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Lovesick (1)
전에 삼성동에서 살 때도 말이다. 그땐 서로 별다른 약속도 없었는데도 눈만 마주치면 불이 붙었다. 진짜 말 그대로 둘이서 눈이 딱 마주치면 그냥 거기서 입부터 맞추었다. 그런 식으로 육체관계에만 빠져들다가 모든 걸 그르칠 뻔했다.
그때 그것 때문인지 성수동에서 살기 시작할 때는 처음부터 황경호가 엄청 경계를 했다. 첫날 짐 정리 다 하자마자 계약서부터 들이민 것을 생각해보면 그가 얼마나 경계심이 바짝 솟아 있는지 보였다.
이제 두 달 정도 지나니 익숙해진 것인지 경계심이 좀 가라앉은 것인지 아니면 강동현에게 조금 믿음이 생긴 것인지 간혹….
“아아앙…. 거기 더 해줘…. 아앙…. 더 깊이….”
“안, 윽, 아파?”
“안 아파….”
황경호는 눈물을 주륵 흘리며 아찔하고 야한 얼굴을 했다. 그리고 입술을 떨면서 말을 이었다.
“네 거 너무 좋아….”
“아…! 젠장…!!”
깜짝 놀라서 못 참고 사정하기 시작했다. 자지가 폭발하는 것 같다. 강동현이 컨트롤을 잃으니 황경호가 강동현의 어깨를 두 손으로 잡고 스스로 엉덩이를 흔든다. 강동현은 진짜 죽는 줄 알았다. 이래서 황경호가 갈 때 강동현이 더 움직이는 걸 싫어한 모양이었다. 황경호는 자기가 경련을 할 정도로 오르가즘을 느낄 때까지 엉덩이를 흔들었다.
“아으…. 하으으…. 으읏…. 으….”
황경호는 강동현의 위에서 심하게 경련을 하며 온몸을 떨었다. 온몸이 붉어져선 심각할 정도로 야한 얼굴로 엉덩이를 조여대며 움찔움찔 몸을 떨었다. 이런 걸 강동현 이전엔 한 번도 안 해봤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강동현도 많은 사람들이랑 해본 것도 아니었고 섹스에 대해선 다른 사람들 정도로만 안다고 생각해왔지만 확실히 말할 수 있었다.
그는 정말 ‘잘했다’.
한참 그렇게 느끼다가 강동현의 위로 쓰러졌다. 좀 그렇게 있다가 갑자기 줄줄 운다. 그리고는 멍하니 있으면서 강동현을 끌어안으며 냄새를 맡았다. 강동현은 그의 등허리에 팔을 얹고 크게 헐떡거렸다. 또 강한 확신이 들었다. 강동현은 분명히 황경호랑 하다가 죽을 것이다.
삼성동에 살 때도 둘은 참지 못했다. 특히 강동현은 영 참지를 못했다. 안 보면 보고 싶고 보면 하고 싶었다. 이번에는 원체 상대가 방어력이 높아서 좌절했던 적이 많으나 점점 더 느끼는 걸 참지 못하고 이러는 걸 보니….
‘완전 좋다…. 죽을 거 같다…. 최고다….’
세상에 이보다 더 만족스러울 수 있을까. 강동현은 이 정도 생각이라도 할 수 있을 정도의 정신이 되자 그가 좋아서 미칠 것만 같았다. 그래서 꽉 끌어안고 무드도 뭐도 없이 그의 얼굴에다가 입을 마구 맞추었다. 영원히 그의 안에서 나오고 싶지 않았다. 이대로 그냥 죽어버려도 좋을 것 같다.
그가 좋다. 소중하다. 사랑스럽다.
그를 껴안고 마구 지분거리다가 어느새 옆으로 누웠다. 상대와 눈이 마주친다.
“…….”
“…….”
아…. 뭐가 이렇게 좋은 걸까.
평소에 활짝 웃고 있는 얼굴일 때는 사실 그가 어떻게 생겼는지 자세히 볼 수 없다. 강동현에게 벽을 세우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그는 필요 이상으로 너무 경직이 되어 있다. 얼굴이 근육이 자연스럽게 풀려서 의외로 선이 섬세하고 예쁘장한 그의 얼굴을 보고 있자면….
‘콩깍지인가?’
강동현은 괜히 그의 코를 깨물었다. 그게 뭐라고 상대는 마음 상한 얼굴을 한다. 귀엽다. 강동현은 그를 다시 끌어안았다. 그의 이마에 입술을 누른 채 그를 위에 태우고 끌어안고 있다. 그가 강동현의 허리 부근을 손으로 짚었다.
“이제 좀 빼….”
황경호가 그렇게 말했다. 강동현은 약간 심술이 나서 그를 그냥 더 꽉 끌어안았다.
“이대로 자자. 응?”
강동현이 그렇게 속삭였다. 황경호는 얼굴이 빨개졌다.
“미쳤어?”
“뭐가.”
살짝 애교를 부리듯 올려다보자 황경호가 인상을 팍 썼다. 강동현은 아주 약간만 더 심술을 부리고 싶어졌다. 그래서 그의 허리를 잡고 슥슥 몇 번 더 움직여버렸다.
“아앙…! 힉…!”
황경호의 단호한 표정이 단숨에 무너지더니 바로 야시시해진다. 강동현은 그러고 주르르륵 그의 것을 뽑아내었다. 그의 구멍은 언제나처럼 바로 닫혔지만, 본인은 아까의 섹스보다 이게 더 심하단 기분인지 울그락붉으락해졌다. 한 대 때린다.
강동현은 순간 한 번 더 할까? 라는 욕망이 일었지만 참았다. 그리고 그가 도망 못 가게 다시 꽉 끌어안았다. 그리고 이불을 가져와 서로의 몸을 덮었다.
“자자.”
“…….”
그는 잠은 따로 자고 싶은지 섹스가 끝나면 쭉 자기 방으로 돌아가곤 했다. 특히나 자기 방이 있으니 더 그러는 거 같고. 근데 요새는 꽤 같이 자준다. 강동현은 그의 엉덩이 한쪽을 손으로 쥐고 한 손으론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그의 몸에서 곧 힘이 풀린다. 그리고 강동현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는 곧 잠이 드는 게 느껴졌다. 강동현도 곧이어 잠이 들었다.
“와…. 도, 아니 강동현 연애설 떴네.”
정기연이 밥을 먹고 커피를 한잔하며 휴대폰을 잠깐 보다가 그렇게 말했다. 황경호는 풉 하고 커피를 조금 뿜었다. 황급히 티슈로 입을 막고 닦았다. 황경호는 남들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슬그머니 휴대폰을 들었다.
‘설마 걸리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지금도 시간이 나면 맛있는 걸 먹으러 교외에 나가거나 바다를 보러 가거나 하는 데이트는 하고 있었으나 아무래도 강동현이 톱스타다 보니 밖에서 호텔 같은 데는 좀 가기 그렇다. 아무리 남자라지만 이렇게까지 줄창 데이트 코스를 다니면 사람들이 의심할지도 모른다. 걸릴 만한 건 집에서만 했지만, 또 모른다….
‘그럼 큰일 나는데….’
황경호는 침을 삼키며 강동현의 팬 커뮤니티에 들어갔다.
<강동현 ♡ 한빛나, 궁합도 안 본다는 4살 차이>
<강동현의 그녀, 한빛나는 누구?>
…
이미 팬 커뮤니티 안은 난리다. 황경호는 가만히 타이틀들을 보고 있다가 하나를 눌렀다.
<…S전자 광고 촬영을 통해 가까워진 두 사람은…. 보기 드문 선남선녀로 둘 다 키가 커서 모델포스를 자랑…. 두 소속사는 아직 답이 없어…>
둘이 어디서 찍혔는지 모르나 낮에 커다란 유리창의 너머로 웃으면서 식사를 하고 있는 사진들이 왕창 있다. 그림으로 그린 것같이 잘 어울리는 한 쌍이다.
귀가 화끈하다.
“그래도 확실히 돈 있고 얼굴 되는 남자라서 그런지 낫는다 싶으니까 바로 여자 붙네. 하긴…. 안 붙는 게 이상하지.”
넘겨짚은 것도 쪽팔리긴 한데 의외로 정기연의 말도 듣자마자 확 하고 온다. 그 말이 새로운 게 아니라서 더 그랬다. 황경호도 항상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말이다. 그는 여자한테 안 되니까 황경호에게 그러기 시작한 거였다. 여자한테 다시 되기 시작하면 모르는 거다.
‘아니, 모르는 게 아니라….’
황경호는 걷잡을 수 없이 쪽팔림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 온몸이 빨개지는 게 느껴져서 얼른 화장실로 도망가야 했다.
그래…. 그랬지…. 깜박할 게 따로 있지….
요새 좀 정신을 놓고 살았다. 그와 섹스할 때마다 말실수나 잔뜩 하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막 조르고….
정신이 번쩍 든다. 지금이야 강동현의 집을 내 집처럼 생각하면서 살아도 사실 그게 언제까지 그럴 수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었다. 그가 그렇게 황경호를 원해 오는 것도 언제까지 그럴지 모르는 일이다.
그가 아무리 지금은 좋다 좋다 한다고 해도…. 정말로 아무도 모른다. 사람의 일이라는 게…. 그래서 너무 익숙해지면 안 된다고 누차 생각을 하고 또 했었는데 결국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익숙해지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지금 성수동의 집은 들어갈 때부터 황경호의 마음에 드는 집으로 결정하고 인테리어, 가구 등을 전부 다 황경호의 취향으로 맞춘 것이었다. 그때까지 있는지도 몰랐던 황경호의 취향대로 말이다. 황경호는 자신이 취향대로 살 수 없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취향이라는 것 자체를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는 것을 그때, 그 수많은 카탈로그들을 상대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가끔 기분 전환이나 하겠다고 원룸에서 벽지를 바꾸거나 정리를 하는 건 그저 생존을 하기 위한 최소한이었을 뿐이지 가타부타를 말할 수 없는 정도였다는 것도.
사는 것도, 먹는 것도 전부 ‘원하는 것만’ 선택할 수 있는 삶은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것이 좋다는 기분보다는 그렇게 하는 게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깜짝 놀랄 수밖에 없는 그런 면이 있었다. 왜 이렇게 안 살았을까? 못 살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면 일견 섬뜩하기까지도 했다. 이런 걸 좋아한다는 것조차 몰랐다. 좋을 수 있다는 것조차도 모르고 살았다. 그래서 그렇게 살 가능성마저도 박탈당했다.
그러니까 여전히 강동현은 돈으로 황경호를 낚고 있다.
누군가가 다른 이에게 호감과 환심을 사고 싶다면 당연히 그에게 잘해주고 좋은 것을 줄 것이다. 그러니까 강동현이 황경호에게 자꾸 무언가를 주려고 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것을 그냥 받기에는 황경호는 생각이 많았다. 원래부터도 잘 맞지 않는 두 사람이었다. 나중을 생각한다면 그에게서 무작정 많은 것을 받는 것은 현명한 짓이 아니었다. 그래서 강동현이 준 갈색 봉투에는 여전히 손도 대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주는 건 그런 직접적인 물질만이 아니었다.
매일 아침 햇살을 맞으며 일어날 수 있는 방, 계절이 한눈에 보이는 거실, 물과 하늘의 파랑과 나무와 풀의 녹색이 가득한 창문, 신선하고 좋은 음식, 얼굴이 환한 사람들, 정중하고 존중받는 느낌.
강동현이란 남자 자체는 처음부터 황경호에게 이끌림을 느끼게 했지만 이런 것들이야말로 황경호를 그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족쇄가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강동현이란 남자는 자기한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가차 없어질 수 있는 그런 놈이었다. 매달리거나 그러는 게 소용이 없는….
‘아니, 매달리긴 누가 매달려. 안 매달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스캔들이 사실이든 아니든, 황경호는 정신이 확 환기되는 기분이었다. 뜨뜻미지근한 머릿속에 차가운 바람이 훅 들어왔다. 다행이라는 생각마저도 들었다. 그러고는 잠시 뒤 슬슬 걱정이 된다.
‘역시 따로 집 정도는 있는 게….’
짐도 버릴 수 있을 만한 것만 두고 나머지는…. 하긴 못 버릴 만한 것도 별로 없나? 거의 다 새로 산 거고…. 황경호는 물건 몇 개 정도는 차라리 병원에 두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곰곰이 머릿속으로 리스트를 작성했다. 그리고 다시 일행에게 돌아왔다가 아직 지우지 않고 두었던 어플을 열었다.
‘아, 진짜 돈 없다….’
황경호는 원룸을 알아보는 어플을 둘러보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돈이 안 되고 돈대로 하자니 집이 마음에 안 든다. 게다가 이제는 예전의 기준대로 집을 들어간다고 해도 과연 괜찮게 살 수 있을지 슬그머니 의문이 들었다. 그랬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냥 사는 거지.’
고작 몇 달 산 거 가지고 엄살이다.
*
스캔들에 뜬 사진은 일전에 S전자 담당자와 미팅을 할 때의 식사 장소였다. 옥미현도 같이 있을 때였다. 이건 정정보도를 내면 되긴 한데…. 이번 건은 정치적 이슈가 터지면 으레 연예인 스캔들 가지고 사람들의 주의를 돌리는 관례 같은 것이었다. 한국팬들이야 원체 이런 것에 익숙하니 정정보도를 내면 금세 해결이 되지만 외국 팬들은 그게 안 되는 게 좀 문제긴 한데 또 거기는 연예인들 사생활에 관대한 편이라 또…. 골수팬들이야 한국이든 거기든 정보에 빠삭하니 괜찮을 것이다. 그래서 문제는 그쪽이 아니라….
“최 기자, 진짜 이럴 거야?”
옥미현이 담배를 뻑뻑 피우면서 전화를 걸고 있었다. 강동현과 강동현의 매니저도 앞에 앉아 있었다. 모두 흡연자라 전부 담배를 물고 있다. 강동현은 요새 차츰 끊고 있어서 하루 2~3개비만 피우고 있었는데 오늘은 벌써 반 갑째다. 그는 인쇄가 된 기사의 전문을 읽고 있었다. 아직 인터넷이 안 뜬 것이다.
<강동현, 30대 미모의 재벌女스폰서 만나나>
“…….”
이건 분명히 이 기사는 내기 위해서 쓴 게 아니다. 돈을 뜯어내려고 하는 것이거나 아니면 다른 목적이 있어서 더 자극적으로 쓴 것이다. 저녁을 먹는 사진이나 차를 같이 탄 사진도 찍혀 있었다.
“최 기자 무슨 백 믿고 이러는 건데? 뒤에 누구 있길래 이래. 박 사장 무서운 사람이야. 어? 아니, 한국에서 1, 2년만 살다가 말 거야? 왜 이래? 차라리 돈을 불러.”
이 기사는 한빛나랑 난 스캔들과는 차원이 다른 기사였다. 스폰서라니. 사생활을 철저히 관리(황경호 제외)하는 강동현에게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이것도 하던 사람이나 해야지 강동현은 원래 그런 거 해본 적도 없는 데 된통 걸린 것이다. 게다가 S전자 사장 딸이랑 만나는 사진이 찍혔는데 S전자 광고도 하겠다…. 물론 이제 강동현의 네임밸류라면 S전자 광고 촬영이 이상할 건 전혀 없었지만 이런 자극적인 헤드라인에 묶이면 사람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었다. 하도 정치적 이슈를 묻기 위해 연예 스캔들을 내밀다 보니 점점 더 자극적이고 유명하고 파급력이 큰 연예인이 필요한 것이다. 잘못 걸렸다.
옥미현은 기자와 얘기를 하고 끊고는 곧바로 S전자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신 기사 받았어? 어쩔 거야, 지금! 당신 때문에 우리 강 배우만 피 보게 됐잖아!!”
옥미현이 전화기에다 대고 엄청나게 화를 냈다.
“뭐! 뭐 어떻게 보상할 건데! 당신 선에서 이 기사 절대 못 나가게 해. 알았어? 나 당신 집이고 회사고 찾아가서 다 엎어버린다. 어? 내가 못 할 거 같아? 나오기만 해봐! 당신 한국에서 얼굴도 못 들고 다니게 만들어 줄 테니까!!”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는 전화를 끊었다. 그녀는 한숨을 푹 쉬면서 사무실 카우치에 앉았다. 담배를 하나 더 물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 도 이사. 내가 어떻게든 할 테니까. 이번 일은 진짜 미안하게 됐다. 내가 이 인간이랑 엮이면 되는 일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또.…. 후….”
계속 기사를 업데이트하니 곧 한빛나와의 스캔들은 사실무근이라는 양 소속사의 보도가 나왔다. 광고 촬영을 위한 사전 미팅이었으며 다른 사람들도 함께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저쪽 소속사 입장에서도 이런 식으로 노이즈 마케팅 한 번 하여 한빛나의 인지도를 올렸으니 나쁠 것은 없을 것이다. 대신에 이쪽에서 배우 단속 좀 하라고 경고를 하기는 했다.
“지금 새 대통령 후보라도 뜰 모양이야. 연예 기자들 돈 벌려고 묵혀놓고 있던 기사들 엄청 꺼내는 모양인데…. 아, 씨발. 잘못 걸렸다.”
“…어차피 XXX 스캔들급 아니면 묻기도 힘드니까 이러나 보네요….”
“아니, 다른 것들은 그렇게 대고 다녀도 안 쓰더니만 최 기자 이게 미쳤나, 진짜…. 정권은 5년이지만 S전자는 몇십 년을 더 갈 텐데. 진짜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지.”
옥미현이 미간을 손으로 주물렀다.
“박 사장 그 남자 못 하는 거 없는 사람이니까 걱정하지 마…. 자기가 부탁한 일 때문에 남 어그러지는 거 놔둘 사람도 아니고 자기 사람 다 챙기는 스타일이니까…. 나중에 인사는 한번 해라. 소개해줄게. 아마 앞으로 잘해줄 거야.”
“네….”
분위기가 안 좋았다. 이 바닥은 아무리 잘나가도 한 방에 나가떨어질 수도 있는 곳이었다. 게다가 한 번 나빠진 이미지는 계속해서 말이 나온다. 강동현이 괜히 그 성격에도 몸 사리고 사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일단 계약된 거 말고 미팅은 다 취소할 테니까 당분간 조용히 있어.”
“네….”
어차피 이런 기분으로 막 노는 성격도 아니다. 강동현은 잠금을 푼 업무용 휴대폰을 옥미현한테 줬다. 한빛나도 박은서(S전자 사장 딸)도 거기서 다 난리였다. 옥미현은 그걸 받아서 내용을 확인하다가 문득 물었다.
“박 사장 딸이랑 진짜 별일 없었지?”
“진짜 그 여자랑은 레스토랑에서 밥 한번 먹은 게 끝이에요. 차 따로 타고 왔는데 와인 한잔하고 자기 차 못 끈다고 하길래 데려다줬고요.”
“그래….”
옥미현이 미적지근한 반응을 하자 강동현이 인상을 팍 쓰며 말했다.
“그리고 저 지금 만나는 애랑 진짜 좋아요. 저 한 명한테만 올인하는 거 아시잖아요.”
“그래. 그렇지. 알겠다. 이번 건은 진짜 미안하다.”
옥미현이 그렇게 말했다. 그녀가 책 잡힐 거리를 처음에 줬다는 것은 알지만 그래도 그녀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 그러기엔 역시 서로 의리가 있었다. 강동현은 그녀를 믿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괜찮다고 대답했다. 옥미현은 담배 하나를 또 물고는 불을 붙이고 약간 화제를 전환했다.
“그 만나는 애는? 걔는 걸릴 건덕지 없어?”
“없어요.”
강동현이 말했다. 어차피 같이 사는 거 걸려도 친구라고 하면 끝나는 일이었다. 그 이상은 누구도 못 캔다. 옥미현이 다시 물었다.
“확실해?”
“네. 밖에서 데이트 거의 안 해요.”
“그래…. 알겠다. 가서 쉬어라. 김 매니저 당분간 집까지 항상 좀 같이 가줘라.”
“네.”
지금은 거의 광고 촬영만 하고 있는 강동현이었다. 휴식기에 들어가기 전에 하필 이런 게 터진다. 스캔들이 터지고, 또 갑자기 최 기자에게 협박을 받으면서 꼬박 사흘을 회사에 있었다. 사건이 진행되는 걸 보느라 거의 잠도 못 잤다. 강동현은 간만에 컨디션이 바닥을 치는 것을 느끼며 집으로 갔다. 차가운 겨울비가 오고 있었다.
‘병원 가자, 병원….’
퇴직을 앞둔 50~60대 아저씨처럼 그냥 뜨끈한 데 누워서 침이나 맞고 싶은 기분이었다. 집에 들어가니 새벽 한 시다. 거실에 주홍빛 조명이 켜져 있다. 같이 사는 사람이 창문 앞에 앉아서 밖을 보고 있었다.
