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8화 (18/47)

*

‘부족해….’

강동현은 무기력함을 느꼈다. 그에게는 잘 일어나지 않는 일이었지만, 어쨌든 요즘은 그랬다. 영화 촬영은 잘 되고 있었다. 어떻게든 첫사랑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남자. 감독의 말대로 그는 연애를 계속하고 있었지만, 연애를 하지 않은 것과 같은 상태였을까. 사랑이라는 게 무엇인지 계속 생각하게 하였다.

영지를 사랑할 때의 그는 항상 고등학생이 되는 기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타임리스>의 주인공의 기분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지와는 결국 헤어졌고 영화 속의 남자주인공은 죽음 때문에 여자친구를 잃은 것이었다. 그도 이런 일을 겪었더라면 이 주인공같이 되었을까.

‘글쎄….’

그렇게 무기력하게 과거만 곱씹고 사는 남자라… 연기를 하는 것과는 별개로 딱히 와 닿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요새 사랑이 와 닿느냐고 하면 그것도 모르겠다. 정말로 갖가지 남성병에 걸리다 보니 사랑에도 불감증이 되어버린 것일까. 그가 떴던 모든 드라마나 영화들이 전부 사랑에 어리숙한 남자 캐릭터였던 건 정말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까.

사랑, 하면 좋지. 하지만 억지로 사랑을 하기 위해 여자를 만나야 되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영지처럼 자연스럽게 좋아하게 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연애를 위해서, 혹은 섹스를 위해서 쉽게 사랑을 가장하고 연인이 되는 것은 전혀 강동현의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는 배우였고, 로맨티스트였다.

영화를 촬영하는 것 이외로 광고 촬영도 여전히 많이 하고 있었다. 국내에서 한 연예인이 커버할 수 있는 광고의 최대량은 강동현이 갱신했다고 봐도 무방했다. 중국은 각 성마다 광고 촬영 수주가 들어왔기 때문에 물량이 엄청났다. 동남아 등에서도 그랬다.

‘앞으로 울프 이상으로 흥행이 터지는 작품을 할 수 있으려나.’

작품성과 흥행성은 다른 거니까 말이다. 작품성이 더한 것은 당연히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흥행이라… 아니지. 이렇게 생각할 것이 아니다. 울프를 기반으로 정말 월드급 작품에도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영어 공부해야지.

차기작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 보통 강동현은 정말 빡빡할 정도로 스케줄을 짰다. 타임리스 촬영이 내년 봄 4월에 마무리될 예정이니 예전 같으면 3월부터는 차기작, 특히 드라마의 촬영을 시작했을 것이다.

사실 중국 작품 하나를 진지하고 고려하고 있었다. 사전제작 방식이니 한국만큼 촬영 일정이 빡시지는 않을 것이고, 중국어 대사는 성우가 대체 가능하니 해볼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연기는 표정이나 몸짓이 다가 아니었다. 배우는 얼굴보다 목소리라고 하는 말이 있는 것처럼. 차라리 언젠가 중국어를 공부를 해서 연기에 도전하는 것이 더 맞을 것 같기도 해서 고민이 많이 되었다.

돈도 명성도 손에 거머쥐었다. 꿈꾸던 일도 열심히 하고 있었다. 앞으로 힘내서 도전할 일들도 수두룩했다. 그의 인생은 즐겁고 보람차고 역동적이었다. 강동현은 그런 자신을 꽤나 좋아했다.

강동현은 대기를 하며 연기를 하고 있는 다른 배우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속으로 중얼거렸다.

‘아, 섹스하고 싶다….’

그러자 곧바로 새빨개진 몸에 야한 얼굴로 헐떡거리는 그 간호사의 얼굴이 떠올랐다. 평소에 만지면 보송보송하지만 흥분해서 젖으면 촉촉해져서 매끈해지는 피부였다. 엉덩이는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으니까 처음에는 굉장히 뻑뻑하다. 싫어하고 저항하는 거야 하는 내내 그러겠지만, 저항하는 것도 지쳐버리면 결국 얌전히 대주는데, 그때의 얼굴이 예술이다. 지쳐서 짜증도 내지만 굉장히 잘 느끼니 그걸 보고 있으면 굉장한 정복감과 성취감이 느껴졌다. 뿌듯했다. 그때쯤 되면 힘들어서 부끄러워도 못한다.

성격이 그런데 몸도 안 예민할 리가 있겠는가. 이리저리 박다 보면 그때그때 느끼는 부분이 달라서 점점 갈수록 더 빨리 사정하고 야시시한 신음을 잔뜩 흘리고 더 이상 가기 싫다고 울고불고 애원하고 그랬다. 그걸 더 보고 싶어서 지루인 주제에도 더 참았다. 처음에는 안에 사정하는 걸 질색을 하는데 나중에는 그냥 안에 사정하는 대로 느끼기만 하며 더 야한 얼굴을 했다.

강동현은 자신에게 이런 성적 취향이 있는지도 처음 알았고 이런 상대와는 이런 식으로 하는 것이 기분이 좋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전 여자친구와의 잠자리가 불만족스러웠다는 것이 아니다. 그가 병에 걸리기 전까지만 해도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고 좋았다. 사람은 아는 만큼 보는 거라고, 그 이상이 있다는 것을 이제 알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밤은 딱 하룻밤이었다. 딱 하루… 그것도 술을 먹고, 상대는 기억도 못 했고 강간이라고까지 했다. 부정할 수 없었다. 상대가 기억하지 못한다는 걸 알고 굉장히 상실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강동현은 도저히 그날 밤을 잊을 수가 없었다.

‘한 번만 더 그렇게 하고 싶어. 술 없이… 그냥… 날 거부해도 좋아. 어차피 싫어하는 건 아니까….’

아무 생각도 나지 않을 정도로 몸이 들끓고 격렬한 섹스.

강동현이 그렇게 혼자서 멍 때리고 있을 때 매니저가 강동현을 불렀다.

“은혁아, 팬클럽에서 밥차 왔다.”

“아, 진짜? 오늘이었어?”

강동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팬클럽 회원들이 십시일반 하여 촬영장에 밥차를 보내준 것이다. 다들 돈도 없을 텐데 이런 것까지… 고마웠다. 강동현은 아마 밥차를 끌고 왔을 운영진들에게라도 인사를 하려고 갔다. 밥차에는 여러 음식들이 차려져 있었고 그 위에는 플랜카드가 걸려있었다.

명품 연기 공장

강동현

가운데 강동현의 이름이 파란색으로 적혀 있고 이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명품, 위에는 연기, 오른쪽에는 공장이라는 단어가 검은색으로 적혀 있었는데 그중 공장은 두 글자의 이응 자가 모두 노란색 해바라기 모양으로 강동현의 얼굴이 프린트가 되어 있었다.

“…….”

잘못 보았을 때는 <명품 강동현 고자>라고 보였다.

*

<ㅎㄱㅎ님 ㅜㅜ 플랜카드가 이상하게 나왔어요 ㅜㅜㅜ>

팬커뮤를 들어가니 이미 강동현에게 조공 된 밥차와 그와 함께 찍힌 강동현의 사진이 보였다. 황경호는 밑에다가 댓글을 달았다.

<ㅜㅜㅜ 왜 색깔이 저렇게 나왔죠? 디자인할 때는 안 그랬잖아요.>

<그러니까요ㅜㅜ>

답 댓글이 바로 달렸다. 황경호는 배를 잡고 웃었다. 사실 마지막에 RGB 코드를 살짝 바꾼 것은 황경호였다.

“아, 큭큭큭큭.”

황경호는 침대 위를 데굴데굴 구르며 웃었다. 아, 통쾌하다. 한동안 강동현의 섹스어필 때문에 묘하게 사람이 말리는 느낌이었는데 참정의가 실현된 느낌이었다. 황경호는 그 사진을 곱게 캡쳐를 해서 휴대폰에 저장을 하였다. 한동안은 이것만 봐도 배부를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이었다. 황경호는 연휴까지 남은 일주일도, 회식도 잘 보냈다. 긴 연휴가 앞에 있었지만 괜찮을 것 같았다. 물론 또 새해가 되면 작년처럼 그런 기분이 들까, 약간 걱정도 되었지만 이런 걱정을 미리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조금 안도하기도 했다. 마음을 미리 단단하게 먹을 순 있을 것 같았다.

‘괜찮아. 이제 괜찮아.’

황경호는 스스로에게 그렇게 타일렀다. 가끔 또다시 앞에 놓인 1년이 무섭게도 느껴졌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올해도 이렇게 결국 잘 넘어오지 않았는가. 다 잘될 것이다. 다 괜찮아질 것이다.

‘혼자 있지 말고 태형이 형이나 신현이나, 형세나… 다 같이 있자. 그러면 괜찮겠지.’

연락을 해보니 이신현은 집에 내려간다고 했고 김태형이나 김형세는 그렇게 큰 약속이 없는 것 같아서 새해 타종이나 보러 같이 가기로 했다.

“전에 동현이가 티켓 줘서 시상식 보러 간 거 생각난다.”

김태형이 같이 TV를 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김태형의 집이었다. 아무래도 김태형이 나이가 더 있다 보니 집은 황경호의 집보다 컸다. 황경호가 김태형이 해준 야식을 먹으면서 대답했다.

“확실히 연예인들은 실물이 훨씬 낫다, 그치?”

“그러니까. 그때는 멀리서 봐도 완전….”

강동현은 이번 년도에 <코드명: 울프>로 대박을 쳤다. 연기대상을 받아냈다.

“와… 진짜 대단하다, 동현이… 진짜 빛이 난다. 빛이 나.”

수상자가 발표되자 강동현이 얼떨떨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른 사람들이 기립하여 박수를 쳐주며 그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마치 사람들에게 떠밀리듯이 단상으로 올라가는 강동현이었다. 그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꽃가루를 맞으며 트로피를 받았다. 여러 사람들이 두 팔로도 다 들지 못할 꽃다발들을 주었다. 그는 마이크의 앞에 섰다.

[감사합니다… 벌써 이렇게 과분한 상을 제가 받아도 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정말 많이 떨리네요. 해외 촬영도 많았고 배우들도 스태프분들도 정말 고생 많이 하면서 찍은 드라마라서 이렇게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신 게 더 기뻤습니다. 설연주 감독님, 신신연 작가님, 지현 씨, 막내 FD 동우… 또… 아, 제가 너무 떨려서 이름이 갑자기 생각이 안 나네요. 기석이 형, 다해… 그리고 우리 울프 많이 사랑해주신 국내 팬분들, 해외 팬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앞으로 더 잘하겠습니다.]

시상식은 확실히 좀 떨리는 모양이었다. 인터뷰나 예능에서도 전혀 떨지 않는 강동현이었는데 말이다. 그가 긴장한 말투로 그렇게 말하자 팬들이 강동현, 강동현하고 환호하는 게 들렸다. 그의 눈시울이 약간 붉어졌다.

[감사합니다.]

연기를 하는 그도 멋있고 굉장하지만, 본래의 그도 매력이 넘치니까 말이다….

‘저런 표정도 지을 줄 아는구나.’

황경호는 혀를 내둘렀다. 정말 연기하는 거 좋아하는구나, 싶었다. 어차피 연기 대상 관련된 영상이나 짤은 이미 강동현 짤 생성기들이 열심히 찌고 있을 것이다. 황경호는 그저 천천히 화면 속의 그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정말 모든 것을 다해서 저런 걸 얻어내면 얼마나 기쁜 걸까?’

몸을 망칠 정도로 열심히 사는 그를 황경호는 잘 알았다. 상상도 할 수가 없었다.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약간 가슴이 벅차다. 저런 점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따라갈 수가 없다.

황경호는 그렇게 김태형의 집에서 하룻밤을 잤다. 같이 해장국을 먹으러 갔다가 김태형이 좋아하는 당구를 치러 갔다. 내내 휴대폰에서 알림이 왔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강동현 팬 커뮤니티에서 오는 알림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아마 어제 연기대상 때문에 열심히 새 글이 올라오고 있는 모양이지. 그렇게 생각하며 일단 김태형과의 승부에 집중했다.

“경호 이제 좀 칠 줄 아네. 많이 늘었다.”

“선생님이 좋아서 그렇습니다.”

황경호가 웃었다. 사람들을 자주 만나게 되고 그들과 친밀하게 지내니 자연스럽게 뭔가 배우는 게 많아졌다. 사람들과 같이하는 게임 같은 건 대학교 다닐 때나 했지 그 이후론 전혀 없었는데 당구를 배우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아, 형. 나 진짜 요리 좀 가르쳐줘.”

“응? 뭐 할 건데? 레시피 적어줄까?”

황경호는 간간히 김태형에게 간단한 요리 방법을 전수받아 가곤 했었다. 황경호가 말을 이었다.

“맛있는 거 먹고사니까 확실히 컨디션이 좋아서. 형이 준 레시피도 좋긴 한데 뭔가 제대로 배워보고 싶어서.”

“그래? 잘 생각했다. 원래 사람이 자기 먹을 걸 챙겨 먹을 줄 알아야 건강해지는 거야. 너 살도 더 쪄야 해.”

