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화 (39/47)

2. 착하면 호구

‘…인 건지, 호구 같아서 착한 건지.’

저번에 엄마가 반찬거리를 해주신 것이 감사하다며 답례로 음식을 잔뜩 하고 있는 황경호를 아주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보고 있는 강동현이었다.

“영화 보러 가자니까!”

강동현이 참다 못하고 버럭 소리를 쳤다. 부엌에 있던 황경호가 단호하게 대답했다.

“싫어. 안 된다고 미리 말했잖아.”

“우리가 쉬는 날 겹치기가 좀 어려워? 그냥 가자. 다음에 해.”

“나도 주말밖에 시간 안 돼.”

“너 안 해줘도 우리 집 잘 먹고 잘살아.”

“조금만 하는 거야, 조금만. 반찬 통 빈 거 갖다 드리기 죄송해서 그래.”

“그런 거 아무도 신경 안 쓴다고!”

“도은혁, 이리 와서 이것 좀 먹어봐. 간 좀 맞는지.”

듣지도 않는다… 이제는 요리를 취미로 하는 게 아니라 무슨 전업주부(?)라도 된 것 같았다. 예전에는 볼멘소리를 내도 강동현이 하는 말은 다 들어줬는데 오히려 사랑한다는 말까지 하고 나니 황경호는 강동현의 말을 가끔 흘려 듣게 되었다.

강동현은 예전부터 황경호가 저렇게 너~무 예의를 차리는(호구같이 구는) 게 싫었다. 누가 하라고 시킨 줄 알겠다. 아무도 안 시켰다. 지가 알아서 저러는 것이다.

“그럼 밤에라도 가자. 나 그 영화 보고 싶었단 말이야.”

강동현이 좀 징징거리면서 매달렸다. 한 번 또 싸우고 나니 사이가 더 좋아졌다. 강동현이 뒤에서 허리를 끌어안고 매달리자 황경호는 잘됐다, 하고 강동현의 입에다 반찬을 넣었다.

“어때?”

“맛있어.”

강동현이야 이제 완전히 황경호가 차려주는 음식대로 입맛이 고정되어 버렸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귀를 깨물었다.

“가자~”

“밤늦게 가면 안 피곤하겠어? 내일 새벽에 나가야 한다며.”

“오늘 많이 자서 괜찮아. 응? 응?”

“알았어.”

“아싸.”

“이제 거의 다 했으니까 너도 챙겨. 나가자.”

황경호는 서둘러 반찬 통을 쌓았다. 강동현은 뭔가 계속 불만스러운 얼굴로 황경호의 뒤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의 뺨에 쪽쪽 입을 맞추었다. 그의 옷 안에 쑥 손을 넣었다.

“뭔가 마음에 안 든다….”

“뭐가? 잠깐만… 야…!”

강동현이 황경호의 바지와 속옷을 엉덩이 쪽만 쑥 내렸다. 그는 황경호의 티셔츠를 끌어올려 그의 등을 쪽쪽 빨았다.

“아앙… 앙… 잠깐만… 우리 나가야 한다니까.”

어머니께 연락도 해놓았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살을 깨물면서 그의 등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었다. 가슴을 만지면서 그의 탱탱한 엉덩이를 주무르다가 음부에 손가락을 쑥 집어넣었다.

“아앗… 흣….”

“섹스부터 하면 하루 종일 집에만 있을까 봐 영화부터 보자고 한 건데… 왜 이렇게 내 마음을 몰라주는데, 어?”

“아, 잠깐만… 진짜아… 부엌에서 이러지 말라고. 음식 있는데…!”

“알았어. 알았어.”

그는 정말 착했(호구 같았)다. 그러니까 강동현이 이렇게 제멋대로 굴어도 결국엔 받아 주는 것일 테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몸을 돌려 마주 몸을 대었다. 그리고 황경호의 다리 사이에 자기 다리를 끼운 채로 키스를 하면서 거실까지 춤을 추듯 빠르게 옮겨갔다. 자기는 샤워를 하고 나서 팬티만 입고 있었지만 황경호는 이미 다 차려입고 있었다. 그를 카우치에다 눕히고는 홀랑 다 벗겨버렸다. 테이블 밑에 있는 러브젤을 꺼내서 황경호의 안에다 잔뜩 짜 넣었다. 그리고 다시 손가락을 넣어서 슥슥 만졌다. 황경호가 앓는 소리를 내며 그의 손을 잡았다.

“아앙… 앗…! 아흑…!”

시간 없는 건 아는지 핑거링이 평소보다 빠르다. 금세 끝내고는 자기 자지를 황경호의 다리 사이에다가 비볐다. 그의 것이 빵빵하게 부풀어 있었다. 시간이 안 맞아서 섹스도 며칠만이다. 매일매일 질리지도 않고 할 때가 있었는데. 황경호가 벌겋게 야한 얼굴로 강동현의 대물을 보고 있었다. 강동현이 씨익 웃으면서 변태같이 허리를 돌렸다.

“갖고 싶었지? 응? 응?”

“…장난치지 말고 빨리해.”

황경호가 그의 허리를 잡고 끌어당겼다. 확 온다. 강동현은 아랫배와 허리가 저릿저릿한 것을 느끼며 그의 분홍색 음부에다 자기 걸 비볐다. 그리고 힘을 주어 끝을 눌렀다. 하나둘셋. 약간 기합을 넣어 좀 더 힘을 줬더니 뭔가를 뚫고 들어가는 느낌이 쏙 먹혔다. 황경호가 녹을 듯한 신음을 흘리며 몸을 튕겼다.

“아아앙….”

갈 뻔했는지 그는 순식간에 온몸이 시뻘게졌다. 그는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버거움에 적응하기 위해 꿈틀거렸다. 그대로 그 박자에 맞추어 한 입씩 넣자 눈을 감고는 강동현의 허리를 꽉 잡았다. 야시시한 얼굴이 보면 볼수록 취향이다. 강동현는 황경호의 얼굴과 표정에 쉽게 매료되었다. 강동현은 그의 뺨을 깨물고는 쪽쪽 빨았다. 그리고는 둘 다 제대로 자리를 잡자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앙… 앗…! 핫…!”

황경호가 끝내주게 느끼는 표정으로 밑에서 위아래로 엉덩이를 움직였다. 강동현의 박자에 맞추어서 눌러 들어오면 엉덩이를 올려서 그를 뿌리까지 삼키고 그가 허리를 빼면 엉덩이를 물리며 쪼옥 빨아낸다. 그대로 박자가 좀 빨라졌다. 서로의 아랫배와 가슴을 꽉 붙이고 서로 끌어안았다. 강동현은 콧김을 뿜으며 그의 뺨을 끈적하게 핥았다.

“너 말이야. 헉. 윽… 처음에는 섹스하는 거 그렇게 싫어하더니 이거 봐. 응? 이거 보라고.”

“아앙. 하으응…! 아앗….”

좀 더 박자를 빠르게 해서 파박! 박았더니 황경호가 안을 움찔거리며 예민하게 반응했다.

“하지 마아. 아아앙….”

“뭘 하지 마. 하지 말긴 뭘 하지 마. 어? 어? 어?”

“앗! 아앗! 앙! 하앗…!”

황경호가 가쁜 숨을 내뱉으며 버거워했다. 음부가 뱃속까지 저릿저릿했다. 갈 것만 같았다. 딱딱하고 큰 게 들어와 마구 긁으니 열기가 확확 끼쳤다. 황경호는 어쩔 줄 모르는 얼굴이 되더니 그의 허리에 손톱을 세우며 움찔거렸다.

“강동현… 앗… 은혁아… 은혁아… 아앙… 아…! 은혁아… 하앙… 앗앗… 아아앗… 앗….”

“흐응. 좋지? 응? 좋아 죽겠지? 헉. 으윽. 아…! 윽… 기분 좋다고 해봐. 내 거 좋다고 해봐.”

강동현은 황경호를 다리 사이에다가 점점 빠르게 방아를 찧어대며 그렇게 변태 아저씨처럼 을러대었다. 햇빛이 환하게 비치는 늦봄의 늦은 오전이다. 벽면을 가득 채운 라운드형 창으로 따뜻한 빛이 한껏 들어온다. 모든 게 너무나 선명하게 보인다. 황경호는 오랜만의 섹스에 그에게 다리를 활짝 벌려서 깊이 뚫린 채로 그가 원하는 말을 해주었다.

“좋아… 아앙… 너무 좋아. 너무 커서 찢어질 것 같아. 하앗….”

“나도… 여기 엄청 미끌미끌해서 기분 진짜 좋아… 하아… 부드러워….”

“끝까지… 아앙… 끝까지 들어와… 아아앗… 키스해줘.”

“야해… 윽… 못 참겠어. 하아. 경호야. 경호야. 경호야… 으으윽.”

그대로 부드럽게 입술을 부비며 혀를 섞는 기분 좋은 키스를 하면서 강동현은 그의 엉덩이에 자신의 치골을 딱 붙여서 최대한의 속도로 진동을 주었다. 카우치가 부서질 것 같다. 황경호가 입술이 막힌 채로 비명을 질렀다. 곧 그는 강동현을 엄청 조이면서 멀티 오르가즘을 느끼기 시작했다. 강동현은 그가 자신을 뿌리치려고 하는 것을 막고 그대로 그의 안을 진탕을 만들었다. 황경호는 버둥거리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강동현에게 짓눌린 채 아랫도리를 심하게 경련을 하면서도 그대로 빠르게 박히고 있었다. 그의 엉덩이 살이 마구 진동했다. 강동현이 겨우 입술을 떼어주자 황경호는 녹을 듯이 울음소리를 내면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강동현은 허리를 계속 빠르게 움직이면서 약간 몸을 일으켜 그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손으로 그의 가슴을 움켜쥐고 그의 젖꼭지를 엄지로 문질렀다.

“아아앙… 하으응…! 아… 아아아앙……!”

“경호야, 사랑해… 사랑해… 응? 사랑해.”

강동현은 못 견디겠다는 얼굴로 그에게 다시 들러붙어서는 그의 얼굴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진짜 기분 좋았다. 자지가 불이라도 붙은 듯 뜨겁다. 그가 아주 착착 달라붙어 왔다. 안팎으로 아주 조이고… 죽인다. 완전 죽인다. 황경호는 너무 느끼니까 아예 말도 하지 못하고 숨만 겨우 쉬었다.

“하아… 하아아… 읏… 하아….”

“경호야… 경호야… 으윽… 미치겠다.”

그러고 다시 서로의 입을 맞추고 열정적으로 키스를 하다가 강동현이 퍽! 하고 깊게 들어왔다. 황경호는 발끝부터 머리카락 끝까지 오싹오싹해지며 그를 온몸으로 꽉 끌어안았다.

“으으윽…! 으윽… 큭… 아윽….”

사정을 하며 온몸의 근육이 바짝 긴장하여 돌처럼 딱딱하다. 황경호는 절정을 느끼는 그의 얼굴을 보자 참을 수가 없었다. 그의 등을 꽉 끌어안고 아래에서 빠르게 엉덩이를 들썩거렸다. 강동현의 팔이 확 허물어졌다.

“으윽! 경호야… 으윽… 잠깐… 아으으윽…!”

강동현의 어깨가 황경호의 것에 퍽 하고 부딪쳤다. 황경호는 벌겋고 뿅 간 얼굴로 카우치에 얼굴을 박은 채 엄청 섹시한 얼굴로 사정을 하고 있는 강동현의 얼굴을 훔쳐보았다. 그의 허리를 잡은 채 요분질을 계속했다. 이렇게 덩치도 크고 성격도 강한 그가 정말로 애처로울 정도로 섹시한 얼굴을 했다. 황경호는 그의 얼굴에 홀려 가지고는 정성을 다해서 그의 자지를 빠르게 자신의 안에 넣었다 뺐다거렸다. 한참을 그러다가 황경호도 지쳐서 늘어졌다. 뿌리까지 삼키고 있었던 것을 주르르륵 빼고 그의 밑에 늘어졌다. 서로의 찐득한 체액이 서로의 안에서부터 바깥까지 연결이 되어 있었다. 강동현도 황경호의 위에 완전히 뻗어버렸다.

“헉… 으윽… 하아….”

강동현이 정신을 못 차리고 황경호의 귓가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황경호도 헐떡거리면서 그의 머리를 손으로 감쌌다. 머리카락이 부드럽다. 그대로 정신을 차릴 때까지 한참 동안 강동현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강동현의 너른 등 위로 구름에 가려졌던 햇살이 강하게 비친다. 강동현이 영 뭐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 운전 못 하겠는데… 니가 할래?”

그러자 황경호가 대답했다.

“택시 타자….”

***

결국 황경호는 얼굴에다 반창고를 잔뜩 붙이고 강동현의 집으로 가야 했다.

“난 못 들어갈 거 같으니까 니가 들고 들어갔다가 와.”

“왜? 그냥 들어가자.”

“이러고 어떻게 들어가.”

“그냥 들어가면 되지.”

“싫어.”

“엄마는 너 오는 걸로 알고 있잖아. 안 들어가는 것도 이상해.”

황경호는 인상을 좀 찌푸렸다가 강동현의 팔을 퍽 쳤다.

“얼굴 좀 깨물지 말라고!”

“미안하다니까. 오랜만에 해서 그런 걸 어떡해.”

이걸 변명이라고 한다. 결국 물건들을 들고 같이 집으로 들어갔다.

“우리 아들 왔어~”

어머니는 엄청 반가워하시며 대문까지 나오셨다. 황경호는 웃는 얼굴로 그녀에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어머! 너 또 얼굴이 왜 이래? 다쳤어? 왜 이래?”

어머니가 깜짝 놀라서는 황경호의 얼굴을 살폈다. 황경호는 깜짝 놀라서 뒤로 물러났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알레르기예요, 알레르기….”

“그리고 뭘 또 이렇게 해왔어. 안 해도 된다니까.”

“아니에요. 들어가요.”

그렇게 셋은 현관으로 향했다. 강동현의 어머니가 웃으면서 말했다.

“아이고, 우리 아들이 바쁜데 집에도 와주고.”

“그래서 싫어? 응? 싫어?”

강동현은 자기 엄마를 뒤에서 꽉 끌어안고 괴롭혔다.

“쟤 때문에 끌려 왔어.”

“참, 경호는 어떻게 저렇게 예의가 바른지. 가정교육을 진짜 잘 받은 거 같아. 너도 좀 보고 배워라. 반이라도 해, 반이라도.”

어머니는 강동현을 그렇게 타박했다. 강동현이 날씬한 자기 엄마의 뱃살을 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욕심이 또 많으시다, 욕심이.”

“어휴, 내가 말을 말지.”

같이 부엌에서 정리를 하고 강동현은 바로 카우치 껌딱지가 되었고 엄마는 밥을 먹고 가라고 끝끝내 애들을 설득해서는 저녁을 같이 먹기로 했다.

“영화 시간 10시라고 했지? 충분하겠네.”

어머니는 오랜만에 아들이 왔다고 또 진수성찬을 펼치기 시작했다. 황경호는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옆에 와서 일을 돕기 시작했다. 나중에 되니 강동현의 아버지도 들어오셨다. 강동현의 아버지까지 나란히 셋이서 부엌에서 일을 하는데 강동현은 카우치에 들러붙어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단지 간간히 부엌에서 일하고 있는 황경호와 아버지를 쳐다보기는 했다.

“진짜 경호가 음식을 잘하네.”

“당신보다도 잘한다니까.”

어머니가 그렇게 칭찬했다.

“아니에요. 저도 그냥 배운 대로만 하는 거예요.”

황경호는 이런… 화목하고 가정적인 분위기가 조금 어색했지만, 좋기도 했다. 가슴이 간질간질했다. 언행을 잘못할까 봐, 혹은 너무 오버하는 것일까 봐 조심스럽게 겸양을 하면서 마음을 억눌렀다.

“우리 아들 친구들은 다 우리 아들 같은데.”

강동현의 아버지가 칼질을 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어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치? 경호처럼 싹싹한 애는 없었어.”

“애들이 좀 싸가지가 없었지. 중고등학생 때 봐서 그런가. 하긴… 싸가지야 우리 아들이 제일 없다.”

“내 욕 하지 마!”

자기 욕하는 건 또 찰떡같이 알아듣는다. 그렇게 강동현의 부모님은 이야기를 나누고 강동현이 끼어들었다. 그러다가 어머니는 아버지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 찔렀다. 아버지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았다가 아! 하고 황경호를 보았다. 어머니는 슬그머니 식탁 쪽으로 가셨다.

“…그… 그 병원에서 일한다고… 그… 저기… 우리 아들 다니는….”

“아, 네….”

