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화 (19/47)

3. So what? (1)

“흐응…! 아… 흑… 싫어… 그만해….”

황경호는 울고 있었다. 오늘이 휴일인 게 완전 문제였다. 강동현은 스케줄도 취소해버렸다. 어제 밤엔 빠르게 세 번 하고 둘 다 기절했는데 오늘은 아침부터 점심까지 섹스 삼매경이었다. 강동현은 옆에서 상대가 곤히 자고 있는 걸 그냥 내버려 둘 수가 없었다.

“큭… 아… 으윽… 젠장….”

강동현은 황경호를 위에 태우고 끈질기게 그를 괴롭혔다. 그의 커다란 대물을 끼우고 느릿하게 피스톤질을 계속했다. 강동현의 근육이 움푹 파였다. 그는 정말 섹시하게 허리를 놀렸다. 한 번도 빠르게 퍽퍽 박거나 하진 않았다. 근데 진짜 변태같이 허리를 움직인다. 게다가 이 자세가 마음에 들었는지 내내 황경호를 위에 태우고 슥슥 넣었다.

황경호는 이제 사정을 해도 묽은 체액만 줄줄 나왔다. 점점 갈수록 오르가즘도 심해져 정신도 깜박깜박 잃었다. 계속 울어서 눈이 빨갛고 숨이 불규칙적이다.

‘이런 거까지 하고 싶었던 게 아닌데….’

머릿속 어디에서 이런 생각을 했을까.

“아흑… 나 이제 못 해… 응… 흐윽….”

황경호가 쌕쌕거리는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엉덩이 아파… 흑… 다리도… 아앙… 제발… 하아….”

지금까지의 애원이랑 어쩐지 좀 다른 것 같다. 강동현은 완전히 미끈해진 황경호의 안을 자기 마음대로 휘저으며 맛보았다. 아침 내내 하고 나서야 이 정도로 말랑해졌다. 감촉이 끝내줬다. 완전히 조일 때도 머리가 돌았지만, 이 정도로 풀어지면 상대도 잘 느끼는 것 같아서 만족스러웠다. 집요하게 안을 계속 휘젓자 황경호의 허리가 꺾이며 얼굴이 가까워졌다. 황경호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강동현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다시 눈을 감으며 얼굴을 가깝게 했다.

“그냥 빨리 싸….”

그렇게 말하며 애원하듯 그가 먼저 입을 맞추었다. 처음이다. 강동현은 깜짝 놀라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그리고 곧바로 정말 사정하기 시작했다.

“…!”

예상치 못한 사정에 황경호의 어깨를 콱 물고 버텼다. 이제 사정을 하면 자지가 터질 것같이 아프면서 미칠 것같이 기분이 좋았다. 좋다는 말로도 표현이 안 된다. 죽을 것 같다. 성기가 떨어져 나갈 것만 같다. 그대로 그로기 상태에 빠져 황경호를 끌어안은 채 거친 숨만 내뱉었다.

먼저 정신을 차린 황경호가 눈물을 줄줄 흘리는 자기 얼굴을 손등으로 훔쳐내며 강동현의 남성기를 자기 엉덩이에서 빼내었다. 주르르륵… 처음엔 잘 들어가지도 않던 것이 미끈하게 빠져나오는 느낌이 무서울 정도다.

“으… 흑… 아….”

황경호는 몸이 떨리고 아팠다. 거대한 쾌락이 낙인처럼 찍혀있었다. 다리를 벌리고 몇 시간이고 있다 보니 허벅지와 골반이 아프다. 다리가 갓 태어난 망아지 마냥 떨렸다. 겨우 강동현의 위에서 내려왔다. 다리를 오므리는데 근육이 당겼다. 그대로 겨우 강동현의 옆에 있는 베개에 얼굴을 박고 쓰러지듯 엎드려 누웠다. 그렇게 대략 20분쯤 지나니 강동현이 옆으로 누우며 황경호의 뒤통수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괜찮아?”

강동현은 목소리가 섹시하게 쉬었다. 황경호는 그가 자신을 건드리는 게 이제 신물이 났지만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아까 그거 진짜 쩔었어… 싸달라고 한 거….”

강동현은 완전 야한 얘기를 처음으로 하는 어린애처럼 말했다. 황경호는 무시했다. 강동현이 웃었다.

“배 엄청 고프다. 뭐 먹을래?”

어제 그렇게 대판 싸운 건 그의 머릿속에서 날아간 게 분명했다. 그는 엄청 기분이 좋아 보였다. 게다가 엄청 쌩쌩해 보였다. 진짜 딱 기절하고 싶은 황경호와는 완전 대조적인 상태였다.

‘아파… 씻고 싶어….’

말을 할 기운이 없었다. 강동현은 그동안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뭐 좀 사 올게.”

“…….”

지친다… 황경호는 어젯밤 이래로 그에게 몇 번이나 당했는지 셀 수도 없었다. 누군가에 흠씬 두드려 맞은 것처럼 온몸이 욱신거리고 있었다.

이런 것까지 원한 건 아니었다. 그때 그냥 밀쳤어야 했나. 왜 그때 키스하고 싶었을까. 누구랑 하는 건지 잊어먹은 게 분명했다. 멍청하다… 확실하게 하기 싫다고 말했어야 했다… 근데 싫다는 걸 그냥 싫다고 하지 뭘 더 어떻게 확실하게 하지… 어젯밤에 지쳐 잠들 때까지만 해도 정신이 없어서 이런 기분까진 아니었던 것 같은데. 예전에 당했던 거에 비하면 확실히 나은 편이었고, 심지어 중간중간에 기분 좋다는 생각도 했는데도… 그냥… 뭔지 모르게… 마음이 허하다. 마치 한창 새벽녘에 깰 때마다 느꼈던 기분이랑 비슷해서… 섹스라는 거 이런 건가….

황경호는 정신을 잃지도 못한 채 힘없이 아까 자세 그대로 침구에 파묻혀 있었다.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지만 강동현이 꽁꽁 싸매고 어딘가 나갔다 오더니 뭘 잔뜩 사 왔다. 그는 너저분하게 널린 모텔의 이불을 밀고 침대 위에다가 봉투를 놓았다.

“먹어.”

강동현은 이미 샌드위치를 하나 꺼내 먹고 있었다. 어젯밤 이후로 아무것도 안 먹었는데 엄청나게 움직였다. 그가 사 온 음식은 2인분이 훨씬 넘어 보였다. 배가 진짜 고팠던 모양이었다. 황경호는 고개만 겨우 강동현의 쪽으로 돌렸다. 그리고는 겨우 팔꿈치에 힘을 줘서 상체만 약간 일으켜 생수를 잡았다. 황경호는 눈도 벌겋고 입술도 엄청 부어있었다. 섹스에 지쳐 나른한 분위기는 평소랑도, 섹스 중이랑도 달랐다. 강동현이 황경호가 물을 마시는 걸 보더니 씩 웃었다.

“너랑 사귄 여자들이 꽤 좋아했겠는데? 섹스하고 나서 분위기가 섹시해서.”

‘또 시작이네….’

이 새끼는 정말 황경호가 싫어하는 말만 하는데 도가 튼 게 분명했다. 배는 고팠지만 먹을 기운이 없었다. 황경호는 다시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엉덩이가 아픈 것도 그랬지만 일단 허리랑 다리가 너무 뻐근했다.

“안 먹어?”

강동현이 물었지만 황경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항상 스트레스 만빵인 그만 보아서 그런 걸까. 오늘의 강동현은 정말 기분이 좋아 보였다. 어디서 약이라도 맞은 것 같이 보일 정도였다. 그래서 더 괴리감이 느껴졌다.

“그래서 어때? 걔네랑 하는 거랑 나랑 하는 건? 나랑 하는 게 더 좋지? 여자랑 할 때는 이렇게까지 못 느낄 거 아냐. 응?”

황경호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강동현이 물었다. 눈을 떠서 보니 완전 흥미진진한 얼굴로 감상을 기다리고 있었다.

“…너 여자친구한테도 이런 거 물어보고 그랬어?”

황경호의 목은 엄청난 기관지염에 걸린 것처럼 말을 할 때마다 누가 안을 할퀴는 것 같았다. 쉰 목소리로 드디어 되물었다. 강동현은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얼굴을 했다.

“응? 영지? 아니?”

그래서? 그렇게 대답을 기다렸다.

‘아, 일단 씻자….’

황경호는 겨우 몸을 일으켰다.

“몰라.”

황경호는 그렇게 말하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엉금엉금 침대를 기었다. 몸이 엄청나게 뻐근했지만, 그냥 무시했다. 일단 뜨거운 물로 씻어야지 어떻게든 될 것 같았다. 절뚝거리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아파도 그냥 걸었다. 샤워실로 들어갔다. 싸구려 모텔이었지만 다행히 샤워실이 유리로 되어 있는 그런 곳은 아니었다. 가장 뜨거운 쪽으로 물의 온도를 맞추고 일단 틀었다. 곧 살이 데일 만큼 뜨거운 물이 나오자 약간 조정했다. 그래도 꽤 뜨거워서 처음엔 견디기 힘들 정도였지만 좀 참고 적응했다. 뜨거운 물 덕분에 혈액이 돌고 뭉친 근육이 살짝 풀어지는 것 같았다. 엄청 오랫동안 뜨거운 물로 씻고 나오자 그제야 약간 텐션이 내려간 강동현이 살짝 황경호의 눈치를 보았다.

“일단 좀 먹어.”

황경호가 나오자 테이블에 딸린 의자에 앉아있던 그가 황경호를 돌아보았다. 황경호는 일단 옷부터 입었다. 옷은 좀 구겨지긴 했지만 더러워지지는 않아서 입을 수 있었다. 옷을 다 입고 황경호가 말했다.

“갈게요.”

“어? 간다고? 왜….”

강동현이 벌떡 일어났다. 황경호는 몸이 안 좋았다. 혼자 있고 싶었다. 그냥 대충 대답했다.

“가야죠.”

“왜. 오늘 쉬는 날이잖아. 있다가 가. 배 안 고파? 먹어. 다른 거 먹고 싶으면 먹으러 가든가 시키든가….”

바로 아까까지 같이 하던 상대가 그냥 이렇게 가버리겠다고 하니 완전 당황한 모양이었다. 그를 상대했던 사람들 중에(한 명일뿐이라도) 이렇게 한 사람은 없겠지. 근데 무슨 상관인가. 황경호가 그냥 됐다고 하고 현관 쪽으로 걸어가자 강동현은 얼른 그의 팔을 붙잡았다.

“잠깐만….”

강동현은 엄청 당혹스러운 얼굴이었다.

“내가 또… 뭐 잘못했어? 아니… 이것도 내가 억지로… 한….”

“아니에요.”

황경호는 그의 말을 잘라먹고 대답했다.

“기분 나빴어?”

“아니에요.”

“근데 왜 이래… 가지마. 무섭잖아.”

“좀… 부끄러워서 그래요.”

정확하게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런 것도 있었다. 사실 자기가 뭔 생각을 하는 건지 황경호도 알 수가 없었다. 지금 이 상황이 어떻게 이렇게 된 건지도 잘 모르겠는데. 그러자 강동현이 약간 미소를 지었다.

“알았어. 미안. 먹고 가. 데려다줄게.”

그러면서 입을 맞추었다. 그러면서 그가 동시에 엉덩이를 잡아서 엄청 깜짝 놀라 움찔했다.

“만지지 마…!”

“응? 왜?”

그러면서 한 번 더 꽉 쥐자 짜증이 확 나서 그를 한 대 퍽 쳤다.

“아프다고!”

“아… 진짜?”

강동현은 황경호의 엉덩이를 놓았다. 그리고 황경호를 끌고 침대에 앉혔다. 앉는 느낌이 이상하다… 그리고 테이블을 끌고 와 그가 사온 온갖 빵과 음료들을 늘어놓았다. 샌드위치나 디저트나 전부 좀 비싸 보인다. 황경호는 뭔가 복잡한 기분으로 물을 좀 마시고 그냥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좀 먹으니까 낫긴 하다. 게다가 진짜 맛있고….

‘근데 진짜 기분이 왜 이러지….’

그래도 일단은 이쪽에서 그럴 만한 건수를 준 건데… 황경호는 후회와 혼란이 뒤죽박죽이 된 기분이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강동현은 테이블 의자에 앉아 부담스러울 정도로 황경호를 보고 있었다.

“근데… 많이 아파?”

“네? 아뇨….”

“아니… 너 잘 느껴서 아플 거라곤….”

영지랑은 이렇게까지 한 번에 많이, 오래 해본 적이 없었다. 처음으로 할 땐 그녀도 많이 아파하긴 했지만 제대로 느끼기 시작할 쯤부터는 괜찮았다.

‘하긴… 남자니까. 그러라고 있는 데도 아니고….’