둘은 그렇게 한창 당구를 치고 저녁을 먹고 같이 지하철역으로 내려갔다. 황경호는 잠깐 휴대폰을 확인했다. 아까부터 계속 울리던 알람들 중에 하나를 눌렀다.

<톱스타 강동현 건강 적신호!>

<배우 강동현 또 쓰러져. 작년-올해 합쳐 5건>

<아시아의 왕자로 불리는 한류 대형 톱스타 강동현(만 26세)이 내년 가을 개봉 예정인 영화 <타임리스> 촬영 후 갑자기 호흡곤란을 호소하다 혼절하여 입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배우 강동현은 STV 흥행드라마 <서리>부터 주연급 배우로 성장하여 20대 남자 배우 중 가장 높은 티켓 파워와 연기력을 가진 배우로 손꼽히고 있으나 <서리> 이후 다년간 무리한 스케줄로 인하여 팬들의 많은 걱정을 샀다. 올 상반기 아시아 최고 화제작 <코드명: 울프> 이후 전 아시아 지역에서 러브콜이 빗발쳐 팬미팅, 팬콘서트, 광고 촬영으로 정신 없는 4달을 보낸 강동현은 어젯밤 RTV 연기대상까지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하지만 작년부터 실제로 건강 이상 징후를 자주 보이던 강동현은 올해 9월 스토커 사건 부상 이후에도 충분한 회복 없이 영화 촬영에 복귀하여 국내외 촬영 강행군을 지속하다 12월 29일, 오늘 오후 4시경 정신을 잃고 쓰러져 강남 S 병원으로 호송되었다. 현재는 의식을 회복한 상태이며 안정을 취하고 있다고 한다.>

“뭐야… 또 쓰러졌어?”

“뭐? 누가?”

“강동현.”

그렇게 간단하게 대답하며 황경호는 계속 기사를 읽었다.

‘이 인간 진짜 허우대만 멀쩡하지 멀쩡한 데가 어디야?’

황경호는 그 이후로 다른 기사들까지 찾아가면서 내용을 정독했다. ‘오늘 오후 3시 <타임리스> 촬영을 끝마치고 집으로 향하다 호흡곤란으로 쓰러졌고 급히 병원에 가서 응급처치 후 링겔 맞고 안정 중’이라는 내용 빼고 다른 내용은 알 수가 없었다. 다른 병이 있는 것인지 얼마나 심한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동현 오빠 어떡해요 ㅠㅠ. 그러니까 일 좀 작작 시켜라, J엔터 ㅜㅜ. 오빠는 사람이지 기계가 아니라고.>

<일 날 줄 알았습니다. 작년에도 4번이나 쓰러졌는데 올해 안 쓰러진 게 기적이죠. 올해 얼마나 바빴는데… 이번에는 제발 좀 푹 쉬고 건강관리 좀 잘했으면.>

<소속사 진짜 뭐 하냐. 우리가 그렇게 강 배우 쉬어야 한다고 했는데 말귀를 안 처먹어.>

팬 커뮤니티는 울분에 가득 차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올 게 왔다는 분위기였다. 벌써 몸에 좋은 것들 조공하겠다고 난리였다. 애초에 먹는 게 문제가 아닌 남잔데 말이다. 어쩐지 황경호는 무거운 한숨을 쉬었다.

“걱정돼?”

김태형이 황경호의 표정을 잠깐 보더니 그렇게 물었다. 황경호가 깜짝 놀라서 화면에서 시선을 떼고 그를 돌아보았다.

“아니… 뭐가?”

“동현이 말이야. 친하잖아?”

“…안 친해.”

황경호가 말끝을 흐렸다. 김태형도 자신의 휴대폰으로 관련 내용을 찾아보았다.

“너 동현이 나오는 작품들도 다 좋아하잖아.”

“그건 그거고.”

벌써 병원에 내원한 지도 거의 1년 반이었다. 게다가 주로 황경호가 담당하던 환자이다 보니 그의 건강 상태에 대해서는 빠삭했다.

담배는 하루 2갑을 피웠고, 하루 맥주캔 1~2캔은 기본에 제대로 술을 마실 때는 소주 3~4병은 넘게 마신다. 생활 패턴은 아주 불규칙하고 하루 평균 3시간 정도밖에 자지 않는다. 몸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운동을 많이 하지만 이런 상태로 운동을 한다는 건 그냥 몸을 축내겠다는 것이다. 식단은 그나마 운동에 맞추어 고단백, 저탄수화물, 저염 음식으로 먹고 있지만 바빠서 단백질 음료로 때울 때도 꽤 있는 것 같고.

게다가 스트레스 수치는 낮아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보통 병증을 인식하지 못할 때와 병증을 인식하고 나서는 환자가 체감하는 스트레스의 차이가 크다. 자기가 정상인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병자라고 여기는 것의 차이다. 거기다가 남자가 남성 질병에 걸린다는 것 자체가 심인성 질환에 악영향이다.

황경호는 강동현에 대해 더 검색을 해보지 않고 휴대폰을 쥔 손을 외투 주머니에 넣고 있었다. 마침 그때 전화가 와서 화면을 보았다가 깜짝 놀랐다. <호모지루색마변태고자>, 강동현이었다.

“다 왔네. 나 먼저 간다.”

“어? 어어… 31일 날 봐.”

“어, 들어가라.”

김태형이 지하철에서 먼저 내렸다. 그러고도 황경호는 전화를 받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러자 전화가 끊겼다. 어쩐지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그런데 다시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결국 받았다.

“여보세요?”

[어… 받네… 뭐하냐.]

그는 굉장히 좋은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배우로서 큰 자산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그의 목소리는 쉰 데다가 굉장히 피곤하게 들렸다. 그는 기침을 하며 몇 번 목을 가다듬었다.

“아… 집에 가는 중인데요.”

[아, 그래…. 지하철이야?]

“네.”

[집에 가는 거야? 쉴 거 아냐. 태형이 형네는 안 가?]

“금방까지 같이 있었어요.”

[집에 가선 뭐 하려고?]

“그냥 TV 보고… 쉬겠죠?”

강동현은 감기몸살이라도 걸렸는지 기침을 심하게 콜록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야… 그렇게 시간 많으면 지금 입고 있는 팬티 좀 갖다 주고 가라.]

‘올 때 메로나’와 거의 똑같은 어조였다. 이 상태에서 또 팬티 타령을 할 줄은 꿈에도 모른 황경호는 저도 모르게 버럭 했다.

“지금 여기서 팬티 얘기가 왜 나와요!”

라고 소리를 질렀다가 여기가 지하철이라는 걸 깨닫고는 얼굴이 시뻘게졌다. 사람들이 다 쳐다보았다. 다음 역에서 일단 내려버렸다. 전화 상대가 엄청나게 웃어대는 게 느껴졌다.

[너 방금 지하철에서 그런 거야? 아, 큭큭. 골 때린다. 큭큭큭.]

“시끄러워. 너 때문이잖아.”

황경호는 이 겨울 날씨에 얼굴이 화끈해서 손 부채질을 하며 얼굴을 식혔다.

[하하하. 진짜 너 때문에 웃는다. 큭큭.]

“웃지 마.”

그렇게 한창 실랑이를 하다가 웃음기를 재운 강동현이었다. 황경호는 다음 지하철이 오자 다시 승차했다.

[다시 지하철 탔어?]

“네.”

[너 왜 계속 존댓말 썼다가 반말 썼다가 왔다 갔다 해?]

“동갑이잖아요. 그리고 열 받게 하잖아요.”

[그럼 그냥 반말만 쓰든가.]

“그래도 환잔데 어떻게 그냥 반말 써요.”

[그래도 지금은 그냥 개인적으로 통화하는 건데, 뭐.]

“그냥 제가 편한 대로 할 거예요.”

[그래, 맘대로 해라.]

그리고는 말이 없었다. 황경호는 잠깐 주저하다가 물었다.

“무슨 용건이라도 있으세요?”

[아니… 그냥. 집에 가서 쉬어라. 끊는다.]

그러고 강동현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

‘뭐 하려고 전화한 거야….’

황경호는 당황해서 휴대폰 화면을 보았다.

*

새해가 되었다. 황경호는 생각보다 기분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어제는 김태형이랑 이신현과 큰 절에 가서 타종도 보고 왔다. 그런 걸 보러 간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새해를 고대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속에 있는 것은 아직 조금 낯선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작년만큼 생소하게 느껴지진 않았다. 그저 올해는 조금만 더 평온하게 살 수 있기를 바라보았다.

“한 살 더 먹었네.”

“다 같이 한 살 더 먹는 건 우리나라밖에 없다잖아요. 그냥 새해가 왔다고 생각해야죠.”

“그런가?”

그렇게 다들 한잔하고 헤어졌다. 집으로 가서 씻고 침대에 누웠다. 술을 먹고 왔는데도 썩 잠이 잘 오지는 않았다. 휴대폰 화면을 켜보았다. 자연스럽게 팬커뮤에 들어갔다.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 개봉할 <타임리스> 대박 나고 우리 강 배우도 우리누리 님들도 다들 대박 나시길 바랍니다~>

이런 식의 글들이 많이 올라와 있었다. 게시판들 중에 <그의 근황>에 들어가 보니 강동현이 퇴원을 하며 <걱정 끼쳐 죄송합니다>라고 헤드라인이 뜬 기사가 있어서 눌러보았다.

<3일 정도 잠을 많이 못 잤거든요. 세 시간 정도 잤나 싶네요. 연말이라서 정말 바빴습니다. 앞으로는 이런 일 일어나지 않도록 관리 잘 하겠습니다.>

대충 강동현은 이 정도의 인터뷰를 한 것 같았고, 이 내용을 부풀려 다른 기사에서도 했던 말을 또 하는 기사였다. 그리고 곧 <그의 편지>란에 강동현이 직접 쓴 글이 올라왔다. 걱정 많이 끼쳐서 미안하다, 앞으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다, 라는 깔끔한 글이었다.

“…….”

강동현이 그렇게 괴롭힐 때는 잠깐 신경을 끄고 산 적은 있었지만, 황경호는 기본적으로 강동현의 연기나 TV 속에 나오는 모습은 정말 좋아했었다. 전에도 생각했지만, 그보다 잘생긴 남자라던가, 그보다 더 연기를 잘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취향인지 뭔지, 스크린 속의 그를 정말 좋아했다. 그래서 작년 하반기부터는 그놈이 짜증 나게 굴든지 말든지 아예 그냥 배우 ‘강동현’과 진상 환자 ‘도은혁’을 거의 딴 사람처럼 구분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작년에 그가 화병으로 실려 간 적도 몇 번 있었고 정말 몸이 아파서 병원 신세를 진 적도 몇 번 있었다는 것은 안다. 그중 한 두 번 정도는 황경호가 원인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모든 기반에는 그의 극단적일 정도의 하드워킹이 깔려 있었다.

‘정말로 소속사가 시키는 거야, 아니면 지가 그렇게 몸을 일부러 축내는 거야….’

전자든 후자든 정말 어리석은 짓이었다. 솔직히 강동현 정도의 급이면 아마 그가 스스로 그렇게 한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왜 그렇게 하는지. 얼마 전까지 가장 자기 파괴적인 생각에 젖어 살았던 황경호였다. 스스로를 망치는 게 뭔지 조금은 알았다. 그의 상태도 뭔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것은 알겠다.

쓰러질 정도로 피곤한 주제에 병원에는 꼬박꼬박 왔으니까 말이다. 치료용 의자에 쓰러져서 잠들기도 일수였고 그래서 VIP 입원실에 재워준 적도 몇 번 있었다. 저런 식으로 살다간 아무리 젊다고 해도….

‘무슨 상관이야.’

1년 하고도 반 정도… 그 변태를 만나고 나서 벌써 그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예전, 우울증에 허덕거리며 자기 자신도 제대로 간수할 수 없을 땐, 정말로 그가 어떤 짓을 해도 제대로 저항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사람이 우울증과 자살 충동에 고통받을 때 강동현은 엄청 치사하게 그런 점을 마구 이용했으니까 말이다.

황경호는 이제 잘 알고 있었다. 그놈이나 감옥에 간 이덕재나 똑같은, 아니, 짧고 굵었던 이덕재보다도 그렇게 오랫동안 괴롭혀왔던 강동현이 더 나쁜 것은 당연한 거 아닌가. 두 사람 다 황경호에게 아프고 약한 사람은 이 사회에서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이용만 당할 뿐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가르쳐주었다.

당할 만하니까 당했다고 생각하면 스스로가 정말로 쓸모없고 의미 없게만 느껴져서 힘들었다.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아도, 심지어 더 그런 짓을 당하지 않기 위해 이쪽이 애원해도, 오히려 그럴수록 사람이 만만하게 될 뿐이라는 걸….

다만, 그럼에도 이덕재와 강동현이 다른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저 그들이 가지고 태어난 것의 차이였다. 매력. 황경호는 인상을 찌푸렸다.

강동현은 키가 컸다. 몸이 좋았다. 남자답고 잘생겼다. 성격도, 황경호에 대한 것만 아니면 매력적이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젊지만 가볍지 않고 중심이 잘 잡힌 청년처럼 보일 것이다. 일에 열정적이고 일뿐만 아니라 자기가 하고자 하는 건 전부 해낸다. 커리어는 탄탄대로에 모든 사람들이 그를 사랑했다. 스크린 속의 그가 울면 같이 울었고 웃으면 같이 웃었다.