“아, 그러니까… 저… 그… 진짜로 우리 아들… 영 못 쓸 정도일까? 응?”

아버지는 참으로 자상하신 음성으로 걱정스럽게 조용~히 물어보셨다. 황경호는 약간 당황했다가 강동현을 힐끗 보았다가 우물쭈물거렸다.

“그게… 환자 신상에 대해서 환자의 허락 없이 말하면 안 돼서….”

“우리가 남도 아니고 부모 자식인데… 응? 어때? 힌트만….”

“그러니까…….”

아버님이 자상함을 가득 담은 눈빛을 마구 쏘셨다. 황경호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다가 결국 백기를 들었다.

“심각한 건 다 나았어요. 걱정하실 건 없을 것 같아요.”

“안 심각한 건 뭔데? 응?”

“그… 지루가 좀 있는 것 빼곤… 발기부전이나 이런 쪽은 다 나았다고 보시면 돼요. 잘 서(?)요….”

그러자 아버님이 활짝 웃으셨다.

“그래? 그럼 걱정 없네. 아, 나랑 우리 애 엄마가 얼마나 걱정을 했던지. 이상한 데서 자꾸 속 썩여, 우리 아들.”

“그러셨죠….”

그 커밍아웃을 시킨 게 황경호다. 괜히 양심이 찔린다. 황경호가 그들의 마음고생을 시킨 것만 같았다. 식사 준비를 다 하고 나니 갑자기 대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나더니 누군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엄마, 나 왔어~”

그러자 카우치에서 1센티미터도 움직이지 않던 강동현이 벌떡 일어나 앉았다. 강동현의 어머니가 웃으면서 부엌 밖으로 나왔다.

“어머, 딸!”

엄청 반가워하시며 그녀를 마중하러 나가셨다. 황경호는 강동현의 누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강한 호기심이 올라왔다. 예전에 몇 마디 한 것 빼고는 별로 해준 말이 없었다. 진짜 똑똑하다고 했던 게 기억이 난다.

‘…그래도 이런 걸로 어떻게 알아.’

황경호는 잠깐 자기 뺨을 만져보았다가 슬쩍 부엌 밖으로 고개를 내밀어 보았다.

‘와, 진짜 키 크다….’

이 집은 장신 유전자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황경호의 쪽에서는 뒷모습만 보였다. 머리카락은 검은 생머리에 포니테일로 높게 묶었다. 엄청 늘씬하다. 황경호보다도 키가 클지도 모르겠다. 강동현은 계속 자기 누나랑 황경호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불안해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저러는 건 처음이다. 아니, 뭘 또 저렇게까지….

“오늘 진짜 날인가 보다. 우리 딸 아들 둘 다 집에 이렇게 오고. 아! 여기 은혁이 친구. 경호라고. 지금 같이 산다고 했던 친구야. 은혁이가 얹혀사는 데도(?) 진짜 착해. 같이 밥 먹자.”

어머니의 낙은 이렇게 자식들과 가족들 밥을 챙겨 먹이는 것인가 보다. 강동현의 누나는(분명히 황경호보다 키가 크다…) 고개를 돌려서 황경호를 보았다.

“…!!”

황경호는 깜짝 놀라서 딸꾹질을 할 뻔했다. 그녀는 황경호를 한 번 보고, 강동현을 확 돌아보았다가 다시 황경호를 보고는 미소를 지었다. 강동현은 누나의 눈빛을 받고는 세상 다 산 얼굴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황경호는 그걸 보지 못하고 강동현 누나의 얼굴만 보고 있었다.

“반가워요. 말씀 많이 들었어요. 제 동생이 그렇게 고생을 시킨다고….”

그녀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황경호는 멍청하게 그녀의 손을 잡았다. 황경호는 얼굴이 벌게졌다.

“아… 저… 저도 반갑습니다. 마,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왜, 왜 이렇게 떨리지… 황경호는 스스로의 상태에 깜짝 놀라서 당황하고 있었다.

“말씀 놓으세요….”

“그럴까?”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부엌 꼴을 보더니 강동현에게 뭐라고 했다.

“야, 넌 엄마, 아빠랑 손님까지 일하는데 거기 누워 있었냐?”

강동현이 슬그머니 일어나서 식탁으로 왔다. 다 같이 밥을 먹으면서도 황경호는 계속 힐끗힐끗 강동현의 누나를 보았다.

‘어, 엄청 예쁘다….’

이 집 딸이니까 빠질 외모는 아닐 거라고 막연히 생각은 했지만… 게다가 저 분위기… 강동현 어머니의 상냥한 느낌과 아버지의 힘이 있는 느낌, 그리고 엄청, 엄청 똑똑할 것 같은 지적인 느낌까지! 강동현은 무슨 마귀인 것처럼 설명하더니 이런 누님을 가지고! 황경호는 자기한테 있는지도 몰랐던 스크라이크 존에 강한 직구를 맞은 상태였다. 물론 여전히 자각은 없었다.

‘아, 좀 제대로 하고 올걸….’

황경호는 자기 꼴을 자각하고 머리와 얼굴을 몰래 만졌다. 그리고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게 밥을 먹었다. 식사를 마치고 정리를 다 같이하고(강동현도 도왔다. 얘가 왜 안 하던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 다 같이 마실 차를 준비했다. 황경호는 어떻게 자리를 옮기다 보니 누님의 옆에 서게 되었다. 황경호는 이러면 안 돼~ 라고 생각하면서도 저도 모르게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누, 누님….”

“응?”

“진짜 예쁘세요….”

말했다. 말했다… 황경호는 얼굴이 펑 터질 것만 같았다. 그러자 누님이 하하, 하고 호탕하게 웃으시더니 황경호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었다.

“너도 귀여워.”

머리 쓰다듬어 주셨다… 그는 연장자가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걸 좋아했다. 막연히 이 집 잘난 자식은 강동현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누가 봐도 누님이셨다. 뭔가 멋있기도 하고… 황경호는 아주 그냥 하트가 뿅뿅 하는 눈으로 누님을 계속 쳐다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누가 황경호의 무릎 뒤를 쿡 찔렀다.

“너… 지금 뭐하냐. 어? 어? 뭐하냐고.”

“어? 어? 뭐가?”

“내가 우리 누나 조심해야 한다고 했잖아.”

“어… 어… 응….”

황경호는 강동현의 말을 귓등으로 들으며 계속 누님의 뒤꽁무니를 쫓아 시선을 돌렸다. 누님이랑 아버님은 거실에서 얘기를 하고 있었다. 누님도 일찌감치 독립을 하신 모양이었다.

“그냥 앉아 있지.”

누님은 황경호가 차를 들고 오자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진짜 잘 웃어주신다. 황경호는 저렇게 잘 웃어주는 사람이 좋았다.

“더 필요하신 건 없어요?”

“없어. 고마워.”

누님은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황경호는 뭔가 뭉게뭉게 부풀어 오르는 것만 같았다. 누님… 진짜 잘 보이고 싶다. 근데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동생아.”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깐의 틈에 누님이 강동현을 불렀다. 놀랍게도 황경호는 좀 시샘이 났다. 동생이라 좋겠다… 나도 저런 누나 있었으면 좋겠다… 엄청 말 잘 들을 텐데. 둘은 잠깐 쑥덕거리더니 슬그머니 정원으로 나갔다.

둘이 정원으로 나가자 강동현의 부모님은 각을 잡고 황경호에게 이것저것 물어보기 시작했다.

“경호야, 중간에서 계속 난처하게 해서 진짜 미안하다만… 부모 마음이라는 게….”

아버님이 어렵사리 운을 뗐다. 어머니가 한숨을 쉬었다.

“이이한테 좀 물어봐 달라고 했더니 제대로 물어보지도 않고 다 괜찮다는 말만 해서 내가 믿을 수가 있어야지….”

그거 하나 제대로 못 하냐는 식으로 어머니가 아버님을 약간 흘겨보았다. 아버님은 면구스러운 얼굴이셨다. 황경호는 그 모습이 오히려 참 보기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말씀하시는 내용이야 당혹스럽긴 한데….

“진짜 괜찮아요, 어머니. 처음에 은혁이가 병원에 왔을 때는 원체 바빠서 치료 받아도 차도가 많이 없었어요. 기능성 부전이 아니라 심리적 부전이라 스트레스 관리를 해야 하는데, 병원까지 찾아와 놓고도 의사 선생님 말씀을 하나도 안 들었거든요, 쟤가….”

“하아… 진짜 내가 속상해서….”

의사 말을 개똥으로도 안 들었다는 구절에서 어머니는 아주 답답해하셨다.

“근데 자꾸 더 안 좋아지니까 결국 저희 선생님 말씀을 조금씩 듣더라구요. 스케쥴 조정도 하고 잠 잘 자고 술 담배도 끊고… 그러면서 확 좋아졌어요. 이제는 혼자서 하거나 아침에도 된다고 하구요. 진짜 크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진짜니? 진짜 다행이네… 그래도 이렇게 경호한테서 들으니까 안심이 된다. 은혁이는 아무리 물어봐도 대답을 안 해줘. 엄마 아빠가 이렇게 걱정하는데 짜증만 내고….”

어머니가 한숨을 푹 쉬셨다.

“그게 그럴 수밖에 없어요… 그… 그거 잘못된 남자들이 중2병 걸린 남자 중학생들보다 성격이 더 예민해서….”

“어머… 그런 거 물어보면 안 되는 거였니?”

“음… 되도록 그냥 두시는 게… 게다가 은혁이 성격 아시잖아요. 괜히 벌집 건드리는 격이라서….”

“그렇구나….”

그러고 있는데 이 두 남매가 집에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가만히 강동현의 부모님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도 좋았지만 계속 누님과 그가 무슨 얘기를 하고 있을지 궁금했다.

“이제 슬슬 가봐야 하지 않니?”

어머니가 시각을 확인하시더니 그렇게 말씀을 하셨다. 황경호는 영화에 대해서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가 아차 했다. 어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현관 쪽으로 가셨다.

“어머, 이게 무슨 냄… 니들 설마 담배 펴?!”

“아니.”

“누나가.”

누님과 강동현이 동시에 대답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곧 집으로 들어왔다.

“이제 가자.”

벌써… 황경호는 자꾸 누님을 힐끗거리다가 무거운 엉덩이를 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가볼게요….”

황경호는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누님, 만나서 진짜 반가웠습니다.”

그러자 어머니가 호호 웃으셨다.

“경호가 우리 딸 마음에 들었나 보네.”

“아니…! 아뇨. 네. 아뇨… 그러니까….”

황경호는 깜짝 놀라서 얼굴이 벌게졌다. 그리고는 얼른 강동현을 따라갔다. 집 밖으로 나가자 황경호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강동현은 집 밖에 나오자마자 황경호에게 말했다.

“우리 들켰다.”

“응? 뭘?”

“사귀는 거.”

“어…? 누구한테?”

“누구긴. 누나한테 들켰다고.”

“?!”

뭐라고!!! 황경호는 깜짝 놀라서 말을 잃었다. 황경호는 현관문과 강동현을 마구 번갈아 보다가 작게 소리쳤다.

“거짓말! 언제!! 어떻게!”

“보자마자…….”

강동현이 한숨을 쉬며 대문으로 향했다. 황경호는 믿을 수가 없다는 얼굴로, 믿고 싶지 않다는 표정으로 그를 빠르게 따라갔다.

“니가 누님한테 먼저 말한 거 아니면 어떻게 알아?”

“…전에… 우리 같이 대전 갔을 때… 너랑 사귄다는 말은 안 하고 만나는 애가 있다는 것만 말했는데…… 어쨌든 그걸로 바로 눈치챈 거 아닐까….”

강동현이 자신 없는 어투로 그렇게 말했다.

“그런 걸로 어떻게 알아?”

“몰라… 우리 누나한테 물어봐… 걔는 그냥 모르는 게 없어….”

강동현이 한숨을 팍팍 쉬었다. 같이 차에 올라탔다.

“그럼 어떡해?!”

황경호가 약간 패닉 상태에 빠져서 그렇게 물었다.

“뭘 어떡해. 아무것도 안 해도 돼… 우리 서로 인생에 노터치야. 자긴 그냥 모르는 척한대. 부모님한테 들켜도 쌩깔 거라고….”

“누님이 그렇게 눈치챘다고 그걸 그대로 자백했어?”

“그럼 어떡하냐… 그냥 바로 알던데….”

“…….”

그대로 약간 침묵이 흘렀다. 강동현은 힐끗힐끗 황경호의 얼굴을 보다가 물었다.

“근데 넌 우리 누나는 왜 그렇게 쳐다봐? 어? 들킬 거 같아서 그런 거야?”

“응? 아니? 너무 예쁘셔가지고….”

황경호는 패닉 후에 약간의 멍한 상태로 아무 생각 없이 말했다. 강동현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예쁜 여자가 다 죽었다.”

“왜 그래. 진짜 미인이시던데. 너무 예쁘셔서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르겠더라.”

황경호가 한숨을 쉬었다.

“뭔가… 하아, 나 오늘 너무 이상하지 않았어? 얼굴도 이래서 진짜 이상하게 보셨을 거 같다… 나 싫어하시진 않겠지?”

엄마랑 아버지를 처음 만났을 땐 좋으신 분들 같다고 뭔가 선망하긴 했어도 이렇게 지대한 관심을 쏟진 않았던 황경호였다. 열기의 차이를 느낀 강동현이 어이가 없어서 헛웃더니 물었다.

“너 무슨… 우리 누나한테 반했어?”

“어? 어… 아니…….”

황경호는 그렇게 대꾸를 했다가 한숨을 푹 쉬었다.

“…너 좀 이상하다?”

“뭐가?”

“이상해.”

“뭐가?”

강동현은 미심쩍은 눈으로 황경호를 계속 보았다.

하여튼 그 뒤로도 황경호의 누님 앓이는 계속되었다. 한 번은 누님과 강동현이 동시에(?!) 꿈에도 나타났다. 진짜 부끄러웠다. 하지만 계속 생각났다. 이런 건 강동현 외엔 처음이었다. 게다가 이런 무조건적인 강한 호감이라니. 이건 살아생전 처음이다.

“누님은 뭐 좋아하실까….”

황경호가 한숨을 섞어 중얼거렸다.

“우리 누나? 돈.”

“응? 진짜? 의외다….”

황경호는 근 며칠 동안 누님에 대한 호구조사 일체를 다 끝냈다. 중학교까지는 한국에서, 고등학교부터 석사까지는 미국에서 나오셨다. 4개국어도 하시고 엄청 똑똑하셨다.

“우리 누나 재벌 되는 게 꿈이야.”

“와….”

“신문에도 몇 번 나온 적 있어. 아직 서로 남매라고는 안 밝혔다. 누나 회사 더 크면 그때나 기사 내려고.”

“진짜?!”

황경호는 얼른 검색엔진에 누님의 이름을 쳐보았다.

“나온다.”

황경호는 엄청 반가워하며 기사들을 읽었다. 젊은 유망사업가 명단에 이름을 올리셨다.

“사진이 너무 못 나왔다… 와, 그래도 멋있다.”

강동현은 뚱한 표정으로 카우치 등받이에 팔꿈치를 대고 턱을 괸 채 황경호의 얼굴을 보았다.

“너 진짜 우리 누나한테 반했어?”

“응? 아니….”

황경호는 그의 추궁에 뭔가 켕기긴 했지만 그렇게 대답했다.

“근데 우리 누나한테 왜 이렇게 관심이야, 기분 나쁘게.”

“미안… 하긴 동생인데 기분 나쁘겠다.”

황경호가 약간 주눅이 들어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대단한 누나인데… 강동현은 버럭 화를 냈다.

“아니! 내 마누라가 딴 년(?)한테 눈이 뒤집혀 있는데 어떤 놈이 기분이 안 나쁘냐고!”

“뭔 소리야… 너랑 나랑 이런 마당에 내가 누님이랑 뭘 어쩐다고….”

“그럼 나랑 안 살았으면 애저녁에 쫓아다녔겠다?”

“에이, 누님 같은 하이스펙이 나 같은 게 눈에나 들어 오겠어?”

“쫓아는 다니겠다고?”

“아니… 아니, 왜 이래, 너? 왜 이렇게 정색이야?”

“왜 제대로 대답 못 해?”

“진짜 왜 정색을 해….”

“대답해!”

강동현이 그렇게 을렀다. 황경호가 쳇하고 체념했다.

“알았어… 안 쫓아다닐게….”

“아!! 마음에 안 들어!”

그 태도에 강동현은 더 짜증을 냈다.