“아, 왔어….”
황경호는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동현은 그냥 무작정 가서 그를 끌어안았다. 그는 움찔하더니 잠시 뒤에 강동현의 두 팔을 감싸 잡았다.
“피곤할 텐데 씻고 빨리 자.”
“넌 안 자고 뭐 하는데? 아직도 잠 잘 못 자는 거야?”
강동현이 약간 피곤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냥 오늘은 잠이 안 와서….”
“오늘 내 방에서 같이 자자.”
“…….”
“손만 잡고 잘게.”
강동현이 장난스럽게 말하며 눈을 마주쳤다. 황경호는 어쩐지 난감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강동현은 그런 그가 좀 귀여웠다. 그의 뺨에 입술을 묻었다. 그의 냄새를 맡았다. 조금 기분이 좋아졌다. 피곤해서 엄청 하고 싶다는 기분은 아니었지만 그와 피부를 맞대고 싶었다. 그를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강동현은 손을 쑥 그의 티셔츠 안으로 넣었다. 그가 강동현을 밀어냈다.
“아….”
“왜?”
강동현은 그의 뺨을 좀 빨다가 밀려서 의아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 황경호는 그런 강동현을 올려다보면서 입을 뻐끔거리다가 고개를 돌렸다.
“너 담배 냄새 엄청 나….”
“아, 진짜?”
강동현은 자기 옷의 냄새를 맡아보았다. 많이 난다. 얘 진짜 이런 면은 어쩔 수 없는 건가…. 결벽증…. 강동현은 분위기를 깨는 황경호의 말에 약간 한숨을 쉬었다가 옷부터 벗으며 그를 보았다.
“빨리 씻고 올게.”
“…….”
황경호는 손등으로 자신의 뺨을 닦았다. 강동현은 얼른 옷을 훌훌 벗고 욕실로 들어가서 최대한 빠르고 최대한 깨끗하게 씻고(담배 냄새는 잘 안 빠지니까 두 번 비누칠 했다) 나왔다. 거실에 그가 없었다. 그래서 그의 방으로 갔더니 그가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씻고 났더니 노곤함이 좀 가시고 개운해졌다. 강동현은 그대로 그의 침대로 올라갔다.
“물 떨어지잖아.”
황경호가 강동현의 수건으로 그의 머리를 감쌌다. 보니까 황경호도 샤워를 또 한 모양이었다. 아까 안 씻고 만졌던 게 그렇게 찝찝했던 걸까나. 뭐, 얘 원래 이렇지. 강동현은 아무래도 상관이 없었다. 그가 머리를 닦아주는 걸 놔두며 곧바로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읍….”
근데 또 밀어낸다. 강동현은 약간 얼굴을 붉히며 좀 조급한 얼굴을 했다. 그렇게 하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계속 밀어내니까 좀…. 역시 그의 피부를 느끼고 싶었다.
세상 뭐가 잘못 돌아가도
좀 성가시고 안 맞더라도
이제 정말 ‘내 거’다.
“많이 피곤해? 빨리 한 번만 하자.”
강동현이 졸랐다. 황경호는 가만히 강동현의 얼굴을 보았다. 강동현은 그의 표정을 읽지 못했다. 정말 피곤했으니까 말이다. 강동현은 그 잠깐의 틈을 참지 않고 그냥 다시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그를 끌어안았다. 그의 옷을 벗겼다. 본인은 애초에 속옷만 입고 온 거라 단박에 알몸이 되었다. 강동현은 그를 침대에다 눕히고 서랍에서 젤을 꺼냈다. 황경호는 약간 황당한 얼굴이 되었다.
“여기도 넣어 놨어?”
“응? 어. 왜?”
“아니….”
강동현은 곧바로 황경호의 음부에다 젤부터 잔뜩 넣었다. 그리고 손가락을 처음부터 두 개를 찔러 넣었다.
“아…! 잠깐만…. 으읏…!”
정말 러브젤을 만든 사람에게 상이라도 주고 싶다. 그의 몸은 언제든 끝내줬지만 처음이 정말 힘든데 그걸 이게 간단하게 해결해줬다. 일단 뭐가 어떻든 들어가게는 해줬다. 강동현은 핑거링을 빨리 끝내고 자신의 남성기를 푹 박았다. 반쯤 쑥 들어간다.
“윽….”
황경호가 온몸을 확 붉히며 얼굴을 가로 돌렸다. 강동현도 인상을 찌푸리며 신음을 흘렸다.
“너무 조여…. 윽. 힘 좀 풀어.”
“아으…. 잠깐만…. 아파…. 으…. 빼줘…. 윽….”
뭔가 더 조인다. 강동현은 일단 그의 말대로 천천히 자지를 그의 음부에서 빼냈다. 황경호가 얕게 한숨을 쉬었다. 강동현은 그를 뒤집어서 엎드리게 했다. 그리고 젤을 그의 엉덩이에 더 넣고 자기 자지에도 잔뜩 바르고는 다시 뒤에서 집어넣었다.
“아아…. 으….”
강동현은 한 손으로 그의 가슴을 쥐고 다른 손으로 그의 허리를 잡았다. 황경호는 그가 슬슬 움직이기 시작하자 침대 시트를 꽉 쥐며 허리를 뻣뻣하게 긴장했다. 자세가 유달리 부끄럽다. 개가 교접하는 것 같다.
“으읏…. 으…. 아앗…. 아아…. 잠깐만…. 천천히…. 천천히 해줘…. 아으….”
그의 피부에서 땀이 잡혔다. 강동현은 그의 말대로 조금 천천히 했다가 그의 음부가 좀 적응을 하자 다시 속도를 올렸다.
“안 돼…. 으응…. 읏…. 천천히 하라니까…. 아욱…. 으…. 아아…. 으응…. 흐읏….”
오랜만이라서 그런지 몸이 영 뻣뻣하다. 밤도 늦었고 피곤할 것이다. 강동현은 빨리 끝내야겠다고 생각하며 그의 허리를 잡고 있던 손으로 침대를 짚은 황경호의 손을 잡으며 그의 등에 몸을 가득 붙였다. 그리고 그의 뺨을 깨물었다.
“빨리 끝낼게. 하아…. 야한 소리 좀 내봐. 응?”
“으응…. 흐읏…. 뭐라는 거야…. 응….”
“요새 잘하잖아…. 더 찔러달라든가, 기분 좋다든가, 내 거 좋다든가…. 뭐 그런 거….”
강동현이 그의 귀에다 속삭였다. 맞닿은 그의 뺨이 엄청 뜨거워졌다. 부끄러운가 보다. 강동현은 그런 그가 귀여워서 웃음이 나왔다. 그의 뺨과 귓가를 입술로 지분거리면서 그의 젖꼭지를 주물렀다.
“하으으…. 으응…. 만지지 마…. 아앗…. 흑…. 아아앙….”
그리고 그 손으로 가슴을 타고 그의 목덜미와 턱까지 느른하게 쓰다듬었다가 다시 내려가 그의 가슴, 배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가 민감하게 반응하며 몸을 떨었다. 그의 성기를 부드럽게 애무하고 허벅지까지 쓰다듬었다가 다시 올라와서 가슴을 쥐었다.
“흐앙…. 아앙…. 흑…. 아앗…. 아앙…. 흐응…. 으으응….”
결국 잘 느끼기 시작했다. 그의 음부가 부드럽게 움찔거리는 게 강동현과 딱 박자가 맞았다. 그가 천천히 침대에 납작 엎드렸다. 옆으로 돌린 얼굴을 보니 눈을 감고 느끼고 있었다. 강동현은 그의 가슴과 성기를 손으로 쥐었다.
“아아앙…! 흑…. 아우…. 싫어…. 흑…. 아…! 싫어…. 만지지 마…. 하으응…! 하…. 하아…. 안 돼애….”
“뭐가 싫어…. 윽…. 하…. 요새 이렇게 하는 거 좋아하잖아.”
“아…. 아아…. 아아아…! 진짜 안…. 아…!! 하아아아아…….”
황경호의 신음이 끊어지면서 길게 한숨을 쉬면서 갑자기 축 늘어졌다. 그의 음부가 엄청 확장되었다. 끝까지 훅 들어간다. 분수를 터뜨리며 오르가즘을 심하게 느끼기 시작했다. 강동현은 그대로 피스톤질을 꽤 빠르게 퍽퍽퍽 박다가 그의 안에 사정했다. 엄청난 사정감과 배설감을 느끼며 섹시한 신음을 흘렸다. 한참 동안 아찔한 쾌락을 유영하다가 기절하듯 잠들었다.
성수동으로 이사 오고 난 이후로 밥도 잘 먹고 운동도 잘하고 마사지도 받으러 다니는 등 평생 생각도 못 해본 호강을 누리고 살았다. 건강에 크게 문제가 있는 체질은 아니라서 별생각이 없었는데 한 번 이런 걸 누려보니 컨디션이 정말 좋아진 게 몸과 마음으로 느껴졌다. 아무리 젊다 하더라도 이런 기본적인 게 중요한 것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먹는 것과 운동. 앞으로 어떻게 되든지 간에 관리를 좀 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후….”
하지만 오늘은 컨디션이 안 좋았다. 근래 좀 신경 쓸 일도 있었고 어제 비가 와서 기분도 좀 센티멘탈했고 거기에 강동현이 밤늦게 갑자기 덮치기까지 하니 확실히 오늘은…. 온몸에 근육통이 돌고 속도 메슥거리고 머리도 아팠다.
그렇다고 병원을 빠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칼같이 출근을 하고 여느 때처럼 열심히 일을 했지만…. 정말 오늘따라 시간이 지지부진하게 흘렀다. 그렇게 시간을 억지로 보내고 보내다가 드디어 마지막 상담 환자를 상담실로 불렀다. 이것만 하면 끝이다.
하지만 언제나 마지막 고비가 가장 힘든 법이다.
“그러니까 발….”
“아니, 일단 내 말 좀 들어봐. 내가 스트레스 때문에 그런 거라고. 스트레스 때문에. 못 세우는 게 아니라니까? 그럴 때는 여자가 배려도 좀 해주고 그러면 좋잖아? 가끔 색다른 데서 하면 나도 좋고 자기도 좋고 그런 거 아니야? 그거 좀 하자고 했다고…. 아니, 자기도 좋다고 따라올 때는 언제고 왜 또 안 한대? 욕은 왜 해? 나 진짜 여자들 이해 안 된다? 왜 이러는 거야? 황 간호사가 설명 좀 해봐.”
발기부전 중년 남자 버전 답정너였다. 황경호는 어떻게든 평범한 상식선에서 말하려고 노력했다.
“사람들한테 들키면 창피할 수도 있고…. 그리고 일단 직장에서 그러신다는 게….”
황경호가 조심스럽게 그렇게 말했지만 환자는 콧방귀를 꼈다.
“아, 거참 말귀를 못 알아듣네, 황 간호사도. 처음이 아니라니까? 벌써 그 회사 화장실에서 몇 번을 했는데 인제 와서 부끄럽대? 황 간호사는 그게 이해가 돼? 그때까지 내내 나랑 떡 치다가 왜 이제는 싫대? 좋다고 달라붙을 때는 언제고. 꼭 밝히는 애들이 한 번씩 자기 싸 보일까 봐 튕겨요. 귀찮게.”
“…….”
“솔직히 보지 달고 태어난 거 그게 무슨 대단한 거라고 진짜. 금테 둘렀나. 여자가 자기밖에 없는 줄 알아요. 내가 지금까지 저한테 갖다 바친 게 얼마고 비위 맞춰준 게 얼만데 내가 좀 지금 안 좋으니까 바로 태세전환 하는 거 봐. 내가 뭘 그렇게 힘들게 했는데? 차에서 좀 하고 화장실에서 좀 했다고 죽어? 죽냐고? 내가 자기를 때리기를 했어. 뭘 했다고 지랄이야?”
“…….”
앞에서는 이렇게 말도 못 하는 주제에 만만한 병원 간호사한테 화풀이를 하는 것이다. 뭐…. 이런 환자가 한둘은 아니다만, 오늘은 유달리 피곤하다…. 황경호는 약간 한숨을 쉬고는 조용히 말했다.
“다른 분 찾을 수 있으시면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색다른 자극이 있으시면 발기하신다니 상대를 바꾸시면 더 잘 되실 수도 있으실 것 같고요.”
황경호는 본인이 그 여자도 아닌데도 뭔가 체념하는 기분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환자는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는 얼굴로 황경호를 쳐다보았다.
“내가 걔한테 갖다 바친 게 얼만데 본전은 찾고 나서 뭘 바꾸든가 해야지. 내가 지금 여자가 없어서 이래? 걔보다 훨씬 어리고 예쁜 애도 줄을 서, 내 스펙이면. 그래도 본전은 찾고 바꿔야지. 황 간호사가 아직 어려서 순진하네.”
“…….”
이런 게 자기 자신은 물론이고 남까지 먹여 살릴 수 있을 정도로 재력을 갖춘 남자들이라면 으레 하는 생각일까. 황경호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본전….”
“그래. 그게 투자의 기본이지. 워렌 버핏의 투자 원칙 뭔지 몰라? 첫 번째, 돈을 잃지 않는다. 두 번째, 첫 번째를 반드시 지킨다.”
“애인분 좋아하신다고 그러셨지 않으세요…. 전에….”
그러니까 또 중년 환자는 말이 안 통한다는 얼굴을 했다.
“내가 언제 걔가 싫대? 걔 정도 젖통에 엉덩이면 먹어줄 만하니까 데리고 다니는 거 아니야. 나 엄청 좋아해, 그런 거.”
황경호는 할 말이 없어서 말을 찾다가 포기했다.
“네….”
이건 좋아하는 것도 아니다. 황경호는 그렇게 생각했다가 마음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분명히 이렇게 말해봤자 상대는 절대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차라리 이 정도라도 솔직하게 말해준다면 상대도 알아서 거를 것이 아닌가. 전부터 얘기를 쭉 들어보니 오랜만에 마음 맞아서 또래랑 연애하게 되니 좋다며 말하던 아저씨가 이제는 있는 대로 애인 욕을 하고 있는 것을 보니(그것도 그녀의 잘못이 아닌 것으로) 황경호가 그 여자도 아닌데 괜히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이러면서 그 여자분 앞에서는 온갖 비위를 맞추겠지….’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본전. 섹스.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 황경호는 이제 강동현과의 섹스에서 수치감과 우울감이 많이 줄어들고 안정감을 많이 느끼면서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황경호는 그저 마음속으로 그 여자를 응원했다. 그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 변태 아저씨 돈이라도 왕창 뜯어가셨으면 좋겠다, 그분….’
그렇게 일을 끝내고 황경호는 어쩐지 집에 들어가기가 싫어서 오랜만에 김태형네 가게로 갔다.
“경호, 오랜만에 왔네.”
“응, 형. 잘 지냈어?”
“잘 지냈지.”
이제 정말 연이 깊어진 사람들이라 꽤 오랜만에 왔는데도 자연스러웠다. 황경호는 거기에 안정감과 편안함을 느끼며 자리에 앉았다. 괜히 아저씨들이 이런 단골 가게를 만드는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밖에 비 안 와?”
“왔다가 그쳤다가 그러네.”
겨울비가 애매하게 끈덕지다. 황경호는 자리에 앉았다. 김태형은 황경호의 앞에 세팅을 해주면서 말했다.
“여행 갔다 와서 봤을 때는 컨디션 엄청 좋더니 오늘은 좀 안 좋네? 감기라도 걸렸어?”
“어? 그렇게 티 나?”
황경호가 자신의 얼굴을 만져 보았다.
“그냥 아는 거지. 따뜻한 국물 있는 걸로 해줄게. 비까지 오는데 감기몸살 조심해. 안 그래도 병원에서 일하는 애가.”
“응….”
고맙다…. 황경호는 오랜만에 김태형과 이신현과 술을 한잔 걸치다가 11시쯤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가니 강동현이 있었다. 강동현은 황경호를 보자마자 화를 냈다.
“너 어디 있었어? 왜 전화를 안 받아?”
“아…. 전화했어?”
황경호는 그제야 휴대폰을 확인해보았다. 병원에서 나온 이후로 무음 모드를 해제하지 않았다. 부재중 전화 몇 통과 메시지들이 와 있는 게 보였다. 뭔가 이유 없이 부채감과 죄책감이 느껴진다. 강동현은 거기서 더 화를 낼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지만 약간 뚱한 얼굴로 황경호를 보았다.
“일찍 들어와. 나 당분간 거의 일 안 나가니까.”
강동현의 말에 황경호가 약간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
“무슨 일 있어? 스캔들은… 해명기사 난 건… 봤는데….”
“별거 아니야. 그냥 좀.”
강동현이 그렇게 말했다. 그러니 뭐라 더 할 말이 없었다. 황경호는 주춤주춤 일단 방에 들어갔다. 어쩐지 한숨이 나온다. 그리고 자기 방에 딸린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나왔다. 거실로 나와서 강동현에게 말했다.
“그럼 나 잘게…. 잘 자.”
그러자 강동현이 부른다.
“벌써 잘 거야? 이리 와.”
황경호는 주춤했다가 카우치로 갔다. 두 뼘쯤 떨어져서 앉았다. 강동현은 그의 허리를 끌어당겨 안았다. 뺨에 입술을 묻고는 냄새를 맡았다.
“오늘 같이 자자.”
“나 내일도 출근인데….”
“내가 요새 좀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어서…. 한 번만 할게.”
“…….”
“너랑 하면 진짜 기분 좋아진단 말이야. 스트레스도 확 풀리고. 응? 한 번만.”
강동현이 황경호의 눈을 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응? 한 번만. 제발. 응?”
황경호는 그의 얼굴을 보다가 시선을 돌리고는 그냥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강동현은 황경호를 데리고 자기 침실로 갔다. 그의 옷을 홀랑 벗기고 자기도 얼른 벗고는 그를 끌어안고 침대 머리맡에 앉았다. 그를 무릎 위에 앉혀 마주 보았다. 강동현은 황경호를 위에 태우는 걸 좋아했다. 하면 한 번은 꼭 위에 태웠다. 그리고 황경호의 입에 입을 맞추었다. 음부에 러브젤을 잔뜩 넣어 핑거링을 하며 그의 가슴을 빨고 목덜미나 뺨을 지분거렸다. 그리고 더 젤을 넣고 삽입했다.
“하으읏…….”
황경호는 허리와 엉덩이를 확 긴장하며 파르르 떨었다. 강동현의 어깨와 팔을 잡은 손에 땀이 잡혔다. 긴장이 잘 안 풀렸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말자….’
어차피 해야 할 거…. 황경호는 심호흡을 하면서 최대한 몸을 풀려고 노력했다. 강동현이 또 더 밀어 넣자 몸서리를 쳤다.
“하으…! 잠깐만…. 아우…. 앙…. 더 넣지 마…. 아아….”
강동현은 그대로 반쯤만 박고는 넣었다 뺐다 움직이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황경호가 적응할 때까지 기다리기라도 했지만 이제는 젤 때문에 삽입부터 움직이는 것까지 전부 쉬워져서 전혀 기다리지 않았다. 황경호도 잘 느꼈고 말이다.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아는지는 모르겠다.
“으읏…. 하응. 앙…. 흑…. 아으으….”
찍찍찍. 첩첩. 찍. 찌익. 온몸에 식은땀이 베였다. 몸에서 긴장이 빠지지 않는데 그가 비좁은 곳을 억지로 벌려 찌르고 나가고 또 찌르고 나갔다. 뻐근하게 벌어졌다 닫혔다. 아플 것 같다. 아플 것 같은 느낌이다. 그가 마구 찔러 넣을 것 같다. 아플 것 같다. 아플 것 같다. 황경호는 손이 하얘질 정도로 그의 팔을 잡고 있다가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가 황경호의 다리를 더 벌려서 자기 쪽으로 붙인다. 황경호의 입에서 결국 애원이 흘러나왔다.
“하앙…. 천천히…. 천천히 해줘…. 아앙…. 제발…. 천천히…. 세게 하지 마…. 아플 것 같아…. 아앙…. 아우으…. 무서워…. 흐읏…. 아앙….”
“왜 그래? 응? 싫어? 젤 더 바를까?”
그의 목소리는 꽤 다정했다. 그래서 그럴까. 왜일까. 가슴이 조여든다. 기대하고 싶어진다. 그런데도 그게 세상에서 제일 바보 같은 일처럼 느껴진다. 사실 제일 바보 같은 건 자기 자신이라는 걸 황경호도 잘 알고 있었다.