그리고… 그에게서는 항상 좋은 냄새가 났다. 손은 크고 따뜻하고 힘이 셌다. 머리카락은 부드러웠고 입술도 부드러웠다. 외모도 실제로 보면 더 근사했다. 목소리도 가까이서 들으면 오금이 저릴 정도다. 야한 짓을 할 때는 깜짝 놀랄 정도로 섹시하고 유혹하는 기술도 수준급이다.

하지만 이덕재는 그렇지 않았다. 처음 보는 순간 거부감이 일어날 정도로 비사회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었다. 눈치가 없고 말도 통하지 않았다. 외모도 추하고 성격은 더 추했다. 아무도 그같은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똑같은 짓을 해도 이 차이인 것이다.

그리고 둘이 이렇게 달라도 결국 똑같은 짓이다.

황경호는 강동현이 계약이니 뭐니 하며 처음부터 어떻게든 억지로 사람을 자위기구처럼 쓰려고 했던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동안 계속 싸우고 저항하고, 가끔은 죽으려고까지 하면서 싫어하니까 이제는 그렇게 강압적인 수단을 포기한 것일 뿐이다. 그리고 황경호가 싫어하는 걸 알면서도 여전히 어떻게든 구슬려서 해보려고 하는 것도 잘 알았다.

황경호는 강동현이라는 남자가 가지고 있는 매력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괜히 팬질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처음엔 그도 당황스러웠지만, 그에게 가끔 성적인 매력을 느낄 때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근데 그 인간이 그러는데 누가 그런 걸 못 느끼겠어.’

그냥 생리 반응일 뿐이다. 예전에는 강압적이고 폭력적인 방법으로 황경호의 몸을 노렸다면 이제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매력을 무기로 노린다는 게 다른 것뿐이었다. 어느 쪽이든 사람을 우습게 보는 것은 매한가지다.

이덕재는 감옥에 갔고 강동현도 무슨 생각인지 더이상 예전만큼 사람을 힘들게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라고 황경호도 더 이상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한 것뿐이었다. 아예 아무 생각도 깊게 하지 않으니 우습게도 예전에는 그를 그렇게 괴롭혔던 문제들도 전부 그러려니 하게 되었다.

사람이 예민하고 생각이 많으면 스스로 만든 덫에 쉽게 빠져들고 마는 것일까. 황경호는 그렇게 생각하며 또 금방 생각했던 것들을 다 잊어버렸다.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오셨어요, 도은혁 환자님.”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또 웃으면서 병원에서 그를 맞이했다. 4번 치료실로 들어온 그는 확실히 얼굴이 좀 상했다. 하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어련히 알아서 하겠지.

“졸려….”

미간을 잠깐 주무르던 강동현은 옷을 갈아입고 와서는 털썩 의자에 앉았다. 황경호한테 집적거릴 여력도 없는 모양이었다.

“쓰러지셨다더니 안 쉬셨어요?”

“쉬긴 했는데 바로 해외 시상식이 있어서….”

“많이 바쁘시네요. 좀 쉬시지 그러셨어요. 예약이야 다음 날짜에 오셔도 되고….”

“그냥….”

강동현은 그렇게 말하더니 황경호가 마사지 하고 있는 것을 물끄러미 보았다.

“넌?”

“네?”

“넌 좀 어때. 괜찮아?”

“뭐가요?”

“그냥 기분이나… 뭐 이것저것….”

“괜찮아요.”

“그래… 다행이네.”

강동현의 손이 황경호의 뺨에 닿더니 또 귀를 만지작거렸다. 황경호는 그냥 마사지하는 부위나 보고 있었다. 강동현의 손에 힘이 없어지며 축 늘어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그는 잠들어 있었다. 마사지를 다 하고 닦아준 뒤 그의 어깨를 잡아 흔들었다.

“도은혁 환자님, 다 끝났어요. 일어나세요.”

강동현은 곧 눈을 떴다. 그는 잠깐 정신을 못 차렸지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래도 한숨 자니까 좀 났다.”

그는 기지개를 켰다. 그리고 황경호의 뺨을 감싸 만지며 하품을 했다.

“나 당분간 못 오니까, 하암.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고. 간다.”

그리고 그는 탈의실로 향했다. 황경호는 자리를 정리했다.

*

“정말요?”

[그래. 초록이가 우리 보고 싶다는 말을 많이 했나 봐. 그래서 그쪽 부부가 초록이를 데리고 한국에 온대.]

“언제요?”

[1월 말쯤 온다고 해. 정확한 날짜는 곧 결정되는 대로 연락할게. 올 거지?]

“네! 당연히 가야죠. 우리 초록이….”

어째서일까. 눈물이 찡하고 돌았다. 황경호는 전화를 끊자마자 앞에 있는 김형세에게 말했다.

“형세야! 초록이 온대!”

“뭐? 진짜? 언제?”

“1월 말! 태형이 형한테도 전화해야겠다.”

황경호는 주말에 김형세의 집에서 죽치고 있었다. 전에 이덕재 때문에 몇 번 신세를 지고는 그냥 심심하면 전화하고 왔다. 매주 주말에 김형세의 집, 아니면 김태형의 집이었다. 김형세도 얼마 전에 여자친구랑 헤어져서 주말이 넉넉했다. 황경호는 당장에 김태형과 이신현한테도 전화를 했고 이강유나 다른 식구들한테도 메시지를 돌렸다.

‘아, 강동현한테도 보내야 하나?’

정말 뛸 듯이 기뻤다. 황경호는 기꺼이 강동현에게도 메시지를 날렸다.

“아, 우리 초록이… 화상 통화 한 번 해볼까? 8시간 차이니까 보자….”

좀 기다려야 되겠다. 황경호는 일단 먼저 그쪽에 문자를 넣어 놓았다. 가슴이 기분 좋게 두근거렸다. 김형세가 말했다.

“보니까 초록이 쑥쑥 크는 것 같던데.”

“그러니까. 못 알아보는 거 아냐? 많이 건강해 보이더라.”

화상통화로 가끔씩 보는 초록이었다. 하지만 저쪽의 적응 문제도 있고 해서 차츰 줄여나가라는 조언도 들었던 차에 직접 만난다니. 꿈만 같았다. 여러 통의 답장이 오기 시작했다. 다들 초록이가 한국에 오는 것을 반겼다. 올 수 있는 사람들은 온다고 하였다. 그렇게 누워서 천장만 보고 있는데도 기분이 좋았다. 다른 사람들과의 메시지는 이미 끊겼을 쯤에 뒤늦게 누군가의 답장이 왔다.

<잘됐네. 언제 오는데?>

황경호는 강동현의 문자에도 답을 하기 시작했다.

<1월 말이요. 확정되면 연락준대요>

<잘됐다. 안 그래도 Y 병원에서 한 번 연락 왔는데 내가 전에 기부한 돈, 걔도 다 나았으니까 다른 아이들한테 써도 되냐고 물어보더라. 그 부부한테 물어봐.>

그런 얘기가 오갔단 말인가. 황경호는 깜짝 놀랐다.

<이제 초록이 다 나았으니까 괜찮지 않아요?>

<잘 생각해라. 암 같은 거 재발할 수도 있는데>

황경호는 약간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답장은 오지 않았다. 황경호는 약간 기분이 안 좋아졌다. 사람 기분 망치는 데는 도가 텄다.

강동현은 전에 얘기했던 것처럼 한동안 병원에 오지 않았다. 팬커뮤를 확인해 보니 내내 해외 일정이 잡혀있었다. 해외가 한국보다 훨씬 돈을 많이 주니까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초록이가 한국에 오기로 하고 곧 날짜가 잡혔다. 1월 27일이었다. 고아원 식구들과 김태형, 이신현, 김형세와 같이 인천 공항까지 마중을 나갔다.

“초록아~!”

영어로 이름을 적은 판넬을 들고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은 초록이와 외국인 부부를 발견하자 손을 흔들었다. 초록이는 10센치는 넘게 큰 것 같이 보였다.

“오빠~~!!”

초록이는 얼른 달려와서 황경호에게 안겼다. 아직 한국말을 까먹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하긴 아직 그 정도의 시간은 아닌가. 황경호는 웃으면서 초록이를 안았다가, 아이가 안기는 순간 저도 모르게 울컥 눈물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

“잘 지냈어? 엄청 많이 컸네, 우리 초록이.”

황경호는 초록이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쪼그리고 앉아 아이의 얼굴을 보았다. 발그레하고 건강한 얼굴이었다. 언제 아팠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진짜 어떻게 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이 나오려고 할 때 김형세가 눈치 있게 아이를 번쩍 안아 들었다.

“우리 초록이! 엄청 무거워졌다!”

“와하하하하!”

김형세가 하늘로 초록이를 던져주자 아이가 좋아서 마구 웃어댔다. 고아원 선생님들이 부부에게 인사를 했다. 그렇게 그간 서로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고, 같이 밥을 먹고, 한국의 볼거리들을 보여주고 호텔에 투숙했다. 초록이를 입양해간 부부는 고맙게도 아이를 황경호와 다른 선생님들과 같이 잘 수 있게 해주었다.

“엄마, 아빠 좋아?”

“응, 좋아!”

초록이는 스스로 양말을 벗으며 그렇게 말했다. 그걸 스스로 곱게 화장대 위에 올려놓고 황경호한테 다시 돌아왔다.

“오빠도 같이 살면 좋겠다.”

“…….”

순간 말문이 막혔다. 황경호는 초록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빠도 놀러 갈게.”

“응!”

주말을 껴서 2박 3일 정도로 온 것이라 병원에는 하루 휴가를 냈다. 황경호는 뒤는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정말 오랜만에 소중한 아이를 만나서 정말 기뻤다. 김태형과 이신현, 김형세도 이틀을 같이 있어 주었다. 이강유는 애 맛있는 거 먹이라고 주는 거니까 걱정 말고 쓰라고 카드까지 주기도 했다. 새삼 감사했다. 이런 사람들이 곁에 있다는 게. 그저 소소하고 아무 의미도 없는 것 같은 일들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졌다. 2박 3일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마지막으로 체크아웃을 하며 부부와 아이의 짐을 챙겨주었다.

“오늘 콜밴이 거의 없네. 왜 이렇지?”

“그러게요. 무슨 행사라도 있나.”

콜밴을 부르기 위해 전화를 걸고 있었는데 오늘 무슨 행사라도 있는지 택시 회사들이 전부 콜밴이 현재 없다고 했다. 짐도 사람도 많은데 택시 여러 대에 나눠서 타야 하나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체크아웃이요.”

부부가 체크아웃하는 곳에서 세 칸 정도 떨어진 곳에서 체크아웃을 하는 남자가 있었다. 황경호는 순간 그 목소리를 알아듣고 고개를 돌렸다. 그는 모자에 선글라스, 마스크까지 하고 있었다. 그의 뒤에는 매니저가 짐을 들고 오고 있었다.

“아, 집에도 못 가고 다시 출발이네. 하암.”

“형, 운전되겠어? 내가 할까?”

“너 나 자르고 싶냐?”

“나는 그래도 차 탈 땐 좀 잤으니까.”

“나도 너 촬영할 땐 좀 잔다.”

딱히 말을 걸 생각은 없었다.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으니 선글라스를 낀 남자가 이끌린 듯 이쪽을 보았다. 황경호의 손을 잡고 있던 초록이의 시선이 그를 따라가더니 그 남자를 손가락질했다.

“어! 서준!”

<연애출사표>가 한창일 때 아이랑 자주 같이 봤었는데 아직도 기억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고아원 선생님들도 그를 보았다. 강동현은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벗으며 이쪽으로 왔다.

“여기서 묵으셨는지 몰랐네요.”

초록이의 일 때문에 강동현은 한 번 고아원 선생님들이랑도 만난 적이 있었다. 그는 먼저 악수를 청했다.

“황경호한테서 들어서 오신다는 건 알고 있었습니다.”

“어머, 강동현 씨….”

20대의 젊은 남자라고 하기엔 굉장히 능숙하면서도 닳아빠진 느낌은 안 난다. 정말 겉모습이 근사해서인가. 고아원 선생님이 초록이의 부모에게 강동현이 초록이가 아플 때 도와준 사람이라고 설명하자 그들은 강동현을 포옹하며 감사하다고 말했다.

“여기서 뭐 해?”

“오늘 콜밴이 잘 안 잡혀서요. 짐도 많고 사람수도 좀 되니까 택시는 좀 그런데….”

“어디 가는데.”

“이제 돌아가야 해서요. 인천공항이요.”

“내 차 타. 나도 인천공항이야.”

강동현이 선뜻 그렇게 말했다. 매니저에게 그렇게 말하니 매니저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짐을 옮겨주는 걸 도와주려고 하였다.

“아니… 그래도 바쁘신데….”

“같은 곳 가는 건데요.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그냥 타세요.”

강동현의 밴은 9인승이라 사람 수가 딱 맞았다. 짐은 트렁크에 다 들어갔다. 그렇게 달리니 금방 인천공항에 들어갔다. 아무래도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라 시간을 끌다 보니 짐을 부치고 부랴부랴 들어가야 했다.