***

그새 황경호는 강동현 몰래 어머니께 누님이 좋아하는 음식을 물어보고 해서 갖다 드렸다. 그러니 누님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렇게 신경 써줘서 진짜 고맙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하다가 생각나서….”

그렇게 황경호는 여전히 그녀에게 강동현과의 사이를 들켰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하고 마냥 잘 보이고 싶어하고 있었다.

강동현도 황경호가 뭔가 해주는 것에 고맙다 표현하는 것도 있지만 당연하게 생각하고 넘어가는 것들이 훨씬 많았기 때문에 이렇게 직접 전화를 줘서 감사를 표하는 것도 고맙게 여겨졌다. 누군가 자신의 공로를 인정해주는 건 기쁜 일이다.

황경호는 단 한 번도 이런 식으로 적극적으로 누군가에게 호감을 표현한 적이 없었다. 강동현은 애초에 그 자체가 황경호에게 많은 애정 공세를 벌였기 때문에 거기에 좀 되돌려주는 것에 인색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완전 모르는 사람에게 이러는 것은 처음이다.

그것이 이성적인 의미이든 아니든 상관이 없었다. 거절을 당할 수도 있고 상대가 부담스러워 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예전부터 이강유와의 선을 나름대로 견고하게 지켜온 것처럼, 주제에 맞지 않는다고 그저 멀리에서만 지켜보고 있어도, 황경호에게는 전혀 이상할 일이 아니었다. 예의를 지키고 선을 잘 지키는 것에 아주 세심한 노력을 들이던 그였다. 친구들과도, 직장 동료들과도, 부모와도. 그래서 그는 항상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걸 알아볼 수가 없었다. 황경호는 창피를 당하는 것이 죽는 것보다도 싫다고 생각했던 사람이었다. 이런 일을 했다가 상대가 자신을 난처하게 여긴다든가 한다면 분명히 쥐구멍을 파고 들어가고 싶을 것이다.

그런 그가 누군가에게 무조건적인 호감을 느낀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녀에게 잘 보이고 싶어, 대가 같은 건 바라지도 않고 그저 그녀가 기뻐하기만을 바라며 무언가를 한다는 건 스스로도 깨닫지 못한 굉장한 발전이었다.

물론 강동현은 별로 기뻐하지 않았다.

“읏…! 아아앗! 핫! 아아앙…!! 도은혁…! 도은혁!! 앗! 앗!! 너, 너무 격렬해… 하아앗…!”

황경호는 강동현의 손에 허리를 꽉 붙잡혀 있었다. 엎드려서 강동현의 탄탄한 종아리에 자신의 다리를 걸쳐 맞물리게 한 후 깊숙이 퍽퍽퍽 박히고 있었다. 황경호가 음부를 오물거리며 스스로 엉덩이를 좀 흔들려고 하자 강동현이 짝 소리가 나게 황경호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때렸다.

“앗…!”

“어딜. 또 요부 짓 하려고.”

황경호가 얼굴을 확 붉혔다. 그대로 몇 번 더 박히자 결국 오르가즘을 확 느끼며 경련하기 시작했다.

“으으으응…! 으읏. 핫. 아흑. 으흑. 아아앙… 은혁아… 하앗. 앗. 으흑. 윽….”

그대로 빠른 속도로 계속 파이자 숨이 턱턱 막혔다. 황경호는 온몸을 꿈틀거리면서도 강동현을 떼어내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그럴수록 더 강하게, 빠르게 박혔다.

“안 돼…! 아아아앙…! 하아아아앙….”

멀티 오르가즘까지 왔다. 황경호는 체액을 줄줄 흘리며 괴로워했다. 강동현이 열기에 가득 차서 헉헉거리면서도 씨익 웃었다. 그를 이렇게 엉망으로 만들 수 있을 땐 짜릿한 위력감이 느껴졌다. 승리감과 비슷한 기분이다.

“어때? 어? 나 말고 누가… 헉. 너 이렇게 느끼게 해줄 거 같아? 나 말고 누가…!”

“아아앙…! 변태!! 손가락… 핫. 아앙… 아아앙… 은혁아… 은혁아아…! 핫… 나 죽어. 죽을 거야. 흑. 아앙. 죽을 거 같아…!”

엉덩이에 엄지손가락이 같이 들어왔다. 황경호는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다른 구멍에서도 잔뜩 애액을 흘려댔다. 오늘은 가슴이랑 거기만 잔뜩 괴롭힘을 당했다. 뒤에서 박으니 바로 배 부분이 긁혀서 칠칠치 못하게 자꾸 줄줄 쌌다. 온몸에 열기가 잔뜩 돌아서 피부가 벌겋게 텄다.

“나밖에 없지? 응? 윽. 나밖에 없잖아. 대답해.”

“으응… 응… 흑… 너밖에 없어. 너밖에… 하아앗… 앙…! 너밖에 없다니까. 아아앙…! 흑… 더는 못 해. 못해. 싫어어… 아우으으으….”

황경호는 묽은 체액을 질질 흘리며 경련을 했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팔을 잡아 일으켜 그의 등을 자신의 몸에 딱 붙였다.

“흐응. 그래. 그래야지. 나밖에 없지? 응? 나뿐이지?”

강동현이 황경호의 귀를 깨물며 그렇게 속삭였다. 황경호는 금방이라도 기절을 할 것 같아서 헐떡거리며 그의 비위를 맞췄다.

“내가… 하앗… 내가 너말고 누가 있다고… 핫… 아앗… 은혁아아… 흑… 이제 좀 싸. 응? 이제 그냥 하라고. 아아앙… 나 죽는다니까… 핫… 더 못 해. 못해… 싸줘. 빨리 싸줘. 핫… 안에 해도 되니까. 하으응… 싸줘어….”

황경호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자신의 음부가 그의 대물을 아주 쫄깃하게 쪽쪽 빠는 걸 느꼈다. 어쩔 수 없었다. 벌써 몇 시간이나 박혔단 말이다. 그러면 진짜 미끈해져서 야한 소리가 잔뜩 난다.

“후우… 큭… 알았어… 내가 봐준다….”

이 변태가 누굴 봐준다고…! 황경호는 눈물을 질질 흘리면서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지만 아찔할 정도로 깊이 박혀서 그가 자신의 안에 잔뜩 지리는 것을 느꼈을 땐 그냥 안도감이 들었다.

‘끝났다…’

드라마 끝났다고 그간 못했던 걸 보상받을 심리인지 요즘 들어 섹스를 할 때마다 절찬리에 황경호를 괴롭히는 강동현이었다. 옛날보다 더하다. 지루 주제에 엄청 참아서 황경호를 아예 골로 보낼 뻔한 강동현이 그로기 상태에 빠졌다. 그대로 앞으로 쓰러져 황경호를 짓눌렀다.

음부로 피가 잔뜩 몰려서 푹신푹신하고 뜨거운데 거기에 강동현의 자지가 푹 박혀 있으니 누가 누군지 구분을 할 수가 없다. 황경호는 너무나 민감하고 또 그래서 지쳐서 꼼짝할 수가 없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또 느낄 것이다. 차라리 석남(?)이라도 되고 싶다. 더이상 섹스는 싫다….

‘안 해… 안 해. 한 100일은 다시 안 해도 될 것 같아….’

강동현이 한 2주 동안 내리 괴롭혀대니 황경호도 결국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각방 쓰자. 그렇게 한 이십 분쯤 있다가 좀 정신을 차린 강동현이 황경호의 뺨에 입술을 눌렀다.

“좋았지…?”

죽을 뻔했다, 이 멍청아… 이 새끼는 느끼게만 하면 뭐가 다 되는 줄 아는 것 같다. 황경호는 진짜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었다.

“이제 좀 나와라….”

황경호가 앓는 소리를 내며 그렇게 말했다. 강동현은 그의 뺨에 자신의 뺨을 비비며 애교를 떨었다.

“왜애. 어디 더 만져줄까? 핥아줄까?”

“아, 싫어…!”

황경호가 질색을 했다.

“난 너랑 계속 이러고 있고 싶은데….”

강동현이 그렇게 말했다. 황경호가 리드를 잡아 그를 쪽 빨아(?)내 버리면 강동현도 한 번 정도에 만족할 수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자기가 리드를 잡고 황경호를 괴롭히는 건 또 다른 맛이 있는지 그냥 황경호가 하게 안 내버려 둔다는 게 문제다.

강동현이 드디어 황경호의 몸속에서 자지를 빼냈다. 황경호는 부르르 떨면서 야한 얼굴을 했다. 강동현은 그대로 황경호의 다리 사이에 자기 다리를 끼우고 자기 자지는 그대로 그의 엉덩이 사이에 댄 채로 그를 뒤에서 끌어안아 옆으로 누웠다. 그리고 그의 가슴을 손으로 만졌다. 아주 자기 거라 이거다.

“넌 나랑 같이 안 있고 싶어?”

“지금은 영영 떨어지고 싶어….”

“아, 왜애.”

“너무 힘들어….”

“너 요새 계속 우리 누나만 찾고… 짜증 난다고. 응?”

황경호의 힘들다는 소리는 아주 귓등으로 흘리는 강동현이었다.

“왜… 누님도 너네 누님이니까 잘해드리고 싶은 거야.”

“거짓말하지 마. 엄마한테 해주는 거랑 다른 게 확 보이는데 내가 그 말에 넘어갈 거 같아?”

“아, 이상한 거에 자꾸 질투 좀 하지 마. 의처… 아니, 의부증이야, 뭐야….”

“니가 질투 나게 하는데, 어? 어떡해? 어떡하라고?”

“아…! 진짜! 좀!”

또 괴롭힌다. 황경호는 저항할 힘도 없어서 그에게 강하게 포옹을 당해 힘들어하다가 백기를 들었다. 어차피 황경호는 저항력이 강하지도 않았다.

“알았어. 알았다니까! 아! 힘들어!”

“사랑한다고 말해.”

“아…! 으읏… 사랑해. 사랑해. 됐어?”

“어허. 진심을 가득 담아서 말해야지. 어디 서방님한테.”

황경호는 짜증이 확 나서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그가 팔에 힘을 줘서 더 꽉 끌어안았다. 황경호는 인상을 확 찌푸렸다가 다시 말했다.

“사랑해.”

“좀 더 말해봐.”

“…사랑해.”

황경호도 약간 얼굴이 붉어졌다.

“…….”

“…….”

눈이 마주친 채로 있으면 마음이 간질간질해진다. 한동안 확실히 딴 데 정신이 팔려 있던 황경호였으나 순간 애정이 뭉글뭉글 가슴 속을 채우는 것을 느꼈다.

‘역시… 잘생겼다.’

예뻐… 여기는 매력으로 먹고사는 남자다. 게다가 그 매력이 이 땅에선 찾기 힘들 정도로 남자다운 쪽이고… 황경호의 눈빛이 뭔가 확확 빨아들이는 것 같자 강동현이 기분이 아주 좋아져서는 그를 마주 보고 끌어안았다. 그의 코를 깨물었다.

“몇 주나 나는 내버려 두고.”

“안 그랬어….”

“뭘 안 그래?”

“안 그랬어.”

“거짓말.”

“안 그랬다니까. 아…! 넣지 마! 으응…! 들어 오잖아. 핫! 하지 마. 하지 마. 아아앙….”

음부에 힘을 줘서 저항했지만, 이미 몇 시간이나 미끈하게 대줬던 곳이라…. 강동현은 마주 보고 옆으로 누운 황경호의 다리 하나를 자기 허리에다 걸치고 그의 엉덩이를 영차, 하고 쭈욱 끌어당겼다. 물론 그대로 쭈욱 그의 안으로 들어갔다. 아주 쉬웠다.

“으응. 핫… 세게 하지 마. 살살해….”

황경호가 얼굴을 확 붉히고 야한 얼굴을 했다.

“알았어. 내 얼굴 봐.”

황경호는 영 야시시한 얼굴을 하고 강동현의 얼굴을 봤다. 강동현은 2주나 그를 괴롭혔지만 그가 영 집중을 안 하는 것 같아서 더 그를 못살게 굴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의 맨살부터 속살까지 아주 착 달라붙어 오는 것 같았다. 강동현이 아주 부드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아… 은혁아….”

버겁지도 않고… 좋다. 그가 미끌미끌하게 안을 천천히 비볐다. 황경호는 그의 단단하고 넓은 어깨를 팔로 감쌌다.

여자와 포옹을 해본 적이 별로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어머니와 저번에 포옹했을 때는 그녀가 참 부드럽고 포근하고 나긋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냄새가 났다. 강동현은 단단하고 크고 품에 다 들어오지도 않는다. 몸에 힘을 빼고 있으면 그의 근육들이 탄력 있고 푹신푹신한데 한창 힘을 줘서 섹스를 할 때는 진짜 단단하고 움직일 수도 없어졌다. 게다가 쉴 새 없이 좋은 목소리로 사랑한다고 속삭이고….

황경호는 금세 황홀해졌다. 피부에 땀이 잡혀 매끈해졌다. 그에게 깃털 같은 입맞춤을 받고 있었다. 그의 예쁜 입술에 부드럽게 자신의 것을 비볐다. 기분 좋아. 날아갈 것만 같다. 머리털 끝까지 오싹오싹했다. 목덜미에 소름이 일었다.

“우리 누나 어디가 그렇게 좋아? 응?”

“몰라… 분위기가… 핫… 조금만 더… 응… 깊이….”

“여기?”

“아…! 응… 거기. 앙… 거기….”

황경호는 녹을 것만 같이 기분이 좋아서 그의 등을 계속 정념을 담아 쓰다듬었다. 황경호가 감당도 할 수 없을 만큼 쾌락을 주는 육체였다.

‘내 거….’

그가 황경호가 말한 곳을 슥슥 찌르자 황경호가 야한 목소리를 내며 그에게 달라붙었다. 그의 쇄골을 깨물었다. 그대로 몇 번이고 안이 문질러졌다.

“분위기가 뭐?”

“몰라아… 아앙. 핫. 너랑… 너랑 선생님이랑 섞어 놓은 거 같아. 예쁘고… 멋있고… 앙… 똑똑하고….”

누나가 얘한테 그렇게 보일 줄은 몰랐다. 강동현은 그가 솔직하게 말하니까 더 심술이 올라왔다.

“어떡하냐. 우리 누나는 이거 없는데?”

“앗! 안 돼…! 더 깊이 넣지 마아….”

황경호는 엄청 기분 좋게 느끼고 있다가 그가 버거운 곳을 쿡 찌르자 주륵 흘리며 몸을 바르르 떨었다.

“너 이제 내 자지 없으면 못 살 정도잖아.”

“뭘 못 살 것까지야… 아앙….”

황경호가 얼굴을 붉히고 야시시한 표정을 한 채로 대답했다. 강동현은 그의 부드러운 등과 허리를 쓰다듬고 엉덩이를 주물렀다. 피부만 만져져도 기분이 좋은지 끝내주는 신음을 흘렸다.

“은혁아… 흐응… 은혁아… 하아앙….”

한동안 강하게만 했더니… 부드럽게 섹스를 해주니까 황경호가 오히려 정신을 못 차리고 매달려왔다. 강동현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한참 그의 체취를 맡았다. 그러고 있으니 강동현은 또 영 변태같이 황경호를 을렀다.

“나 없으면 못 산다고 해.”

“흐으응… 알았어… 알았어….”

“말로 해.”

“너… 너 없으면 못 살아… 핫… 은혁아… 아앗….”

이럴 때마다 강동현의 비위를 다 맞춰주니까 그가 점점 더 기고만장하게 구는 것이다. 강동현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더 재촉했다.

“그렇지? 응? 사랑한다고 말해.”

“사랑해. 사랑해. 아아앙… 나 갈 거 같아.”

강동현은 황경호의 얼굴에 입을 마구 맞췄다.

“내가 최고라고 말해.”

“아흑… 니가 최고야. 앗. 아앙….”

“내 자지도.”

“핫… 빼지 마아… 으으읏….”

“말해.”

“핫… 니 자지도… 니 자지도 최고야… 핫… 아앙… 다시 넣어. 빨리!”

“흐응.”

강동현이 매우 의기양양하게 웃었다. 아주 그냥 엎드려 절 받기인데도 그런 건 신경 안 쓰나 보다.

“우리 경호. 내 바니. 내 거야.”

강동현은 황경호를 끌어안고 그가 원하는 대로 부드럽고 상냥하게 허리를 움직여서 그를 아주 뿅 가게 해주었다.

“하으으으응…!”

황경호는 녹을 듯한 얼굴로 턱을 치켜들며 엉덩이를 부르르 떨었다. 녹아버릴 것만 같은 오르가즘이었다. 민감한 곳들이 전부 질척질척 물러진다.

“핫… 아앗….”

