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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잠깐만….!”
격하게 움직이면 진짜 다 튀어나올 것 같다. 이 얼마나 불안한 물건인가. 존재하는 의의가 불분명한 물건이다. 원래 속옷이란 건 이러라고 있는 게 아니라고.
집에 들어오자 이 변태가 몸을 번쩍 들어 저번처럼 안아 들었다. 누군가한테 이렇게 들리는 건 기억나지도 않을 정도로 어렸을 때로 끝난다. 스스로가 무겁다는 걸 아니 떨어질 것만 같아서 자연히 상대의 등을 끌어안게 된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자연히 다리를 벌리게 됐는데 끈이 전부 민감하게 느껴지고, 일단 중요부위가 정말로 불안정하다….
“잠깐… 읍…!”
벽에 그대로 등이 쿵 부딪쳐서 강동현은 굉장히 집중한 얼굴로 황경호에게 키스하고 있었다. 그의 손이 벽을 짚고 있어서 벽과 한 손으로만 황경호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었다. 저항하기도 굉장히 까다로운 자세였다.
‘숨을… 못 쉬겠어…!’
타인과의 접촉에 익숙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식의 밀접한 성적접촉이라니. 무섭고 불쾌하다. 모르고 다르다는 건 언제나 공포로 다가오는 법이니까. 도대체 사람들은 왜 이런 걸 하는 걸까.
황경호는 겨우 강동현의 머리카락을 잡아 그의 입술을 떼어냈다. 헉하고 숨을 들이쉬는데 그의 타액으로 젖은 입술이 시원하게 느껴진다.
“내일 쉬지?”
강동현이 황경호의 턱밑을 핥아 올렸다. 그러면서 황경호를 바라보는 눈빛이 굉장히 섹시하다. 황경호는 인상을 팍 쓰며 그의 얼굴을 밀어냈다.
“사람 잡을 일 있어요?! 죽는 줄 알았잖아요!”
“알았어. 천천히 할게….”
“이거 놔…요!”
“아… 진짜….”
강동현이 순간 벽으로 확 밀어붙이듯 황경호의 몸과 밀착하여 그의 이마와 자신의 이마를 맞붙인 채 황경호를 바라보았다. 흥분감과 기대감이 가득 차서 야시시한 그의 눈빛이나 그의 몸짓에서 나오는 신호는 굉장히 관능적이다.
“아….”
황경호는 눈을 내리깔았다. 작년의 마지막 밤이 떠올랐다. 그때 이 인간의 화를 돋우면서 ‘뭔가’가 시작되었기 때문에 폭력적인 기억이 뚜렷하다. 역시 좀 무섭다. 어떻게 하다가 여기까지 또 끌려왔지. 더 저항했어야 했는데. 내가 더 정신을 똑바로 차렸어야 했는데. 성질을 거스르면 또 그렇게 되는 걸까. 싫은데.
그가 다시 입을 맞추려고 하자 저도 모르게 놀라서 힉, 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몸이 부르르 떨렸다. 입술이 살짝 닿았다가 떨어졌다.
“왜 그래?”
“…….”
아, 바보 같다. 숨고 싶다. 들키고 싶지 않다… 이 상황도, 이 바보 같은 속옷도 전부 그의 수치스러움을 키웠다. 어깨와 뺨이 욱신거린다. 지금까지 바보같이 당한 것들… 지금까지는 화가 부글거렸는데 여기 오니 모든 게 다 수치스럽게만 느껴지고 다 자기 잘못인 거 같이 느껴졌다. 급격히 우울해졌다.
이 남자가 한 짓 때문에 하루종일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그래서 굉장히 피곤하다. 근데 또 이 인간을 상대해야만 하는 걸까. 왜?
다른 사람한테 만져지는 게 싫다. 딱히 누구한테 만져진 적도 없지만, 특히 그게 강동현이라면 더 싫다. 그런데 격렬하게 저항할 힘이 안 난다. 지친다.
‘어차피 들어줄 리도 없고… 그래. 들어줄 리가 없지. 아, 그냥 여기도 싫다. 빨리 벗어나고 싶어.’
황경호는 굉장히 체념한 얼굴로 조용히 말했다.
“저… 손으로 해드릴게요. 그러니까 저는 만지지 마세요.”
“왜?”
강동현은 이유를 전혀 모르겠다는 얼굴이다. 황경호는 거기서 또 괴리감을 느꼈다. 정말 모르는 건가. 모를 수가 있나? 아, 됐다. 이 인간한테 정상을 기대하는 게 더 말이 안 되지. 황경호는 그냥 한숨을 쉬며 시선을 돌렸다.
“피곤해서요.”
그를 살짝 밀어내며 바닥에 섰다. 그리고 곧바로 그의 바지 버클을 풀었다. 그리고 손을 넣으려고 하자 강동현이 오히려 잡으며 저지했다. 강동현은 깊게 한숨을 쉬었다. 그는 전혀 그 관능적인 분위기가 빠지지 않은 채로 머리를 쓸어올렸다. 그러면서 황경호한테서 떨어졌다. 황경호는 좀 놀랐다.
“밥부터 먹을까.”
그는 집에 에어컨을 틀었다. 그리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현관에서 이러고 있었다. 황경호는 이대로 도망갈까 하다가 따라 들어갔다.
강동현의 집은 넓고 높고 굉장히 깔끔했다. 남향의 넓은 창으로는 빛도 잘 들어온다. 남자 혼자 사는 집이라 40평, 50평대의 대형 평수는 아니었지만 30평 후반대에 방이 침실 하나다 보니 거실과 부엌이 굉장히 넓었다.
거실에 있는 가구들은 거의 블랙 앤 화이트였고 벽지는 하얀색 실크벽지다. 대형 TV의 뒷면은 돌 질감의 짙은 회색. 창은 TV를 중심으로 왼편을 가득 차지하고 있었다. 카우치의 뒤는 부엌이다. 계단을 두 칸 올라서면 깔끔하고 멋진 주방이다. 아무리 봐도 주방은 별로 쓰지 않는 것 같다.
현관에 들어오면 왼편에 그렇게 거실이었고 오른편 벽에는 멋진 사진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욕실 문이 그림의 오른편에 있었고 안으로 움푹 들어간 곳에 층층으로 된 진열대 겸 책장이 있다. 몇 권의 책과 대본들, 트로피와 사진이 있었다. 그리고 칸막이가 앞에 하나 하얗게 서있고 그 앞이 강동현의 침실이다. 프라이버시를 중요시하는 사람의 집 같다.
노을이 지고 있었다. 서울 서초구의 낡은 빌라 원룸에 사는 황경호로서야 집안에서 석양빛을 보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새삼 당연스레 눈길이 간다. 색색의 빛이 가득한 집.
‘돈이 좋긴 좋구나.’
현실도피일까. 아니면 정말 사람이 살아가는 데 중요한 것들을 어쩔 수 없이 많이 박탈당하며 살 수밖에 없는 도시인이라서일까. 창을 계속 바라보았다. 석양은 항상 강을 떠올리게 했다. 서울에서 돈 안 들이고 예쁜 것을 볼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다.
‘돈이 있다면 이렇게 매일 보는 거겠지만.’
“배 안 고파?”
강동현은 그렇게 물어보며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전에는 아무것도 없더니만 오늘은 뭐가 좀 있다. 깔끔하게 정리된 냉장고 안은 듬성듬성하다는 느낌이지만 과일과 야채, 계란, 우유 같은 신선식품들이 보인다. 오히려 뭐가 없기는 황경호가 없을 것이다. 그는 귀찮아서 병원에서 점심을 먹는 것이 아니면 거의 식사를 하지 않았다. 그나마도 김태형네 가게를 가면 저녁을 먹었지만 그렇지 않다면.
“별로요.”
“니가 그러니까 살이 계속 빠지지. 잠깐만 기다려봐.”
강동현은 손을 씻었다. 환풍기를 틀고 어디선가 팬을 꺼내 인덕션 위에 놓았다. 냉장고에서 고기를 꺼내더니 소금과 후추, 허브를 앞뒷면으로 뿌려 누르고는 다시 냉장고를 열어 이미 손질이 된 야채를 꺼내 샐러드 볼에 아무렇게나 집어넣었다. 과일을 꺼내 잘라 넣고 연어까지 넣어 드레싱을 뿌려 식탁에다 두었다. 그리고 냉장고에서 양파와 빈, 아스파라거스를 꺼냈다. 달궈진 팬에 기름을 두르고 앞서 꺼낸 고기를 굽기 시작했다.
황경호는 식탁에 멀뚱히 앉아있다가 저도 모르게 물었다.
“요리도 할 줄 알아요?”
“아니. 이런 것만 할 줄 알아.”
“이런 게 뭔데요?”
“여자친구랑 먹을 만한 거. 해주려고 배웠거든. 스테이크, 파스타 정도만 할 줄 알아.”
강동현은 그렇게 말하더니 거의 15분 내외로 음식을 뚝딱 만들어서 접시에 내놓았다.
“별거 없지만 먹어.”
“…잘 먹겠습니다.”
독립하고 집에서 누군가 음식을 해준 건 처음 같다. 황경호는 그런 생각을 하며 샐러드를 들어서 조금 먹었다. 강동현은 여전히 이렇고 저런 분위기가 살짝 남아 있었지만, 그냥 황경호를 보고 있었다. 그는 황경호가 급격히 우울해진 걸 알아차리고 있었다. 갑자기 체념해버리고 표정이 무표정해지고 시선을 피한다. 이미 강동현은 몇 번이나 그런 황경호를 경험했다.
성가시다. 강동현은 그렇게 생각하며 그대로 자기 몫을 전부 먹어치우고 황경호가 반쯤 남긴 것까지 다 먹어버렸다.
전부터 생각했지만, 강동현은 꽤나 먹성이 좋다. 그런데 식생활이 그렇게 좋은 것 같진 않고 이런 것도 건강상태에 꽤 영향을 미친다. 어떤 사람은 어깨나 등 통증으로 드러나고 위나 장의 문제로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 남자는 하필이면 거시기의 병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너 잘 좀 먹고 다녀라. 잘 먹고 다니고 신체 건강한 게 멘탈에도 좋은 거 모르냐.”
강동현도 황경호를 보며 똑같은 생각을 한 모양이다.
“밥 해 먹는 거 귀찮잖아요.”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데 잘 안 챙겨 먹는 게 말이 되냐.”
“어차피 그러는 댁도 잘 챙겨 먹고 다니는 건 아니잖아요.”
“나야 바쁘니까 어쩔 수 없는 거고.”
“잘 안 챙겨 먹는 것도 남성 질환에 아주 안 좋아요.”
“아…. 젠장. 그래?”
“당연하죠. 우리 선생님이 항상 얘기하시잖아요.”
“알았어… 아, 씨. 근데 진짜 바빠서 못 먹는 건데.”
“병이 그런 거 봐주면서 오는 거 봤어요?”
그건 그렇지만. 강동현은 한숨을 쉬었다. 강동현은 그릇들을 싱크대에 집어넣고는 창을 보고 있는 황경호를 바라보았다. 석양이라. 강동현은 그의 곁에 와서는 그의 뺨에 붙은 반창고를 떼어냈다.
“아.”
아픈지 움찔하며 강동현을 돌아보았다.
“이거 많이 아팠어?”
강동현이 실실 웃으면서 그의 뺨을 만졌다. 강동현은 그의 목덜미에 붙은 것도 다 떼어냈다.
“엉망이네.”
저번에 엄청 물어놓은 게 멍으로 남아 아직도 얼룩덜룩했다.
“얼굴은 좀 물지 마세요. 다른 사람들이 계속 물어보잖아요.”
“미안. 큭큭.”
강동현은 황경호를 일으켰다. 그는 거실의 하얀 카우치 등에 기대고 황경호를 끌어당겼다. 석양이 물든 실내에서 생긴 것만은 근사한 남자가 서있었다. 강동현은 약간 개구진 얼굴로 황경호를 천천히 끌어당겼다. 몸이 살짝 닿고 그의 손이 황경호의 허리를 가볍게 잡고 있었다.
