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부 1권 - 27화 (27/47)

1. 사랑의 바로미터

“…….”

“자.”

강동현은 황경호가 내민 종이를 팔짱을 낀 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한강과 서울숲이 훤히 보이는 성수동 T아파트 1307호 입주 첫날이었다. 황경호는 짐을 다 정리하자마자 무슨 계약서 같은 것을 내밀었다.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황경호, 이하 갑, 도은혁, 이하 을은 다음의 내용에 합의한다.

1. 갑은 을에게 월세를 지급한다. 월세의 금액은 합의에 의해 결정한다.

금액:

납입일:

2. 조항 1의 금액과 시세와의 차이는 갑이 가사로 충당한다. 을은 갑이 가사를 행함에 필요한 바를 적극적으로 행한다. 상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세탁물은 세탁물 통에 꼭 넣는다.

2) 나갔다 들어온 뒤 옷은 아무 곳에나 벗지 않는다.

3) 씻고 난 후 물기는 제대로 닦고 나온다.

4) 씻고 난 후 침구나 가구에 바로 눕거나 앉지 않는다.

5) 씻지 않고 침구에 눕지 않는다.

6) ……

3. 섹스는 일주일에 최대 2일, 하루 두 번까지만. 더 하면 갑은 집을 나간다.

20XX년 11월 27일

황경호(갑) 서명

도은혁(을) 서명>

“사인해.”

황경호가 펜을 내밀었다. 강동현은 굉장히 언짢은 기분을 그대로 노출했다.

“너 혼자 일방적으로 정해놓고 사인하라고 하면 내가 할 거 같냐?”

강동현이 하, 하고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너 내가 너 좋다고 절절매니까 내가 아주 호구 같지?”

“합리적으로 결정한 거야. 뭐가 문젠데?”

황경호가 말했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손에서 펜을 받아들곤 일단 1번 조항부터 줄을 좍좍 그었다.

“아! 뭐 하는 거야.”

황경호가 짜증을 냈다. 강동현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월세를 도대체 왜 내겠다는 거야. 지 거라니까.”

“이게 왜 내 거야. 네가 샀는데.”

“네 거라고.”

강동현은 아예 1번 조항 자체가 뭐였는지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줄을 그어서 새카맣게 만들어버렸다. 황경호는 화를 냈다.

“내가 내겠다는데 왜 그래! 내가 거지도 아니고…. 낼 거야.”

“누가 너 보고 거지래? 거지는 내가 거지지. 네가 다 들고 있는데.”

“말장난하지 마. 나 심각하다.”

“아, 하지 마. 하지 마라. 야. 야!”

황경호가 기어코 아래에다 똑같은 조항을 다시 적기 시작하자 강동현이 결국 실력행사에 나섰다. 황경호를 카우치에다 짓누르고, 그럼에도 끝까지 적고 있는 그의 손에서 종이와 펜을 뺏었다.

“아! 왜 이러는데 진짜! 그냥 얹혀사는 건 싫다니까!”

강동현이 인상을 확 찌푸렸다.

“아니, 같이 사는 거라고. 왜 얹혀사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같이 사는 거라니까?”

황경호는 그의 밑에 짓눌려서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겨우 돌아누웠다. 위에 있는 강동현의 얼굴과 마주 보게 되었다.

“…….”

“…….”

눈이 마주쳤다. 강동현은 짜증 난다는 표정 그대로 그의 입술에 쪽 입을 맞추었다. 황경호의 얼굴이 벌게졌다.

“갑자기 뭐 하는 짓이야….”

“아…. 이럴 시간에 그냥 섹스나 하자…. 나 바쁘다고. 바빠. 아, 씨…. 짜증 난다.”

강동현은 드라마 대박으로 휴식기는커녕 중국과 일본 및 동남아시아까지 또 아시아 투어를 가게 됐다. 작년과 올해에 연달아 히트를 치는 바람에 여기저기서 러브콜이 쇄도를 하고 있었다. 광고 계약도 죄다 갱신되고 새로 들어온 것들도 다수는 계약을 체결하고 다수는 검토 중에 있었다. 적어도 앞으로 3~4개월은 또 내내 바쁠 예정이었다. 도대체 이런 쓸데없는 데 낭비할 시간이 어디 있단 말인가. 당장 내일부터 중국에 날아가야 한단 말이다.

그런데 황경호의 집에서는 저번 일요일 이후로 그에게 손가락 하나도 못 댔다. 그놈의 고시생들이 자기랑 무슨 상관이라고…. 그 뒤엔 집을 계약하고는 옮기고 정리한다고 바빴다. 오늘도 둘 다 힘깨나 쓰면서 정리를 다 하고 나니 내미는 게 고작 이런 말도 안 되는 계약서다.

“그래도 싫어. 저번 주 일요일 새벽까지 엄청 했잖아. 아직 토요일이다.”

“야…. 내일 당장 중국 간다니까? 오늘밖에 시간 없다고.”

“그래도 싫어.”

황경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요새 점수 좀 왕창 땄다 싶었는데 또 왜 이렇게 짜게 구는 것인가…. 보람 없게…. 강동현은 그의 거부에도 상관없이 그냥 황경호의 입술에 입을 맞추며 서로의 몸을 꾸욱 맞붙였다. 그의 다리를 벌리게 하고 딱 맞춘 듯 포개졌다. 황경호의 얼굴이 좀 붉어지며 야시시한 얼굴이 되었다. 요새 강동현은 그를 언제든 자빠뜨릴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황경호는 그의 얼굴을 그냥 손으로 막 밀어냈다.

“진짜 하지 마. 나 진지하다고. 나와.”

“…….”

강동현은 뚱한 얼굴로 결국 다시 카우치에 바로 앉아야 했다. 황경호는 그에게서 떨어져서 ㄱ자로 된 카우치의 다른 면에 앉아서 다시 구겨진 계약서를 펼쳤다.

“자, 사인.”

“…진짜 진심이야?”

“어.”

“도대체 이런 게 왜 필요한데?”

강동현이 탐탁지 않고 짜증 나고 신경질이 잔뜩 난 얼굴과 어조로 말했다. 황경호는 그런 그의 얼굴을 잠깐 보고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시선을 돌리고는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너랑 잘 지내보고 싶어서….”

강동현은 뭐라고 확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금방 그의 말에서 강동현에 대한 불신과 기대가 동시에 느껴졌다. 강동현은 그대로 쥐약이라도 보듯이 계약서를 보았다. 저 망할 걸 또 쓰는 날이 올 줄이야….

“…일단 1번은 지워.”

“아, 왜…. 괜히 1번으로 한 줄 알아?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그가 협조적으로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정색한 표정을 짓는 황경호였다. 강동현은 인상을 썼다.

“진짜 이 집 네 거야. 같이 사는 거라고. 너한테 돈 받으려고 집 산 줄 알아? 너야말로 나 바보 취급하지 마.”

“그래도….”

“너 그러는 거 나 진짜 우스운 놈 만드는 거라고.”

강동현이 황경호의 얼굴을 보면서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황경호는 뭐라고 반박하려고 계속 시도했지만 말문이 막히는지 결국 말을 찾지 못하고 한숨을 쉬었다. 강동현도 이 상황이 불편한지 다리를 꼬며 카우치에 등을 기대 미간을 찌푸렸다.

“…….”

“…….”

다시금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입을 다무는 시간이 잠깐 지나갔다. 그러다가 강동현이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어차피 네가 가사 할 거라며. 집이 커져서 다시 사람 부르려고 했는데…. 네가 하면 그냥 그걸로 퉁쳐.”

“그건 그냥 당연히 하는 건데….”

“당연한 게 어디 있어? 이 정도 집 관리하는 데 드는 품이 얼만데. 그냥 파출부만 하루에 3시간씩 써도 이삼백씩 나와, 이런 집. 월세가 뭐야. 젠장….”

강동현은 기분이 꽤 안 좋은지 표정이 그랬다. 하긴 좋아해서, 같이 살고 싶어서 산 집에 상대가 월세를 내겠다고 하면 얼마나 웃긴가. 황경호는 더 뭐라고 하고 싶었지만…. 관두기로 했다.

“알았어….”

황경호는 새 종이에다가 다시 또박또박 내용을 적기 시작했다. 강동현은 그의 손목을 잡았다.

“왜?”

“야, 이제 하나 동의해놓고 그냥 넘어가는 게 어딨어?”

“어? 왜? 2번도 고쳐? 야…. 그래도 기본은 해라, 너. 사람 일 두 번 하게 하잖아.”

그간 잠깐 그와 같이 살아본 황경호는 인상을 팍 쓰며 그렇게 말했다.

“2번은 네 맘대로 하고. 3번!’

강동현이 목소리에 힘을 주어 말했다.

“일주일에 2일, 두 번이 뭐야! 나보고 죽으라는 거야?”

황경호가 얼굴을 확 붉혔다.

“야! 나 이거 엄청 양보한 거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이게 무슨 양보야? 4일! 그리고 일단 하면 난 무조건 세 번, 아니 네 번!”

“미쳤어?!”

황경호가 경악해서 그를 쳐다보았다. 강동현은 팔짱을 끼고 고압적인 자세로 고개를 저었다.

“나도 양보한 거다.”

황경호는 입을 뻐끔거리다가 얼굴이 화하게 빨개져서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런 거…. 싫어…. 그럼 또 네가 하자면 무조건 해야 하는 거잖아…. 하기 싫어도….”

강동현은 깜짝 놀라서 그를 돌아보았다. 아차.

“아니…. 아니 아니. 그런 말이 아니라…. 아니….”

강동현은 자신의 얼굴을 움켜쥐고는 한숨을 푹 쉬었다. 젠장…. 조심 좀 하자.

“그럼 3일은….”

“출근하기 전날은 싫어서…. 솔직히 토요일 출근 전날도 싫어…. 아플 때도 있고 나른…하단 말이야.”

합리적인 이유다…. 강동현은 맹렬하게 머리를 굴리면서 계약서를 쳐다보았다. 이 망할 걸 잘 써야 앞으로의 날이 평탄한 것이다.

“…그럼 출근 전날 빼줄 테니까 공휴일이나 그 전날은 하게 해줘.”

“그래도 돼?”

“그래도 되는 게 어디 있어? 출근날 힘들다며. 출근에 영향 안 주는 날은 괜찮은 거 맞아?”

강동현이 장난기 없는 얼굴로 물었다. 황경호는 약간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쉬는 날 오전은? 출근 전날이라도 괜찮아?”

“어…. 괜찮을지도….”

“그럼 그때도.”

결국 가능한 시간은 휴일 전날 저녁부터 출근 전날 오전까지로 정해졌다. 강동현은 그걸 물끄러미 보다가 입을 뗐다.

“하루 두 번….”

절망적인 어조로 끙, 하고 머리를 감싸더니 그리고 고개를 들어 황경호를 보면서 슬그머니 손가락 세 개를 들어 보였다. 황경호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럼 주말에 한 번은 내가 말하는 거 들어줘.”

“어? 뭐…. 어떤 거….”

“그냥 내 소원.”

“애매하게 말하지 마.”

“그냥…. 전에 내가 말했잖아. 네가 마사지해주면 진짜 좋겠다, 이런 거.”

“그런 건 괜찮은데…. 막 이상한 거 시키는 거 아냐?”

이런 논쟁이 지치는지 강동현이 카우치에 드러누웠다. 황경호의 얼굴을 바로 밑에서 올려다보았다. 뭔가 또 막 당기는 듯한 눈빛에 초조한 얼굴이다.

“좀 이상한 거 시키면 어때서.”

그는 그런 얼굴로 뻔뻔하게 말했다. 황경호는 순간 말문이 막혀 그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나 바빠서 결국 너 자주 못 볼 텐데.”

강동현은 손을 뻗어서 황경호의 뺨을 손등으로 쓰다듬었다. 황경호는 그의 그윽한 눈빛을 괜히 피했다. 그렇게 한참을 더 실랑이를 한 끝에 둘 다 사인을 한 계약서의 합의 조항은 딱 두 개였다.

<황경호, 이하 갑, 도은혁, 이하 을은 다음의 내용에 합의한다.

1. 갑은 가사를 하고 을은 갑이 가사를 행함에 필요한 바를 적극적으로 행한다. 상세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세탁물은 세탁물 통에 꼭 넣는다.

2) 나갔다 들어온 뒤 옷은 아무 곳에나 벗어두지 않는다.

3) 씻고 난 후 물기는 제대로 닦고 나온다.

4) 씻고 난 후 침구나 가구에 바로 눕거나 앉지 않는다.

5) 씻지 않고 침구에 눕지 않는다.

6) …….

2. 섹스는 휴일 전날 8시부터 출근 전날 오후 2시 이전까지의 시간 동안, 하루에 두 번까지만.

1) 휴일당 한 번 을의 요구를 들어준다(누적).

위 상황을 위반 시 둘 중 하나는 집을 나간다.

20XX년 11월 27일

황경호(갑) 서명

도은혁(을) 서명>

사인을 하고 나니 강동현이 씨익 웃었다.

“계약은 사인하고 나서 발효되는 거 알지?”

“어? 그렇지….”

왜 당연한 걸 물어보냐는 식으로 황경호가 대답했다.

“오늘 토요일인데.”

“저번 주 일요….”

황경호가 뭐라고 하려다가 헉, 하고 그를 쳐다보았다. 강동현이 실실 웃으며 그의 티셔츠 아랫깃을 검지로 슬쩍 들어 올렸다.

“그리고 나 네가 해줬으면 하는 거 있는데~”

황경호는 카우치의 끝부분으로 슬슬 도망치면서 완전 억울하다는 표정을 했다. 영 속은 기분이다.

“그래도 이렇게 바로 이러는 게 어딨어?”

황경호가 마지막까지 반항했다.

“네가 먼저 저런 거 쓰자고 해놓고 이러시면 쓰나.”

강동현은 물렁한 상대를 놀렸다.

*

그냥 조금 보이고 마는 한강 풍경이 아니다. 한쪽 벽을 넘어 라운드 형으로 두 눈 꽉 차게 보이는 한강 뷰. 한밤중이라 고즈넉한 도시의 불빛들. 천장도 엄청 높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변태가 없다.

엄청 쾌적하다. 황경호는 퇴근을 하고 저녁을 먹고 집으로 들어와 카우치에 앉아 책 한 권을 들고 차를 마셨다. 밖의 소음도 일절 들리지 않고 집안도 따뜻했다. 좀 그러고 있다가 황경호의 놀이방이 된 서재로 들어가 레고를 쌓으며 사진을 찍었다. 아직 뭔지 모를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파란색 작은 피스들을 쌓고는 거실로 돌아갔다. 거실은 주홍빛 불빛을 켜서 아주 따뜻하고 안정적인 느낌이 났다. 이런 집에 사는 건 정말 딴 나랏일이라고 생각했는데.

