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부 1권 - 38화 (38/47)

1. 남자의 얼굴만큼 중요한 건 없다(물론 그 외도 비슷하게 중요하긴 하다)

인생, 내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역시… 가끔 분하다는 생각도 든다.

“…….”

황경호는 침대에서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는 강동현을, 아주 마음에 안 든다는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미운 짓 하나 하지 않았는데도 밉다. 왜일까. 황경호는 비즈니스 미팅으로 늦게 들어와 잠든 강동현을 그렇게 쳐다보고 있다가 출근을 했다. 대기실에 있는 TV에서 예능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었다.

[진짜? 강동현이랑? 대박.]

[아, <연애 출사표> 찍으면서~ 전화 돼? 전화?]

리얼 예능 프로그램에서 절친 특집으로 출연자들의 친한 친구를 방송에 즉석으로 초대하는 미션을 진행하고 있는 중이었다. 프로그램의 고정 출연 연예인 중 하나인 한기석이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연애 출사표>를 찍을 때도 A급 주연급 배우였지만 <코드명: 울프> 이후로 아시안 히트를 친 강동현이었다. 연예인들한테도 연예인이라는 소리를 들을 레벨이 된 것이다.

[“어, 형.”]

[오, 받았다. 받았다.]

[어, 동현아. 뭐하냐?]

[“나? 커피나 한 잔 마시러 나왔는데?”]

전화 통화를 통해서 강동현의 목소리가 나오자 여성들의 감탄사가 효과음으로 들렸다. 목소리 하나는 끝내주는지라 다들 듣고 감탄하는 게 보였다.

[아니, 나 지금 촬영 중인데.]

[“아~ <하우스메이트> 촬영하시는구나. 안녕하세요.”]

[어머,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어머, 어떡해!]

<얘 왜 이래>라는 자막이 달렸다. MC가 질린다는 얼굴로 첨언했다.

[얘 강동현 씨 빠순이야.]

[빠순이 대박. 그게 언제적 단어야. 형 나이 나온다.]

[그럼 뭐라고 해야 하는데?]

그렇게 몇 마디 통화를 하다가 강동현이 우연히 촬영지 근처 커피숍에 있는 것을 알고 정말 잠깐 얼굴을 비치러 나왔다. 한국에선 오랜만의 예능 출연이었다. 훤칠한 키에 세련되고 깔끔한 옷차림을 한 강동현은 누구나 홀릴 것 같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카메라 앞에 나타났다.

“저런 거 보면 연예인 티가 팍팍 난다니까.”

TV에 계속 정신이 팔려 있던 황경호의 팔을 툭 치며 정기연이 말을 걸었다. 황경호는 깜짝 놀라서 말을 더듬었다.

“뭐? 어? 뭐?”

안 본 척 차트를 부산하게 정리하는 걸 정기연이 이상하게 쳐다보았다.

“강동현 말이야. 난 거의 마스크랑 선글라스 낀 것만 봐서 잘 모르겠는데 실물이 더 낫지?”

정기연이 황경호에게 물었다. 황경호는 벌게지지 않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있었기 때문에 횡설수설했다.

“어? 뭐가? 음, 내가 그러니까… 뭐라고?”

“강동현, 실물이 더 낫냐고!”

“내,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황경호가 당황해서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니 정기연이 더 이상한 얼굴을 했다.

“왜 몰라? 치료 받을 때도 마스크 쓰고 있어, 저 인간?”

“아, 아… 아. 어….”

황경호는 아차, 하고 또 말을 더듬다가 겨우 대답했다.

“똑같아. 똑같아. 너 못 봤어? 아. 실물이 더 잘생겼나… 아니… 몰라.”

“하… 저렇게 돈 많고 잘생긴 놈도 거시기가 문제이니… 허우대는 저렇게 멀쩡한데 거긴 작은 거 아냐?”

정기연이 속닥거렸다. 얼마 전에 1년 가까이 사귀던 남자친구와 헤어졌다더니. 인생에 회의감이 드는 모양이었다.

“응? 어… 아니… 그건….”

“얼만한데?”

뭐… 일이 일이다 보니 이 정도 얘기도 오고 가지 않으면 인간미가 없다. 하지만 황경호는 정기연이 말하는 바로 그 남자와 결혼(?)을 한 사람이었고… 평소 같으면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해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지금은 괜히 부끄럽다. 얼굴이 벌게질 것만 같아서 황경호는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당혹해 하고 있었다.

“이 오빠 봐라… 갑자기 내외하고 그래. 김 간, 도 환자 진짜 얼마만 해? 이만해? 아님 요만해?”

“이만~해.”

“오~”

빨개진다…! 황경호는 그사이에 얼른 자리를 피했다.

***

정말 미남을 보면, 그 미남은 그냥 사람 같은데 눈에 들어오는 다른 사람들이 오징어로 보인다는 놀라운 진실을 아는가. 강동현의 잘생긴 얼굴을 맨날 보고 사는 황경호다 보니 가끔 그럭저럭 못생긴 얼굴만 봐도 싫다는 느낌에 앞서 신기하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심지어 마스크랑 선글라스까지 끼고 있는데….’

강동현의 옆에는 5등신 정도로 보이는 20대 중반의 남자가 앉아 있었다. 항상 그의 옆에 앉아 있던 유태범은 이미 진료실로 들어간 지 오래였다. 얼굴은 넙데데한데 살집은 없다. 눈코입은 작고 못생겼다. 목도 짧고 배가 나왔다. 머리는 우스꽝스럽고 자세도 굽었다. 사람이 볼품이 없다는 건 저런 것을 말할 것이다.

그런 그가 187의 훤칠한 키에 길쭉길쭉 한 팔다리, 어깨도 등도 딱 벌어지고 근육질의 멋진 몸매를 가지고 있는 강동현의 옆에 있으니 같은 성별은커녕 같은 인종으로도 안 보인다. 5등신의 환자는 마치 외계인처럼 보였다. 강동현은 목도 길쭉하고 목젖도 뚜렷한데 옆에 앉은 청년은 가슴이 나오고 목젖은 보이지도 않았다. 팔다리는 가늘다. 심지어 머리숱도 없다….

그리고 둘은 우연히도 거의 비슷한 스타일의 옷을 입고 있었다. 솔직히 황경호 뿐만 아니라 다들 둘을 비교해서 보았을 것이다.

“박민석 환자님.”

태블릿 PC를 보고 이름을 부르니 마침 그가 일어났다. 진짜 짤막해 보이는 남자였는데 막상 그가 일어나니 황경호랑 그렇게 키 차이가 많이 나는 것 같진 않았다. 황경호는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쟤 옆에 서면 이렇게 보이려나….’

누가 서도… 황경호는 힐끗 강동현을 돌아보았다가 그가 자신을 보자 눈을 피하고 진료실로 들어갔다.

“차갑습니다.”

여기도 발기부전 환자다. 점점 갈수록 담당하는 발기부전 환자가 많아졌다. 남성 병의 종류도 가지각색이고 환자의 유형도 가지각색이지만 발기부전 환자와 왜소증 환자들의 진상도가 가장 높다. 힘들어 보이는 환자들은 으레 황경호가 먼저 손을 들곤 했으니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르겠지만….

“저… 인터넷에서 봤는데 마사지가 돈만 들고 효과는 하나도 없다던데….”

“발기부전이 혈관 문제로 인한 분들도 있어서 그런 분들은 효과가 있습니다만 그 외의 케이스에는 효과가 미미한 건 사실이죠.”

황경호는 그렇게 대답했다. 사실 심인성인 사람들은… 뭔 짓을 해도 약을 달고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파트너와의 관계에서 계속 위축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남자들은 남성으로서 자신이 없고 파트너를 실망시킬 거라는 두려움에 발기가 잘 되지 않고 그러면 더 자신감이 떨어지고 그러면 더 안 되고의 악순환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그럼 안 하는 게 나을까요? 비싸기만 하고….”

“일단 오늘 치료는 시작하셨으니까 한 번 받아 보시고 다시 생각해 보시겠어요?”

“환불은 다 되긴 하나요?”

“물론이죠.”

“그럼 간호사님 생각엔 제가 안 하는 게 나아 보인다는 거죠?”

“이강유 선생님께선 박민석 환자님께서 순환 문제도 함께 가지고 있다고 하셨으니까 효과는 있으실 겁니다.”

“받아도 안 나으면 어떡하죠?”

“복합적인 문제라 한 가지 문제가 해결된다고 다 해결이 되는 건 아닙니다. 자존감 회복 문제도 있구요.”

“그건 어떻게 해야 하는 데요?”

“마음을 편하게 먹으셔야 해요. 조급해하는 건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남자로서의 자신감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그러자 환자가 물었다.

“남자로서의 자신감은 어떻게 가질 수 있는 건데요?”

남자로서의 자신감… 황경호는 자기가 먼저 말을 꺼내놓고 박민석 환자가 다시 언급하니 곧바로 강동현이 생각났다. 남자로서의 자신감.

‘…지금 생각해 보니까 그런 건 그냥 가지고 태어나는 걸로 결정되는 거 아닌가?’

만약에 강동현이 키가 크지 않았더라도 지금의 강동현 같았을까?

그가 잘생기지 않았더라면?

그가 좋은 집안 환경에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그가 결국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서 성공하지 못했더라면?

‘…그럼 도대체 보통 남자들은 어떻게 ‘남자로서의 자존감’을 지키고 살 수 있는 걸까?’

황경호는 문득 그런 궁금함이 들었다. 황경호도 당혹스러웠지만 그래도 답을 해야 했으므로 입을 열었다.

“우선은 조급해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죠. 스스로에게 관대해져야 해요. 사람이 살다 보면 나쁜 일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운동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사람들 만나는 게 더 스트레스지 않나요? 운동도 혼자 해도 스트레스, 같이 해도 스트레스….”

박민석 환자는 회의적이었다. 그는 여전히 조급함을 떨치지 못한 얼굴로 다리를 약간 떨었다. 어쨌든 답은 찾지 못한 채 어영부영 시간이 흘러갔다. 끝났다. 그리고 퇴근을 할 때쯤 강동현한테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어, 경호야. 지금 어디야?]

“나 이제 퇴근해서 나왔어.”

[우리 회사 주식 투자한 문서 어디에 뒀지?]

“그건 왜?”

[팔아야 할 것 같아서. 콜옵션 기한도 얼마 안 남은 것 같고.]

“그거 내 방에 있는데. 금고에 있어서… 지금 집에 가니까 조금만 기다려.”

무슨 말인지 뒤에는 못 알아들었지만 일단 그렇게 대답했다. 그리고 집에 도착했더니 강동현이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요새 다시 일하러 다니며 카메라 마사지를 받더니 나날이 더 훤칠해졌다. 강동현은 황경호를 끌어안았다.

“경호야~ 오늘도 일 잘하고 왔어?”

그리고 강동현은 황경호의 얼굴에다가 쪽쪽 입을 맞추었다. 황경호는 못 이긴 척 그의 입맞춤을 받으면서 겨우 말했다.

“읍. 으음… 바쁜 거 아냐? 으읍… 응… 바로 꺼내 줄게.”

“하아… 내일 들고 가면 돼.”

강동현은 그렇게 말하며 일단 황경호를 카우치로 데려왔다. 황경호는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야…! 나 아직 안 씻었는데…!”

“괜찮아. 괜찮아. 좋은 냄새 나니까.”

“씻고…! 앗… 아앙…!”

“나… 10시엔 다시 나가야 한다고.”

강동현이 황경호의 얼굴에 입술을 문질렀다. 엎치락뒤치락하다가 황경호가 샤워하는 걸 포기했다. 황경호는 거의 다 벗겨지고 강동현은 티셔츠만 벗었다.

“흣… 아아앗….”

황경호는 긴장한 얼굴로 큼직한 자지를 음부에 꽂았다. 잔뜩 젤을 넣고 힘을 주어 끝을 박아 넣어야 했다. 저항을 받아 못 들어오다가 귀두가 물리자 황경호는 파르르 몸을 떨었다.

“괜찮아…?”

강동현은 상대의 젖꼭지를 물고 빨았다. 질문에 성의가 없다. 황경호는 움찔거리면서 그의 얼굴을 밀어냈다.

“거기만 하지 마.”

“아, 왜.”

“흐응…! 앗!”

강동현이 가슴을 움켜잡고 핑크빛 유두를 엄지손톱으로 긁었다. 황경호는 얼굴이 새빨개졌다. 강동현은 흐응, 하고 만족스럽게 웃으며 황경호의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뜸 들이지 말고 빨리해줘.”

얘는 자기랑 섹스하는 게 얼마나 중노동인지 모르는 게 분명하다… 황경호는 강동현의 머리를 끌어안고 천천히 엉덩이를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조금씩 들어간다. 황경호의 피부는 그것만으로도 긴장의 땀이 흘렀다. 강동현은 섹시한 신음을 흘리며 황경호의 피부에 얼굴을 비비며 즐겼다.

“앗… 아으….”

“으윽… 아, 진짜 좋다.”

거의 다 들어가 서로의 아랫배가 맞붙자 둘 다 서로를 끌어안고 부르르 떨었다. 황경호는 눈을 감은 채로 강동현의 어깨부터 팔까지 쓰다듬었다. 크고 단단하다… 그 느낌이 아주 만족스러웠다. 황경호는 그대로 크게 그를 뽑아내었다가 쿵 하고 그의 아랫배를 엉덩이로 치듯 대담하게 움직였다.

“우앗…! 아윽…! 와, 잠깐만… 윽….”

우리 경호 오늘 삘 받은 모양이다. 강동현은 자지가 뜯기듯 빨리는 것만 같았다. 아프다고 처음부터 이렇게 잘 안 하는데. 엄청 조인다.

“핫… 하앗… 아앙… 은혁아… 아앙… 뜨거워… 하앗….”

이렇게 조이니 마찰이 엄청나다. 그 열로 인해 황경호는 온몸에 핑크빛이 돌았다. 강동현에게 찰싹 달라붙어서는 금방까지만 해도 손가락 하나 안 들여보내 줄 것 같았던 작은 분홍색 구멍으로 길이 22센치에 둘레 16센치의 대물을 버겁게 먹고 있었다.

“찢어질 것 같아… 읏… 아앙….”

“안 돼. 하아… 천천히 해, 그러니까….”

강동현이 황경호의 엉덩이 두 짝을 손으로 꽉 쥐며 자신의 쪽으로 꾹 눌었다. 아랫배를 꽉 붙였다. 그리고 피스톤질을 하지 않은 채 서로의 아랫배를 빠르게 비비며 안에 진동을 주었다. 눈을 지그시 감고 섹스를 주도하고 있었던 황경호는 깜짝 놀라며 강동현의 등을 더 끌어안았다.

“핫. 아앗. 앗. 앙…! 이, 이게 더 찢어질 것 같아…!”

“아, 진짜?”

강동현이 멈추었다. 그는 황경호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냄새를 한번 흠뻑 맡고는 서로의 몸을 떨어뜨렸다.

“얼굴 좀 보여줘.”

황경호는 손을 뒤로 해서 강동현의 두 허벅지를 잡아 몸을 지지했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다리를 잡아 M자로 벌렸다. 싹 다 보인다….

“아아…!”

그대로 강동현은 황경호의 허리를 잡고 흔들었다. 황경호는 눈을 지그시 감으며 그의 허벅지를 꽉 잡았다.

“하아…! 앗… 아앙…! 강동현… 하앗… 아…! 흐윽… 아으….”