“그래. 차라리 불평불만을 해라.”
“무슨 말이에요?”
“내가 아까 또 스위치 눌렀어? 갑자기 기분 안 좋아 보이길래.”
우울이라는 게 천천히 가랑비에 젖듯 스며들기도 하고 어떤 일에 의해서 촉발되기도 한다. 무엇에 의해 유도된 건지 스스로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기본적으로 스스로를 보호해야 할 마음의 알고리즘이 스스로를 더욱 해치기 시작하면 사실 어떤 일도 위험한 우울을 일으킬 수 있었다.
“그걸 지금 질문이라고 하는 거예요?”
황경호가 순간 욱해서 노려보았다. 강동현이 눈을 살짝 크게 떴다가 약간 고민하는 표정이 되었다.
“음… 역시 얼굴 깨문 거 때문인가….”
“…내가 말을 말아야지.”
“왜. 말해.”
강동현이 황경호의 손을 만지작거렸다.
“말을 해야지 조심할 거 아냐.”
황경호는 인상을 팍 썼다.
“언제 내가 말하는 걸 들어줬다고.”
항상 말은 뭐든 들어주겠다면서 정작 전부 자기를 위한 것이다. 어떻게든 한 번 빼려고 하는 거지… 저질.
“조정을 해보자는 거지.”
이럴 땐 합리적인 척하는 것도 거지 같다. 황경호는 강동현을 손을 뿌리치고 검지로 그의 가슴팍을 찌르며 말했다.
“얼굴 깨물지 마세요. 아니, 사람들 보이는 곳에 보란 듯이 멍 좀 만들지 마세요. 도대체 뭐하자는 거에요? 사람 구경거리 만들려고 일부러 그러는 거잖아요.”
“미안. 니가 싫어하는 게 너무 좋아서.”
보기도 좋고. 그러자 황경호가 그의 가슴을 주먹으로 퍽퍽 쳤다. 강동현이 어우, 하면서 아프다고 몸을 피했다.
“그리고 키스 좀 작작해요. 사람 질식시켜서 죽일 셈이에요? 게다가 시도 때도 없이 집적거리지 좀 마세요. 내 직장이에요. 진짜 확 인터넷에다 다 올려버릴까 보다.”
“아, 왜. 뭘 그렇게 심하게 했다고. 그리고 나 키스 잘하잖아.”
강동현이 그렇게 말하자 황경호가 정말 ‘극혐’이라고 얼굴에 붙여놓은 것 같은 얼굴로 강동현을 한 번 더 퍽 쳤다.
“지지리도 못하거든?”
이건 수용 못 하겠는지 인상을 팍 쓰며 반박하는 강동현이다.
“거짓말하지 마. 내가 키스할 때 제일 섹시해 보인다고 전 국민이 그러는데.”
“그걸 믿냐, 병신아? 그리고 그거랑 진짜 키스하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무작정 들이밀고 침만 잔뜩 묻히고 마음대로 혀만 집어넣으면 그게 키스야?”
황경호가 힐난했다. 강동현이 좀 화가 나서 경고하듯 목소리를 낮췄다.
“야.”
“혼자서만 흥분해서 입 틀어막고 속옷만 벗기려고 하는 주제에. 뭘 잘한다고 근자감만 차서. 저질. 그리고 마음대로 내 몸 좀 만지지 마. 소름 돋아, 변태. 완전 싫어.”
강동현은 굉장히 부글부글하는 모양이었다.
“하, 그래? 나 때릴 때마다 세우는 건 어디의 누구더라? 떠밀린 척하면서 잘만 즐기잖아. 이제 내가 만지면 싸는 주제에.”
“미친놈아, 누가!”
황경호가 질색을 하며 소리쳤다.
“니가. 만지면 뻘게져선 귀여운 소리 내면서 가잖아. 난 따라 하지도 못하겠다.”
아아아앙~ 강동현이 따라하며 놀렸다. 황경호는 귀까지 빨개져서 소리를 질렀다.
“내가 언제! 이 변태 새끼가! 맨날 남의 팬티나 훔쳐가는 주제에! 범죄자! 그거 가지고 변태 같은 짓 하는 거 아냐?!”
“…….”
“…진짜?”
황경호는 뜨악한 얼굴로 그에게서 떨어지려고 했다. 강동현은 그의 팔을 다시 잡아끌며 얼굴을 맞대었다.
“그래 봤자 너도 어차피 나 멋있다고 생각한 적 한 번은 있을 거 아냐.”
황경호가 확 털을 세우며 반박하려다가 멈칫했다. 강동현도 그가 바로 받아칠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다. 살짝 놀란 듯하다가, 그는 씨익 웃으면서 황경호를 확 끌어안았다. 얼굴을 더 가까이하며 물었다.
“언제?”
“없어요.”
“늦었어. 언제야?”
“없다니까요.”
“언젠데? 영화에서? 드라마?”
미디어에서 자기가 과대평가된 건 아나 보네. 황경호는 그의 턱을 밀어냈다.
“말해봐. 언젠데.”
“없다고!”
한참 싸우다가 또 분위기가 요상해진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엉덩이 한쪽을 주물거리기 시작하며 얼굴을 계속 돌리려는 황경호의 턱을 다른 손으로 잡아 자신을 향하게 했다.
“아, 잠깐만… 읍… 야, 이 씨… 맘대로 또…! 음…!”
무작정 들이민다는 말을 신경 쓴 것인지 입맞춤이 살짝 부드러워졌다. 입술을 맞대 문지르고 혀로 핥았다. 혀끝을 부드럽게 마주쳤다.
“그래서….”
강동현은 상대의 뺨을 깨물려다가 가볍게 입술로 물었다. 귓가로 입술을 옮겼다.
“언젠데?”
“아… 읏… 알았으니까 손 좀… 빼요!”
강동현의 커다란 손 두 개가 바지 속으로 들어와 현재의 팬티로는 전혀 커버가 안 되는 엉덩이를 마음대로 쪼물딱거렸다.
“아…! 벗기지 마…! 벗기지 말라고, 이 변태!”
“그래서 언제냐니까.”
황경호는 얼굴이 빨개진 채로 속눈썹을 파르르 떨었다. 이 고자 새끼가 또… 황경호는 그의 팔을 주먹으로 쳤다.
“엉덩이 만지지… 아으으….”
엉덩이를 꽉 잡은 채로 강동현의 허벅지에 다리 사이를 문질러졌다.
“언젠데, 응?”
“아… 귀에다… 읏… 아…! 아앗…! 으응…! 흑… 아, 알겠다고. 아, 잠깐만…!”
“언제라고?”
“예, 예전에… 병원 온 적 있잖아요… 장미 들고… 흐앗… 손….”
황경호의 바지는 이미 발목 근처까지 내려가 있었다. 이 팬티 안 벗고 계속 입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검은색 레이스 티팬티 위로 그의 성기를 주물렀더니 결국 커져서 그 작은 속옷 밖으로 튀어나왔다. 강동현은 기다란 손가락으로 성기게 잡고는 검지로 매끈한 선단을 그리듯 문질렀다.
“그때? 그때 왜? 애 죽은 줄 알고 가서 너 엄청 화냈잖아.”
왼손을 상의 안으로 집어넣어 젖꼭지를 엄지로 문지르자 황경호가 얼굴이 빨개져서는 손등으로 얼굴을 가렸다. 또 이런 표정 짓고… 강동현은 얼굴을 가린 그의 손을 물었다. 그리고 입을 맞추었다.
“내 것도 만져….”
강동현은 어쩐지 단숨에 다시 흥분했다. 거친 숨을 내쉬며 황경호의 손으로 자신의 남성기를 만지게 했다.
“옷 벗기고 직접 만져봐….”
귀에다 속삭이는 걸 좋아하는 건지 질색을 하는 건지 구분이 안 된다. 황경호는 미간을 찌푸리고 견디는 듯한 표정이 된다. 황경호의 손이 강동현의 바지 버클을 풀고 안으로 들어왔다. 강동현은 낮게 신음을 흘렸다. 벌써 기분이 진짜 좋았다. 그대로 서로의 하반신을 맞대었다. 황경호의 티팬티가 닿는다. 황경호의 손으로 두 개를 모두 쥐게 하고 강동현의 손이 그 위를 덮었다.
“윽… 하… 진짜… 아… 입 벌려….”
“음…! 으흥… 읍… 으응… 아… 읍….”
강동현의 기다란 다리가 황경호의 무게를 반쯤 지탱하고 있었다. 그의 바지는 이미 둘의 체액으로 얼룩져 있었다. 황경호는 키 차이 때문에 회음부를 꽉 눌린 채 강동현의 허벅지 위를 타고 있었다. 그의 뽀송뽀송한 피부가 땀이 잡혀 촉촉해졌다. 마음에 든다.
“흐앙… 으응… 하… 안 돼… 으응… 하응….”
“하하. 봐… 꽤 귀여운 소리 내잖아.”
강동현이 놀리자 황경호는 신경질 난다는 표정이 되더니 자기 입술을 깨물었다. 강동현은 그의 엉덩이를 잡고 더 자신의 쪽으로 당겨 안았다. 물어뜯듯 입을 맞추고 혀를 섞었다. 사이사이로 애달픈 신음을 듣는 게 즐겁다. 쾌락이 전신을 휘감는다. 간호사들은 손이 부드럽단 말이야… 강동현은 어쩐지 빨리 사정을 하는 것보다 이렇게 계속 몸을 맞대고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역시 세 번은 더 하고 싶다.
“하아… 갈 것 같아?”
“힉…! 어딜 만지는… 읍…!”
검은색 팬티는 이미 강동현의 쿠퍼액으로 질척질척해졌다. 안 그래도 용적 이상의 물건이 들어가 있는 속옷이었는데 부피가 늘어서 더 살을 조이고 있었다. 엉덩이 사이로 안 그래도 이물감이 느껴졌는데 거기로 강동현의 손가락이 닿은 것이다. 깜짝 놀라서 온몸에 힘이 들어갔더니 강동현이 더 섹시한 숨소리를 내면서 입을 맞춰왔다.
“으음…! 으으읍!”
황경호는 그의 팔을 퍽퍽 쳤다. 그는 굉장히 집중해서는 오른손으로는 두 개의 성기를 열심히 흔들어댔고 다른 손은 상대의 엉덩이 한쪽을 꽉 잡으며 그 가운데를 손가락 끝으로 더듬었다.
“히… 흐응… 앗. 잠깐만…! 손…!! 아앗….”
“조금만….”
강동현은 섹시한 목소리를 내며 사정감이 차오르는지 여기저기 깨물기 시작했다. 조정이 어쩌고 하더니 역시나 소용없는 짓이었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뺨을 꽉 깨물었다.
‘간지러워….’
황경호는 옷에 가려진 어깨까지 빨갛게 되어서는 견디듯 미간을 좁혔다. 옷에 스치는 유두가 민감하다. 강동현의 기다란 손가락이 대놓고 문질러대는 항문이 간지러워서 계속 움찔거린다. 들어올 듯이 꽉 누르면 왜인지 뭐가 앞으로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황경호는 강동현의 짐승 같은 흥분에 떠밀리고 있었다.
‘싫어. 싫어. 무서워. 싫어. 하기 싫어. 기분이 이상해….’
맞닿은 성기가 터질 것 같았다. 이 변태 손에 가고 싶지 않아서 너무 참았다. 너무 참아서 사정하는 게 무서울 지경이다. 그런데 상대는 봐주지를 않는다. 황경호는 강동현의 셔츠를 꽉 잡으며 허리를 빠뜻하게 떨다가 결국 신음을 참지 못하고 그의 어깨를 마구 쳤다.
“그만…! 하아…! 그만그만…! 손 떼에…! 아앙… 안 돼, 싫어… 아응… 하아아으으응….”
