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화 (14/47)

*

급작스럽게 병원을 관둔다고 하니 원장이 직접 꼬치꼬치 캐묻기 시작했다. 번창하는 병원의 비밀의 첫째는 의사의 의술이겠지만 둘째는 그 외의 서비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지금까지 좋은 퍼포먼스를 해내던 헌신적인 인재를 잃는 것은 뼈아픈 일이다.

“경호야, 월급이 적니?”

이강유가 진지하게 물었다. 황경호가 손사래를 쳤다.

“아뇨, 아뇨. 그런 거 아니에요.”

황경호는 웃는 얼굴로 말했다. 역시 진상 환자 때문인가. 이강유도 거짓 웃음에 아주 능통한 사람이었다. 거짓 웃음과 진짜 웃음을 전부 구분 지을 수 있다기보단 그저 사람의 웃는 얼굴 그 자체를 잘 믿지 않는다. 이강유는 굉장히 걱정스러운 얼굴로 황경호의 얼굴을 살폈다.

“다른 병원 갈 데는 구했어?”

“아뇨… 그냥 좀 쉴까 싶어서요.”

이강유는 잠시 황경호를 그렇게 보고 있더니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휴직으로 해둘게.”

“아니에요…! 그렇게까지 안 해주셔도 돼요. 이렇게 갑작스럽게 그만두는 것도 죄송한데….”

“다른 병원 구하면 다른 병원으로 가도 돼. 그때까지 휴직으로 해둔다는 거니까.”

“아니에요. 진짜 괜찮아요.”

이강유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경호 너 때문에 여기 오는 환자들도 진짜 많은데 다 나 좋으라고 휴직으로 하는 거니까 거기엔 더 이상 토 달지 말고.”

“…네….”

황경호는 고개를 조금 숙였다. 그렇게 얘기를 하다가 밖으로 나왔다. 황경호는 짐을 챙겨서 나왔다. 다들 마중을 나와 있었다.

“좀 쉬다가 금방 와, 알았지?”

오희연이 황경호의 등을 툭툭 두드렸다. 김형세가 웃으면서 어깨를 툭 쳤다.

“술 마시자.”

“나도.”

정기연이 손을 들었다. 조한나는 미리 준비한 것 같은 선물을 주었다. 황경호는 웃는 얼굴로 감사를 표했다. 기다리고 있던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렸다. 이강유가 황경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생 많았다. 잘 쉬고. 다시 오고 싶을 땐 언제든지 전화해. 알았지?”

데자뷰일까. 언젠가 이랬던 적이 또 있었던 것 같은데. 목소리가 부드럽다. 손이 따뜻했다. 황경호는 왠지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이유는 그때처럼 알 수가 없었다. 얼른 엘리베이터에 타서 1층을 눌렀다. 그리고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를 했다.

집은 저번에 곧바로 이사를 했다. 짐도 제대로 풀지 않아 박스가 여전히 쌓여 있었다. 거기에 병원에서 들고 온 짐까지 더해졌다. 휴대폰 번호도 바꿨다. 채팅앱도 전부 탈퇴하고 새로 가입했다. 병원 사람들과 몇몇 사람들에게만 새 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짐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꼬박 하루가 걸려 짐을 정리하고 나니 문득 자신이 얼마나 주말을 싫어했는지가 떠올랐다. 주말은 해야 할 일이 없는 날이었다.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런 날이 앞으로도 기약 없이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콱 막힌 듯 막막했다. 그나마 황경호가 우울함과 자신을 분리할 수 있었던 요소가 일뿐이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만두다니.

‘아니, 그만둘 수밖에 없었어… 직장이야 다시 찾으면 되니까.’

그렇게 좋은 사람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무작정 밖으로 나가 걸어 다니기 시작했다. 걷다 보면 한강에 가 있기도 하고 어느새 병원 근처에 가 있기도 했다. 집에만 있었다간 정말 또 죽을 자리를 찾으러 나갈 것만 같았다.

단 며칠만 해도 이런데.

“도대체 이게 뭔짓이냐….”

황경호는 커피숍 창가에 멍청하게 앉아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명수를 셌다. 정말 제대로 된 취미조차도 없는 그였다. 만화책을 읽기도 하고 게임을 하기도 했지만, 가만히 있으면 가슴이 불안하게 뛰었다. 플라스틱으로 된 컵에 꽂힌 빨대를 질겅질겅 씹다가 문득 맞은편에 올라가고 있는 새 광고판을 보았다.

“…….”

그걸 멍청하게 바라보고 있다가 홀린 듯이 스마트폰을 켰다. 그리고 새로운 화보 속의 남자가 나오는 영상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화면 속의 남자는 너무나 생생한 젊음과 생기로 빛나고 있었다. 아름다웠다. 속절없이 앉은 자리에서 그의 모든 작품들을 다시 찾아보기 시작했다.

‘<해결사>부터 띄엄띄엄 봤지… 그 인간 꼴 보기도 싫어서.’

그래도 동영상 클립 같은 건 못 이긴 척 보곤 하였다. 어딜 가도 저 남자가 안 나오는 곳이 없으니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스스로에게 변명을 했다. 예전에 열심히 활동하던 카페도 아주 가끔 생각 날 때 잠깐 들여다보는 정도로 활동도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할 게 없다.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해야 할 일도 이제 없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을 지속하는 것만큼 어려운 게 어디 있을까. 그럴 때 배우 강동현을 보는 것이야말로 도피처가 되어 주었었다. 항상 그랬었다.

그의 어떤 부분은 진짜 벽돌로 머리를 내리치고 싶을 만큼 싫은데, 그의 어떤 부분은 가끔 말문이 턱 막힐 정도로 동경심이 든다. 어떤 블로그 포스팅에 올라온 그 남자의 웃는 얼굴을 복잡한 마음에 가만히 보다가 다시 스크롤 하며 내려갔다.

‘그래, 이제 다시 만날 일도 없는데.’

그 뒤로 황경호는 강남역 앞 커피숍에 죽치고 앉아 강동현의 첫 작품인 <진주>부터 최신작인 <코드명: 울프>까지 전부 보기 시작했다.

방에 있으면 너무 답답하고 죽고 싶어질 때가 많아서 인구 유동량이 가장 많은 곳을 택했다. 사람들의 눈이라도 많으면 보통 허튼 생각은 나지 않으니까. 예능에다가 해외에 출연한 것까지 전부 검색해서 차곡차곡 다운로드를 받아두었다. 매일매일 커피숍의 가장 구석진 자리에서 이어폰을 낀 채 커피와 먹을 것을 잔뜩 시켜놓고 영상을 하나씩 보기 시작했다. 애인도 없고 과소비하는 습관도 없었으니 이 정도 백수 생활은 충분히 감당 가능했다.

열심히 보고 있다가 문득 휴대폰을 확인하는데 메시지가 몇 통 와있었다.

<이덕재 환자랑 도은혁 환자가 오빠 찾더라. 다들 모른다고 하기로 했으니까 걱정 마.>

황경호는 고맙다고 답장했다. 그리고 다시 영상에 집중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고 어린 주인공이 오열을 하고 있었다. 20대 초반의 강동현이 맡은 배역이었다. 소년과 청년의 느낌이 동시에 나는 풋풋한 강동현의 눈물은 애처로움과 분노가 여실히 느껴졌다. 어쩐지 그 주인공의 마음에 동화되어 가슴이 뜨거워진다.

그런데 그때 누군가 어깨를 두드렸다. 황경호는 강동현의 낮은 목소리가 읊는 나지막한 나레이션을 들으며 고개를 들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모두 죽었다. 나는 고아가 되었다.』

“황경호 간호사님?”

황경호는 귀에 꽂고 있었던 이어폰을 뺐다.

“…아… 이덕재 환자님….”

사람이 사회성이 없다는 것이 이렇게 치명적인 요소일 줄이야. 황경호는 지금까지 수많은 남성 환자들을 알고 지냈지만 정말 단 한 명도 밖에서 그를 ‘간호사’라고 깍듯이 부르며 아는 척을 한 적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남자에게 성적 결함이란 일종의 사회적 사형 선고가 아닌가.

“하하. 우연이네요. 요즘 병원에서 잘 안 보이시길래 무슨 일 생기신 줄 알았어요.”

“아, 네….”

게다가 날이라도 잡았는지 병원에서 그런 메시지가 오고 나서 바로 나타나다니. 커피숍 안에는 에어컨이 시원하게 가동되고 있는 상태인데도 이덕재는 땀을 뻘뻘 흘렸다.

“약속이라도 있으세요?”

“아뇨. 딱히….”

황경호가 그렇게 말하자 이덕재는 기쁜 얼굴로 반대쪽 자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그럼 여기 앉아도 돼요? 저도 약속 없는데!”

이덕재의 큰 소리에 사람들이 돌아보았다. 황경호는 그가 좀 부끄러웠다. 그리고 곧바로 그렇게 생각한 것이 미안해졌다.

‘딱히 이쪽도 잘난 거 하나 없는데… 그래, 자리도 별로 없는 것 같고.’

“네. 앉으세요.”

“하, 하던 거 있으시면 마저 하세요.”

그렇게 이 뚱뚱한 게이 환자가 앞에 앉자, 그의 말과는 다르게 황경호는 더 이상 하던 일에 집중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그가 계속 말을 걸었기 때문이다.

“강동현 좋아하세요?”

“…아뇨.”

그리고 첫 질문부터가 사람의 신경을 건드리는 말이었다. 물론 저쪽은 모르고 한 말이겠지만, 황경호로서는 이골이 나는 질문이었다.

“계속 강동현 부분만 돌려 보시는 것 같은데….”

눈치가 있는 다른 사람들은 이 정도의 분위기만으로도 상대가 이 주제를 이어나가고 싶은지 아닌지 정도는 알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황경호 본인이 직장에서 환자들의 유리멘탈을 섬세하게 케어하는 일을 했기 때문에 더 그쪽으로 민감하기도 했다. 하지만 황경호는 이덕재에게 이유 모를 굉장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어 이덕재를 제대로 상대하지 못했다.

“아뇨. 그냥 이 드라마를 좋아했어요. 아, 뭐 다른 말씀 하실 거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나중에 보죠, 뭐.”

“아, 진짜요? 헤헤. 그럼 병원은 그만두신 거예요?”

황경호는 그냥 미소를 지었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아, 그런 건 아니구요. 일단은 휴직 상태인데… 아직 결정된 건 없어요.”

“아, 왜 휴직하신 거예요?

“대학교 졸업한 이후로 일만 하고 산 거 같아서요.”

미국에서는 Don’t judge라는 말을 자주 쓰던데, 그 말인즉슨 결국 사람들은 타인을 바라볼 때 언제나 자체적인 판단을 한다는 것이다. 그 사람이 어떤 종류의 사람인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혹은 사회적으로 어느 위치에 있는 사람인지.

그리고 그것은 본능적인 것이었다. 이 사람이 자신에게 해가 되는 사람인지 아니면 좋은 사람인 건지 제대로 판단을 하지 못한다면 원시시대에서는 제대로 살아남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문명사회라고 해서 다른가?