황경호가 뭘 원하든 상관없이
세상일은 세상 마음대로 돌아간다
뭘 바란다고 뭐가 바뀔 수 있는가
기대 자체가 바보 같은 짓이다
그런데도 왜 강동현이랑 지금 섹스하고 있는 것일까. 섹스라는 걸 뭘까. 분명히 예전이랑 다르다는 걸 아는데도. 아니, 정말 예전이랑 다른 걸까? 섹스해주지 않으면 과연 그가 지금처럼 다정할까? 그가 원하는 걸 얻지 못하면 그도 쉽사리 오늘 그 아저씨처럼, 아니 예전처럼 화를 내고 함부로 대하고 쉽게 착취하려고 들지 않을까? 그와 섹스하는 게 예전만큼 끔찍하지도 않고 가끔 너무 황홀하기도 한데도 문득문득 불안하다. 이게 잘하는 짓인지. 후회할 만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흐읏…. 으응…. 하읏…. 빨리 싸줘…. 으응…. 빨리 안에 해줘….”
“윽…. 하하…. 네가 그런 말 하면 진짜 금방 쌀 것 같아.”
강동현이 약간 웃으면서 귀에 속삭였다. 그리고 뺨에 부드럽게 입을 맞추고 더 속삭였다.
“눈 좀 떠. 나 봐.”
황경호는 약간 주저하다가, 그와 눈을 마주쳤다. 눈을 마주치자 온몸의 근육이 수축했다가 이완되었다가 하며 움직였다. 감도가 더 민감해진다. 그래서 눈을 피했다. 강동현이 웃으면서 황경호의 뺨을 손으로 감쌌다.
“나 보라니까.”
강동현은 머리맡에다 베개를 쌓고 거기에 비스듬히 기대었다. 부드럽게 움직이면서 황경호의 입술에 쪽쪽 입을 맞추었다.
“진짜 좋다…. 좋아해. 진짜로…. 귀여워.”
“흐응…. 으응….”
강동현은 살짝 눈을 감으면서 황경호의 입술과 얼굴에 입을 맞추고 있었지만 황경호는 그의 잘생긴 얼굴에서 눈을 못 뗐다. 그가 그런 말을 하면서 자신의 얼굴에 입을 맞추니까…. 왜인지 모르겠다. 갑자기 영문 모를 황홀감이 찾아왔다. 그와 맞닿는 모든 부분에 소름이 돋았다. 오늘은 별로 가고 싶지 않은데 벌써 갈 것 같다.
“아아앙…. 만지지 마…. 아앙….”
그리고 강동현이 가슴을 엄지로 지분거리자 황경호는 깜짝 놀라서 몸을 움찔거렸다. 젖꼭지가 너무 민감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강동현의 복부와 배가 맞닿고 그의 남성기와 음부가 맞물리고 허벅지가 비벼지고…. 이 접촉감…. 피부, 목소리, 숨소리, 체취….
‘좋아…. 너무 좋아…. 기분 좋아…. 기분 좋아….’
그의 목소리, 피부, 숨소리, 손, 냄새…. 전부 너무 좋았다. 그러면서도 부끄러워서 자꾸 가면 안 되는데, 가면 안 되는데 그 생각만 했다. 부끄럽다. 지금 오르가즘을 느끼면 하면 안 되는 말을 할 것 같다. 선을 넘을 것 같다. 기대할 것 같다.
섹스라는 거 결국 그런 거잖아….
“하아앙…. 강동혀언…. 아아앙…. 거기이…. 아아앙….”
황경호의 온몸에 핑크빛이 확 돌면서 몸이 풀렸다. 삽입이 깊어졌다. 그는 강동현의 몸에 착 달라붙어서는 신음을 간드러지게 흘렸다.
“기분 좋아?”
“깊어…. 깊어…. 아아앙…. 네 거 너무 길어…. 커…. 찢어질 것 같아…. 흐아앙…. 뜨거워….”
“귀여워…. 야해. 귀여워. 키스해줘.”
황경호는 강동현의 예쁜 입술에 부드럽게 입술을 문질렀다. 강동현이 황경호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고 입술과 뺨을 엄지로 부드럽게 문질렀다. 머리끝까지 소름이 돋았다.
“어떡해…. 흑…. 아앙…. 기분 좋아….”
세상에 둘밖에 없는 것 같다. 이래도 될 것 같고, 아무래도 괜찮을 것 같다. 부끄러워도 될 것 같고 어떤 말을 해도 괜찮을 것 같다. 뭘 어떻게 해도 다 괜찮을 것 같다. 황경호는 강동현의 박자에 맞추어 엉덩이를 흔들었다. 그리고 강동현의 몸에 더 찰싹 달라붙었다. 그리고 그의 턱과 자신의 턱이 거의 마주 닿을 정도로 가깝게 얼굴을 대고 그를 느꼈다.
“후…. 으윽…. 좀 더 세게 해줄까…?”
“몰라…. 아아앙…. 몰라…. 해줘. 해줘…. 아앙….”
퍽퍽퍽. 첩첩. 찍찍찍찍. 교접하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다가 결국엔 최고 속도에 다다랐다.
“아아아아…! 아아아…!”
살을 찧는 소리가 요란해졌다. 황경호는 정신을 놓고 신음했다. 그리곤 결국 절정에 이르렀다.
“하아아아앙…!!”
그는 강동현의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을 있는 대로 주며 경련하기 시작했다.
“하으읏…! 아앗…. 아읏. 으으…. 으읏… 하으으…. 으읏…. 우으….”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마구 경련하면서 강동현에게도 끝까지 박혔다. 몸이 거의 뒤틀릴 것 같이 경련하다가 강동현이 사정을 하기 시작하자 못 참고 강동현의 어깨를 꽉 깨물며 몸을 덜덜 떨었다. 그리고 둘 다 축 늘어졌다. 몇 분 뒤 황경호는 눈물을 줄줄 흘렸다.
“흑…. 아….”
죽는 줄 알았다. 싫어. 이런 거 싫어. 제정신이 아니게 된다. 분명히 섹스를 하기 전에는 이렇게까지 할 생각이 없었다. 느끼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느끼고 또 부끄러운 꼴만 잔뜩 하는지…. 강동현은 황경호를 더 꽉 끌어안았다. 그 상태로 있다가 황경호가 겨우 고개를 들었다. 눈이 마주쳤다.
“…….”
“…….”
그러고 몇 초 있다가 강동현이 섹시하게 나른한 얼굴로 쪽 입을 맞추었다.
“왜 또 울어….”
“이런 거 싫어…. 흑…. 죽을 것 같아….”
“요새는 또 좋아하더니만….”
“아니야.”
“해달라고 할 때는 언제고…. 하여튼 은근히 까다롭다니까.”
황경호는 그의 말에 뭐라고 하고 싶었지만,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다른 말을 했다.
“이제 빼줘….”
그는 다행히도 약속대로 한 번만 하고 끝내줄 모양이었다. 그가 천천히 황경호의 몸속에서 나왔다. 황경호는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강동현이 그대로 또 끌어안고 이불을 덮으려고 하자 황경호가 그의 가슴을 밀어냈다.
“방에 가서 잘래.”
그러자 강동현이 의아한 얼굴을 했다.
“같이 자자.”
강동현은 황경호가 포옹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히려 섹스보다도 더 좋아하는 것 같아 보일 때도 많았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같이 자면서 꽉 끌어안아 주는 것도 좋아하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를 그냥 끌어안았는데도 그가 자꾸 밀어냈다.
“한 번 했잖아…. 오늘은 내 방에서 잘래.”
그러자 강동현이 좀 인상을 찌푸렸다.
“말을 왜 그렇게 해?”
“뭐가?”
“내가 너랑 하기만 하면 볼일 끝나는 사람처럼. 너 가끔씩 그러는데….”
“…….”
“하기 싫었어? 하기 싫었으면 싫다고 하지. 금방은 또 좋다고 했잖아? 근데 끝나면 이런 식으로 굴고…. 왜 자꾸 사람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
뭐랄까…. 그가 하는 말이 너무 맞는 말들이라서 할 말이 없었다. 황경호는 강동현과 눈을 마주치다가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는 작게 대답했다.
“미안….”
“사과를 하라는 게 아니라….”
또 말없이 서로의 사이로 침묵이 흐른다. 뭔가 바보 같다. 황경호는 그냥 더 이상 다투고 싶지 않았다. 다투고 싶지 않아서 아까도 그냥 섹스하기로 마음먹은 것 같은데 어째서 결국 또 이렇게 되는 것일까.
‘역시 좋고 싫고를 떠나서 그냥 안 맞는 것 같은데….’
좀 떠밀려지다시피 했지만 결국 같이 살게 되었으니 싸우지 않고 잘 지내고 싶었다. 강동현도 분명히 예전보다는 훨씬 잘 해주기도 하고 일단 싫은 짓도 안 하니까 말이다. 그리고 거기에 어떤 기대도 하지 않고, 물론 지금까지도 기대 같은 건 그다지 하지 않았지만…. 그래서 딱히 문제가 생길 게 없는데도 자꾸 삐그덕거린다. 그러면 괜히 허탈하다. 도대체 왜 이러고 있는 건지 모르겠고 죄다 쓸데없는 것 같이 느껴지고 바보 같고…….
황경호는 그냥 방으로 돌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강동현의 품에 누웠다. 잠이 안 와서 그냥 그의 팔을 베고 있다가 문득 물었다.
“너… 이제 많이 괜찮아졌지?”
“뭐가.”
강동현이 되물었다.
“그냥 몸 상태나…. 발기부전도 그렇고….”
“그렇지?”
강동현은 대수롭지 않게 그렇게 대답했다.
“이제 여자한테도 될 것 같아?”
“글쎄. 안 해봐서 모르겠는데.”
“그래도 많이 나아져서 다행이네….”
“갑자기 왜?”
“아니…. 그냥. 많이 좋아진 것 같아서.”
“걱정하지 마. 이제 컨디션 조절 잘하니까. 너 막 안 덮쳐.”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리고 대화는 끊어졌다. 강동현은 황경호를 끌어안고 그의 머리카락을 만지다가 곧 잠이 들었다. 황경호는 한참을 잠들지 못했다. 심지어 상대를 깨울까 봐 제대로 뒤척거리지도 못했다. 오랜만에 수면 장애가 심하게 왔다. 피곤한데도 잠이 오지 않았다. 한참을 지루하게 견디다가 겨우 겉잠을 좀 잤다.
“오빠, 요새 인물 나는 거 같아.”
“어?”
퇴근을 하려고 준비를 하는데 정기연이 문득 말했다.
“진짜 이 오빠가 연애를 해서 그런가….”
정기연은 얼굴을 갸웃하고 황경호를 이쪽저쪽 보더니 별말 더 없이 밖으로 나갔다. 황경호는 마저 정리를 하고 김태형네 가게로 갔다가 또 비슷한 소리를 들었다.
“진짜 너도 연애하니까 분위기가 확 바뀐다.”
“어?”
김태형의 뜬금없는 말에 황경호가 깜짝 놀라서 자신의 얼굴에 손을 댔다. 병원 사람들도 그런 소리를 많이 하긴 하지만….
“난 잘 모르겠는데….”
황경호는 폰으로 잠깐 얼굴을 비춰 보았지만 역시 알 수가 없었다.
“뭐랄까…. 애인 있는 사람들 보면 임자 있다는 티가 난다고 해야 하나. 너 얼굴도 확 좋아지고.”
그거야… 돈 덕분이다. 매일 좋은 거 먹고 좋은데 자고 비싼 운동에 마사지에…. 몸이나 얼굴이 안 좋아질 수가 없었다.
“안정적인 느낌이 나지.”
김태형이 말했다.
‘안정적인 느낌이 난다고?’
그다지 안정적이란 느낌이 드는 건 아닌데…. 정말 돈의 위력인가. 좋은 거 먹고 좋은데 자고 좋은 서비스를 받으면 마음 편히 가난한 것보다 더 좋아 보이는 것일까. 모르겠다.
‘어차피 그것도 다….’
황경호가 아무 말 없이 술을 한 잔 마셨다. 술을 줄이고 있긴 하지만 결국 여기 오면 마시고 마는 황경호였다. 이신현이 들으라는 듯이 툴툴거렸다.
“경호 형 진짜 배신자…. 혼자서만…. 보여주지도 않고….”
“아니…. 그냥 만나는 거지 사귀고 이러는 게 아니라서….”
황경호가 우물쭈물 말했다.
“사귀면 사귀는 거지 그냥 만나는 게 어디 있어? 형 나이에 고딩들처럼 손만 잡고 다니는 것도 아닐 건데.”
이신현이 말했다. 김태형이 물었다.
“너네 세대면 그런 식으로 만나는 애들도 꽤 있잖아?”
“그게 세대 따라선가요. 사람 따라서지.”
이신현이 글로 배운 지식을 뽐내며 그렇게 말했다.
“어찌 되었든 연애 감정 느낄 수 있는 상대 만날 수 있는 거 자체가 행운이지. 내 나이 넘어가면 이제 정말 가슴 설레는 상대도 잘 없다.”
“뭘…. 우리 병원 오는 아저씨들 보면 40대고 50대고 여자 만나려고 그 돈 써대는 건데.”
“대단한 양반들이다, 참.”
“그래서 그 겁나 예쁘다는 형 여친은 뭐 하는 사람인데?”
이신현은 황경호 병원의 고자 아저씨들에게는 전혀 관심이 없는지 바로 말을 돌렸다.
“난 연상 완전 환영인데. 소개 좀….”
“안 돼.”
황경호가 완전 정색을 했다.
“아, 왜. 우리 사이에 진짜 이러기야?”
황경호가 대놓고 정색을 하니 이신현이 배신감을 느끼며 그렇게 되물었다. 황경호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거 부탁할 수 있고 그런 거 아니라고…. 그리고 클래스 안 맞아.”
“와. 이 형 봐라. 자기는 그렇게 예쁜 여자 만난다면서, 어, 김태희급이라면서 친한 동생은 클래스가 안 맞다니!”
그래도 황경호는 단호했다.
“나도 클래스 안 맞아. 내가 말했잖아. 그냥 만나는 거라니까.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거고.”
“저도 그렇게라도 만나 보고 싶은데요! 예쁜 여자!”
이신현이 힘주어 말했다. 황경호는 한숨을 쉬었다.
“별로야…. 진짜로. 그냥 수준 맞게 만나는 게 마음도 편하고 서로 좋아.”
“그럼 형은 왜 만나는데.”
“나도 원래 안 만나고 싶었는데….”
“이 형 또 자랑. 그렇게 예쁜 여자가 형을 쫓아다녔어?”
“그게 아니라…. 걔도 사정이 있어서….”
이신현의 질투에 추궁을 당하는 기분이라 황경호는 변명하듯이 그렇게 말했다. 그는 한숨을 또 쉬었다.
“아마 그 사정 해결하면 걔도 결국엔 자기 수준 맞춰서 만나겠지….”
“진짜 이 형 배부른 소리 좀 어떻게 해주세요, 사장님. 전 한 번이라도 예쁜 여자가 저 좀 만나줬으면 좋겠는데요? 사장님은요?”
“뭐…. 사람마다 취향이 다른 거니까.”
김태형은 그렇게 말했다. 황경호는 이신현의 말이 맞다고 생각했다. 정말 다 배부른 소리다. 자신이 뭐 가진 게 있다고 그 정도 되는 사람을 만나서 이런 호사를 누리고 살겠는가. 그는 가진 것도 많고 잘생겼고 능력 있고…. 요즘은 꽤 다정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시 과분하고 또 분수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그가 설사 지금 좀 미쳐서 자신에게 빠져 있다고 해도 과연 그게 언제까지 갈지…. 그렇게 생각하면 역시 이 모든 게 다 의미가 없게 느껴지기도 했다.
황경호는 자신이 강동현이 오래 만났던 여자친구와는 전혀 다른 케이스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에게 한 약속은 전부 지켰을지라도 황경호에게 했던 약속은 태반을 지키지 않았다. 똑같은 단어나 언어를 말한다 하더라도 그게 같지 않다는 걸 잘 안다.
가끔 화가 나서 따졌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그 차이를 인정하는 강동현을 볼 때마다 따진 것 자체를 후회했다. 창피했다. 또 저도 모르게 기대를 하고 만 것이니까 말이다.
[좋아해. 진짜로….]
하지만 그래도…. 걔가 가끔…. 좋아한다고 말해주면…. 황경호는 얼굴을 약간 붉히고 복잡한 표정으로 술잔을 만지작거렸다. 섹스 중에 잠깐일 뿐이라도 말이다…. 기분 좋았다. 누구도 그에게 그런 말을 해준 적이 없었다. 그것도 황경호의 가장 못난 모습들을 보고 나서도 말이다.
황경호는 쉽게 다른 사람의 비위를 맞추면서 살았으니 굳이 이덕재가 아니더라도 좋아한다고 말을 하는 사람들은 종종 있었다. 그들이 그럴 때마다 황경호는 항상 그들이 자신의 뭘 알고 좋아한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했었다.
게다가 그저 필부필부도 아닌 강동현이었다. 그가 유명한 연예인에 성공한 남자라서가 아니라, 아니 그것도 포함해서 좋고 싫음이 확실하고 강한 개성을 가진 그가 말이다…. 그렇게나 황경호를 끈질기게 괴롭히고 못살게 굴던 그가….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그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건지…. 그가 지금껏 해왔던 걸 생각해보면 지금은 정말 좋아해 주는 것도 같다. 그래서 가끔 좋아한다는 말을 들으면 그 생각이 맞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아진다. 누군가 정말로 나를 좋아한다는 것…. 단 한 번도 그런 일은 일어난 적이 없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또 언젠가는 끝나는 걸 아니까 말이다…. 그런 말을 들으면 지금은 아니구나 싶어서 안도감이 드는 것도 같고….
‘…이런 생각 하니까 나 진짜… 엄청 못난 거 같아…. 바보 같아.’
기대 안 한다면서. 황경호는 한숨을 쉬었다. 집에 혼자 있으면 저도 모르게 기다렸다. 그가 돌아오기를…. 마치 어렸을 때 아버지가 밤늦게 돌아오는 것을 기다리던 것처럼. 그걸 깨닫게 되니 집에 일찍 들어가기가 싫었다.
잘 지내고 싶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떻게 잘 지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그가 원하는 대로 섹스를 해줘도 가끔 뭐가 잘 안 맞는다. 그러면 또 괜히 허탈하고 좀 창피하기도 하고…. 잘못한 건가 싶기도 하다. 그러면 역시 좀 피하고 싶고….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다른 사람을 대할 때는 항상 어떻게 해야 할지 바로 알 수 있었는데. 황경호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좀 마시다가, 내일 병원을 가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고 좀 더 마시며 시간을 보냈다. 그가 일찍 오라고 한 걸 기억하고 있긴 했지만, 그랬다.
집에 들어가니 1시가 좀 넘었다. 강동현이 거실 카우치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황경호가 들어오니 바로 돌아보았다. 황경호는 그의 눈을 피했다.
“너 일부러 늦게 들어오는 거지?”
강동현이 말했다.
“아니….”
“폰도 일부러 확인 안 하는 거고.”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분명히 자신이 뻔하게 행동해놓고 추궁당하니 심리적으로 움츠러드는 기분이었다. 그도 자신이 왜 이러는지 제대로 설명할 수가 없었다. 황경호가 입을 다물고 있으니 강동현이 답답한 얼굴로 한숨을 쉬었다.
“또 뭐 마음에 안 드는 거 있어? 마음에 안 드는 거 있으면 얘기를 해야 내가 알 거 아냐. 내가 항상 말하잖아.”
“그런 거 아닌데….”
강동현이 약간 인상을 찌푸렸다.
“그럼 왜 그러는데?”
“…….”
할 말이 없다.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냥…. 그냥 불편했다. 강동현의 스캔들이 뜨고 난 이후로 정신이 확 드는 느낌이라서…. 그냥 좀 조심하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럴수록 자꾸 뭐가 어긋나는 것 같아서….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몰라서 그냥 가만히 있었다.
“너까지 왜 이러냐….”
강동현이 또 한숨을 쉬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황경호는 어디선가 비슷한 말을 들은 것 같다는 기시감이 들었다. 아마도 어렸을 때 부모님한테서 비슷한 말을 들은 기억들이 난다. 황경호는 역시 잘못하고 있는 거구나, 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니까 확 창피해서 얼굴이 빨개질 것 같았다. 황경호는 말을 좀 고르다가 입을 열었다.
“…미안….”
“미안하다는 말을 하라는 게 아니라 왜 그러는지 이유를 말하라니까.”
“별로 이유랄 게….”
“말해.”
황경호는 진짜로 할 말이 없었다. 그래서 그럴까. 저도 모르게 툭 뭔가를 말했다.
“나 나갈게.”
“뭐?”
강동현이 그렇게 반사적으로 반문했다가 당황스러운 얼굴로 반쯤 자리에서 일어났다.
“왜 갑자기…. 왜 그래? 진짜 나 뭐 지뢰 밟았어?”
“아니,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나가는 게 괜찮을 거 같아서. 내가…. 내가 원래 다른 사람이랑 같이 살고 이러는 게 좀…. 그런가 봐.”