황경호는 카우치 앞에 간이 책상을 끌고 와 거기 위에 노트북을 두고 열심히 오늘 먹었던 거, 레고를 쌓은 것도 정리해서 포스팅을 올렸다. 할 일을 다 하니 뿌듯하다. 그리고 강동현의 팬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슬슬 뭐가 업데이트되었나 살펴보았다. 강동현은 중국을 시작으로 아시아 빅 콘서트 투어에 여념이 없었다. 누가 올린 유튜브 영상을 보니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고. 아이돌로 데뷔할 뻔한 적도 있다고 하더니 기본은 하는 모양이었다. 그가 저렇게라도 춤을 추는 건 처음 보았다. 생각보다 꽤 잘 춘다.

엄청 재밌었나 보다. 거기까지 따라간 팬 커뮤니티 우리누리 회원이 열심히 감상을 올렸다. 황경호는 그걸 자세히 읽었다. 그러다가 문득 눈에 띄는 게시글이 있었다. 한 시간 전쯤 올라온 것이었다.

<동현이를 좋아하게 된 게 제 인생에서 제일 올바른 선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어차피 팬들만 모인 사이트라 이런 제목의 비슷한 글은 자주 올라왔지만 어쩐지 묘한 기운이 느껴져 클릭했다. 올라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글인데 댓글과 조회 수가 많았다. 클릭을 하고 들어가니 어제 상해에 있는 큰 스타디움에서 강동현을 찍은 고화질 전신 샷이 보인다. 이게 뭐? 라고 생각하며 스크롤을 내리니 예의 같은 사진의 특정 부위를 크게 확대한 이미지가 뜬다.

“!”

그리고 글쓴이가 쓴 글이 이어졌다.

<제 나이 3n살…. 지금까지 안 좋아해 본 남돌, 남연예인이 없다고 자부할 수 있는 팬질 인생 2n년…. 드디어 오늘 제 종착역을 봤습니다. 전 여기 뼈를 묻습니다. 우리 동현이 같은 남자는 제 인생 이전에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다시 예의 확대 이미지를 더 확대해서 하나 더 올리고 글을 포스팅을 마무리했다.

<과연 크고 아름답습니다. 우리 동현이♡. 오래 가자, 우리.>

그녀가 찍은 사진은 다리를 꼬고 의자에 앉아 있는 강동현의 오른쪽 허벅지를 유달리 확대해 보여주고 있었는데 바짓단이 당겨지며 그의 윤곽(?)이 은근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그 셰이프는 무려 그의 기다란 다리, 그 허벅지의 반이 좀 못 미치게 이르는 길이였다.

<어휴…. 어휴! 할 말이 없습니다. 역시 한국엔 우리 동현이밖에!>

<이 땅엔 나올 수 없는 크…기……. 말씀대로 아름답네요.>

<동현 오빠는 오른쪽 수납(?)이셨네요! 구남친에게 넌 오른쪽이니 왼쪽이니? 물어보니 그게 뭐야? 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새록….>

<ㅠㅠ카더라가 아닌 드디어 믿을 만한 대물 인증(?)이 하나 떴네요. 덕분에 희망 가지고 이 땅 살아갑니다. 오늘도 고마워요 오빠!>

<저 사실 본진은 강동현 말고 타 연예인이었는데…. 갈아탑니다. 이건 갈아타야죠.>

<사실 대물은 눈빛부터 티가 난다는….>

<저 원래 한국 연예인 진짜 싫어했는데 어째 동현이는 그렇게 끌리더니 다 이런 이유가…. 본능은 거짓말을 하지 않네요.>

<와…. 진짜 동현 오빠 여친은 무슨 복…ㅜㅜ 누구였을지, 누굴지, 누가 될지 모르지만…. 전 그분을 영원히 부러워하겠습니다…ㅜㅜㅜㅜㅜ>

<남자가 크면 다 한 거죠>

<지금부터 우주 구하면 어떻게든 되나요?>

<한 번만 줘라>

<222. 소원이다. 나한테도 한 번만 대줘라. 대물 좀 먹어보자>

<33333. 먹음직>

<윗님들ㅋㅋㅋㅋㅋ>

“…….”

요즘 여자들은 다 이런가. 황경호는 얼굴이 홧홧하게 달아오르는 걸 느꼈다. 이유가 뭔지는 알 수 없었다. 혼자서 얼굴이 벌게져서는 가만히 확대된 이미지(…)를 보고 있었다.

‘걔가……. 크긴 크지….’

꽉 차다(?) 못해 찢어질 것(?) 같다. 황경호는 새삼 강동현의 전 여친을 떠올려 보았다. 그녀는 황경호와 비슷할 정도로 키가 크긴 했지만 엄청 날씬했다. 여자니까 괜찮았으려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가 핫 하고 정신을 차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혼자서 손으로 얼굴을 막 부채질하고 있는데 갑자기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황경호는 엄청 놀라서 얼른 인터넷 창을 끄고 노트북을 쾅 닫았다. 그리고 현관 복도로 고개를 돌렸다.

“오늘 온다고 안 했잖아….”

황경호는 얼굴이 여전히 벌건 채로 그를 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강동현은 그의 훤칠한 키에 어울리는 롱코트를 벗어서 카우치의 등받이에 걸쳤다. 그는 달려오기라도 했는지 숨을 조금 헐떡이며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

“오늘, 내일은 한국.”

“아, 그래? 그럼 쉬어.”

“쉬긴 뭘 쉬어.”

강동현은 손목에 찬 시계를 한 번 보며 말했다.

“10시 30분이다, 지금. 빨리 옷 벗어.”

강동현이 말했다. 황경호가 입을 딱 벌렸다가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카우치에서 엉거주춤 일어났다.

“아니, 내일 토요일…. 둘째 주니까 출근하는데….”

“뭔 소리야. 이번 주 셋째 주야.”

“거짓말!”

강동현은 자기 휴대폰에 캘린더를 켜서 황경호의 얼굴 앞에 내밀고는 계속 옷을 벗었다. 황경호는 달력을 보고는 입을 딱 벌렸다. 12월 1일이 토요일에 걸려 진짜 이번 주가 셋째 주였다. 황경호는 뒷걸음질을 쳤다. 강동현은 티셔츠까지 확 벗어서 카우치에 던져 상반신을 헐벗고는 황경호에게 성큼성큼 걸어갔다.

집은 거실만 주홍빛 불을 은은하게 켜놓은 상태였다. 황경호가 거실의 통유리창에 등을 기댈 정도로 쫓겨나고 강동현은 그의 어깨 옆을 손으로 짚고 다른 손으로는 그의 허리 옆을 짚었다. 그리고 그대로 황경호의 입술을 확 덮치듯 키스했다. 황경호의 뒤통수가 콩 하고 유리창에 부딪혀 소리가 났다. 그가 집에 들어오자마자 거의 순식간에 진행된 일이었다. 아무리 단단한 유리창이라지만 높은 곳에서 이러니 무서워서 온몸이 아찔했다.

“으응…!”

강동현은 깊게 입을 맞추어 혀로 안을 마구 헤집고는 아랫입술을 쪼옥 빨고 입술을 살짝 떼었다. 억눌린 듯한 신음을 길게 흘리며 다시 한번 더 안을 사악 핥고는 눈을 마주쳤다. 거의 이 주 만에 얼굴을 본 건데 뭐 제대로 인사말도 없이 바디 토크부터 하려고 드는 강동현이었다. 황경호의 표정이 어땠는지 본인은 알 수 없었으나 강동현은 아주 인상을 쓰면서 언급했다.

“왜 이사하고 나서 내가 하려고만 하면 그렇게 나쁜 놈한테 당하는 것 같은 얼굴이야?”

그건 네가 진짜 나쁜 놈이라서 그렇다.

드라마 촬영 중에는 차라리 일주일에 한 번이라도 여유롭게 만날 수 있었는데 촬영이 끝나고 이사를 하고 드라마가 종영되니 강동현이 드라마를 찍을 때 이상으로 바빠졌다. 그래서 그런가. 그 전에 그가 그렇게 황경호에게 점수를 따려고 노력했던 태도가 엄청 사라지고 말았다. 사람이 몸과 마음이 바빠지니 남을 생각할 여유가 없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큰 고비를 넘기고 이렇게 같이 살게 되었으니 이미 그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도 했고 말이다. 소위 잡은 물고기에는 밥을 주지 않는다는 아주 고명한 레퍼토리도 있지 않은가.

“아니…. 피곤할 텐데 먼저 쉬는 게 낫지 않나 해서….”

황경호는 그런 그의 상태를 꽤 이해하고 있었다. 그래도 몇 달 같이 살아보기도 하고 그가 황경호의 집에도 일주일 넘게 들락날락거리는 것도 보면서 그가 얼마나 몸을 축내면서 일을 하는지, 혹은 그렇게 해야 하는지 절절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그런 식으로 바쁘게 사는데 신경이 날카로워지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것이다. 남들에게 둔감해지는 것도 그렇고….

“나 걱정하는 거야?”

강동현이 그제야 좀 웃으면서 황경호를 끌어안으며 그의 귓가에 얼굴을 묻고 향기를 맡았다.

“아니…. 일 좀 쉬엄쉬엄해…. 우리나라 배우 일은 너 혼자 하는 줄 알겠다.”

“그래도 전보다는 괜찮아. 이번엔 잘 시간은 다 자면서 잘했는데?”

강동현이 그렇게 말했다. 황경호가 물었다.

“스트레스 많이 받는 거 아냐?”

“응? 딱히…. 나 일하는 거 좋아한다니까.”

강동현이 대답했다. 황경호가 다시 물었다.

“근데 왜 이렇게 급하게 굴어?”

“금요일 한 시간밖에 안 남았잖아. 빨리 두 번 해야 하는데.”

“…….”

그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그걸 풀려고 섹스를 더 하려고 하는 줄 알았는데, 그는 생각보다도 훨씬 단순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들어오자마자 무섭게 돌진해와서 약간 오해했는데 사실 그는 꽤 신이 난 상태였다.

“나 3주 치 소원 쓸 수 있는 거지? 아싸.”

황경호는 살짝 자신이 강동현이라는 남자에 대해서 많은 걸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생각보다 엄청 단순한 남자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긴 드라마나 영화에서 그렇게 감성적으로 표현된다고 본인이 그럴 리가….’

그래서 그가 그렇게 강인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이 많지 않고 단순하니까 자기 확신도 실행력도 강한 것이다. 그가 자신을 마구 휘두를 때는 어쩔 수 없이 실제보다 더한 이미지를 그에게 덧씌울 수밖에 없었지만 요새 그를 보면 어쩐지 엄청 단순한 꼬마를 상대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니, 취소.’

황경호는 강동현의 대물이 옷 위로 닿아오자 곧바로 그렇게 생각했다. 강동현은 황경호를 번쩍 들고는 자기 침실로 향했다. 그렇게 들려가면서 황경호가 축 늘어져 체념 조로 중얼거렸다.

“보쌈당하는 거 같아….”

“맞는데?”

황경호는 그의 뻔뻔함에 괜히 열이 받아서 팔꿈치로 그의 뒤통수를 꽉 눌러버렸다. 강동현은 자신의 커다란 침대에 황경호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의 바지와 속옷을 한꺼번에 홀랑 벗기고 그의 티셔츠도 얼른 잡아당겨서 벗겨서 던졌다. 순식간에 상대를 알몸으로 만들었다. 황경호가 그렇다고 막 가리고 할 정도로 알몸이 된 것 자체에서 부끄러움을 느끼는 것은 아니었지만, 좀 얼굴이 붉어졌다. 입장의 문제니까 말이다. 강동현은 꽤 흥분한 얼굴로 씨익 웃었다. 그도 바지랑 속옷을 벗어서 아무렇게나 던져서 멋진 나신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은근한 윤곽만으로도 팬들이 감탄을 마지않던 그의 대물이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역시 크다…. 강동현은 침대의 위로 무릎을 얹어 올라와 무릎으로 섰다. 그리고 손등을 아래로 하고 검지와 엄지 사이를 황경호의 목에 닿게 한 느낌으로 가득 그의 턱을 감싸 잡았다. 굉장히…. 위압적인 느낌. 그리고 그대로 끌어당겨 황경호를 무릎을 꿇고 앉게 했다. 다리를 약간 벌린 채 무릎으로 앉은 황경호는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나 소원 세 개 쓸 수 있는 거 알지?”

“어? 어….”

강동현이 중국으로 가기 전에 처음 쓴 소원은 진짜로 마사지였다. 그의 등에 가득 오일을 뿌리고 대충 아는 대로 열심히 해줬더니 진짜 좋아했다. 게다가 그의 몸은 진짜 멋졌기 때문에 황경호도 만지는 맛이 났다. 그 이후로 강동현은 내내 집에 없었기 때문에 2주 동안 소원이 누적이 된다는 것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제 그렇게 못된 짓은 안 할 것 같고….

“왜?”

강동현은 벌써부터 침을 꿀꺽 삼키면서 순한 얼굴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상대를 내려다보았다. 2주나 중국에 가야 할 때는 정말 짜증 났는데 막상 돌아와 보니 좋다. 그때 그냥 서울에 있었다면 절대 못 참고 그 소원들을 다 써버렸을 것이다.

쉬는 날마다 섹스를 할 수 있는 조건은 누구의 사정이든 간에 그 기간이 지나가 버리면 휘발해버리지만 소원만큼은 누적되게 한 이유가 다 있었다.

강동현의 오랜 판타지를 실현시킬 때가

드디어 도래한 것이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턱을 감싼 크고 멋진 손으로 그의 턱밑을 은근히 쓰다듬었다. 보통 다른 사람의 손이 닿을 만한 곳은 아니니 황경호가 좀 예민하게 반응하며 움찔했다. 강동현은 다른 손으로 자신의 대물을 쥐었다. 그 순간 물음표를 띄고 있던 황경호의 얼굴이 느낌표로 바뀌었다.

“시, 싫어….”

황경호는 강동현을 올려다보며 고개를 저었다. 강동현은 그의 턱을 다시 느른하게 주물렀다.

“진짜?”

강동현이 물었다.

“안 해보고 싫을지 좋을지 어떻게 알아.”

“또 수작 부리지 마….”

사람이 좀 점잖게 대하면 금세 기가 살아서는 사람을 벗겨 먹으려고 한다. 황경호가 뒤로 고개를 빼려고 하는데 그가 턱을 쥔 손에 힘을 주며 무릎 걸음으로 따라왔다.

“내 소원이라니까.”

“이런 이상한 소원 좀 빌지 말라고.”