하지만 착함이라는 이름으로 변장한 순종이 제일의 미덕으로 여겨지는 나라에서 어떤 이들은 자신의 경계 본능을 죄악처럼 여기기도 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소위 그런 사람’처럼 된 것 같아 죄책감이 들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겉모습이 강해 보이거나 성격이 있어 보이는 사람을 겉모습에 판단하는 것에는 그들도 크게 무리를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누가 보아도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거부감에는 죄악감을 느낀다. 가장 불쌍한 자를 사랑하라. 도덕책은 그렇게 가르치니 말이다. 사실 판단은 누구나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후로 이덕재는 커피숍에 항상 왔다. 모르는 척 커피숍을 바꾸었더니 또 어느샌가 우연히 만났다. 언제는 집 근처에서도 만났다. 이상하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어떻게 설명할 수는 없었다. 설명을 하려고 하면 또 죄책감이 드니까 말이다.

만나면 끈질기게 질문을 하거나 아니면 자신의 얘기만을 끊임없이 했다. 병원에서나 일상에서나 대하기 껄끄러운 사람이라는 것은 잘 알겠다. 황경호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이상형, 근황 등을 끊임없이 묻고 자신의 생각과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 근황을 묻지도 않는데도 끊임없이 말했다. 이덕재가 일상을 흐트러뜨리는 덕분인지 다른 생각은 나지 않는다는 게 좋은 점일지도 모르겠다.

『어째서 너일까….』

사람의 열등함은 사람의 우월함만큼이나 사람의 눈길을 잡아끄는 거 아닐까? 문득 강동현이 나오는 동영상을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물론 열등함이라는 단어를 생각한 것은 조금 죄책감이 들었지만… 예전 배우 강동현에게 한창 빠져 있었을 때 그의 연기에 대한 글도 쓰고 그의 인터뷰에 대한 생각을 적어서 커뮤니티에 올리기도 했다. 그런 것처럼 이덕재에 대해서도 분석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 신기했다.

우월함은 배우고 싶어 관찰을 하게 되고 열등함은 피하고 싶어 관찰을 하는 것이다. 황경호는 그런 간단한 것조차 ‘도덕’이나 ‘예의’, ‘착함’ 등의 우리에 갇혀 바로 알아차릴 수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신과 다른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달라도 이해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애초에 다르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곧잘 부정한다. 상식, 규범, 건강한 정신 상태를 기본으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이해라는 것도 가능한 것이지 그중 하나라도 벗어나면 결국엔 이해를 못 하는 게 타인이지 않은가?

황경호는 이덕재를 억지로 상대하다가 겨우 벗어나서 김태형의 가게로 향했다. 그는 언제나처럼 따뜻하게 황경호를 맞아주었다.

“너 요즘에 쉬더니만 오히려 밥도 잘 안 챙겨 먹고 그러는 거 아냐? 가게 와. 밥해줄게.”

김태형이 말했다.

“살이 빠지진 않는 거 같은데….”

황경호는 자신의 얼굴을 만져보았다. 가게에는 오랜만에 왔다. 여기도 강동현이 알고 있어서 좀 오기가 망설여졌는데 그렇다고 아예 안 볼 수는 없는 사람들이지 않은가. 그가 오지 않을 것 같은 시간을 골라서 왔다.

“너 강동현이랑 진짜 무슨 일 있냐? 정말 너 한 번 찾으러 왔더라.”

병원도 그만두고 집도 바꾸고 휴대폰도 바꾸고 하면서 김태형에게 연락을 할 때 미리 얘기를 했었다. 누가 물어보든 자신에 대해서 말하지 말아 달라고. 김태형도 물장사가 몇 년이니 눈치빨로 금방 그 대상이 강동현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유는 알 수 없는 노릇 아닌가.

“뭐… 가르쳐줬어?”

“아니 아니. 니가 절대 말하지 말라고 했으니까 나도 신현이도 모른다고 했지. 그러니까 딱히 별로 더 물어보지 않고 술 한잔하고 가더라.”

“다행이네.”

“싸웠어?”

“아니….”

김태형은 아주 아리송한 얼굴로 황경호를 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황경호가 물었다.

“왜?”

“아니… 진짜 너랑 강동현이랑 무슨 사이인가 싶어서… 친구 아냐?”

딱 봐도 이상하지 않은가. 전화번호 바꾸고 이사를 가고 일을 그만둔 것도 어쩐지 강동현 때문인 것 같은 눈치인데. 또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 이상하고.

“아, 별거 아냐, 진짜.”

확 사실대로 말해버릴까 보다. 환자라고.

‘근데 그렇게 말해도 이상하지….’

황경호는 그냥 술을 한 모금 들이켰다. 김태형이 진지한 얼굴로 황경호를 보았다.

“너 설마… 강동현한테 돈 빌렸니?”

“뭐라고?”

황경호가 어이가 없어서 그를 올려다보자 김태형이 머쓱한지 고개를 돌렸다.

“아니면 말고.”

김태형은 음식을 하다가 아, 하고 물었다.

“맞다. 그리고 좀 이상한 사람이 와서 너에 대해서 물어보던데… 그냥 모르는 척했어.”

“응? 또 누가?”

“왠지… 니가 그때 말했던 환자인가 싶던데.”

“응?!”

환자가 밖에서 내가 아는 사람을 아는 척했다고? 여기서 식별되지 않는 환자들 얘기를 많이 했다 보니 처음에는 누군지 가늠이 가지 않았다.

“아니… 살찌고 여드름 많이 나고 안경 쓴… 왜, 니가 진짜 사회성 떨어져 보이는 환자 하나 있다고 했잖아.”

“뭐? 그 환자가 여기를 왜… 근처에 사나?”

“그런가 보지.”

“아니… 진짜 미쳤다. 아무리 밖에 안 나오는 사람이라지만 부끄러울 텐데….”

이해하려고 노력해도 이해가 안 된다… 오늘도 마주친 사람이라 그런지 굉장히 안타깝다. 사회성이 없다는 수준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어째서 그렇게 자기 파괴적이게 되는 거지? 그런 짓만 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데 크게 문제가 되진 않을 것이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데… 왜….”

사람이라는 종이 나온 지도 몇백만 년이 흘렀는데 말이다. 황경호가 마치 자기 일처럼 한숨을 깊게 쉬자 김태형이 힐끗 보았다.

“왜.”

“아냐.”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하고 애정을 원하면서 도리어 사람들이 싫어하는 짓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차라리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하기 위해서 그러는 거라면 이해라도 되는데.

“사람들이 다 강동현 같은 건 아니니까.”

“응?”

황경호가 되물었다. 김태형은 딱히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

어쨌든 명목상으로야 좀 쉬려고 일을 쉬고 있는 것이고 그 쉬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게 만든 환자 중 한 명이었던 이덕재가 이유야 어떻든 계속 마주치게 되니 굉장히 부담스러웠다. 우연히 마주치는 거라 보기엔 이상했지만, 뭐라고 말하기도 애매했다.

“저….”

결국 황경호는 이덕재의 얼굴을 보자마자 한숨이 나왔다. 벌써 3주째였다. 다 지나와서 그런 것일지 모르겠다만 어쩐지 강동현보다도 더 스트레스를 받는다. 적어도 강동현은 눈치도 있고 말도 통했다. 더럽게 사람 말을 안 들어서 그렇지. 의사소통 자체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는 게 얼마나 피곤한지 병원 외에서 이렇게 느끼게 된 것은 오랜만이었다.

“아, 네! 간호사님. 하실 말 있으세요?”

게다가 볼 때마다 점점 사람이 이유 없이 흥분 상태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방방 뛰는 느낌? 어쩐지 무섭기까지 하다. 차분한 성격의 황경호로서야 애초에 맞지가 않았다. 황경호는 결국 마음을 잡고 말을 꺼냈다.

“저… 혹시 저한테 무슨 하실 말씀 있으신가요? 벌써 2주 넘게 거의 매일 우연히 만난다는 것도 이상하고… 제가 혹시 뭐 실수한 거 있나요?”

“네? 아, 아뇨아뇨! 그런 거 없으세요 . 진짜 우연히 만난 건데. 우연히….”

“밖에서는 환자분을 마주치기만 해도 굉장히 죄송해서… 모르는 척하고 지나가는 게 예의라고 배웠거든요.”

“네? 왜요?”

“아… 일단 저희 병원이 남자들이… 그런 문제로 많이 오는 곳이니까….”

“아, 저는 괜찮아요. 어차피 아는 사람도 없을 텐데요. 걱정 마세요.”

돌려서 말해도 전혀 먹히지가 않았다.

“그리고 저도 쉬게 된 게 혼자서 할 생각도 있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 건데… 음….”

“아… 저 진짜 조용히 잘 있을 수 있어요. 말 안 걸고 간호사님 생각하시는 거 방해하지 않게 조용히 있을게요.”

황경호는 정말 답답하다고 생각했다. 더이상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집 밖에 안 나와야겠다…’

황경호는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이덕재가 자기가 한 말이랑 다르게 계속 주절주절 떠들어대는 걸 상대하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 그냥 집에서 보자, 집에서. 열심히 카페에다 글 올리고 하다 보면 괜찮겠지.’

황경호의 집은 사람 한 명 살기에 그렇게 크지도 좁지도 않은 크기의 원룸이었다. 창문은 작았고 물건이 없어서 그렇게 좁아 보이진 않았다. 황경호는 탁상 위에 노트북을 올려놓고 침대에 기댄 채 동영상을 보고 있었다. 아마 이쯤이면 거의 다 보지 않을까 했는데 이덕재 때문에 아직 <서리>를 보고 있었다. 보다가 어떤 생각이 들 때마다 메모지에다가 생각을 적었다. 드라마에 대한 생각도 있었고 강동현에 대한 생각도 있었고 자신에 대한 생각도 있었다. 주인공들의 행동을 분석하기도 했고 이렇게 살아야겠다 저렇게 살아야겠다, 이런 생각도 적었다. 예전에는 받지 못하는 감동이 이는 부분도 있었다.

“얼굴이랑 목소리가 역시 중요하구나….”

항상 강동현의 전달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역시나 얼굴이랑 목소리였다. 잘생긴 것도 잘생긴 거지만 표정의 움직임, 상대와의 커뮤니케이션… 자기 자신과 연기를 같이하는 상대를 잘 이해하고 거기에 화면을 통해 보고 있을 제삼자까지 이해하지 못한다면 저런 연기는 나오지 못할 것이다. 연기를 하는데 있어서도 저렇게 사회성이 중요한 것이다. 사람이 하는 일은 모두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었다. 어디도 사회성이 중요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렇게 며칠 집에 있었더니 역시나 기분이 좋진 않아서 산책이나 할 겸 밖으로 나왔다. 오랜만에 한강이나 걸을까 했다. 빌라에서 나와 지하철 쪽으로 걸어갔다.

“황경호 간호사님!”

누군가 부르는 목소리를 듣고 소름이 돋았다. 황경호가 돌아보자 이덕재가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왔다.