강동현은 황경호가 깨작깨작 먹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가 말했다.

“너… 진짜 말 좀 해.”

“뭘요.”

“아팠으면 미리 얘기하지.”

했다. 황경호는 그를 약간 흘겨보았다가 그냥 먹었다. 강동현은 다시 잠잠히 황경호를 보고 있었다.

“그렇게 싫었어?”

또 뜬금없이 말했다. 그냥 대답하지 않자 또 묻는다.

“진짜 기분 나빴어? 안 좋았어? 진짜 많이 아파? 어디가 아픈데? 엉덩이?”

황경호는 한숨을 푹 쉬었다. 황경호는 정말 혼자 있고 싶었다. 아무런 말도 하기가 싫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냥 기운이 없었다. 그래서 누구랑도, 특히 강동현이랑 실랑이를 할 자신이 없었다. 엄청나게 맛있는 딸기 디저트가 있었다. 그걸 꼭꼭 씹어 먹으면서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렇게 나쁘진 않았어요. 좀 힘들어서 그래요.”

나쁘지 않았다는 말에 그의 얼굴이 활짝 폈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손을 잡아서 만지작거리며 사람들에게 극찬받는 미소를 지었다.

“알았어. 다음부터는 이렇게까진 안 할게.”

강동현의 입장에서도 이건 대신기록이었다. 그는 완전 싱글벙글이었다. 뭐도 먹으면서 가만히 그의 웃는 얼굴을 보니 더 기분이 좀…. 다시 어젯밤부터 되새겨 보기 시작했다. 어디가 잘못된 걸까. 하지만 생각을 다시 해본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아까 강동현이 나갔을 때 빙글빙글했던 생각들이랑 피차일반이다. 딱히 잘못된 곳이 없다. 강동현이 키스했고 그때 황경호도 이상하게 끌려 키스를 했고 그러다 보니까….

‘진짜 거기로 하는 것까진 안 하고 싶었는데….’

두려워했던 것보다는 끔찍하지도 않고, 기분 좋다는 느낌까지 들었는데도 왜 이렇게… 아니, 행위 자체보다도… 말로 표현을 못 하겠다.

‘아니, 그것보다도 이제 와서 뭐 어쩔 거야. 이미 일어났는데….’

짧게 한숨이 나왔다.

‘아마 이렇게 됐으니까….’

황경호는 계속 웃으며 자신을 보고 있는 강동현을 힐끗 보았다. 이렇게 됐으니까 아마 이제 이 남자는 황경호에게 앞으로 계속 이런 섹스를 요구할 것이다. 예전과 다르게 훤히 예상이 되었다. 그의 말대로 또 ‘상황이 변했으니’까. 만지지 않겠다던가 하던 약속도 다 백지가 되어버린 거고.

강동현이랑 하는 섹스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고 해서 강동현이랑 하고 싶냐고 물어보면 여전히 싫었다. 애초에 지금 이 상황 자체가 후회되는데. 하지만 그게 뭐 큰 대수겠는가. 그렇게 하기 싫다는 걸 알고 거부했을 때도 계속 기회를 노리던 놈이었다. 이제 어찌 됐든 이렇게까지 됐으니….

황경호는 처음으로 뭔가가 일어나기 전에 확실히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는 강동현이 앞으로 부려 댈 억지를 아마 당해내지 못할 것이다, 지금까지도 그랬듯이.

*

강동현은 요새 정말 컨디션이 좋았다. 몸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일의 강도가 줄어들어서 그런가 싶었는데 그것도 그거였지만 역시….

‘사람은 역시 정기적으로 해줘야 해.’

일도 잘되고 있었다. 그렇게나 원하던 섹스도 할 수 있게 되었다. 강동현은 더 바랄 것이 없었다. 물론 자잘한 문제는 있었다. 강동현이 예전보단 덜 바빠졌다고 해도 4월까지는 여전히 바빴고 황경호가 강동현의 집에 죽치고 사는 것도 아닌 이상, 병원밖에 답이 없어서….

[거, 거짓말이지?]

병원에서 덮치려고 하니 황경호가 완전 혈색이 싹 빠져서는 그렇게 물었다. 사실 이 병원의 이 치료실에서 이 간호사를 따먹는 건 강동현의 오랜 판타지였다.

[빨리 할게.]

처음 몇 번은 극렬히 저항해서 못했으나 이 남자, 하고자 하는 건 다 하는 남자가 아니었던가. 강동현을 마구 때려 흥분한 황경호의 것을 야하게 매만지며 엉덩이를 풀어 얼른 넣어버리자 어쩔 줄 몰라 하며 당했다. 간호사복에 바지만 벗겨서 하는데 그렇게 흥분될 수가 없었다. 20분 정도 만에 해야 해서 좀 거칠게 하고 괴롭히긴 했다. 다 하고 나니까 그는 엄청 충격 먹은 표정이 되었다.

[이걸 병원에서…]

그런 황경호가 꽤 귀여워서 킥킥 웃으면서 그를 끌어안고 저도 모르게 담배를 물었다. 황경호가 그가 문 담배를 뺐었다.

[담배 끊어요.]

[아, 병원이지, 참… 너 담배 연기 싫어했어?]

[그냥… 건강에 안 좋잖아요.]

아마 뒤에 임포 새끼 주제가 어쩌고 한 것 같긴 한데, 어쩐지 약간 더 흥분했다.

[지금 나 걱정하는 거야?]

그리고 넣은 채로 다시 슥슥 움직이니까 황경호가 화를 내면서 그를 퍽퍽 때렸다.

[병원이라고, 이 변태야! 병원! 망할 고자 새끼!]

그땐 확실히 좀 화가 났는지 팬사인회마다 와서 강동현에게 엿을 먹였다. 블랙리스트에 올라가서 이제는 못 올 것 같긴 한데….

‘아, 화 많이 났나 보던데… 풀어줘야 하는데….’

하지만 사과는커녕 매번 그냥 보자마자 해버렸다. 치료실이든 차든 화장실이든. 병원은 일주일에 두 번 갔고 퇴근 후에도 가끔 갔다. 그러다가 또 정신을 차리면 역시 화가 났을까 싶었다. 그래서 퇴근 시간에 얘기 좀 할까 싶어 찾아갔다가 그냥 선물을 떠안기고 화장실로 데려가서 해버렸다. 그때 모텔에서 하고 난 이후론 거의 이런 식이었다. 황경호의 얼굴만 보면 거기가 어디든 그냥 하고 싶어서 몸이 달았다.

“으응… 아… 싫어….”

극렬한 오르가즘 후에 황경호가 신음했다. 강동현이 한참을 지분거렸다. 물고 빨고… 황경호는 언제나 그보다 먼저 정신을 차렸다. 강동현의 얼굴을 밀어내었다. 그리고 그의 허리도 밀어내서 몸에 들어와 있는 것을 빼내었다. 한 번밖에 하지 않아서 바로 구멍은 닫혔다. 휴지를 뜯어 다리 사이를 닦아 내었다.

‘아, 진짜 좀 창…. 그거 같다….’

딱히 돈 받는 건 아니니까 걸레인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가 황경호는 휘휘 고개를 저었다. 됐다. 더 이상 생각은 하지 말기로 했다. 이제는 감정적으로 부딪치는 게 더 피곤하다. 어차피 이쪽이 참는 거밖에 답이 없는데 괜히 혼자서 땅 파면 더 손해다. 이미 지금도 충분히 피곤하다….

“집에 가자. 응? 아니면 내가 너네 집 갈까?”

강동현이 좀 정신을 차리고 졸랐다. 황경호는 휴지를 휴지통에 버리면서 대답했다.

“한 번 했잖아요. 피곤해요.”

차가운 변기 위에서 갑자기 다리를 벌리고 몇십 분이고 있었더니 이미 엉덩이 근육이 찢어질 듯이 아프게 담이 걸렸고 허벅지는 당겼다. 아프지만 걸을 순 있었다. 못 걸을 정도라고 해도, 걸어야지 달리 수가 있는가.

“그럼 여기서라도 한 번 더 해.”

“아…!”

바지를 추슬러 올리고 있는 황경호의 팬티를 쓱 내리더니 강동현이 다시 자신의 것을 꾹꾹 집어넣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황경호의 온몸이 시뻘게지며 신음이 터져 나왔다. 담이 걸렸던 엉덩이 근육이 파르르 경련하면서 칼로 쑤시듯 아팠다. 그렇게 억지로 담이 풀렸다. 황경호는 차가운 화장실 칸막이에 찰싹 붙어 있어야 했다. 난방 좀 있다 끌 걸 그랬다. 손이 좀 시렸다.

‘요즘 화장실에서 자주 하네. 하긴 이덕재랑도….’

강동현이 깊숙이 다 들어오자 황경호는 으윽, 하고 신음을 삼켰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얼굴과 목덜미를 죄다 물어뜯었다.

“너… 진짜 살 좀 찌워라. 더 빠진 거 같아.”

강동현이 황경호의 가슴살을 억지로 움켜쥐며 말했다.

‘그건 원래 없는 거라고….’

황경호는 엉덩이에 최대한 힘을 풀려고 했다. 두 번째까지는 진짜 힘들었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귀를 깨물고 빨았다. 그리고 뜨겁게 한숨을 쉬며 속삭였다.

“근데 나 진짜 궁금한데… 지금까지 몇 명이랑 해봤어?”

아, 또 시작… 황경호는 강동현이 젖꼭지를 꼬집어오자 정말 죽을 것 같이 느껴져서 미칠 것 같았다. 그런데 짜증도 났다. 도대체 그런 게 자기랑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그냥 조용히 입 다물고 박다가 끝냈으면 좋겠다.

“누가 제일 좋았어?”

“그런 게… 왜 궁금한데요… 읏… 으응… 도대체….”

“말했잖아… 어떤 취향인지 알고 싶다니까. 윽. 어떤 거 더 좋아하는지도 궁금하고….”

그대로 황경호가 그냥 입을 다물자 쿡쿡 안을 찔러대며 귀에다 속삭였다.

“응? 어떤 애들이었는데? 어떻게 하는 거 좋아했어? 이렇게 뒤로 하는 거 좋아했어? 니가? 아님 걔들이?”

“아, 진짜 뭔 상관이야… 응… 앗… 그냥 빨리 싸기나 해….”

황경호는 벽에 짓눌린 채 계속 사정할 것만 같은 걸 참고 있었다. 이 변태가 지루라서 그냥 느끼는 대로 사정을 했다간 나중에 황경호만 체력이 바닥나 버릴 것이다. 그가 황경호의 성기와 젖꼭지를 동시에 문질렀다. 정말 싫었다.

‘만지지 마. 만지지 마. 만지지 마….’

황경호는 야한 신음 소리를 내며 겨우 견뎠다. 다리가 계속 풀릴 거 같았다. 꼴사납게 이런 데서 주저앉고 싶지 않았다.

“하으응… 아앙… 아… 진짜… 만지지 마…. 흣… 으앗… 아앙….”

“그럼 진짜 오늘은 명수만? 응? 진짜 내가 이렇게까지 물어봤는데 어떻게 한 번을 안 말해주냐.”

“앗… 하응… 하아아아앙…!”

황경호가 다리가 확 풀리며 사정하기 시작했다. 강동현은 조금도 멈추지 않았다.

“아…! 싫어어어… 흑… 아앙… 힉… 잠깐만요… 아… 잠깐만… 제발… 아아앙… 제발요… 우으… 흑.”

강동현은 그의 그런 그의 엉덩이와 허리를 붙잡고 야무지게 한참 따먹다가 사정했다. 그래서 황경호는 절정에 이른 채 한참을 더 폭력적인 쾌락에 눈물 콧물 다 쏟아야 했다. 또 참지 못하고 사정을 한 게 실금을 하는 것처럼 창피했다.

강동현도 다리가 풀려 변기 커버 위에 앉았다. 황경호는 눈물을 줄줄 흘리며 강동현의 남성기를 끼운 채 그의 무릎 위에 다리를 벌리고 한참 앉아있다가, 문득 그런 자신을 깨닫고 정신을 차렸다. 새삼 부끄러웠다. 그는 자신의 얼굴을 손등으로 가리듯 문지르며 그의 무릎 위에서 일어났다. 주르르륵, 하면서 강동현의 것이 빠져나갔다. 다시 다리 사이를 닦고 바지를 입었다. 엉덩이 근육과 골반이 아프고 어딘지도 모를 다리 사이의 뼈와 근육들이 억지로 벌어졌던 탓에 공간감이 뻐근하게 남아 있었다. 손끝이나 발끝이 시렸다. 온몸에서 슬슬 근육통이 올라왔지만 역시 못 걸을 건 없었다. 빨리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고 싶었다. 두 번째까지는 그나마 구멍 사이로 뭐가 새진 않았다. 냄새가 날까 싶어서 좀 걱정되었지만… 그냥 다 씻는 게 답이다. 빨리 집에 가고 싶다.

