동이나 신촌 가면 볼 거 존나 많으니까 구경하고 있든가 아니면 근처에 영화관 검색해서 영화나 한 편 보고 있든가 하고 나 퇴근할 때까지 혼자 좀 놀고 있어 너 아무도 납치 안 해 가니까 걱정 안 해도 된다 알았지 끊는다.”

숨을 몰아쉬면서 전화를 끊었다가 갑자기 눈앞이 번쩍하면서 등에 소름이 쫙 돋았다. 당황해서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 나는 빛의 속도로 차원우 단축번호를 미친 듯이 눌렀다. 통화중이니까 다음에 전화하라는 친절한 안내원의 목소리가 나왔다. 이런 씨발 젠장 손도 빠른 동생 같으니…. 그리고 문자가 도착했다.

[워누오빠가 현관 번호 알려줌 ㅗㅗ]

차원우 이 호구 새끼, 내 이럴 줄 알았다, 근데 지금 알았다, 좀 빨리 알았어야 했는데. 내가 몸부림을 치면서 괴성을 지르자 밖에 있던 정아가 눈치를 살살 보며 내려가 버렸다.

점심은 포기했다. 택시를 잡아타고 몇 번이나 아저씨를 독촉해서 최고로 빠른 속도로 집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도 하필 꼭대기 층에 있어서 나는 심장을 입 밖으로 꺼내놓을 것처럼 헉헉거리며 계단으로 뛰어 올라갔다. 제발, 노은지 이 눈치 없는 자식아 제발 헤매다가 조금만 늦게 와라, 힘들어서 덜덜 떨리는 손으로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문을 열자마자 나는 좌절했다. 내가 욕조에서 입었던 굴욕의 족발집 앞치마를 두르고 양 손 가득 쓰레기봉지를 들고 나오려던 노은지가 씩 웃었다.

“오빠 서울 지하철 생각보다 쉽더라. 길 금방 알겠던데.”

“…그러냐.”

“그리고 집 좀 치우고 살아, 내가 방이랑 화장실 쓰레기통 다 비웠어. 쓰레기 어어엄청 많더라. 고맙지? 걱정하지 마. 쓰레기 막 다 뒤지진 않았어. 뭐가 나오는지 좀 보긴 했지만.”

쓰레기를 버리고 오겠다고 총총 나가버린 노은지를 뒤로하고 나는 현관에 주저앉아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아 진짜 노은지, 아니, 노은지도 문제지만 차원우 이 멍청한 새끼, 정말 쪽팔려서 돌아버리겠다.

도저히 일찍 들어가서 노은지 얼굴을 마주 보고 있을 자신이 없었다. 야근에 철야까지 가고 할 생각으로 일을 죄다 떠맡아서 했는데도 퇴근 시간이 가까워 오자 할 일이 없어졌다. 최 실장 가고 나서 일이 미친 듯이 쏟아져서 개같이 일하게 할 때는 언제고 하필 지금은 어느 정도 진행이 된 일들만 남아서 바쁘지도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퇴근 준비를 했다. 집에 가면 존나 피곤하다고 뻥치고 그냥 바로 자야겠다. 설마 자는데 깨워서 개쪽을 주지는 않겠지. 울적한 얼굴로 터덜터덜 회사를 나왔는데 클랙슨 소리가 들렸다. 아무 생각 없이 돌아보았다가 나는 하, 하고 허탈하게 웃었다. 도대체 저런 옷을 왜 싸들고 온 건지 모르겠다. 무릎 위로 껑충 올라오는 원피스에 원우가 사준 코트를 차려 입은 은지가 조수석에서 내리면서 신나게 손을 흔든다.

“오빠 딱 맞춰서 나왔네, 안 그래도 지금 전화해 보려고 했는데. 원우오빠가 맛있는 거 사준대. 밥 먹으러 가자.”

“…노은지 너 잠깐 차에 있어. 차원우 나 좀 봐.”

“그래 나도 이해해, 하루 종일 보고 싶었겠지, 그래도 좀 참아.”

“야, 그게 아니라…!”

“빨리, 나 배고프다고.”