눈물이 그의 속눈썹을 촉촉하게 적실 정도로 나왔다. 황경호는 굉장한 신음을 내며 강동현의 허벅지를 꽉 조이며 그의 셔츠를 꽉 쥐었다. 온몸이 녹아내릴 듯 뜨겁다. 이상한 말이 마구 튀어나올 것 같다.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강동현은 그의 엉덩이를 두 손으로 꽉 잡아당기며 허리를 써서 그의 것에 자신의 남성기를 비비며 사정했다.
“흐앙… 아흐으….”
“아, 큭. 젠장… 윽… 아으윽….”
시간에 구애가 없으니 서로 엄청나게 만져대고 비벼댔다. 강동현은 엄청나게 정액을 쏘아대 황경호의 속옷과 상의까지 다 더럽혀버렸다. 강동현은 병 때문에 아예 정상적인 섹스도 자위도 불가능했고 간호사의 팬티로 자위를 어느 정도 할 수 있게 되었어도, 황경호와 할 때마다 맛이 아예 갔다. 그의 프리컴은 양이 굉장히 많아졌고 사정액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몇 분까지 이어지는 사정은 머리를 새하얗게 만들었다.
강동현의 다리가 풀려 쿵 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더 미끄러져 카우치에 어정쩡하게 등을 기댄 채 둘은 가득 포개져 숨을 거칠 게 헐떡거렸다. 맞닿은 하반신이 서로의 박동으로 뜨겁게 어지럽다. 쾌감에 절어 둘 다 아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눈을 감은 채 강렬한 쾌락의 여파를 감당하고 있을 뿐이었다.
강동현은 자연스럽게 벌려진 황경호의 허벅지와 엉덩이를 꽈악 한 번 잡았다가 쓰다듬었다. 그리고 한 손은 그의 상의 안으로 들어와 그의 부드러운 등을 매만졌다. 다른 손은 티팬티의 끈 안으로 들어와 그의 엉덩이와 사이사이를 전부 쓰다듬었다.
“헉… 으… 하아… 하아… 하….”
강동현은 달큼한 살 냄새에 코를 박았다. 부드러워… 코와 입가에 닿는 살의 느낌이 촉촉하고 부드러웠다. 그 느낌을 즐기다가 이로 깨물고 빨아들였다.
“계속… 어딜 만지는 거야….”
역시나 황경호가 훨씬 먼저 정신을 차리고 팬티 안에 들어와 엉덩이 살과 그 사이까지 마음대로 만지는 변태의 손을 떼어냈다. 그리고 강동현의 이마를 밀어냈다. 이 고자 새끼가 어깨와 목을 또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다.
“아흑….”
우는 소리가 절로 난다. 허리가 묵직했다. 몸을 일으키기가 힘들 정도로 탈력감이 들었다. 살짝 현기증이 들어 강동현의 어깨를 두 손으로 짚은 채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의 위에 올라타 여전히 서로의 성기를 맞댄 채다.
‘아… 내가 미친놈이지….’
이 변태랑 이걸 또… 황경호는 도저히 왜 갑자기 이렇게 된 건지 이해가 될 수 없었다. 또 확실하게 저항하지 않은 걸까. 말도 안 돼.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건지. 어디다가 머리를 마구 박고 싶었다. 황경호가 강동현의 몸 위에서 일어나려고 엉덩이를 들자 둘의 하반신 사이로 체액이 질척하게 이어졌다가 흘러내렸다. 황경호는 얼굴을 확 붉혔다. 진짜 말도 안 된다. 그대로 일어나려고 하자 강동현의 손이 황경호의 목을 끌어당겼다. 키스했다.
“조금만 더….”
혀를 부드럽게 섞다가 다시 끌어안았다. 몸을 또 자기 맘대로 쓰다듬는다.
“아, 잠깐만… 윽… 하…! 거기 만지지 마…! 변태…!”
황경호는 강동현의 팔 힘에 끌어안겨 또 애무를 당하다가 그의 얼굴을 팍 눌러버리고 벌떡 일어났다.
“…아프잖아.”
강동현이 드디어 정신을 차렸는지 자기 얼굴을 만지며 제대로 앉았다. 황경호는 어정쩡하게 걸으며 욕실로 향했다. 강동현은 그 이후로도 꽤 그대로 앉아서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강동현은 잠깐 핑 도는지 휘청했다. 그는 황경호가 들어간 욕실로 향했다. 특이하게도 여기는 침실의 욕실이 거실에 위치한 욕실보다 컸다. 침실 쪽 욕실만 가봐서 그런지 거기까지 들어간 황경호였다. 강동현은 침실과 욕실로 이어진 복도의 문을 열고 완전히 더러워진 옷을 벗었다. 안에서 물소리가 난다. 그의 옷이 또 쓰레기통에 버려진 게 보였다. 집어서 같이 세탁 바구니에 넣었다. 그리고 욕실의 문을 열었다.
“우앗…!”
그냥 씻는데 정신이 팔렸는지 문을 잠글 생각도 못 한 모양이었다. 홀딱 벗은 그의 마른 뒷모습이 보였다. 강동현은 저도 모르게 변태같이 웃으며 욕실로 들어갔다.
“으앗…! 진짜 싫어…! 나가!”
“아직 뭐 하지도 않았는데 왜 그래?”
“안 하긴 뭘 안 해! 으악…! 가까이 오지 마!”
마치 해충한테 살충제를 뿌리듯 황경호는 샤워기 물을 강동현한테 뿌렸다. 얼굴에 뿌려대서 눈을 제대로 못 뜨다가 강동현이 그의 손목을 잡았다.
“우아악! 안지 마! 악! 아! 금방 씻었다고!”
밀고 당기고 하다가 꽉 껴안자 황경호는 온몸에 소름이 돋는 듯했다. 이 인간이랑 알몸으로 끌어안다니. 확 밀어내려다가 둘 다 미끄러졌다. 욕조에 미끄덩 둘 다 겹쳐서 넘어졌다. 물에 젖은 두 육체가 밀착한다. 둘 다 아파서 신음을 흘렸다.
“아야야….”
황경호는 강동현의 단단한 가슴팍에 코를 박아 얼굴을 잡으며 한쪽 팔로 몸을 일으켰다. 강동현은 다행히 욕조 양쪽을 잡아 머리를 부딪치진 않은 모양이었다. 둘의 눈이 딱 마주쳤다.
“하하하.”
강동현은 뭐가 웃긴지 밝게 웃었다. 직접 본 사람은 다들 최고로 꼽는 강동현의 미소였다. 황경호는 순간 멍하게 그의 얼굴을 보았다가 코피가 나는 걸 깨닫고 그를 마구 때렸다.
*
“아… 죽여버리고 싶다.”
황경호는 순간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한테로 모이는 걸 느끼고 저도 모르게 헉했다.
“누굴?”
이강유가 물었다. 한창 진상 손님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황경호는 별다른 말이 없더니 불쑥 혼잣말로 저런 말을 한 것이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다들 빤히 황경호를 보았으나 말이 없었다. 다만 이강유는 초밥을 집어 들며 선선하게 말했다.
“너무 진상부리는 환자는 다들 꼭 말해요. 참지 말고.”
“네.”
다들 대답했다. 너무 바빠서 돌아가면서 초밥으로 점심을 때우고 있었다. 아까 페이닥터로 일하는 전 선생과 오 간호사 등이 먼저 먹고 2시가 넘어서야 이강유와 다른 간호사들이 먹고 있었다. 방학 시즌 초반은 포경수술을 하러 오는 남자 초등학생들이 많아 이랬다(물론 가지각색의 이유를 가진 성인들도 방학을 틈타….).
황경호는 꽤 맛이 괜찮은 연어와 참새치뱃살만 공략하며 짧게 한숨을 쉬었다. 요즘 위험하다 싶을 정도로 ‘나쁜 생각’이 많이 든다. 여기서 ‘나쁜 생각’이라 하면….
‘정말 가다가 뒤통수를 벽돌로 까버릴까….’
이런 종류다.
얼마 전까지의 그를 생각한다면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그는 체념이 짙어 누군가 자기한테 무엇을 하든 결국 못난 자기 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건 이기적인 것이고 황경호 본인이 싫어하는 누군가와 같아지는 짓이라고 생각해 오히려 더 깔끔하게 굴며 선을 그으려고 했다. 밖으로 나오는 언행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내부에서조차 스스로를 다그첬다.
그런 그가 당한 만큼 되돌려주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꽤 폭력적인 방법을 상상하는 판타지를 즐기고 있었다.
처음엔 본인 스스로도 강렬한 폭력의 이미지에 소스라치게 놀랐으나 이제는 저항도 하지 못했다. 자신에게 잘못하는 사람에게 통쾌하고 잔인한 복수를 하는 상상은 저항할 수 없는 강렬한 쾌감이다. 모든 문명사회가 복수를 부정하고 매도하지만, 그것은 복수로 인해 잃을 게 많은 가해자들의 프로파간다일 뿐. 복수란 그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고취시키는 굉장한 에고와 의지의 산물이다. 그는 어째서 지금까지 당한 만큼 복수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 걸까.
진짜로 저런 짓을 할 리 없을지라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뭔가 기분이 나아지는 느낌이었다. 이런 생각은 잘못되고 악한 것이라 배웠는데. 왜일까. 상상은 구체적일수록 좋았다. 어떻게 CCTV를 피할지. 어떤 식으로 그를 괴롭힐지. 죽여버릴지. 무엇보다도 이러면 자신을 탓하는 걸 멈출 수가 있었다.
다른 식으로 피해를 입은 것도 아니고 서로의 몸이 닿고 그게 소름이 끼칠 정도로 생생하다. 중간부터 스스로가 희미해지는 순간이 있다. 예전과는 또 다른 불쾌감이 솟아오른다. 분명히 그런 걸 당하지 않을 수 있었는데 계속 당하는 게 오히려 더 스스로를 탓하게 만들고… 곱씹으면 불쾌감과 이길 수 없는 수치감과 알 수 없는 것들이 뒤섞여 머리가 복잡해진다.
그런데 강동현을 탓하면 모든 게 간단해지지 않는가. 원래 그의 100퍼센트 잘못이기도 했다. 그의 잘못인 걸 스스로의 잘못인 양 생각하고 고치려고 하니 계속 답이 안 나오는 것이었는데 그걸 일이 이렇게까지 되고 나서야 깨달은 것이다.
‘진짜 CCTV만 없으면….’
황경호는 밥을 먹고 나서도 꽤 그런 공상에 집중하고 있었다.
“음… 곤란합니다, 환자님. 일단 나오셔야….”
새로 들어온 남자 간호사가 치료실에서 나오려는 건지 들어가려는 건지 어정쩡한 자세로 버티고 있었다. 신입 간호사로 낭패한 기색이 얼굴에 쓰여있었다. 안 좋은 촉을 느낀 황경호는 얼른 달려갔다.
“무슨 일이시죠?”
“아, 황 간호사님.”
신입 남자 간호사는 살았다는 얼굴로 그를 보았다. 치료실 안에 있던 환자가 인상을 확 구겼다.
“아니, 이 씨X. 왜 사람 이상하게 만들어? 니가 제대로 마무리 안 해서 제대로 닦으라는데 일을 안 해? 밥줄 끊기고 싶어?”
환자는 자신의 성기를 덜렁거리며 가운을 활짝 열고 있었다. 신입 남자 간호사는 표정을 굳히며 대답했다.
“이미 세 번이나 새 걸로 닦아드렸는데 이러시면….”
“어디서 거짓말로 사람 우습게 만들어? 니가 언제 그랬다고! 설렁설렁하고 그냥 나가려고 했잖아!”