강동현도 그사이 약간 정신이 들었는지 나른하게 황경호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여전히 장난을 걸었다.

“그래서 첫 키스는 누구랑 해봤어? 언제? 몇 살 때?”

진짜 귀찮았다. 황경호는 약간 체념감 섞인 한숨을 쉬며 옷매무새를 바로 잡았다.

“그런 거 없어요. 그러니까 제발 그만 좀 물으세요.”

“응?”

강동현은 그래도 설마라고 생각했다.

“뭐야… 첫 키스도 안 해봤다고.”

황경호는 대답 없이 화장실 문을 열고 나갔다. 강동현은 얼이 빠져있다가 얼른 옷을 입었다. 그리고 그를 따라갔다.

“그럼 섹스는?”

황경호는 엘리베이터를 잡고 있었다. 강동현은 한 번 더 물었다.

“그래서 섹스는?”

“안 해봤어요. 됐어요?”

“어…? 그럼….”

강동현은 갑자기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털이 확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너무 충격을 받아서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가,

“그럼 그렇다고 말을 해야 할 거 아냐!!”

강동현은 갑자기 소리를 버럭 질렀다. 황경호는 깜짝 놀라서 그를 돌아보았다.

“네?”

“왜 넌 항상 얘기를 안 하는데!!”

강동현은 약간 패닉에 빠진 것 같았다.

“그런 걸 내가 왜 댁한테 말해요….”

황경호는 약간 당황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내가, 내가 너한테….”

강동현은 믿기지가 않는다는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황경호는 엘리베이터에 탔다.

“안 내려가실 거예요?”

강동현은 그대로 입을 딱 벌린 채 황경호를 보고 있었다. 황경호는 그냥 열림 버튼에서 손가락을 떼었다. 강동현은 그대로 어두컴컴한 병원의 안에 남겨졌다.

*

강동현은 다리를 달달 떨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진짜 모르겠다. 갑자기 주마등같이 전적들이 떠오른다. 성희롱. 성추행. 처음 두 번은 거의 레이프. 그 뒤엔 싸구려 모텔에서 한 번 한 거 말고는 화장실이나 차나 병원… 그 흔한 호텔도 한 번 안 갔다.

‘최악이다….’

그러면서 문득 당연히 했어야 할 의문이 떠올랐다.

‘나랑 왜 하는 거지? 진짜 기분 좋아서 하는 건가?’

모텔에서 그렇게 하고 난 이후로는 그 전에 싸웠던 거고 뭐고 전부 다 머릿속에서 날아가 버렸다. 이제 됐다, 정도로 결론짓고 있었다. 그러니까….

이제 얘랑 마음껏 해도 돼.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때 그 모텔에서…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런 교감이 있었다. 분명히 그때 그 간호사도 강동현을 원했다. 그때까지랑은 완전히 달랐다. 같이 혀를 움직여서 키스를 하고 끌어안아 오고….

‘물론 넣고 나서는 좀….’

부담스러워 했지만 결국 제정신인데도 계속했고 그 다음날 아침에도 엄청 했다. 이쪽이 깜짝 놀랄 정도로 미친 듯이 잘 느꼈다. 술을 마시고 했을 때보다 몸은 많이 굳어 있었지만 그것도 할수록 부드러워졌고….

그리고 그 후에 부끄럽다고 그냥 가버리려고 했지만, 잡았을 땐 그냥 같이 있었다. 그날뿐이라고 앞으로는 하지 말라든가 그런 말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냥 별말 없이 지나갔고 그 뒤에 강동현이 병원 치료실에서 건드렸을 땐 처음 몇 번은 완강히 저항했지만, 결국 한 번 하고 나서는 그 뒤부턴 치료실에서도 그냥 하게 해줬다. 화장실이나 차는 오히려 수월하게 그냥 하게 해줬다. 지금 생각해보면 계속 그런 식으로 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분명히 좋진 않았을 텐데 아무 말을 안 해서….

‘아니… 남자라서 딱히 처음이고 나발이고 신경 안 쓸 수도 있지만….’

강동현은 그 간호사보다 예민하고 성가신 여자 같은 건 본 적도 없었다. 오히려 전 여자친구는 처음 하고 나서 이렇게 아플 줄 몰랐다느니, 이렇게 해보라느니, 저렇게 해보라느니 하며 오히려 바짝 긴장하고 있던 강동현을 우습게 만들었었다. 아니, 그쪽이 ‘처음’이라는 거에 그렇게 의미를 둘지 안 둘지는 모르겠지만 이쪽은 엄청나게 두었다. 게다가 그 성격이란 말이다. 속으로 뭔 생각을 할지….

“아… 진짜 미치겠다….”

그렇게 하고 싶다, 하고 싶다 생각할 때 일에 집중을 못 했던 것보다 지금이 훨씬 심각했다. 그 이후로 그에 대한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걔는 도대체 지금 나이가 몇 갠데 그런 것도 한 번 안 해보고… 생긴 것도 멀쩡하고 성격도 괜찮잖아. 여자랑 한 번 자는 게 뭐가 그렇게 대수라고. 다른 사람들은 원나잇에 안마방이고 뭐고 다 가보는데. 남들 다 하는 걸 왜….’

자신은 그런 걸 질색하면서도 그렇게 생각했다.

‘거짓말이겠지? 다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 남자는 당연히 내가 처음이겠지만… 아, 진짜….’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잘 웃고 활기차고 명랑해 보여도, 기본적으로 기질이 예민하고 섬세하다. 진짜 성가실 정도란 말이다. 그런 주제에 참기도 잘 참고 숨기기도 잘 숨겨서 잘 알아차릴 수가 없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정말 다른 사람이랑 그런 일이 없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마 다른 사람들은 적당적당히 상대하면서 혼자 있고 싶어 했겠지….

‘아, 그래도. 거짓말….’

믿지 못한다는 게 아니다. 믿고 싶지 않아서 계속 이러고 있는 것이었다.

‘도대체 걔는 왜 나한테 말을 안 했지… 말하지… 왜 말을 안 하지….’

그러면 적어도… 강동현은 이마에 두 손바닥을 대고 팔꿈치를 무릎에 대고 있자 스타일리스트가 바로 뭐라고 했다.

“동현 오빠, 머리! 옷 구겨져!”

“아, 미안….”

강동현은 정말로 궁지에 몰린 기분이었다. 그때 황경호가 그냥 한 번이든 두 번이든 성에 차는 대로 하고 떨어져 나가라고 했을 때보다도 말이다.

‘아니, 잠깐만. 그거 그 돼지 새끼한테 했던 거 아냐.’

“아, 씨….”

강동현은 저도 모르게 소리를 내서 욕을 했다. 갑자기 화가 나기 시작했다. 진짜 강동현이랑 이덕재를 똑같이 보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뒤 강동현의 행동도 결과론적으론 거의 똑같았다. 할 거 하고도 약속대로 떨어져 나가지는 않고 계속….

‘아, 그것도 그건데. 씨X… 내가 처음이었으면서 그 사이 이덕재한테도 당했다는 건 도대체… 진짜로 나나 그놈이나 똑같다고 생각했다고 한 거라고 쳐도. 아무리 그래도 왜 행동거지를 그따위로… 아, 씨X. 그래, 우울증. 우울증, 씨X!’

입 밖으로 못 내는 쌍욕이 머릿속으로는 엄청나게 터져 나온다. 결국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게 되었다.

*

벌써 3월 중순이었다. 날이 제법 덜 추워졌다. 일주일 정도는 도저히 만나러 갈 수가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다. 그래도 오래 끌 수도 없는 것 아닌가. 강동현은 행동을 개시했다.

“제일 향기 좋은 꽃이랑 섞어서 장미 많이 해서 예쁘게 주세요.”

“장미는 무슨 색깔로 할까요?”

계속 빨간색만 줬다. 보다가 분홍색이랑 흰색이 예뻐 보여서 섞어 달라고 했다. 누가 보면 꽃다발 하나에 돈을 그렇게 처발랐다고 욕을 하겠지만 일단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지만 누가 봐도 딱 어디서 어떻게든 나올 것 같은 훤칠한 남자가 엄청난 꽃다발까지 들고 길로 나오니 사람들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봤다. 그가 벤츠 SUV로 가서 타니 더 그랬다. 강동현은 한숨을 팍팍 쉬면서 일단 전화를 걸었다. 요즘에는 거의 순순히 받는 황경호였다. 그가 받자 강동현이 곧바로 물었다.

“어디야.”

[아… 태형이 형네 가게요.]

“술 마시는 거야?”

[네… 무슨 일 있으세요?]

“잠깐 나와라. 얘기 좀 하자. 그쪽으로 갈게.”

[아, 네….]

그러고 전화를 끊었다. 강동현은 창틀에 팔꿈치를 올리고 주먹을 쥔 손가락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후….”

뭔가 사과를 하고 그의 기분을 좋게 해주고 싶다고 생각해서 지금 이러고 가는 건데도 어쩐지 아직도 화가 안 가셨다. 이덕재랑 같은 취급을 했다는 것도 빡치는데 왜 애초부터 처음이라는 걸 얘기를 안 했냐는 말이다. 게다가 그 후에 다른 남자랑 했다는 것도(그것도 그 돼지 새끼 같은 놈이랑) 황경호의 잘못이 아닌데도 생각할 때마다 열이 뻗친다.

‘나도 두 번밖에 못 해봤을 땐데….’

가게 앞에 도착하고 다시 전화를 했다.

“나와.”

그러자 곧 황경호가 가게에서 나왔다. 그는 조수석 문을 열었다가 꽃다발을 발견하고는 잠깐 거기에 시선이 멈춰져 있었다. 조심스럽게 잡고 올라탔다.

“이거 어떻게 할까요? 뒷좌석에 둘까요?”

“니 거야.”

“네?”

“너 하라고.”

“아. 네….”

강동현은 이미 몇 번 황경호한테 꽃다발을 준 적이 있었다. 그래서 황경호는 바로 꽃다발을 두 손으로 잡고 냄새를 한 번 맡아보았다. 마음에 든 모양이다.

“넌 무슨 초저녁부터 술이야?”

“좀 마시고 싶어서요.”

벌써 꽤 마신 것 같아 보였다. 아무리 주말이라지만 아직 6시도 안 됐다.

‘다시 술이 늘었나….’

강동현은 그렇게 흘깃흘깃 황경호를 관찰했다. 황경호는 한참 꽃만 계속 보고 있다가 드디어 강동현한테 고개를 돌렸다.

“근데 하실 말씀이란 게 뭐예요?”

“…이 뒤에 딱히 뭐 없으면 집에 가서 얘기해.”

“아, 네….”

그러자 황경호는 다시 꽃잎을 만지작거리며 꽃으로 눈을 돌렸다.

‘자주 사줘야겠다.’

강동현의 고급 아파트 주차장에 도착하자 황경호는 꽃다발을 들고 그를 따라갔다. 집에 도착하자 황경호는 꽃다발을 고이 카우치 앞 테이블에 올려 두었다. 강동현은 들어가자마자 냉장고에서 맥주부터 한 캔 땄다. 술이 필요했다.

“너도 한잔할래?”

강동현이 묻자 황경호가 맥주를 받으러 왔다. 한잔하다 와서 그런지 더 마시고 싶나 보다. 강동현은 한 모금 하고 황경호가 캔을 따는 것을 보았다. 그도 한 모금 했다.

“왜 얘기 안 했어?”

“네?”

황경호가 강동현을 쳐다보았다. 강동현은 말이 잘 안 나왔다. 이것저것 생각은 많이 하고 왔는데 막상 이렇게 마주하니까 당혹스러운 마음이 컸다.

“하… 아니, 그… 내가 너… 그러니까….”

황경호는 그냥 강동현을 이상하다는 듯이 보고 있었다. 강동현은 확 얼굴을 붉히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 왜 내가 너 처음인 거 얘기 안 했냐고.”

강동현은 주저하다가 마음을 먹고는 그렇게 바로 말했다. 황경호는 별로 기꺼운 주제는 아닌지 아, 그거… 하고 다시 고개를 돌리고 술을 먹었다.

“딱히 말할 필요 없잖아요.”

“왜 없어? 아무리 남자라고 해도…!”

강동현이 약간 흥분해서 말을 하려다가 그냥 입을 다물었다. 황경호가 좀 있다 피식 웃었다.

“댁이 처음에 멋대로 키스했을 때 첫 키스였다고 노발대발했으면 저 안 괴롭히셨을 거예요?”

“그건….”

강동현이 복잡한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래도… 그런 식으론 안 했을 거 아냐… 적어도… 작년, 아니 재작년인가….”

“네….”