“그동안, 헥헥, 왜 안 나오셨어요. 걱정했잖아요.”

“…….”

황경호는 여기서 드디어 조금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지금 이 사회성 떨어지는 사람이 이상할 정도로 그에게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저 많이 생각했어요. 간호사님 안 나올 동안에… 제가 또 시간을 너무 끌었구나.”

“네?”

“다, 다른 사람들은 사람을 첫인상으로만 판단하고 무시하고 그러는데 황경호 간호사님은 그런 거 없으신 거 같아서 정말 개념 있으신 것 같아요. 자, 잘 웃는 것도 좋구요. 사람 보면서 인상 찡그리는 사람들이 제일 싫거든요. 사람을 외모로만 판단하고… 그러는 사람 너무 많아서 진짜 밖에 나가기도 싫었는데 황경호 간호사님 때문에 이렇게 밖에도 매일같이 나와요.”

이덕재는 언제나처럼 자신의 말만 하기 시작했다. 황경호는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저 정말 지금까지 죄 한 번 지은 적 없구요. 법 잘 지키고 살았구요. 밥 같은 것도 안 가리고 싼 것도 잘 먹어요. 김밥천국도 좋구요. 백종원 가게도 사치라고 생각해요. 비싼 선물이나 그런 것도 하나도 안 바라구요. 외모도 엄청나게 예쁘거나 잘생길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고… 아니, 간호사님 정도면 평타 이상이죠. 아니, 진짜 예쁘다고 생각해요. 제 눈엔 진짜 백의의 천사예요.”

“네?”

이덕재는 황당한 얼굴이 된 황경호는 전혀 눈에 보이지 않는지 뚱뚱하고 늘어진 살을 바들바들 떨며 얼굴을 벌겋게 하곤 멋대로 고백했다.

“그래서 그런데… 저, 저랑 사귀실래요?”

“…….”

뜬금없는 고백이란 사회성 없는 남자의 전매특허라도 되는 것일까. 황경호는 황당해서 뭐라고 말해야 할지 감을 못 잡다가 대답했다.

“저 남자 안 좋아합니다.”

황경호는 공격적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말했다. 하지만 상대는 바로 공격적으로 변했다.

“편견 없으시다면서요! 저 착한 사람 같다면서요!”

“그렇다고 이성애자가 동성애자랑 사귀진 않습니다.”

“우리나라 남자들 대부분 다 게이 끼가 다들 있어서 적응되고 나면 다들 결국 좋아해요.”

“그건 그 사람들 얘기고 전 아니에요.”

황경호는 그렇게 말하며 그냥 지나가려고 하자 이덕재가 바로 표정을 바꾸며 약간 비굴해졌다.

“저 진짜 잘해드릴 수 있어요. 어차피 애인도 없으시잖아요. 시험해본다고 생각하고 만나보셔도 되잖아요. 손해 보는 것도 아니고 사귀어보지도 않고 함부로 남 판단하는 건 나쁜 거라고 생각해요.”

상대에게 선택과 거절의 권리가 있다는 걸 무시하는 건 도대체 잘난 남자나 못난 남자나 똑같다. 강동현과 이덕재를 생각하면 어떻게 그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싶었는데도 자기 파괴적이라는 공통점을 찾아낸 것처럼, 이번에도 똑같은 점을 찾아낼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황경호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곤 다시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 이후로 진정한 스토킹이 시작됐다.

*

직장을 그만뒀다. 집도 옮기고 전화번호도 바꿨다. 아는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대놓고 모르쇠다. 강동현은 그 간호사가 자신을 피하기 위해 이렇게까지 했다는 것에 대해 약간 충격을 먹었다.

서로 유구한 역사가 있고 싸우기도 많이 싸웠었다. 하지만….

‘그래도….’

강동현은 머리가 아파 오는 게 느껴졌다. 그때는 정말 그러는 게 아니었다. 그로서는 드물게 후회를 했다. 그때 그 간호사 집에서 술을 같이 마시자고 했을 때는 당연히 그 간호사를 만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저번에 한창 싸우고 팬티만 공급해주기로 합의를 봤지만… 상상과 손으로만 하는 것은 정말 어쩔 수 없어 하는 것이지, 오히려 하면 할수록 갈증이 일었다. 게다가 시간이 지나니 두 번에 한 번 정도는 팬티로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팬티로도 자위가 힘들어졌다. 어쨌든 그런 것들도 그 간호사라는 본체가 있어야 어느 정도 소용이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꼬시러 간 건 맞다.

하지만 강동현도 황경호와 엄청 싸우면서 1년 반을 살았으니 아무리 더럽게 제멋대로 사는 인간이라지만 황경호가 진짜 폭발해서 한강에 달려가게 만들지 않을 정도의 각은 잴 수 있게 되었다. 황경호가 자기한테 휘둘리며 체념하는 걸 즐기는 면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가 너무 땅을 파고 들어가 우울에 젖어 있을 때는 덮칠 수가 없게 되었다.

처음에는 일방으로 마구 그 간호사를 괴롭혔지만, 지금도 일면은 여전히 그렇지만, 그래도 한 번 같이 하고 나니 그때부터는 같이 하고 싶었다.

언제나 깔끔을 떨어대는 그 간호사가 어쩔 줄 몰라하며 강동현의 손에 사정하는 게 좋았고 평소에는 전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야시시해지는 게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같이하면 말 그대로 다리가 풀릴 정도로 좋았다.

그날 밤은… 술을 먹어서 그런지 반항도 하지 않고 가만히 강동현의 얼굴만 보고 있었다. 뭔가 굉장히 혹했고 너무 괴롭히진 말아야겠다고 생각은 했다(그래, 인정한다. 안 건드릴 생각은 없었다. 천하의 죽일 놈이다).

병원에서 서로 치고받고 땅을 뒹굴면서 어떻게든 흥분시켜서 빠르게 해치워야 하는 것도 나름의 스릴이 없다곤 할 수 없겠지만, 기본적으로 강동현은 굉장히 느긋하게 섹스를 하는 스타일이었다. 상대방과 교감하며 오랫동안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게 좋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 간호사랑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지만… 어쨌든 누가 들어오거나 큰 소리 날까 봐 걱정할 필요 없이 하는 것이었다. 술 먹은 사람을 건드리는 것에 대해 약간 찔리긴 했지만, 어차피 평소에도 강동현은 그에게 엄청나게 강압적이지 않은가. 강동현은 스스로가 이해받을 수 있는 정도(?)를 충분히 각을 잴 수 있었다. 평소에 하던 정도면 이 간호사는 강동현보다 스스로를 탓할 것이 분명했다.

처음엔 바지를 벗기고 챙겨온 Y백 팬티를 입혀서(?) 무릎 위에 앉히고 키스를 잔뜩 하며 서로의 성기를 맞대어 만졌다. 강동현을 때리지 않고 선 건 처음이었다.

[아… 좀 깨물지 마. 아프잖아….]

[하… 윽… 그냥 마음대로 하게 해줘….]

[흐… 응… 아응… 하… 만지지… 아아응….]

[기분 좋아? 응? 하아… 난 기분 진짜 좋아….]

그렇게 서로 한 발씩 하고 황경호는 축 늘어졌고 강동현은 습관대로 그런 상대를 꽉 안고 마음대로 지분거렸다. 죄다 물어뜯었다. 여자친구에겐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한 번 더….]

저번 강동현의 아파트에서도 2번은 했다. 강동현은 이때까지만 해도 여전히 각을 재고 있었다.

[하아… 으응… 드라마에선 그렇게 멋있는 주제에… 진짜 병신 같아.]

황경호가 중얼거렸다.

[뭐?]

황경호는 술과 쾌감 때문에 어깨까지 빨갛게 되어서는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강동현은 잠깐 서로의 것을 쥐고 흔드는 걸 멈추고 황경호의 얼굴을 보았다. 강동현은 장난기가 들었다.

[그래서… 내가 멋있게 해주길 바래?]

약간 목소리를 낮게 깔면서 촬영장에서 상대 배우를 바라보듯 그윽하게 바라보아 주었다. 황경호는 별말이 없었다. 다만 입을 꾹 다물고 약간 초조한 표정이 되었다. 강동현은 그게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아주 조금만 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응… 아아앙… 응… 하… 윽…! 아, 잠깐…!]

엉덩이를 말랑말랑 주무르다가 기회를 봐서 쑥하고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황경호가 깜짝 놀라 그의 손을 잡았다. 강동현은 음흉하게 웃으며 그의 뺨을 핥아 올렸다. 질색을 했다.

[아…! 이 변태! 고자, 색마! 임포! 손가락…! 우앗…!]

강동현이 황경호의 것을 한 손으로 잡아 간지럽히듯 어루만지고 다른 손의 중지로 황경호의 엉덩이를 마음대로 쑤셨다. 황경호가 두 손으로 엉덩이 쪽의 팔을 잡았다. 그러니 온몸이 강동현에게 오픈되는 듯한 자세가 되었다. 강동현이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손가락 정도는 괜찮잖아….]

강동현은 황경호의 귓가에 바람을 불어넣으며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그의 팔에 소름이 돋은 게 느껴졌다. 역시 그의 목소리를 좋아하는 것 같다.

[사실 나 니 취향이지?]

[…….]

아, 또 이 표정… 젠장. 어쩐지 마음이 뜨거워진다. 강동현은 초조한 듯한 얼굴의 황경호를 끌어안고 입을 맞췄다. 그대로 앞뒤를 마구 만지니 몸을 심하게 움찔거리며 예민하게 반응했다.

하아… 괴롭히고 싶어. 울리고 싶어. 마음대로 하고 싶어. 기분 좋아지고 싶어. 기분 좋아지게 해주고 싶어. 기분 좋아….

그렇게 계속 만지니 황경호가 급하게 강동현을 밀어내며 입술을 떼었다. 그리고는 자기가 무슨 표정을 짓는지도 모르고 자기가 무슨 소리를 내는지도 모르고 다급하게 말했다.

[하아앙…! 아…! 싫어. 하읏. 싫어. 싫어 싫어. 그만해. 아응…! 마음대로 만지지 마…! 으아앗…! 변태… 흐응…! 아, 거기 싫어어… 엉덩이 만지지 마… 하읏! 만지지… 아앙… 안 돼. 안 돼. 갈 것 같아. 하아. 어떡해… ! 그만해… 흐읏… 아…!]

한 손으론 안을 마음대로 만지는 강동현의 팔뚝을 잡고 한 손을 강동현의 어깨를 꽉 쥐었다. 얼굴이 점점 더 빨개지더니 한순간 엉덩이를 앞으로 강하게 움츠리더니 사정하기 시작했다.

[아아아아앙….]

[!]

황경호는 특유의 신음을 내면서 하얀색 체액을 녹진녹진 흘려댔다. 사정을 하면서 강동현의 손가락을 얼마나 꽉 조이던지… 강동현은 생각할 틈도 없이 온몸이 화끈하고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아, 넣고 싶어.