점점 빨개진다. 강동현은 그의 몸을 계속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섬세한 선의 몸이 예쁘다. 얼굴도 성애에 성숙해져 야시시하다. 잘 느낀다. 엄청 뿌듯하다. 내 거다.

“경호야… 윽… 눈 떠. 나 좀 봐.”

황경호가 눈을 떴다. 눈이 마주쳤다. 아랫배가 돌처럼 단단해졌다.

“흐윽… 은혁아… 나 갈 것 같아….”

일렁이는 눈으로 바라봐주니 그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강동현은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려고 했지만 자세 때문에 실패했다.

“가고 싶어?”

강동현이 물었다. 황경호가 울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강동현은 그의 허리를 꽉 붙잡고 그대로 속도를 올렸다.

“핫…! 아아아! 앗! 아앗…! 아아앙….”

엉덩이에 매를 맞는 것 같다. 엉덩이 살이 출렁거렸다. 황경호는 단단한 근육이 느껴지는 강동현의 다리를 겨우 붙잡고 그의 위에 앉아 마구 박히고 있었다.

“하아아아아앙…!”

황경호는 심하게 경련하면서 미끄러져 뒤로 넘어졌다. 강동현은 얼른 그를 붙잡았다. 강동현은 씨익 웃으면서 그를 끌어안았다.

“내가 잡았어.”

칭찬이라도 해달라는 듯이 그는 그렇게 말했다. 그가 다리를 오므리는 걸 막고 벌리며 강하게 음부를 쑤셨다.

“하앗…! 으응…! 아우으… 흑… 아…! 이제… 하앗… 빨리 해. 빨리… 아앗…!”

“알았어… 큭… 으… 진짜….”

강동현도 인상을 찌푸리며 집중했다.

“야한 말 좀 해봐.”

“아…! 이 지루! 힘들다고!”

“윽…! 그러니까 빨리 해.”

“하앗…! 나 더 못해… 아앙…! 흑… 하아… 그냥 빨리 싸!”

황경호가 짜증을 냈다. 알다시피 그는 야한 말을 하는데 영 소질이 없었다. 그러자 강동현이 알아서 리퀘스트를 요청했다.

“그거 말해봐.”

“뭘…? 앗….”

황경호는 벌어진 몸의 버거움도 열기의 버거움도 겨우 견디며 강동현에게 안겨 있었다. 별로 땀도 안 흘리는 체질인데 땀으로 흠뻑 젖었다. 강동현의 옷을 더럽힐까 봐 걱정이 되었다.

“좋아한다고 해봐.”

“…….”

황경호는 얼굴이 빨개졌다. 강동현은 흐응, 하고 만족스럽게 웃음을 흘리며 황경호의 얼굴을 관찰했다.

“니가 그 말 하면 나 금방 싸잖아.”

황경호는 얼굴이 벌게져서는 강동현의 눈만 쳐다보았다. 귀엽게시리. 아, 귀여워 죽겠다. 강동현은 그의 입술에 입술을 꾹 누른 채로 웃었다.

“응? 빨리. 빨리해봐. 사랑한다고 해봐.”

“조, 좋아한다고 하라며….”

“뭐든. 응? 빨리이.”

강동현이 졸랐다. 그동안에도 강동현의 자지는 열심히 황경호의 야한 곳을 문지르고 있었다. 황경호는 녹아내릴 듯한 얼굴을 하며 강동현의 얼굴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입술을 움찔거리다가 취약한 표정으로 겨우 속삭여 말했다.

“좋아해….”

강동현이야 무슨 공수표를 날리듯이 좋아해, 사랑해 쏟아붓듯 말하는 타입이었지만 황경호는 아니었다. 저번 이후로 처음으로 좋아한다는 말을 들었다. 강동현은 가슴이 뜨거워졌다. 뻐근했다. 그대로 황경호의 엉덩이를 잡고는 빠르게 움직였다. 황경호는 강동현의 머리를 끌어안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아윽… 크으윽…!”

약속대로 그는 그 이후로 금방 사정을 했다. 한계치까지 팽팽하고 딱딱해진 게 터질 것만 같이 아팠다. 마치 심장이라도 된 것처럼 두근거렸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뺨을 변태처럼 깨물고 핥았다. 정액이 뿜어져 나올 때마다 강하게 허리를 틀었다. 때에 맞춰서 조이고 빨아주니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쾌감이 극점을 찔렀다. 아랫배가 돌처럼 딱딱해졌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뺨에 얼굴을 묻으며 미소를 지었다.

“하아… 왜 이렇게 좋냐. 진짜… 아, 진짜 좋다. 경호야. 황경호… 사랑해.”

황경호는 왠지 부끄러워서 온몸이 빨개졌다. 팔다리로 그의 몸통을 끌어안고 몸속에서 두근거리는 그의 야한 살덩이를 느끼고 있었다. 마음이 부푼다. 가슴이 떨린다.

‘뭘까….’

행복하다… 황경호는 그렇게 느꼈다. 그와 이렇게 끌어안고 있는 게 행복했다. 마음이 뭉게뭉게 부풀고 항상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번잡한 생각들이 사라진다. 단단한 근육의 촉감, 향기로운 체취, 오르락내리락하는 타인의 숨결, 얼굴을 지분거리는 부드러운 입술, 짓궂지만 항상 사랑을 말하는 근사한 목소리….

‘내 거 같아… 전부… 내 거였으면 좋겠어….’

내 거야… 황홀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팔다리로 그를 더욱 꽉 끌어안았다. 서로의 살이 녹아드는 것처럼 찰싹 맞붙었다. 언제나 이 느낌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좋았다. 그도 같은 걸 느끼고 있다고 생각하니 더욱 황홀했다. 세상에 단둘만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영원히 이렇게 있고 싶었다.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이렇게 죽고 싶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하아… 하….”

황경호는 정신을 못 차리고 그에게 자꾸 엉겨 붙으며 몸을 꿈틀거려 그의 살에 파고들려고 했다. 그의 멋진 등을 손으로 자꾸 쓰다듬으며 얼굴을 그의 목덜미에 문질렀다. 강동현도 그런 그를 더욱 꽉 끌어안았다. 황경호는 칠칠치 못할 정도로 황홀한 신음을 흘렸다. 강동현이 황경호의 귓가에 얼굴을 문지르며 속삭였다.

“또 말해봐….”

황경호는 그의 목소리에 부들 떨었다. 떨어지고 싶지 않은데 그가 몸을 떨어뜨리려고 했다. 더 엉겨 붙으려고 했지만 결국 밀려났다.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모르겠다. 여전히 숨결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서로의 얼굴을 보았다.

“응? 다시 말해봐.”

강동현도 홀린 듯 그의 얼굴을 보며 다시 요구했다. 가까이 붙어 있고 싶은데 얼굴을 보는 것도 좋다. 진짜 잘생겼다… 하지만 약간 정신이 든 황경호는 난처한 얼굴로 그의 얼굴을 보았다. 괜히 창피하다.

“시, 싫어….”

“왜… 다시 말해봐. 듣고 싶어.”

“싫다니까.”

강동현은 그의 가슴을 쥐고 엄지로 그의 젖꼭지를 버튼이라도 누르듯 건드렸다. 황경호는 깜짝 놀라서 바르르 떨며 그를 조였다.

“하지 마… 앗… 아앗….”

“아, 진짜 귀여워 죽겠네… 응? 경호야. 말해보라니까. 응?”

강동현이 미소를 지으며 황경호를 보았다. 근사한 미소였다. 이런 건 TV에서도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진짜 잘생겼다. 멋있다. 근사하다. 너무, 너무 좋았다. 심장이 마구 두근거렸다. 황경호는 그의 얼굴을 보며 갈등하다가 자꾸만 무언가에 져서는 입을 열었다.

“좋아한다니까….”

요즘엔 계속 뭐든, 그가 말하는 대로 하게 된다. 황경호는 가슴이 마구 떨렸다. 그가 절대 황경호의 마음을 거절할 리가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누군가에게 자신의 마음을, 그것도 사랑을 전하는 것은 강동현이 처음이라서… 자꾸만 긴장이 되었다.

강동현을 처음 좋아한다는 것을 인정하였을 때의 그 충격이 선명하다. 절대로 강동현을 좋아할 일이 없어야 정상이었다. 미워서 죽을 것만 같았는데도 그에게 매력을 느끼는 자신에게 환멸을 느끼곤 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에 대한 자신의 마음이 커져가는 게 못내 무서울 정도였다. 연애나 사랑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아주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던 황경호였다. 그런 그가, 그것도 강동현을 향해서 이런 애틋한 기분을 느끼게 될 줄이야.

“나쁜 놈….”

황경호는 가슴이 너무 떨리다 못해 아파서 견딜 수가 없게 되자 원망스러운 음성으로 그렇게 말했다. 너무 좋으니까, 너무 좋아서 가끔 원망스럽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이런 마음을 모르는 것만 같았다. 자꾸 장난만 치려고 하고 웃기만 하고….

“좋다면서 왜 나쁜 놈이래, 또. 응?”

황경호는 눈을 감으며 자신의 가슴 위를 손바닥으로 눌렀다. 심장이 경련을 일으키는 것만 같았다. 강동현은 황경호가 왜 이런 표정을 짓는지 알지도 못했지만 그의 표정이 좋아서 가슴이 간질간질했다. 강동현은 황경호를 카우치 위에 눕혀서 깔아뭉갰다.

“흐응. 우리 바니. 바니야. 다음에 하얀색 바니옷 사올까?”

“아앙… 또 이상한 데 돈 쓰려고….”

“분홍색?”

“사지 말라니까. 으응… 응….”

“이왕 살 거면 입는 사람 취향을 고려해서….”

“사지 말라고!”

강동현은 10시까지 시간을 꽉꽉 채워서 황경호랑 뒹굴거리다가 나갔다. 황경호는 그제야 겨우 씻고 밥도 먹고 정리도 할 수 있었다. 침대에 누웠을 때는 아까 강동현과 했던 섹스가 계속 생각이 나서 혼났다. 잘생긴 얼굴. 멋진 몸. 근사한 미소. 불안증처럼 가슴이 자꾸 떨렸다.

‘나쁜 놈.’

그런데 지금 옆에 없다. 이러니 원망을 안 할 수가 있겠는가.

***

일을 하고 있는데 휴대폰 알림이 왔다. 오후 3시가 되기 5분 전이었다. 황경호는 우연히 바로 볼 수 있는 짬이 되어서 휴대폰을 꺼냈다.

“?!”

입금 알림 문자였다. 요새 다시 활동기에 들어간 강동현이니 가끔 CF 출연료나 방송출연료가 들어오곤 했기 때문에 이제 황경호에겐 그다지 놀라울 게 없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그의 출연료 액수에 적응이 안 되어서 몇 번이나 제대로 들어왔는지 확인을 하곤 했다. 큰 CF는 억 단위고 화보 촬영 같은 경우는 건에 따라 백 단위에서 천 단위를 왔다 갔다 했다. 드라마가 아닌 방송 출연은 거기에 비해선 생각보다 아주 적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액수가 들어왔다. 한국에서 출연하는 것과 중국에서 출연하는 것이 아주 다르긴 했지만 말이다.

강동현은 소비에도 크게 계획이 없었지만 수입에도 크게 계획이 없었다. 그냥 돈을 통장에 방치를 하는 수준이었다. 바쁘기도 할 테고 말이다. 황경호는 요새 진지하게 이자가 많이 나오는 통장을 찾아보고 있었다. 이 돈이면 이자 영 점 몇 퍼센트가 어마어마한 돈이 된다. 이 정도면 분명히… 뭐더라, 자산관리사? 그런 거라도 고용해야 할 수준일 텐데. 세무사는 있다고 듣긴 했지만… 황경호도 그런 세상엔 아주 문외한이라 공부가 필요했다.

어쨌든 이제 강동현과의 생활도, 그의 수입에도 그럭저럭 익숙해졌다. 아무리 많이 벌어봤자 쓰는 데도 한계가 있으니까 그가 더 벌어온다고 여기서 뭐가 더 크게 달라지진 않는다. 다만 보면 볼수록 마음이 참 따땃하고 든든하다는 차이가….

근데 이번은 달랐다. 입금 금액이 끝까지 안 보인다. 자릿수가 너무 커서 다 안 나오는 것이다. 황경호는 알림을 탭하여 은행 어플리케이션으로 들어갔다.

“일십백천만십만백만천만일억십…….”

황경호는 무려 열 번을 더 세어 보고서야 강동현한테 전화를 했다.

“황 간, 어디 가?”

근무 시간에 그답지 않게 휴대폰을 귀에 대고 급하게 나가니 누군가가 그렇게 잡았다. 황경호는 깜짝 놀라서 그녀를 돌아보았다.

“아, 죄송합니다. 저 집에 일이 생긴 것 같아서요. 5분만 통화하고 오겠습니다.”

“그래.”

황경호는 재빨리 입원실 화장실로 들어갔다. 강동현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일하나 보다. 황경호는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도 없었는데도 손톱을 물어뜯었다. 저절로 발이 동동 굴러졌다.

“뭐지? 뭐야? 이거 잘못 입금된 거 아냐? 은행에다 전화해야 하나?”

황경호는 무려 7번이나 강동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진짜 일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더 이상 시간을 쓸 수 없어서 결국 포기하고 나와서 일을 하는데 하나도 집중이 안 되었다. 예전에 강동현 때문에 홍조증이 엄청 심해져서 시도 때도 없이 빨개질 때와는 차원이 달랐다.

이건 겁이 났다.

“경호야, 왜 그러니? 집에 일 있다면서. 심각한 일이야?”

오희연 간호사가 물었다. 황경호는 깜짝 놀라서 그녀를 보았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진짜? 표정 안 좋은데… 큰일이면 대충 정리하고….”

“아뇨…! 아니에요. 아니에요. 죄송합니다….”

그래도 평소와는 다르게 퇴근 시간이 되자마자 양해를 구하고 바로 칼퇴근을 했다. 그리고 강동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늦게 들어온다고 한 건 아는데도 계속 걸고 메시지를 보냈다. 원래 있던 운동과 마사지 예약을 취소하고 집으로 돌아와 인터넷에다가 이런 경우가 어떤 경우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찾아봤다. 돌려주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하긴, 이쪽에서 잘못한 것도 아니고… 황경호는 그제야 겨우 가슴을 조금 쓸어 내렸다.

강동현이 처음으로 황경호에게 통장이랑 집문서를 맡겼을 때도 그는 이미 돈이 엄청 많았다. 3백억… 필부필부는 평생 근처에도 못 가볼, 아니 그걸 가진 사람조차도 근처에 없을 만한 돈이었다. 게다가 그 이후에 <시크릿블러드>도 엄청 히트를 쳐서 생활비나 집이나 차를 구입하면서 나간 세금 등을 제외하더라도 순전히 150억 이상이 플러스 되었다. 그렇게 작년 봄까지만 일하고 그 이후로는 쭈욱 휴식을 하다가 이제 슬슬 작품활동을 준비하는 강동현이었다. 지금은 큰돈이 들어올 게 없는 시즌이었다.

‘아니! 뭘 해도 이 정도는 안 들어온다고!’

뭘 모르는 황경호라도 그건 알 수 있었다. 이쪽이 잘못한 건 하나도 없는데도 진짜 괜히 무서워서 긴장을 하고 있었다.

“얘는 뭐하는데 전화를 안 받아….”

