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Love와 Sex 사이 (2)
황경호는 당연히 강동현의 집에 가지 않았다. 그가 미쳤다고 그 집에 가겠는가. 이제 강동현의 앞에 서거나 그날 밤이 생각난다고 부끄러워서 죽을 것같이 되지 않았다. 놀랍게도 이제 그 생각을 하면 억울하고 화가 났다. 그날 아침에 한 고백도 마찬가지였다.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다. 심지어 생각이 나지 않을 때도 항상 화에 차 있었다. 울분이 해소되지 않고 끊임없이 부풀어 오르기만 했다.
믿을 수가 없었다. 차라리 술을 먹고 고백하던 그는 정말 ‘진짜’인 것처럼 말했었다. 하지만 그날 아침의 그는 건조하기 짝이 없었다. 똑같이 열정적으로 고백했더라도 믿기 힘들었을 텐데 그건 진짜… 좋아한다는, 고작 그 한 마디에 홀딱 넘어간 헤픈 놈이 된 것 같아서 기분이 바닥까지 떨어지고 반대급부로 화는 엄청나게 났다.
게다가 사람을 오라 가라… 아무리 연애경험이 없는 황경호라도 병신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수없이 병신 짓을 했더라도 말이다. 강동현의 태도에는 여전히 황경호에 대한 배려가 없었다. 이해도 없었다. 그저 그가 하고 싶은 것만 할 뿐이었다. 황경호의 말을 들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좀 더 예전과 똑같다.
사랑? 그래, 그런 거 전혀 모른다. 하는 것도 받는 것도. 하지만 전에도 말했듯, 자기가 사랑한다는 사실에 도취된 놈이나 섹스를 위해서만 연애하는 놈들이 수두룩하다는 건 알고 있었다. 섹스를 위해 연애하는 놈도 분명히 하게 해주는 여자를 좋아할 것이다. 할 수 있으니까 좋아하는 것이다. 강동현은 누가 봐도 백 퍼센트 후자였다.
그가 황경호의 몸에 관심이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었다. 그가 황경호와 하는 섹스를 좋아한다고 해서 황경호를 좋다고 말하는 거라면, 설사 정말로 좋아하게 되었더라도… 그래서 뭐? 화가 날 뿐이다. 이유? 모른다.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그냥 화가 났다. 화가 난다.
‘내가 병신이다, 진짜… 술 취한 놈을 뭐하러 상대해서… 거기서 뭔 말을 하고 있든지 그냥 내버려 뒀어야 했는데… 왜 거기서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날 밤의 일을 점점 갈수록 더욱 진지하게 후회하게 되었다. 술에 취해서 멋대로 하는 말을 믿어서… 그리고 그의 섹스어필에 넘어가서 그가 원하는 대로 홀랑 하고는 다음 날 전날 일을 전부 까먹은 그와 마주 했어야 했다. 차라리 기억하지 못하는 게 다행이라며 스스로를 설득시키며, 바보 같이 화도 한 번 내지 못했다. 강동현은 그런 병신 같은 황경호를 놀리듯 추궁하고 다그치며, 통보를 하는 듯한 고백….
[나 너 좋아해.]
황경호는 다시금 강동현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울컥하고 화가 났다.
‘정말 그걸로 뭐가 다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자기 생각대로? 아무리 날 병신처럼 생각한다지만….’
너무 화가 날 땐 눈물까지 나올 것만 같았다. 진짜 그가 너무 싫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믿을 수도 없다.
그리고 강동현은 사흘 정도 퇴근 시간쯤에 항상 병원으로 왔지만, 사람들이 퇴근하자마자 얼른 자동문을 잠가버리고 밖에서 유리문을 노크하는 소리가 들리면 그냥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듣거나 동영상을 보았다. 다행히도 바쁜지 병원의 진료 시간에는 오지 않았다. 황경호는 원룸을 찾아볼 수 있는 어플을 가지고 열심히 조건이 맞는 방을 구하고 있었다.
‘아…역시 없다….’
황경호도 이제 간호사 생활이 3년 차였고 비뇨기과의 특성과 관대한 이강유 덕분에 같은 연차의 다른 개인병원 간호사보다는 확실히 월급을 더 받았지만, 세후 300이 되지 않았다. 원래 씀씀이가 그렇게 크지 않아서 김태형네 가게를 알기 전까지만 해도 외식도 잘 하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월세까지 합쳐서 월에 생활비가 100만 원이 되지 않아 저금도 꽤 많이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초록이를 알게 되고 수술비에 조금 보태고 사람들과 어울리고 요리 등 취미 생활을 하며 생활비가 200만 원이 넘어가게 되어 저금액수가 확 줄어들었다. 그러다가 중간에 예정에 없던 이사를 하고 일을 쉬게 되면서 저금이 바닥났다. 이제 여유자금은 200도 채 되지 않았고 보증금 500과 합쳐서 30만 원 대의 그 정도 원룸을 찾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적은 평수나 낡은 곳에서는 살고 싶지 않았다. 주거 환경이 안 좋으면 우울증이 없을 때도 좀 우울했다. 황경호는 그런 요소들을 요새 아주 민감하게 피하고 있었다.
‘돈을 좀 모을 때까지 몰래 병원에서 지낼까? 짐은 잠깐 어디 맡겨두든가 하고….’
황경호는 한숨을 푹 쉬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차라리 간호사실이 넓다. 들킬까 봐 무서워서 입원실까지는 못 쓰겠지만 말이다. 간단하게 세안 정도는 할 수 있고. 싱크대랑 냉장고도 있고. 일단 나흘 내로 짐을 정리해야 했다. 가구가 다 딸린 방이라서 옷과 침구, 그릇, 책, 전자기기 등을 챙기면… 아, 근데 그 집에 가야 한다니. 황경호는 한숨을 푹푹 쉬었다. 주말 새벽쯤에 가서 얼른 정리를 해야겠다. 박스는 다섯 개 정도면 되려나. 일단 챙겨서 짐을 맡겨두는 곳에다 갖다 두자. 그리고 딱 두 달만 긴축해서 보증금을 천만 원 만들어서 들어가자. 집 계속 옮기는 것도 돈이니까… 돈이 만들어질 때까지 기다리자.
대출을 하거나 돈을 누구한테 빌려볼까도 싶었지만 감당을 못 하겠어서 그만두었다. 지인에게 돈을 빌리는 것도 그렇고 말이다. 부담스럽고 미안하다. 요즘 같은 경기에는 다들 힘드니까.
‘두 달 정도야.’
그래서 황경호는 이틀 뒤 일요일 새벽에 몰래 박스를 들고 가서 짐을 챙긴 후 그것을 전부 택배로 짐을 맡아주는 서비스를 하는 업체에다가 맡겼다. 노트북과 여벌 옷 몇 개만 꺼내서 따로 챙겼다. 월요일이 되니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었다. 중간에 계약을 그만둔 것이라 수수료 때문에 월세는 거의 돌려받지 못했다.
“네. 내일 봬요.”
“그래. 내일 보자, 경호야.”
마지막으로 퇴근하는 이강유를 배웅했다. 사실 황경호가 다른 간호사들보다 좀 더 일을 많이 하는 편이라 저번에 월급을 인상할 때 이강유가 월급을 같은 연차들보다 조금 더 주어서 더 달라고 할 수도 없다… 황경호는 한숨을 쉬며 돌아서는데 뒤에서 이강유의 목소리가 들렸다.
“도은혁 환자님? 이 시간에 무슨 일로… 진료시간 끝났는데요?”
이강유가 잡은 엘리베이터에 강동현이 타고 있었다. 황경호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아, 황경호 간호사 좀 만나러요.”
“아, 네… 경호야, 도은혁 환자님 오셨다.”
“아, 네…!”
이강유는 강동현한테 짧게 인사말을 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황경호가 자동문을 잠그기도 전에 그가 안으로 들어왔다. 이러려고 일찍 온 모양이었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리고 본론부터 말했다.
“너 아직도 여기서 지내고 있지? 집은 구했어?”
“아… 남 일에 신경 쓰지 말고 좀 가세요….”
황경호는 짜증스러운 한숨을 푹 쉬었다. 강동현은 못마땅하다는 얼굴로 황경호를 보았다.
“그래. 알겠으니까 집은 구했냐고.”
알겠긴 뭘 알겠다는 것인가. 황경호가 한숨을 쉬었다.
“네. 네. 구했으니까 좀 가세요.”
“안 구한 거지? 뭐 하는 거야. 구할 거면 빨리 구해야 할 거 아냐. 짐 내일까지 옮겨야 하는 거 아냐?”
“짐 뺐고 집 구했어요. 그러니까 가세요.”
“어딘데.”
“아… 그냥… 거기 근처에요. 아! 그냥 가라고!”
황경호가 짜증을 냈다. 강동현은 간호사실 쪽으로 발을 옮겼다. 황경호가 그의 팔을 잡았다.
“여기가 니 집이야? 왜 이렇게 마음대로…!”
강동현은 황경호를 질질 매달고 간호실로 가서 문을 열었다. 금방 이강유가 나가서 아직 본격적으로 잘 준비 같은 건 하지 않은 것 같았다.
“아! 나가라고!”
황경호가 그의 등을 퍽퍽 쳤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락커를 발견하고 문을 열었다. 잠금이 열려 있었다. 여니 역시나, 침낭이나 생활용품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황경호는 울그락불그락 한 얼굴로 강동현을 노려보았다.
“너 뭔데 이렇게 니 맘대론데!!”
“걱정돼서 이러는 거잖아. 왜 집은 계속 안 구하고 여기 있는 건데?”
황경호는 얼굴을 확 붉혔다. 돈이 없어서 이러고 있다고는 죽어도 말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미 황경호는 그에게 이런 질문을 들은 것만으로도 벌써 자존심이 왕창 상했다.
“아직도 부끄러워서 이러는 거야? 그래도 당장 내일이면 짐 빼야 하는데 이러고 있으면 어떡해.”
“…….”
이미 짐을 뺐지만 일일이 설명하려면 결국 돈 때문에 여기 있다는 말을 할 수밖에 없다. 황경호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너무 답답해서 신음을 냈다.
“나한테 상관 좀 하지 마…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해. 그리고 이제 오지 말라고. 너 정말 꼴도 보기 싫어.”
“또 왜 그래….”
“뭐가… 너 내가 보러 오지 말라고 하면 안 온다며. 오지 말라고. 오지 말라니까.”
“…….”
“봐. 니가 나한테 한 말 중에 진짜가 뭐가 있어?”
황경호는 순간 표정이 무너질 것만 같아 그냥 고개를 숙이고 한 손으로 얼굴을 반쯤 가렸다.
“그냥… 됐으니까. 이제 진짜 그만하고 좀 가라… 피곤해. 그리고 제발 이렇게 찾아오지 마.”
강동현도 한숨을 쉬었다.
“내가 좋아한다고 한 게 그렇게 화가 나는 일이야? 너 내가 기억도 못 할 땐 화 안 냈잖아. 부끄러워하기만 하고.”
강동현이 그렇게 직구를 던졌다. 황경호는 울컥해서 그를 노려보았다. 그날 아침에 강동현의 통보 같은 고백 이후에 잠자코 집으로 들어오라는 말에 정말 설명할 수 없는 무력감이 들고 화가 났다. 황경호를 그를 밀치고 노려보고는 그냥 건물을 나가버렸다. 황경호는 이번에도 그를 노려보았다.
“니가 좋아한다고 하면 내가 넙쭉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해야 해? 니가 잘난 놈이니까? 나 너 싫어. 싫다고.”
“그럼 그날은 왜 하게 해줬는데.”
강동현이 꿈쩍도 하지 않고 그렇게 되물었다. 황경호는 반박을 하려다가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이런 게 뭐가 좋아하는 거야…….’
추궁하고, 다그치고, 마음대로 하려고 좋아한다고 쉽게 입에 담는다. 저런 추궁을 들으니 그날 밤이 수치스럽게만 느껴졌다. 그때 왜 그랬을까. 이런 놈이라는 거 몰랐던 것도 아닌데. 그냥 쉽게 그에게 몸을 대주었던 때보다도 훨씬 더 창피하고 후회가 되었다. 그때 정말 그러는 게 아니었는데.
“그냥… 하고 싶은 거면…. 그냥….”
황경호는 어렵사리 중얼거리다가 다물었다. 이제는 못한다… 못할 것 같다. 무섭다. 이제 그의 입을 다물게 할 수도 없고 몸으로 때울 수도 없다. 무력하다.
“뭐라고?”
“…….”
그냥 사라지고 싶었다. 창피했다… 수치스럽다. 죽고 싶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아무 말도 하기 싫었다. 어차피 들어 주지도 않을 것이다. 또 그 거지 같은 기분이 몰려왔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새벽에 잠에서 깨면 느끼는 그 허무함… 무력감…. 황경호는 깊게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달래기 위해 노력했다. 일단 강동현한테서 시선을 떼고 소파에 털썩 앉았다. 두 손을 합장하고 입가를 감싸 눈을 감았다. 고개를 숙였다.
“왜 그래?”
강동현이 다가와서 어깨를 잡고 그의 얼굴을 보려고 하자 황경호가 질색한 얼굴로 그의 손을 세게 쳐냈다.
“만지지 마!”
“…….”
그리고 황경호는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다 감쌌다. 씩씩거리는 숨을 가라앉히기 위해 몇 번이나 심호흡을 해야 했다. 황경호의 온몸이 순식간에 빨개졌다. 부끄럽고 창피하고 수치스러워서 그랬다. 열이 얼굴로 모이니 눈물이 터질 것만 같았다. 필사적으로 참았다. 황경호는 한참을 그러고 나서야 겨우 얼굴색이 돌아왔다. 그는 그제야 깊게 한숨을 쉬고 입을 열었다.
“제발… 그냥 가면 안 돼…? 제발… 부탁할게….”
결국 할 수 있는 건 애원 정도… 황경호는 하… 하고 길게 숨을 내뱉었다. 이런 게 애정을 받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겨우 애원밖에 못 하는 그런 존재… 들어주면 다행이고 들어주지 않으면 역시… 라고 체념해야 하는 그런 거….
‘애정이 아니라서 그런 거지… 다른 사람한테는 이렇게 안 하는 것도 알고….’
황경호는 그가 고작 그 정도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걸 보고 사실대로 말한 자신의 어리석음에 헛웃음이 나왔다. 쥐가 고양이 생각해준 꼴이다. 아니, 애초에 그런 밤을 보낸 것부터…… 다시 창피해서 얼굴이 붉어졌다. 몸이 떨린다. 진짜 한계다.
“그러니까… 제발 좀 가줘… 나 너무 힘들어….”
황경호는 마지막으로 애원했다. 하지만 강동현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안 가.”
강동현은 한숨을 섞은 말투로, 하지만 여지없는 태도로 말했다. 강동현의 말에 황경호가 움찔했다가 결국 후두둑 눈물을 떨어뜨렸다.
“아….”
“왜 또 울어….”
강동현이 한숨을 쉬며 황경호의 앞에 있는 테이블 위에 앉았다. 그리고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말을 해. 화를 내든가. 때리든가. 참지 말고… 나 니가 말 안 해주면 잘 모르는 거 알잖아.”
강동현이 얼굴을 만지려고 하자 또 겁먹은 얼굴로 확 쳐냈다. 얼굴이고 눈이고 새빨개져서 눈물을 참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강동현은 그가 자신의 손을 계속 쳐내든 말든 그냥 황경호의 손을 덥썩 잡고 얼굴도 그냥 잡아서 끌어당기고 눈을 마주쳤다.
“그냥 울어. 뭘 또 참아.”
“으흑….”
그의 무심한 말투가 마지막 트리거가 되었다. 황경호는 입술을 꾹 깨물고는 시선을 내렸다. 눈물이 다시 후두둑 다시 흘렀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손과 천천히 깍지를 꼈다. 황경호가 다른 손으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눈물을 흘리니 그의 손등에 입을 맞추며 천천히 끌어안았다. 황경호는 확 하고 정신을 차리고 그를 밀어내려고 했지만 이미 안겨 있었다. 강동현은 소파로 자리를 옮겨 그를 좀 더 꽉 끌어안았다. 황경호는 몸부림을 치다가 결국 체념하듯이 포기했다. 지금 내부에서 올라오는 것도 감당이 되지 않았다. 강동현은 자신의 목덜미에 뜨끈한 이마를 대고 서럽게 눈물만 흘리는 황경호에게 숨을 섞은 말투로 조용히 말했다.
“말해.”
“…….”
“나한테 뭐가 그렇게 섭섭한데? 뭐가 불만이야? 내가 어떻게 해줬으면 좋겠는데?”
황경호가 깍지를 낀 손을 빼려고 하자 더 꽉 잡았다.
“그냥 말해… 나 좀 이해시켜줘. 내가 왜 싫은데? 나 진짜 너한테 잘해줄 수 있는데.”
황경호가 움찔해서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가만히 자기와 눈을 마주치는 강동현을 엉망인 얼굴로 노려보았다.
“이게 뭐가 잘하는 건데… 넌 그냥 니 멋대로 하려는 것뿐이잖아.”
황경호는 계속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는 게 쪽팔려 죽을 것 같았다. 그런데 화가 더 난다. 황경호는 울음이 터져 나와서 갈라지는 목소리로 따졌다.
강동현은 정말 뻔뻔하게 항상 물어왔다. 너무나 당연한 걸 외면하는 것처럼만 보여서 오히려 약 오르는 기분이 들 정도로 말이다. 황경호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는데도 울컥해서 그를 노려보았다.
“그날 너랑 한 거 내 인생에서 제일 후회되는 일인데… 니가 그렇게 물어보면… 너무 창피해서… 죽고 싶어….”
황경호는 한 손으로 두 눈을 감싸 가렸다. 얼굴이 벌건 채 눈물이 또 주르륵 흘렀다.
“내가 너무 병신 같아…….”
“미안… 잘못했어. 난 그냥… 그래. 필름 끊긴 내가 할 말은 아니지. 미안하다.”
강동현이 잘못했다고 사과를 했다. 뭐라고 또 하려고 했던 것 같았지만 담담히 인정을 한다. 그의 그런 태도는 황경호의 기분을 더 고조시켰다. 이 괴리감. 언제나 그는 괜찮았다. 황경호만이 괜찮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상황은 항상 황경호에게 자신이 무언가 잘못한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을 계속하게 만들었다.
“으흑….”
“그리고 또?”
강동현은 황경호의 얼굴을 가린 손을 치우며 그의 얼굴을 보았다. 빨갛고 눈물로 엉망인 얼굴이었다.
“그리고 또 뭐 있어? 말해.”
황경호는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말했다.
“내가 싫다고 하면 좀… 안 하면 안 돼? 꼭 그렇게 억지로 쳐들어오고 싫다는데 내 사물함까지 멋대로 열어보고 해야 해?”
강동현이 한숨을 푹 쉬었다.
“니가 뻔히 거짓말하고 있는데 어떡해.”
“내가 거짓말을 하든 말든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내가 싫다고 했잖아!”
“너 여기 있는 거 싫어.”
이 부분은 양보하지 않겠다, 이런 태도라 황경호는 더 화가 났다. 지가 뭔데….
