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Love와 Sex 사이 (1)
“오셨어요, 도은혁 환자님.”
평소처럼 밝게 웃는 그의 얼굴을 보니 심정이 상당히 복잡하다. 강동현은 그냥 입을 다물고 그의 뒤를 따라갔다.
“옷 갈아입고 앉으세요.”
강동현은 그의 말대로 했다. 그러자 황경호는 정말 데자뷰가 일어날 정도로 똑같은 동작으로 행동하며 말했다.
“차갑습니다.”
강동현은 가만히 그의 깨끗한 이마를 내려다보다가 그의 뺨에 붙은 반창고를 손으로 만졌다. 황경호가 확하고 놀라더니 그의 손을 피하고 인상을 쓰고 강동현을 노려보았다.
“만지지 마세요.”
“…….”
그때 마지막에 입을 맞추었다고 화가 난 게 풀리거나 한 건 아닌가 보다.
‘뭐… 당연한가. 아, 그럼 도대체 그땐 왜 그렇게 화내고 그때는 왜 또 키스해주는 건데….’
강동현은 앞에 있는 간호사가 정말 다른 세계에서 온 생물 같이 느껴졌다. 어떻게 대하고 무슨 말을 해야지 맞는지 모르겠다. 강동현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당연히 망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시키는 대로 한다고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어렵다….
너무 어렵다.
“그렇게 쳐다보지 마세요.”
저 머리통에서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계속 쳐다보고 있으니 황경호가 곧 그렇게 말했다. 강동현은 계속 그를 쳐다보며 대꾸했다.
“지금은 야한 생각하는 거 아니야.”
황경호가 인상을 확 찌푸렸다. 그리곤 그냥 마사지를 했다.
다른 어떤 사람과 상대를 해도 이런 막막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연인이든, 친구든, 비즈니스상의 관계이든. 그것은 그들이 전부 강동현에게 호감을 가지고 잘해주기 때문이었을까?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린 나이에 비즈니스상의 문제가 생겨 고생을 했을 때도 그 사람들을 이해하기 어렵지는 않았다. 서로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는 것도 아니었고. 근데 황경호는 꽤 알고 지냈는데도 어쩐지 알려고 하면 할수록 어렵다. 처음에 그를 정말 쉽게 생각하고 대했던 게 놀라울 정도다. 그리고 뭘 잘 해보려고 하면 할수록 의도랑은 다르게 자꾸 꼬인다.
“…내가 어떻게 하면 돼?”
어차피 이쪽의 생각도 틀렸고 심지어 상대의 생각마저도 답이 없는데 강동현은 또 묻고 말았다. 황경호는 인상을 찌푸린 채 되물었다.
“뭘 어떻게 해도 안 해요.”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말이 선뜻 안 나왔다. 상대가 또 기분 나빠할 것만 같았다. 이제는 정말 질린다. 의도랑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정말로…. 이런 건 처음이었다. 강동현은 한참을 황경호를 보면서 손을 움찔움찔했다.
그때 그냥 가만히 안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무 말도 하지 말았어야 했나. 정말로 성급했던 걸까.
강동현은 결국 마치 도돌이표처럼 돌아간 상황에 가만히 입을 다물고 치료 의자에 앉아있다가 나와야 했다. 현재 강동현이 촬영하고 있는 드라마 <시크릿 블러드>는 8월 말 방영 예정으로 스케줄은 자주 있었지만 방영 중 촬영만큼 빡세진 않았다. 적어도 집에는 돌아갈 수 있었고 일주일 중 남는 시간도 있다. 강동현은 오랜만에 김태형의 가게에 갔다.
요새 술을 줄여서 그런지 술이 들어가자 유달리 취기를 느꼈다. 강동현은 바 형의 테이블에 두 팔꿈치를 얹고 깍지를 낀 주먹 위에 턱을 올렸다.
“형….”
“어?”
김태형은 열심히 안주를 만들다가 고개를 들었다.
“나 그렇게 말 안 통하는 타입이야?”
“어? 갑자기 무슨 소리야?”
“말이 안 통해….”
“누구랑?”
“걔.”
“걔? 걔 누구?”
김태형은 그렇게 반문하다가 아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니가 좋아하는 애?”
“…….”
강동현은 그 말에 상당히 마음이 복잡해졌다. 두 손으로 얼굴을 한 번 쓸었다. 한숨을 푹 쉬고 대답했다.
“어쨌든….”
“어쨌길래?”
“이제 다시 나랑 하고 싶어졌나 싶어서 하자고 했더니 울고불고 때리고….”
김태형이 이상하다는 듯이 강동현을 보았다.
“설마 그냥 하자, 이랬어?”
“아니, 그 정도는 아니고…. 이제 슬슬 하자고.”
“그게 그거지.”
김태형이 한숨을 쉬었다.
“넌 얼굴도 그렇게 잘생긴 놈이 너무 드라이하게 접근하는 거 아냐? 전 여친한테는 너도 완전 울고불고 난리였으면서 얘한테는 왜 그래?”
“…….”
강동현이 대답이 없자 김태형이 음식을 이신현에게 내주고 손을 닦고는 지나가듯 말했다.
“뭐…. 사귀는 모든 여자가 제일 사랑했던 여자만큼 좋은 건 아니긴 하지만.”
강동현은 술을 마셨다.
“걔는 니가 전 여친 사귈 때 그렇게 지극정성이었다는 건 알아? 아니, 그래도 너무 티는 안 내야 할 거 아냐. 그건 예의지.”
“그건 그래서 나도 꽤 신경 쓰긴 썼어….”
강동현이 변명하듯이 말했다. 전에는 꽤 응원조였던 김태형이 어쩐지 오늘은 고개를 저었다.
“너 그래도 걔랑 잘 지내보고 싶다면서 말은 왜 이렇게 원색적이야. 게다가 애가 좀 섬세한 타입이라며.”
“내가 좀 마음만 급한 것 같긴 한데….”
강동현이 한숨을 쉬며 그렇게 말했다.
“그래도 걔도 나랑 키스하는 것도 좋아하고 그쪽으로는 나랑 진짜 엄청 잘 맞고… 모르겠어. 어떨 때는 키스도 해도 되고 만져도 되는데 어떨 때는 쳐다보는 것도 싫어해.”
“음….”
김태형은 아리까리한 표정으로 강동현을 보았다. 남의 연애상담만큼 비생산적이고 답 없는 게 어디 있겠는가. 더군다나 한쪽 얘기만 들어서야 답도 없는 경우가 태반이고….
“모르겠다, 야…. 너야 잘생겼지, 돈도 많지…. 솔직히 여자들이 너한테 다 맞춰줄 것만 같은데…. 그래도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게….”
김태형은 어중간하게 말하다가 역시 뭐라고 하기 힘든지 역시 질문을 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이런 건 원래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하는 법이다.
“너 말이야…. 그래서 걔가 별로인 거야? 그냥 하고만 싶은 거고?”
“별로인 거 아니야. 귀엽다고 생각하고 잘 해주고 싶다고 생각해. 형도 굳이 좋아하고 사랑하고 이런 거 생각하지 말고 내가 해주고 싶은 대로 하라며.”
강동현이 약간 추궁을 당한 기분인지 그렇게 반응했다. 김태형은 더 아리까리한 표정을 짓더니 입을 열었다.
“아니…. 그거야 그렇기는 한데. 나야 뭐… 널 알지 걔를 아는 것도 아니고. 근데… 걔는 그런 게 괜찮은 애야? 남자랑 다른 약속 없이 잠자리만 계속해도 되는….”
“…….”
“야…. 솔직히 그러면 그건 남자라도 니가 밉겠다. 너 완전 나쁜 놈 아냐.”
“…….”
어쩐지 김태형이랑 얘기를 하면 또 이쪽이 전부 잘못한 것만 같이 느껴졌다. 김태형은 정말 자세한 사정은 모르고 원론만 얘기를 하는 건데도, 또 그게 다 맞는 말이란 말이다. 그런데도 계속 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걔 나 싫어하는데.”
강동현이 툭 말했다. 김태형이 또 그 소리냐며 성의 없이 대꾸했다.
“뭐가? 좋아하는데 섭섭하게 느끼는 거라며.”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말을 할 수가 없다. 말을 해도 괜찮을지 알 수가 없었다. 솔직히 도의적으로 떳떳할 게 하나도 없었다. 강동현은 답답했다. 말을 좀 골랐다.
“그냥…. 진짜 걔 나 싫어해. 처음에 내가 그냥 걔랑… 하고 싶어서 들이댄 거거든.”
“뭘 어떻게 들이댔길래.”
“…지금 내 입으로 말하려고 하니까 내가 엄청 나쁜 놈처럼 느껴질 정돈데.”
“본인이 생각해도 그 정도면 그냥 엄청 나쁜 놈이야. 얘가 진짜….”
김태형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전 여자친구가 첫사랑이고 지고지순 절절하길래 여자한테 엄청 잘하는 스타일인 줄 알았는데 그냥 여자를 가리는 스타일이었던 걸까. 전 여친이 얼마나 대단한 여자였길래 그러는가. 아니면 이번 상대가 그렇게 성에 안 차는 것일까. 애초에 그런 거 가린다 해도 상대한테 예의는 다 할 타입으로 보였는데. 이렇게 잘생기고 능력 있는 남자의 연애상담이란 흔히 해볼 수 있는 게 아니지만 어쩐지 하면 할수록 남자에 대한 인식이 바뀐다.
“그래도 강제로 한 거 아니라면 걔도 너한테 마음이 있으니까 하게 해준 거 아냐?”
“어…. 그게 좀… 먹고 떨어지라는 성격이 강한….”
그러자 김태형이 눈을 휘둥그레 뜨곤 강동현을 쳐다보았다.
“너… 전엔 이런 말 안 했잖아. 나 전에 너한테 마음 가는 대로 하라고 했는데? 나 완전 그 여자한테 못 할 짓 한 거 아냐?”
“…….”
강동현은 약간 짜증스럽게 인상을 쓰고 술을 한 잔 쭉 들이켰다.
“근데 그런 쪽으로는 계속 사과했어. 사과하고 있어. 잘못했다고 미안하다고….”
“야, 잘못했다고 한다고 그게 끝이냐. 솔직히 여자 입장에서 얼마나 니가 귀찮게 굴었으면 먹고 떨어지라고…. 그거 스토킹 아냐?”
“…….”
이덕재가 생각났다. 그리고 그건 강동현의 자존심에 아주 큰 타격을 입혔다. 누가 봐도 그렇게 보이는 것일까.
“근데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몸만 원하는 거고…. 너 그렇게 안 봤는데 진짜….”
김태형은 호들갑을 떨진 않았다. 하지만 확실히 자신에 대한 이미지가 바뀐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런 거에 일일이 신경 쓰는 타입은 아니지만, 강동현은 한숨을 쉬었다.
“처음엔 그랬어, 처음엔…. 지금은 아니야.”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며. 뭐가 아니야? 솔직히 그 정도로 들이대려면 빈말로라도 책임지겠다는 말을 해도 모자랄 판국에 어떤 미친 여자가 널 받아주겠냐? 니가 아무리 잘생기고 돈이 많아도….”
김태형은 저렇게 보여도 꽤나 연애에는 낭만주의자라 혀를 끌끌 찼다. 강동현은 진짜 할 말이 없었다.
“아니, 그리고 이제 니가 좋아하고 안 좋아하고가 문제가 아닌 거 아니야? 그 여자는 어떻게 하고 싶어 하는데? 너랑 만나고 싶어 하긴 해?”
“…….”
“야…. 너 남자가 여자한테 잘못하다가 패가망신하면 답도 없는 거 모르냐? 그리고 너 완전 톱스탄데…. 너 진짜 그러다가 큰일 나. 그만해라. 진짜 큰일 난다, 너… 젊은 남자 연예인들 틈만 나면 여자 문제로 신문 오르내리는데….”
“…….”
강동현은 한숨을 크게 쉬고 아무 말 없이 술을 그냥 계속 마셨다. 말을 하면 할수록 혼만 날 기세다. 김태형도 걱정스러운 눈길로 강동현을 힐끔거리며 설거지만 마무리했다. 강동현은 한참을 술만 마셨다.
“아…. 나도 원래 이러는 놈 아닌데…. 걔는 보면 자꾸 짜증 나고 건드리고 싶고… 울리고 싶고….”
강동현이 불쑥 그렇게 말했다. 김태형이 듣든지 말든지 신경도 쓰지 않고 말을 계속했다.
“걔가 키스해주는 거 너무 좋고…. 그때도 진짜 귀여웠는데… 내 위에 올라타서….”
“…….”
“아…. 진짜 짜증 난다…. 왜 또 이렇게 됐지…. 나 그냥 진짜 입 닥치고 있어야 하나…. 걔 앞에서….”
“…….”
“잘 해주고 싶은데…. 기분 안 상하게 하고 싶은데…. 나 그렇게 별론가?”
“…….”
“아…. 진짜 귀여워서 그런 건데…. 빨개진 것도 귀엽고…. 그냥 다 해주고 싶어서 주고 싶다고 하는 건데…. 왜 계속 삐딱하게만 받지…. 어, 형…. 나 진짜 어떻게 해야 되는 건데….”
“…….”
“어. 경호야, 왔어? 얘 완전 취했다, 지금.”
김태형이 그렇게 말하자 강동현이 테이블에 얼굴을 대고 엎드려 있다가 고개를 들었다. 황경호는 잠깐 머리를 쓸어 넘겼다가 말했다. 모두의 시선을 피했다.
“어…. 아니, 그냥 지나가다가 들른 거라… 인사만 하려고….”
“야….”
강동현이 황경호의 손목을 잡으려고 하자 그가 깜짝 놀라 피했다. 강동현이 진짜 인상을 팍 썼다.
“아…. 나 진짜….”
강동현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황경호의 바지춤을 잡고 확 끌어당겼다. 그는 벼르고 있었다는 어조로 입을 열었다.
“너 내가 어떻게 해야….”
얘 왜 이렇게 취한 거야! 황경호는 기겁을 해서 김태형에게 얼른 말했다.
“얘…! 얘 내가 데리고 나갈게. 어, 엄청 취했네! 계산은 문자로 나한테 보내! 바로 입금할게…. 아, 잠깐만…! 나, 나 갈게.”
강동현이 끌어안으려고 하자 황경호가 오히려 그를 끌어당겼다.
“일단 나가자. 나가자, 응?”
“내가 뭐든 주겠다는 말이 그렇게 싫어? 왜 싫은데.”
“아! 입 좀 다물어!”
“나랑 키스….”
“아!! 가자. 빨리 나와!”
황경호는 온 힘을 다해서 그를 끌어당겨 가게 밖으로 빼냈다. 가게 밖으로 나오니 대번에 지분거렸다. 황경호는 기겁을 해서 그의 티셔츠에 꽂힌 선글라스를 그의 얼굴에 씌우고 금방 가게에서 들고나온 그의 모자도 씌웠다. 그리고 택시부터 잡았다.
“밖이야, 멍청아! 밖이라고! 술을 먹어도 곱게 처먹어야지 이건 왜 항상…!”
잘 취하지도 않는 게 술은 엄청나게 먹어서 이 사단을 꼭 냈다. 게다가 이 정도로 취하면 원래는 잘 하지도 않는 말도 주절주절하고…. 황경호는 짜증을 내며 그의 손을 잡아 떼려고 했다.
“내가 왜 그렇게 싫은데. 어?”
“아…! 손 넣지 마!”
그의 손이 옷 속으로 들어가 엉덩이를 쥐자 황경호가 기겁을 하며 그를 퍽퍽 때렸다. 옷 안으로 손을 못 넣게 한 손으로 그의 검지손가락들을 모아 잡은 채 택시를 잡았다. 그대로 강동현이 황경호한테 질질 끌려왔다. 겨우 한 대가 서자 그를 밀어 넣었다. 그리고 택시기사에게 말했다.
“삼성동으로… 앗…!”
강동현이 황경호를 끌어당겨 택시에 기어코 태웠다.