황경호가 억울한 듯 말했다. 그는 얼굴이 빨개졌다. 이미 그 표정부터 만족스러운지 강동현이 실실 웃으면서 그의 뺨에 슬쩍 자기 자지를 갖다 댔다.

예전에 강동현이 처음 자위를 하는 걸 보여주었을 때 확 휩쓸려서 서로의 몸을 맞대 비비며 했다. 그때 강동현이 들고 있던 황경호를 놓쳐서 하필 딱 얼굴의 위치가…. 사람이 정신없는 틈을 타서 얼굴에다 왕창 사정하고 그대로 자기 걸 황경호의 얼굴에다 문지르기까지 했다. 그때 그 충격과 부끄러움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이 정도 가지고 뭘 그래.”

“뭐가 이 정도…. 아, 하지 마…!”

그가 은근히 황경호의 보드라운 뺨에다 자기 대물을 비비자 황경호가 기겁을 하며 자기 뺨을 손으로 막았다. 그러니까 강동현은 대번에 황경호의 아랫입술에 슥 귀두를 문질렀다. 황경호가 깜짝 놀라서 살짝 겁이 난 얼굴로 그걸 내려다보았다. 검붉고 커다란 살덩어리.

강동현이 조르듯 말했다.

“들어주기로 했잖아.”

“이런 거 안 할 줄…. 읍….”

황경호는 눈을 질끈 감으며 두 손으로 침대 시트를 꽉 움켜쥐었다. 그의 냄새가 났다. 거기에 강한 수컷의 향기까지. 황경호는 어깨까지 시뻘게져서 파르르 떨었다. 살아생전 이런 걸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읍…! 음…! 웁! 아…!”

“그렇게 사정할 때까지 해줘.”

이런 문제 때문에 그렇게 싸워놓고 이놈도 정말 포기를 몰랐다. 어쩌면 황경호가 결국 이런 데 적응하기를 원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실제로…. 좀 적응하기도 했다.

강동현은 스스로 허리를 써 부드럽게 상대의 입안을 범하기도 했고 상대의 머리를 손으로 움직이게 하기도 했고 그의 턱을 쓰다듬으며 그가 서툴게 구음하는 걸 가만히 지켜보기도 했다.

강동현은 그가 자신의 것을 빨고 있는 것을 내내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심장이 엄청 뛰고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이 위력감이 느껴졌다. 미추와 아랫배가 엄청나게 단단해지고 자지로 피가 계속 몰리는 게 실시간으로 느껴졌다.

언제나 그의 입에 자신의 것을 물려주고 싶었다.

청결하고 순하고 어려 보이는 얼굴이 이럴 때면 앗! 싶을 정도로 야해진다. 게다가 실제로 물리니 상상보다 더 야하고 실감이 난다. 강동현은 허리를 마구 움직여서 그의 목구멍까지 박아 넣을까 한참을 고민했다. 싫어하더니만 또 이렇게 해주는 걸 봐라. 그것도 받아줄 것만 같다. 강동현은 엄지로 그의 뺨을 살살 쓰다듬으면서 칭찬했다.

“하아…. 생각보다 잘하는데….”

황경호는 입안 깊이까지 들어온 그것을 쭈륵 빼냈다. 황경호는 얼굴이 엄청 빨개져서는 속눈썹을 파르르 떨었다.

“턱 아파…. 읏….”

그가 그렇게 신음하니 등에 소름이 쫙 달렸다. 강동현은 결국 그대로 그의 입술에 다시 처넣고 서너 번 거칠게 허리를 움직였다.

“윽! 우웁! 욱!”

그의 얼굴이 다시 전부 빨개지며 얼굴을 잡은 손에 촉촉한 땀과 열기가 느껴졌다. 빠르게 넣었다 뺐다 하며 말했다.

“뺄 테니까 아이스크림 빨듯이 세게 빨아. 큭.”

강동현은 그리고 곧 신호했다.

“지금.”

그리고 빼내는데 상대가 흡입을 하여 정말 쪼오오옥 빨리면서 뺐다. 강동현은 진짜 영혼까지 빨리는 기분이었다. 그대로 그의 입안에 다시 박아 넣으며 사정했다.

“아…! 으으윽…! 큭!”

“읍…! 으으읍!”

황경호는 이것까진 예상하지 못했는지 깜짝 놀라서 엄청 움찔거렸다. 강동현의 팔뚝을 세게 잡으며 억눌린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그의 입술에서 남성기를 빼내고 그대로 그의 빨간 뺨과 눈 위, 이마까지 크게 발기해서 엄청 커진 그의 자지를 느른하게 비볐다. 허리를 움찔움찔하며 상대의 얼굴에도 마저 사정했다. 새빨개진 얼굴에 질척한 정액…. 진짜 죽인다.

자지뿐만이 아니라 아랫배와 허리까지 뻐근하고 시원하다. 2주 만이라 엄청 진하고 양도 많았다. 강동현은 온몸에 화하게 퍼져 오래 어리는 쾌감에 다리가 꺾일 것만 같았지만 그대로 버텼다. 강동현은 황경호가 입을 막으며 구역질을 하려고 하자 바로 그의 턱을 잡은 손에 힘을 주어 고개를 위로 들게 했다.

“뱉지 마.”

그리고 눈을 마주쳤다. 강동현은 턱을 살짝 들고 내려다보는 꽤 고압적인 표정으로 말했다.

“먹어.”

아주 괴롭히려고 작정을 했다. 황경호는 억울하고 싫고 밉고 화나고…. 그런 수많은 감정들 속에서 그가 다시 손으로 강하게 턱을 치켜들게 하며 종용하자 결국엔 꿀꺽 마셨다. 자신의 손에 느껴지는 감각으로 그가 다 마신 걸 느끼자 강동현이 아주 입이 째지게 웃었다.

“다시 이것도.”

완전 기가 살았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얼굴에 묻어있는 자신의 정액을 자기 자지에 비볐다가 다시 그의 입술을 벌려 넣었다. 깔깔한 혀와 부드러운 입술의 느낌이 환상적이다. 그런 식으로 얼굴에 싼 정액까지 다 빨아먹게 했다.

“흑….”

황경호가 너무 부끄러워서 결국 우는 소리를 내자 강동현이 그를 끌어안아 자신의 위에 앉게 했다.

“아직 남았는데 내 소원….”

그가 장난스럽게 말하자 황경호는 얼굴을 손등으로 닦으며 그의 가슴을 주먹으로 퍽 쳤다.

“적당히 해.”

“적당히 못 해…. 이사하고 몇 번 하지도 못하고 중국 갔는데.”

강동현은 자기가 도리어 억울하다는 목소리였다. 황경호는 결국 그를 마구 때렸다.

“이거 봐! 결국 하려고 그 지랄한 거였어! 좋아하긴 뭐가…!”

황경호가 울컥해서 화를 내자 강동현이 왜 그런 소리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그 잘생긴 얼굴로 애교를 부리듯 말했다.

“그런 거 아냐…. 왜 그런 말 해? 좋아해. 좋아한다고. 그래서 더 하고 싶어…. 하아…. 나 사실 너 화내는 것도 좋아해. 화내는 거 귀여워….”

강동현은 아까 그걸로 이미 맛이 완전히 갔다. 상대의 말이 진지하게 귀에 안 들어오는 것이다. 강동현은 그대로 자기 위에 올라타 있어서 바로 눈앞에 보이는 상대의 젖꼭지를 혀로 낼름 핥았다.

“앗…!”

황경호는 갑작스러운 애무에 깜짝 놀라 부들 떨었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쇄골을 깨물며 심각하게 거친 숨소리를 냈다. 그리고 눈을 마주치는데, 이건 아주 제정신이 아니다. 황경호는 그때 딱 알아차렸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손가락 두 개를 쪽쪽 빨고는 타액을 질척하게 묻혔다. 그리고 황경호를 벌렁 눕게 하고 허벅지를 눌러 그의 모든 게 드러나게 했다. 황경호는 좀 부끄러워서 두 손으로 다리 사이를 가렸다.

“그대로 풀어.”

“?”

황경호가 무슨 소리냐는 듯 그를 보았다. 강동현은 얼굴이 벌게진 채 대단히 중요한 것을 말하듯 낮고 정확한 어조로 말했다.

“직접 거기 푸는 거 보여줘. 내 두 번째 소원.”

“…….”

이 새끼가 지금 진짜 눈에 뵈는 게 없었다.

*

“하아응…. 아앙…. 흑…. 아앙…. 싫어….”

황경호가 위압이나 압박 혹은 무드 등 그때그때의 분위기에 약하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었다. 밀어붙이면 결국엔 다른 사람 말대로 한다. 물론 강동현 한정 이런 식으로 하면 나중에 역풍을 엄청 세게 맞을 수도 있지만, 나중 일은 나중 일이다. 지금은 그런 것까지 생각할 여유가, 아니 의지도 없는 강동현이었다.

강동현은 침을 꿀꺽 삼키며 그가 자신의 엉덩이에 손가락을 넣어 만지는 걸 관찰했다. 강동현의 무릎에 허리와 엉덩이를 얹고 누워 아주 그냥 다(?) 보여주며 하고 있었다. 물론 백 퍼센트 본인의 의지라고 보긴 어렵고…. 강동현의 그의 허벅지 한쪽을 잡고 있었다.

간호사들은 손이 부드럽다. 황경호도 손이 하얗고 예뻤다. 왼손으로 자기 회음을 감싸 잡고 오른손의 중지를 넣어 살살 움직이고 있는데…. 분홍빛 음부에 하얀 손가락. 강동현은 두 손으로 그의 엉덩이를 잡아 사이를 쫙 벌려서 그 모습이 더 잘 드러나게 했다. 그의 음부가 움찔하는 게 보이는데 저절로 강동현의 아랫배도 움찔했다.

“너무 느려…. 빨리빨리 해. 손가락 하나 더 넣어.”

강동현이 숨이 차서는 다급하게 황경호를 재촉했다. 황경호는 부끄러워서 벌써 질질 운다.

“흑…. 빨리 못 해. 이런 거 처음 한단 말이야.”

강동현의 그의 그런 말이 괜히 기분 좋고 설레기도 하고 뭔가 심술이 막 나기도 했다. 강동현은 그의 손을 자기가 직접 쥐어 그의 엉덩이에서 빼냈다. 그리고 손가락 두 개를 모아 잡았다. 황경호가 바로 울상을 지으며 엉덩이를 빼려고 했다.

“시, 싫어….”

“넌 오늘 싫은 거 없어.”

“변태! 앗…! 아앙….”

강동현은 황경호의 두 손가락을 그의 안으로 꾹 눌러 밀어 넣었다. 이런 건 처음 하는데도 상대에 의해 어쩔 수 없이 레벨업을 해서 하게 된 황경호는 눈물을 질질 흘리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부끄러워서 온몸이 핑크색으로 달아올라서는 젖꼭지도 뾰족하게 서고 입술도 빨갛고 코도 빨갛고 눈도 빨갛고…. 성기는 분홍빛에 젖어 있고 거기도 분홍색에 먹음직스럽다. 강동현은 손을 뻗어서 그의 젖꼭지를 검지와 엄지로 쥐어 살살 굴리고 꼬집었다.

“아앙…. 하앙…. 아아응…. 만지지 마…. 핫…. 힉…. 아앙….”

스스로는 알지 모르겠지만, 가슴을 만지니 손가락을 더 깊이 집어넣는다. 야하다…. 강동현은 침을 꼴딱꼴딱 삼키며 그의 몸을 뒤집어서 엎드려 눕혔다. 엉덩이를 강동현 쪽으로 내민 채 또 다 보이게 하는 것이다.

“흑…. 나쁜 놈…. 변태…. 고자….”

황경호는 그렇게 울면서도 강동현의 말대로 해주었다. 너무 좋다. 좋아서 미칠 것 같다. 강동현은 온몸에 주륵 흐르는 땀방울을 느꼈다.

한참을 감상하다가 강동현도 도저히 못 참겠어서 그의 팔을 잡고 일으켜 마주 보며 끌어안았다. 상대가 자신의 몸 위에 완전히 기대서 올라타게 했다. 황경호는 강동현의 몸에 타의로 달라붙어서는 손등으로 얼굴을 마구 닦았다. 몸이 지치는 게 아니라 정신이 지친다. 강동현은 커다란 베개들을 머리맡에다 쌓고 거기에 등을 비스듬히 기댔다. 그리고 황경호를 일으켜서 앉히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강동현은 자기도 좀 처맞을 짓을 하고 있다는 걸 아는지 또 슬 애교를 부리며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비볐다.

“직접 넣어서 움직여줘.”

“…….”

“응? 마지막이야.”

강동현은 그렇게 말하며 황경호의 입술에 쪽 입을 맞췄다.

“나 일 열심히 했는데. 너한테도 열심히 했는데.”

강동현은 황경호의 어깨에 코를 살짝 비비고는 그대로 기대어 황경호를 올려다보았다.

“나 상 좀 줘.”

황경호는 그의 어깨랑 팔을 퍽퍽 주먹으로 쳤다. 강동현이 엄살을 떨며 과장되게 아픈 척을 했다.

“응? 응?”

“너 진짜…. 죽여 버릴 거야.”

“좋은데.”

강동현이 실실 웃었다. 그가 이런 얼굴을 하면 화내는 게 무용인 것처럼 느껴진다. 황경호는 어쩔 줄 모르는 얼굴로 일단 그의 남성기를 한 손으로 잡았다.

“내가 하면…. 안 들어갈 것 같아.”

“그런 게 어디 있어. 들어가.”

강동현은 황경호의 가슴에 얼굴을 문질렀다. 들큰하고 야하고 좋은 냄새가 난다. 황경호가 슬쩍 간을 보듯 자신의 엉덩이 사이에 그의 자지를 꾹 눌렀다가 지레 겁먹고 바로 몸을 뺐다.

“못 해….”

“아, 제발. 응? 제발~”

강동현은 얼른 그의 엉덩이를 두 손으로 잡고 쫙 벌려주면서 도와줬다. 황경호는 인상을 왕창 구기고 심호흡을 하고 다시 꾸욱 눌렀다. 점점 더 강하게 힘을 주어야 해서 겁이 막 날 때쯤에 쑥 하고 끝부분이 들어왔다.

“아아응…. 싫어어…. 흑….”

황경호가 소스라치게 놀라더니 완전 싫은지 우는 소리를 잔뜩 냈다. 2주 만이었다. 게다가 상대는 괴롭힐 마음이 가득하고…. 강동현이 손을 뗐다.

“하…. 나 너무 참아서…. 어지러워…. 와….”

강동현이 열이 잔뜩 오른 얼굴로 황경호의 엉덩이 한쪽을 손끝으로 간지럽히듯 긁었다.