“진짜 꼭 놀러 갈게.”

초록이를 끌어안고 황경호가 그렇게 말했다. 초록이가 밝게 웃으면서 뽀뽀를 했다. 들어가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고 이름을 불렀다. 2박 3일은 정말 짧았다. 처음 봤을 때는 눈물까지 울컥 나왔는데 갈 때는 눈물이 나오지는 않았다. 건강해서 다행이다. 좋아 보여서 잘됐다. 그런 생각들이 들었다. 초록이가 입양을 가버렸을 때는 그렇게 적적해서 견딜 수가 없었는데 이제는 다 잘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 죽었더라면 어땠을까.

‘우리 초록이도 이렇게 못 보고….’

황경호는 살면서 이렇게 기쁠 수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 했다. 단 며칠이 이렇게나 소중하다. 게다가 김태형이나 이신현은 말할 것도 없고 그저 직장 동료일 뿐이라고 은연중에 선을 그었던 병원 식구들까지도 이렇게 신경을 써주는 게 감사하고 고마웠다. 아마 그때 죽었더라면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던 것도 모르고 죽었을 것이다.

“갔어?”

강동현은 흡연실에서 담배를 몇 대 태우고 전화를 하다가 나왔다. 매니저는 짐을 먼저 부쳐놓고 1시간이라도 눈을 붙이려고 수면실에 들어갔다고 했다. 강동현은 캡모자, 선글라스, 마스크에다가 두꺼운 후드까지 뒤집어쓰고 있었다. 키가 훤칠하고 몸과 자세가 좋아 아무리 그래도 태가 났지만 강동현이라는 건 정말 못 알아보겠다.

“네.”

“다른 사람들은?”

“다들 화장실 갔어요.”

“그래… 넌 괜찮아?”

“저요? 괜찮죠.”

그렇게 대답하고 물끄러미 강동현을 올려다보았다.

우울증이란 건 어떤 사람이든 걸릴 수 있는 것이었다. 황경호는 여전히 자신이 어째서 그렇게까지 죽고 싶어 해야만 했는지 잘 몰랐다. 이 인간 때문에? 글쎄. 그 전부터 황경호는 죽고 싶어 했었다. 왜 사는지 알 수가 없어서, 삶에 의미를 찾을 수가 없어서. 이 인간이 거기에 분명히 나쁜 쪽으로 영향을 많이 주긴 했지만 근본은 아니었다. 스스로도 많은 생각을 했었다. 이유라는 걸 하나하나 찾아보아도 결국에는 다 설득력이 없었다. 그저 황경호는 자기 자신이 싫었던 것뿐이다. 지금도 그렇게 썩 좋아하진 않는 것 같다.

하지만 그때 격발되던 자살 충동에 이끌려 죽어버렸다면… 어땠을까. 물론 죽고 나서는 모든 게 끝나는 것이니 아무런 상관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후회스럽지 않았을까. 아니, 우울증이나 자살 충동에 시달려도 황경호는 거의 항상 죽음에 대해 공포심을 느끼고 있었다. 죽는 것에 용기가 필요했다. 이 인간에게는 언젠가 살고 싶다고 말하기까지 했다.

우울한 순간은 우울하고 못난 자신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느껴진다. 의미 없고 초라하고… 하지만… 결국 살아있어야 극복도 하고 지금처럼 옛일같이 느낄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그때 죽었다면… 얼마나 비참했을까. 내 인생이….’

정말로 그렇게 마침표를 찍었더라면. 그의 우울증과 고통은 끝났을지라도. 아마 정말 생각했던 것만큼이나 의미 없고 가치 없는 삶인 채 완결되어버렸을 것이다. 그래서일까. 황경호는 무심하게 초록이가 가버린 게이트를 보고 있다가 말했다.

“지금까지… 저 죽으려고 할 때마다 살려줘서 고마워요.”

말하기 전까진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건지 몰랐다. 말한 내용에 본인이 놀랐다. 얼굴을 온통 가리고 있는 강동현이었지만 엄청나게 놀란 기색이 느껴졌다. 황경호는 약간 목을 가다듬었다. 말하기가 어렵다.

“댁 때문에 죽고 싶었던 적도 꽤 있었는데….”

강동현이 괜찮은 놈이라고 말하고 싶은 게 아니었다. 정말로 이 인간이 죽이고 싶을 정도로 밉고 치가 떨릴 때도 있었다. 그가 뭐라도 된 양 무신경하게 마포대교에서 그를 질질 끌고 갈 때마다 우울증과는 또 다른 무력감도 몇 번이나 맛봐야 했었다. 그런 모든 것들이 다 괜찮았다는 것이 아니다.

“어쨌든… 그냥 한 번쯤 얘기해야 할 것 같아서요. 지금 살아있어서 다행인 것 같아요.”

“…….”

강동현은 선글라스 너머로 황경호를 계속 바라보았다. 이 간호사는 가끔씩 이렇게 깜짝 놀랄 만한 태도를 보였다. 강동현이 그를 한창 괴롭힐 때도, 가끔 서로에게 불쾌한 과거 같은 건 없었던 것처럼, 처음 보는 남을 대하듯 반듯하게 행동할 때가 있다. 예전에도 막연하게 거리감이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그저 아무것도 아닌 일을 해줬을 때 공손한 감사의 말이 돌아온다거나 강동현의 생각과는 전혀 상관없이 그의 입장을 명확하게 정리해버린다거나, 그렇게 욕하고 때리다가도 금세 존댓말을 하며 예의를 차리고 선을 그어버리는 것도.

강동현은 시계를 보았다. 1시간 반 정도 남았다.

“잠깐만 나 좀 봐.”

“네?”

강동현은 그대로 황경호의 손목을 붙잡고 무작정 어딘가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가자마자 택시를 잡더니 가까운 호텔이요, 라고 짧게 말했다.

“피곤하세요?”

근데 난 왜? 이런 얼굴이다. 강동현은 그저 조용히 말했다.

“어.”

꽤 오랫동안 선을 넘을 정도로(적어도 강동현의 기준에서) 강압적으로 관계를 요구했던 적이 없었고, 전혀 그런 분위기가 나올 건덕지가 없었기 때문에 생각을 못 하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기본요금도 안 되는 거리를 달려 도착한 호텔에 무작정 손목을 붙잡고 들어가자 황경호도 당연히 이상함을 눈치챘다.

“잠깐만요! 뭐예요! 이거 놔…!”

그러다가 사람들이 힐끗 몇 명 쳐다보자 혈색이 붉어지며 큰소리를 내는 것을 멈추었다. 손목부터 풀려다가 그것도 사람의 이목을 끄는 것을 깨닫고 황경호는 어찌할 줄을 몰라 했다. 그런데 강동현은 누구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꽁꽁 싸맨 중무장이라 남자를 끌고 오고도 평이하게 방을 하나 잡았다. 황경호는 얼굴이 시뻘게져서 결국 남은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릴 수밖에 없었다. 엘리베이터에 타자 황경호는 다시 그에게서 손목을 빼려고 했다.

“뭐 하는 거예요! 진짜! 일단… 일단 놔요!”

엘리베이터에서 내릴 때 타려고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있어서 다시 합, 하고 입을 다물고 강동현의 등 뒤에 숨기까지 했다. 누가 보면 황경호가 연예인인 줄 알지도 모르겠다. 황경호는 그대로 정말 질질 끌려갔다. 넓은 공간이라 그런지 복도에서는 소리도 못 지르고 그의 손목을 잡고 있는 강동현의 팔을 마구 쳤다.

“야! 진짜 놔…!”

강동현은 카드키로 문을 열었다. 키를 꽂자 침대 곁의 주홍빛 전등이 켜진다. 침대는 두 개다. 강동현은 자신의 마스크만 일단 내리고 입부터 맞추었다.

“갑자기 왜 이래… 읍…!”

최근에는 자위를 보여주거나 팬티를 가져가는 정도였다. 키스도 혀를 섞는 깊은 것보다도 가벼운 입맞춤 정도로 끝냈다. 전처럼 이 인간이 또 뭔 짓을 할지 초조하게 불안해하며 살지 않아서 그런가. 갑자기 왜 이렇게 된 건지 감이 안 잡힌다.

“읍…! 싫어요…! 싫다니까!”

“알아.”

강동현은 자기 선글라스도 바닥에다 그냥 던지고 옷도 벗기 시작했다.

“니가 나 싫어하는 거 너 빼곤 내가 제일 잘 알아.”

강동현의 얼굴이 진지했다. 그는 계속 황경호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황경호의 옷도 벗기기 시작했다.

술을 먹고 그렇게 된 이후로 둘 사이에는 정말 진한 선이 그어졌다. 정확하게 그날 밤 이후라기보단 하도 싸우다 보니까… 서로가 서로의 각을 아주 정밀하게 잴 수 있게 되었다고 해야 하나. 서로 그 라인만 넘지 않는다면 사이가 틀어지지 않고 이대로 유지가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결국, 그 둘 나름대로의 균형이 만들어져 있었다.

강동현은 이제 그렇게까지 강제적으로 황경호에게 스킨십을 요구하지 않았다. 황경호도 어느 정도 납득, 이라고 하면 우습겠지만 적어도 이쪽이 한숨을 쉬면서라도 고개를 끄덕여줄 수 있는 마지노선을 지켰다는 말이다.

강동현은 다시 입을 맞추었다. 오랜만에 그의 두껍고 뜨거운 혀가 안으로 마구 들어온다. 감당을 못하겠다. 그는 그대로 입술로 황경호의 얼굴을 지분거리며 손으로 상대의 몸을 만졌다. 그는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앞으로 장난도 못 치게 할 거고… 내가 너 만나러 가면 예전처럼 스트레스받겠지. 전화도 안 받을 거고. 너랑 가끔 키스 정도는 할 수 있었는데 그것도 못하게 할 거고. 나 더 미워할 거고… 또….”

강동현이 빠르게 그렇게 말했다. 황경호는 따라가지 못했다. 그렇게 떠밀려서 침대로 같이 쓰러졌다. 새하얗고 반듯한 시트 위에 두 사람의 무게가 가해지자 출렁했다. 강동현은 상체를 전부 드러낸 채로 황경호를 내려다보았다. 황경호의 잔뜩 긴장한 얼굴을 보며 강동현이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한강에는 안 갔으면 좋겠는데….”

그리고 다시 입을 맞추었다. 푹신하고 하얀 침구에 휩싸여서 강동현은 열정적이면서 부드러운 키스를 이어갔다. 황경호가 자신을 밀어내지 않게 그의 두 손목을 꽉 붙잡고 있었다. 그의 무릎이 황경호의 다리 사이로 파고들었다. 황경호가 깜짝 놀라 펄쩍 뛰었다.

‘진짜 당할 거야…!’

황경호는 분명히 이 건은 서로 만지기만 하고 끝날 게 아니라는 강한 직감이 들었다. 온몸의 신경이 경고를 하고 있었다. 강동현에게 만져졌던 적은 많지만 삽입까지 한 건 딱 두 번밖에 없었고 그중 한 번은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리고 기억이 나는 건… 떠올린 것이 후회될 정도로 좋지 않은 기억이었다.

‘하기 싫어….’

황경호는 몸이 달아오르기도 했지만, 가슴이 꽉 조여든 듯 불안하기도 했다. 그가 정말로 싫었던 때도 있었다. 그동안 너무 많이 일이 있었다. 이젠 적응이 되었는지 그 정도의 증오심은 일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런 걸 또 당해도 된다는 건 아니었다.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 하지?’

키스가 격렬해진다. 이런 체념도 학습을 하는 것인지 기어코 이 남자한테 못 당할 거란 생각이 들자 어떻게 저항을 해야 할지도 알 수가 없었다. 좀 있으면 출국을 하는 남자를 발로 걷어차도 될까. 황경호가 신음을 흘리며 몸을 떨었다. 그리고 입술이 쪽 하고 떨어졌다. 강동현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상기된 얼굴로 황경호를 내려다보았다.

“…가.”

그가 말했다. 어느새 손목이 풀려 있었다. 황경호는 단박에 그를 밀치고 외투를 찾아서 들고 달려서 도망갔다. 강동현은 천천히 침대에 바로 앉았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뒤로 털썩 드러누웠다.

*

“아, 다 끝났다… 진짜 우리 이제 좀 쉬는 거지?”

“어… 쉬자, 진짜. 죽겠다.”

미친 것 같은 중국 스케줄을 끝냈다. 모르는 말을 일일이 통역을 쓰고 듣고 있자니 그것만으로도 신경이 곤두섰다. 또 한 번 쓰러지고 나니 건강에 대한 경각심이 들었다. 광고는 이쯤 하기로 했다.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나서는 제대로 확인도 안 해봤다. 아마 통장에 꽂힌 돈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앞으로 한 세 달 동안 <타임리스> 촬영을 하면서 한 달에 두 번 정도의 출국 패턴을 유지할 생각이었다. 가서도 하루 한 개 정도의 스케줄로. 강동현의 워커홀릭 기질 때문에 무리하게 일을 받아왔지만 강동현의 건강이 이 정도로 나빠진 마당에 소속사도 더 이상 이런 스케줄을 묵과하지 못하겠다고 했고 강동현도 동의했다. 일단 잡아놓은 건 어쩔 수 없지만 4월만 지나면 정말 여유로워질 것이다.