“진짜 그러지 말고 말로 하라니까. 왜 이러는데? 응? 잘못한 거 있으면 내가 다 고친다니까.”
“네가 잘못해서 그런 거 아니야. 그냥 내가 좀 불편해서….”
“왜 불편한데?”
“잘 모르겠어. 내가 그냥 다른 사람이랑 사는 게 잘 안 맞나 봐.”
“지금까진 괜찮았잖아. 내가 평일에도 하자고 그래서 그래? 앞으로 안 그럴게.”
“아니,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서로 같은 한국어를 뱉고 있는데 계속 핀트가 어긋난다. 황경호는 그 어긋남이 불편하고 어색하고 싫어서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쳤다. 강동현이 카우치에서 제대로 일어나서 황경호에게 다가와서 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카우치로 데려와서 같이 앉았다.
“…….”
“…….”
막상 같이 앉았지만 둘 다 말이 없었다. 강동현은 옆으로 앉아 가만히 그의 얼굴을 보았다. 황경호는 테이블을 쳐다보고 있었다.
“나 좀 봐.”
황경호는 약간 주저하다가 그의 얼굴을 보았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손을 만지작거리다가 끌어당겨서 포옹했다. 끌어안고는 그의 귀와 머리카락을 만지다가 한숨을 약간 쉬었다.
“그냥 별거 아니라도 상관없으니까…. 뭐든 얘기해봐.”
“…….”
새삼 황경호는 자신이 ‘대화’에 약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저 시간을 보내기 위한 대화가 아닌 자신을 드러내는 솔직한 대화를 누군가와 한 적이 있었던가.
“나 너 진짜 좋아. 좋아해.”
강동현이 그렇게 말하자 황경호가 약간 얼굴을 붉혔다. 끌어안겨 있어서 보이진 않았다. 강동현이 한숨을 또 약간 쉬었다. 답답함이 섞여 있다.
“너 말이야…. 원래 빼는 성격이라는 건 내가 알고 있긴 한데…. 뭔진 모르겠지만 나간다는 소리는 제발 쉽게 하지 마라. 너랑 나랑 여기 오기까지 얼마나 힘들었는데.”
그리고 살짝 황경호의 기색을 살피다가 농담 섞어 덧붙였다.
“이 집 24억짜리다. 어?”
그러자 황경호가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는 강동현의 쇄골쯤을 보면서 변명하듯이 대답했다.
“나 집 필요 없다고 했잖아…. 이렇게 비싼 데도 부담스럽고….”
“야…. 그런 말이 아니잖아.”
강동현이 황경호의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쳤다.
“너랑 같이 살고 싶어서 산 거야. 네가 그렇게 말하면 내가 뭐가 돼.”
황경호는 뭔가 곤란한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리고 또 취약하기도 했다. 왜 이런 표정을 짓는 걸까. 강동현은 그가 귀여웠다. 강동현은 그의 얼굴을 쥔 손으로 그의 귀를 만지작거렸다. 황경호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입을 뗐다.
“너…. 있잖아. 음….”
“응. 말해.”
강동현은 기다렸다는 듯이 부드러운 눈빛으로 황경호의 눈을 보면서 그렇게 대답했다. 황경호는 얼굴이 점점 빨개지더니 시선을 피하면서 겨우 말했다.
“한빛나랑은 왜….”
“그거? 정정보도 난 거 봤다며?”
강동현은 황경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렇게 말했다. 황경호는 얼굴이 더 빨개졌다. 이럴 줄 알았다. 부끄럽다. 창피하다. 황경호는 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아니…. 그냥…. 혹시라도 마음에 드는 여자 있으면 말해줘…. 내 눈치 안 봐도 되니까.”
“…….”
“아니, 꼭 말해줘….”
강동현은 결국엔 화가 난 얼굴이 되었다.
“너 지금 무슨 말 하는 거야. 내가 진짜 좋아한다고 금방도 말했는데 너 진짜 내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듣냐?”
화 안 내겠다, 안 괴롭히겠다, 수많은 다짐을 해왔지만 결국엔 잘 못 지키곤 했는데 또다. 강동현이 강제로 얼굴을 가린 황경호의 손을 치웠다. 시선을 피하니까 얼굴을 잡아서 똑바로 자신을 향하게 했다.
“나 봐. 젠장. 너 뭐 하는 거야, 지금? 너도 결국 나랑 같이 있고 싶으니까 같이 살기로 한 거 아냐? 계약서 같은 것도 그래서 적은 거 아니냐고. 근데 왜 또 이래? 제기랄. 말이라도 해야지 내가 알 거 아냐?”
진짜 화가 난 모양이었다. 잘 지내고 싶었다. 그래서 고민도 많이 했다. 황경호는 이러려던 게 아니었기 때문에 더 대비가 안 되어 있었다. 일주일 동안 저도 모르게 마음을 졸이면서 움츠려 있었던 것이 사무친다.
“그런 게 아니라….”
“그런 게 뭐가 아닌데? 너 지금 나랑 뭐 하자는 건데. 난 너 진짜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넌 도대체 뭐냐고. 지금도 나 같은 거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 그런 거냐고. 네 기분 좀 거슬리면 이거 다 쉽게 끝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내가 가만히 있을 것 같아? 내가 그렇게 병신으로 보여?”
“…….”
뭐라고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뭔가 마음속에서 맴도는 말은 많은데 아무것도 내뱉을 수가 없다. 결국 예전이랑 똑같았다. 강동현이 술을 먹고 고백을 한 것을 잊어버렸을 때도 단 한마디도 묻거나 따지지 못했었다. 잘못한 건 하나도 없으면서 괜히 쫄아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이번에는 기분이 가라앉은 강동현의 눈치나 보면서 그를 위해 쉽게 몸도 대줬으면서 움츠려 있던 스스로는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이렇게 있었다.
‘뭐야…. 진짜 바보 같아.’
삼성동에 살 때 강동현이 한 번 밤에 무작정 덮쳐서 컨디션이 안 좋아졌을 때도 강동현이 적반하장으로 추궁을 해왔을 때야 겨우 뭐가 문제였는지 스스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하기 싫은 섹스를 억지로 했고 그래서 기분이 안 좋았고 컨디션도 안 좋아서 그가 싫었다. 그런데 강동현은 잘 지내다가 왜 ‘갑자기’ 문제를 일으키냐는 식으로 대했다.
지금도 똑같았다.
결국 둘은 맞지 않았다.
“…그렇게 말하지 마…. 네가 잘못한 거잖아…. 너, 네가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네 여자친구 만날 때도 결국 나한테 한눈판 거였잖아. 근데 네가 또 다른 여자한테 한눈팔지 안 팔지 내가 어떻게 알아. 내가 네 말을 어떻게 믿어…!”
황경호는 강동현의 어깨를 퍽 쳤다. 강동현은 깜짝 놀라서 황경호의 얼굴을 입을 벌리고 쳐다보았다.
“스캔들 나고 3일 동안 연락도 한 번 없었잖아…! 겨우 집에 왔다고 생각했더니 아무 말도 없이 그냥 섹스나 하고! 네가 병신 같은 게 아니라 네가 항상 나 병신같이 알잖아! 그래서 내가 알아서 내 분수 맞게 꺼져 주겠다는데 왜 지랄이야!”
황경호는 강동현을 밀어냈다. 한 번 터지니까 주체할 수 없이 화가 났다.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네가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줬잖아! 대달라고 하면 대주고…! 안 까다롭게 굴려고 노력했는데…! 내가 더 어떻게 해야 하는데!”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는 윽, 하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또 이러고 싶지 않았다. 황경호는 겨우겨우 흥분을 가라앉혔다.
“이런 거… 언제까지 갈지 모르는 거잖아…. 넌 쉽게 말하지만 난 모르겠어. 네 말대로 내가 까다로워서 사람들이랑 가까이 지내는 게 힘든가 봐. 난….”
황경호가 살짝 떨기 시작했다. 그의 얼굴도 귀도 손도 벌게졌다.
“난 별로 기대 안 해. 안 하고 싶어…. 언제든 상관없으니까 네가 말해줘. 난 이런 거 잘 몰라서 네가 말하는 대로 할 테니까…. 끝내고 싶을 땐 그냥 말로 해줘. 성가시게 할 생각도 없고 까다롭게 굴 생각도 없으니까.”
“…….”
“너무 창피해…. 나 원래 너랑 이렇게 되고 싶었던 거 아니야…. 그냥…. 그냥…. 너랑은 자꾸 엮이니까…. 네가…. 네가 나 가만히 안 두니까…. 너 나으면 언제든 끝날 수 있는 거 알아. 기대 안 해. 네 주변에 예쁜 여자들 많은 것도 알아. 그냥 난 창피한 게 너무 싫어서…. 좀 조심하고 싶어. 준비를 하고 싶어.”
“…….”
“그것뿐이야….”
강동현은 분명히 영지도 결국엔 스캔들 때문에 결정적으로 그에게서 마음을 돌린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물론 그때까지 쌓인 것이 있었지만, 결국 강동현에게 자기 말고도 충분히 다른 여자들이 있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설사 그가 아무런 짓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불안해진 것이다. 관계도 예전 같지 않은 상태에서 스캔들이 터지고 강동현은 바쁘다고 제대로 설명도 하지 못했고….
똑같은 짓을 또 한 것이다. 그래도 그때와는 다르게 황경호와는 이제 제대로 시작하는 단계인데…. 아니, 그래서 더 그럴 수도 있겠구나. 더군다나 예전 일을 생각해보자면…. 게다가 전 여자친구와는 180도 다른 성격이라 반응하는 것도 너무 다르다. 여자친구는 연락이 되자마자 헤어지자고 했었다.
‘생각해보니까 그러네…. 아…. 미친놈.’
스캔들뿐만 아니라 협박 건 때문에 신경이 곤두선 상태라 상대의 입장에서 전혀 생각해보지를 못했다. 스캔들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후의 강동현의 언행이 그에게 상처를 준 것이다. 그리고 자기가 받는 상처에 한참 무딘 그는 천천히 그런 자신을 방치하고 있었겠지….
“…이리 와.”
강동현은 카우치에 한쪽 팔을 대고 그 손으로 자신의 턱을 약간 괴고는 황경호를 보고 있었다. 황경호는 자신의 얼굴을 가린 채로 꼼작도 못 하고 있었다.
“이리 와.”
강동현은 그가 주저하고 있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그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그리고 마주 보고 무릎에 앉혔다. 그가 숨을 들이켜는 게 느껴졌다.
“손 좀 떼봐.”
강동현은 그의 한쪽 손을 잡고 천천히 얼굴에서 떼어냈다. 황경호는 창피함과 취약함, 난처함 등등이 온통 섞인 얼굴이었다. 울 것 같다. 강동현은 그의 드러난 얼굴을 보면서 조용히 말했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내가 일이 터지면… 그것밖에 안 보이는 타입이라 네 생각을 못 했어. 그냥 네가 나 이제 믿고 있을 줄 알았어.”
“…….”
“그래도 미안. 그래도 내가 제대로 설명했어야 했는데.”
황경호가 작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아니야…. 내가 괜히 예민하게 굴어서….”
“예민한 거 아니야. 당연한 거야. 내가 그냥 바보 같은 거야. 반대 입장이었으면 난 스캔들 난 날에 바로 너한테 전화하고 화내고 난리 쳤을걸.”
그렇게 말하자 황경호의 얼굴이 확 붉어지면서 약간 또 떨었다. 눈물 나올 것 같은 모양이다. 참는 것이다.
“너도 그렇게 하라는 말이야. 마음에 안 든다고 나 막 팰 때는 언제고 이럴 땐 왜 바로 말 안 해…. 너 나간다고 해서 깜짝 놀랐잖아.”
“…잘 모르겠어…. 그래도 되는지….”
황경호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그리고는 한숨처럼 말했다.
“내가 이거 말하면 백번은 말하는 것 같은데. 나 너 진짜 좋아하고 너랑 평생 살 거고 다 네 거라고. 네 맘대로 하라니까.”
“…말만 그렇게 하고 맨날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하면서.”
“야…. 난 원래 항상 너 내 마음대로 하고 싶었어. 내가 어떻게 안 하면 네가 아무것도 안 하니까 내가 이러는 거잖아.”
“봐. 또 내 탓 하고.”
“네가 아무것도 안 해서 내가 그러는 건 당연히 네 탓이지.”
“그런거 잘 못하겠어….”
“뭘 못해. 너 잘해.”
강동현이 피식 웃었다.
“너 때문에 내가 발기부전이라고 우리 집에 소문 다 났는데. 우리 사장님한테 고백까지 했다, 내가.”
“그건 네가 짜증 나게 하니까 그랬지.”
황경호가 지지 않고 말했다. 강동현이 가만히 황경호의 얼굴을 보다가 약간 곤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나 바람 안 피워. 진짜로…. 내가 너한테 한눈판 건… 맞긴 한데…. 그래도 안 피워. 진짜. 아, 나 진짜 그런 놈 아닌데….”
강동현도 자신을 설명하기가 힘든 모양이었다. 뭔가 자기 안에서 단어를 내뱉으려고 하는데 힘들어 보인다. 황경호는 한숨을 쉬었다.
“됐어. 나중 일은 모르는 거니까. 그냥 말만 해줘. 사람 바보 만들지 말고.”
강동현이 인상을 팍 찌푸렸다.
“너 진짜 말 그런 식으로 하지 마. 젠장…. 바람 안 피운다고. 넌 진짜 나 나쁜 놈이라고 결정을 미리 해놓고 말을 한다?”
“너 나쁜 놈 맞아.”
황경호가 말했다. 강동현은 짜증이 났다.
“그럼 넌? 너야말로 삐걱하면 나 필요 없는 것처럼 말하는데. 너는?”
“그래도 바람은 안 피워. 그런 데 관심 없어.”
“난 바람만 안 피운다는 게 아니라 나 너랑 같이 계속 산다고. 아, 진짜….”
강동현은 카우치 등에 삐딱하게 팔꿈치를 걸치고 황경호를 보면서 그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강동현이 아무리 황경호한테 지금 빠져서 허덕댄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같이 살려고 집을 사고 이러는 게 쉬운 결정이었겠는가. 누차 말했지만 누구한테도 이런 적이 없었다.
‘하긴…. 제대로 만나기 시작한 지 사실 얼마 안 됐지…. 그 전엔 내가 좀 개새끼처럼 굴었고….’
강동현은 속으로 선선히 인정을 했다.
“어쨌든…. 내가 잘못했어. 미안…. 기분 풀어. 내가 뭐 해줄까? 뭐 해줬으면 좋겠어?”
“…몰라….”
그렇게 말하면서 그냥 황경호는 천천히 강동현한테 기대었다. 강동현의 어깨에 얼굴을 기대고 편히 안겼다. 이런 거 진짜 안 하는 애라서, 강동현은 살짝 얼굴을 붉히고는 입맛을 좀 다셨다.
‘아…. 가끔 귀찮긴 한데 진짜 귀엽단 말이야….’
그러고는 서로 자연스럽게 입을 맞추었다.
*
‘앞으로 스캔들 조심 안 하면 큰일 날 것 같다….’
실제로 강동현이 딱히 잘못을 하는 경우가 없었기 때문에 별생각이 없었는데 애인이 이렇게 불안해한다면 다른 말이다. 안 그래도 엄청 빼는 성격인데 까닥하면 진짜 별것도 아닌 걸로 깨질 것 같다. 강동현은 정말 그에게 진지했기 때문에 저번 일로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빡 들었다.
“그래도 남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 줄 누가 압니까? 옥 사장님이나 강동현 씨가 딱 잡아뗀다고 이렇게 기사 나가면 사람들이 뭘 믿을 거 같아요?”
결국 최 기자와 옥미현, 강동현과 박기병까지 4자 대면을 하게 되었다. 최 기자는 진짜 뭐 믿는 백이라도 있는지 계속 협박만 하고 원하는 걸 제대로 말하지 않았다. 정말 이게 큰 건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인지. 박기병, S전자 사장까지 나왔다. 원래 이런 데까지 나올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자기 딸이 연관된 데다가 옥미현까지 있어서 직접 행차한 것 같았다. 강동현은 그를 처음 보았다. 중후한 느낌이 나는 잘생기고 젠틀한 중년 남자였다.
“최 기자, 무슨 말인지 알겠으니까 그래서 본론이 뭐야?”
옥미현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원하기는 뭘 원해요. 그냥 이대로 기사 올릴 거라고요.”
“그럼 벌써 올렸겠지. 계속 사람 이렇게 귀찮게 하는 이유가 있을 거 아냐.”
옥미현이 담배에 불을 붙이면서 그렇게 말했다. 박 사장이 그녀의 담배를 자연스럽게 잡았다.
“여기 금연이야.”
강동현은 톤이 아주 낮고 약간 울리고 부드러운 느낌의 멋진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배우는 얼굴보다 목소리라고, 그의 배우로서의 힘은 외견보다도 목소리의 연기에서 온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박기병은 아예 동굴 속에 들어간 것같이 울리는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뭔가 의외다.
“그래…. 최 기자라고요? X패치 사장이 아는 사람 후배라서 그쪽 통해서 기사 못 나가게 할 수도 있어요. 그래도 열심히 일해서 특종 잡은 거 섭섭하지 않게 쳐줄 테니까 카피 전부 지우고 원본은 넘기죠.”
그는 아주 부드러운 어조로 그렇게 말했다. 그가 굉장한 힘을 가진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고 보기엔 굉장히 소탈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또한 여유가 있어서 대하기 힘든 느낌이 들었다. 강동현은 혀를 내둘렀다.
‘아무리 둘 다 어렸을 때라지만 저런 남자를 만났구나, 우리 사장님…. 대단한데….’
그렇게 옥미현을 한 번 보았다.
“일단 가격부터 불러.”
옥미현이 말했다.
“솔직히 우리나라도 이런 거 근절해야지 언제까지 이럴 거예요.”
최 기자는 계속 모르쇠로 나왔다. 정말 크게 한몫 뜯고 싶은 모양이었다.
“뭘 언제까지 이래? 여자가 남자 보고 마음에 들어서 한 번 소개시켜 달라고 해서 밥이나 한번 먹으라고 한 건데. 지금 강 배우가 뭐가 아쉬워서 이런 데서 돈을 받아? 강 배우 돈 많아.”
옥미현은 새 담배를 그냥 손가락 사이에 끼워두고 그렇게 말했다. 박기병이 비서한테 눈짓을 했다. 비서가 테이블에 가방을 하나 올렸다.
“시세보다 많이 쳐줬으니까 이 정도에서 정리하죠.”
“뭘 정리를 해요? 이거 뇌물입니다. 예? 이것도 다 터트릴 수 있어요.”
“적당히 하세요. 피곤하게 왜 이럽니까.”
“뭘 적당히 해요? 진짜 우리나라는 이래서 안 된다니까. 돈이면 뭐든 되는 줄 알고.”
“이것도 협박인 건 알고 그러는 겁니까?”
박기병도 인상을 찌푸렸다. 강동현은 한숨을 쉬었다가 오른손을 들어 주의를 자신에게 돌렸다. 다들 강동현보다 한참 어른들이라서 끼어들기가 조금 힘들었지만 그래도 그랬다.
“잠깐만요.”
“왜. 도 이사?”
옥미현이 그를 돌아보았다. 강동현은 품에서 봉투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최 기자에게 내밀었다. 그리고는 익숙하고 자연스럽게 말을 이었다.
“저…. 발기부전입니다. 2년 동안 치료받은 기록이고요. 비아그라 처방 안 받은 지도 반년 넘었습니다.”
결론이 나면 행동은 순식간에 해치우는 남자, 그게 바로 강동현이지 않던가. 강동현은 치명적인 사실을 간직한 봉투를 다시 품에다 잘 갈무리해서 넣었다. 머리를 올리고 말끔하게 슈트를 입고 있는 그의 모습은 굉장히 멋있었지만 말이다….
“…….”
“…….”
“…….”
최 기자는 가방을 들고 나갔다. 넓은 일식집 안에는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옥미현은 아직도 입을 떡 벌리고 강동현을 보고 있었다. 상석에 앉아 있는 박기병도 강동현을 보고 있다가 술병을 들었다.
“술 먹어도 되나?”
“네. 괜찮습니다.”
“한잔해.”
“네.”
강동현은 잔을 들어서 그에게 술을 받았다. 박기병은 자기 잔에도 한 잔 따르더니 마셨다. 그걸 보고 강동현도 고개를 돌려 술을 마셨다.
“이번 일은 미안하게 됐어. 그렇게까지 안 해도 내가 어떻게든 해결해줄 수 있었는데.”
아까 처음 봤을 때는 그도 존댓말을 쓰더니 지금은 자연스럽게 반말을 했다. 남자 둘이서 그렇게 이야기를 하자 그제야 옥미현이 허, 참, 이라는 소리를 내더니 담배에 기어코 불을 붙였다. 이번에는 박기병도 말리지 않았다.