“니가 싫은 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내가 있겠다는데.”
강동현이 인상을 확 찌푸렸다.
“그래… 멋대로 여기까지 들어온 건 미안한데. 그래도 여기서 지내지 마. 도대체 왜 그러는데? 짐도 빼려면 미리 정리도 해야 하는데 내일 퇴근하고 다 할 수 있어? 아직도 부끄러워서 집에 못 가는 거야? 그래도 할 건 해야지.”
그러자 황경호가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그를 노려보았다. 그리곤 확 표정이 무너져서는 더 빨개졌다.
“왜….”
강동현은 그런 그의 얼굴에 짜증이 사라져 그냥 부드럽게 되물었다. 황경호는 눈물이 이제 좀 그쳐 얼굴에서 눈물기를 손으로 슥슥 닦아냈다. 얼굴은 홍당무처럼 빨갰다. 그는 시선을 피하고 체념조로 작게 말했다.
“짐은 일요일날 뺐어….”
“진짜? 근데 왜 여기 있어?”
“그냥 사정이 좀 있어서….”
황경호는 시선을 피했다. 강동현은 바로 뭐라고 하려고 하다가 약간 생각을 하더니 대꾸했다.
“무슨 사정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거면 그냥 받으면 안 돼? 차라리 우리 집에 들어오든가. 내가 나갈 테니까. 전에도 그렇게 했잖아. 내가 없으면 껄끄러울 건 없잖아. 안 그래?”
황경호는 예상치 못한 답인지 약간 주저하더니 되물었다.
“……넌?”
“나야 뭐. 지낼 데야 많지. 부모님 집…이 아니라, 친구 집도 있고.”
발기부전 선언 이후로 집은 다 간 상태였으므로 웬만하면 집에 갈 생각은 없는 강동현이었다.
“…….”
“…….”
잠깐 말없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한쪽 손을 깍지 껴 잡은 채 소파의 등에 팔꿈치를 대고 머리를 주먹으로 가볍게 괸 자세로 황경호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황경호는 좀 괜찮아졌다가 또 얼굴이 펑 터질 것 같이 빨개졌다.
“왜 또?”
“…쪽팔려….”
“뭐가?”
“나만 항상….”
황경호는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신음을 삼켰다. 강동현은 씨익 웃었다.
“너 평소에 너무 참아서 한 번씩 터지는 거잖아. 난 이제 좀 적응했어. 어떻게 해야 할 지도 좀 알 것 같고.”
“…….”
황경호는 그런 강동현의 얼굴을 보았다가 슬 강동현이 잡고 있는 손을 떼어냈다. 황경호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왜? 또 뭐 더 남았어? 얘기해.”
강동현이 그렇게 말했다. 그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초지일관 멀쩡했다. 짜증도 내기도 하고 화를 참기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그 자신을 잃지 않았다. 아니, 잃을 일도 없었다.
황경호가 울고불고 난리를 치며 일방적으로 화를 내는 게 아니라 그래도 이 정도로 솔직한 대화를 조용히 나눈 것은 아마 이번이 처음일 것이다. 황경호는 약간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난… 니가 나 왜 좋다고 하는지도 모르겠고… 아니, 그냥 그 말만 들으면 나쁜 생각만 들어. 또 그냥 어떻게 해보려는 생각이겠지… 그런 생각만 들어. 이게 내 피해의식일 뿐이야?”
황경호가 그렇게 말하자 미소를 띠고 있던 강동현의 표정이 확 굳었다.
“…….”
“솔직히 지금 이러는 것도 좀 그런 생각 들기도 하고….”
“…….”
“그렇게 당하고도 내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 건가… 이런 생각도 들고….”
“…….”
“바보 같고….”
“…….”
“아마 그래서 너도 나 쉽다고 생각하는 거겠지….”
“…….”
“그래서 아까처럼 니가 그렇게 막무가내로 굴면 그냥 무섭고… 화가 나. 그리고 부끄러워… 난 왜 아직도 너한테 질질 끌려다니고 있을까…… 병신같이….”
“…….”
“혹시… 그냥 마음 편하게 하고 싶어서 그런 거면… 이젠 정말 안 그래 줬으면 좋겠는데…….”
황경호는 시선을 돌리며 말미를 흐렸다. 강동현이 뭐라고 대꾸를 하려고 할 때 황경호가 마저 말을 이었다.
“그래도 넌… 그냥 니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겠지…….”
“…….”
“…….”
그렇게 둘 사이로 침묵이 흘렀다. 강동현은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고 약간 인상을 쓰더니 목을 가다듬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면 넌?”
황경호가 강동현을 돌아보았다.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태가 나는 남자였다. 잘생긴 얼굴에 약간 초조한 느낌의 표정으로 황경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넌 나 어떻게 하고 싶은데.”
“…….”
“정말로 보기 싫은 게 다야?”
황경호는 뭐라고 입을 뻐끔했다가 얼굴을 좀 붉혔다. 그리곤 다시 고개를 돌렸다.
“…니 그런 점이 싫어.”
“그런 점이 뭔데.”
자기가 잘났다는 걸 너무나 잘 안다는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자신이 있었다. 그런 면이 상대를 무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황경호는 다시 조금 화가 날 것 같았지만 억눌렀다. 또 정신 나간 사람처럼 굴고 싶지 않았다. 강동현이 다시 황경호의 손을 잡았다. 황경호는 흠칫 놀라서 그를 다시 돌아보았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눈을 똑바로 직시하면서 천천히 그의 손바닥에 입술을 눌렀다. 그러면서 느릿한 어조로 말했다.
“너도 나 가지고 싶잖아.”
바라보는 눈빛과, 그의 말에 심장이 멈출 듯이 강하게 한 번 뛰고는 꽉 죄였다. 황경호는 온몸이 다시 확 붉어졌다.
“아니…! 뭐… 무슨….”
강동현은 자기가 어떻게 해야 매력적으로 보이는지 정말 잘 아는 남자였다. 게다가 섹스어필에도 강하다. 그리고 황경호는 그런데 전~혀 면역이 없었다. 마치 강동현이 처음 자위를 하는 걸 보여줬을 때 같았다. 겨우, 겨우 눈을 뗐다. 그리고 그런 자신이 바보스럽게 느껴져서 약간 더 화가 났다.
“아니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자신 없는 어조로 그렇게 말하는 황경호를 보며 강동현이 픽 웃었다.
“나랑 자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을 거 같아? 넌 상상도 못 할 걸.”
“그만해.”
“너도 나랑 하고 싶잖아.”
그 말에 황경호가 얼굴을 확 붉히며 그를 노려보았다.
“너랑 절대 안 해.”
강동현이 한숨을 쉬면서 황경호의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상대의 태도가 다시 좀 딱딱해지고 방어적이 된 게 느껴졌다. 그는 다른 손으로 자신의 이마를 감싸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이 되었다.
“…좋아한다는 거 거짓말 아니야.”
과거의 일은 고칠 수 없다. 이미 일어난 것이고 거기에 대해 그가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을 어떻게 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예전에 황경호의 집 앞에서 그가 울고불고 때리며 강동현이 과거에 했던 일에 대해 원망하고 화를 낼 때는 도리어 자신이 잘못했던 것을 부정하며 상대를 설득하려고 했지만… 그런 건 어차피 기만이다. 그리고 그런 점은 그걸 말하는 강동현보다 황경호가 더 예민하게 알아차렸다. 강동현의 의도와 상관없이, 강동현이 정말로 잘못한 게 없다고 스스로 믿더라도 말이다.
강동현은 시선을 황경호의 손으로 돌리며 한숨을 쉬었다.
“솔직히… 전에 연애했던 거랑 너무 달라서 나도 혼란스러웠어. 너랑은 항상 싸우고 화내고 부딪치기만 하고… 말도 잘 안 통하고.”
“…….”
“그래도 계속 보고 싶어. 그러니까 좋아하는 거 맞아. 아니면 내가 미쳤다고 지금 이러고 있겠냐.”
강동현이 다시 황경호의 얼굴을 보았다. 그러자 그의 얼굴을 보고 있던 황경호가 눈을 다시 피했다.
“…그냥… 하고 싶은 거잖… 아니, 그냥 하고 싶은 건….”
황경호는 말하기 싫은 걸 억지로 말하는 것처럼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미를 바꾸며 최대한 공격적이지 않게 질문하려고 했다가 그냥 포기하고 입을 다물었다. 강동현은 인상을 쓰며 황경호의 얼굴을 보았다.
“니가 싫으면 안 한다고 하잖아.”
“…….”
“물론… 내가 가끔씩 생각 없이 만지는 건 있는데… 그 정도는 좀 봐줘. 술도 끊을 거고. 다시는 공항 때처럼 끌고 가는 일 없을 테니까.”
강동현이 다소 짜증스러운 감이 있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오늘도 싫어하는 걸 억지로 만지고 끌어안고 지금도 손을 잡고 있었다. 강동현은 그의 손을 더 꽉 잡았다.
“손 정도 잡는다고 안 죽어.”
“…….”
역시 뻔뻔하다… 제멋대로다. 황경호는 깊게 숨을 내뱉었다. 그래도 아까처럼 화가 나거나 하진 않았다… 황경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만히 테이블 표면만 보면서 있자 강동현이 그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그의 얼굴을 자신의 쪽으로 향하게 했다. 움찔한다.
얼굴은 울고불고 해서 피부가 빨갛게 부어 있었다. 그가 예민한 건 진짜 타고난 체질인 것 같다. 성격만 그런 게 아니라 몸이든 어디든 다 그랬다. 얼굴 좀 입으로 빨았다고 몇 주나 멍이 가고… 그러면서 안 그런 척하는 게 문제다. 그리고 그걸 엄청 잘했다. 그러니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살지만, 사람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고 혼자 있는 걸 좋아했다.
‘성가셔….’
강동현은 또 그렇게 생각했다. 역시 이해가 안 되는 구석도 많다.
날 원한다면 솔직하게 원한다고 말하면 되는 것 아닌가.
이쪽은 그가 말하는 건 뭐든 해주겠다고 할 정도로 그를 열망하고 있었다. 도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 고집을 부리는 것인가. 과거의 문제로 화를 내도 전부 다 받아주고 있었다. 화를 내든 때리든 물건을 부수든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하기 싫다면 손도 안 대겠다고 했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황경호는 강동현의 말투나 태도 하나하나에 일일이 마음이 상하고 싫어하고 뾰족하게 굴었다. 믿을 수 없다는 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래도 강동현은 그가 생각보다 자신의 마음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까 뭐가 자꾸 마음에 안 드는 것이다. 그러면 말을 하면 될 텐데 계속 말을 안 하다가 꼭 이렇게 폭발했다. 그리고 울고불고….
하지만 역시, 그의 이런 면이
짜증이 날 정도로 이해가 안 되고
이해가 안 될 정도로 마음을 끈다.
강동현은 부어서 만지는 느낌이 더 연약해진 그의 얼굴 피부를 슥슥 엄지로 만졌다. 아플 리는 없었지만, 확실히 피부가 더 예민해진 모양인지 반응이 즉각적으로 온다.
“일단… 집에 가자. 여기 있지 마. 걱정되니까.”
“…….”
“그리고 너 이러고 있는 거 너네 의사한테 걸리면 뭐라고 할 거야? 벌써 일주일이나 있었잖아. 안 걸릴 거 같아?”
주저하는 황경호한테 쐐기를 박듯 그렇게 말했다. 그가 주변 사람들을 많이 신경 쓴다는 걸 안다. 그리고 덧붙였다.
“나 나간다니까.”
결국 한참 뜸을 들이다가 황경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
“간다.”
“…응.”
강동현은 차로 황경호를 집에다 데려다주고 자기 물건만 좀 챙기더니 곧바로 현관으로 갔다.
“가끔 올 일 있으면 미리 연락할 게. 부담 가지지 말고 그냥 편하게 지내. 몇 달 있어도 되니까. 집 구하면 연락 주고.”
“응….”
강동현이 피식 웃었다.
“표정이 왜 그래.”
그러면서 황경호의 얼굴을 만졌다. 그리곤 문을 열었다.
“진짜 간다.”
그리곤 밖으로 나갔다. 황경호는 땅이 꺼질 것 같은 한숨을 쉬며 발을 질질 끌고 거실의 카우치로 가서 엎어졌다. 여기는 전에도 있어서 어색할 건 없었지만….
‘잘하는 거 맞을까….’
잘 하는 것일 리가 있나… 황경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너도 나 가지고 싶잖아.]
“…….”
개새끼…. 황경호는 잠깐 울컥해서 얼굴을 들었다.
처음에 강동현은 오로지 황경호의 몸만 원해왔고 쉽게 그것을 가지려고 했다. 억지를 부리든 돈을 주든. 황경호는 그런 인간을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그에게 몇 번이나 휘둘려왔다.
강동현 본인도 몇 번 그만두려고 하는 것 같았다. 몇 달씩 안 올 때도 있었고 그냥 속옷만 달라고 할 때도 있었고… 하지만 자기가 한 말은 다 철저히 지키는 남자가 황경호와 있을 땐 몇 번이나 번복하는 것도 부지기수였다.
황경호는 그의 그런 면이 무서웠다. 차라리 일관적으로 억지를 쓰든가, 아니면 아예 그만둬주든가… 황경호를 그렇게나 휘두르는 게, 그 자신조차도 스스로를 감당할 수 없는 것 같아 보여서… 그런 점이 무서웠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충동적이고 본능적인 그런 것들. 심지어 작년부터는 황경호도 그런 충동적이고 본능적인 것들에 확 휩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강동현의 그런 점은 좀 잠잠해졌다. 그러다가 덜컥 어느 날 그가 자신을 끌고 가서… 스스로가 바보 같게만 느껴졌다. 그에게 계속 휩쓸리는 게… 그는 오로지 쉽게 할 생각뿐인데 그런 인간한테 쉽게 굴고 있었으니. 얼마나 우습고 또 창피한 일인가.
그리고 또 싸우고 휩쓸리고 섹스하고 또 싸우고 휩쓸리고 섹스하고….
‘그런데 이제 좋아한다고….’
이제 와서….
황경호는 강동현에게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그건 처음부터 그랬다. 눈을 뗄 수가 없는 놈이었으니까. 그때 계약서를 적고 말도 안 되는 짓을 할 땐, 솔직히 처음엔 황경호도 그만한 놈을 골탕 먹일 수 있는 게 재미있어서 열심히 했던 것 같은데… 그가 그걸 핑계로 집적거리는 수위를 확 높이니 그때부터는 하기가 싫었다. 그런데 황경호가 어떻게 해도 그는 그만둬주지를 않았다. 계약서를 적기 전 충동으로 죽으려고 했던 걸 한 번, 그 새끼 때문에 나중에 죽고 싶어졌을 때 한 번, 그렇게 두 번을 그가 구해줬다.
그리고 그해 말까지만 해도 강동현은 그냥 병원에 오지 않았다. 새벽에 전화를 해대서 짜증 나게 굴었지만, 손을 대진 않았다. 그런데 그날 강동현은 황경호에게 보상이라도 하듯 그가 하고 싶은 대로 바다도 데려가 주고 밥도 사주고 하더니 보내주었다. 이걸로 악연은 끝이라는 듯.
그렇게 끝나버렸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직후 새해가 딱 넘어가고 TV를 보는 순간, 참을 수가 없었다. 죽어버리고 싶었다. 또다시 이렇게 무의미한 1년을 보낼 수는 없었다. 허무하고 거지 같은 스스로를 견디고 또 1년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다. 그렇게 일어난 자살 충동을 막을 수가 없어서 달려갔다. 그가 구해줬다. 그리고 그게 여느 때처럼 기분이 너무 나빴다. 아니, 훨씬 나빴다. 그는 자살을 하고 싶은 충동을 막지 못하는 황경호를 계속 바보 취급했다. 황경호도 스스로가 바보 같다는 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그런 취급을 받는 게 너무나 화가 났다. 그래서 그를 화나게 하려고 그가 싫어할 만한 말을 마구 했다. 황경호보다 훨씬 나은 인간인 척하는 그의 가면을 벗겨버리고 싶었다. 그러니까 황경호도 놀랄 정도로, 그는 자신을 잃고 달려들었다.
겨우 새벽에 도망치고, 후회하고… 그리고 강동현은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병원에도 오지 않았다. 그래. 그대로 끝이라면 그걸로 차라리 된 거라고. 그렇게 자기합리화를 하면서 견뎠다. 아마 시간이 지나가면 다 잊어버리고 괜찮아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어떤 기사가 잘못 나가서, 갑자기 찾아왔다. 그리고 마치 어제 봤던 사이처럼 화내고 추궁하고… 그리고 슬슬 병원을 다시 오기 시작했지만, 황경호에게 딱히 집적거리지는 않았다. 진짜 병이 안 낫긴 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초록이에게 1억이나 주질 않나.
그리고는 다시 집적거리기 시작했다. 뭘 갑자기 막 주고… 꽃을 주질 않나, 먹을 걸 주지 않나. 그러면서 황경호를 살살 구슬려서 몇 번 자기 욕구를 채웠다가 황경호가 확 피하니 초록이 가지고 협박을 했다. 그가 너무 싫어서 죽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제 뭐든 어쩔 수 없겠구나, 그렇게 체념을 했는데도 그가 생각보다 마음대로 하려고 들지 않아서 놀랐다.
그리고 자기 여자친구랑 헤어지면서 오만 진상을 부렸다. 술 처마시고 미안하다고 그러질 않나. 그리고 나서는 그냥 얌전히 병원을 다녔는데… 그때는 초록이가 입양을 가고 얼마 안 됐을 때라 황경호의 상태가 상당히 좋지 않을 때였다.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쏟아지고 우울하고… 아마 걱정이 되어서 그랬던 거 같은데, 알다시피 강동현이 그렇게 말하는 본새가 좋은 것도 아니라서 뾰족하게 받아치기만 했다. 그렇게 싸우고는 한동안 그는 병원에 오지 않았다.
그러다 하루, 또 죽고 싶었다. 하루 종일 고민을 하다가 마포대교로 갔다. 그러다가… 무슨 생각인지 그에게 전화를 하고… 살려 달라고 했다. 그는 금방 달려와서 구해줬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그를 죽음에서 멀리 떨어뜨려 주었다. 그리고 그의 집으로 가서….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유혹이었다. 강동현이 황경호에게 바라는 걸 물었던 것 말이다. 처음 계약서를 쓸 때도 그랬지만 그는 이 관계가 공평하다고 생각되길 원하는 것 같았다. 1번에 1번, 자신이 바라는 것 대신에 황경호가 자신에게 바라는 것이 있었으면 하는 것 같았다. 그때 그가 황경호에게 원하는 대로 하라고 해서 황경호는 그를 때렸다. 그리고 그건 황경호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이상한 쾌감이었다. 길티플레져, 우월감, 해소감… 그리고 처음으로 함께 쾌락을 나누었다.