황경호는 애매하게 대꾸를 하곤 그냥 술을 마셨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손을 잡았다. 술을 먹고 와서 그런지 꽤 따뜻했다.

“그럼… 괜찮은 거야?”

그렇게 묻자 황경호가 어쩐지 한숨을 쉬었다. 이미 한 캔을 다 비웠다. 지나가듯이 중얼거렸다.

“내가 괜찮은지 안 괜찮은지 언제 신경 썼다고….”

황경호는 그렇게 말했다가 실수했다는 듯이 손으로 입을 감쌌다. 강동현은 이미 깜짝 놀라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아니에요. 실수했어요. 그래서 더 하실 말씀 있으세요?”

황경호가 마치 병원에서 접객을 하듯이 말했다. 강동현은 그의 어깨를 잡아서 돌렸다.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무슨 말이야?”

“아무것도 아니에요. 술을 좀 마셔서….”

“내가 너 괜찮은지 안 괜찮은지 왜 신경을 안 써? 지금 내가 너 처음이라는 말 듣고 며칠을 머리 아파 죽는 줄 알았는데.”

“그런 거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집에서 얘기하자고 해서 다른 건 줄 알았어요.”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내가 너랑 하자고 부른 건 줄 알았다고?”

“아니, 아니에요. 아니면 됐어요.”

“…….”

강동현 본인이 황경호의 첫 잠자리 상대라는 것을 알고도 다시 또 이렇게 무작정 집으로 데려와서 섹스를 요구할 거라고 생각했다는 말인가. 강동현이 딱딱한 목소리로 물었다.

“너… 나랑 왜 하는 거야?”

“네?”

황경호는 못 들었다는 듯이 그렇게 반응했다. 강동현은 그의 그런 태도가 몹시 마음에 안 들었다. 말이 곱게 안 나간다.

“나랑 왜 하냐고.”

“…….”

“왜 하냐니까.”

황경호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건 왜 묻는데요?”

“너 처음인 것도 나한테 말 안 하고 닥치고 있었고 내가 어디서 어떻게 덮치든 그냥 대줬는데, 씨… 왜 그렇게 했냐고.”

중간에 거의 욕을 할 뻔했다가 참았다. 황경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강동현이 노려보았다.

“대답해.”

“…갑자기 왜 이러시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처음이라고 말해서 그러시는 거예요? 그냥 그쪽이 계속 귀찮게 물어봐서 대답한 것뿐이에요. 이렇게 신경 쓰실 줄 몰랐어요.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왜 내가 신경을 안 쓰는데. 왜 신경 안 써도 되는데?”

“별거 아니잖아요. 계속 왜 이러세요.”

“왜 별게 아닌데.”

“…….”

“나랑 왜 하냐고.”

강동현이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물었다. 황경호는 한숨을 쉬다가 되물었다.

“제가 왜 하는지가 진짜 중요하세요?”

“뭐?”

“안 중요하시잖아요.”

“그게 왜 안 중요해. 당연히…!”

황경호는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한숨을 쉬었다.

“네… 처음 알았네요….”

체념조가 짙다. 강동현은 인상을 확 구겼다.

“너 계속 그런 식으로….”

강동현은 끓는 듯한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하기 싫으면 왜 하게 해줬는데.”

똑바로 말은 안 해도 무슨 말인지 모를 리가 있겠는가. 강동현이 다시 물었다. 황경호가 다시 질문으로 대답했다.

“제가 하기 싫다고 하면 안 하실 거였어요?”

젠장… 강동현은 인상을 왕창 구겼다.

“그럼 하기 싫다는데 내가 강간이라도 할까 봐?”

“그러셨잖아요.”

“그건… 예전 일이잖아. 지금이랑은 다르잖아.”

황경호는 확 짜증스럽게 인상을 썼다가 미간을 손으로 문질렀다.

“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그만 해요. 갈게요.”

“가긴 뭘 가. 다 얘기해.”

강동현이 붙잡자 황경호가 뿌리치려는 듯하다가 말았다.

“말했잖아요.”

“뭘?”

“싫다고 말했잖아요.”

“언제?”

강동현은 정말 몇 마디 하지 않고도 사람의 기분을 거지같이 만드는 훌륭한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그냥 대화 자체를 그만두고 싶었다. 영원히 이럴 것이다. 의미가 없었다.

“항상 말했어요….”

힘없이 말했다가 입을 다물었다. 더 이상 말하면 정말 기분이 안 좋아질 것 같았다.

“그래서… 넌 왜 나랑 하는 건데. 하기 싫은 데도.”

강동현이 물었다. 반복, 반복, 반복… 황경호는 한숨을 쉬었다.

“진짜 그만 해요… 이런 얘기 별로 필요 없잖아요.”

강동현도 황경호의 이런 태도가 아주 싫었다. 답답하다. 왜 끝까지 말을 안 해주는지 모르겠다. 강동현은 식탁에 등을 기대고 있는 황경호의 정면으로 자리를 옮겼다. 강동현은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했다. 계속 이런 식이면 대화가 안 될 거다.

“필요해. 필요하다고. 넌 필요 없을지 몰라도 난 필요해… 말해.”

“…….”

“나 진짜… 니가 싫다는 건 이제 안 해. 아니, 안 하고 싶다고. 니가 제대로 말 안 해주면 난 모른단 말이야.”

계속 이쪽을 안 봐서 강동현은 그의 얼굴을 감싸고 자신의 쪽으로 향하게 했다. 그는 만사가 다 싫은 표정이었다.

“도대체 뭘 더 얘기하라는 건지….”

“그래도 말해. 잘 들을게. 말해줘.”

황경호는 두 손을 들었다.

“아, 그래요. 제가 병신이라 그쪽은 아무 잘못 없는데 멋대로 헛다리 짚었나 보네요.”

황경호는 땅이 꺼져라 깊게 한숨을 쉬었다.

“그쪽은 그렇게 인정하지 않으시겠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황경호는 그렇게 운을 뗐다.

“한 번 맨정신으로 했겠다, 어차피 억지로든, 어떻게 해서든 해버렸을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제 생각에는요. 물론 실제로도 그렇게 하셨구요. 병원에서 하는 건 정말 싫어서 싫다고 확실히 했잖아요. 그거 말고도… 아니, 뭐 또 생각 안 나시겠죠.”

말을 이렇게 하는 것 자체가 싫은 것 같았다. 짜증이 마구 섞인 말투다. 황경호는 한숨을 약간 쉬더니 조용히 말을 이었다.

“이제 댁이랑 기운도 그만 빼고 싶고, 차라리 이게 나아요.”

황경호가 그렇게 말했다.

“계속 안 되시는 것도 심인성인데, 저한테 집착하시는 것도 그렇고. 차라리 성에 찰 때까지 하시면 어떻게든 결론이 나겠죠. 낫든가, 그쪽이 생각하는 것처럼 내가 해결책이 안 되든가. 그럼 이것도 다 끝나니까.”

황경호는 마치 남 일을 말하는 것처럼 말했다. 강동현은 좀, 그러니까 많이 충격을 먹었다. 거의 그가 자신이 첫 상대라고 말했을 때만큼이나 충격이었다. 왜? 하지만 이유를 찾을 여력조차 없었다. 그리고 뭔가 갈비뼈 안이 뻐근하고 머리로 열이 올랐다.

“예전처럼 죽어도 못하겠다 싶지는 않았어요. 전처럼 강간이라고 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래요.”

“너… 왜… 말을…. 그렇게… 해.”

강동현은 띄엄띄엄 말했다. 그리고 그게 엄청 병신 같다는 걸 깨닫고 목을 가다듬었다.

“어차피 난 널 강… 억지로 할 테니까 싸우기 귀찮아서 해준 거다?”

강동현이 그렇게 말하자 황경호는 또 한숨을 쉬었다.

“제가 지금까지 댁이랑 하기 싫다고 몇 번이나 말했을 거 같아요?”

“하지만… 너… 이제 느끼잖아. 나랑 하는 거.”

강동현은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듯이 말했다. 황경호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마 창녀들도 손님이랑 할 때 어쩔 수 없이 느끼겠죠. 생리적인 거니까.”

말하고 나선 황경호도 아차, 했다. 강동현은 이런 식으로 말하는 걸 싫어했다. 화내면 엄청 피곤하다. 무슨 말 할지도 모르고, 좋은 말 아닐 건 확실하고….

“제가 이랬던 게 처음도 아니고. 그냥 제가 걸레 같은 거라고 해요. 이제 이런 얘기 그만 해요.”

이덕재한테도 똑같이 했었다. 새삼 또 못할 건 뭔가. 그냥 다시 한 번 강동현이나 이덕재나 똑같은 것이라고 확인한 것뿐이었다.

‘알면서도 항상… 뭐랄까… 강동현은 그래도, 뭔가… 아니야. 그만 생각하자.’

황경호는 그때 이후로 생각 자체를 덜 하기로 누차 마음먹었다. 이덕재보다 강동현을 상대하는 게 더 괜찮다는 건 어쩔 수 없는 사실이기도 했다. 사실 이덕재조차도 강동현이 엮이지 않았더라면 감옥에 넣지도 못하고 질질 끌려 다녔을 것이다. 그래, 더 나은 거라고 생각하면야 못할 것도 없다. 실제로도 없었다.

‘뭐야… 진짜 몸 파는 사람 마인드네. 두 사람은 억지를 지불하고 날 샀던 건가…. 웃기다. 진짜 병신이네. 몸이라도 팔 생각이었으면 진짜 챙길 거나 챙기지.’

이렇게 멀찍이 생각할 수도 있게 되었다. 진짜 인생이라는 게 조금 놓고 살아야 하는 건가 보다. 그래. 지금까지 생각이 너무 많았던 거다. 단순하게 생각하자. 단순하게. 황경호는 강동현의 얼굴을 보았다. 지금 그의 표정을 보니 하고 싶은 건 아닌 것 같았다.

“그럼 갈게요.”

황경호는 다시 현관으로 돌아갔다. 강동현이 황경호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는 지가 화들짝 놓았다. 그러더니 인상을 혼자서 팍 썼다. 다시 황경호의 팔을 잡고 끌어당겨서 안았다. 자존심은 좀 상했으려나, 황경호는 그렇게 생각했다.

강동현의 몸은 근육질이라 껴안으면 오히려 푹신한 느낌이었다. 손을 널브러트리고 있는 것도 이상해 그냥 그의 팔을 잡았다. 그의 포옹이 섹스보다는 훨씬 좋았다. 그렇게 생각했다. 좋은 냄새도 나고… 섹스 후가 아니고서야 이렇게 껴안고 있을 일도 없었다. 그것마저도 그때 모텔에서 한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고… 아마 이런 식의 포옹은 처음인 것 같다. 좋은 냄새가 나고 폭력적인 느낌도 안 났다. 이 이후에 뭐만 안 한다면야… 아니, 뭐가 있다고 해도 뭘 또 반항하겠는가. 언젠가는 이것도 다 지나가겠지.

그렇게 계속 한참을 안겨 있었다. 그가 황경호의 옷을 꽉 구기며 뭔가 괴로운 신음을 내뱉었다.

‘제기랄… 이것도….’

그에게선 항상 달달하고 유혹적인 냄새가 나서, 지금도 그랬다. 뭔지 모르겠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

“알았어… 무슨 말인지 알겠다. 미안하다, 지금까지 니 말 무시해서… 앞으론….”

강동현은 황경호를 더 꽉 끌어안았다.

“앞으론 진짜 안 건드릴게. 지금까지 미안했다.”

그리고 놓아주었다.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담배랑 술 생각이 간절했다. 강동현이 곧바로 부엌으로 가서 술과 담배를 꺼냈다. 황경호는 현관에서 신발을 신다가 문득 그를 돌아보고 물었다.

“병원에는 오실 거예요?”

“…….”

대답을 기다리다가 황경호는 그냥 밖으로 나갔다. 꽃은 들고 가지 않았다.

*

강동현을 다시 본 황경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냥 평소처럼 웃었다.

“오셨어요, 도은혁 환자님.”

그래도 한창 툭탁거리면서 거리를 유지할 때는 강동현이 그나마 편했는지 저렇게까지 깍듯하지는 않았는데, 이제는 진짜 표정을 읽을 수가 없었다. 질린다고 생각하고 있으려나… 아니면 또 못 믿을 놈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려나… 어느 쪽이든 짜증 났다.

“옷 갈아입고 앉으세요.”

강동현이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황경호는 모든 환자들에게 천편일률적으로 똑같이 하는 말을 강동현한테도 했다. 강동현은 얌전히 옷을 갈아입고 와서 앉았다.

“차갑습니다.”