사실 그가 엄청나게 바쁜 이유 중에 하나는 그가 <코드명: 울프>의 공전의 히트 이후로 아시아 전역을 뛰어다니며 온갖 방송과 광고를 찍으면서도 자신에게 들어오는 모든 작품들을 체크하고 그 작가나 감독에 대해 스크리닝한다는 것이었다. 좋은 작품과 역할을 놓치기 싫은 거다. 그러니까 잠을 못 잔다. 한동안 여행을 다니든 영화를 보든 시사회만 돌든 어쨌든 휴식기를 가질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 오는 비행기에서 내리고 나서야 메시지들을 확인했다. 일 관련된 건 어차피 매니저 형한테도 같이 가니까 급한 일은 확인을 안 해도 그가 알려주었다. 개인적으로 메신저앱에는 친구들이나 다른 연예인들, 가족들에게서 온 것들이 있었고 SMS로도 몇 가지 와있었는데 그중에 황경호가 보낸 것도 있었다. 그전에 이미 미안하다고 메시지를 보내놓은 상태였다.

<이제 저 만지지 마세요>

이런 말 할 줄 알았다. 답장은 그날 밤이었다. 차로 옮겨 탄 강동현은 바로 답장을 했다.

<이제 확인했다. 알았어. 미안>

그러자 예상이랑 다르게 답장이 바로 또 왔다.

<이제 병원에도 오지 마세요>

강동현은 인상을 확 찌푸렸다.

<싫어>

<이제 저 만지지 말라니까요?>

<알았어. 안 만진다고 그래도 병원은 갈 거야.>

<그럼 담당 간호사 바꿔요>

<싫어>

그리고 조금 뒤에 덧붙여 문자를 보냈다.

<그냥 너 보고 싶어서 가는 거야>

답장이 오지 않았다.

강동현은 이것도 여차저차 무마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중간에 멈추었고 결국 키스 외에는 아무것도 안 했다. 지금까지의 전적으로 보자면 정말 이건 아무것도 아닌 축에 속했다. 더 다른 답장도 오지 않았다. 그래서 강동현은 딱히 신경 쓸 건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오셨어요.”

평소처럼 미소는 지었지만, 어차피 그의 거짓 웃음은 이골이 난 강동현이었다. 그의 몸짓이나 태도에서 흘러나오는 분위기가 영 성가실 것 같은 느낌이 팍팍 들었다.

“야, 너 아직 그때 일로 맘 상했어?”

그래서 치료실에 들어가자마자 그렇게 말했다.

“미안하다니까. 그때는 잠깐… 미안. 다시는 안 할게.”

“…옷 갈아입고 앉으세요.”

‘아, 젠장….’

강동현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삼켰다. 딱 봐도 몸이 딱딱하다. 뭔가 이 정도면 자위를 보여줘도 굉장히 싫어할 것 같은 느낌이 팍팍 들었다.

‘뭐가 문젠데, 또….’

강동현은 약간 짜증이 났다. 그는 자신이 예전에 비하자면 정말 많이 양보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어쨌든 오늘은 아니다 이거다. 강동현은 그날은 얌전하게 마사지만 받고 돌아갔다. 그리고 며칠 뒤에 또 왔을 땐 슬쩍 집적거렸다.

“만지지 마세요.”

평소처럼 귓불을 만지니 대번에 인상을 찌푸리며 손을 피했다.

“왜. 이 정도 가지고.”

약간 장난스럽게 말하며 다시 그의 뺨을 톡톡 장난치듯 건드렸다. 황경호는 정말 정색을 하며 손을 피했다. 강동현의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한 번 더 그러자 강동현은 그가 또 어떤 선을 크게 그어버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야… 그럼 팬티는?”

강동현이 그렇게 묻자 황경호가 인상을 찌푸렸다.

“싫어요.”

싫어요. 하지 마세요. 앵무새처럼 말했다. 강동현도 결국엔 짜증을 냈다.

“내가 그때 그렇게 잘못했어? 미안하다고 했잖아. 그 전에 더한 것도 그냥 했으면서 갑자기 왜 이래?”

그제야 한 2주 만에 강동현의 얼굴을 제대로 보는 황경호였다.

“…….”

“내가 뭘 어떻게 하면 되는데? 안 만진다고까지 했잖아.”

그럼 금방 그거는 뭐냐고 따지고 싶지만 입 아프다. 황경호는 짧게 말했다.

“안 믿어요.”

강동현은 황경호의 단호한 말에 약간 황당했다.

“내가 안 한다고 하잖아. 근데 뭘 안 믿어.”

그는 자기 확신이 강한 사람이었다. 스스로를 잘 의심하지 않고 그래서 자신에 대한 남의 의심도 잘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때까지 그런 말씀 많이 하셨잖아요. 번복도 많이 하셨고.”

“잠깐만… 그건 상황이 변하니까….”

강동현이 그렇게 말했지만, 황경호는 고개를 더 돌렸다.

“그냥…. 이제 병원 안 오시거나, 적어도 다른 담당 간호사 하셨으면 좋겠어요. 부탁드립니다.”

황경호는 그렇게까지 말하고 나갔다. 강동현이 느낀 감정은 당황이나 당혹에 가까웠다. 지금까지의 기준에 전혀 안 맞는다.

‘내가 그렇게 잘못했어? 아무것도 안 했는데? 새삼스럽게 왜 저래? 아, 쟤는 꼭 별것도 아닌 일에 저렇게 오버를 한다니까….’

강동현은 한숨을 푹푹 쉬었다.

‘아, 참자. 일단 그냥 참자….’

아쉬운 놈이 우물을 파는 거라고 강동현은 그의 화가 풀릴 때까지 그냥 참기로 했다. 이제 그도 참는 건 이골이 났다.

“….오셨어요.”

“…….”

이제 해외 일정도 덜 잡혀서 그냥 출근 도장 찍듯이 일주일에 두 번은 오고 있었다. 강동현이 자위를 하는 걸 보여주면 못이라도 박힌 듯 얼굴을 보던 간호사가 강동현의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강동현은 분명히 참자고 생각했으면서도 울컥했다.

‘아, 도대체 뭔데 진짜….’

그는 짜증이 났다. 강동현은 가만히 황경호를 쳐다보고 있었다. 황경호는 그의 그런 태도를 분명히 눈치챘으면서 그를 그저 평범한 환자처럼 대했다.

“옷 갈아입고 앉으세요.”

강동현이 한숨을 푹 쉬었다.

“야, 잠깐만.”

황경호가 돌아보았다.

“진짜 마음에 안 드는 거 있으면 말로 해. 이런 식으로 하지 말고.”

“뭘요?”

“너 지금 이러는 거. 그때 그건 미안하다고 했잖아. 진짜 이렇게까지 할 일이야? 적당히 하고 풀어. 그리고 그거 말고 따로 마음에 안 드는 거 있거나 원하는 거 있으면 말로 해. 말을 안 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

그러자 황경호가 인상을 설핏 찌푸렸다.

“말했잖아요.”

“언제?”

“병원에 오지 말라고 했잖아요.”

“아니…! 그건…!”

강동현은 심장이 갑자기 두근 하며 당황했다. 어쩐지 찔리는 감정과 비슷했다.

“그건 내가 너 만져서 그런 거잖아. 진짜 안 만진다니까.”

같은 말을 두 번 하긴 싫은지 황경호는 입을 다물어버렸지만, 강동현은 그가 못 믿는다고 한 말이 곧바로 떠올랐다.

“갑자기 왜 그러는데? 어? 왜 갑자기 이렇게 오지 말라는 건데. 이유라도 말해.”

강동현이 약간 조급하게 말했다. 그가 자신의 얼굴을 보고 있지 않은 게 정말 마음에 안 들었다. 그냥 얼굴을 잡고 돌려버릴까 했는데 건드리지 말라고 했고… 황경호는 이제는 인상을 대놓고 찌푸린 채 시선을 멀찍이 돌리고 있었다. 말하기 싫은 모양이다. 그런데도 결국 뭔가 못 참겠는지 쏘아붙였다.

“이유 말하면, 안 올 거야?”

“뭐?”

황경호가 강동현을 노려보았다. 적의가 느껴진다. 저런 눈빛으로 강동현을 보지 않은 지 꽤 되어서 깜짝 놀랐다.

“이유 말하면 안 올 거냐고.”

“…….”

“너한테 내 이유가 언제 그렇게 중요했는데? 말하면 말하는 대로 바보 취급이나 할 거잖아. 그냥 오지 마.”

얘가 왜 이렇게 화가 난 건지 진짜 알 수가 없는데 진심인 모양이었다. 강동현은 정말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심각성이 느껴진다. 이때까지 요 몇 달 동안 이 간호사랑 있으면서 그가 한 것이라곤 이 간호사가 정말 빡쳐서 그를 거부하지 않도록 자신을 억누르는 것뿐이었다. 그가 화가 난 것 같으면 예전처럼 나가는 대로 말을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사과를 했다. 저번에도 살짝 오버했다 싶어서 바로 사과를 했다. 그대로 몇 번 얼굴을 마주하면서 눈치를 살피고 화를 풀어주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적어도 예전처럼 마주치면 으르렁거릴 정도의 사이는 아니었으니까.

“잠깐만… 잠깐만, 잠깐만….”

강동현은 머리를 팽팽 돌렸지만 정말 알 수가 없었다. 강동현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약간 초조한 듯 황경호의 얼굴을 보았다.

“바보 취급 안 해… 말해. 말해줘.”

황경호는 이미 다시 고개를 돌리곤 치료 의자가 있는 쪽으로 발을 옮겼다.

“됐어요. 그냥 빨리 앉으세요. 벌써 시간 많이 지났어요.”

“아니, 말부터 해.”

강동현은 황경호의 손을 황급히 잡았다. 그러자 황경호가 확 뿌리치면서 다시 강동현을 노려보았다.

“이러니까 못 믿는다는 거야! 아, 그냥 싫으니까 오지 말라고!”

“잠깐만… 이건….”

“니가 나 병신같이 아는 건 잘 아는데! 그냥 싫다고!”

뭐가 또 강동현이 모르는 사이에 쌓인 모양이다. 근데 정말 알 수가 없어서 답답했다. 강동현은 분노로 얼굴이 빨개진 황경호를 가만히 보고 있다가 자기 얼굴을 한 번 손으로 쓸어 내리고 한숨을 쉬었다. 시계를 더 보았다. 이대로는 제대로 얘기를 할 수 없다.

“일단은… 갈게. 나중에 얘기 좀 하자. 너 퇴근할 때쯤 여기로 올게. 전화할 테니까 받아.”

상대는 대답하지 않았다. 강동현은 선글라스를 끼고 밖으로 나갔다.

*

6시부터 건물 앞에다 차를 대고 있었다. 6시 10분쯤 전화를 걸었다. 받는다.

“끝났어?”

[…30분쯤 더 걸릴 거 같아요.]

“알았어. 기다릴게.”

강동현은 전화를 끊었다. 한숨이 나왔다. 뭐라고 할까 고민이 되었는데, 그냥 뭐라고 하든 잘못했다고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잘잘못을 따지는 것보다 화를 풀어 주는 게 중요했다. 어차피 서로 성격이 안 맞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도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일인지 그의 눈에는 전혀 보이지가 않아 답답했다. 예전처럼 그런 것도 아니고….

강동현은 초조하게 시계를 확인하면서 기다렸다. 35분이 지나자 황경호가 내려왔다. 그는 순순히 차에 탔다. 강동현은 일단 차를 출발시켰다.

“밥 먹을래? 아니면 커피라도 마시면서 얘기할래?”

“사람들 있는 곳은 싫어요. 차 안에서 얘기해요.”

“그래.”

목적지가 없어서 그냥 드라이브다 생각하고 올림픽대로를 탔다. 그때까지도 차 안은 정적이었다. 강동현은 침묵을 참지 못하고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잘못했어.”

“…뭘요?”

“뭐든.”

황경호가 고개를 돌려 강동현을 보았다. 그러더니 드디어 입을 열었다.

“저 도은혁 환자님이랑 자기 싫어요. 만지는 것도 싫어요.”

“…알고 있어. 그러니까 안 한다고 하잖아.”

강동현이 빠르게 답을 내놓았다. 그러자 황경호는 어쩐지 화가 난 것 같았다.

“내가 진짜 병신같이 보여?”

“아니야. 왜 그래.”

“니가 결국엔 나 또 깔아보려고 이러는 거 모를 거 같냐고.”

황경호의 냉정한 말에 강동현은 말문이 턱 막혀 그를 돌아보았다. 차가 막히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강동현은 인상을 찌푸렸다가 한숨을 쉬었다.

“안 해. 니가 싫다고 하면… 전에도 말했잖아.”

“그리고 했잖아.”

“…….”

할 말이 없었다. 강동현은 히터 공기가 답답해서 잠깐 창을 내렸다. 매연 냄새가 났다. 차가운 공기가 들어왔다.

“그래도 나 그 이후로… 니가 싫다는 건 최대한 안 했잖아.”