“아뇨…. 끝까지 거절했어야 했는데 이번엔 저도 생각이 짧았던 것 같아서 반성했습니다.”
황경호가 알아낼 도리가 없으니까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한빛나랑 기사 뜬 것보다도 박 사장 딸이랑 밥 먹은 게 더 찔릴 만한 것이었다. 이건 기사로 뜨면 정말 변명하기 힘들다. 옥미현은 한 개비를 거의 폈을 때쯤에 겨우 입을 열었다.
“너 몸 안 좋다는 거 그거 때문이었어?”
옥미현은 강동현의 거시기 쪽에 한 번 눈길을 주었다가 다시 강동현의 얼굴을 보았다.
“그것도 있고 이것저것….”
“너 만나는 애 있잖아. 걔는… 알고 만나는 거야?”
“걔랑은 잘 되는데 다른 사람이랑은 좀 그래요.”
“그럴 수도 있어?”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해서 좀 쉬려고요.”
“2년이나 됐다고?”
“네.”
“네 전 여자친구 이것 때문에 너 찬 거구나?”
옥미현이 귀신같이 그렇게 말했다. 진짜 여자들 눈엔 딱 보이는 모양이었다. 강동현이 한숨을 쉬었다.
“지금 만나는 애도 그렇게 말하던데…. 저야 모르죠. 어쨌든 저 걔한테 올인이라서요. 이번에 한빛나랑 스캔들 뜬 거 때문에 깨질 뻔했어요. 이런 기사까지 뜨면 진짜 차일 것 같아서요.”
강동현이 담담하게 말했다. 이미 2년간 별별 짓을 다 한 내공이 있었다. 솔직히 누나한테 놀림당하는 것만 하지 못했다. 남이야 뭐….
“너 그렇게까지 스트레스받을 줄은 몰랐는데…. 그러게 일 좀 작작하라니까. 누가 보면 나 때문인 줄 알겠다.”
옥미현이 약간 허탈감마저 있는 것 같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일이 하면 할수록 더하게 되잖아요, 원래. 지금 생각해봐도 미친 듯이 했다 싶기도 하고. 원은 없습니다.”
“그래서, 괜찮아지고는 있어? 2년이나 병원 다닌 거야?”
“2년 다니기는 했는데 제가 의사 말대로 안 하고 그래서 잘 안 낫다가…. 요새 담배랑 술도 많이 줄이고 일도 줄이니까 괜찮아지고 있기는 해요. 컨디션도 좋고.”
“그래…. 꼭 쉬어라, 진짜. 난 그런 줄도 모르고…. 이번 달 스케줄 괜찮겠어? 해외 가는 거? 3주나 가는데?”
“아, 그 정도는 괜찮아요. 예전처럼 일 서너 개 동시에 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
이래저래 꼬치꼬치 캐묻던 옥미현은 여전히 벙벙한 얼굴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다. 그녀도 술을 한잔했다. 그리고 갑자기 테이블 밑으로 박기병의 다리를 발로 찼다.
“당신 때문이잖아. 이게 뭐야. 우리 강 배우 면 상하게!”
박기병은 옥미현을 보았다.
“너도 술이랑 담배 끊어. 저렇게 젊은 애도 몸 상하는 거 봐라.”
“사업하는 사람이 술 담배를 어떻게 끊어?”
“끊어.”
박기병은 그렇게 말하며 품에서 명함을 꺼내 강동현에게 주었다.
“명함 있어?”
“아, 네. 있습니다.”
강동현도 품에서 명함을 꺼내서 박기병에게 줬다. 그는 명함을 가만히 보다가 품에 넣었다.
“나중에 도움 필요한 일 있으면 연락해.”
“네.”
그리고 식사까지 하고 강동현은 먼저 가고 옥미현과 박기병은 술을 한 잔 더 한다고 했다. 강동현은 그냥 홀가분한 마음으로 집으로 향했다. 작년 울프 때부터 관광 명예 홍보대사가 되어서 하루 정도 행사에 참여하는 것 말고는 다음 주에 중국 영화와 드라마에 카메오 출연하러 나갈 때까지 쉰다.
그렇게 강동현이 집에 붙어 있으면서 다시 황경호와 데이트를 좀 나가기 시작했다. 그동안 이사다 스캔들이다 신경 쓸 게 많아서 집에서만 봤는데 이제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으니 말이다. 저녁에 잠깐 한강이라도 나가고 얘기도 좀 하고 말이다. 의식적으로 그랬다. 그렇게 안 하면 금방….
“으응…. 하앙…. 아아앙…. 흑…. 하앙….”
“하아…. 큭….”
이렇게 된다.
바로 누운 강동현의 위에 황경호가 납작 엎드려 안겨 있었다. 두 사람의 몸이 찰싹 맞붙어 그 접촉감이 너무 기분이 좋았다. 강동현은 새빨개진 얼굴로 움찔거리는 황경호의 얼굴에 마구 입을 맞추며 그의 음부를 찌걱찌걱 맛보았다.
“하아…. 아앙…. 응…! 앙…. 아…!”
황경호가 강동현의 머리카락을 꼭 쥐면서 벌게져선 떨었다. 강동현은 그의 턱을 빨면서 섹시한 신음을 흘렸다. 진짜 하면 할수록 더 좋다. 끝내준다.
“윽…. 후우….”
평소에는 순하고 어려 보이고 방긋방긋 밝게 잘 웃는 그의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성숙하고 요염해졌다. 강동현은 그의 얼굴을 마구 빨았다. 살이 맛있다. 쫄깃쫄깃하게 강동현의 대물을 물고 있는 그의 음부가 황홀했다.
요새 다시 눈만 마주치면 섹스를 했다. 눈이 마주치면 둘 다 확 하고 불이 붙어서 입 맞추고 서로 만지고 하나가 되어 잔뜩 야한 짓하고…. 가끔 황경호가 그런 무드가 아니면 그냥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애무를 했다. 정말로 그가 달아올라서 어쩔 줄을 몰라 하며 결국엔 섹스를 원할 때까지 말이다. 그래야지 뒤탈이 안 난다는 걸 강동현도 이번에 약간 배웠다.
“아앙…! 만지지 마…. 하읏…! 으응, 아앗!”
보들보들한 젖꼭지를 엄지로 슥슥 문지르니 황경호가 키스를 하고 있던 입술을 떼고 몸을 떨었다. 강동현이 그의 입술을 따라가며 엉덩이를 꽉 쥐었다.
“왜? 잘 느끼면서.”
“하앗…! 아아앙…. 부끄러워. 아앗…! 손가락…. 하앙…. 변태. 변태….”
강동현이 다른 손으로 슬슬 결합부를 문지르니까 엄청 움찔거리면서 음부를 오물거렸다. 끝내준다. 강동현은 불끈불끈 달아오른다는 것을 실시간으로 느끼며 황경호의 뺨을 깨물었다. 젖꼭지를 엄청 괴롭히다가 두 손으로 그의 엉덩이를 잡았다.
“앗…. 잠깐만…. 그거 하지 마….”
“그거 뭐? 이거? 이거?”
“하앙…! 아앙! 아아아! 아아! 앗…! 아앗! 하지 말…! 아아앙!”
강동현이 퍽퍽퍽 빠르게 박기 시작하자 황경호가 표정이 확 무너지면서 강동현한테 달라붙었다.
“이상해…! 아앙…! 어떡해…. 어떡해…! 아아앙! 나…. 나아…. 흐앙…. 앗! 아앗…! 강동현…. 강동현…. 하아앙…. 강동혀언….”
“큭…. 후…. 윽…! 아…. 진짜…. 젠장….”
미칠 것 같았다. 자지가 폭발할 것 같다. 끝없이 뜨거워졌다. 바위처럼 단단해진 남성기를 쫄깃쫄깃하고 부드러운 음부가 움켜쥔 듯 조이며 빨고 있었다. 황경호는 침대 시트를 꽉 잡았다. 엉덩이를 엄청 파이고 있었다. 그는 엄청 헐떡거리면서 허리를 뻣뻣하게 세웠다.
“하앗…! 하으…. 하아앗…. 하으…. 하으으….”
침대 전체가 덜컹거리면서 움직였다. 황경호의 음부는 젤과 강동현의 체액과 애액으로 질척질척하게 벌어져서는 깊은 곳까지 자지로 문질러지고 있었다. 거기서부터 열기가 쫙 퍼져서 온몸이 뜨겁다. 원래 땀을 흘릴 일도 별로 없는 직종이라 땀도 잘 안 흘리는데 그의 온몸에 땀이 흘렀다. 강동현과 문질러지는 피부가 너무 야하게 느껴진다.
“흐응…. 싫어…. 싫어어…. 아앙…. 하우으…. 천천히…. 천천히 해줘어어어…. 아아아아앙…!”
엉덩이가 찰싹찰싹 부딪치며 살이 출렁거렸다. 목소리가 마구 끊겼다. 황경호가 강동현의 어깨를 꽉 쥐면서 하반신을 경련하기 시작했다. 도망가려는 황경호의 엉덩이 두 짝을 꽉 잡고 퍽퍽 박았다. 강동현은 무슨 변태 아저씨처럼 물었다.
“좋지? 좋지? 응? 좋아 죽겠지? 어때? 응?”
“아아앙…! 아앙…! 하아앙…! 아…! 아아아! 우으…. 아으….”
황경호가 눈물 콧물 다 쏟으며 강동현의 얼굴에 자기 얼굴을 기대며 덜덜 몸을 떨었다. 오르가즘이 안 끝났다. 죽을 것 같다. 몸이 녹아내릴 것만 같다. 터질 것 같다.
“죽을 것 같아…. 흐앗…. 죽어어…. 아아앙…. 하으…. 빨리 싸…. 빨리 싸줘…. 아앙…. 못 해…. 못 해애…. 아으…. 빨리 싸줘어어어….”
황경호가 야시시한 목소리로 마구 졸랐다. 강동현은 섹시하게 미간을 확 좁혔다가 바로 사정하기 시작했다.
“윽…. 큭…. 제기랄…! 아우으윽…!!”
“하앗…. 아아앗….”
황경호는 강동현에게 숨이 막힐 정도로 확 끌어안겨서 안에 그가 사정하는 것을 고스란히 느꼈다. 그가 강하게 퍽, 찍, 퍽퍽 들이박자 척추가 징징 울렸다. 허리가 접힐 것 같다. 황경호는 야한 얼굴로 울먹거리듯 눈물을 흘리며 엉덩이를 움찔거렸다.
“흐윽…. 콘돔 하라니까….”
“싫어….”
강동현이 완전히 퓨즈가 나간 얼굴로 거칠게 따먹은 상대의 엉덩이를 부드럽게 들락날락하며 후희를 즐겼다. 속에 쌓이고 쌓았던 것들이 다 터져 시원하게 배출된 느낌이라 몸이 개운하다. 둘 다 절정감에 벗어나지를 못하고 서로를 끌어안았다.
계약서고 뭐고 매일 이러고 있었다. 강동현은 집에 있는 동안 열심히 황경호를 먹였다. 좋긴 했지만 솔직히 데이트는 좀 의무적으로 했다. 좋은 거 먹이고 좋은 거 보여주고 좋은 거 사주고. 그리고 집에 들어오면 섹스하고 뭐 먹이고 또 섹스하고 먹였다. 먹다가 하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가 둘 다 피부가 반질반질해졌다. 둘이 좀 합이 맞는가.
거기에 강동현이 소원이랍시고 이것저것 시켜도 이제 진짜 곧잘 해줬다. 물론 가장 좋은 파트는,
“흑…. 부끄러워. 부끄러워…. 창피해….”
해주면서도 엄청 부끄러워한다는 것이었다. 펠라치오에 파이즈리(!), 스마타도 하고 올라타서 엉덩이를 흔드는 것도 엎드려서 강동현은 가만히 있고 트월킹(!)을 하듯이 그가 스스로 엉덩이를 흔드는 것도 해줬다. 근데 또 잘한다는 것이 함정이었다. 강동현은 그냥 관 짜고 누워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항상 했다.
‘죽어도 여한이 없다….’
그에 반해 황경호는 본인도 놀랄 정도로 그의 말대로 해주고 있어서 아주 곤란했다. 강동현이 너무 만족스러워서 죽어도 여한이 없다면 황경호는 창피해서 죽고 싶었다.
그렇게 섹스 삼매경에 빠진 지 거의 2주째다. 황경호는 수면 장애는커녕 꿈도 하나 꾸지 않고 자는 데다가 요새 아슬아슬할 정도로 늦게 일어나게 되었다. 그렇게 매섭게 추운 2월 둘째 주, 쾌락을 주체하지 못하고 강동현의 위에서 엉덩이를 엄청 흔들다가 그대로 기절하듯 잠들고 일어난 날이었다.
그의 것이 여전히 몸속에 들어와 있었다.
‘죽고싶어죽고싶어죽고싶어!’
황경호는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어쩔 줄을 모르며 굳어 있었다. 강동현은 여전히 꿈나라였다. 아직 해가 어스름한 새벽이었다. 빼고 싶었지만 그러다가 강동현이 깨면 엄청 놀릴 것 같았다. 그렇게 몇 분을 어쩌지를 못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황경호의 폰 알람이 울리기 시작했다. 황경호는 황급히 이불을 뒤져 휴대폰을 찾아내서 알람을 껐다. 그러다가 순간 폰에 온 알림 하나를 보고는 열어보았다.
<한빛나, 강동현과 열애 인정! 연예계 최고 비주얼 커플 탄생!>
“…….”
황경호는 순간 온몸이 빨개졌다가 자기가 무슨 꼴을 하고 있는지 깨닫고 또 더 벌게졌다. 그리고 자신의 아래에서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는 강동현을 내려다보았다.
“~~~~~~!!”
황경호는 그의 얼굴을 주먹으로 세게 치고 베개로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
황경호는 현재 파란색 신용카드와 눈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일시불이요.”
“네. 카드 받았습니다.”
황경호는 한 끼에 40만 원이나 하는 식사를 해치우고 밖으로 나왔다. 처음엔 화가 나서 무슨 맛으로 먹는지 기억도 못 했는데 막상 결제를 하고 나오니 홀가분하다. 백화점에 가서 옷과 신발도 마구 사고 새 오븐과 각종 음식 재료까지 사고는 집에 돌아왔다. 쇼핑백을 현관에다 두고 80인치가 넘는 TV와 홈시어터를 틀고 지금 상영 중인 최신 영화를 결제하고는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으로 배달한 비싼 바닷가재를 먹으며 영화를 보았다.
“잘났다, 이거지. 어? 자기가 잘나서 여자가 꼬이는 거지 자기는 잘못한 거 없다, 이거지?”
황경호는 불쑥 혼자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는 부글부글한 기분으로 영화를 노려보았다.
[얘가 계속 졸라서 밥 한 끼 같이 먹기는 했는데. 진짜 그게 끝이라니까.]
[앞으로 나한테 손가락 하나 대지 마!]
[야, 야! 잠깐만! 나도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다고…! 일단 사장님한테 전화해볼 테니까….]
[됐고! 꺼져! 나가!]
강동현을 거의 맨몸으로 집에서 쫓아냈다. 속았다는 생각이 드니까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앞뒤 생각도 하지 않고 그를 집에서 쫓아내고 나도 분이 안 풀려서 오늘 하루 종일 카드를 긁어버렸다. 뭘 샀는지도 모르겠다.
‘진짜 어디에다 기부나 크게 해버릴까 보다.’
그가 진짜 질색을 할 게 눈에 선하게 보였다. 황경호는 배가 터질 때까지 뭘 먹고 무서워서 잘 가지도 못했던 T아파트 마트에 가서 사 온 커다란 유기농 아이스크림을 사서 퍽퍽 퍼먹었다.
[바람만 안 피운다는 게 아니라 나 너랑 같이 계속 산다고.]
밉다. 그가 미웠다. 그가 미워서 죽을 것 같았다. 화가 났다. 이럴 거면 그런 말이나 하지 말든가. 그럴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어서 밥도 먹고 한 거 아닌가. 그래. 한빛나 진짜 예쁘니까 그럴 수도 있는데…. 그래. 안다고. 잘 알고 있는데 왜 사람 헷갈리게 계속 그런 말을 하냐고. 그게 화가 난다.
언젠가 끝날 거 잘 안단 말이다. 그가 어떻게 얘기하든지 말이다. 평생 같이 살자느니 없으면 못 산다느니…. 들으면 황홀하지만 역시나 정신을 차리면 절대 그렇게 될 리는 없다는 생각만 든다.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가끔은…. 저도 모르게 믿고 기대를 할 것 같아서 그렇게 조심을 하고 있었는데. 왜 자꾸 사람을 바보로 만드냔 말이다.
‘그냥 내가 바보다. 내가 바보야…. 등신….’
황경호는 그간 또 멍청하게 그에게 홀려서 그가 해달라는 대로 다 호구같이 해준 자신의 행적(…)을 떠올리곤 펑하고 빨개져서는 짜증스럽게 인상을 찌푸렸다.
짐작해보건대 아마 전 여자친구한테는 절대 요구하지 않았을 것 같은 온갖 변태 같은 걸 해달라고 졸랐다. 있지도 않은 가슴 가지고 자신의 것을 애무해달라든가(입도 함께) 후배위로 엎드려서 엉덩이를 빠르게 흔들어 달라고 하지를 않나 그것 외에도 이것저것….
‘병신….’
황경호는 얼굴이 확 달아올라서 손으로 부채질을 해서 가라앉히려고 노력했다.
섹스라는 게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
강동현은 스킨십이 정말 많았다. 굳이 하지 않더라도 많이 지분거렸다. TV를 같이 봐도 머리카락이나 손을 만지거나 귓불을 만질 때도 있고 정말 자연스럽게 무릎에 눕거나 했다. 황경호는 반대로 섹스는커녕 그런 종류의 스킨십조차도 강동현이 처음이라서 아직도 좀 움찔할 때가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황경호는 한 번도 그렇게 자연스럽게 일상에서 강동현을 만진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 이전에 그렇게 해도 되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뭔지 모르게 저어되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만져주는 게 어색하기는 한데, 기분은 정말 좋았다. 살살 쓰다듬어 주면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귓불이나 머리카락을 만져주면 뺨까지 간질간질하게 솜털이 솟았다. 티는 내지 않으려고 하긴 하는데…. 너무 기분이 좋아서 가끔씩 피하고 싶을 정도였다. 잠깐 만지고 손이 떨어지면 아쉬워져서 말이다. 그런 점이 뭔가 이상하고 어색해서 먼저 피할 때도 있었다. 가끔 이강유나 김태형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거나 하면 기분 좋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가 만지는 건 정말 좀 달랐다.
원래도 그는 섹시했지만…. 섹스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면 섹시하고 가끔, 귀엽다는 생각도 들어서 말이다. 게다가 몸을 섞는다는 것 자체가 두 사람이 가장 깊게 연결되는 행위이지 않은가. 때때로 이상할 정도로 황홀감이 들고 뿌듯하고 만족스러울 때가 있었다. 가슴이 꽉 차서 더는 부족한 게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살면서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는 충족감이었다. 한때는 그렇게 황경호를 비참하게 했던 행위가 왜 그런 기분을 들게 해주는지 여전히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요즘은 할 때 황경호가 더 그에게 달라붙으려고 하고 그의 피부를 갈구할 때가 있었다. 그러고 나서 정신을 차리면 진짜 식겁을 했다.
도대체 섹스가 뭐라고 이렇게 사람을 정신 나가게 하는 것인가.
지금까지의 황경호는 언제나 사람 사이의 적절한 거리를 중요시하던 사람이었다. 강동현이나 다른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그 선을 짓밟는 거야 항상 일어나는 일이니까 어떻게든 대처할 수 있었지만 본인이 그러는 것에는 도저히 어떻게 해야 할지 아웃라인이 안 나왔다. 아무리 조심해도, 아무리 기대하지 않으려고 해도 어느샌가 익숙해지고 필요 이상으로 의존적이 된 것만 같다.
그러니까 정말 황홀하고 기분이 좋더라도, 이렇게 매일같이 섹스를 해도 황경호는 때때로 불안했다. 이유는 잘 설명할 수 없었지만, 역시 이게 잘하고 있는 짓인지 영 모르겠다. 전에는 수동적으로 당하기만 해서 행위의 주체자로서 스스로를 인식하지 않고 항상 남의 일처럼 멀리 생각하곤 했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으면 마음이 좀 편해지니까 말이다. 그런 식으로 자신을 보호하는 선을 잘 만들어뒀었다. 하지만 그가 처음으로 고백을 했을 때, 마음이 끌려서 처음으로 그와 섹스했을 때부터 별것 아닌 하나하나에 황홀하거나 마음이 상하거나 했다. 적정한 거리를 유지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잘 지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계속 싸웠다. 같이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몇 번이나…. 원래 사람이랑 같이 산다는 게 그런 것일까? 다른 사람들이랑 갈등을 만들어 본 적이 거의 없는 황경호로서는 어느 정도가 적절한 기준인지도 잘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조심하고 또 조심했는데 결국 보면 잘 지내보겠다고 조심하는 것은 이쪽뿐이었다. 분명히 전에 그렇게까지 말했으면 조심해야 할 거 아닌가. 그런데 그런 기사까지 난 데다가, 뭐? 한빛나가 자기한테 마음 있는 걸 뻔히 알면서 밥은 또 같이 먹어줬다고?