영지를 다시 봤을 때도 이런 느낌은 안 들었다. 다시 보는 간호사는 억울하고 답답한 기분만 들게 했다. 화를 내든 뭘 하든, 뭐든 속에서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갑갑하고 화가 나고 짜증 나고… 강동현은 습관적으로 그의 귀를 만질 뻔하다가 그냥 두 손을 깍지 꼈다.

“…요새는 어떻게 지내?”

“잘 지내요.”

황경호는 선선하게 대답했다.

“어디 아픈 데는 없어? 기분은?”

“괜찮아요.”

그 말이 마치 너만 없으면 내가 뭔들 안 괜찮겠냐는 식으로 들렸다. 강동현은 인상이 잡힌 미간을 자기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태형이 형네 가게는 안 가? 요새 너 안 온다고 하던데….”

“가긴 가요. 술 좀 줄이려고 덜 가는 거예요.”

“아직도 술 많이 마셔?”

강동현의 목소리가 좀 딱딱해졌다.

“그렇게 많이 안 마셔요.”

하지만 황경호는 어조의 변화 없이 그렇게 대답했다.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강동현은 살짝 울컥했다가 참았다.

‘아, 뭐라고 자꾸 이렇게 화가 나냐….’

결국엔 황경호는 강동현에게 ‘먹고 떨어져라’를 또 시전한 것이고 강동현은 그걸 좋다고 먹은 꼴이었다. 그냥 좋다 수준인가. 미쳐서 완전 과식했다. 그걸 그렇게 예민한 성격인데도 그냥 참았다는 거다. 이덕재랑 같은 취급 받는 걸 그렇게 싫어하면서도 결국 똑같이 행동했다.

그냥 그렇게 하게 해주는 게 이상한 건 지금에 와서 보면 당연했다. 모텔 전날만 해도 강동현이랑 하기 싫다고 병원에 오지 말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황경호였는데 대뜸 하룻밤 잤다고 그게 바뀔 리가 있나. 적어도 물어보기는 했어야 했다. 하지만 물어보았다가 싫다는 대답을 들으면…… 이렇게 당연한 사실을 보기 싫었던 건 강동현이었다. 그 뒤 그나마 병원에서 하는 건 정말 싫어하고 심하게 저항했는데도 힘으로 누르고 그냥 해버렸다. 그러면서 니가 하기 싫다고 했으면 안 했을 거라는 말은 차마 다시 할 수 없었다.

이때까지 이 간호사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선 딱히 큰 호기심을 가지지 않았다. 왜냐면 강동현 자체가 황경호를 보고 이것저것 하고 싶은 게 많았던 것뿐이라 그가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선 그냥 두루뭉술하게 뭐, 싫겠지, 이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근데 지금까지 있었던 일이나, 아니 거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도 없이 그냥 이번 일만 딱 봐도, 그에겐 강동현은 그저 그가 어떻게 하든 상관없이 억지로 하려고 드는 색마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가끔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길래 이러나 싶을 때가 몇 번 있긴 했지만… 정말 확실하게 깨달았다. 그리고 아마 그의 생각이 틀리지 않을 것이다.

객관적으로나 다른 거로나 전부 자신이 잘못한 게 맞는데도 얼굴을 보니까 화가 나고 답답하다. 마음을 가라앉히자. 그렇게 생각하고 그냥 말없이 그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강동현은 팔걸이에 팔꿈치를 올리고 턱을 괸 채 황경호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이 간호사가 그렇게 야외활동을 할 것 같은 스타일도 아니고… 하얗고 깨끗한 피부는 이제 강동현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아 반창고 같은 것도 없어졌다. 한 달 동안 강동현이 발정이 나서 시도 때도 없이 그를 괴롭혔을 땐 정말 엉망이었다. 생각보다 창피함을 많이 타던데. 그런 얼굴로 아까처럼 웃으며 접객을 했을 테니….

‘왜 그렇게 나한테 말을 안 할까. 그래도 말을 했더라면 이렇게까지는… 적어도 이쪽에서 물어보기라도 할 걸…. 아니… 조금만 제대로 된 곳에서라도….’

정말 거지 같은 곳만 골라서 그를 덮쳤다. 게다가 상대가 잘 느낀다는 이유로 강동현이 혼자서 일방적으로 한 것이지 사실 그때마다 어떤 기분으로 당했을지….

‘아, 씨X. 이건 생각만 해도 진짜 X같다.’

강동현은 깊게 한숨을 쉬었다. 그때 공항에서 끌고 가는 게 아니었는데. 차라리 키스만 좀 할 수 있었어도 그 전이 더 나았다. 적어도 이렇게까진 되지 않았을 테니까.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 거였어?”

“네?”

강동현이 중얼거리자 황경호가 알아듣지 못하고 강동현을 보았다. 저 ‘네? 네?’ 하는 짓거리도 짜증 난다. 강동현을 고개를 돌렸다.

“아무것도 아니야.”

*

강동현은 정말 얼굴만 보러 온다는 게 맞는지 대화도 안부 정도만 묻는 수준으로 하고 마사지하는 내내 황경호의 얼굴만 보고 있었다. 이럴 거였으면 그가 얼굴만 보러 올 거라고 했을 때 그냥 그렇게 하라고 할 걸 그랬다. 괜히 한 달이나 몸을 축냈다. 그날 이후 처음 올 때까지는 약간 시간이 걸렸는데 그 이후로는 일주일에 세 번이나 온다.

“저 인간 이제 진짜 고칠 생각인가… 근데 그거 많이 받는다고 진짜 효과 있는 거야?”

시간 맞춰서 들어오는 강동현을 보며 정기연이 속삭였다.

“글쎄.”

황경호는 태블릿PC를 들고 내부 카운터 밖으로 나갔다.

“오셨어요, 도은혁 환자님.”

평소대로 웃고 태블릿PC에다 체크를 했다. 그리고 다시 보니 그가 꽃을 들고 있었다. 엄청 큰 꽃다발이었다. 황경호는 거기에 눈이 팔렸다.

“금방 갑자기 생긴 건데… 여기 하세요.”

그리고는 안에서 카드 같은 것만 빼고 강동현은 그걸 내부 카운터에 넘겨주었다. 정기연이 받았다.

“감사합니다. 와, 이런 거 비쌀 텐데….”

이 남자는 이런 꽃 같은 건 일상으로 받는 모양이다. 황경호는 약간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건 몰라도 꽃은 부럽다. 꽃은 보면 기분이 좋아지니까… 치료실에 들어가면서 강동현이 속삭였다.

“꽃 사줄까?”

“네? 아뇨….”

“좋아하잖아. 사줄게.”

“…….”

황경호는 그냥 말없이 치료실로 들어갔다. 강동현은 옷을 갈아입고 왔다. 그리곤 앉아서 황경호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차갑습니다.”

강동현에게 왜 그렇게 보는지 한 번 물어볼까 싶었는데 관두기로 했다. 괜히 긁어 부스럼이다.

한 달 동안 한 강동현과의 섹스는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솔직히 그 정도까지 하려고 들 줄은 생각도 못 했다. 아니, 모텔에서 밥도 안 먹고 그렇게나 많이 해댈 때부터 예상을 했어야 했지만, 그때는 그도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것까진 감안을 못했다. 사실 감안을 했다 하더라도 어쩔 것인가. 그 이후로 강동현이 당연하다는 듯이 섹스를 요구할 거라는 것은 거의 기정사실이었다.

게다가 예전엔 아무리 그가 만져도 꿈쩍도 하지 않던 몸이었는데, 이제는 강동현의 이 무식한 것 때문에 몸에서 나오는 체액이란 체액은 거의 다 흘리면서 느끼게 된 것도 충격적이었다. 처음 당했던 것은 아프고 무섭고… 하여튼 생각하기도 싫었고 생각도 안 했는데 그 한 달 동안 장소도 안 가리고 해댔던 건 지금도 불현듯 생각이 날 때가 있었다.

하지만 몸은 정말 힘들었다. 한 번이라도 하고 나면 온몸이 긴장했던 탓에 담이 걸리고 근육통이 심했다. 게다가 점점 갈수록 강동현도 더 배려가 없어졌고 아플까 봐 긴장하고 뻣뻣하게 있으면 그냥 힘들었다. 그걸 알아서 몸에 힘을 빼려고 해도 불가능했다. 무서운 건 아무리 마음을 다스려도 잘 극복이 되지 않았다. 그가 마음먹고, 아니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해버리면 바로 병원 신세를 면치 못할 것을 황경호는 잘 알았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전혀 들지 않아서….

가장 힘든 건 느끼고 사정하는 것 그 자체였다. 타이밍이고 배려고 뭐고… 그래서 많이 느꼈어도 기분이 좋았다고 말하기도 무리가 있는 게, 글쎄… 원래 섹스라는 게 그런 거라고 하면 어쩔 수 없지만, 상당히 일방적이고… 폭력적인 느낌이 들 정도였다. 이쪽이 어떻게 느끼든, 뭐라고 하든 상관없이 느낀다고 무조건 쑤셔대는 건….

‘아, 뭐. 원래 섹스가 그럴 리는 없지. 그냥 나한테 해서 그런 거겠지.’

강동현의 자위를 보거나 거기에 이끌려 했을 때만큼 부끄럽거나 그렇진 않았다. 그때는 진짜 병원에서도 시도 때도 없이 얼굴이 빨개지고 혼자서 벽에다 얼굴을 박고 묵념을 할 정도로 부끄러웠는데 말이다.

물론 하고 난 직후나 이럴 땐 좀… 느닷없이 부끄럽거나 창피할 때도 있는데 뭐… 그건 시간만 몇 분 지나면 괜찮아졌다. 이번 일은 그냥 전체적으로 덤덤했다. 모텔에서의 일 빼고는 이덕재 때를 생각해서 그런가 좀 남 일같이 기억하는 면도 없지 않다.

‘그나저나 이제 발기부전 이제 나은 거 아냐? 잘 되잖아.’

그렇게 의심스럽게 강동현의 거시기를 보고 있는데 강동현이 문득 말했다.

“너 또 살 빠진 거 같다.”

황경호는 여기저기서 살을 찌우라는 조언으로 살을 좀 찌웠다가 다시 빠졌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아, 네… 5킬로 정도.”

황경호는 아무 생각 없이 그렇게 대답했다.

“왜 그렇게 많이 빠졌는데?”

“모르겠어요.”

“…….”

강동현은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말았다. 엄청 인상을 썼다가 그냥 입을 다물었다. 다 끝나고 옷을 챙겨 입으면서 강동현이 문득 물었다.

“뭐… 가지고 싶은 거나 그런 건 없어?”

“글쎄요….”

예전 같으면 질문 자체에서 펄쩍 뛰었을 것이다. 그런 걸 왜 물어보고, 왜 나한테 그런 걸 사주냐고 하면서 말이다. 황경호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말했다.

“도은혁 환자님 집 같은 집이나 하나 있었으면 좋겠네요.”

그러자 강동현이 바로 대답했다.

“너 해.”

“네?”

“너 하라고.”

“아, 농담이에요. 갑자기 무슨 소리 하시는 거예요.”

“난 농담 아니야. 마음에 들면 줄게. 너 해.”

그제야 황경호는 약간 기분이 상했다.

“그런 거 댁한테서 절대 안 받아요.”

“너한테 무슨 짓 하려고 주는 거 아니야. 그냥 너한테 미안한 것도 있고… 차라리 이런 거 원한다면 얼마든지 해줄게.”

“위자료라도 되는 거예요?”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

그 집은 매매가로 15억이 넘었다. 예전에 혹시나 하고 찾아봤다. 황경호는 그가 진짜 진심인가 싶었는데 그의 눈빛이 진지했다. 황경호도 정색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장난하지 마세요. 이제 화대 같은 건 안 받아요.”

“이게 왜 화대야. 차라리 위자료나 합의금이지.”

“제가 말실수했어요. 가지고 싶은 거 없어요. 그러니까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야.”

강동현이 그냥 나가려고 하는 황경호의 손을 잡았다. 머릿속으로 폭력적인 쾌락의 순간들이 불꽃처럼 확하고 떠올랐다. 황경호는 화들짝 놀라 곧바로 그의 손을 뿌리쳤다. 그리고 바로 눈이 마주쳤다. 아… 황경호는 뭔가 실수한 것 같은 기분에 그냥 얼굴을 돌렸다.

“…수요일 날 오실 땐 이강유 선생님이랑 상담하실 예정이시니까 알아두시구요. 안녕히 가세요. 수요일 날 뵙겠습니다.”

황경호는 그렇게 말하고 얼른 치료실을 나갔다.

*

“파트너분과의 관계는 어떠십니까?”

의사의 은빛 안경테가 빛났다. 강동현은 언제나 이 의사를 대하는 것이 껄끄러웠다. 그는 좀 인간적인 면모가 있다는 것까지 합쳐서 너무 완벽한 유형의 사람이었다. 학벌, 집안, 외모, 성격 등등… 이런 스타일의 사람들은 원래 거의 없어서 딱히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강동현은 얼마 안 되는 이런 유형의 사람들이 항상 껄끄러웠다.

