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부 2권 - 30화 (30/47)

3. Lovesick (2)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강동현은 조금 뒤 정신을 차리고 머리를 쓸어올리며 몸을 일으켰다. 휴대폰이 어디에 있는지 찾으러 고개를 돌리며 황경호의 몸에서 나왔다. 황경호는 신음을 흘리며 하반신을 경련했다. 배는 온통 자기 체액과 애액의 범벅에 얼굴은 눈물과 잇자국투성이고 음부엔 상대의 정액이 가득하다.

“아, 형. 응. 준비 다 했어. 어. 내려갈게.”

강동현이 전화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황경호는 꼼짝도 못 하고 여전히 쾌감의 잔향에 정신을 못 차리고 카우치 위에 널브러져 있었다. 강동현은 휴대폰을 어깨와 귀 사이에 끼운 채 통화를 하면서 티슈로 자기 커다란 남성기를 닦아낸 뒤 쓰레기통에 버리고 옷매무시를 정리했다. 그리고 드레스룸으로 가 캐리어를 끌고 나왔다. 황경호는 가위라도 눌린 듯 꼼짝도 할 수 없었지만 겨우 몸을 일으켜 어정쩡하게 앉으며 가슴 위까지 올라간 티셔츠를 끌어 내렸다. 온몸이 끈적거렸다. 강동현은 현관 복도 쪽에 캐리어를 두고 황경호에게 곧장 다가왔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티도 안 나게 멀쩡하고 훤칠하다. 영 섹시하고 나른한 분위기가 나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는 여전히 전화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강동현이 황경호의 턱을 붙잡고 입을 확 맞추었다. 전화기에서 목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었다. 그는 전화기의 마이크를 대충 막고는 말했다.

“새벽 1시쯤엔 들어올 거니까 기다리고 있어.”

그는 그렇게 말하고 바쁜지 얼른 밖으로 나갔다. 황경호는 여전히 힘들어서 헐떡거리다가 입술을 손등으로 닦으면서 중얼거렸다.

“뭐라는 거야 저 미친놈이…. 기다리긴 내가 왜….”

기다리고 싶은 게 아니라 진짜 잠이 안 와서 설치다가 도저히 집에 있을 수가 없어서 그냥 지갑만 챙겨 들고 밖으로 나왔다. 휴대폰은 무음으로 돌렸다.

“내일 출근 아니야?”

“응…. 맞는데….”

황경호는 갈 데도 없어서 김태형의 가게로 와서 죽쳤다. 집에 돌아갈 수가 없었다. 잠도 오지 않았다.

‘왜?’

모르겠다….

그와 섹스를 한두 번 해본 것도 아니고 이제 익숙해질 만도 했다. 그가 밤에 와서 섹스를 하더라도 그냥 집에서 잠을 자는 게 내일 출근하는 데 훨씬 좋은 것도 자명했다. 그런데도 역시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 그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왜? 모르겠다.

모르겠다. 그래서 더 미치겠다. 심장이 이유도 없이 빠르게 뛰고 있었다. 긴장이 되었다. 불안한 것도 같고 초조한 것도 같고…. 모르겠다. 김태형의 집에 가서 좀 잤다가 출근을 했다. 출근을 하고 점심이나 되어서야 휴대폰을 확인했다. 밤새도록 메시지와 전화가 와있었다.

<어디야?>

<진짜 장난하지 말고 어디야? 나 집이야.>

<야…. 진짜 너 이러기야? 오랜만에 봤는데? 빨리 전화 받아.>

<진짜. 제발. 어? 전화 좀 받아.>

<너 나중에 보자.>

화도 내고 애원도 하고 다시 화를 냈다. 황경호는 이유도 없이 긴장해서 모든 메시지를 확인해보고는 그냥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 아니, 그랬다가 다시 꺼내서 확인했다. 가슴이 또 두근거린다. 긴장되고 불안하고 초조하고 또…. 뭔지 알 수가 없었다.

퇴근할 시간이 되니 집에 가기가 싫었다. 이제 강동현이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그랬다. 지갑에 들어있는 그의 카드도 싫었다. 손도 대기 싫었다. 어쩔 수 없이 집에 들어가고 나니 넓고 예뻐서 항상 좋았던 집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얼른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내 것도 아닌데….’

너무 익숙해졌다. 너무 안일하게 살았다. 화가 난다고 그의 카드나 막 쓰고…. 누차 스스로에게 일러 왔는데도 말이다. 황경호는 이런 데 익숙해지면 안 되었다.

왜냐고?

이런 건 그에게 너무 과분한 것들이었다.

태어나서 이렇게 좋은 것들은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었다. 그가 노력해서 얻은 것도 아니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그렇게 확실한 것이 아니었다. 스스로조차도 믿을 수가 없는데 다른 사람을 어떻게 믿는단 말인가. 그건 굳이 강동현이라서가 아니라, 황경호라서가 아니라도. 원래 그런 것이었다.

그래. 어차피 여기에 있는 것도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언제나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하고 괜히 그의 눈치나 보게 되었다. 황경호는 원래 혼자서도 잘 살았었다. 물론 우울증에 걸리기도 하고 인생의 갈피를 못 잡았던 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았다. 괜찮았다. 아마 예전보다 더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뭐가 좋은 것인지 싫은 것인지, 그래도 조금은 알게 된 것 같으니까.

‘그래. 나가자. 이건 아닌 거 같다. 나가자.’

전에 강동현의 스캔들이 떴을 때는 언젠가 다 끝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되새긴 것뿐이지 집을 나가야겠다든가 하는 생각을 본격적으로 하진 않았었다. 강동현과 입씨름을 하는 것이 힘들어 나가겠다고 말을 한 적은 있었지만 즉흥적인 감정이었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생각 이전에 이미 마음을 먹었다.

마음을 먹으니 행동은 빨랐다. 같이 살기까지는 그렇게 힘들었는데 나온다고 마음을 먹으니 순식간이었다. 사실 챙겨 나올 것도 별로 없었다. 카드고 열쇠고 전부 두고 나왔다. 황경호는 보증금이나 월세를 따질 새도 없이 그냥 방을 구해서 들어갔다. 작고 볼품이 없더라도 자기 집이라고 생각하니 안도감에 한동안 병원 말고는 집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다. 안전하게 느껴지고 마음이 놓였다. 그거 고작 몇 달이라고…. 그간 저도 모르게 항상 불안해하고 있었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강동현한테는 연락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분명히 그가 알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돌아오기로 한 시간이 점점 다가오자 또 잠을 설치고 불안해했다. 이럴 거면 나오지를 말든가. 하지만 그래도 자기 집이 있는 것이 훨씬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자 같은 것은 대충 답장을 하면서 대꾸를 했는데 결국 디데이가 오자 불같이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황경호는 그가 한국에 왔고 자신이 집을 나왔다는 걸 알아차렸다는 것을 곧바로 눈치챘다. 그때부터는 답장도 할 수가 없었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도은혁 환자님. 출장은 잘 갔다 오셨어요?”

황경호는 다음 날 병원에서 누군가가 그렇게 환자를 응대하는 것을 듣고 슬그머니 내부 계단을 통해 아래층으로 내려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화장실로 들어가서 숨었다. 그리고 초조하게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면서 그가 돌아갈 타이밍을 가늠했다.

‘30분이면 되겠지?’

그렇게 1분 1초를 견디듯 기다렸다. 그러다가 중간에 누군가가 화장실 안으로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 황경호는 순간 긴장했지만, 강동현일 리가 없었….

“황경호.”

황경호가 들어있는 칸의 문을 두드리며 누군가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황경호는 순간 머리카락이 쭈뼛 서서 숨을 들이켰다. 칸에 들어있는 게 황경호라는 것을 확신한 강동현은 버럭 화를 냈다.