‘나랑 지금 장난하는 거냐고.’
섹스야 이제 마음껏 할 수 있으니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또 제대로 된 여자를 찾는 건가 싶기도 하고(황경호는 자기 생각에 자기가 마음이 상했다)…. 그 전처럼 무덤덤하게 ‘대주는’ 것만은 절대 다시 못 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것만큼은 너무 비참할 것 같았다.
‘아…. 생각하지 말자. 진짜. 너무 비약해서….’
아니, 솔직히 비약은 아니지…. 생각의 전환에 실패한 황경호는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최악의 상황까지 떠올리자 진짜 마음이 상해서 눈물까지 핑 돌았다. 그 정도는 아닐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말이다. 혹시나, 혹시나 정말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서, 100% 그렇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지가 않아서 더 최악의 상황이 있을 수 있지 않나, 더 나쁜 경우엔 어떻게 해야 하나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가장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는 것이 마음을 단단히 대비하는 것에 도움이 되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너무 마음이 상해서….
그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화들짝 놀라서 그쪽을 돌아보았다. 강동현이 캐시미어 목도리를 풀며 안으로 들어왔다가 황경호가 빨간 눈으로 돌아보니 인상을 찌푸렸다.
“뭐야. 울었어?”
“…….”
황경호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가 눈을 마구 비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냥 바로 자기 방으로 향했다. 강동현이 그의 손목을 잡았다.
“황경호…. 그러지 말고 얘기 좀 하자.”
“됐어. 별로 안 듣고 싶어.”
“진짜 걔랑 나랑 아무 사이도 아니라니까. 지금 저쪽 소속사랑 다 얘기 끝내고 왔어. 오해래. 한빛나가 열애 인정한 것도 아니고 그냥 오보야. 정정기사 바로 나갈 거야.”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는 황경호는 영영 모를 것이다. 정정기사는 나가겠지만 실상이 어떤 건지는 저쪽 사람들만 아는 것이다. 강동현은 다른 사람에게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꽤 능숙하게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예전에 그렇게 황경호한테 집적거리면서도 일절 바람이라고는 생각 안 했던 놈이었다.
“그래. 알았으니까 놔.”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뭐가 아무것도 아닌가. 결국 한빛나가 예쁘고 매력적이니까 밥도 한번 먹으면서 ‘체크’한 것 아닌가. 그런 여자가 구애를 해온다는 것에 으쓱하지 않을 남자는 없을 것이다.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더더욱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았다.
“알았어. 일단 놔.”
강동현은 주저하다가 일단 놔주었다. 그러니까 황경호가 문을 쾅 닫고 자기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잠갔다. 강동현이 밖에서 문을 두드렸다.
“야. 황경호. 이러지 말자. 응? 야아. 다 오해라니까. 다 오해라는데 왜 계속 이러는데, 어?”
“…….”
황경호는 침대에 푹 엎드렸다. 우울하다…. 이런 경우엔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황경호도 그냥 차라리 바보처럼 그를 믿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심하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에게 진짜 배신을 당하는 것보다도 배신을 당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게 더 무서운 걸지도 모르겠다. 스스로가 바보가 되는 게 무서운 것이다. 원래 바보였지만 말이다. 하한선 정도는 지키고 싶은 것일까.
‘병신 같아.’
그렇게 강동현은 며칠을 애원하기도 하고 열심히 설명을 하기도 했다. 황경호는 시간이 가면서 점점 화가 풀렸지만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잘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지 잘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하루, 일을 끝마치고 들어왔을 때 그가 거실에 있었다. 강동현은… 화가 난 건지 삐친 건지 억울한 건지, 어쨌든 그런 얼굴로 황경호를 쳐다보았다.
“…….”
“…….”
황경호는 일단 방에 들어가서 씻고 옷을 갈아입고 다시 거실로 나왔다. 부엌으로 가서 물을 한 잔 마셨다. 강동현은 카우치 등에 두 팔을 걸치고 거기에 턱을 대고 황경호를 지켜보고 있었다.
“…너 나랑 영영 얘기 안 할 거냐?”
“…….”
“나 약간 화나려고 한다.”
황경호는 부엌의 테이블을 보다가 그 말에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오해 때문에 이렇게 된 건데 이렇게까지 해야 해? 당연히 기분은 나쁘겠지만 나도 피해자 아냐?”
황경호는 그에게 사과라도 해야 하나 하고 고민을 하다가 그의 말에 확 화가 났다.
“…네가 피해자긴 뭐가 피해자야? 한빛나랑 밥도 잘 먹었다면서.”
“그건 걔가 하도 먹자고 하니까…. 그 뒤로 촬영도 계속 있었는데 불편하게 계속 거절하냐?”
“그래. 잘했어. 그래서 뭐가 문제라고?”
“…….”
황경호가 비꼬아서 말하니 강동현도 인상을 찌푸렸다.
“계속 이러고 있자고? 말도 한마디도 안 하고? 언제까지 그럴 건데?”
“무슨 문제 있어? 왜? 섹스 못 해서? 해. 네가 나한테 바라는 게 그거 말고 또 있었어? 그래. 그러다가 마음에 드는 여자 있으면 그냥 갈아타. 별로 유감없어.”
“…….”
강동현이 거의 쌍욕이 입 밖으로 나오려다가 말을 멈추었다. 그렇게 황경호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너 질투하는 거지?”
황경호는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그와 눈이 딱 마주쳤다. 얼굴이 화하게 붉어졌다. 그런 생각 같은 건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는데 말이다.
“아, 아니야.”
강동현은 뭔가 억울하고 허탈한 얼굴로 자기 얼굴을 한 손으로 감쌌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황경호에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황경호는 황급히 뒷걸음질을 쳤다.
“소, 손대지 마.”
강동현이 싱크대 옆의 대리석 선반을 양손으로 잡으며 황경호를 그사이에 가두었다. 한 뼘이 조금 넘는 거리를 사이에 두고 시선이 딱 마주쳤다. 강동현은 쪽 하고 입을 맞추고 뗐다. 황경호의 얼굴이 벌게졌다.
“손대지 말라니까….”
“손 안 댔다.”
강동현은 뭔가 복잡한 얼굴로 그를 내려다보았다. 화가 나는데 말이다. 귀엽기도 했다. 그래서 또 짜증이 났다. 그런데 진짜 좋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이마에 입술을 누르며 오랜만에 그의 체취를 맡았다. 들큰한 게 확 기분이 풀어진다.
“야…. 나 진짜 좀 화났는데….”
강동현이 그렇게 웅얼거렸다. 그가 입술로 황경호의 얼굴을 지분거렸다. 이마랑 눈썹에 입술을 맞추고 뺨을 깨물고 턱과 코에도 입술을 눌렀다. 황경호는 시선을 아래로 확 내리고는 어쩔 줄을 몰라 하면서 강동현한테 손도 못 대고 움츠려 있었다. 강동현은 그냥 그를 통째로 끌어안았다.
“아…. 귀여워 죽겠네, 진짜.”
놀린다고 생각했는지 황경호가 퍽 하고 주먹으로 등을 쳤다. 맨날 살 붙이고 있다가 며칠 만에 이러고 있으니 온몸의 피부가 간질간질하다. 강동현은 그의 귓가에 얼굴을 묻었다.
“앞으로 절대 그렇게 여자 안 만날게. 응? 화 풀어.”
“…….”
“반지라도 하나 맞출까? 항상 끼고 다닐게.”
그의 말에 황경호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진짜 누가 보면 결혼이라도 한 줄 알겠다…. 황경호가 가만히 있으니까 강동현도 슬슬 화가 풀려서 그냥 좋아서 실실 웃음이 나왔다.
“너 나 진짜 좋아하지?”
“…미쳤어?”
“아, 왜. 좋아하잖아.”
“안 좋아해.”
“왜. 나랑 이러는 것도 좋아하고 내 얼굴도 좋아하고 내 목소리도 좋아하고 내 이것도 좋아하는데. 뭐가.”
그가 황경호의 아랫배 쪽에 스윽 그의 대물을 문지르자 황경호가 확 하고 온몸이 빨개져서는 그의 등을 퍽퍽 쳤다.
“싫다고, 이 변태야!”
강동현은 으쌰, 하고 황경호를 안아 들었다. 황경호는 기겁한 얼굴로 그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안 해. 안 해. 안 해!”
“왜애. 하자.”
강동현이 살짝 애교를 떨었다. 강동현은 자기 침실로 들어가서 황경호를 침대 가운데 내려놓았다. 그리고 스윽 그의 위를 점령하면서 그를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뭔가 억울하다. 이 새끼는 자기가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정말 잘 아는 놈이었다. 그의 미소가 정말 섹시하고 매력적이라 마음을 끌었다. 그리고 그렇게 마음이 끌리는 자신한테도 배신감이 들었다. 황경호가 인상을 살짝 찌푸리고 뭔지는 모르겠지만 마음을 확 끄는 얼굴로 자신을 보자 강동현은 아랫배가 확 당겼다. 그의 손에 깍지를 끼며 털썩 눕혔다. 강동현이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나 진짜 많이 할 건데.”
“…안 한다고.”
강동현이 자기 옷을 훌쩍훌쩍 벗었다. 금방 그의 멋진 나체가 드러났다. 계속 미소를 지으면서 쳐다보니까 말이다. 어디 화보라도 당장 들어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멋있고 섹시하고 매력이 있었다. 황경호는 가슴이 떨렸는데, 그게 또 배신감이 장난이 아니다.
‘미친놈…. 병신….’
황경호는 그렇게 자기 자신에게 속으로 중얼거리면서도 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손에 입을 맞추면서 또 씩 웃었다. 눈이 마주치면 오금이 저릴 정도다. 강동현은 상대에게 몸을 붙이면서 뺨에 입술을 꾹 눌렀다.
“어떻게 해줄까? 응? 어떻게 해주는 게 제일 기분 좋아?”
황경호야 원래도 잘 느꼈지만 그날그날 좋아하는 게 또 달라져서 말이다. 어떨 때는 부드럽게 키스하는 것을 좋아하고 어떨 때는 열정적으로 걸신들린 듯 서로의 혀를 빠는 것을 좋아했다. 피부를 만지는 것도 언제는 잘 느꼈지만 어떨 땐 얼굴을 만지는 걸 제일 좋아했고 어떨 때는 등허리를 제일 잘 느끼고 어떨 때는 다리를 제일 좋아했다. 피스톤질도 말이다. 어떨 때는 부드럽게 움직이는 걸 좋아하고 어떨 때는 돌려주는 걸 좋아하고 어떨 때는 또 미친 듯이 박아주는 걸 제일 잘 느껴서 말이다. 매일이 보물찾기다.
“좋아해. 진짜 귀여워. 너 말이야…. 이제 나랑 맨날 같은 거 먹고 사는데. 왜 이런 냄새 나는 거야? 응? 진짜 귀엽게시리.”
그렇게 귀에다 속삭이면서 옷 안으로 손을 넣었다. 배와 허리를 부드럽게 어루만지면서 몸을 지그시 눌렀다.
“흐응…. 아…. 잠깐만….”
아, 뭔가 느낌이 좋다. 상대가 몸을 움찔거리면서 반응하는 걸로 대충의 각을 쟀다. 강동현은 그의 뺨에 입술을 맞추고 목덜미에 입술을 문지르며 주르륵 타고 내려가 티셔츠를 걷어 올려 가슴 근처에 입술을 문지르고 쭉 아래로 입술을 미끄러뜨려 내려갔다. 그리고 배꼽을 핥고는 상대의 바지와 속옷을 한 번에 벗겼다.
“앗….”
황경호가 두 손으로 아랫도리를 가렸다. 괜히 이런 거 불끈거려서 말이다…. 강동현은 그의 손에 입을 맞추며 손을 잡아뗐다. 바로 울먹거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아…. 하지 마. 흑…. 그거 싫어.”
“뭐가?”
“그거….”
“왜?”
“아앙…!”
“왜 싫은데? 기분 좋지 않아? 난 네가 해주면 진짜 좋던데.”
“아아앙…. 싫다니까…. 아앙…. 흐읏…. 아앙….”
강동현은 그의 분홍빛 성기를 혀로 슬금슬금 핥고 입을 맞추다가 입안에 넣고 진공으로 만들어 아예 쪽쪽 빨았다.
“흐아앗…! 아아앙! 싫어! 싫어! 아앙…! 흑. 강동현…. 강동현….”
그가 자신의 이름을 애달프게 불렀다. 몸을 야하게 꿈틀꿈틀거리며 강동현의 머리카락을 쥐었다. 강동현은 회음부에서부터 혀로 진득하게 그의 성기를 핥아 올리고는 입을 뗐다. 고개를 들어보니 그가 세상 야시시한 얼굴을 하고 몸을 떨었다.
‘아…. 진짜 꼴린다….’
병원에선 진짜 순하고 어려 보이고 잘 웃고 착해 보이는데 이럴 땐 진짜 깜짝 놀랄 정도로 야했다. 콩깍지가 씌어서 그런가 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그냥 뭔가 선이 섬세한 게 예뻐서 말이다….
“하앙….”
강동현이 엄지로 엉덩이 사이를 벌려 보자 애무를 제대로 하는 것도 아닌데 움찔하며 신음을 흘렸다. 그의 연분홍빛 음부가 아직 뭐가 들어간 것도 아닌데 움찔거렸다. 강동현은 그게 어떤 환희를 주는지 알고 있어서 아랫배가 뻐근하고 묵직해지는 걸 느꼈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팔을 잡아서 일으켰다. 그리고 강동현이 자리에 앉았다. 그의 상체를 엎드리게 하니 그의 얼굴 앞에 떡 하니 강동현의 대물이 자리했다.
“흐응.”
강동현이 음흉하게 웃으면서 그의 젖꼭지에 남성기의 끝을 슬쩍 비볐다.
“앗….”
젖꼭지 같은 데를 만지면 금방 가버려서 안 만졌다. 분홍색에 보들보들한 게 자지의 구멍을 문지르니 기분이 끝내줬다. 황경호는 펠라치오 당하는 걸 싫어했지만 강동현은 그가 펠라치오나 파이즈리를 해주는 게 좋았다. 그의 얼굴을 바로 볼 수 있어서 좋다. 섬세하고 부드러운 선을 가진 그의 얼굴이 새빨개져서 어쩔 줄 모르는 건 정말 볼수록 뿌듯하고 꼴린다. 그리고 또 괴롭히고 싶어졌다.
“전처럼 해봐.”
“나 가슴 없다고….”
“그래도 잘했잖아.”
황경호가 주저하고 있자 강동현이 졸랐다.
“조금만. 응? 좀만.”
“아….”
“그 뒤에는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다 할게. 엉? 황경호~”
구슬렸다.
황경호는 얼굴을 벌겋게 하고 결국엔 없는 가슴을 끌어모아서 불뚝 선 강동현의 자지를 문질렀다. 강동현이 혀로 입술을 핥으며 그걸 내려다보았다. 요새 쪼~끔 살이 붙긴 했지만 여전히 마른 편인 황경호였다. 가슴살을 모아도 없는 건 없는 거다. 강동현의 남성기가 황경호의 가슴 사이를 빠져나가 자꾸 엉뚱한 데를 문질렀다.
“으응….”
그러다가 젖꼭지 같은 데라도 건드리면 완전 난처한 얼굴이 되어 펄쩍 했다. 재밌다. 귀엽다. 기분 좋다. 결국 황경호는 어쩔 수가 없는지 한 손으로 강동현의 자지를 오른손으로 잡고 왼손으로 최대한 살을 끌어모은 왼쪽 가슴살에다 문질렀다. 강동현은 손을 뻗어 그의 오른쪽 젖꼭지를 검지와 중지로 살살 장난치듯 건드렸다. 황경호의 얼굴이 확 빨개졌다.
“아앙…. 만지지 마…!”
“난 신경 쓰지 말고 그냥 계속해.”
이게 말인가 방군가. 황경호는 인상을 확 찌푸렸다.
“으윽….”
“입으로도 해줘.”
강동현은 얼굴을 살짝 붉히고 황경호의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기분이 좋아서 올라간 입꼬리가 내려오지를 않았다. 또 영 변태같이 웃으면서 황경호의 젖꼭지를 잡아당겼다.
“빨리.”
“아프다고, 이 변태가…!”
황경호는 확 성질을 냈다. 그리고 강동현을 확 노려보았다. 강동현이 기분 나쁘게 실실 웃으며 계속 눈짓을 했다. 황경호가 인상을 더 쓰더니 무언의 조름에 넘어가 결국 그의 귀두에 입술을 대었다.
“윽…. 아…. 후….”
황경호가 귀두를 입에 물고 쪼옥 빨아들이자 강동현이 허리를 움찔하며 눈을 감았다가 떴다. 강동현은 그의 오른쪽 가슴을 검지와 중지로 계속 문질렀다.
“으으응…! 응…!”
황경호의 등이 고양이처럼 구부러졌다.
평소엔 강동현이 뭐라고 하면 가끔 덮어놓고 ‘노’라고 할 때도 있는데 또 이럴 땐 은근히 분위기를 타서 다 들어준다. 물론 안 들어줄 때도 있지만 말이다…. 강동현한테는 여전히 가끔 좀 까다롭고 솔직하지 못하고 어쩔 땐 이해도 잘 안 되고 그러는데, 이럴 때 보면 그럴 수도 있지 싶다. 아니, 오히려 그래서 더 좋은 것 같다. 이런 걸 해주는 것도 다 애정이 있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하면 귀여워서 말이다.
강동현이 그렇게 즐기고 있는 동안 황경호는 아주 곤란함을 느끼고 있었다.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거야….’
잘생기게 잘 벌어진 귀두는 미끈하고 맛이 이상했다. 쓰고 ‘남자의 냄새’가 났다. 잘 씻은 그의 음모에서는 평소 그의 체취가 약간 났지만, 그의 남성기를 빨다 보면 결국엔 쿠퍼액 맛이 날 수밖에 없었다. 기둥은 핏줄이 불거진 그냥 살덩이였다. 딱딱한데도 일단 사람의 살이라 질감이 이상하다. 게다가 두껍고 길어서 깊게 넣으면 숨이 막혔고…. 기본적으로 턱이 아프다.
‘아…. 이 지루….’
황경호는 그렇게 속으로 불평을 하다가 그가 젖꼭지를 잡아당기면서 문지르자 결국 입을 뗐다.
“아윽…!”
“그만하고 이리 와.”
그가 젖꼭지를 잡아당기니 아파서 딸려가다가 화가 나서 그를 퍽퍽 쳤다.
“뭐 하는 거야!”
여전히 황경호를 괴롭히는 걸 좋아하는 강동현이었다. 진짜 이런 점은 미워 죽겠다. 황경호는 자신의 가슴을 손으로 누르며 그를 노려보았다. 그걸 또 좋다고 강동현은 끌어안고 쪽쪽 거리며 지분거렸다. 황경호가 사정을 할 것 같을 때까지 지분거리다가 그만두었다. 아까도 강동현이 입으로 애무를 해주었을 때 사정 직전에 그만두고 이번에도 그렇게 그만두니 황경호는 초조함을 느꼈다.
하고 싶었다.
‘부끄러워. 창피해….’
황경호는 손으로 다리 사이를 가리며 움찔거렸다. 강동현이 뒤에서 그를 끌어안고 그의 귓불을 입술로 물었다.
“아…. 젠장. 죽겠다.”
황경호가 그런 기분이 들게 하려고 자기도 계속 참았더니만 자지가 그냥 아픈 강동현이었다. 인상을 심하게 찌푸리며 황경호가 팔로 자신의 머리를 안게 했다. 그는 황경호의 등 뒤에 딱 붙은 상태였다. 황경호는 팔을 뒤로하여 강동현의 머리를 감싸 깍지를 낀 자세가 되었다. 강동현은 하도 빨려서 퉁퉁 불은 그의 입술을 다시 쪽쪽 빨았다.
그리고 젤이 질척질척한 황경호의 엉덩이 사이에 남성기의 끝을 대고 꾸욱 눌렀다.
“으으음! 으응…!”
처음 들어가는 것이 힘들다. 황경호가 예민하게 반응하며 허리를 뺐다. 강동현은 그의 배를 손바닥으로 감싸며 자신의 쪽으로 눌렀다. 황경호가 결국 입술을 뗐다. 부들부들 떨면서 신음을 흘렸다.