“파트너…랑은 문제없이 잘합니다. 불감증이나 발기부전도 괜찮은데… 지루가 좀… 억지로 빨리해도 30분 정도는 걸리는 것 같습니다. 1시간 넘게 할 때도 있었고.”

강동현이 말했다. 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많이 좋아지셨네요. 다행입니다. 그 정도면 이제 치료를 그만두셔도 되겠는데요?”

“근데 자위를 할 때나 그럴 땐 여전히 안 되거든요.”

“그렇습니까? 이상하네요… 일단 검사를 받아봅시다.”

의사랑은 한 달에 한 번 정도로 대면 상담을 하는데, 강동현도 거의 황경호를 노리고 병원을 오는 것이지 이제 치료를 받으러 오는 것이 아니라서 데면데면하게 했다. 그런데 확실히 황경호랑 할 때는 지루가 좀 문제가 되긴 하지만, 발기부전이나 불감증은커녕 너무 해서 문제니까 말이다. 자리를 옮기니 간호사가 진동극 등의 기계 등을 가지고 치료실에 기다리고 있었다.

간호사가 장갑을 낀 손으로 강동현의 남성기에 진동극을 달아주었다. 마사지는 아랫배 쪽에 하는 거라 직접 손이 닿을 일이 없다. 강동현은 약간 움찔하며 미간을 좁혔다. 간호사는 그걸 못 본 척했다.

평소에는 이걸 할 때 간호사를 보며 온갖 야한 생각을 다 해서 억지로라도 조금은 반응하게 했는데, 오늘은 그냥 뚱한 얼굴로 진동극을 달아놓은 자기 성기를 보고 있었더니….

“전혀 안 서네요….”

돌팔이 의사가 약간 놀란 얼굴을 했다.

“네.”

“파트너와는 잘 되신다구요?”

이걸 여기서 물어볼 줄은 몰랐다. 간호사를 살짝 봤다. 그리고 강동현은 약간 인상을 쓰고 대답했다.

“네.”

“약 안 먹으셔도요?”

“네. 약도 안 먹고 사정도 제대로 됐습니다.”

“그거 참….”

의사는 좀 복잡한 표정이었다.

“지금 파트너랑 되시는 것만으로 괜찮으시겠어요?”

“괜찮긴 한데… 자위 정도는 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다른 사람한테 되는 거보다 자위가 제대로 되는 게 우선인 것 같습니다.”

일단 혼자서라도 뺄 수 있어야지 안 괴롭힐 거 아닌가. 강동현이 뚱한 목소리로 말하자 의사가 이해가 되지 않는 얼굴로 다시 물었다.

“거참… 그럼 자위가 정말 하나도 안 되십니까?”

“그건 아니고… 그….”

강동현은 살짝 주저하다가 그냥 말했다. 어차피 이 병원에 그가 챙겨야 할 이미지 같은 건 없었다.

“그 파트너 냄새를 맡거나 속옷 같은 게 있으면 되긴 하는데… 별로 정상적인 건 아니겠죠?”

“네….”

의사는 약간 묘한 얼굴을 하고는 차트에 기록을 하였다.

“처음에는 그렇게 해도 괜찮게 잘 됐는데 나중에 되니까 잘 안 되더라구요. 똑같은 거 가지고 해서 그런지…. 냄새를 맡으면서 해도 계속 부족한 느낌으로 끝내고.”

의사는 강동현이 말할 때마다 뭔가를 계속 적으면서 강동현의 눈을 보며 의중을 살폈다. 의사는 잠깐 자신이 메모해 놓은 것을 쭉 보았다.

“일단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니까 스트레스 수치는 확실히 예전보다 내려간 것 같으신데… 술이랑 담배는 좀 줄이셨습니까.”

“아뇨….”

“일단 그 파트너분이랑 하실 때는 괜찮으신 것 같으니 무리가 되지 않는 선에서 마스터베이션 부분도 도움을 받아보시면 좋을 것 같네요. 같이 하다가 점점 주도하는 것을 도은혁 환자님 쪽으로 가져오면 됩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특정 물건이나 아니면 음악 등을 이용해서 혼자서 하실 때도 그때의 기분이 나도록 하시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네요.”

한 달에 한 번씩은 체크를 하다 보니 당연히 강동현이 여자친구랑 애저녁에 헤어진 걸 알고 있었고 그사이는 계속 연인은 아닌 파트너가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이제 좀 스케줄이 넉넉해진다고 들었습니다. 일단 술, 담배는 끊겠다는 생각으로 줄이시고. 잠자는 시각, 일어나는 시각, 밥 먹는 시각 등을 정상화하시면서 파트너분과 한 번 노력해보시면 생각보다 빨리 자위 부분도 해결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예….”

강동현은 어중간하게 대답을 했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눈치를 그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강동현은 티 나지 않게 한숨을 쉬었다. 저 파트너 어쩌고저쩌고는 이제 당연히 안 되는 거고 일단 술담배부터….

사실 병원에서 술이랑 담배를 그만하라는 소리는 처음부터 했었다. 하지만 줄이려는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다. 담배도 약한 것을 잠깐 피우다가 다시 돌아갔다. 나중에 되어서는 그 ‘파트너’에게만 집중해서 어떻게든 하려고 했다. 사실 병을 고치기 위해 강동현이 한 노력이라는 것은 그것밖에 없다.

강동현은 다시 옷을 입고 선글라스와 모자를 쓰고 밖으로 나왔다. 한숨이 푹푹 나왔다. 담배를 한 대 피우고 싶다고 생각했다가 또 한숨을 쉬었다. 서너 개비밖에 피우지 않은 말보로 레드를 병원 쓰레기통에 처박았다.

‘그래서… 여자가 있어야 한다는 건가?’

여자라는 게 갑자기 어디서 솟아 나와서 생기는 것도 아니고. 아무 여자와 하기는 싫다. 처음에 발기부전이라는 걸 처음 인정했을 때는 그런 쪽의 도움도 받아볼까 했지만 들어가자마자 나왔다. 그 분위기 하며, 정말 별로였다. 그렇다고 지금 섹스 같은 걸 조금이라도 같이 하고 싶은 여자가 있냐고 하면 그것도 없다.

강동현은 지하로 내려가 차를 끌고 지상으로 올라와 잠깐 갓길에 주차를 해놓았다. 그리고 연락처와 SNS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에게 관심을 보이던 여자들을 찾아보았다. 다양한 얼굴들, 혹은 비슷한 얼굴들….

‘근데 이걸 찾으면 뭐할 건데… 어차피 안 설 건데.’

어차피 그 간호사밖에 안 될 걸 알고 있었다.

‘아, 그냥 진짜 머리나 밀고 절이나 들어갈까. 답이 없다….’

강동현은 머리를 등받이에 기대었다.

‘왜 이렇게 됐지. 이렇게만 안 됐으면 좋겠다고 참은 거였는데. 내가 어떻게 했어야 맞았던 걸까.’

그가 말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항상 생각했다. 자신에게 원하는 게 있다면 할 수 있는 한 뭐든 해줄 생각이었다. 근데 그는 항상 선을 긋고 말을 하기 싫어했다. 물론 그가 강동현을 싫어하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뿐만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랬더라면 강동현을 그런 식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강동현은 자신을 향한 시선을 잘 아는 사람이었다. 자위를 하는 걸 보여줄 때도 그랬지만, 가끔씩 그가 자신을 보는 눈빛들을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는가. 싫어하는 사람에게 보내는 눈빛이 아니었다. 얼굴과 몸을 보고, 관찰하고. 그래, 차라리 그것은 강동현을 보고 욕정하는 사람의 눈빛과 비슷했다. 몇 번은 강동현이 너무 원하니까 그런 식으로 착각하나 싶었지만, 확실히 그건 아니었다. 점점 갈수록 그 부분은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쪽이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 강동현을 만지고 싶냐고 물으니까 그렇게 빨개져선 말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자신의 얼굴과 몸이 마음에 든 건가. 그렇게 생각했다. 야하게 만지지는 않았지만 분명히 저쪽도 이쪽에게 뭔가를 원하고 있다는 게 아닌가. 그것도 이런 식으로.

게다가 이제는 그도 강동현의 손에 정말, 진짜 정말로 잘 느꼈다. 예전에는 어떻게 해도 꿈쩍을 안 했는데, 이제는 정말 잘 느꼈단 말이다. 그래서 드디어 그도 강동현과 하는 걸 좋아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너무 오랜만에 제대로 할 수 있게 되어서, 지금 생각해보면 진짜 미친놈처럼 달려들기는 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 그도 원하고 있을 거라고 철썩 같이 믿고 있었다.

‘그러니까 아무 말을 안 한 게 아니라… 내가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이거지….’

생각해보면 할 때도 싫다고 하거나 애원할 때가 태반이었지만, 기본적으로 그가 그런 식으로 강동현한테 애원하는 걸….

‘좋아한단 말이다. 젠장… 엄청 느끼고 야해서, 귀엽다고….’

그래서 그게 그냥 강동현과 섹스하면서 느끼는 쾌락의 표현 같은 거라고 멋대로 여기고 있었다. 사실 황경호가 그렇게나 억지를 부리는 사람들한테 휩쓸리기 쉬운 인간이라는 걸 아는 게 강동현밖에 없는데도, 어째서 한 번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을까. 그 어떤 파트너에게 그런 식으로 했어도 싫어할 게 당연한데.

어쩐지 좌절감이 든다… 예전처럼 그도 그 간호사에게 화가 나서 연을 끊겠다고 수차례 결심을 했을 때나, 이전에 그가 몇 번이고 강동현이 싫다고 거부하고 그런데도 억지를 써서 계속 관계를 이어나갈 때보다도… 아니, 그럴 때는 좌절감 따위 하나도 들지 않았다. 그냥 지금 이 순간이 몹시 좌절스러웠다.

‘또 나 때문에 죽고 싶었을까,’

*

그래서 결국 답은 일밖에 없었다.

“쉰다며?”

“아… 근데 또 쉬면 뭐하나 싶어서.”

4월로 들어서면서 일이 확 없어지자 강동현은 시간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잘 먹고 잘 자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친구들도 만나고 가족들도 만났지만 그것도 잠깐이다. 4월의 일주일이 지나자 강동현은 그냥 다시 일에 매몰되고 싶어졌다.

“특별출연은 같은 기간에 개봉하는 작품은 다 못 들어갈 거고… 이거 두 개 정도는 나가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데. 그리고 드라마는 5개 정도 뽑아봤는데 형이랑 사장님 의견 좀 듣고 싶고. 영화는 이거 두 개 일단. 근데 난 이거 하고 싶어.”

“그래….”

“일단 그동안엔 운동 좀 하고 몸 좀 만들어야겠다. 한동안 못 갔는데. 전화 좀 해줘.”

“그래. 어떻게 하게?”

“그냥 주중엔 매일 가는 거면 좋을 것 같은데. 할 게 없으니까 미칠 것 같아.”

“너도 참 일중독이다….”

매니저가 중얼거렸지만 강동현은 제대로 듣지 못했다. 매니저는 대본을 챙겨서 소속사 사장에게 문자를 날리다가 무심하게 물었다.

“너 요새 만나는 사람은 없어? 너 첫사랑 걔랑 헤어지고 벌써, 얼마야, 1년 가까이 되지 않았어?”

“아… 어… 뭐….”

강동현은 대본을 하나 다시 보면서 대충 대답했다. 매니저는 그런 그를 힐끗 보았다.

“아니… 너 그렇게 누구 안 만나주면 우리야 좋긴 한데….”

매니저의 어물쩡한 말에 강동현이 곧바로 대꾸했다.

“뭔가 털털하고 솔직하고 같이 있으면 재밌고… 그런 여자 있으면 형이 소개시켜주든가. 얼굴은 예쁘면 좋고, 좀 친구같이 지낼 수 있는.”

“그거 니 전 여친 아냐? 차라리 다시 만나.”

“아니, 이제 영지야….”

강동현은 대본 중에 몇 줄을 중얼거렸다. 그러다가 그대로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내가 좀 멋대로 해도 받아주는 스타일도 좋아… 근데 성격도 있고… 가끔 뭔 생각하는지 모르겠고… 평소랑 할 때랑 완전 다르고… 아, 그래도 조금은 더 솔직했으면 좋겠네.”

“뭐야. 너 중간에 누구 만났었어?”

“응? 뭐?”

강동현은 대본에서 눈을 뗐다. 매니저가 헛웃음을 지었다.

“하긴 내가 누굴 걱정하냐. 너야 여자들이 줄을 서겠지.”

“…….”