“아…. 일단 삼성동으로 가주세요. 아! 하지 마…!”
강동현이 목덜미에 얼굴을 묻으며 깨물자 황경호가 깜짝 놀라서 그를 밀어냈다. 그러다가 택시기사의 눈치를 보고 웃었다.
“아…. 얘가 취해서…. 죄송합니다.”
“아저씨, 삼성동 말고 신림으로 가주세요.”
강동현이 택시기사에게 취한 어조로 말했다.
“아, 왜. 미쳤어? 술 마셨으면 집에 곱게 가.”
“너네 집 가자. 딱 한 잔만 더 하고 싶어.”
“싫어. 절대 싫어. 안 가. 삼성동으로 가주세요.”
“신림으로 가주세요.”
그러자 택시기사가 언짢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서 어디로 갈까요?”
“삼….”
“신림으로 가주세요. 안 가면 여기서 너랑 키….”
“아, 네. 신림으로 가주세요.”
황경호는 강동현의 입을 틀어막았다. 황경호는 강동현과 떨어져서 앉으려고 했지만 강동현이 그의 허리를 꽉 끌어안고서는 계속 셔츠 밑으로 은근히 허리를 주물렀다.
“내가 아까 한 말 들었어?”
강동현이 거의 황경호를 끌어안고 귀에다 속삭였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좋은 목소리라 황경호는 움찔하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아까 가게에서 한 말…. 너 귀엽다고. 내가 몇 번이나 말했잖아.”
황경호는 얼굴이 시뻘게져서 택시기사의 눈치를 보았다. 그는 강동현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만해. 너 취했어.”
“너 진짜 귀엽다? 완전 귀여워. 최고야.”
강동현이 황경호의 손을 치우고 그렇게 계속 속삭였다. 진짜 엄청 취했다. 황경호가 다른 손으로 입을 다시 막으려고 하자 그 손도 붙잡았다.
“나 사실 안 싫어하잖아? 그치? 내가 착각한 거 아니지? 너 항상 나 보고 있었잖아. 내 목소리도 좋아하고… 내 얼굴도 좋아하고… 키스도….”
“알았어. 알았으니까. 내릴 때까지만 입 다물어.”
“알았어….”
그러자 또 얌전히 입을 다물고 황경호만 보고 있었다. 황경호는 창피해서 온몸이 화끈했다. 택시기사가 뭐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황경호의 빌라 앞까지 기어코 택시를 몰고간 강동현은 택시 요금까지 자기가 내고 황경호를 재촉해서 택시에서 내렸다. 그리고 택시가 출발하자 그대로 황경호를 끌어안았다.
“읏…! 숨 막혀!”
강동현이 무작정 꽉 끌어안자 그의 어깨에 얼굴을 박게 된 황경호는 얼굴을 떼고 푸하, 하고 숨을 쉬었다. 전에 강동현이 여자친구랑 헤어지고 그 충격에 술만 마실 때는 아예 맛이 가서 그냥 택시로 실어다가 아파트에 던져 놓곤 했는데 지금은 그 정도로 취한 건 아닌지 도저히 감당을 못하겠다. 원래 황경호보다도 덩치가 훨씬 큰 데다가 술김에 마구 휘두르니 더 그랬다.
“내가 어떻게 하면 돼? 응? 내 맘대로 해도 싫어하고 니가 시키는 대로 해도 싫어하고…. 난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응?”
“그런 거…! 나도 몰라! 아… 놔…! 집에 가, 좀!”
술에 취한 그의 몸에서 느껴지는 열기가 엄청 뜨겁다. 밀어내려고 해도 꼼짝도 안 했다. 한참 밀어내려다가 지쳐서 힘을 빼니 그냥 그대로 숨이 막힐 정도로 꽉 끌어안고 황경호의 얼굴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제 그만 놔줘….”
황경호가 체념이 섞인 말투로 그렇게 말했다. 강동현은 그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아직도 나 안 보고 싶어?”
“어….”
“진짜? 내 얼굴 좋아하잖아. 응? 근데 진짜 안 보고 싶어?”
“…뭐라는 거야, 진짜.”
황경호가 짜증을 냈다. 강동현은 눈을 감고 그의 이마에 자신의 이마를 대었다가 다시 뗐다.
“나 너 진짜 좋아하는데. 그래도 싫어?”
*
“…….”
“너한테 못되게 한 건 진짜 미안해. 다 미안하다. 근데 그래도… 만나고 싶어. 안고 싶단 말이야. 나 싫어하지 마…. 응?”
“자, 잠깐만….”
“너 처음 봤을 때부터… 이상했어. 만지고 싶었어. 나 너한테 첫눈에 반했던 걸까. 응? 대답해봐. 니가 싫어한다는 거 알아도 그렇게 너 괴롭히고 싶고 울리고 싶고….”
“…….”
“나 미워하지 마…. 좋아한단 말이야. 너랑 하고 싶어. 근데 니가 싫으면 안 할게. 얼굴은 보여줘. 안 만질 테니까. 응? 내 눈 피하지 마…. 너 보러 가는 건데 항상 모르는 사람처럼 대하는 거 진짜 싫어.”
이런 식으로 고백하는 남자인 걸까. 황경호는 혼란스러웠다. 술은 잔뜩 취해서…. 하지만 눈을 피하지 말란 말에 그의 눈을 쳐다보고 있었다. 창피해서인지 뭐 때문인지 얼굴이 토마토처럼 빨개졌다. 강동현이 그런 황경호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선글라스를 벗어서 황경호의 티셔츠에 꽂았다. 모자도 성가신지 벗었다.
“나도… 나도 이런 식은 처음이라 잘 모르겠어…. 미안. 근데 진짜 좋아하는 거 같아. 너 진짜 귀엽고…. 꿈에도 엄청 나와.”
황경호는 마지막 말에 진짜 얼굴이 폭발할 것 같이 되었다.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갑자기 창피해서 그를 밀어내고 싶어졌다. 그가 다시 밀어내려고 하자 강동현이 일렁이는 눈빛으로 황경호의 눈을 가까이서 바라보았다.
“지금 키스해도 돼?”
황경호는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강동현은 그냥 천천히 가까이 다가왔다.
“으응…!”
입을 맞추며 다시 꽉 끌어안자 곧바로 황경호가 엄청 움찔했다. 강동현은 그를 끌어안아 번쩍 들었다. 황경호는 당혹스러워서 입술을 떼고 그의 얼굴을 내려보았다. 강동현도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나한테 키스해.”
강동현이 그렇게 유혹하듯이 속삭였다. 황경호는 움찔하며 저도 모르게 얼굴을 가까이했다가 머뭇거리며 멈추었다.
“응?”
훅 들어와 좀 더 얼굴을 가까이하며 눈을 지그시 마주치자 황경호의 얼굴이 빨개졌다. 엄청 잘생기고 건장한 남자가 애교를 부리듯 조르니 어떻게 거부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니…. 그냥 하고 싶다. 황경호는 얼굴을 빨갛게 붉히고 눈을 감으며 강동현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갖다 대었다. 푹신하고 부드럽다.
황경호는 그의 어깨와 머리를 끌어안고 부드럽고 섬세하게 입을 맞추었다. 강동현은 그게 너무 좋아서 그대로 그의 보조에 맞추어 혀를 움직였다. 느릿하게 혀가 맞닿았다 떨어지고 잠깐 눈이 마주치고 다시 감고 입술을 꾹 누르고 핥고 살짝 깨물고 혀끝이 잠깐 맞닿고… 강동현은 그대로 밖인 것도 모르고 비틀거리다가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몇 층이야…. 하아… 음….”
“응… 3층…. 311호…. 으응… 흐으응… 앙…. 하아… 음….”
강동현이 부드럽게 닿아오는 황경호의 혀를 잘근잘근 깨물자 황경호가 허벅지를 조이며 그의 머리카락을 꽉 쥐었다. 엘리베이터도 없어서 황경호를 들고 올라가는데 벽에다 잠깐 밀어붙이고 그의 입 안을 마구 핥았다. 전조등이 꺼졌다가 켜졌다가. 강동현은 그대로 서로의 몸을 꽉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황경호가 숨을 가쁘게 헐떡거리더니 그의 얼굴을 무작정 밀어내었다.
“응… 흐으응… 아아아앙….”
그대로 황경호가 야시시하게 신음을 흘리며 엄청 야한 얼굴을 했다. 강동현도 100미터 전속력달리기를 한 사람처럼 거친 숨을 쉬고 있었다.
“아….”
잠시 뒤 황경호는 강동현이 계속 자신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는 걸 알고 부끄러워서 고개를 돌렸다. 강동현은 그의 뺨을 깨물었다.
“아파! 윽…. 이 변태…!”
그리고 발걸음을 빠르게 해 올라가다가 휘청해서 넘어질 뻔한 고비를 넘기고 3층으로 왔다. 그리고 잠깐 좌우를 헷갈렸다가 집 앞에 도착해서 더듬더듬 오토락을 해제하려고 했다. 황경호는 계속 강동현이랑 입을 맞추고 있는 데다가 그에게 끌어안겨 들려있는 상태라 자꾸 번호를 틀렸다.
“몇 번이야…?”
강동현이 황경호의 귀를 깨물며 물었다.
“응… 앙… 거기….”
귀를 살살 핥자 황경호가 얼굴을 확 붉히며 바르르 떨었다. 강동현도 몇 번 틀려 알람 음이 크게 울렸다. 1분을 꼬박 밖에서 더 키스를 하다가 문을 드디어 제대로 열었다. 강동현은 문을 닫고 그 문에다 황경호를 밀어붙이고 드디어 허리짓을 했다.
“응… 앙…! 으으응…! 아앙… 핫… 살살….”
“싫으면… 큭… 지금 말해…. 나 못 참아….”
섹시하고 느릿하게 허리를 움직였다. 마치 넣어서 슥슥 움직이고 돌리듯 앞섶을 맞대어 비볐다. 황경호는 강동현의 머리카락 속에 손을 넣어 몇 번이나 쥐었다가 말았다 하며 몸을 떨었다. 기분 좋아….
“하자…. 응? 하자. 나랑 하자. 끝까지 해. 하아…. 기분 좋게 해줄게. 이번엔 정말 잘할게….”
강동현은 황경호의 목을 잘근잘근 물다가 그의 귓가에 나직하게 속삭이며 졸랐다. 그리고 귓바퀴를 핥으니 황경호가 신음을 길게 흘리며 부들 떤다.
“응? 하자. 해. 넣게 해줘. 죽을 것 같아. 하고 싶어. 넣고 싶어. 하게 해줘. 대답 안 하면 한다?”
그리고 확인을 하기 위해 눈을 보았다. 황경호는 입을 꾹 다문 채 약간 불안한 눈으로 그의 눈을 보았다. 그의 얼굴에 입술을 꾹꾹 누르며 섹시한 한숨을 쉬었다.
“어떻게 해줄까? 응? 니가 하고 싶은 대로 해. 그러면 되잖아. 핥아줄까? 빨아줄까?”
강동현은 말을 하다가 자기가 더 대꼴한 모양인지 그대로 신발도 벗지 않고 침대로 가서 황경호와 같이 엎어졌다. 강동현은 그의 귓가와 뺨, 턱, 목덜미, 쇄골…. 이렇게 내려가면서 입을 맞추었다. 황경호는 예민하게 느끼며 우는 것 같이 신음을 흘렸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티셔츠를 위로 확 밀어 올렸다. 그의 유두를 한참 핥으며 손으로 황경호의 바지를 벗겼다.
“흑… 으응. 앙… 하앙…. 하아앙. 응앗…! 힉… 아앙…….”
가슴을 핥아주니 신음소리를 전혀 참지 못하고 강동현의 머리를 끌어안고 있는 황경호였다. 게다가 바지를 벗기고 한 번 절정에 이르러 완전 젖어버린 다리 사이에 커다란 손이 닿자 펄쩍 뛰었다. 강동현은 그대로 황경호의 배꼽도 한참 핥고 그의 부드러운 복부에 얼굴을 묻고 냄새를 맡다가 그대로 다시 아래로 내려왔다. 허벅지를 깨물어 빨아 또 멍을 만들고 위를 올려다보았다. 황경호가 눈물을 줄줄 흘리며 강동현을 보고 있었다.
“흑… 하지 마.”
“뭘?”
“입으로… 앙…!!”
그 말에 그냥 생각할 것도 없이 입술로 물어버렸다. 이미 녹진녹진하게 젖어있는 황경호의 것을 입으로 물자 황경호는 크게 비명을 지르며 뒤로 넘어갔다. 그대로 허벅지를 180도로 벌리고 입속에 전부 넣었다가 쪼옥 빨아내니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비명을 지르고 난리가 났다. 그대로 사탕이라도 빨듯 쪽쪽 빨아버렸다.
“하앙! 앙! 아앗! 싫어! 흐앗! 싫어! 싫어! 하지 마! 강동현! 아앙! 아아앙! 갈 것 같아! 흐앙! 나와! 나와! 어떡해! 아아!!”
황경호는 한 손으론 강동현의 머리카락을 쥐고, 한 손으론 자신의 얼굴을 반쯤 가린 채 침대가 덜컹거릴 정도로 몸부림을 쳤다. 그리고 순간 뒤로 몸이 확 꺾으며 젖은 입술을 벌렸다.
“하아아아앙….”
강동현은 천천히 그의 성기에서 입을 떼고 손으로 그의 것을 매만지며 침대 밖에다 입에 있는 걸 뱉어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가슴이 다 보이도록 티셔츠가 위로 올려지고 신발을 신은 채 속옷이랑 바지가 한쪽 다리에 달랑달랑 매달려 있는 황경호였다. 무릎은 직각인 채 허벅지가 180도로 눌려 벌려진 방어력이라곤 전혀 없는 자세다. 그는 완전 야하고 성숙해 보이는 얼굴로 느끼고 있었다. 그대로 황경호의 젖은 성기를 매만지자 앙앙거리며 야하게 몸을 꿈틀거렸다.
강동현은 티셔츠를 훌쩍 벗어내고 바지와 속옷을 한 번에 무릎까지 내리고 신발과 함께 그냥 발로 차듯이 다 벗어버려 순식간에 알몸이 되었다. 그의 대물은 거짓말처럼 팽팽하게 부풀어 발기해 있었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것을 만지던 손으로 완전 홍수처럼 젖어버린 엉덩이 사이에 손을 집어넣었다.
“힉…!”
황경호가 눈을 살짝 뜨며 움찔했다. 여전히 정신이 나가서 잡아 잡수라고 아예 벌리고 있는 황경호였다. 강동현은 그의 엉덩이 사이의 음부를 살살 쓰다듬으며 천천히 위로 올라와 그의 얼굴을 정면에서 내려다보았다.
“정신 차려.”
그렇게 말하며 입술을 가볍게 꾹 눌러 맞추었다. 강동현의 전신에 전율이 흐르고 식은땀인지 뭔지 모를 땀이 후두둑 떨어졌다. 오한이라도 든 것처럼 몸이 떨린다. 점점 자지가 아플 정도로 발기하는 걸 느꼈다. 얘를 상대하면 정말 간단히 발정해버린다. 간신히 욕정에 휩쓸리지 않고 버텼다. 술에 취했는데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상대의 이런 달콤함이 이제 덫 같이 느껴졌다.
‘그래. 그냥 지금 할 수 있는 거 알아. 안다고. 아, 씨X. 그냥 해버리면 얘는 또 그냥 얌전히 당할 거야.’
몸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팔꿈치를 대고 있던 팔의 손으로 황경호의 머리카락과 이마를 매만지며 시선을 맞추었다. 멍하니 강동현을 올려다보는 황경호를 내려다보았다. 강동현은 열기를 띤 음성으로 말했다.
“나 할 거야.”
“아….”
“싫으면 지금 말해. 나 절대 못 멈춘다.”
그런데 아무 말이 없었다. 그냥 박고 싶었지만 간신히 참았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입술을 쪼듯이 계속 맞추었다. 그의 바지와 신발을 마저 벗겨냈다.