“빨리. 빨리…. 더 넣어줘. 움직여줘. 하아. 빨리….”

또 엄청 재촉해댄다. 상대방 진도는 생각 못 하고 밀어붙이는 것이다. 황경호가 완전 난처한 얼굴로 그만하라는 듯 그의 어깨를 쳤다.

“시, 싫어. 못 해…. 흑….”

“못 하는 게 어디 있어…. 하아…. 응? 빨리.”

그는 전혀 봐줄 생각이 없다…. 황경호는 어쩔 줄 몰라 하며 강동현의 얼굴을 보다가 결국 한 손으로 그의 어깨를 잡고 한 손으로 그의 남성기를 잡았다. 그리고 슬슬 엉덩이를 돌렸다. 그게 엄청 야해서 말이다…. 강동현이 깜짝 놀라서 입을 딱 벌렸다.

“뭐야, 너…. 잘하면서….”

완전 좋다…. 강동현은 그의 벌겋고 귀엽고 야한 얼굴을 홀린 듯이 보다가 그의 뺨을 낼~름 핥았다. 그가 진저리를 친다.

“변태…. 아아앙….”

황경호는 강동현이 할 때보다 오히려 가감을 맞춰서 넣을 수 있어서 그가 할 때보다 좀 더 빠르게 깊이 넣을 수 있었다. 겨우 반이 좀 넘게 넣어 그의 몸 위에 안정적으로 앉을 수 있으니 차라리 좀 안정된 기분이 들었다.

“하아…. 읏…. 하응….”

하지만 너무 커서 적응하는 데 시간이 필요했다. 배 안이 너무 빵빵해진 기분이었다. 버겁다. 하지만 강동현이 기다릴 시간을 안 줬다. 바로 젖꼭지를 꼬집으며 문질렀다.

“하아…. 빨리 움직여. 빨리. 빨리.”

강동현이 재촉하며 황경호의 목덜미에 얼굴을 문질렀다. 황경호는 머뭇거리고 주저하면서 한참을 그의 재촉에 시달리다가 결국 그의 단단한 허리를 두 손으로 짚고 엉덩이를 당기고 밀기 시작했다.

“흑…. 흐윽…. 아앙…. 흐으응…. 아앙….”

울상인데, 바로 느끼는 표정이 되었다. 자기가 하니까 어디로 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다. 처음에 이 모든 판타지를 상상할 땐 그가 싫어하며 울고불고할 걸 기대한 것이었는데. 강동현은 또 의외의 사실을 깨닫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얘랑 하면 언제나, 뭐든, 상상 그 이상이다.

강동현은 약간 허탈한 감마저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너무 좋아….”

강동현은 그의 얼굴을 귀한 걸 만지듯 천천히 쓰다듬었다.

원래 강동현의 판타지는 그가 강동현의 위에서 정말 별 지랄을 다 하는 것이었다. 엉덩이만 조금 흔든다고 끝나는 게 아니란 말이다. 다리를 벌리고 하고 오므리고 하고, 새침하게 엉덩이만 살살 흔들거나 아니면 널을 뛰면서 자지를 거기로 쪽쪽 빨거나, 앞으로도 하고 뒤로 하는 거 다 보여주고…. 가슴도 잔뜩 빨리고 입술도 빨리고 엉덩이도 몇 대 맞고 놀림도 잔뜩 당하고 야한 말도 엄청 들어야 했다. 게다가 안에 잔뜩 사정 당하면서 자기가 사정한 것까지 먹고 나니 결국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흑…. 너랑 같이 안 살아…. 못 살아. 안 살아. 안 살아! 흐윽. 나갈 거야…!”

그가 그러든가 말든가 강동현은 아직 완전히 정신이 나가서 그를 꽉 끌어안고 쓰다듬고만 있었다. 황경호가 마구 밀어내려고 해도 밀리지도 않았다. 황경호는 어쩔 수 없는 무력감에 분해서 그를 마구 욕했다.

“변태…. 저질. 흑. 흐윽. 나쁜 놈. 변태. 고자. 색마. 임포! 변태! 죽어버려…!”

또 진한 오르가즘의 여파로 더 서럽고 부끄럽게 느껴지니 황경호는 완전 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너 같은 거, 흐윽, 또 왜…. 흐윽. 흑. 나쁜 놈. 나쁜 놈. 나쁜 놈. 나쁜 놈.”

강동현도 진한 사정감과 배설감에 정신이 아찔아찔해서 그런 그를 꽉 끌어안고 아무 말 없이 지분거리기만 하다가 정신을 아주 쪼~끔 차렸다.

“왜…. 울지 마. 응?”

강동현이 여전히 정신 나간 것 같은 취한 목소리로 말하며 뺨에 입술을 꾹 눌리니 황경호가 그의 팔을 치며 울먹거렸다.

“이제 놔. 흑. 빨리 놔!”

황경호라고 딱히 눈물이 많거나 그렇진 않았다. 오히려 적은 편에 속했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울어본 적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다만 아직도 뚜렷하게 기억이 나는 게 정말 어렸을 때 울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굉장히 혼이 난 적이 꽤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우울증에 걸려서 힘들어할 때도 눈물은 잘 나지 않았다.

근데 웃기게도 요새 강동현이 잘못하거나 괴롭히면 눈물이 막 터져 나왔다. 억울하고 밉고 화나고…. 도통 이유를 알 수 없고 나중에 정신 차리고 나면 쪽팔리긴 되게 쪽팔리는데도 자주 그랬다.

역시 그가 그러거나 말거나 강동현은 황경호의 뺨에 입술을 누르며 눈물로 젖은 그의 뺨을 맛있다는 듯 사악 핥았다.

“하아…. 나 너 우는 것도 엄청 좋아하는 거 알지? 귀여워….”

황경호는 열이 받아서 그를 마구 때렸다. 그에게 껴안긴 채로 그의 등을 주먹으로 때리고 옆구리도 때렸다.

“아야. 아파….”

강동현은 그렇게 미적지근하게 반응하며 황경호를 더 지분거렸다. 황경호는 훌쩍거리면서 그의 등을 끌어안고 있다가 문득 자기 자신이 눈물을 흘리는 것에 약간 도취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 눈물을 흘리고 싶었다. 깊은 해소감과 후련함이 있었다. 왜 그런 느낌이 드는지 의문스러웠다. 그러면서 점점 눈물을 그쳤다. 강동현의 어깨에 얼굴을 좀 문질러 닦고 금방의 자신이 부끄러워 좀 반성했다. 바보 같아.

그리고는 그냥 멍하게 강동현의 너른 품에 안긴 채 멍하니 그가 쓰다듬어 주는 걸 느끼고 있었다. 힘들기도 하고 탈력감도 심했다. 둘은 여전히 하나로 이어져 있었고 딱 맞춘 것보다도 더한 느낌으로 맞물려 서로를 껴안고 있었다. 그건 황홀하면서도 상당한 안정감을 주었다. 느껴보기 전엔 있는지도 모르는 좋은, 그런 거…. 황경호는 언제나 섹스 후의 이 포옹을 좋아했다. 아무런 생각도 안 나고 기분이 엄청 좋았다.

강동현이 베개의 산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고 황경호는 그의 몸 위에 완전히 기대어 있는 상태였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머리카락을 계속 쓰다듬다가 그의 고개를 들게 했다. 강동현은 머리를 쓰다듬던 손으로 그의 뺨과 귓가를 넓게 감쌌다. 그리고 둘은 눈을 마주치고 깊이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허리에 확 힘이 빠진다.

이렇게 서로를 바라보고 있으면

마법에라도 걸리는 것처럼

환상적인 기분이 든다

그가 미워서 죽을 것 같다가도, 이렇게 있으면 또 마음이 살짝 풀린다. 미운 짓만 안 하면 예뻐 보일 것도 같다. 강동현이 천천히 다가와 입을 맞추었다. 황경호는 혼이라도 빠지는 기분이라 길게 신음을 흘렸다.

“흐으응….”

그의 부드러운 입술에다 자신의 걸 문지르고 같이 끌어안고 입맞춤을 깊게 나누다가 그가 자신의 엉덩이를 두 손으로 잡고 쑥 안으로 더 들이밀자 황경호는 깜짝 놀라 움찔했다.

“아앙…. 갑자기….”

황경호가 신음을 흘리자 강동현이 그의 턱을 깨물었다. 강동현이 이제 진짜 이성이라는 게 좀 돌아왔는지 또렷한 음성으로 말했다.

“아…. 한 번밖에 못 했는데 열두 시 지나버렸다….”

“뭘 한 번밖에 못 해….”

마음대로 사람 입에다 한 주제에. 챙길 거 다 챙기는 놈들이 오히려 꼭 이렇게 아쉬워한다. 황경호는 그를 밀어내려고 손에 힘을 줬다.

“두 번 다 했잖아.”

“열두 시 지났으니까 또 두 번 할 수 있잖아.”

“…….”

아, 그렇게 되는 건가…. 황경호는 얼굴을 붉혔다. 얘는 진짜 이런 거 어떻게 다 따지는지 모르겠다….

황경호가 직접 움직이면서 했더니 강동현이 할 때보다 긴장을 덜 해 보통 한 번 하고 났을 때보다는 안이 쫄깃하게 풀렸다. 강동현도 오랜만이라 쿠퍼액이고 정액이고 잔뜩 쌌다. 미끌미끌하니 움직일 여지가 있는 게 느껴진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엉덩이를 두 손으로 잡고 위로 쳐올리기 시작했다.

“아앙…! 앙! 힉…! 아아…!”

쳐올릴 때마다 황경호가 질끈 눈을 감고 신음을 흘렸다. 느리지만 살이 찰싹찰싹 부딪친다. 스스로 할 때랑은 완전 느낌이 달랐다. 정말 ‘범해지는’ 느낌이다. 강동현이 섹시한 신음을 흘리며 그를 불렀다.

“황경호…. 이리 와. 키스해.”

“흑…. 으앗…. 아앙….”

황경호는 입을 맞추려고 허리를 숙이려다가도 강동현이 계속 안을 파니 움찔움찔하며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어쩔 줄을 모르고 있다가 겨우 강동현의 예쁘고 부드러운 입술에 자기 입을 갖다 댔다. 황경호는 강동현의 입술에 섬세하게 자신의 것을 문질렀다. 강동현은 혀로 그의 입술을 핥았다. 황경호는 입을 벌렸다. 황경호는 얼굴을 빨갛게 붉히고 강동현과 야하게 혀를 섞었다. 고개의 방향을 이리저리 바꿔 가면서 깊게 입을 맞추었다.

‘입술…. 기분 좋아…. 혀도…. 기분 좋아….’

입술이 부르틀 때까지 입만 맞추고 싶다. 이런 게 이렇게 기분 좋을 줄도,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할 줄도 전혀 몰랐다. 황경호는 심장이 너무 뛰어서 그게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갈비뼈가 다 아프다.

황경호는 언제나 남들과의 적절한 거리감이 중요한 사람이었다. 사람들이 그에게서 너무 멀리 있는 듯 느껴지면 본인이 뭔가 크게 잘못한 것만 같아 죄책감 비슷한 게 느껴지고 너무 가까우면 부담스러웠다. 나한테 뭘 바라나 싶고….

감성적인 면에서 타인이 어려우니 신체적으로 접촉하는 것은 더 힘들었다. 일과 관련된 상황 외에 타인과 본의 아니게 접촉하거나 혹은 본의로 접촉하더라도 이게 괜찮은 건가에 대해 끊임없이 걱정하고 남이 자신에게 닿으면 그것 자체로 긴장했다. 그게 어떤 종류의 접촉이든지 간에 생소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같은 또래의 친구들이 자위를 하고 또 섹스를 꿈꿔도 황경호에게는 언제나 남 일 같이 느껴졌다. 괜히 그런 걸 따라 했다가 오히려 수치감만 따라왔으니 더욱 그런 접촉에 대해 가치관이 보수적이게 되었다.

거기에다가 강동현이 멋대로 그의 선을 흙발로 짓밟고 멋대로 사람을 만지고 괴롭히니 무섭고 싫고 힘들기만 했다. 그 정도 되는 남자가 사람을 그렇게 취급하니 사람들과의 사이에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하기 위한 처신에 최선을 다하던 황경호에게는 모든 가치관이 부정당하는 것만 같고 그랬다.

하지만 그는 누가 그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간에 멋있고 매력 있는 남자였다. 미워도 싫어도 눈길을 끌었다. 아니, 그가 자신을 계속 어떻게든 하려고 했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일지도 모른다. 황경호의 인생에 이렇게 거리감이 이상한 사람은 처음이었다. 누구보다 먼데도 누구보다도 가까웠다.

황경호가 지금까지 경험해봤던 모든 인간관계 중에서 가장 가까운 느낌을 주는 게 바로 강동현이었다. 그는 여전히 황경호를 주저하게 하고 경계하게 하고 의심하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다가 그와 섹스라도 하면 단숨에 남아 있는 거리마저도 제로 아니, 뭔가 그 이상의 이상한 곳까지 도달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서로 껴안고만 있어도 소름이 끼치는 접촉감. 하나가 되면 될수록 오로지 더 섞여만 가는 느낌. 서로의 눈동자를 바라보면 그것만으로 다른 모든 게 페이드아웃 된다. 말로 잘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럴까. 그와의 섹스는 처음엔 언제나 거리껴지고 싫고 저어되는데 막상 하기 시작하면 너무 기분이 좋아서 말이다. 이상하다. 머릿속에서 좋고 싫은 게 막 뒤죽박죽이 된다.

한편으론 모든 게 다 싫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전부 다 좋다.

“하아…. 진짜 기분 좋아…. 너 진짜 뭐 먹고 사냐…. 어…?”

강동현이 황경호의 뺨과 귓가에 입술을 눌러 얼굴을 비비며 거친 숨소리를 냈다. 서로의 피부가 마찰할 때마다 아찔하다. 둘 모두 피부에 땀이 배어 스칠 때마다 매끄러웠다. 게다가 둘 다 좋아하는 서로의 체취도 강해진다.

“흐읏…. 으응…. 아앙….”

황경호는 그가 애무하고 자신의 안으로 파고들 때마다 소름이 자꾸 돋아서 손끝이나 발끝이나 이런 말단 부위가 계속 아찔거려 힘을 줄 수가 없었다. 강동현이 황경호의 피부에서 얼굴을 떼고 서로 눈을 마주쳤다.

“…….”

“…….”

헐떡거리면서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강동현은 이미 온몸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릴 정도로 열심히 움직이고 흥분했다. 그는 섹시하게 씨익 웃었다. 그리고 황경호의 엉덩이를 쥔 손에 힘을 주더니 갑자기 점점 빠르게 박기 시작했다. 황경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온몸이 새빨개졌다.

