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그렇게 하지 못하는 이유 (2)
그래서
잘 지내고 있었다.
예전이었으면 이런 건 상상도 못 했을 것이다. 어느샌가 황경호의 인생에 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들의 순위가 바뀌었다. 예전에는 부모님만큼 큰 영향을 끼치는 사람이 없었다. 왜일까. 부모님 이상으로 가까워질 수 있는 사람도 없었고 그럴 수 있을 거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언제나 부모님의 말씀 하나하나, 한숨 소리 하나에도 마음을 졸였다. 근데 그게 이제는 강동현으로 바뀌었다. 그냥 그 차이인 것 같다.
부모님은 언제나 황경호가 불완전하고 결핍된 존재로 느껴지게 했다. 무언가 잘못한 건 아닌지, 실수한 것에 대해서 끊임없이 자책하고, 그래서 뭐가 잘못되는 것은 아닌지 계속 걱정하게 했다. 사실 그중 황경호가 해결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고 봐도 좋았었는데, 부모의 불안이 그에게 옮겨와 그에게 공포를 심었다. 은연중에 세상과 사람에 대한 불신이 점점 자라났다. 누구도 믿을 수가 없었다. 부모마저도 저런데, 라고 생각하면…. 그래서 스스로의 처신에 더욱 만전을 기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봤을 적의 강동현은 정말 빛났었다. 그가 가진 것, 그의 열정, 그의 노력, 그의 발전, 그의 성과는 너무나 반짝거려서, 보고 있으면 잠시 동안 초라한 자신을 잊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 건 처음이었다.
물론 그것은 어느 정도 매체에 의해 가공된 그의 모습이었다. 그 당시 실제로 본 강동현은 조급함과 이기적임으로 뭉친 개새끼였다. 실망했다. 하지만 그에게 자살 시도를 하는 걸 들키고 뭔가 다 어그러졌다. 그는 남들에게 말하지 못할 병에 걸린 걸 황경호를 이용해서 고치려고 했다. 1대 1의 교환. 강동현도 황경호를 괴롭히고 황경호도 그를 괴롭힐 수 있었는데, 유리한 위치에 있다 하더라도 스스로를 지키는 게 힘든 것은 황경호였다. 벗어나려고 했다. 강동현도 놓아주려고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둘은 계속해서 충돌했다가 멀어지고 충돌했다가 멀어지는 것을 반복했다.
그리고 이제 와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이끌리는 걸 인정해서 같이 살기까지 하고 있었다. 물론 그래도 엄청 싸웠다. 안 맞는 것도 많았다. 아마 맞는 것보다 안 맞는 게 더 많을 것이다. 예전보다는 좀 나아지긴 했지만, 황경호는 여전히 강동현을 잘 믿지 못했다. 그리고 자신이 없어 못 하는 말들도 많았다. 강동현도 여전히 예의가 부족했다. 황경호에 대한 이해(라기보단 노력)도 좀 부족한 것 같았다.
그래도 부모님보단 나았다. 그 사실이 슬플 정도로.
그는 곧잘 황경호를 속여 먹으려고 했고 자꾸 자기가 원하는 대로 황경호를 유도하려고 사탕발림을 한다든지 물질 공세를 한다든지 했지만, 그는 일관적인 사람이었다. 참, 대단할 정도로 하나만 보는 놈이었다. 그래도 지적을 하면 자신이 잘못한 부분을 인정하고 사과를 하기도 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이럴 때 다르고 저럴 때 다르고, 갑자기 뜬금없는 부분에서 감정적으로 화를 내거나 곧잘 너무 속물적으로 굴었다. 황경호를 이해하기는커녕 부모에게 당연히 복종해야 할 존재로 여기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황경호는 그날 이후, 가끔 생각이 나 한숨이 나왔지만 굽히고 들어가 싹싹 빌 생각은 전혀 나지 않아 그냥 차일피일 해결을 미루고 있었다. 그랬더니 뭔가 당연하게도 어머니에게서 연락은 없었다. 마지막에 그렇게 나온 것은 황경호가 잘못한 것일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어머니가 그렇게 한 것이 먼저였다. 하지만 언제나 용서를 빌어야 하는 쪽은 황경호 쪽이었다. 결국엔 이 모든 것은 잘잘못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근본적으로 부모와 자식 간에 문제가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을까. 아버지에게서 뜬금없이 연락이 왔다.
[일은 끝났니?]
“아, 네. 이제 막 병원에서 나왔어요.”
아버지는 딱히 용건이 없으면 연락을 안 하시는 분이라 무슨 일이 있는 것이라 미리 짐작을 했다. 어머니의 일이 아닐까. 아마 집안을 위해서 먼저 사과를 하라는 말씀을 하실지도 모르겠다.
[일은 많이 힘드니?]
“네? 아뇨. 아뇨. 항상 하던 건데요, 뭐.”
[그래….]
아버지는 그렇게 잠시 시간을 가지고는 용건을 꺼냈다.
[저번 주에 너희 엄마랑 싸웠다며.]
“아, 네…….”
황경호는 한숨이 나올 것 같았지만 참았다. 한숨을 쉬었다고 혼낸 어머니가 불현듯 떠오르기도 했다. 어쩐지 반항심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아버지에게도 똑같이 그렇게 하는 것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어 관두었다.
[너희 엄마가 너한테는 많이 깐깐하지…. 나야 그러려니 해서 별생각이 없었는데…. 지금까지 스트레스 많이 받았니?]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까. 네, 라고 대답을 해도 괜찮은 건가? 그렇게 잠깐 황경호가 말을 고를 때 아버지가 불쑥 말을 꺼냈다.
[사실 너 전에 우리한테 아이가 있었다. 그러니까…. 네 누나지.]
“…네?”
[두 살 때 죽었어. 사고로…. 너네 엄마가 잠깐 한눈판 사이에 뭘 삼켜서…. 빨리 병원으로 데리고 갔는데도 결국 늦었거든…. 투병할 새도 없어서 바로…. 다행이라고 하면 다행이라고 해야 되나.]
“…….”
너무 갑작스러운 말에 뭐라고 반응해야 할지도 알 수가 없었다. 황경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아버지의 말을 듣고 있어야만 했다.
[너희 엄마가 진짜 힘들어했어. 자책도 많이 하고…. 그런데 얼마 안 돼서 너 생기니까 너네 엄마가 좀 지레 겁먹고…. 너 태어나고 나서도 좀 과하게 조심하고 또 조심하고….]
“…….”
[엄마 딴에는 널 위한 거였을 거다, 네가 힘들어했던 부분도…. 그러니까 너네 엄마가 좀 그런 게 있어도…. 이제 너도 다 컸으니까 엄마 그런 부분을 좀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네….”
[너도 힘들었을 텐데…. 그래도 엄마한테 전화 한 통만 해줘라.]
“네…. 아버지….”
[그래…. 고맙다. 아빠가 미안하다…. 나중에 또 연락하자.]
“네….”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황경호는 병원이 있는 건물의 1층, 커피숍의 옆에서 전화를 받고 있었다. 솔직히 너무 얼떨떨해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 것같이 느껴졌다. 사람들이 많이 오고 가고 있었다. 이 시간엔 압구정에 더 사람이 많으니까 말이다. 황경호는 천천히 지하철로 발을 옮겼다.
“…….”
집까지는 한 정거장뿐이라 금방 도착했는데도 시간이 평소보다 많이 걸린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 혼자 타고 나니 그제야 뭔가 울컥 솟았다.
아버지가 미안하다고 하셨다. 그리고 그가 지금까지 황경호가 생각하던 것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는 게 놀랍기도 하고, 그래서 어쩐지 더 섭섭하게도 느껴지는 것 같고, 그런데 알아주어서 안도감도 조금 드는 것 같고…. 복잡한 기분이었다. 엘리베이터가 4층까지 올라갈 때만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는데 5층이 되자 갑자기 눈물이 치솟아 오를 것만 같았다.
아버지는 ‘누나’에 대해서 그다지 깊은 감정을 가지지 않는 것처럼만 보였다. 건조했다. 그리고 그런 부분은…. 인식하지도 못할 사이에 타격이 되었다. 충격과도 비슷했다. 그리고 슬펐다…. 아마도 순서가 달라져 황경호가 먼저였더라도 그 정도였을 것이라는 게 명확해서일까…
그리고 어머니……. 죄스러움과 원망이 동시에 젖어 나온다. 처음부터 그라는 존재 자체가 그녀에게 커다란 짐이나 다름이 없었다. 잘못된 시기에, 잘못된 사람에게.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황경호의 탓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 불합리함에 대한 원망이 동시에 들었다.
그리고 마음이 허했다.
허탈하고 허무했다.
황경호는 집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해가 거의 져가는 집안은 어둑했다. 아무도 없었다. 그 현관에 가만히 섰다.
여기서 잠깐씩 느꼈던 행복감도 환상일 뿐이었을까?
결국 끝까지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이 모든 것에서
감정적 충동에 휩싸여 강동현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을 때는 정말 결과를 생각하지 않은 행동이었다. 그 순간, 그의 얼굴을 보고 있는 순간 말을 하고 싶었다. 이해를 받을지, 아니면 거부를 당할지, 혹은 경멸을 당할지…. 그런 것은 생각할 새도 없었다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그리고 그는 생각보다도 훨씬 위로가 되었다. 그가 황경호의 상황에 대해서 완벽하게 이해를 한 거라든가, 아니면 그가 원하는 말을 적시에 해줘서 그렇다기보다는…. 그 자체가 위로가 되었고, 그리고 황경호는 예상도 못 한 부분에서, 아마 미리 생각을 해보았더라도 예측조차 못 할 어떤 곳에서부터 위로가 되었다. 애초부터 그가 가지고 있는 것…. 그의 에너지, 그의 자존감, 그의 삶의 방식…. 그런 게 황경호에게 좋은 예가 되어 주었다.
하지만 확실히…. 이건 이해받지도 못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부터 들었다. 황경호도 아마 자신과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이 있다면 무슨 말을 해주어야 할지 모를 것이다. 그래서 스스로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어머니에게…. 강한 미안함과 동정심이 들었다. 그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어서 기쁘다는 마음과 결국엔 서로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불안…
어떻게 해야 할지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을 정도였다.
황경호는 천천히 현관에서 벗어나서 집으로 들어갔다. 그새 집안은 더 어두워졌다. 카우치에 앉아 해가 지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얼마나 있었을까. 휴대폰이 울렸다.
<경호님, 친구가 차였다고 해서 술 좀 같이 마시자는데 괜찮을까요? 십년지기 친구입니다>
강동현은 현재 금주 중이었다. 담배 피우는 것도 매일 냄새를 맡아서 검사를 할 정도였다. 황경호가 물끄러미 그것을 보고 있으니 메시지가 하나 더 왔다.