“왜 갑자기 집은 나가고 지랄이야! 전화는 왜 안 받아?!”

이미 황경호와의 숨바꼭질에는 이골이 난 강동현이었다. 금방 찾았다. 그가 일을 두고 어디 멀리 갈 수 있는 성정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황경호는 그가 열 수 있을 리가 없는데도 문고리를 꽉 잡고 대답했다.

“내, 내 집도 아니고…. 불편해서 나온 거야.”

“당장 다시 들어와.”

“시, 싫어.”

“나랑 지금 장난해?”

그의 목소리가 무서웠다.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는데도 황경호는 후회가 되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하고, 아니, 그냥 모르겠다. 심장이 뛰었다. 불안이 최고조에 달한다. 황경호는 목소리를 가다듬고 겨우 말했다.

“장난하는 거 아냐. 진짜 불편해서 그랬어. 화내지 마…. 전화 못 한 건…. 미안.”

“…일단 나와. 얼굴 보고 얘기해.”

“…….”

“또 왜 이러는데…. 어? 얘기를 해야 알 거 아냐.”

강동현이 언성을 낮추고 한숨을 쉬었다. 황경호는 그의 한숨 소리를 듣자 금방의 혼란이 사라지고 뜬금없이 역시 나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한숨 소리가 항상 듣기 싫었다. 들을 때마다 왜인지, 스스로가 한심하다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미안….”

황경호는 부끄러워서 온몸이 화끈해졌다. 뭔가 창피했다. 스스로가 창피했다. 화를 내도 좋았다. 욕을 하고 질려서 빨리 떠나간다면 더 좋을 것 같았다. 이해할 수 있었다. 황경호 같아도 상대가 이런 식으로 군다면 정말 질리게 느껴질 것이다.

“미안….”

하지만 당장은 스스로도 깜짝 놀랄 정도로 몸이 떨렸다. 진짜 바들바들 떨렸다. 그가 무서웠다. 그는 화를 낼 것이다. 황경호는 스스로가 왜 이렇게 겁에 질려있는지도, 아니 겁에 질려있다는 사실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단 나와. 너 나 몰라? 미안하다는 몇 마디로 뭐가 다 될 것 같아?”

“…….”

“말해. 뭔데? 뭐 때문에 이러는데? 말을 해야지 알 거 아냐. 이렇게 무작정 나가면 나보고 어쩌라고?”

“…….”

“…너 나올 때까지 여기서 기다린다.”

황경호는 병원에서 슬슬 메시지가 오기 시작했는데도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몸이 안 좋다고 조퇴를 하겠다고 답장을 해야만 했다. 미안하다.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강동현은 자기가 하겠다는 건 다 하는 놈이라…. 진짜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두 시간이 넘게 그대로 문 한 짝을 두고 대치하고 있었다.

결국 강동현이 크게 한숨을 쉬더니 출구로 걸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화장실의 문이 열리고 닫히는 소리가 들리자 황경호는 잠깐 기다리다가 문을 슬그머니 열고 나왔다. 다리가 저렸다. 그리고 문 앞에 서 있는 선글라스를 쓴 남자를 보고 딱 굳어버렸다. 강동현은 황경호 쪽으로 다가왔다. 황경호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굳어서는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그가 황경호의 손을 잡았다.

“바보 아냐.”

“…….”

할 말이 없었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손을 잡은 채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갔다. 다른 사람들이 보면 어쩌냐고 손을 빼려고 해도 지는 얼굴을 가렸다 이건지 아랑곳하지 않았다. 황경호는 얼굴이 벌게져서 그를 따라가야 했다. 외투도 입고 오지 않아 금방 추워졌다. 중간에 그가 옷을 벗어서 걸쳐 주었다. 강동현은 황경호를 차에다 태웠다.

“…….”

“…….”

강동현은 히터를 최대한으로 틀고 차를 출발시켰다. 그가 성수동 쪽으로 향하는 것을 느끼고 황경호가 모기만 한 목소리로 먼저 입을 뗐다.

“나 집에 안 가….”

강동현이 고개를 돌려 그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왜.”

“…….”

왜냐고 물어보면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강동현은 운전에 계속 집중을 하지 못하고 황경호의 얼굴을 보았다.

“일단 운전해….”

황경호가 그렇게 말했지만, 어떻게든 표정을 읽으려고 노력하다가 결국 차를 돌렸다. 그리고 적당한 데다가 세웠다.

“내가 뭐 또 잘못했어?”

“아니….”

“아니라고 하면서 항상 뭐 있잖아. 말해.”

“진짜 없는데….”

“그럼 도대체 왜 나갔는데?”

“진짜 그냥…. 불편해서….”

“왜 불편한데?”

“내 집이 있는 게 좋아. 계속 너네 집에 얹혀 있으면 나도 모르게 자꾸… 안 좋은 생각만 하는 것 같아.”

황경호가 마지막엔 기어들어 가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강동현은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더 이해가 안 되는 모양이었다.

“왜 자꾸 그런 생각을 하는데? 같이 사는 거라고. 네 집이라고.”

“그게 어떻게 내 집이야….”

강동현은 황경호의 얼굴을 보고 있다가 한숨을 푹 쉬었다.

“너…. 진짜 관리 안 하지? 너 집문서 가지고 있으면서 한 번도 안 봤어?”

“어?”

황경호가 그를 쳐다보았다. 강동현은 짜증과 초조함이 섞인 얼굴로 황경호를 보았다.

“그 집 네 거야. 네 명의로 샀다고.”

“…….”

황경호는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다가 기겁을 했다.

“미쳤어!!”

황경호는 강동현의 어깨를 퍽 쳤다.

“당장 다시 바꿔! 미친 거 아냐!”

“안 돼. 증여세도 다 냈다고. 6억이나 냈는데.”

강동현이 딱 잘라 말했다. 24억짜리 집을 30억을 주고 산 것이다. 황경호는 어쩔 줄을 몰라했다.

“나도 모르게 그렇게 하는 게 어딨어? 그런 거 못 받아. 못 받아….”

“그러지 말고 다시 들어와. 응? 네 마음에 안 드는 거 있으면 다 고친다니까.”

“아….”

황경호는 이런 건 정말 예상도 못 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알 수가 없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정기연과 있을 때 한 생각이 맞았다. 황경호는 그와 같이 산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덥석 같이 산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이런 건 황경호가 책임질 수 있는 범위를 훨씬 넘어간 일이었다. 겁이 난다. 무서웠다. 무력감마저 느껴졌다.

“도대체…. 왜 나한테 말도 안 하고 이러는데….”

황경호가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왜 항상 네 맘대로 이래….”

그러자 강동현이 오히려 되물었다.

“이게 도대체 왜 싫은데?”

“…….”

황경호는 할 말을 잃었다. 힘이 빠진다. 그에게 자신을 이해시킬 자신이 없었다.

[미안해. 진짜 좋아해. 내가 너 평생 책임질게. 나한테 한 번만 더… 기회를 줘.]

그에게 미안하다는 건 무슨 뜻일까. 좋아한다는 건? 왜 황경호는 그 말을 믿기가 힘든 걸까. 그가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할 때마다 황홀감에 어쩔 줄을 모르면서도.

왜 같이 살기로 마음먹었을까. 분명히 문제가 많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는데. 금방 아무것도 아니게 될 걸 알면서 계약서 같은 거나 쓰고 핑계를 대면서….

‘역시 같이 살지 말 걸 그랬다….’