“앗. 앗. 앗. 앗. 잠깐…! 앗. 너. 앗. 설마…. 아아앗.”

“이제, 안, 윽, 아프지?”

더 빠르게 박는다. 강동현의 크고 땡땡한 고환이 엉덩이에 부딪혀 점점 큰 소리를 냈다. 자신을 밀어내려는 황경호의 두 손목을 잡아 내리눌렀다. 그의 손목을 엑스 자로 교차해서 바로 그의 아랫배 앞에 고정했다. 경악해서 눈을 크게 뜨고 있던 것도 잠시, 황경호는 엄청나게 야한 표정을 짓더니 비명처럼 신음하기 시작했다. 이미 속도는 임계점을 넘었다.

“히아아앗! 아앗! 아아앗! 안 돼! 하앙! 아앙! 힉! 아아! 아아아! 아아앙! 앗! 으응! 아으응!”

강동현도 인상을 심하게 찌푸리고 섹시하게 신음을 흘렸다.

“아, 큭, 씨발, 아, 미칠 것 같아, 죽을 것 같아, 젠장, 여기 봐, 나 봐, 젠장, 나 보라고!”

잔상이 남을 정도로 빠르게 살이 부딪치고 있었다. 질척한 체액이 쩍쩍 붙어 늘어졌고 황경호의 엉덩이 살이 엇박자로 마구 출렁였다. 커다란 성기가 마구 하얀 엉덩이 사이를 쑤신다.

불의의 일격에 황경호는 정신이 홀랑 나가버렸다. 황경호의 얼굴 표정이 점점 무너지고 야해지기만 하더니 눈빛이 약에 취한 듯 몽롱해졌다. 그는 강동현에게 손목을 꽉 붙잡혀 아래로 당겨져 엉덩이를 미친 듯이 파였다. 그렇게 곧 엄청난 오르가즘에 오르기 직전, 결국 비명처럼 실언을 하고 말았다.

“강동현…! 기분 너무 좋아…! 하아아아아앙……!!”

황경호는 덜덜 떨며 온몸에 뻣뻣하게 힘을 주었다.

“아아아…! 아앗…. 하읏…! 아아…. 아으…. 으….”

황경호는 눈을 감은 채 온몸은 빨개져서 끝내주게 야시시한 얼굴로 제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심하게 경련했다. 훤칠하고 커다란 남자의 몸 위에 올라탄 채 그의 대물을 가득 품고 엉덩이와 온몸을 떨고 있는 것이다.

평소의 청결하고 순하고 어려 보이는 얼굴이 이럴 때는 성숙하고 야하고 끝내주게 요염해져서….

“아우…. 씨…. 으으으윽….”

진짜 자지가 한 번 터졌다가 다시 짜 맞춰진 것 같은 느낌이다. 아플 정도로 두근거리면서 사정하고 있었다. 강동현은 황경호가 금방 교성을 내지를 때 온몸이 꽉 조이듯 두근하며 그에게 이끌려 성대하게 싸기 시작했다. 게다가 그가 경련하면서 하도 쥐어짜니 엄청 나온다. 사정감, 배설감, 쾌감, 아찔함, 짜릿함…. 느낄 수 있는 엑스터시란 것들이 전부 불꽃놀이처럼 마구 터진다.

“핫…. 아…. 흐으…. 아…. 으으…. 아…. 아아….”

한참 더 야한 얼굴로 경련하다가 황경호가 그대로 뒤로 넘어갈 뻔했다. 강동현은 자지가 쥐어뜯기는 느낌이라 속으로 욕을 삼키며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러자 그가 앞으로 쓰러진다.

“하아아…. 흐읏…. 하아아….”

그가 새빨개진 얼굴로 숨까지 경련하듯 쉬며 강동현의 상체에 찰싹 달라붙어 눈물을 줄줄 흘렸다. 강동현은 이를 악물고 그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사정이 길다. 영혼까지 빨리는 것 같다. 그도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진 상태였다. 자세 때문에 황경호의 엉덩이는 강동현의 대물을 반만 머금은 채 꽉 조였다 조금 풀었다 더 꽉 조였다가 확 풀었다 했다. 요분질이 그냥….

그렇게 아주 딥임팩트 급 오르가즘이 끝나자 황경호는 강동현의 목젖 부근에 얼굴을 박고 축 늘어졌다. 강동현도 크게 헐떡이며 마지막으로 허리를 털었다. 찌걱찌걱. 그의 음부가 완전 쫄깃하고 부드러웠다. 이 정도는 처음이다. 미친다…. 그리고 한 손으로 그의 엉덩이 한쪽을 아주 짜부라트릴 듯 꽉 쥐고 다른 팔로는 그의 등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헉…. 윽….”

씨발…. 죽는 줄 알았다. 강동현은 그 전처럼 아예 정신이 몽롱하게 나가는 게 아니라 이번엔 아예 아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자지가 아직도 불타는 것 같다. 예전에 황경호가 치한용 스프레이를 뿌렸을 때의 그 얼얼함 같기도 했다. 찐~한 각성 상태가 이어진다. 얼이 좀 빠진 상태다. 강동현은 엄청 헐떡거리면서 눈을 크게 뜬 채 천장만 쳐다봤다. 같이 헐떡이며 위에 쓰러져 있는 상대를 뭔가, 진짠가, 싶은 느낌으로 꽉 끌어안았다.

금방 진짜 죽을 뻔한 것 같다…. 이건 어디 차를 심하게 갖다 박을 뻔할 때나 드는 정신적 충격이었다. 목숨이 경각에 달릴 때나 드는 긴장감이었단 말이다. 그렇게 한참을 헐떡거리고 있었다. 천장만 뚫어져라 보며 강동현이 입을 열었다.

“너…. 아까 그거 다시 해 봐….”

상대는 숨만 겨우 붙어서 아무런 미동도 없이 강동현의 몸에 달라붙어 있었다.

“다시 해 봐.”

머릿속을 전부 날려버린 것 같은 충격이었다. 뭔지도 모르겠다. 다시 해봐야 알 것 같았다. 상대가 이런 것도 있다고 말하면서 그에게 세게 주먹질을 한 것 같다.

만지고 넣으면 곧잘 강동현 좋아하는 야한 표정을 짓지만 아까 그건 진짜 최고였다. 처음 봤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신음하고 교성을 지르는 것도 처음이었다. 아까 강동현의 위에 엎어져서 부끄러워하는 것은 고사하고 그렇게 날것 그대로 쾌감을 나타내는 얼굴은 처음이다.

게다가 그가 강동현과 섹스하는 것을 좋다고 말한 것도 처음이었다. 절정에 이르기 직전에 말해서 아주 신빙성이 팍팍 든다. 강동현은 정신을 못 차리는 황경호를 흔들어서 빨리 정신을 차리게 하려고 했다.

“그렇게 기분 좋았어? 다시 말해 봐. 응? 빨리. 얼마나 좋았어? 완전? 최고? 어?”

강동현이 또 엄청나게 재촉하기 시작했다. 황경호는 반쯤 기절한 것 같은 상태에서 그의 재촉에 점점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천천히 자각하곤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온몸이 새빨개졌다.

“나랑 하는 거 좋지? 진짜 좋은 거지? 좋으면서 지금까지 계속 뺀 거지? 아, 진짜…. 알고 있었는데도 네 입으로 들으니까…. 다시 말해 봐. 응? 다시 말해줘.”

“…….”

황경호는 정신이 들었는데도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자 손가락 하나도 꿈쩍할 수 없었다.

‘죽고싶어죽고싶어죽고싶어죽고싶어죽고싶어!’

강동현은 그런 상대의 상태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지 약간 미친놈처럼 과하게 흥분해선 자꾸 물어보고 조른다.

“그렇게 좋았어? 좋았지? 응? 응? 아까처럼 한 번만 더 하자. 응? 응? 제발. 제발.”

움직일 수도, 뭐라고 대꾸를 할 수도 없는데 그렇다고 이렇게 계속 있는 것도 답이 없었다. 강동현 본인이 황경호를 좋아하든 말든 간에 그는 기본적으로 자아가 강한 남자였다. 아니, 좋아하니까 더 그런 것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곧잘 상대에 대한 배려보다는 그 자신을 강요하고 말았다(솔직히 배려를 해도 핀트가 안 맞을 때가 대부분…). 합의하에 섹스를 하게 되고 나서부터 그는 곧잘 섹스를 처음 한 어린애처럼 굴었다. 뭘 자꾸 궁금해하고 물어보고 재촉한다.

“네가 자꾸 아프다고 해서 살살 했는데 방금처럼 하는 게 더 좋은 거야? 응?”

황경호는 결국 손으로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리고 다른 손으론 그의 두 눈을 가렸다. 강동현이 그의 두 손목을 잡았다.

“뭐 하는 거야?”

목소리에 은근히 기대가 실려 있는 걸 보니 이걸 무슨 플레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죽여버리고 싶다…. 황경호는 그대로 그냥 엉덩이를 쑥 들었다.

윽. 황경호는 겨우 신음을 참았다. 그리고 베개 하나로 강동현의 얼굴을 확 누르고는 곧바로 침대에서 뛰어내려 강동현의 방을 나가 그의 방문을 쾅 닫았다. 그리고 재빨리 자기 방으로 도망가 문을 잠갔다.

그리고 방에 딸린 욕실로 들어갔다. 커다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니 아주 불타는 고구마가 따로 없었다. 황경호는 그 꼬락서니를 더 두고 볼 수가 없어 얼른 샤워부스로 들어갔다. 강동현이 황경호의 방문을 노크하는 게 들린다.

“야! 잠깐만! 그렇게 가면 어떡해!”

아직도 다리가 후들거린다. 배 속엔 저 멍청이 때문에 공간감이 뻐근하게 남아 있었다. 황경호는 샤워기를 틀었다. 그리고 벽에다 머리를 박았다.

죽고 싶다.

‘저 새끼도 그냥 죽여버리고 싶다….’

이유는 필요 없었다. 지금 마음 같으면 이유고 자시고 그냥 죽여버리고 싶었다. 내가 쪽팔리니까. 일단 지금 들 수 있는 이유는 그거 하나다…. 황경호는 벽에다 한참 머리를 콩콩 박았다. 1시간이 넘게 몸을 박박 씻고 나서야 겨우 샤워실을 나올 수 있었다.

“…….”

샤워실을 나오니 강동현이 있다. 열쇠를 찾아서 열어버린 모양이었다. 하지만 욕실 문은 따지 않았다. 황경호는 그대로 뒤로 돌아 다시 욕실로 들어가려고 했다.

“쪽팔려도 그냥 나와.”

강동현은 그래도 한 시간 동안 머리를 식힌 모양인지 그렇게 말했다. 황경호는 뺨이 좀 벌겠지만, 오히려 이런 상황이라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그냥 수건 하나 더 꺼내려고.”

그리고 진짜 수건 하나를 더 꺼내 머리를 다시 닦았다. 그리고 인상을 확 찌푸렸다.

“너 지금 안 씻고 내 침대 위에 앉아 있는 거야?”

“씻었어. 씻었어.”

강동현이 얼른 말했다. 하지만 침대에선 재빨리 일어난다. 황경호는 기분이 나쁘다는 티를 팍팍 내면서 그의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가 이상한 질문을 하는 것을 원천에 막기 위해서다. 괜히 순진하게 얼굴 붉히고 있으면 저 새끼는 분명히 더 기가 살아서 나댄다. 그리고 황경호는 원래 꽤 표정을 잘 관리하고 거짓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같이 안 잘 거야?”

강동현이 슬그머니 물었다. 황경호는 자기 침대 위에 올라가며 대답했다.

“혼자 잘 거야. 나가. 잘 자.”

“…좀 쪽팔린다고 치사하게….”

강동현이 그렇게 구시렁거리자 황경호가 순간 귀까지 빨개져선 그에게 베개를 던졌다.

“나가!”

“알았어…. 쳇.”

강동현은 완전 탐탁지 못한 표정으로 짜증스러운 소리를 내며, 결국 황경호의 말대로 나갔다. 황경호는 그의 뒤통수를 노려보다가 그가 문을 닫고 나가자 그제야 또 벌게져서는 침대에 엎드려 쓰러졌다.

진짜 죽고 싶다….

“흑….”

진짜 내 인생은 저 새끼 때문에 다 망했다. 쪽팔려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 그냥 진짜 나갈까.

그와의 섹스가 기분이 좋다는 것은 그와 그냥 몸을 비비기만 할 때부터 알고 있었다. 그때는 그가 싫어서 죽을 것 같은 상태였기 때문에 쪽팔리는 것도 문제지만, 하고 나면 화나고 우울할 때도 꽤 있었다. 아예 쾌락을 느끼는 몸과 스스로를 분리하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그와 하는 게 아프거나 힘들면 차라리 위안이 되었다. 그런 쾌락을 느낀 것에 대한 죄책감과 수치감을 덜어주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요새는 안 그래도 너무 느껴서 이쪽도 당황스러울 지경인데 거기다가 저 새끼는 정신 빼놓고 놀려대고, 이번엔 이쪽도 정신 못 차리고 그런 소리까지 하고….

‘둘 다 정신을 못 차리니까 완전 엉망진창….’

황경호는 그리고 또 자기가 한 말이 생각나 침대에다 얼굴을 박았다. 죽고 싶다. 저 새끼 정말 죽을 때까지 놀릴 것이다. 그러다가 문득 황경호는 자기 엉덩이를 한 손으로 잡았다. 엎드려서 얼굴을 침대에 처박은 채다. 엉덩이를 잡으니 그사이까지 영향을 미쳐 움찔하게 되었다.

그리고…. 생각해보니까…. 언젠가부터 계속 앞을 안 만지고 간다….

“윽…….”

황경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신음을 흘렸다. 발을 굴렀다.

해도 해도 너무한 것 아닌가. 도대체 그가 뭘 그렇게 잘못 살았다고 이런 시련(?)이 닥치는 것인가. 크게 나쁜 짓 하고 산 적도 한번 없고 세금도 잘 냈다. 근데 도대체 왜 이러냐고. 그냥 죽고 싶다. 쪽팔린다. 이것도 알아차리면 분명히 놀릴 것이다.

‘다 저 새끼 때문이야! 이게 다 저 변태 새끼 때문이라고…!’

황경호는 일요일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곧바로 집을 뛰쳐나왔다. 강동현은 아직 깨지 않았을 때였다. 보면 분명히 또 괴롭힐 것이다. 황경호도 이제 그 정도의 각은 잴 수 있었기 때문에 휴대폰을 끄고 그냥 집에서 나와버린 것이다.

하지만 막상 집은 나왔는데 다른 곳은 가고 싶은 데가 없었다.