“빨리 하고 싶다고 말해.”
“흑… 아….”
“빨리 나랑 하고 싶다고 말해.”
“잠깐만….”
“넣어 달라고 말하라고.”
“아…!”
강동현은 상대의 음부를 만지던 손으로 황경호의 손을 잡아 자신의 남성기를 만지게 했다. 그리고 천천히 쓰다듬게 했다.
“내가 넣으면 기분 좋다는 거 알잖아…. 응? 넣어 달라고 해. 안 부끄러워해도 돼.”
강동현은 애가 닳아 황경호와 이마를 맞대고 끓는 듯한 한숨을 내쉬었다.
“제발… 응? 미칠 것 같아. 나 좀 살려줘. 제발….”
강동현이 애원하며 눈을 마주쳤다.
“나 너밖에 안 되는 거 알잖아. 나 너밖에 안 돼. 나 너밖에 없어….”
황경호는 강동현이 계속 그렇게 속살댈 때마다 이유도 모르게 가슴이 폭발할 것처럼 뛰는 걸 느꼈다. 괴로웠다. 황경호는 눈을 감고는 살짝 몸을 떨었다.
“안 아프게 살살해….”
어깨까지 새빨개져선 벌써 촉촉해진 피부로 속삭이듯 작게 말했다. 강동현은 허락의 말을 듣자마자 온몸이 부풀어 터질 것만 같다는 착각이 들었다.
아, 이제 못 참아. 돌아버리겠다. 야해. 야해. 꼴려서 돌아버리겠어. 다 씹어 먹어버리고 싶어. 터질 것 같아. 당장 넣고 싶어!
강동현이 곧바로 황경호의 허벅지를 자신의 무릎 위로 확 잡아당겨 올렸다. 황경호가 깜짝 놀라 불안한 눈길을 보였다. 질척질척하게 젖은 황경호의 엉덩이 사이를 보기 위해 그의 허벅지를 누르자 엉덩이가 들렸다. 황경호는 순간 숨이 막혀 괴로운 신음성을 냈다. 창밖에서 들어오는 주홍빛 가로등 불빛만 희미하게 안을 비췄다. 매끈하고 부드러운 음부가 체액 때문에 더 맛있어 보였다. 강동현은 빳빳해진 자신의 대물의 끝으로 황경호의 엉덩이 사이를 강하게 긁어댔다.
“하앙…! 아아…!”
민감해서 곧바로 허리를 뒤틀며 황경호가 반응했다. 싫다고 싫다고 할 때도 이랬지. 하아, 젠장. 여자처럼 그냥 박을 수 있으면 좋겠다. 강동현은 그대로 황경호의 음부에다 귀두를 눌렸다.
“흐응! 앗…. 안 들어가. 안 들어가. 흐앗. 안 들어가.”
황경호가 도리질을 치자 강동현이 잇새를 꽉 물고 대꾸했다.
“처음도 아니면서 뭘 안 들어가…. 젠장… 힘 좀 빼.”
“잠깐만… 하앙….”
그의 신음소리가 점점 고삐를 놓게 만든다. 강동현은 그의 음부에 자신을 비비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거 엄청 기분 좋겠지…. 하… 엄청… 진짜… 죽을 것 같이… 알아…. 얘 진짜 기분 좋아….’
술도 취했겠다, 머리에 나사가 수백 개는 풀어지기 시작했다. 강동현은 침을 꿀꺽 삼키고 침대 옆의 스탠드에 손을 뻗어 불을 켰다. 서로의 얼굴이 좀 더 명료하게 보였다.
“괜찮아. 진짜 힘 좀 빼. 안 아프게 할 거 알잖아.”
강동현이 엄지로 회음부와 음부 주위를 꾹꾹 누르자 민감하게 느끼며 야한 얼굴을 한다.
‘아, 진짜 얼굴 어떡할 거야. 평소엔 이런 얼굴 아니잖아. 젠장.’
새빨개져선 성숙하고 야한 얼굴이 되었다. 게다가 전이랑도 많이 다르고…. 강동현은 황경호의 두 손을 가져와 그의 엉덩이를 잡게 했다.
“힘줘서 잡아.”
“흑….”
황경호 스스로 엉덩이를 벌리게 하고 있는 것이다. 황경호는 그게 엄청 부끄러웠다. 강동현은 부끄러워서 난감하고 겁먹은 표정이 된 황경호의 얼굴을 잠깐 만졌다가 한 손으론 같이 황경호의 음부를 엄지로 세게 눌러 벌리고 다른 손으론 역대급으로 부풀어오른 자신의 남성기를 입구에 살살 돌리며 누르기 시작했다.
“아아앗…! 아아…!”
누르며 비비기만 하는데 엄청 반응하면서 막 줄줄 흘려댔다. 기대하는 것 같다. 미치겠다….
“황경호…. 황경호….”
그의 이름을 주문처럼 부르며 체액을 발라가며 조금씩 조금씩 누르자 꿈쩍도 않고 손끝 하나 안 들어갈 것 같던 틈이 살짝살짝 벌어지더니 앗 하는 순간 자지의 귀두를 쑥 먹었다.
“윽…!!”
“아아아!!”
황경호가 비명을 질렀다. 둘 다 깜짝 놀라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 쩍쩍 달라붙는 느낌… 앞뒤로 살짝 몸을 움직여도 전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강동현의 온몸으로 땀이 비 오듯 쏟아져 내렸다. 술 때문도 있고 체온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졌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성기에 불이라도 붙은 것 같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팔을 붙잡아 일으켰다. 몸에 어떻게 힘을 주고 일어나야 하는지 모르는 어린애처럼 강동현의 대물을 중심으로 비틀거렸다. 그는 강동현의 자지 끝을 엉덩이로 빠듯하게 머금은 채 무릎으로 서야만 했다. 빠지지도 들어가지도 않는 상태였다. 황경호가 강동현의 양어깨를 두 손으로 잡아 몸을 기대었다. 강동현은 그의 명치 부근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천천히… 흑…. 천천히….”
“알았어. 알았어….”
손가락으로 풀지도 않고 넣었더니 황경호가 완전 바들바들 떨었다. 그대로 황경호의 엉덩이 두 쪽을 잡고 주무르며 그의 엉덩이를 위아래로 혹은 양쪽으로, 또는 빙글빙글 돌리며 어떻게든 강동현의 자지를 깊이 먹도록 움직였다. 정말 억겁 같은 시간이 걸리며 조금씩 조금씩 들어갔다. 황경호가 강동현의 무릎에 앉을 수 있을 정도가 되어서야 더 밀어 넣는 걸 멈추었다. 둘 다 엄청나게 헐떡거리며 서로를 껴안고 있었다.
“아…. 힘들어.”
강동현이 황경호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그의 체취를 맡았다. 이제 둘은 아예 꽉 맞물려버린 상태라 정말 빼지도 못하는 상태였다. 넣고 뺄 수가 없어 그냥 서로의 살이 딱 달라붙은 채 깊은 곳만 슬슬 누를 수밖에. 그대로 강동현은 고개를 들어 황경호의 턱에 입을 맞추며 그냥 남성기로 황경호의 안을 꾹꾹 눌렀다. 이 각도라면 처음 모텔에서 했을 때 누르던 각도는 아닌데 느낄 수 있으려나 싶었지만, 그런 건 정말 기우였다.
“흐응…! 앙! 힉…. 으응… 하앙… 읏… 흐읏….”
황경호는 미간을 왕창 찌푸리고 신음을 참으려고 했지만 전혀 못 참았다.
“너… 왜 이렇게 잘 느껴? 나 진짜 궁금한데….”
강동현은 신음을 흘리며 황경호의 입술을 빨았다. 너무 뜸을 들여서 그럴까. 진짜 자지가 녹아버릴 듯이 뜨겁고 터질 것만 같다. 이쪽도 저쪽도 마구 움직였다간 큰일 날 것만 같다. 근데 정신은 진짜 좀 나갔다.
“왜 이런 거야? 응? 말 좀 해봐.”
“흑… 아앙… 그런 것 좀 물어보지 마…. 아읏….”
황경호는 강동현의 눈을 피했다가 마주 보고, 또 피하고, 또 마주 보고 그랬다. 강동현은 그냥 상대의 입술을 빨면서 시선을 계속 맞추려고 하며 다시 물었다.
“왜….”
“창피해…. 흑. 아앙… 아아앙….”
“뭐가 창피해…. 말해…. 응? 말해봐.”
게다가 진짜 서로 틈 하나도 허용하고 싶지 않다는 듯이 꽉 끌어안고 하는 느릿한 섹스. 황홀했다. 진짜 정신 나간다…. 강동현은 계속 입을 맞추었다. 황경호의 쩍쩍 달라붙는 살 때문에 안에서 남성기가 움직일 수 없었지만 끝으로만 누르고 강동현의 배에 앞이 문질러지고 등과 엉덩이를 만져지는 것만으로도 갈 것 같은지 황경호가 울먹거리면서 욕했다.
“변태…. 흑… 색마. 고자. 또 나한테 이런 거 하고….”
“해도 된다고 했잖아….”
아, 좋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말랑말랑한 엉덩이를 쥐어 슬슬 돌렸다. 그의 살에 딱 달라붙어 이리저리 잡아당겨지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황경호의 부드러운 앞이 이리저리 비벼진다.
“힉… 으으… 아… 아앙… 아아앙… 흐응….”
황경호가 어느샌가 눈을 지그시 감고 강동현의 어깨를 끌어안은 손으로 그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너무 느껴서 울고불고 난리 치는 게 제일 좋긴 한데…. 강동현은 그의 얼굴을 올려다보았다. 잠깐 감상하다가 역시 괴롭히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의 귀에다 놀리듯 속삭였다.
“기분 좋아…?”
그러자 황경호가 화들짝 정신이 들어 눈을 떴다. 얼굴이 더 빨개졌다. 강동현은 그의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어떻게 해주는 게 제일 기분 좋아?”
“아니야…. 없어.”
“아니긴 뭐가 아니야… 없긴 뭐가. 응? 이렇게 하는 거 말고 넣었다 뺐다 하는 것도 좋지? 응? 더 넣어서 하는 것도 좋고. 그지?”
“하지 마….”
‘부끄러워하는 거 진짜 좋다…. 귀여워. 진짜 귀여워. 더 괴롭히고 싶어.’
강동현은 황경호의 뺨을 빨았다. 전에 막 할 땐 싫다는 말만 잔뜩 했는데….
‘아, 젠장. 처음부터 이렇게 하고 싶었어….’
처음부터. 처음 섹스를 했을 때부터. 아니, 처음 만났을 때부터.
“앞으로 하는 게 좋아? 뒤로? 난 너 위에 태워서 하는 게 좋은데. 이것도 좋고….”
그러면서 황경호의 매끄러운 피부에 얼굴을 비볐다. 그러면서 안쪽을 몇 번 누르고 당기듯 엉덩이를 돌리고 하는 걸 반복하니 황경호가 점점 가쁜 숨을 쉬며 어쩔 줄을 모르고 울먹였다. 가슴이 찌르르 떨렸다. 이럴 때 얘가 우는 게 왜 이렇게 좋지.
“갈 것 같아?”
“흑…. 아앙… 흐응… 아아앙….”
황경호는 강동현의 어깨를 밀어내려고 했다. 아무래도 이렇게 하는 건 강동현에겐 자극이 적어서… 강동현은 황경호의 얼굴을 핥았다.
“계속 고개 돌리지 말고 얼굴 보여줘. 나도 사정하고 싶어….”
“아…! 잠깐만… 너… 안에다 할 거야?”
황경호가 줄줄 흘려대며 느끼면서도 그건 싫은지 퍼뜩 말했다. 강동현이 약간 집중을 하여 황경호의 안을 찌르고 휘저으며 낮게 신음을 흘렸다.
“당연한 거 아냐?”
“뭐가 당연해…! 아앙… 안에다 하지 마…. 죽는다, 진짜…!”
“안에 안 싸면 이거 못 빼.”
강동현이 잡아 빼려는 듯 엉덩이를 들어올리는데 살이 확 딸려 나가는 기분이 들자 황경호가 오히려 놀라서 엉덩이를 주저앉혔다. 황경호는 그제야 다시 울상이 되었다.
“진짜 못돼 처먹었어….”
“응…. 키스 좀 해봐. 빨리하게. 응?”
황경호는 못마땅한 얼굴로 술과 성교 때문에 상기된 강동현의 얼굴을 잠깐 보다가 그의 뺨을 한 손으로 잡고 입을 맞추었다.
“으음….”
달콤하게 혀가 섞였다. 서로의 타액을 빨고 혀를 물고 섞고… 황경호는 점점 더 헐떡이다가 강동현을 꽉 끌어안았다. 눈을 감으며 턱을 들고 입술을 야하게 벌렸다.
“아아아아앙….”
오랫동안 자극받아서 그런지 다리로도 강동현을 꽉 끌어안고 안에 들어온 자지도 엄청 죄었다. 강동현이 인상을 확 찌푸리며 그의 젖꼭지 둘을 모두 엄지로 마구 문지르며 그의 절정을 더 끌어올렸다. 황경호가 그의 두 팔을 꽉 잡으며 몸부림을 쳤다. 야한 얼굴을 코앞에서 보고 야시시한 신음소리를 직방으로 들으니 강동현도 갑자기 아랫배가 엄청 단단해지며 순식간에 사정감이 차올랐다. 그는 황경호의 엉덩이 안을 꾹꾹 누르며 섹시한 신음을 길게 흘렸다.
“나도 한다… 크으윽….”
“힉… 아앙… 하으으….”
여기 안이 축축해지는 건 정말 이상한 느낌이다. 황경호는 엉덩이를 경련하듯 떨며 힘을 빼지를 못했다. 둘 다 사정감이 길어 꽉 끌어안은 채 쾌락을 나누었다. 강동현이 황경호의 등허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미추까지 오가는 손길이 부드럽고 자극적이고, 기분이 좋았다. 황경호는 강동현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크게 호흡하였다. 좋은 냄새….
한참 뒤에 강동현이 황경호의 얼굴을 잡아 들어 서로의 얼굴을 마주했다. 그는 아직도 절정감에 취해 눈을 지그시 감고 있었다. 그런 그의 얼굴이 섹시하고 매력적이었다. 황경호는 가만히 그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뺨에 얼굴을 묻고 여느 때보다도 황홀한 사정감에 취해 휘청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좀 정신을 차리고 황경호와 얼굴을 마주했다.
“더… 해도 돼?”
좋아. 좋아서 죽을 것 같아. 더 하고 싶어…. 강동현은 강동현의 프리컴과 정액 때문에 조금 윤활한 기운이 돈 황경호의 내부를 느끼고 있었다. 강동현은 황경호를 침대에 눕혔다.
“좀 더 하자. 응?”
“…….”
황경호가 인상을 좀 찌푸렸다. 강동현은 그냥 대답이 없는 걸 긍정이라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젠 못 참겠다. 그대로 입을 맞추며 허리를 후진했다. 그러자 마치 남성기가 쪼오오옥 빨리는 느낌으로 빠져나왔다.
“아아아…!”
황경호가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그대로 꾸욱 박아 넣으니 다리를 덜덜 떨며 다시 삼켜 문다. 이 정도로 예민한데 전에는 도대체 얼마나 필사적으로 참았길래…. 강동현은 또 전에 했던 게 불현듯 생각나서 인상을 팍 썼다. 계속 비교가 된다.
“괜찮아… 괜찮아…. 하아….”
강동현은 인상을 왕창 쓴 채 천천히 하려고 노력했다. 기분은 끝내준다. 완전… 완전 끝내준다. 강동현은 그대로 슥슥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황경호는 강동현의 아래에서 꿈틀대며 신음했다.
‘아, 젠장. 진짜 미칠 것 같다. 이 감촉… 아… 완전 조여. 씨X.’
강동현은 허리를 세운 채 느릿하고 야하게 그의 대물을 상대의 음부에다가 넣었다 뺐다 거렸다. 찌걱찌걱찌걱. 찌이걱. 찌걱. 피스톤질에 의해 골고루 체액이 발라지며 좀 더 움직이기 쉬워진다.