나올 때는 그런 생각까지 하진 않았는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그냥 집을 달라고 하면 어떻게 나올까 상상해 본 적은 있었지만 이런 건 생각도 못 했다. 그가 황경호한테 통장이나 카드 같은 것을 줘도 일종의 시위일 뿐 그렇다고 정말 자기 것처럼 여기면 안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런데 30억짜리 집이라니.

황경호가 말을 잃고 얼굴이 굳어 있자 강동현은 자기 머리를 흐트러뜨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네가 하도 빼니까 이러면 너도 마음이 좀 편할까 해서.”

“…….”

“내가 말로만 네 집이라고 해도 내 명의면 생색내는 것밖에 더 되겠어. 너 안 그래도 삐꺽하면 이렇게 도망가려고 하는데…. 이렇게라도 해야지 내 옆에 있을 거 아니야.”

강동현이 그렇게 말하며 황경호의 손을 잡았다. 황경호는 그의 손을 뿌리쳤다. 그의 얼굴과 몸이 벌게졌다.

“내가 집 같은 거 필요 없다고 했잖아. 너 돈 있으면 이렇게 마음대로 해도 될 것 같아? 이렇게 덥석 쥐여주고 너 마음 찰 때까지 멋대로 하다가 끝내도 나한테는 과분한 거니까?”

“누가 끝내. 나 너 진짜 좋아한다고. 우리가 결혼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라도 해야 할 거 아냐.”

“누가 너랑 결혼을 해! 싫어!”

황경호가 화를 냈다. 그러자 강동현이 확 인상을 찌푸렸다. 강동현이 그의 손을 억지로 움켜쥐고 잡아당겼다. 황경호는 숨이 턱 막히며 끌려갔다.

“작작 좀 해. 넌 나랑 왜 같이 살기로 한 건데? 너야말로 이렇게 멋대로 나가면 그냥 깨끗하게 끝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웃기지 마.”

강동현이 황경호의 얼굴을 잡고 가까이서 눈을 똑바로 보았다.

“도망가려면 적어도 이전에 도망갔어야지. 너 나한테 벌써 코 꿰인 거 모르겠어? 적당히 해. 나 마음에 안 들면 얼마든지 화내도 되고 성가시게 굴어도 되고 짜증 나게 해도 되는데, 젠장…. 이런 식으로 집을 나가?”

강동현은 분명히 화를 내지 않으려고 하는 게 보였다. 언성도 최대한 낮추고 황경호가 말도 없이 집을 나갔는데도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자기가 고치겠다는 식으로 자세를 낮추었다. 하지만 결국엔 큰 소리가 나온다. 싸우면 항상 그랬다.

황경호도 그를 노려보았다.

“네가 뭔데 내 인생 마음대로 하려고 해? 네가 뭐라고! 내가 나가고 싶으면 나갈 거야!”

“그러니까 왜 이러냐고! 왜 이러는지 말을 해야 알 거 아냐! 갑자기 이러면 나보고 어쩌라고!”

황경호는 얼굴을 잡고 있는 강동현의 손을 쳐냈다.

“어쩌라고 한 적 없어! 내가 언제 너 보고 뭐 해달래?”

“당장 집에 들어와! 싸우든 뭘 하든 집에서 하자고!”

“싫어!”

이미 둘 다 감정이 상해 핀트가 한참 벗어난 것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황경호는 이런 갈등이나 싸움이 몸서리치게 싫었지만 아무리 피하려고 해도 강동현과는 부딪치는 걸 피할 수가 없었다. 이게 본인 때문인지 아니면 상대 때문인지 아니면 이게 원래 이런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

“…….”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황경호는 그가 모든 걸 그만두자고 말할 걸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면 차라리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모든 게 끝난다면 이런 싫은 것들을 겪지 않아도 될 것이다.

강동현이 먼저 눈을 돌렸다. 손을 놔주었다.

“…어디로 데려다주면 돼? 내일 다시 얘기하자.”

“…….”

황경호는 순간 뭐라고 하려다가 입을 다물고 조수석에 등을 팍 기대었다.

그리고 한 일주일 동안은 만나면 조용히 얘기하려다가 결국 소리를 지르다가 침묵하는 싸움이 이어졌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시킬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예 끝내자고?!”

“끝낼 게 있기나 해?”

서로 긴장감을 유지하면서 말도 안 하고 지낸 적은 많은데 이번엔 아예 주구장창 싸웠다. 그냥 서로의 감정에 상처를 주기 위한 말이 더 많았던 것 같다.

이번에는 황경호가 새로 구한 집 앞에 데려다주다가 또 말싸움이 붙었다.

“복잡하게 생각 좀 하지 마. 그냥 지금까지처럼 하면 되잖아. 도대체 뭐가 문젠데?”

강동현이 짜증스러운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까 굳이 같이 안 살아도 되잖아. 내가 같이 사는 게 불편해서 그런다고. 왜 이걸 이해를 못 해?”

“거짓말하지 마. 너 집 좋아했잖아. 그거 말고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니까 이런 거 아냐. 바라는 게 있으면 뭘 바란다고 뭐가 싫으면 싫다고 확실히 말을 하라고.”

자신의 말을 계속 무시하는 강동현이 너무 짜증이 났다. 황경호는 인상을 찌푸리며 생각지도 못한 말을 툭 내뱉었다.

“너랑 섹스하기 싫어.”

그러자 강동현이 움찔하며 그와 눈을 마주쳤다.

“…왜.”

황경호는 자신도 좀 당황했던 터라 짧게 대답했다.

“그냥.”

침묵이 흘렀다. 그간 그렇게 황경호를 재촉하며 집으로 돌아오라고 강압하던 강동현이 말을 잃고 황경호의 얼굴을 보다가 다시 물었다.

“정말이야?”

“…응.”

그렇게 말하고 나니 어쩐지 간지러운 곳을 긁은 듯, 아니 체증이 사라진 듯하다. 황경호는 이제 그와의 섹스가 괜찮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예전만큼 막 대하는 것도 아니고 기분 좋다는 생각도 드니까 말이다. 그와 껴안고 있는 게 밑도 끝도 없이 황홀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유도 없이 불안하고 가끔 창피하기도 했다. 마음이 조여든 듯 초조하거나 무섭기도 했다. 그런 감정들이 너무 싫었지만 강동현은 한 번도 알아준 적이 없었다. 말로 해도 자기는 만족스러우니까 귓등으로 흘리는 게 보였다. 거기에 불만을 가지지도 않았다. 딱히 이해해주길 바란 건 아니니까. 그래서 그냥 섹스 후에 혼자 시간을 가지고 싶어 하면 그는 언제나 황경호를 까다롭다고만 했다.

“내가 진짜 잘못한 거 있어?”

그에게 황경호와의 섹스는 무엇일까. 지금까지와 태도가 좀 다른 게 느껴진다. 황경호는 거기에 약간 더 마음이 상하기도 했다.

“아니.”

“그런데 왜?”

“그냥이라니까.”

“…….”

“…….”

“내가 잘못한 게 있으면….”

“아니라니까 너 잘못한 거 없어. 그냥 이렇게 나온 것도 내가 잘못했다고 생각해. 그냥…. 그냥 싫은 거라고.”

“지금까지 싫은데도 억지로 한 거라고?”

강동현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물론 몇 번은 반응이 별로여도 구슬리고 꼬시고 애무를 해서 한 적도 있었다. 애교로 봐줄 만한 수준이었다고 생각한다.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다. 심각하게 고민해본 적은 없었지만 이제 정말 애정이 있기 때문에 같이 살고 또 섹스도 같이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좋았다. 그래서 섹스도 많이 하고 싶었다. 그도 자신을 애정하는 마음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섹스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건 아니야.”

“…나 너 진짜 좋아해.”