처음에는 그냥 손이든 발이든 싫어하든 그냥 빼주는 것만으로도 장난 아니게 정신이 나갔다. 마약이라도 맞으면 그런 느낌일까 싶었다. 입을 맞추면서 하면 더 좋았다. 스마타를 하면 더 좋았다. 처음으로 넣었을 땐 정말로 싫어하는 걸 강제로 하는데도 멈출 수가 없었다. 그 뒤에 함께 느낄 수 있게 되었을 때는 더 좋았다.

함께 느끼면서 넣고 싶어.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싶어. 안에다 사정하고 싶어. 입에도 여기에도 전부 가득 찔러넣어 괴롭히고 싶어.

가슴이 찌르르 떨렸다.

강동현은 황경호를 꽉 끌어안고 있다가 너무나 더워서 티셔츠를 벗어서 던졌다. 온몸에 뜨거운 땀방울이 흘렀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게 느껴졌다. 숨소리가 점점 더 거칠어졌다.

[아… 니가 나 죽이려고 할 텐데….]

신음처럼 중얼거렸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어깨에 얼굴을 비볐다. 그러면서 서로의 하체를 가득 맞붙였다. 강동현의 남성기는 황경호를 잔뜩 만지면서 팽팽하게 커져 있었다. 상대의 엉덩이 사이로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시듯 문질렀다.

[하아… 야… 나 진짜 넣고 싶어….]

[싫어… 절대 싫어.]

황경호는 금방 사정하고 여전히 몸을 떨며 느끼고 있는 주제에 그렇게 말했다.

[그냥 넣어버릴 것 같아. 윽….]

[싫어… 진짜 넣으면 죽여버릴 거야….]

살면서 이 정도로 성적 충동을 느꼈던 적이 있을까. 정말로 본능이라는 것이 온몸을 지배한 느낌이었다. 강동현은 인상을 심각하게 찌푸리고 황경호의 촉촉해진 등허리를 마음대로 만지며 그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체취를 맡았다. 그리고 두 손이 결국 상대의 엉덩이 두 짝을 꽉 쥐었다.

[윽… 하… 거짓말… 너 진짜…!]

[하아… 미안….]

강동현이 한 손으로 황경호의 엉덩이 한쪽을 옆으로 크게 벌렸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자신의 대물을 잡아 입구에 질척하게 문질렀다. 그리고는 곧, 꾹 하고 남성기의 끝으로 거기를 눌렀다.

[아…! 잠깐만… 흣….]

연약한 살이 눌리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 강동현의 것은 역대급으로 커져 있었다. 황경호의 손이 그렇게 큰 편은 아니었지만 한 손에 절대 안 잡힐 것 같은 굵기다.

[안 들어가, 이 변태…!]

[그런 말 하지 마. 흥분되니까… 안 다치게 하려고 조심하는 거잖아.]

[뭐라는 거야… 하읏… 거긴 그러라고 있는 게….]

[아… 젠장….]

강동현은 몹시나 초조해져서 결국은 힘을 주어 강하게 끝을 넣어버렸다.

[아아앗…!!]

황경호는 부들부들 떨며 강동현의 어깨를 꽉 쥐었다.

[아… 큭… 아파. 너… 윽… 너무 조이잖아…!]

제일 민감한 귀두 부분이 입구에 걸려 강하게 조여졌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가슴과 성기를 다시 만졌다. 아파서 인상을 잔뜩 찌푸린 채 황경호의 귓가에 얼굴을 묻고 신음을 흘렸다.

[긴장 좀 풀어… 기분 좋게 해줄게.]

[니가 기분 좋으려고… 하앗… 하는 거잖아…앗….]

[아냐… 같이 해….]

강동현은 나직하게 속삭이며 황경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뺨을 쓰다듬고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만지니 다른 곳을 애무하는 것과 달리 긴장이 풀리는 게 느껴졌다. 강동현은 아주 천천히 황경호의 엉덩이 사이로 자신의 남성기를 끝까지 밀어 넣었다.

*

[아앙…! 하…! 싫어… 이 변태…! 아으우…! 기분 나빠아… 아아앙…! 빼…!!]

[후… 큭… 아, 젠장. 아윽…!]

강동현이 황경호를 꽉 끌어안자 황경호의 엉덩이가 들리며 그의 다리가 강동현의 어깨 위로 올라갔다. 그대로 입을 맞춘 채 강하게 허리 짓을 하자 싸구려 침대가 심하게 삐걱거렸다.

[아! 안…! 흣! 싫…! 앙!]

[입 벌려. 젠장. 입 벌리라고.]

강동현은 입맞춤을 거부하는 황경호의 입술을 강제로 벌리고 혀를 밀어 넣었다. 그러자 허리를 움찔하며 황경호의 안이 강동현의 대물을 조였다.

[하… 크윽… 음… 후… 윽….]

[아… 안 돼… 흑. 싫어…! 아. 아앗. 아아아아앙….]

이 애처로운 신음은 진짜 중독될 것 같다. 황경호는 강동현에게 짓눌린 채 몸을 뻣뻣하게 긴장하며 저도 모르게 자신의 몸에 들어온 것을 강하게 조였다. 강동현은 무지하게 섹시한 신음을 흘리며 황경호의 안 가장 깊숙이 자신을 박고 그대로 사정했다. 둘은 숨을 멈추고 서로를 가득 맞물린 채 엄청난 쾌락의 파도를 맞이했다. 강동현의 엄청난 쿠퍼액과 사정액으로 황경호의 그곳은 흐물흐물하고 질척질척하게 변했다. 강동현은 여전히 사정하는 채로 황경호를 꽉 끌어안고 있었다. 황경호도 애달픈 숨소리만 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몸을 떨고 있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있는 것 같았다. 그냥 그 순간, 그때만은. 착각일지도 모른다. 그냥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른다.

[한 번 더….]

[앗….]

한참을 절정에 정신를 못 차리다가 강동현이 다시 몸을 움직였다.

그렇게 뭐가 뭔지도 모를 엉망진창인 섹스를 밤새도록 했다. 밤새도록 한 것은 처음이었다. 애초에 강동현은 덩치도 크고 키도 커서, 전 여자친구도 작은 키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밤새도록 강동현을 상대할 수 있는 체력은 아니었다. 그리고 여자친구와는 굳이 그렇게 많이 하지 않아도 충분히 마음과 몸의 교감이 가능했다. 그 이상으로 무리해야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황경호와 할 때처럼 강제적으로 한 적은 맹세코 단 한 번도 없었다.

처음 두 번 동안 그 간호사는 울고불고 애원하고 소리치고 욕하고 때리고 매달려서 신음하고 사정했다. 뒤에 두 번은 지쳐선 다리를 벌리고 강동현에게 얌전히 박혔다. 마지막엔 강동현도 하고 기절했다. 일어나니 해가 중천이고 아무도 없었다.

‘그래… 당연히 싫어할 거라는 건 알았는데… 화낼 거라는 것도 알았는데….’

기억을 못 할 줄이야… 변명조차 할 수가 없었다. 차라리 기억을 했더라면 좀 더 뻔뻔하게 굴었을 거 같은데. 기억을 못 한다니 갑자기 맥이 빠졌다. 지금까지 한 번도 후회를 안 했는데 후회가 되었다. 나쁜 짓을 했다. 찝찝하고 초조하고 미안한데 뭔가 왠지 모르게 섭섭하기도 한 것 같다.

그런데 변명할 기회 한 번 주지 않고 이렇게 사라져버린 것이다. 사라져버렸다. 명백하게 만나기 싫다는 의사만 여기저기 전해놓고.

‘결국엔 나랑 하는 거 기분 좋아했으면서.’

그날 밤이 이렇게나 강동현을 사로잡고 있는데 그저 이렇게 없었던 일에, 오히려 상대방은 기억도 하지 못하고 불쾌해하며 일도 집도 다 버리고 질색을 하며 도망가버렸다. 싫어하고 질색을 할 거라는 걸 알았는데도 충격이다. 기억을 못 하는 게, 그리고 이렇게 그가 보기 싫어서 도망쳐버렸다는 게.

‘이제 진짜 끝인가….’

몇 번이고 생각했었다. 그래,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한다. 그 간호사랑은 이제 인연을 끊자. 이쪽에서도 그를 만나고 나서 몇 번이고 생각했던 것이었다. 근데 근래엔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앞으론 정말 못 만나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짜증이 몰려왔다.

‘그래도 사람이 변명할 기회는 줘야 할 거 아냐. 그래도 지랑 나랑 지금까지… 그 정도는 마지막이라도 괜찮잖아.’

그래서 염치불구하고 병원에 또 갔다. 그리고 그 간호사랑 친해 보였던 남자 간호사에게 물었다. 이번이 한 세 번째였다.

“진짜 진지하게 할 말이 있어서 그러니까 황경호 간호사 전화번호만 좀 압시다.”

그러자 남자 간호사는 아주 난처한 얼굴로 강동현을 바라보았다.

“저번에도 말씀드렸듯이 직원의 신상은 가르쳐드릴 수 없습니다.”

“아, 진짜 딱 한 번만 연락하고 연락 안 한다구요. 진짜 내가 할 말이 있어서 그렇다니까?”

김형세는 절절매면서 강동현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러자 제일 연장자인 오희연 간호사가 와서 강동현을 상대했다.

“아실 만한 분이 왜 이러세요, 정말… 경호가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해서 잠깐 쉬다 올 거에요. 그때까지 기다리시는 게 그렇게 어렵습니까?”

나이가 많은 상대가 오니 약간 밀린다. 강동현이 한숨을 쉬며 선글라스를 벗었다.

“다른 게 아니라 사과할 게 있어서 그래요. 그 이후로는 더 이상 그 간호사한테 집적… 아니… 귀찮게 굴 일 없을 겁니다.”

그러자 김형세와 오희연이 서로 마주 보며 눈빛을 나누었다. 오희연이 한숨을 쉬더니 휴대폰을 꺼냈다.

“이덕재 환자도 그렇고… 진짜 경호가 고생이 많았구나.”

“아, 오 간호사님도 들으셨어요?”

“응. 경호 어떡하냐….”

강동현은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하는 두 사람이었다. 오희연은 포스트잇에다가 황경호의 번호를 적어주었다. 강동현이 얼른 받아가려고 하자 포스트잇을 자신의 쪽으로 다시 휙 가져왔다.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상식 있는 분이시니까 이럴수록 도은혁 환자님께 피해갈 수도 있다는 거 잘 아실 거예요. 이강유 선생님 큰 환자분이시라고 직원들 괴롭히고 그러는 거 묵과하시는 분 아니시구요. 경호가 하도 착해서 별일 아니라고 괜찮다고 계속 그래서 저희도 가만히 있는 겁니다.”

“…….”

강동현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과하신다고 하니까 드리는 겁니다. 애 더 스트레스받게 하지 마세요. 그리고 앞으로 약속하신 대로 경호 더 이상 괴롭히지 마시구요.”

그리고 나서야 오 간호사가 강동현에게 연락처를 넘겨주었다.

“애가 날이 갈수록 피골이 상접하는게 다 도은혁 환자 때문인 거 다 압니다.”