“흐응… 아앙… 하앙… 으아앙… 아앙. 앗… 하앗… 아아앙….”
느껴지는데도 부끄럽고 버겁기도 했다. 황경호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흔들리고 있었다. 그의 성기는 이미 몇 번 움직일 때마다 한 번씩 투명한 걸 흘려댔다. 강동현은 주홍빛 불빛에 비친 그의 몸과 얼굴을 핥듯이 보며 느리지만 착실하게 허리를 돌리고 안을 마찰하고 삼각형 모양을 그리고 안을 긁고…. 별짓을 다했다.
“하아아아앙….”
황경호가 자기 다리를 확 움츠리며 야하게 엉덩이를 경련했다. 조였다 풀었다…. 강동현은 그대로 슥슥 더 안을 자극했다. 황경호가 숨이 넘어갈 듯이 신음하며 그를 퍽퍽 쳤다.
“안 돼…! 아앙! 싫어…! 하앗… 지금 하는 거… 아아아아!”
그가 비명을 질렀다. 강동현은 그대로 허리를 구부려 그의 엉덩이가 들리도록 하여 아래위로 쿡쿡 박았다. 전후좌우로 방향을 틀어가며 일정한 박자로. 정면에서 그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고개를 도리질 치다가 두 손으로 자기 얼굴을 감싸고 흔들리고 있었다. 강동현은 얼굴을 가리고 있는 황경호의 손 하나를 억지로 떼어냈다.
“왜… 왜 안 돼? 왜 지금 하는 거 안 돼? 너 이때 하면 엄청 느끼잖아….”
황경호는 완전 울고불고 엉망인 얼굴로 다급하게 헐떡이며 강동현을 멈추려고 했다.
“싫어. 힉. 싫어. 싫어. 나쁜 놈! 아앙. 아아앙. 싫단 말이야. 하응. 힉. 아. 죽을 것 같아…! 하아앙. 나 또 나와. 나와. 아아아아앙!”
와…. 또 가버렸다. 그렇게 감탄하는 것도 잠시, 강동현은 그의 엉덩이가 자신을 꽈악 하고 세게 조였다가 벌벌 떨고 또 꽉 끊을 듯이 조이는 걸 반복하자 미간을 확 찌푸리고 신음을 흘렸다. 미치겠다…. 그 감각을 한참 견디듯이 즐기다가 강동현은 황경호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는 울고불고 욕하고 난리를 치다가, 바들바들 떨면서 숨이 넘어갈 것 같이 되었다. 더 박을까 하다가 멈추었다. 강동현은 그의 얼굴을 만졌다.
“괜찮아?”
“윽… 하아… 흐읏….”
말 못 한다…. 속눈썹을 파르르 떨며 시선을 한 것에 맞추지 못하고 눈동자를 쉴 새 없이 떨었다.
“나 봐…. 응? 괜찮아.”
드디어 눈이 마주쳤다. 황경호는 숨을 멈추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굉장히… 뭐랄까. 무력하고 취약하게 보였다. 정말 괴롭히고 싶어졌다. 정말 전부 꼭꼭 씹어 먹어버리고 싶다. 금방 멈추지 않고 계속해버렸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좀 있다….’
마음껏 괴롭히고 싶었지만 그는 여전히 섹스에 익숙해지지 않아서 마구 할 수가 없었다. 얼마나 더 해야 되는 거야…. 강동현은 그의 뺨을 깨물었다. 울어서 짭짜름했다. 그리고 그의 상태를 보고 다시 움직였다. 아래위로 쿡쿡쿡쿡. 사정감이 차오르는 기분이 마치 어떤 대단한 걸 해낸 것 같은 고취감이 들며 고양되었다.
“하아…. 나 진짜 앞으로 너 말고 다른 사람이랑은 못할 거 같아….”
강동현이 신음처럼 속삭였다. 이런 기분을 들게 해주는 상대가 또 있을 리가 없었다. 이렇게 느끼고 상성이 좋은 상대도…. 언제나 상상했던 것보다도, 기억나는 것보다도 좋다. 자지가 떨어져나갈 것 같고 터질 것만 같다. 강동현은 그의 입술을 빨고 안에다 혀를 넣고 한참을 빨아댔다. 그리고 진이 빠진 상대의 음부를 마음껏 즐겼다.
“너도 다른 사람이랑 하지 마…. 나랑만 해…. 알았지? 응? 알았지?”
강동현은 어린애처럼 졸랐다. 황경호는 눈이 확 풀어진 상태로 강동현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등과 목을 쓰다듬듯 끌어안으며 입술을 찾았다. 강동현은 입을 맞추었다. 아, 진짜 욕 나오게 좋다. 아랫배가 돌처럼 단단해졌다. 상대의 몸이 꽤 풀어진 게 느껴졌다.
조이지만 꽤 부드럽다. 한 번 더 사정하면 정말 쫄깃해질 거다. 강동현은 예전을 생각하며 그렇게 가늠했다. 황경호의 상의를 마저 벗겼다.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 마구 깨물고 빨았다. 뺨도, 귀도, 어깨도. 가슴과 손과 옆구리에도…. 전부 그런 식으로 흔적을 잔뜩 만들었다.
“흑…. 아프다니까.”
“미안. 아팠어?”
“얼굴에는 하지 마….”
“하아…. 미안. 하고 싶어. 너… 항상 아무 일도 안 일어난 것처럼 구니까…. 이거 볼 때마다 나랑 한 거… 생각날 거 아냐…. 음….”
“아… 진짜아…. 읏… 나쁜 놈….”
강동현이 황경호의 뺨을 핥았다. 그리고 허리와 허벅지의 근육을 써서 천천히, 하지만 진한 느낌으로 그의 안에 들락날락하면서 그에 속삭였다.
“좋아해. 좋아해. 좋아해. 황경호. 좋아해…. 너 진짜 귀여워.”
“아아아앙….”
황경호가 손가락을 깨물고 견디고 있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또 사정했다. 강동현은 경련하듯 자신을 빨아들이는 황경호의 조임에 인상을 확 썼다가 결국 왕창 싸버렸다.
“으으윽…!”
“힉… 아앗… 아응….”
강동현이 뿜어낼 때마다 상대에게 허리를 강하게 들이밀었다. 그러자 황경호는 움찔움찔하며 꽉 조이고 짜냈다가 풀고는 했다. 합이 환상적이다. 강동현은 현기증이 확 돌면서 황경호에게 기대어 엎드렸다. 한참을 둘 다 헐떡이면서 눈을 감고 절정감을 느끼고 있었다.
“무거워….”
황경호가 강동현에게 깔려서 꼼짝도 하지 못하고 그렇게 속삭이듯 말했다. 강동현은 그 목소리에 약간 소름이 끼쳤다. 반쯤 정신이 나간 채 팔로 겨우 몸을 받치고 일으켰다. 황경호는 완전 한계라 그를 밀어냈다.
“나 이제 못 해….”
“뭘 못 해…. 아직 두 번밖에 안 했어.”
넌 두 번이겠지만 이쪽은 아니다. 황경호는 강동현이 허리를 일으키고 약간 허리를 뒤로 뺐을 때, 그가 그만두려는 건 줄 알았다. 그는 황경호의 한쪽 다리를 들어올려 팔에 걸치고 다른 쪽 다리를 아래로 했다. 벌어진 아래위로 벌어진 다리 사이에 맞물리듯이 위치하곤 다시 허리를 꾹 눌렀다. 전형적인 가위치기 자세다.
“나 진짜 이것도 너랑 하고 싶었거든…. 사실 이거 말고도 많아.”
“아… 이제 진짜 못한다니까…! 아아앙…!!”
“천천히 할게, 읏. 여기가 좋아?”
“아앗! 거기 싫어…. 하으으응…!”
*
황경호는 뭔가 화들짝 놀라듯이 일어났다. 그리고 일어나자마자 허리와 엉덩이와 허벅지 등등의 통증으로 앓는 소리를 내며 다시 확 허리를 꺾었다.
‘뭐야…. 뭐지?’
황경호는 당황스러워서 갈피를 못 잡다가 옆에 강동현이 누워있는 걸 발견하고 경기를 일으킬 뻔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더듬었는데 완전 깐 달걀 같은 알몸이다. 그러다가 기억이 났다. 온몸이 새빨개졌다.
“으으….”
창피해서 그냥 이대로 땅속으로 사라져버리고 싶었다.
‘그렇다고 얘랑 왜 또 해! 내가 진짜 미친놈이다. 내가 미친놈이야….’
황경호는 한참 메추리 새끼처럼 얼굴을 두 팔로 가리고 웅크리며 괴로워하다가 침대에서 내려왔다. 집 안도 엉망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아차 싶어서 휴대폰을 찾았다. 어제 입었던 옷의 주머니에 들어있었다. 8시다. 출근해야 한다. 황경호는 얼른 욕실로 갔다.
“아으….”
이건 진짜 평생 익숙해지지 못할 것이다. 엉덩이 사이에 엄청난 공간감이 느껴졌다. 평소보다 훨씬 뜨거운 물을 틀고 벽을 잡은 채 일단 음부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진짜 쑥 들어갔다. 황경호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혔다.
“으응… 응… 아응….”
그리고 이리저리 움직여 벌리니 저도 모르게 입술 사이로 신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의 온도를 좀 낮추고 그 사이로 물을 넣고 변기에 앉았다.
“흐앗… 아아앗….”
몸이 찌르르 떨렸다. 힘을 약간 주었더니 뭐가 마구 나왔다. 아래를 보니 죄다 정액… 황경호는 다시 펑 터져버릴 만큼 빨개졌다. 죽고 싶다….
‘어제… 얼마나 한 거지….’
황경호는 자신의 횟수는 세기를 포기했다. 어디서부터는 언제를 한 번으로 쳐야 할지 모를 구간도 있었다. 그리고 저 변태 새끼는… 네 번인가. 아, 미쳤다. 미쳤어. 미친놈. 황경호는 얼른 몸을 씻고 옷을 챙겨 입었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얼굴이 문제다. 피멍이 들어 엉망이었다. 멍만 들었으면 다행인데 잇자국이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전에 왕창 사둔 밴드를 덕지덕지 얼굴에 발랐다. 집 안 꼴이 개판이었지만 정리할 시간이 없었다.
8시 30분. 이건 뭘 어떻게 가도 지각이었다. 황경호는 휴대폰과 카드만 챙겨서 얼른 밖으로 나왔다.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이강유 비뇨기과 의원입니다.]
“아, 기연아. 오늘 일찍 왔네.”
[어. 오빠야? 왜.]
“나 좀 늦을 것 같아서. 10분… 아니, 20분.”
못 뛰겠다. 황경호는 허리가 지끈 울려 뛰는 걸 포기했다.
[알았어.]
정기연은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황경호는 그냥 절뚝거리지 않기만 바라며 걸었다. 지하철역으로 가서 바로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 안은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어서 괜찮았지만 지상을 걸을 땐 사람들이 힐끔거리며 황경호를 보았다. 얼굴이 폭발할 것 같이 시뻘갰기 때문이다. 황경호는 한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걸었다.
‘죽고 싶다…. 부끄러워….’
황경호는 정말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들어가고 싶었다. 정말 어제 왜 그렇게 됐는지 모르겠다. 술 취한 놈 주정 좀 받아주다가 갑자기 일이 그렇게…. 심지어 황경호는 술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은 상태였다. 그때 모텔에서 이후로 이렇게까지 많이 한 건 처음이었다. 근육통은 생각보다 심하지 않았지만 엉덩이 사이에 이물감이 장난 아니었다. 게다가 허리는 둔중하게 아팠고….
황경호는 출근 시간을 25분 넘겨 병원에 도착했다. 죄송합니다, 하고 다른 사람들한테 몇 번이나 사과를 하고 간호사실로 가서 옷을 갈아입었다. 옷을 갈아입고 사람들을 마주하려는데, 가슴 속 깊이부터 한숨이 올라왔다. 지금 느낌으로는 홍조 증세가 재발한 거 같은데 이 상태로…. 거기다 얼굴을 이 꼴을 하고 사람들 상대를 해야 한다니.
‘아…. 진짜 왜 또 키스는 해서….’
이제 키스 정도는 완전히 익숙해진 건지 키스를 하다가 기분이 좋아지면 저도 모르게 확 휩쓸려 있을 때가 있었다. 이번은 그중에서도 완전 대형사고였다.
[나 너 진짜 좋아하는데. 그래도 싫어?]
그 나쁜 놈. 뻔뻔하게 그런 소리나 하고 말이다. 싫은 게 당연하지 않은가. 전에도 좋아하는 거 아니냐고 황경호한테 도리어 물어보며 사람을 열 받게 하더니만 이번엔 본인이 그 소리를 했다.
하지만 황경호는 이번엔 화를 낼 수가 없었다. 아무런 말을 할 수 없었다. 그가 하고 싶은 말을 하게 내버려뒀다. 게다가 키스도 하게 해줬고 황경호도 그에게 키스를 했다. 그가 마구 섹스를 조르는 걸 아무 말도 못 하고 듣고 있다가 결국 허락하기까지 해버렸다.
‘이제 어떡하지…. 진짜 망했다. 걔가 뭐라고 할까. 쪽팔려. 그렇게 싫다고 난리를 쳤는데 결국 쉽게 하게 해줬잖아, 또… 나 사실은 진짜 헤픈 놈 아닐까…. 섹스 같은 거 안 해보고 살아서 그냥 하고 싶었던 건가. 아무리 걔가 좋아한다고 했다고 바로….’
황경호는 틈만 나면 벽에다 얼굴을 박아대며 자학을 했다.
“오빠, 또 얼굴 왜 그래?”
정기연이 반창고를 덕지덕지 붙인 황경호의 얼굴을 보고 물었다. 황경호는 화들짝 놀랐다가 기어들어 가듯이 말했다.
“아니…. 또 뭐가….”
“아니, 오빠 얼굴이 뭐가 확 일어나고 할 피부가 아닌 거 같은데…. 알러지야? 두드러기?”
“비슷해….”
황경호는 웬만하면 접객을 하는 대기실을 피했다. 괜히 입원환자실만 돌고…. 그리고 틈만 나면 벽에다 이마를 박고 쪽팔려 했다. 도저히 어젯밤의 기억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었다.
‘아…. 엉덩이 아파….’
사실 강동현은 상당히 부드럽게 섹스를 했다. 원래 그런 식으로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맨 처음 황경호와 잤을 때는 꽤나 거칠게 했지만, 기본적으로 천천히 진득하고 섹시하게 허리를 놀렸다. 근데 문제는 너무 많이 하고, 애무도 너무 많이 하고, 키스도 너무 많이 한다. 엉덩이가 살짝 따갑듯이 아프고 이물감은 엄청나게 남아있었다. 엉덩이 안이 아직도 벌어져 있는 것만 같다. 허리도 이리저리 구부러져서 아팠다. 처음에 그의 위에 올라타고 해서 허벅지도 당겼다. 하지만 화장실이나 불편한 장소에서 한 건 아니라 그렇게 근육이 긴장한 건 아닌지 다른 부분들은 근육통이 그렇게 심하지 않았다. 물린 부분은 만지면 아프다.
[하아…. 나 진짜 앞으로 너 말고 다른 사람이랑은 못할 거 같아….]
섹시하고 잘생긴 얼굴에 엄청 좋은 목소리…. 황경호는 벽으로 돌진해서 이마를 차가운 콘크리트 벽에 짓눌렀다. 갑자기 그가 자신의 위에 올라타 있었던 광경이 확 떠올랐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얼굴이 뜨끈뜨끈하다. 죽을 것 같다. 부끄러워서 죽을 것 같다.
‘아, 나 진짜 일 못 하겠어. 아, 진짜 죽을 것 같아. 아직 점심시간도 안 지났잖아. 나 어떡하냐….’
그러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누가 불렀다.
“황 간호사.”
황경호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김형세가 그를 부르며 위로 올라가는 계단을 손짓했다.