운전석에 앉아 있는 원우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싱글벙글 웃는 얼굴이다. 나는 은지에게 붙들려서 차로 질질 끌려갔다. 어쩔 수 없이 조수석에 타려고 손을 뻗자마자 은지가 내 앞으로 쑥 들어와서 나를 밀쳐냈다.

“내가 여기 탈거야, 오빠는 뒤에 타.”

“야 노은지 이 씨….”

“원우오빠, 오빠가 막 나한테 욕하려고 그래요. 진짜 못됐죠? 어떻게 저러는 걸 다 참고 사나 몰라, 사랑의 힘인가?”

태연하게 조수석에 타더니 나에게 빨리 타라고 손짓을 하는 은지의 머리를 쥐어박으려고 손을 뻗었더니 이번에는 원우가 나를 제지했다. 이미 표정이 허물어진 상태로 실실 웃고 있는 주제에 애랑 싸우지 말라면서 뒷좌석으로 눈짓을 한다. 아들 같은 인턴한테 질투한다고 새삼 민망해할 것도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하는 짓이 꼭 노은지에게 질투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게 뻔하니까. 시무룩해져서 뒷좌석에 타자마자 아예 드러누웠더니 그제야 내 눈치를 보기 시작한 원우가 묻는다.

“은율아, 그때 먹었던 그 참치 회 먹으러 갈래?”

“몰라 새끼야, 알아서 가.”

“오빠 어떻게 알았어요? 저 참치 회 진짜 좋아하는데!”

쫑알쫑알 뭐가 그렇게 할 말이 많은지 오붓하게 원우와 수다를 떠는 은지에게서 등을 돌리고 누웠다. 진심으로 뻥 안 치고 현우가 날 없는 사람 취급할 때도 안 서러웠는데 지금은 엄청 서러웠다.

노발대발 삐져서 밥을 먹는 내내 말을 안 했더니 은지도 슬슬 몸을 사리는 것 같았고 원우도 어쩔 줄 몰라 해서 결국 집에 오는 동안 기분을 풀었다. 아니, 풀린 척했다. 참치 한 마리를 다 처먹을 기세로 회를 먹은 게 아니라 마셔버린 노은지가 집에 와서 원우에게 찰싹 붙어 꽁냥거리다가 치킨을 시켜달라고 징징거리고, 그걸 보고도 허허 웃으면서 한참 클 때인데 좀 어떠냐고 원우가 치킨을 시켜줄 때도 짜증을 안 내고 참았다. 내일 출근을 해야 할 차원우를 붙들고 사진을 보여 달라고 졸라서 결국 열두 시가 넘어갈 때까지 컴퓨터를 붙들고 추억은 방울방울 과거여행에 빠져서 둘만 신이 나 있을 때도 신경질 안 부리고 잘 참았다. 슬슬 나도 해탈을 하나 했다. 동생이 내 애인이랑 친하게 지내주는 게 나쁜 일도 아니고, 차라리 잘된 일이면 모를까, 성질 더러운 오빠보다야 무슨 말을 해도 잘 받아주고 예뻐해 주는 원우가 좋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어차피 먼 길 온 거 가기 전에 뭐라도 더 사 먹이고 입혀서 보내야겠다, 그런 생각까지 했었다. 노은율이. 천하의 노은율이.

그러나 그 해탈 모드도 얼마 안 갔다. 드디어 즐겁고 오그라드는 추억 여행을 끝내고 잘 준비를 할 때였다. 은지가 씻으러 들어간 사이에 원우가 거실에 이불을 깔았다. 나와 원우가 베고 자는 높은 베개를 갖다 놓길래 노은지 어차피 낮은 베개 베고 자니까 그냥 쿠션 놔, 하고 베개를 뺏었더니 원우가 다시 내 손에서 베개를 가지고 갔다.

“여기선 내가 잘 거고, 은지 방에서 재울 건데”

“됐으니까 여기서 재워 그냥. 쟤 원래 맨바닥에서도 잘 자.”

“어떻게 바닥에서 재우냐, 그냥 침대에서 자라고 해.”

“싫다니까.”

“고집 부리지 말고, 손님이잖아.”

“아 너랑 나랑 쓰는 침댄데 왜 은지를 재워!”