어떻게 된 건 줄 알겠다. 황 간호사는 한숨을 쉬었다. 한국은 어째서 이런 남자들이 이렇게 많은 걸까. 피해의식으로 똘똘 뭉친 이런 사람들은 어떻게 해주어도 진상을 부릴 뿐이다. 고객이 왕이라는 캐치프레이즈는 누가 만든 것일까? 정말이지 고생하는 것은 힘없는 직원들뿐이다. 사람들의 앞에서 실랑이를 계속할 수는 없어 다들 다시 치료실 안으로 들어갔다. 결국, 황경호가 보는 앞에서 한 번 더 닦아주었다. 그는 욕을 계속하며 병원을 나갔다.
저런 사람이 한 번 오면 며칠이나 기분이 좋지 않다. 황경호는 신입 남자 간호사의 등을 토닥였다. 그리고 다음 환자를 확인하러 몸을 돌렸다.
“…도은혁 환자님.”
남을 위로할 때가 아니었군… 황경호는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생각했다. 환자는 아주 기분 나쁘게 웃었다. 황경호는 여느 때처럼 치료실로 그를 안내했다. 엉덩이부터 슬그머니 만져오는 그의 손을 태블릿으로 퍽 쳤다.
“으흠흠.”
왜 계속 이렇게 변태같이 웃는 거냐… 강동현은 치료실에 들어오자마자 황경호를 뒤에서 껴안았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벗어 아무 데나 던졌다.
“적당히 해요, 적당히.”
황경호는 그렇게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나 머릿속으로는 그의 머리를 벽돌로 내리치는 상상을 하면서 현실에서는 또다시 체념을 하고 만 것이다. 저항을 한다고 몸싸움을 하다가 흥분해서 이 변태 놈한테 또 당하느니….
저번 주 금요일 검은색 레이스 티팬티를 입은 상태로 이 인간한테 끌려갔을 때 카우치에 기댄 채 한 번, 욕실에서 한 번 당하고 침실에서 한 번 더 당할 뻔하다가 탈출했다.
“저번 주엔 집에 잘 들어갔어? 데려다주려고 했는데….”
강동현은 황경호의 바지 속으로 손을 넣어 그의 양 엉덩이를 꽉 잡으며 그의 하체를 자신의 쪽으로 꽉 붙였다. 황경호는 인상을 살짝 쓰며 그의 어깨를 잡았다.
“그때는… 읍…!”
대답하라고 한 질문도 아니다. 그럼 그렇지. 황경호는 인상을 찌푸린 채 그의 입맞춤을 견뎠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바지를 벗겼다. 발목까지 주륵 내려갔다. 그대로 그를 들어서 치료실 의자 위에 앉았다. 황경호의 무릎이 팔걸이에 부딪혔다. 아프다.
강동현이 황경호의 팬티를 내리려고 하자 그 전에 황경호가 선수를 쳐서 그의 고간을 잡았다.
“으….”
약간 힘이 들어가 있다. 그대로 입을 맞추면서 주물거리니 강동현은 입맞춤과 황경호의 손길에 집중하며 거친 호흡을 했다.
‘그래. 차라리 이게 낫지. 매번 싸우다가 이 인간한테 그런 거나 당하느니.’
곧 그의 가운을 젖히고 그의 대물을 손에 쥐어 마구 흔들었다. 한 몇 분 만지니 딱딱해졌다. 강동현한테 그런 걸 당하지 않으니 제정신으로 온전히 그를 볼 수 있었다. 간간이 고개를 돌리려고 입술을 떼거나 황경호의 얼굴을 볼 때 보이는 그의 얼굴은 객관적으로 아름다웠다. 깨끗한 피부, 남자다운 각진 턱과 이마. 깊은 눈매와 긴 속눈썹, 짙은 눈썹, 높고 곧은 코. 도톰한 입술. 게다가 생각보다 꽤나 섹슈얼한 느낌이 있는 그라 이럴 땐 TV에선 볼 수 없던 섹시함까지 있다.
황경호가 느끼는 강동현의 매력과는 별개로 적개심이 마구 피어올랐었다. 정말 때려주고 싶었다. 그 이후로 죽창 이 변태를 때려죽이는 상상만 했는데 어째서 이러고 있지? 결국, 그도 상상일 뿐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사람이란 이렇게 간사하다, 스스로에게조차. 이런 식의 차악을 그나마 최선이라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을 뿐 아닌가.
그렇게 가만히 그를 보고 있는데 강동현이 시선을 느꼈는지 눈을 뜨고 황경호의 눈을 보았다. 그가 물었다.
“너무 잘생겨서 눈을 못 떼겠어?”
“그래 봤자 임포….”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입맞춤을 당했다. 황경호의 테크닉(?)에 정신을 놓고 있더니 갑자기 두 손을 황경호의 팬티 안으로 넣어 그의 양 엉덩이를 꽉 잡았다. 황경호는 한 손으로 강동현의 것을 계속 만지는 채 다른 손으로 그의 팔뚝을 잡았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구 주무르더니 갑자기 그의 손가락이 은근하게 그 가운데를 어루만진다. 황경호는 깜짝 놀라 입술을 떼고 그의 것을 꽉 잡았다. 그가 신음을 흘렸다.
“아프잖아… 제대로 해….”
그렇게 말하며 그는 다시 황경호의 입술을 핥았다. 황경호는 인상을 확 찌푸리며 그를 밀어냈다.
“뭐하는 거야. 손 떼…!”
그의 양팔을 억지로 잡아떼려고 했다. 안되자 그의 어깨를 퍽퍽 때렸다. 강동현은 한 손으로 그의 엉덩이를 끌어당기며 다른 손으로 그의 팬티를 내려 그의 것에 자신의 남성기를 눌렀다.
“잠깐만…!”
이게 싫어서 그가 하는 대로 그냥 둔 게 아닌가. 강동현을 밀어내려고 할수록 그와 문질러졌고 그를 때리면서 흥분감이 찾아왔다. 강동현이 팬티를 벗겼다. 잘못해서 그의 얼굴을 때렸을 때 완전히 발기했다. 황경호는 온몸이 새빨개질 정도로 당황하고 부끄러워했다. 이게 아닌데…!
“만지지 마요… 앗… 잠깐. 잠깐만… 아앗…!!”
황경호는 크게 소리를 질렀다가 깜짝 놀라 손등으로 입을 막았다. 그대로 시뻘게진 채 굳어버렸다. 강동현은 그의 뺨을 핥고는 깨물었다.
“흣… 으… 아… 으으….”
세상에서 가장 싫은 남자와 살을 맞대고 화보로 찍어도 손색없을 그의 손가락이 엉덩이에 들어온 것이다. 아주 능동적으로 강동현의 것을 만지던 그가 눈을 크게 뜬 채로 굳어버리자 강동현이 그의 귀를 깨물며 속삭였다.
“왜….”
마음대로 만지지 마!! 목청에서 터져 나올 것 같은 말이 안 튀어나왔다. 그의 손가락이 어디까지 들어와서 움직이고 있는지도 제대로 알 수 없었다. 그가 자신의 것과 함께 만지고 있는 앞은 발기되어서 허리가 비비 꼬일 것처럼 성적 감각이 고취되고 있었다. 부끄럽고 수치스러웠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몸이 움직이지를 않았다. 무섭다. 이렇게 생각하자 왈칵 눈물이 날 것 같아서 필사로 참았다.
“진짜… 기분 좋아… 하….”
“으… 흣… 하… 으응… 흑… 으으응….”
‘아. 싫다. 싫어. 싫어 싫어. 싫은데. 진짜 싫어. 싫다고. 아, 싫어.’
강동현은 절정이 닿아오는지 몸이 더 뜨거워지고 숨이 거칠어졌다. 무엇보다도 엄청 물어댔다. 이제 이 남자가 어떤 걸 해야 어떤 반응을 보이고 좋아하는지 알겠다. 전혀 알고 싶지 않았다.
“갈 것 같지? 표정 보니까 알겠다.”
강동현은 그렇게 말하며 다시 입을 맞추었다. 어쩐지 그의 말에 소름이 돋는다. 가쁜 숨이 섞여든다. 생소한 느낌에 몸이 불편하다. 나올 거 같다. 심적, 생리적 거부감이 든다.
‘왜 또 이렇게….’
“하아아… 아으으으응….”
끝까지 참으려다가 결국엔 못 참았다. 실금이라도 한 어린애가 된 기분에 어른의 쾌감이 뒤섞인다. 너무 수치스럽고 부끄러우면 어째서 두려운 것일까. 누구라도 붙잡고 싶어졌다. 강동현의 옷깃을 꽉 잡으며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바들바들 떨었다. 강동현의 근육이 삽시간에 긴장하며 의자 전체가 움직일 정도로 덜컹했다.
“크으윽…!”
사정을 하며 그의 손가락이 꽉 조여드는 구멍의 안으로 더욱 들어왔다. 간호사가 더욱 몸을 움츠리며 달라 붙어왔다. 강동현은 두 팔로 그런 상대를 꽉 끌어안았다. 그렇게 몇 분.
“으… 흑….”
황경호는 그의 품에 안겨 있는 것이 무척이나 답답하고 기분이 나빴다. 그를 밀어낼 수가 없었다. 너무 무겁고 갑갑하다. 징그럽다. 그가 드디어 팔에 힘을 풀고 늘어졌을 때 황경호는 겨우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의자에 힘을 빼고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리고 긴 사정감을 즐기고 있는 것을 보고 정말 화가 났다. 그를 퍽퍽 때리기 시작했다.
“이…!”
죽여버리고 싶다. 진짜로 이대로 죽여버리고 싶었다.
‘사람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진짜! 이렇게 마음대로…!’
말로 비난조차 하지 못하며 그를 마구 때리는데 강동현이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려 황경호의 두 손목을 잡았다. 약간 힘을 준 것 같은데 뿌리치기가 힘들다.
“왜 그래… 또….”
“왜 이러는지 진짜…!”
그렇게 겨우 목소리를 내려다가 멈칫하고 입을 다물었다. 뭘 기대하는가. 당연히 모르겠지. 병신같다. 부끄러워. 수치스럽다. 처음부터 아예 저항했어야 했던 걸까. 그냥 해주고 끝내자는 게 더 나쁜 선택이었던 걸까. 어째서 잘못한 걸 한 놈이 아니라 당한 사람이 항상 이렇게 죄책감에 시달려야 하는 걸까.
저번 주에 그것도 너무 싫었다. 이번도 싫다. 근데 어쩐지 시간이 갈수록 이 인간한테 더 말려드는 것 같다. 그래. 흥분하지 말자. 화가 나서 흥분하니까 계속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됐어요….”
굉장히 화를 낼 것 같던 상대가 돌연 얼굴을 돌린다. 얼굴은 여전히 벌겋게 텄고 시선을 내리깐 채 의자에서 내려갔다. 다리 사이를 닦더니만 바지를 주워입고 강동현한테 뭐라고 말도 하지 않은 채 탈의실을 통해서 먼저 밖으로 나가버렸다. 강동현은 약간 멍한 얼굴로 그런 그가 나간 문을 바라보다가 깜짝 놀라서 소지품을 챙겨 탈의실로 갔다. 옷을 얼른 갈아입고 선글라스만 낀 채로 나가서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누군가를 찾았다.
“금방 나간 내 담당 간호사 어디 갔어요?”
강동현이 주변을 붙잡고 물었다. 선하고 예쁘게 생긴 간호사가 고개를 갸웃하더니 주변을 살폈다.
“황 간호사… 다른 환자랑 상담 중이실 것 같은데요.”
“아, 금방 황 간호사 잠깐 나갔다 온다고 나갔어요.”
지나가던 다른 간호사가 그렇게 덧붙였다. 강동현은 아~, 하며 짜증스럽게 얼굴을 쓸어올렸다.
‘설마 또 마포대교 간 건 아니겠지?’
강동현은 전화를 걸면서 얼른 병원을 내려왔다. 전화를 그냥 끊었는지 바로 소리샘으로 연결되었는데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걸었다. 끈질기게 거니 받았다.
[왜요.]
“어디야.”
[왜요.]