“으윽… 큭… 하아….”

강동현도 좀 더 하다가 사정을 했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길쭉한 다리를 쓰다듬으며 후희를 즐겼다. 그대로 서로의 얼굴을 맞대고 끌어안았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잠들었다.

그 뒷날에는 언제 서로 괴롭혔냐는 양 엄청 알콩달콩(…) 아침을 보냈다. 강동현도 곧 해외일정으로 한동안 한국에 없을 거니까 말이다.

“으음… 응… 으으음. 응… 하아… 음….”

키스하는 건 정말 기분이 좋은 일이었다. 강동현의 입술은 진짜 부드러웠다. 그리고 또 그대로 섹스까지 할 뻔했는데 전화가 왔다.

“아, 네. 어머니.”

강동현은 자기 위에 엎드려서 전화를 받고 있는 황경호의 엉덩이를 만졌다. 황경호가 그의 손을 잡았다.

[지금 집에 있니? 김치랑 다 먹었다며. 갖다 줄게.]

“아, 네. 알겠습니다. 기다리고 있을게요.”

강동현이 어젯밤에 황경호한테 입혔던 야한 팬티를 그의 눈앞에서 흔들었다. 황경호는 얼굴을 붉히면서 겨우 전화 통화를 끝냈다.

“왜 그래, 진짜!”

“뭘? 내가 뭐?”

“하여튼 간에. 내가 너 때문에 못 산다….”

“흥. 뭐? 뭐가?”

그렇게 침대 위에서 뒹굴거리다가 어머니께서 올 시간이 되어 씻고 침실을 치웠다.

“오셨어요?”

황경호가 웃는 얼굴로 어머니를 현관에서 맞이했다. 강동현은 끝까지 안 나오고 카우치에 누워 있었다.

“왔어.”

“너도 있었어?”

“응.”

강동현은 과자를 먹으며 대충 대답했다. 냉장고에서 물건을 정리하고 어머니는 금방 가신다고 했다.

“화장실 좀 쓸게.”

“네.”

그리고 황경호는 다시 냉장고와 김치냉장고를 보며 어떻게 내용물을 재배치할지 고심하고 있는데 강동현이 왔다.

“배고프네.”

“응. 빨리 밥해줄게.”

“밥 먹고 뭐할까?”

“드라이브 갈까? 교외로. 나 이제 운전 꽤 잘하는데.”

“그럴까? 너 월요일까지 쉬지?”

“응.”

“맛있는 거 먹고 뒹굴거릴까.”

“구경부터 하고. 놀러 갔다가 숙소에만 있는 거 너무 허무해.”

“에이. 니가 더 좋아하면서….”

그렇게 둘이서 자기들만의 세상을 만들다가 중요한 사실을 깜박하고 말았다. 그들은 언제나 뭔가를 깜박하곤 했지만, 이번엔 정말 큰 건이었다.

“…니들 사귀니?”

어머니가 어느새 그들의 뒤에 서서 그렇게 물었다.

***

사귀는 이들은 일단 분위기부터가 다른 법이다.

“…….”

“아니요…! 어머니, 무슨 말씀을….”

황경호는 깜짝 놀라서 화들짝 강동현에게서 떨어졌다. 금방 말한 거 중에 이상한 거 있었나? 없었던 거 같은데? 얘가 혹시 뽀뽀라도 했나? 너무 가까이 서 있었잖아. 어떡하지?

“…….”

등으로 땀이 흘렀다. 어머니는 강동현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강동현은 그냥 딴청을 피우듯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중이었다. 얘가 왜 이래. 미쳤나… 어머니는 황경호를 보셨다.

“아니지?”

“아니에요. 당연히 아니죠.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하하…….”

“그래… 내가 무슨 말을….”

하지만 어머니는 강동현의 어머니였다. 강동현은 가까운 사람들한테는 더럽게 거짓말을 못 했다. 아니, 안 했다. 변명도 안 한다.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니까 그런 것이다. 어머니는 자꾸 강동현과 황경호를 번갈아 보았다. 황경호는 몸이 떨릴 것만 같아서 혼났다.

“…은혁아, 엄마랑 잠깐 얘기 좀 할래?”

누님한테 들켰다는 말을 듣고도 너무나 아무것도 바뀌지가 않은 데다가 그대로 사실상 묵인을 해줬다는 것에서 어쩌면 안도하고 방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애초에 강동현의 가족과 이런 식으로 교류가 있었던 것부터가 위험한 짓이었는데.

“…….”

“야… 왜 그래….”

황경호는 강동현을 쿡쿡 찔렀다. 어머니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경호야… 진짜 미안한데 잠깐 자리 좀 비켜줄 수 있을까?”

“어머니, 아니에요. 진짜요….”

하지만 이미 어머니는 황경호의 얼굴도 제대로 못 보셨다. 황경호는 상처받았다. 난처하게 웃는 얼굴로 어떻게든 무마해보려고 했던 그였으나 결국 점점 겁에 질린 표정이 되어 갔던 것 같다. 어떻게 집 밖으로 나왔는지조차 모르겠다.

“…….”

한 시간 정도는 진짜 패닉 상태로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아파트 단지 내 커피숍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하나 시켜 놓고 그냥 멍하니 앉아 있었다.

어떡하지?

어떻게 되는 거지?

강동현을 소 닭 보듯 한다는 누님이야 그런 식으로 넘어갈 수 있다지만… 어머니가? 아버님은?

아버님은 그렇게 자상해 보이시지만 강동현이 대학을 안 가고 연예인이 된다고 했을 때 그의 머리를 다 깎아 버리고 손찌검까지 하셨다고 했을 정도로, 아마 자식 교육에 철학이 강한 분이실 거란 생각이 처음부터 들었다. 아마 강동현이 대가 저렇게 센 것도 한없이 무른 어머니한테서 물려받았다기보단 아버지 쪽에서 물려받은 것일 테니 말이다.

그리고 어머니…… 강동현이 어머니만 그렇게 당연한 것처럼 취급하고 가끔은 홀대해도 어머니가 그에게 그렇게 무른 것은 아들에 대한 그녀의 사랑이 너무나 크기 때문이었다.

‘어떤 아들인데…….’

절대 인정 못 하실 거다. 강동현은 당연히 언젠가는 들킬 거라고 말했었다. 황경호는 그 가능성에 대해서는 인정했었지만 조심하고 있으니까 절대 들키지 않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렇게 쉽게 들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제대로 변명도 못 해보고….

‘아니야. 아직 들킨 건 아닐 거야. 걔가… 은혁이가 그렇다고 누님한테 하던 것처럼 그냥 바로 불지는 않겠지… 안 그러겠지… 설마.’

그렇게 초조하게 30분쯤 더 기다리니 강동현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미안. 이제 올라와. 엄마 갔다.>

그래서 얼른 집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깜짝 놀랐다. 그의 얼굴이 분명 맞은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황경호가 너무 놀라서 말도 못 하고 그의 얼굴부터 잡았다.

“아, 괜찮아.”

“…너 설마 이번에도… 다 말했어?”

“언젠간 들킬 거라고 했잖아.”

“다 말했어?”

“서로 좋아해서 같이 사는 거라고 했어. 앞으로도 계속 같이 살 거고.”

“…….”

황경호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도 강동현을 한 대 칠 뻔했다.

“왜 그러는데… 미쳤어? 아니라고 말 한마디 하는 게 그렇게 힘들어? 왜 그러는데!”

황경호는 화를 내며 그렇게 말했다. 강동현이 한숨을 쉬었다.

“엄마도 눈치챘는데 어떡해? 변명하는 게 더 우습지.”

“들키긴 뭘 들켜! 거기서 니가 그냥 아니라고 한마디만 해도 어머니는 믿으셨을 텐데!”

“그럼 언제까지 숨길 건데? 너 우리 집에도 왔다 갔다 하는데 계속 속이다가 들키면 그게 더 배신감 든다고.”

“안 들키면 되잖아! 그냥 우리가 조심하면 되는 건데 왜…!”

황경호는 그가 이해가 되지 않아서 계속 언성을 높였다. 강동현은 계속 현관에서 이러는 황경호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왔다.

“됐어. 벌써 일이 일어났잖아. 괜찮아. 아무 일 없어. 지금이랑 똑같이 지내면 돼.”

“뭐가 아무 일이 일어난 게 아니야!”

“진짜 괜찮다니까? 누나한테 들켰다고 우리한테 별일 있었어? 엄마도 똑같아. 과민반응하지 마. 달라질 건 없어. 나 믿어.”

“…….”

강동현이 그렇게까지 말하니 황경호도 더이상 화를 낼 수가 없었다. 또 그를 믿고 싶기도 했다. 물론 그 뒤로 안부 인사가 꼬박꼬박 오갔던 어머니와는 연락이 뚝 끊기고 말았다. 황경호는 그게 죄스럽고 또 아쉬워 마음이 아팠다. 그녀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가끔은 너무 잘해주셔서 부담스러울 때도 왕왕 있었고 같이 강동현의 욕을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황경호는 그녀를 좋아했다.

하지만 강동현의 말처럼 그것 외에는 정말 바뀌는 건 없는 것 같아 보였다.

달력을 보니 이제 6월 중순이다. 강동현은 촬영 일정으로 중국에 가 있었다. 그가 이전 어머니의 생신에 맞춰서 6월 26일 이전에는 돌아올 거라는 말을 했던 기억이 났다. 실제로 스케쥴도 24일까지였고.

<24일엔 몇 시에 와?>

그러자 곧 답장이 왔다.

<집엔 10시쯤 도착할 거 같은데. 밤에.>

<알았어.>

황경호는 죄스러운 마음이 아주 컸으므로 어떻게든 벌충을 하고 싶었다. 아마 싫어하시지 않을까 하면서도 퇴근을 하고 나서는 여기저기 다니며 어머니가 좋아하실 만한 물건을 골라 보기도 하고 음식을 좀 해서 강동현한테 들려서 보낼까 해서 장을 엄청 봐오기도 했다.

‘맛이 들어야 하는 것부터 해놓자.’

강동현의 카드로 이번에는 아깝지 않다고 생각하며 좋은 물건을 하나 샀다. 자기 집에는 뭐 해줄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강동현이다. 부모님 생일이면 카드 줄 테니 카드나 쓰라는 식으로 말하는 것 같은데. 하여튼 사람이 안 될 놈이다.

그래서 한 20일부터는 퇴근하고 돌아오면 이것저것 요리연습에 요리삼매경이었다. 강동현은 24일 9시 반쯤에 집에 도착했다. 집에 와서 강동현은 황경호를 쪽쪽거리러 달려왔다.

“우리 경호야~~ 잘 있었어? 나 보고 싶었지? 응? 응?”

강동현은 황경호가 또 한 상 해놓은 걸 자기 해주려고 한 거라 생각했는지 아주 입이 찢어졌다.

“뭘 또 이렇게 많이 했어. 나도 도울게.”

“으음. 응… 배고파? 밥 줄까?”

“배 안 고픈데 니가 해놓은 거 보니까 배고프다.”

“알았어.”

그러자 황경호는 예쁘게 해놓은 것엔 손도 안 대고 남은 것을 접시에 담아 식탁에 내주고는 다시 요리로 돌아갔다.

“…뭐야? 같이 안 먹어?”

“너 먹어.”

강동현은 식탁과 황경호가 예쁘게 담아 정리를 하고 있는 것을 번갈아 보았다. 그리고 수저와 밥공기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슬그머니 황경호가 정성스레 모양을 내고 있는 음식에다 젓가락을 향했더니 바로 손등을 맞았다.

“저기 있잖아! 앉아서 먹어.”

“아, 씨… 누구 주려고 이렇게 하는 건데? 어? 나 주려고 하는 거 아냐?”

“아니다.”

“누구 줄 건데? 너 먹을 거야?”

“내일 저녁엔 집에 가지? 다 들고 갈 수 있겠지? 니가 샀다고 하고 드리면 그래도 모르는 척 받아 주지 않으실까?”

작년에 강동현이 어찌했는지를 기억하며 황경호가 말했다.

“내일? 내일 무슨 날이야?”

“까먹었어? 어머니 생신 전날이잖아.”

“아. 아….”

까먹었나 보다. 강동현은 다시 식탁에 앉았다.

“그냥 우리가 먹자.”

“안 돼. 비싼 거 썼단 말이야.”

“야. 그럴수록 우리가 먹어야지.”

“어머니 선물은 샀어? 내가 일단 하나 샀는데… 마음에 들어 하실지는 모르겠지만… 가방 하나… 너무 비싸서 손 떨리긴 했는데 전에 한 번 백화점 갔다가 예쁘다고 하셔서….”

“…음… 알았어.”

하지만 다음 날 저녁엔 강동현은 음식이랑 선물을 절대 안 들고 가려고 했다.

“아, 됐어. 안 하던 짓 하면 욕먹는다고.”

“야, 그래도….”

죄스러운 마음, 이렇게 벌충이라도 하고 또 지금까지 감사했던 것을 이렇게라도 표현하고 싶었다. 겨우 가방이 든 백화점 종이봉투는 들려서 내보냈다.

“저건 내가 다 먹을 거야.”

“알았어….”

하긴… 너무 부담스러우려나. 저런 것까진….

‘기분 더 나빠 하실 수도 있고….’

황경호는 털썩 식탁에 앉았다. 왠지 한 거 없이 지친다. 오늘 저녁은 혼자 먹어야 했으므로 어머니께 드리려고 했던 반찬 중에 하나만 꺼내서 그냥 밥을 먹었다. 아주 갖은 정성에 비싼 재료까지 썼더니 진짜 맛있었다. 너무 오버한 거 같다. 이걸 언제 다 먹지….

그리고 서로 쉬는 날이 겹치는 주말에 같이 요트를 빌려 이른 물놀이를 하기로 했다. 물론 황경호는 이런 게 영 사치스럽게 여겨졌지만 강동현이 마음 편히 좀 놀려면 별로 옵션이 없었다.

근데 짐을 실으려고 차 트렁크를 열었는데 전에 황경호가 샀던 가방이 종이봉투 채 들어가 있었다.

“야! 도은혁! 이거 뭐야. 너 어머니한테 이거 안 드렸어?”

“아, 맞다.”

이걸 여태껏 까먹고 있었다는 얼굴이었다. 황경호는 어이도 없고 화가 나서 그의 등을 찰싹 때렸다.

“갔다 오고 나서라도 바로 드려! 뭐 하는 거야?”

“알았어. 미안.”

“내가 믿을 수가 없다, 진짜. 이거라도 갖다 드리라니까! 그럼 또 그때 빈손으로 간 거야?”

그렇게 출발도 전에 한바탕 했다. 그리고 남해에 도착해서 둘이 쓰기엔 어마어마하게 큰 요트를 운전해서 밖으로 나갔다. 강동현이 영화를 찍다가 요트 조종 면허도 따게 되어 조종사 없이 둘만 나갔다. 약간 불안하긴 했다.

“바다 위라 부딪칠 것도 없는데 왜 그래?”

“그래도….”

햇살이 아주 밝아 7월치고도 좀 더웠다. 바닷물은 좀 차갑다. 낚시를 할 만한 것도 가져오고 준비는 만만이었다. 좀 놀다가 낮잠도 자고 하다가 황경호가 먼저 잠에서 깼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허리에 손을 얹고 쿨쿨 자고 있었다. 위험하지 않을까 했는데 바다 수영을 제법 잘하는 강동현이었다. 수영을 꽤 하고 나서는 지쳐서 잠들었다.

황경호는 그대로 엎드려서 휴대폰을 보다가 엄청나게 용기를 내서 어머니께 문자를 한 통 보냈다.

<어머니, 저 경호예요.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생신이실 때 연락 한 번 드리려고 했는데 못 드렸어요. 죄송해요.>

전송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한참을 문자 내용을 보다가 몇 번이고 고쳐서 겨우 보냈다. 보내고 났더니 내용이 마음에 안 들어서 혼났다. 그리고 계속 문자창을 보고 있다가 뭔가 또 자학을 하는 것만 같아 겨우 눈을 뗐다. 나 같아도 답장은 안 하지… 그때 답장이 왔다.

<그래. 고맙다. 잘 지냈니? 은혁이는 잘 있고?>

어머니는 이렇게 답장을 보내주셨다. 황경호는 뛸 듯이 기뻤다. 심장이 두근거렸다.

<네. 잘 지내고 있어요. 은혁이 지금 쉬고 있어요.>

답장을 하기 어려운 말이었나? 은혁이 얘기는 하지 말았어야 했나? 어머니의 답장이 늦는 것 같았다. 황경호는 한시름을 놓아서 그런지 마음에 여유가 약간 생겼다. 지금 뭐 하시는 중이었나 보지. 그리고 어머니께서 답장을 하셨다.