소리를 빽 지르는 타이밍에 은지가 욕실에서 나오다가 움찔했다. 나오지도 들어가지도 못하고 어정쩡하게 서 있다가 슬금슬금 방으로 들어가려고 해서 노은지, 하고 불러 멈춰 세웠다.

“여기서 자라.”

“그냥 방에서 자라고 하라니까.”

“노은지 너 침대 안 쓰잖아. 아니면 소파에서….”

“은율아, 그만 좀 해라.”

“뭘 그만해, 뭘! 하루 종일 그만했는데 뭘 더 그만해, 싫다고!”

여태 참고 있던 온갖 성질을 내면서 베개를 휘두르다가 팔을 붙들렸다. 내 손에서 베개를 뺏어 던져놓은 원우가 은지에게 눈짓을 했다. 은지가 잽싸게 방으로 들어갔다. 소리를 지르고 팔을 빼내려고 몸부림을 치면서 걷어찼는데도 아프지도 않은지 원우는 나를 끌고 베란다로 나와서 유리문을 쾅 닫았다. 나도 할 말 많으니까 어디 한 번 해 보라고 노려보았는데 원우가 대뜸 나를 꽉 껴안았다.

“은율아.”

“좋은 말 할 때 놔라.”

“왜 화가 난 건데, 내가 은지만 챙겨서 화난 거야?”

“아니거든?”

“질투해 주는 건 좋아 죽겠는데 은지한테는 그러지 마라. 동생이잖아.”

“아니라고 씨발놈아, 안 놔?”

“그럼 일 분만 이러고 있자. 때릴 거면 그 다음에 때리고.”

원우가 꼭 아이를 어르는 것처럼 내 머리카락에 얼굴을 파묻으면서 등을 토닥였다. 가뜩이나 무식하게 힘이 센 놈이고 체격에서도 차이가 나니까 이렇게 작정해서 차원우가 자세 잡고 힘을 쓰면 도저히 나올 수가 없다. 밀어내려고 몇 번이나 시도를 하다가 그냥 힘을 빼고 축 늘어진 채로 안겨 있었다. 일 분인지 이 분인지 모를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들끓던 게 좀 가라앉는 것 같았다. 차원우한테 말린 것 같아서 자존심은 상했지만 더 화를 내고 싶지는 않았다.

“…짜증나.”

한숨을 푹 쉬면서 차분히 말을 꺼냈더니 그제야 원우가 나를 붙들고 있던 팔을 놓았다. 대답을 하지 않고 가만히 보고만 있길래 나는 주절주절 말했다. 갑자기 집에 쳐들어와서 청소하겠다고 집 뒤집어엎어 놓은 것도 짜증나고, 너 끌고 밥 사달라고 나와서 귀찮게 하는 것도 짜증나고, 도대체 누가 사줬는지도 모를 이상한 원피스 입고 샐샐거리면서 조수석 앉아서 너한테 달라붙는 것도 짜증나고, 내일 아침에 출근도 해야 되고 지도 내일 기차 타고 일찍 내려가야 될 텐데 붙들고 앉아서 잠 못 자게 하는 것도 짜증나고….

“은지 자주 오는 거 아니잖아.”

“…알아.”

“와서 하루 자고 가는 게 그렇게 싫어?”

“싫은 거 아니야.”

“그럼? 은지가 그렇게 귀찮아?”

“…그게 아니라.”

“그럼 왜.”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면서 묻는데 말문이 막혔다. 그러게, 왜 이렇게 화가 났는지 모르겠다. 생각을 해 보면 오늘 은지가 왔다고 전화를 했을 때부터 내가 짜증을 냈던 것 같은데 아무리 연락도 없이 집에 왔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크게 화낼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서울에 친척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으니 당연히 나한테 연락을 했을 거고, 다 큰 애도 아니고 고등학생밖에 안 된 여자애를 서울 한복판에서 알아서 놀고 있으라고 한 내가 잘못한 것이기도 했다. 원우도 아마 그래서 비밀번호를 알려준 거겠지. 그렇게 따지고 보니까 화낼 일이 없었다. 원우 말대로 동생한테까지 질투할 것도 아니고. 머뭇거리다가 그냥 시선을 피하고 고개를 숙였더니 원우가 허리를 굽혀 나와 눈을 맞췄다.