<이름은 신주호고 고등학교 동창인데 어렸을 때부터 만나던 애랑 만나고 깨지고 하다가 진짜 헤어진 것 같다고 해서. 이 새끼는 벌써 엄청 마신 것 같고 술 취해서 부르네. 그냥 한두 잔만 하고 하소연만 들어주고 들어갈게>
처음 메시지를 막 봤을 땐 그냥 들어오라고 하고 싶었다. 그런데 그다음 메시지를 보기도 전에 그러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두 번째 메시지를 받으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전 여자친구 얘기 나오겠구나.
아마 그 여자는 황경호처럼 이렇게 성가실 일은 없었을 것이다. 밝아 보였고. 집안 환경도 좋아 보였고…. 그래서 그냥 알겠다고 답장을 보냈다. 강동현 자체도 황경호만 아니면 우울할 일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네.’
스스로가 생각해놓고 그 말의 일리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말하지 말아야겠다. 걔가 뭘 해결해 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같이 우울하게 해…. 앞으로 좀 조심해야겠다. 우울한 티도 좀 내지 말고. 저번 주에 그러고…. 그 뒤로 내가 더 뭐 한 건 없었나? 그래도 왠지 좀 티 났을 거 같다….
“하아….”
마음이 불편하고 불안했다. 집안을 둘러 보았다. 불을 전부 켜고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
“너…. 요즘에 뭐 기분 좋은 일 있었어?”
“어? 아니? 똑같은데?”
“그래?”
이 상황에 기시감이 느껴지는 황경호였다. 누군가도 황경호에게 뜬금없이 저런 말을 물은 적이 있었다. 아마도…. 힘들 때.
강동현이 가만히 황경호를 보면서 천천히 끌어안았다.
“그럼 오늘은 같이 자자.”
뜬금없는 말에 황경호는 살짝 얼굴을 붉히고 말했다.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아니…. 내가 너한테 좀 조르긴 하지만.”
“많이.”
“많이 조르긴 하지만.”
강동현은 바로 말을 바꾸었다.
“안 해도 같이 자고 싶은데….”
강동현은 슬쩍 애교를 부려왔다. 황경호는 그가 안아주는 게 좋았다. 그런 의도가 아니더라도 이럴 때 사람의 피부가 상당히 위로가 된다는 걸 알았다.
“어…. 음…. 그래도 주말에…. 음…. 주말에 같이 자자.”
강동현은 황경호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 가까이서 황경호의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황경호가 얼굴을 붉힌 채로 그렇게 대답했다. 그러자 강동현이 황경호의 침대로 그를 꾸욱 눌러서 눕히고 그 위에 올라탔다.
“왜? 오늘은 그냥 같이 자자는 건데.”
“어…. 음……. 몰라…. 나도 그냥 잠만 같이 잔다고 생각해도 꼭….”
황경호는 얼굴을 붉히며 시선을 피했지만 강동현이 끝까지 따라붙었다.
“입 맞추다 보면 하잖아…. 아, 좀!”
둘은 뭐, 아무리 싸워도 신혼부부다 보니. 강동현이 실실 웃으면서 황경호를 좀 더 짓눌렀더니 황경호가 화를 내는 척 그렇게 그의 어깨를 잡았다.
“그건 내 잘못 아니다. 네가 먼저 하고 싶다고 막 신호 보내잖아. 괜히 이런 데 저런 데 막 만지고.”
“내가 언…!”
“나 이제 네가 하자고 안 하면 손끝 하나도 못 대는 사람이다. 계약서도 그렇게 썼는데, 뭐. 그럼 뭐, 지금까지 싫은데 또 억지로 해준 거?”
황경호는 얼굴을 확 붉히며 입을 벌리다가 다물었다. 강동현이 더 실실 웃으며 들러붙었다.
“내 말 맞지?”
그러면서 강동현이 장난처럼 쪽쪽 소리를 내며 입을 맞추었다. 그러다가 그 간격이 느려지고 눈을 마주치면서 은근하게 입술을 눌리니 어느샌가 깊게 입을 맞추고 있었다. 강동현은 황경호에게 자신의 몸을 꾸욱 눌러 비볐다. 황경호는 그의 머리카락을 만졌다.
“흐응. 내 말 맞지?”
그의 티셔츠 속에 손을 살짝 넣어 그의 단단한 등 근육을 매만지다가 강동현이 실실 웃으며 속삭이자 황경호가 깜짝 놀라서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는 좀 억울해졌다.
“…그러니까 주말에 같이 자자니까.”
“네가 참으면 되지. 어? 왜 그 간단한 생각을 못 하는데?”
“그럼 뽀뽀하지 마.”
“그건 또 다른 얘기지. 뽀뽀가 뭐가 어때서?”
“아, 하지 말라니까.”
뭐랄까. 이런 거 이제 조금은 익숙해졌다. 예전만큼 긴장하지 않았다. 그리고 기분이 좋다. 이런 게 행복인 걸까, 라고 생각하면 가끔 겁이 날 정도로. 그래서 그날은 얌전히 같이 잤다.
아침에는 했지만.
“아앙…. 으응…. 핫…. 아아아아…!”
“윽…. 크윽…. 경호야…. 으으윽…!”
몸이 베베 꼬였다. 너무 기분이 좋아서 이대로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황경호는 강동현과 온몸으로 쩍 달라붙어서 그의 몸을 뱀처럼 휘감아 꼭 끌어안고 있었다. 뜨겁고 황홀하고…. 기뻤다.
“오늘 일 가지 마라, 응…?”
한참을 그렇게 끌어안고 있다가 약간 정신을 차린 강동현이 속삭였다. 황경호는 그의 목소리에 소름이 달려 황홀감에 젖어 있었다.
“오늘 나랑 같이 있자…. 응? 나랑 같이 있어….”
강동현이 졸랐다. 황경호는 살짝 정신을 차렸다.
“또 수 쓴다….”
강동현은 여전히 황경호에게 일을 그만두기를 종용하고 있었다. 황경호가 슬슬 자기를 밀어내려고 하니까 입술이랑 뺨에 부드럽게 입을 계속 맞추었다. 자기를 완전히 밀어낼 때까지 그랬다. 그리고 자기는 황경호의 침대에 누워 눈을 감고 여전히 후희에 푹 빠져 있었다. 황경호가 방에 딸린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나오니 그대로 한쪽 팔로 머리를 괴고 옆으로 누워 황경호를 바라보았다. 그가 움직이는 대로 시선을 옮겼다. 황경호는 속옷을 입고 수건을 어깨에 걸친 채 대충 로션을 바르고 입고 갈 옷을 골랐다.
“저거 입어.”
강동현이 훈수를 두었다.
“응? 이거?”
“어. 너 얼굴 하얘서 그거 잘 어울려.”
“아직 좀 춥지 않을까?”
“거기에 저 자켓 입고 바지는 밑에 청바지. 신발은 저번에 산 거.”
황경호는 강동현이 말한 대로 옷을 입었다. 아직 좀 나른함이 빠지지 않은 황경호였다. 강동현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황경호를 만지려고 하다가 황경호가 질색을 하니 빨리 샤워를 하고 나왔다. 시계를 확인하곤 팬티만 입은 채 부엌으로 갔다.
“밥 먹고 가, 밥.”
강동현이야 휴식기라 노니 요새 외조(?)에 꽤 열을 올리고 있었다. 따끈한 소고기뭇국에 예약을 해둬 갓 지은 밥에다 냉장고에 있는 맛있는 반찬들과 생선까지 한 마리 구워 내놓았다. 혼자였다면 밥 먹고 못 갔을 텐데 누가 차려주니까 먹을 짬이 났다. 병원도 가깝고…. 황경호가 자리에 앉자 강동현도 앉았다.
“오늘은 저녁에 무슨 행사 참여한다고 하지 않았어?”
“응. 한국 홍보대사로 얼굴 빛내러 간다.”
“언제 들어와?”
“밤에…. 11시? 모르겠다. 또 뒤에 회식까지 오라고 하면 새벽에 들어올지도 모르겠는데.”
“알았어.”
확실히 아침밥을 먹고 출근을 하면 속이 든든하다. 평소대로 일을 하고 운동을 하고 오니 10시가 다 되어 갔다. 황경호는 약간 고민을 하다가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
“엄마, 전데요….”
황경호는 입이 바짝바짝 마르는 걸 느꼈다.
“아버지한테서 전화 받았어요.”
[…그래….]
어머니의 목소리는 굉장히 누그러져 있었다. 상냥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어머니가 그렇게 힘드셨을 줄은 몰랐어요. 제 위에 누나가 있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그래…. 말 못 해줘서 엄마도 미안…. 너한테 말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어서…]
“아니에요…. 말씀하셔도 되는 거죠…. 가족인데….”
[괜히 다 지난 일로 너까지 힘들 필요는 없잖니…]
어머니의 말에서 무거움이 느껴졌다. 아버지와는 달랐다. 황경호는 어머니의 아픔이 잡힐 듯해 가슴이 아팠다.
“전…. 전 엄마가…. 엄마가 절 조금만 더 사랑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항상 책을 잡거나 혼내시지만 말고…. 제가 부족하고 마음에 안 들어도…. 자식이니까….”
처음부터 눈물이 글썽하더니 넘쳐났다. 오열을 할 것만 같았다. 어머니는 담담하게 답했다.
[엄마가 부족해서…. 너에게 상처를 줬다면 미안하다….]
그리고 어머니는 말을 덧붙였다.
[그래도 엄마는 최선을 다했어.]
어머니의 말에 황경호는 가슴이 미어졌다. 눈물이 엄청 흘렀다. 최선이라니. 그게 최선이라니….
“……엄마…. 그건 최선이 아니었어요. 그게 어떻게 최선일 수가 있어요?”
황경호는 처음으로 솔직하게 부모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고 있기 때문에 더욱이 그녀의 솔직한 말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최선이라고 하지 마세요…. 그게 어떻게 최선이에요? 엄마는 그냥 엄마가 힘든 걸 저한테 푼 것뿐이잖아요. 저랑 죽은 애랑은 완전 다른 앤데….”
[죽은 애라고 하지 마라. 누나라고 해야지.]
“…!”
황경호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감정보다도 그런 걸 따지는 어머니를 ‘용서할 수가’ 없었다. 분명히 화해를 하려고 전화를 한 것이었는데 감정이 마구 솟구쳤다.
“엄마 같은 분 밑에서만 자라지 않았어도 제가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거예요!”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나니 눈물이 확 쏟아졌다.