<항상 중간에서 난처하게 해서 정말 미안하다. 은혁이가 저번에 성수동에서 봤을 때 이후로 연락이 전혀 안 돼서… 엄마가 미안하다고… 그래도 한 번 얘기 좀 다시 할 수 없겠냐고 전해줄 수 있겠니?>

“…….”

황경호는 잠깐 굳어서 가만히 그녀의 메시지를 보고 있었다. 확 하고 모든 게 아귀가 맞는다. 황경호는 세상 팔자 좋게 자고 있는 강동현을 내려다보았다.

살심이 솟는다.

‘이건 이러고 지금 잠이 와!!’

황경호는 강동현의 등짝을 주먹으로 콱 내리쳤다. 강동현이 크게 움찔하더니 부스스 눈을 떴다.

“뭐야… 너 지금 나 때렸어?”

“때렸다! 어쩔래!”

“왜 또….”

강동현은 영 잠에서 못 깨겠는지 황경호를 끌어안으며 다시 자려고만 했다.

“너 뭐야? 집이랑 연이라도 끊었어? 어머니한테 한 달 넘게 연락 안 한 거야? 어머니 생신 때도 집에 안 갔어?!”

“그건 갑자기 왜….”

“정신 차려, 멍청아! 뭐가 갑자기야! 진짜야? 진짜로? 왜!”

자기 엄마 눈에서 피눈물이 나게 하면서 지금 잠이 잘도 오는 모양이었다. 절친이랑 같이 산다더니 이상한 점이 분명 하나둘이 아니었을 텐데도 그냥 믿어주셨는데 보니까 서로 사귄다고 하고, 그 뒤엔 뭘 잘했다고 지가 먼저 연락을 끊어버렸다는 거 아닌가!

“그럼 뭐 어떡해… 다짜고짜 헤어지라는데. 그리고 저러다가 우리 엄마 제 풀에 지쳐. 놔둬….”

“니가 내 아들이었으면 진짜…!!”

천불이 난다. 안 그래도 황경호는 죄스러운 마음을 풀 길이 없어서 혼자서 발을 동동거리곤 했는데 이 새끼는 아주 천하태평이었다는 소리였다. 얼마나 원망스러우시겠는가. 섭섭하고 또 무섭기도 하고. 상처받으셨을 것이다. 그러니까 잘못한 거 하나 없으신 데도 저렇게 저자세로 말을 전해달라고 황경호에게 부탁하는 것일 테다.

황경호는 마구 화를 냈지만 강동현은 영 관심도 없고 이해도 못 하는 얼굴이었다.

“니가 왜 엄마를 걱정해? 우리 엄마 지금 우리 적이다? 우리 헤어지게 하려고 그러는 거라니까?”

어떻게 얘는 딱 떨어지게 자기 생각만 할 수 있는 걸까? 황경호는 강동현이 그런 식으로 어머니를 생각한다는 것에 도리어 자신이 상처를 받았다. 눈물이 뚝 떨어졌다.

“야. 왜 울어?”

“…죄송해서 어쩌지… 난 니가 이러고 있는 줄도 모르고….”

강동현이 이러는 데도 어머니께서는 황경호한테 연락을 하거나 험한 말씀 한 번 하지 않으셨다. 이번 말도 황경호가 그녀가 그리워 용기 내어 말을 걸었다가 들은 것이다. 그녀는 분명히 황경호도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황경호는 죄송하다는 말씀 한 번 드리지 않았다.

황경호는 자신의 얼굴을 닦아주는 강동현의 손을 뿌리치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마음을 잡고 어머니께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

[그래… 잘 지냈니? 목소리 듣는 거 오랜만이네.]

어머니는 기운이 없는 목소리셨지만 여전히 다정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죄송해요… 바로 말씀드려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죄송합니….”

강동현이 뒤에서 바로 황경호의 휴대폰을 뺏어서 통화종료 버튼을 눌렀다.

“뭐 하는 거야!”

“넌 뭐 하는데? 뭘 잘못했다고 그러고 있어?”

황경호는 화가 났다. 황경호는 강동현의 어머니 같은 어머니가 있었다면 정말 황송해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고 생각하곤 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엄마한테 죄책감이 들 정도로. 하지만 그만큼 그녀가 좋았다. 그녀는 배려심이 깊고 상냥한 사람이었다. 누군가에게 이렇게 함부로 취급받아도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게 자신의 아들이라도 말이다!

“너 진짜 천벌 받을 거야. 어머니가 왜 그러시는지 이해 안 가? 당연히 걱정하실 거 아냐! 이렇게 무작정 연락 끊으면 어머니 마음이 어떨지 한 번이라도 생각해 봤어?”

“우리 엄마 내 일이면 흥분해서 말 안 통한다고. 그때도 뺨을 때리지 않나. 당장 헤어지라고 소리 지르는데 뭘 더 어떡해?”

“놀라셔서 그러시는 거잖아! 너 같으면 애지중지 키우던 아들이 남자 만난다고 하면 기겁 안 하겠어?”

“내가 왜 그런 거까지 생각해야 하는데?”

“어머니시잖아. 너희 엄마잖아!”

“엄마가 너한테 뭐라고 했어? 뭐라고 했는데?”

강동현이 약간 위협적인 분위기를 냈다. 황경호는 더 깜짝 놀라서 그의 팔을 붙잡았다.

“나한테… 너 잘 지내냐고 물어보셨어. 너… 너한테 미안하다고…. 흑.”

황경호는 또 이상한 데서 눈물을 울컥 흘렸다. 그녀가 왜 이런 괘씸한 아들한테 미안하다고 해야 하는 걸까.

“얘기 좀 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신 것뿐이야. 세상 사람들이 다 너 같은 줄 알아?! 어머니한테 말 좀 함부로 하지 마!”

“알았어. 알았다고. 왜 니가 화를 내.”

그 이후로 휴가는 완전히 망쳤다. 황경호는 그 뒤로 폰을 붙잡고 어머니께 줄줄 변명을 하다가 다시 강동현에게 폰을 뺏겨서 또 싸웠다. 그대로 집에 돌아와서도 냉전이었다. 황경호가 일방적으로 화를 내고 강동현은 일단 그의 화를 풀어주려고 했지만 대체적으로 그가 왜 화를 내는지 이해를 못 했다.

“너 어머니 속 썩이고 나중에 후회하면 늦어!”

“그럼 어쩌자고? 헤어지자고? 나중 일은 나중 일이야. 너랑 나는 지금이고!”

그러고 있는데 며칠 뒤 퇴근 시간 직후 아버님한테서 연락이 왔다. 황경호는 깜짝 놀라서 허둥지둥대다가 겨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잘 지냈니, 경호야. 은혁이 아빤데….]

“네. 네….”

[은혁이가 연락이 안 돼서 말이다… 정말 미안하다만… 혹시 너랑 은혁이 둘 다 시간이 될 때가 있겠니? 얘기 좀 하고 싶은데….]

황경호는 가슴이 철렁했다. 아시는구나.

“네….”

그래서 집에 가서 바로 강동현에게 연락을 해서 엄청나게 싸우다가 그를 겨우 설득해서 주말에 그의 집으로 가기로 되었다. 황경호는 마음의 준비를 정말 단단히 했다. 물론 가는 내내 강동현은 투덜거렸다.

“왜 굳이 험한 소리 들으려고 가는데?”

“그럼 너 평생 부모님이랑 얘기 안 할 거야?”

“그러면 부모님이 먼저 접고 들어오게 해야지. 먼저 이러는 거 멍청한 짓이야.”

“부모님은 충분히 접어 주셨어! 니가 예의가 없는 거야. 부모 자식 간이야말로 그런 게 얼마나 중요한 건지 몰라?”

“몰라. 난 니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그리고 집에 도착했다.

“왔니? 들어와라.”

엄청나게 마음의 준비를 단단하게 하고 온 황경호였으나 부모님이 조금 어색하긴 했지만 그래도 티 내지 않으시고 전처럼 대해 주시는 것에 좀 감동받았다. 다과는 미리 준비가 되어 있었고 어머니가 커피를 내주셨다. 황경호는 목이 타서 물만 마셨다. 강동현은 자기 부모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은연이 엄마한테서 얘기는 들었다. 사실이니? 니들 사귄다고? 남자, 여자처럼?”

“…….”

“맞는데.”

황경호는 바로 죄인 모드로 들어가서 말도 한마디 못했고 강동현은 죄지은 거 없다는 태도였다.

“너 그러다 사람들 알면 어쩌려고? 그러면 너 한국에서 살 수 있을 것 같아? 니가 보통사람도 아니고. 전 국민이 다 니 얼굴, 이름 아는데?”

아버지는 애초부터 아주 강경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안 하셨지만 아마 그와는 의견이 동일하실 것이다. 그녀의 얼굴이 그간 헬쓱해진 게 눈에 보였다. 황경호는 너무나 죄스러웠다.

“안 들켜. 들켜도 신문 같은 데 못 나. 내가 얼마짜리 돈이 굴러가는 데 위에 앉아 있는데.”

“내가 너 연예인 하겠다고 대학 안 간다고 망나니짓 하려고 할 때도 알아봤지만, 내가 아들 잘못 키웠다. 너 그렇게 기고만장해서 평생 잘 나갈 것 같아? 부모 가슴에 대못 박고 맘 편히 살 것 같냐고. 너 이게 지금 무슨 경우야? 지금 엄마 아빠한테 죄송하다고 잘못했다고 무릎 꿇고 빌어도 못할 망정에!!”

아버지는 언성이 확 높아지셨다. 황경호는 깜짝 놀랐지만 무릎을 꽉 잡고 시선을 내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큰소리가 안 난 게 이상한 거였다.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내가 뭘 잘못했는데?”

“좋게 말로 하려고 했는데 너 그 태도는 뭐야! 엄마 연락을 한 달이나 넘게 안 받았다고? 뭘 잘했다고! 너 도대체 너희 엄마를 어떻게 생각하는 거냐? 그게 너 낳아준 어머니한테 할 짓이야?!”

“좋게 말은 씨X! 어차피 헤어지라는 소리나 주야장천 할 거면서 들을 말이 뭐가 있다고!!”

아버님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강동현의 얼굴을 후려치셨다. 테이블 탁자가 밀리면서 커피가 왕창 쏟아졌다. 어머니와 황경호가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황경호는 자기 아버지에게 달려들려는 강동현을 거의 몸으로 막았다.

“당장 헤어져라. 당장.”

“싫어. 내가 만나겠다는데 아버지가 무슨 수로 헤어지게 할 건데요? 네?”

강동현은 콧방귀도 안 뀌었다. 황경호는 순식간에 벌어진 폭력사태에 가슴이 벌렁벌렁했다.

“헤어져.”

“백날 말해봐. 내가 듣나.”

“그래. 알았다. 너 그럼 이 길로 우리랑은 연 끝난 거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가 봐라! 너 다시 보나!!”

“누가 그런 거 겁낼 줄 알아?”

“은연 아빠…!”

“야….”

황경호는 강동현의 티셔츠를 마구 끌어당겼다. 그의 입을 틀어막아 버리고 싶었다. 강동현의 아버지는 거의 강동현이 화를 낼 때랑 똑같은 얼굴을 하고 계셨다. 겨우 좀 가라앉히고 황경호를 보았다. 황경호는 긴장했다.

“…너희 부모님은 아시니.”

“…아뇨….”

“너도 원래 남자 만나고 이러지 않았다면서. 너도 계속 이렇게 살 거니? 너희 서로 앞날 망치고 있다는 생각 안 드니? 어?”

“…….”

“은혁이랑 사귀면서 감쪽같이 우리 속이고 우리 집까지 드나들었는데. 우리한테 미안하다는 생각은 안 했니?”

“얘한테 그런 소리 하지 마. 아버지가 뭔데….”

“입 다물어. 지금 경호한테 물어보잖아.”

황경호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아마 많은 추궁을 받을 것이라 생각 했지만 그래도 막상 닥치니 각오했던 마음가짐이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저 도망가고 싶을 뿐이었다. 황경호는 아버님과 눈이 마주치고는 뭐라고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 저도 모르게 어머니를 힐끗 보았다. 그녀는 황경호와 눈이 마주치고는 곧 외면하셨다. 황경호는 그녀가 이해가 되었다. 그래서 상처도 받았다.

황경호는 겨우겨우 생각했던 것을 말하기 위해서 입을 뗐다.

“아버님, 어머님이 걱정하시는 거 충분히….”

“…말 끊어서 미안한데 지금은 그렇게 좀 부르지 말겠니… 내가 지금 좀 기분이….”

강동현의 아버지는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못하셨다. 황경호는 얼굴이 확 빨개졌다. 그 뒤로는 머리가 백지상태가 되었다.

“죄송해요….”

강동현의 말대로 그저 외면하고 오지 말았어야 했던 걸까?

하지만 이건 그의 인생이 달린 일이었다. 이렇게 좋은 가족과 그런 식으로 연을 끊어버린다니. 절대 그에게 좋은 일이 아니었다. 설사 나중에 화해를 한다고 해도, 오랫동안 불화가 이어지면 결국엔 아무리 좋은 관계도 서먹하고 좋지 않아질 것이다. 상처가 깊어진다. 황경호는 그게 보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니까… 그게… 죄송해요… 저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어요. 어머… 부모님께 심려 끼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게… 얘는 직업도 그렇고… 평생 갈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 없어요… 길어야 몇 년이겠죠….”

뭐라고 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미리 생각해왔던 지문은 잊어버렸다. 그래서 멍청하게도 솔직하게 말하고 있었다. 눈앞이 새카매지는 것만 같았다. 여기에 온 것을 후회했다. 강동현의 말을 들었어야 했다. 적어도, 적어도 좀 더, 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왔어야 했다.

“정말 조심하고 있거든요… 따로 다니고… 같이 사진도 절대 안 찍고… 얘 이제 여자 안 되는 것도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황경호는 얼굴은 뜨거운데 손은 차가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스스로가 너무 병신 같고 창피했다.

“앞으로 더 조심할게요… 그러니까 조금만 더… 같이 있으면 안 될까요? 죄송합니다.”

황경호는 고개를 숙였다. 머리가 핑글핑글 돌았다. 주변이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을지 상상조차 하기 겁났다. 백안시하여 보고 있을 것만 같다. 모든 걸 다 양보하고 남은 마지막 진심이었기 때문에 누군가 코웃음을 칠까 두렵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지금이 헤어질 때라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는데.”

강동현의 아버지는, 강동현의 아버지였다. 그도 자신의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겐 딱 떨어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황경호는 그의 냉정한 눈과 마주쳤다. 숨이 가빠오기 시작했다. 네… 라고 거의 대답하려고 할 때 강동현이 손을 잡았다.

“대답하지 마.”

강동현은 일어나며 황경호를 일으켜 세웠다.

“됐어. 더이상 할 말 없어. 난 원래부터 올 생각 없었는데 얘가 제발 얘기 좀 하라고 난리 쳐서 온 거니까. 연 끊고 싶으면 그렇게 해요. 상관없습니다.”

황경호는 그에게 말 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화를 내고 싶었다. 예상대로 어머니는 눈물을 찍어 내시며 강동현한테 애원을 했다.

“은혁아, 그러지 말고 얘기 좀 더 하자? 응? 엄마 아빠가 이해 좀 할 수 있게… 뭐가 잘못된 건지….”

“아! 잘못된 거 없다고! 왜 엄마는 사람을 병신 취급해?!”

강동현이 화를 내자 아버지가 일어나서 강동현의 멱살을 잡았다.

“너 이제 너네 엄마한테 이런 식으로 소리 지르면 너 배우 생활 다시는 못 하게 만들어 줄 테니까. 알아들어?”

“아버지나 조심해요. 놔.”

강동현의 아버지의 손을 뿌리쳤다. 부자는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그리고 그때 황경호는 어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는 궁지에 몰리고 매우 겁에 질려 있었다.

“전… 저는… 저는 부모님 말씀대로 할게요… 심려 끼쳐 드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황경호는 강동현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잡아 뺐다.

“황경호!”

“너무… 너무 흥분하지 말고 아버… 부모님이랑 좀만 더 얘기해. 난… 나가 있을게. 전 나가 있을게요. 죄송합니다.”

황경호는 그리고 재빨리 집 밖으로 나갔다. 강동현은 부모님한테 잡혀서 따라 나오지 못했다. 황경호는 그 집 대문까지 뛰쳐나오고 나서야 다리가 후들후들해서 잠깐 쭈그리고 주저앉았다.