‘이놈의 집이 너무 좋으니까 굳이 어디 다른 데를 가고 싶지가 않다….’

강동현은 잘난 남자답게 결국 재력으로 황경호를 꼬시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 느낌이 가끔 매우 찝찝하다…. 황경호는 어디로 가야 할지 잠깐 고민하다가 그대로 T아파트 단지 내에서 호텔식 아침 식사 서비스를 해주는 카페테리아로 향했다. 입주민 전용이었다. 이사 오고 나서 한 번도 안 가봤다. 배달도 된다던데…. 커피 정도나 한잔하고 강동현이 나가면 다시 올라가야겠다.

‘좋다….’

황경호는 이상해 보이지 않을 정도로만 고개를 돌려 안을 구경했다. 인테리어 컬러의 기본은 블랙, 골드, 화이트인 모양이었다. 천장은 엄청 높고 멋진 샹들리에가 달려있었다. 햇볕이 잘 들어왔다. 창밖으로는 멋진 가든이 보인다. 사람들은 조용히, 혹은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하거나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엉뚱하게도 그런 생각이 났다. 먼 훗날 누군가 여기의 유적을 발견한다면 아마 한국이란 나라의 상류층 인사들이 식사를 즐기던 건축물이라며 멋지게 소개하지 않을까.

“창가로 자리 안내해드릴까요?”

종업원은 도저히 익숙해질 수 없는 태도로 황경호에게 말했다. 정중하고 깍듯하고…. 황경호가 가보았던, 손님이 왕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달고 서비스하는 그 어떤 업체들도 이렇지는 않았다. 여기 있는 종업원들은 전부 아름다웠고 훤칠했다. 깍듯한 친절함만이 다가 아니었다. 굳이 황경호가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 꼽으라면 지금 그가 일하고 있는 병원 식구들이 좀 친근한 버전의 이런 것이었다.

“아, 예. 예….”

뭔가 저절로 허리가 숙여질 것만 같았다. 간신히 참고 그를 잘 따라갔다. 창가에 볕이 잘 드는 곳에 자리를 안내해주었다. 앉은 자리에서 앞을 보니 천장까지 닿는 벽에 와인과 글래스가 정연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하얀 생화가 비치되어 있다. 고급스러운 두껍고 부드러운 종이로 만들어진 메뉴판을 보니 헉 소리가 나왔다. 브런치 하나에 4만 원 가까이 한다. 그냥 커피만 먹을까 했는데 하나 먹고 싶기도 하다. 황경호는 격렬히 고민을 하다가 결국 기왕 온 거 하나 깔끔하게 먹어야겠다고 결론을 지었다.

“이거 주세요.”

“음료는 따로 안 필요하신가요?”

“음…. 커피 주세요.”

뭔지는 알겠지만 입 밖으로 직접 내뱉어 말해본 적이 없는 영어로 된 음식을 시켰다. 미끈한 생김새의 종업원이 사라지자 황경호는 가만히 사람들을 구경했다.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일요일이라 사람이 없는 편인 걸까. 간혹 저 사람은 뭐 하는 사람일까, 싶을 정도로 굉장한 외모의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굳이 그 정도가 아니더라도 다들 얼굴이 환하다는 느낌이다. 강남이나 예전 집 근처에서 보던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르게 생겼다. 심지어 삼성동에서 보던 사람들과도 조금 다르다. 좀 더 체에 걸러진 느낌이었다.

‘다르다….’

황경호는 그런 실감이 자신의 괜한 과민함일까, 잠깐 고민했다.

음식이 나왔다. 그렇게 양이 많은 음식은 아니었다. 잘 구운 따뜻한 빵에 양상추와 토마토와 치즈, 소스, 아보카도 그리고 킹크랩의 살이 가득 올려져 있고 따뜻한 수란이 그 위에 있었다. 모양과 색깔이 예뻤다. 냄새가 좋다. 그리고 그 곁에는 사이드로 생크림과 버터를 섞은 따끈한 매시드 포테이토와 샐러드가 있었다. 황경호는 이런 식의 음식을 먹어본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먹는지 잠깐 체크를 한 후에 나이프를 대었다. 강동현이 좋은 음식점이나 비싼 레스토랑을 꽤 데리고 가주었지만 브런치는 먹어본 적이 없었다.

재료를 잘 포크로 찔러 한 입 먹었다. 그리고 느껴지는 풍부한 식감과 맛에 놀랐다. 아보카도라는 게 이런 맛이 나는 과일인지 처음 알았다. 입안 가득히 풍미가 퍼진다. 그게 다른 재료의 맛도 더 잘 느껴지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정말 고급스러운 맛이 난다. 샐러드도 다른 음식점에서 나오듯이 가볍게 나오는 느낌이 아니라 그 자체로 제대로 된 음식 같았다. 처음 먹어보는 드레싱인데 산도도 당도도 정말 딱 좋다. 게다가 샐러드 재료도 그냥 양배추나 양상추 정도가 아니라 잘 모르는 채소도 몇 개 있었다. 정말 신선하고 상쾌한 맛을 냈다.

‘이래서 사람이 좋은 걸 먹고 살아야….’

일단 강동현을 피하려고 잠깐 내려온 것뿐이었는데도 또 하나 새롭고 좋은 걸 경험하게 되어서 뭔가 좋았다. 기분 좋은 낯섦. 황경호는 허겁지겁 먹지 않도록 노력하며 한 입 한 입 꼭꼭 씹어서 먹었다. 예상치 못한 지출이었지만 만족스러웠다. 아쉬운 마음에 몇 번 접시를 포크로 긁다가 커피를 천천히 마시기 시작했다. 종업원들은 정중한 태도로 커피를 리필해주러 오고 또 접시를 치워 가기도 했다. 저쯤에 있는 커다란 유리통 안에 맛있어 보이는 디저트가 잔뜩 있었으나 가격이…. 황경호는 입맛을 다시며 그 유리통을 잠깐씩 보다가 책을 들었다. 책이나 읽자….

그러다가 너무 오래 있었나 싶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제를 하러 가니 아까 브런치에 커피까지 해서 4만 5천 원이나 나왔다. 한 끼에 그 정도나 쓰는 건 진짜 있는 집 애들이나 그러는 거지 황경호의 수입으로는 한 달에 한두 번이나 가능한 것이었다. 그것도 평소에 그런 이벤트를 대비해서 절약을 할 때 말이다. 근데 요새는 계속 이렇게 과소비를 하고 있었다.

“휴….”

황경호는 결제를 하기 위해 카드를 꺼내면서 한숨을 쉬다가 문득 지갑 안에 있는 파란색 카드가 눈에 띄었다. 강동현의 카드다.

“…….”

그걸 잠깐 보고 있으니 카운터에 있는 예쁜 종업원이 웃는 낯으로 물었다.

“결제는 카드로 해드릴까요?”

“아, 네. 죄송합니다.”

황경호는 자신의 카드를 넘겨주며 그렇게 말했다. 괜히 금방의 행동이 없어 보이는 행동이었나 되짚어 보았다. 결제가 끝나고 영수증과 함께 카드를 돌려받고는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잠깐 산책을 나왔다. 서울숲 쪽으로 향했다. 지갑에다가 자신의 카드를 끼워 넣고는 파란색의 신용카드를 꺼내 보았다.

진한 파란색의 무광, 아니 은은한 광이 도는 예쁜 신용카드. 그냥 신용카드일 뿐인데도 괜히 예쁘다…. 황경호는 아직도 그 갈색 봉투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강동현의 모든 통장과 연결되어 모바일 뱅킹이 가능하고 강동현의 신용카드 두 개로 모든 결제가 가능한 최신 폰도 하나 가지고 있었다. 봉투나 휴대폰이나 그냥 방에다 고이 묵혀두고 있었다. 그걸 쓸 생각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솔직히 방에 있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강동현은 그걸 자신에게 절대 못 돌려주게 했다. 동거 계약서를 쓰고 나서도 그것 가지고 엄청나게 다투다가 결국 계약서 3번 조항으로 자기한테 돌려주지 말라고 박아버리기까지 했다.

게다가 그는 자신이 발급한 두 개의 신용카드 중 하나를 황경호가 무조건 들고 다니게 하기까지 했다. 이제 황경호가 살림을 맡아서 하고 있는 격이니 그걸로 꼭 사란다. 솔직히 이 정도로 세간이 커지니 황경호도 자기 월급만으로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아서 아주 가~끔 돈이 좀 많이 드는 대용량 식료품이나 집에 필요한 용품들을 살 때는 쓰게 되긴 했다. 여기 마트는 진짜 엄청 비싸서 황경호가 도저히 전부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 외에는 절대 쓰지 않았다.

강동현은 황경호와 같이 살기 전까지는 법인카드와 법인 차로만 움직이다가 황경호와 같이 이 집에 살게 되고 나서야 자기 검은색 신용카드 하나랑 차 키 두 개는 들고 갔다. 하지만 그 카드를 쓰는 것도 전부 황경호한테 사준 폰으로 문자가 날아갔다. 파란색 신용카드는 강동현이 쓰는 두 개의 폰 중 어떤 곳에도 문자가 날아가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근데 한도가 억 단위다….

“…….”

지금은 강동현의 집에 들어와 살고 있는 것이라 월세가 나가지 않는 데다가 보증금도 있어서 마음이 든든할 법도 한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월세가 나가지 않는데도 현재 보증금을 까먹을 정도로 돈을 쓴다. 아까 말했듯이 엥겔 지수가 폭발해서 먹는 데다가 돈을 엄청 쓰고 있기 때문이었다.

‘솔직히 여기 마트만 안 가도 괜찮다….’

그냥 여기서는 숨만 쉬어도 돈이었다. 어차피 강동현은 바빠서 집에 안 들어온다. 아니, 아예 한국에 없었다. 그래서 집에서 밥을 해 먹는 건 황경호뿐이라 솔직히 이 카드를 쓸 마음이 전혀 나지가 않았다. 황경호도 자기 밥벌이는 쭉 해오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전에 강동현의 삼성동 집에서 살 때처럼 황경호가 쓰는 물건이나 식료품은 그가 알아서 샀다. 요리에 취미를 붙여 집에서 저녁을 직접 해 먹을 때도 많아서 그날그날 장을 봤다.

그래서 성수동 집에서 처음 요리를 해 먹던 날도 전처럼 동네 마트에 간다고 생각하고 아무 생각 없이 T아파트 입주민 전용 마트에 갔었다.

근데 거긴 양배추가 4분의 1통에 3~4천 원이었다. 일반 대형 마트의 4배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모든 야채와 과일이 무농약 유기농…. 처음에는 그냥 한 번쯤이야, 라고 생각하고, 그래도 최소한으로 구입해서 집으로 들고 가 김태형에게 새로 배운 요리를 한 번 해보았다. 그리고 충격…. 스스로가 이렇게 훌륭한 요리사인지 처음 알았다.

하지만 가격이 정말 살인적이라 그 뒤로는 그냥 하던 대로 일반 대형 마트에서 장을 봐서 음식을 하고 과일을 먹는데 자꾸 생각이 나는 것이다. 그래서 또 한 번 가서 과일을 사 왔는데 완전 꿀맛…. 그러고 이제 안 가야지 하면서 또 가고, 또 가고….

안 그래도 강동현이랑 일주일에 한두 번씩 꼬박꼬박 맛있는 걸 먹으러 다니면서 음식에 대한 심미안이 너무 높아져서 걱정이었는데 여기 사니 걱정 수준이 아니라 아예 문제가 생겨버렸다. 평소에도 식비가 너무 많이 들게 되었다. 엥겔 지수가 폭발하고 있다. 이제 그냥 먹어야 해서 먹는 음식들을 잘 못 견디겠다. 항상 맛있는 걸 먹고 싶고 먹고 있었다.

거기에 아까 브런치에 대한 금액을 지불하려는데 이 카드를 딱 보고

‘그냥 이거 쓸까?’

라는 유혹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황경호는 그런 자신에게 조금 놀라고, 또 조금 실망했다. 그리고 괜스레 억울하고 화도 났다. 그 변태가 기어코 사람을 돈으로 낚는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기분이 복잡해지는 게….

황경호는 언제나 그에게 빚을 지는 게 싫었다. 그는 황경호가 믿을 만한 사람도 아니었고 자꾸 그를 우울하게만 만드는 남자였다. 그래서 뭔가 꼬투리를 잡을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가 주는 것을 받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하지만 강동현은 끈질기게 황경호를 억지나 재력으로 낚았고 그럴 때마다 후회되는 게 많았다.

물론 이제는 그때와는 다르다는 걸 알지만 그래도…. 황경호는 그래도 빚을 지기가 싫었다. 그가 자신을 정말로 좋아한다고 해도, 아니 좋아한다는 게 무슨 상관인가? 그런 건 그에게서 이런 걸 다 받아도 되는 이유가 전혀 되지 않았다. 이미 데이트를 하면서 그에게 부담하는 비용이나 집에 얹혀사는 것만으로도 이미 한도 초과였다. 그 이상이 되면 정말로 뭔가 또 잘못될 것만 같았다.

‘휴…. 진짜 이제 정신 차리자. 아껴야지.’

황경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강동현의 카드도 고이 지갑에다 다시 집어넣고 산책로를 돌아서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끙, 하고 다른 고민에 빠졌다.

‘아, 근데 이걸 언제까지 이렇게 피해…. 다음 주 되면 일주일은 한국에 있을 거라고 했는데…. 분명히 만나면 놀릴 텐데…. 아, 미치겠다.’

앞으로 섹스도 계속할 건데 할 때마다 이렇게 쪽팔리면 도대체 이 집에서 어떻게 같이 살겠는가. 이것도 진짜 조심해야 하는데 한 번 입 밖으로 내뱉고 나니까 다음도 불안하고…. 어쩐지 이래저래 후회되는 게 많다. 황경호는 한숨을 푹푹 쉬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

대만에 있는 커다란 공연장이었다. <코드명: 울프>, <시크릿 블러드> 등의 드라마로 아시아 전역에 메가 히트를 친 한국 배우 강동현의 아시아 투어 콘서트의 일환으로 대만에서 팬 미팅이 열리고 있었다. 주인공인 강동현은 팬 미팅에서 자꾸 헤프게 웃었다. 팬들한테도 계속 손을 흔들면서 왕창 웃어줬다.

“오늘 엄청 서비스 좋으시네요. 기분 좋으신가 봐요.”

대만에서 이름이 알려진 사회자가 물어보는 걸 통역사가 번역해줬다. 강동현이 활짝 웃으며 답했다.

“대만 팬분들 다시 보니까 너무 좋아서요. 다들 진짜 반가워요.”