처음으로 마포대교에 올라갔던 날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스스로에 대해서 전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왜 이런 건지. 나에게 뭐가 문제가 있는 건지. 그냥 스스로가 싫었다. 왜 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때때로 자기 자신이 너무나 수치스러워서, 그걸 끊어내고 싶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냥 평범한…. 그냥 평범하게 자식을 사랑할 줄 아는 부모 밑에서 컸더라면…. 당연히 인간적인 부족함이 있겠지만 그래도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할 줄 아는 부모 밑에서 컸더라면….
달랐을 것이다.
그렇게 처음으로 ‘만약’을 붙여보니 지금까지 이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스스로가 너무나 가엾고 불쌍해졌다. 처음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이런 생각조차도 죄책감에 함부로 할 수 없었던 자신이, 어린 날의 스스로가 너무나 가여워서 눈물이 나왔다.
“흑…. 으윽…. 흐윽….”
[…네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엄마가 그렇게 뭘 잘못했니? 네가 이러니까 엄마 혼란스러워.]
“엄마는…! 엄마 스스로가 미우니까, 싫으니까! 그걸 저한테 화풀이하신 거잖아요! 제가 뭘 잘못했는데요? 제가 엄마한테 뭘 잘못했길래…!”
[그런 거 아니야, 경호야. 잠깐만 엄마 말 좀 들어 봐. 엄마는 너 다 잘되라고….]
“그건 자기 애가 잘되라고 할 수 있는 게 아니었어요. 매일 매일 혼내기만 하고 모욕하기만 하는 게 어떻게 절 위한 거예요? 저 죽고 싶어서 마포대교까지 올라갔어요!”
[잠깐만…! 경호야, 그게 무슨 말이야!]
황경호는 그러고 전화를 끊었다. 전원을 꺼버렸다. 그리고 너무나 눈물이 나와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그대로 엄청 울었다. 그리고 나니 지쳐서 침대에 엎드려 누워 있었다.
‘…차라리 속이 시원하다….’
마음이 허했는데도 뭔가 가벼웠다. 가슴이 아프긴 한데…. 그리고 배가 고팠다. 감각이 선명해지는 느낌이다. 피곤하고 허기지다. 황경호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부엌으로 느릿하게 걸어갔다.
만약에 예전처럼 원룸에서 먹을 것도 변변하게 없이 살면서 이런 일이 있었더라면 아마 진짜 못 견뎠을지도 모른다. 아니, 아예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설사 깨달았더라도 그때라면 이렇게 저항할 의지조차 없었을 것이다.
‘저항….’
또 눈물이 뚝 떨어졌다. 그렇게 진짜로 눈물에 젖은 밥을 먹었다. 그리고 치우고 씻고 침대 시트를 갈았다. 멍하니 옛날 생각을 하면서 울기도 하고 그러고 있었다. 새벽 한 시가 지나니 현관문이 열리면서 누가 들어왔다.
“응? 안 잤어?”
훤칠하게 정장을 차려입고 있는 강동현이 거실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을 알아채고 그렇게 말을 하며 안으로 들어왔다. 황경호가 카우치에 앉아 있다가 그를 돌아보았다.
“응?! 뭐야? 무슨 일 있었어??”
눈이 벌겋게 부어서 돌아보니까 강동현이 깜짝 놀라서 빨리 카우치로 다가왔다. 황경호는 자기 눈을 만져 보았다. 아…. 쪽팔린다.
“아니…. 별건 아닌데….”
“뭐가 별게 아니야. 봐봐. 야.”
“미안….”
“뭔데? 무슨 일인데?”
“아니…. 진짜 별거 아냐.”
이 나이에 엄마랑 싸워서 울었다고 하기엔 너무 쪽팔린다…. 저번에도 한 번 그랬는데.
“뭐냐고.”
강동현이 약간 화가 나서 황경호의 얼굴을 만지며 살폈다.
“그냥 네 말대로 엄마한테 하고 싶은 말 좀 했어…. 아, 쪽팔리니까 그만 봐.”
“얼음 대자.”
강동현이 옷도 벗지 않고 부엌으로 가서 얼음 주머니에 얼음을 담았다. 얼음 정수기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돌아와서는 황경호의 눈에다 살짝 대었다.
“고마워….”
약해진 게 느껴졌다. 강동현은 약간 한숨을 쉬며 그의 뺨을 쓰다듬었다.
“뭘 했든 잘했어.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럴 때도 있는 거지.”
“응….”
“그리고 부모가 뭐가 어떻든 네 인생 너 마음대로 잘 살 수 있어. 너 마음 먹기 나름이니까.”
“어….”
매일 앞이 뿌옇게 보이지가 않았다.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뭘 해도 되는지, 안 되는지 스스로 판단할 수가 없었다. 아니, 판단을 해도 되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정말로 내 마음대로 되는 걸까?
내 마음대로 해도 되는 걸까?
황경호는 눈을 가려진 채 더듬더듬 강동현의 옷을 만졌다. 그리고 그의 양복 겉옷의 옷깃을 찾아 끌어당겼다.
“하아….”
황경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떨리는 입술로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힘을 주어 그를 끌어당기며 깊게 입술을 눌렀다. 강동현이 약간 놀라서 황경호의 허리를 잡아 멈추려고 했지만 그는 그대로 강동현의 목을 끌어안아 매달렸다. 강동현도 얼음 주머니를 바닥에다 던지고 황경호의 등허리를 끌어안았다. 황경호는 그를 카우치에 눕히고 그의 위에 올라탔다.
누가 그냥 인생을 버리고 보쌈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잘생기고 멋진 오늘의 강동현이었다. 그의 위에 허리를 펴고 앉아 울어서 엉망인 얼굴로 내려다보았다.
“…싫어?”
황경호가 그렇게 물었다. 강동현이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황경호의 티셔츠 속으로 은근히 손을 집어넣었다.
“완전 좋은데.”
안 이러는 앤데…. 강동현은 아랫배가 콕콕 쑤시듯이 당기는 걸 느꼈다. 저런 얼굴도 사실 좋아하는데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오는 것도 처음이다. 황경호는 바지와 속옷을 벗었다.
황경호는 강동현의 넥타이를 끌어당겨 풀고 비싼 셔츠의 단추를 풀어 그의 목덜미에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바지 위로 그의 것을 은근히 매만지며 허리띠를 풀었다. 버클을 열고 지퍼를 내리고 손을 넣어 그의 남성기를 주물렀다. 그리고 황경호는 거실 테이블 밑에 강동현이 놔둔 젤을 집어 들었다.
“읏…. 아으…. 으응….”
황경호는 스스로 안을 젖게 했다. 강동현이 황경호의 티셔츠 속으로 손을 넣어 가슴을 만졌다.
“흐윽…. 아앙…. 아흣…. !”
자극적이었지만, 거부하는 말은 하지 않았다. 강동현은 그런 황경호를 보며 자신의 자지를 만져 더 크게 발기시켰다. 황경호는 곧 강동현의 자지를 잡고 자신의 음부에 맞추었다. 황경호는 얼굴을 빨갛게 붉히며 꾸욱 눌렀다.
“하앗…. 으윽….”
“윽, 너무 급하게 하는 거 아냐?”
강동현이 물었다. 언제나 처음 넣을 때는 고생을 하는 두 사람이니 말이다. 황경호는 신음을 길게 흘리며 몸을 풀려고 하며 말했다.
“하아…. 괜찮아…. 으읏…. 아우으….”
처음엔 겁나서 혼자서 넣지도 못했다. 이제는 힘으로 눌렀다. 쑤욱. 스스로 하면 언제가 타이밍인지 아니까 결국 넣을 수 있었다. 다만 그렇게 해도 너무 생생해서, 그 느낌이 싫을 뿐이었다. 생살 사이로 다른 사람의 살덩이가 들어온다는 게….
“아아으…. 으응…. 하으….”
“으윽…. 하…. 경호야….”
황경호는 엉덩이를 움찔움찔하며 그 버거움을 견디고 있었다. 황경호는 얼굴을 화하게 붉히고는 숨을 내쉬며 한 입 더 쑥 넣었다.
“아아앙….”
황경호는 강동현의 비싼 셔츠를 꽉 잡아 구겼다. 그의 자지를 반쯤 머금고는 천천히 엉덩이를 흔들었다.
“하아…. 읏…. 아아….”
황경호는 두 손으로 강동현의 셔츠를 잡은 채 엉덩이를 돌렸다. 강동현이 안을 제 맘대로 휘저어대는 것은 싫어하지만, 사실 그런 식으로 문지르면 빨리 기분 좋게 느낄 수 있었다.
“크윽…. 하아…. 진짜 잘한다니까.”
강동현이 인상을 왕창 쓰며 견디듯 허리를 떨고는 그렇게 말했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엉덩이와 허벅지를 주무르다가 그의 티셔츠를 벗겼다. 그리고 그의 상체를 끌어당겨 서로의 몸을 맞대었다.
“하앗…. 으응…. 강동현…. 아앙….”
황경호는 슈트를 입은 강동현의 위에 알몸으로 엎드린 채로 그를 쑥쑥 안에 넣었다 뺐다 했다. 쪽쪽 빠는 소리가 났다.
“기분 좋아?”
강동현이 섹시한 목소리로 물었다.
“나쁜 거 다 잊을 만큼?”
“아아응….”
황경호는 벌겋게 튼 얼굴로 엉덩이만 곧잘 흔들며 대답했다.
“기분 좋아…. 기분 좋아…. 네 거…. 진짜 기분 좋아…. 왜…. 하아…. 왜 이런 거야…. 아앙….”
“윽…. 큭…! 아…. 진짜 좋아…. 경호야…. 사랑해….”
“싫어…! 아…! 하아아아앙…!”
황경호는 깜짝 놀라 엉덩이를 쪽 조이며 흘리고 말았다.
“하아아…. 하아으…. 으읏…. 윽…. 흐읏….”
황경호는 경련이 와서 강동현과 배를 맞붙인 채 온몸을 덜덜 떨고 비틀었다. 강동현은 죽겠다는 듯한 한숨을 내쉬며 그의 뺨을 깨물었다.
“너…. 일부러 이러는 거지? 귀여워 죽겠어….”
황경호는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우는 소리를 냈다.
“내가…. 내가 할 때 그 말 하지 말라고 했잖아…. 아으으…. 흑….”
“뭘…?”
힘이 빠진 황경호의 엉덩이 두 짝을 쥐고 강동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젖은 입술을 가볍게 부딪치며 귀엽다는 듯 뽀뽀를 하면서 말이다. 하얀 엉덩이 사이로 핏줄이 잔뜩 선 검붉은 남성기가 퍽퍽 오가는데 입맞춤은 첫 키스처럼 가볍고 부드럽다.
“아흑…. 아으윽…. 흐윽…. 천천히….”