“지금 갑자기 도은혁 환자님 오셨는데. 너 찾는다.”
“!”
황경호는 순간 확 하고 전신이 빨개졌다. 그걸 깨닫고 얼른 얼굴을 가렸다.
‘아, 나 어떡해! 지금 걔 얼굴 못 보는데!’
김형세가 재촉했다.
“뭐해. 빨리 올라와.”
“아…. 응….”
도망갈 길이 없었다. 황경호는 억지로 김형세의 뒤를 따라가면서 두근두근한 심장을 눌렀다. 부끄러워서 벌써 얼굴이 터질 것 같았다. 이 상태론 도저히 다른 사람들 앞에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황경호는 위층의 문을 열고 나가는 김형세의 뒤에서 강동현을 찾았다. 그는 황경호의 집에서 바로 온 건지 어제랑 같은 옷이었다. 그는 김형세 뒤에 있는 황경호를 발견하고 바로 그쪽으로 다가왔다. 황경호는 깜짝 놀라서 뒷걸음질을 치며 계단 쪽으로 다시 들어갔다. 강동현도 거기로 따라 들어와서는 문을 닫았다.
“너 전화 왜 안 받아!”
“아….”
황경호는 말이 안 나와서 뒷걸음질만 쳤다. 강동현이 얼른 그의 손목을 잡아서 끌어당겼다.
“정신 차려.”
계단으로 발을 헛디딜 뻔했다. 황경호는 오싹한 기분에 살짝 몸을 떨었다가 그를 밀어냈다. 내려가는 층계에서 벗어났다. 부끄러워서 그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
“…….”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황경호는 생각보다도 더 당혹스럽고 또 부끄러워서 그냥 어디론가 영영 사라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강동현은 한숨을 쉬면서 선글라스를 벗고 마스크를 내렸다.
“…괜찮아?”
“네? 네….”
황경호는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아…. 병신 같다.
“몸은? 괜찮아? 어제 나 심하게 안 했어?”
“네? 네…?”
“아, 내가 돌았지. 술을 왜 그렇게 마셔 가지고…. 내가 너네 집에 쳐들어간 거야, 설마? 아, 씨…. 진짜 괜찮아? 말로만 괜찮다고 하지 말고 나 좀 봐봐. 내가 잘못했어. 진짜 미안….”
“…….”
강동현은 어젯밤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고 있었다.
황경호는 고개를 들어 강동현의 얼굴을 보았다. 강동현은 난처하고 당혹스럽고 긴장한 얼굴로 황경호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황경호는 입을 뻐끔거리다가 정말 어깨부터 이마 끝까지 싸악 새빨개졌다.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신음을 흘렸다.
“왜 그래? 어? 말 좀 해봐. 응?”
강동현은 답답한지 억지로 황경호의 손목을 그의 얼굴에서 잡아뗐다. 황경호는 다시 너무 부끄러워서 그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진짜 미쳤지… 술 취한 놈 상대하고 뭘 기대한 거야… 나 진짜 문제다… 멍청해… 완전 바보 아냐?’
약간 다른 방향으로 후회가 되었다.
“…정말 하나도 기억 안 나요?”
황경호는 어렵사리 입을 떼었다. 강동현은 분명히 어젯밤에 자신이 만든 게 분명한 흔적들이 선명하게 황경호의 몸에 남아있는 것을 보고 침을 꿀꺽 삼켰다.
‘저건 진짜 적어도 4번 이상은 한 거다… 몸도 엄청 가뿐하고….’
강동현은 끙, 하고 신음을 흘렸다.
“안 나…. 태형이 형네 가게에서 형이랑 얘기한 것까지만 어렴풋이 기억나고….”
강동현이 완전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오히려 황경호가 고개를 들어 강동현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았다. 그러더니 어쩐지 한숨을 얕게 쉰다.
“…….”
“…괜찮은 거야?”
말이 없는 황경호를 보고 강동현이 초조하게 또 물었다.
“어쩐지… 다행인 것 같기도 하고….”
황경호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쪽팔려 죽을 뻔했는데… 얘가 기억하지 못한다면 차라리 나을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불현듯 어떤 장면이 떠올랐다.
[좋아해. 좋아해. 좋아해. 황경호. 좋아해… 너 진짜 귀여워.]
‘그럼… 그건 없었던 게 되는 건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황경호는 다시 얼굴이 벌게져서 한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아… 뭘 또 기대하는 것인가.
“응? 뭐가? 뭐가? 왜 그래?”
“아니에요… 일단 저 일 하고 있던 중이었으니까 돌아가세요. 그리고 아직도 술 냄새 나요.”
황경호는 강동현을 밀어내고 일단 비상계단 밖으로 나가는 문의 손잡이를 잡았다. 강동현이 그의 손목을 잡았다.
“아… 진짜. 그렇게 가지 말고….”
강동현이 애가 타는 음성으로 그렇게 말했다. 황경호는 얼굴을 붉히며 그의 손을 잡아뗐다.
“괜찮아요. 진짜 괜찮아요. 억지로 덮치진 않았어요….”
그렇게 말하더니 황경호는 얼굴을 확 붉히고 황급히 밖으로 나가버렸다. 강동현은 얼이 빠져서 거기에 멍청하게 서있었다.
‘내가 억지로 안 덮쳤을 리가 없는데….’
쟤 말은 곧이곧대로 믿고 싶어도 믿을 수가 없다. 아니, 믿어도 되는지 안 되는지를 모르겠다. 저렇게 괜찮은 척해놓고 나중에 얼굴색 싹 바꾸는 걸 몇 번이나 보았다.
강동현은 거기 서서 숙취로 지끈거리는 머리로 열심히 생각해보았지만 도저히 기억은 나지 않았다. 최근에 술을 전혀 안 마시다가 과음을 했더니 아예 필름이 날아가버렸다. 강동현 평생에 술 먹고 필름 끊긴 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전에는 황경호가 술을 마시고 기억이 날아가 애가 탔는데 이번엔 강동현 본인이다. 답답해 죽을 거 같다. 기억이라도 나야 얼마나 열심히 빌어야 할지, 빈다고 답이 나오는 상황인지 아닌지 가늠이라도 할 수 있을 텐데. 엄청 막막하다….
일단 촬영을 위해 집으로 가서 씻고 챙겨서 촬영장으로 갔다. 그렇게 술을 마시고도 걔랑 엄청 하긴 했는지 몸이 가뿐하다는 게…… 일에 집중하는데 엄청나게 애를 써야 했다. 정말 그 어떤 사람의 일도 이렇게까지 강동현의 일에 악영향을 끼친 적이 없었다. 심지어 전 여자친구랑 헤어졌을 때도 일은 처리하고 술독에 빠졌는데.
‘근데… 진짜 태형이 형 말대로 나 최악이네….’
저번에 그렇게 대판 싸운 지 2주도 지나지 않았다. 정말 조심해야겠다고 몇 번이나 다짐했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걔의 기분을 풀어줄 수 있을지 감이 안 잡혀서 미칠 지경이었는데 대뜸 술을 먹고 가서 일을 쳤다.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셨다고 해도 미친 거 아니냐고. 제정신이냐….
아까 보았던 황경호의 얼굴이 계속 생각났다. 궁지에 몰린 것 같은 얼굴에 눈도 제대로 못 쳐다보고… 얼굴은 새빨갛고 목과 뺨에는 반창고가 덕지덕지… 손까지….
‘아, 난 어쩌자고 도대체… 아니, 해도 좀 부드럽게 해야지 왜 그렇게 사람을 엉망으로 만들어놓냐…. 맨날… 아….’
강동현은 진짜 후회했다. 너무 한숨을 쉬어서 주변 사람들이 다 걱정스러운 말을 건넬 정도였다.
반면에, 오후 내내 고민한 황경호는 결론의 기조를 결국 안도 쪽으로 가닥 잡았다.
‘그래… 술 마신 놈이 술김에 한 말에 낼름 그랬다는 것도 진짜 쪽팔리는데… 만약에 그거 기억이라도 하고 있었으면… 진짜 나 얼마나 쉬워 보이겠냐… 안 그래도 더 쉬워 보일 구석도 별로 없을 텐데….’
황경호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강동현이 기억을 못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해서, 그런 식으로 밤을 함께 한 상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에 대해서만 미친 듯이 고민했다. 어떤 얼굴로 그를 봐야 할지,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아니, 감이 안 잡히다 못해 부끄럽고 무섭고 떨리고 긴장되고…. 온갖 기분이 한데 뭉쳐 황경호를 강타했다. 누가 오늘의 황경호를 자세히 봤다면 분명 심각한 정서불안 환자처럼 보였을 것이다.
[나도… 나도 이런 식은 처음이라 잘 모르겠어… 미안. 근데 진짜 좋아하는 거 같아. 너 진짜 귀엽고… 꿈에도 엄청 나와.]
황경호는 태블릿pc로 얼굴을 가리고 슬그머니 빈 상담실로 들어갔다.
당연히 사실이냐고 물어보고 싶다.
제정신인 걔한테 말이다.
근데 물어보기가 무서웠다. 물어볼 엄두도 안 난다. 일단 강동현은 기억을 못 해도 황경호는 어젯밤의 일을 전부 기억하고 있었고 그것만으로도 황경호는 너무 쪽팔려서 그의 앞에서 영원히 고개를 들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분명히 이번이 그와 한 첫 섹스도 아니고 두 번째도, 세 번째도, 네 번째도 아니지만… 이렇게까지 부끄러웠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와 하고 때때로 수치스럽고 허탈할 때도 있었지만 절대 이렇지는 않았단 말이다… 그럴 때 스스로가 자신답지 않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근데 지금은 진짜 자기자신이 완전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 같았다. 표정도, 기분도, 무엇 하나도 제대로 조절이 되지 않았다. 금세 열이 오르고 부끄럽고 그런데 계속 생각은 나고….
그리고 물어봐도…. 황경호는 태블릿pc로 얼굴에 부채질을 해서 얼굴의 열을 식히기 위해 노력했다. 물어보면 또 뭐 어쩔 것인가. 그래서 그가 진짜 좋아한다며 사귀자고 하면 사귀기라도 할 건가? 남자끼리? 아니, 섹스까지 엄청 했으니 그건 문제가 아니라고 해도… 황경호는 그가 설사 그렇게 말한다고 해도 예스라고 답할 자신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리고 딴 것보다도… 물어보면 그게 무슨 개소리냐는 것처럼 쳐다볼 것 같단 말이다….’
그러니까… 됐다. 그냥 어제 일은 그걸로 묻자. 됐어. 됐어. 그래도 진짜 창녀나 걸레처럼 생각하고 사람 뽑아 먹으려고 했던 건 아니긴 한 것 같으니까.
‘나도 앞으론 너무 하나하나 민감하게 굴지 말자… 앞으로 안 하면 되지, 뭐. 게다가 그렇게 취해서 한 말은 진짜 믿을 게 아니지… 내가 어제 정신이 나간 거지… 그리고 쟤 계속 이러는 것도 어차피 여자한테 안 돼서 그런 거고…. 아, 생각하지 말자. 일하자, 일.’
그래서 오후 타임은 그래도 오전보다는 멀쩡히 일을 할 수 있었던 황경호였다. 계속 얼굴이 빨개지고 몸의 통증이 기억을 되새기게 해 당혹스러웠지만 그래도 컨트롤 할 수 있는 범위 내였다. 퇴근할 때쯤은 정말 괜찮아져 있었다. 어차피 몸이야 조금 있으면 괜찮아지는 거 알고 얼굴도 좀 시간이 걸리지만 결국 깨끗해질 것이다.
“내일 봐.”
“그래, 오빠. 몸 안 좋아 보이던데 들어가서 쉬어.”
“아… 어. 고맙다….”
황경호는 그게 티가 났나 싶어서 얼굴을 확 붉히고는 몰래 감추었다. 황경호는 정리를 하고 마지막으로 병원을 나섰다. 그리고 그쯤 휴대폰을 열어서 드디어 연락 온 것들을 확인했다. 강동현에게서 부재중 전화가 엄청 와있었고 메시지도 엄청 와있었다. 보기 싫어서 그냥 넘어가 버리고 보니 다른 사람한테서 연락이 와있었다. 월세 낼 때 빼고는 연락할 일도 없는 집주인이었다. 그것도 부재중으로 2통. 황경호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바로 받는다.
“예, 사장님. 전화하셨어요?”
[아.. 경호 씨, 이제야 전화 되네. 지금 통화 가능해?]
황경호가 살고 있는 빌라의 건물주였다. 좀 깐깐한 인상의 70대 할머니였다. 이렇게 통화를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가끔 오고 가다 마주치면 인사를 할 뿐이라 서로 안면만 있을 뿐이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 싶었다.
“네. 말씀하세요.”
[아니… 어젯밤에 무슨 일 있었어?]
“네?”
[그게… 입주자들한테서 컴플레인이 들어와서.]
“네? 무슨 컴플레인이요?”
황경호가 어리둥절한 어조로 물었다. 집주인은 좀 황당하다는 말투로 본론을 말했다.
[음… 참 나도 이걸 뭐라고 해야 할지… 혹시 경호 씨 남자친구 있어? 밤새도록 섹스하는 소리 때문에 다들 죽는 줄 알았다네. 다들 잠을 한숨도 못 잤다고. 우리 건물이 이런 컴플레인 들어온 적이 거의 없는데, 참… 앞으론 조심 좀 해달라고.]
“…….”
황경호는 그 자세 그대로 굳어버렸다.
*
‘…….’
뭐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황경호가 살고 있는 빌라 또한 그 근처에 있는 다른 모든 빌라들과 비슷하게 연식이 오래되었고 방음이 잘 되지 않는 건물이었다. 옆방에서 화장실만 사용해도 고스란히 소리가 들리는 그런 방이었단 말이다. 그런데 어젯밤에….
[싫어. 힉. 싫어. 싫어. 나쁜 놈! 아앙. 아아앙. 싫단 말이야. 하응. 힉. 아. 죽을 것 같아…! 하아앙. 나 또 나와. 나와. 아아아아앙!]
황경호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벌게져서는 바닥에 확 주저앉았다. 엘리베이터에서 막 내린 상태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황경호는 슬금슬금 기어서 구석으로 가서 벽에다 머리를 박았다.
죽고 싶어. 죽고 싶어. 죽고 싶어. 죽고 싶어!
“으….”
그는 괴로운 신음을 흘렸다. 일부러 죽으려고 안 해도 너무 쪽팔려서 알아서 자연사할 것 같았다. 황경호는 진짜 너무 창피해서 눈물이 핑 돌았다.
‘그걸… 그걸 사람들이 들었다고…? 다들 들었다고? 다들이면 도대체 얼마나… 옆집 사람만 들은 게 아니라는 건가? 다들 한숨도 못 잤다는 게 그럼… 다들 처음부터 끝까지 들었다는 건가… 설마… 아….’
그나마 강동현이 기억을 못 한다고 해서 겨우 안심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생판 모르는 사람들이 황경호가 남자한테 깔려서 그런… 소리를 내는 걸 다 들었다는 거 아닌가. 강동현도 황경호의 신음소리를 꽤 놀리고 그랬는데… 정말 그건 남들이 들어도 될 만한 소리가… 아니….
“나… 집에 못 가….”
황경호는 너무 부끄러워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신음을 흘렸다.
‘나쁜 놈. 왜 갑자기 그런 소리는 해서. 왜 나한테 그런 짓은 해서.’
그렇게 잠깐 상대를 원망해보았지만, 부질없는 짓이었다. 결국, 다 자기 탓이다.
‘아, 난 병신같이 그걸 왜… 걔랑 그런 식으로 엮어서 뭐 좋은 꼴이 있었다고 바보같이… 기억도 못 하고… 나 진짜 멍청하다. 바보야. 돌대가리. 아, 병신. 바보. 멍청이. 쪽팔려. 죽고 싶어….’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집에 갈 수가 없었다. 오고 가다 사람들이라도 마주친다면… 정말 그냥 죽어 버릴 것 같았다.