연예계의 일이라는 게 결국 사람 비즈니스이고… 강동현 정도면 편하게 일 받으면서 대충 하면 될 것 같은데도 이래저래 불려 가는데도 많고 만날 사람도 많았다. 게다가 강동현은 한국에 있는 아시아 특급 젊은 남자 배우들 중에서 거의 유일하게 군대 문제가 해결된 경우라 더욱 여기저기서 러브콜이 많았다.

강동현의 저번 소속사는 재정적으로 아주 문제가 많은 회사였기 때문에 제대로 출연료도 못 받았다고 했었다. 이번 소속사도 사장님의 재정적 문제는 조금 있는 것 같았지만 그래도 회사 자체는 강동현이 들어오기 전에도 흑자가 3년 이상 계속 나는 회사였다고 했다. 강동현이 메가 히트를 치고 나서는 매출도 급격하게 늘고 이익률도 크게 올랐다고 했고.

황경호는 휴대폰을 봤다가 인터넷으로 또 뭘 찾아봤다가 불안해하다가 드디어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얼른 일어나서 현관으로 달려갔다.

“경호야~ 나 기다렸어?”

술 취했다…. 재작년 이후로 그가 취한 건 처음 보는 것 같다. 술 거의 끊었고 요새는 정말 어쩔 수 없을 때만 맥주 한두 잔 하는 정도였다. 황경호는 하필이면 오늘 술에 취해서 기어들어오는 강동현을 보고 기겁을 했다. 지금 술에 취해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야…! 똑바로 서… 우악…!”

강동현은 무거웠다. 황경호는 결국 그를 제대로 부축하지 못하고 같이 넘어졌다.

“도은혁…! 너 내 메시지 봤어? 왜 답장 안 해?”

“못 봤어. 못 봤어.”

강동현은 덮어놓고 아니라는 말만 했다. 황경호는 그의 얼굴을 들어서 살폈다.

“너 언제부터 마셨어?”

“저녁때부터…?”

지금이 새벽 1시 반이다… 황경호가 한숨을 푹푹 쉬었다.

“내가 못 산다, 진짜….”

얘 진짜 술 끊어야 하는데… 그런 걱정도 들고. 황경호는 그를 추슬러서 다시 일으켜 세웠다. 낑낑거리면서 그를 겨우 침대에다가 눕혔다. 옷을 벗는 걸 도와주면서 물었다.

“통장에 지금 갑자기 6백… 그거 뭐냐고, 어? 너 어디 팔려가는 거야?”

“뭐가?”

“이거. 이거. 이거 어디서 잘못 들어온 거 아냐?”

황경호는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서 화면을 보여주었다. 강동현은 인상을 찌푸리며 찬찬히 화면을 읽어보다가 대답했다.

“이거 그거… 우리 회사 주식 판 거.”

“응? 그거 팔았다고?”

얼마 전에 뭐라고 하면서 들고 갔다. 황경호는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거 백억짜리였잖아. 근데 그게 어떻게 6배나 돼?”

“12배야. 반만 팔았어.”

“……뭐?”

“사장님 다음으로 내가 제일 주식 많았잖아… 요새 주식도 많이 오르고 좀 부담스러워 가지고. 전에 만났던 중국인 사업가한테 내 지분 10프로랑 사장님 5프로 해서 같이 팔았어. 우리 사장님도 이제 채무자 졸업이시다.”

“…….”

“그래서 술 마시고 온 거 아냐… 아, 진짜 중국 사람들은 고량주를 무슨 소주처럼 먹어.”

“…….”

그리고 강동현은 앓는 소리를 내면서 침대에 늘어졌다. 황경호는 황망함을 감추지 못하고 그의 옷을 마저 벗겼다. 일단 재워야겠다… 그를 제대로 이불 속에다 넣고 베개도 베게 했다. 술 냄새가 쩌는 그의 옷들을 분리하여 세탁소에 바로 맡길 수 있게 정리했다. 그리고 거실로 나와 멍 때리고 카우치에 앉았다.

“천칠….”

강동현이 그냥 통장에다 돈을 방치하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딴 데 신경 쓰지 않고 자기 일 똑바로 하는 게 제일 수익성이 큰 투자였던 것이다.

다음 날, 강동현은 생각보다 멀쩡하게 일어났다. 숙취는 없는 편이다. 속 풀라고 콩나물국을 해서 먹였다.

“너… 자산관리사라도 하나 있어야 하는 거 아닐까? 바쁜 건 알지만….”

황경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갑자기 왜?”

강동현은 콩나물국을 두 그릇이나 원샷 했다. 그리고는 죽을 떠먹으며 물었다.

“한두 푼도 아니고… 그냥 이렇게 통장에만 넣어둬도 되는 거야?”

“나 그런 거 전혀 모르는데. 누나나 아버지한테 물어볼까?”

“두 분은 잘 아셔?”

“누나야 금융 쪽 일 했었고 아버지도 사업하시니까… 아는 형들 중에도 그쪽으로 잘 안다 하는 사람들 있긴 한데… 남이라.”

강동현은 남 일을 말하듯 그렇게 말했다. 황경호는 밥을 깨작깨작 먹다가 한숨을 쉬었다.

“니 돈이긴 하지만… 왠지 좀 무섭다….”

“우리 돈이야. 무섭긴 왜 무서워?”

강동현이 말했다.

“너무 많아서….”

“다 은행에 들어가 있는데 무서울 게 뭐가 있어?”

“…….”

대가 없이 주어지는 건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이런 모든 게 조금은 무섭다.

문득문득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고, 허무해 하던 건 많이 없어졌다. 특히 강동현을 좋아할 수 있게 되면서, 그걸 인정할 수 있게 되면서… 스스로가 누군가를 진실로 좋아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은 큰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그가 누구나 매력을 느낄 만한 근사한 남자라는 것도, 그런 남자가 자신을 좋아해 준다는 것도 자존감의 향상에 굉장한 도움을 주었으니까 말이다.

지금까지 강동현이 황경호에게 해준 것들도 이미 자신에게 엄청 과분한 것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부담스러워 하고, 선을 그어가며 거리감을 지키려고 했지만 결국 그 부분은 실패했다. 어쩔 수가 없었다. 이 정도 되는 남자랑 같이 살려면 황경호도 적응을 했어야 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거기에도 레벨이라는 게 있었다. 이 정도는 황경호가 관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관리 못 하겠어….”

“응? 왜?”

강동현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무 많아.”

“그냥 돈은 은행에 두고 쓸 것만 쓰면 되는데도?”

“그냥 이렇게 둬도 돼? 이 정도로 많으면 그냥 은행에다가 두는 거 안 좋은 거 아냐? 잘은 모르지만….”

황경호가 확연히 불안해하는 얼굴로 그렇게 말하자 강동현이 평이한 어조로 대답했다.

“누나한테 물어볼게. 걱정하지 마.”

자기가 번 돈이라서 그런가. 강동현은 그다지 흥분하지도 그렇다고 불안해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원래 집이 좀 사는 집이었다 하더라도… 원래 이 정도로 돈이 많은 집이었나? 황경호에게는 그런 걸 알아볼 수 있는 안목이 없었다. 여전히 뭔가 가슴이 울렁거린다. 그러고 있는데 강동현이 지나가듯 말했다.

“초록이는 안 보고 싶어? 5월에 너 쉴 때 초록이 보고 와.”

5월 휴가는 전처럼 강동현이랑 여행을 가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황경호는 의외의 제안이 깜짝 놀라서 그의 얼굴을 보았다.

“너 바쁜데 어떻게 나만 갔다 와.”

집에 내조를 하는 사람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천양지차다. 아무리 사람을 쓴다고 해도 마음을 다해서 챙겨주는 것과 돈 주고 고용하는 사람의 차이는 크다.

황경호는 이런 곳에 얹혀산다는 것에 대한 부채감으로 처음부터 강동현에게 잘했었다. 때 되면 음식해서 갖다 바치지, 집 안 깔끔하게 유지하고 그가 일로 해외를 가거나 하면 착실하게 캐리어 같은 것도 미리 준비해서 물건도 미리 챙긴다. 가끔 강동현의 어머니가 연락을 하시거나 하면 물심양면으로 시중을 들기도 했고 말이다. 강동현이야 사서 종 노릇한다고 계속 뭐라고 하지만 그런 황경호의 성격에 제일 득 보는 것도 본인이다.

“집안일 좀 작작해. 원래 나 혼자서도 잘해. 그러니까 걱정 말고 갔다 와.”

“…응… 고마워.”

강동현은 밥을 다 먹고 일어나며 황경호의 이마에다 쪽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씻으러 갔다.

‘쟤는 어쩔 땐 진짜 치사하다 싶은데 이런 데는 관대하단 말이야….’

자기가 하고 싶은 건 정말 하나도 양보 안 하고 다 챙기려고 하는 데 반대로 그 외로 자기가 해줄 수 있는 건 아까워하지 않고 다 해준다. 진짜 시험 삼아 뭐 사 달라고 해봤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그냥 사지, 왜 안 샀냐는 말을 듣고도 깜짝 놀랐다.

처음부터 황경호가 가지고 태어난 것인 양 해주었다. 누구도 그에게 그렇게 해준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정말로 뭔가 손에 쥘 수 있어서라기보다도, 저런 태도가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해줬다.

스스로가 참 별거 아닌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온 황경호였다. 무엇이라도 하나 다른 사람에게 해줄 수 없는 사람이 되면 금방 버림받을 것만 같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것 같다.

‘…진짜….’

좋아한다고 제대로 고백을 못 한 게 계속 마음에 걸린다. 고맙다고도… 말하고 싶은데… 황경호가 그런 고민을 하며 식기세척기에 그릇을 넣고 식탁을 치웠다. 그리고 출근을 하려고 짐을 챙겼다. 조용히 나갈까 하는데 얼른 샤워를 한 강동현이 뒤에서 끌어안았다.

“내일 쉬지?”

“응… 으음… 어….”

하여튼 물어봐 놓고 말할 틈도 안 준다. 강동현이 씩 웃으면서 황경호의 코를 깨물었다.

“오늘 밤엔 일찍 들어올 거니까 씻고 기다리고 있어.”

“…응….”

얼굴이 홧홧하다…. 강동현은 현관문을 열어주면서도 계속 키스를 했다. 황경호가 그의 어깨를 잡고 겨우 얼굴을 뺐다.

“아…!! 사람들 본다고!”

황경호가 질색을 했다.

“안 봐. 안 봐. 아무도 안 봐.”

강동현은 끝까지 끈질기게 굴다가 들어갔다. 황경호는 얼굴을 벌겋게 붉히며 입술을 닦았다. 그리고 슬그머니 이쪽저쪽 살펴보며 누가 있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한숨을 푹 쉬었다. 이래저래 분수에 안 맞는 것들 투성이다.

‘이러다 내가 내 명에 못 살지….’

***

“박민석 환자님.”

대기실에서 환자를 부르자 한껏 멋을 낸 환자가 치료실로 들어왔다.

“오늘 어디 가시나 봐요.”

황경호가 말을 걸었다. 그러자 환자가 대답했다.

“소개팅 있어서요.”

발기부전을 치료 받으면서 소개팅이라… 황경호는 저도 모르게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가 몰래 한숨을 쉬었다. 뭔가… 성격이 나빠진 것 같다. 박민석 환자도 은근히 불안한지 주절주절 말을 뱉었다.

“아는 형들이 이럴수록 여자를 만나라고 해서요.”

“그래요?”

“그 형들이 소개시켜준 여잔데… 솔직히 못생겼다고 하더라구요. 뚱뚱하고….”

“아, 네….”

“그런데 그런 여자들일수록 남자한테 잘한다고… 자기들 못생긴 줄 알아서. 하긴 정성이라도 안 들이면 누가 그런 여자들 만나겠어요. 그래도 여자라도 하나 있으면 자신감도 많이 생기고 좋다고 하더라구요. 그거 바라고 하는 거죠.”

예전에 황경호는 이런 걸 참 잘 참고 잘 들어줬었다. 하지만 황경호도 그간 많은 일을 겪고, 또 강동현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그런지 어쩐지 성격이 점점 나빠지는 것 같았다. 참을성이 없어진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런 데 기분이 나빠지는 것도 지금 황경호의 입장 때문이다. 강동현과 자신의 관계가 꼭 이런 남자들과 여자의 관계 같아 보일 때가 있었으니까. 예전에는 그냥 피상적으로 듣고 흘리곤 했었다.

결국 남자들은 ‘그럴 만한’ 혹은 ‘그래도 될 만한’ 상대를 골라서 착취하려고 하는 것 같다. 자기 의견을 말하거나 잘잘못을 따질 줄 아는 사람을 성가시다거나 기가 세다고 깎아내리고 손쉽고 바보 같은 상대를 치켜세운다.

‘생각해 보면 걔도 그랬지….’

자기 여자친구에겐 말 한마디도 안 했을 만한 짓을 황경호에겐 묻지도 않고 마구 하곤 했다. 만만하니까….

“남자는 자길 떠받들어주는 여자를 만나야 한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얘기하더라구요. 그게 남자의 자존감의 원천이래요.”

정말로 잘난 남자는 여자에게 자신의 자존감을 의탁하지 않아도 괜찮다. 키 크고 몸도 좋고 잘생기고 목소리도 좋고, 돈도 많고 매력도 있으면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남자들은 잘나지 않았다. 그래서 그걸 다른 사람을 착취해서 채우려는 것일까? 그럼 착취당하는 사람들은?

황경호가 아는 잘난 남자들이라고 해봤자 이강유와 강동현 정도뿐이다. 이강유는 은근히 연애 연애 노래를 불렀다. 지금 여자친구를 만나고 나니 그런 거 없이 아주 행복해했다. 그 전 여자친구들은… 박민석 환자 정도는 아니더라도, 남자에겐 여자가 꼭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긴 했다.

‘…….’

생각해 보니까 강동현도 항상 여자가 있었다… 강동현은 전 여자친구, 이강유는 지금 여자친구. 자기가 만족할 만한 상대는 정해져 있는 것이다. 단지 다른 남자들처럼 이 여자, 저 여자 각을 재며 넘어뜨리려고 하지 않을 뿐이지. 자기가 원하는 여자만 원할 뿐.

아니… 생각해보니까 강동현이 자기한테 헸던 짓이나 이강유가 그 전 여자친구들을 적당히 사귀어 왔던 건 똑같잖아? 잘난 놈이나 못난 놈이나 똑같다는 거야? 잘난 놈은 끝에 결국 자기기 원하는 상대를 손에 넣을 수 있는 거고 못난 놈들은 이 사람, 저 사람 착취하면서 사는 거고?

“네… 맞는 말이네요.”

황경호도 강동현이 해달라는 건 다 해준다… 해달라고 안 하는 것도 다 해준다. 왜냐면… 모든 게 다… 과분하다고 생각하니까… 모르겠다… 이젠 어쩔 수가 없었다. 그가 어떤 면에서는 자신을 착취하는 거라고 해도… 이렇게 좋아하게 되어버렸는데 어쩔 것인가. 처음은 그랬다 하더라도… 역시 이 모든 건 황경호에게 과분했다.

황경호는 퇴근을 하고 집으로 왔다. 습관적으로 노트북을 틀고 팬 커뮤니티에 들어가니 오랜만에 그가 촬영하는 드라마의 파파라치 사진들이 올라와 있었다. 2백 장이 넘었다. 이번 작품의 남자 주인공은 다중인격이라더니… 다양한 분장을 하는 것이 보인다.

‘뭘 해도 잘생겼다….’