황경호는 그 이후로 완전히 빨개져서는 강동현에게 달라붙어 질질 울었다. 강동현은 그의 얼굴을 마구 핥았다. 살이 달고 맛있다. 강동현이 그와 자신이 하나가 된 부위를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하앙…! 만지지 마…. 아윽…! 넣지…! 아앗…!! 하윽…. 변태…. 변태애….”
긴장하여 음부가 마구 떨렸다. 마치 처음 넣을 때처럼 엄청 버겁다. 황경호는 눈을 감고 야시시한 신음을 흘리며 정신없이 애원했다.
“하윽…! 그만해…. 아앙! 빼줘…. 하앗…. 강동현…. 아앙…. 찢어질 것 같아아…. 흐윽…. 변태…. 변태…. 나쁜 놈…. 아아앙….”
“하하…. 으윽…. 진짜 귀여워 죽겠네….”
또 괴롭힌다. 황경호는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이럴 땐 진짜 원망스럽다. 황경호는 그와 눈을 마주치며 신경질을 냈다.
“그냥…. 그냥 기분 좋게 해도 되잖아…. 흑…. 왜 이렇게 괴롭히는데…!”
그러자 강동현이 살짝 놀라서 표정이 바뀌었다가 미소를 지었다.
“역시 너 화내는 것도 귀여워.”
“…!!”
진짜 귓등으로도 안 듣는다. 황경호는 그가 너무 미워서 주먹으로 그의 어깨를 퍽 때렸다. 강동현이 그대로 더욱 속도를 빨리하여 안을 팠다. 찍찍찍. 퍽퍽퍽! 황경호는 엉덩이를 부르르 떨며 강동현의 목덜미에 얼굴을 박고 늘어졌다.
“흑…. 미워…. 아흑…! 미워. 미워. 미워 죽겠어. 나쁜 놈. 나쁜 놈….”
황경호는 점점 더 헐떡거리다 눈물을 줄줄 흘렸다.
“아앙…. 나 안 돼…. 하앗…. 나 죽어…. 죽어…. 흐앗…. 죽어…. 아아앙…. 흑…. 강동혀언…. 아앗…. 아아앗…. 힉…. 아우…. 흑…. 나쁜 놈…. 아앙…. 제발…. 하으…! 아…! 아아! 살살…! 아우으…! 아아아앙! 하아아아앙! 으으으응…!”
순식간에 멀티 오르가즘이 확 덮쳤다. 엉덩이를 확 빼려고 했는데 강동현이 숨을 끊듯 최대의 속도로 퍽퍽 박았다. 살이 마구 딸려나갔다 들어왔다. 황경호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그의 옷깃을 마구 짓이겼다. 모든 감각이 폭력적일 정도로 민감하다. 몸속에서 움직이는 것 때문에 배가 아팠다. 아픈 살을 후비듯 자극적이다. 황경호는 숨도 쉬지 못하고 경련을 했다. 눈물을 흘리며 겨우 애원했다.
“살려줘….”
그러자 강동현이 그제야 안에 콱 틀어박고 잔뜩 지리기 시작했다.
“으으윽……!!!”
둘은 서로를 꽉 끌어안았다. 단 한 번도 떨어진 적이 없다는 듯이. 하반신부터 하나가 되어 서로를 떼어낼 수가 없었다. 강력하게 접착되어 오로지 하나로 그 쾌감을 같이 견디고 있었다.
영원한 죽음 같은 깊은 쾌락
얼마나 지났을까. 정말 한 번 죽었던 것 같다. 황경호는 순간 정신이 확 들며 숨을 확 들이켰다. 숨이 모자라서 마구 헐떡거렸다.
“흑….”
이럴 줄 알았다. 진짜 얘 때문에 언젠가 제 명에 못 살 줄 알았다. 이런 놈에게 좀 위로를 받을 수 있을까 해서 기댔는데 괴롭힘이나 잔뜩 당했다.
“변태…. 멍청이. 나쁜 놈. 좀 살살 해달라고 내가 몇 번이나 말했는데…. 흑…. 내 말만 무시하고…. 흐윽….”
서러워서 죽을 것 같다. 부모뿐만이 아니라 좋아하는 놈까지 이런다. 팔자가 왜 이렇게 박복한가.
“자기만 좋으면 다야….”
그렇게 말하니 더 서러워서 주먹으로 눈을 벅벅 비볐다. 그리고 하나로 된 몸을 분리하려고 하니 강동현이 허리를 끌어안았다.
“왜 그래….”
“뭘 또 뒷북이야. 꺼져.”
황경호는 그를 밀어내며 그를 쪼오옥 뽑아냈다. 잠깐 그 생생함에 치를 떠는데 강동현이 자세를 반전하여 그를 아래에 눕히고 올라탔다. 그리고 얼굴에 부드럽게 입술을 맞추었다.
“미안…. 응?”
그러면서 부드럽게 눈을 마주쳤다.
“넌 진짜…. 미안하다고만 하면 다지? 어?”
그 눈빛에 잠깐 심장이 멎을 것 같아 더 억울해져서 그렇게 따졌다.
“뭐가…. 응? 뭐가….”
강동현은 마치 어린아이를 어르듯 황경호를 쓰다듬었다. 그리고 꽉 끌어안았다. 황홀해서 온몸에 힘이 쫙 풀렸다.
“그…. 그만해….”
오늘은 진짜 과하다 싶어서 그를 밀어내려고 했는데 진짜 손마디에도 힘이 안 들어갔다. 황경호는 불만을 토로했다.
“이런 거…. 이런 거 싫다고…. 싫다고 하는 건 하지 말라고….”
강동현이 고개를 들었다.
“왜? 이렇게 안아주는 거 좋아하잖아.”
“그런 거랑 상관없어. 내 말 함부로 무시하지 말라고.”
쾌락에 노곤노곤 젖은 얼굴로 그렇게 말하는 황경호를 물끄러미 보다가 강동현이 피식 웃었다.
“까다롭기는.”
“아! 그 말도 하지 마!”
“네, 네.”
*
그 뒤로도 어머니랑 몇 번 더 언쟁을 했다. 어머니를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에 예전처럼 무작정 움츠려 있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예상보다도 훨씬 방어적이었고 항상 큰 소리가 나고 나서야 황경호가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는 걸로 마무리되었다. 물론 먼저 전화를 하는 것도 거의 황경호였다.
“휴….”
짜증이 났다.
“운동이나 하러 가자….”
하지만 그런데도 묘하게 또 잘살고 있었다. 예전에는 나쁜 일이 일어나면 그 횟수와 강도만큼 사람이 점점 마모되는 느낌이었다. 소모되고 나빠지기만 하고 그런 자신에게 몹시 우울감을 느꼈다. 나빠지기만 하고 좋아지지는 않는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 생각하면 너무 막막해서 미래를 살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이 일은 어떤 결론이 난 것도 아니고 갈등이 해소가 된 것도 아닌데도 어쩐지 점점 더 괜찮아지는 것 같다. 더 이상 마음이 개운해지지도 않고 똑같은 말싸움만 하고 있는데도.
‘왜일까….’
토요일 오전에 출근을 하고 동료들이랑 밥을 먹고 짬을 내서 어머니랑 연락을 했다가 또 싸우고, 그리고는 운동을 갔다가 마사지를 받으러 갔다. 그러니 진짜 몸이 가뿐해졌다. 배가 고픈데, 라고 생각하며 밖으로 나오는데 전화가 왔다.
[어디야? 마사지 다 받았어?]
“응. 이제 나왔어.”
[거기 있어. 보인다.]
강동현이 말도 없이 데리러 왔다. 대형 세단 하나가 앞에 서더니 조수석 문을 안에서 열어주었다. 새 차 사더니 아주 잘 끌고 다닌다. 황경호는 주변이 혹여 아는 사람이라도 있을까 싶어 선글라스를 슬그머니 끼고 조수석에 올라탔다.
“시간 안 맞았으면 어쩌려고.”
“내가 알아서 딱 맞춰서 왔지.”
강동현이 손부터 잡아 조물딱거렸다.
“이번엔 어디 가볼까나.”
“응? 집에 안 들르고 바로 가게?”
“챙길 게 뭐가 있어? 그냥 우리 둘이 있으면 되지.”
강동현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운전을 했다.
“부산 갈까? 맛있는 것도 먹고 싶고. 지금 가면 딱히 안 막힐 텐데.”
“운전 괜찮겠어? 안 피곤하겠어?”
“삼식이가 피곤할 게 뭐가 있어요.”
강동현은 그렇게 말하며 고속도로를 탔다.
“그래도….”
“아, 너 일 그만두면 맨날 놀러 다닐 텐데.”
강동현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렇게 말하자 황경호는 이제 어이가 없어서 그를 쳐다보았다.
“네가 아무리 그래도 안 그만둬.”
“쳇….”
그리고 궁시렁거렸다.
“내 거시기 볼 시간도 없는 마당에 다른 남자들 거시기나 잔뜩 보고…. 짜증 나.”
“뭐라는 거야?”
황경호가 황당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부산에 갔다. 아주 맛있는 횟집에서 밥을 먹었다. 젓갈과 다른 반찬들을 따로 사기도 했다.
“아, 차에 흐르면 안 되는데.”
황경호는 몇 겹이나 봉투를 받아 반찬이 담긴 병들을 싸놓고도 그렇게 걱정을 했다. 강동현이 짐을 뒷좌석에 무심히 놓으면 다시 제자리에 차곡차곡 정리를 했다.
“괜찮아. 안 흘러.”
“아, 새 찬데 냄새나면 어떡해. 잠깐만! 야. 야. 손 떼. 내가 할 테니까.”
그리고 광안대교의 야경을 보면서 바닷가를 걸으며 장난을 치다가 차에 들어와서 쭉 드라이브를 했다. 그리고 호텔로 갔다. 호텔은 더블베드가 있는 곳으로 잡아 같이 들어갔다. 시간차 두고 들어가면 더 이상하다고 그냥 같이 들어가잖다. 물론 강동현은 얼굴을 꽁꽁 싸맸고 황경호는 선글라스 정도는 꼈다. 아마 이상해 보였을 것이다.
“오늘 횟집 맛있었어…. 진짜 내가 먹어본 회 중에 제일 맛있었던 것 같아.”
황경호가 씻고 침대에 털썩 엎드려 누워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강동현도 같이 씻고 나와서는 그의 위에 올라탔다.
“마음에 들었어? 다음에 또 와야겠네.”
“응…. 넌 일하러 와서 가본 거야?”
“어. 전에 부산에서 촬영할 때 여기 홍보 담당하는 분들이 가르쳐주더라고.”
“역시 맛집은 현지인들이 잘 아는구나….”
“내일 아침은 여기서 대충 먹고 점심은 밀면 먹을까? 저녁은 갈치구이 맛있는 한정식집.”
“저녁까지 먹고 가게? 나 모레 출근인데….”