실언했다. 강동현은 약간 인상을 찌푸리며 대본을 다시 보았지만, 집중이 안 되기 시작했다. 강동현이 에둘러서 하는 얘기를 병원 의사는 ‘파트너’라고 부르고 매니저는 ‘만나는 여자’로 표현했다.

‘뭐… 걔는 말만 들어도 싫어하겠지…. 그나저나 진짜 병원 가는 것도 이제 그만둬야 하는데… 괴롭히는 것밖에 더 되겠어….’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또 갔다.

“서, 선생님!”

“그래서! 우리 손자가아아!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잠깐만, 어르신…! 진정 좀 하시고…!”

“우악…!”

“내가 괜히 비싼 돈 들이고 여기까지 온 줄 알아!!”

병원 안이 난장판이었다. 가끔 이렇게 난장판이 되는 병원이었지만, 오늘은 어쩐지 난장을 만드는 사람들의 머릿수가 많다. 의사는 웬 할머니한테 머리채가 잡혀 있었고 금방까지 황경호가 그걸 말리다가 다른 할아버지한테 머리채를 잡혔다.

“어디 내 마누라한테!!”

“우앗! 할아버지…!”

“아니, 어르신. 진정하시구요. 아기 아버지가 너무 늦게 오셔서 어쩔 수가… 나중에 성인이 되시고 재건 수술을 하는 수밖에….”

“그래서…!! 내 아들 잘못이라는 거야!!”

아들로 보이는 사람도 테이블이고 카우치고 엎고 난리라 남자 간호사들이 죄다 가서 말리고 있었다. 여자 간호사들도 말리다가 할머니한테 여럿 밀려 나동그라진 게 보였다. 환자들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다들 구석에 서있었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머리채를 잡고 있는 할아버지의 손목을 잡았다.

“진정하시죠.”

갑자기 묵직한 남자의 목소리를 듣자 할아버지가 고개를 홱 돌려보았다.

“넌 뭔데,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게!”

할아버지가 강동현의 머리도 노리자 얼른 그쪽 팔도 잡았다. 이런 할아버지가 강동현의 힘을 어떻게 당하겠는가.

“어어…! 이거 봐라! 이게 어른을 치네! 어?! 이거 봐!”

“안 쳤습니다. 적당히 하세요. 나이도 드실 만큼 드실 분들이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겁니까?”

“뭐?! 이 새끼가 지금 어디라고!”

할아버지가 정강이를 차려고 하자 강동현이 경고했다.

“차면 바로 신고합니다.”

이 병원 사람들이야 사람들이 하도 호구 같아서 이런 것도 당해준다지만, 강동현은 아니었다. 물론 이 병원에 있었던 건 들키고 싶지 않았으니 설사 차이더라도 진짜 신고는 안 했겠지만 어쨌든 말이야 할 수 있다. 할아버지는 강동현의 침착한 목소리에 몹시 당황하더니 고개를 돌려서 할머니를 보았다.

“여, 여보….”

황경호는 잠깐 강동현을 보았다가 얼른 할머니를 말리러 갔다. 결국 힘으로 떼어 내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더니 의사랑 같이 머리채를 잡혔다.

“악! 할머니!”

바보냐… 강동현은 혀를 찼다.

“할머니. 할머니. 아기 고추에 머리카락 감겨서 그렇게 된 건 어떤 아기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에요. 좀만 빨리 왔어도 괜찮았을 텐데 늦게 오셔서… 그 상태로 오시면 화타가 일어나도 못 고쳐요. 네? 할머니. 진정하시구요. 일단 앞으로 어떻게 하실지 얘기를 차분히 하셔야지 아기한테도 좋습니다.”

오희연 간호사가 할머니를 열심히 달랬다. 대충 들어보니 아기 성기에 머리카락이 감겨서 조이는 바람에 애가 엄청 울었는데 아기 아빠가 그걸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계속 밥을 먹이거나 딴짓을 하며 방치하고 늦게 병원에 왔다는 것이다. 이미 색깔이 거의 새카매져서 오는 바람에 절단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걸 인정할 수 없어 지금 이 난동을 피우고 있다고.

“그럼 일단 머리카락은 오자마자 풀었으니까 저희 병원 말고 다른 병원에라도….”

“다른 병원에서 여기로 오라고 했다고!”

그럼 애초에 거기서 바로 머리카락을 풀어주지 않은 게 문제가 아닌가.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가. 강동현은 황당해서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억지를 왜 받아주는 거야.’

한참을 있고서야 성이 좀 풀렸는지 아기 부모와 조부모라는 사람들이 다시 상담실로 들어갔다. 간호사들은 정리를 했다. 이러고도 안 내쫓는다는 말인가?

‘의사도 진짜 할 게 못 되는 구나….’

황경호가 어째서 그렇게 진상들에게 체념적인지 알 것 같았다. 이놈의 병원이 문제였다. 그렇게 그 아기 환자가 어떻게 처리가 되자 그제야 병원이 다시금 조용해졌다. 강동현 외의 환자들은 양해를 구하고 돌려보냈다. 강동현은 기다리겠다고 했다.

“후… 올해는 왜 없나 싶더니.”

오희연이 아래층에서 올라오며 그렇게 말하자 정기연과 조한나가 엄청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그 아기 아빠라는 사람은 제정신이래요? 그러면 그 전 병원에서 일단 문제 부위는 조치를 하고 왔어야지. 그걸 무식하게 손대지 말라고 하고 여기까지 오면 어떡해요. 진짜 아빠 잘못 만난 죄로 아기만….”

“그러게. 와. 진짜 병원만 아니었어도 저 진짜 다 가만 안 뒀어요.”

정기연이 치가 떨린다는 목소리도 말했다.

“내 말이. 내 인생 좌우명이 누가 나 때릴 것 같으면 먼저 선방을 날리자야. 맞고 때려봤자 쌍방폭행이라고 사람 더 억울하게 만든다고. 차라리 먼저 패고 쌍방폭행이라고 듣는 게 낫지.”

“아, 그러니까요.”

여자 간호사들이 그렇게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입원실 쪽에서 올라오고 머리가 죄 뜯긴 의사와 황경호는 한숨을 푹푹 쉬면서 내부 카운터 앞에 서있었다. 정기연이 웃으면서 그쪽으로 갔다.

“진짜 우리 병원에서 제일 전투력 약한 사람들인데. 맨날 사람들이 선생님이랑 경호 오빠만 죽어라 팬다니까. 다 보이나 봐.”

의사가 자신의 머리를 좀 정리하더니 주섬주섬 주변을 정리하고 있는 황경호의 머리를 만졌다.

“넌 거기서 왜 끼어들어. 그 할머니 딱 봐도 장난 아니시던데.”

의사가 웃으면서 그의 머리를 정리해주었다. 깜짝 놀라는 듯싶더니 황경호가 웃었다.

“딱 봐도 장난 아니시게 보이길래 그래도 제가 쌤보다는 나이가 어리니까 머리카락이 잘 견디지 않을까 싶어서….”

“아, 그래? 나 진짜 머리 다 빠지면 어떡하냐. 봐봐.”

황경호가 까치발을 들어 이강유의 머리숱을 확인했다.

“아직 괜찮을 거 같은데요.”

“너도 조심해라. 어리다고 방심하다가 훅 빠진다.”

“아, 그런 거예요? 제 머리숱은 멀쩡해요?”

“너도 아직은 괜찮다.”

그렇게 무슨 원숭이들 마냥 서로의 털을 확인해주더니 결국 눈이 마주치자 낄낄 웃었다.

“이젠 하도 이런 일이 많이 일어나서 웃음만 나와요. 진짜 굿 한 번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허허허.”

“그러게. 진짜 해야 하나. 근데 우리 어머니가 가르쳐준 데는 너무 비싸더라고.”

“얼마나 하는데요?”

“2천이란다.”

“헐, 말도 안 돼.”

저 의사도 스킨십이 너무 잦다. 아니, 김태형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 특히 쟤 주변 남자들은 다 그랬다. 아무리 우리나라 남자들이 외국에 비하자면 서로 스킨십이 잦다고 하지만….

‘기분 좋아한다….’

이강유가 머리랑 뺨을 장난스럽게 쓰다듬고 꼬집고 그러니 솔직하게 웃으며 좋아하고 있는 황경호를 물끄러미 보았다. 강동현은 이제 제자리로 돌아온 카우치에 앉아 다리를 꼬고 삐딱하게 턱을 괴고 앉아 있었다.

“아, 많이 기다리셨죠, 도은혁 환자님?”

분주하게 병원 내를 정리하고 다니던 간호사들 중 하나가 그를 발견하고 그렇게 말을 걸었다. 그러자 의사랑 황경호도 이쪽을 돌아보았다. 황경호가 아차, 하면서 이쪽으로 왔다.

“아, 정신이 없어서… 들어가시겠어요?”

강동현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치료실로 들어갔다.

“이런 일 자주 일어나?”

“아… 가끔 일어나죠. 몇 번 보셨잖아요.”

“왜 그런 거야?”

“글쎄요… 원래 응급실 같은 데서도 난동 피우는 환자나 환자 가족분들 엄청 많거든요… 저희가 좀 과가, 감정적으로 좀 그럴 수 있는 진료과목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잘 욱하는 것 같기도 하고….”

정작 피해 당사자인 황경호는 설명이 어물쩡하다. 강동현이 어이가 없어 말했다.

“그냥 앞으로는 신고해. 뭘 그걸 그렇게 맞아주고 있어.”

“아… 저희도 가끔 그런 생각 하긴 했는데… 또 제일 불쌍한 건 환자들이라서.”

“성인 나셨다.”

어이가 없으니 이쪽한테 빈정거리게 되었다. 강동현은 한숨을 쉬었다.

‘저러니까 맨날 당하고 사는 거다. 나나 그 돼지 새끼한테도.’

그렇게 생각했다가 순간 강동현은 스스로도 자신을 이덕재와 같은 레벨로 취급했다는 것을 알고 기분이 팍 상했다. 하지만 별말 없이 옷을 갈아입고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또 턱을 괴고 가만히 그 간호사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괜찮아?”

“네? 뭐가요?”

“기분이라던가. 아까 그런 일도 있었는데.”

“아, 괜찮아요. 이제 익숙해서.”

“그런데 익숙해지지 마.”

강동현은 한숨을 쉬며 그렇게 말했다. 그는 저도 모르게 황경호의 뺨을 만지려고 손을 뻗었다.

“넌 그게 문제….”

라고. 그렇게 말하려고 하는데 황경호가 움찔하면서 손을 피했다. 강동현도 아차, 하고 손을 끌어당겨서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해하다가 두 손을 깍지 껴서 단속했다.

“…….”

“…….”

그가 강동현의 집이 마음에 든다고 했을 때, 덥석 주겠다고 했다. 진짜로 가지고 싶다고 하면 줄 생각이었다. 차라리 그렇게라도 하면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하지만 싫다고 했고… 그때 손을 붙잡았으니까 엄청 깜짝 놀라며 뿌리쳤다. 처음으로 섹스를 하고 그다음에 만나러 갔을 때도 그가 닿는 것도 무서워하며 피했던 게 기억났다. 그리고 지금도 떠올리고 있다.

그런데도 그가 약간 평상심을 잃고 반응하는 걸 보니 뭔가 또 확하고 왔다.

‘…키스하고 싶다.’

강동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때처럼 키스하고 싶어.’

처음으로 키스를 같이했던 날처럼 말이다. 그때 이후론 한 번도 그런 식으로 입 맞춰주지 않았다. 하나하나 세세하게 기억해낼 수 있었다. 안겨 오는 느낌이 정말 환상적이었다. 입을 맞추는 게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얼굴을 감싸는 부드러운 손. 피부와 머리카락 끝까지 짜릿했다.

그때 강동현이 무릎을 넣어 다리를 확 벌리게 하고 서로의 하반신을 마주 대어 비볐을 때, 그는 야한 얼굴로 지그시 눈을 감고 강동현의 상의를 잡아당겼다. 그때는 분명 그도 강동현이 자신에게 입을 맞춰 주길 원했다. 그의 모든 게 전부 강동현을 위해 있는 것 같았다. 부드러운 손도, 입술도, 맞춘 것처럼 착 달라 붙어오는 감촉도….

아무리 잘못되었다는 걸 알아도 생각하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그건 황경호와 술에 취해 섹스하고 나서도 그랬다. 계속 생각났다. 계속, 계속 생각났다.

‘키스하고 싶어…. 진짜 키스만….’

그때는 정말… 정말 그때 그렇게 해버리지 않았더라면 뭔가 달랐을까. 강동현이 계속 그렇게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황경호가 인상을 좀 쓰더니 갑자기 고개를 들어 눈을 마주쳤다. 놀라서 가슴이 두근 했다.

“그렇게 쳐다보지 마세요.”

“…….”