“흐앗…. 앙…. 이게 제일 싫어…. 흑….”
처음 넣을 때를 제일 싫어하는 황경호였다. 강동현이 그의 귀를 빨면서 속삭였다.
“힘 좀 빼봐. 응? 하고 싶잖아.”
그의 목소리에 찔끔 흘린 황경호였다.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고는 그의 말대로 몸을 이완하려고 노력했다. 그 새를 타고 귀두가 쑥 들어온다. 그리고 들어온다 싶을 때 시차를 두지 않고 반 이상을 한 번에 박아버린다.
“아아앙…!!”
황경호가 비명을 지르며 엉덩이를 바르르 떨었다. 그리고 그대로 강동현은 황경호의 엉덩이를 잡고 엄지로 그 살을 꾹 누르며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흣…. 앙…. 아앙. 앙…! 하앙…!”
그대로 슥슥 매끄럽게 자지가 왔다 갔다 하자 황경호가 구멍을 좁혔다 풀었다 하며 적응하려고 하였다. 강동현은 그게 미치게 좋으면서도 더 괴롭히고 싶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대로 점점 허리짓에 속도를 높였다.
“힛…. 아앙. 아앙…. 세게 하지 마. 그거 싫어…. 흑…. 차라리 천천히 해….”
“왜…. 윽…. 진짜 좋아하더만….”
“천천…! 아아…. 잠깐. 진짜…. 아앗! 하앗! 앗…!”
엉덩이 살에 강동현의 근육질 몸이 부딪치며 퍽퍽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황경호의 엉덩이가 강동현의 남성기를 쪽쪽 빨며 야한 소리가 잔뜩 났다. 점점 강동현의 몸짓이 빨라지기 시작하자 황경호는 깍지를 낀 손에 힘을 주었다. 자세 덕에 강동현이 평소보다 더 빠른 속도로 퍼퍽 박기 시작했다.
“하앙! 아앙! 아아앙! 하으앙! 핫! 히익! 아아!”
황경호는 눈물을 쏙 빼며 울었다. 계속 사정을 하는 것 같았다. 엉덩이가 녹을 것만 같았다. 온몸이 녹을 것만 같았다. 강동현이 너무 기분이 좋았다. 그의 자지가 너무 기분이 좋았다. 죽을 것만 같았다. 죽고 싶었다.
“나쁜 놈! 힉! 아! 하지 말라니까! 아앙! 아아앙!!”
“나, 이거, 큭, 아, 너무, 좋아, 큭…. 젠장, 터질 것 같아.”
그렇게 느릿하고 세상 제일 섹시하게 섹스할 수 있는 남자가 완전 짐승같이 상대에게 자기 성기만 퍽퍽 집어넣고 있었다. 황경호의 성기가 마구 흔들리면서 정액을 왈칵 토해냈다.
“히아아아앙!”
“크윽…!”
황경호가 사정을 하며 확 조이며 몸을 비틀자 그걸 다 따라가서 박아댔다. 그냥 박는 것밖에 생각이 없었다. 자지가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떨어져 나갈 것 같다. 불타는 것 같다. 폭발하는 것 같다. 그냥 기분이 너무 좋았다. 죽을 것만 같았다. 계속 이대로 죽을 때까지 하고 싶었다.
오랜만에 해서 그런지 상황이 상황이라 그런지, 정말로 뻐근하고 조이고 뜨겁고 쫄깃하고 기분 좋고 뿌듯하다. 그의 음부가 강동현의 것을 쪽쪽 빨고 꼭꼭 씹어댔다. 끝내줬다. 미칠 것 같다. 강동현이 허리만 써서 그 속도 그대로 박으며 황경호의 가슴을 더듬었다. 황경호가 비명을 질러댔다.
“하아앙! 아아앙! 싫어! 하! 히익! 죽여버릴 거야, 진짜!!”
“걱정 안 해도, 네가 지금 나 죽이고 있어….”
강동현은 완전 약이라도 한 것 같은 목소리로 황경호의 귓가에 속삭이고 그의 귀를 핥았다. 황경호는 순간 엉덩이에 힘이 풀려 그가 퍽하고 쑥 들어오는 것 같은 느낌에 진저리를 쳤다.
“금방 그거, 좋은데…. 윽…. 하아. 큭.”
“아아아아…. 아아아아아….”
“큭…. 아. 윽…. 젠장. 큭…. 하으…. 윽….”
황경호도 정신줄을 놓고 강동현이 마구 쑤셔대는 걸 느끼며 야한 신음만 잔뜩 흘렸다. 그리고 또 가버렸다.
“흐으아아아앙…!”
비명을 지르듯 신음하며 꽉 조이자 강동현이 두 팔로 황경호의 몸을 꽉 끌어안았다. 그리고 계속 황경호의 엉덩이를 빠르게 쑤셨다.
“어때? 응? 어때? 기분 좋지? 응? 기분 좋잖아? 솔직하게 말해 봐. 난 진짜 죽을 것 같은데. 하아. 너 진짜 기분 좋아.”
강동현은 십몇 분 동안에 걸친 거친 육체노동에 숨이 턱 끝까지 차서는 그렇게 속삭였다. 황경호가 빠르게 두 번이나 사정을 해서 마구 경련을 하며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데도 계속 박았다.
“하우…. 으으…. 아우. 으윽. 아으으…. 우으….”
한동안 황경호를 잘 먹이고 사정도 덜 하게 하려고 하더니 이번엔 이렇게 빠른 시간 내에 몇 번이나 보내버렸다. 황경호는 십수 분을 잇는 멀티 오르가즘과 경련으로 딱 죽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가 젖꼭지를 문지르고 만지자 엉덩이에 힘이 자꾸 확 풀렸다. 더 이상은 못 할 것 같다. 죽을 것 같다. 기분 이상해. 뭐가 더 나올 것 같아. 더 이상 못 해. 죽을 거야.
“기분 좋지? 응?”
“하으응…. 이 변태…. 그냥 빨리…. 빨리…. 으응….”
황경호가 조르듯이 강동현의 턱을 입술로 문지르자 강동현의 얼굴이 확 상기하더니 길고 낮게 신음을 흘렸다. 그리고 퍼퍼퍽! 곧바로 사정하기 시작했다. 황경호도 깜짝 놀라 실금하듯 싸버렸다.
“아아아아앙….”
쩌억. 쩝. 찌이걱. 황경호가 사정을 하면서 저도 모르게 엉덩이로 쪽쪽 자지를 빨았다. 그를 꽉 조인 채 온몸을 벌벌 떨며 경련을 했다. 거기에 엉덩이 안은 완전 질척질척 끈적끈적….
“흐으응….”
황경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입술을 떨며 녹아내릴 것 같은 환상적이고 뜨거운 오르가즘 속을 유영했다. 자위나 이런 거랑은 차원이 달랐다. 서로를 손으로 만져주거나 성기를 맞대어 비빌 때랑도 달랐다. 이렇게 몸을 연결해 강동현과 섹스하면 영원히 끝나지 않는 쾌락이 찾아왔다.
황경호의 어깨를 꽉 물고 숨도 멈추고 그를 꽉 끌어안고 있던 강동현은 숨이 막혀 기절하기 직전에야 크게 숨을 들이쉬고 내쉬었다. 그대로 숨이 넘어갈 것 같이 호흡했다.
“아…. 제기랄…. 씨…. 아우…. 큭….”
강동현은 의미를 모를 신음 소리를 내며 황경호의 날개뼈 근처를 세게 깨물고 빨아댔다. 허리를 움직여 콱콱 몇 번 더 박았다. 그리고 다시 꽉 끌어안고 황경호의 고개를 바짝 돌려 정신 못 차리는 상대의 입안을 마구 헤집으며 침이 질질 흐를 때까지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손에 힘이 빠지고 현기증이 돌아 황경호를 놓치니 황경호는 그대로 침대 위에 꼬구라박았다. 강동현도 크게 휘청하며 쭈르륵 한 번 거나하게 빨리는 소리를 내며 서로의 접합이 끝났다.
“헉…. 헉…. 하아…. 헉….”
“흐응…. 흐읏….”
강동현은 그대로 침대에 주저앉아 자신의 어질어질한 머리를 감싸 쥐고 결국 뒤로 드러누워 버렸고 황경호는 숨이라도 넘어갈 것처럼 쌕쌕거리며 숨을 쉬었다. 그대로 둘 다 기절하듯 잠들었다.
그대로 7시간 뒤가 되자 황경호는 부스스 일어났다. 어제 그러고 잠들어 버린 것이다. 주홍빛 스탠드가 여전히 켜져 있어 방안이 환했다. 보니 강동현은 침대 밖으로 머리가 나가 뻗은 자세로 기절해 있었다. 하긴 최근 스캔들이다 뭐다 제대로 집에도 못 들어오고 옷 상태를 보니 담배도 많이 피우는 것 같았다.
오랜만에 몸이 나른했다. 아직 자고 있는 강동현을 보고 스탠드를 끄려는데 문득 그의 거시기(?)가 눈에 들어온다.
“…….”
그건 보면 그것밖에 안 보일 정도로 존재감을 자랑하여 순간 얘가 정말 한국인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게 어젯밤 그를 엄청나게 들쑤셔댔던 걸 생각하면 그저 외면하고 싶을 뿐이다.
‘목말라….’
황경호는 바닥에 떨어진 티셔츠 중 하나를 뒤집어썼다. 큰 걸 보니 강동현 거다. 그는 발을 질질 끌며 침실을 나갔다. 거실에서 보니 창밖은 새카맣고 간혹 차가 달리는 새벽이다. 새벽 5시. 이사를 오고 나서 식사를 과하게 해서 그런지 금방금방 배가 고파졌다. 예전 같으면 라면 같은 걸 먹었겠지만 요즘 입맛으로는 그건 못 먹을 것 같다.
냉장고를 여니 각종 식재료들과 유제품 등이 보였다. 황경호는 잠깐 그걸 보고 있다가 간단히 연어와 양상추, 바질, 겨자잎 등을 이용한 샐러드를 만들었다. 발사믹 식초와 올리브유를 약간 치니 그럴듯해 보인다. 멜론도 한 조각 썰어서 접시에 올리고 알이 큰 포도도 같이 냈다. 우유와 생오렌지 과즙과 물을 한 잔씩 따랐다. 목이 말랐다.
“음….”
한 입 먹는데 진짜 황홀함이 들 정도로 맛이 좋았다. 물도 마시니 이건 빙하수를 마시는 것처럼 청량하다. 우유도 정말 고소하다. 커다란 포도알이 입안에서 달콤한 과즙을 터뜨리면 그게 그냥 극락이었다.
그때 침실에서 문이 열리며 강동현이 검은색 명품 속옷만 입은 채 목을 주무르며 나왔다.
“뭐 해.”
그는 맹수가 기지개를 켜듯 길쭉하게 뻗었다. 머리카락이 다 솟았는데도 근사한 남자였다. 황경호는 허겁지겁 먹고 있다가 그를 보고는 입안에 있던 걸 꿀꺽 삼켰다.
“배고파서.”
“하암. 나도…. 근데 몇 시냐.”
강동현이 성큼성큼 걸어 수저가 든 서랍에서 포크만 챙기더니 황경호의 맞은편에 앉았다. 황경호는 접시를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겼다.
“먹지 마.”
“아. 왜.”
강동현이 짜증을 냈다.
“모자라.”
“많구만.”
기어코 뺏어 먹었다. 그도 물을 한 모금 하더니만 그제야 목이 탄 걸 알아차렸는지 벌컥벌컥 마셨다. 사실 황경호가 너무 배가 고파 뭘 많이 내놨더니 다 못 먹을 것 같았다. 포도가 너무 맛있어서 한 알씩 먹으며 강동현이 먹는 걸 보고 있었다. 다 먹고 나서야 크게 한숨을 쉬었다.
황경호는 다 먹은 그릇을 들고 싱크대로 갔다. 그리고 물을 틀고 설거지를 하려는데 뭐가 슥 그의 엉덩이를 만져 깜짝 놀랐다. 황경호가 눈을 크게 뜨고 뒤를 돌아보았다.
“거짓말이지?”
“나 오늘부터 한국에 없잖아….”
그렇게 말하며 강동현이 발기한 것을 꾹 넣었다.
“으앗…! 잠깐…. 힉!”
귀두만 쏙 들어가고 한 번에 들어가진 않아 허리를 앞뒤로 흔들며 들어갔다. 어제 그렇게 하다가 잔 데다가 씻지도 않아 처음 넣는 것보단 수월하게 들어갔다. 헐렁한 티셔츠 사이로 보이는 어깨가 새빨개지고 있었다. 강동현은 만족스러운 신음을 흘리며 피스톤질을 시작했다.
“아, 새벽부터!”
황경호가 엄청 짜증을 내며 정강이를 뒤꿈치로 깠다. 약간 비켜 쳐서 살았다.
“좀만 봐주라…. 응? 나 3주나 나가는데….”
“봐주긴 뭘 봐줘!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는 주제에…! 으으응…. 아, 진짜아….”
제일 깊숙한 곳부터 제일 얕은 곳까지 슥슥 집요하게 왕복하자 황경호는 싱크대의 테두리에 팔꿈치를 대고 두 손을 모아 잡고 그 손목에 얼굴을 묻은 채 야한 신음을 줄줄 흘리며 느끼기 시작했다.
“히응…. 아응. 아아…. 하아앙. 응…. 흐읏. 거긴….”
“여기 좋아? 응? 큭. 하아…. 진짜 너 죽인다. 너 여기에 꿀 발라 놨어?”
퍽퍽퍽. 첩첩첩. 쩝쩝. 찌이걱. 쭈웁쭈웁. 그런 종류의 소리들이 강동현의 허리짓 때문에 파생되었다. 황경호는 벌써 한 번 갔다.
“흐으으으으응….”
황경호는 창피해서 얼굴을 확 붉혔다. 강동현의 손이 티셔츠 안으로 들어와 가슴을 더듬었다. 강동현이 천천히 거의 다 뺐다가 천천히 끝까지 넣어 서로의 살을 꽉 붙인 채 한 바퀴 휘젓는 식으로 움직였다. 그의 하반신의 움직임에 엉덩이 살과 안까지 다 이상하게 움직인다. 황경호는 그게 엄청 부끄러웠다.
“아응…. 이상한 짓 하지 말고…. 힉…. 빨리 그냥 싸….”
“하하.”
황경호의 애원에 강동현이 기분이 좋은지 웃었다. 그렇게 부엌에서 한 번 하고 욕실에 가서 한 번 더 했다. 화해한 김에, 또 바로 오늘 출국을 하는 강동현이다 보니 사정 안 봐주고 막 한다. 오늘 쉬는 날이 아니었으면 진짜 큰일 날 뻔했다.
“윽…. 하…. 전화 자주 할게.”
“흑…. 그냥 빨리 가, 이 변태….”
“나도 좋아해.”
강동현은 그렇게 말하면서 괜히 황경호를 더 괴롭혔다. 황경호는 질질 울다가 그가 한 번 더 사정하자 그제야 제대로 씻고 옷을 입을 수 있었다.
그렇게 강동현이 중국으로 갔다. 예정은 3주였다. 광고 촬영과 중국에서 찍는 영화와 드라마에 까메오 출연을 하기로 되어 있단다. 한빛나와의 스캔들도 정정보도가 나오면서 흐지부지됐다. 황경호는 강동현이 없이 아주 쾌적한(!) 성수동 생활을 영유할 수 있게 되었다.
멋진 집과 아름다운 전망, 조성이 잘 되고 깨끗한 숲. 가끔 산책도 하고 강동현의 팬 커뮤니티에 접속을 해서 글을 올리거나 요리를 하고 블로그 포스팅을 하기도 했다. 강동현 때문에 빡쳤을 때 산 비싼 카메라로 요리를 찍으면 정말 멋지게 사진이 나와서 근래 블로그 방문자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어서 신기했다.
‘하긴 형 요리는 좀 사람들한테 알려질 필요가 있어.’
김태형의 요리는 간단하면서도 맛있고 건강에도 좋은 현대인을 위한 요리였다. 요리를 하기 위해 이것저것 필요한 것이 아닌 실전 요리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그의 요리가 알릴 수 있는 게 좀 뿌듯했다. 몇 명 안 되더라도 말이다.
강동현이 없어서 좋은 점은 단지 섹스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는 여전히 빨래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고 담배도 아무 데서나 피워서 담뱃재를 다 치우게 만들고 집에 냄새가 배는 문제로 사람 신경을 쓰게 만들었다.(집안 곳곳에 숯으로 된 냄새 제거제를 놓았다.) 밥 먹고 나서 식기세척기 안에 넣는 것도 두 번에 한 번은 안 하고 소파에서 섹스하지 말자고 그렇게 말했는데도 꼭 카우치 커버를 막 바꾸고 난 다음에 해서 빡치게 한다든가….
‘없으니까 진짜 좋다….’
일주일이 지나니 황경호가 새삼 그렇게 느끼며 커피 한 잔을 하면서 창문 앞에서 한강을 내려다보았다. 하긴 사이판 갔을 때도 좋았다. 사이판이 예뻐서 좋은 것도 있었는데…. 사실 그 새끼 없어서 좋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어떻게 돼도 집 달라고 하면 주지 않을까?’
지금이라면 진짜 줄 것도 같은데…. 황경호는 아주 잠깐 머릿속으로 주판을 두들겨 보았다. 뭐, 굳이 두들기지 않더라도 완전 이득이다. 황경호가 간호사 월급으로 언제 이런 집을 사보겠는가.
강동현의 스캔들 때문에 우울해하거나 신경이 곤두서거나 할 일도 없이 평온해지니 작은 방에서 레고를 쌓기도 하고 책도 좀 더 많이 읽을 수 있게 되었고 Y대 병원이나 고아원에 가서 일을 돕기도 하고 이강유의 봉사활동을 따라가기도 했다.
황경호의 레고 방이 된 작은 방에는 이것저것 만들어지다가 금방 부서지고 또 만들다가 부서지고 하다가 요즘은 마음을 잡고 궁전을 짓고 있었다.
황경호는 문득 작년 이맘때의 자신이 어떻게 지냈었나, 라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다. 강동현의 삼성동 집에서 도망치듯이 나와서 처음 그런 걸 당해서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창피하고 멍청한 자신을 어떻게든 추스르고 지내고 있었다. 좁고 낡은 집과 초라한 자신.
그때는 그렇게 자신을 괴롭히던 우울감이 지금은 없다. 물론 가끔 강동현 때문이랄까…. 어쨌든 우울해질 때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지금은 죽고 싶다는 생각 같은 건 전혀 하지 않았다. 황경호는 어째서 그렇게 자신이 죽고 싶어 해야만 했는지 왜 지금은 괜찮은 건지 문득 궁금해졌다.
‘진짜 돈 때문인가….’
황경호는 문득 지금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게 전과 달라서 그런 건가, 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초록이를 만나고 아이의 회복력에 기대어 스스로도 회복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도 사람은 나아질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 아이가 너무나 눈부시고 소중했다. 아이를 위해서라도 힘내야지, 라는 정말 주제넘은 생각을 하기도 했다. 아이의 건강은 기적적으로 회복되었는데 자신은 그것만큼도 안 되는 것 같아 초조했던 적도 있었다. 새해를 맞이하는 ‘건강한’ 사람들에 비하여 자신은 얼마나 바보 같고 한심한지…. 아무리 열심히 해도 그들만큼 인생을 잘 살아낼 자신이 없었다. 좋은 일이 있기도 하고 나쁜 일이 있기도 한 그런 평범한 인생을 말이다.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서…그래. 왜 살아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냥 평생 이렇게 살다가 죽을 거라면 지금이 낫지 않나…. 지금이야 젊고 건강하니 제 한 몸 건사하고 잘 살 수 있겠지만 몇십 년이 지나고 늙고 병들면? 누군가와 함께 사는 건 애초에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거기에 산다는 건 가끔 일상이 벅차서…. 딱히 달라질 게 없는 직장 생활, 무심하고 예의 없는 타인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빠듯한 서울살이…
거기에 강동현은…. 한 번씩 정말 바닥을 치게 했다. 그리고 또 위력감도 느끼게 해주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누군가에게 제대로 된 영향력을 끼쳐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무력하다는 생각조차도 잘 해보지 못했는데 그가 황경호를 마구 휘두름으로써 황경호도 그를 휘두를 수 있게 되었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서서히 가라앉기만 하던 황경호의 인생이 마구 아래위로 튀어 올랐다. 황경호의 인생에서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들이 마구 일어났다. 그게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그리고 앞으로 그의 인생이 어떻게 될지도 전혀 모르게 되었다. 이렇게 같이 계속 살더라도, 혹은 그렇지 못하더라도.
결국엔 ‘변화’와 ‘불확실성’인 것일까.
인생을 기대하게 만드는 것은….
커피가 바닥을 드러내었다. 아직 몹시 추운 2월, 어느 날. 황경호는 석양이 내리는 강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어쨌든…. 없으니까 좋다.”