누군가의 적대감을 받는 것은 익숙하지 않았지만 홀대라면 많이 받아 봤는데도… 그게 좋아하는 사람들에게서 받는 거라면 상처가 크다. 황경호는 자신이 아주 많이 나아졌기 때문에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1년만 더 만나는 거라면 괜찮지 않을까, 아니면 6개월 정도라도… 그런 식으로 마지막 마지노선만은 지키고… 강동현이 부모님과 이런 식으로 의를 상하지 않게끔 조정할 수 있다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영원할 순 없는 거였다. 왜 자신과의 관계 때문에 쓸데없이 가족과의 연을 끊는가. 어머니가 아무런 연락이 없어서 결국 누님처럼 묵인을 해주시는 건가, 했을 때는 안도했었다. 아직 괜찮구나. 그런데 강동현이 아예 집이랑 연을 끊을 작정으로 어머니를 방치하고 있는 걸 봤을 땐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뒤로 계속 싸워보니 그렇게 좋은 부모님한테… 강동현은 예전에 황경호에게나 했던 취급을 하려고 하고 있었다. 자신이 한 일로 인해 상대가 어떻게 되든지 상관없다는 식으로.

그런 건 원치 않았다. 언젠가는 끝날 거라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그런 일에 그런 분들이 고통받지 않았으면 했다. 바람보다 조금 빨리 왔을지라도, 오히려 단숨에 오는 것보다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다면, 그가 황경호한테 질리거나 다른 여자가 생겨 떠나는 것이 아니라 아직 좋을 때 그럴 수 있다면, 차라리 나은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처음부터 꾸준히 했던 생각이라서 그런지 마음의 준비가 빨랐다. 그래서 부모님께 얘기도 먼저 하러 가자고 한 것이었다.

한빛나나 김현아나… 그를 좋아하는 여자들도 많았고 그가 좋아할 만한 여자들도 많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다. 때때로 섭섭해도 어쩔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항상 끝까지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언젠가는… 이라고 생각하면 화를 낼 수 없는 거니까.

하지만 움츠러들고 싶지는 않았다. 솔직하게 그를 사랑하고 싶었다. 정말 노력하고 있었다. 말도 좀 더 솔직하게 할 수 있도록, 애정을 표현할 수 있도록… 비록 황경호의 온전한 선택은 아니었을지 몰라도 결국은 마음을 가지게 되었으니까. 점점 갈수록 그가 더 좋아졌다. 그가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자신이 그를 사랑할 수 있는 것도 좋았다. 행복했다.

그래서 설사 약속한 대로 평생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소중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런 건 앞으로 다시 없을 테니까.

‘어떡하지… 부모님 말씀대로 하겠다고 해버렸는데….’

그렇게 마음을 졸이며 한참을 밖에서 기다렸다. 잠깐 강동현한테서 먼저 가라는 메시지를 받았지만 도저히 혼자 집에 못 있을 것 같아서 그냥 계속 밖에 있었다. 그리고 대략 두어 시간 후에 강동현은 집에서 나왔다. 그 길로 한 달 정도 그의 스케쥴이 취소되었다. 그가 아버지에게 엉망으로 맞았기 때문이었다.

“일단 박 선생님 병원으로 가고 있는데요. 오늘 주말이라 선생님 되실지… 네. 네.”

황경호는 일단 소속사에 전화 통화를 하는 동안 거의 울면서 운전을 했다. 얼마짜리 얼굴인가. 진짜 강동현의 아버지가 그의 배우 생활을 접게 하려고 이러신 걸까.

“울지 마. 누구 초상 난 줄 알겠다.”

강동현이 얼굴에 얼음 주머니를 대고 있는 채로 황경호의 얼굴을 만졌다. 입술도 터지고 눈도 퍼렇게 부어오르고 있었다. 황경호는 죄책감에 숨도 쉴 수 없을 정도였다.

“니가 말 좀 곱게 했으면 이렇게까지 안 됐을 거잖아! 왜 매를 벌어!! 바보야?!”

황경호는 그가 전화 통화를 끝내자 소리를 질렀다. 강동현은 한숨을 쉬었다.

“이건 내가 너 처음에 어떻게 했는지 아버지한테 사실대로 말해서 맞은 거야.”

황경호는 깜짝 놀라서 눈물이 뚝 멎었다.

“…어, 어디까지 말했는데.”

“너무 기니까 짧게 엑기스만… 처음에 두 번은 내가 억지로 한 거였고… 그것도 우울증 걸려서 죽고 싶다는 애한테… 싫다고 하는데 구질구질하게 매달리고 억지 쓰고 해서 자빠뜨린 거라고. 너한테 못할 짓 많이 했다고….”

“…….”

“너 책임진다고 하고 겨우 같이 사는 거라고. 너랑 결혼했다고도 했고 평생 같이 살 거라고도 했고. 난 하고 싶은 말 다 했다.”

“…그래서 뭐라고 하셨어? 아, 아버님?”

황경호가 물었다. 강동현은 자기 얼굴을 가리켰다.

“우리 아버지 그렇게 화내는 건 처음 봤다. 나도 이거까진 오버했나 싶었네… 나 대학 안 간다고 했을 때도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내가 너 강… 억지로 했다니까.”

“…나쁜 놈. 천벌 받은 거야….”

그것 때문에 맞았다고 하니 이상하게 속상한 마음이 좀 사라지고 약간 속이 후련한 것 같기도 했다.

“어머니 엄청 충격받으셨겠다… 너 이 정도까지 맞았으면….”

“뭐.”

강동현은 어머니까지는 신경을 안 쓰는 눈치였다. 진짜 나쁜 놈이다. 강동현이 치료를 받으러 나오는 동안에 황경호는 차에서 기다렸다. 주말이라 문을 닫은 병원이었는데 금세 사람들이 왔다. 아마도 강동현의 소속사 사장님으로 보이는 분도 오셨다. 황경호는 가만히 차 운전석에 앉아 그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강동현은 40분 정도 병원 안에 있다가 나왔다. 약국에 가서 약도 타왔다. 조수석의 문이 열렸다.

“내가 미친다, 미쳐. 너 누구 임신이라도 시켰니? 아버지한테 맞기는 왜 맞아?”

“그 정도까진 아닌데 비슷한 일이….”

“너 이거 달아 둔다, 어?”

“네. 죄송합니다.”

“가서 몸이나 잘 추슬러. 아, 흉 안 남는 데 좋은 음식이 있는데.”

“됐어요. 제가 알아서 할게요.”

“병원 꼬박꼬박 가고.”

“네.”

황경호는 그녀와 눈이 마주쳐 꾸벅 인사를 했다. 강동현이 차에 탔다. 그의 눈은 이제 엄청나게 부풀어 있었다. 거기에 연고를 발라 번들번들했다. 상처가 난 곳은 다 테이핑을 해놓았다. 그는 선글라스를 꼈다.

“가자.”

그래도 심하게 어떻게 된 곳은 없나 보다. 황경호는 계속 그의 얼굴을 힐끗거리며 집으로 차를 몰았다.

“…….”

“…….”

잠깐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그 침묵을 깨고 강동현이 입을 열었다.

“넌 왜 항상 나랑 헤어질 생각만 해?”

“…뭐?”

“왜 꼭 수틀릴 것 같으면 바로 헤어지겠다고 마음먹는 건데?”

황경호는 말을 잃었다. 강동현은 황경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이젠 안 그러겠지, 이젠 안 그러겠지, 그렇게 생각할 때마다 배신당하는 기분이야. 너한테 내가 그 정도밖에 안 돼? 무슨 일만 있으면 넙죽 누구한테 양보할 정도밖에 안 되냐고?”

“그게… 아니라….”

“우리 결혼한 거고 평생 같이 살기로 한 거 아니면 반지는 왜 끼고 다니는데? 너도 그러고 싶으니까 하고 다닌 거 아냐?”

맞아… 황경호는 소리 내어 대답할 수가 없었다.

“난 너 항상 내 거라고 생각해. 뭐가 어떻게 되든 내 거라고. 내 마누라. 난 너 바람피우면 화내고 울고불고 매달려서라도 절대 나 못 떠나게 할 거고, 우리 엄마 아빠고 너네 부모님이고 반대하든 뭐든 눈 하나 깜박 안 할 자신 있어. 니가 내 거니까.”

강동현이 말했다. 황경호가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온 게 있는 것처럼 그도 그런 게 있는 것 같았다.

“근데 난 니 거 아냐? 왜 항상 쉽게 버릴 수 있는 것처럼 말해? 나 사랑 안 하는 거야?”

“사랑해….”

그런 오해는 안 했으면 좋겠다. 황경호는 저도 모르게 얼른 대답했다. 그리고 얼굴이 좀 빨개졌다.

“사랑해.”

그래도 다시 말했다. 강동현이 더 열이 뻗친다는 얼굴로 말했다.

“근데 도대체 자꾸 왜 그러는 건데?”

…너무 과분해서 그렇다. 껴안고 있으면 정말 내 거 같아서 떨어지고 싶지가 않았다. 내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 순간만큼은. 그러면 진짜 기분이 좋아서 말이다. 하늘 위에 둥둥 뜨는 것만 같다.

그렇지만 아닌 건 아닌 것이다. 황경호가 그를 버리는 게 아니었다. 때가 되면 그저 포기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입장을 황경호가 너무 잘 알고 있는 것뿐이었다.

결정권을 쥐고 있는 것은 결국 강동현이었다. 그를 사랑하기까지 해버린 황경호는 사실상 아무런 선택권이 없었다. 그러니까 이런 결정마저도, 결국 강동현과 그의 부모님께 맡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얼마나 원하든, 원하지 않든 따라야 하는 자신의 입장에 저항하지 않는 게 그나마 남은 좋은 기억이라도 서로 간직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아마 얘기해도 모든 걸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그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언제까지… 우리가 이렇게 지낼 수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잖아….”

“아! 또 그 소리! 우리가 같이 살겠다고 마음 먹으면 끝까지 같이 사는 거야!”

강동현은 화를 냈지만 황경호는 자신의 말을 이었다.

“그런데… 어머니랑 아버지까지 상처받으실 필요는 없잖아….”

“엄마랑 아빠가 무슨 상관이야, 여기서. 어? 왜 그딴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는 건데? 너 진짜 나랑 헤어지고 싶어? 어?”

“아니….”

“그러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나랑 같이 살 생각만 하라고. 알겠어?”

“…….”

황경호는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여전히 그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강동현은 엄청 짜증 나고 성가시고 열 받는 표정으로 창밖을 보았다. 잠깐 침묵이 흘렀다. 집에 다 와 갈 때쯤 황경호의 얼굴을 힐끗 보았다. 그는 조용히 눈물만 몇 방울씩 흘리고 있었다. 마음이 또 물러졌다.

“…울지 마. 응?”

지하주차장으로 들어와 차를 세우자 강동현은 황경호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황경호는 화들짝 놀라서 그를 밀어냈다.

“이제 진짜… 밖에서 이러지 마. 무서워….”

“지하 주차장인데? 차 안인데?”

“CCTV 다 있어.”

쳇. 집으로 올라갔다. 황경호는 강동현이 타온 약을 살피고 그의 얼굴을 다시 한번 살폈다. 강동현은 거울을 보더니 말했다.

“내 평생 이렇게 못생겼던 적은 처음이네.”

황경호는 손을 씻고 약과 연고를 차곡차곡 정리해서 상자에 넣었다. 그리고 물었다.

“계속… 어머니, 아버지랑은 연락 안 할 거야?”

“아니, 너 진짜 우리 엄마 아빠 왜 이렇게 신경 쓰냐고. 지금은 진짜 우리 적이나 다름없다니까. 너랑 내 신혼을 방해하는?”

“너희 부모님이잖아… 나 때문에 너희 집 잘못되는 것 같고… 어머니께도 너무 죄송하고….”

황경호는 한숨을 푹푹 쉬었다.

“무슨 소리야. 누가 봐도 내가 난장 피운 건데.”

알긴 아냐… 황경호는 우울한 얼굴을 했다.

“너네 부모님 정말 좋은 분들이신데… 왜 덮어놓고 그렇게 싸가지 없게 말하는 건데? 곱게 말해도 모자랄 판에.”

“이런 건 초장에 기선제압 해야 하는 거야.”

“두들겨 맞아 놓고 말은 잘한다.”

“야, 나 우리 아빠 이길 수 있어. 그래도 부모 자식 간에 예의를 지켰으니까 맞고만 나왔지.”

“그래, 참 잘했다….”

일단 씻고 나왔다. 황경호는 기운이 달려서 영 맥을 못 추었다. 카우치에 앉아서 갑자기 생긴 한 달을 아주 늘어지게 쉴 생각인지 IPTV를 잔뜩 결제하고 있는 강동현이 보였다.

‘쟤는 진짜 걱정이 없는 애야….’

그래서 지금 황경호도 조금은 마음이 편한 것이겠지. 황경호는 그의 옆에 앉았다. 그리고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곧 그의 품에도 파고들었다.

“어? 웬일이야? 안 하던 짓을 다 하고. 나 지금 못생겼는데?”

강동현이 조금 놀라긴 했지만 기분은 좋은지 대번에 황경호의 허리를 감싸 그의 배를 만졌다.

“…….”

부모님의 말씀에 따른다고는 했지만 강동현이 이렇게까지 했으니 당장은 헤어지지 않아도 될지는 모른다. 하지만… 잘 모르겠다. 뭐가 어떻게 될지… 그러니까 할 수 있을 때 최대한 붙어 있고 싶었다. 시간이 아깝다.

“영화 뭐 볼 거야?”

“이거부터 볼까 했는데 딴 거 뭐 보고 싶은 거 있어?”

“아니, 그거 보자.”

“오랜만에 치킨이랑 피자나 시킬까? 떨어지기도 싫은데.”

“아, 약 맛 나…! 읍… 으음…! 알았어. 일단 시키고… 시키고…!”

***

그때는 엄청 열 받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아버지한테 흠씬 두들겨 맞기 잘한(?) 거 같았다. 잘 먹고 살 쉬어서 그런지 상처는 금방 나았다. 멍이나 딱지가 앉아서 아직은 좀 보기 그렇긴 하지만. 강동현이 아버지에게 맞은 걸 왜 황경호가 미안해하는지는 몰라도, 그 탓인지 강동현이 쉬는 한 달 동안 황경호는 그의 말이라면 뭐든 들어줬다. 강동현은 물론 양심 없게도 그걸 아주 알차게 이용했다.

강동현은 황경호한테 그가 제일 좋아하는 빨간색 진주 팬티를 입히고 검은색 바니복에 빨간색 힐을 신게 한 후 자위를 시키고 자지를 빨게 하고 신나게 박고 위에서 엉덩이를 쫄깃하게 흔드는 것까지 고화질 핸드 카메라로 전부 찍을 수 있었다. 그 영상은 그 후 그의 보물이 되었다.

게다가 섹스 전이든 후든 부끄러워하지 않고 착착 달라붙고 솔직하게 애정표현도 많이 했다. 귀엽고 예쁘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아주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다. 강동현이 짓궂은 농담을 하거나 놀려도 잘 받아 주었다. 사랑해, 라고 말하면 나도 사랑해, 라고 답해주었다.

살 맛 난다.

“저 한 달만 더 쉬면 안 될까요, 사장님?”

“그래, 쉬니까 팔자는 좋아 보인다.”

얼굴에 상처는 아직 좀 남았지만 피부는 아주 반질반질한 강동현이었다.

“아버지랑은 화해했어?”

“아뇨? 왜요?”

“너희 아버지 너랑 다르게 참 점잖아 보이셨는데… 어지간히 잘못 했으면 가서 빌어. 부모님한테 그러는 거 아니야.”

“생각해 보고요.”

그렇게 말하고는 재조정된 스케쥴을 받아 보았다. 빡시다… 상처라는 게 언제 다 나을 줄 몰라서 넉넉하게 한 달 반을 비우고 다시 일을 하니 일정들이 다 겹쳐서 끔찍할 정도로 바빠 보였다.

“아, 중국….”

“제2의 고향이다, 이렇게 생각해야지. 아, 그리고 할리우드 작품도 몇 개 있다. 볼래?”

“오, 네.”

그렇게 소속사 사무실에 있다가 아주 컨디션이 좋아서 룰루 집으로 날아가듯이 돌아갔다.

“…뭐야.”

강동현은 집 안에 들어온 불청객을 보며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아버지가 와계셨다. 황경호는 아예 죄인 모드로 수그리고 앉아 있는 게 보였다.

“아버지 또 얘한테 뭐라고 했죠!!”

강동현은 대번에 화부터 냈다. 저러니까 안되는 거다. 황경호는 깜짝 놀라서 그를 말렸다.