그 뒤 몇 번 병원에서 또 하긴 했는데 황경호가 싫어하니 그냥 손으로만 하다가, 결국엔 팬티만 들고 가는 방식으로 되었다. 그러다가 술을 마시고… 그때는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황경호가 하고 싶어 했을 리가 없었다. 그냥 취한 걸 강동현이 덮친 것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도대체 그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자기 자신도. 자괴감에 온 피부를 다 긁어내 버리고 싶었다.
그리고 이덕재 일 때문에 정말 인생의 끝장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지금이랑 비슷하게 황경호가 피할 수 있도록 집에서 지내라고 하고 자기는 나가고, 그리고 이덕재 때문에 큰일 날 뻔했을 땐 그냥 그를 감옥에 처넣어 줬다. 그때는 같은 나이이지만 강동현이 훨씬 사회인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문제가 닥치면 황경호는 정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는데.
그리고는 우습게도 좀, 사이가 좋아졌다. 강동현은 키스는 가끔 하려고 들었지만, 그 이상은 하지 않았다. 팬티는 수시로 빼앗아가곤 했다. 그가 너무 심하게 그래서 아예 치한용 스프레이를 뿌려대고…(그땐 진짜 통쾌했지…) 그러다 한 번 강동현의 집에 갔다가 그가 자위하는 걸 보여주면서 결국 같이 또 하고… 계속 보여주고… 복수하고… 또 보여주고….
‘그때 그런 식으로 쭉 지냈으면 더 나았으려나….’
황경호는 주마등처럼 지금까지 일어났던 일들을 되새겨보며 한숨을 쉬었다. 공항 일에 대해서도 그냥 제대로 얘기를 하고… 모텔 때도 그렇고…. 정말 서로 말이 안 통해서 계속 일을 필요 이상 키웠던 것도 같고… 근데 거기서 더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고 그랬다.
정말 지나간 것은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인가 보다. 생각을 해도 답이 안 나왔다. 황경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널찍한 거실을 둘러보았다.
“청소부터 하자….”
황경호는 생각을 떨치기 위해 그렇게 또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
“…뭐야. 집이 왜 이렇게 깨끗해.”
강동현의 집은 원래도 더럽지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깨끗한 축에 속했다. 강동현은 바빠서 집에 잘 있지도 못했고, 일주일에 두 번 일하는 사람이 와서 청소를 했기 때문이다. 집의 크기에 비해 물건의 수가 적기도 했다. 그런데도 이주 만에 온 집은 환하게 변했다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물건 배치도 좀 바뀌고… 편한 옷을 입고 있던 황경호는 강동현이 집에 오자 카우치에서 어정쩡하게 일어났다.
“청소하는 아주머니한테는 오지 말라고 했는데….”
“그건 들었어. 니가 한 거야?”
카우치도 이제 산 지 꽤 되어서 많이 안 쓰는데도 변색이나 꺼짐이 슬슬 시작되고 있어서 새로 살까 싶었는데 다시 멀쩡해졌다. 강동현은 집 안을 둘러보았다. 그러더니 약간 웃는 얼굴이 되어 황경호를 돌아보았다.
“진짜 줄까? 완전 니 집이네.”
강동현은 그렇게 말하고 침실 옆 드레스룸으로 향했다. 들고 온 커다란 종이 가방을 옆에다 두고 옷걸이 등에서 옷을 챙기기 시작했다.
“이거 세탁해야 하는 거야?”
황경호가 어정쩡하게 따라와서 물었다.
“왜. 니가 하게?”
“아니….”
“혹시 시간 있으면 세탁소에 전화해서 가져가라고 해. 내가 전화번호 보내 줄게.”
강동현은 티셔츠와 셔츠를 새 종이 가방에다 왕창 넣고 바지도 몇 개 슥슥 빼서 넣었다. 벨트도 이것저것 챙겼다. 신발도 챙긴다. 시계도 챙겼다. 황경호가 계속 얼쩡거리자 강동현이 그제야 그를 돌아보았다.
“할 말 있어?”
“아니….”
황경호는 침을 꿀꺽 삼켰다.
“TV….”
일주일 동안 강동현의 집에서 다시 살아보면서 깨달은 것이 있었다. 예전에 잠깐 살았을 때 여기 있었던 물건들이, 그러니까 많은 물건들이 없거나 아니면 망가져 있었다. 저번에 그랑 싸울 때 황경호가 다 부숴버린 것들이었다. 까맣게 잊고 있었다. 황경호는 한숨을 푹 쉬면서 말했다.
“내가 전에 부순 거… 변상할 게. TV도 그때 부서진 거지? 그릇도 아직 다시 안 샀고….”
“아… 그거. 내가 바빠 가지고.”
강동현은 생각도 못 하고 있었다는 듯이 주변을 돌아보았다. 강동현은 들고 있던 종이 가방을 바닥에 두었다. 분위기를 보니 쫓기듯 나가지 않아도 될 모양이다. 강동현은 황경호를 내려다보았다.
“TV는 못 고친다고 하더라. 이 김에 새로 살려고, 좋은 걸로.”
“응… 뭐 사고 싶어?”
“그릇도 비싼 건데.”
“어디서 사면 되는지 알려주면 사 놓을 게.”
“저 전등이랑 선반도 부서진 거 알지? 그리고 저 찬장은 사람 불러서 고친 거다.”
“응….”
“그리고 니가 찢어 먹은 사진. 그것도 백만 원은 하는 거야.”
“어…….”
황경호는 한숨을 쉬었다. 지금 통장에 있는 보증금을 다 날려야 할 판이었다. 애초에 그냥 보증금 없이 월세를 더 받는 방으로 갈 수밖에 없는 건가. 다음 월급 나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던 황경호였다. 강동현이 피식 웃으면서 덧붙였다.
“그리고 니가 지금 내 집에 있어서 나 호텔에서 지내는데? 하루에 30만 원짜리.”
“…니가 있으라고 했잖아.”
황경호가 그를 흘겨보았다. 강동현은 손을 뻗어서 그의 얼굴을 만졌다.
“그런 거 신경 쓰지 마. 안 물어줘도 되니까.”
“…….”
“아, 지내기 불편한가? 나 요새 좀 바쁜데… 음.”
강동현은 주머니를 뒤적거리다가 지갑을 찾아내더니 뭘 꺼냈다. 진한 파란색의 무광 신용카드였다.
“사서 써.”
황경호가 인상을 좀 찌푸리자 강동현이 한숨을 쉬며 그의 손에 그냥 카드를 쥐여주었다.
“내가 아무한테나 이렇게 할 거 같아? 나라고 돈이 남아도는 것도 아니고. TV랑… 부서진 거나 그릇이나 이런 거 니가 좀 사달라고. 나 바빠서 못 사니까.”
“…….”
“다른 건 모르겠는데 TV는 제일 좋은 걸로 사라. 나 영화 같은 거 많이 찾아보니까. 화질 좋고 소리 잘 나오는 걸로. 제일 큰 거. 나머지는 니가 사고 싶은 거 사.”
강동현은 황경호의 손을 잡고 좀 끌어당겼다.
“왜… 이것도 싫어? 왜 싫어?”
“…빚지는 기분이야.”
“뭐 이 정도 가지고… 너 전에 나한테 천만 원 뜯어간 건 기억 안 나?”
아, 맞다… 황경호는 약간 얼굴을 붉혔다. 그 돈은 참 잘 썼다. 황경호는 강동현이 준 카드를 가만히 보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벽지도 바꾸고 싶은데….”
“응? 왜?”
“담배 냄새나.”
“진짜? 나 밖에서 피우는데.”
“침대 옆에 재떨이 있는 거 봤어.”
“거의. 거의 밖에서 피운다고.”
강동현이 변명하듯 말했다.
“욕실도… 샤워부스 나누고 싶어.”
“마음대로 해. 근데 그런 건 공사해야 하는 거 아냐?”
“안 해도 돼.”
강동현이 카드를 물끄러미 보며 이것저것 생각하고 있는 황경호의 이마에다 입을 슬 맞추었다.
“그냥 같이 살래?”
“…너 그러다가 어디 걸리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황경호가 그를 밀어냈다.
“뭐… 친구랑 같이 산다고 하면 되지. 같이 살자. 응?”
“너랑 안 한다고.”
“안 해도 되니까. 응? 나 집에 들어오면 안 돼? 하루에 30만 원 아깝잖아.”
역시 이러려고! 이런 눈빛으로 황경호가 쳐다보자 강동현이 씨익 웃었다. 강동현이 기가 살아서 황경호를 끌어당겨 안았다. 그리고는 머리카락에 얼굴을 묻고 체취를 맡았다.
“너도 이사 갈 집 구하지 마. 그냥 같이 살자.”
“…….”
2주일 동안 강동현 없이 산 삼성동 아파트는 정말 쾌적 그 자체였다.
나가면 바로 9호선을 탈 수 있었고, 거리는 깨끗하고 밝다. 신림처럼 전봇대와 전선이 기괴하게 늘어져 있지도 않다. 백화점도 한 블럭이면 갈 수 있었다. 물론 황경호의 수입으로는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서 쓴다는 건 말이 안 되었지만… 어쨌든 좋은 입지에 있다는 것이었다. 출근하는데 15분밖에 안 걸렸다.
침실은 남향이지만 거실은 서향이라 해가 지면 그 장면을 오래도록 지켜볼 수 있었다. 황경호야 집을 나와서부터 항상 10평도 되지 않는 원룸에서만 생활해왔으므로, 전에도 느꼈듯이 주거환경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고 있었다. 넓으니까 좋다… 평소에 그런 쪽에서도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왔던 걸까. 여긴 밝고 시원하고 좋았다.
요즘 요리에 취미를 붙인 황경호한테 세련되고 예쁜 부엌과 식탁도 완전 최고였다. 솔직히 너무 좋다… 진짜 이 집은 지내면 지낼수록 좋았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안다고….’
강동현은 황경호의 허리를 끌어안고 막 냄새를 맡고 있었다. 황경호는 그가 집적거리는 걸 그냥 심드렁하게 내버려 두었다. 어차피 이런 건 아무리 싫다고 해도 할 것 같고, 포기다. 그러려니 해야지… 그러면서 저도 모르게 머릿속으로 계산기를 두드렸다.
‘그래도 이제 진짜 그런 것까진 안 할 것 같은데… 어차피 최소 2달은 버텨야 천만 원 정도는 모을 수 있을 것 같고… 2달이나 호텔에서 지내면… 그 돈이 거의 2천만 원이다… 차라리 그 돈을 달라고 하는 게 낫겠다….’
솔직히 눈치가 있다면 강동현도 황경호가 집을 당장 못 구하는 사정이라는 게 돈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진짜 차라리 호텔에서 지낼 돈을 달라고 하고 강동현 보고 집에 들어오라고 할까, 싶은 충동이 잠깐 들었지만 역시 그것까지는 너무 자존심이 상했다.
“니 집이니까… 내가 계속 오지 말라고는 할 수 없는데. 집은 구하는 대로 나갈게.”
“여기 진짜 줄 수 있는데… 응? 진짜 싫어?”
“…화낸다.”
“알았어.”
강동현은 황경호의 뺨에 쪼옥 입을 맞추더니 떨어졌다. 황경호가 약간 얼굴을 붉히면서 뺨을 손등으로 닦았다. 황경호는 약간 인상을 찌푸린 채 물었다.
“언제 들어올 건데?”
“아마 오늘 새벽쯤? 먼저 자.”
“알았어… 말한 건 주말에 사 놓을 게… 뭐뭐였지?”
황경호는 거실 테이블 위에 있던 휴대폰에다가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이 집에도 공짜로 있는데 이 정도는 해야지 싶었다. TV, 식기, 전등, 선반, 액자, 벽지, 욕실 칸막이… 강동현은 카우치에 앉아서 그가 그러고 있는 걸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기분은 좀 괜찮아?”
“응? 어….”
강동현의 집을 박살 내고 전의 간호사실에서의 일까지 평균적으로 매일매일 굉장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오고 있었는데, 여기서 2주 지내면서 정말 기분이 많이 괜찮아졌다. 컨디션이 좋다.
‘생각보다 주거 환경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컸던 게 아닐까….’
황경호는 그런 생각을 또 했다. 강동현이 술 마시고 그런 건… 어쩌면 황경호의 성격에 그냥 체념하고 쉽게 지나가 버릴 수 있는 일이었을 수도 있는데 갑자기 집에 못 돌아가게 되고 나니…(물론 강동현이 중간에 계속 귀찮게 굴긴 했지만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평생 꿈이 자가 아파트를 소유하는 것일까. 사실 여기도 금방 나가야 한다고 생각하면 좀 스트레스받지만 강동현이 있고 싶은 만큼 있으라고(그래도 같이 안 살 거다) 해서 부담감은 확실히 적었다.
강동현은 또 황경호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입술을 누르며 숨을 마셨다. 이런 부분은 그냥 체념하기로 한 황경호는 한숨을 쉬며 물었다.
“너 원래 사람 냄새 페티쉬 있어?”
“응? 아니.”
“근데 왜 이렇게 변태같이 사람 냄새를 맡아.”
“그냥 니 냄새 좋아서.”
강동현은 그리고 덧붙였다.
“너도 내 냄새 맡잖아.”
“…내가 언제!”
황경호가 손을 홱 빼냈다. 강동현이 어깨를 으쓱했다.
“맡던데?”
“아니거든!”
“맞거든?”
“아니라고!”
“뭘 또 화를 그렇게 내.”
강동현은 황경호를 끌어당겨 카우치에다 앉혔다. 황경호는 울컥한 부분을 가라앉히려고 그냥 고개를 돌렸다. 강동현은 카우치의 등에 팔꿈치를 얹고 머리를 손으로 괴곤 황경호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쪽 좀 봐.”
“싫어.”
“왜.”
황경호는 그냥 카우치의 등에 등을 기대고 뚱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그리고 물었다.
“안 가?”
“좀 있다.”
카우치의 등에 기대앉으니 얼굴은 다 보인다. 강동현은 그냥 그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고 황경호는 망가져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TV의 검은 화면을 쳐다보고 있었다.
“…….”
“…….”
잠깐 침묵. 황경호는 인상을 약간 쓰며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가 강동현을 보았다. 그대로 눈을 마주치고 약간의 침묵이 더 흘렀다. 황경호의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그리고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렇게 쳐다보지 마.”
그러자 강동현이 훅 입을 맞추었다.
“응…!”
입술을 꾹 누르면서 그대로 황경호를 카우치에다 눕히고 그 위에 올라탔다. 그대로 입술을 빨면서 안을 핥았다. 황경호 쪽에서 같이 입을 맞추어 주진 않았다. 그렇게 강동현이 멋대로 입을 맞추다가 쪽, 하고 입술이 뗐다.
“…….”
“…….”
그리고 그대로, 코가 맞닿는 거리에서 서로의 눈을 내려다보고, 올려다보았다. 그렇게 잠깐 있다가 강동현이 몸을 일으켰다.
“이제 나 나간다.”
그는 뻐근한 느낌으로 목을 약간 기울이며 돌리더니 현관 쪽으로 향했다. 황경호는 입맞춤을 당한 입을 손으로 막고 있었다. 강동현은 곧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아… 나 잘하는 거 맞는 거야? ‘
황경호는 한숨을 푹푹 쉬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
황경호는 아침 8시 반부터 저녁 6시 반까지 근무하는 간호사였다. 주 5일에 토요일 출근은 2주에 한 번꼴이었다. 그리고 강동현은 8월 말부터 방영하는 드라마 때문에 점점 바빠지고 있어 밤늦게 들어오고 새벽에 나가거나 아니면 아예 하루 종일 자고 있을 때가 종종 있었다. 슬슬 다시 강동현의 팬커뮤에 들어가고 있는 황경호는 <시크릿 블러드>의 제작설명회 영상을 어제 보았다. 방영까지 한 달 정도밖에 남지 않은 것이다. 팬커뮤의 얘기로는 이번에도 분명히 중박 이상의 대작이 될 거라고 기대가 컸다.
생활 패턴이 너무 다르다 보니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정말 마주칠 일이 별로 없었다. 처음에는 그냥 같이 자자고 하더니 본인도 생활 패턴이 너무 다르다는 걸 인지하고 나선 편한 대로 하라고 했다. 그래서 황경호는 그냥 거실에서 잤다. 카우치는 좀 단단한 느낌의 패브릭 카우치라 솔직히 예전 황경호의 집 침대보다 괜찮았다. 침대도 하나 사준다고 했지만 여긴 정말 남자 혼자 사는 느낌의 집이라 놓을 데가 없었다.
주말이 되자 황경호는 강동현이 준 카드를 들고 근처의 H 백화점으로 왔다. 백화점은 그다지 갈 일이 없는 황경호였지만 지금까지 가봤던 백화점들 중에서도 단연 깔끔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이 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 바글바글하지도 않고… 그게 아니더라도… 하긴, 우리나라 제일의 쇼핑센터에 있는 건데. 황경호는 슬그머니 들어가서 9층으로 올라가 TV를 파는 곳으로 가봤다.
‘인터넷으로 사야 할까… 가격이…. 아, 그래도 전자기기는 보고 사야 한다고 하는데… 인터넷으로 파는 건 문제 있으면 보상받기가….’
황경호는 고민했다.
“찾으시는 제품 있으세요?”
황경호가 유심히 TV를 보고 있자 직원이 다가왔다.
“아, 네… 이 중에서 제일 크고 화질이나 소리가 좋은 거 없을까요? 볼 사람이 직업 배우라서 작품 찾아보는데 주로 쓸 건데.”
“아, 그러세요. 그럼 이건 어떠세요? S 전자 최신 제품인데 화질은 지금 나오는 제품들 중에서 제일 좋고 색감도 보시면 다른 TV들이랑 다르죠.”
“그러네요….”
“아니면 이것도 좋구요.”
진짜 가격이 헉할 정도다. TV가 원래 이렇게 비싼 거란 말인가. 근데 가격 이전에 보는 순간 헉할 정도로 물건이 좋다. 화려한 색감의 디스플레이와 어마어마한 크기. 황경호는 지금까지 소비를 할 수 있는 수준에서 해올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좋은 물건들은 사실상 접하고 살아보지 못했다. 새삼 너무 다른 걸 느껴 한숨까지 나왔다.
이 백화점 자체가 다르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다르다. 제일 다른 건 신림 근처에 다니는 아이들과 여기에 있는 아이들의 때깔이 너무나 다르다는 것이다. 안색, 옷차림, 유모차 등… 심지어 여긴 애들도 많다. 우리나라가 초저출산 국가가 맞나 싶다. 괴리감이 느껴진다….
‘걔는 돈 얼마나 있을까?’
황경호는 순간 강동현이 준 카드를 보면서 처음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일단 집이 매매가 15억인데… 전센가? 아니겠지? 산 거겠지? 보통 걔 정도 연예인들 보면 부동산 투자도 많이 하던데… 걔도 그런 거 많으려나….
황경호는 일단 TV만 보고도 진이 빠져서 화장실에 와서는 인터넷으로 아까 본 TV들을 찾아보았다. 백화점에서 사면 호구란다. 저 정도 급이면 해외직구를 하란다. 가격 차이가 몇백만 원이 넘었으므로 그냥 집에 가서 인터넷으로 시켜야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옆으로 가서 식기들을 보았다. 아까 보았던 TV보다는 가격이 훨씬 낮았지만 뭐 이런 거 하나에 가격이 이렇나 싶을 정도로 비쌌다. 어차피 집에서 잘 있지도 않으면서 비싸고 많은 식기가 필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근데 전에 가지고 있었던 건 비싼 거라고 했고….