“어디냐고.”
[왜 그러는데요.]
“너 지금 마포대교 가는 거 아니지?”
[아니에요.]
“진짜야?”
강동현은 1층 주변을 둘러보다가 결국 황경호를 못 찾아서 지하로 내려와 차에 탔다.
“그럼 어딘데.”
[아, 왜요.]
강동현은 신경질이 났다.
“어디냐고 물어보면 그냥 어딘지 말하면 될 거 아냐.”
[댁이 뭔데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에요?]
“걱정되니까 그러잖아.”
강동현은 지하주차장에서 차를 끌고 올라와 핸들을 오른쪽으로 돌렸다. 일단 유턴이 되는 데까지 직진을 했다.
“어딘지 빨리 말해.”
[…….]
“빨리 말하라고.”
[…싫어, 이 병신아.]
그러더니 전화를 뚝 끊었다. 강동현은 저도 모르게 바로 욕설을 내뱉었다. 그러다가 인도에서 이질적인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을 발견했다. 간호사복을 여전히 입고 있는 황경호였다. 그는 바로 클락션을 울리며 깜빡이도 켜지 않고 무작정 차선을 바꿔서 갓길에 차를 급정차했다.
“야!”
조수석 문을 내리며 강동현이 화를 냈다.
“그렇게 가면 어떡해! 깜짝 놀랐잖아!”
“…….”
황경호가 그냥 걸어가려고 하자 그의 속도에 맞춰 차를 앞으로 움직였다.
“어디 가는 데. 차라리 내가 데려다줄 테니까, 타!”
“저리 가요.”
강동현이 클락션을 엄청 크게 울렸다. 사람들이 다 쳐다보았다. 황경호는 진짜 지긋지긋하다는 얼굴로 강동현을 노려보았다. 서로 그렇게 노려보고 있다가 결국 조수석에 올라탔다. 강동현은 굉장히 안도했다.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그는 차를 출발시켰다.
“…이렇게 병원 막 나와도 돼?”
“집에 일 생겼다고 했어요.”
“그런데 무슨 옷도 안 갈아입고 이렇게 나와.”
“댁이 싫어서요.”
몰라서 묻냐. 그런 목소리로 황경호는 아주 평이하게 말했다. 강동현은 그런 그를 돌아보았다가 다시 정면을 주시했다.
“진짜 한강 가려고 했던 거 아니야?”
“가려고 했던 거면 어쩔 거고 아니면 어쩔 건데요. 댁이랑 무슨 상관이에요.”
상대의 까칠한 태도에 강동현은 한숨부터 쉬었다.
“알았어… 젠장. 미안. 나 또 뭐 한 거지….”
강동현이 그렇게 말하자 황경호는 그를 노려보고는 그의 팔을 퍽 쳤다.
“니가 마음대로 엉덩이에 손가락 넣었잖아!”
아, 그거… 강동현은 약간 반성하는 얼굴이 되더니 인상을 좀 쓰고는 말했다.
“미안….”
“마음대로 만지지 마! 그냥 대딸을 쳐주든 뭐든 할 테니까 나 좀 가만히 두라고!”
“…….”
차가 계속 움직였다. 목적지가 어디인지 알 수 없었다. 운전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폐쇄적이며 프라이빗한 경험이다. 둘은 입을 다문 채 한참을 차 안에 있었다.
황경호의 집 근처였다. 집 앞까지 가서 사이드브레이크를 내렸다. 황경호가 곧바로 내리려고 하자 그의 손을 잡았다. 부드럽게 잡아서 가만히 있었다. 황경호는 인상을 확 썼다가 물었다.
“뭐 더 할 말 있어요?”
“…아까 화낸 건 미안. 너 또 마포대교 가나 싶어서 놀라서… 치료실 안에서도 미안하다. 약속했는데도 너랑만 하면 꼭 괴롭히고 싶어져서….”
“그래서 어쩌라구요.”
그는 다른 손으로 핸들을 만지작거리다가 한숨을 쉬더니 황경호를 보았다. 어쩐지 호소하고 싶은 것 같은 얼굴이다.
“나랑 하는 거 그렇게 싫어?”
“…….”
황경호는 그렇게 물어오는 강동현의 멀끔한 얼굴을 잠깐 쳐다보다가 잡히지 않은 다른 손을 번쩍 추켜올렸다. 그랬더니 강동현이 아차, 하는 얼굴이 되더니 단숨에 그 손을 잡았다. 저자세를 취하더라도 역시 맞을 뻔하니까 기분이 안 좋은 모양이다.
“너도 나 때리는 거 습관 됐어.”
경고하듯 그렇게 말했다. 황경호는 그의 얼굴에다가 박치기를 했다.
“윽….”
콧등을 박은 모양인지 강동현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며 자신의 얼굴을 잡았다. 황경호도 이마가 아팠지만 아픈 티는 내지 않고 소리쳤다.
“너 같으면 너같이 하는 놈이랑 하면서 좋겠냐, 병신아!”
“아, 씨… 너도 결국 마지막엔 싸잖아.”
“그건 니가 멋대로…!”
“내가 만지면 안 선다면서 매번 나 패고 멋대로 흥분하는 건 누군데.”
황경호가 화가 나서 다시 그를 때리려고 하자 금세 요령이 생긴 건지 강동현이 바로 막았다. 박치기를 다시 하려니 그것도 오히려 끌어안아 피했다. 그렇게 차 안에서 몸싸움을 하다가 씩씩거리며 서로를 마주 보았다.
“아!! 진짜 너 같은 거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황경호가 이를 갈며 소리쳤다. 강동현이 그 말을 듣고 인상을 구기더니 답했다.
“난 너 안고 싶어.”
그리고 황경호의 두 팔을 놓아주었다. 그러더니 괜히 말했다는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안 해. 그러니까 그냥 가.”
황경호는 입을 꾹 다문 얼굴로 그의 옆얼굴을 보다가 물었다.
“…나한테 도대체 왜 이러는 건데.”
“몰라.”
“나 좀 내버려 두라고.”
“…싫어.”
“그럼 앞으로도 계속 이럴 거야? 넌 제멋대로 나 뭐처럼 취급하고 난 못 견디고 언젠가 벽돌로 니 머리 치면 되는 거야?”
구체적이네… 강동현은 두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가 차 시트에 기대더니 뭔가 뚱한 얼굴이 되었다가 이내 황경호를 돌아보았다.
“내가 뭐 대신에 해줄 수 있는 건 없는 거야?”
이 말 했다가 다시 맞았다.
“제발 사람 좀 돈 받고 몸 파는 사람처럼 취급하지 말라고!”
“아, 알았어. 미안. 알았다니까.”
강동현은 완전히 항복했다는 듯이 손을 들었다.
“아… 난 왜 얘밖에 안 되는 거지….”
강동현이 혼자서 중얼거렸다.
“그럼 그나마 최대한 허용할 수 있는 게 어느 정도야?”
강동현이 물었다.
“뭐가.”
황경호는 도리어 잔뜩 경계한 얼굴로 강동현을 보았다. 강동현은 핸들을 잡은 두 손에 얼굴을 기대고 상대를 바라보았다.
“그냥. 내가 널 만지거나 니가 나 만지는 거.”
*
“자, 여기요.”
황경호는 강동현에게 무언가를 넘겼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던 강동현은 말없이 스윽 물건을 받았다. 그리고 잠깐 그 안을 보았다가 확인을 하듯 물었다.
“또 새것 넣은 건 아니지?”
도대체 이 변태 새끼는 그걸 어떻게 아는 것인가. 황경호는 머리가 아파져오는 것을 느끼며 대답했다.
“말씀하신 대로 넣었어요.”
“알았어.”
강동현은 다시 좀 바빠졌는지 몇 주 치료를 못 받았다. 그래도 간간이 근처엔 왔었는데 이처럼 황경호에게서 약속한 물건을 받기 위해서였다.
물론 그 물건은
대략 일주일 치의 팬티다.
황경호는 강동현을 직접 만지기도 만져지기도 싫다고 하였고 그렇다면 팬티라도 내놓으라고 한 강동현이었다. 강동현은 뭔가 초조한 듯한 입매를 보였으나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 표정을 제대로 파악할 순 없었다. 그대로 황경호의 얼굴을 보다가 말했다.
“다음 주는 제시간에 병원 갈게.”
“알겠어요.”
조수석 창문이 올라가며 강동현은 바로 차를 출발시켰다.
“뭐….”
됐나. 처음에는 이것마저도 마음에 안 들어서 모를 줄 알고 새로 산 팬티를 한 번 빨아서 줬는데 그걸 어떻게 바로 알아차리더라. 어디다 쓰는지 생각하는 건 관두기로 했다. 그냥 버리는 셈 치지. 그렇게 어쩔 수 없이 적응해버렸다.
그는 바로 다시 병원으로 올라갔다.
“아, 황 간호사. 응급환자.”
정기연 간호사가 황경호한테 태블릿의 화면을 보여주었다.
“음. 이번 달 첫 환자네.”
“응. 기계가 아예 전부 들어갔대.”
엑스레이 사진에 적나라한 성인용품이 보인다. 황경호는 이강유와 함께 수술실로 갔다. 수술까지는 아니고 이완제를 잔뜩 놓고 기계를 빼냈다. 그리고 예전 환자와 같이 기저귀를 찬 채 입원실로 갔다. 그는 시술부터 입원실에 갈 때까지 고개를 푹 숙이고 부끄러워했다. 그는 20대 후반에 어쩐지 사회성이 떨어져 보이는 남자였다. 두꺼운 안경을 썼고 지저분하게 여드름이 났다. 앉아있어서 키는 얼마나 클지 알 수 없었지만, 분명히 그렇게 크지 않아 보였고 살이 겹겹이 쌓일 정도로 살이 쪘다. 그리고 분명 살을 뺀다 해도 잘생겨질 얼굴도 아니었다. 황경호는 이런 사람들을 보면 괜히 마음이 짠해졌다. 우리나라가 이런 사람들에게 얼마나 차가운지 알기 때문이다.
“괜찮아요, 환자님. 저희 병원에 매달 환자님과 같은 고통으로 내원하시는 분들이 많으세요. 사람이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죠.”
황경호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말하며 환자를 위로했다.
“아, 아, 아니요….”
환자는 그렇게 말을 더듬어 말하더니 고개를 더 푹 숙였다. 황경호는 더욱 마음이 짠해졌다.
세상에는 강동현 같은 사람이 있다. 그는 목표를 향한 강한 추진력을 가졌으며 자기애와 자기확신도 강하다. 복잡하고 많은 인간관계 속에서도 스스로를 전혀 잃지 않을 정도로 그는 강한 남자였다.
그리고 그는 가진 것이 많았다. 아름다운 얼굴, 큰 키, 멋진 육체, 낮고 좋은 목소리, 근사한 미소. 그는 태어날 때부터 이를 전부 가지고 태어났다. 거기에 매력과 돈, 명성까지.
만약에 이 환자도 강동현같이 아름답게 태어났더라면 분명히 사람들이 좋아했을 것이다. 이렇게 누가 봐도 자신감이 없어 보이진 않았을 것이다. 사람이란 결국 어렸을 때 자신이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지는지를 관찰하고 스스로를 정의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가 이런 사람이 된 것은 결국 그의 탓이란 하나도 없는 거 아닌가?
황경호는 좀 더 신경을 써서 입원실을 정리해주며 웃는 얼굴로 그를 간호했다.
“마취가 풀리고 나면 약간 아플 수도 있어요. 기구를 좀 오래 사용하신 것 같더라구요. 직장은 열상이 잘 생겨서 조심해야 해요.”
“네….”
“이제 좀 덜 더운 것 같지 않아요? 오늘은 날씨도 좋아진 것 같구요.”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열었다. 좋은 병원이다 보니 창밖으로 압구정의 풍경이 잘 보였다. 황경호는 다시 돌아와 TV 리모컨을 챙겨주었다.