‘어떡하지…. 형네 집에 갈까… 아니… 아니야… 거기도 못 가….’
황경호는 차가운 벽으로 들어갈 것처럼 몸을 웅크리고 기대며 또 신음을 내었다. 이런 얼굴로 김태형이나 김형세의 집에 갈 수도 없었다. 분명히 몸에 남은 상처에 대해 물을 것이다. 혹시 그러다 잇자국이라도 발견한다면 뭐라고 변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은 황경호에게 여자 친구가 없는 것도 알고 있고 이덕재라는 게이한테 스토킹을 당했던 것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설사 여자가 있다고 설득할 수 있다고 해도 이런 짓을 사람한테 하는 여자를 만난다고 생각되는 것도 싫고… 이상한 오해를 불러일으키긴 싫었다. 생판 모르는 사람들도 이렇게 쪽팔리는데 아는 사람이 추궁을 한다면 진짜 그냥 미련 없이 뛰어내릴 것이다.
얼굴을 감싸고 있는 손을 내려다보았다. 강동현이 어제 깨물고 빨아서 손등과 손목에도 피멍과 잇자국이 남아 커다란 밴드를 붙여놓았다. 얼굴도 그랬고 목이나 귀도 그랬다. 만지면 아팠다. 그리고 아직 다른 곳도 다 쓰라리고 불편하고… 마음이나 정신도 유달리 힘든 하루였다. 괜히 서럽다….
‘아… 진짜 죽어 버릴까….’
으… 황경호는 신음을 흘리며 벽에다 콩콩 머리를 박았다. 아프다. 그리고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쪽팔리긴 죽을 만큼 쪽팔려서 온몸이 화끈거렸다. 가슴이 답답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를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자학만 하게 되었다. 그렇게 한참을 바보처럼 엘리베이터 옆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가, 결국 병원으로 다시 올라갔다.
*
“오빠… 근데 이거 계속 붙여 놓는 게 더 안 좋은 거 아냐? 바람도 안 통하고.”
정기연이 황경호의 뺨에 있는 밴드에 손을 대자 황경호가 깜짝 놀라서 펄쩍 뛰었다.
“아… 아니… 그래도 환자들 만나는데 보기 싫고… 징그럽게 생겨서 붙여 놓는 게 더 나은 것 같고….”
“진짜 목이나 손까지 이러는 거 보면… 알러지 심한 거 아냐? 잊을 만하면 한 번씩 다시 돋고… 병원은 가봤어?”
“응? 아… 아니….”
“뭐 하는 거야. 진짜 남자들 이래서 안 된다니까? 병원부터 가.”
“어… 알았어. 고마워.”
황경호는 화들짝 놀란 마음을 간신히 감추고 슬금슬금 입원실이 있는 3층으로 내려갔다. 대인기피증 생길 것 같다… 게다가 요즘 황경호는 병원에서 몰래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기 때문에 병원 식구들 얼굴 보기가 더 힘들었다. 특히….
“아프면 쉬어. 응? 갑자기 그만둔다고 하지 말고.”
갑자기 누군가 황경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수술을 끝마치고 깨어난 환자를 확인하러 내려온 이강유였다. 황경호는 깜짝 놀라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알러지 같은 것도 다 스트레스야. 먹는 건 잘 먹어? 또 살 엄청 빠졌네. 나도 스트레스받으면 살 빠지는 체질이라… 잘 먹어, 좀. 잘. 남자는 20대 때 만든 체력이 평생 간다.”
“…….”
이강유는 언제나 친절했다. 그가 그렇게 파렴치한 짓을 환자한테 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가끔 이럴 땐… 황경호는 그런 자신이 또 바보같이 느껴져서 견딜 수가 없었다. 또 온몸에 열이 돌고 얼굴에 홍조증세가 생겼다. 하루가 지나니 몸은 아프지 않았고 물린 곳의 멍이 좀 번지며 커졌다. 그리고 며칠 지나니 멍은 점차 보라색에서 초록색으로 바뀌어갔다. 생각보다 멍은 빨리 빠지는 게 아니라서 약까지 사서 바르고 있었다.
‘그게 문제가 아니고….’
집… 집 어떻게 해야 하지… 황경호는 한숨을 푹 쉬었다. 나흘 전에 집주인에게서 연락을 받고 난 이후로 아예 집 근처엔 얼씬도 못 했다. 솔직히 못 살겠다. 그래서 당장에 집을 빼겠다고 말을 하자니 집주인에게 연락을 하는 게 너무나 힘들다. 심지어 문자만 한다고 하더라도… 뭐라고 생각할까. 지금 집 뺀다고 하면 쪽팔려서 나간다는 거 다 알 텐데. 그런 걸 생각할 걸 생각하면… 그리고 혹시나 다른 사람들이나… 다른 빌라 사람들한테 말한다면… 죽고 싶다. 그냥 죽고 싶어.
게다가 집을 어떻게 뺀다고 해도 문제다. 돈이 없다. 이미 황경호는 저번에 살던 집도 이덕재 때문에 중도에 계약을 파기하고 급하게 나온 데다가 중간에 2달이나 일을 쉬었고… 김태형의 가게를 알게 되고 난 이후부턴 꼬박꼬박 외식을 하고 술을 먹던 날들이 많아 소비가 꽤 늘었던 것이다. 주말에도 사람들이랑 많이 어울리고… 게다가 작년에 초록이 수술해야 해서 그의 자산 상황에선 엄청 무리해서 돈을 보태기도 했다. 이 집으로 옮겨올 때도 이 정도 보증금에 이 정도 월세를 받는 집이 거기 밖에 없어서 간 것이었다. 앞으로 집을 다시 구해야 한다면 월세가 오른다. 고시원 같은 데는 너무 스트레스 받아서 들어가기 싫다. 무서운 곳도 많고… 월세가 더 오르고 황경호의 지금 소비 수준을 유지한다면 진짜 하루살이 생활이 될 게 뻔했다. 그렇다고 소비를 줄이고 예전처럼 살자니… 역시 좀 무서워서 그러진 못하겠다. 아직 황경호는 스스로가 정말 괜찮은지 확신이 없어서 사람들과 같이 있고 싶었다.
“황 간.”
그때 비상계단의 문이 열리면서 누군가가 황경호를 불렀다.
“도은혁 환자.”
그는 그렇게 위쪽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곤 얼른 사라졌다. 바쁜 모양이었다. 하긴, 이강유가 TV에 출연하고 난 이후로 병원이 엄청 바빠졌다. 지금 황경호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말이다. 황경호는 발을 질질 끌며 위로 올라갔다. 대기실에 모자, 선글라스, 마스크를 쓰고 카우치에 앉아 다리를 덜덜 떨고 있는 훤칠한 남자가 있었다. 황경호는 웃으려고 했지만 웃을 수가 없었다.
“오셨어요….”
황경호는 그렇게 웃지도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얼른 4번 치료실로 들어갔다. 강동현도 얼른 따라 들어왔다. 강동현은 나흘 동안 엄청나게 연락을 했다. 황경호는 전부 씹었다.
“야… 그러지 말고 진짜 화내고 싶으면 화내. 내가 잘못했다니까. 다시는 안 그럴게. 술 끊을 게. 응?”
“네. 알았어요. 괜찮다니까요… 그만 해요.”
황경호는 여전히 그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긴장해서 절로 표정이 굳었다. 아무리 그가 기억을 하지 못한다고 해도, 누누이 말했듯이 이쪽은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을 보지 않아도 그의 목소리만 들어도 굉장히, 엄청 부끄러운 장면들이 수시로 떠올랐다. 죽고 싶다.
“어디 다친 데 진짜 없는 거야? 얼굴이랑 어깨 말고는?”
“아, 괜찮아요. 빨리 옷 갈아입고 앉아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강동현은 벌건 황경호의 얼굴을 보고 초조해했다. 강동현은 일단 옷을 갈아입고 의자에 앉았다. 황경호의 얼굴을 걱정스럽게 쳐다보면서 한숨을 푹푹 쉬었다. 그리고 그는 황경호의 뺨을 만졌다.
“미안… 나 또 얼굴에다가… 나 원래 안 이러는데 진짜… 아, 미치겠네. 이건 얼마나 가? 일주일? 이주일?”
그이 손이 닿자 황경호는 얼굴이 펑 터질 것처럼 빨개져선 그의 손을 얼른 치웠다. 그리고 얼굴을 푹 숙였다.
‘제발… 집 문제로도 머리가 터질 것 같다.’
황경호는 역시나 쪽팔려서 죽을 것 같은 기분에 스스로를 그렇게 다그쳤다.
“괜찮아요. 2~3주만 있으면 돼요….”
강동현은 황경호의 그런 반응에 깜짝 놀라 손을 얼른 몸쪽으로 끌어당겼다.
“아~.”
강동현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며 신음을 흘렸다. 그리고 완전 죽을상을 하고 황경호를 쳐다보았다.
“나 정말… 너 안 보러 와야 하는 걸까….”
“…….”
“싫었지….”
강동현은 완전 괴로워했다. 황경호가 싫어하면 안 하겠다고 큰소리를 엄청 쳐놓은 상태에서 술을 먹고 억지로 했다고 생각하니 굉장히 자괴감이 드는 모양이었다. 억지로 한 게 아니라고 했는데도 어쩐지 그는 억지로 한 것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긴, 자기도 지은 죄가 있으니 믿기 힘들겠지.
‘억지로 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부터가… 역시 좋아하고 이런 건…… 술김에 한 말이지… 아니, 설마… 그냥 그 말 듣고 낚일까 싶어서 해본 건 아니겠지?’
황경호는 한숨을 쉬었다. 다시 그에게 억지로 한 건 아니라고 말할까도 싶었지만, 그런 걸 왜 말하겠는가. 그건 그냥 좋다고 하게 해줬다는 말이나 진배없는데. 그러다가 또 강동현이 그냥 막 해도 된다고 생각하면 어떡할 것인가. 솔직히 전처럼 그냥 대주는 건 이제 못할 것 같다….
‘이제 왠지… 무서워….’
황경호는 그냥 입을 꾹 다물고 강동현의 아랫배만 뚫어져라 쳐다보면서 슥삭슥삭 마사지만 집중해서 했다. 강동현이 엄청나게 복잡한 표정으로 계속 쳐다보고 있는 게 느껴졌지만 무시했다. 이제 이 정도까지 했으면 정말로 떨어져 나가줄지도 모른다. 진짜 쪽팔려서 죽을 거 같으니까 좀 안 왔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정리를 하고 있는데 옷을 다 갈아입고 나온 강동현이 황경호를 불렀다.
“황경호.”
원래 그는 황경호를 이름으로 잘 안 불렀다. 몇 번 부르지 않은 횟수 중 대부분이 그날 밤 부른 것일 것이다. 황경호는 얼굴이 또 펑 터질 것 같이 빨개져서 그냥 더 빨리 정리를 했다.
“네. 무슨 일 있으세요?”
그를 돌아보지 않고 그렇게 물어보았다. 강동현이 어느새 다가와서 황경호의 손을 잡았다. 장갑을 막 벗은 손이었다. 황경호는 깜짝 놀라서 손을 빼려고 했지만, 그는 오히려 꽉 잡았다. 그는 미간을 좀 찌푸린 채 한숨을 쉬며 황경호의 손가락에 입술을 눌렀다. 황경호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시뻘게졌다.
“뭐, 뭐 하는 거….”
“넌 또 안 믿을지 모르겠지만… 나 진짜 심각하게 미안하거든?”
“손은 이, 일단 놓고….”
“내가 어떻게 해주면 좋겠어?”
그리고 황경호의 얼굴을 보며 뺨을 만졌다. 인상을 확 찌푸리며 밴드를 만져 보았다. 그는 한숨을 푹푹 쉬며 그것을 하나 뜯었다. 황경호는 깜짝 놀라서 그의 팔을 잡았다. 얼굴은 피부도 얇고, 또 강동현도 너무 심하게 물고 빨아서 아직도 붉은 멍이 잔뜩 든 상태로 이제 보라색이 되어가고 있었다. 잇자국도 아직 남아있고. 말도 할 것 없이 엉망이었다. 이러니 절대 맨 얼굴로 있을 수가 없는 것이다.
“아… 젠장… 아직 아파?”
손을 대니 황경호가 움찔해서 강동현이 물었다. 황경호는 그의 손을 치우고 다시 밴드를 붙였다. 접착력이 떨어져서 갈아야 할 것 같다.
“아니에요….”
황경호는 작은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 그냥 고개를 돌렸다. 그의 얼굴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정말 창피했다. 그냥, 다 창피했다. 그때 그런 밤을 보낸 것도, 지금 이렇게 마주 하고 있는 것도, 이런 상처가 몸에 남아있는 것도 전부 다 창피했다. 그냥 이 자리에서 없어질 수만 있다면 소원이 없을 것이다.
“고개 계속 돌리지 마. 내 얼굴 봐.”
강동현은 황경호의 얼굴을 부드럽게 잡더니 자기 쪽으로 고개를 돌리게 했다. 황경호가 깜짝 놀라 예민하게 부들 떨며 저도 모르게 시선을 돌려 강동현의 진지한 눈빛과 마주했다. 심장이 덜컥하며 또 새빨개졌다. 강동현이 어쩐지 조금 웃었다. 그는 천천히 황경호를 끌어당겼다.
“내가 그때 그렇게 부끄러운 짓 많이 시켰어? 왜 이렇게 자꾸 빨개져?”
그는 황경호를 두 팔로 꼬옥 끌어안았다.
‘어떡해…!’
황경호는 위험할 정도로 빨개져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에게서 좋은 냄새가 났다. 강동현은 크게 한숨을 쉬더니 황경호의 귓가에 속삭였다.
“미안… 또 이런 일 겪게 해서.”
황경호는 그를 밀어내지도 못하고 눈만 동그랗게 뜬 채 굳어버렸다. 어디 한 구석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빨개져서는 그와 맞닿는 모든 부분에 소름이 돋았다.
“나 진짜 반성하고 있어… 내가 어떻게 해주면 좋겠어? 뭐든지 말해… 이번엔 진짜… 뭐든지 들어 줄게. 니가 말하는 건….”
강동현은 한숨을 푹 내쉬고는 황경호를 좀 더 꽉 끌어안았다. 그는 황경호의 머리를 큰 손으로 감싸 받치고 그냥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귀에서 뇌가 흘러나올 것만 같다.
“만나러 오지 말라고 하면… 안 만나러 오고… 병원도 오지 말라고 하면… 안 올 테니까.”
강동현은 정말 말하기 싫은 걸 말하는 것처럼 띄엄띄엄 말했다. 그리곤 끙하고 더 꽉 끌어안았다.
“아… 진짜… 니가 이번에 그렇게 말하면 안 오긴 할 건데… 그래도 그건 좀 봐줬으면 하긴 한데….”
“…….”
“아니다… 그냥 니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내가 할 말이 없다… 미안해… 진짜… 진짜 미안하다.”
뭐랄까. 전의 일들은 애초부터 잘못했다는 자각도 많이 없어 보였고 잘못했다는 걸 알아도 그다지 반성하지 않는다는 게 티가 팍팍 났었는데… 이번에는 확실히 본인이 큰소리친 말이 있어서 그런지 그나마 좀 겸손한 마인드로 벌충할 마음이 든 모양이었다.
“…….”
“…뭐라고 말 좀 해봐.”
강동현은 그렇게 말하며 황경호의 뺨을 잡고 고개를 들게 했다. 터질 것같이 빨간 얼굴로 눈만 동그랗게 뜨고 있는 그의 얼굴을 내려다보더니 또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는 이마를 맞대며 눈을 감았다.
“아… 그래도 좀만 봐주면 안 되냐?”
황경호는 진짜 한계였다. 진짜 심장이든 뇌든 어디든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죽을 것 같다. 못 견뎌. 쪽팔려! 부끄러워! 창피해!
“난….”
황경호가 핑글핑글 도는 머리로 겨우 한 마디 뗐을 때였다.
똑똑똑.
“아직 안 끝나셨어요?”