‘아, 그런데 이런 거 진짜 예쁘다… 음식 해서 사진 찍으면 예쁘겠네.’
그래도 TV보단 훨씬 흥미진진하게 쳐다보고 있는 황경호였다. 그릇은 그냥 거기서 사버렸다. 전에 살 때 있었던 그릇 종류를 생각해보면서 그나마 최소한으로 골랐는데도 백만 원 돈이 나갔다. 그렇다고 싼 거 하자니 집주인이 싫어할 거 같다….
TV는 인터넷으로 사야겠다고 결심하고 그릇을 사고 나니 이미 시간이 몇 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황경호는 이렇게 오래 쇼핑을 한 적이 없었다. 진이 빠졌다. 도대체 이걸 취미로 하는 사람들은 뭐 하는 사람일까.
‘벽지랑 전등이랑, 아, 선반… 건조식 욕실 만들고 싶은데… 그냥 인터넷에서 나오는 대로 하려고 했는데 그러면 또 싼 티 나려나? 집이 비싸서 아무거나 사서 못하겠다… 사람을 시켜야 하나? 그러면 또 돈이 얼마지….”
결국 하루 만에 물건을 다 사지 못했다. 영수증을 잘 챙겨서 전등이랑 선반, 그릇만 사서 택배로 부쳤다. 저거 다 고르는 데 다섯 시간이나 걸렸다. 황경호는 완전히 녹초가 되어서 강동현의 아파트로 돌아왔다.
‘진짜 이게 귀찮아서 나한테 시킨 거구나….’
황경호는 머리가 지끈지끈하고 힘이 쭉 빠져서 씻고 카우치에 드러누웠다. 그리고 한숨을 쉬며 TV를 다시 찾아보기 시작했다. 제일 큰 거 사라고 했는데… 95인치? 저건 얼마나 되는 거야? 황경호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망가져서 걸려있는 강동현의 TV를 살펴보았다. 75인치… 20인치 차이에 가격이 몇 배나 난다. 황경호는 강동현한테 메시지를 보냈다.
그랬더니 작게 우우웅, 하는 소리가 어디선가 난다. 황경호는 어라, 하고 침실로 가봤다. 그랬더니 언제 왔는지 강동현이 들어와서 자고 있었다. 신발 있었나? 황경호는 조용히 나왔다. 그는 어제 밤을 새고 집에 못 돌아왔다.
‘인터넷에 보니까 더 큰 것도 있다… 110인치가… 1억 8천… 진짜 TV가 이 정도나 하는 거야? 돈을 그만큼이나 써야 해? 아, 이건 거의 천만 원이었는데… 그냥 그대로 75인치 사는 게… 아, 모르겠다. 일어나면 물어봐야겠다.’
황경호는 TV를 또 미루었다. 그리고 벽지를 고르기 시작했다. 저런 벽지는 도대체 뭘까 하면서 잠깐 거실의 벽지를 보았다. 머리가 아팠다. 그냥 벽지를 갈지 않는 방법이 없나 하고 찾아보았지만, 그냥 방향제를 뿌리는 수준이라 결국 벽지를 가는 게 제일 좋았다. 솔직히 황경호는 여기서 오래 살 것도 아닌데 이렇게 열심히 할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그래도 여기 몇 개월 얹혀사는 값으로 노동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빚지는 느낌은 딱 질색이다.
‘그래, 욕실은 포기하자… 모르겠다.’
황경호는 그렇게 결심했다. 그냥 청소를 열심히 해야겠다. 벽지를 갈고… 근데 쟤 계속 담배 많이 피워서… 테라스에서 피운다고 해도 사람한테 냄새가 배여 들어와서 싫다. 숯? 공기청정기? 커피 가루? 황경호는 고심하면서 계속 물건들을 보고 있었다. 그러고 한참을 카우치에 엎드려서 물건들을 눈 빠지게 보고 있는데 침실의 문이 벌컥 열리는 소리가 났다.
“배고파.”
강동현이 일어난 모양이었다. 황경호가 카우치 등 위로 고개를 내밀었다. 강동현은 금방 자다 깨서 눈을 심하게 찌푸리며 하품을 했다.
“들어 왔어? 하암.”
“응….”
강동현은 부엌으로 가서 정수기에서 물을 따라서 마시더니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너 밥은 먹었어?”
벌써 6시였다. 황경호는 점심을 먹고 나가서 오후 내내 쇼핑을 하다가 돌아와서 또 인터넷으로 물건을 살펴보고 있었다. 깨닫고 나니 배가 고팠다.
“아니.”
“뭐 시켜 먹을까?”
강동현은 여전히 피곤한 모양인지 미간 사이를 주무르며 카우치로 와서 털썩 앉아 푹 기대었다. 황경호는 잠깐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그냥 내가 해줄게. 시켜 먹지 마.”
“뭐야. 너 음식 할 줄 알아?”
“태형이 형한테서 요새 배우고 있거든.”
“그래?”
황경호는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에 넣어 놨던 반찬들을 꺼내고 후드를 켜고 김태형 배워서 미리 한 음식을 데우고 밥을 얼마 남지 않은 식기에다가 잘 담아서 금방 내놓았다.
“다 했어.”
강동현은 발을 질질 끌면서 부엌으로 왔다. 황경호가 수저를 주니 강동현은 바로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황경호도 반대쪽에 앉아서 먹기 시작했다.
“맛있네.”
강동현이 몇 술 먹다가 그렇게 말했다.
“거의 태형이 형이 한 거야.”
“맛 비슷하다. 간이 좀 다르긴 하네.”
“그치? 형이 어떻게 하는 건지 모르겠단 말이야.”
“이것도 맛있어.”
강동현은 진짜 배가 고팠던 건지 고봉으로 2공기나 먹어 치웠다. 그리고 좀 살 것 같은지 제대로 눈을 떴다. 물까지 한 잔 마시더니 식탁을 치우고 있는 황경호를 보고는 문득 말했다.
“너… 지금 내 마누라 같다.”
“뭐라는 거야!”
황경호가 화들짝 하며 뒤를 돌아보고 화를 냈다. 사람이 얹혀사는 게 미안해서 해줬더니만! 황경호는 인상을 확 찌푸리며 설거지를 빨리했다. 손을 털고 다시 카우치로 돌아갔다. 강동현은 욕실로 가서 씻고 나왔다. 황경호는 계속 물건을 찾아보았다. 카우치에 엎드려 누워있는 황경호를 물끄러미 보더니 강동현이 그 위에 올라탔다. 황경호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적당히 해라, 적당히.”
무거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의 젖은 머리카락에서 물이 떨어졌다.
“아! 물 떨어지잖아! 머리 닦아.”
“뭐 하는데.”
강동현은 수건으로 대충 머리를 한 번 더 닦고는 황경호의 휴대폰을 잡아서 봤다.
“오늘 백화점 가서 그릇이랑 선반이랑 전등은 샀는데. TV는 비싸서 너한테 물어보고 사려고. 욕실은 포기했고 벽지 가는 건… 사람 불러야 되겠지?”
황경호가 빠른 어조로 말했다. 강동현이 황경호의 머리에 자신의 뺨을 비비며 관심 없는 어투로 대답했다.
“뭘 그렇게 열심히 해? 천천히 해.”
“TV 85인치도 있고 95인치도 있고 100인치도 있어. 뭐 사?”
“저게 얼만데?”
“75인치.”
“100인치는 얼만데?”
“인터넷 보니까 2억 가까이 되는 것도 있고… 근데 그런 건 사업자 용인 것 같아. 대기업 거 안 사고 맞춤으로 시키면 5백만 원 정도로도 해주는 데 있는데 품질이 어떨지 모르겠어. 백화점에서 85인치짜리 보니까 3천만 원….”
“진짜? 미쳤네. 엄청 비싸다.”
강동현도 혀를 내둘렀다.
“근데 해외직구로 사면 좀 싸게 살 수 있기는 한 것 같아. 몇백 만 원 정도 싸게… 근데 이렇게 비싼 거 필요해?”
“TV는 크면 좋지. 어차피 저것도 살 때 그 정도 한 것 같은데. 큰 걸로 사줘.”
“얼마나?”
“음… 맞춤은 얼마냐?”
진짜 큰 거 사고 싶은 모양이다. 둘이서 조그마한 휴대폰 화면을 보며 열심히 이것저것 눌러보고 검색하며 TV를 찾아보았다.
“니 카드로 내가 인터넷 결제할 수 있으려나…. “
“현물로 가지고 있으면 뭐… 내 명의로 휴대폰 하나 사줄까?”
강동현은 그렇게 말하며 황경호의 손을 슬 잡더니 그의 귓가에 코를 묻고 냄새를 맡았다.
“적당히 하라니까…!”
그의 입술이 뺨에 닿으니 황경호가 질색을 하면서 그를 밀어내려고 하다가 깔려서 그를 올려다보는 자세가 되었다. 강동현이 씩 웃으면서 입을 맞추려고 했다. 황경호는 턱 그의 얼굴을 손으로 밀어냈다.
“적당히 해라, 진짜.”
“…알았어.”
강동현이 일어났다. 황경호는 그에게 깔려서 뻐근한 허리를 주무르며 자리에서 일어나 바로 카우치에 앉았다. 그리고는 계속 물건들을 살펴보았다.
“A/S 되는 걸로….”
“진짜 천천히 해라.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뭘 그렇게 한꺼번에 하려고 해?”
“아니… 니 집에 얹혀사는 것도 미안하고.”
강동현이 그렇게 말하니 황경호가 슬 덧붙였다.
“그런 거 생각하지 말라니까.”
“그리고 집 안에서 담배 좀 피우지 마. 아니, 테라스에서도 피우지 마.”
“아, 왜.”
“벽지 바꿀 건데 너 담배 피우고 들어오면 다 똑같아. 담배를 그냥 끊어. 이강유 선생님이 끊으라고 했잖아. 진짜 나을 생각 없냐, 너?”
포기한 거야? 황경호가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강동현은 어쩐지 남자로서의 자존심에 약간의(많은) 타격을 받았다.
“그래도 너한테는 잘 서는데….”
그렇게 말하자 황경호가 완전 질색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 그래서 오히려 강동현은 더 뻔뻔하게 말했다.
“담배 때문은 아니라는 말이잖아.”
“좀 끊어. 냄새나. 키스할 때도 싫다고.”
“…….”
황경호가 곧바로 헉! 하는 얼굴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아니나 다를까. 강동현이 실실 웃으면서 가까이 붙어왔다.
“끊으면 키스해줄 거야?”
“…저리 가라.”
“지금은 냄새 안 나는데.”
“저리 가라… 읍!”
또 양껏 키스 당했다. 강동현은 꽤 만족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드레스룸으로 가 나갈 준비를 했다. 황경호는 키스일 뿐인데도 약간 겁탈당한 기분이라(왜 그걸 내가 아는 것일까…) 살짝 부끄러웠다.
같이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강동현이 꽤 뻔뻔하게 만져오고 키스를 하곤 했지만 정말 자연스러워서 도저히 뭐라고 버럭할 분위기가 안 됐다. 게다가 황경호도 이 정도 스킨십에는 꽤 적응을 해버려서 더 그랬다. 이래서 싸우는 거 싫어하는 사람이 계속 손해를 본다.
그리고 진짜로 그런 분위기를 내면서 키스를 하는 게 아니라서… 예전처럼 키스 하나 가지고 그가 확 정신을 못 차리고 달려들지는 않는다는 느낌이라서 더 그런 것 같았다. 전에는 입만 맞추어도 거기부터 들이대서… 아니, 입을 맞추기 전에 거기부터 들이댔다.
‘정신 차리긴 한 건가….’
이 정도를 정신 차렸다고 봐야 한다니 그렇긴 하지만… 황경호는 준비를 금방 하고 평소의 훤칠한 남자가 되어 나온 강동현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오늘도 못 와. 아마 일요일 새벽쯤에 올 것 같아.”
“응… 고생 많다.”
황경호는 그렇게 말하며 입술을 여전히 좀 닦고 있었다. 그 말에 강동현이 피식 웃더니 또 갑자기 다가와서 쪽 입을 맞추어서 황경호를 기겁하게 했다.
“역시 마누라 같아.”
“죽여 버린다, 진짜!”
*
황경호는 8월이 되기 전에 벽지를 싹 갈고, 욕실도 건조식으로 결국 바꾸어버렸다.
‘집이 문제다….’
집이 좋으니까 내 집도 아닌데 정성을 들이게 되었다. 진짜 이런 집 하나만 있으면 소원이 없겠다… 나중에 오희연 간호사님만큼 월급을 받는다고 해도 15억이면 얼마나 걸리나 싶어서 계산기를 두드려봤더니 한 푼도 안 쓰면 36년 걸렸다. 간호사 월급으로는 죽었다 깨도 못 사는 집이었다.
‘달라고 하면 진짜 주려나?’
사람은 언제나 견물생심이라고. 집이 너무 좋으니까 괜히 그런 생각도 들어, 괜히, 괜히 이런 생각을 또 했다가 자학을 했다. 진짜 달라고 하면 진짜 내가 뭐가 되겠냐… 배알도 없는 놈이지. 그렇게 생각하며 집을 싹 고치고 정리를 하니 좋은 집이 더 좋아졌다.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하다. 황경호는 거기에 만족하기로 했다.
삐빅. 철컥.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서 뒤를 돌아보았다. 강동현이었다. 지금 시각은 밤 10시. 평소보다 엄청 일찍 들어왔다.
“일찍 왔네.”
“어… 거기서 뭐 해?”
강동현이 차키와 휴대폰을 거실의 테이블에 던지고 부엌에 가서 물을 한 컵 마시고는 다가왔다.
“나 이거 결국 했어.”
황경호가 욕실 안을 보여주었다. 향기가 좋은 나무바닥재를 깐 건식 욕실이다. 샤워기가 달린 곳엔 부스를 따로 만들었다. 욕조의 앞엔 발 받침도 놔두었다. 원래 욕실도 무광의 검은 돌로 만들어진 좋은 것이었지만… 원래 강동현의 집은 너무 사람 사는 냄새가 안 나고 차갑고 서늘한 느낌인데 이런 걸 해놓으니 밝고 따뜻한 느낌이 난다. 세련된 느낌도 유지해서 실내 인테리어랑도 잘 어울린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얼굴을 보며 물었다.
“너… 이런 거 좋아했냐?”
예전에 황경호가 살던 집을 두 개 가보았지만 다 개성이 없을 정도로 그저 그랬고 깨끗하기만 했다. 이런 식으로 집을 꾸민다든가 하는 애일 줄 몰랐다. 황경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몰랐어. 그리고 예전 집들은 다 남 집이니까 함부로 손 못 대잖아.”
황경호가 그렇게 말했다.
“이렇게 해놓으면 습기가 덜 차서 깔끔하니까. 바닥에 물 튀게 하지 마. 알았지?”
“어….”
강동현은 고분고분하게 대답을 하며 생각했다.
‘솔직히 성가시다….’
자기 집처럼 생각하고 있어 주는 건 좋은데 이것저것 제약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집에서 담배도 피우면 안 되고, 뭐 먹은 건 즉각 치워야 하고, 라면도 끓여 먹으면 안 되고, 안 씻고 침대에 누우면 질색을 하고(심지어 자기는 침대에서 자지도 않으면서) 안 씻고 만져도 질색을 한다(도대체 예전엔 어떻게 참았다는 건가…).
‘엄마랑 같이 사는 느낌… 아니, 그 이상이다.’
약간 스트레스받는다… 강동현은 물끄러미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예전에 1년 정도 전 여자친구랑 거의 같이 살다시피 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도 이런 느낌이 들었나? 하긴 그때도 집안일 문제로 다툰 적은 있었지. 하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둘 다 집안일엔 게을렀다. 어렸을 땐 엄마가 이런 식으로 잔소리가 많았지만, 사실 나중이 되니 잔소리라기보단 애원에 가까웠던 것 같다. 눈치를 주지 직접적으로 하지 말라는 소리는 이렇게 단호하게 말을 못 하는 사람이었다. 차라리 하지 말라고 그냥 말했으면 덜 짜증 나긴 했을 텐데.
하지만 직접적으로 세세하게 하지 말라고 해도 성가시긴 마찬가지다….
“너… 그냥 우리 집에서 살 거지? 나 이거 관리 못 해.”
이제 거의 한 달 정도 살고 있는 황경호였다. 강동현은 그를 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황경호가 움찔하면서 그를 돌아보았다. 약간 얼굴을 붉히더니 중얼거렸다.
“좀 오버했나… 이게 청소하기도 좋고 그렇다고 해서….”
“아니, 나도 좋은데. 나 집에도 잘 없으니까.”
“다음 달엔 나가려고 했는데….”
황경호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강동현이 그의 얼굴을 잡고 자신의 쪽으로 돌렸다.
“그냥 살아. 뭘 계속 사양해. 이 집 그냥 줄 수도 있다고 내가 항상 말했잖아. 차라리 내가 새집 구해서 나갈 테니까.”
“…….”
진짜 가진 게 많은 놈이라서 그런 거야… 아니면… 솔직히 멀쩡한 정신으로 생각해본다면 강동현이 15억짜리 집을 누구한테 그냥 선뜻 주겠다고 할 정도로 호구는 아니었다.
“너… 원래 이렇게 남한테 퍼주는 성격이었어?”
황경호가 물었다. 강동현이 말도 되지 않는 소리 하지 말라는 듯 짜증스럽게 답했다.
“미쳤냐, 내가? 그런 병신 짓 하게? 너니까 준다는 거 아냐. 솔직히 우리 부모님한테도 이 정도까지는 안 해봤다. 할 생각도 없고.”
“…….”
눈이 마주쳤다. 뭐가 부끄러운지 약간 얼굴이 붉어진 황경호였다. 그의 빨간 뺨을 엄지로 만지작거리다 강동현이 입을 맞추었다.
“음… 으응…!”
황경호가 몸을 바들 떨면서 강동현의 팔을 잡았다. 강동현의 머릿속에 느낌표가 딱 떠올랐다.
‘뭔가 괜찮은 느낌인데…?’
반응이 다르다. 혀로 핥으니 같이 움직여왔다. 강동현은 깊은 신음을 내뱉으며 황경호를 확 끌어안고 열정적으로 입을 맞추었다. 뭔가 착 붙어오는 게….
물론 바빠서 같이 사는데도 잘 마주치지는 못했지만, 초등학생들이 입을 맞추는 것처럼 가벼운 키스(아니다)만 하면서 끝내는 건 영 건강에 안 좋았다. 오히려 몸이 더 뻐근해지고 축축 처진다. 이젠 걸신들린 것처럼 안 굴어야겠다고 필사적으로 이미지 메이킹을 하고 있지만 솔직히, 죽을 맛이었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다리 사이로 무릎을 집어넣으며 그의 엉덩이 두 쪽을 꽉 잡고 자신의 쪽으로 확 붙였다. 황경호의 손이 강동현의 얼굴을 감싸고 스스로 입을 맞추고 있었다. 부드러운 손에 맨들맨들하고 쫄깃한 입술, 고양이처럼 까슬한 혓바닥. 무엇보다도 딱 맞춘 것 같은, 아니 그 이상의 이 접촉감. 온몸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입술을 잠깐 떼고 황경호와 눈을 마주쳤다.