“많이 피곤할 거 같아?”
“…아니. 갈치 먹고 싶어.”
황경호는 의외로 먹을 걸로 낚는 게 쉽다. 강동현은 그의 뺨을 빨다가 목덜미에 등에 입을 맞추었다. 허리에 감고 있던 수건을 풀고 양 엉덩이를 주물렀다. 양손에 가득 차는 살덩이가 흡족하다.
“흐응…. 앙….”
황경호는 눈을 지그시 감은 채 상대가 애무하는 것을 느꼈다. 등이 간질간질했다. 기분 좋았다. 강동현이 허리까지 내려와 허리의 오목한 곳을 핥다가 엉덩이 살을 앙 깨물었다.
“아앗…! 아파. 왜 이렇게 세게 깨물어?”
황경호가 움찔해서 허리를 들어 그를 돌아보았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오른쪽 엉덩이에다 빨갛게 멍을 만들어 놓았다. 황경호의 다리를 쭈욱 손으로 쓰다듬고 황경호의 발을 주물렀다. 강동현은 꽤 흥분해서는 물었다.
“핥아줄까…?”
“아응…. 싫어. 입으로 하는 거….”
그러자 강동현이 피식 웃었다. 위로 올라와서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럼 안으로 가는 건 괜찮고?”
황경호는 얼굴을 확 붉히며 그에게서 고개를 뗐다.
“괴롭히지 말라고.”
강동현은 황경호의 엉덩이 한 짝을 제 떡 주무르듯이 주무르다가 그사이를 벌리며 엄지로 그의 음부를 더듬었다.
“그럼 여기 핥아줄까?”
“?”
그랬다가 황경호는 깜짝 놀라서 그의 손을 잡았다.
“미쳤어…!!”
“뭐 어때. 더한 것도 하는데…. 한다?”
“안 된다고, 미친놈아! 잠깐만…! 아……!!”
황경호는 엉덩이를 한 번 물렸다가 그사이에 부드럽고 뜨거운 게 닿자 어깨까지 확 빨개져선 야시시한 얼굴로 깜짝 놀랄 만한 신음을 흘렸다.
“흐앗…. 아앙…. 아으응…. 강동현…. 하앗…. 간지러워…. 아앙…. 아아앙…. 아앗…! 아…. 만지지 마아….”
그대로 강동현이 손을 앞으로 넣어 황경호의 것을 끝부분만 쥔 채 조물조물 주무르자 황경호가 귀가 녹을 만한 목소리로 신음을 흘리며 떨었다.
‘간지러워…. 너무 간지러워….’
황경호는 강동현의 손을 잡아서 끌어당겼다.
“그만…. 그만해…. 간지러워. 아앙…. 하아앙….”
황경호가 못 참겠다는 듯이 신음을 흘렸다. 강동현이 그에게서 손과 입술을 뗐을 때의 황경호는 엉덩이만 세운 채로 분홍빛 음부를 벌름거리며 엎드려 있었다. 앞도 잔뜩 젖어서는 몸을 떨고 있었다.
“좋았어?”
강동현은 젤을 찾아서 그 움찔거리는 입구에다 찔러 가득 집어넣었다. 황경호는 그것만으로도 느끼는지 엉덩이를 잔뜩 움츠렸다. 황경호는 엎드린 채로 고개만 뒤로 돌려 강동현과 눈이 마주쳤다. 울 것 같은 얼굴에 잔뜩 빈틈투성이인 것처럼 취약한 표정으로 말했다.
“빨리….”
“…!”
강동현은 아랫배가 확 수축하면서 흥분했다. 아래를 보니 이미 단단하게 다 섰다. 강동현은 인상을 왕창 찌푸리며 그걸 잡고 천천히 자위를 하듯 만지며 황경호와 눈을 계속 마주쳤다.
‘아직도 자위가 될락 말락하는데 경호가 저러면 바로 선단 말이야…. 젠장…….’
예뻐 죽겠다…. 강동현은 그의 날개뼈를 꽉 깨물어 빨고는 다시 그의 귀에 속삭였다.
“응? 뭘? 다시 말해 봐.”
“빨리…. 빨리 네 거….”
“내 거? 내 거 뭐?”
“넣어줘….”
“뭘? 어디에?”
황경호가 인상을 왕창 구겼다. 순식간에 강동현을 누르고 위에 올라탔다. 화가 난 얼굴로 그에게 말했다.
“내가 괴롭히지 말랬지!”
화낸다. 귀엽다. 강동현이 실실 웃으면서 대꾸했다.
“아니…. 내가 몰라서 그러는데, 어? 그렇게 화를 내면 내가 섭섭하지.”
그러자 더 화난 얼굴이 된 황경호였다. 강동현은 자기 대물을 잡아 그 끝으로 그의 회음부를 간지럽혔다.
“하앗….”
황경호의 표정이 움찔 변하면서 기대감에 얼굴이 야하게 변하는 게 보였다.
예전에는 섹스할 때 많이 느껴도 섹스 자체는 부담스러워했던 황경호였는데 이제는 은근히 좋아하는 것 같다. 강동현은 그 변화가 기뻤다.
“여기? 여기?”
그 주변을 맴돌 듯 문지르자 황경호가 엉덩이를 파르르 떨며 강동현의 팔을 붙잡았다. 문질문질. 그런데도 손목만 움직여 부드러운 살에다 자지를 문질렀다. 황경호가 야시시한 얼굴로 엉덩이를 스스로 당겨 그것을 음부에 닿게 했다. 강동현은 거기에 미끌미끌 자기를 문질렀다. 그러니 더 간지러운지 신음을 흘리며 황경호가 짜증을 냈다.
“이럴 거면 하지 마.”
“알았어. 미안해.”
그리고 분홍빛 음부에 꾸욱 딱딱한 자지를 눌렀다. 황경호는 긴장해서 몸을 떨었다. 강동현이 힘으로 귀두를 쑥 집어넣었다.
“아앙….”
그리고 그대로 둘 다 몸을 움직여 섹스를 하기 시작했다. 깊이 넣어 앞뒤로 유려하고 야하게 춤추듯 움직이기도 하고 아래위로 피스톤질을 하며 살을 비비기도 했다.
“하앗…. 아앙…! 응…! 하아…! 강동현…. 앙….”
강동현이 몸을 일으켜 그대로 서로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서로의 얼굴을 기대고 깊숙하게 넣어 흔들었다.
“아윽…. 큭…. 하아…. 경호야…. 황경호….”
입을 맞추었다. 그렇게 깊게 정을 나누었다. 그리고는 바로 잠들고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더니 해가 중천이었다.
“아…. 씻자…. 그냥 점심만 먹고 올라가자….”
“어….”
둘 다 노곤노곤해서 침대에서 벗어나기가 싫어 침대에서 뒹굴거렸다. 그렇게 한 1시간 뒤쯤 강동현이 약간 부스럭거리더니 황경호에 손을 잡았다. 그리고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차가운 느낌이 났다. 황경호가 눈을 번쩍 떴다.
“잠깐만.”
“아니, 아니아니. 네가 계속 별말이 없길래. 내가 일단….”
강동현은 일단 변명부터 시작했다.
“야…. 너 잠깐만 앉아봐.”
황경호는 심각한 얼굴로 왼손을 보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동현은 얼른 자기 손에도 반지를 끼우고 앉았다.
“내가 돈 좀 허투루 쓰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 이 정도 말했으면 개도 알아듣겠다.”
“아니…. 이건 중요한 건데…. 돈이 문제가 아니라.”
“이거 얼마짜리야?”
“그러지 말고 경호야, 이거 봐봐. 예쁘….”
“야, 진짜 장난하지 말고 똑바로 말해.”
강동현이 슬 애교를 부리려고 하자 황경호가 단박에 차단하며 그렇게 말했다. 강동현이 손가락 하나를 들었다. 이번엔 두 번 물어볼 것도 없이 가격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황경호는 베개로 그를 때렸다.
“넌 진짜 내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지? 어?! 진짜 나한테만 왜 이러는데! 네가 이러니까 내가 빡치는 거 아냐!!”
“아니, 내가 내 마누라한테 주고 싶은 것도, 어? 내 돈 주고 못 사냐? 그럼 내가 돈을 왜 벌어?”
강동현이 베개를 막으며 그렇게 말했다.
“너 자꾸 돈이 어디서 나는 거야! 너 나한테 다 줬다고 하고 어디다 꿍쳐놨어?!”
“아니…. 그래도 남자가 비상금은 있어야….”
“야!! 그게 헛돈이야, 멍청아!”
“알았어. 미안. 잘못했습니다. 앞으로 안 이럴 게. 응? 화 풀어.”
“내가! 네 말을! 어떻게 믿어!!”
황경호는 폭발해서는 그를 마구 때렸다. 다른 어떤 부분보다도 가계에 대한 부분은 민감하단 말이다. 그렇게 흠씬 부부싸움(…)을 하고 나서야 강동현에게서 각 잡은 사과와 반성이 나왔다.
“비상금 다 통장에 넣고 앞으로 이런 짓 상의 없이 하지 마. 알았어?”
“네.”
강동현은 약간 삐친 얼굴이었지만 그렇게 대답했다.
“나중에 이런 일 한 번만 더 있으면 결혼이고 뭐고 그냥 집 나간다. 어?”
“…응….”
강동현이 슬 황경호의 눈치를 보다가 갑자기 뺨에 쪽 입을 맞췄다.
“야. 우리 진짜 결혼한 거 맞는 거다?”
황경호가 인상을 팍 찌푸렸다. 아직도 그 소리냐는 얼굴이다.
“아니…. 네가 저번에 이게 어떻게 진짜 결혼이냐고 해서 오기 받아 가지고…. 진짜 웨딩 밴드는 차고 다녀야겠다 싶어서…. 이거 예쁘지? 응? 아, 그리고 이것도 환불 안 된다….”
그는 황경호의 눈치를 슬 보며 그렇게 말했다. 흥. 꼭 사람이 뒤집어야 정신을 차려요.
“끼고 다녀. 나도 끼고 다닐 테니까.”
“내가 이걸 어떻게 껴…. 수술 들어가는데.”
“아니…. 그럼 빼서 주머니에 넣었다가 다시 끼면 되고. 다른 간호사들도 다 그렇게 하는데.”
“…….”
은백색의 작은 다이아가 안에 박힌 웨딩 밴드였다. 남성용인지 여성용인지 구분은 못 하겠지만 강동현 손에도 얼추 잘 어울리는 것이 남성용은 맞는 것 같았다.
이러면 또 기분이 복잡하다. 기쁠 만도 한데 또 상의 없이 제멋대로 한 거라…
‘꼭 이래요….’