강동현은 그렇게 말했다. 통역할 시간이 필요하다 보니 한 박자 늦게 사람들의 탄성이 들린다.

“작년에 팬 미팅을 하고 언제 또 대만에서 이렇게 여러분들을 만날 수 있을지…. 그렇게 생각하면 계속 아쉽고…. 그랬는데 생각보다 이렇게 빨리 올 수 있게 돼서 기뻐요. 솔직하게요.”

강동현은 그렇게 말하면서 근사한 미소를 지었다.

팬 미팅은 재밌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팬들과 오랫동안 긴밀하게 접촉하는 시간이라 긴장도 많이 되고 혹시 말도 안 되는 책이라도 잡힐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한다. 사람의 마음, 특히 대중의 마음이란 갈대 같은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팬 미팅 자체는 정말 좋아했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오로지 그를 보고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 먼 타국에서도 모이는 것이니 말이다. 어깨가 으쓱할 정도다.

전에 강동현보다 나이가 12살 정도는 많은 남자 배우가 오랜만에 팬 미팅을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아직 강동현이야 나이도 어리고 인기도 점점 더 올라가고 있기 때문에 그런 회한이나 눈물은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언젠가 그도 그런 감정을 느낄 날이 올지도 모른다.

‘뭐, 열심히 살면 되지.’

강동현은 더 깊은 고민은 없이 팬 미팅을 무사히 끝냈다. 뒤풀이까지 하고 숙소로 돌아오니 온몸이 뻐근할 정도로 피곤해서 씻고 바로 침대에 누웠다. 불을 껐다.

“하하….”

강동현은 뜬금없이 웃었다.

‘좋았다고. 좋았다고….’

깜짝 놀라서 허둥지둥했을 때보다 정신을 차리고 나니까 더 기분이 좋다. 강동현은 그날 황경호와 했던 것을 남김없이 떠올려 보며 실실 웃었다.

‘좋았다는 거지~ 아, 진짜 좋다.’

하고 싶다. 또 그런 거…. 강동현은 휴대폰을 꺼내서 화면을 켰다. 그리고 곧장 메시지를 보냈다.

<뭐 해? 자?>

이렇게 되고 나서도 황경호는 강동현의 메시지에 바로바로 답장을 보내지는 않았다. 아니, 못 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둘은 삶의 패턴이 너무나 다르다. 시간이 애매해서 잘 것도 같고 아직 안 자고 있을 것도 같다. 강동현은 느긋하려고 했지만 초조하게 답장을 기다렸다. 결국 참지 못하고 또 메시지를 보냈다.

<아직 안 자는 거 다 안다>

<오늘은 뭐 했어?>

<주말에는 돌아가니까 또 도망가지 마라>

그렇게 몇 개 문자를 보내다가 슬쩍 본심을 끼워 넣었다.

<근데…. 전에 그거 진짜 좋았어? 얼마나? 또 그렇게 해도 돼?>

강동현은 저도 모르게 엄지의 손톱을 이로 잘근잘근 물었다. 그러다가 답장이 왔다. 오. 강동현은 얼른 메시지를 읽었다.

<죽어 버려>

“…….”

아…. 그냥 당장 가서 덮치고 싶다….

3월까지는 일정이 꽤 있었다. 강동현은 뭐라고 더 할까 하다가 관두었다. 강동현은 잠깐 천장을 바라보면서 있다가 답답함과 초조함 등이 뒤섞인 한숨을 쉬었다.

같이 살게 되면 뭔가 확실하게 해결이 날 것 같았는데….

일단 일차적으로 강동현이 다시 바빠지면서 의미가 반감되었다. 강동현 자체가 집에 갈 수가 없으니 말이다. 진짜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이번 드라마는 안 했다…. 그래도 상대를 그의 구역 안으로 기어코 끌고 온 건 굉장히 뿌듯한 일이기는 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그 전에 소소하게 일주일에 한두 번씩 데이트를 하거나 차라리 황경호의 집에 무작정 밀고 들어갔을 때는 그가 그렇게 경직된 분위기는 아니었는데. 같이 사니까 오히려 엄청 경계하고 긴장한다. 강동현은 그런 그를 이해하기가 좀 힘들었다.

할 때 하더라도 잠은 꼭 따로 자려고 했고(그건 삼성동 집에서도 그랬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쉬는 날이 아닐 때 그냥 잠깐 스킨십만 하려고 해도 대번에 당하기라도 할 것 같다는 듯 싫어하고 긴장했다. 대화를 해도 금세 이야기가 끊겼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만날 때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할 수 있었는데 말이다.

‘왜? 왜 그렇지?’

내가 또 뭘 잘못했나…. 계약서도 적었고…. 강동현은 그렇게 고민을 했다. 물어봐도 제대로 대답을 안 해주니 뭘 알 리가 있나. 걔는 정말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르겠다….

처음에 나쁜 식으로 관계가 형성되었다 보니 강동현은 느낄 새가 없기는 했지만, 근래 몇 달 친밀하게 지내보니 확실해지는 것들이 몇 가지 있었다.

그는 정말 순하고 착했다.

같이 데리고 다녀보면 느끼는 게 나이가 어리든 많든 뭐 하는 사람이든지 간에 인사하고 사과하고 배려하는 게 습관이 되어 있었다. 굳이 병원이 아니더라도 잘 웃고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강동현은 있는지도 모르고 그냥 슥 지나가 버리는데 그는 항상 그러고 있었다.

그리고 길에다 세워 놓으면 종종 길을 물어보는 사람, 도를 아는 사람 등 강동현은 평생 한 명도 안 마주쳐 본 사람들이 달라붙어서 말을 걸었다. 전자에게는 친절하게 길을 가르쳐주고 후자는 처음에는 못 알아차리다가 곧 그런 종류의 사람들이라는 걸 알아차리고 난처해 하다가 한참 뒤에 겨우 풀려난다. 다른 사람들도 척 보기에 그가 착하고 순해(다른 말로 하면 호구 같고 만만해) 보이는 모양이었다.

강동현이 그를 괴롭히거나 놀리지 않을 때는 강동현에게도 배려하는 게 거의 기본 옵션으로 깔려있는 황경호였다.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말하는 단어의 선택이나 표현의 방식, 아예 말하는 주제 자체가 상대방에게 편하게 맞추어져 있었다. 강동현도 일찍 일을 시작하고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살았지만 그처럼 착하게(호구같이) 굴지 않고 살기 때문에 좀 늦게 깨달았다. 아마 그가 이런 식으로 계속 강동현을 경계하지 않았더라면 알아차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에 대해서 계속 생각을 해야 하다 보니까 깨달았다.

게다가 병원 안에서는 거의 인내심의 화신 급이다. 그 의사와 황경호를 가만히 보다 보면 절로 혀를 내두르게 되었다. 다른 간호사들은 가끔 너무 진상 환자가 오면 언성을 높일 때도 있고 인상을 찌푸리기라도 하는데 그 둘은 정말 끝까지 참는 게 보였다. 그리고 일이 다 끝나고 나면 그냥 서로 보고 웃는다. 게다가 그 의사야 어른이니 ‘그냥 저런 사람들이 있지….’ 이런 느낌으로 예의를 갖추되 멀찍이 대해서 잘 넘어가는 것 같은데 황경호는 진상을 부리는 환자 외에 다른 사람들까지 신경을 써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가 안 가게끔 행동했다. 그리고 거기에 자신은 포함되지 않는 것처럼 굴었다.

예전에도 그런 거 보면 답답해서 이쪽이 더 화가 날 정도였는데 이제는 저도 모르게 가서 말린다. 얼굴 팔릴까 봐 그 병원에서는 최대한 짜져 있는데도 도저히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거기서 그 병신들한테 맞고 있는데 그걸 어떻게 보고 있냐고….’

그가 정말 순하고 착한 건 맞는 것 같은데 그럴 때 보면 강박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저렇게 한다고 누가 상을 주는 것도 아닌데…. 그런 생각이 들면서 짜증이 마구 난다. 그래서 그가 잘못한 게 아닌데도 종종 그에게 그런 거 참지 말라느니, 그냥 피하라느니, 고발을 하라느니 훈수를 두게 된다. 처음엔 알겠다, 알겠다 하다가 강동현이 그런 그의 태도를 믿지 못하고 더 뭐라고 하면 막 짜증을 낸다. 아니, 그 정도만 다른 진상들에게 해도 될 텐데 말이다.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런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요새는 강동현이 평일에 손만 좀 잡으려고 해도 얼굴 가득히 실망, 난처, 불안을 품고 말없이 강동현을 쳐다보았다. 다른 사람은 아무리 병신이라도 거리낌이 없는 주제에 말이다.

게다가 그런 얼굴을 하면 이쪽은 더 어떻게 해버리고 싶단 말이다…. 그래서 같이 사는 건 오히려 강동현에게 욕구불만을 팽창시키게 했다. 같이 산다는 기대로 욕망은 팽창하는데 실제로 돌아오는 건 아주 쬐~끔. 그래서 주말만 손꼽아 기다려서 허겁지겁 달려들면 하게 해주기는 하는데 묘하게 빼는 느낌이다.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하니까 말이다. 그가 그런 느낌으로 자신을 대할 때는 꽤 조심해야 한다는 걸 알아서 그 전에는 참긴 했는데 저번 금요일은 그러지 못해서 솔직히 후환이 두렵기는 했다. 나간다고 하면 어떻게 잡아야 하나, 그런 생각을 미리 하고도 저질러버린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불쑥 기분이 좋다니…. 강동현은 그 생각만 해도 허리가 뻐근했다. 이래서 걔한테 영 미쳐있는 모양이었다. 왜 그런 건지 가늠도 못 하겠고 예상도 안 되고 이젠 그냥 좋다, 젠장.

‘이번에 가면 뭐 하지? 아…. 두 번밖에 못 한다고…. 젠장.’

그냥 하루 종일 껴안고 뒹굴고 싶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도 빼지 않고 안 나올 때까지 엄청 하고 싶다. 같이 밥 먹고 같이 씻고 얘기도 하고 영화도 보고 또 하고…. 그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도저히 못 하겠다 싶을 정도로 하고 싶다. 이쪽이 더는 안 나오겠다고 애원할 정도로 말이다.

그냥 껴안고 있고 또 입을 맞추고…. 서로 맞닿아 있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기분이 좋은데…. 그래서 함께 있고 싶은 건데. 분명히 걔도 그런 것 같은데 왜 계속 빼냐고…. 답답하다.

강동현은 대만에서 하루 더 있으면서 예능 프로그램을 하나 찍고 중국으로 넘어와서 한참 있다가 토요일 저녁이 되어서야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주차장에다가 발레파킹을 맡기고 얼른 집으로 올라오니 황경호가 저녁을 하고 있었는지 고소한 냄새가 났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니까 그가 알아서 부엌에서 나온다.

“어? 빨리 왔네.”

그가 강동현을 보고 그렇게 말했다. 예전처럼 그를 보면서 싫어하거나 아니면 아무 사이도 아닌 것처럼 웃는 얼굴이 아니라, 맨얼굴이었다. 맨얼굴…. 강동현은 안 그래도 급하게 올라와서 약간 열이 차 있었는데 뭐가 또 확 올라온다.

“일단 이리 와 봐.”

강동현은 그가 하고 있는 앞치마를 손으로 쥐어 끌어당겼다. 황경호가 갸웃하며 끌려오다 대경실색을 했다.

“뭐? 자, 잠깐만…!”

이럴 줄 알고 미리 계약서 같은 걸 적자고 한 걸까. 결국 못 참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를 덮치면서 강동현이 생각했다.

*

‘안 살아. 안 살아. 같이 안 살아. 못 살아!’

이럴 줄 알았다. 잘 안될 줄 알았다고. 계약서고 뭐고 아무 소용 없을 줄 알았다. 황경호는 출근을 해서도 미친 듯이 방을 찾아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토요일 저녁에 집에 온 강동현은 곧바로 3시간 동안 엄청나게 시간을 들여서 두 번을 하고는 같이 못 살겠다고 질질 우는 황경호를 살살 달래서 다 식은 저녁을 함께 먹고 같이 씻고 12시가 지나자마자 다시 3시간에 걸쳐서 두 번을 더 했다. 게다가 일요일 아침에는 결국 소원으로 한 번 더 하는 걸 질러서 아침에도 거하게 한 번 하고는 다시 비행기 타고 한국을 나갔다.

이 망할 변태 고자 새끼가 섹스를 하려고 비행기 값을 계속 날리고 있는 것이었다. 토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아침까지 그 망할 변태 고자 임포 새끼는 다섯 번만 했지만 황경호는 진짜 명이 깎일 정도로 기운을 쭉쭉 빨렸다. 황경호는 몇 번이나 했는지 정확하게 기억도 안 났다. 그 망할 변태 고자 임포 색마 새끼가 자기는 더 못 하는 게 그렇게 억울했는지 황경호를 엄청 만져댔다…. 최소 그의 두 배 이상은 한 것 같았다.

그렇게 하고 정신 차리고 거울을 보면 살이 쏙 빠져 있는 게 눈에 보였다. 비뇨기과 간호사로서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너무 사정을 많이 하는 건 남성 건강에 아주 안 좋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게 정액을 만드는 데는 신체의 많은 에너지와 자원이 쓰인다. 게다가 원래부터 황경호는 자위도 잘 하지 않는 사람이란 말이다. 잘 쓰지도 않던 걸 주에 한 번씩 오버워킹을 시키고 있으니 몸이 남아나겠는가. 명이 깎이는 게 실시간으로 보인다.

게다가 이번에는 말실수 안 하려고 엄청 조심했더니만 오히려 그가 박아대는 게 너무 힘들어서 죽는 줄 알았다. 정신도 바짝 차려야 하고 그가 박는 대로 사정을 안 하려고 있는 힘을 다해 참다 보니 자기가 커다란 남자의 대물에 엄청 박히고 있다는 자각이 아주 팍팍 들고….

간신히 저번처럼은 못 하게 했는데도 일요일 하루 종일 늘어져 있다가 일어나서 거울을 딱 보니 정말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결심했다. 나가야겠다.

겨우 한 달 정도 같이 살았다. 강동현은 거의 집에도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렇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애초에 잘 맞지도 않는 두 사람이 억지로 같이 살고 있는데 뭐가 제대로 될 리가 있겠는가.

“연휴 동안 오빠는 뭐 해?”

퇴근 시간이 되어 정기연이 물었다. 크리스마스부터 연말 연휴다. 원래는 이렇게 많이 쉬지 않았는데 올해는 이강유의 방송 출연과도 맞물려 굉장히 바빠져서 연말에서 연초에 걸쳐 2주나 휴식이 주어졌다.

“글쎄…. 집에 있을 것 같은데?”