“…….”
“…….”
둘 다 헐떡이면서 농밀한 시선을 나누었다. 황경호의 온몸이 확 붉어졌다. 그걸 보며 강동현이 멍청하게 생각했다.
‘아, 좀 성가신 게 뭔 상관이냐….’
강동현은 다시 그와 입술을 맞추면서 그를 번쩍 안아 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침실로 향했다.
“하아… 해도 돼?”
강동현이 그의 입술을 빨면서 물었다. 황경호가 깊은 한숨을 쉬면서 대답했다.
“모르…겠어… 으응….”
*
“와, 이제 8월이라 진짜 덥다.”
정기연이 병원 안으로 들어오며 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좋은 아침, 황 간.”
그러면서 황경호한테 인사를 했다.
“…….”
황경호는 내부 카운터의 의자에 앉아 두 손을 깍지 끼고 거기에 이마를 박고 심각한 자아비판을 하고 있었다.
‘미친놈… 멍청이 해삼 말미잘 핵바보….’
걔랑 또 해버렸다
‘나 진짜 병신인 걸까. 바보? 말미잘? 멍게? 머리가 뇌가 박혀 있으면 이제 같은 실수는 안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전만큼 심하지는 않았지만, 또 뺨에 커다란 반창고를 하나 붙이고 있는 황경호였다. 아직도 온몸이 욱신거린다… 얼굴에 하지 말라고 했더니 온몸을 물어뜯어 놨다. 그 변태 새끼가….
‘정신 좀 차려라, 황경호. 한 달 뒤면 나올 건데 집세를 몸으로 때우는 것도 아니고 뭐 하는 짓이냐고. 쪽팔려 죽겠다, 진짜. 왜 또 그런 짓은 하는데… 왜 그렇고 저렇고 이런 것까지 하게 해주냐고!’
그렇게 절대 안 하겠다고 난리도 치고 별별 짓을 다 했는데 결국 분위기에 휩쓸려 또 쉽게 해버렸다. 강동현은 둘째 치더라도 황경호는 도저히 자기 자신이 이해도 되지 않고 믿을 수가 없었다. 황경호는 쪽팔려서 도저히 병원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
‘절대 안 해. 앞으로 절대 안 한다. 하면 내가 성을 간다.’
황경호는 그렇게 엄청나게 다짐을 하며 땅을 파고 들어갈 것 같은 창피함과 부끄러움을 삼켰다.
그러나 다다음날 강동현이 촬영을 갔다가 이틀 만에 돌아오자,
“힉…! 아앙! 거기잇…! 흑. 아아앙….”
“헉… 여기 좋아? 윽…! 여기? 여기?”
“하아아아앙…!!”
…그냥 빨리 죽어버리는 게 답인 것 같다.
‘죽자. 죽어. 왜 사냐. 죽자고. 그냥 뛰어내리자. 쪽팔려서 못 살겠다….’
“하아….”
황경호가 한숨을 푹 쉬면서 점심으로 시킨 초밥을 먹자 정기연이 그런 그를 물끄러미 보다가 입을 열었다.
“황 간.”
“어….”
“오빠, 분위기가 요즘 엄청 바뀐 것 같아.”
“어?”
황경호가 시선을 돌려 정기연을 보았다.
“뭔가 쎄~한 게… 멍하기도 하고… 뭐라고 해야 되지? 하여튼, 분위기가 완전 바뀌었어.”
“…….”
“요새 좀 사람이 여유 있어진 느낌도 들고.”
정기연의 말은 오히려 황경호를 엄청 심란하게 했다. 얼굴이 벌게져서 고개를 처박고 열심히 밥만 먹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그 집에서 나오고 싶었다. 하지만 8월 21일이 월급날이라 그때까진 꼼짝없이 그 집에 있어야 했다.
‘21 일만 지나면… 21 일만 지나면…!’
빨리 그 마굴 같은 집에서 튀어나와야 했다. 수맥이라도 흐르는 게 분명하다. 8월 말이면 강동현의 드라마도 방영되고 그 이후부턴 아마 엄청 바빠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방심할 순 없었다. 지금도 바빠서 이틀에 한 번꼴로 집에 들어오는데 집에 들어오면 자라는 잠은 안 자고 황경호나 덮치는 변태였다.
최대한 시간을 끌어 늦게 퇴근을 해서 집으로 향했다. 마트에서 저녁 장을 보았다. 이제 해가 길어져 8시 반인데 해가 안 졌다. 소리를 덜 내면서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가니 아직 강동현이 오지 않았는지 조용했다. 황경호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욕실로 가서 손을 씻었다. 황경호가 예쁘게 만들어놓은 건식 바닥재 덕분에 욕실 특유의 습기 찬 느낌이 나지 않아 깔끔하고 깨끗했다. 예전에 살던 집들은 아무리 화장실을 깔끔하게 청소해도 어쩔 수 없이 차갑고 습한 느낌이 났는데 여긴 안 그래서 좋았다.
욕실에서 나와 부엌으로 가서 저녁을 하기 시작했다. 원래 자취를 하고 요리를 할 줄 모르면 제일 먹기 힘든 게 따뜻한 국물 요리였다. 황경호는 김태형에게서 받아온 레시피를 보면서 요리를 시작했다.
홍합을 칫솔로 깨끗하게 씻고 물에다 헹구고 체에 담아두었다. 그리고 냄비에 물을 붓고 크게 썬 마늘과 고추, 생강을 넣고 끓였다. 그 뒤 다시마와 홍합을 넣고 함께 끓이고 좀 끓이고 나면 다시마를 건져내고 거품을 계속 걷어내서 잡내를 없앴다. 그리고 홍합의 입이 벌어지고 국물 색이 하얗게 되면 소금과 후추로 간을 맞추고 좀 더 끓인다. 그 뒤에 청양고추랑 대파를 적당히 넣고 불을 껐다. 음식을 하는 자신이 좀 뿌듯해서 중간중간에 사진도 찍었다.
이런 건 냄새도 많이 안 나고 나더라도 맛있는 냄새라서 크게 싫진 않았지만 그래도 후드는 꼭 켜고 환기를 시켰다. 황경호는 국에다가 밥을 한 그릇 내놓고 냉장고에서 김태형이 해준 꼬막 반찬과 감자볶음, 각종 제철 나물들을 꺼냈다. 그리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행복해졌다.
‘역시 사람은 제대로 된 걸 먹을 때가 제일 행복한가 봐.’
맛있는 걸 스스로의 손으로 마음대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언제든지 행복해질 수 있었다. 황경호는 황홀하게 식사를 마치고 깨끗하게 정리를 하고 샤워를 하곤 카우치에 엎드려 누웠다. 노트북을 켰다.
“보자….”
집을 찾아보면서 동시에 팬커뮤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둘러보고 글도 올렸다. 그리고 금방 요리를 한 것을 찍은 사진들을 정리해서 블로그에다 올렸다. 휴대폰에 레시피가 넘쳐나서 한 번 요리한 것은 사진까지 잘 찍어 깔끔하게 정리해서 개인 블로그에다 올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해온 음식들의 목록을 쭉 보면 뭔가 뿌듯했다. 주중에도 하루에 하나 이상의 요리는 만들고 주말에는 두 개씩 만드니까 이미 서른 개 정도의 레시피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누가 보라고 올리는 것도 아니었지만 뿌듯했다.
그리고 책도 하나 읽기 시작했다. 원래 책은 직장인이 되고 나서는 거의 읽지 않았는데 얼마 전부터 읽고 있었다. 새삼 몇 년 전에 읽었으면 좋았을 걸 하는 것들이 많아서 하루에 몇 장씩이라도 읽고 있었다. 강동현의 집에 있는 책 중에 하나였다. 그의 집에 있는 책들은 보통 어떤 영화나 드라마들의 원작이거나 유명 소설들이 많았고 자기계발서도 몇 권 있었고 세계 명작 같은 것도 한두 권 있었다. 그가 책을 읽는 꼴을 본 적이 없어서 저걸 그가 다 읽었을지는 의문이긴 했다.
그리고 11시가 되어 카우치에 이불을 깔고 누웠다. 미풍으로 선풍기를 틀었다. 에어컨 필터도 열심히 청소했지만 하루 종일 에어컨 바람맞으면서 일하기 때문에 잘 때 정도는 피하고 싶다. 그리고 황경호는 휴대폰을 가지고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12시가 넘어서야 잠에 들었다.
*
“…?”
뭔가… 묵직한 느낌… 황경호는 자신이 엎드려서 자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선풍기의 바람이 스치면서 엉덩이가 시원하게 느껴졌다. 물이 묻는 곳에 바람이 불면 차갑게 느껴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서늘함에 소름이 약간 끼친 살갗에 화인이 남을 것처럼 뜨거운 손길이 느껴진다.
“으응…….?”
황경호는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그 순간 엉덩이에 뜨끈한 게 밀려들어 왔다.
“아아아…!!”
황경호는 카우치를 손으로 꽉 잡으면서 비명을 질렀다. 얼굴이 순식간에 빨개졌다. 끝머리만 들어와서 입구에 걸려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이미 음부가 엄청나게 확장되어 뻐근했다. 그대로 누군가 앞뒤로 흔들면서 안으로 조금씩 조금씩 진입해오고 있었다.
“아앙…! 아! 힉…! 아아…!”
자다가 부지불식간에 당해서 소파에 얼굴을 박고 비명만 질렀다. 막 아픈 건 아닌데, 아픈 것처럼 뻐근하고 늘어나고 약간 무섭다. 처음 할 때는 안 그래도 엄청 무서운데 자고 있는 사람한테 이런 짓을 하니 당연히… 황경호는 허리를 잡은 강동현의 팔을 주먹으로 때렸다.
“미친 거 아냐…! 으윽…! 자고 있는데!”
“미안… 윽… 미안. 일찍 오려고 했는데. 하아… 너 보니까 못 참겠어서….”
강동현이 흥분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요즘 눈만 마주치면 하고 있으니… 황경호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경련하고 있는 엉덩이 쪽의 감각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어서 그의 팔을 계속 때렸다.
“잠깐만…! 하…! 잠깐만… 잠깐만 빼… 하윽….”
그리고 황경호가 스스로 엉덩이를 빼려고 했는데 쫀득하게 맞붙어버려서 안 빠졌다. 황경호는 헐떡거리면서 그와 자신이 연결된 부분을 더듬었다. 검지와 중지를 최대한 벌려도 손가락의 첫마디쯤의 사이까지만 들어가는 강동현의 대물이었다. 반쯤 들어온 것 같은데 완전히 꽉 끼었다.
“하앗… 흑… 아앙… 흑… 지금은 하기 싫어… 아파… 힘들어… 으윽….”
황경호가 힘들어서 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강동현도 숨을 몰아 쉬더니 그를 살폈다. 자는 걸 덮치는 건 잘못된 선택이었나 보다. 몸이 더 굳어 있다.
“알았어… 하… 미안… 뺄게….”
그대로 강동현이 천천히 빼기 위해서 앞뒤로 흔들고 휘저으면서 조금씩 공간을 만들어서 자신의 자지를 빼내려고 했다.
“힉… 히앗… 앗… 흣… 아응… 으응….”
황경호가 엉덩이를 움찔거리면서 신음을 흘렸다. 억지로 들어가긴 하는데 빼내는 건 너무 힘들다… 강동현은 그대로 반쯤 나와 있는 자신의 성기를 황경호의 손으로 주무르게 했다.
“뭐, 뭐 하는 거야….”
“안 빠져. 싸게 해줘.”
“싫어!”
황경호는 온몸이 벌게져서는 그렇게 소리쳤다. 지금 섹스를 제대로 하는 것도 아닌데 그냥 안에다 정액만 싸게 해달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자기 정액을 윤활제 삼아 빼내려는 것이다. 너무 부끄러웠다.
“그러게 왜 자는 사람을 건드려!”
황경호가 화를 냈다. 강동현이 미간을 찌푸리면서 그의 뺨에 입을 맞췄다.
“미안… 하아… 너무 하고 싶었어.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드라마 안 하고 쉴 걸….”
“변태! 고자 임포 불능! 죽어버려!”
“알았어. 알았어….”
황경호는 결국 어쩔 수 없이 그의 기둥과 커다랗고 땡땡한 고환을 손으로 주물러야 했다. 두 손으로 다리 사이에 손을 넣어서 어깨와 가슴, 머리를 카우치에 처박고 엉덩이만 든 채였다. 황경호는 그런 자세나 이런 게 전부 너무 부끄러워서 눈물이 찔끔 났다.
“나쁜놈… 개새끼… 흑… 내가 왜….”
게다가 그 엉덩이엔 남자 자지가 반이나 꽂혀 있었고 말이다. 거기에 그 자지가 싸야 뺄 수 있다. 완전 싫었다. 황경호는 훌쩍거리고 욕을 하면서 그의 자지를 손으로 쓰다듬고 주물렀다. 강동현이 섹시한 신음을 냈다. 그렇게 만지작거리기를 십 수 분… 황경호는 그쪽으로 겨우 고개를 돌렸다.
“너… 이거 가지고 돼…?”
그가 괜히 불감증도 아니고… 남자 성기에서 가장 민감한 끝부분을 만질 수가 없는데 기둥과 고환만 만져서 사정을 할 수 있을까? 강동현은 황경호의 날개뼈 근처를 옷 위로 깨물었다.
“돼… 그러니까 계속 만져줘… 윽.”
그리고 몇 분 더 만지니 강동현이 사정하기 시작했다.
“아… 으윽….”
“아앙….”
황경호는 그의 뜨끈뜨끈한 자지가 내뱉는 뜨끈~한 정액에 몸서리를 쳤다. 강동현은 그대로 꾸욱 끝까지 박아 넣었다.
“히아아아앗…!!!”
정액과 프리컴 때문에 윤활 되어 버거운 느낌으로나마 찌이익 안의 길이 벌어졌다. 황경호가 엉덩이를 마구 경련하며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강동현이 천천히 주르르륵 남성기를 빼내었다. 황경호는 섹스를 격렬하게 한 것도 아닌데도 기운이 다 빠져서 털썩 앞으로 쓰러졌다. 구멍은 곧바로 처음처럼 꽉 조여 다물렸지만, 안부터 강동현의 자지까지 체액이 찌익 연결되었다가 끊어졌다. 안이 욱신욱신했다. 금방 이게 그냥 빼면 될 걸 일부러 안까지 밀어 넣었다가 뺐다.
“나쁜 놈….”
아, 내 엉덩이… 느낌 이상해… 황경호는 다리 사이를 두 손으로 가리면서 몸을 부들 떨었다. 강동현은 자신의 웃옷을 벗어 던졌다. 그는 황경호를 내려다보면서 말했다.
“그냥 하자.”
“…….”
황경호는 원망스러운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몸을 겹쳐오는 그를 끌어안았다.
*
‘아… 컨디션 안 좋아….’
몸이 계속 욱신거렸다. 전에 강동현이 장소 안 가리고 덮칠 때만큼이나 컨디션이 안 좋았다. 어제 자고 있을 때 그가 덮친 게 좀 큰 영향을 미친 것 같았다. 메스껍고 기분이 좋지 않다. 하지만 서비스직이라는 게 컨디션이 안 좋다고 안 웃을 수도 없는 거고, 황경호는 웃으면서 환자들을 응대하고 수술을 서포트 하며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간절히 바랐다.
“다들 오늘도 수고했어요. 조심해서 가고.”
“네, 선생님. 내일 뵙겠습니다.”
황경호는 그렇게 인사를 하고 마무리를 하고 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터벅터벅 발을 끌고 지하철을 타러 갔다. 오늘따라 사람에 치인다. 사람들의 신체가 몸에 닿으면 정말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예전에 이대로 선릉역에서 2호선을 갈아탔더라면 아마 엄청나게 더 사람에게 치였겠지만 선정릉역에서 9호선을 타고 잠실 쪽 지하철을 타니 확실히 2호선만큼 사람들이 우글거리진 않았다.
확실히 지하철 노선도도 빈부 격차가 커….
황경호는 무려 15분 만에 봉은사역에 도착하여 내렸다. 사람이 많아도 확실히 지하철을 타는 시간이 짧으니까 좋다. 그리고 조금 걸어서 곧바로 강동현의 삼성동 아파트인 R파크 1동으로 향했다. 장은 따로 보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전자키 가지고 공동현관을 열고 들어가는데 문득 한숨이 나왔다.
‘오늘 올까….’
황경호는 그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했다. 이제 섹스 같은 건 지긋지긋했다. 안 하고 싶다. 그리고 집으로 들어와서 뜨거운 물을 욕조에다가 틀고 대충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 밥을 먹었다. 요리도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다 먹고 나서 책을 들고 욕실로 향했다. 옷을 벗었다.
얼마 전 청소를 하다가 꽤 좋아 보이는 입욕제들을 발견하였다. 한 번 써볼까 하여 하나 넣어 보았다. 입욕제를 써보는 건 처음이다. 엄청 기분 좋은 꽃향기가 확 퍼졌다. 황경호는 간단히 샤워를 한 후 욕조에 들어갔다. 살을 델 정도로 뜨거워서 차가운 물을 좀 섞었다. 뜨뜻한 물의 온도와 기분 좋은 입욕제의 향기.
황경호는 손을 수건에 닦고 책을 들었다. 읽고 있던 페이지를 마저 읽기 시작했다. 꽤 집중하여 읽고 있었다.
직장에서 내내 차가운 에어컨 바람만 맞으면서 살다 보면 이렇게 더운 여름에도 한기가 끼친다. 따뜻한 물에 혈액순환이 되며 그냥 샤워 정도로는 풀리지 않는 근육들도 노곤히 풀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언제 다 읽어도 상관없다는 듯이 천천히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책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욕실 문이 벌컥 열려서 깜짝 놀랐다.
“…….”
황경호는 저도 모르게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나도 같이 들어가도 돼?”
강동현이었다. 촬영을 마치자마자 달려온 건지 엄청 말쑥하다. 오늘 새벽에 들어왔다가 오늘 새벽에 나갔으면서. 오늘 촬영은 그렇게 많지 않았던 걸까. 황경호는 인상을 찌푸렸다.
“싫어. 나가.”
하지만 벌써 강동현은 욕실 문을 연 채로 옷을 벗고 있었다. 황경호는 한숨을 푹 쉬면서 말했다.
“씻고 싶으면 침실 욕실에 가.”
“그냥 같이해.”
“싫어.”
강동현은 옷을 아무렇게나 욕실 밖에 던져두고 성큼 욕조 안으로 발을 넣었다. 황경호가 다리를 확 움츠리며 몸을 모았다. 강동현은 욕조의 틀을 잡으며 황경호의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욕조 안으로 들어왔다. 황경호가 들고 있는 책을 뺏어서 그가 만들어놓은 건식 바닥 위에다 던지고 곧바로 입을 맞추려고 했다.