뭘? 이라고 평소처럼 되묻지 못했다. 전에는 왜 저런 식으로 얘기하는지 몰랐고, 딱히 관심도 안 두었는데 순간 머릿속의 생각이 들킨 기분이었다. 강동현은 살짝 얼굴이 상기되었다가 그냥 고개를 돌렸다.

*

그리고 올 게 왔다.

“음…. 바로 시작하시죠.”

“네….”

강동현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질질 발을 끌었다. 이미 몇 번이고 끌려 가본 적이 있는 도살장이었다. 전립선염이 결국 재발했다.

‘아, 젠장… 딴 건 다 참아도 이것 때문에 그 지랄을 한 거였는데 진짜 이건 죽어도 안 낫는구나. 제기랄….’

머리 밀고 절 들어가고 싶어도 이것 때문에 못할 것 같다. 재발 시기는 제각각이었지만 그래도 한 번씩 뺄 수 있을 때 이후로 적어도 몇 개월은 괜찮았는데 한동안 정말 미친 듯이 빼서 그럴까. 그 이후 2개월 만에 재발이다. 강동현은 딱딱한 병원 베개에 얼굴을 박고 세상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자위라도 되면 어떻게든 할 텐데… 진짜 자위도 안 되면 나보고 어쩌라는 거냐. 죽으라는 거냐. 도대체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자꾸 생기는 거냐고. 내가 인생을 그렇게 잘못 살았냐고.’

이번에는 딱 허리가 저릿하고 볼일 이후의 느낌이 찝찝하다는 감각이 들 때 바로 병원으로 왔다. 그러니 아니나 다를까. 빨리 와서 차라리 다행이라고 했다. 치료가 끝나고 의사랑 잠깐 상담을 했다.

“파트너분이랑은 지속적으로 하신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그래도 전립선액을 빼내실 수 있다면 괜찮으셨을 텐데요.”

의사는 이상하다는 듯이 말했다. 원래 전립선염은 제대로 전립선액을 빼내기만 하면 다시 재발하지 않는 병이었다. 체질에 따라서 아예 하나도 안 빼도 멀쩡한 사람도 있긴 하지만 걸릴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해도 빼기만 하면 재발이 되는 병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게… 그… 헤어졌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그 파트너랑은 지금 좀 사이가 안 좋아서요.”

“그럼 그 상대분 빼고는 정말 아무도 안되고 자위도 안된다구요?”

“네….”

강동현은 어렵사리 대답했다. 의사는 태블릿PC에 뜬 차트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이거는 발기부전이나 불감증이 아니라 그냥 그 파트너를 사랑하니까 그 사람밖에 안 되는 거 아닙니까?”

강동현은 말문이 막혔다. 의사가 말을 이었다.

“자위가 안 된다는 건 좀 이상하지만요.”

“…그게 말이 됩니까? 아무리 여자친구가 있고 해도 야동을 보거나 야한 상상만 해도 발기는 됐었는데 지금은 그게 아예 안 되는데요?”

“도은혁 환자님은 호르몬 수치나 기능적인 면에서 문제가 전혀 없는 심인성 발기부전인 상태라, 본인이 흥분을 느끼고 그게 발기로 이어지는 부분에 대해 전적으로 환자님의 취향이나 관점에 따라 달라집니다. 전에도 느꼈지만, 파트너분에게는 약 없이 확실히 발기도 하고 어려움 없이 사정도 한다면 이건 이미 발기부전이나 불감증이라고 하기도 어렵습니다.”

“…….”

“지루 부분은… 건강을 챙기고 스트레스를 줄이십시오. 도은혁 환자님은 정말 그게 선결과제입니다. 관계를 가지실 때도 조급해하지 마시구요. 상대랑 맞춰가면서 하세요. 보통 지루나 조루 같은 경우는 상대방도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

상담이 끝나고 강동현은 터덜터덜 병원을 나와 지하로 내려갔다. 차를 몰고 지상으로 나오니 시간을 맞춘 듯 전화가 왔다.

[동현아, 어디냐. 나 좀 빨리 도착했다.]

“아, 근처에 있습니다. 지금 가고 있는 중입니다.”

저녁 약속 상대에게서 전화가 왔다. 한동안 오버워킹으로 자기 관리고 인간관계고 상당히 칙칙했었다. 4, 5월은 스케줄도 넉넉하겠다, 매일 아침엔 사우나, 헬스, 에스테틱. 점심은 소속사 사장이나 매니저랑 먹고 광고주랑 자리가 있기도 했다. 오후에는 새로운 드라마나 영화 관련 미팅이나 가끔 광고나 화보 촬영, 혹은 병원. 저녁은 약속이 죄다 잡혀 영화 관계자나 동료연예인들, PD들, 작가들과 드라마 감독들, 친구들을 만났다. 보통 그러면 얘기가 길어져 한잔할 때도 있고 한잔하지 않더라도 집에 들어오면 대본이나 책을 읽거나 아니면 영화를 보고는 12시쯤에 자는 생활을 실천하고 있었다.

주말도 오전은 그냥 잠을 자면서 날리거나 운동을 하러 갔다. 오후도 사람들 만나다 보면 그냥 가버렸다. 스케줄에 절절 시달릴 때보다는 컨디션이 훨씬 나아서 별생각이 없었지만 새삼 항상 일에 관련된 생활만 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연예인이라는 게 결국에는 사람 비즈니스다 보니 친구가 같은 업계 사람이고 그런 거긴 하지만….

만나고 싶은 여자도 현재 없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살면 평생 못 만날 거다. 그러니까 매니저고 주변 사람들이고 내가 너면 여자를 후린다, 왜 그렇게 사냐, 이런 말들을 해댄 거겠지. 강동현은 한동안 그런 것조차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이거는 발기부전이나 불감증이 아니라 그냥 그 파트너를 사랑하니까 그 사람밖에 안 되는 거 아닙니까?]

사랑?

그런 단어랑 그 간호사랑 결부시켜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파트너나 만나는 여자라는 말도 거부감이 들긴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그냥 느낌이 오고 서니까 아무 생각 없이 들이댔고 나중에는 하도 싫어하고 싸우게 되니까 이쪽도 좀 생각이라는 걸 하게 되었고… 초창기 한창 싸울 땐 이를 박박 갈 정도로 싫어했다. 그런데도 끌려서 어쩔 수가 없었다.

나중에 가선 점점 싫어하진 않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자신이 억지를 부리고 있다는 건 스스로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예민하고 성가신 성격이라 그랑 안 맞는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강동현은 강영지 같은 여자가 좋았다. 그런 여자를 사랑했다. 솔직하고 말이 잘 통하고 같이 있으면 재미있고 행복하고. 또 미래를 함께 생각하고. 사랑한다는 건 그냥 섹스만 하는 사이가 아니라는 말이다.

그와 같이 있고 싶다고는 생각한다. 키스나 섹스를 하고 싶다. 그 온갖 일이 다 지나고 나서도 그건 변함이 없었다. 보면 키스를 하고 섹스를 하고 괴롭히고 울리고 싶다. 안고 있으면 죽을 정도로 기분이 좋다. 짐승이 되는 기분이었다. 강동현한테 박혀서 울고불고 욕하고 느끼고 절정에 이르는 걸 보면 정말 참을 수가 없었다. 정말 정액이고 뭐고 끊임없이 나왔다. 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의 10분의 1도 못했다. 바빠서 내내 밖에서만 섹스를 했고 시간이 생기니 제대로 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 간호사에 대한 강동현의 입장이란 이 정도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섹스파트너라고 하면 또 그것도 거부감이 확 든다. 그리고 지금까지 해댄 걸 생각해보면 그건 섹스파트너한테도 못 할 짓들이었다.

‘…내가 애매하구나. 내가 애매해….’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약속상대는 10살 정도 많은 선배 배우였다. 울프를 찍으면서 친해졌다. 술까지 한잔하고 집에 들어갔다. 정말 딱 두 잔 정도만 마셨다. 강동현이 건강이 안 좋아졌다는 건 다들 알다 보니 강건하진 않았다. 집에 있는 맥주도 다 어디 틀어박아 놓은 채 손도 안 대고 있었다. 강동현이 습관적으로 한두 잔씩 매일 술을 먹는 편이긴 했으나 중독이거나 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술은 크게 문제가 아니었으나 담배는 정말 끊기 힘들었다. 편의점에 들어가 한 갑 사서 하나 피웠다가 다시 버렸다가 또 사기를 반복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사서 집으로 들어온 참이었다. 테라스로 나가 불을 붙였다. 그리고 휴대폰의 화면을 켰다가 껐다가 하고 있었다. 전화하고 싶다. 만나고 싶다. 섹스도 하고 싶다.

‘집으로 데려 와서 한 번 할 걸… 왜 계속 밖에서만 했을까. 아, 오기 싫어했지. 그래도 그런데서 하지 말걸. 근데 진짜 집에는 데려왔어야 했는데. 한 3박 4일 정도 했으면 걔 말대로 정말 성에 찼을지도 모르지… 아, 그건 아닌가. 거의 매일 찾아가서 했던 주도 있었네….’

그래도 제일 기분 좋았던 섹스를 꼽으라면 당연히 그때 모텔에서 했던 것이다. 침대도 있고 신음소리도 밖에서 할 때만큼 안 참았고. 옷도 전부 벗길 수 있었고… 그러고 보니 진짜 왜 안 데려왔지. 너무 안 하다가 하니까 밖에서 해도 그냥 좋았다….

뒤로 한 번 하고 앞에서 한 번 하고 위에 태워서 한 번 하고… 위에 태워서 하는 건 정말 다 보여서 좋았다. 그리고 그가 스스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들고 말이다.

‘그러게. 진짜 집에 데려와서 그걸 했어야 했는데….’

그의 몸 안에 사정했던 느낌을 떠올리자 진짜 전율이 일었다.

‘걔 진짜 엄청 잘 느끼지… 젠장, 여자들도 그 정도까진 못 느끼는데. 어떻게 생겨 먹은 거야. 진짜 성격이랑 연관이 있는 건가….’

담배를 뻑뻑 피우면서 머릿속으로 주르륵 그의 몸 안에 사정했던 순간들만 떠올렸다. 강동현은 그대로 테라스의 문을 연 채로 집 안으로 들어왔다. 입에는 그대로 담배를 물고 있었다. 커튼의 뒤에 몸을 숨기고 바로 바지 안으로 손을 넣었다.

그리고 눈을 지그시 감고 그가 강동현한테 키스를 했던 것부터 떠올리며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로 담배를 문 채 좀 빨아들이고 내뱉었다.

새빨개진 전신. 퉁퉁 부은 입술이랑 가슴. 부드러운 손가락이 느끼는 걸 참지 못하고 강동현의 팔을 꽉 잡으면 뿌듯함이 전신을 달린다. 얼굴이랑 목덜미, 귀, 어깨, 날개뼈는 전부 강동현이 물어뜯어 잇자국과 빨갛게 된 멍투성이다. 평상시 그 의연한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울어서 빨간 눈에 애원하느라 쉰 목소리에, 울먹이고, 움직일 때마다 표정이 다변한다. 느껴서 비명을 지르는 그의 모습은 정말….

강동현의 성기가 섰다. 미끌하게 선액이 나왔다. 강동현은 마치 상대의 안에 삽입을 한 것처럼 허리를 약간 움직이기 시작했다.

예민하게 반응하는 피부. 손바닥으로 죈 것처럼 꽉 조이는 느낌. 착 달라 붙어오는 점막. 하지만 부드럽고 미끄럽고….

‘하아… 많이 하면 할수록 말랑말랑해지고 느끼고… 젠장… 아, 만나고 싶어. 진짜 하고 싶다. 울리고 싶어.’

빨개진 얼굴을 보고 싶다. 정신을 못 차리고 애원하고, 그 신음을 흘리는 걸 듣고 싶다.

‘세게 박으면 어떤 얼굴을 할까. 좋아할까. 더 느낄까? 해봤어야 했는데. 젠장. 내가 산 팬티 입히고 하고 싶다. 아, 걔 가슴도 만지고 싶어. 씨X….’

“윽… 후… 제길….”

강동현은 자위에 열중하여 한 손으로 기둥 전체를 꽉 잡아 흔들고 있었다. 눈을 감고 집중을 하며 다른 손으로 담배를 잡아 빨아들이고 뱉었다.

[제가 이랬던 게 처음도 아니고. 그냥 제가 걸레 같은 거라고 해요. 이제 이런 얘기 그만 해요.]

쿵. 강동현은 벽에다 자기 뒤통수를 박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정은 하지 못했다. 강동현은 약간 거칠어진 숨을 헐떡거리며 눈을 감고 속으로 미친 듯이 욕을 하며 담배를 필터까지 빨아들였다.

<고쳐줄까? 2부> 2권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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