황경호는 강동현을 흘겨보았다. 하지만 어떻게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마음에 꼭 들게 행동을 할 수 있겠는가. 그것도 지금까지 움츠려서 말도 제대로 못 했는데….
‘…그래. 그렇네.’
지금까지 소심하게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를 표현하거나 설득하려는 노력을 접은 채로 언제나 상처받아 힘들어했었다. 기본이니, 뭐니 들먹여도 사람마다 그 기본도 어쩌면 다를지도 모르니까.
“야….”
“응?”
황경호를 뒤에서 껴안고 같이 왼손을 나란히 겹쳐 반지를 보고 있던 강동현이었다. 황경호는 그것을 같이 보면서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앞으로 할 때 사랑한다고 하지 마. 진짜 죽여버린다.”
“어…. 어? 왜?”
“하지 말라면 하지 마.”
“왜?”
“하면 바로 다시 각방 쓸 거야.”
“네….”
꼭 협박을 해야지 먹힌다.
“할 때도 너무 빨리하지 말고 손가락 같이 넣지 말고 가슴 부을 때까지 빨지 말고 얼굴 깨물지 말고 옷 좀 똑바로 벗어놓고 음식 한꺼번에 너무 많이 사지 말고 장 보기 전에 연락부터 하고….”
그리고 황경호는 줄줄 불만이었던 걸 다 말했다. 그러자 강동현이 약간 당황해서는 그의 옆얼굴을 보았다.
“나 기억 못 하겠는데….”
황경호가 그를 확 노려보았다.
“네가…. 네가 내 맘대로 너 고쳐 써도 된다고 했잖아.”
“응? 어…. 그랬지.”
공수표로 날린 말이 엄청 많아서 분명 했을 것이다. 일단 애초부터 말하는 건 다 듣는다고 했으니까 말이다…
“그러니까 한 방에 들어. 짜증 나니까.”
“…네…. 뭐라고? 적어 놓을게.”
뭔가 오늘 되게 강하게 나온다. 강동현은 휴대폰에다 얌전히 황경호가 하는 말을 받아 적었다.
*
황경호는 병원에서 하는 일이 많은 편이었다. 섬세한 성격에다가 사서 일을 하는 편이라 더 하기도 했다. 어제오늘 병원으로 온 메일을 정리하다가 무언가를 발견했다.
<한국 의사•간호사협회, 제 17차 지구 나눔 봉사활동 참가인원 모집>
아프리카 어느 나라의 환아를 도와주는 봉사활동을 위한 간호사들을 모집하고 있었다. 기간은 100일 동안이다. 그걸 꼼꼼히 읽고는 그냥 넘어갔지만 하루 종일 생각이 났다. 그리고 다음 날 퇴근을 할 때 원장인 이강유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저…. 제가 전에 일을 쉬기도 했고…. 이런 말씀 드리기가 진짜 죄송한데요….”
“응? 무슨 일 있어?”
이강유는 퍽 걱정스러운 얼굴로 황경호를 보았다.
“제가 병원에 온 메일을 보다가 봉사활동 신청을 받는 게 있었는데요…. 간호사들 모집하는 거…. 제가 원래 그쪽에 관심이 있었거든요. 안 그래도 병원 바쁠 때라 죄송한데……. 안 되겠죠….”
“응? 뭔데 그래? 보자.”
이강유는 황경호가 프린트해 놓은 종이를 한 번 보았다.
“7, 8, 9월 가는 거야?”
“네. 내일이면 마감인데…. 힘들겠죠?”
이강유는 황경호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다가 말했다.
“갔다 와. 너 없으면 힘들기야 하겠지만…. 이런 것도 좋은 기회니까.”
“그래도….”
“괜찮아. 이런 거 협회에서 병원 도와주고 홍보해주는 것도 있고 이 기회에 새로 온 간호사들 일도 좀 해보고…. 네가 뭘 너무 많이 하잖아.”
“그래도 3개월이면 너무 길어서….”
“괜찮아.”
나중에는 오히려 이강유가 좋은 기회라고 가라고 설득을 하는 것 같았다. 황경호는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진짜 선생님이…….’
황경호는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저…. 선생님.”
“응?”
“그…. 유태범 환자님이랑은 무슨 사이세요?”
황경호는 이강유를 올려다보았다. 이강유는 고개를 갸웃했다.
“유태범 환자님이야…. 뭐, 나쁜 일로 많이 엮어서 좀 아는 사이긴 한데…. 별 사이랄 게 있나. 갑자기 왜?”
“…금요일마다 유태범 환자님한테 콘돔은 왜 쓰시는 거예요?”
황경호가 물었다. 이강유는 별거 아니라는 듯이 답했다.
“아. 그거? 유태범 환자님이 너무 조루증이 심해서 그거 안 씌워 놓으면 치료도 못 할 판이라 해놓은 건데? 그 환자 때문에 내가 가운 갈아입고 씻던 거만 생각하면….”
“…….”
…저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도 되는 건가, 싶어서 유심히 이강유의 얼굴을 보고 있으니 이강유가 황경호의 의심을 알아차렸다.
“뭐야? 너도 나랑 걔랑 뭐 있는 걸로 생각하는 거야? 차지현 씨처럼?”
“…아뇨…. 그래도 원체 특이하신 분이니까…. 혹시나….”
“나 지금 여자친구랑 완전 좋아. 저번에 차지현 씨 깽판 칠 때 못 봤어?”
“네…. 그때도 좀 잘못 안 건가 싶었는데…. 그래도 혹시….”
“참나. 별걱정을 다 하네. 어쨌든 얼마 안 남았으니까 준비 잘해서 갔다 와. 예방주사 미리미리 맞고.”
이강유는 피식 웃으면서 황경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기분 나쁘지 않았다…. 솔직히 기뻤다.
“응? 너 여자친구 생겼다더니만 커플링이야?”
이강유가 황경호의 손에 있는 반지를 보고 그렇게 말했다. 옷을 갈아입으면서 다시 꼈더니만 알아본 것이다. 황경호는 아차 싶었다. 괜히 손을 가렸다.
“아…. 네…. 그게….”
커플링이 아니라 무려 웨딩링이다…. 황경호는 역시 아직도 반지를 끼고 다니는 게 어색해 다른 손으로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나도 지금 여자친구랑 결혼 준비 중이라…. 이거 비싼 거 아냐?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아…. 아니에요. 요즘 다들 비슷비슷하니까.”
황경호는 그러면서 손을 가렸다. 얼굴이 화끈해졌다. 이강유가 웃었다.
“네가 나보다 먼저 결혼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아, 결혼 준비하는 거 진짜 어렵다, 어려워…. 뭐가 그렇게 중간에 많은지.”
“…그래요?”
“반지도 서너 개 생각해야 하고 혼수에 결혼식장, 웨딩드레스…. 집이야 지금 내 집에서 살자고 했는데 우리 집에선 더 큰 집 해야 하지 않겠냐고 하고…. 하연이도 골치 아파 죽겠나 봐.”
이강유가 그렇게 어려움을 토로했다. 황경호야 강동현이 다 준비한 데다 몸만 들어갔기 때문에 별 어려움이 없었는데 실제 결혼을 올리는 커플들은 정말 힘든 모양이었다.
“어쨌든 준비 잘해서 잘 갔다 와. 다른 간호사들한테는 내가 내일 말할 테니까.”
“네…. 감사합니다.”
얼떨결에 진짜 가는 게 되어버린 것 같다. 황경호는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이렇게 큰일을 이렇게 즉흥적으로 결정하는 건 처음이었다. 이렇게 큰일을 결정한 것도 처음이다.
‘진짜 가도 되는 거야?’
집에서 신청서를 작성해서 보내고도 얼떨떨해서 멍하게 있었다.
‘가방은…. 집에 있는 거 큰 거 하나면 되겠지? 아, 후기 같은 거 찾아서 뭐 들고 가야 하는지 확인해 봐야지. 예방접종도….’
그렇게 생각이 진행될수록 해야 할 게 많아져서 종이에다가 해야 할 것을 적어 놓고 하나씩 체크하기 시작했다.
‘오케이….’
황경호는 이 기분 좋은 설렘에 가만히 후기에 올라오는 사진들을 보며 카우치에 엎드려 있었다. 그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며 강동현이 돌아왔다.
“경호야~~”
강동현은 거실로 얼른 와서는 황경호를 찾았다. 황경호는 강동현이 덮치기 전에 무심하게 말했다.
“씻고 와.”
노트북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곤 그렇게 말했다. 강동현은 휙휙 옷을 벗고(“야!” “나중에 치울게.”) 샤워를 얼른 하고 돌아와서는 황경호의 등 위에 올라탔다.
“오랜만에 촬영 얼른 하고 왔다.”
“광고?”
“응.”
강동현은 황경호의 목덜미에 아직 물기가 어린 자신의 피부를 비볐다. 금방 씻고 와서 상쾌한 향기가 났다. 강동현은 당연하다는 듯이 황경호의 티셔츠 안에 손을 넣어 가슴을 만졌다.
“으응…! 야….”
황경호는 그를 흘겨보았다. 강동현은 그의 입술을 훔쳤다.
“으음…. 응…. 하. 읍…. 으응….”
입술을 쪽쪽 맞추다가 혀를 넣었다. 미끌미끌하고 달달한 타액. 까슬한 고양이 혀 같은 그의 혀를 쿡쿡 찌르며 장난을 치면 정말 기분이 좋아졌다. 그의 뺨을 잡고 안을 핥아대었다. 황경호가 자세가 불편한지 강동현을 살짝 밀어내며 바로 누웠다.
“혀 내밀어 보세요.”
강동현이 장난스럽게 속삭였다. 황경호가 입을 벌리고 살짝 혀를 내밀자 끝부터 안까지 삭삭 핥았다. 그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한 손으로 그의 몰랑몰랑한 젖꼭지를 주무르고 문질렀더니 아랫배에 그의 것이 발기되어 닿는 게 느껴졌다.
“하으읏…. 아앗. 아앙….”
아, 주무르는 보람이 난다. 강동현은 실실 웃으면서 제 것이라고 아주 양껏 황경호를 주물러댔다. 강동현은 눈을 감고 참고 있는 황경호의 뺨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내 것도 만져. 응? 좋아하잖아….”
“하아…. 읏….”
황경호가 강동현의 명품 속옷 위로 그의 것에 손을 대었다. 살짝 손끝으로 만졌다가 손으로 가득 움켜쥐었다. 예전에 점점 섹스를 하기 시작했을 때는 황경호가 관계 자체를 너무나 부담스러워해서 그가 자신과 하는 것에 익숙해지기만이라도 바랐다.
여전히 좀 버거워는 하는 것 같은데, 이제는 그도 자신과의 섹스를 좋아하는 것 같아서 정말 기뻤다. 몸을 합쳐 정과 마음을 나누는 것은 정말 끝내주는 일이었다. 아무나와는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누구랑도 이럴 수 없을 것이다.