…콩깍지…는 아니지. 진짜 잘생겼지. 그걸로 먹고 사는 놈인데. 황경호는 그가 잘 나온 사진들을 전부 저장했다.

그러다가 문득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진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잠깐 집을 나갔을 때도 새삼 같이 있는 사진 한 장 없구나, 라고 생각했다. 여행을 가서도 풍경 사진을 찍는데 바빴지 혹여나 다른 사람들이 오해(?)라도 할까 봐 괜히 조심했다. 물론 강동현은 황경호의 사진을 많이 찍었지만….

‘몇 장 달라고 해볼까….’

그러면서 자꾸 전에 봤던 것도 또 보다가 노트북을 닫았다. 그리고 욕실에서 물건을 챙겨 스파로 향했다. 그가 오랜만에 일찍 온다고도 했고, 씻고 기다리라고 하기도 했고….

강동현의 휴식기 때만 해도 매일 붙어 있던 두 사람이었다. 주말에는 자주 놀러 가기도 하고. 황경호가 아무리 일을 해도… 끝나고 오면 같이 밥을 먹고 찰싹 붙어있고… 키스를 하고 이야기를 나누고 침대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점점 그가 바빠지니 시간이 맞지가 않았다. 저번에 들어와서 몇 시간 한 게 전부니까 벌써 섹스도 안 한 지 일주일이 넘어간다. 하다가 안 해서 그런지 괜히 찌뿌둥하고 허리도 뻐근하다. 오늘은 볼 수 있을까, 라고 애써 기다려봐도… 그는 진짜 바빠졌다. 그런 걸 아니까 혹여 좀 일찍 오더라도 피곤할까 봐….

황경호는 세신사의 도움을 받아 아주 박박 잘 씻고 나오고는 갑자기 한숨을 쉬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나 기대하고 있잖아….’

좀 부끄럽다.

집에 와서도 잠옷을 이걸 입고 있을까, 저걸 입고 있을까 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드레스룸 한쪽에는 온갖 휘황찬란한 옷들이 걸려 있었다. 간호사복, 검은색 바니복, 망사 슬립, 그물 스타킹… 강동현이 한동안 미친 듯이 사 와서 입히던 이상한 코스튬들이었다.

“…….”

황경호는 곧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냥 무난한 하늘색 잠옷을 입고 카우치에 앉아서 TV를 틀었다. 8시… 9시… 그렇게 초조하게 그를 기다리고 있는데 문자가 왔다.

<경호님, 촬영 늦어져서 새벽에 들어갈 것 같습니다.>

“…….”

맥이 탁 풀렸다. 황경호는 뭐라고 답장을 보내야 할지 모르다가 그냥 알겠다고 답장했다. 실망스러웠지만 티 내고 싶지는 않았다. 강동현이 다시 문자를 보냈다.

<대신에 경호야… 나 부탁 좀.>

<뭔데?>

그러자 강동현이 바로 답장을 보냈다.

<자위하는 사진 좀 찍어서 보내봐.>

“…….”

진짜 좋은데도….

가끔 정말 한 대 세게 때리고 싶다.

“얘는 왜 자꾸 자위를 하래…!”

황경호는 자위를 거의 하지 않았다. 혼자서 자위를 하고 났을 때의 그 허무함과 수치스러움이 싫었다. 게다가 강동현의 앞에서 하면 더 부끄럽다. 그가 이상한 표정으로 쳐다보면 더 볼썽사납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근데 그걸 사진을 찍어 보내라고?

<나 진짜 욕구불만… 집중이 안 돼.>

강동현이 메시지를 보냈다.

<응? 진짜 야한 걸로 딱 한 장만.>

황경호는 두다다 답장을 보냈다.

<싫어! 그리고 니가 전에 멋대로 찍어간 것도 많잖아!>

<그건 이미 너무 많이 봤어. 새로운 게 필요하다.>

<싫다니까.>

<서방님이 니 생각나서 일에 집중이 안 된다는데 좀 보내봐라.>

황경호는 화를 냈다.

“서방 같은 소리 하고 앉아 있네…!”

<싫어.>

황경호가 자꾸 싫다고 하니 갑자기 전화가 왔다.

[야… 진짜 한 장만.]

목소리는 엄청 진지하고 근사한데 하는 소리가 짜증 난다. 아까까지만 해도 목욕재계까지 하고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자기 자신이 바보 같이 느껴질 정도다. 이런 놈이 좋다고!

“싫다니까 자꾸 왜 이래!”

[그거 한 장이 그렇게 어려워? 응? 내가 진짜 촬영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어? 그거 보고 힘 좀 낸다는데?]

“거짓말하지 마! 너 나 괴롭히려고 이러는 거잖아.”

[무슨 소리야. 진짜 힘 난다니까, 니가 사진만 보내주면? 진짜 좀만… 응? 뭐 입고 있어? 다 벗지 말고 가슴이랑 거기 보이게 각도 잘 잡아서 찍어봐. 얼굴도 잘 나오게, 응? 야한 표정 하는 걸로. 응? 응?]

황경호는 대번에 얼굴이 시뻘게졌다.

“이 변태! 지루 임포 고자 색마! 죽어, 진짜! 왜 살아!”

[아, 진짜… 치사하게 그러지 말고. 어?]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황경호는 그의 말에 더 화를 냈다.

“이게 뭐가 치사한 거야!”

[원래 일찍 집에 들어가서 너랑 뒹굴거리려고 했는데 아쉽잖아. 계속 생각난다고. 나 이러면 진짜 촬영 못 해. 나 <시크릿블러드> 때 너 생각하느라 집중 못 해서 연기 못한 거라니까, 어? 나 이번 복귀작 망하면 니가 책임질 거야?]

그게 망하면 자기 탓이지 왜 황경호의 탓인가. 하지만 황경호는 뭐라고 반박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씨근덕대고 있었다.

“…싫다니까… 부끄럽다고….”

황경호가 억울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여기서 강동현은 승기를 포착한 것이 분명했다.

[내가 10장을 보내라는 것도 아니고 100장을 보내라는 것도 아니고 딱 한 장인데. 그게 그렇게 힘들어?]

“…….”

[자, 빨리 바지 벗고… 아니! 드레스룸 가서 그 빨간색 레이스 팬티 입어봐. 내가 좋아하는 거!]

해줄 거 같으니까 벌써 신났다… 황경호는 엄청나게 갈등을 했다.

[대신에 내가 뭐 해줄까? 말만 해. 내가 다 해줄게. 응?]

“…….”

[뭐 있는 거지? 어? 뭔데? 내가 다 해준다니까.]

“…알았어. 그만해. 할게.”

[아싸!]

“끊어.”

황경호는 드레스룸으로 가서 팬티를 갈아입었다. 그리고 다시 카우치에 와서 앉았다. 그리고 한숨을 푹 쉬었다. 내 팔자야… 그리고 대충 자세를 잡고 한 장 찍어서 보냈다. 그러니까 다시 메시지가 바로 온다.

<아! 성의가 없어! 얼굴이랑 가슴 보이게 찍으라고! 무릎 세워서 다리 벌리고! 손가락 넣고! 카메라 봐!>

지가 무슨 영화 감독인 줄 안다. 황경호는 인상을 팍 구기고 답장을 보냈다.

<너 일 안 해?>

<대기 중. 빨리. 제대로 해.>

<보냈잖아.>

<자위하는 거 찍으랬지 그냥 팬티 입은 사진만 보내면 어떡하라고. 아, 빨리해. 빨리해. 딱 싸기 직전에 찍어서 보내.>

<맡겨 놨냐….>

<빨리.>

그 뒤로도 재촉하는 성화가 장난이 아니었다. 황경호는 결국 한숨을 쉬고는 얼굴을 좀 붉히고 자기 걸 손으로 쥐었다. 전혀 그럴 기분이 아니었다. 물렁하기만 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다음에 혼자 할 일 있으면 나 생각하면서 해… 알았지? 내가 어떻게 해줬는지 기억하면서… 이런 거 말이야.]

아… 황경호는 얼굴이 확 붉어졌다. 막상 흥분이 될 만한 기억이 떠오르니 어쩐지 창피하다. 진짜 이걸 해야 하나 싶으면서도 결국 꾸역꾸역하다가 세웠다.

“흐읏… 아으응… 아….”

그리고 나서는 저도 모르게 열중하여 그와의 잠자리를 생각하며 손을 움직이다가 아차 하고 카메라를 거실 탁자 위에 세웠다. 그리고 카메라를 틀고 더 만지다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을 것 같을 때 타이머를 맞추었다. 3, 2, 1… 어떻게 찍혔을지도 모르겠다. 탈력감과 피로감에 빠져 카우치에 늘어졌다. 시원한 느낌은 아니었다. 이런 바보 같은 일을 한 걸 금방 후회했다. 티슈로 손을 닦고 사진을 확인했다.

“…….”

잘 나온 거 같다… 황경호는 생각보다도 제대로 그렇고 그렇게(?) 나온 사진 때문에 당황해서 전송 버튼을 누르지 못하고 있었다. 그새 강동현은 내내 조르는 말을 쉴 새 없이 메시지로 보내고 있었다. 황경호는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결국 두 눈 꼭 감고 전송 버튼을 눌렀다.

“…….?”

답장이 없다… 바로 메시지를 보낼 줄 알았던 강동현이 사진을 보고도 전혀 반응이 없었다. 많이 이상한가? 라는 생각을 할 때쯤 메시지가 왔다.

<이거 한 거 그대로 다시 해봐.>

그리고는 바로 영상통화가 걸려 오기 시작했다.

“…….”

황경호는 오랜만에 그냥 이놈의 집구석을 나갈까? 라는 생각을 잠시 했다.

***

물론 영상통화 같은 건 안 했다. 그가 아무리 졸라도 무시했다. 기분이 좀 상해서 술을 한 잔 하고 바로 잠들었다.

“…?”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나고… 압박감이 느껴졌다. 황경호는 흐리멍덩한 정신으로 눈을 떴다. 사위가 깜깜했다. 누군가 자신의 몸을 만지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기겁을 했을 것 같은데 이젠 놀라지 않았다.

“내가 잘 때 좀 건드리지 말라고 했잖아….”

황경호가 약간 짜증을 섞어 말했다.

“깼어?”

강동현은 옆으로 누운 황경호의 뒤에 누워서는 달라붙어 그의 어깨에 코를 묻고 냄새를 맡았다. 그의 손은 이미 황경호의 옷 속에 들어와 있었다.

“흐으응… 아앙… 야… 진짜… 아아앙….”

강동현의 커다랗고 멋진 두 손이 황경호의 부끄러운 곳을 제 것처럼 만지고 있었다. 속옷 속에 들어가서 앞을 주무르며 다른 손은 가운뎃손가락을 쑥 넣어 안을 쑤셨다. 황경호는 아직 잠이 안 깨서 그의 팔을 잡은 채로 반항도 못 하고 잔뜩 만져지고 있었다.

“아까… 너 때문에 더 집중 안 돼서 촬영 시간 더 걸렸잖아….”

“누가 일하다가… 흐읏… 그런 바보 같은 짓 하래? 아앙…! 손가락… 핫….”

손가락 두 개가 두 마디 정도만 들어가서 안을 만지거나 휘젓거나 벌리거나… 하여튼 손가락으로 할 수 있는 짓은 다 하고 있었다.

“나도 반성했다… 하아… 사진 어떻게 찍은 거야, 진짜… 깜짝 놀랐네. 완전 야했어… 폰 배경화면 해놨다.”

“미쳤어…! 누가 보면 어쩌려고!”

황경호는 잠이 확 깨서 그에게서 몸을 떼고 그를 돌아보았다.

“몰라… 니가 책임져… 촬영하는데도 계속 설 뻔했다고.”

“임포 주제에 그 정도 가지고 서긴 뭘 서! 그것 때문에 사람을 그렇게 괴롭히면서.”

턱이 빠질 정도로 빨아주거나 엉덩이에 불이 날 것 같이 박힐 때도 꽤 많다. 물론 황경호도 이제 좋으니까 같이 하긴 하지만… 다른 때는 잘 못 세우면서 반대급부로 황경호한테는 너무 잘 서는 게 문제였다.

“진짜 섰다니까… 아까 사진 보고 섰어… 니가 전화 안 받아 가지고 겨우 가라앉혔잖아. 애국가 세 번이나 불렀다.”

강동현이 벌써 황경호의 다리 사이에 자기 대물을 문지르면서 원망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하고 싶어 죽는 줄 알았어.”

“넌 하고 싶을 때나 내 생각하지?”

황경호가 강동현의 머리카락을 잡아서 자기한테서 떼어냈다.

“사랑하니까 하고 싶은 거야….”

강동현이 그렇게 말했다. 황경호는 얼굴이 약간 빨개졌다.

“너도 아까 하면서 안 부족했어?”

강동현이 황경호의 뺨에 계속 입술을 강하게 눌러 문질렀다. 그는 황경호의 엉덩이를 간지럽게 손가락으로 쓸면서 섹시하게 속삭였다.

“여기다 잔뜩 싸도 돼? 오랜만에 가슴에도 하고 싶은데….”

새벽 중에 들어와 놓고는 미친놈이 발정제라도 맞은 모양이다. 황경호는 깜짝 놀라서 그의 얼굴을 밀어냈다. 강동현은 그를 자신의 위에 태웠다. 스탠드에서 나온 주홍 불빛이 몸의 음영을 짙게 만들었다. 강동현은 외출복을 침실 바닥에다 그냥 훌훌 던져 놓은 상태였다. 그리고 황경호의 잠옷 상의를 벗겼다. 강동현이 그의 가슴에 자기 자지를 문질렀다.

“너 안 피곤해? 잠이나 자.”

황경호는 이제 잠이 다 깨서 퉁명스럽게 말했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젖꼭지를 엄지와 중지로 쥐어 잡아당겨 검지로 빠르게 비볐다.

“흐으읏….”

거기가 움찔거린다. 황경호는 얼굴을 확 붉히며 그의 팔을 잡았다. 강동현은 다른 손으로 그의 가슴에다가 계속 귀두를 문질렀다.

“아앙… 핫… 할게… 할게. 할게. 그만해. 아읏.”

젖꼭지와 거기가 마구 긁어내고 싶을 정도로 간지럽다. 온몸에 열이 확 올랐다. 그가 손을 떼니 두 곳 다 징징 울리는 것만 같았다. 황경호가 야한 얼굴로 없는 가슴살을 모아 잡아 강동현의 대물을 끼우고 비비기 시작하자 강동현이 웃으며 그의 팔을 손등으로 간지럽게 쓸었다.

“가슴만 만지면 금방 흥분한단 말이야, 너….”

황경호는 얼굴을 빨갛게 한 채로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의 남성기에서 평소보다 강한 체취가 났다. 벌써 크고 딱딱하다… 황경호는 쿠퍼액이 질금질금 나오는 그의 자지를 벌건 얼굴로 내려다보았다.

‘…핥고 싶어….’

입안에 가득 넣으면 숨을 쉬기가 힘들다. 뜨겁고 냄새가 나고… 힘든 일인데도, 그를 더 흥분시키고 싶었다. 그의 야한 얼굴을 보고 싶다. 그는 할 때 진짜 섹시하다… 결국 그의 말대로 부족했나 보다.

“무슨 생각해?”

강동현이 황경호의 뺨을 부드럽게 매만졌다. 황경호는 결국 이끌림을 막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그의 선단 끝에 혀를 대었다. 강동현의 허리가 바로 움찔했다. 얼굴을 만지는 그의 손이 바로 뜨겁고 축축해졌다.