강동현이 황경호의 눈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말했다. 황경호는 주먹을 보이지 않게 꽉 쥐었다.

“그래도 싫어.”

그렇게 또 침묵이 이어졌다.

“…갈게.”

황경호는 그 긴장을 견디지 못하고 그렇게 말하고는 차에서 내렸다. 강동현도 뒤따라 차에서 내렸다. 데자뷰가 들 만큼 예전과 비슷한 광경이었다. 전선이 덕지덕지 흐르는 좁고 낡은 동네에 어울리지 않는 비싼 차와 강동현.

“그래서 나랑 더는 안 보겠다고?”

“…….”

섹스를 하지 않는다는 게 결국 보지 않는다는 걸로 되는 거라면 그렇게 되겠지. 황경호는 속으로 생각했다. 집을 나올 때는 급하게 나왔지만, 아마 어렴풋이 이렇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많은 생각을 했더라면 아마 이렇게 빠르게 실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강동현의 삼성동 집에서 같이 살면서부터 지금까지를 그래도 좀 만났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 9개월… 정도 될까. 그간 그렇게 지지고 볶고 싸우고….

‘힘들었어….’

황경호는 그렇게 생각했다. 강동현은 그런 황경호를 물끄러미 보았다. 그가 입을 열었다.

“그거 알아?”

황경호가 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차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강동현은 화를 내거나 짜증도 내지 않고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너 나 평생 못 잊어. 나 같은 남자 그렇게 쉽게 떠나서 잊을 수 있을 거 같아?”

그의 이런 면이 싫었다. 황경호는 인상을 확 찌푸리며 대꾸했다.

“잘난 척하지 마.”

그리고 그를 뒤로하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한동안은 그렇게 연락이 없었다. 황경호는 순식간에 다시 소비 수준을 줄였다. 자신이 그럴 수 있는 것을 확인하고 안도감마저 들었다. 강동현은 몇 달 동안 정말 열심히 병원을 다니면서 건강관리를 하더니 이제 병원에 오지를 않았다. 다른 병원들도 안 다니는 걸까. 모르겠다. 중국에서 한 달 정도 활동하다가 돌아와서는 휴식기에 들어갈 거라고 한 강동현이었다. 간간이 홍보대사 일이나 사인회, 예능에 얼굴을 보이는 걸 보니 또 그냥 일을 하나 보다.

이런 식이 되면 둘은 역시 다른 세계의 사람이라 커넥션이 싹 사라졌다. 그는 김태형의 가게에도 안 가는 것 같았다. 황경호는 이런 부분에서도 어쩐지 안도감이 들었다.

이제는 예전만큼의 우울감은 없었다. 설사 가끔 그런 기분이 들더라도 스스로를 달래고 다스릴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강동현이란 요인만 없으면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있을 정도로 외부 요인도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운동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고 봉사활동이나 취미 생활도 하고…

그리고 생각보다도 강동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이랬으면 어땠을까. 저랬으면 어땠을까. 그렇게 지나온 일들에 ‘만약’을 붙여보며 상상했다. 딱히 그와 뭘 어떻게 다시 해보고 싶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아니었다.

아직 엄청 추웠지만 해가 길어지고 있었다. 산책을 나왔다가 꽃나무들에 봉오리가 단단히 진 것을 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맥주를 한 캔 들고 한강을 거닐다 보니 마포대교까지 올라가게 되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정말 죽고 싶어서 여기로 그렇게나 달려왔었다. 싸이코 광신도처럼 여기만 뛰어내리면 얽히고설킨 매듭을 자르듯 모든 게 풀어질 것이라 맹신했다. 심지어 정말로 뛰어내린 적도 있었다. 살을 엘듯한 추위. 발밑이 한없이 꺼지는 느낌. 그때가 제대로 기억나지도 않았는데도 그 이미지만은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땐 주저하지도 않았다. 강동현이 없었더라면 정말 죽었을 것이다. 황경호는 소름이 돋아 한 번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역시 안도감이 들었다. 죽지 않고 살아 있었고 이제는 그렇게 자살하지 않을 자신도 있었다. 여전히 스스로가 그렇게 좋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 미래에 대한 감정도 그렇게 밝다고만은 할 수 없지만, 다들 그럴 것이다. 그러니까 괜찮았다.

강동현과의 일들은 도저히 추억이라고 부를 수도 없는 기억부터 이해가 닿지 않는 부분까지 너무나 다채로웠다. 이런 말로 일축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나고 보니 좋은 경험이었던 것 같다. 인생이나 사람에 대해서 많이 배운 것 같다.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아마 다시는 그런 경험은 하지 못할 것이다.

그와 연락을 하지 않은지 3주가 되어 갔다. 아마 그도 이제는 질렸을 것이다. 질릴 만도 했다. 좀 있으면 4월이었다. 황경호는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도 빠르게 그가 없는 생활로 복귀할 수 있다는 것에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지만….

“저…. 혹시 나쁜 생각하고 계신 건 아니죠?”

가만히 강을 보면서 술을 홀짝거리고 있는데 누군가 그렇게 물어와서 깜짝 놀랐다.

“아뇨…. 그냥 산책하다가 잠깐….”

“아, 네. 죄송합니다.”

자살명소인 마포대교에서 이렇게 멍 때리고 있으니 걱정이 된 모양이었다. 그녀는 황경호의 얼굴을 보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그렇게 말하고 자기 갈 길을 갔다. 그렇게 자살을 하고 싶을 때는 이런 적이 없었는데 지금은 생판 모르는 타인도 걱정을 해온다.

황경호는 약간 얼떨떨한 기분으로 맥주를 한 모금 더 했다. 기분이 이상하다. 세상이 아직 살 만하구나, 라는 기분이 들었다. 그냥 타인의 아무것도 아닌 친절로 말이다.

“…….”

근데 마음이 조금 허하다. 예전에 우울증을 심하게 겪을 때 느꼈던 것과는 좀 달랐다. 허전하달까…. 다른 사람이랑 같이 살아본 것은 처음이었지만 역시 사람 난 자리는 티가 난다고, 자기 발로 나온 건데도 좀 그런 모양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했다.

잠깐 휴대폰을 보다가 그와 주고받았던 메시지를 보았다. 막판엔 말투에 가시가 돋아 있었지만 그 전에는 정말 연인 사이처럼 간지러운 것들도 있었다. 웃기다.

그것 말고는 사진 한 장도 없었다.

‘어쩔 수 없지….’

황경호는 그렇게 생각했다. 무슨 의미인지는 본인도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생각하지 말자. 황경호는 맥주가 줄어드는 걸 안타깝게 여기며 한 모금, 한 모금 마셨다. 전부 마시고 아까워서 입맛을 다시다가 한 캔을 더 사야겠다고 생각하며 마포대교에서 내려가려고 하던 참이었다.

부우웅.

전화가 울려서 깜짝 놀랐다. 휴대폰을 보니, 강동현이었다.

“…….”

기분이 이상했다. 황경호는 한참을 그 화면을 보고 있다가 받았다.

“…….”

[…어디야?]

황경호는 약간 긴장을 했다. 그래서 생각 없이 사실대로 말했다.

“지금 마포대교….”

그래서 오랜만에 연락이 닿았는데 미친 듯이 싸웠다. 전화기를 사이에 두고 마구 소리를 지르면서 말이다. 다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이 꼭 쳐다보면서 갔는데도 언성을 낮출 수가 없었다.

“아니야! 아니라고 하잖아!”

[네가 그런 거짓말 한 게 한두 번이야? 거기 가만히 있기나 해!]

벌써 저 멀리서 그의 차가 오는 게 보인다. 15분 정도 걸린 것 같다. 15분이나 미친놈처럼 전화기에 대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던 것이다. 깜빡이 넣고 황경호의 앞 갓길에다 세운다. 벌써 조수석 윈도우가 다 내려가 있었다.