“창 닫고 싶으시면 호출 버튼 누르시구요. 편하게 쉬고 계세요. 식사는 6시에 갖다 드릴 거에요.”
황경호는 얼굴에 박아놓은 듯한 완벽한 미소를 지으며 환자를 대했다. 지저분한 안경 너머로 환자는 가만히 황경호를 관찰하다가 조심스러운 태도로 입을 열었다.
“저… 화화황 간호사님께서 갖다 주실 수 있나요?”
“네. 그럼요. 다른 분들 불편하시면 제가 갖다 드릴게요.”
“그그렇게 해주시면 고고맙습니다….”
“네. 그럼 나중에 뵐게요. 잘 쉬고 계세요.”
황경호는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한참 일을 하다가 문득 대기실에 켜진 TV를 보았다. 누가 채널을 바꿨는지 예능 프로가 나오고 있었다.
『한국, 중국, 일본, 동남아까지. 한류 열풍 주역 중의 주역으로 꼽히는 배우 강동현! 비운을 타고 난 왕이었던 그는 뺀질거리는 재벌 3세 초식남이 되었다가 히어로가 되어 사람들을 구하고 아름다운 여배우의 시니컬한 경호원이 되며 아시아의 심장을 훔친 그 남자, 강동현이 드디어 <××의 정글>에!』
“진짜 일 중독이야….”
어젯밤에 처음으로 방영된 모 예능 프로의 1번째 에피소드였다. 오지로 가서 생존하는 프로그램이다.
그의 소속사가 그를 뽑아먹을 작정이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가 돈독이 올라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그는 한중일에 동남아까지 해서 여름 내내 아시아 팬 미팅 콘서트 5개국 10개 도시 투어를 다녔다. <코드명: 울프>의 대박 덕분이다. 이제 강동현은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전역의 스타가 되었다. 그래서 광고 일정이 엄청나게 빡빡하다고 인터넷 카페에서 봤다. 이미 골수 팬들은 강동현이 얼마나 일 중독인지 잘 알고 있었고 그런 그를 매우 걱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또 쉴 틈도 없이 오지 같을 델 가서 촬영을 하고 왔다.
‘아까 봤을 때 좀 탔었나.’
차 안에 있는 데다가 선글라스를 껴서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다. TV에선 항상 메이크업과 조명 아래에 있던 그가 눈부신 적도의 태양 아래 밝게 미소를 짓는 건 정말 멋있었다.
아무래도 진짜 한창인 배우다 보니 검은색 래쉬가드도 잘 챙겨입고 있었지만, 몸이 워낙에 좋다. 주변 사람들이랑 엄청 비교가 될 정도였다. 키와 덩치가 크고 몸이 꽤 되다 보니 말이다. 게다가 중간에 예고 영상으로 그가 벗은 영상을 아주 인상적으로 틀어주었다. 황경호는 인상을 찌푸린 채 가만히 TV를 보고 있었다.
“황 간호사, 뭐 해?”
오 간호사님이 지나가면서 한소리 했다. 그제야 정신 차렸다.
“아, 네….”
일로 돌아갔다. 심하게 풀이 죽은 몇 명의 환자들과 심하게 맛이 간 몇 명의 진상들을 상대하다가 6시가 되어 마지막으로 아까 뚱뚱한 게이 환자의 저녁을 챙겨주러 갔다. 그는 한창 TV를 보고 있다가 황경호가 들어오자 TV를 껐다.
“오오오셨어요….”
“네. 몸은 좀 어떠세요?”
“많, 많이 괜찮아진 것 같아요….”
“다행이네요.”
“이제… 퇴, 퇴근하시는 거예요?”
“네.”
황경호는 웃으면서 침대 위에 대를 세우고 그 위에 부드러운 음식물로 준비된 식판을 놓았다. 일회용 수저를 직접 까서 환자에게 쥐여주었다.
“가, 감사합니다… 저….”
환자는 고개를 푹 숙이며 말을 이었다.
“저… 이래서… 친구도 없고… 이렇게 남이 뭐 해주는 거 진짜 처음이에요….”
“…….”
뜬금없는 고백이었다. 하지만 황경호는 수많은 진상 환자들을 상대해보았고 당연히 이런 종류의 자존감이 바닥을 기는 환자들도 있었다. 황경호는 말없이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몇 시간 뒤면 퇴원하시겠네요. 끝까지 챙겨드리지 못해서 죄송해요. 그럼 전 퇴근해보겠습니다.”
환자는 아무런 말 없이 황경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황경호는 어깨를 돌리며 간호사실로 갔다. 당직인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나왔다.
낮에 강동현을 봤던 것과 아까 봤던 불쌍한 환자에 대한 기억이 동시에 떠올랐다. 스스로에게 자신이 있기 때문에 자기 파괴적일 정도로 열심히 사는 남자와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기 때문에 자기 파괴적인 남자. 결국, 남자란 그저 자기 파괴적일 뿐이라는 걸까.
‘하긴… 나만 해도.’
황경호는 저도 모르게 생각했다. 그들보다 훨씬 자기 파괴적인 사람이 황경호였다.
‘나는 어디로 분류될까.’
똑같다면 빛나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걸까. 압구정 한복판에 걸려있는 커다란 화보 속의 그 남자를 잠시 바라보며 서있었다. 그리고 떠밀리듯 사람들 속으로 흘러갔다.
*
“와… 진짜 어제 집에서 기절했다.”
매니저 형이 그렇게 말했다. 강동현은 메이크업을 받으며 눈을 감고 있었다.
“넌 괜찮냐?”
“응.”
강동현은 약간 칙칙한 얼굴로 그렇게 답했다. <코드명: 울프> 이후로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동남아 등에서도 광고를 찍느라 굉장한 일정을 보내고 있는 강동현이었다. 중간중간에 국내 예능 프로와 중국, 일본 예능 프로도 하나씩 했다. 인터뷰나 화보 촬영도 많았다. 진짜 사람 몸 하나로 이렇게까지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예전에 트로트 가수 하나가 하루에 2시간 자고 지방 행사 뛰어서 1년에 100억 번다고 했을 땐 진짜 미쳤다 싶었는데 남 말이 아니었다.”
매니저는 강동현에게 커피를 건넸다. 강동현은 아이스커피를 벌컥벌컥 마셨다. 그리고 물었다.
“지금 봐야 할 대본은 몇 개나 있어?”
“마흔 개 정도 있는 것 같은데. 일본이랑 중국 작품도 있다. 아직 번역은 안 해놨어.”
“해줘.”
“드라마가 열다섯 개 정도고 영화가 스물 몇 갠가. 계속 들어오고 있어. 근데 너 이 상태로 드라마 찍으면 진짜 병원에 실려 간다. 이제 진짜 몸 좀 챙기면서 하자.”
작년에도 세 번인가 실려 갔는데. 매니저가 한숨을 섞어 말했다.
“1년에 작품을 세 개나 하는 건 너 급 정도 중엔 너밖에 없어. 사무실에 오는 팬들 선물이 죄다 보약, 영양제 이런 거라니까. 사장님도 여기저기 접대 부르는 데가 많아서 위 다 헐겠다더라.”
매니저는 커피를 마시며 도시락을 먹는 강동현을 바라보았다. 머리를 하면서 말이다.
“앞으로 해외 광고 많을 텐데 드라마는 좀 그렇지 않냐.”
“드라마가 찍을 땐 힘들어도 하루하루 반응 오는 것도 재밌고… 정통사극도 하고 싶네.”
“정통사극은 한 3년만 기다리자. 어릴 때 할 수 있는 거란 게 있으니까. 너무 한 곳으로 이미지가 굳어지는 건 너도 별로잖아.”
“나 요새 너무 로코 하는 쪽으로 이미지 굳어지는 거 아냐?”
“너 연기 잘하는 거 한국 사람들 다 알아. 그리고 20대 때는 괜찮아.”
“그건 그런가. 아, 영화도 아예 정통 로맨스나 아니면… 좀 새로운 걸 하고 싶다.”
“생각 좀 해보자.”
강동현은 오늘 국내에서 하루종일 팬 콘서트를 하고 바로 일본으로 넘어가야 했다. 강동현은 콘서트를 잘 끝마치고 비행기에 타서는 대본을 읽기 시작했다.
‘재벌 2세, 재벌 3세, 사기꾼, 초능력자, 마법사… 요즘 로맨스는 판타지네. 아, 이 작가 제국 드라마 작가네. 이런 선이 굵은 연기는 안 되려나. 진짜 하고 싶은데. 영화는 블록버스터 같은 느낌이나 아니면 정통 로맨스도… 근데 요새 우리나라는 정통 로맨스가 그다지 인기가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비행기 안에서 글을 읽다 보니 금방 머리가 아파진다. 아니, 피곤해서 그런 거 같다. 강동현은 대본을 내려놓고 미등을 껐다. 등받이에 머리를 기댔다.
‘아, 왠지 하고 싶다….’
피곤해서인 것 같다. 곧바로 전에 집에서 그 간호사에게 티팬티를 입힌 채 했던 게 떠올랐다. 살짝 건조한 듯 보송보송한 피부. 부드러웠다. 흥분해서 촉촉해지는 것도 좋았다. 달큼한 체취가 강해지니까. 근래 제일 제대로 한 것 같은 느낌이 든 날이었다.
원래부터 그냥 다 좋게좋게 넘어가려는 기색이 많은 황경호였으나, 강동현에 한해서는 정말 체념과 분노폭발이 수시로 왔다 갔다 한다. 강동현도 아주 약간의 죄책감은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평범을 가장하고 있는 것을 보면 괴롭히고 싶어진다. 그 속의 표정을 보고 싶다.
언제나 한 치의 틀림도 없는 얼굴로 웃는 간호사이지만 그 얼굴도 다 다르고, 무표정도 화난 얼굴도 다채롭다. 소년 같이 무해할 것만 같은 그 이미지도 느끼는 얼굴이 되면 순식간에 성숙하게 보여 색다르다. 온몸이 빨개지는 게 굉장히 꼴린다.
‘근데 걔는 나 엄청 싫어하겠지.’
강동현은 반쯤 눈을 떴다. 옆에 앉은 매니저는 코를 약간 골며 자고 있었다. 아무리 강동현이라지만 그 정도 자각은 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그다지 크게 안달복달하지 않을 뿐이다. 갑자기 상대가 좋다고 매달려온다면 그게 더 소름 돋을 것 같다. 마포대교 달려가고 싶어 비위를 맞추는 것뿐일 테니까.
게다가 누차 생각했지만, 그 간호사 같은 타입은 강동현이 딱 질색하는 부류의 인종이었다. 착하다는 말에 안심하고 숨는 비겁자들. 스스로를 비하하고 거기서 오는 자학의 쾌감을 즐긴다. 스스로를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너무나 성가시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상처받고 세상을 원망한다. 왜 그 간호사가 아니면 안 되는지는 강동현이 제일 알고 싶었다.
일본에 도착해서는 유명 연예 잡지 인터뷰부터 시작했다. 작품에 관한 것부터 사생활에 관한 것까지 다양한 질문이 나왔다.
“그럼 강동현 씨는 어떤 스타일의 여성이 취향이신가요?”
통역자가 그렇게 질문을 했다. 강동현은 잠깐 생각해보다가 답했다.
“성격이 밝고 쾌활한 사람이 좋아요. 만나면 즐겁고 그래서 안 볼 때 보고 싶은 사람이요.”
“그런 타입의 여성과 교제하신 적 있으신가요?”
“학생 때 그런 친구와 만났던 적이 있습니다. 이상형이었죠.”
강동현은 둘러서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이 자신의 이상형이라고 말하는 사람과 실제로 반하게 되는 사람에는 차이가 있다고 하는데 강동현 씨는 어떠세요?”
“아, 음….”
강동현은 잠깐 멈칫했다. 미리 받은 질문 목록에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강동현은 잠깐 시선을 돌려 생각을 하는 듯싶었다. 그러더니 답했다.