“경호야….”

그의 숨소리가 엄청 섹시해졌다. 입을 크게 벌려서 입안에 넣어도 3분의 1 정도나 들어갔다. 입안을 진공으로 만들어 빨고 볼에 넣어서 이의 표면에 비비며 우물거렸다. 볼이 터질 것 같이 팽팽해졌다. 가슴이 없으니 이런 식으로 하면 가슴에서 자꾸 떨어진다. 어떻게든 하려고 했지만 잘 안 된다. 약간 짜증을 내면서 한 번은 가슴에 비볐다가 한 번은 빨았다가 하니 강동현이 결국 웃는다.

“뭐하는 거야.”

하지민 황경호는 집중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가슴을 붙이고 고개를 숙여서 혀를 내밀어 그를 맛보았다. 도취되는 게 스스로도 느껴졌다. 강동현이 황경호의 얼굴과 몸을 뚫어져라 보다가 그의 팔을 끌어당겼다.

“안 되겠다… 일단 하게 해줘.”

“아….”

황경호는 의미 모를 힘 빠진 소리를 냈다. 하여튼 강동현은 자기 페이스가 중요한 사람이다.

“빨리 벗어. 빨리.”

강동현은 황경호를 재촉했다. 황경호는 바지랑 속옷을 내렸다. 그리고 다리를 한쪽씩 뺐다. 강동현은 스탠드 서랍을 열어서 젤을 꺼냈다. 황경호를 훅 밑에다 깔았다. 그리고 다리를 눌러 엉덩이 사이가 보이게 했다.

“다리 잡아.”

황경호가 자기 다리를 잡자 강동현은 그의 엉덩이를 잡고 엄지로 그 사이를 벌렸다. 안 벌어진다. 그대로 젤의 입구를 꽂고 내용물을 쭈욱 짜 넣었다. 딱딱하고 차가운 플라스틱이 몸에 들어오니 황경호가 인상을 쓰며 약간 몸을 움츠렸다. 그리고 강동현은 자기 대물을 그 위에 턱 올렸다. 그리고 허리를 움직이며 비볐다.

“넣어 달라고 해봐.”

“…….”

“야하게, 응?”

황경호는 약간 갈등을 하다가 시트를 꽉 잡고는 작게 말했다.

“넣어… 줘….”

그리고도 그가 약간 뜸을 들이자 그의 얼굴을 힐끗 올려다보았다. 그러니 강동현이 씩 웃으면서 그대로 음부에 기둥을 기댄 채 윗부분을 눌렀다. 그러자 점점 살이 눌리다가 쏙 들어갔다.

“…!!!”

황경호는 허리를 뒤틀어 옆으로 상체를 돌렸다. 두 손으로 베개를 꽉 쥐었다. 허리 부근이 뜨끈하다. 점점 한입씩 들어오자 눈을 뜨고 아래를 보았다. 들어오고 있다. 뜨거워.

“목욕하고 왔어? 피부 엄청 부드럽다.”

강동현이 자신의 허리에 걸쳐진 황경호의 허벅지를 만지며 그렇게 말했다. 기분 좋은 모양이다. 강동현은 그대로 천천히 허리를 뒤로 뺐다. 황경호는 눈을 지그시 감으며 아래를 전부 움찔거렸다. 익숙한 버거움.

“하아… 으… 진짜….”

강동현은 허리를 부르르 떨며 의미 모를 소리를 내더니 그대로 황경호의 골반을 잡고 빠르게 콱콱 박기 시작했다. 황경호는 깜짝 놀라서 눈을 뜨고 그의 손을 잡았다.

“아…! 천천히…! 아앗… 핫. 앗! 아앙. 앙. 흐앗. 아앗! 아아아!!”

찌, 찢어져… 그대로 상체를 옆으로 튼 채 허벅지는 강동현의 허리에 걸쳐져 그에게 꽉 붙잡혔다. 그대로 매트로눔을 최대치로 맞춘 것처럼 박혔다. 온몸이 아래위로 마구 흔들렸다. 음부와 뱃속이 엄청 뜨거워졌다.

“앗…! 천천히 하라고…! 아앙! 그, 그만…! 으으응… 흑. 은혁아… 은혁아! 아… 아아… 아아앙…! 핫…!”

황경호는 버겁고 뜨겁고, 뭔가 자꾸 나올 것 같고 녹을 것 같고 찢어질 것 같고 들어올 것 같았다. 집에 막 들어온 그에게 거칠게 박히고 있는데도 이렇게 느끼는 게 좀 부끄러웠다.

“하아앙… 은혁아… 핫. 기분 좋아… 거기… 거기 너무 좋아… 하읏. 미칠 것 같아. 앞에 만져줘… 가슴도 빨아줘… 히익! 흐앗…! 나 어떡해…! 하아앙…!!”

아니,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 황경호는 허벅지를 잡고 있는 그의 손을 끌어당겨 자신의 앞을 쥐게 했다. 그리고 그가 고개를 숙여 젖꼭지를 물자 허리를 꺾으며 뒤로 넘어갔다.

“좋아? 좋아? 그렇게 좋아? 응?”

“좋아. 좋아. 아앙… 너무 좋아. 갈 것 같아…!”

“오늘 나 기다렸어? 많이? 엄청 좋아하네?”

강동현이 황경호의 얼굴과 귓가에 입술을 눌렀다. 황경호는 완전 뿅 가서는 칠칠치 못한 얼굴로 교성을 내질렀다.

“사랑해. 사랑해. 너무 좋아. 기분 좋아아…!”

“으윽…!! 아윽… 나도… 나도, 경호야…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강동현의 얼굴이 벌게지더니 허리짓에 더 열과 성을 다한다. 더 박히니 황경호는 앓는 소리를 내며 끙끙거렸다.

“니 자지 너무 좋아. 빼지 마. 빼지 마앗… 하앗. 으음. 읍. 으응…!”

황경호는 그의 머리를 끌어당겨 먼저 입을 맞추었다. 입술을 비비고 혀를 넣어 그의 뜨거운 살을 맛보았다. 다리를 더 활짝 벌리고 그의 허리에 두 발바닥이 닿게 했다. 그리고 아래에 힘을 주어 조였다 풀었다 하니 강동현이 황급히 입술을 떼고 엄청 참았다.

“와앗… 으윽…! 자, 잠깐만, 경호야. 잠깐만. 잠깐만!”

“빼지 말라니까!”

“경호님, 잠깐만요!! 타임…!!!”

강동현은 무너질 것 같은 얼굴로 타임을 부르짖었으나 엄청 달아오른 황경호에 의해서 아래에 깔렸다. 그대로 강동현의 위에 올라타서 그의 배에 두 손을 짚고 양쪽으로 엉덩이를 빠르게 비벼서 안을 후볐다.

“경호야! 아윽! 나 나와. 나온다고. 나와! 큭! 싼다니까!! 헉!”

“싸. 하앗. 싸도 돼. 너 싸도 딱딱하니까… 아앙….”

“안에… 큭. 싸는 거 싫어하잖아!”

“싫어해도 맨날 하면서. 핫. 아앗. 시끄러워. 좀 조용히 해. 아앙.”

황경호도 어느새 강동현의 페이스는 아예 무시해버리고 앓는 소리를 내며 그의 위를 탔다. 그를 가득 머금고 양쪽으로 엉덩이를 흔들 때는 어떻게든 참았지만 그대로 꽉 조여서 쪼옥 빨아내니까 결국 백기를 들었다.

“아…!! 으으윽!!! 큭! 씨…X… 헉…! 크으으윽!”

그대로 그의 아랫배를 쿵쿵 치듯 그를 넣었다 뺐다 했다. 뺄 때마다 아주 힘을 줘서 빨아냈다. 돌처럼 딱딱해진 그의 허리가 아래위로 펄떡거렸다. 성난 황소를 타고 로데오라도 하는 것 같았다.

“아윽!! 경호야…! 헉! 아…!!”

이렇게까지 절정을 느끼는 그는 처음 보았다. 그의 복부와 팔에 핏줄이 엄청 올라왔다. 그는 어느새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얼굴이 엄청 야하다. 황경호는 그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사랑하는 남자와 함께 쾌락을 즐기고 있다. 뱃속에 불을 삼킨 것 같다. 비명을 질렀다.

“하아…! 나도…! 나도 할 것 같아! 아앙! 하아앙! 으으으응! 아아아앙!”

황경호는 한 손으로 그의 무릎을 잡아 겨우 균형을 지탱하며 다른 손으로 자신의 것을 쥐었다. 꿀렁거리며 뭐가 마구 나왔다. 숨이 턱턱 막혔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온몸이 경련했다.

“으으앗. 하아앗…! 흑. 아앙… 안 멈춰… 앗… 하아앙….”

그의 배와 가슴에 엄청 쌌다. 황경호는 숨을 끊어 쉬며 그의 가슴 위로 쓰러져서 계속 경련했다.

“은혁아… 은혁아… 아앙… 죽을 것 같아… 하앗. 살려줘.”

강동현은 이미 예전에 녹다운했다. 황경호의 안에다 얼마나 쌌는지 엄청 축축했다. 그 뒤로도 황경호는 간헐적으로 경련을 했다. 강동현의 위에 늘어져 눈물을 줄줄 흘렸다.

누군가 먼저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어느새 서로의 손이 깍지를 낀 채 겹쳐져 있었다. 그리고 곧장 둘 다 기절하듯 잠들었다.

***

늦은 아침이다. 황경호는 서서히 잠에서 깨었다. 깨자마자 알몸인 게 느껴진다. 알몸인 다른 사람과 몸을 맞대고 있는 것도 느껴졌다.

‘…내가 미친놈이다….’

순식간에 새벽에 있었던 일이 머릿속을 휘리릭 스쳐 지나갔다. 황경호는 아침부터 얼굴을 벌겋게 붉히며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일어났다. 새벽까지 촬영을 하고 와서 황경호에게 쪽 빨린(?) 강동현은 아직도 꿈나라에서 헤어나오지를 못하고 있었다. 황경호는 자기 방 욕실로 향했다. 그리고 샤워부스로 들어가 물을 틀었다.

원래 이렇게 밝히는 놈이었나… 내가… 황경호는 어제 있었던 일들이 하나하나 생각이 나며 뒤늦게 창피해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섹스 그 자체보다도 그 순간에 자신이 생각하고 있었던 것들이 부끄럽다. 평소라면 절대 생각 안 할 종류들이라 더 그랬다. 나중에 그가 일어나면 분명히 놀릴 것이다. 그마저도 꽤 익숙한 상황인데도, 황경호는 부끄러웠다.

씻고 나와서는 늦은 아침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하다 보니 어느새 진수성찬이다. 좋아한다는 말을 하고 나서도 여전히 평소에는 솔직하게 그처럼 애정을 표현하기가 힘들었다. 겨우 할 수 있는 거라곤 이런 것 정도….

드라마 안 한다더니 또 대본이 좋다고 드라마 하나에 영화 하나를 같이 한다. 드라마는 다중인격을 앓고 있는 주인공 역을 맡았고 영화는 전에 말했던 사극이었다. 오랜만에 그가 한복을 입을 모습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코드명:울프>로 아시아를 강타했던 그였다. <시크릿블러드>로도 꽤 선전하였고 말이다. 확실히 대본을 보는 눈이 있는지 그는 작품에서 실패를 한 적이 없었다. 강동현 왈, 그렇게 잘 나간 것치고는 돈을 많이 못 벌었다고 한다. 몇 년 전이었으면 1년에 못해도 5백억씩은 통장에 꽂혔을 거라고 한다. 사장님도 엄청 아쉬워하셨다고. 이번 것도 그렇게 대박을 칠 것 같냐고 물어보았으나 그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바쁘니까 또 밥도 거르고 운동한다고 단백질 보충제나 먹고 때우는 걸 보니 정말 안 되겠다. 잠도 안 자고 들어오는 대본을 전부 보려고 하는 것도 황경호가 거진 막았다. 식사도 식사지만 잠 안 자는 게 제일 크다.

황경호는 여전히 쪽팔렸지만 그를 깨워서 아침을 먹여야 해서 겨우 침실로 다시 들어갔다. 목을 가다듬고 그를 흔들었다.

“다시 자도 되니까 밥 먹고 자.”

다시 흔들었다.

“도은혁.”

그러자 강동현이 두 손을 황경호에게 뻗었다. 황경호는 그의 두 손을 잡고 일으켰다. 그는 영 멍한 얼굴로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그는 하품을 크게 하면서 제대로 눈도 뜨지 못하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밥 먹고 다시 같이 자자….”

“너 씻으면.”

황경호는 마치 어제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굴었다. 강동현은 식탁으로 가서 물을 반 컵쯤 마시더니 겨우 눈을 떴다. 그리고 상을 보더니 감탄했다.

“상다리 부러지겠다. 적당히 하라니까. 뭘 이렇게 많이 해. 고생하게. 난 시리얼만 줘도 잘 먹어.”

“일하는데 어떻게 그런 것만 먹여.”

“넌 일 안 하냐. 진짜 파출부 한 명 쓰자니까.”

처음에 강동현은 해주는 사람이 정말 뿌듯하게도 항상 고맙다고 하고 식사를 하더니 이게 점점 심해지자 말리기 시작했다.

“싫어.”

“그럼 아침은 시리얼만 하든가.”

“…알았어. 좀 줄일게.”

하지만 강동현은 보는 사람도 뿌듯할 정도로 아주 잘 먹었기 때문에 식사 준비를 하는 보람이 있었다. 두 그릇 반 정도 먹었다. 그리고 그가 씻고 나오는 동안 황경호는 침실의 시트와 이불을 걷어내고 새로 깔았다. 세탁은 이제 타협을 봐서 세탁소를 이용하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침구는 집에서 세탁을 했다. 이런 걸(?) 다른 사람 손을 타게 할 순 없었다. 그리고 황경호와 강동현은 다시 침대에 누웠다.

“새 이불 완전 좋다….”

강동현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황경호를 온몸으로 끌어안았다.

“두 시간만 더 자고 나가자.”

“어딜?”

“음… 바다 보러 갈까.”

“너 피곤해.”

“괜찮은데. 쇼핑하러 갈까? 봄옷 미리 사고… 장도 좀 보고….”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황경호가 물었다.

“가서 보자.”

그리고 서로 끌어안고 침대를 뒹굴거렸다. 강동현이 황경호를 숨도 못 쉬게 꽉 끌어안으면서 그를 괴롭혔다. 황경호도 그의 머리를 꽉 끌어안아 복수했다. 서로를 간지럽히며 장난을 치다가 강동현이 킥킥 웃었다. 황경호의 옆구리를 슬쩍슬쩍 찔렀다.

“새삼스럽긴 한데… 어제 진짜 죽는 줄 알았다. 너 왜 이렇게 잘하냐? 어? 어디서 배웠어? 나 보통 더 걸리잖아.”

“…니가 못하는 거야.”

황경호는 얼굴이 벌게질 것만 같아서 더욱 평이하게 대답했다. 강동현이 충격을 먹은 얼굴을 하더니 황경호의 옆구리를 막 찔렀다.

“거짓말하지 마. 너 그렇게 느끼면서…! 나랑 하는 거 좋아하잖아. 어제도 그렇게 빼지 말라고….”

“악! 조용히 해!”

황경호는 결국 평정심을 잃고 그렇게 소리쳤다.