“그럼 내가 네, 고맙습니다, 해야 하는 거야?”

“…….”

“나도 병신같이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전만큼 심하지 않으니까 이 정도는 참자고 생각했는데. 왜 내가 항상 니가 뭘 더 할까 전전긍긍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니가 정신 차리고 그만두면 내가 왜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데?”

“그땐… 진짜 미안하다. 니가 그렇게까지 놀랐을 줄은 몰랐어… 아니, 놀랐겠지. 나도 바로 중국에서 스케줄이 있는 바람에….”

“다 됐어. 그냥 오지 마. 제발. 이제 진짜 서로 안 보면 안 돼? 언제까지 이래야 하는데? 너 나한테 진짜 눈곱만큼도 안 미안해?”

할 수 있는 말이 정말 없었다. 강동현은 핸들을 꽉 잡은 채 정면만 보고 있었다.

진짜 그날은, 언젠가 계속 생각했던 것처럼 거부당하더라도 정말로 하고 싶다고, 진짜 말도 안 되는 충동이 일었다. 그냥 앞으로 연 끊을 각오를 하고 데리고 간 것이었다. 왜 그렇게까지 하고 싶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진짜로 할 수는 없었다.

이건 변명은커녕 나쁜 놈이라고 시인하는 꼴이다. 한참 말을 고르다가 강동현이 겨우 입을 열었다.

“정말로… 정말로 이제는 손 안 댈 게. 그냥 병원만 갈게.”

강동현이 딱딱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그러자 황경호는 확 상처 입은 얼굴이 되었다. 정면을 보고 있던 강동현은 보지 못했다. 결국 이렇게까지 해도 어떻게든 자기 뜻대로 하겠다는 거다. 역시나 죄책감도 뭐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럴 거라고 막연히 생각은 했지만… 황경호는 정면을 보고 시트에 등을 기댄 채 손으로 얼굴을 가리듯 감쌌다.

“…그럼 넌 계속 병원 오겠다는 거야?”

“…….”

“어떻게 이번만 넘기면 또 언젠간, 술을 먹이든 어떻게 하든 또 할 순 있겠지… 나 병신 같으니까.”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솔직히 그렇잖아… 자살은 하고 싶은데 겁은 나서 니가 못하게 막으면 못하는 대로 다행이다 싶고… 그러면 또 기분이 더러워져서 니가 뭘 하던 그냥 내버려 두고… 병신 같이 당하기나 하고… 이덕재도 그렇고….”

황경호는 요 몇 달간 정말 상태가 괜찮았었다. 강동현은 깜짝 놀라서 스스로를 비하하는 그를 바라보았다. 얼굴을 가리고 있는 손을 잡아서 치웠다. 그러니 그냥 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대로 올림픽대로를 빠져나왔다. 다시 강남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딘가 한적한 데 차를 세웠다.

“난….”

강동현이 어렵사리 입을 열려고 하는데 창밖을 보고 있던 황경호가 불쑥 말을 끊었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한번 해.”

강동현은 자기가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까먹었다. 황경호는 강동현을 돌아보았다. 피곤한 얼굴이었다.

“아님 두 번 하든가. 성에 찰 때까지 해도 좋으니까 이제 진짜 끝내자.”

*

‘이게 지금 사람을….’

분명히 강동현은 그의 화를 풀어주고 싶었다. 오늘 만남의 목적은 오로지 그것뿐이었다. 그런데 열이 확 받는다.

‘내가 건드리는 게 싫어서 오지 말라는 거 아니었어? 근데 왜 또 이렇게 되는데….’

강동현은 화가 났다. 머리 한 켠으론 분명히 황경호가 또 우울감에 못 이겨서 저런 말을 하는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그래도 화가 났다. 강동현은 오늘 그의 화를 풀어주기 위해 꽤 노력을 했다. 그걸 이렇게 개무시하는 게 화가 났다. 저렇게 먹고 떨어지라는 식으로 취급한 것도 화가 난다. 하지만 더 화가 나는 건 정말로 혹하는 자신이었다. 그리고 왜 하지 말아야 하는지 생각해보니 딱히 이유가 안 나왔다.

뭘 어떻게 맞춰줘도 싫다는 거 아닌가. 그냥 무조건적으로 강동현이 싫다고. 그래, 싫어하는 건 원래도 알고 있었다. 단지 계속 접점을 만들어 나가고 싶으니까 성질대로 하지 않고 참았다. 그것만으로도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근데 이젠 어떻게 해도 싫다고. 안 만진다고 하든 뭘 하든 무조건 보기 싫고 보러 오지 말라는 거 아닌가.

‘그럼 내가 왜 얘를 지금 안 따먹어. 그냥 따먹고 말지.’

강동현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대로 서로 노려보고 있다가 강동현이 천천히 말했다.

“후회한다, 너.”

“안 하니까. 맘대로 하고 이제 제발 병원에 오지 마.”

강동현은 신경질적으로 차를 출발시켰다. 그리고 곧장 제일 가까운 모텔로 정말 가버렸다. 그리고 방을 잡고 올라가서 그대로 아무 말도 없이 입부터 맞추었다.

“읍… 으응…!”

젠장… 강동현은 벌써 머릿속부터 성기까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왜 이런 느낌을 이 간호사가 주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진짜 할 거라고 생각하니까 정말 미칠 것 같았다. 맨날 냄새나 팬티 정도 수준에서 불만족스러운 자위나 해야 했다. 진짜로 머릿속으로 매일 생각했던 것처럼 짓눌러서 마음껏… 옷을 들추어서 가슴을 마구 만지며 바로 상대를 침대로 쓰러뜨렸다. 강동현은 옷 위로 서로의 것을 맞붙여 세게 비볐다.

“윽… 흐윽… 아… 읏….”

황경호는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계속 돌리고 있었다. 강동현이 억지로 이쪽으로 고개를 돌리게 하고 입술을 핥았다. 눈이 마주쳤다.

마지막이니까, 정말로 미련 따위는 남지도 않게 전부 다 뜯어먹어 버릴 것이다. 전신을 전부 다 핥아서 맛보지 않은 곳이 없게 할 거다. 피부란 피부는 다 깨물어서 몇 주나 멍 때문에 시달리게 할 것이다. 턱이 나갈 정도로 그의 걸 빨게 할 거고 섹스라는 말만 들어도 진저리를 칠 정도로 박을 것이다. 쉽게 그런 말을 한 걸 백 번은 후회하게 해줄 것이다.

‘전부 다 내 마음대로 만질 거야. 싫어하든 말든 알게 뭐야. 젠장.’

이 간호사만 만지면 그렇게 안 서던 게 잘만 섰다. 발기했다. 그렇게 손으로 마구 온몸을 주물러 대자 황경호가 아파하며 인상을 썼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아….”

강동현은 입술을 떼었다. 다 멈추었다. 그는 한숨을 쉬었다.

“내가 이제 못 할 거라는 거 알고 그런 거지?”

강동현은 황경호의 위에서 일어났다.

“가라….”

그는 외투에서 담배를 찾았다. 그리고 창가로 가서 문을 열고 불을 붙였다. 가슴이 답답하고 뻐근했다.

“…….”

황경호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어쩐지 화가 났다. 그는 담배를 피우고 있는 강동현에게 물건을 던졌다.

“도대체 그게 뭐라고 이러는데! 잘 서지도 않으면서, 이 고자 새끼가!”

정통으로 뒤통수를 맞은 강동현이 인상을 확 쓰며 돌아보았다.

“여자랑 하라고! 왜 나한테 계속 지랄이냐고! 내가 여자로 보여?!”

“…니가 남자인 건 나도 잘 알아. 이미 볼 거 못 볼 거 다 봤는데.”

“지금 뭐 하는 건데!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병원 올 거라고??”

황경호가 화를 내며 씩씩거렸다. 강동현은 담배를 창틀에다 지져 끄고 문을 닫았다. 그리곤 한숨을 푹푹 쉬었다.

“그냥… 그냥 너 보고 싶어서 가는 거라고 하잖아. 매일 갈 것도 아니고. 딱히 그 돼지 새끼처럼 스토킹 같은 거 하고 싶은 건 아냐… 진짜 만지지도 않을게. 그냥 가끔 얼굴 정돈… 봐도 괜찮잖아.”

그 순간 황경호는 말문이 확 막혔다. 강동현에게서 풍기는 분위기가….

‘뭐야, 이건….’

이덕재 때도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 이상하다는 느낌이 또 든다. 왜…. 어쩐지 머리가 아프다. 화도 더 나기 시작했다.

“…….”

“…….”

황경호는 너무 분하고 억울하고… 뭔가 이때까지 쌓여온 게, 잘 참고 있던 게 내부에서 폭발할 것만 같이 부풀어 오르는 게 느껴졌다.

‘술 취한 거 핑계로 강간한 주제에…. 돈 받고 몸 파는 사람처럼 취급했으면서…! 자기 멋대로 죽고 싶게 만들고 또 멋대로 못 죽게 끌고 왔으면서! 어차피 저래 봤자 또…!’

황경호는 강동현에게 달려들어 그를 때리기 시작했다.

“너 같은 거…! 죽어 버렸으면 좋겠어! 항상 자기만 잘났고…! 나 같은 거 무시했으면서! 화대 주고 창녀 취급한 건 너잖아!! 나쁜 새끼! 죽어버려!!”

눈물이 줄줄 흘렀다. 왜인지 알 수 없었다. 강동현이 맞아 주다가 결국 황경호의 손목을 잡았다.

“그만해.”

“이거 봐…! 자기만 잘났지! 내가 너 경찰에 신고했으면 니 잘난 배우 생활도 끝이야! 알아?! 나한텐 그렇게…! 그렇게 못된 짓 잔뜩 해놓고….”

진짜 눈물이 엄청 나왔다. 이 인간한테 당해온 것들… 이제 다 잊어버리고 지나간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때 인천 공항에서 강동현한테 끌려가서 당할 뻔했을 때, 그때 느꼈던 무력함이 황경호를 소름 끼치게 했다. 너무 싫은 데도 창피해서 다른 사람들한테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다. 그를 걷어차도 되는지 안 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너무 싫다고 생각해도 결국에는 이 인간이 원하는 대로 되겠지, 라고 쉽게 체념하는 자신이 무서웠다.

이제 정말 괜찮아지고 있단 말이다. 황경호는 더 이상 이 인간에게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 또 자살하고 싶다는 생각 같은 건 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너무 끔찍한 기분이었다. 황경호에게 이건 자신을 지키기 위한 싸움이었다.

황경호는 강동현의 따귀를 때렸다. 그렇게 정신없이 그를 때리다가 넘어졌다.

“윽….”

더 때릴 힘도 없다…. 눈물은 안 멈출 것 같았다. 황경호는 한쪽 손으로 두 눈을 감싸 가리고 겨우 일어났다.

“갈게요….”

강동현이 손목을 잡았다.

“가지 마.”

황경호는 그를 노려보았다.

“놔.”

강동현은 그의 다른 손목도 잡았다. 황경호는 곧바로 울컥하고 다시 화를 내기 시작했다. 미친놈이 따로 없었다.

“난 너 싫어! 싫다고! 세상에서 제일 싫어!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최악이야! 저질! 변태! 고자!”

눈물을 줄줄 흘리며 황경호가 욕을 했다. 강동현은 천천히 몸을 가까이했다. 머리로 뭔가 생각을 한 건 아니었다. 그저 이끌림이었다.

“죽어버려! 죽어버리라고…! 아니면 내가 죽여…!”

입술이 맞닿았다. 황경호는 그를 확 밀치려고 했다가, 처음으로 그의 키스에 제대로 응하였다.

*

이상했다. 멈출 수가 없었다. 온몸이 짜릿하게 달아올랐다. 다리가 풀린다. 왜 같이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머리로 설명할 수 없는 충동이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키스하는 것 외엔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는다.

“으음…! 으읍… 응…!”

혀를 움직여 상대의 것과 얽히다가 잠깐이라도 떨어지는 걸 참을 수 없었다. 키스만으로 부끄러운 소리가 잔뜩 나왔다.

“흐으응….”

강동현이 혀끝을 물고 끝을 핥자 저도 모르게 더 그에게 달라붙었다.

‘젠장….’

다르다. 강동현은 뭔가, 어디든 터질 것만 같았다. 눈앞이 뿌옇다. 밀어내지 않는다. 그의 몸이 자신에게 착 달라붙어 있는 게 소름이 끼칠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타액이 질질 흐를 정도로 키스했다. 그가 혼자만 할 때도 좋았는데 상대방이 같이하니 이건 차원이 달랐다. 상대의 머리통을 한 손으로 감싸고 입 안을 계속 파고들었다. 혀끝이 찡할 정도로 단 사탕을 빠는 맛이었다. 그런데 텁텁하기는커녕 중독적이다. 상대의 손이, 젠장, 간호사들은 손이 부드러워서 문제다. 황경호의 손이 그의 얼굴을 감싸 잡자 얼굴과 두피에 끊임없이 소름이 달렸다.

안 그래도 강동현은 굶을 대로 굶은 데다가 이미 섹스만 생각하면 앞에 있는 간호사 가지고 별별 상황과 체위와 반응을 질리도록 상상해왔다. 마지막으로 억누르고 있는 것까지 터져버리자 그냥 앞뒤 생각은 전혀 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만 생각할 수밖에 없어졌다.