“황경호!”

그의 목소리에 화가 잔뜩 묻어나와 있었다. 황경호는 선글라스를 낀 그의 얼굴을 보자마자 화가 더 나서 그냥 그를 무시하고 걸어갔다. 강동현이 차에서 내려서 인도로 넘어왔다. 그리고 성큼성큼 걸어가 황경호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밑도 끝도 없이 질질 끌고 갔다. 황경호는 황당하고 화가 나기도 해서 그의 어깨를 퍽퍽 때리며 화를 냈다.

“놔! 뭐 하는 거야!”

그는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황경호를 억지로 조수석에 구겨 넣었다. 다시 문을 열고 나오려고 하자 그냥 조수석 문 앞에 버티고 서 있었다.

“…….”

“…….”

그대로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강동현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리지 마라.”

그렇게 경고하고는 운전석으로 갔다. 강동현은 차에 올라타자마자 신경질적으로 차를 급발진했다.

“앞으로 한강 다리 근처엔 얼씬도 하지 마.”

“이제 자살 같은 거 안 한다니까.”

황경호는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는 침묵이 이어졌다. 황경호는 한동안 화가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노력하다가 문득 그가 3주 동안 연락이 없었으며 아마도 이런 것에도 질려 하고 있을 거라는데 생각이 미쳤다. 성가시게 하고 싶지 않았다.

“…진짜 자살 같은 거 하려고 한 거 아니야. 그냥 좀 옛날 생각이 나서 생각 좀 하느라…. 걱… 아니, 신경 안 써도 되는데….”

황경호는 한숨을 쉬면서 정면에서 조수석 창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내려줘. 지하철 타고 갈게.”

황경호의 언성이 낮아지자 강동현도 더 이상 소리를 지르고 싶진 않은지 잠깐 입을 다물고 있었다. 하긴…. 황경호가 마포대교를 그런 식으로 한두 번 온 것도 아니고…. 아까는 좀 경솔했던 것 같다. 많이 놀랐을 것 같긴 하다. 황경호도 약간 반성하면서 그렇게 앉아 있는데 갑자기 강동현이 완전 딴소리를 했다.

“술이나 한잔하자.”

“…너 술 끊었다고 안 했어?”

황경호는 좀 놀라서 본인도 상황을 잊고 그를 돌아보았다. 또 몸을 망치는 식으로 생활하고 있는 것일까? 강동현은 덤덤한 어투로 대답했다.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고.”

“…….”

“싸우지 말고 얘기 좀 해보자. 나도 그동안 생각 많이 했어.”

강동현은 그대로 집 쪽으로, 그러니까 성수동 쪽으로 차를 몰았다. 그의 얼굴을 보고 있는데,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서 그럴까, 낯설게도 느껴지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오늘은 온통 이상한 기분만 든다. 황경호는 입을 좀 벌리고 그를 쳐다보고 있다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래도 싸울 텐데….”

“그럼 싸우면 되잖아. 얘기하자. 얘기 안 하고 이렇게 있으면 뭐가 될까 싶었는데 안 될 것 같아.”

그리고 강동현이 인상을 팍 쓰면서 덧붙였다.

“넌 마포대교나 와 있고.”

“…자살 안 한다니까.”

“내가 연락 안 하면 절대 연락 안 하고.”

“…….”

“연락해도 씹고.”

황경호는 왠지 모르게 얼굴을 살짝 붉히며 고개를 정면으로 돌렸다.

“집에 맥주 잔뜩 있어. 사케랑 와인도 좀 있고. 양주도 좀 있는데….”

강동현은 지금은 딱히 본론을 얘기하고 싶진 않은지 그렇게 말했다. 일단은 싸우고 싶지 않아서 이러는 것 같은데 오히려 황경호는 강동현이 줄줄 말하는 술 이름들을 듣고 약간 화가 났다.

“어디서 그렇게 술을 샀어? 너 진짜 나을 생각 없어?”

“내가 산 건 맥주밖에 없어. 일이 있어서 여기저기서 좀 받았어.”

“많이 마셨어?”

“조금.”

“담배는?”

“많이 안 피웠어.”

“너 진짜 왜 그렇게 살아?”

황경호가 이해가 되지 않아서 그에게 핀잔을 주었다. 그랬더니 강동현이 한숨을 쉬었다.

“넌 진짜 나 없어도 잘 살았나 보네.”

“…….”

할 말이 없었다. 예상은 한 모양인지 강동현은 딱히 실망했다든가 상처받은 것 같은 얼굴은 하지 않았다. 약간은 무심한 듯한 얼굴로 성수동 T아파트 지하 주차장에다 차를 댔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오랜만에 안에 왔더니, 난장판이다.

“너 이러고 살았어?”

황경호는 습관적으로 바닥에 떨어진 옷가지를 주워들면서 그를 돌아보았다. 술도 별로 안 마셨다고 하더니 테이블에 술병이 나뒹굴고 있었고 재떨이에는 담배가 한가득이었다.

“너 때문이야.”

강동현이 그렇게 말하면서 겉옷을 벗어들고 드레스룸으로 향했다. 황경호는 그를 따라 들어갔다.

“아, 밖에서 입었던 거 들고 들어가지 말라고!”

어쨌든 얘기 좀 하자고 했다가 집부터 치우고 있었다. 강동현은 확실히 원망스러운 마음이 한가득인지 아주 비협조적이었다. 시위를 하는 것이다.

“아, 담배 냄새….”

기껏 처음부터 관리 잘해놨는데 고작 한 달 손 안 댔다고 담배 냄새가 꽤 뱄다. 황경호는 집안 곳곳에 뒀던 냄새 제거제를 싹 갈다가 순간 자기가 뭘 하고 있는 것인가 싶어 퍼뜩 정신이 들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 갈게.”

“얘기 좀 하자니까.”

1시간이나 청소를 했다. 강동현은 슬금슬금 돕는 척하다가 다시 제 모습을 찾은, 요리 채널에 들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만한 멋진 부엌 테이블에다가 맥주와 안줏거리를 냈다.

“앉아.”

“…….”

황경호는 고민을 하다가 한숨을 쉬고 가서 앉았다. 병으로 된 맥주를 따서 황경호의 잔에 따라주었다. 황경호는 그것을 한 모금 마셨다. 황경호가 마시는 것을 보고 강동현도 한 모금 마셨다.

“맛있지?”

“응.”

시트러스의 시원한 느낌이 나는 차가운 맥주였다. 황경호가 주로 사 먹던 맥주들과는 다른 맛이었다. 정말 맛있었다. 한국 맥주가 진짜 맛이 없다고 하더니만 맞는 말인 모양이다.

“요새 병원은 어때?”

“애들 봄 방학 시즌이라 초등학생 환자들 좀 있고…. 뭐 똑같지.”

“태형이 형이랑은 잘 지내?”

“응. 잘 지내. 너 요새 안 온다고 좀 섭섭해하던데.”

“바빠서.”

황경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넌 쉴 거라면서 안 쉬는 거야?”

“응? 뭐…. 그렇다고 전처럼 뭘 빡세게 하는 건 아니야. 이제 예능 같은 것도 나가기 애매하니까 거의 까메오 수준이고.”

“다른 병원은 계속 다니는 거고?”

“응…. 뭐….”

“그래…. 잘했어.”

그렇게 말하는 황경호를 강동현이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는 미묘한 얼굴로 인상을 좀 썼다.

“너 말이야…. 나 진짜 그렇게 싫어?”

“어?”