“싫다니까!”
황경호는 그의 얼굴을 밀어내곤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바스타월을 들고 온몸을 감싸듯 두르고 욕실 밖으로 얼른 나갔다. 역시 남의 집에서 더부살이하는 것은 불편하다. 개인적인 공간도 없고 개인적인 시간도 없다. 빨리 나가고 싶다. 강동현이 잘 집에 들어오지 않으니까 좋은 집도 좋은 것이었지 그가 저렇게 시간만 나면 돌아와서 섹스를 하려고 들 때는 역시 채무를 독촉당하는 것 같다.
아니, 그러니까…. 그가 돌아올 때마다 눈이 마주치고 그래서 충동적으로 입을 맞추고 거기에 호응하여 잠자리를 가질 때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오늘따라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랬더니 지금까지 했던 섹스들도 그런 것이었던 것 같고… 황경호는 바스타월에 얼굴을 묻고 잠시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건 아니라는 거 알잖아. 오늘 컨디션이 좀 안 좋아서 그런 거야….’
황경호는 그렇게 스스로에게 설명을 했다. 이유도 모르게 자신을 감추고 싶어 바스타월로 등허리를 두르고 두 귀퉁이를 모아 거기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새하얗고 두터운 타월은 푹신푹신하고 좋은 냄새가 나서 조금 마음이 안정되는 느낌이 들었다. 드레스룸까지 도망쳐서 그렇게 있는데 곧 드르륵 드레스룸의 문이 열리면서 알몸에 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는 강동현이 나타났다.
“왜 그래.”
그러면서 그가 다가와서 황경호의 허리를 훅 끌어당겼다. 황경호는 깜짝 놀랄 정도로 몸이 경직되는 걸 느꼈다. 강동현은 벌써 뭐에 취한 것 같은 눈빛이었다. 황경호는 다시금 심장이 뚝 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역시
그렇게 생각하자 갑자기 심장이 꽉 조이면서 수치스러움이 확 일어났다. 황경호는 바스타월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강동현이 황경호를 꽉 끌어안고 얼굴과 목덜미에 입술을 지분거리며 그것을 벗기려고 하자 더더욱 힘을 주었다.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하지 마….”
황경호가 덜덜 떨면서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니다. 아니다. 아니라는 거 아는데 갑자기 이런다. 그렇게 머리 한구석이 말했다. 하지만 또 다른 한구석이 말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왜 그래?”
강동현이 얼굴을 드디어 떼고 황경호를 내려다보았다. 황경호는 한 손으로 양 눈썹을 감싸며 그에게서 얼굴을 가렸다.
“오늘 기분이 좀….”
“…….”
강동현이 황경호의 손목을 잡고 치웠다. 얼굴을 드러나게 하고 가만히 그 얼굴을 관찰했다.
“괜찮아?”
강동현이 조금 걱정스러운 기색으로 물어보자 갑자기 눈물이 울컥 나왔다. 그러자 강동현이 깜짝 놀라 굳어버리더니 대단히 당황해 했다.
“왜, 왜 그래? 나 뭐 잘못했어? 어? 왜 그러는데?”
황경호는 인상을 확 찌푸리며 타월로 얼굴을 거칠게 문질러냈다.
“나도 몰라… 그러니까 건드리지 좀 마.”
“어? 어… 미안….”
강동현이 손을 팟 떼며 물러났다. 황경호는 다시 욕실로 돌아가서 문을 쾅 닫고 잠갔다. 그리고 다시 욕조로 들어갔다. 강동현은 그대로 한 손으로 이마를 감싸며 고민했다.
‘나 또 뭐 잘못했나? 뭐지? 뭐야?”
강동현은 결국 침실 욕실에서 샤워를 할 수밖에 없었다. 다 씻고 나와 새로 산 거대한 TV를 틀고 성의 없이 채널을 돌리고 있었다. 그러고 있으니 오랜 목욕을 한 황경호가 밖으로 나왔다. 황경호는 카우치에 앉아 있는 강동현을 보고 별로 탐탁지 않은 얼굴을 했다.
“오늘은 빨리 안 자?”
“…어… 그렇게 잠은 안 오는데….”
아주 그냥 강동현을 눈앞에서 치워버리고 싶은 기색이 역력했다. 강동현은 한 마디, 한 마디 지뢰라도 밟는 심정으로 천천히 입을 뗐다.
“오늘 병원에서 무슨 일 있었어?”
“아니.”
황경호는 강동현에게서 멀찍이 떨어져서 카우치에 앉았다. 그리고는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열심히 찾아보았다. 힐끗 보니 원룸을 구하는 어플을 틀고 있다. 강동현은 좀 놀랐다.
“뭐야… 진짜 집 나갈 거야? 왜?”
강동현은 황경호의 옆으로 성큼 다가가 앉았다. 황경호는 가까워진 그와 자신의 거리를 좀 불쾌하게 여기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원래부터 나가기로 했잖아. 22일 되면 바로 나갈게.”
“…….”
강동현은 움찔움찔하면서 계속 뭐라고 하려다가 한숨을 푹 쉬면서 한 손으로 자기 머리를 붙잡았다.
“아… 나 또 뭐 잘못했어? 그냥 말해주면 안 돼? 나 이런 거 진짜 못하는 거 알잖아.”
“너 잘못한 거 없어.”
“아, 진짜 왜 그러는데. 어? 말 좀 해보라니까.”
“너 계속 여기서 살아도 된다고 말해주는 건 고마운데 그래도 난 내 집 있는 게 좋은 것 같아.”
“뭐가 불편한데? 방 없어서 그래? 이사 갈까? 여기 좀 더 위층으로 가면 방 두 개짜리도 있고 세 개짜리도 있어. 너 이 아파트 좋아하잖아.”
“뭐하려고 그런 돈을 써.”
“아니, 진짜 왜 그러는데? 답답하게. 말로 하라고, 말로.”
강동현이 황경호의 턱을 잡고 자신의 쪽으로 확 돌렸다. 그러자 황경호가 확 하고 이상한 표정을 짓더니 강동현의 손을 바로 밀어냈다.
“오늘은 좀… 만지지 마.”
“…진짜 왜 그래? 응? 왜 그러는데.”
강동현이 답답해서 죽으려고 했다. 하지만 황경호도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황경호는 손으로 눈썹의 앞머리를 꾹 누르며 자신 없는 어조로 말했다.
“나도 잘 모르겠어… 그냥… 안 만졌으면 좋겠어… 지금까지 잘 해놓고 이러는 거 우습긴 한데… 지금은 진짜… 안 만졌으면 좋겠어. 혼자 있고 싶어. 빨리 집도 구해서 나가고 싶어.”
“…….”
“미안….”
사과까지 하고 나니 어쩐지 기분이 좀 더 가라앉는다. 황경호도 정말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또 우울증이 도진 것일까. 황경호는 결국 그 분위기를 견딜 수가 없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갑과 휴대폰을 챙겼다.
“나 오늘은 태형이 형한테 갈게.”
강동현이 그의 손을 잡았다.
“가지 마….”
그는 한숨을 쉬면서 황경호를 올려다보았다.
“앉아.”
황경호의 손을 부드럽게 끌어당겨 다시 카우치에 앉게 했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쪽으로 몸을 돌리고 카우치의 등에 팔꿈치를 얹은 채 그 손을 자기 입술 쪽에 대고 황경호의 얼굴을 가만히 관찰했다. 다른 손으로 황경호의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
“…….”
침묵이 흘렀다. 황경호가 다시금 일어날까 말까 할 때 강동현이 입을 열었다.
“아무 얘기나 해봐.”
“…어?”
“그냥 하고 싶은 얘기나 오늘 병원에서 있었던 일이나.”
“없는데….”
“그럼 그냥 생각나는 대로 말해봐.”
“갑자기 왜….”
“그냥. 니가 무슨 생각하는지 알고 싶어서.”
황경호는 그제야 강동현을 좀 돌아보았다. 강동현은 진지하게 들을 생각인지 가만히 황경호를 바라보고 있었다. 황경호는 머뭇거리다가 입을 뗐다.
“오늘 좀 컨디션이 안 좋아서… 아침부터 쭉 일할 때 힘들긴 했어.”
“아, 진짜? 왜.”
그러자 황경호가 또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어젯밤에 니가 갑자기….”
“그거 때문에 맘 상한 거였어? 왜? 어제 결국 괜찮았잖아.”
강동현이 마치 별게 아니었네, 라는 말투로 말을 끊고 들어오자 황경호는 갑자기 할 말이 없어졌다.
“응….”
황경호는 다시 테이블로 고개를 돌렸다.
“…….”
“…….”
다시 침묵이 흘렀다. 황경호는 역시 김태형 집에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강동현의 손을 슬쩍 밀어냈다.
“일단 나… 갈게.”
그러자 강동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다시 손을 꽉 잡았다.
“가지 말라니까.”
황경호도 답답했다.
“왜. 오늘 밤만 잠깐 갔다 오겠다는데. 아, 좀 놔…!”
“나 니가 말하는 대로 이제 다 해주잖아. 그냥 말로 하면 편한데 왜 계속 말을 안 해?”
“나도 모른다니까!”
황경호가 소리쳤다.
강동현이 자신의 몸을 헤아리지 못해 병에 걸리고 자신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해 황경호를 좋아한다는 걸 깨닫는 데까지도 무려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던 것처럼 황경호도 자신을 사로잡고 있는 우울에 대해서, 아니, 자기 자신에 대해 헤아리지 못했다. 그리고 원래 사람이란 것이 자기 자신의 상태를 항상 명확하게 진단하면서 사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원래 스스로의 마음만큼 기만적인 게 없는 법이다. 원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원치 않는 것도 원한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마음이었다.
“계속 말하라고 하지 마! 나도 모르는 걸 어쩌라고! 오늘 아침부터 기분이 안 좋은 걸 어떡해! 니가 어제 갑자기 쑤셔 박아서 몸이 아픈 걸 어쩌라고!”
“그건… 미안. 근데 그 뒤에 그냥 평소대로 해서 아팠을 거라고는… 싫었으면 그때 말하지.”
“그건….!”
황경호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래… 그렇네. 싫은 거 싫다고 말 못 하는 내가 바보네….”
그렇게 말을 하자 황경호는 지금이 아니라 바로 어젯밤에 자신이 강동현과 정말 섹스를 하기 싫었다는 걸 처음으로 깨달았다. 싫은 걸 싫다고 말을 안 한 게 아니라 싫다는 사실조차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싫은 섹스를 억지로 하니 탈이 나고 컨디션이 안 좋은 것이었다. 안 그래도 그와 자신은 안 좋은 섹스로 이미 많은 나쁜 기억들을 쌓았지 않았던가.
황경호는 어쩐지 깜짝 놀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째서 싫다는 것조차 몰랐을까. 싫은 걸 참은 적은 많았지만 싫다는 걸 몰랐던 적은… 아니, 몰랐다면 아마 지금까지 비슷한 일이 있었어도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도대체 그런 일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스스로를 이렇게나 모르고 있다… 황경호는 덜컥 겁이 나기까지 했다.
“왜 또 그런 식으로 말해… 내가 잘못했어. 애초에 너 자고 있는데 그렇게 건드리는 게 아니었는데. 앞으론 조심할 게.”
“…….”
어쩐지 모텔에서 그와 충동적으로 입을 맞추고… 그리고 했던 섹스가 생각났다. 처음에 황경호도 입을 맞추었으니 섹스까진 원치 않았지만 결국 그것까지 해버리고, 해버리고 나니 그다음 날 섹스까지도 거부할 수가 없었다. 분명히 그것도 싫었을 것이다. 하지만 싫다고 말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몰랐다? 아니, 외면하고 있었다. 싫은 걸 억지로 당했다는 비참한 자신으로부터. 그래서 그 뒤에 그가 하는 것도 그냥 두었던 게 아닐까. 이러고 질리면 끝날 거야, 그러니까 괜찮아, 이런 식으로 합리화하면서 정작 싫은 걸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있던 건 황경호였다. 실제로 강동현은 황경호의 본심을 듣자마자 바로 그 행동을 멈추었다.
강동현이 술에 취해서 멋대로 고백을 하고 그것을 믿어 섹스를 했던 날, 바로 그다음 날도 생각났다. 강동현이 아무것도 기억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 앞에서 황경호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정말은, 그가 기억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이 싫었을 것이다. 그런데 창피하니까 차라리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게 낫다며 계속 합리화를 했다. 또 자신의 감정을 외면해버린 것이다.
초록이 입양일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를 다시 못 만나게 되는 게 슬프고 싫었지만 다 잘된 일이라며 끊임없이 합리화를 했다. 그래서 아이가 떠나고 남겨진 공허함과 슬픔을 모르는 척 해버렸다. 매일 울고, 매일 우울했지만 그게 자신의 감정을 외면해서 생긴 일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나… 왜 이렇게 살지….”
황경호가 문득 중얼거렸다.
“뭐가.”
“아니… 자기가 뭘 싫어하는지 뭘 좋아하는지도 잘… 몰라.”
“무슨 말이야?”
황경호는 머리가 아팠다. 역시 여전히 제대로 설명을 할 수 없었다. 얼마나 많은 부분을 그런 식으로 외면해 왔을지 감이 안 잡혔다. 황경호는 가만히 스스로 생각을 해보다가 문득 강동현을 쳐다보았다.
“너 말이야….”
황경호는 강동현의 눈을 다시 보았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그때 모텔에서 아침에… 내가 제대로 싫었다고 했으면 그 뒤로 그렇게 안 했을 것 같아?”
황경호의 뜬금없는 질문에 강동현이 인상을 확 찌푸렸다.
“당연히 안 해. 그리고 안 했을 것 같냐는 뭐야. 너 진짜….”
“진짜?”
“진짜야. 진짜로. 아, 씨… 그땐 정신 좀 차렸을 때라고.”
“…….”
“솔직히… 전 여자친구랑 헤어지고 나서부터는 좀 정신 차렸어. 그리고 니가 나한테 내가 제일 싫고 끔찍하고 혐오스럽다고 다시는 나타나지 말라고 했을 때도….”
강동현은 토씨 한 자 안 빼고 다 기억하는지 그렇게 하나하나 말했다.
“진짜 화나서 미칠 것 같았거든. 솔직히 영지가 헤어지자고 했을 때도 화는 전혀 안 났는데… 그리고 니가 나한테 먼저 전화해줘서… 엄청 다행이라고 생각했었어.”
“…….”
“근데 그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도 내가 너 안 건드렸어야 했는데… 아… 예전 얘기하면 내가 할 말이 없다.”
강동현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그는 계속 말을 이었다.
“그래도 난 너랑 계속 티격태격대는 것도… 좋아했던 것 같아.”
“…….”
“너 놀리는 거 세상에서 제일 재미있어.”
“…죽여 버린다, 진짜.”
황경호의 말을 듣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이쪽이 주절주절 말을 하였다. 그런데 의외로 상대의 분위기가 좀 풀어진 게 느껴졌다. 여전히 뭐가 맞고 틀린 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이걸로 됐나?’
강동현은 황경호의 머리카락을 툭툭 건드리다가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키스해도 돼?”
강동현이 물었다. 황경호가 갑자기 약간 인상을 쓰면서 그를 노려보았다.
“너 솔직히… 그냥 쉽게 하고 싶어서 계속 집에 있으라고 하는 거지?”
황경호가 갑자기 훅 묻자 강동현이 말문이 턱 막혔다. 황경호는 털을 세우듯 확 분노하더니 강동현의 어깨를 주먹으로 퍽 쳤다.
“역시! 내가 그럴 줄 알았어!”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죽어! 죽어! 죽어 버려!! 내 몸에 다시는 손대지 마!!!”
“아니…!! 잠깐만! 아니라니까! 야! 내 말 좀…! 야!!!!”
황경호는 강동현을 마구 때리고는 침실로 들어가서 문을 확 잠가버렸다. 잘하다가 대답 한 번 빠릿하게 못해서 다 망쳤다. 이래서 인생은 역시 타이밍이다.
*
그 이후로 강동현은 카우치로 쫓겨났다. 황경호는 침실로 들어가서 꼭꼭 숨어서는 이쪽에는 얼굴도 내밀지 않았다.
‘아니, 진짜….’
요즘 사이가 정말 좋아서(?) 근 2주 정도는 정말 꿈만 같았다.
집에 돌아오면 그가 있고 눈이 마주치면 입을 맞추고 입을 맞추면 어느샌가 하고 있고… 그와는 이래저래 계속 경험이 있었지만 매번이 달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모텔에서 했을 때가 제일 좋았다고 생각했는데, 어쩔 수 없이 당하는 게 아니라 같이 하는 건 정말….
‘걔는 도대체 뭘 먹길래 그렇게 잘 느끼지? 뭘까? 왜 그렇게 기분이 좋지? 왜?’
강동현은 가만히 그런 고민을 하고 있었다.
“강 배우.”
“아, 네. 선배님.”
“요즘은 많이 안 바빠?”
8월 말 방영 예정인 <시크릿 블러드>를 같이 찍고 있는 원로배우였다. 그는 자판기 커피를 하나 강동현에게 건네며 말을 걸었다. 현재 둘 다 대기 중이었다.
“괜찮습니다. 지금은 <시크릿 블러드>만 찍고 있어서요.”
“그래? 다행이네. 강 배우 이거 찍다가 또 실려 갔다는 기사 뜨면 어쩌나, 하고 있었지.”
“아닙니다. 저 사실 튼튼합니다.”
궂은 스케줄로 병원 신세를 몇 번 졌더니만 사람들이 그를 병약자로 취급한다. 강동현이 웃으면서 대답하자 상대도 그렇게 호응했다.
“그래. 보기에는 이렇게 튼튼한데. 육군 병장 만기 제대했다며?”
“네. 아, 제가 좀 일 중독이라 스케줄 생각 안 하고 일을 받아서… 반성 많이 했습니다.”
“그래. 강 배우. 1, 2년 갈 것도 아니면서 관리 잘해. 응? 지켜본다?”
“예, 감사합니다.”
그렇게 깍듯이 인사를 했다. 안 그래도 강동현이 스케줄로 초조해하는 걸 봐서 그런 것일까. 저런 것도 일종의 경고인 것이다. 한국은 오지랖이 넓디넓어서 좁은 비즈니스 세계에서 잘 살아남으려면 처신을 잘해야 한다.
‘하긴… 요즘은 집에 가고 싶어서 좀 급하게 굴었지.’
강동현이 좀 반성했다. 이런 적은 처음이다. 뭘 해도 항상 일이 우선이었는데. 강동현은 자신의 양 뺨을 살짝 치고는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다시 촬영에 집중했다. 이번엔 지방 촬영이니 어차피 3일은 집에 가기 글렀다.
‘근데 22일이면 이제 일주일 정도밖에 안 남았는데….’