“글쎄요. 저는 스스로를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이상형이 아니었던 사람에게 반하게 된 적이 있다면 이미 이상형이 그쪽으로 바뀌지 않았을까요?”
*
“넌 진짜….”
“응?”
김태형이 밥을 먹고 있는 황경호를 보고는 혀를 찼다. 황경호가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왜?”
“너 말이야… 강동현이랑 진짜 무슨 사이냐?”
“갑자기 무슨 말이야?”
황경호는 다시 TV로 시선을 돌렸다. 김태형은 황경호에게 데운 술과 주전부리를 곁들어 내주며 말했다.
“강동현 나오는 장면은 진짜 빠짐없이 보네.”
밥을 먹다가도, 술을 먹다가도, TV에서 강동현이 나오면 본다. 표정 자체는 좋지 않다. 다만 계속 보고 있을 뿐이다. 싫다면 좀 손해를 보더라도 먼저 피하는 성격이라는 것은 잘 안다. 성격이 유한 애라 사람들과 갈등을 일으킬 바에야 참고 말아서 누군가와 이렇게까지 척을 질 것 같진 않은데 말이다.
“별로….”
황경호는 인상을 조금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연기 잘하지, 강동현.”
“…그걸로 먹고 사는 인간인데 잘해야지.”
“연기 못하는 애들 얼마나 많은데. <의형제>도 다 좋았는데 거기 나왔던 그 짱개집 알바는 연기 못했고 이번에 울프도 그 아이돌은 연기 별로였잖아.”
예전에도 드라마는 즐겨봤던 거 같지만, 강동현을 직접 알게 되니 강동현 나오는 작품은 다 보는 것 같은 김태형이다. 이 집 알바생도 그렇다. 둘 다 강동현 팬이 되었다. 아니… 사실 그 남자는 정말 그런 힘이 있는 배우였다. 그를 보게 되면 더 알고 싶게 만드는 인력이 이미 외견에서부터 잔뜩 묻어나온다. 황경호도 단지 공원에서 한 번 촬영하는 것을 보고 단번에 그의 작품을 찾아보지 않았던가. 처음엔 그도 별다른 생각 없이 강동현을 배우로서 좋아하게 된 평범한 사람이었다. 황경호는 다시 TV를 보다가 문득 말했다.
“세상 참 불공평한 거 같아.”
“갑자기 새삼스럽게.”
김태형이 대꾸했다.
“얼마 전부터 병원에 어떤 젊은 남자 하나가 치료받으러 오는데. 처음엔 사고로 왔다가 지금은 일주일에 세 번 정도 치료하러 온단 말이야.”
“얼마나 심하길래….”
“좀 전체적으로… 그리고 치료 끝나면 확대술도 받으려는 것 같더라고.”
“몇 살인데.”
“스물아홉 살.”
“쯧. 한창인데… 걔가 불쌍해서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그냥… 형은 모르니까 하는 말이지만… 그 환자 진짜 딱 보기에도 전형적인… 사회 부적응자처럼 보여.”
“못생겼어?”
“응.”
“살쪘어?”
“응.”
“나보다 쪘냐.”
“응. 그리고 형은 뱃살 좀 있고 해도 그냥 푸근한 아저씨같이 넉살 좋아 보이고 인심 있어 보이는데. 그냥 얘는 진짜 딱 보면 아, 할 정도야.”
“너네 병원에 그런 남자들 많이 온다며. 남자는 거기에 문제 있으면 100퍼센트 성격장애 온다고 열변을 토하더니만.”
그건 그렇지. 황 간호사야말로 병원에서 그런 열등한 남자들의 열등감을 위로하는 역할을 하지 않았던가. 수많은 형태의 수많은 환자들이 있었다. 황경호는 잠깐 생각을 하곤 말을 이었다.
“그래도 그런 사람들은 다 사회생활도 하고 다른 사람들이랑 말도 할 줄 아는 사람들인 경우가 많은데 진짜 걔는… 몇 년 동안 라면만 먹으며 방에 처박혀서 야동만 볼 것 같은 스타일이야.”
“그러냐….”
“이런 생각 하면 안 되지 싶으면서도 보면 마음 짠하고 그래.”
황경호는 이상할 정도로 특정 스타일의 ‘불쌍한’ 사람들에게 마음을 썼다. 초록이 같은 어린아이나 아니면 비참해 보일 정도의 사회 부적응자나. 전자야 그렇다 치지만 후자의 경우 보자마자 아주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말이다. 그냥 보면 불쌍하고 연민의 마음이 드는 모양이었다.
“만약에 그 환자가 강동현 같이 생겼더라면 그랬겠어?”
“안 그랬겠지.”
김태형도 대번에 말했다.
“그거야.”
황경호는 술을 홀짝거리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말을 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런 사람들을 필요 이상으로 혐오하는 거 같아. 사회의 규격에 스스로를 맞춰보려고 노력조차 하지 못하는 불쌍한 사람들인데.”
“그래, 그렇지.”
김태형은 설거지를 한 그릇을 예쁘게 정리하며 말했다.
“아, 갑자기 우리 아버지가 한 말 생각나네.”
“뭔데?”
“예전에 텔레비전 보는데. 어떤 남자가 나이가 삼십 대 중반이고 그때까지 취업준비 한 번 안 하고 홀어머니 한 달 100만 원 버는 걸로 매일 컴퓨터 게임이나 하고 사는 거야. 아마 너가 말한 그 환자처럼 누가 봐도 사회 부적응자 같이 생겼더라.”
“그런 사람들 도대체 얼마나 많은 걸까, 우리나라… 집밖에 나가지도 못하지 그런 사람들. 사람들 시선 무서워서. 얼마나 되는지 짐작도 안 된다.”
“근데 우리 아버지는 대번에 저런 건 장애인이나 다름없다고 말씀하시더라고.”
김태형이 말했다. 황경호는 깜짝 놀랐다. 김태형같이 유순해 보이는 사람의 아버지가 그런 과격한 발언을 하는 사람일 거라 보이진 않는데.
“몸만 불편하거나 지능에 문제가 있는 사람만이 아니라 사회에 특별나게 적응 못 하는 인간들도 그런 거나 마찬가지라고.”
“그 말은 좀 심한 거 아냐? 사회적 분위기만 좀 개선되어도 괜찮을 사람들인데.”
“글쎄… 아버지 말에 다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나도 물장사하면서 별별 사람들 다 만나봤고… 장애라는 게 따로 있나 싶기도 하고….”
김태형은 말을 흐렸다. 황경호가 물었다.
“형 아버지, 형이랑 닮았어?”
“우리 아버지? 어렸을 때는 하나도 안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요새는 거울 보면 딱 아버지야. 미간에 주름만 이렇게 나면?”
김태형이 인상을 쓰며 그렇게 말했다.
“아버지 고등학교 선생님이시라 좀 고지식한 면이 있는 옛날 사람이었어. 어렸을 땐 많이 싸우기도 했는데 지금에 와서 보면 굳이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나, 싶기도 하고. 나쁜 사람은 아니야.”
“그렇구나.”
어쩐지… 강동현한테 이런 주제에 대해 묻는다면 아마 가차도 없이 그런 쓸데없는 걸 왜 신경 쓰냐는 말을 들을 것 같다. 아니면 딱 잘라서 관심 없다고 하려나. 약간 기분이 그래졌다. 황경호가 말없이 술을 홀짝거리고 있는 것을 보고 김태형이 말했다.
“또 아버지가 한 말 생각나네. 별로 동의는 안 하는 말인데… 그래서 저런 사람들 불쌍하다고 잘해주지 말라더라고. 재수 없다고.”
“우와. 진짜? 형 아버지 진짜 매정하시다.”
“나도 그렇게 말했어.”
“다들 좋게 좋게 살면 어디가 덧나나….”
황경호는 등받이에 기대어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며 TV를 힐끗 보았다.
“아마 저 인간도 세상에 그런 사람들이 있든 없든 신경도 안 쓰겠지.”
“그런 타입이야?”
바로 그렇다고 말하려다가 황경호는 인상을 쓰고 술을 마셨다.
“몰라.”
“니네 둘은 진짜 친한 거냐, 안 친한 거냐.”
얼마 전에도 동료들이랑 술 마시러 가게 왔었는데. 김태형이 말했다. 어쨌든 그가 이 가게에 오게 된 것은 황경호 때문이 아니던가. 황경호는 밥을 먹으러 오고 그는 술을 마시러 오는 거니 마주치지는 않지만.
“안 친해. 그건 확실한데… 저 인간이 어떤 인간인지는 모르겠어. 아마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 모르겠지.”
황경호는 그렇게 알듯 모를듯한 말을 하며 술을 마셨다. 황경호가 술을 더 시켰지만, 김태형이 말렸다. 그러고 황경호는 지하철이 끊기기 전에 가게를 나섰다.
*
거리에서 술에 취해 휘청거리는 사람들은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 다들 무개성하고 비슷비슷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이란 이런 거겠지. 집에서 딱 한 잔만 더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편의점을 들렀다. 대충 아무거나 집어서 집으로 향했다. 집으로 향하는 언덕을 올라가는데 휴대폰 진동이 울린다. 황경호는 화면을 보았다.
“무슨 전화야, 또.”
바로 종료 버튼을 눌렀다. 집이 위치한 빌라 앞에 거의 도착했다. 빌라 앞에는 차 한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0309… 저거… 눈에 익은 BMW라 가만 보니 넘버까지 맞다. 차 문이 열리고 키가 훤칠한 남자 하나가 내렸다.
“전화는 왜 끊어.”
“또 왜요.”
황경호가 물었다. 남자는 선글라스를 벗었다. 어두워서 모르겠지만 역시 좀 탔나. 황경호는 저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했다.
“이거나 줄까 해서.”
그러면서 강동현은 고급스런 종이가방 하나를 건넸다. 황경호는 그가 뭘 주는 걸 굉장히 싫어했으므로 받지 않고 물었다.
“뭔데요.”
“술 좋아하잖아. 나갔다 오는 김에 하나 샀다.”
“…….”
“술 사 온 거야?”
황경호의 손에 들린 편의점 비닐봉투를 힐끗 보곤 물었다.
“그렇게 비싼 건 아냐.”
강동현이 선수를 쳐서 말했다. 황경호는 도로 가져가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또 그걸로 실랑이하기 싫은 마음도 굴뚝 같았다. 그와 1년 반이나 싸워대면서 느낀 건 그가 굉장히 다른 사람 말(아마 자신의 말만)을 안 듣는다는 것이다.
“네… 잘 마실게요.”
봉투를 건네주는 그와 손끝이 스쳤다. 강동현은 잠깐 인상을 썼다. 봉투는 손에 드니 꽤 무거웠다.
“이제 뭐 해?”
“쉬어야죠.”
“더 마실 거 아냐? 그 가게 또 갔다 왔지?”
언제가 여름의 끝일까. 밤은 이제 제법 시원하다. 주홍빛 가로등에 그림자가 길게 늘어진다. 강동현은 가만히 황경호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같이 먹자.”
“제가 왜 굳이 댁이랑….”
“내가 술 샀잖아.”
누가 사 달랬나. 황경호는 가만히 강동현을 보다가 무슨 바람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취해서일까. 충동적이다.
“알겠어요.”
“진짜?”
자기가 말해놓고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 안 한 것일까. 황경호는 빌라의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눌렀다. 강동현이 따라 들어왔다.
“쉬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안 피곤해요?”
“요새 해외를 많이 나가서인지 아직도 시차가 안 맞아.”
3층의 가장 끝방이었다.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자 정말 뭐 하나가 없는 휑한 원룸이 나왔다. 아니, 방 한구석에는 한때 쓰다 말았을 것 같은 퍼즐이나 게임기들이 잔뜩 있다. 반쯤 무너진 조잡한 모래성 같다.
“식탁은 따로 없어요.”