“아니! 아니야. 아무 말씀도 안 하셨어….”

그러면 아버지랑 아무 말도 안 하고 언제부터 저렇게 앉아 있었단 말인가. 강동현도 치사해질 때는 밑도 끝도 없이 치사해질 수 있는 남자였다. 누구한테 물려받았는지 안 봐도 뻔했다.

“뭐요. 왜요. 뭔데. 용건만 말하고 빨리 가세요.”

강동현은 엄청 틱틱거리며 카우치에 앉았다. 황경호는 둘의 눈치를 엄청 봤다.

“…그래서 언제까지면 되냐, 그거 물어보러 왔다.”

“무슨 말이야?”

“조금만 더 만나면 된다면서. 얼마면 되겠니? 한 달? 두 달?”

아버지는 황경호를 보았다. 아버지도 피곤한 얼굴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어머니야 강동현이 어떻게 하든 질질 끌려가실 성격이었지만 아버지는 아니셨다. 강동현이 황경호와 끝까지 가겠다고 아예 못을 박듯 결심한 것처럼 강동현의 아버지도 기어코 아들을 제정신으로 돌려놓겠다고 생각하시는 게 분명했다.

“내가 죽을 때까지 같이 살 거라고 하는 말 못 들었어요?!”

강동현은 길길이 화를 냈다. 아버지는 이번엔 같이 언성을 높이지 않으셨다.

“너 영지도 그렇게 죽자 살자 만났어도 헤어졌고 이렇게 새 사람 만나서 또 연애하고 하잖아. 또 그렇게 될 거다. 결혼도 하고 애도 낳고. 그게 제대로 된 거야.”

“아버지, 엄마랑 헤어져도 금방 재혼하시겠네요. 엄마한테 그 말씀은 해보셨어요?”

아버지의 말씀에 황경호는 확 찔려서 심적으로 또 위축되었는데 강동현은 진짜 양심 하나 안 찔리는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단호하게 그의 말을 무시했다.

“니들 진심인 거는 알겠으니까 기한만 말해라. 그러면 그냥 눈 감고 지나갈 테니까.”

“그런 거 없…!”

“1년이요.”

강동현이 황경호를 홱 돌아보았다. 황경호는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가 이 모든 걸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처럼 말이다.

“1년이요….”

“…그래, 알았다.”

강동현의 아버지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강동현은 어이가 없는 얼굴로 아버지와 황경호를 번갈아 보았다.

“기한 같은 거 없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이번 일에서 그가 했던 말들 중에서 어쩐지 제일 힘이 빠진 것처럼 들렸다. 강동현은 아버지가 나간 현관을 보다가 황경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

“…….”

강동현는 카우치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자신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쌌다. 황경호는 그가 상처 입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미안했다. 결국 그의 결심에 끝까지 휘둘려줄 수 없다는 게. 황경호야말로 그의 말을 가장 믿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아버지 말씀도 맞잖아. 괜찮을 거야. 너 멋있으니까 금방 더 좋은 사람 나타날 거고… 그러면 이런 것도 다 지난 일 될 거고…. 진짜 결혼도 하고 애도 낳는 게 너한테 더 어울릴 거야.”

“…….”

“그래도 1년 있으니까 그렇게 급하게는….”

황경호가 그렇게 말하는데 강동현이 그의 말을 끊었다. 그는 황경호의 왼손을 잡았다.

“그럼 그냥 지금 헤어지자.”

그리고 그의 손에서 반지를 뺐다. 황경호는 가슴이 철렁했다. 그대로 굳어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강동현은 짜증이 나고 지친 얼굴로 자신의 손에서도 반지를 뺐다. 그리고 그걸 테이블 위에 쿵 두었다.

“1년 뒤에 헤어지기로 하고 청승 떨면서 같이 지내자고? 차라리 동네방네 너랑 나랑 같이 산다고 떠들고 다니라고 해. 차라리 그게 나한테 더 맞아. 나랑 너랑 평생 같이 살 생각으로 만나는 거 아니면 이게 다 무슨 소용인데? 그렇게 헤어지고 싶으면 1년 뒤가 아니라 지금 당장 헤어져.”

“…….”

황경호는 강동현의 얼굴을 보다가 시선을 내렸다. 그리고 대답했다.

“…알았어.”

황경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어…… 최대한 빨리 나갈 테니까 이틀, 아니 하루만….”

황경호는 그대로 말을 잇지 못하고 자기 방으로 갔다. 방에 들어오니까 눈물이 확 터졌다. 언젠가 질릴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성가시고 짜증 나는 성격이었으니까.

‘나쁜 놈….’

언젠가 이럴 거라는 거 알고 있었는데도 원망스러움이 들었다. 그리고 동시에 그의 입장도 이해가 되었다. 그의 말도 맞았다. 1년의 기한을 두고 헤어질 연인이 청승맞게 사는 일은 황경호면 몰라도 강동현에게는 맞지 않았다. 차라리 무 자르듯이 시원하게 끝내는 게 어울릴 사람이었다.

황경호는 일단 생각을 더이상 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시간이 없다. 어떻게 정리를 해서 뭘 들고 가야 하는지 고민하다가… 그냥 아무것도 들고 가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지갑과 휴대폰만 챙겼다.

얼굴을 마구 닦고 뺨을 조금 쳐서 정신을 챙겼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고 문을 열었다. 그는 아까 그대로 카우치에 앉아 있었다. 그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그의 발치를 바라본 채로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그럼… 잘 지내. 나 갈게.”

“…하루 달라면서.”

“아니… 아니야.”

“짐은?”

“괜찮아. 필요 없을 것 같아. 잘 있어.”

“그리고 이 집 니 거야.”

“아니야. 이게 왜 내 거야. 갈게. 나오지 마.”

황경호는 뒷걸음질을 치다가 자연스럽게 현관으로 갔다. 황경호는 신발을 신었다.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고 뭔가 아찔했다.

‘같이 찍은 사진 한 장 정도는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눈물이 또 왈칵 나왔다. 빨리 나가야겠다. 강동현이 어느샌가 다가와서 황경호의 손목을 잡았다.

“너한테 날 잡아야겠다는 옵션은 없어? 그렇게 질질 짤 거면서 왜 나 안 잡는데? 어? 왜. 내가 진짜 이해가 안 돼서 그런다.”

“…….”

“우리 아버지가 헤어지라고 했을 땐 1년이라도 달라고 했으면서 왜 내가 헤어지자니까 1시간도 안 돼서 나가는 건데. 왜.”

“…장난친 거야?”

황경호는 확 하고 얼굴에 열이 올라와서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장난 아니야.”

“…….”

“왜 이러냐고.”

마음이 기대와 실망을 순식간에 널뛰었다. 황경호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흐윽… 하아… 흑… 윽… 니가… 헤어지자고 하면 매달리지 말자고 항상 생각했거든….”

그에게서 가장 빨리 벗어나는 길은 결국 전부 사실대로 말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는 자기가 듣고 싶은 말은 끝까지 들어내는 남자다.

“왜.”

“니가 이제 그런 마음 없으면 어차피 매달려봤자 절대 안 돌아올… 테니까… 후우… 그리고 아마도 넌… 예전처럼 또… 나 같은 건 어떻게 되든지 상관없어질 테니까.”

“뭐…?”

강동현은 당황했다. 황경호는 숨을 고르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무서워… 나 바보같이 너 이렇게 좋아하게 됐는데 너한테 또 그런 취급 받으면 진짜 죽고 싶어질 거야. 그러긴 싫어….”

“…….”

“넌 필요하면 누구한테도 그럴 수 있잖아. 부모님한테도 그러고… 처음부터 난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나중엔… 나중엔 더…….”

황경호는 두려워하고 있었다. 모든 건 끝날 것이고 거기에 저항을 한다면 더욱더 고통스러워질 것이라고.

강동현은 인상을 확 찌푸렸다.

‘얘는 진짜 날 어떻게 생각하는 거지?’

나쁜 놈, 나쁜 놈이라고 주야장천 들어왔지만 한 귀로 듣고 흘렸다. 당연했다. 강동현은 그렇게 나쁜 남자가 아니었다. 예전에 ‘실수’야 징하게 했지만 어떻게 또다시 그렇게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이렇게 사랑하고 사랑해주는데

“나… 안 그래. 절대 안 그래.”

“넌 그럴 거야….”

그렇게 말하면서 황경호는 결국 눈물을 못 참게 줄줄 흘렸다. 주먹으로 얼굴을 계속 닦고 심호흡을 해서 마음을 계속 달랬다.

“김, 김현아도….”

“야, 그건 지난 지가 언젠데….”

“니가 김현아 같은 스타일 좋아하는 거 알아… 니 전 여자친구랑 닮았으니까. 너 여자 원래 좋아했고 여자친구도 있었고….”

“아니… 잠깐만. 이 얘긴 끝난 거잖아. 왜….”

“여자랑 사귀면서 나랑 섹스만 해도 넌 괜찮았잖아… 니가 진짜 어떤 여자한테 빠졌는데… 나랑은 섹스만 할까 봐 그것도 무서워… 그건 죽어도 싫어. 흑….”

황경호는 그랑 할 때 항상 죽을 것 같이 느꼈다. 부끄러운 곳도 전부 보이고 몸도 마음도 벌건 생살로 그와 맞닿았다. 예전에 그를 좋아하지 않았을 때도 결국엔 그가 하는 대로 속절없이 느끼게 되고 마치 화장실 변기통처럼 사용될 때마다 창피하고 마음이 허했다. 그저 이러다 언젠간 끝날 거라고 겨우 마음을 추스르던 때였다. 너무 싫다. 그런 마음가짐이나 가지고 살았던 자신도.

다 말했다. 이제 정말 속에 있는 말까지 다한 것 같다. 황경호는 어쩐지 후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그건 다시금 아픔이 되었다.

“…….”

그는 울음을 억누르고 있는 황경호를 가만히 보다가 천천히 그를 끌어당겼다. 그리고 품에 안았다.

“미안… 내가 진짜 죽일 놈이지….”

강동현이 끌어안자 황경호는 오히려 숨이 가빠져서는 그를 밀어냈다.

“장난… 장난 아니라고 했잖아… 이러지 마.”

평소에는 눈치도 엄청 빠르면서 황경호는 여전히 강동현이 헤어지자고 한 말이 진담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강동현은 자신의 손에 이미 반지를 끼고 있었고 황경호의 손에도 다시 반지를 끼웠다. 황경호는 자신의 손을 보고는 울컥 눈물을 흘렸다.

“…이 나쁜 새끼가… 사람 가지고 노니까 좋냐? 좋아? 그냥 헤어져!”

황경호가 화를 냈다. 강동현은 다시 그를 끌어안았다.

“니가 먼저 시작한 거다. 1년 같은 소리 하고 앉아 있네.”

“흑… 흐윽… 윽… 흑… 흐윽….”

“아… 미안. 미안해. 울지 마. 응?”

“진짜 왜 살아! 죽어. 죽어…!”

“아야. 아야. 미안. 내 얼굴. 얼굴….”

황경호가 마구 강동현을 치다가 그의 손이 얼굴을 스치자 둘 다 깜짝 놀랐다. 황경호가 손을 움츠렸다. 강동현은 그 모습에 어쩐지 마음이 아프고 동시에 간질간질했다. 뻐근하다. 그는 이제 진짜로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강동현은 그를 꽉 끌어안았다.

“…나 절대로 너 다시는 그렇게 취급 안 해. 응? 니가 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데.”

“거짓말.”

황경호가 대번에 말했다.

“진짜야. 진짜로… 나 너 진짜 사랑해. 내가… 그래. 내가 나쁜 놈이지. 알아. 너 막 괴롭히고 말도 잘 안 듣고 하니까 아직도 못 믿겠다는 거잖아? 내가 너 사랑하는 거….”

“아니… 그건 믿어. 그냥… 그냥 니가 좀 나쁜 놈이어야지!”

황경호가 수그러들듯 말하다 울컥해서는 한 대 더 때렸다. 강동현은 조바심이 났다. 마음이 달달거린다.

“아~ 진짜 나 어떡해야 돼? 나 진짜 너랑 평생 살 거야. 나 하고 싶은 건 다 하는 놈이라니까? 너 나 아직도 모르겠냐? 어? 안 그러면 내가 우리 엄마 아빠랑 왜 이러고 있겠냐고. 결국엔 들킬 거 아니까 그냥 빨리 일 치르는 거 아냐. 너랑 헤어질 생각이면 내가 우리 가족한테 왜 얘기했겠어? 말 안 할 생각이었으면 나도 절대 안 들켰어. 엄마랑 너랑 만나게 하지도 않았어.”

치사하고 철저해지려면 한없이 그렇게 될 수 있는 남자다. 나쁜 새끼… 황경호는 그의 말에 약간 상처 입었다. 아직 마음과 정신의 상태가 정상이 아니다.

“흑….”

“아니! 내가 만약에 그렇게 하려고 했으면…! 아, 진짜….”

강동현은 그를 다그치려고 했지만 그의 얼굴을 보니 또 마음이 확 물러졌다. 이렇게 빠져서 정신을 못 차리는데 얘는 진짜 왜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다.

‘열어서 보여줄 수도 없고….’

강동현은 그와 몸을 맞대고 그를 부드럽게,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뺨에 입술을 누르고 머리카락부터 등허리까지. 그의 몸이 조금 나긋해지는 것 같다.

“우리 소꿉놀이하는 거 아니잖아. 부부잖아… 나 진짜 더 노력할게. 그러니까 너도… 너도 좀 믿어. 우리 영원히 같이 있을 수 있다고. 우리가 그러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쉽게 그럴 수 있다고. 실제로도 그럴 거고.”

달콤한 말이다. 온몸이 그의 말과 함께 녹는 것 같았다. 삼키고 싶었다. 믿고 싶다. 저 말을 온전히 믿을 수 있게 되고 싶다.

“세상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잖아….”

“그래. 몰라. 모르니까 무슨 수를 쓰더라도 같이 있자고 생각해야지. 너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랑 같이 살겠다고 생각해. 누가 반대를 하든 무슨 일이 일어나든. 불안해하지 마. 니가 제일 원하는 것만 하면 돼. 남 다 신경 써주고 남은 것만 생각하지 말라고. 내가 있잖아. 응?”

이 새끼가 사람을 아주 들었다 놨다 하고 있었다. 황경호는 눈물을 줄줄 흘리면서 그의 등을 끌어안았다.

“억울해… 너 같은 거 진짜 싫었는데… 왜….”

“다 내가 잘생겨서 그렇지. 내가 잘생긴 게 죄다.”

강동현은 잘난 척을 하며 황경호를 끌어안고 마구 쓰다듬었다. 황경호는 더 억울해졌다.

“죽여버리고 싶어… 흑.”

“그래. 차라리 그래라. 절대 안 그럴 거지만… 차라리 내가 바람피우거나 그러면 차라리 너 죽고 나 죽자 하라고. 응? 그렇게 해.”

강동현이 거의 진심으로 그렇게 말했다. 황경호는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은 채로 대답했다.

“내가 어떻게 그래….”

그 말에 강동현이 약간 욱했다.

“아~~ 니가 그러니까 안 되는 거야. 사람이 좀 독해져야지!”

황경호는 자신이 부족하다는 말에 또 뚝 하고 눈물을 흘렸다.

“나도 나 바보 같은 거 알아… 흑… 이 나쁜 놈이….”

“아니. 아니이… 아. 미치겠다. 알았어. 내가 알아서 할게. 내가 알아서 할게, 경호야. 이리 와. 빨리 들어와.”

강동현은 그를 현관에서 다시 집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뭐 하게….”

황경호는 눈물이 줄줄 흐르는 걸 당최 막을 수가 없었다. 기운이 다 빠져서는 그가 뭘 하고 있는지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보니까 넌 뭔가 손에 잡히는 게 있어야 해. 각서 같은 거… 그래. 이별계약서 적자.”

“…….”

그 말에 황경호가 또 마음 상한 얼굴을 하니 강동현은 그냥 그의 손을 끌어당겼다.

“일단 내가 헤어지자고 하면 이렇게 넙죽 나가는 게 아니라 손에 뭐부터 잡아. 골프채 있네. 저거 잡아. 알았지? 그리고 ‘이럴 거면서 결혼은 왜 하자고 했냐, 이 나쁜 놈아!’ 이러면서 날 막 패. 알았지? 정신 차릴 때까지.”

“…….”

자기는 절대 헤어진다고 말 안 할 거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이다. 알고는 있었지만 새삼….

“그리고 바람을 피운다… 그럼 뭐 하지? 칼 들래?”

“…너… 너무 막 부르는 거 아냐? 나중에 진짜 어쩌려고….”