갑자기 물어서 좀 놀랐다. 그의 표정이 뭔가 사람을 또 확 끌어당긴다. 그의 훤칠하고 잘생긴 외모 때문도 있겠지만, 그는 정말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황경호는 시선을 맥주로 돌렸다.

“싫어하는 건 아닌데….”

“그런데 진짜 왜 이래? 나도 상처받아.”

강동현의 말에 다시 그의 얼굴을 보았다. 그는 황경호만 보고 있었다. 황경호는 자기가 비겁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미안….”

“미안하다는 소리를 듣고 싶은 게 아니라….”

둘은 잠깐 말없이 술을 홀짝홀짝 마셨다. 간간이 쓸데없는 잡담도 좀 했다. 말이 좀 끊어진다. 평소엔 이러지 않았는데. 그러다가 술을 꽤 많이 마셨다. 황경호는 문득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황경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이제 갈게.”

강동현이 황경호의 손을 잡았다. 세게 잡은 것은 아니었다.

“가지 마.”

강동현은 황경호의 손을 보았다.

“정말로 나 안 볼 거야? 이런 식으로 끝내는 거야?”

“…….”

아마 이런 식이면 결국엔 끝나게 되겠지만, 그래도 끝내자는 건 아니었다. 말도 없이 나오고 설명도 제대로 하지 못했지만…. 설명은 스스로에게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그냥 이 집에서 나오고 싶었다. 그가 보고 싶지 않았다.

“내가 그렇게 잘못했어? 내가 또 뭐 한 거야? 진짜 생각 많이 했는데도 모르겠어….”

강동현은 황경호의 손에 입술을 누르며 눈을 감았다.

“나 너 없으면 못 사는데…. 진짜… 가지 마. 응?”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그가 그대로 황경호의 눈을 올려다보았다. 가슴이 떨렸다.

‘왜 이래….’

황경호는 꼼짝을 못 하고 그의 얼굴을 보았다. 그와 마주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대로 서로의 눈을 마주 보고 있었다. 한순간 강동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황경호의 입술을 빼앗으려다 그가 고개를 돌리자 뺨에 입술이 스쳤다. 황경호는 술이 꽤 되었는데도 긴장해서 그의 옷깃을 잡았다.

“하지 마….”

“왜?”

단지 눈을 좀 마주치고 그와의 간격이 좁아진 것뿐인데 갑자기 온몸에 확 열이 돌면서 가슴이 미친 듯이 뛰고 입안이 바짝바짝 마르는 것을 느꼈다. 숨이 거칠어진다. 강동현의 숨소리도 좀 거칠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귓가에 입술을 꾹 누르며 손을 주물렀다.

“좋아해….”

강동현이 그렇게 귓가에 속삭였다. 황경호는 또 쿵 하고 심장이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온몸이 주체할 수 없이 달아오르고 떨리기 시작했다.

“으읏….”

거의 숨이 헐떡거리는 수준이다. 강동현이 부드럽게 뺨에 입을 맞추었다. 심장이 너무 떨려서 무서웠다. 그를 밀어내고 싶었다.

“하, 할 거야?”

황경호는 마른침을 삼키며 그렇게 물었다. 강동현은 잠깐 고개를 들어 황경호와 눈을 마주쳤다. 또 심장이.

“할 거야.”

그렇게 말하면서 강동현은 황경호를 끌어안았다.

“…!”

온몸에 미친 듯이 소름이 돋았다. 가득 밀착한 접촉감이 평소의 수 배에 달했다.

‘못 해. 못 해. 못 해. 죽을 거야. 안 돼.’

다리에 흐느적 힘이 빠졌다. 강동현은 그의 허리와 등을 꽉 끌어안고 귓가에 얼굴을 묻으며 섹시한 신음을 느리게 뱉었다.

“진짜 좋아….”

다리가 저렸다. 황경호는 이미 100m 달리기라도 한 사람처럼 헐떡거리고 있었다.

“으으…. 싫어…. 흑…. 싫어…. 싫어. 싫어.”

황경호가 겨우 입을 열었다. 온통 싫다는 말밖에 안 나왔다. 강동현이 벌게져서 어쩔 줄을 모르는 황경호의 얼굴에 부드럽게 입을 맞추었다.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데? 응? 말해줘….”

“아으응…. 만지지 마. 하읏. 잠깐만. 손 떼줘. 아앙…. 윽….”

등허리를 조금 쓰다듬었을 뿐인데 죽을 것 같다. 그때 강동현이 중국을 갔다가 잠깐 돌아왔을 때도 미친 듯이 느껴서 죽는 줄 알았는데 이번은 그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였다.

강동현은 다리가 풀려 휘청거리는 그를 안아 들어서 침실로 향했다. 황경호가 잔뜩 겁을 먹어 질색을 하자 침대에 내려두고 손대지 않은 채 말했다.

“그럼 네가 나 만져줘.”

강동현은 침대에 대충 걸터앉은 채 황경호의 두 손을 자신의 양 뺨에 대며 그와 눈을 마주쳤다. 황경호는 그의 뺨을 잡은 손이 찌릿 거리는 걸 느꼈다. 황경호는 진짜 미칠 것 같았다. 가릴 새도 없이 흥분한 게 다 티가 났다. 이럴 땐 그가 덮쳐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단 말이다. 그렇게 이율배반적인 마음이 들었다. 만져줬으면 좋겠다. 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황경호도 자신이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솔직하게 말해.”

강동현이 황경호의 손바닥에 입술을 눌렀다. 황경호는 등골을 타고 내려가는 땀에도 민감하게 느껴 부들 떨었다.

“정말 헤어지고 싶은 거야?”

강동현은 계속 눈을 마주쳤다. 그의 눈빛이 심장을 주무르는 것 같다. 황경호는 절벽 끝까지 몰리기라도 한 듯 긴장이 되고 불안하고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그래도 잘 지냈다고 생각했는데…. 넌 아니었어?”

강동현은 미간을 좁히고 상처받은 얼굴을 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너무…. 화가 나.”

황경호는 모든 게 불안으로, 그는 화로 표현되는 것일까. 황경호는 마른침을 삼켰다. 말을 하는 순간까지 용기가 필요했다. 취약하디 취약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자 강동현이 움찔하며 그의 얼굴을 만졌다. 황경호는 겨우 입을 열었다.

“난…. 네가 무서워….”

“뭐가….”

강동현도 얼굴이 상기되어서 그를 끌어안았다. 자신의 침대에서 상대를 끌어안고 있으니 몇 주간의 답답함이 사라지는 것 같았다. 황경호는 강동현의 무릎에 앉아 서로의 배를 마주 대고 있으니 더 떨었다.

“너 한 번도 내 말 제대로 들은 적 없잖아. 너한테, 너한테 나 같은 거 아무것도 아니잖아. 언제든 떠나도 이상한 거 아니잖아.”

황경호는 불안감이 폭발해서 앞뒤도 없이 그렇게 빠르게 말했다.

“붙잡겠다는 거 아니야. 어차피 너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는 놈이잖아. 붙잡는다고 붙잡힐 사람 아니라는 거 알아. 괜찮아. 괜찮은데, 멍청하게 그때 오기만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아서 바보 같아. 너무 바보 같아. 이거 다 언젠가 끝날 거잖아. 네가 아니라고 해도 그런 거잖아. 그러면 난 지금이 좋은 거 같아. 더 시간이 지나면 내가….”

황경호는 중간부터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 하지만 한 번 봇물이 터진 불안은 비명처럼 한순간에 모든 걸 드러냈다.

“내가 힘들 것 같아….”

그리고 황경호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빨개졌다. 그와 눈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황경호는 그의 어깨를 밀어냈다.

“나, 읏, 나 갈게….”