뭘 알겠냐만, 강동현은 굉장히 뜨끔했다. 강동현은 선글라스를 끼고 연락처를 주머니에 넣고 일어났다.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진짜 이 병원도 다시는 못 오겠다. 차에 타자마자 연락처를 꺼내서 다이얼을 눌렀다. 그리고 통화버튼을 누르려는데, 누를 수가 없었다. 마지막… 한숨을 푹 쉬면서 핸들에 잠깐 이마를 대고 있었다. 잠깐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 정처 없이 운전을 했다. 전화가 왔다.

“응, 형….”

[어디냐, 은혁아.]

“운전 중.”

[<타임리스> 크랭크인 날짜 확정됐다. 10월 3일.]

“아, 그래? 한 달 남았네. 그동안 광고 다 찍을 수 있으려나.”

<코드명: 울프> 이후로 국내 커머셜 광고 8편이나 찍었다. 해외 광고는 더 많았다. 중국이 5편, 일본이 3편, 동남아에 있는 나라 세 개가 각각 2편씩. 그리고 앞으로 새 영화를 찍기 전까지 찍어야 할 광고가 국내외로 10개 정도 더 있었는데 시간이 한 달밖에 안 남아 있다는 것이다.

[모레 출국이니까 짐 챙겨놓고.]

“응….”

강동현이 집중력 없는 목소리로 대답하자 매니저가 곧바로 물었다.

[무슨 일 있어?]

“응? 아니….”

강동현은 꺼질 듯이 한숨을 쉬었다. 명치 위가 아팠다. 강동현은 차를 돌렸다. 약간 중심가에서 떨어진 한적한 술집 앞에 차를 댔다.

“어? 강동현 씨.”

사장이 아는 척을 했다.

“아, 형님 오셨습니까.”

어린 알바생이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경호 없는데.”

사장이 대번에 그렇게 말했다. 강동현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술 마시러 온 거예요.”

강동현은 바형 테이블 앞에 앉았다. 그리고 소주를 시켜 마시기 시작했다.

“안주랑 같이 먹어. 속 버리게.”

김태형이 얼른 안주를 내놓았다. 이신현이 그 옆에 앉았다.

“또 여자한테 차였어요, 형님?”

‘얘는 내가 여자한테 차여야만 혼자 술 마시는 줄 아나.’

강동현은 잠깐 알바를 쳐다보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냐.”

강동현은 한숨을 쉬었다. 이신현이 옆에서 팝콘을 먹다가 문득 물었다.

“근데 경호 형이 형님 돈 떼먹고 도망갔다는 게 사실이에요?”

“야!”

강동현이 소주를 거의 뿜을 뻔했고 김태형이 깜짝 놀라 이신현을 불렀다.

“사장님이 그랬는데….”

“야, 내가 언제 그랬냐. 혹시 그런 건가, 싶다고 한 것뿐이지!”

강동현은 입가를 닦고는 다시 소주를 부어 마셨다.

“차라리 그런 거면 좋겠네요.”

“경호 형이랑 싸웠어요?”

“응.”

“심하게요?”

“어.”

“경호 형이 막 화나서 삐지고 그런 성격이 아닌데….”

강동현이 어이가 없어서 픽 웃었다.

“걔가 한 번 빡치면 얼마나 오래가는 줄 아냐? 복수할 때까지 이를 박박 갈아.”

“와, 진짜요?”

“그러니까 얌전한 사람은 건드리는 거 아니라잖아.”

김태형이 안주를 하나 더 해서 내놓으며 말했다. 어차피 손님도 없겠다. 셋이서 한 잔씩 했다.

“하긴 경호 형… 그런 점 좀 걱정되긴 하죠. 초록이 가고 나서도 엄청 힘들었던 것 같은데 별말 안 하고… 보니까 병원 일로도 엄청 스트레스받던 거 같은데….”

강동현은 소주를 한 병 더 시켰다.

“하긴 그 이상한 환자 여기까지 찾아오고… 그것도 이상했지.”

“아, 그러니까. 경호 형 직장이 무슨 보통 병원도 아니고.”

“누가 찾아와요?”

강동현이 물었다. 이신현이 대답했다.

“경호 형네 병원 환자라는데… 좀 이상한 사람이었어요. 그렇죠, 사장님?”

“그냥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이지, 뭐.”

“황경호는 왜 찾는데요?”

“경호가 일도 그만두고 이사도 가고 폰도 바꾸니까… 물어보러 왔더라고. 여긴 어떻게 알고 왔는지….”

김태형이 그렇게 말하자 이신현이 한숨을 쉬었다.

“경호 형 진짜 착하니까 그런 사람들한테도 친절하게 해주고… 직업병인지. 나 같으면 기겁을 했을 텐데.”

이신현이 소름이 돋는다는 듯 부들 떨었다.

“너무 그러지 마.”

사장님이 말했다. 이신현은 강동현에게 속삭였다.

“딱 봐도 찐따 스타일. 전 그런 새끼들이 세상에 왜 있는지 이해가 안 돼요. 그런 건 그냥 병신들이죠.”

이신현은 말했다.

“사람들이 그런 병신들에게 잔인한 거 같으면서도 또 동정적인 게 웃겨요. 그냥 그런 사람들은 싸그리 모아 격리해서 내 눈앞에 안 보이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왜 그렇게 싫어해? 불쌍한 사람들이잖아.”

김태형이 말했다. 이신현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군대에 그런 관심병들 엄청 많거든요? 일도 못 해, 사람들이랑 얘기도 똑바로 못 해. 게다가 가끔씩 완전 사차원에 잘 보면 이기적이고. 그런 사람들을 다른 정상적인 사람들이랑 똑같이 대하고 똑같은 몫을 주는 게 정상적인 사람들을 차별하는 거 아니에요? 그런 놈 한 명만 있어도 내무반 전체가 그 새끼 나갈 때까지 머리 아프게 된다구요.”

군대에서 전역한 지 몇 개월 되지 않은 예비역이 그렇게 말했다.

“그러면서 불쌍해 보인다는 이유로 벌 받을 일도 안 받아 다른 사람들한테 손해 끼쳐도 사람들이 참아야 하고.”

이신현이 투덜거렸다.

“그래서 그 환자가 황경호한테 어떻게 했는데?”

강동현이 물었다.

“잘은 모르는데 가끔 밖에서 마주친다는 얘기만 들었어요.”

이신현의 말에 김태형이 반문했다.

“밖에서 마주칠 일이 뭐가 있길래?”

“그러니까요. 이상하죠? 약속 잡고 만나는 것도 아니고. 물어볼까요?”

이신현이 휴대폰을 꺼내더니 문자를 적기 시작했다. 강동현은 술을 한 잔 더 먹고 가만히 기다렸다. 답장이 바로 왔다. 이신현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다시 문자를 쳤다. 그러자 다시 답장이 왔다. 그러자 이신현이 입을 딱 벌렸다.

“왜?”

강동현이 물었다. 이신현은 카톡을 맹렬하게 쓰며 빠르게 대답했다.

“경호 형 집 밖에 못 나온대요. 그 환자가 경호 형 계속 따라다니나 봐요. 아니, 이 형은 그런 일이 있으면 빨리 얘기해야지…!”

*

결국 황경호의 입에서 이 말이 터져 나왔다.

“제가 어떻게 하면 더 이상 안 이러실래요?”

“저랑 사귀어 주면….”

이덕재는 우물쭈물 그렇게 말했다. 황경호는 한숨을 푹 쉬었다. 아무리 안 나오려고 해도 사람이 먹고살려면 슈퍼라도 가게 되어 있으므로 집에서 한 번씩은 나왔다. 답답하기도 하고. 그런데 진짜 집 앞에서 텐트 치고 노숙이라도 하고 있는지 이덕재가 꼭 앞에 나타났다. 그냥 나타나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우물쭈물 앞을 막고 있었다. 그게 더 짜증이 났다.

“저 동성애자 아니라서 그건 힘들어요. 그냥 제 앞에 앞으로 안 나타나셨으면 좋겠어요.”

“진짜 사, 사람 좋아하는 마음을 이렇게 함부로 짓밟아도 되는 거예요?”

이덕재가 갑자기 울먹거리더니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 황경호는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짓밟는 게 아니라….”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통행인은 전혀 없는 편이었지만 그래도 간혹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뚫어지라 쳐다보고는 지나갔다. 황경호는 그게 부끄러웠다.

“네, 이덕재 환자님 진짜 좋은 분이시고 착한 분이신 건 알겠는데 저는 진짜 이성애자고 남자랑 사귄다거나 그런 거 생각해본 적도 없어요.”

“이제부터라도 생각해주시면 안 돼요?”

답답하다… 황경호가 입을 다문 채로 굳어있자 이덕재는 달래줄 때까지 울겠다는 듯 훌쩍훌쩍 울어댔다. 황경호보다도 나이가 많은 남자가 길바닥에서 저렇게 울고 있는 것 자체가 정말 사회적으로 용납하기 힘든 모습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을 버리고 갈 만큼 마음이 모질지 못하다는 것이 처음으로 절망적으로 느껴졌다. 강동현 같은 인간이라면 뒤도 안 돌아보고 힘 닫는 데까지 욕하고 때리곤 도망가버릴 수 있을 텐데.

“제가… 제가 뭘 어떻게 하면 그만두실래요? 사귀는 거 빼고는 다 해드릴게요. 돈이든 뭐든… 저 정말 이런 거 피곤해서 일도 쉬고 있는 거란 말이에요.”

이 정도가 되니 오히려 황경호가 애원하는 말투가 되었다. 이덕재는 살을 부들부들 떨면서 서럽게 울더니 눈물을 훔치고 황경호를 똑바로 보았다.

“흑… 그렇게까지 성별의 벽을 넘지 못하시겠다면 제가 포기할게요… 어쩔 수 없죠… 이렇게까지 노력했는데도 안 되는 거라면.”

스토커에게 스토킹이란 전심전력을 다 한 노동의 개념인가 보다. 황경호는 드디어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자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잘 생각하셨….”

“대신에!”

이덕재가 황경호의 말을 끊었다.

“저… 살면서 진짜 황 간호사님만큼 좋아하는 사람 생긴 건 처음이에요. 완전 제 스타일이시구… 살면서 황 간호사님처럼 제 스타일이면서 착한 사람은 절대 없을 거예요. 전 동정으로 죽어야 할 거구요….”

왜 또 얘기가… 황경호는 본능적으로 불쾌한 불안감이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저 그럼 그냥… 저랑 한 번만 해주시면 안 돼요? 평생 소중하게 여기고 살게요.”

“…….”

황경호는 소리를 지를 뻔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는 체념 감이 온몸을 휩쓸었다.

정말

다들 나 같은 건

어떻게 되든 상관없는 거구나

어느 날 새벽에 아무런 이유 없이 저절로 잠에서 깨서 공포에 질린다. 우울감이 찾아오기 전에 먼저 공포가 찾아온다. 가위에 눌린 것도 아닌데 가위에 눌린 것처럼 꼼짝없이 누워 새벽의 기운을 느끼며 가슴이 죄어지는 듯한 불안감과 우울감을 느끼며 홀로 몸을 떤다. 아무것도 불안해 할 것도 없고 아무것도 두려워할 게 없는데도 언제나 왜 사는지 알 수가 없어서 가슴이 아팠다.