진짜 나가면 어떡하지. 강동현은 숙소에 들어와 누워서 자라는 잠은 안 자고 고민했다. 황경호가 쉽게 하고 싶어서 집에 계속 있으라는 거 아니냐며 버럭 화를 내긴 했지만, 굳이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여자를 사귈 때처럼 보기만 해도 좋고 사랑스럽고 이런 건 아직 잘 모르겠지만… 집 안에서 혼자서 이것저것 하고 있는 걸 보면 귀엽긴 했다. 그러면 또 괜히 놀리고 싶고 키스하고 싶고 그러다 보면 하고 싶고 그러니까.
‘그래서 그런가. 괜히 보고 싶네….’
언제나 그를 보면 온몸이 근질거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건드리고 싶고, 만지고 싶고. 반응을 할 때까지 귀찮게 하고 싶다.
그렇게 3일을 꼬박 촬영에만 매진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이제 곧 방영이라 일정이 점점 더 빡빡해졌다. 서울에 도착하지 11시였다. 집에 들어가니 불이 켜져 있었다.
혼자 살 때는 언제나 컴컴한 집에 들어오곤 했다. 독립한 지 꽤 되었고 혼자 사는 게 훨씬 마음이 편하던 강동현이었다. 그래서 결혼을 하기 전에 누군가랑 이렇게 같이 또 살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나 왔어.”
“…응.”
황경호는 거실의 통유리 앞에 앉아서 책을 보고 있었다. 강동현이 강릉으로 촬영을 갔다 오는 사이 못 보던 테이블과 의자가 생겼다. 작은 테이블 하나에 1인용 의자 하나.
“이건 뭐야?”
“아… 그냥 하나 있었으면 싶어서 어제 그냥 내 돈으로 샀는데… 별로야?”
“아니….”
작은 테이블 하나에 1인용 의자. 강동현이 물었다.
“왜 하나만 샀어?”
“응?”
“소파.”
황경호가 앉아있는 짙은 회색의 의자를 가리켰다. 황경호는 거기 위에 앉아 팔걸이에 팔을 걸고 편하게 책을 펼쳐 보고 있었다. 강동현의 질문이 의외인지 황경호가 이상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어차피 너 집에도 잘 없고… 그냥 내가 창문 앞에 앉아서 책 보고 싶어서 산 건데?”
“그래도 하나 더 사. 사람이 둘이 사는데.”
“나 돈 없어.”
“내 카드 있잖아.”
“아… 어… 알았어.”
황경호는 그다지 탐탁지 않다는 듯이 대답했다. 강동현은 그대로 옷을 벗어서 드레스룸의 선반 위에다 던져놓고 욕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샤워를 하고 나왔다. 그리고 거실의 큰 카우치에 앉았다.
“…….”
“…….”
강동현은 가만히 카우치에 옆으로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 황경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아직도 화났어?”
“뭐가?”
황경호는 강동현이 들어오고 나서 한 번도 그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강동현은 그냥 다른 질문을 했다.
“…무슨 책을 그렇게 봐?”
“그냥. 집에 있는 책.”
“너 근데 그거 다 얼마 주고 샀냐?”
“응? 비싼 건 아닌데… 그래도 너네 집에 넣는 건데 너무 싼 것도 그렇고 해서… 두 개 해서 50만 원 정도….”
황경호가 우물쭈물 대답했다. 아마 그 정도도 이 집에 들이기엔 싼 축에 속할 것이다. 식기 몇 개만 해도 백만 원이 넘는 물건을 쓰는데… 딱히 그런 건 상관없는지 강동현이 또 주제를 바꿔 물었다.
“그래서 22일 날 진짜 나갈 거야?”
“…….”
그러자 황경호가 아차, 하더니 머리를 잡았다.
“아, 나 이거 왜 샀지… 사면 안 되는데….”
이미 이렇게 사용했으니 환불은 글렀다. 황경호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창가에서 책을 읽을 때 필요한 1인용 의자와 작은 테이블 하나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어제 산 것이었다. 진짜 22일 날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냥 모자란 돈은 태형이 형한테 빌리자… 몇십 만 원 정도니까… 바로 갚을 수도 있고….’
황경호가 한숨을 쉬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응.”
황경호가 이렇게 대답하자 강동현이 인상을 찌푸렸다.
“안 나가면 안 돼?”
“원래부터 나가기로 했잖아.”
황경호가 대답했다.
“어차피 나 이제 진짜 바빠져서 집에 잘 못 들어오는데… 그럼 괜찮잖아.”
“원래 너도 혼자 사는 게 편한 거 아냐? 나 때문에 괜히 불편하고.”
강릉으로 촬영가기 전 몇 날은 카우치에서 자야 했던 강동현이었다. 게다가 이 집 자체도 독신이 살기에 최적화되어 있는 집이었다. 넓은 침실 하나와 넓은 거실 하나, 보여주기 위한 용인 것처럼 보이는 멋들어진 주방. 드레스룸과 욕실 2개.
“난 너랑 같이 있고 싶은데.”
강동현이 한숨을 섞인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내내 책만 쳐다보고 있던 황경호가 고개를 돌려 강동현을 쳐다보았다.
“…….”
“…….”
강동현은 이제 진짜 못 참을 것 같았다. 몸이 근질거려서 죽겠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어깨에 올라와 있던 수건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그리고 창가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의 손에서 책을 빼앗아 테이블 위에 놓고 곧바로 그가 앉아있는 의자의 팔걸이를 잡으며 입을 맞추었다.
“으응…!”
그의 턱을 잡고 혀를 쑥 집어넣었다. 황경호가 강동현의 팔을 잡았다.
“혀 내밀어봐….”
“아응… 하아….”
그가 눈을 감고 입을 벌리자 강동현은 그를 등받이로 밀어붙이면서 그의 혀를 쪽쪽 빨았다. 끝부터 안까지 핥았다. 그가 부르르 몸을 떨면서 신음을 흘렸다. 강동현은 그를 일으켜 세우고 번쩍 안아 들었다. 황경호는 강동현의 어깨를 잡은 채 이번엔 본인이 고개를 숙여 강동현에게 입을 맞추었다.
“흐응… 으응… 아앙….”
강동현은 그를 거실의 큰 카우치 위에다 눕혔다. 그러자 황경호가 움찔하면서 눈을 떴다.
“여긴 싫어… 더러워지잖아.”
강동현은 그가 그런 식으로 말하니 오히려 확 하고 돋는 느낌에 그냥 그의 말을 무시하고 더 입을 맞추었다. 오늘따라 유달리 괴롭히고 싶었다. 거의 일주일만이라 그런가.
‘빨리 넣고 싶어….’
얘가 이쪽은 전혀 상관없이 굴 때면 항상 그의 표정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예전에도 마찬가지였다. 이제는 편하게 반말을 쓴다고 해서 그의 그런 태도가 안 나오는 건 아니었다. 황경호는 언제나 강동현과 선을 긋고 싶어 했다. 그런 거리감을 느낄 때면 언제나 그를 괴롭히고 싶어진다.
그것도 이젠 정말 야하게.
“으응… 아앙…!”
그의 다리를 벌려서 자신의 허리를 감싸게 하며 강동현은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지그시 그의 몸을 짓눌렀다. 서로의 하체가 꾸욱 비벼지며 황경호가 움찔하며 몸을 떨었다. 그대로 입술을 붙였다 뗐다 다시 깊게 혀를 넣어 안을 핥았다. 그리고 마음이 급해서 얼른 그의 하의를 대충 끌어내리고 자신의 것도 그런 식으로 한 후 살을 맞대었다.
“하앗…!”
피부가 맞닿으니 금세 황경호의 온몸이 새빨개졌다. 아, 꼴린다. 미치겠다… 강동현은 그의 티셔츠를 위로 쭉 끌어올리고 그의 가슴을 만졌다. 그리고 계속 입을 맞추면서 은근하고 부드럽게 허리를 놀렸다. 서로의 것이 비벼졌다.
“아으응… 으응… 하아… 아으으….”
“하아… 아, 더워….”
강동현은 입고 있는 티셔츠를 벗어서 던져버리고, 테이블 위로 가까스로 손을 뻗어 에어컨 리모컨으로 에어컨을 틀었다. 강동현은 그의 뺨을 핥고 깨물면서 속삭였다.
“기분 좋아?”
“하앙… 으응….”
물어보니까 움찔하면서 황경호가 시선을 피했다. 강동현은 그의 젖꼭지를 엄지로 계속 문지르다가 검지와 엄지로 잡아서 살살 잡아당겼다.
“흐응… 싫어… 아앙… 아파….”
“기분 좋냐니까… 내가 물어보잖아.”
강동현은 그의 다리에 걸려있는 옷이 짜증이 나서 거칠게 확 벗겨서 던져버렸다. 그리고 그의 다리가 자신의 허리를 감싸게 했다. 그리고 좀 더 안정적인 자세로 그의 다리 사이에 자신을 문질렀다. 서로의 것이 비벼지며 가장 느끼는 부분에 스칠 때마다 둘 다 신음이 거칠어졌다.
“응? 기분 좋지? 어? 하아….”
“아… 가슴 좀… 아아앙… 아파. 아파… 아프다니까…! 아아앗!”
강동현이 기어코 엄지와 검지로 마구 왼쪽 젖꼭지를 마구 꼬집어 비비자 황경호가 비명을 질렀다.
‘아, 너무 괴롭히면 안 되는데….’
강동현의 머릿속 어딘가에서는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하지만 참을 수가 없었다. 잘하게 해주다가 갑자기 못 하게 하니 더 욕구불만이 쌓이는 것 같았고 촬영한다고 보지도 못했더니 괜히 심술이 찼다. 온몸에 땀이 차올라 화끈해졌다.
“빨리 기분 좋다고 말해.”
강동현은 양껏 괴롭혀서 완전 빨개진 상대의 왼쪽 가슴을 혀로 부드럽게 핥았다. 황경호가 몸을 바르르 떨었다.
“아앙… 그만해… 하앗. 으으응… 아아… 흑… 아. 앗…! 아…! 아아아앙…….”
황경호가 눈을 질끈 감으며 얼굴을 새빨갛게 붉혔다. 야시시하게 신음을 흘리면서 하반신을 경련했다. 강동현은 그의 이마를 엄지로 쓸어 올리며 그의 턱과 뺨을 사악 한 번 핥아 올렸다. 진짜 다 깨물어서 먹어버리고 싶었다. 그대로 그의 입 안에 손가락을 넣었다.
“읍…! 으응… 아… 읍….”
그의 타액을 잔뜩 묻히고 그의 입술을 부드럽게 손가락으로 문지르고 아래로 내려갔다. 그의 젖꼭지를 미끌한 손가락으로 한 번 문지르고 그의 부드러운 배에 이르러 그의 체액을 같이 묻혀서 계속 아래로 내려갔다. 그동안 내내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
“…….”
그리고 질척질척한 그의 것을 손으로 한 번 훑자 허리를 떨며 간지러운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으응….”
강동현은 그의 입술에 다시 입을 맞추었다. 눈을 뜨고 그의 눈을 바라보다가 같이 눈을 감고 다시 입맞춤에 집중했다. 강동현은 그의 음부를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부드럽고 약간 미끄럽다. 그리고 바짝 조여져 있는 그 구멍에 가운뎃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아…!”
황경호가 입술을 떼면서 강동현의 팔을 잡았다. 그의 거기를 만질 때면 언제나 이랬다. 아직 무서운 모양이었다. 푹신푹신하고 부드럽고 쫄깃한 안을 만지면서 조금이라도 익숙해지게 만들기 시작했다.
“흑… 아… 이거… 싫어….”
“거짓말.”
손가락 하나도 끊을 듯이 조이니 또 더 심술이 나서 좀 급하게 하나 더 넣었다. 검지와 중지가 들어가자 파르르 파르르 떨며 경련했다.
“힘 좀 빼… 응? 빨리 넣고 싶어….”
황경호가 얼굴을 확 붉히며 입을 꾹 다물고 강동현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강동현은 그 얼굴이 마음을 끌어서 부드럽게 그의 안을 만지며 그의 입술에 쪽 하고 입을 맞추었다.
“왜….”
“너 진짜… 흐읏… 그냥 하고 싶어서… 이러는 거지?”
“…….”
또 이 소린가. 그리고 이번에도 대답을 빨리하지 못했다. 그는 마음이 확 상했는지 표정이 잠깐 일변하며 얼굴이 빨개졌다가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는 말했다.
“됐어… 못 들은 걸로 해.”
벌써 또 몸이 뻣뻣해졌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는 눈을 감았다. 강동현은 온몸이 근질거리고 가슴이 떨리고 뭔가 다 참을 수가 없어서 그의 안에 두 손가락을 끝까지 훅 찔러 넣었다가 최대한 벌리면서 빠져나왔다.
“흐아아앗…!”
황경호가 깜짝 놀라며 몸을 바르르 떨었다. 강동현은 잔뜩 흥분해선 그의 음부에 자신의 것을 비볐다.
“내가 뭐라고 해줬으면 좋겠어?”
“흐읏… 잠깐만… 아직….”
“너랑 이러고 있으면 미칠 것 같이 기분 좋아… 죽을 것 같다고… 못 보면 보고 싶고… 보고 있으면 괴롭히고 싶고… 키스하고 싶고 만지고 싶고….”
그렇게 계속 귀에다 속삭이니 황경호가 확 그의 몸을 밀어내었다. 얼굴이 빨개져 있었다.
“하지 마….”
아, 죽겠다… 에어컨을 가장 강하게 틀어 놨는데도 땀이 주르륵 흘렀다. 강동현은 턱에 맺힌 땀을 닦으며 상대를 내려다보았다.
“그래서 하고 싶어. 그게 뭐 잘못됐어?”
“…….”
강동현은 그대로 팽팽하게 기립하여 뜨거워진 자신의 남성기를 황경호의 음부에 찔러 넣었다.
“아아…! 들어와…!”
황경호가 고개를 뒤로 확 꺾으며 탄식이 섞인 신음소리를 냈다. 허리가 뜨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의 온몸이 확 빨개지면서 양손으로 강동현의 양팔을 세게 잡았다.
“으으윽… 아윽….”
끝만 넣었는데도 엄청나게 조여서 강동현이 신음을 흘리며 그의 양 엉덩이를 꽉 잡았다. 뭉개질 것 같다. 그대로 어떻게든 비집어 벌리면서 천천히 안으로 집어넣었다.
“하아앗… 으아앗… 힉…! 아아앙…..”
황경호가 눈물을 주륵 흘리면서 허리를 비비 꼬았다. 그는 새빨개진 얼굴로 애원했다.
“아아앙…하앗… 잠깐만.. 아앙.. 안 들어가. 안 들어가… 하앙. 더 넣지 마… 아아앙….”
“더 들어가… 하아… 힘 좀 더 빼 봐… 응?”
강동현은 황경호의 엉덩이에서부터 허벅지, 무릎, 종아리까지 한 번 슥 쓰다듬고 그의 다리를 잡아 종아리를 깨물었다. 그리고 입을 맞추면서 허리를 돌리며 은근하게 더 진입했다. 그의 입구가 엄청 움찔거리면서 버겁게 한 입씩 강동현의 대물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하아….”
“흑.. 아… 으….”
겨우 어느 정도 집어넣자 강동현이 길게 한숨을 쉬었다. 황경호는 엄청 버거워하면서 부들부들 떨었다.
“흑… 안 돼… 아….”
“괜찮아… 응?”
강동현은 그의 뺨을 더듬어 입을 맞추고 깨물었다. 기분 좋다… 그리고는 짓궂게 한마디 했다.
“빨리 한 발 싸줄게.”
퍽. 황경호가 그의 팔을 주먹으로 때렸다. 그리고 그대로 끌어안고 피스톤 질은 하지 않은 채 은근히 허리만 돌렸다. 그가 적응하게 하려면 어쩔 수 없었다.
“하앙…! 앙! 히익…! 으응…! 하아…… 흣… 아….”
처음엔 여전히 몸이 경직되어 힘들어했다. 아플까 봐 겁이 나서 그런 것 같다.
“으읏… 흐으… 아으… 으응….”
하지만 이렇게 깊은 곳만 은근히 꾹꾹 누르면 또 생각보다 점점 몸이 이완되면서 엄청 잘 느꼈다. 버거워 하고 싫어하면서도 잘 느끼는 게 보이니까 자꾸 밀어붙이게만 되는 것 같다.
“아아앙… 흐응… 앙… 하앗… 아앙….”
황경호는 눈을 지그시 감고 애달픈 신음을 흘렸다. 강동현이 황경호의 허리를 잡고 붕 뜨게 들어 원을 그리며 원포인트만 꾹 누르고 비비고 있었다. 이렇게 돌려 봤자 지금은 어차피 안이 휘저어지지도 않았다. 황경호의 것이 어느샌가 또 서서 녹을 듯이 젖어가고 있었다.
“여기 그렇게 기분 좋아?”
강동현은 자신의 체액이 점점 나와 그의 안이 조금씩 부드러워지는 걸 느끼면서 흥분했다. 뻑뻑하고 미친 듯이 조이면서 진입조차도 힘든 몸이 강동현에 의해서 점점 풀어지고 부드러워지고 쫄깃해지는 게 좋았다. 조금씩 조금씩 더 집어넣었다. 황경호는 자신의 꽉 잡고 있는 강동현의 팔을 엄지로 살살 쓰다듬고 있었다.
“흐으응…… 아아아아앙…….”
황경호가 입을 벌리며 입술을 떨었다. 턱을 약간 들고 시선을 몽롱하게 한 채 온몸을 확 붉히고 사정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엉덩이를 엄청 움찔거리면서 요분질을 떨었다. 타고 났다. 타고 났어. 강동현은 길고 섹시한 신음을 느릿하게 흘렸다. 상대의 얼굴을 못 봐서 약간 짜증이 났지만 그대로 사정감이 확 차올라 그대로 그의 안을 더 파고들어 사정했다.
“으으윽… 하아… 윽….”
“힉… 아앙… 으응….”
강동현은 거의 일주일만의 짜릿한 엑스터시였다. 일주일 분의 정액을 내뱉으니 배설감도 장난 아니었다. 끊임없이 나오는 것 같았다. 강동현은 짧게 숨을 끊어 쉬며 상대의 안으로 최대한 자신을 박아 넣었다.
“헉… 아… 윽… 젠장….”
“으으응… 하아….”
강동현은 현기증이 돌아 앞으로 엎어져 황경호를 꽉 끌어안았다. 전에도 얼핏 그런 걸 느꼈지만 그는 황경호와 하면 할수록 점점 더하지 못하는 텀을 참지 못했고, 하면 할수록 더 강한 쾌락을 느꼈다. 최근처럼 만족스러운 섹스를 한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일주일 정도 못하게 되니 욕구불만이 드글드글했다. 오히려 처음 발기부전이 걸렸을 때 4개월 정도는 하고 싶다는 생각도 그렇게 많이 들지 않았는데 말이다.
서로 맞물린 부위가 아주 뜨거웠다. 점막이 닿아 체온을 나누며 절정에 이르러 민감했다. 얼마 정도 그렇게 있었을까 황경호가 강동현의 등을 쳤다.
“무거워… 빨리 나와봐. 카우치 빨리 닦아야 돼….”