“황경호.”

강동현이 그의 허리를 단단히 잡은 채였다. 황경호는 이미 임계점을 넘은 지 오래였다. 심장이 너무 뛰어서 아팠다. 창피하고 불안하고 몸이 떨렸다.

강동현은 그런 황경호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만졌다. 뺨을 쓰다듬으며 그의 눈을 부드러우면서도 짙게 바라보았다. 황경호는 계속 그의 눈을 피하다가 결국 마주했다. 그렇게 말없이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네가 말한 대로 나 하고 싶은 건 다 하는 놈이잖아.”

강동현이 천천히 말했다. 황경호는 몸이 덜덜 떨려서 그의 어깨를 꽉 쥐었다. 그는 창피한 게 죽는 것보다 싫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게 창피했다.

“네가 나 안 떠나면 나 절대로 너 안 떠나. 평생 같이 살 거라고. 너 내가 책임진다고. 나 한 번 마음 정하면 끝까지 간다고.”

“…바람피웠으면서….”

“안 피워. 진짜. 진짜. 내가 어떻게 할까? 응? 세상에 너보다 좋은 사람이 어딨어?”

황경호는 얼굴이 터질 것같이 빨개졌다. 강동현은 그런 황경호를 보고 얼굴을 붉히며 그의 얼굴에 마구 입을 맞췄다.

“네가 이런 얼굴 할 때마다 못 참겠어….”

“하지 마.”

황경호는 그의 얼굴을 밀어냈다.

“어떻게 할까? 내가 어떻게 하면 돼? 다른 것들도 다 네 명의로 바꿀까? 반지도 맞추자. 나 좀 믿어줘. 응?”

황경호는 애교를 부려오는 강동현 때문에 깜짝 놀라서 그의 어깨를 퍽 밀쳤다.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다.

“앞으로 말 잘 들을게. 한마디, 한마디.”

“…….”

강동현이 실실 웃기 시작하더니 황경호의 목덜미에 얼굴을 비볐다.

“아…. 너도 나 진짜 좋아한다는 거지. 맞지?”

“아냐…!”

황경호가 기겁을 하며 그를 밀어냈다. 강동현은 인상을 찌푸렸다.

“뭐가 아냐.”

황경호는 다시금 궁지에 확 몰린 느낌에 얼굴이랑 눈이 벌게졌다. 강동현은 못 참겠다는 얼굴로 그의 뺨에 부드럽게 입술을 맞췄다.

“알았어…. 재촉 안 할게.”

“아…. 잠깐…. 만지지 마…. 아응….”

뒷목을 부드럽게 주무르며 티셔츠 안으로 손을 넣어 등허리를 만지자 황경호가 거의 펄쩍 뛰었다. 강동현도 급격히 숨이 가빠지며 본의 아니게 황경호의 배에 자기 대물을 찔렀다. 황경호는 그가 살갗을 매만질 때마다 찔끔찔끔 흘리고 있었다.

“흐읏…. 아읏…. 안 돼…. 흑…. 죽을 거야. 죽을 거야.”

“나도 죽을 거 같아….”

강동현이 한숨처럼 신음하며 그렇게 속삭였다. 강동현은 황경호를 꽉 끌어안고 접촉감을 즐기면서 그의 뺨에 입만 맞추었다. 이대로 그를 안을 수 있다는 건 알고 있지만 그렇게 선뜻 손이 나가지 않았다. 이상하다…. 그리고 그와 눈을 마주쳤다.

“난 너 이렇게 원하는데 넌 자꾸 싫다고만 하니까 제대로 못 하겠어.”

강동현이 그렇게 말했다. 황경호가 입을 꾹 다물고 그를 내려다보았다.

“나만 자꾸 철없이 마누라한테 조르는 아저씨 된 것 같은 기분이야. 나랑 섹스하는 거 그렇게 싫어? 진짜 하지 말까?”

황경호는 얼굴을 벌겋게 붉히고 있다가 시선을 피했다.

“하기 전이랑…. 하고 난 후가 너무 부끄러워…. 무섭고…. 불안하고…. 읏….”

황경호가 눈을 질끈 감았다. 강동현이 그의 뺨에 입술을 눌렀다.

“알았어…. 미안. 이제 네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해.”

그대로 강동현은 황경호를 올려다보고 황경호는 그를 내려다보았다. 눈빛이 섞였다. 숨결도 섞인다. 황경호는 가슴이 쿵 내려앉으며 그의 어깨를 꽉 잡았다.

좋아한다.

말도 안 돼. 미친 거 아냐. 얘가 나한테 어떻게 했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 줄 알고. 나만 바보 될 거 뻔한데!

‘좋아해…. 너무 좋아. 못 참겠어….’

황경호는 강동현의 얼굴을 잡고 그에게 입을 맞추었다.

“윽…. 하아…. 젠장….”

“아앙…! 아…! 무거워….”

“미안…. 큭.”

서로 마구 만지다 보니 강약이 없었다. 강동현이 마구 깔아뭉개자 황경호가 그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떨어지지 않았다. 입을 한참을 맞추고 나서야 둘 다 헐떡거리며 좀 떨어져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확 불이 붙어 입을 맞추며 서로의 옷을 벗겼다. 맨살이 미끈하게 맞닿자 둘 다 깊게 신음을 흘렸다. 성격도 정반대에 맞지 않는 것투성인데 어째서 이렇게 철썩 달라붙는지 모르겠다. 아이러니하다.

“아…. 으윽…. 제기랄. 네가 위로 올라와.”

강동현은 자신이 너무 상대를 밀어붙이고 있다는 걸 깨닫고 자세를 훌쩍 바꿔 그를 위에 태웠다. 그의 팔과 아랫배에 핏줄이 파랗게 섰다. 황경호는 서로의 땀 때문에 그의 아랫배에 미끈하게 비벼지는 자신의 허벅지와 음부의 느낌에 소름이 쫙 달렸다.

“아…!”

황경호는 그의 푹신한 가슴에 손을 짚었다가 앞으로 쭉 미끄러져 그의 상체에 완전히 엎드렸다. 서로의 몸이 부딪쳤다.

“미안….”

황경호는 사과를 하면서 몸을 일으키려고 했는데 강동현이 고개를 들어 입술을 핥았다. 황경호는 그의 얼굴을 무섭다는 듯이, 불안하고 초조한 얼굴로 보았다. 그러다가 결국 눈을 감고 같이 입술과 혀를 움직였다.

“으응…!”

강동현이 이제 익숙하게 보지도 않고 황경호의 음부에 젤을 쭉 짜 넣었다. 동시에 그의 손가락이 들어왔다. 그의 손을 잡으며 몸을 긴장했다.

‘갈 것 같아. 갈 것 같아. 갈 것 같아.’

민감한 부위가 전부 뜨겁다. 욱신거린다. 강동현의 남성기가 음부의 사이에 착 붙어왔다. 황경호는 강동현의 부드러운 입술에서 입을 떼며 거의 정신을 놓고 애원했다.

“싫어…. 싫어. 싫어. 하아아…. 으…. 지금 안 돼. 안 돼. 흑. 아앙…. 죽을 것 같아. 뜨거워. 죽을 것 같아. 잠깐마안….”

“나 봐….”

강동현은 취한 것 같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눈이 마주쳤다. 그대로 강동현은 황경호의 음부에 자신을 박아 넣었다.

“아아아…!”

“윽…!”

황경호는 비명을 지르며 몸을 펄떡거렸다. 강동현은 그의 허리째 엉덩이를 아래로 꾹 눌러 고정했다. 황경호는 괴로워하며 몸을 비틀었다.

“아아아앙…. 히익…! 하으으으….”