옮길 집이나 알아보고…. 황경호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대답했다. 정기연이 잔을 들이키는 것 같은 제스처를 했다.

“술이나 먹자. 형세 오빠! 오빠도.”

“오케이.”

조한나도 동참했다. 비슷한 또래에다가 같은 직장에 다니니 휴일도 맞는다. 예전에는 묘하게 선을 두었던 황경호였으나 이젠 정말 친해졌다. 다들 우연히 애인들도 없겠다….

‘아니…. 난 있는 건가?’

이미 병원 내에선 황경호가 연애를 하고 있다고 소문이 파다하다고 들었다. 갑자기 얼굴이 달아오를 것 같다. 황경호는 얼른 병원에서 나왔다. 메신저 어플을 통해 정기연이 단체 채팅방에 메시지를 보내는 것을 보았다.

<우리 외국이나 가버릴까? 아직 표 있는 여행지도 있을 텐데. 그리고 우리 연휴 길어서 의외로 괜찮을지도?>

여행? 황경호는 한 번도 해외여행을 해본 적이 없었다. 직장도 있고 하니 굳이 못 갈 건 없었지만 또 굳이 갈 이유도 없어서 안 갔다.

<나쁘지 않은데? 난 좋아. 안 나간 지 너무 오래 됐어>

조한나가 그렇게 답했다. 고민을 하는 새에 김형세가 메시지를 보냈다.

<나 해외여행 한 번도 안 가봤다>

김형세가 그렇게 답해서 황경호도 용기를 내서 답을 보냈다.

<나도. 가보고 싶다>

그 사이 정기연이 뭔가 검색해보았는지 링크를 보낸다. 바다가 아름다운 해변이 배경 사진으로 되어 있었다. 휴양지로 이름이 있는 나라였다.

<콜?>

결국 한창 문자를 하다가 다 같이 연휴 중 가장 티켓값이 쌀 때를 잡아 일주일 동안 여행을 갔다 오기로 하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써야 하는 분야가 아닌 부분에 이런 거금의 충동적 소비를 한 것은 처음이었다. 2주의 연휴 중 연초를 포함한 후반기 일주일을 사이판으로 가기로 한 것이다. 지르고 나니까 실감이 난다.

‘비행기 값 봐….’

게다가 가서 일주일 동안 그래도 사람들이랑 수준 맞춰서 쓴다면 또 보증금에서 돈을 쓸 수밖에 없다. 황경호는 한숨을 푹푹 쉬며 집으로 돌아갔다. 요새 정말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내년부턴 정말 조심해야겠다.

지하철역으로 향하는 그 잠깐이 아주 추웠다. 오늘 비가 온다고 해서 공기가 더 차갑고 습했다. 황경호는 빠른 발걸음으로 많은 익명의 사람들과 함께 압구정로데오역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꽤 많았다. 예전과는 반대 방향으로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은 곧 한강의 위로 진입했다. 이미 해가 져서 깜깜했지만 강가를 따라 달리는 차들과 도시의 불빛이 아름답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서울숲 역에서 내렸다. 지상으로 올라오니 비가 오기 시작한다. 우산이 없었기 때문에 황경호는 화급히 발걸음을 옮겼다.

집에 도착하니 비는 꽤나 거세졌다. 이 집에 이사 오고 나서 비가 오는 것은 처음이었다. 거실의 커다란 창문으로 많은 양의 비가 쏟아지는 것을 바라보는 것은 장관이었다. 밤의 장막을 걸친 거대한 도시와 강이 빗방울로 흐렸다가 밝았다가. 창문을 때리는 물방울도 그리고 그 소리도 아름다웠다.

황경호는 집에 들어오고 나서 얼른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푹신한 1인용 소파에 앉아 가만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렇게 집 안에서 비가 오는 창밖을 감상할 수 있었던 적이 있었나? 그의 기억상으로는 한 번도 없었던 것 같다. 마음이 차분해지고 평온한 기분이었다. 그때처럼…. 그렇게 배가 고픈 줄도 모르고 가만히 눈으로 빗방울을 그려보았다.

식사도 가만히 예전에 그가 샀던 카우치와 테이블에서 먹고는 문득 맞은편에 있는 빈 소파를 바라보았다. 원래는 하나만 산 거였는데 강동현이 하나 더 사라고 해서 산 소파였다. 강동현이 혼자 앉아 있는 건 한 번도 못 봤다. 가끔 황경호가 창가에 앉아 책을 읽고 싶을 때면 괜히 앉아서 사람을 귀찮게 할 때나 앉았다. 그리고 그는 지금 없었다.

‘어차피 집에도 잘 안 들어오는데 그냥 있을까? 돈도 없고….’

황경호는 이틀도 채 지나지 않아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강동현은 아직도 영 모르겠는데 집은 너무 좋았다.

“집 너무 좋아….”

황경호는 쿠션을 껴안고 멍하니 창밖을 보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삼성동 집보다도 좋다. 여기는 정할 때부터 황경호의 취향으로 정했고 인테리어도 가구도 전부 그가 원하는 대로만 선택했다. 좋지 않을 리가 없었다. 질리지도 않을 것 같다. 황경호는 차를 한 잔 마시며 가만히 창밖을 보며 간혹 번개가 치고 천둥소리가 들려오면 신기해하면서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었다.

비는 삼 일 내내 왔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물 건너가 버렸다. 황경호는 딱히 그런 것에 흥미가 없었기 때문에 별생각이 없었다. 그나저나 여름에도 제대로 비가 안 오는데 이럴 때는 눈이 아니라 비가 오고…. 우리나라도 진짜 기후가 이상해졌다.

크리스마스 이브는 출근을 했고 크리스마스 이브 날엔 정기연과 김형세, 조한나랑 약속대로 밥을 먹고 술을 마시면서 여행 계획을 잔뜩 세웠다.

“난 액티비티 좋아하는데 한나도 잘하고…. 오빠들은 해본 적 있어? 고소공포증 있는 사람?”

“나야 웬만한 건 다 괜찮아.”

“아마 나도….”

황경호는 아예 그런 쪽이랑은 인연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술도 오랜만에 많이 마셔서 집에 들어와서는 바로 잠들었다. 그리고 일어났더니 강동현이 옆에 누워있었다.

“…….”

언제 온 거야…. 보통 때라면 누가 옆에 없다가 생겼으면 바로 깼을 것이다. 술을 마셔서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황경호도 새벽에 집에 왔으니 그는 그 이후에 들어온 것이다. 완전 곯아떨어져서 일어날 기미가 안 보였다. 시각을 확인하니, 벌써 열 시였다. 비가 아직도 오고 있어서 사위가 어둡고 습하다. 구름이 잔뜩 끼고 비가 오는 날 특유의 냄새가 난다.

황경호는 조심스럽게 허리에 올라온 그의 팔을 내리고 이불을 잘 덮어준 뒤 조용히 침대에서 내려왔다. 방을 나가고 문을 닫았다. 거실에 있는 욕실에서 씻고 술기운을 떨치기 위해 가볍게 음식을 해서 먹었다. 그리고 TV를 틀고 카우치에 앉았다. 뉴스를 잠깐 봤다가 다시 보기 기능을 이용해 예전에 강동현이 해외에 가서 찍은 예능을 하나 틀었다. 그때 촬영했던 장소의 바다가 정말 멋있었던 기억이 났다. 멋진 휴양지로 여행을 가기로 해서 그런지 새삼 생각이 났다.

근데 80인치가 넘는 엄청난 화소의 TV로 보니까 뭔가 본인이 앞에 있는 것보다 더 확 하고 다가왔다.

‘뭐야, 쟤…. 몸 왜 저렇게 좋아….’

유명한 장면이었던 그가 옷을 벗는 장면이 몇 번이고 리플레이되어서 나오니 이쪽이 괜히 얼굴이 붉어질 것 같았다. 많이 봤는데도 그렇다…. 이래서 미디어가 문제다. 황경호는 얼굴을 손으로 부채질을 하고 있다가 강동현이 하품을 하면서 방에서 나오자 그냥 바로 TV 채널을 돌려버렸다.

“어, 언제 왔어?”

황경호가 먼저 물었다. 강동현은 영 잠이 부족한지 인상을 찌푸리곤 대답했다.

“6시쯤….”

그리고 부엌으로 가서 일단 물을 한 잔 마셨다. 그 후 곧바로 카우치로 와서 황경호에게 집적거리려고 하자 황경호가 단호하게 말했다.

“씻고 와.”

“알았어….”

그러자 그가 얌전히 욕실로 간다. 왠지 이제 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것도 같고…. 황경호는 그가 씻을 동안에 간단하게라도 음식을 만들었다. 강동현이 씻고 좀 사람다운 몰골로 나오자 그를 불렀다.

“밥 먹어.”

“어, 땡큐.”

여자 연예인들보다야 덜하다고는 하지만 그가 일을 하는 강도를 보면 한창때의 아이돌보다도 더 먹여야 할 것 같다. 황경호는 올리브유에 대파를 볶고 거기에 게살, 새우, 버섯을 볶은 후 으깬 두부를 볶았다. 단맛은 코코넛슈가로, 간은 일본간장으로 냈다. 밥 위에다가 예쁘게 올리고 그 위에 깻잎을 잘라서 뿌렸다. 강동현은 자리에 앉아서 밥을 한술 뜨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너 이제 진짜 요리 잘한다.”

“이것도 형한테 배운 거.”

황경호가 대답했다. 황경호의 주위에는 대식가들이 꽤 있었는데 강동현도 그중에 하나였다. 황경호는 굳이 따지자면 소식을 하는 편이어서 그런 사람들이 신기했다. 소식을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라 그것 이상 못 먹겠어서 그런 것이었다. 자신이 한 음식을 잘 먹는 걸 보니 괜히 뿌듯하다. 이래서 엄마들이 먹는 것만 봐도 배부르다고 하는 모양이다.

“형은 금방 하던데 나는 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것 같아. 퍽퍽하진 않아?”

“아니. 딱 좋아. 맛있어.”

“형은 두부 물기 엄청 빼고 하던데 난 좀 촉촉한 게 좋아서. 간은 맞아? 안 싱거워?”

“맛있어.”

속이 불편할 것 같은 음식도 아니고 안에 들어간 것도 꽤 정성이 보인다. 강동현은 괜히 황경호를 물끄러미 보았다.

‘이러면서 나 좋아하는 건 아니라고…. 그럼 다른 사람들한테도 다 이렇게 해줄 거라는 말이냐고.’

그런데 또 그럴 것도 같다…. 황경호가 약간 신이 나서 열심히 음식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었다.

“형이 추천해줘서 일본 간장 썼는데 우리나라 간장이랑은 다르게 안 짜고 되게 맛있다? 간장이 맛있어. 그래서 좀 비쌌는데 그냥 샀어. 그리고 여기 마트 깻잎 한 봉지에 3천 원이나 한다? 혹시 다 못 먹고 버릴까 봐 무서워.”

예전에는 그냥 편의점 과자에다가 소주를 먹던 애였는데. 이제 요리하는 거 정말 좋아하는 모양이었다. 맛있다고 몇 마디 해줬다고 되게 뿌듯해한다…. 귀엽게시리. 그가 좋아하는 걸 보니 강동현도 좋았다. 강동현은 얼른 남은 음식을 다 먹고 물로 입을 헹구었다. 그리고 그를 바로 끌어안아서 무릎에다가 앉혔다. 그리고 그가 놀라서 소리도 못 내는 틈에 얼른 입을 맞추었다. 그리고 입술을 쪽 떼고 말했다.

“너랑 같이 살기 진짜 잘한 거 같다. 너 요리도 잘하고.”

음식이 맛있다는 말을 좋아했으니 이 말도 좋아할 줄 알았는데 황경호는 상당히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어서겠지.”

강동현이 어이가 없어서 웃었다.

“뭔 소리야. 못 하게 하면서.”

“뭘 못 하게 해. 주말마다 꼬박꼬박 다 하면서.”

“난 항상 하고 싶어.”

그러니까 황경호가 확 얼굴을 붉히면서 입을 다물었다. 얘는 이렇게 얼굴에 뭐가 막 티가 나면서 어떻게 예전에는 그렇게 표정을 잘 숨겼을까. 강동현은 진짜 신기해서 그의 얼굴을 만졌다.

“너 말이야. 나랑 하는 거 기분 좋다면서 왜 이렇게 짜게 구는 거야? 진짜 두 번은 너무하다고 생각합니다.”

“…!”

더 빨개진다. 황경호는 입을 뻐끔뻐끔거렸다. 강동현은 그런 그의 입술을 괜히 만지며 장난을 쳤다. 황경호는 그의 손가락을 잡으면서 버럭 성질을 냈다.

“아니…! 내가 언제…! 난…!”

“또 거짓말하는 거 봐라…. 내가 다 들었거든?”

“네가 잘못 들은 거겠지.”

그리고는 황경호는 주제를 틀었다.

“두 번이 한계야. 더는 절대 안 해. 너 두 번 하는 데 세 시간이나 걸리는데 나보고 죽으라고?”

황경호가 강동현을 노려보았다. 강동현이 변명했다.

“야, 그건 네가 못 하게 하니까 내가 참아서 그런 거 아냐.”

“지루 주제에 참긴 뭘 참아? 더 심해지고 싶어? 너 진짜 나을 생각 없는 거야?”

“야! 나 진짜 병원 열심히 다니고 있거든? 술도 끊었거든?”

아무리 강동현이 2년이 넘게 비뇨기과를 다니고 있고 황경호가 거기 담당 간호사라서 그의 흠(?)에 대해서 속속들이 알고 있다지만, 그래도 민감한 부분이었다. 강동현이 발끈하자 황경호가 흥, 하고 쐐기를 박았다.

“불감증에 지루에 고자 주제에.”

“그만해….”

“2년이나 다녀도 소용없고.”

“…….”

열 받는다…. 결국 말싸움에서 밀린 강동현은 그냥 황경호의 옆구리를 확 잡았다. 불의의 습격에 대비할 새가 없었던 황경호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앙…!”

황경호가 자기 입을 두 손으로 확 막고 얼굴을 또 벌겋게 붉혔다. 강동현이 기분 나쁘게 웃으며 그를 놀렸다.

“흐응. 너 말이야. 진짜 왜 이래? 응? 너 뭐 먹길래 이렇게 민감해?”

강동현이 검지로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신음 소리도 엄청 야하게 내고…. 어디서 배웠어? 응?”

황경호는 얼굴이 빨간 채로 강동현을 퍽 치며 노려보았다. 강동현은 킥킥 웃으면서 그를 끌어안고 그의 손을 치웠다. 그리고 쪽 하고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뭔가 실감이 확 난다.

‘아, 난 얘 없으면 못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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