황경호는 강동현을 밀어내려고 했다. 강동현은 핑핑 현기증이 계속 도는 와중에 그가 가구 걱정을 하는 걸 듣고 어이가 없었다. 그는 그런 걸 닦을 시간이 전혀 없을 예정이었다. 강동현은 그의 허리를 끌어안아 들어 올렸다.
“아….”
황경호가 그의 등을 붙잡았다. 강동현은 그대로 카우치에 앉고 그를 위에 태웠다. 강동현은 상기된 얼굴로 뜨거운 한숨을 뱉었다.
“하아… 나 이제 시작인 거 알지? 쓸데없는 말 하지 말고 나랑 하는 거에나 집중해.”
“아앗… 앙… 잠깐… 흐앗….”
강동현이 그대로 황경호의 엉덩이 두 짝을 잡고는 피스톤질을 시작했다. 그의 체액을 안에 고루고루 발랐다. 그러니 확실히 미끄러워져서 잘 빠졌다가 들어갔다 한다. 찹찹. 찍. 철썩철썩. 찌걱찌걱. 살이 부딪치고 점막이 비벼지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강동현은 완전히 뿅 가는 기분이라 황경호의 입술을 걸신들린 듯이 빨았다. 정신을 못 차리고 박자를 좀 빠르게 하자 황경호가 비명을 질렀다.
“아앗…! 아파…! 아파 아파!”
강동현을 퍽퍽 치면서 몸을 빼려고 하자 강동현도 퍼뜩 정신이 들어 한숨을 쉬었다.
“아… 미안… 하윽….”
강동현은 그를 꽉 끌어안고 그의 피부에 얼굴을 묻고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섹시하고 은근하게 그의 안을 파고들며 돌렸다가 스륵 빼내고 또 은근히 안을 문질렀다. 황경호의 얼굴이 확 빨개지며 열도 확 올랐다.
“으으응… 하앗… 앙…! 거기이….”
“여기…?”
“으응… 거기 말고… 으으응… 흣… 아앗… 안 돼….”
강동현은 등받이에서 허리를 쭉 떼고 그의 안으로 더 깊게 들어갈 수 있도록 그의 양다리를 뒤로 뺐다. 강동현이 쑥 들어오자 황경호가 녹을 듯이 신음을 흘렸다.
“아아앙….”
“좋아…? 응…? 기분 좋아?”
강동현이 뜨거운 숨을 내뱉으며 그의 턱을 깨물었다. 강동현의 목을 끌어안고 부드럽게 흔들리고 있는 황경호는 대답 없이 강동현의 입술에다가 자신의 것을 부드럽게 비볐다. 강동현의 아랫배가 돌처럼 딱딱해졌다. 좋아서 죽을 것 같았다.
“하아… 윽… 입 벌려….”
“아… 아응… 으으응… 으음….”
서로 입을 맞추면서 부드럽게 살을 섞었다. 정말로 모든 게 섞이는 느낌이었다. 엄청 조이는 음부에 커다란 남성기가 푹 박혀 쫀득하게 맞물려서 천천히 비빌 수밖에 없는 섹스.
“하아아아앙….”
황경호는 입을 맞추면서 점점 더 심하게 헐떡거리더니 결국 강동현을 꽉 끌어안고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강동현을 끊을 듯이 조이면서 야시시한 얼굴로 신음을 길게 흘렸다. 순식간에 끝내주는 사정감이 몰려왔다.
“으윽….!”
강동현은 신음을 흘리며 그의 뺨을 확 깨물었다.
“힉… 아앙… 아아앙….”
황경호는 오르가즘을 엄청 느끼면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강동현은 그의 엉덩이를 자신의 아랫배에 딱 붙이고 피스톤질을 하지 않은 채 전후로 엄청 흔들었다.
“힉…! 아앙…! 아! 싫어! 싫어 싫어! 아아앙! 싫어…! 하지 마…! 아아앙… 싫다니까! 아아앙… 아아아앙! 하아아아앙…!”
순간적으로 몇 번이고 가버리는 황경호였다. 멀티오르가즘 말만 들어봤지 실제론…. 그도 일주일이나 참은 걸까? 엄청 느낀다. 강동현은 뜨거운 숨을 가쁘게 내뱉으며 더 그의 엉덩이를 빠르게 흔들었다. 강동현은 몸이고 마음이고 뜨겁게 달아올라 평소보다 엄청 빨리 파정했다.
“아윽… 으으윽…!!”
“히앗…! 아앗… 아아앙…! 아… 흑… 싫어어어….”
황경호가 질질 울면서 몸을 엄청 떨었다. 강동현을 끊어 먹을 듯이 조였다가 확 놓고 또 조였다가 확 놓으면서 그를 쭉쭉 짜냈다. 그러자 안이 잔뜩 축축해졌다. 황경호는 너무 느껴서 몸을 비틀면서 마구 경련했다.
“하윽… 아… 아아… 읏… 하윽….”
한참 몸을 뻣뻣하게 경련하다가 강동현의 품에 축 늘어졌다. 강동현은 성대한 파정을 하면서 황경호에게 쫙쫙 짜이더니 거의 기절할 듯이 되어 카우치의 등받이에 늘어진 상태였다. 둘 다 숨이 달아 헐떡거리면서 몸을 겹치고 있었다. 강동현이 큰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때마다 황경호는 자신의 몸이 아래위로 들렸다 내려앉는 게 느껴졌다. 한참이 지나자 황경호는 왈칵 눈물이 나와서 흐느꼈다.
“흐윽… 싫다고 했는데….”
정말 무서울 정도로 느꼈다. 이런 건 처음이다. 죽는 줄 알았다. 숨도 못 쉬고 경련만 했다. 강동현과의 섹스는 여전히 폭력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쾌락에 정도가 없었다. 이런 식으로 하면 언젠가 진짜 죽을 것 같아서 무섭다. 지금도 손발 끝에 힘 하나 들어가지 않았다. 아직도 몸이 떨렸다. 뱃속이 뜨겁고 맞물린 부위가 불타는 것 같았다. 아플 정도로 민감하다. 황경호는 정신도 못 차리는 강동현의 위에서 그렇게 흐느끼듯 울다가 겨우 눈물을 닦고 몸을 일으켰다.
“아… 흑… 아아앙….”
무릎에 힘을 주고, 최대한 엉덩이에는 힘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무릎을 펴 그의 것을 천천히 빼냈다. 처음엔 들어가지도 않던 게 미끄럽게 빠져서 소름이 끼쳤다. 구멍이 확 수축하여 바로 닫혔지만 안은 삽입감이 엄청나게 남아 더 괴리감이 느껴졌다. 그리고 다시 강동현의 위에 늘어졌다.
그리고 나니 지쳐서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헐떡이는 숨이 가라앉기만을 기다리며 멍하니 강동현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그의 향기를 맡고 있었다. 그리고 점점 몸이 식으면서 추워졌다. 에어컨을 너무 세게 틀어 놨다. 근데 손가락 하나도 꼼짝할 수가 없었다. 황경호가 고개를 들고 그의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야… 추워.”
강동현은 보통 심한 사정감에 정신을 못 차리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황경호도 강동현과 섹스할 땐 항상 그랬는데도 그가 그 시간이 더 길었다. 강동현은 한 손으로 자신의 눈을 덮었다가 이마를 쓸어 올렸다. 그리고는 멍청한 눈으로 황경호의 얼굴을 보다가 점점 눈빛이 돌아왔다. 쪽, 하고 입을 한 번 맞췄다. 그는 급격한 피로감을 느끼는지 하품을 했다. 그리고 강동현은 황경호를 끌어안고 테이블로 허리를 숙여서 리모컨을 겨우 잡았다. 황경호는 떨어질 것 같아서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강동현이 에어컨을 껐다. 그리고 그는 황경호를 들고일어났다. 황경호가 기겁을 하며 그의 어깨를 잡았다.
“나 더 못 해. 안 해.”
“알았어. 알았어… 일단 자자. 나도 피곤하다.”
강동현의 집에 들어와서 살게 된 이후로 보통 하면 한 번, 두 번 정도였지만 그래도 가끔 세 번까지도 하려고 들었다. 본인은 더 하고 싶은 거 같은데 스케줄도 빡빡하고 시간도 없고 피곤하다 보니 두 번 정도가 한계인 모양이었다. 금방도 그대로 잠들어버릴 뻔한 것 같았다. 그대로 강동현은 황경호를 침대에 내려놓아 주었다.
“난 거실에서….”
황경호가 다시 일어나려고 하자 강동현이 침대에 누우면서 그의 허리를 끌어당겼다.
“그냥 같이 자….”
그리곤 그를 끌어안고 바로 잠들어 버렸다.
*
“힉… 아아앙… 나 출근… 하앗….”
황경호는 얼굴이 벌게져서는 침대 위에 얼굴을 옆으로 박고 엎드려 있었다. 삐걱삐걱. 침대의 스프링이 모나지 않는 박자로 울렸다. 내장이 넓어졌다 좁아졌다를 반복하며 커다란 남성기가 느리지만 끊임없이 안을 문질렀다. 강동현이 엎드려서 황경호의 등을 감쌌다. 뜨거운 숨을 내쉬며 그의 머리를 쓰다듬고 그의 뺨을 깨물었다.
“아직 시간 있잖아… 하아… 윽….”
강동현이 섹시하게 쉰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며 황경호의 가슴을 주물렀다.
“으응… 아앙… 흑… 하아아….”
황경호는 눈이 확 풀려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온몸이 녹아내리고 있었다.
‘기분 좋아… 죽을 것 같아….’
이런 건 정말 처음이었다
처음 강동현이 덮쳤을 때도 아프기만 했었다. 이덕재랑 했을 때는 아무런 느낌도 나지 않고 그저 목석같이 있었다. 기억나는 거라곤 악취뿐이다.
예전에 모텔 이후로 강동현이 계속 덮칠 때도 필요 이상으로 느껴서 정말 부끄럽고 창피했다. 기분 좋다기보단 버겁고 힘들고 마음이 허하고 수치스러웠다. 이게 다 뭔가 싶기도 하고 정말로 그렇고 그런 사람이 된 것 같기도 하고….
원래 황경호는 두 손으로 겨우 꼽고 넘어갈 수 있을 정도밖에 자위도 해보지 않았을 정도로 성적 쾌락과 머나먼 인생을 살아오고 있었다. 연인을 만들어야 한다는 부채감도 싫었고 자위를 했을 때의 수치감이 싫었다. 자위를 하고 나면 짜릿하게 한 번 피크를 찍는 사정감도 그때뿐이고 부끄러움과 창피함이 더 오래갔었다.
근데 그때 강동현이 술 마시고 건드린 날부터, 그와 하면 정말 미칠 것 같았다.
하면 후회하고 쪽팔리고 창피할 걸 버젓이 알면서도 어느샌가 눈만 마주치면 하고 있었다. 황경호의 적은 경험에도 이건 정상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느꼈다. 원래 그가 섹스랑은 영 거리가 먼 인생을 살고 있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상대가 강동현이라서 그런 걸까.
괴로울 정도로 느꼈다. 가끔 너무 느끼면 눈물부터 왈칵 터져 나오고 평소에는 절대 안 낼 소리를 내고 절대 안 할 말을 했다. 강동현과 서로 입을 맞추면서 몸을 비비는 정도만 할 때도 휩쓸린다는 자각이 있었지만 이건 이제 그냥 자기자신 자체를 놓아버리고 제정신을 잃는 것 같았다.
황경호는 항상 섹스라는 것 자체를 멀고 낯설게만 느껴왔었다. 다른 사람이랑 그런 걸 하고 살 거라곤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정신을 못 차리고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더 잘 모르겠다.
다른 사람이랑 해도 이렇게 기분 좋은 걸까?
“하아앙… 아앙… 힉… 아앙… 거기… 거기이… 흐읏… 거기 싫어어….”
신음도 맥이 자꾸 끊겨 발음이 뭉개지고 힘이 빠졌다. 황경호는 그가 오늘따라 유달리 배 쪽으로 꾹꾹 눌러 대자 뭐든 쌀 것 같은 기분에 아찔해져서 허리를 베베 꼬았다. 강동현이 황경호의 뒷덜미를 꽉 물며 무게를 강하게 실어왔다. 그리고 황경호의 앞부분을 쥐고 부드럽게 만지며 젖꼭지도 같이 문질렀다.
“흐아아앙… 같이… 아우으….”
그러면서 귀까지 삭삭 핥자 황경호는 배 안이 엄청나게 뜨거워지면서 하반신 전체가 덜덜 떨리고 곧 온몸이 꿈틀꿈틀 경련하기 시작했다. 순간 어깨로 축 늘어진 모든 몸무게를 지탱하고 쫄깃한 음부가 갑자기 확 확장되면서 커다란 자지가 엄청 깊숙이 박혀왔다. 지금까지 중에 제일 깊이.
“하아아아아앙…… 아아아앙…….”
온몸의 피부에 아찔하게 소름이 돋으며 무아지경 같은 오르가즘에 빠졌다. 눈물, 뭐 할 것 없이 그냥 줄줄 나왔다.
“하아악… 아앙… 흐아아아….”
황경호는 그대로 축 늘어져서 온몸의 구멍이 확장된 채 지금까지 경험해보지 못한 쾌락에 정신과 몸을 모두 놓고 있었다.
“윽… 하아… 왠지 좀 헐렁해졌어… 너….”
강동현이 황경호의 엉덩이에 자신의 자지를 수월하게 푹푹 박으면서 야하게 속삭였다. 황경호는 소리도 크게 못 내고 아직도 오르가즘의 피크를 지나가는 중이었다. 그의 분홍색 성기에서 미친 듯이 뭐가 자꾸 터져 나오고 있었다. 소위 분수 같기도 하다.
철썩철썩. 퍽퍽. 찍찍찍찍.
강동현은 오랜만에 피스톤질다운 피스톤질을 하며 점점 사정감이 고조되어 가며 욕지거리를 했다.
“아욱… 씨X… 큭… 으으윽….”
너무 오래 했다. 자지가 터질 것 같았다. 황경호가 어제오늘 따라 완전 잘 느껴서 한참을 괴롭히며 과하게 참았다.
진짜 언젠가 얘랑 하다가 죽을 것이다.
“아욱…… 으으으으윽….!!!”
진짜 폭발하는 줄 알았다. 자지와 요도에 바늘이 수십 개 박히는 것 같았다. 단전의 열기가 용솟음쳐 마구 튀어나왔다. 강동현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으으윽…! 큭!”
사정을 하면서 느끼는 온몸이 터져버릴 것 같은 쾌감과 엄청난 배설감이 넋을 확 빠지게 했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엉덩이를 붙잡고 끝까지 처박아 힘을 주어 더 짓눌러서 안에서 엄청나게 지리고 있었다. 황경호는 눈물 콧물 다 쏟으면서 몸과 정신을 놓고 있다가 핫, 하면서 갑자기 온몸을 조이며 부르르르 떨었다.
“아우으으으….”
상대가 사정을 하는 것을 느끼고 또 가버린 것이다. 또 막 투명한 게 줄줄 터져 나왔다. 황경호는 자기를 방어할 틈도 없이 무자비한 쾌락에 노출된 상태였다.
‘죽어… 죽을 거야… 죽을 것 같아….’
자신을 컨트롤 할 수가 없었다. 눈물 콧물 다 쏟아졌다. 강동현은 수월하게 들락날락거릴 수 있을 정도로 부드러웠던 몸이 갑자기 또 꽉 조이자 팔에 힘이 확 풀려 황경호의 위에 그냥 쓰러져버렸다. 몇 분이고 몇십 분이고 한참을 그렇게 헐떡이고 있었다.
“하아… 하아….”
“하아… 아… 흑….”
황경호가 별안간 갑자기 눈물을 터뜨리자 강동현이 비몽사몽 간에 그를 끌어안았다.
“쉬이… 괜찮아….”
그가 왜 우는지 알 것 같았다. 강동현도 그냥 그대로 죽는 줄 알았다.
“나 봐….”
강동현이 속삭이듯 말했다. 황경호가 엉망인 얼굴로 강동현의 얼굴을 보았다. 둘은 그대로 아무 말도 없이 눈을 마주치고 가만히 있었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뺨을 부드럽게 만지작거렸다. 머리카락을 쓸어서 넘겨주고 곧 좀 더 가까이 와서 입을 맞추었다. 입술을 부비고 살짝 혀가 맞닿는 것뿐인데도 오감이 민감해서 짜릿짜릿했다. 그리고 강동현이 황경호를 마주 보고 꽉 끌어안았다. 황경호는 온몸이 오싹오싹하며 실금을 할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황홀해졌다.
‘기분 좋아… 기분 좋아… 너무 기분 좋아….’
이대로 죽을 때까지 있고 싶다. 그렇게 둘 다 정신을 놓고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끌어안고 있었다. 황홀함이 끝나지를 않았다. 황경호는 심장이 이제 아플 정도로 이상하게 뛰어서 죽을 것 같았다. 기절할 것만 같다.
그렇게 오랫동안 서로를 끌어안고 쓰다듬고 있다가 황경호가 점점 정신을 차렸다.
‘…출근….’
황경호는 멍하게 부스스 일어나서 강동현의 몸을 타고 올라가 손을 뻗어 그의 휴대폰을 손으로 잡았다. 강동현이 자신의 몸 위에 올라탄 황경호의 몸을 부드럽게 계속 만졌다.
“왜… 이리 와….’
강동현이 여전히 취한 것 같은 목소리로 황경호를 강하게 끌어당겨 안았다. 원래 예전에도 이럴 때 쓸데없는 스킨십이 잦다고 생각했는데… 황경호도 여전히 약이라도 맞은 것 같은 기분이라 그가 목덜미를 빨고 만지면 신음을 흘리면서 받아주었다. 그리고 휴대폰 화면을 보았다.
“여덟 시 삼십 분….!”
황경호가 깜짝 놀라서 상체를 확 일으켰다. 침대를 황급히 떠나려는 황경호의 손목을 강동현이 잡았다
“오늘 그냥 하루 빠지면 안 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순간 혹할 정도의 얼굴로 졸라서 황경호가 한 템포 늦게 대답했다. 강동현이 계속 안 놔주었다.
“아직 두 번밖에 안 했잖아.”
“오늘은 더 못 해…!”
아까 그런 걸 해놓고 또 하려고 든단 말인가. 저질. 황경호는 그를 밀어내고 얼른 욕실로 갔다.
진짜 완전 대형지각이었다. 이러다간 진료시간 넘겨서 도착할 것이다. 황경호는 5분 만에 씻고, 5분 만에 옷을 입은 후 머리를 말리고 얼굴에 반창고까지 붙이곤 현관으로 갔다.
“너도 아침에 촬영이라며!”
강동현은 발을 질질 끌며 배웅하러 나온 것인지 현관으로 왔다.
“데려다줄까?”
“니 차 타면 더 늦어.”
강동현은 그대로 황경호를 보고 있었다. 황경호는 신발을 신으면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왜?”
그러자 강동현이 입을 맞추었다.
“갔다 와.”
“…….”
황경호는 이유도 알 수 없이 얼굴을 확 붉혔다가 시선을 돌리곤 그냥 아무 말 없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