황경호의 곁에 있는 나쁜 사람들도, 좋은 사람들도 결국에는 전부 남이었다. 아무도 그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을 사람들이었다. 잠깐 안타까워할 수도 있고 잠깐 욕을 할 수도 있겠지. 그렇게 또 그저 그런 아무것도 아닌 인생을 생각하면 마음이 허했다. 불안하다. 존재가 너무나 희미하게 느껴진다. 의미라는 게 무엇인지조차 알 수가 없다. 무엇에 그렇게 화를 내고 열을 내었을까… 결국 아무것도 아닐 뿐이다.

황경호는 잠깐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한숨을 작고 길게 쉬었다.

“…안 한다고 하면 또 계속 나타나실 건가요.”

“아, 아마도요….”

이덕재가 눈치를 보는 게 느껴졌다. 황경호는 알 수 없는 수치감이 온몸을 좀 먹어서 좀처럼 얼굴에서 손을 뗄 수가 없었다.

‘죽지 않아… 안 죽을 거야… 난 안 죽을 거야. 괜찮아… 안 죽을 거야…’

이덕재는 황경호를 설득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갑자기 큰소리로 두서없이 말하기 시작했다.

“저, 저…! 솔직히 말하자면 정말 작은 편이고…! 몸에 무리 안 가실 거에요. 처음이니까 진짜 10분…! 아니 5분이면 된다고 생각해요! 저 진짜 처음이라 병도 없구요, 5성급 호텔이라도 예약해드릴게요! 저녁도 맛있는 거 사드릴게요!”

‘그래… 내가 뭐 이런 게 처음도 아니고. 눈 딱 감고 있으면 끝나겠지. 이제 와서 아끼는 것도 우습다.’

누구에게도 하찮을 뿐인데. 스스로에게도. 황경호는 얼굴에서 손을 뗐다.

“그런 건 됐구요… 그냥 진짜로 앞으로 다시는 나타나지 않겠다고 약속해주세요.”

이덕재는 고개를 맹렬히 끄덕였다.

“네, 네…! 각서라도 쓸까요?”

“네.”

이덕재는 편의점에서 종이와 펜을 사서 각서를 적고 싸인에 도장까지 찍었다.

“그, 그럼 호텔로 가실래요?”

황경호는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여기서 조금만 나가면 공원 있는데 거기 사람들 별로 안 가거든요. 공중 화장실 있는데 거기로 가요.”

아무런 생각이 없어졌다. 천천히 걸어갔다. 언젠가 미친 듯이 마포대교로 달려가 그 위에서 강물을 내려다볼 때 느껴지던 그 기묘한 평온함. 갈 때마다 기분은 달랐지만, 공포감이 없었던 날은 그때뿐이었던 것 같다. 마치 팔뚝을 스스로 쥐어짜면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것처럼. 자학은 자살 충동을 억누르는데 아주 효과적이다.

공중 화장실은 꽤 낡았다. 사람들이 정말 잘 쓰지 않는 곳 같았다. 서울에 아직도 이런 곳이 있구나, 싶을 정도로. 벽돌로 된 낡은 화장실. 지린내가 난다. 이덕재는 흥분을 한 건지, 긴장을 한 건지 끊임없이 나불거리고 있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정말 이상한 기분이다. 어디선가 둥둥 떠서 제삼자의 입장으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았다. 정말로 그 계약대로 할 거라고 믿어? 누군가 물어왔다. 그럼 어떡해. 뭐라도 하지 않으면 무력감에 죽어버릴 것만 같은데.

“저, 저, 저…! 마, 만질게요…!”

이덕재에게선 지독한 암내가 났다. 손은 땀에 흠뻑 젖어서 기분이 나빴다. 옷과 온몸에 땀을 바르고 있는 것 같았다. 손이 덜덜 떨리고 있는 것도 느껴졌다. 바지 속으로 들어가 성기를 쥐자 황경호는 움찔하면서 고개를 저었다.

“전 됐으니까 그냥 빨리 넣고 빨리 끝내요.”

황경호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이덕재가 땀을 뻘뻘 흘리며 고개를 맹렬히 저었다.

“가, 같이 하는 건데 어떻게 그래요.”

그러더니 이덕재가 무릎을 꿇고 더러운 화장실 바닥에 앉았다. 그리고 황경호의 바지와 팬티를 조금 내리고 황경호의 것을 입으로 물었다. 황경호는 인상을 찌푸리며 그냥 눈을 감았다. 침을 묻힌 손가락이 엉덩이로 들어오는 것도 느껴졌다. 불쾌하다는 생각도 안 하기로 했다. 그냥 다른 생각을 했다.

‘집을 다르게 꾸며볼까? 이제 이 환자 안 나타나면 산책 정도는 다시 다닐 수 있겠지. 집에 조명이라도 넣으면 예쁠까? 급하게 들어온다고 아무것도 손 안 댔는데. 벽지 새로 바르고 화장실이랑 부엌 수리나 해볼까. 그래, 뭐. 어차피 할 일도 없는데. 손에 뭘 쥐고 있으면 다른 생각은 잘 안 나니까.’

불쾌하다는 생각도, 이덕재 생각도 안 하고 그냥 집을 어떻게 바꿔볼까만 생각했더니 우습게도 만지는 대로 발기하고 사정까지 할 수 있었다. 예전 강동현이랑 있었던 일을 생각해보면 불쾌해서 사정은커녕 발기조차도 전혀 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이런 거에도 꽤 익숙해진 모양이다. 우스운 일이다. 이럴 거면 그렇게 노발대발하고 직장도 때려치우고 집도 나오고 휴대폰도 바꾸고… 그러지 말 걸 그랬다. 정말 별거 아니네.

‘아, 그럼 벽지는 무슨 색으로 하지… 지금 연두색 솔직히 촌스럽고. 침대 머리맡 쪽은 짙은 회색으로 바르고 다른 벽은 옅은 회색이나 흰색으로 할까? 이상하려나? 파란색? 음. 너무 쨍할 거 같은데. 그냥 다 흰색으로 바르고 노란 조명이나 몇 개 넣을까. 인터넷에서 찾아봐야겠다.’

어느샌가 황경호는 뚜껑을 닫은 변기 위에 앉아있었다. 늦은 매미 소리가 아직 들린다. 이덕재는 황경호의 다리 사이에 서서 바지랑 팬티를 내렸다. 포경도 하지 않은 번데기 같은 새카만 성기가 수북하고 더러운 음모 사이에 있었다. 그는 콘돔을 끼우고 황경호의 한쪽 다리를 잡아 들면서 자신의 성기를 그의 엉덩이 사이에 갖다 대었다. 그가 피임 기구를 들고 다니는 게 어쩐지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진짜 너무 고마워요, 황 간호사님. 평생 안 잊을게요. 이, 이제 넣어요….”

이덕재는 침을 꼴딱꼴딱 삼키며 그렇게 말했다.

*

사람들은 다양한 이유로 자살을 한다. 한국에서 5년 동안 자살을 한 사람의 숫자가 5년 동안 시리아 내전으로 폭격을 맞은 사람의 숫자보다 많다. 죽을 용기로 살면 잘 살 것 같은데. 왜 사람들은 자살을 하는 것일까?

강동현은 바로 전화를 할 뻔했다가 휴대폰을 쥔 채 생각에 빠졌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약간 화가 난다. 그런데 이런 상태로 대했다가 또 자살한다고 난리 칠까 봐 전화를 못 하겠다.

“오늘도 있대?”

김태형이 물었다.

“모르겠어요. 형이 지금 카톡 확인 안 하네요.”

“참… 새삼 별일이… 그래도 경호도 남잔데 뭐 별일이야 있겠어?”

“…….”

강동현은 인상을 찌푸리며 술을 한 잔 마셨다.

“왜 따라다니는 거라는데?”

“게이래요.”

“뭐? 와….”

거기선 김태형도 용납이 안 되는지 인상을 찌푸렸다.

“진짜 이상한 거에 단단히 걸렸네.”

“경호 형, 진짜 생긴 것도 순하게 생기고 사람들한테 예의 발라서 그런 이상한 것들 붙기 딱 좋다니까요. 그런 찐따들 착한 사람만 노리잖아요. 거절 못 하는 거 알고.”

“애가 사리분간도 잘하고 어른스러운 앤데 참… 사람이 생긴 게 중요하긴 해.”

김태형이 한숨을 쉬었다.

“걔가 사리분간을 잘하긴 뭘 잘해요. 삐꺽하면….”

강동현이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람이 무르고 병신 같으니까 그런 사람들도 붙는 거지.”

강동현은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갈게요.”

“대리 불러줄까?”

“네. 감사합니다.”

술값을 치르고 밖으로 나왔다. 벌써 9월이니 가을이지만 아직 덥다. 날도 아직 안 저물었다. 강동현은 대리기사가 올 때까지 담배라도 한 대 피울 요량으로 미리 나와 있었다. 그리고 휴대폰 화면을 보았다. 전화를 걸려고 몇 번이나 쳐다보고 있었더니 화면을 켜자마자 다이얼을 누르는 화면이다. 다시 껐다.

‘게이라고? 스토킹?’

강남 길바닥에 혼자서 돌아다니다 보면 사람에 따라서 일명 ‘도를 아십니까’를 곧잘 마주친다. 전화번호를 좀 오래 썼다면 으레 한 달에 한두 번쯤은 보이스피싱 전화가 걸려오기 마련이다. 검찰청이다, 금감원이다, 레퍼토리도 똑같다. 연락이 끊긴 친구가 전화를 해오면 십에 팔은 돈을 빌려달라는 얘기고 예상치 못한 방문객은 대개 다단계다. 한국이 사기 공화국이라는 말이 따로 나오는 소리가 아니란 말이다.

게다가 가정폭력, 스토킹, 데이트폭력, 학교폭력 등은 개인의 영역에 있는 문제라고 생각해 이런 걸 막기 위해 만들어진 사법당국은 개입하는데 난색을 표하거나, 대체로 귀찮아한다.

이런 상황이라면 개인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항상 촉각을 곤두세워도 어디서 뒤통수 맞을지 모르는 사회라는 말이다. 그런데 누군가 스스로를 지킬 의지마저 약하다면 하이에나들 사이에 다리를 저는 토끼를 던져놓은 거랑 뭐가 다르단 말인가.

설마 뭔가 당하진 않겠지, 싶으면서도 어쩐지 불안하다. 강동현은 몇 번이나 주저하다가 결국엔 전화를 걸었다. 손가락엔 두 개비째 담배가 들려있었다. 안 받으려나.

[여보세요….]

전화가 울리고 거의 곧바로 받은 것 같다. 강동현은 깜짝 놀라서 말을 잃었다. 차가 지나다니는 소리가 들린다.

[…여보세요?]

아, 전화번호 기억 못 하겠지. 강동현은 인상을 찌푸렸다. 목을 가다듬고 입을 열었다.