“내가 은지한테 너무 잘해 주면 네가 죄 짓는 기분이 들어서?”

고개를 번쩍 들었다. 원우가 빙긋 웃었다.

“죄 짓고 살면 좀 어떠냐고 누가 그랬더라. 더 잘해 주면 된다고.”

“…….”

“이제 화 안 나지?”

원우가 한 번 한 실수를 두 번 안 하는 이유는 내가 한 말을 꼭 지켜야 할 법처럼 일일이 꼼꼼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인데, 현우가 왔을 때 그런 말을 내 입으로 해놓고도 나는 잊고 있었다. 나는 허탈하게 웃었다. 원우는 매번 나한테 못 이기겠다고 하지만, 이럴 때면 나는 내가 평생 차원우를 못 이기고 살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화 안 나면 들어가서 은지한테 미안하다고 해. 아까 보니까 겁 많이 먹었더라. 걔 너랑 나랑 싸우는 거 처음 봤잖아. 집에 가서는 한 번도 안 그랬으니까.”

“…알았어.”

“옳지, 착하다.”

원우가 내 엉덩이를 툭툭 두드렸다. 착할 땐 착하더라도 마지막 남은 자존심은 세워야겠다. 눈가에 입을 맞추고는 들어가자고 베란다 문을 여는 원우를 붙들었다.

“근데 차원우.”

“어.”

“현우가 집에 와서 나한테 은율이형, 은율이형, 이래가면서 들러붙고 막 친한 척하고, 밥 사달라고 졸라서 같이 참치 회 먹으러 가고, 내가 현우한테 간이고 쓸개고 다 빼줄 것처럼 샐샐거리고, 같이 소파에 나란히 앉아서 축구보고 치킨 먹고, 그러다가 내가 현우 침대에서 재우겠다고 하면 넌 어때?”

급격히 찾아온 선택의 순간에 원우가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씩 웃었다.

“화 안 나냐니까?”

“…그건 일단 존나 먼 얘기인 것 같으니까 차현우가 그런 짓을 했을 때 생각해 보자.”

“얼마 안 남았다. 현우 지난주에 나한테 전화했어.”

원우가 이를 악물더니 다시 베란다 문을 쾅 닫고 묻는다.

“왜?”

“내가 현우 부대로 선물 보냈거든.”

“야, 네가 왜 그 새끼한테 선물을 보내?”

“이번에 광고 맡긴 클라이언트가 사무실로 핸드크림이랑 선크림을 세 박스나 보냈는데 처치가 곤란해서 싹 다 부대로 보내줬지. 과자도 한 세 박스 사서. 아참, 현우가 좋아하는 팀 사인볼이 사무실에 굴러다니길래 그것도 챙겨놨다고 얘기했는데 현우가 기억할라나 모르겠네. 기억하겠지?”

“…….”

“현우 휴가 나와서 자고 가겠다고 했을 때 차원우 어떻게 하는지 두고 보자.”

베란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자 웃음기가 싹 사라진 채로 뒤따라온 원우가 한참 고민을 하더니 말했다.

“…은지 거실에서 재울까.”

“됐어, 내가 데리고 잘게.”

“왜, 넌 나와서 자도 되잖아.”

“너랑 나랑 같이 자면 노은지가 내일 아침에 무슨 개드립을 칠지 겁이 나서 그런다. 잘 자.”

거실 한복판에 서 있는 원우가 꼭 허허벌판에 쓸쓸히 남은 고목나무 같았다. 나는 빙긋 웃으면서 방으로 들어왔다.

침대 한쪽에 모로 누워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던 은지가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었다. 대뜸 들어와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자니 엄청나게 민망했다. 내일 하든가 아니면 나중에 문자로 하든가 해야겠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처럼 침대 밑에 이불을 깔고 드러누웠다. 뒤통수에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돌아누워 있는 내 어깨를 은지가 손가락으로 쿡쿡 찔렀다. 왜, 하고 물었는데도 한참 조용해서 몸을 돌렸다. 어느새 침대 끄트머리까지 와 있던 은지가 울적한 얼굴로 이불만 쥐어 잡고 있다.