강동현은 100미터 전력 질주를 한 사람처럼 심장이 뛰고 숨이 거칠어졌다. 그는 황경호의 바지와 속옷을 확 내렸다. 그리고 상대의 다리 사이에 무릎을 넣고 침대 밑동에 발을 얹어 그의 다리를 확 벌렸다. 그리고 한쪽 엉덩이를 꽉 잡아 강동현의 쪽으로 바짝 붙였다. 그리고 허리를 돌려 그의 중심을 옷 안에 있는 자신의 것으로 문질렀다. 그의 허리짓이 굉장히 섹시했다.

“흐응….”

황경호가 얼굴을 확 붉히며 강동현의 상의를 잡았다. 그대로 강동현의 입맞춤을 원해와서, 강동현은 진짜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입을 맞추며 강동현도 자신의 것을 꺼냈다. 이미 크게 발기해 있었다. 그대로 황경호의 것과 맞잡아 빠르게 아래위로 문질렀다.

“앙…! 아아…! 아아아….”

황경호는 야한 신음 소리를 내며 눈을 질끈 감았다. 강동현이 그의 목덜미를 깨물었다.

“하앗… 앗… 아앗…! 아, 잠깐만…! 아응…! 아아아앙….”

황경호는 금방 싸버렸다. 그는 얼굴이 토마토처럼 시뻘게져 야하게 입을 벌리고 신음을 흘렸다. 강동현만큼은 아니었지만 황경호도 쾌감이 깊고 길었다. 강동현은 그를 천천히 침대 위에 엎드리게 했다. 금방 가버려서 오르가즘에 허우적거리는 그의 엉덩이를 잡고 곧바로 서로의 체액으로 질척한 가운데 손가락을 찔러 넣었다. 이 촉감, 진짜 오랜만이다.

“아…!”

황경호가 등을 빠듯하게 세우며 한 손으로 자기 무게를 지탱하고 다른 손으로 강동현의 팔을 잡았다. 정신이 퍼뜩 들었다.

‘이런 것까진 싫어….’

황경호는 저항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강동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를 애무했다.

“하읏…! 어디에 넣는 거야…! 앗… 아앙… 하읏… 아…! 더 넣지 마…! 아파!”

손가락을 하나 더 집어넣어 들락날락 움직였다. 황경호는 얼굴이 시뻘게져서는 예민하게 움찔거렸다.

“아…! 아아…! 아! 싫어…! 이런 건 싫다고…! 아…! 손가락 빼…! 아아앗!! 버, 벌리지 마….”

몸무게를 지탱하고 있던 팔이 확 꺾이며 강동현에게 더 엉덩이를 내민 자세가 되었다. 강동현의 얼굴에서 땀이 후두둑 떨어졌다. 전율로 온몸이 떨린다.

‘아, 나 이제 얘 따먹을 거야. 드디어 얘한테 박을 거라고. 아, 씨X. 미칠 것 같다. 그냥 박고 싶어. 그냥 박고 미친 듯이 흔들고 싶어. 생각했던 거 전부 다 할 거야… 씨X, 진짜 죽을 때까지 할 거야.’

그는 자신의 턱을 손등으로 닦고는 팽팽하게 선 자신의 커다란 남성기를 황경호의 엉덩이 위에 과시하듯 턱 올렸다. 강동현은 그의 남성기를 잡고 황경호의 음부에다가 이리저리 문지르다가 꾸욱 눌렀다.

“싫어…! 죽여버릴 거야! 아…! 아아…! 안 들…! 앗….”

황경호가 순간 눈을 질끈 감으며 침대 시트를 꽉 움켜쥐었다. 잘 안 들어갔다. 강동현은 한 손으로 황경호의 엉덩이를 최대한 벌리고 귀두를 힘으로 눌렀다.

“안 돼…!”

미끄덩, 하고 무언가 엄청난 게 들어왔다. 온몸에서 땀이 흘렀다. 구멍이 말도 안되게 벌어지고 뭐가 끼워져 닫히지 않았다. 황경호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잠깐 한두 호흡을 쉬는 것 같더니 강동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아…! 아…!”

귀두만 삽입되어 있던 게 찌걱찌걱하며 점점 더 들어오기 시작했다. 황경호는 온몸을 긴장하며 목을 울렸다. 점점 더 굵어지고 깊어졌다. 내장이 쓸리는 느낌이 너무…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하반신을 꿰뚫고 들어오는 것에만 집중하게 되었다.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만 같아서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 절대 이것 이상으로 넓어져서는 안 되는 곳이 억지로 벌어지고 있었다. 숨쉬기가 힘들었다. 그냥 다 힘들었다.

“!”

그리고 최대한 들어오는 순간 뒤에 있는 남자의 섹시한 신음소리와 함께 그가 황경호의 두 팔을 잡아서 확 일으켜 자신에게 그의 등이 붙게 했다. 등 뒤에 있는 남자의 숨소리가 미친 듯이 거칠어서 무서웠다. 자세도 더 힘들었다. 황경호는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나쁜 놈… 진짜 넣었어….”

“미안… 하아… 움직인다.”

강동현은 들뜬 목소리로 황경호의 귀를 깨물었다. 손으로 황경호의 배를 꾹 누르고 다른 손으로 젖꼭지를 검지와 엄지로 잡아 살살 문질러댔다.

“응…! 하아… 흑… 아아….”

강동현이 꽉 붙여넣은 채로 그대로 그냥 천천히 꾹꾹 누르기만 했다. 안쪽과 음부가 그의 남성기에 찰싹 붙어있는 채였다. 쓸리거나 마찰되지도 않았다. 그저 그의 귀두가 깊은 곳을 꾹꾹 누르는 게 느껴졌다. 그대로 그의 손이 부드럽게 황경호의 중심을 매만졌다.

황경호는 강동현과 섹스하고 있었다. 아프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플까 봐 계속 긴장은 되었다. 거대하게 존재감이 느껴졌다. 마구 움직이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흐읏… 응… 아… 아응….”

그가 거칠게 움직이는 게 아닌데도 신음소리를 참을 수가 없었다. 가슴이랑 앞을 만져줘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의 피부와 이런 식으로 맞닿아 있는 게 너무 이상했다. 하반신을 서로 겹쳐 하나가 되었다는 게. 뜨거웠다. 부드럽고….

‘기분 좋아….’

황경호는 얼굴을 붉히며 치를 떨었다. 전에는 무섭고 싫기만 했다. 세게 삽입만 당해서 아프고 고통스럽기만 했다. 그런데….

느린 움직임, 맞닿은 체온, 피부, 숨소리… 황홀감이 찾아왔다. 앞도 뒤도 다 녹을 것만 같다. 가슴도, 그가 만지는 부분이 뜨겁게 녹아내렸다. 가쁜 숨이 나왔다. 자신도 깜짝 놀랄 정도로 야한 신음이 나왔다.

“응…! 하앙… 아앙… 응… 아앗… 흐응… 아아앙….”

민감하고 그래서 더 버겁고, 힘들고 근데 느끼고… 엉덩이가 미친 듯이 움찔거렸다. 황경호가 어느샌가 눈을 지그시 감은 채 강동현이 해주는 섹스를 느끼고 있자 강동현이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기분 좋아?”

“아…!”

별안간 귀에 속삭이자 황경호가 깜짝 놀라 그를 엄청 죄었다. 강동현은 섹시한 신음을 흘리더니 두 손으로 상대의 허리를 잡았다.

“잠깐만…! 아…!! 아아…! 앙! 아파…! 아…! 좀… 앗…! 하지 마…. 아앙! 하앙…!”

살이 부딪치기 시작했다. 그저 넣은 채로 안을 누르기만 했던 게 약간이나마 마찰하여 빠져나왔다 들어갔다 하였다. 내장이 그런 식으로 비벼지는 게 충격적이었다. 그의 남성기에 자신의 살이 찰싹 붙어 약간 딸려 나갔다 들어왔다 하는 게 느껴졌다. 빠져나가고 들어올 때마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서 몸을 바르르 바르르 떨었다.

일반적 관점에선 엄청 느린 피스톤질이었다. 황경호가 앞으로 몸을 빼려고 하자 강동현이 그걸 쫓아가다가 자기도 침대 위로 올라왔다. 그대로 엉덩이만 치켜든 채 납작 엎드린 황경호의 위로 같이 엎드려 그의 엉덩이 안에서 자지를 움직일 때마다 황경호가 비명을 질렀다. 강동현은 느린 허리짓과는 다르게 황경호의 앞을 쥔 손을 빠르게 움직였다.

“흐아앗! 아앙! 아…! 아아…! 그만…! 하아… 나… 아아아아앙….”

황경호가 가늘게 찢어지는 것 같은 신음을 내었다. 엉덩이를 파이고 앞을 만져지며 갔다. 황경호가 숨을 끊어 쉬며 눈물을 흘렸다.

“응…! 아.! 그만 만져… 하응… 싫어….”

그 사이 강동현이 계속 삽입을 하는데 끊임없이 앞으로 뭔가 나올 것만 같았다. 죽을 것만 같았다.

“아…! 아아앙…! 흑… 으아아… 아앗… 하으….”

“아… 크윽… 젠장… 으으윽…!”

지루라서 한참을 황경호의 엉덩이를 더 괴롭히다가 강동현이 사정하기 시작하자 황경호의 온몸이 확 뜨거워지며 부지불식 간에 구멍을 꽉 조였다. 강동현이 다시 깊이 서로의 몸을 붙인 채로 꾹꾹 안을 눌러댔다. 그의 몸과 황경호의 몸이 꽉 붙어있는 곳에서 강한 힘이 느껴진다. 침대가 들썩거렸다. 사정하는 시간이 엄청 길었다. 황경호는 아직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냥 떨기만 하다가 몸에 힘을 축 풀고 늘어졌다.

“하아… 하아….”

황경호는 완전 풀린 눈으로 침대에 엎드려 있었다. 이런 건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강동현은 겨우 중심을 유지하고 있다가 결국 무릎이 미끄러지고 몸이 기울어 황경호한테 완전히 자신의 무게를 기댔다. 둘 다 한참을 숨만 고르며 견디고 있었다.

강동현이 남성기를 빼자 황경호가 옆으로 쓰러져 누웠다. 그의 구멍은 곧바로 하기 전처럼 한 번에 다물렸다. 강동현이 그의 얼굴을 만져서 자기 쪽을 보게 했다. 그리고 입을 맞추었다.

“으응… 음… 응….”

황경호를 바로 눕혀 다리를 벌리게 했다. 엉덩이를 들어 올려 다시 자신의 대물의 끝부분을 삽입하였다. 잘 안 들어가서 또 힘으로 눌러 넣었다. 찌이익.

“아앗…!”

정신이 없어 그저 강동현의 입맞춤을 가만히 받고 있던 황경호는 깜짝 놀라서 몸을 떨었다. 황경호가 입술을 떼며 비명처럼 신음했다. 찌걱거리면서 다시 끝까지 밀어 넣자 황경호가 강동현의 어깨를 치며 그를 밀어냈다.

“아앙…! 싫어… 앗… 아앗….”

거기는 그러라고 있는 곳이 아니었다. 새로 넣는 그 행위가 처음 넣을 때처럼 거북스러웠다. 익숙하지가 못했다. 게다가 아까와 다르게 안이 약간 미끄러워 아까처럼 살이 쩍쩍 달라붙으며 그의 진입을 막는 작용을 덜했다. 오히려 압박감이 커졌다. 정말로 억지로 벌려지는 느낌이었다.

“흐아아… 아앗… 잠깐만… 아앗… 잠깐만요… 아앙… 아으….”

강동현은 황경호의 두 다리를 팔에 걸쳐 침대에 짓눌러 들린 엉덩이 사이에 자신을 박아 넣고 있었다. 거칠지는 않았지만 황경호가 뭐라고 하든 끝까지 들어갈 때까지 몇 번이고 꾹꾹 눌렀다.

강동현의 근육이 꿈틀대는 게 보였다. 그대로 다시 피스톤질을 시작하자 황경호가 침대 여기저기를 붙잡고 버티려고 했지만 제대로 잡을 수 있는 곳이 없었다. 강동현의 체액 때문에 조금 미끄러워져 살이 마구 딸려 나가는 무서운 느낌은 덜 해졌지만 그걸 윤활유 삼아 움직이는 깊이가 달라졌다. 압박감이 심해졌다.

“흑… 아앗…! 응…! 아아… 잠깐만… 하… 아앙….”

강동현이 움직일 때마다 몸이 흔들렸다. 내 몸인데도 내 몸이 아닌 것 같다. 그는 곧 아주 천천히 빼내고 좀 빠르게 박는 식으로 허리를 움직였다. 아프지는 않았다. 하지만 마치 황경호가 안이 마찰하는 느낌을 너무 싫어하는 걸 알고 일부러 그런 방식으로 하는 것 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서 나갈 때는 가슴이 조일 듯 불안하다가 박히면 차라리 안도감이 들었다.

“으흑… 아…! 앗…! 아앙…! 힉! 아아아….”