“…난데.”

[네… 무슨 일이세요?]

무슨 일이냐고? 왜 이렇게 선선히 대답하지? 황경호는 마치 매일 전화하는 친구가 똑같은 시간에 또 전화를 한 것마냥 당연하게 강동현의 전화를 받았다. 강동현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또 화를 낸다면 할 말이 많을 것 같은데 말이다.

“…아, 그게….”

강동현은 손에 있던 장초를 바닥에 떨어뜨려 발로 밟아 껐다. 정신 사납다.

“음, 어제 병원에 물어봐서 번호 알게 됐는데… 그게 내가 하도 달라고 해서 그런 거니까 그 사람들 잘못은 아닌데….”

[네….]

‘뭐야… 진짜 약이라도 먹었나. 왜 이렇게 반응이 이상해?’

강동현은 아무리 생각해도 상대의 반응이 이상하게 여겨졌다. 정석대로라면 어떻게 전화번호를 알아냈냐, 사람이 눈치가 없냐, 꼴도 보기 싫다, 다시는 전화하지 마라, 다른 사람들 괴롭히지 마라, 이런 얘기를 들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덜컥 생각 이전에 말이 나갔다.

“너 왜 그래? 무슨 일 있어?”

[……]

“어디야. 밖이지? 어디야.”

[……]

“너 지금 설마 또 한강 간 거 아니지?”

강동현은 대리기사를 불렀다는 것도 까먹고 운전석에 탔다. 그대로 계속 추궁을 했지만, 황경호는 통화를 끊지도 않고 강동현이 쨍알거리는 걸 그냥 듣고만 있었다.

“어디냐고!!”

[아….]

강동현이 순간 욱해서 소리를 지르자 미약한 반응이 돌아왔다. 강동현은 목소리를 낮추려고 노력하며 다시 말했다.

“어디냐고. 그것만 말해.”

[여의도 한강공원이네요….]

이게 또… 강동현이 이를 갈았다. 또 마포대교를 가려고 한 것이다. 상대가 넋을 놓은 게 느껴진다. 강동현은 엑셀을 밟았다. 차는 또 왜 막히는지, 도착했을 때는 어두워져 있었다. 한강 공원을 차로 몇 번이나 돌다가 멍청하게 서있는 사람 하나를 발견했다. 곧바로 클락션을 크게 울렸다. 그리고 선글라스만 끼고 차에서 내려서 그의 손목을 잡았다.

“너….”

그는 그저 수심에 잠겨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하지만 뭔가 이상했다. 아니, 냄새가 났다.

“!”

강동현은 순간 강한 충격을 먼저 느끼고 그다음에 머리로 상황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목덜미에 붉은 멍. 정액 냄새. 희미하게 느껴지는 이상한 악취. 잠시 아무 말 없이 얼굴을 보고 있다가 일단 데리고 차로 갔다. 타자마자 차를 출발시켰다. 담배를 물었다가 그냥 구겼다. 말없이 운전을 했다. 집은 이제 모르니 그냥 자연히 강동현의 집으로 향했다. 지하주차장에다 차를 대고 사이드 브레이크를 내렸다. 시동을 껐다.

“밥은… 먹었어?”

강동현이 물었다. 황경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안 먹었겠지. 강동현은 평이하게 말하려고 노력했다.

“밥해줄 테니까 밥 먹고 가.”

“…싫어요.”

차를 타고 오면서 조금 정신을 차린 모양이다. 그래, 정신이 나가야 강동현의 집에 간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강동현은 저도 모르게 불쑥 말했다.

“이상한 짓 안 해.”

불쑥 말해놓고, 순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자괴감이 올라왔다. 무시했다. 황경호가 딱히 내릴 생각이 없자 강동현도 그냥 운전석에 앉아있었다.

“…괜찮아?”

“뭐가요.”

강동현은 말문이 막혔다. 그는 하고 싶은 대로 못 하는 게 없는 남자다. 그런데도 뭐라고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걱정과 짜증, 불쾌함과 분노, 다시 걱정이 뒤섞여 머리를 아프게 했다. 강동현은 한참이나 말을 고르다가 결국엔 뱉었다.

“그 새끼한테 정말로 당한 거야?”

“네?”

“들었어. 너 스토킹하는 놈 있다며.”

“…….”

강동현은 심각한 얼굴로 앞을 보고 있었다. 황경호는 강동현을 쳐다보다가 문득 조수석의 거울을 내려 자신을 비추어보았다. 거울을 다시 올리고 목을 가리듯 양손으로 감쌌다.

“그 새끼 병원 다닌다고 했지….”

강동현이 중얼거렸다. 황경호는 저도 모르게 말했다.

“억지로 당한 거 아니에요.”

“…뭐?”

무슨 말인지 바로 알아듣지 못했는지 그대로 심각한 표정으로 앞을 바라보고 있다가 순간 고개를 홱 돌렸다.

“뭐라고?”

“…저 그냥 여기서 내릴게요. 안녕히 가세요.”

황경호가 차 문을 열고 내리려고 하자 강동현이 황경호의 어깨가 빠질까 싶을 정도로 팔을 홱 잡아서 안으로 다시 끌어당겼다.

“그래서 그 새끼랑 진짜로… 그 짓을 했다고? 니가 원해서?”

“아니… 잠깐만 이거 놓으시고….”

“다시 말해보라고. 그래서 그 새끼랑 뭘 했다고?”

“저기요….”

눈에서 빔이라도 나올 거 같다. 황경호는 당황스러웠다.

이덕재와는 금방 헤어졌다. 몸과 정신이 분리되어 자꾸 다른 생각만 하려고 하다 보니 머리가 멍했다. 그래서 멍청히 걷다 보니 한강 공원까지 갔다. 기어코 또 거기까지 가다니, 자신이 한심하기도 하고 우습고. 그래서 그냥 우두커니 서서 한강을 보고 있었다. 다리로 올라갈까, 말까. 그때 전화가 왔다. 그리고 받았다. 그 뒤 정신을 차려보니 여기에 있었다.

“도은혁 환자님… 도대체 저한테 왜 이러세요?”

황경호는 신음을 흘리듯 말했다. 이놈이고 저놈이고 정말 지긋지긋하다.

“뭐? 내가 왜 이러냐고? 진짜 몰라서 묻냐?!”

강동현이 윽박을 질렀다.

“저 도은혁 환자님 여자친구 아니에요.”

“뭐?’“

“제가 뭘 하든 무슨 상관이에요? 처음부터 지금까지 쭉 무슨… 사람을 자위 기구처럼 취급해놓고 갑자기 왜 이러시는데요….”

강동현은 확 하고 또 윽박을 지르려고 하다가 핸들을 꽉 쥐었다.

“…그럼… 도대체 그 새끼랑은 왜 한 건데. 걔도 돈이라도 줬어? 너 돈 주면 남자고 뭐고 다 대주냐? 간호사는 왜 하냐! 그냥 몸이나 팔지!”

황경호가 인상을 찌푸렸다.

“돈 안 받았어요.”

“그럼 왜 한 건데? 너 남자면 아무나 되는 거였냐?”

“아니에요….”

황경호는 한숨을 쉬었다.

“이제 사람들이 너무 막무가내로 굴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요. 그냥… 그냥 해달라는 대로 하고 빨리 집에 가고 싶어져요.”

황경호가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 환자도 한 달이 넘게 저희 집 앞에 죽치고 있었어요. 그런 사람은 정말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서… 그냥 빨리 해달라는 대로 하고 끝내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냥 대줬다고?”

강동현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말했다. 오히려 황경호는 웃었다.

“도은혁 환자님도 발기부전 고치겠다고 저한테 그러셨잖아요… 제가 이상형이고 한 번 해주기만 하면 더 이상 안 나타나 주겠다는데. 계속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데… 언제까지 그거 받아줄 거에요. 그냥 한 번 눈 딱 감고 끝내는 게 더 낫잖아요. 제가 뭐… 그런 게 처음도 아니고….”

목에 핏줄이 확 솟았다. 머리가 댕댕 울리고 눈앞이 어질어질했는데 목구멍에 양말이라도 처넣은 것처럼 말이 안 나왔다. 그렇게 한참을 말을 잃은 채 황경호의 얼굴을 보고 있다가, 강동현은 한 손으로 두 눈을 감싸며 운전석 시트에 등을 기댔다.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다… 여기까지 끌고 와서 미안하다….”

황경호는 눈치를 보다가 차 문을 열었다. 황경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를 강동현을 잠깐 돌아봤다가 아무 말 없이 차에서 내렸다. 강동현은 황경호가 엘리베이터에 들어가자마자 욕을 하면서 차 천장과 핸들을 주먹으로 마구 치다가 핸들에 이마를 박고 화를 삭이면서도 몇 번이고 차 오디오를 주먹으로 쳤다.

*

그렇게 2달을 꽉 채워서 쉬고 다시 이강유 비뇨기과로 돌아갔다. 염치가 없어서 다른 병원을 찾아보기도 했는데 역시 여기만 한 곳이 없었다. 그만두려고 했던 이유도 지금 생각해보면 웃기다. 이제는 그게 별건가 싶다.

“좀 쉬었으면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하지.”

한동안 꽤나 살이 빠진 황경호였다. 오 간호사가 황경호의 어깨를 잡고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그렇게 말했다.

“하여튼 이래서 남자들 혼자 살면.”

혀를 쯧쯧 차며 오 간호사가 그러자 김형세가 말했다.

“전 혼자 살아도 잘 먹어요.”

“차라리 진짜 형세랑 같이 살아라, 경호야. 쟤랑 같이 살면 진짜 굶어 죽을 일은 없어.”

“어, 그럴래? 집값도 아낄 겸.”

세상엔 아무런 근심걱정거리가 없노라~ 하는 얼굴로 김형세가 말했다. 황경호가 웃었다. 좋을지도 모르겠다. 항상 바보 같을 정도로 생각이 없고 밝은 친구니.

“왔어?”

“좋은 아침이에요, 선생님.”

이강유가 마지막으로 출근을 했다. 이강유는 황경호를 보고는 그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었다.

“잘 쉬었어?”

“네… 염치불구하고 저만 잘 쉬다가 왔네요. 그동안 많이 바빴죠?”

“우리 병원이 언제 안 바빴던 적 있었니.”

오 간호사가 황경호의 등을 툭툭 쳤다. 그렇게 다시 병원 생활을 시작했다. 꽤 놀다 와서 어떨까 싶었는데 어제까지 일했던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일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도 그럴게, 쉬는 것보다 일하는 게 훨씬 좋으니.

“아, 이덕재 환자 왔다. 경호 넌 상담실에 들어가 있어.”

오 간호사가 황경호를 상담실로 곧바로 밀어 넣었다. 잠깐 어떤 뚱뚱한 몸체가 보이다가 말았다. 아직 병원을 다니고 있긴 한가 보구나. 하긴, 수술받을 거라고 했지.