황경호는 화들짝 놀라서 강동현을 있는 힘껏 밀쳤다. 그리고는 문으로 달려갔다.
“끝났어요. 읏….”
황경호는 얼굴을 가리고 황급히 치료실 밖으로 나갔다.
*
‘아… 쟤가 그러는 거 처음 봤는데… 도대체 내가 그날 뭔 짓을 했길래….’
강동현은 한숨을 푹푹 쉬면서 담배를 물고 있었다. 황경호는 강동현이 처음 그에게 했을 때도, 그게 꽤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이었는데도 그다음 봤을 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굴었다. 두 번째는 화를 냈다. 세 번째는 아예 입을 다물어버렸다. 이번에도 말을 제대로 하지 않긴 하는데,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한 채 얼굴만 계속 빨갛게 하고 도망가려고만 했다.
솔직히 술에 취해 완전히 필름이 끊겼을 정도면… 진짜 위험하다. 솔직히 강동현은 자신이 그에게 무슨 짓까지 했을지 가늠할 수가… 아니, 가늠할 수는 있는데 그걸 진짜 했다면 뒤도 볼 것 없이 그냥 백 퍼센트 아웃이라서 문제였다.
강동현은 황경호과 섹스를 할 때마다 자제를 하고 있었다. 솔직히 처음 했을 때도… 황경호가 엄청나게 예민하고 아파했기 때문에 마음껏 박는다는 건 불가능했다. 두 번째 술을 먹고 했을 때도 어찌나 울고불고 난리이던지… 물론 그가 그러는 거 엄청 좋아하긴 했지만, 그래서 더 양껏 한다는 건 불가능했다. 세 번째도 그랬다. 그가 안 아프게 하고 느끼게 하려고 노력했으니까. 그리고 그다음부터는 이곳저곳 가리지 않고 했지만, 기본적으로 정신 놓고 미친 듯이 박지는 않았다. 그렇게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었다.
‘애초부터 넣으면… 엄청 버거워한다고… 그런데 그냥 막 박을 수가 있겠냐… 애가 막 죽으려고 하는데….’
근데 그렇게 꼭지가 돌 정도로 술을 먹었다면 오랫동안 상상했던 판타지를 실현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아…….”
강동현은 약간 얼굴을 붉히고 한 손으로 자신의 두 눈을 감쌌다.
강동현의 판타지 중 가장 하고 싶은 베스트 탑 3 안에 꼽히는 레퍼토리가
- 그가 턱이 아파서 울 때까지 펠라티오를 시킨 후, 그의 입 안이랑 얼굴에다가 왕창 싸고, 그걸 스스로 다 핥아먹게 한 다음, 강동현의 눈앞에서 스스로 엉덩이를 풀게 하고, 강동현의 위에 올라타서 직접 넣게 한 후, 스스로 한참 움직이게 하고, 그러니까 다리를 M자로도 하고 무릎을 꿇게 하기도 하고, 완전히 위에 태우기도 하고 강동현이 그의 발을 아예 잡아주기도 하고, 껴안고도 하고 강동현은 누워서 구경도 하고, 앞으로도 뒤로도 거기 보여주면서 하게 하고, 엉덩이도 좀 때리고, 야한 말도 엄청 하고, 야한 말도 엄청 시키고, 입술이랑 젖꼭지도 엄청 빨고, 그가 갈 때마다 놀리고, 자기 것도 먹이고, 그래서 엄청 울리고, 그가 움직이는 걸로만 안에 사정해서 그의 거기를 완전 쫄깃하게 만든 후, 바로 눕혀서 엄청 깊이 박고 그다음 강동현이 사정할 때까지, 그의 엉덩이에 불이 날 정도로 빠르고 세게 박는 걸 멈추지 않는다. 게다가 이걸 전부 동영상으로 찍는다.
‘이 레퍼토리를 실현했을 가능성이 아주 크단 말이다….’
그러면 그가 그렇게 부끄러워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어떻게 하면 제일 부끄러워할까 싶어서 생각해낸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휴대폰에 동영상은 없었지만, 황경호의 폰에 있을 수도 있었고, 아니, 동영상은 안 찍었더라도 다른 것들을 다 했다면 그 성격에 쪽팔려서 땅 파고 들어가는 건 일도 아닐 것이다.
‘아니면 여자 속옷 입히고 하는 거…? 아… 술 마시고 가서 한 거니까 들고 갔을 리가 없지… 4번보다 더 했으려나. 나 분명히 또 안에다 엄청… 와, 최악… 이상한 소리 엄청 한 거 아냐? 부끄럽게 하려고….’
강동현은 그렇게 한참을 담배를 피우며 생각했지만 정말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기억이 나야 구체적으로 사과라도 하지 이건 뭐….
‘아, 술은 진짜 입에도 안 댄다, 이제.’
강동현은 그렇게 깊게 후회를 하면서 끙끙거리고 있었다.
[난….]
강동현은 담배를 너무 세게 쥐어서 부러뜨려버렸다. 그때 걔가 딱 뭐라고 하려고 할 때 다른 사람의 방해가 들어왔다. 그러니 또 곧바로 도망갔다. 답답해서 돌아버릴 것 같았다. 강동현은 결국 바쁜 와중에 짬을 내서 병원에 왔다. 퇴근 시간에 맞추어 그가 내려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근데 왜 이렇게 안 내려와?’
강동현은 거의 6시 반부터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7시 반이다. 다른 직원들이 퇴근하는 거 다 보고 나와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이었다. 지금쯤이면 내려와도 벌써 내려왔을 시간이다. 오늘은 출근을 안 했나? 아니… 그렇게 당하고도 출근은 하는 애라서 출근을 안 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건물로 들어갔다. 4층을 누르고 층수가 바뀌는 디스플레이만 보고 있다가 문이 열리자마자 내렸다. 자동문의 앞에 서니 문이 열렸다. 아직 안 내려온 것뿐인가? 그런데 불은 이미 전부 다 꺼져있었다. 항상 사람들로 바글거리는 병원 안이 고요하다. 강동현은 간호사실로 향했다. 그냥 문을 열었다.
“힉…!”
불이 켜져 있었고 거기엔 황경호가 있었다. 그는 깜짝 놀라서 소파 위에 누워있다가 벌떡 일어났다. 그는 너무 놀라서 입을 딱 벌린 채 출입구를 쳐다보았다가 강동현을 발견하고는 더 놀랐다.
“…너 퇴근 안 하고 뭐 하는 거야?”
“아… 그게….”
강동현은 소파 위에 깔끔하게 깔려 있는 침낭을 발견했다. 게다가 황경호는 마치 집에 있는 것마냥 편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다. 희고 헐렁한 티셔츠에 반바지… 강동현이 황당해서 물었다.
“너 집 놔두고 여기서 왜 이래?”
“…….”
황경호는 얼굴이 벌게져서는 그의 시선을 피했다.
“상관없잖아요… 진료 시간도 끝났는데 함부로 들어오고 그러시면 어떡해요. 빨리 나가세요.”
황경호는 그렇게 말하고는 강동현에게 다가와 그의 등을 밀어 간호사실 밖으로 내쫓으려고 했다. 강동현은 그의 손목을 잡았다.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뭐가 상관이 없어. 왜 이러고 있는데? 집에서 쫓겨났어?”
“…….”
“아! 답답해. 빨리 말해. 무슨 문제 생겼어? 야. 아, 계속 눈 피하지 말고.”
강동현은 답답해서 황경호의 턱을 잡아서 억지로 눈을 마주치게 했다. 황경호는 그냥 온몸이 빨개졌다. 드러난 목이나 다리나 팔까지도 말이다. 그리고 황경호는 잡히지 않은 팔로 자신의 눈을 가렸다.
“야.”
강동현은 그 팔도 치우려고 했다. 황경호가 버텼다. 강동현은 답답하고 짜증이 나서 그의 팔을 힘으로 확 내리게 했다. 그러니 또 고개를 돌렸다.
“그만해… 진짜. 그냥 가라고.”
황경호가 그렇게 말했다. 강동현이 황경호의 손목 두 개를 아예 꽉 잡아버리고 다시 얼굴을 잡아 자신을 보게 했다.
“일단 말부터 해. 무슨 일인데? 무슨 일 생긴 거냐고.”
일주일 만에 살이 확 빠진 것도 느껴지고… 강동현은 한숨을 푹푹 쉬었다. 그는 황경호를 놓아주었다. 그리고 간호사실의 문을 닫고 그냥 그 문에 기대고 팔짱을 끼고 섰다.
“말할 때까지 안 간다, 나.”
“아….”
그리고 강동현은 그냥 물끄러미 황경호를 쳐다보았다. 그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지만, 강동현은 황경호를 볼 때마다 항상 ‘Checking out’ 하는 버릇이 있었다. 황경호가 자주 불쾌해하는, 마치 남자들이 여자들을 한 번 훑어보는 것 같은 눈길 말이다. 황경호는 그걸 또 느끼고 확 하고 부끄러워졌다. 창피하고 쪽팔렸다. 그리고 약간 화도 났다. 강동현이 그날 굳이 황경호의 집까지 오겠다고 억지를 쓰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은 없었다.
황경호는 다시 손으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얼굴이 터질 것 같이 빨개진 게 느껴졌다.
“집에 못 가서….”
“집엘 왜 못 가는데.”
강동현이 바로 되물었다.
“그게….”
황경호는 한참 단어를 골라야 했다. 근데 무슨 단어로 말하든 바보 취급 할 것 같았다. 쪽팔려서 집에 못 간다니. 분명히 비웃을 것이다.
“좀 일이….”
“무슨 일?”
평소의 황경호라면 아마 그럴듯하게 거짓말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필이면 그날 밤과 관련된 이야기고, 또 하필이면 캐묻는 게 강동현이다. 황경호는 그냥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려버렸다.
“그때… 너랑 나랑… 그날 밤에… 우리 건물 사람들이… 다 들었다고 해서… 부끄러워서… 못 가겠어….”
“…….”
“그러니까… 이제 좀 가라… 지금도 쪽팔리니까.”
죽고 싶다… 황경호는 비웃든 뭐든 빨리 할 말을 하고 그가 가버렸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랐다. 강동현은 아무 말 없이 그를 쳐다보다가 약간 바람이 빠진 소리를 허, 하고 내더니 입을 열었다.
“그래도… 집에는 가야지 그렇다고 여기서….”
황경호는 입을 꾹 다물며 두 손 아래에서 눈을 꼭 감았다. 대충 뭐라고 할지는 예상이 되었다.
“알아. 알아. 아니까… 말했으니까 이제 가.”
“아니, 다른 사람 집이라도 가지. 태형이 형 집이나 다른 간호사 집이라도….”
“알겠어. 알고 있어. 말했잖아. 이제 됐잖아. 빨리 가라니까.”
“…….”
강동현은 울컥해서 뭔가 더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빨리 가….”
강동현은 그에게 다가가서 다시 그의 팔을 붙잡고 얼굴을 드러내게 했다. 그가 한숨을 쉬었다.
“내가 널 여기다 두고 어떻게 가.”
그래서 이것저것 쪽팔려서 죽으려고 했던 건가 보네… 강동현은 속으로 혀를 찼다.
“그래서 집은 나오고 싶은 거야? 집주인한테 얘기했어?”
황경호는 여전히 강동현의 얼굴은 쳐다보지도 못하고 작게 대답했다.
“아니….”
“…미리 말을….”
강동현은 또 뭐라 다그치려고 하다가 관두었다. 짜증 내지 말자… 강동현은 자신이 뭐라고 할 때마다 움찔거리는 황경호를 착잡한 기분으로 내려다보았다. 젠장….
“앉아 봐. 휴대폰 줘. 그 주인한테 내가 연락할 테니까.”
“뭐? 싫어. 뭐라고 할 건데.”
황경호가 확 하고 강동현을 돌아보았다. 얼굴은 벌게 가지고… 강동현은 미간을 찌푸린 채로 테이블 위에 있는 황경호의 휴대폰을 알아서 가져왔다. 비밀번호도 안 걸려 있는 거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메시지함을 열어서 주륵 메시지들을 확인하다가 <집주인 할머니>라고 적힌 집세 관련 메시지를 찾아냈다. 바로 통화 버튼을 누르자 황경호가 기겁을 했다.
“하지 마…!”
“아, 가만히 있어. 아, 네. 여보세요.”
강동현은 거침이 없었다. 결국 방은 다음 주 주말까지 빼기로 하고 중개수수료는 이쪽에서 주고 보증금과 남은 월세를 돌려받기로 했다. 옆에서 듣고 있으니 집주인 할머니는 그날 밤 일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하지 않고 선선히 그러세요, 하고 대답했다. 통화도 몇 분 하지 않고도 일이 착착 정리되었다. 강동현은 한숨을 쉬며 황경호를 돌아보았다.
“야…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뭘 하든 별로 관심 없어. 그렇게 안 쪽팔려 해도 돼. 니가 나랑 했다는 걸 사람들이 아는 것도 아니고.”
강동현이 그렇게 말하니 오히려 황경호는 좀 더 창피해 하는 것 같았다. 강동현은 소파의 등에 기대어 황경호의 벌건 귀만 쳐다보았다. 뺨도 빨갛고….
‘귀엽기는….’
강동현은 저도 모르게 그의 귓불을 만지작거렸다. 황경호가 힉! 하고 놀라며 어깨를 움츠렸다. 그러자 강동현도 깜짝 놀라 손을 얼른 원위치시켰다.
“아, 미안….”
강동현은 한숨을 쉬었다.
‘이러니까 얘가 자꾸 내가 뭔 말을 해도 안 믿지….’
강동현은 다시 반성했다. 글러 먹었다, 진짜. 짜증 나… 황경호가 자신의 귀를 감싸며 강동현을 돌아보자 강동현은 약간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돌렸다.
“미안하다니까.”
황경호는 다시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가 무릎으로 내렸다.
“집 해결해준 건 고맙고…. 이제 가도 되는데….”
강동현은 말을 돌렸다.
“…갈 집은 구했어?”
“어? 그거야 다음 주까지 구하면 되니까….”
“그럼 오늘은?”
“오늘은 그냥 여기서….”
강동현은 짜증스러운 한숨을 푹 쉬었다.
“그냥 우리 집 가자.”
“…….”
강동현은 아차 하고 황경호를 쳐다보았다.
“아니…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젠장.”
말조심을 한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라는 걸 황경호 때문에 계속 깨달았다. 강동현은 미간을 찌푸렸다.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아니, 자기가 마음대로 하고 싶은 상대라서 그렇다. 강동현은 자신의 입가를 한 손으로 잠깐 감쌌다가 말을 바꾸었다.
“일단 여기 말고. 호텔이라도 잡아줄 테니까 그때까지 거기서 지내.”
“그런 걸 왜….”
“그런 것 좀 따지지 마. 내가 해주고 싶어서 한다는데 왜 그런 걸 일일이 따져. 그냥 받아.”
강동현은 약간 화를 냈다. 그리고 후회했다. 한 번 수가 틀리니 자제가 안 된다. 짜증이 물밀 듯이 몰려왔다. 강동현은 그날 술을 먹고 억지로 황경호를 덮쳤고, 또 황경호는 그 이후로 이렇게 지내고 있다는 걸 강동현에게 말도 하지 않았다. 억지로 하고 울리고 다치게 하고 또 이렇게 피하고 얘는 혼자서 이러고 있고… 지긋지긋하다.
“나한테… 말 좀 해. 왜 말을 안 해.”
“…….”
대답은 없는데 딱 봐도 그런 걸 왜 너한테 말하냐 이 표정이었다. 강동현은 그의 손을 잡고 끌어당겼다.
“내가 가서 그렇게 된 건데, 씨X… 그냥 내 탓 하면 되잖아. 왜 안 해. 그리고 화나는 거 있으면 제발 참지 말고 말해. 저번처럼 그냥 무작정 찾아와서 때려 부수든 뭘 하든. 말 좀 하라고. 답답해서 돌아버릴 것 같으니까.”