“왜 그러냐니까.”

“…원우오빠한테 화 안 내면 안 돼?”

“화 안 내.”

“아까 냈잖아.”

“화낼 일 아닌 것 같아서 화 풀었어.”

“원우오빠가 괜찮대?”

“어.”

물론 현우가 오면 안 괜찮겠지. 내가 큭큭 웃음을 삼키는 걸 본 은지가 안심을 한 건지 아니면 그냥 포기한 건지 다시 꿈틀꿈틀 움직여서 벽 쪽으로 옮겨갔다. 한바탕 열을 냈더니 정말로 피곤해졌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하고 있는데 뒤에서 울먹거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나 원우오빠 진짜 좋아한단 말이야.”

뭐가 어째? 잠이 다 달아났다. 나는 이불을 걷어차고 벌떡 일어났다. 진심으로 하는 소리 같아서 말이 안 나왔다. 뭘 어떻게 해야 되지, 내 애인이니까 좋아하지 말라고 할 분위기도 아니고, 인턴 하나 아들 만들어서 치웠더니 이젠 웬 딸 같은 녀석이 원우한테, 원우가 영계한테 먹히는 상인가, 진짜로 좋아서 저러는 거면 난 어떡하지, 엄마한테 뭐라고 하지… 순식간에 엉키는 머릿속을 정리를 못하겠어서 버퍼링이 걸려 버벅거리고 있었다.

“원우오빠한테 자꾸 오빠가 화내서, 원우오빠가 오빠 싫다고 그러면, 그래서 이제 우리 집에 안 오면 어떡해….”

아, 내가 걱정했던 그런 의미의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 근데 그것보다도 더 숨이 턱 막혔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내 어리광 받아주는 사람 원우오빠밖에 없는데, 엄마도 나 다 컸다고, 징그럽다고 그러는데….”

구석에 웅크린 채로 울기 시작한 띠동갑 여동생을 보고 있자니 정말 죽일 놈이 된 것 같았다. 아니, 이미 죽일 놈이었다. 진지한 생각이라고는 도통 없어 보일 정도로 장난을 치고 농담을 하면서 작정하고 원우한테 들러붙는 게 얄밉다는 생각에 그냥 지나치던 부분이었다. 엄마와 아버지가 원우 일 때문에 나에게 화를 낼 때마다 은지는 오늘처럼 방 안에 혼자 들어가 있었다. 밖에서 나는 큰 소리를 아마 오늘처럼 이불을 뒤집어쓰고 버텼을 거다. 못 들은 척 하면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리고 원우가 집에 가면 꼭 본능처럼 쪼르르 달려와서 옷자락을 붙들고 졸졸 쫓아다녔다. 뭣도 모르는 애라서 그저 덩치 큰 오빠가 오니까 신기해서 그러는 거라고 억지로 떼어 놓으려고 하던 부모님도, 원우가 집에 간다고 나올 때마다 또 언제 오냐고 엉엉 울면서 매달리고 잠이 들 때까지 못 가게 하던 은지를 보고 점점 생각을 바꾸시는 것 같았다.

그 과정을 뻔히 보고서도 한 번도 그게 큰일이라는 생각을 못했다. 나와 원우가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던 것처럼 은지도 마찬가지였을 텐데, 멀리 떨어져 살고 있다고는 해도 어쨌든 동생은 동생인데 한 번도 은지가 어떤 심정이었을지 생각해보지 못했다. 내가 멍청했다. 목이 꽉 막히는 것 같았다. 침대 위로 올라가서 은지의 어깨를 다독이다가 몸을 제대로 뉘였더니 온통 젖은 얼굴을 손으로 가린 은지가 끅끅거린다. 손을 떼어내고 얼굴을 닦아주었다. 지난번에 현우가 다녀가고 나서 원우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차현우 그 새끼 그냥 봐주기로 했다, 아직 애새끼인데 내가 뭘 그렇게 열을 냈나 싶더라.

그러게, 아직도 이렇게 어린데.

“…원우한테 화 안 낼게.”

미안하다.

중얼거리면서 들썩이는 어깨를 토닥였다. 이 말을 하는 데 꼬박 십 년이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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