바빠도 이렇게 잘 지냈다. 강동현이 입이 닳도록 말했듯, 정말 부부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했다. 강동현도 장장 4개월의 드라마 촬영을 하고 종방영에 이르러니 벌써 5월 말이 되었다. 이번 드라마도 진짜 재미있었다. 무려 6개의 인격을 가진 다중인격을 연기한 강동현이었다. 저번 <시크릿블러드>를 아주 혹평했더니 이번엔 작정을 하고 열심히 연기를 한 것 같다. 전보다도 훨씬 좋아진 것 같다. 게다가 진짜 재밌었다. 황경호는 이번 드라마도 몰래 열심히 봤다. 그를 평소에 못 보게 되니까 더욱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팬 커뮤니티에서 종영 기념 팬미팅 티켓을 구할 수 있었을 때 도저히 유혹을 저버릴 수가 없었다. 모든 주인공들을 눈앞에서 보고 싶었다. 이렇게 점점 덕후로 진화하는 황경호였다. 강동현은 아직도 황경호가 우리 누리 회원이라는 것을(그것도 네임드) 모르고 있기 때문에 비밀로 했다.

이름이 알려진 연예인들은 정말 어떻게 연예인으로 밥 먹고 사는지 알 수 있을 정도로 매력적이다. 황경호는 지금까지 이런 행사에 참여해 본 것은 예전에 강동현이 준 티켓으로 김태형과 같이 간 연예대상 정도밖에 없었다. 황경호는 혹여나 강동현이 멀리서라도 알아볼까 봐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팬미팅에 참여하고 있었다. 좀 답답했지만 그래도 혹시나 모르니까 말이다. 여자들만 잔뜩 있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간혹 남자들도 있는 걸 보니 왠지 모르게 마음이 놓이는 건 왜일까. 그렇게 생각보다 마음 편히 팬미팅을 보고 있는 황경호였다.

맨날 보는 얼굴이더라도 저렇게 있는 걸 보니 더 멋있다… 그렇게 생각하며 그를 보고 있는데 여자 주인공을 맡은 김현아가 마지막 인사에 앞서 입을 열었다.

“<힐링유>를 이렇게 사랑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좋은 분들과 작품 할 수 있어서 너무나 기뻤구요. 무엇보다도 같이 호흡을 맞춘 강동현 씨에게 특히 감사를 드리고 싶어요.”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강동현의 얼굴을 보았다. 기다랗고 풍성한 머리카락이 가슴까지 구불거리는 헤어스타일을 한 그녀는 뽀얗고 작은 얼굴에 예쁘고 사랑스러운 이목구비를 가지고 있었다. 은근한 글래머 몸매까지 훌륭한 미녀 배우였다.

“그렇게 말해주니 영광이네요. 저도 김현아 씨와 연기하는 내내 즐거웠습니다.”

강동현이 웃으며 그렇게 답했다. 그녀는 강동현을 힐끗거리다 안타까운 한숨을 쉬었다.

“4개월 동안 매일매일 보다가 못 볼 걸 생각하니까 정말 섭섭해요… 저 정말… 동현 씨 좋아하거든요….”

팬들 사이에서는 충격에 빠진 비명 비슷한 게 터져 나왔다. 출연진들도 죄다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스스로도 깜짝 놀랐는지 입을 한 번 가렸다가 다시 말했다.

“아니, 그게… 그러니까….”

그러면서 그녀는 강동현을 다시 보았다. 강동현도 깜짝 놀라서 그녀를 보고 있었다. 사실 거기 있는 모두가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어쩔 줄 몰라 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런 거 말하면 안 되는데… 좋아해요. 좋아해요, 동현 오빠. 아, 말하면 안 되는데… 그래도 말하니까 왠지 속은 시원하네요. 좋아해요. 좋아해요.”

그녀는 강동현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안 그래도 예쁘고 사랑스러운 외관이 더욱 빛을 발하는 것 같았다. 코끝과 뺨이 살짝 붉어진 그녀는 정말로 아름다웠다.

“안 받아 주셔도 돼요. 이런 적은 처음이라…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처음 봤을 때부터 너무 멋있어서 반했어요. 같이 연기하면서도 정말… 정말 열심히 연기하고 노력하는 것도 정말 멋졌어요. 배려도 많이 해주시고 이야기도 잘 들어 주시고… 그래서 점점 더 반했어요. 동현 씨 같은 남자 앞으로도 절대 없겠죠. 진짜 멋있어요. 좋아해요.”

진정으로 사랑할 만한 멋진 남자를 찾은 여자는 저렇게 아름다워지는 것일까. 점점 갈수록 더욱 진심을 담은 고백이라 사람들이 말을 잃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무도 거기에 끼어들지를 못했다. 숨이 막힐 정도로 침묵이 흘렀다. MC마저도 사람들의 눈치를 볼 뿐 어떻게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오직 강동현만이 대답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을 뿐이었다. 강동현은 진짜 엄청 놀란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뒷일도 좀 걱정하는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관중을 살짝 살펴보긴 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아마 진짜 진심이냐고 물어보고 싶은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정말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아름다운 여자와 남자였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하고 있어도 오직 둘만이 보일 정도로 근사한 사람들이었다. 보통 사람과는 거의 다른 인종으로 보일 정도니까 말이다. 강동현은 한참을 말을 하지 못하다가 겨우 마이크를 들었다. 그녀가 공개고백을 하였으니 그가 여기서 수습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일단 팬미팅 끝내고 둘이 이야기를 해봐야 할 것 같네요.”

그랬더니 관중석에서 탄성이 터졌다. 다들 긴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제야 MC가 일을 수습하기 시작했다.

“깜짝 놀랐네요. 예전에도 이런 자리에서 남자 주연배우가 여자 주연배우에게 고백을 하고 사귀었던 적이 있었죠. 여자 연예인으로서 그게 쉬운 일이 아닌데, 용기가 대단하네요. 박수 한 번 줍시다.”

그러자 관중들이 박수를 쳤다. 김현아는 자리에 일어나서 관중석을 향해 허리를 숙이며 사과를 하고 강동현과 다른 출연진들에게도 사과를 하며 허리를 숙였다. 그녀의 얼굴은 이제 꽤 상기되어 있었다. MC가 말을 받는 사이 그녀와 강동현은 더이상 서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계속 팬미팅의 끝부분을 이어갔다. 팬들은 웅성거렸다.

“…….”

황경호는 충격을 받은 것 같기는 한데 왜 충격을 받았는지 이해를 못 하고 있었다.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 않은가. 강동현은 연예계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훤칠한 미남이었고 젊은 남자 배우들 중에서는 아주 독보적이었다. 게다가 건장하고 남자다워서 정말 인기가 많았다. 그런 남자랑 저렇게 아름다운 여자가 몇 개월이나 같이 밤낮으로 일하면서 어느 쪽이라도 사랑이 싹트지 않는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아니겠는가. 애초에 그런 연기를 하는데. 사랑을 연기하는 그런 직업인데…. 있을 법한 일인 것이다.

게다가 거기서 바로 거절을 하지 않은 것도 이해할 수 있었다. 단둘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데서 상대를 망신시킬 수도 없는 일이니 말이다.

황경호는 물끄러미 MC의 말에 웃고 있는 강동현을 바라보았다. 그는 프로답게 어색함을 티 내지 않으며 금방 다른 주제의 이야기를 잘 답변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게도 두 남녀 사이가 묘하게 어색한 건 다 보였다. 게다가 그는 반지를 끼고 있지 않았다.

‘나한테는 항상 하라고 해놓고….’

일 때문인 것을 알고 있었다. 강동현이 혼자서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이제 꽤 큰 회사가 된 매니지먼트 회사의 관리를 받고 있는 배우였고 영화나 드라마, 팬미팅 등을 할 때는 당연히 반지를 뺐다. 황경호도 병원에 있을 때는 항상 반지를 빼고 있었다.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도 그런 생각이 났다. 황경호는 자기가 끼고 있는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습관처럼 반지를 돌렸다.

황경호는 끝까지 팬미팅을 보았다. 그리고 사람들이 우르르 나갈 때 같이 휩쓸려서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오니 차가운 공기가 반가웠다. 팬미팅을 한 돔 안에는 난방기와 사람들 때문에 뜨뜻미지근한 공기가 머물러 있었다. 답답했다.

‘물어보고… 아니, 또 뭘 물어봐. 내가 여기 온 지도 몰랐을 텐데. 아, 기사 떴으려나?’

황경호는 폰을 들어 뉴스란으로 들어가 보았다. 벌써 김현아가 강동현에게 고백을 한 것이 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었다. 1등 되는 것도 시간문제겠다. 예전에도 그가 광고를 같이 찍은 모델과 스캔들이 난 적이 있었다. 처음도 아니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바깥에 있는 커피숍에 들어가서 시간을 좀 죽였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바로 지하철을 타기 싫었다. 하지만 돔에 가까운 커피숍 내에도 온통 팬미팅을 왔던 사람들 투성이라 죄다 김현아가 강동현에게 공개고백을 한 것에 대해 떠들고 있었다. 들어온 지 20분도 안 되어서 바로 나왔다.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가고 싶지 않았다. 그냥 택시를 탔다.

“어디로 갈까요?”

“성수동 T 아파트 가주세요….”

황경호는 그렇게 짤막하게 답하고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뭐가 문제인 것일까? 황경호는 생각했다. 강동현은 그를 좋아했다. 좀 제멋대로긴 하지만 그래도 확실히 위해주고 사랑해준다. 황경호도 그를 사랑했다. 스스로도 깜짝 놀랄 정도로 말이다. 근래엔 사이도 참 좋았다. 자주 만날 수가 없으니까 더 애틋해지는 것 같고….

그가 여자들이 줄줄이 따를 정도로 멋진 남자라는 건 처음부터 주지의 사실이었다. 앞으로 단 한 번의 스캔들도 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본 적도 없다. 저번 일이 있었으니 아마도 집에 들어오자마자 바로 설명을 하지 않을까, 라는 기대도 가질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그럼 이 불안은 뭘까? 질투인 것일까? 물론, 질투가 나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그에게 티를 내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황경호가 보지 못하는 동안에 그가 그녀에게 사랑에 빠질 정도로 잘해주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좀 속상하기도 했다. 그리고 역시…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그는 황경호랑 헤어져도 금방 괜찮아질 것이다.

그가 예전 사랑과 그랬듯이 말이다.

“…….”

그리고 아마도 나는… 황경호는 한숨을 쉬며 나쁜 생각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이런 건 이미 아프리카에 갔을 때 다 고민을 끝낸 것이었다. 앞으로 결국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현재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하자고. 감사하게 생각하자고. 좀 더 솔직하게 사랑할 수 있게 되자고.

‘…아직 이야기 중이겠지? 그래. 그렇겠지….’

연락은 아직 없었다. 그럴 만도 했다. 이건 몇십억, 몇백억짜리 비즈니스였다. 일단 생각을 하지 말자. 와서 얘기를 듣고 생각을 해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황경호는 집에 들어와 씻었다. 한 거 없이 피곤했다. 요리를 하기도 귀찮아서 아파트 내 호텔 서비스를 한 번 시켜보았다. 비싼 값을 했다. 그리고는 TV를 틀었다. 채널을 돌리다가 동물들이 잔뜩 나오는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봤다.

종방연 팬미팅 후에는 보통 회식도 한다고 하니 일정은 늦게 끝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강동현에게서는 여태껏 문자 한 통이 없었다. 황경호는 휴대폰을 보는 것도 지쳐서 그냥 방 안에다 던져두고 카우치로 와서 앉아 TV를 계속 보았다.

‘내가 팬미팅 갔을 거라고 생각도 못 할 거고… 모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고….’

하지만 TV를 보다가도 자꾸 방으로 돌아가서 휴대폰을 확인했지만 역시나 연락은 없었다. 밤 12시가 지나갔다. 그리고 결국 또 방으로 돌아가서 휴대폰을 확인했다. 이번에는 메시지가 와있었다. 황경호는 얼른 그 메시지를 열어보았다.

<오늘 좀 늦을 것 같다. 3시까진 어떻게든 들어갈게.>

***

“아… 피곤해….”

강동현은 집 현관문을 열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몸이 천근만근 같았다. 금방까지도 사람들에게 엄청 시달리다가 왔다. 김현아가 고백을 한 것 때문에 같이 회식을 가서도 사람들이 온통 그 얘기밖에 안 했다. 둘 다 자리가 불편해서 따로 이야기를 할 시간이 없었다. 오히려 사람들이 계속 서로를 붙여 놓으려고 해서 더 그랬다. 게다가 회사에서도 어떻게 된 일인지 꼬치꼬치 캐묻고 얘기하고 지인들한테서 연락은 오고… 지금도 겨우 빠져나온 것이었다. 더 있었으면 진짜 김현아랑 벌써 그렇고 그런 사이라고 확정이 날 판이었다. 이제 꽤 연예계에 오래 있었지만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잘하는 것인지 여전히 판별하기가 힘들다. 누구 하나 상처받지 않고 끝나기가 힘든데 작품을 하다 보면 결국 다들 또 다 다시 만나게 될 거고….

그렇게 현관으로 들어가는데 현관 복도의 끝에 거실의 불빛이 비치는 것이 보였다. 그제야 강동현은 아차, 하고 숨을 들이켰다.

‘경호 기사 봤으려나? 봤겠지? 아, 미치겠다. 연락했어야 했는데….’

동시에 피곤할 거라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예전 일을 돌아봤을 때, 아마 엄청 신경 써야 할 것이다. 그때는 실제로 별것 없었는데도 그랬는데 이번은 여자가 공개석상에서 고백까지 한 것이니… 지금 소속사에서는 이미지를 위해서 고백을 받아 주고 몇 개월 사귀는 식으로 구색이라도 맞추는 게 좋을지, 아니면 바로 거절을 하는 게 나을지에 대해서 얘기하는 중이었다. 강동현은 그냥 거절을 하는 게 더 나을 거라고 얘기했지만 예전에 있었던 비슷한 일을 생각해 보면 받아 주지 않을 경우에 여론이 어떻게 될지는 장담하기 힘들긴 했다. 저번에 스캔들이 났을 때는 앞으로 스캔들이 나지 않도록 정말 조심해야겠다고 생각을 했는데, 막상 또 스캔들이 나자 대처에 급급해서 황경호에게 설명을 할 시간을 내지 못했다.

‘그래도 상황을 보면… 내가 뭘 한 건 아니잖아. 그러니까 괜찮겠지?’

강동현은 그런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에는 황경호가 TV를 보고 있었다. 영화를 보고 있었다.

“안 자고 뭐 해?”

강동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영화 소리가 커서 강동현이 들어오는 소리를 못 들은 모양이었다. 그의 목소리가 들리자 화들짝 놀라며 황경호가 뒤로 고개를 돌렸다. 강동현은 조금 놀라서 그에게 다가갔다.

“뭐야? 울어?”

“아니… 영화가 좀 슬픈 거라….”

황경호는 소매로 슥슥 눈을 비벼 닦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TV를 껐다.

“피곤하겠다. 얼른 씻고 자.”

“기사 봤어? 스캔들 때문에 그런 거 아니지? 나 김현아랑 진짜 맹세코 아무것도 없었어. 나도 오늘 깜짝 놀랐다니까.”

“응… 알아. 그것 때문에 너도 힘들었겠다.”

그래서 강동현이 안도의 한숨을 쉬려고 할 찰나, 황경호가 강동현을 잠깐 보더니 갑자기 울컥 눈물을 다시 흘렸다. 그리고는 자기 손에서 반지를 뺐다.