황경호는 강동현이 자기 몸 안에 들어와서 그렇게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이 감당이 되지 않으면서도 느껴서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강동현이 거친 숨소리를 내며 다시 입술을 확 훔쳤다.

“응…!”

정신이 다시 몽롱해졌다. 약간의 황홀감이 다시 찾아왔다. 강동현의 오른손이 황경호의 손을 잡아서 그의 머리 위에 눌렀다. 가까이서 얼굴을 내려다보며 계속 안을 쿡쿡 찌르자 황경호의 얼굴과 어깨가 점점 빨개져 가는 게 보였다.

“흐읏… 아… 아앙… 하아… 하으응.”

계속 엉덩이만 파이자 기분이 더 이상해진다. 황경호는 괴로운 얼굴로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가 계속 자기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는 강동현과 눈이 마주쳤다. 얼굴이 확 붉어졌다.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이 마주친 걸 뗄 수가 없었다. 그대로 코가 거의 맞댄 채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숨결이 섞였다.

세상에 아무도 없고

둘만 있는 것 같은 느낌

그대로 조금 더 몸짓이 빨라졌다. 눈을 맞추고 있는 건 가슴이 부풀어 올라 터질 것만 같이 만들었다. 황경호가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울부짖었다. 잡히지 않은 손으로 그의 등을 쳤다.

“아…! 천천히… 히익…! 앗… 그만해, 이 변태…! 하앙…! 아, 어떡해…! 아앙… 나 갈 것 같아…. 하아아아아앙….”

황경호는 갈 것 같다고 하자마자 허리를 들면서 강동현한테 몸을 비볐다. 잔뜩 빨개지고 젖어서 야한 얼굴을 해서는 신음을 흘렸다. 저절로 이쪽이 침을 꿀꺽 삼켰다. 엉덩이를 조이며 강동현의 것에다 요분질을 하는 황경호의 얼굴을 보며 강동현이 낮고 섹시한 신음을 길게 흘렸다.

이걸 보고 싶었다. 황경호는 울고불고 화내고 육탄전까지 불사해서 진이 빠진 듯한 얼굴에 쾌락이 젖어 야했다. 이럴 줄 알고 있었다.

‘나랑 하는 거 좋아할 줄 알고 있었다고.’

강동현은 살짝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정신이 들었기 때문에 더 미칠 것 같았다. 차라리 정신없이 어떻게든 상대가 아프지 않게 하려고 했을 때가 더 나았다. 참기가 힘들다.

“젠장….”

그대로 아직 오르가즘을 느끼고 있는 상대에게 겨우 천천히, 하지만 계속 박아대자 그가 비명을 질러댔다.

“하지 마…! 아아…! 아아아…! 싫어! 변태…! 지금은… 으으응…!”

그리고 깊게 박으며 강동현이 신음했다.

“크으으윽…!”

강동현은 진짜 자지가 터지는 줄만 알았다. 두 번째인데, 두 번째라서 더 억지로 터트리는 것만 같이 고통스럽고 돌아버릴 것 같은 쾌락이 터져 나왔다. 미칠 것 같았다. 숨이 안 쉬어졌다. 짐승처럼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안 그래도 쿠퍼액도 사정액도 많은 강동현이었다. 두 번째까지도 뻑뻑했던 곳이 이제는 완전 질척질척… 황경호는 그가 사정하는 것을 예민하게 느끼며 몸을 꿈틀거렸다. 강동현이 쾌락을 느끼며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는 게 섹시했다. 그는 제대로 사정하면 몇 분에서 십 수분은 그대로 정신을 못 차렸다. 그가 그대로 점점 무너지듯 황경호에게 기대어왔다. 이마와 코가 맞닿았다.

“하아… 헉. 하… 윽… 하아….”

그대로 균형을 잃고 옆으로 쓰러지며 황경호도 같이 침대에서 떨어졌다. 조금 있다가 먼저 정신을 차린 황경호가 온몸이 욱신거리는 걸 느끼며 몸을 일으켰다.

“…….”

그대로 일어서려고 하자 강동현이 그의 팔을 잡았다. 눈을 감은 채 여전히 거친 숨을 몰아쉬며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강동현이었다. 그의 손을 떼어내고 일어나려는데 그가 황경호를 잡아당겨 자신의 위에 태웠다. 황경호는 인상을 찌푸렸다.

“이제 그만 해요….”

시작하자마자 섹스가 깜짝 놀랄 정도로 농밀해졌다. 황경호는 지금도 심장이 폭주 기관차 마냥 뛰고 있는 게 느껴졌다. 침대 위에 있다가 딱딱한 바닥에 떨어지니 뭔가 현실에 닿은 것만 같이 섬뜩하니 정신도 차려졌다. 강동현의 위에 앉아 살을 맞닿고 있는 게 어색하다. 온몸이 한 번 뭉개진 듯 욱신거렸다. 성기와 엉덩이는 물론이고 온몸이 예민하게 계속 움찔거린다. 아직도 누가 만지고 뭐가 들어와서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시끄러워….”

강동현이 여전히 정신이 나간 얼굴로 황경호의 엉덩이에 자신의 것을 다시 집어넣었다. 앞의 두 번과 다르게 이번엔 한번 만에 쑥 하고 깊이 들어갔다.

“흐앗….”

그 느낌에 깜짝 놀라 대비가 할 새가 없었던 황경호는 그대로 끌어안겼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뺨을 깨물었다. 그리고 남성기를 올려치기 시작했다. 그의 피스톤질이 여지없이 빨라졌다. 황경호의 안이 그나마 풀어지고 미끈미끈해졌기 때문이다.

“아앙…! 아파! 물지 마…! 읏… 이제 그만해!”

황경호는 커다란 물건이 부드럽게 슥슥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걸 느끼며 짜증을 냈다. 강동현은 처음 두 번은 아무 말 없이 박기만 하더니 이번엔 그의 얼굴과 어깨를 계속 깨물며 말했다.

“시끄러워… 가만히 있어. 오늘은 내 마음대로 할 거야….”

강동현이 귓가에 속삭이니 심장이 조이고 소름이 확 돋아 귀를 떼기 위해 가슴을 일으켰다. 강동현이 고개를 들어 황경호의 젖꼭지를 혀로 핥았다. 그대로 빨고 핥자 온 신경이 거기 쏠렸다. 황경호는 한 손으로 그의 머리카락을 쥐고 야한 신음을 잔뜩 흘렸다. 양쪽 다 퉁퉁 부을 정도로 빨렸다.

“아… 아…! 아응…! 아…! 하응… 아앙… 아으… 하아앙…….”

아까 두 번과 다르게 엉덩이가 많이 부드러워져서 아플 거라는 두려움은 어느샌가 사라졌다. 이제 아무 생각도 할 수가 없어졌다. 강동현의 위에 앉은 채 허리를 빠듯하게 세우고 두 손목을 붙잡혀 이리저리 휘청휘청, 아래에서 박는 대로 박히고 있었다. 눈은 뜨고 있지만 멍청하게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았다. 가끔 강동현의 야한 얼굴을 보았다. 그에 반해 강동현은 그런 그의 얼굴이랑 몸을 핥듯이 올려다보고 있었다.

“하아… 윽… 아… 진짜… 이쪽 봐….”

상대가 강동현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어떻게 저럴 수 있지 싶을 정도로 온몸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아, 진짜 좋다.’

강동현은 신음을 흘리며 퍽 소리가 날 정도로 한 번 강하게 박자 황경호가 엉덩이를 확 조이며 얼굴을 붉혔다.

“흐으응….”

중독될 것 같다.

저 신음소리도, 섹스도….

두 번이나 하고 나서야 뻑뻑했던 구멍이 쫄깃하고 맛있게 풀렸다. 착 달라 붙어오면서도 미끈했다. 느끼면 확 조이지만 자기가 더 감당을 못해서 움찔거리는데 그 느낌이 환상적이고 강렬하고 중독적이었다. 섹스란 게 이렇게 좋은 거였나? 죽을 때까지 할 수 있을 것 같다. 죽을 때까지 하고 싶다. 이 간호사랑은 서로의 것을 비비기만 해도 몇 분이나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는데 이건… 아, 이런 게 정말 세간에서 말하는 합이라는 걸까.

마주 닿는 피부의 느낌도. 고양이처럼 까슬한 혀도. 약간 거친 입술도. 말랑말랑한 뺨도. 부드러운 허벅지도. 감도가 좋은 가슴, 배, 손, 귀… 은밀한 곳의 조임과 점막이 닿는 느낌도. 싫은 것 같으면서도 야한 소리를 잔뜩 내는 것도.

모든 게 생각하던 것보다도, 기억나는 것보다도 좋았다. 꿈 같기도 하고 구름 위에 떠있는 것 같기도 했다. 하반신뿐만 아니라, 그냥 닿는 모든 부분이 소름이 끼칠 정도로 기분 좋았다. 숨결도 기분 좋았다. 눈빛도 기분 좋았다.

강동현은 그의 허리와 팔을 잡아당겨 입술을 맞추었다. 진짜 너무 좋아서 아랫배에 바로 힘이 들어갔다. 그의 엉덩이 한쪽을 주무르고 그의 뺨을 쓰다듬으며 입을 계속 맞추었다.

“흐으… 응… 아….”

그러면서도 계속 안을 찌르니 떨리는 신음을 흘리며 입술을 계속 떼려고 했다.

“왜… 키스해. 키스하자….”

그의 고개를 끌어당겨 계속 입을 맞추었다. 안의 촉촉한 혀를 계속 빨았다. 입술도 계속 빨고 그의 뺨도 깨물고 계속 빨았다. 피부가 맛있었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골반을 잡고 이리저리 휘저었다. 찌이걱찌걱 하며 야한 소리가 났다. 황경호가 민감하게 느끼며 입술을 뗐다. 다시 끌어당기지 않았다. 지금 그의 표정이 좋았기 때문이다. 참고 견디면서 느끼는 얼굴이 진짜… 더 괴롭히고 싶다.

그가 섹스에 익숙하지 않은 것도 알고 무엇보다도 강동현의 것을 몸에 넣는 거에 대해 얼마나 거부감을 가지는지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정신이 나갔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래도 거칠게 하지 않으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이번엔 술을 먹은 것도 아니니 저번과 다르게 몸이 굉장히 긴장되어 있는 게 이쪽에서도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더 많이 해서… 나랑 하는 게 익숙해졌으면 좋겠다. 해주고 싶은 게 너무 많아….’

강동현이 정념을 담은 눈으로 황경호의 얼굴을 핥듯 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황경호가 얼굴을 붉히며 빨갛게 부은 입술로 말했다.

“이제 그만해… 이 변태… 얼마나 더 할 생각이야?”

“몰라… 그러니까 그냥 얌전히 대….”

황경호가 인상을 찌푸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대로 얌전히 박혔다. 그가 다른 사람들이나 다른 상황에서 체념이 빠른 건 정말 싫은데 이런 데 체념이 빠른 건 미칠 것 같이 좋았다.

‘아, 더 세게 하고 싶다… 젠장… 근데 이건 뭐가 이렇게….’

앞의 두 번보다는 부드러워졌어도 아직도 손으로 꽉 움켜쥔 것처럼 조였다.

“후… 큭… 젠장….”

강동현은 황경호의 엉덩이를 잡은 손 중 하나를 떼서 황경호의 목덜미를 잡아 끌어당겼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대로 피스톤질을 유지하다가 강동현이 섹시한 얼굴로 사정을 하자 깜짝 놀라서 황경호도 칠칠치 못하게 흘리고 말았다.

“으으으응… 흐으… 응… 흐응….”

황경호는 속눈썹을 파르르 떨며 입술 사이로 신음을 가늘게 흘렸다. 하루에 이렇게 많이 사정하는 건 처음이었다.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엉덩이가 마음대로 움직인다. 뻣뻣했던 몸이 일순 허물어지며 강동현의 위로 쓰러졌다. 숨이 차서 헐떡거렸다.

‘죽을 것 같아… 더 못해….’

점점 할수록 더 기분이 좋아져서 이제는 쾌락이 죽음 같다. 짙고 무겁고, 자신이 없어지는 것만 같다. 한계였다. 그대로 크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강동현의 상체 위에 엎드려 멍청하게 몸을 떨며 후감을 느끼고 있었다. 쾌락이 너무 길었다.

‘안 끝나….’

그때 강동현의 손이 황경호의 얼굴을 덮었다. 엄지로 뺨을 쓰다듬고 귀를 만졌다. 목덜미를 부드럽게 주무르고 등을 쓰다듬더니 두 팔로 곧 꽉 끌어안았다.

실금을 할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황홀한 느낌이 들었다.

섹스라는 게 이런 거였나. 황경호는 강동현의 팔을 손으로 잡고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그에게선 향수와 체취가 섞인 향기로운 냄새가 났다. 계속 맡고 싶었다. 섹스하는 동안 엄청 긴장되어 있던 근육들이, 평소에도 긴장을 놓지 않던 부분들도 전부 노곤노곤하게 풀려서….

‘이대로 자고 싶어….’

황경호는 수면장애가 있어 항상 잠드는 게 고역이었다. 이렇게 자연스러운 졸음이 온 게 언제였나 싶었다. 아무런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대로 스르륵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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