가끔 싸우기도 하고 가끔 성가시다 싶을 때도 있고 미안할 때도 있지만 진짜 이렇게 사는 게 부부다 싶기도 해서 강동현은 애초부터 많은 것을 확실하게 하고 피안으로 넘겼다. 일일이 따지지 않는 성격이기도 하고, 사실 뭐가 어떻든 그냥 좋아서.
‘아…. 진짜 예뻐 죽겠다니까.’
강동현은 싱글벙글 웃으며 황경호의 뺨을 깨물어 우물거렸다. 컨디션도 좋은 데다가 세상 이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경호야. 우리 경호. 아, 진짜….”
강동현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쪽쪽 거리기만 했다. 그의 살에 코를 비비고 꽉 끌어안아 몸을 붙였다.
“그냥 다 먹어버리고 싶어…. 하아…. 응? 내가 다 먹어도 돼?”
“아…! 아프다니까! 깨물지 말라고.”
“좀 어때서….”
그의 가슴을 물고 쪽쪽 빨았다. 달달하고 부드럽다. 그의 피부에서 달콤한 냄새가 자꾸 났다. 젖꼭지 살도 엄청 여리고 부드러워서 계속 건드리고 싶었다. 다른 쪽은 손으로 움켜쥐고 만졌다.
“하앗…! 아!”
황경호가 강동현의 머리를 꽉 잡고 인상을 확 찌푸렸다.
“아아응…. 아파. 아파…! 아앗…! 야…. 잠깐만…. 아…!”
젖꼭지가 아팠다. 요즘은 너무 민감해서 뭐든지 만지면 아프다. 근데 그게 기분이 좋다고 쉽게 흥분하고 만다. 몸이 비비 꼬였다.
“아앙….”
황경호가 저도 모르게 하반신을 그의 자지에다가 꾸욱 눌렀다. 강동현은 웃으면서 그의 바지를 벗겼다. 젤을 잔뜩 집어넣고 핑거링을 하기 시작했다.
“아아…! 흣. 아…. 손가락….”
자극적이다. 젖꼭지를 물린 채로 음부까지 질척질척하게 자극당하니 딱 죽을 것 같았다. 미끌미끌한 젤의 도움을 받아 강동현의 길쭉한 손가락이 자유롭게 이곳저곳 건드리고 누르고 찔렀다. 부드러운 빛깔의 성기에서 결국 녹진녹진하게 체액이 젖어 나왔다.
“아아아앙….”
황경호가 바들바들 떨며 오르가즘을 느끼고 있었다. 저절로 다리가 벌어져 야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강동현은 침을 꿀꺽 삼키고 손가락을 빼고 그의 음부에 핏줄이 불끈불끈 선 자지를 갖다 대었다.
“나도….”
얼굴이 꽤 상기되어 흥분한 강동현이 그대로 쿡 들이밀어 자신을 상대에게 박아넣었다. 버거운 느낌 그대로 황경호의 엉덩이가 눌리고 찔리며 움츠러들었다.
“아아앗…!”
황경호가 비명 같은 탄성을 지르며 강동현의 등을 확 할퀴었다. 강동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신음을 흘렸다.
“으윽….”
황경호가 꿈틀꿈틀 경련하며 강동현의 팔을 꽉 잡았다.
“못됐어…. 하아읏…. 잠깐만…. 기다리지…. 아아….”
강동현의 남성기가 그대로 꾸덕꾸덕 밀고 들어오자 황경호가 버거움에 허리를 들며 카우치를 꽉 잡고 겨우 버텼다. 골반과 관련된 뼈들이 억지로 벌어지는 것만 같다. 황경호가 불평했다.
“축소…. 수술이라도 받아…. 너무 커….”
“그런 거 받는 남자도 있냐….”
“아아우…. 아아앙….”
“익숙해지면 괜찮잖아…. 좀만 참아.”
“아…. 아…. 더 넣지 마…. 흐읏…. 아….”
그대로 다시 허리를 쭉 빼니 황경호가 온몸을 파다닥 떨며 조였다. 그리고 다시 꽈악 박으니 신음을 흘리며 엉덩이를 움찔거렸다. 죽인다.
“흐응…. 너 이러면 나 또 막 괴롭히고 싶어지는데….”
강동현이 황경호의 얼굴을 살살 깨물며 허리를 흔들어 황경호의 엉덩이를 하반신으로 찰싹찰싹 쳤다. 엉덩이를 든 채로 강동현의 무게를 허리로 받아내고 있는 황경호는 헐떡거리면서 말했다.
“벌써 괴롭히고 있잖아…!”
“이게 뭐가 괴롭히는 거야. 부부가 사랑을 나누는 거지.”
“으응…!”
강동현은 힘들어하는 그의 얼굴에 입술을 꾹꾹 누르다가 키스를 했다. 찌걱찌걱. 찍찍찍. 찹찹. 피스톤질을 하다가 은근히 안은 문지르고 휘젓기도 하고 무게를 더 실어 실실 웃으며 변태같이 허리를 놀렸다.
“으으응…! 으읏…. 하아…. 읍…. 아앙….”
“좋지? 응? 하아…. 좋아해. 경호야…. 내 거…. 내 거야…. 하아….”
“아앗…. 거기…. 거기…. 아앙…. 싫어…. 아파…. 아파….”
“…어? 아프다고?”
강동현이 허리짓을 멈추었다. 황경호가 헐떡거리면서 강동현의 아래에서 꿈틀거렸다. 강동현은 아닐 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그래도 가끔 그가 아프다고 하면 다른 것보다 걱정이 되었다. 젖꼭지나 다른 데는 아프다고 해도 못 들은 척할 때도 가끔 있지만, 그래도 여긴 민감한 곳이니까 말이다.
황경호는 눈을 감은 채 자신의 배를 손으로 감쌌다. 강동현이 그의 뺨을 감싸 쥐고 겨우 눈을 마주쳤다.
“그만할까?”
황경호는 얼굴이 벌겋게 튼 채로 눈물을 주륵 흘리며 말했다.
“너무…. 너무 뜨거워서 아파…. 하아….”
“…….”
강동현은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표정이 약간 진지해져서는 그에게 얼굴을 들이밀어 가까이 얼굴을 마주했다.
“그거 기분 좋다는 거지?”
상대는 들은 것인지 만 것인지 힘들어하며 눈을 다시 감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강동현은 이유도 없이 마음이 끓어올라 그의 허벅지를 꽉 잡아 누르며 강하게 그를 침범했다.
“아…! 잠깐만…! 아흑…!!”
“큭…. 황경호…!”
그리고 카우치가 덜컹덜컹 자리를 한참 잃고 나서야 둘은 가득 겹쳐져 멈추었다. 찐득찐득. 서로의 체액을 섞고 빨아들이고. 둘은 그렇게 하나로 합쳐져 있었다.
정신이 살짝 들 때쯤 강동현은 황경호가 좋아서 미칠 것 같았다.
“사…. 좋아해…. 아…. 진짜 좋아해. 경호야…. 경호야….”
소중하고 또 너무나 사랑스러운 마음이 넘쳐 강동현은 그의 얼굴에 깃털 같은 입맞춤을 계속했다.
꿈만 같다. 사랑으로 이렇게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마음이 터질 것처럼 부풀었다. 이대로 하나가 되어 죽는다면 세상 여한이 없을 것 같았다. 떨어져서 살 수가 없었다. 영원히 이렇게 있고 싶다.
싸우기도 하고 화해를 하고 그렇게 서로를 알아가고 사이가 깊어지고…. 최근 몇 달간 그런 과정을 같이 해나가며 진짜 부부들처럼 연이 깊어져 가는 걸 느꼈다. 정말로 서로만의 것이 되어갔다. 그게 너무나 좋았다.
강동현은 숨이 막힐 정도로 상대를 끌어안고 있었다.
자신에게 휘둘리며 끌려오는 것도 좋아했다. 자신만 어떻게 하면 그가 정말로 자기 것이 될 것만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 그가 자신을 휘두르는 것도 좋았다. 귀여웠다.
그리고 점점 그가 자신에게 마음을 여는 게 보여서 정말 뿌듯했다.
‘아…. 진짜 그냥 같이 있자니까…. 일 그만두고…. 아니…. 잠깐이라도….’
벌써부터 떨어지는 게 싫어서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었다. 그리고 겨우 팔을 풀고 황경호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물었다.
“괜찮아?”
그리고 카우치에서 떨어질 뻔한 노트북을 잡았다. 그러자 화면이 다시 켜졌다. 강동현은 그 화면을 잠깐 봤다가 황경호의 얼굴을 보았는데 금방 뭐 이상한 걸 본 것 같아서 고개를 들어 다시 보았다.
<한국 의사•간호사협회, 제 17차 지구 나눔 봉사활동 참가 신청서>
거기엔 황경호의 인적사항이 꼼꼼하게 들어가 있었다.
“…야.”
강동현은 손을 뻗어 화면을 스크롤 하며 진지한 얼굴로 읽어 보았다. 황경호도 슬 정신이 드는지 강동현의 가슴을 밀어내려고 했다.
“무거워.”
“야…. 이거 뭐야? 어? 너 어디 가?”
강동현이 깜짝 놀라서는 그렇게 물었다. 또 집에 오자마자 황경호를 덮친 강동현이었다. 황경호는 그 전까지 자기가 뭘 하고 있었는지 까먹어서 그게 무슨 말이냐는 표정을 지었다.
“이거…! 이거…!!”
강동현은 뭔가, 하여튼 이유를 생각해볼 새도 없이 너무 충격이라 제대로 말도 하지 못했다. 황경호는 인상을 찌푸린 채 일단 그의 허리를 밀어내려고 했다.
“아읏…. 알았으니까 일단 빼….”
“아! 진짜 내 말 좀 들어! 이거 뭐냐고!”
강동현은 노트북을 들고 황경호의 얼굴 앞에 들이밀었다. 황경호는 노곤한 얼굴로 시선을 돌려 그걸 보았다.
“아….”
맞다…. 얘한테 말도 안 하고…. 황경호는 그제야 큰 문제를 하나 알아차렸다.
“아니…. 잠깐만 갔다 온다고.”
“야! 이게 뭐가 잠깐이야! 100일인데!”
강동현은 뭔가 대단히 흥분해서는 그렇게 말했다. 황경호는 그를 밀어내면서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강동현은 꿈쩍도 안 했다.
“너 내가 같이 있고 싶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일 그만 안 두는 것까지야 내가 이해할 수 있는데…! 이렇게 멀리…!!”
“야…. 잠깐만. 잠깐만 내 말 좀 듣고….”
“너 절대 못 가! 알았어?! 절대 안 돼!!”