황경호가 도리어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강동현은 잠깐 ‘참을 인’ 자를 쓰는 얼굴을 했다.

“그래… 니가 물러 터진 건 잘 알고 있지… 호… 착하지. 착해서 이런 거지….”

“호구 같다고 하려고 했지….”

“착하다고. 어? 착해. 미치겠다… 칼 한다? 어?”

“…어….”

“그리고 그냥 일단 찔러. 다짜고짜.”

“진짜…? 너 괜찮겠어? 내가 잘못 안 거면 어떡해.”

계약서대로 할 생각은 있나 보다. 강동현은 자신이 백날 한 말보다 고작 이런 종이 쪼가리 하나가 좀 더 믿을 만해 보이는 게 조금 우습기도 하고 어이도 없었지만 그냥 지나가기로 했다. 강동현이 집, 차, 반지 같은 걸 증명이라고 생각했다면 황경호는 흘러가 버리는 말보다 이런 게 더 확실하게 느껴지는 모양이니까.

“아, 괜찮다. 괜찮아요. 어? 그냥 일단 찔러. 알겠지?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너 오해하게 한 것도 잘못한 거지.”

“…….”

“또 뭐 할래? 뭐 할까? 말해. 말해. 다 말해.”

황경호는 어쩔 수 없이 떠밀려서 슬쩍 마음속에 있던 걸 하나 말했다.

“……다른 여자랑 못하게… 거기 못 쓰게 만들 거야.”

“…….”

다짜고짜 찌르는 건 괜찮으면서 이건 망설여지는 모양이다. 강동현은 약간 긴장하는 얼굴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확실할 때만 해라… 나 너랑 아직 하고 싶은 거 엄청 많다. 맨날 해도 다 못 하고 죽을 지경인데….”

강동현이 궁시렁거리면서도 적었다. 황경호가 약간 당황했다.

“뭐가 또 남았는데….”

강동현은 자기 휴대폰을 꺼내더니 갤러리에 들어가서 사진 하나를 화면에 띄우고 넘겼다. 그리고는 계약서를 다듬는 데 집중했다. 황경호는 사진을 보았다.

“…….”

“그 뒤에 소파도 사고 싶고.”

넘겨보았다.

“…….”

첫 번째 사진은 108가지 체위를 나타낸 도식도였고 뒤에 있는 것은 부부관계를 화끈하게 해줄 섹스 소파란다… 지는 칼에 찔리니 뭐니 그런 걸 적고 있으면서 이딴 거나….

“왜 맨날 사람을 바보로 만들어!”

황경호는 강동현의 다리를 발로 찼다.

***

“그래서 1년 뒤고 100년 뒤고 안 헤어지기로 했으니까 그렇게 알아. 알았어?”

강동현의 부모님은 몇 달 새에 아주 폭삭 늙으셨다. 황경호는 송구스러워서 고개를 푹 숙였다. 이번에는 누님도 계셨다.

“에이. 에이. 엄마, 아빠 초상났어? 그러려니 해. 요새 결혼해도 애 안 낳고 사는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 사이 좋으니까 됐지.”

누님…! 강동현을 소 닭 보듯 한다는 누님이 그들의 편을 들어주었다. 황경호는 새삼 대인배스러운 누님의 면모에 또 반했다.

“경호랑 사귀고 그래도 애가 사람 됐더만. 깜짝 놀랐어, 나도.”

“…이게 사람이 됐다고, 어? 얘가 엄마 아빠한테 모진 말 하는 거 니가 못 들어서 그렇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잘생긴 얼굴에 그늘이 팍 져 있었다. 강동현은 태평하게 자기 누나의 말에 첨언했다.

“애는 나중에 좋은 분 있으면 부탁해서 대리모 해달라고 할 수도 있고.”

“퍽이나… 누가….”

아버지는 아주 어이가 없으신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는 그냥 일어나셨다.

“호적에서 파버릴 테니까 그렇게 알아.”

“마음대로 하세요.”

황경호는 밉살스럽게 말하는 강동현의 뒤통수를 치고 싶었다. 누님이 치셨다.

“야…! 좀 빌면 편하게 갈 걸 왜 또 아버지 성질을 건드려?”

“아, 뭐!”

둘이 좀 투닥거릴 동안 강동현의 어머니는 눈물을 찍어 내시다가 황경호를 보았다. 그리고 곧 그의 손을 잡았다.

“은혁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지… 들었어. 내가 다 미안하다. 남의 집 귀한 자식한테….”

“아니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황경호는 당황해서 허둥지둥거렸다.

“어떻게 그래… 흑. 저놈이 천벌 받을 놈이지. 내 배 아파서 낳았지만 어떻게 저럴까. 흑. 흐윽.”

“어머니, 울지 마세요. 네? 울지 마세요. 잘못했어요.”

황경호는 자기가 눈물이 글썽 돌아서는 또 그러고 앉아 있었다. 강동현은 어이가 없는 얼굴이었다. 어머니는 결국 강동현의 뜻을 꺾지도 그렇다고 연을 끊어버릴 수도 없으니 받아들이기로 한 모양이셨다. 강동현은 어머니를 다그쳤다.

“신파를 찍어라, 찍어. 잘 살면 되잖아. 잘 살면. 어? 그만 울어, 좀. 진짜 초상났어?”

황경호는 그의 짜증스러운 말투에 되레 화가 나서 그의 다리를 팍 차버렸다. 어머니는 눈물을 찍어 내면서 강동현한테 당부했다.

“아버지도 좀 있으면 화 풀리실 거야… 니가 잘못했는데도 계속 바락바락 대드니까 저러시는 거 아냐….”

“내가 뭘 잘못했는데?”

“야, 잘못했지. 너 예전에 대학 안 간다고 한 것도 말만 잘했으면 됐을 텐데 그냥 통보하고 배째라 해버리니까 아버지가 열 받으셨던 거 아냐. 이번에도 그랬을 거 내가 안 봐도 비디오다.”

누님이 그를 혼냈다.

“그거랑 이거랑 같냐?”

강동현의 말에 누님이 혀를 찼다.

“니가 눈물 질질 짜면서 얘 없으면 죽겠다느니 앓는 소리 하고 드러누웠어 봐. 엄마 아빠 한 큐에 인정해주셨을걸? 넌 배우가 그 정도도 못하냐?”

누님이 한심하다는 듯이 그를 보았다. 그러니 강동현과 어머니 둘 다 좀 놀란 것 같았다.

“어…… 그런 거야?”

“엄마 아빠를 그렇게 모르냐. 너 고자 됐다는 소리에 하루도 안 빼고 걱정하셨는데, 앓아눕고 죽는다고 쇼해봐라. 바로 인정해주시지.”

“어…….”

강동현은 얼빵한 표정을 지었다. 어머니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셨다가 울컥한 듯 눈물을 펑펑 흘리셨다.

“흑. 흐윽. 내 새끼들은 왜 다 이렇지. 내가 뭘 잘못했다고… 정말 열심히 키웠는데… 흑. 흐윽.”

어머니는 완전 억울하신 모양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어머니, 어머니. 울지 마세요. 네? 괜찮아요. 안 그랬잖아요. 울지 마세요.”

황경호가 정성을 들여 그녀를 위로했다. 남매의 행각에 자기도 덩달아 상처받아서는 말이다.

“불효막심한 것들… 흑.”

“어머니….”

어머니가 황경호를 붙잡고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너 쟤랑 정말 괜찮겠니? 흑. 저거 저러는데… 자기가 잘못한 것도 모르고… 흐윽. 부모 가슴에 대못 박고… 저거 너한테도 벌써 몇 번이나 그랬다는 거 아냐?”

“…….”

항상 우리 아들, 은혁이 하고 살갑게 부르시던 어머니가 정말 이번에는 마음이 많이 상하셨는지 이거, 저거 하셨다. 그렇게 어머니가 아주 아픈 곳을 의도치 않게 훅 찌르고 들어오셨다.

그래….

이걸 믿고 ‘평생’ 살아야 한다니….

황경호는 강동현을 약간 흘겨보았다가 어머니에게 말했다.

“제가 노력할 게요….”

“아, 잘 살면 된다니까요, 홍 여사. 벌써 잘살고 있어요, 우리.”

“또 우리 아들이 나쁜 짓 하면 꼭 말해. 어디서 그런 나쁜 짓을 배워서….”

나쁜 짓을 어디서 배운 게 아니라 원래 나쁜 놈이더라구요… 황경호는 그녀의 등을 토닥거리며 위로했다.

“죄송해요. 진짜 죄송해요. 조심해서 잘… 잘 살게요.”

“엄마, 그만 울어. 진짜 괜찮아. 애들 어디 죽으러 가는 것도 아니고. 경호랑 같이 살면서 얘 건강해지고 호강한다고 좋아했잖아. 응?”

누님도 가세하셨다. 어머니는 눈물을 닦아내면서 겨우 울음을 잠재우셨다. 어머니는 긍정적인 면을 보려고 노력하셨다.

“맞아… 흑. 맞아. 맞는 말이야. 후우. 미안하다, 경호야. 부모 마음이란 게… 이러는 게 너 상처 주는 거 아는 데도… 미안하다. 너도 남의 집 귀한 자식인데… 니가 싫어서가 아니라… 남자라는 게….”

“알아요. 이해해요. 당연하죠… 죄송해요.”

“아니야. 아니다. 내가 더 미안하다. 어떡하니… 내 새끼 때문에 고생만 하고….”

“아니에요. 제가 죄송해요.”

“아니야. 내가….”

고부(?)는 서로 미안하다는 말을 릴레이처럼 계속했다. 강동현은 한시름 놓겠다는 생각만 했다. 그때 누님이 서비스라는 식으로 툭 제안했다.

“아버지 어떻게 해야 할지 가르쳐줄까?”

“됐어. 이 정도면 됐지.”

강동현은 카우치에 푸지게 기대어 앉아 엄마랑 황경호나 보고 있었다. 엄마랑 쟤는 도대체 왜 저러는 걸까? 모르겠다.

“야… 엄마랑 경호 생각은 안 하냐? 너야 두 다리 쭉 뻗고 자겠지만 둘이 저러고 있는 거 봐라. 아버지 저러시는데 둘이 퍽이나 마음 편하겠다.”

도은연은 멍청한 동생을 훈계했다. 강동현은 아까보다 더 죄인 모드가 되어 땅을 파고 들어갈 것 같은 황경호를 보았다.

“…어떻게 해야 하는데.”

누나는 쑥덕쑥덕 비결을 가르쳐줬다.

“에이… 진짜?”

“엄마가 너무 아들 사랑이 지극해서 그렇지. 아빠도 만만치 않다?”

너 고자 됐다니까 아주 집이 초상집이야, 초상집. 누나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흥. 내가 엄마 아빠 다 독차지해서 어쩌냐.”

강동현이 그녀를 놀렸다. 그녀가 피식 비웃었다.

“난 어려운 자식, 넌 쉬운 자식. 똑같은 부모 가졌다고 다 똑같은 자식인 줄 아냐? 아무리 너 귀여워해도 너랑 나랑 물에 빠지면 엄마 아빠는 나부터 건져. 첫째 이기는 자식은 없다.”

“잘났다….”

강동현은 자기 누나를 이겨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렇게 몇 달간 이어진 도씨 집안 불화가 조금 수그러드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강동현과 황경호를 배웅해 주셨다.

“저… 앞으로도 연락해도 되죠?”

황경호는 용기를 내서 물었다. 어머니는 수척해 보이셨지만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래. 나도 연락할게. 예전처럼… 너무 귀찮으면 말하고….”

“아니에요.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어머니.”

황경호는 허리를 숙여서 인사를 했다. 누님은 집에 남으셨고 강동현과 황경호는 차를 타러 갔다. 황경호는 쥐도 새도 모르게 기력을 다 뺏겨서 다리를 질질 끌며 차로 돌아갔다. 강동현은 헬쓱한 황경호의 얼굴을 손으로 막 만졌다.

“보양식이라도 먹어야겠네, 내 마누라.”

“응….”

황경호는 사양하지 않았다. 진짜 필요했다. 너무 힘들다… 강동현은 시동을 걸고 차를 출발시켰다. 그는 황경호의 눈치를 보다가 슬쩍 입을 열었다.

“저기… 경호님.”

“왜… 말 시키지 마. 기운 없어.”

황경호는 조수석에 늘어져 그렇게 말했다.

“그… 저 돈 쓸 일이 좀 있는데요….”

“카드랑 통장 있잖아.”

“그게 아니라 좀 크게…….”

“얼마나? 무슨 일인데?”

강동현은 오늘 집에 찾아가 부모님이랑 담판 짓는 거야 별 긴장도 안 하고 갔다. 부모님은 몇 달 동안 기운 다 빠지셨고 강동현은 쌩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아주 쪼오금 긴장했다.

“누나 회사에 백억만…….”

“……뭐라고…?”

황경호는 순간 자기가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곧 그를 홱 돌아보았다.

“아니… 우리 누나 회사 시리즈 B 투자받는데 투자자 모으고 있었거든. 오늘 좀 도와 달랬더니 그거 다 사라고 해가지고 그… 우리가 지금 현금도 많겠다.”

강동현은 얼른 설명했다. 황경호가 어안이 벙벙해서는 그를 쳐다보다가 그의 팔을 주먹으로 퍽퍽 쳤다.

“백억이 누구 집 개 이름이야? 어?!”

“경호야, 나 운전. 운전…! 아니이… 너도 이렇게 묵혀 두기 아깝다며. 우리 누나 대단한 사람이야. 그거 그냥 날리진 않을걸?”

강동현이 얼른 설명했다. 이 집은 아버지랑 얘만 딱 떨어지는 줄 알았더니만 누님도 그런 모양이었다. 도대체 어머니 유전자는 어디로 간 것인가! 소 닭 보듯이 한다고 도와주지 않을 거라더니 오늘 도와주셔서 정말 고마웠는데… 약간의 배신감과….

‘진짜 이 집 남매들은 둘 다 났(?)다….’

대단하다… 남동생한테 백억을 삥 뜯는 누나라니. 강동현은 설득을 계속했다.

“우리 누나 마음먹고 입 털면 장난 아니거든. 우리 엄마 아빠 구워삶는 건 일도 아니야. 그러니까… 응? 그냥 주는 것도 아니고. 나 벌써 약속 다 해놨어. 안 주면 우리 누나 나 죽여버릴걸. 응? 경호야, 살려줘.”

강동현이 아주 엄살을 떨어댔다. 황경호는 아주 그냥 더 기운이 빠졌다.

“알았어….”

“아싸. 와, 너 진짜 니 남편 살린 거다. 어?”

강동현이 기뻐했다. 황경호는 인상을 쓸 힘도 없었다.

“뭐 먹고 스파나 갈까? 마사지까지 싹 받고 나오자. 우리 경호 영 기운 안 나서 안 되겠네. 응? 그리고 백화점 갈까? 사고 싶은 것도 좀 사고….”

“알았어. 알겠으니까 지금은 운전만 해. 너 때문에 더 기운 빠져.”

“흐응, 밤에 더 기운 빠지게 할 건데.”

부모님과의 일 때문에 영 기분을 못 내던 황경호였다. 강동현은 이거 해야지, 저거 해야지 콧노래를 부르며 운전을 했다. 황경호는 고개만 돌려 그런 그를 보고는 더 피곤해졌다.

“너만 왜 맨날 괜찮은 거야. 짜증 나….”

“응? 뭐가?”

“나만 맘고생 하고….”

“뭔 소리야. 나도 상처 엄~청 받았어. 너 무슨 1년만 더 사귀면 된다느니, 헤어지자는 소리 듣자마자 나가지. 응? 내가 얼~마나 마음 아팠는데. 어? 우리 마누라 나 사랑 안 하는구나, 하니까 막 가슴이 찢어지고….”

“아! 더 짜증 나니까 그만해!”

억울해도 이건 그냥 이 새끼 성격이라 어쩔 수도 없었다… 황경호는 한숨을 푹 쉬고는 말했다.

“어머니, 아버지한테 진짜 잘해… 앞으로 속 썩이지 말고 말도 예쁘게 하고… 너 진짜 부모님한테 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

“내가 그렇게 안 했으면 이렇게 빨리 끝나지도 않았어.”

“토 달지 말고… 내 말대로 해. 알았지?”

하여튼 간에 이 호구… 강동현은 혀를 한 번 찼다가 대답했다.

“…알았어.”

마지못해 한다는 기색이었지만 그래도 강동현은 그렇게 대답했다. 황경호는 왼손을 뒤집어 그에게 내밀었다. 강동현이 깍지를 껴서 그 손을 잡았다. 그대로 내내 손을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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