전화를 자주 한다던 강동현은 생각보다 바쁜 모양이었다. 처음 며칠은 생각보다 스케줄이 빡세다는 말을 전화나 문자로 했는데 그 이후로는 하루에 한두 번씩만 연락이 왔다. 대도시에서만 촬영을 하는 게 아니라서 가끔 통신 연결이 좋지 않은 곳에서 있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일 하나는 진짜 열심히 하는 놈이니까 말이다. 집중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냥 무리해서 연락하지 말라고도 했다. 연락이 대충 되던 일주일도 쾌적했지만 연락이 아예 오지 않는다 싶던 일주일은 더 쾌적했다. 솔직히 말이다.
“오빠, 요새 좋은 일 있어?”
황경호가 콧노래를 부르면서 일을 정리하고 있자 정기연이 그렇게 물었다. 황경호가 고개를 들었다.
“응? 아니?”
“술이나 한잔?”
“그래.”
황경호는 흔쾌하게 응했다.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한동안 집 문제나 돈 문제 때문에 골치를 앓았지만 그럴 일도 없었고 누가 집에서 기다리거나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도 아니었다.
걱정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성수동에 이사를 오고 나서 적응할 때까지는 집이 너무 좋아서 집에만 자꾸 붙어 있었다. 현실감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거의 두 달 정도 있었나. 강동현도 없겠다, 마음도 편하다. 솔직히 그가 있으면 그의 눈치를 안 볼 수가 없으니 말이다. 항상 따라붙던 이상한 불안감과 뭐만 하려고 하면 발목을 잡던 저항감도 없다. 마음이 가볍다. 걱정이 없다는 것은 그런 느낌이었다. 황경호는 자신의 마음이 전에 없이 가볍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음이 가볍다는 것은 그런 것이니까 말이다. 막상 그런 때가 오면 물 흐르듯이 당연하게만 느껴진다. 모든 행동이 자연스럽다.
“요새 만난다는 남자는 뭐 하는 남자야?”
황경호가 물었다. 김형세는 오늘 없었다. 그도 최근에 여자친구가 생겨서 퇴근하면 거의 여자친구와 어울리는 것 같았다.
“아, 친구 남자친구 친구였는데 예전부터 괜찮다는 생각은 했었어.”
“전에 남친 사귈 때부터 알던 사이였어?”
“그런 듯.”
생각해보면 김태형이나 이신현같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연애와 담쌓고 사는 경우가 아니라면 다들 이제는 만나는 사람이 있었다. 조한나는 2년이 넘게 만나는 상대가 있었다. 김형세도 정기연도 이전 연인과 몇 년 정도 만났었고 헤어지고 몇 달의 텀이 있어도 계속 만나는 이성은 친구든 뭐든 있었다.
‘하긴…. 우리 병원 식구들은 다들 인물도 좋고.’
황경호 정도나 항상 상대가 없었지 다들 할 건 다 하고 살았다는 것이다. 새삼 다들 어떻게 누군가와 그렇게 지속적으로, 혹은 끊임없이 호감을 느끼는 상대를 찾고 관계를 지속시킬 수 있는지 대단하게 느껴졌다.
“사귄 지 얼마 안 됐으니까 좋겠네.”
“뭐…. 나쁘진 않은데 그렇다고 엄청 좋다고 하기도 그렇고…. 그냥 아직 알아가는 단계지.”
“그래….”
정기연은 그러면서 불만스러운 얼굴을 했다.
“그래서 항상 한나가 부럽단 말이야. 한나는 만나는 남자마다 자기가 더 좋아하고 만족하니까…. 남자들도 한나 같은 스타일 좋아하잖아. 예쁘고 청순하고.”
“너도 예쁘잖아. 인기도 많으면서.”
“그런 것보다…. 내가 문젠가? 어떤 남자를 만나도 딱히 엄~청 좋다, 이런 생각은 한 번도 못 해본 것 같아.”
황경호는 그녀의 말에 좀 놀랐다. 그녀는 항상 남자들을 주무르며 잘 누리고 살 줄 알았다.
“진짜? 왜? 네 남자친구들 다 너 엄청 좋아했잖아. 잘해주고….”
“걔들이야 좋겠지…. 지가 먼저 좋아해서 고백하고 사귄 건데. 아, 싫었다는 건 아닌데 그냥, 뭐라고 해야 하나, 막 사랑했다 이런 건 또 아니라…. 그래서 한나가 부럽다니까. 가끔 저런 남자 왜 만나는지 모르겠다 싶어도 자기가 좋아하고 행복해하잖아.”
왜 좋아하는지 진짜 가끔은 모르겠는데. 정기연이 덧붙였다. 하긴, 조한나는 그렇게 미인인데 사귀는 애들은 정말 그것보다 떨어져 보이는 사람들과 사귀었다.
황경호가 물었다.
“넌 어떤 스타일 좋아하는데?”
“거기부터 문제다…. 지금까지는 그냥 와꾸 어느 정도 되고 만났을 때 재미있고 말 통하고 그러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모르겠다…. 사실 그런 놈들이 내 타입이 아니었나?”
정기연은 스스로가 전혀 납득이 되지 않는다는 얼굴이었다. 황경호가 물었다.
“얘 아니면 안 되겠다, 이런 놈은 없었어?”
정기연은 한숨을 쉬었다.
“그런 놈이 있었으면 이렇게 말을 했겠어?”
“그건 그렇지….”
황경호는 약간 생각하다가 또 물었다.
“아니면 어떤 놈이 너 아니면 안 되겠다고 올인하거나?”
“완전 병신 같은 놈들 아니고서야. 솔직히 와꾸 좀 되고 이빨만 털 줄 알아도 여자 사귀는 거 쉬운데 올인하겠어? 이제 다들 적어도 몇 명씩 만나 보고 하면 각 나오잖아.”
서로가 선을 명확하게 긋고 만나는 만남이란 이런 걸까? 사랑을 연기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혼자면 외로우니까. 누군가 함께 있었으면 좋겠으니까. 명확한 선조차도 서로 모르는 척하며 만나지만 결국엔 허무하다. 무엇을 위한 연기인가. 사귄다고 결정하면 그 순간 외롭지 않아지는 걸까. 누군가에게 선택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서로 위안을 주고받을 뿐은 아닐까.
‘…그 새끼는 나쁜 새끼라고.’
난 놈은 난 놈이다. 그는 누구에게 들이밀어도 괜찮은 남자라는 것을 잘 안다. 그는 황경호한테만 개새끼처럼 굴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 인정할 만한 점이 있다는 걸 깨달을 때마다 분하고 억울하다. 누군가에게 올인을 할 수 있을 만한 배짱이 있는 사람도 이 세상에는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 말이다. 누군가를 정말로 사랑한다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뭐…. 그놈이야 자신감 덩어리니까. 뭘 못 하겠냐….’
황경호는 술을 한 모금 넘겼다.
“오빠는 어때? 좋아? 사귄 지 이제 꽤 됐잖아.”
“어? 아니…. 제대로 만난 건 이제… 2달인가.”
“뭔 썸을 그렇게 오래 타?”
“썸이라기보단….”
썸이었나? 무작정 부정하려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오빠는 어떤데? 엄청 예쁘다며? 좋아 죽더만?”
“어? 아니….”
“아, 연애 고자인 오빠도 연애를 하는데 난 뭐냐….”
정기연이 푸념을 했다. 연인이 있다는 것은 선택받을 만한 개체라는 PASS/FAIL 자격증일지도 모른다. 황경호는 주저하다가 말했다.
“근데 그게… 좀 나랑 걔가 성격이 안 맞아서….”
“왜?”
“음…. 나름대로 신경은 많이 쓰는데…. 내가 가끔 예민하게 굴어서 성가시다고 할 때도 있고…. 걔가 바쁘면 좀 뭘 귀찮아한다고 해야 하나…. 자기가 원하는 건만 하려고 하고…. 걔가 인간적인 기본 배려나 예의 같은 부분이 좀…. 다른 사람한테는 안 그러는데 나한테만 좀….”
“아, 오빠 만만하게 구니까 걔가 그러는 거잖아.”
“아…. 역시.”
고작 이 정도로 말로도 바로 보이는 모양이다. 황경호가 한숨을 쉬었다. 정기연이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완전 예쁘다며. 어차피 오빠 호구짓 잘하는데 여친한테 좀 더 하면 어때.”
“내가 걔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서….”
황경호가 그렇게 말하자 정기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엥? 뭔 소리야. 김태희급이라며? 완전 좋아 죽더니? 걔가 헤어지쟤? 밑밥 까는 거야, 지금?”
“예쁜 건 진짜 예뻐서 그런 건데.”
황경호가 한숨을 쉬었다.
“그냥…. 나도 걔가 엄청 과분하다는 건 아는데 그냥 마음이 좀…. 모르겠다. 좋아하는 건 아닌데….”
저번 스캔들 건 이후로 틈만 나면 좋아한다 뭐다 하면서 사람을 홀리려고 하는 강동현이었다. 황경호는 그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들어도 기분이 좋았지만 그가 조금이라도 ‘너도 나 좋아하잖아’라는 투로 말하면 바로 거부감이 들었다.
“그럼 왜 만나?”
“걔가 자꾸 만나자고 해서….”
정기연은 황경호을 게슴츠레 보았다.
“돈이라도 빌렸어? 뭐 약점 잡혔어?”
“…….”
왠지… 둘 다인 것 같기도 하고.
‘이걸 누구한테 말할 수도 없고….’
강동현이 그렇게 오만 곳에 본인들 이야기를 뿌리고 다녔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하고 황경호는 그냥 입을 다물었다. 남한테 말할 만한 이야기도 아니고 남들이 어떻게 해결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 싫은데도 만나고 있는 거야?”
“아니…. 그런 건 또 아닌데.”
“뭐라는 거야?”
이신현도 황경호의 애매한 태도에 이런 어이 없다는 얼굴을 했다.
억지로 같이 살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떠밀린 건 알고 있었지만 정말로 싫었더라면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절대 같이 안 살았을 테니까 말이다. 아니, 애초에 그 전에 데이트하던 것부터 안 했을 것이다. 아마 정기연이 말하는 것과 얼추 뭔가 일맥상통할지도 모른다. 황경호도 강동현의 스캔들 때문에 저도 모르게 마음을 졸이고 있을 때 차라리 그를 믿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멍청하게 그럴 수 있다면 이런 마음고생 같은 건 하지 않아도 될 테니까 말이다.
가끔 죽일 듯이 미울 때가 있기는 한데, 강동현 자체는…. 모르겠다. 역시 좋아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가 황경호에게 해주는 것들은 좋았지만…. 그 자체도 매력적이었지만…. 역시 모르겠다. 왜 모르겠는지도 이제 모르겠다.
“걔는 내가 자기 좋아하는 거래. 근데 나는 그런 말 들을 때마다 왠지… 화가 난다고 해야 하나 억울하다고 해야 하나….”
“와. 그 언니 진짜 난 언니다. 쟁취하는 스타일인가 보네.”
정기연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그렇게 칭찬했다.
“그런 식으로 살아야 하는 건가…. 생각해보면 내가 먼저 좋아서 좋다고 해본 적은 한 번도 없어. 그냥 나 좋다는 놈들 중에 그럭저럭 괜찮으면 만나는 식이었지.”
“난 아예 모르겠다….”
황경호는 술을 한 모금 했다.
“걔 인기도 엄청 많고 걔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줄을 서고 그래서…. 그냥 이렇게 만나는 것도 얼마 안 갈 거라는 생각은 자주 들어.”
“이 오빠가 자꾸 밑밥을 까네. 얼마나 만날지는 결국 계속 만나봐야 아는 거야. 절대 오래 안 갈 거 같다는 애들이 꼭 결혼까지 하더라.”
황경호는 말문이 막혔다. 사실 지금 강동현이랑 자기가 하고 있는 것도 도장만 안 찍었을 뿐이지 집까지 사서…. 황경호는 얼굴이 화끈해졌다. 뭐도 모르는 상태로 멍청하게 큰일부터 치러버린 느낌이었다. 속도위반으로 결혼하는 커플들이 이런 기분일까….
“그래서 오빠는 그 언니 계속 만나고 싶은 거야, 아니야? 그냥 언제 끝나도 상관없다고?”
“그냥 걔가 만나고 싶다고 할 때까지 만나지 않을까….”
황경호가 자신감 없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내가 좋든 싫든 걔는 자기가 나 만나고 싶을 때까지 만나려고 할걸…. 난 거기 질질 끌려가고.”
강동현이랑 연을 끊어 보려고 얼마나 노력했던가. 황경호는 자기가 그에게 당해내지 못한다는 것을 이제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정말로 그가 하고 싶은 건 전부 해내 버리는 남자였다.
“그리고 걔가 더 이상 나 만나기 싫어하면 내가 뭘 어떻게 하든 절대 안 만나줄걸…. 만날 방법도 없고…. 아니, 난 매달릴 생각은 전혀 없는데. 성가시게 할 생각도 없고….”
황경호가 한숨을 쉬었다.
“그냥 그래서…. 내가 좋아하든 안 좋아하든 그게 뭔 상관인가 싶기도 하고….”
한동안 정말 컨디션이 좋았는데 말이다. 술을 해서 그런가 기분이 오락가락한다. 황경호는 중얼거리듯 덧붙였다.
“어차피 좋아해 봤자 나만 병신 되는 거고….”
정기연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뭔 놈의 생각이 이렇게 많아. 그냥 좋은 거면 좋은 거고 싫은 거면 싫은 거지.”
황경호는 약간 짜증이 나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자기는 맨날 그저 그런 놈들만 만난다면서.”
“아니, 이 오빠가….”
정기연이 샐쭉한 표정을 했다. 황경호는 자신의 말을 약간 후회했다. 그는 이런 식으로 공격적인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연애 안 해보고 그래서 잘못하는 거일 수도 있는데…. 아, 몰라.”
“겁 많아서 그렇지 뭐.”
겁이 많아서 그렇다…. 맞는 말인 것도 같다. 근데 어떻게 겁이 안 날 수가 있겠는가? 황경호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더라면 많이 달랐을까? 그놈 같은 놈이 그런 식으로 구는데 어떻게 해야 좋단 말인가. 어딘가에 답이 있다면 좋겠다.
그렇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적당한 시간이 헤어져 집으로 향했다. 며칠이 지나 3월이 되고 곧 강동현이 돌아올 날짜가 다 되어 갔다. 정말 이상하게도 그가 돌아오는 날짜가 다 되어가자 자다가 깨고 잠을 설쳤다. 뭔가 불안하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하고.
토요일에는 이강유를 따라 봉사활동을 하러 갔는데 일요일은 피곤하기도 하고 그냥 아무것도 하기 싫어서 집에 붙어 있었다. 황경호는 최신 영화를 TV로 틀어서 보다가(영화관보다 솔직히 낫다….) 갑자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설마, 하고 돌아보았다. 아직 강동현이 돌아오려면 사흘 정도 남았다.
현관 쪽 복도에서 롱코트를 입고 나타난 훤칠한 남자를 보자 순간 가슴이 쿵 하고 온몸의 피부에 소름이 화하게 끼쳤다.
“어…. 아직 며칠 남았잖아….”
황경호가 얼떨떨한 얼굴로 그를 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대비를 못 해서 그런지 아무 생각이 안 난다.
“아, 일이 좀 생겨서. 미리 연락 못 해서 미안.”
강동현은 곧바로 캐리어를 들고 드레스룸으로 향했다. 황경호는 꼼짝도 못 하고 카우치에 앉아 있었다. 강동현은 캐리어를 바꿔 채우고 옷도 갈아입고는 밖으로 나왔다. 손에 다른 색깔의 코트를 들고나와서는 카우치에다 걸쳐 놓고 바로 부엌으로 향했다. 황경호가 아침에 내려놓은 커피를 따라서 얼음을 넣어 섞었다.
“오늘 한국에 갑자기 일정이 생겨서. 그리고 중국에서 촬영하고 있는 거 분량이 많아져서 한 2주는 더 있어야 할 것 같다. 내일 아침 비행기로 다시 나가고 오늘도 30분 뒤에 나가야 해.”
강동현은 그렇게 빠르게 말했다. 피곤한 모양이었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필요한 것부터 싹 챙기느라 눈도 한 번 못 마주쳤다. 커피를 한 모금 하면서 그제야 황경호를 돌아보았다. 황경호는 어정쩡하게 카우치에 앉은 채 강동현을 가만히 보고 있었다. 강동현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좀 짓궂은 표정으로 말했다.
“나 보고 싶었어?”
“아니….”
보고 싶다는 생각 같은 건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왜인지 모르게 그 소리를 듣자마자 얼굴이 벌게지는 게 실시간으로 느껴졌다. 황경호는 참으려고 했지만, 생리적인 게 참는다고 뭐가 되는 건 아니라서 실패하고 그냥 고개를 돌렸다.
같이 살기 시작하고 나서 황경호가 여행을 가거나 아니면 강동현이 일이 있어 하루 이틀 못 볼 때도 있었지만 이렇게 서로 보지 못한 적은 처음이었다. 얼굴도 보지 못하고 연락도 제대로 되지 않고. 강동현은 그런 황경호를 보고 약간 말을 잃었다가 자기도 왜 그런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면서 커피를 마시다 말고 황경호에게 다가갔다.
“야, 나 30분 뒤에 나가야 하거든?”
“어…. 뭐 필요해? 도와줄까?”
“옷 벗어.”
“뭐?”
황경호는 깜짝 놀라서 딸꾹질을 할 뻔했다. 아니, 예상을 못 할 상황은 아닌데도 말이다…. 뭔가…. 황경호는 그가 자신을 카우치에 눕히며 하의에 손을 대자 엄청 당황해서 그를 밀어냈다.
“자, 잠깐만. 그제 커버 바꿨어…!”
“분위기 깨게 그런 소리 하지 말고….”
“읍…! 너 나가야, 으음…! 한다며…! 읍…. 아니, 아니, 잠깐만. 아, 잠깐…. 잠깐만!”
강동현이 황경호의 뺨과 목덜미를 입술로 지분거리면서 바지랑 속옷을 결국 벗겼다. 황경호는 그가 조금 만졌다고 곧바로 성기와 거기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걸 느끼고 깜짝 놀랐다. 윤활제도 없었다. 쩍쩍 달라붙는 살 틈으로 뜨거운 남성기가 파고들어 오자 황경호는 두 눈을 크게 뜨고 크게 움찔, 하면서 바로 사정하고 말았다. 강동현이 웃었다.
“하하. 오랜만에 해서 이런 거야?”
황경호는 온몸이 시뻘게졌다. 그런데 하반신이 엄청나게 경련하고 있어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지금 하면 안 돼. 황경호는 100m 달리기라도 한 것처럼 뛰는 심장과 멋대로 경련하는 몸과 새하얘지는 정신 속에서 그렇게 판단했다. 위험하다. 그런데 강동현이 허리를 슬슬 돌리면서 음부가 경련하는 박자에 맞추어 슬금슬금 들어오자 황경호가 녹을 듯한 신음을 흘리며 얼굴을 붉혔다. 정신이 확 흐려졌다.
“아아앙…. 싫어…. 안 돼. 안 돼…. 아앙….”
“뭐야, 너…. 나 그렇게 보고 싶었어? 진짜 귀엽네.”
강동현이 만족스럽게 웃으면서 처음부터 엄청 느끼는 황경호를 내려다보았다. 강동현이 오랜만에 끈덕지게 시간을 들여서 슬금슬금 파고들어 오자 황경호는 과할 정도로 몸을 움찔거리면서 신음과 애원을 속살거렸다.
“강동현…. 강동현…. 아응…. 뜨거워…. 뜨거워어…. 죽을 것 같아. 하우으…. 잠깐만, 아아, 잠깐마안….”
“하아…. 그만해…. 못 참겠어.”
“아아앙…. 더 넣지 마…. 안 돼. 안 들어가. 아앙…. 흑…. 녹을 것 같아…. 뜨거워…. 이상해….”
“조금만 더…. 응? 조금만 더 넣자…. 윽. 힘 좀 더 풀어봐.”
그렇게 오랜 시간을 들여서 서로의 몸이 꽉 밀착하자 황경호는 야시시한 얼굴로 가늘게 신음을 흘리며 또 사정했다. 피스톤질을 제대로 할 수가 없어 강동현은 그대로 몸을 꽉 붙인 채 서로의 몸에 진동을 주었다. 그대로 30분 가까이 섹스를 하자 황경호는 이미 몇 번을 절정에 이르렀는지 모를 모습으로 잔뜩 더러워져 있었고 강동현은 몇 주 분의 사정을 하고 기절할 듯이 현기증이 돌아 황경호를 꽉 끌어안고 있었다. 둘은 엄청 헐떡거리면서 정신을 못 차리고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고쳐줄까?] 3부 2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