“…….”
황경호는 인상을 확 찌푸렸다.
“…내가 간다는데 네가 어떻게 할 건데?”
“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냐? 너 어떻게 이런 걸 나한테 말 한마디 안 하고…. 이거 벌써 보낸 거야? 취소할 수 있는 거지? 어?”
강동현이 마구 노트북을 뒤져 보려고 하자 황경호는 그것도 불쾌해서 그에게서 노트북을 뺏으려고 했지만 돌려주지 않았다. 황경호는 그가 가끔 이런 식으로 기본적인 선들을 마구 짓밟는 게 너무 싫었다.
“야…. 일단 줘. 놔라.”
“이거 뭐 보내면 취소되는 거야? 어?”
“놓으라고.”
“야, 네 메일 로그아웃 됐다. 빨리 다시 로그인해봐.”
황경호는 진짜 짜증이 나서 노트북을 두 손으로 잡고 그를 발로 걷어찼다. 겨우 노트북도 다시 빼앗고 그의 짜증 나는 대물도 빼냈다. 단박에 빼냈더니 화끈하고 거기가 아팠다.
“오버 좀 하지 마. 3개월 금방 가. 나 이런 거 한번 해보고 싶었다고.”
강동현은 카우치에서 떨어질 뻔했다가 겨우 균형을 잡았다. 더 열 받은 모양이었다.
“나 지금 장난하는 거 아니다. 너 한 달에 몇 번씩 봉사활동 하러 가잖아. 한국에서 해, 한국에서. 한국에도 불쌍한 애들 많잖아.”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미리 말 못 한 건 미안한데, 나도 급하게 결정한 거라 그래. 근데 왜 이렇게 덮어놓고 반대해? 내가 하고 싶은 거 물심양면으로 서포트 해준다며?”
“그게 그게 아니잖아. 우리 같이 살기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반지 끼고 다닌 지도 얼마 안 됐는데 좀 같이 있으면 안 돼? 안 그래도 너 병원 다닌다고 같이 많이 못 있는데.”
“평생 간다는 것도 아니고 3개월이잖아, 3개월. 진짜 금방 가.”
“3개월보다 더 길어. 100일이잖아. 너 무슨 성자 소리 듣고 싶어? 착한 사람이라는 소리 듣고 싶어서 죽은 귀신이라도 붙었어? 너야말로 오버야. 뭔 봉사활동을 하러 아프리카까지 가…!”
강동현이 버럭버럭 화를 냈다.
“나 가을에 학교 마저 다녀야 해서 따라가지도 못하는데!”
“아, 따라오길 뭘 따라와. 너 같은 애 오면 방해나 돼.”
황경호가 질색을 했다. 강동현은 더 분노했다.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우리는?! 나는!!”
이렇게까지 화를 낼 줄은 몰랐다. 황경호는 옷을 입으면서 한숨을 쉬었다.
“…너한테 먼저 말 못 한 건 진짜 미안…. 근데…. 그래도 나 진짜 가고 싶어….”
불가항력이 있지 않은 경우에야…. 황경호는 단 한 번도 사회가 놓아둔 길 외의 미래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빨리 돈을 벌고 제 몫을 하고…. 충동적으로 무언가를 정해본 적도 별로 없었다. 새로운 것을 경험해보고 싶다고 바란 적도 별로 없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 모든 것들이 자신에겐 사치스러운 것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그래도 안 돼. 절대 안 돼.”
강동현도 고집을 부렸다. 출국은 7월 셋째 주 일요일이었다. 10월 중순에 돌아온다. 황경호는 7월 셋째 주 토요일까지 일을 하기로 했다. 강동현과 한 일주일 싸우다 보니 벌써 7월이라 준비할 기간이 촉박했다. 황경호가 마지막 신청자였다. 일을 하는 와중에 예방접종도 맞으러 다니고 이것저것 서류도 떼고 짐도 슬슬 챙겼다. 병원에서도 황경호가 하던 일들을 분배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죄송한 마음에 한턱, 두 턱 쏘고 하다 보니 그런데도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김태형과 이신현에게도 얘기를 하고 고아원 선생님들께도 알리고 부모님께도(“아버지 아프다고 할 때도 못 쉰다고 하던 애가 남의 나라 애들 불쌍한 건 아니?”) 말씀을 드렸다.
병원 식구들에게도 잔뜩 폐를 끼치고 김태형이 아니라면 딱히 응원을 해주는 주변 사람도 없다고 봐야 했다. 가장 가깝다는 놈은 아주 결사반대를 하고 있었다.
“야!! 도은혁!!!”
황경호는 강동현이 또 캐리어를 뒤집어놓은 걸 보고 분노했다. 강동현은 아주 치사하게 나왔다. 서류를 숨기거나 집에서 관련된 일을 아예 못 하게 방해공작을 했고 집요할 정도로 아프리카나 가는 나라의 안 좋은 얘기들을 했다. 납치가 된다느니 병에 걸린다느니…
예전에는 누가 반대를 하기도 전에 지레 겁먹어서 모든 걸 포기했을 것이다. 지금도 사실 제일 불안한 것은 황경호였지만, 누구 하나 제대로 응원해주는 이 없는 이 일을 차근차근 진행시킬 수 있는 스스로에게 스스로도 놀라고 있는 참이었다.
할 수 있구나
이 정도도 할 수 있는 거였어
이번이 정말로 황경호에게 좋은 기회인 것은 비단 아프리카에 있는 아픈 아이들을 도와줄 수 있어서만이 아니었다. 스스로에게 자그마한 기회라도 줄 수 있는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한 첫 번째 시도. 무수히 많은 시도들을 위한 첫 번째 시도였다.
요즘은 눈에 띄게 자기 자신이 부모님의 영향에서 벗어난 것을 느끼고 있었다. 엄마나 아빠가 무심하게 지나가다 하는 한마디에 상처받고 움츠러들어 아무것도 못 하는 정도는 아니라고 이제는 생각했다. 그래서 그런지 뭔가 훌훌 털고 모든 것에서 벗어나는 이 경험이 너무나 기대되고 좋았다.
물론 생각보다 좋지 않을 수도 있고 별것이 아닐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좋았다. 그래도 좋을 것 같았다.
하여튼 강동현은 처음에는 불같이 화를 내다가 나중에는 구구절절 설득을 했고 나중에는 치사하게 방해를 하는 식으로 나왔다. 황경호도 그에게 화도 내보고 사과도 하고 설득도 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어 보였다. 나중에는 진짜 좀 마음이 상했지만….
서로 화가 나서 각방을 쓰고 있었다. 이제 정말 출국까지 며칠 남지 않았다. 황경호는 마음이 불편해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한밤중이 넘은 새벽의 언저리, 자기 방에서 나와 강동현의 방으로 향했다. 살금 문을 열고 들어가 침대 위로 올라갔다.
“자?”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고 얼굴이 어렴풋이 보였다. 강동현이 눈을 뜨자 눈이 마주쳤다.
“…….”
“…….”
뭐랄까. 순간적으로 그런 이끌림이 있었다. 그래서 둘은 자연스럽게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시선을 교환하고 다시 키스했다. 강동현은 황경호를 끌어안으며 한숨을 쉬었다.
“네 생각하고 있었어.”
“무슨 생각?”
“밉다고.”
황경호는 그의 어깨에 얼굴을 기대고 조용히 말했다.
“그냥 좋게 생각해줘…. 나 진짜 가보고 싶어.”
“네가 하고 싶은 거 하는 건 좋은데….”
강동현은 그렇게 말은 했지만 싫은 티가 팍팍 났다. 그는 약간 끙하고 말을 고르다가 황경호를 숨이 막힐 정도로 꽉 끌어안았다.
“화난다고. 나만 싫은 거야? 떨어지는 거? 넌 왜 이렇게 괜찮은데? 난 너랑 한날한시도 안 떨어져 있고 싶은데.”
황경호의 얼굴이 확 빨개졌다.
“말은 잘해요….”
“진짜야.”
강동현이 눈을 마주치며 그렇게 말했다. 이견이 없다는 얼굴이었다. 황경호는 우물거렸다.
“아니…. 그러니까…. 내가….”
말할까…. 황경호는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몇 번이고 고민을 했다.
“…너한테 미리 말 안 한 건 진짜 미안…. 일하러 갔다 온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너도 몇 주씩 해외 나갈 때도 있었잖아.”
용기가 없었다. 황경호가 그렇게 말하자 강동현이 인상을 쓰며 대꾸했다.
“그거랑 이거랑 같아? 그리고 난 그렇게 멀리도 안 갔는데. 100일이잖아, 100일.”
“…….”
이제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은 드는지 투덜투덜대면서도 다시 붙어 있으려고 했다. 어쨌든 황경호가 공항에서 떠날 때까지도 표정이 안 좋아서는 끝까지 툴툴거렸다.
“아, 100일이 뭐냐고, 100일이. 같이 산 지 이제 반년밖에 안 됐는데.”
공항 주차장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무래도 얼굴이 팔린 놈이라. 이제는 뭔가 싸울 것도 아니라서 황경호가 결국 웃으면서 말했다.
“3개월 뒤에 보면 되잖아. 뭘 평생 못 보는 것처럼.”
강동현은 인상을 확 찌푸렸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가 마스크를 내리고 훅 입을 맞췄다. 황경호가 깜짝 놀라서 주변을 돌아보았다.
“너 들키면 어쩌려고….”
“아무도 신경 안 써.”
강동현은 여전히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어쨌든…. 몸조심해서 잘 갔다 와.”
주변에 눈이 많아서 좀 그런데…. 황경호는 다시 주변의 눈치를 보다가 강동현의 고개를 숙이게 하여 그의 귀에 속삭였다.
“일단 팬티 많이 두고 간다.”
강동현이 인상을 팍 찌푸리며 그의 얼굴을 보았다. 진심이냐는 얼굴이었다. 황경호는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또 전립선염 걸리면 어떡해.”
“됐으니까 빨리 오기나 해.”
강동현이 한숨을 쉬면서 그렇게 말했다.
“날짜가 정해져 있는데 어떻게 나만 빨리 와.”
“어쨌든.”
강동현은 진짜 영 보내기가 싫은지 거기서 또 포옹을 했다. 그리고는 아슬아슬한 시간까지 억지로 억지로 모이는 장소까지 데려다주었다. 황경호는 게이트로 들어가기 전에 얼굴을 꽁꽁 감싸고 있는 강동현에게 짐을 들고 있지 않은 왼손을 살짝 흔들었다. 강동현도 왼손을 흔들었다. 두 손 다 반지가 반짝였다. 황경호는 그걸 깨닫고 게이트로 들어가서 왼손에 껴있는 반지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곤란하다는 듯이 얼굴을 살짝 붉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