그리고도 계속 문제 환자가 올 때마다 병원 식구들이 황경호를 숨겨 주었다. 처음에는 불편했지만, 나중에 되니 고마웠다. 그리고 이렇게 되니 확실히 일하기가 훨씬 수월했다. 이덕재도 마주칠 일이 없었고 강동현은 아예 오지를 않았다. 처음부터 이렇게 피했더라면 좋았을 걸, 둘 다.

황경호는 상담실에 가만히 앉아서 근래 일어났던 일들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강동현도 그렇고 이덕재도 그렇고. 어째서 그런 인간들이 계속 꼬이는 건지 생각했다. 애초에 정말 느낌이 안 좋으면 아예 상대를 안 해야 하는 건지. 그래도 되는 건지. 도대체 그런 인간들은 왜 그러는 건지 생각했다.

‘잘난 남자든 못난 남자든….’

황경호는 어쩐지 남성 불신에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이 직장이 남성 불신에 걸리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직장이지. 다른 병원 식구들은 어떻게 생각하면서 사는 걸까? 기연이나 한나는 여자애들인데 더 힘들지 않으려나.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다시 일을 열심히 했다. 예전에는 굉장히 동정적인 자세로 대했던 병원 환자들에게 마음의 거리를 두기 시작하니 예전처럼 환자를 상대하는 게 힘들지는 않게 되었다. 너무 진상이 나타나면 그냥 김형세를 불렀다. 밝게 대해도 직장 사람들과 개인적으로 자주 만나고 그러진 않았는데 이제는 병원 식구들끼리 밥을 먹거나 술이라도 한잔하게 되면 같이 잘 어울렸다. 김태형의 가게도 자주 가고 가끔 다 같이 Y대 병원에 다시 가서 봉사활동을 하거나 예전 초록이가 있던 고아원에 가기도 했다.

일주일이 풍성해졌다. 심정적으로 가깝고 좋은 사람들로 일주일을 채우다 보니 새벽에 깨는 일이 없어졌다. 아직 수면장애는 좀 있었지만 잠이 조금 부족하다는 것 빼곤 괜찮았다. 술을 마시는 횟수나 양도 현저히 줄었다. 스스로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 적어졌다.

“경호야, 너 이제 다시 살이 좀 붙는 거 같다? 너 집에 먹을 건 더 있어? 음식이라도 좀 해줄까? 살찔 때 먹어야지.”

밥을 먹으며 한창 진상 환자에 대해 욕을 하고 있을 때였다. 문득 알아차렸다는 듯이 김태형이 황경호의 이쪽저쪽을 보며 말했다. 황경호는 자신의 얼굴을 만졌다.

“그래?”

“그래. 야, 너 몇 킬로라고 했지? 더 붙어야 돼. 잠깐만 있어 봐.”

김태형이 또 거하게 음식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게요. 형, 진짜 살이 좀 쪘다.”

이신현이 황경호의 등이랑 배를 만져보더니 그렇게 말했다.

“진짜네. 전엔 뼈다귀밖에 없었는데.”

“아, 요새 오 간호사님이 주신 한약이 좀 먹었더니만… 진짜 효과가 있나 보다.”

황경호가 문득 허리띠 있는 곳을 만져보았다. 한참 살이 빠져서 자리가 남았는데 요즘은 바지가 얼추 맞다.

“야, 사람이 진짜 어느 정도는 살이 있어야지 보기 좋아. 더 먹어.”

김태형이 금방 뭔가 뚝딱 만들어서 황경호의 앞에 내놓았다. 한 입 먹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나도 요리나 배워볼까? 형, 나 좀 가르쳐줘.”

그렇게 한 달쯤 지나니 황경호 스스로도 자신의 변화를 느꼈다. 딱히 삶이 획기적으로 바뀐 것은 아니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아니었고 어쨌든 다 조금씩은 해오던 일이었으니까. 뭐가 전환점이 되어 이렇게 된 것일까.

이덕재 같은 정말 인생 하류랑 그런 일까지 있고 나니 더 이상 내려갈 데가 없다는 생각이 든 것일까? 아니면….

[…그래. 무슨 말인지 알겠다… 여기까지 끌고 와서 미안하다….]

그때 강동현의 얼굴, 목소리, 온몸에서 풍겨오는 표현은 분명, 충격과 상처였다. 왜 자기가? 황경호는 그렇게 의아해하면서도 그와 떨어지고 싶어서 차에서 내렸다. 또 정신을 잠깐 빼놓고 있다 보니 끌려왔지만, 어차피 그의 곁에 있어서 좋을 인간도 아니었다.

이놈이나 저놈이나 똑같이 황경호한테 민폐 덩어리들이었다. 적반하장으로 화를 내는 걸 들어줄 이유도 없었다. 그날은 지쳐있었다. 또 강동현 같은 인간을 상대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똑같이 언성을 높이지도 않았다. 확실히 이덕재보다는 강동현이 훨씬 말을 잘 알아들어서 그것만으로도 놓아주었다.

하지만 말이다. 이덕재 같은 건 사회의 누가 평가해도 열등하다고 평 받을 사람이지만 강동현은 누가 평해도 우월하다고 평가받을 남자였다. 그의 키, 그의 얼굴, 그의 몸, 그의 성격과 매력, 그의 명성과 인기, 그의 능력과 재력. 그런 남자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건 뭐랄까… 게다가 인정하기 싫지만, 황경호는 그를 물리적으로 때리면 흥분하기까지 하지 않았던가.

“황 간호사, 이덕재 환자 진료실 들어갔어. 입원실 쪽으로 가.”

정기연이 잠깐 문을 열고 얼굴을 빼꼼 내밀더니 그렇게 말했다. 황경호는 그녀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입원 병동을 한 바퀴 돌며 어딘가 한 군데는 망가진 남자들을 돌보았다. 생각이 없어졌다.

착취라는 건 피해자만이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한다. 착취를 당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너무나 슬픈 일이니까. 그리고 후진한 사회일수록 약자를 남김없이 착취한다. 약자들은 착취당하고 있다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힘든 삶에 대한 이유를 스스로에게서 찾는다. 후진할 사회일수록 약자에게서 분노할 권리를 빼앗는다. 부당한 처우에 대해 분노하면 으레 돌아오는 취급은 ‘이기적’이라는 말뿐.

그러면 착취당하지 않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는가. 확실한 방법은 착취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착취하지 않는 자라는 건 착취하지 못하는 자라는 말과 그다지 다름이 없다. 할 수 있으면 해야 하는 거지 이 세상에 안 한다는 말은 없는 것이다. 착취에 익숙하지 않은 자들은 끌어내려지고 괄시를 받으며 착취당하는 자가 될 뿐이다.

노동이든, 감정이든, 육체든, 그 대상이 무엇이든 착취라는 것은 힘을 뜻했다. 힘은 물리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무언가를 움직이게 할 수 있는 능력이다. 힘을 느끼면 사람들은 활기를 띤다.

김태형의 집에서 저녁을 먹고 음식까지 받아서 집으로 향했다. 이사를 간 집은 예전 집보다 직장이나 김태형의 가게에서 조금 멀어졌다. 집에 도착해서 문을 열고 들어갔다. 집안의 등을 켜는데 문득 기분이 이상했다. 짐을 싱크대 옆에 올려두었다. 고개를 갸웃했다가 일단 짐을 정리했다. 그리곤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는 것 자체를 까먹었다. 샤워를 하러 욕실에 들어갔다가 20분쯤 뒤에 몸을 닦으며 나왔다. 속옷을 꺼내 입으려는데 속옷이 없었다.

‘이상하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하며 서랍을 이쪽저쪽 열어보며 확인을 해보았는데도 없었다.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일단 옷을 입고 편의점에 가서 속옷을 몇 개 사 왔어야 했다.

“왜 없지?”

진짜 이상하네. 찜찜한 김에 집 안 청소를 한 번 싹 했지만 역시나 찾을 수 없었다. 황경호는 포기하고 침대 위에 올라왔다. 노트북을 무릎 위에 놓고 강동현 팬 커뮤니티에 들어가 요새 올라오는 글들을 살펴보았다. 예전 대형 포털 사이트의 카페에서 시작했던 팬카페가 아예 새로운 사이트로 독립했다. 해외 팬들도 많이 들어왔다. <그의 근황>이라는 카테고리를 클릭하니 그와 관련된 활동이 전부 시간순으로 나열되어 있었다. 공항 출입국 사진부터 팬 사인회, 해외 팬 사인회, 해외에서 찍은 광고, 크랭크인에 들어간 <타임리스> 제작 현장 사진들… 이 카페 전속 파파라치라도 있는지 한 게시물 당 사진이 200장이 넘게 있었다. 황경호는 이미 그 전 것은 다 봤으므로 new가 뜬 게시물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기 시작했다. 댓글도 일일이 읽고 스스로도 썼다.

<시간 따져보니까 하루에 4시간도 못 자겠네요. 또 다크서클 내려오는 거 보입니다.>

<확실히 몸이 좋으니까 모델들이나 찍을 법한 화보도 많이 찍네요. 저는 양복 화보랑 저번에 여성 화장품 광고가 제일 마음에 듭니다.>

<강동현도 언젠가 정통 멜로 한 번 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기엔 아직 어린가… 우리나라는 요새 정통 신파 멜로 같은 건 잘 안 나오니까 중국이나 일본에서 찍을 걸 기대해봐도 좋겠네요.>

<근데 강동현 목소리가 좋아서 해외 촬영할 때 더빙 쓰면 진짜 싫을 거 같은데.>

황경호는 예전에도 꽤 활동을 많이 했었고 요즘에는 매일매일 밤마다 들어와서 보고 있었다. 강동현이 나온 영화랑 드라마도 전부 보았고 마음에 드는 장면들을 하나하나 캡쳐해서 <감상글> 게시판에 올리고 있었다. 저번에도 <서리>까지는 그렇게 했었다. 또 하니까 사람들이 그 정성에 탄복하고 있었다. 이제 <연애출사표> 중반까지 하고 있었다. 올릴 때마다 베스트 글에 올라가니 뿌듯하다. 중간중간에 재밌는 메이킹 필름도 많아서 그런 것도 하나씩 가져오고 있었다. 짤은 어떻게 만드나 궁금하네. 영상 같은 것도 그렇고.

그리고 <행사/모임>을 클릭하니까 소위 팬들이 촬영장에다 조공을 하는 이벤트와 강동현 팬 사인회 일시와 장소, 티켓팅 방법, 팬들끼리의 단합회 일정들이 올라와 있었다.

‘한 번쯤 직접 연기하는 거 보고 싶기는 한데.’

연극 같은 건 안 하려나. 하긴, 강동현이 연극계 출신도 아니고. 연극으론 시간당 페이도 못 맞출 텐데. 그래도 한 번쯤 했으면 좋겠네. 예전에 처음 공원에서 연기를 하는 걸 마주쳤을 땐 제대로 연기를 하는 걸 보지 못했다. 지금이라면 정말 하나하나 뜯어볼 텐데 말이다. 조공 이벤트에 참가하면 밥차나 떡 같은 걸 돌리고 잠깐 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서라, 서로 마주치기라도 하면 얼마나 기가 막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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