“너 그렇게 반지 안 끼고 다닐 거면 나도 안 끼고 다닐 거야.”

그걸 강동현의 가슴에다 팍 떠안기고는 자기 방으로 향하는 황경호였다. 강동현은 깜짝 놀라서 자기 손을 보았다. 없다. 강동현은 마구 주머니를 뒤져서 자기 반지를 찾아냈다.

“아니…!! 아니, 경호야! 잠깐만…!!”

강동현은 자기 반지를 손에 끼고 황경호의 반지를 쥔 채 황경호를 얼른 따라갔지만 눈앞에서 바로 문이 쾅 닫혔다.

“경호야, 경호야. 황경호. 진짜 미안. 내가 오늘 너무 정신이 없어서… 미리 연락 못 한 것도 미안. 걱정했지? 미안. 경호야, 진짜 미안. 응? 내가 잘못했어.”

강동현은 한참 황경호의 방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그렇게 오래도 아니었다. 황경호가 대답했다.

“그만하고 빨리 자… 피곤하잖아.”

“너 이러고 있는데 어떻게 내가 자. 문 좀 열어봐, 어? 말하고 싶은 거 있으면 전부 말해. 소리치고 화내도 괜찮으니까.”

황경호는 결국 문을 열었다. 강동현이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왼손을 잡고 얼른 반지부터 끼웠다.

“그렇게 반지 빼지 마.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잖아.”

“…….”

황경호는 맞잡은 두 손에 끼워진 반지를 잠깐 내려다보았다.

“내가 오늘은….”

“미안. 아까는 내가 좀….”

둘은 동시에 입을 열었다. 그러자 강동현이 웃었다.

“내가 미안. 응? 미안해. 빨리 연락 안 해서. 걱정시켜서. 미안해. 사랑해, 우리 경호~”

마음이 약간 놓이는지 강동현은 금세 애교를 부려왔다. 그러자 황경호가 오히려 정색을 했다.

“…….”

“…왜? 나 또 뭐 잘못했어?”

껴안고 쪽쪽 빨다가 황경호의 반응이 영 그렇자 강동현이 얼굴을 떼고 그렇게 물어보았다. 황경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다른 여자들 앞에서 헤프게 웃고 다니지 좀 마.”

“…어?”

이런 말 처음 들었다. 강동현은 약간 당황해서 그를 쳐다보았다.

“너 좀 수틀릴 거 같으면 금세 웃고 그러는데, 너 그거 먹히는 거 알아서 그러는 거잖아. 여자들 앞에서 하지 말라고.”

“내가? 내가 언제?”

“항상 그래! 너 인터뷰 하는 거나 예능 나와서 하는 것도 보면! 그러니까 여자들이 자꾸 착각하는 거 아냐!”

황경호가 버럭 화를 냈다. 강동현은 자기 입매를 손으로 만져보았다. 내가 그랬나? 강동현이 애매한 반응을 보이니 황경호는 어쩐지 더 울컥하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눈썹을 만지작거리며 얼굴을 약간 가렸다.

“짜증 나….”

“아, 왜… 어? 왜? 안 할게. 응? 니 말대로 할게. 안 웃으면 되잖아, 안 웃으면.”

우리 경호, 질투 제대로 하네. 예전에는 해도 안 한 척하더니만. 강동현은 좀 기분이 좋아졌다. 문턱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다가 황경호를 밀고 그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와 같이 침대에 앉았다. 그의 옷 안에 슬쩍 손을 넣으면서 몸을 붙여 앉았다.

“하지 마. 아직 화 안 풀렸어.”

황경호는 그의 손을 잡았다. 강동현이 황경호를 끌어안고 그냥 침대에 누웠다.

“오케이. 다 말해, 다. 화나는 거 다 얘기해.”

누워서 황경호를 올려다보는 그의 표정은 초조함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그는 금세 이랬다. 황경호는 어쩐지 부글부글해서 중얼거렸다.

“나도 확 바람피워 버릴까 보다….”

“뭐?! 내가 언제 바람피웠다고 그래!”

강동현이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났다. 황경호는 그를 조금 노려보았다. 그가 돌아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그의 입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황경호였다. 막상 그를 마주하니 열이 막 뻗쳤다.

“니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고 결국 너 잘났다 이거잖아. 니가 잘나서 여자들이 줄줄 꼬이는 거지 넌 잘못한 거 하나 없다 이거잖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지가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을 하니까 나한테도 빨리 연락 안 하는 거겠지.”

황경호는 그렇게 말하고는 그 말의 강한 설득력에 약간 상처를 입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은 또 분노가 되어 강동현을 노려보았다.

“잡은 물고기다 이거지… 니가 먼저 나한테 들이대 놓고 항상 이래! 난 원래 너 같은 거 싫었어!”

“아니… 아니… 미안, 경호야. 그런 게 아니라….”

강동현은 할 말이 없어서 우물쭈물 거리다가 황경호의 눈을 바라보면서 또 강한 인력이 느껴지는 얼굴로 말했다.

“미안… 한 번만 봐주면 안 돼? 응? 앞으로 안 그럴게.”

“애교 부리면 다 되는 줄 알아?!”

황경호는 그의 얼굴을 베개로 확 눌러버리고 그의 품에서 벗어났다.

***

강동현이 학습능력이 없는 것일까, 그냥 두 사람이 안 맞는 것일까. 어느 쪽이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일단 황경호에게 싹싹 빌어서 그의 기분을 풀어줘야 하는 것은 강동현이었다. 일단 강동현은 김현아에게 연락을 했다. 매니저들까지 대동해서 누구에게도 오해의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많은 사람들의 이목이 쏠려 있는 두 사람이었다. 저쪽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현아 씨, 진짜 미안해. 나 사귀는 사람 있거든.”

강동현은 어렵사리 말을 돌리지 않고 바로 직구를 던졌다. 뭘 어떻게 빙빙 돌려야 할지도 알 수가 없었다. 바쁜 마당에 그런 거 생각할 여유도 없었고 말이다. 김현아는 대중들 앞에서 고백을 할 정도로 대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물었다.

“진지하게 만나시는 거예요? 전… 진짜 조금도 기회가 없는 거예요?”

솔직히 어떤 남자가 이런 여자가 좋아한다는데 으쓱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예전 스캔들 당시에도 그건 똑같았다. 강동현이 싱글이었다면 정말로 혹하지 않았겠는가. 강동현은 한숨을 쉬며 왼손을 들어서 상대에게 보여주었다.

“사귀는 정도가 아니라 반 유부남이라고 생각하면 돼.”

“그 반지 설마 했는데….”

촬영이 끝나면 없던 반지가 생기는 걸 그녀도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모르는 체했을 뿐일지도 모르겠다. 김현아가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그래도 미련을 못 버린 얼굴로 강동현을 보고 있었다.

“오래 사귀신 거예요?”

“만난 지는 4년 정도. 제대로 사귄 건 2년. 내가 처음부터 일방적으로 쫓아다녔어.”

“…진짜요?”

“응.”

그러자 김현아는 살짝 눈물이 그렁해졌다.

“저 진짜 오빠 좋아해요.”

“…미안. 진짜 고마워.”

강동현의 얼굴도 조금 붉어졌다. 난처해 하긴 했지만 말이다.

“이렇게 좋아하는 사람 생긴 거 정말 처음인데… 꼭… 괜찮은 남자는 다 임자가 있어.”

김현아는 손등으로 눈을 살짝 훔쳤다. 강동현은 정말 자리에서 빨리 일어나고 싶었다. 저렇게 예쁜 여자가 저런 얼굴로 울면 위로를 해주고 싶고 그런 걸 해주면 상황이 더 질척질척해진다. 강동현이 이런 부분에 있어서 철저하다고 해도 그런 여자들의 매력을 못 느끼는 건 아니기 때문이었다.

“더 좋은 남자 만날 거야.”

강동현은 그렇게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다. 그러자 김현아가 그를 흘겨보았다.

“거짓말하지 마세요.”

“…미안….”

그렇게 가시방석 같은 곳에서 몇십 분을 더 있다가 나왔다. 예전에 좀 푼수 같다 싶을 정도로 강동현에 들이댔던 모델보다도 그녀가 강동현의 취향일지도 모른다. 똑똑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것 같고 자신의 매력을 잘 안다. 게다가 엄청 미녀다. 그런 미녀와의 성적 긴장감이란…. 어떤 남자든 빠져들면 헤어나오기 힘든 것이다. 피하는 게 상책이다. 밖으로 나오니 크게 한숨이 나왔다.

매니저 김석현이 물었다.

“야… 너 안 후회하겠냐? 김현아 진짜 최곤데. 진짜 예쁘고 진짜 성격도 좋고… 니 스타일 아냐? 니 전 여자친구랑도 비슷한 스타일인 거 같고….”

그래서 전 스캔들에서는 아주 설렁설렁에다가 협박 건에만 신경을 바짝 곤두세웠던 강동현이 이번에는 심적으로 꽤 동요를 하는 것일 것이다. 그런 건 원래 외부에도 확연히 보이는 것이다

“후회 안 해. 나 지금 사귀는 애 진짜 올인이야. 내가 평생 책임진다고 했다고.”

강동현은 좀 지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식장 안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세상 모르는 거다.”

“나만 알면 되지, 세상이 알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강동현은 한숨을 쉬며 휴대폰을 보았다.

“안 그래도 걔 지금 화났어. 그때 너무 정신이 없어서 빨리 연락 못 했거든. 혼자 있을 수가 있어야지. 전 스캔들 때도 그렇게 미적거리다가 깨질 뻔했는데….”

그러자 김석현은 안 물어볼 수가 없다는 태도로 그에게 물었다.

“저런 여자들이 나 좋다고 하면 난 그냥 다 버리고 만날 거 같은데….”

“처자식 주렁주렁 있는 양반이 그런 소리를 해?”

“그럼 어떡하냐. 솔직히 내 얘기 아닌데도 이렇게 혹하는데.”

김석현의 말에 강동현은 결국 웃었다. 김석현이 물었다.

“걔 그렇게 예쁘냐? 연예인 아니지?”

“예뻐.”

“사진 없냐.”

“안 보여줘.”

그리고 강동현과 매니저는 소속사 사무실로 돌아가서 옥미현 사장과 이야기를 좀 나누고 강동현은 회사에 대놓은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아까부터 계속 손에서 놓지를 못하던 휴대폰으로 드디어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

강동현이 애교를 부려대는 걸 보면 딱 알겠지만 저건 자기가 어떨 때 매력이 있는지, 상대에게 먹히는지 아주 잘 아는 놈이었다.

강동현 같이 장신에 덩치도 크고 근육질이기까지 하면 한국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를 어렵게 여기기 마련이다. 특히 남자들 같은 경우는 서로의 체구 차에 생각보다 훨씬 민감하다. 자신보다 월등히 체구가 큰 남성이 나타나는 것만으로도 쉽게 ‘맞는 줄’ 알았다고 공포심을 가지는 남자들도 많다.

그가 장신인 것과 체구가 큰 것이야 타고난 것이고 근육질인 것도 자기관리를 잘하다 보니 자연히 따라왔다. 연기를 할 때의 그야 변화무쌍하지만 평소의 그는 꽤나 도회적이고 세련된 느낌까지 가지고 있었다. 이래저래 사람이 어렵게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그가 때에 맞춰 잠깐 웃거나 친절하게 대해주기만 해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가 ‘보기와 다르게’ 친절하고 참 사람이 괜찮다는 인상을 주게 된다.

그는 잘생겼다. 웃는 얼굴과 목소리도 근사하다. 딱 봐도 어려울 것 같은 남자가 근사한 미소를 지으며 ‘아양’을 한 번 떨어주는데 어떤 사람이 혹하지 않겠는가. 그런 건 여자냐 남자냐가 따로 없었다.

그가 그러는 건 무의식이나 다름없었다. 아마 어렸을 때부터 체득을 한 것일 테다. 사진을 보니 어렸을 땐 또 아주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깜찍했던데, 안 그래도 아들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얼마나 귀여워해 줬겠는가. 게다가 어머니 말씀에 따르자면 그때는 애교도 더 잘 부렸다고 하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법을 아는 것이다. 그러니까 천상 연예인이지.

그런 게 크니까 아주 여자들에게도 줄줄 흘리고 다니는 것이다. 강동현이 이런 부분에 확실했더라면 예전 여자친구가 그를 버렸겠는가. 이 새끼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헤프게 하고 다니는 데다가 자기 일 바빠지면 쉽게 자기 애인을 믿고 마음을 놓아버리니까 그런 것 아니겠는가. 강동현이 진짜 바람을 피웠다는 게 아니었다. 그의 이런 사소한 소홀함이 일을 크게 만들었다. 예전 일까지 줄줄이 생각나게 하는 것이다.

황경호도 너른 마음으로 그를 이해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참 원망스러웠다. 그가 황경호의 마음을 이해해주길 바랐다. 또 얕은 수작을 쓰는 게 아니라.

‘그런 게 뭐가 예쁘다고….’

황경호는 강동현의 어머니가 또 한껏 해서 떠넘긴 음식들을 차곡차곡 정리해서 냉장고에 넣고 있는 중이었다. 곰국, 게장, 장조림, 갈치조림, 낙지, 각종 김치, 과일… 없는 게 없었다. 이렇게 해줘 봤자 그가 몰라줄 건 확실했는데도.

“이거 빨리 정리하고 우리 밥 먹으러 가자. 아줌마가 맛있는 거 사줄게.”

강동현의 어머니가 웃는 낯으로 그렇게 권했다. 황경호는 네, 하고 대답했다.

“내가 우리 경호한테는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진짜 애가 집에 있을 때보다 더 잘 먹고 다니는 것 같고… 일하면서 그게 쉬운 게 아닌데.”

강동현의 어머니는 황경호를 데리고 멋진 한정식집으로 왔다. 대문부터가 으리으리했다.

“여기 산적 정말 잘해. 이거 먹자.”

“네.”

이제 황경호도 이런 가게에 좀 익숙해지긴 했나 보다. 가격을 보고 너무 비싸다는 생각보다는 얼마나 맛있을까를 먼저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병원 일은 많이 바쁘니?”

“의사 선생님 두 분 들어오시고 간호사들도 충원되니까 좀 괜찮아졌어요.”

“어디 병원이라고 했지? 혹시 아는 병원이면 인사라도 해 두게.”

“아휴, 아니에요. 아니에요. 어머니가 왜요.”

“어머, 섭섭하게. 내 아들 베프면 내 아들이니 다름없지. 은연 아빠가 아는 사람들이 많아. 그렇게 아는 사람이 있고 없고가 차이가 크다고 했어.”

“아….”

황경호는 약간 놀랐다. 부모마저도 비빌 언덕이 되어주지 못했는데 사실상 생판 남인 그녀가 그런 것까지 걱정을 해준다는 게 내심 어색하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했지만, 어쩐지 마음이 좀 든든한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황경호는 약간 들떠서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어머니 혹시 <닥터스 초이스> 보세요?”

“응? 그거? 자주 보지. 어머, 거기 의사 선생님들 병원 중에 하나야?”

그녀가 놀라서는 그렇게 물었다. 황경호가 웃는 낯으로 대꾸했다.

“이강유 비뇨기과라고… 우리 선생님 진짜 잘생겼죠?”

그러자 어머니의 표정에 당혹감이 서렸다.

“…잠깐만 그 병원… 그 병원 은혁이가 다니는….”