강동현은 결국 상대를 다그치고 말았다. 또 후회를 하며 그냥 고개를 돌리고 인상을 썼다. 황경호는 여전히 좀 빨간 채로 강동현을 물끄러미 보다가 입을 열었다.
“…이제 내가 오지 말라고 하면 안 올 거라며. 근데 무슨 말을 하라고.”
그러자 강동현이 좀 화가 난 얼굴로 황경호를 돌아보았다. 그대로 말없이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그래, 니가 오지 말라고 하면 안 올 건데… 아….”
강동현은 몸을 일으켜 소파 등에서 몸을 뗐다. 짜증스럽게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그리고 화를 삭이며 두 팔꿈치를 무릎에 대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었다. 욕하는 것도 얼핏 들렸다.
“일단… 나가자. 여기서 이러지 마. 가까운 호텔로 잡아 줄게.”
강동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황경호는 별로 가고 싶지 않았다.
“여기가 더 편한데….”
“아! 말 좀 들어!”
강동현이 결국 윽박을 지르자 황경호가 깜짝 놀라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황경호는 얼떨떨하게 물었다.
“왜 이렇게… 화를 내.”
“내가…!”
강동현은 한 손으로 두 눈을 꾹 눌렀다. 그리고 화를 가라앉히려고 노력했다.
“열 받아서 그래… 내가 너한테 또 그래서… 젠장… 안 그러겠다고 했는데… 그래서 니가 이렇게 나와 있는 것도 싫고….”
황경호는 머뭇거리다가 한숨을 쉬고 입을 열었다.
“저기….”
“…….”
“너 그때 억지로 한 거 아니라고 처음에 내가 말했는데….”
강동현이 움찔했다. 그리고는 손을 치우고 믿을 수 없다는 눈길로 황경호를 내려다보았다. 황경호는 얼굴을 시뻘겋게 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
“…….”
강동현은 얼떨떨한 얼굴로 황경호를 계속 쳐다보았다. 황경호는 쥐구멍이라도 파서 들어가고 싶었다. 황경호는 이 침묵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목을 가다듬고 겨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그냥… 없던 일이라고 생각하고… 이것도 그냥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넌 더 신경 안 써도 되고… 이제 진짜 좀….”
“진짜?”
강동현은 황경호의 옆에 바짝 붙어 앉았다. 황경호가 화들짝 놀라서 옆으로 후다닥 피했다. 강동현은 그에게 따라붙었다.
“진짜 내가 억지로 한 거 아냐? 막? 너한테 억지로 입으로 빨게 하고 내 정액 먹게 하고, 그런 거 안 시켰어?”
“갑자기 뭐라는 거야!!”
강동현이 뜬금없이 야한 말을 하자 황경호가 기겁을 하면서 소리쳤다. 강동현은 두 손으로 자기 얼굴을 감쌌다.
“아, 그래… 내가 아무리 술을 처마셔도 그 정도로 정신 나간 놈은 아니지… 하….”
그렇게 그는 잠시 안도감에 취해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강동현이 고개를 들어 황경호를 보았다. 눈이 마주쳤다. 약간 이상한 표정이었다.
“그럼… 하게 해준 거야?”
“…아… 그게 아니라….”
황경호는 완전 새빨개져선 시선을 피했다. 강동현은 그의 얼굴을 두 손으로 잡고 자신의 쪽으로 홱 돌렸다.
“왜? 싫지 않았어? 내가 또 억지 쓴 거 아닌 거야? 내가 어떻게 해서 하게 해준 거야? 어?”
강동현은 엄청 놀란 모양인지 속사포처럼 질문을 던졌다. 술에 취해 정신 나가서 한 짓이 멀쩡한 정신일 때보다 나았던 걸까? 황경호는 완전 빨간 얼굴로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채 강동현을 쳐다보았다. 이래서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얘가 너무 죄책감을 가지는 것 같으니까… 황경호는 다시 엄청나게 쪽팔리기 시작했다. 또 제 무덤을 판 것이다.
“이, 일단… 좀 놔줘….”
“대답부터 해. 대답부터 해줘.”
“별게 아니라서….”
“뭐가 별게 아니야. 빨리 말해.”
“아, 일단 좀 놔!”
황경호는 강동현의 팔을 억지로 뿌리쳤다. 황경호는 여전히 얼굴이 시뻘겠지만 그래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강동현한테 사실을 말했으니 이제 부끄러워도 가만히 부끄러워하고 있을 새가 없어졌다. 멍청하게 있으면 또… 어쨌든 이번 일은 강동현이 잘못한 건 없으니까 거기까진 말할 수 있어도 그 이상은 말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말해봤자 의미도 없고. 황경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일단 나가.”
“아니, 말 좀….”
“나가라고.”
“나가고 말고가 중요한 게 아니라….”
“니가 나가는 게 제일 중요해.”
강동현은 문까지 밀려났다. 문에 등을 기대고 강동현은 약간 상기된 얼굴로 황경호의 양어깨를 잡았다.
“제발 얘기해줘. 그때 나랑 왜 하고 싶었어?”
“…….”
황경호는 얼굴이 빨갰다. 여전히 부끄럽고 창피했다. 그때 자기가 했던 짓만 생각하면 알아서 무덤을 파고 들어가서 떼까지 입힐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동시에 화도 났다. 그냥 말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왜 말을 해서 또 이렇게 일을 만드는가. 그리고 얘는 기억도 못 하는 주제에 그런 게 왜 궁금한 건데.
‘또 쉽게 해보려고….’
황경호는 자신의 생각에 상처받았다.
“나… 너랑 이제 안 해. 그때 한 것도 지금 진짜 후회하고 있으니까.”
황경호는 진심으로 말했다.
“왜?”
강동현이 묻자 황경호는 화가 난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걸 말이라고 물어?”
그리고 강동현을 밖으로 내쫓고 문을 쾅 닫았다. 그리고 문을 잠가버렸다. 강동현은 기분이 아주 복잡했다. 기쁘기도 한 것 같았다. 그리고 엄청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그날 밤에는 하게 해줬는데… 지금은 후회한다. 진짜 후회한다….
‘왜?’
강동현은 한참을 간호사실 밖에서 화도 내보고 애원도 해봤지만, 황경호는 잠깐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도저히 알 수가 없어서 무작정 김태형의 가게로 바로 갔다. 밤 10시다.
“형, 형.”
“어, 동현아. 왔니.”
손님이 적당히 있었다. 강동현은 바 앞으로 얼른 가서 김태형을 보았다. 마스크를 턱밑으로 내렸다. 본론부터 말했다.
“형, 나 저번에 마시러 왔을 때.”
“응.”
“나 그때 형한테 뭐라고 했어?”
“필름 끊겼어? 기억 안 나?”
“어. 앞부분은 대충 기억나는데 뒤에는… 형이 나한테 그렇게 살지 마라, 뭐 이런 말까지 한 건 기억 나는데.”
누구한테 그런 말 들어 봤자 아무런 타격도 없는 남자라 자기 입으로도 술술 나온다. 김태형이 어깨를 으쓱했다.
“거기면 거의 끝물인데? 너 그때부터 술만 마시고 난 일하느라… 그러고 경호 오니까 너 경호한테 화내고 경호가 너 데리고 나가고….”
“그게 끝이야? 내가 걔한테 뭐라고 화냈는데?”
“응? 몰라?”
김태형은 영 관심 없는 어조로 그렇게 말했다. 하긴 그 날 손님도 좀 있었고… 술 취해서 꼬장 부리는 놈이 강동현 하나만 있겠는가. 강동현은 하, 하고 한숨을 쉬었다.
“술 마시게?”
“아니….”
강동현은 한숨을 쉬고는 말을 이었다.
“밥 될 거나 해줘요. 포장도 되나?”
김태형의 집에서 음식을 챙겨서 강동현은 운전을 해서 다시 압구정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청담빌딩의 4층으로 올라왔다. 근데 아까와 다르게 자동문이 잠겨 있었다.
“…….”
아까 강동현이 나가니 나와서 잠근 모양이었다. 강동현은 전화를 걸었다. 원체 강동현 전화는 안 받아서… 역시나 안 받았다. 그는 문자를 남겼다.
<태형이 형 가게에서 먹을 것 좀 사 왔는데>
문자도 원체 씹어서…. 보는지 안 보는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강동현이 아는 사람의 범주 내에서 그를 이렇게 취급하는 건 황경호밖에 없었다. 한숨을 쉬고 기다렸다.
‘하게 해줬는데 후회한다…. 내가 어떻게 해줬길래 하게 해줬지. 그리고 뭘 어쨌길래 후회한다는 거야. 아, 기억이 나야 뭐라도…….’
“아…….”
강동현은 자신의 두 눈을 한 손으로 감쌌다.
‘씨X, 남자가 기억도 못 하는데 당연히 후회하지. 젠장. 젠장…. 젠장.’
7월 초의 밤. 덥지도 춥지도 않다. 캄캄한 상업 건물의 안은 고요하고 창밖에서 비춰오는 네온사인만이 깜박깜박. 가만히 벽에 기대어 서있는 남자의 실루엣만 뚜렷하게 남아 있었다.
“왜 이렇게 되는 게 없냐….”
정말로 되는 게 없었다. 그때 공항 일 전까지만 해도 꽤 괜찮았다. 부끄러워하기도 하고 싫어할 때도 있었지만 얘기도 자연스럽게 했고 피하지도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날 이후론 계속… 계속…….
이젠 정말 상처 입히고 싶지 않았다. 원하는 건 뭐든 해주고 싶다. 만나고 싶다. 만지고 싶다. 장난도 치고 싶고 키스도 하고 싶다. 얘기도 하고 싶다. 뭐든…. 뭐든 그가 하는 말을 듣고 싶었다. 가장 나중에서야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게 되는 것만큼 열 받는 게 없었다.
앞으로 만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면 괴롭다.
‘그래… 좋아하는 거구나.’
강동현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
황경호는 새벽 6시에 일어났다. 어젯밤에 잠을 좀 설쳐서 피곤했지만, 얼른 일어났다. 자리를 정리하고 씻어야 했다. 일단 이를 닦고 사우나에 갈 물건만 빼놓은 뒤 다른 물건들은 전부 락커에 넣었다. 어차피 병원에서는 간호사복만 입으니 다른 일상복은 근처 옷가게에서 산 걸로 대충 때우고 있었다. 날이 춥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다. 겨울이었으면 단벌 신사로 살아야 했을 것이다. 황경호는 바지만 긴 걸로 갈아입고 간호사실 밖으로 나왔다. 사우나에 가서 깨끗하게 씻고 근처에서 밥을 먹은 후 출근하는 척 다시 들어오면 될 것이다. 항상 황경호가 가장 먼저 출근을 하니 그냥 여기에 있어도 되겠지만 혹시나 모르는 일이고, 무엇보다도 마음가짐이 한 번 나갔다가 들어오는 게 다르다. 황경호는 자동문의 잠금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느낌이 이상해서 고개를 뒤로 돌렸다.
“…….”
“…….”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열렸다가, 닫힌다. 이른 아침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났다. 강동현은 삐딱하게 고개를 하고 황경호를 쳐다보았다.
“잘 잤나 보네.”
“…여기서 뭐 해….”
“아니, 너 이거나 갖다 주려고 했는데….”
강동현은 바닥에 두었던 종이봉투를 황경호에게 떠넘겼다. 황경호는 얼떨결에 받았다.
“그냥 두고 가지….”
“생각할 것도 좀 있고.”
강동현은 황경호의 쪽으로 걸어와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4층에 멈춰있던 엘리베이터가 곧바로 열렸다.
“내려갈 거 아냐?”
“…….”
황경호는 엘리베이터에 탔다. 강동현도 따라서 탔다. 그리고는 1층에 내려갈 때까지 침묵이 이어졌다. 1층에 도착했을 때 강동현도 내렸다. 차는 다행히도 건물 앞에 얌전히 서있었다. 건물에서 나가기 전에 강동현이 입을 열었다.
“어디 갈 간데. 데려다줄까?”
강동현이 물었다.
“아니… 걸어가는 게 더 빠를 거 같은데….”
“알았어.”
강동현은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리고 물끄러미 황경호를 내려다보았다. 약간 붉은 얼굴에 난처한 표정이다. 그는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쳤다.
“그럼 나 먼저 갈게….”
“혹시 내가 그날 밤에 너 좋아한다고 했어?”
황경호는 엄청 놀라서 움찔하고는 강동현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뭐라고 했어….”
“내가 너 좋아한다고 했냐고.”
“…….”
황경호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빨개져서 강동현을 올려다보다가 그것을 알아차리고 얼른 고개를 돌리고 손등으로 약간 얼굴을 가렸다.
“갑자기… 그런 건 왜….”
강동현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황경호는 또 움찔하면서 억지로 입을 열었다.
“술김에 그런 거 아니까 딱히… 부담감 가질 필요는… 아니… 그러니까….”
황경호는 한숨을 쉬면서 눈을 내리깔았다.
“일단… 아침부터 이런 얘기 안 하고 싶은데… 그날 일은 그냥 없었던 일로 하자….”
황경호는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잘못한 건 하나도 없는데. 부끄럽고 창피하다.
“왜 말 안 했는데.”
“아니… 너 그날 술 너무 많이 마셔서….”
“술 마신 놈 주정이라고 생각했으면 더 화를 냈어야지.”
“나도 좀 쪽팔리고… 아… 이런 얘기 그냥 그만하면 안 돼? 없었던 일로 하자니까….”
“…내가 좋아한다고 해서 하게 해준 거야?”
“아… 아니… 나… 진짜 이제 출근 준비 해야 하니까 갈게.”
황경호는 죽든가 도망가든가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선택해야 하는 순간에 직면해 있었다. 그는 얼른 강동현에게 등을 돌리고 발걸음을 옮겼다. 너무 쪽팔려서 죽을 것 같았다. 눈물이라도 나올 것 같았다. 스스로에게 자신도 없고, 무엇보다도 추궁하는 그의 앞에서 잘못한 것도 없이 계속 작아지는 느낌만 들었다. 이제 이런 건 정말 싫었다.
‘오지 말라고 해야겠어… 오지 말라고 해야겠다.’
황경호는 드디어 그렇게 결심했다. 그리고 그때 강동현이 황경호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천천히 끌어당겼다. 황경호는 어어… 하면서 끌려갔다. 강동현은 그를 등 뒤에서 끌어안았다.
“야, 황경호.”
“…….”
“나 너 좋아해.”
황경호가 움찔하며 자신을 끌어안은 강동현의 팔을 잡았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머리 위에 턱을 올렸다.
“좋아하는데 계속 괴롭혀서 미안하다. 나 못 돼 처먹은 거 니가 제일 잘 알잖아.”
황경호는 그의 팔을 떼어내려고 했다.
“…거짓말하지 마….”
황경호는 들고 있던 물건을 우수수 떨어뜨리고 강동현의 팔을 풀어내려고 필사적이 되었다.
“그때 내가 그 말에 그냥 하게 해줬다고 또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면… 진짜… 아, 놔! 기분 나빠!”
“그런 거 아니야.”
“너랑 절대 안 해. 수작 부리지 마. 안 할 거라고. 안 해!”
“안 해도 돼.”
강동현은 포옹을 풀고 황경호와 정면으로 마주 보았다. 강동현이 잡은 손도 계속 뿌리치려고 하는 황경호였다.
“그냥…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뿐이야. 나도 내가 너 안 좋아하는 줄 알았거든.”
황경호는 적개심이 가득한 눈으로 강동현을 노려보았다.
“내가 널 믿을 것 같아?”
얼굴만 봐도 그렇게 빨개져서 부끄러워하더니 정말 좋아한다고 하니 오히려 화를 냈다. 강동현은 여전히 그를 이해할 수가 없었지만 이젠 어쩔 수 없었다. 강동현은 억지로 그를 끌어당겨 그의 이마에 입술을 눌렀다.
“미안해. 화 풀어… 내가 잘못했으니까. 오늘부터는 병원에서 자지 마. 우리 집으로 와.”
<고쳐줄까? 2부> 3권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