황경호는 다리를 벌려 상대의 위에 올라타 강동현의 복부에 자신의 배를 밀착하고 있었다. 가슴에 팔꿈치를 대고 어깨를 꽉 잡은 자세로 눈을 감고 바들바들 떨었다.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배가 아팠다. 너무 욱신거렸다. 음부가 크게 팽창해서 그를 머금고 있었다. 팽만감에 속이 더부룩하다. 뭐가 계속 앞으로 나올 것만 같다. 그와 꼭 맞붙은 아랫배 사이가 벌써 자신의 체액으로 미끌거리는 게 부끄러웠다. 음부가 계속 경련했다.

“하하하…. 귀여워….”

황경호가 넣자마자 가버리자 강동현이 웃으면서 그의 입술에 쪽 입을 맞추었다. 황경호는 놀림을 당한 기분에 그의 어깨를 퍽퍽 때리면서 화를 냈다.

“웃지 마…!”

“알았어. 아파. 아파. 아파.”

강동현은 자신을 때리는 황경호의 손목을 잡아 그 손에 입을 맞추며 황경호를 올려다보았다. 눈을 마주쳤다. 황경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가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다시 그의 얼굴을 보았다.

“내가 할까? 네가 할래?”

강동현은 완전히 기분이 좋아졌는지 실실 웃으면서 황경호의 얼굴을 입술로 지분거렸다. 그러면서 은근히 그의 안으로 더 파고든다.

강동현은 진짜 뒤끝이 없었다. 똑같이 뒤끝이 없는 김형세를 볼 때는 사람이 너무 밝고 걱정이 없어서 바보 같을 정도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지만 얘는 그런 것도 아닌데. 자기가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살아서 그런 모양이다. 그의 그런 면이 부러웠다.

‘그런 면이….’

그래서 그런 면이 좋은데, 또 억울하고 싫기도 했다. 서로 감정을 쌓아가거나 풀어가는 속도가 완전히 다르니까 말이다. 가끔 정말 바보가 되는 기분이다.

“내가 한다?”

그리고 강동현이 슥슥 움직이자 황경호는 부르르 떨며 그의 어깨를 잡았다.

“아으응…. 내, 내가 할게…. 아앙….”

금방 또 갈 것 같아서 안 되겠다. 그가 얌전히 멈추었다. 황경호는 온몸을 화하게 붉히고 엉덩이를 흔들기 시작했다.

“하아…. 읏…. 으응….”

그가 움직일 때보다 훨씬 낫다. 페이스를 알아서 조절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를 움켜쥐듯 조인 채 슥슥 넣었다 뺐다 했다. 젤 때문에 엄청 미끈거린다. 그와 살을 비비는 게 너무 좋았다. 부끄러운데도 신음이 자꾸 나온다. 황홀하다.

그가 좋았다. 그래서 그가 밉기도 했다. 이런 마음 같은 건 그는 영영 모를 것이다. 원망스럽다. 그런데 좋았다.

“나쁜 놈…. 나쁜 놈. 나쁜 놈. 흐윽….”

황경호는 야시시하고 요염해진 얼굴로 몸을 움직이며 저도 모르게 그렇게 말했다. 강동현이 웃으며 그의 가슴을 만졌다.

“또 그런다.”

“아앙…!”

황경호는 부들부들 떨었다. 그의 손도 피부도 자지도 전부 좋았다. 비벼지는 모든 살갗이 절정에 이른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황경호는 황홀감에 아찔하게 신음했다.

“하아아…. 기분 좋아…. 좋아….”

“으윽…. 하….”

황경호가 박자를 조절하며 천천히 은근하고 야하게 엉덩이를 빼자 강동현이 자신을 쥐어짜는 황경호의 엉덩이를 꽉 손으로 잡았다.

“아응…. 아파….”

“미안…. 후윽….”

강동현은 그의 엉덩이를 살살 주물렀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자신이 해달라고 한 적은 많지만 말이다…. 스스로 그가 스스로 이렇게 해주는 건 처음이었다.

아, 씨발. 존나 좋다…. 아까 머뭇거리면서 서로 몸만 맞대고 있을 때부터 기대로 터질 것같이 기립해 있던지라 아마 사정하게 되면 죽을 것같이 될 거라는 걸 알았다. 황경호는 그게 무서운 모양이었지만 강동현은 그게 미칠 것같이 좋았다.

“으응…. 아….”

황경호는 엉덩이만 능숙하게 뒤로 뺐다가 앞으로 당겼다 부드럽고 섬세하게 움직였다. 질척질척. 뭔가 강약이 야하다. 강동현은 숨을 거칠게 쉬며 황경호의 뺨을 깨물고 빨았다. 쌀 것 같다.

“으윽…. 황경호…. 엉덩이 더 흔들어 봐…. 응? 좀만 더 세게. 나올 것 같아. 으윽….”

“아….”

황경호가 얼굴을 벌겋게 붉혔다. 강동현은 그의 얼굴에 입을 마구 맞추고 입술을 쪽쪽 빨았다.

“아욱…. 더 깊게 넣어서 더 빨아봐…. 윽. 응? 크게 한 발 싸줄게….”

황경호는 주먹으로 단단하게 근육이 오른 그의 가슴을 때렸다. 강동현은 섹시하게 미간을 찌푸리며 황경호의 엉덩이를 잡아 빠르게 퍽퍽 움직였다.

“아앙…! 하…! 앗앗. 아아아…. 아아아앗…. 천천히이이….”

황경호의 목소리가 마구 끊어지며 야시시한 얼굴로 눈을 감고 덜덜덜 아래위로 빠르게 튀어 오르고 내려갔다. 침대가 덜컹거렸다. 그리고 강동현이 끝까지 자신의 자지를 박아 넣으며 사정하기 시작했다.

“아우윽…! 으윽!!”

“아아아아앙….”

말 그대로 죽을 것같이 좋았다. 온몸 가득 차 있던 게 일순 한 방울도 남김없이 배출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강동현은 그대로 자지에 수백 개의 바늘이 꽂히고 억지로 모든 게 잡아 뽑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랫배가 너무 단단해서 누가 치기라도 하면 깨져버릴 것만 같다. 자지가 불기둥이라도 된 것처럼 뜨겁다. 죽을 것 같다. 너무 좋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아우으…. 흐윽…. 아으…. 흑…. 아으…. 으으….”

황경호는 마구 경련하면서 고통스러운 얼굴로 오르가즘을 느꼈다. 강동현이 퍽퍽 허리를 털어대자 진짜 죽을 것같이 숨이 턱턱 막힌다.

“윽…. 후우…. 크윽…. 아….”

강동현이 인상을 심하게 찌푸리고 마지막까지 사정하고는 턱 늘어졌다. 그가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 황경호도 그 위에서 크게 오르락내리락거렸다. 그렇게 십수 분을 정신을 못 차리고 둘 다 헐떡거리고 있었다. 황경호는 살짝 정신이 들었다. 눈물이 줄줄 나왔다.

‘죽는 줄 알았어….’

그렇게 울고 있으니 슬 정신을 차린 강동현이 황경호를 주물러댔다.

“아…. 죽는 줄 알았다….”

강동현은 신음을 흘리듯 섹시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괜찮아?”

강동현이 황경호의 이마에 입술을 누르며 꽉 끌어안았다. 실금이라도 할 듯 황홀한 느낌. 황경호는 정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기분 좋아. 기분 좋아. 너무 좋아. 이대로 죽고 싶어. 좋아. 좋아. 좋아해. 너무 좋아.

‘냄새도 피부도 손도 목소리도…. 다 좋아….’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황경호도 그를 꽉 끌어안았다. 그런 자신이 그렇게 멍청할 수가 없었는데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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