“…….”

아차. 황경호는 그가 가족들에게 발기부전 커밍아웃을 했다는 걸 그제야 떠올렸다. 어머니는 황망한 얼굴로 황경호를 바라보았다. 황경호도 당혹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곧 음식이 세팅되기 시작했다. 처음 전채 요리를 준비해주고 사람이 나가자 어머니가 물었다.

“그 병원에서 처음 만난 거였구나….”

“네….”

처음에 황경호가 병원에서 일한다는 걸 들은 어머니는 황경호가 의사인 줄 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어머니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이 황경호가 산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의사 아들을 둔 집들 중엔 분명 꽤 사는 집 애들도 있을 테니까. 하지만 황경호는 그녀가 그런 식으로 오해하고 있는 걸 바라지 않아 바로 솔직하게 말했다. 그래도 그녀는 그런 부분에 대해 전혀 묻거나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구체적으로 강동현과 만난 경위나 함께 사는 것을 보면 이상한 점이 한두 개가 아니므로… 자기 집에는 안 들킬 자신이 없다고 한 강동현의 말이 갑자기 떠올랐다. 경솔했다.

“그래… 은혁이가 그런 애가 아닌데….”

“네?”

어머니가 갑자기 의미 모를 말을 중얼거리자 황경호가 약간 긴장해서 반문했다. 어머니는 한숨을 푹 쉬셨다.

“그 병원에서 일하는 거면 그… 은혁이가 그거(?)라는 것도 알겠네?”

그것뿐만 아니라 그거(?)랑 그것(?)도… 황경호는 그녀의 눈치를 좀 살피다가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녀는 또 한숨을 쉬었다.

“애가 처음부터 너한테 볼 꼴 못 볼 꼴 다 보여줘 놓으니까 그렇게 허물이 없었던 거구나… 참, 얘가 남의 집 아들한테까지 엄마한테 하는 것처럼 하면 어쩌냐고 혼내도 콧방귀도 안 뀌더니… 아줌마가 미안하다. 내가 애를 좀 잘못 키웠나 봐….”

어머니는 상당히 미안해하셨다. 강동현 본인은 대충대충인데 말이다. 아무리 봐도 이건 어머니나 가족들 탓이라기보단 그가 타고난 값인 거 같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어머니. 그렇게 말씀하시지 마세요. 저도 이제 할 말 다 하는데요.”

“그래…? 그래… 그래도 니가 나보단 나은 것 같아 보이더라.”

“조금….”

어머니가 웃으면서 그렇게 말하자 황경호도 웃으면서 그렇게 답했다.

“그래도 걔가 너무 지나친다 싶으면 아줌마한테 말해. 아줌마가 혼쭐을 낼게. 자기가 경호한테 신세 지는 게 얼만데.”

혼내 주세요, 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자기 엄마 말은 더 귓등으로도 안 듣는 강동현이었다. 황경호가 속으로 한숨을 쉬는데 어머니가 살짝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을 이었다.

“나중에 결혼하면 자기 와이프한테도 그렇게 할까 봐 무섭다. 요즘 그런 거 참는 애들이 어디 있니. 참으라고 할 수도 없고. 금방 이혼당하지….”

“…….”

뭐라고 답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어쩐지 좀 죄스러운 기분이 들면서, 약간 후회가 되기 시작됐다. 앞에 앉아계신 어머니께 큰 죄를 숨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만 해도 그녀는 황경호와 전혀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열심히 예의는 차렸어도 그런 생각은 안 했는데, 친해지고 잘해주시니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너무 오버한 걸까… 만약에 나중에 아시기라도 한다면….’

그렇게 생각하니 근래에 강동현에게 쌩하게 군 것도 좀 후회가 되었다. 적당히 할 걸 그랬나…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황경호는 아파트 단지 내에 있는 고급스러운 커피숍에 앉아 햇볕이 좋은 한강을 바라보며 커피를 한 잔 했다. 날이 이제는 꽤 훈훈하다. 벌써 이번 연도도 5개월 가까이 지나갔다. 시간이 참 빠르다.

‘오늘 언제 들어 오냐고 물어나 볼까….’

언제까지 이렇게 냉전을 하고 있을 수도 없는 거라고 생각하며 물끄러미 휴대폰 화면을 보고 있었다. 그때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진동이 부르르 울렸다. 강동현이었다. 황경호는 당황해서 바로 받지 못하고 화면에 뜬 <지루임포고자변태바람둥이!> 보고 있다가, 결국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경호야.]

강동현이 헛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는 것이 들렸다. 강동현은 곧 말을 이었다.

[나 금방 김현아 만났어. 둘 다 매니저 데리고 만났고… 다 말했어. 나 사귀는 사람 있고 그냥 사귀는 것도 아니고 그냥 유부남이나 다름없다고 했어. 잘 끝났어. 곧 기사도 나올 거야.]

“…….”

[그리고 앞으로 진짜 조심할게. 이런 일 없게….]

그의 목소리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그래서일까. 황경호는 불현듯 물었다.

“만약에… 나랑 같이 안 살았으면 김현아랑 사귀었을 것 같아?”

[…….]

괜히 물어봤다. 황경호는 약간 숨을 멈추었다가 수긍했다. 하긴….

“그래….”

[아니… 그게 아니라….]

강동현이 한 박자 늦게 그렇게 반응했다.

“아니, 변명 안 해도 돼. 당연한 거지… 니가….”

여자 없이 살던 사람도 아니고… 황경호는 소리 내어 말을 잇지는 않았다.

[이런 거 말하면 안 되는데… 좋아해요. 좋아해요, 동현 오빠. 아, 말하면 안 되는데… 그래도 말하니까 왠지 속은 시원하네요. 좋아해요. 좋아해요.]

황경호는 심지어 이때까지 그렇게 솔직하게 고백조차 하지 못했다. 사랑한다는 말조차도 열기에 취한 척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자도 그렇게 솔직하게 마음을 전하는데… 황경호도 그렇게 솔직하게 그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었었다. 그래서 그녀가 강동현에게 그렇게 큰 용기를 내어서, 창피를 당할 것도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을 전하는 걸 볼 때…질투에 앞서서 패배감마저 들었다.

마음도 제대로 전하지 못하면서 필요 이상으로 방어적이라 이런 데에선 또 이렇게 일부러 상처받을 만한 질문만 골라서 하고… 성가시기 짝이 없다. 황경호는 스스로에게 질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은 일찍 들어올 거야?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황경호는 이어지는 침묵을 끊고 어조를 바꾸어 물어보았다.

[…지금 들어가고 있어.]

“알았어. 안 그래도 어머니 오셔서 반찬이랑 잔뜩 주시고 갔어. 그거 먹자.”

[알았어.]

차리다 보니 또 엄청 과하게 하고 말았다. 두 사람만 먹을 건데… 나중에 이거 다 어떻게 치우냐. 버리긴 싫은데. 다 먹어야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접시들의 각도 잘 재어서 진열했다. 강동현이 곧 들어왔다.

“왔어?”

“…뭘 또 이렇게 많이 했어….”

강동현은 좀 놀랐는지 테이블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어머니가 주고 가신 반찬들 하나씩 꺼내다 보니까… 배고프겠다. 앉아.”

그렇게 앉아서 같이 식사를 했다. 좀 가라앉은 분위기를 완전히 떨칠 수는 없었지만… 황경호는 가만히 그가 식사를 하는 것을 보다가 그가 자주 먹는 반찬을 몇 개 알아차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거 더 줄까? 아직 많아.”

두 번을 더 그랬더니만 강동현이 수저를 놓았다.

“지금 뭐하는 거야?”

그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차라리 마음에 안 드는 거 있으면 화내. 그냥 이렇게 괜찮은 척 지나갔다가 나중에 더 마음 상해 하잖아.”

강동현이 그렇게 말하며 황경호를 보았다. 황경호는 얼떨떨하게 반응했다.

“그런 거 아닌데….”

“원래도 너 이렇게까지 하는 거 싫었는데… 너 마음 상한 거 뻔히 아는데 왜 아닌 척하려고 더 종 노릇을 해? 하지 말라니까.”

“…….”

그냥… 그에게 잘해주고 싶었다. 어차피 황경호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이런 거밖에… 솔직하게 말하고 싶어도 종 노릇이라는 말까지 들었는데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다시 잘 지내고 싶을 뿐이다. 뭐라고 말해야 하는 걸까. 조금 허탈했다.

“…….”

“…….”

그가 짧게 한숨을 쉬었다. 황경호는 식탁 밑으로 손을 움찔했다.

‘이런 거 정말 싫다….’

마치 어렸을 때 어머니, 아버지의 말 한마디, 한 마디에 움찔움찔하던 그가 된 것 같다. 뭐가 다른 걸까. 뭔가, 안 좋은 생각만 든다. 비굴하게 굴고 싶었던 것이 아니다. 그냥 화해를 하고 싶었을 뿐이다. 섹스 말고, 정말 그가 기뻐할 만한 것을 해주며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싶었다. 다 잘 안 된다. 다른 사람들은 잘만 하는걸….

“…먼저 일어날게.”

황경호는 더 이상 침묵을 견디고 싶지 않았다. 좀 힘들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동현이 옆을 지나가는 그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그도 일어났다.

“얘기 좀 하자.”

그리고 둘은 거실로 향했다. 카우치에 앉았다. 황경호는 가만히 테이블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강동현이 황경호의 손을 꽉 잡았다.

“나 김현아한테 진짜 첫 마디부터 사귀는 사람 있다고 말했어. 오해 남을 것도 없이 확실히 했고. 나 더 어떻게 해야 해?”

강동현이 물었다. 황경호가 대답했다.

“더 어떻게 안 해도 돼… 충분해.”

“근데 왜 이래?”

그가 추궁했다. 황경호는 얼굴이 좀 빨개졌다. 그리고는 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한참을 망설였다. 솔직하게 말하는 게 아직도 이렇게 힘들다. 그리고 겨우 기어들어가듯이 말했다.

“난… 나도 그냥… 화해하고 싶어서….”

그러자 강동현이 눈을 크게 뜨더니 황경호를 홱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인상을 구겼다.

“아~ 나… 나 진짜 말하는 거… 미안. 미안, 경호야.”

강동현은 부엌을 한 번 보았다가 황경호를 다시 보고는 그를 꽉 끌어안았다. 황경호도 조심스럽게 그의 등을 안았다. 그렇게 오랜만에 서로의 체온을 느꼈다. 몸이 착 맞붙어 포개진다. 조금 안심이 된다. 강동현이 황경호의 등과 허리를 꽉 끌어안고 그의 목덜미에 코를 묻은 채 웅얼거리듯 말했다.

“아까 미안… 바로 대답 못 해서. 나 너밖에 없어. 너 없다고 가정하는 거 자체가 넌센스잖아.”

“아니야… 그럴 수도 있지.”

결국 모든 사람들은 숱한 유혹 속에서 살아간다. 거기에 단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다고 말하는 건 사실 거짓말을 하는 것일 거다. 그저 그때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느냐가 결국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나타내 주는 지표일 테다. 그런 선택들이 그 사람을 증명하는 것이다.

“아니. 아닌 거 같아. 미안, 경호야. 내가 다 잘못했어.”

강동현은 얼굴을 떼고 또 홀랑 한 거 같은 표정으로 황경호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 쪽쪽 입을 맞췄다.

“미안. 미안.”

“아니, 진짜 괜찮아. 솔직히 김현아가 그런 식으로 고백하는데 어떤 남자가 안 혹하겠어… 나였으면 바로 그 자리에서 넙죽 사귀겠다고 했을 것 같아.”

황경호가 깊은 한숨을 쉬면서 그렇게 말했다. 강동현이 마구 황경호의 얼굴에 침을 묻혀 대다가 멈칫했다.

“…….”

“직접 보니까 훨씬 예쁘던데… 성격도 좋은 거 같고 똑똑한 거 같고… 말도 참 예쁘게 하고….”

황경호는 똑똑하고 성격이 상냥한 사람들을 아주 좋아했다. 그냥 본능적으로 좋아하는 것 같았다. 똑똑하고 자상한 이강유는 아주 스트라이크고, 상냥하신 강동현의 엄마 같은 사람들 말이다. 김현아가 약간 그런 분위기도 나긴 했다.

“…나 있어도?”

“응? 뭐가?”

“지금 너한테 김현아가 고백하면 넌 넘어갈 거라고?”

“응…? 어… 어…….”

황경호는 강동현보다도 훨씬 반응이 느렸다. 강동현의 목소리가 착 가라앉았다.

“…이강유는.”

“어? 여기서 선생님이 또 왜….”

“이강유가 너한테 그렇게 고백한다고 생각해봐. 그럼 어쩔거야? 선생님은 안 그래~ 이딴 거 없이.”

“어……?”

“태형이 형은? 신현이는? 너랑 친한 그 덩치 큰 간호사는? 정 간호사는? 우리 아빠는!”

“…….”

태형이 형이나 신현이는 완전 엑스다. 근데 형세? 기연이?? 게다가 얘 아버지??? 황경호가 어안이 벙벙해서 그를 멍청하게 쳐다보았다. 뭐라고 확 안 나온다. 아버님을 엄청 근사하게 생각했던 건 또 어떻게 알았을까? 강동현은 아까 꿀물을 한 사발 한 것 같은 표정은 어디로 가버리고 열이 뻗쳐서는 황경호를 마구 닦달했다.

“너…!! 니가 안 되겠네! 너 쉬운 건 알았지만! 오만 사람한테 다 넘어가려고!”

“뭐?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쉽다’고! 황경호는 확 열이 받아서 같이 언성을 높였다. 강동현은 눈을 부라리며 황경호의 양 뺨을 잡았다. 황경호가 그의 손을 확 쳐냈다.

“그럼 니가 쉽지, 안 쉽냐! 사람들한테 실실 웃어주기나 하고! 나 보고 헤프게 하고 다닌다고 하는데, 넌! 니가 더 심해!”

“너 자꾸 남 일하는 거 가지고 그렇게 말할래? 작작 좀 해!”

“누가 그거 가지고 그러냐! 어?! 너, 너! 사람이 좀만 억지 쓰면 다 들어 주잖아! 너, 이 씨…! 내가 옛날부터 불안했는데! 너 만약에 누가 나처럼 너 홀랑 벗겨 먹으려고 했으면 골백번은 더 벗겨졌을 거면서!”

“…!!”

황경호는 얼굴이 확 빨개져서는 그의 팔을 주먹으로 퍽 쳤다.

“도대체 날 뭘로 보는 거야! 기분 나빠!!”

“내가 더 기분 나빠! 다른 사람한테 홀랑 넘어가겠다는 소리나 당당하게 하고! 너 내 거야! 내 마누라라고!”

“내가 왜 니 거야!!”

“내 거야!”

그렇게 엎치락뒤치락하기까지 했다. 강동현은 엄청 씩씩거리더니 으름장을 놓았다.

“너 바람피우면 진짜…! 진짜……!!”

강동현의 분기가 확 사그라들었다. 그가 잘하는, 사람을 쏙 빨아먹을 것 같은 얼굴로 황경호의 눈을 바라보았다.

“…바람피우지 마. 다른 사람 좋아하지도 마. 사랑한단 말이야.”

황경호는 순간 가슴이 세게 두근했다. 가슴을 살짝 부여잡고 대답했다.

“…너도. 너도 바람피우지 마.”

그리고 덧붙였다.

“사랑해.”

둘은 서로의 눈을 빨려 들어가기라도 할 듯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입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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