황경호는 상을 하나 내와서 폈다. 거기에 강동현이 사 온 술과 황경호가 사 온 술, 주전부리들을 내놓았다. 컵을 두 개 내왔다.
“혼자서 술은 왜 이렇게 마시는 거야?”
“남 말 하네요. 댁도 혼자 맥주 한두 캔은 매일 마신다면서요.”
“그건 그냥 음료수 같은 거지. 그리고 요샌 안 마셔. 넌 혼자서 소맥 말려고 했냐?”
맥주 두 병에 소주 한 병이 나오니 강동현은 좀 질색인 얼굴을 했다.
“왜요.”
“…아니다.”
이미 좀 마셨네. 강동현은 황경호의 상태를 살피며 그렇게 생각했다. 강동현이 사온 건 사케였다. 그것부터 열었다.
“초록인가, 걔는 잘 있대?”
“네.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영상통화도 하고 해요.”
“다행이네.”
그 아기가 미국 가고 나서 병원에서 한 번 갑자기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집에서도….
‘그렇게 또 울었던 적이 있을까?’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다. 술을 마셨다.
“술 그만 끊어라. 청승맞게 무슨 술을 혼자서….”
어차피 그 단골 가게 가서도 혼자서 술을 마시는 것뿐 아닌가. 차였다고 한 달이나 술 펐던 건 기억도 못 하는 사람처럼 강동현이 말했다.
“언제부터 제 걱정하셨다고.”
술 끊으란 사람이 술을 사 오냐. 황경호는 앞뒤가 안 맞는 강동현을 힐난했다. 강동현은 무시하고 말을 돌렸다.
“병원 일은 안 힘들어? 진상 환자 없냐?”
“댁만 안 오면 전 무사태평이에요.”
“아, 그래.”
둘은 알아서 술을 따라 마셨다. 딱히 그 이상 별 얘기는 없었다. 강동현은 그러다 갑자기 인상을 좀 쓰더니 시선을 돌리며 조용히 말했다.
“나 너 걱정 많이 해.”
“네?”
갑자기 뜬금없게… 황경호가 쳐다보자 살짝 취기가 도는지 느릿한 어조로 강동현이 말을 이었다.
“니 걱정 안 한다길래. 너 또 죽고 싶어진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자주 들고. 근데 넌 전화하면 잘 안 받으니까.”
강동현이 그렇게 말했다.
“솔직히 세상에서 니 걱정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이 나 아냐?”
하는 꼴을 보니 다른 사람들한테는 힘들다는 말 한마디 안 하고 사는 것 같은데 말이다. 그래서야 아무리 그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도 그에 대한 걱정을 할 수조차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겉으로 보이는 이 간호사는 무척이나 밝고….
“댁 때문에 죽고 싶어질 때도 있으니까 앞으론 전화는 관둬요.”
황경호는 술을 마시면서 그렇게 말했다. 왜인지 강동현은 웃었다. 그리곤 말했다.
“그 애기 보고 싶으면 말해. 비행기 표 정도는 사줄게.”
황경호는 인상을 팍 쓰며 발끈했다.
“이 인간이 또 뭐라는 거야. 내가 왜 댁한테 그런 걸 받아요?”
“내가 뭐 대신에 달라는 것도 아닌데. 준다고 할 때 받아.”
“달라고 안 하긴 뭘 안 해요. 사람을 잡아먹으려고 안달이면서.”
황경호가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건 니가 뭘 받든 안 받든 마찬가지야.”
“뭐라구요?”
황경호는 황당함을 숨기지 못하며 노려보았다.
“그러니까 받고 싶은 건 다 받아. 하고 싶은 것도 다 하고. 처음에 넌 좀 더 영악했던 거 같은데.”
“…….”
“지금 생각해보면 니가 나 골탕 먹이던 것도 나쁘지 않았어.”
아주 스릴이 넘쳤지. 강동현이 웃었다. 황경호는 그런 강동현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았다. 빨리 주제를 바꾸고 싶었다.
“도대체 사람 팬티는 왜 그렇게 들고 가는 거예요?”
“알고 싶어?”
아차차. 황경호는 자신의 입을 틀어막고 싶어졌다. 벌써 소주 2병 정도는 마셨을 것이다. 술이 웬수다.
“아니… 됐어요. 말이 헛나왔어요.”
황경호는 고개를 돌렸다.
“안 그래도 말인데. 저번에 팬티 받아 가고 일주일 넘게 더 못 받아서 다 썼다고. 아니, 애초에 팬티 가지곤 너무….”
‘뭐라는 거야. 뭘 어디다 써….’
황경호는 좀 신경질적으로 술을 마셨다. 강동현의 손이 옆머리에 닿았다. 그는 장난을 치듯 황경호의 머리카락을 만졌다.
“냄새 한 번만 맡아보면 안 돼?”
“냄새는 왜요.”
“한 번만.”
그렇게 말하면서 아주 그윽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정말 드라마에서나 나올 것 같은 눈빛이었다. 황경호는 굉장히 당혹스러웠다. 제정신이라면 대번에 물리쳤겠지만, 기본적으로 강동현은 굉장히 인력이 강한 남자였다. TV 속의 그는 정말 남녀노소 누구라도 혹할 정도로 매력적이지 않던가.
아니, 실은 현실의 그야말로….
황경호가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자 그대로 황경호를 쭉 끌어당겼다. 그리고 그의 목덜미를 감싸 잡더니 귓가에 얼굴을 묻었다. 숨을 가만히 들이켜는 게 느껴졌다. 황경호는 급격히 술이 올라오는 것 같으면서도 긴장되는 게 느껴졌다.
‘나… 이 인간 왜 집까지 들어오게 한 거지?’
황경호는 어질어질한 머리로 그렇게 생각했다. 손가락 하나 닿는 게 싫어서 팬티로 때우라고 던져줄 때는 언제고 이 남자가 이런 접근을 할지도 모른다는 걸 알면서도 집에 들인다고?
이 인간을 대할 때는 언제나 그랬다. 바늘 하나 안 들어갈 것처럼 굴다가도 한 번씩 틈을 주고 만다. 처음이 그랬고 연말도 그랬고 저번도 그렇고….
그리고 황경호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아… 나 또 죽고 싶었구나.’
*
황경호는 경기를 일으키듯 벌떡 몸을 일으켰다가 다시 엎어졌다.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출근해야 하는데 술을 그렇게 마시다니 미쳤지. 돌았다. 온몸이 무거웠다. 오늘따라 왜 이래….
“…!”
순간 옆에서 기척이 느껴져서 깜짝 놀랐다. TV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미남이 있었다. 아니, 말에 어폐가 있었다. 진짜로 TV에서 튀어나온 미남이었다. 황경호는 너무 놀라서 소리조차 지를 수가 없었다. 기억이 나지 않았다. 같이 술을 먹었던 것 같긴 한데….
‘내가 미친놈이지… 무슨 좋은 꼴을 보겠다고 이 새끼랑 술을….’
그렇게 생각하면서 조용히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뭔가 휑했다.
“응?!”
옷은 왜 다 벗고 있어?! 황경호는 너무 당황해서 침대에서 굴러떨어졌다. 정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있었다. 너무 당황하고 긴장해서 식은땀이 온몸에 베였다. 햇살이 들어온다. 공포물의 클라이막스를 보듯 천천히 아랫도리를 바라보았다. 따, 딱히 뭔가 흔적이 보이진… 그렇게 생각하는데 허벅지가 끈적했다. 황경호는 손으로 다리 사이를 만져보았다.
“…….”
거짓말… 천천히 엉덩이 사이를 더듬어보았다. 그리고 그 손을 다시 보았다. 황경호는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고 강동현을 패려고 침대 위로 올라갔다. 그런데 딱 그 순간 황경호의 폰이 알람으로 울렸다. 황경호는 심장이 멎을 듯이 놀라서 얼른 스누즈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아예 휴대폰의 전원을 꺼버렸다. 심장이 다시 미친 듯이 뛰었다. 온몸이 식은땀투성이다. 그런데 부지불식 간에 부끄러움에 온몸이 빨개졌다. 전신의 생리작용이 미쳐서 날뛰었다. 너무… 진짜 이건 너무 감당하기가 힘들었다.
잠을 자고 있는 강동현은 정말 무슨 조각 같았다. 연일 고강도의 스케쥴이었으니 정말 죽은 듯이 잠들어 있었다. 황경호는 너무 화가 나서 주먹을 또 치켜들었지만 결국 애꿎은 침대만 내리쳤다. 그리고 얼른 침대를 벗어났다. 그리고 욕실로 도망치듯 들어갔다.
“으….”
너무 부끄러웠다. 수치스러웠다. 어떻게 된 거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이쪽이 술에 취한 틈을 타서 멋대로 해버린 거겠지… 도대체 술은 왜 그렇게 먹은 거지. 이런 놈 따위 상대도 하기 싫었는데 왜 술 같은 건 같이 먹은 거야. 아, 미친놈. 병신. 멍청이… 또 저 인간한테 이런 걸 당하다니….
황경호는 저도 모르게 스스로의 양팔을 손톱으로 꽉 쥐었다. 고통이 느껴지니 수치스러움이 조금 가시는 것 같았다. 주먹으로 허벅지를 치고 계속 양팔을 쥐어뜯었다. 그리고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샤워기의 물을 틀었다. 몸을 깨끗이 씻기 시작했다. 머리를 감고 얼굴을 씻고 몸을 닦았다. 상처로 비누가 들어가 따끔거렸다. 온몸을 몇 번이고 비누로 씻었다. 그리고는 심호흡을 몇 번 했다. 그리고는 세면대를 한 손으로 짚고 다리 사이에 손을 넣었다. 가운뎃손가락으로 입구를 눌리니 정말 쑥 들어갔다. 황경호는 어깨까지 새빨갛게 붉히고선 손가락 두 개를 넣었다. 그리고 물줄기로 안을 씻으며 긁어내었다. 그리고 다시 비누로 손을 몇 번이나 씻고 다시 전신을 거품을 낸 샤워용품으로 씻어냈다.
그리고서 겨우 거울을 바라볼 수 있었다. 부끄러워서 거울을 보지 못했던 것이 화가 날 정도로 보자마자 분노가 치솟았다. 얼굴이랑 목, 어깨가 진짜 빈틈없이 물어뜯겨 있었다. 이 개새끼가 진짜… 죽여버리고 싶다. 황경호는 자신의 뺨을 한 손으로 감싸며 잠깐 눈을 감고 화를 삭였다. 그리고 다시 거울을 보니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르는 얼굴을 한 자신이 보였다.
게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진짜 허리랑 골반이 아팠다. 고관절도 아프다. 어젯밤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이 느낌은 알고 있었다. 진짜 미쳤다. 미친놈. 저 인간을 내가 뭘 믿고 집까지 들여다 놓은 거지? 진짜 어젯밤의 자기 자신을 때려죽이고 싶을 정도였다. 황경호는 겨우 욕실 안에서 정신을 추스르고 밖으로 나왔다.
강동현은 세상 편하게 잘 자고 있었다. 살의가 솟아올랐다. 하지만 그저 조용히 준비를 하고 출근을 했다.
“황 간, 거기 꽉 누르고.”
“네.”
“석션 해주세요.”
수술 하나를 끝내고 나오니 정말 머리가 핑 돌았다.
‘아… 힘들어….’
출근을 해서 일을 하는 데 정말 몸살이라도 걸린 것처럼 컨디션이 정말 안 좋았다. 숙취에다가 무리하게 운동이라도 한 것처럼 근육통이 느껴졌다. 허리나 골반은 그냥 아팠다. 몸을 너무 씻어댔더니 피부도 건조해서 아팠다. 머리도 아프다. 그냥 쓰러져서 자고 싶었다.
황경호는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었다. 어쩐지 오늘은 하루종일 손을 씻어댈 것 같았다. 그러고 있는데 누군가가 들어왔다. 환자였다.
“아,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이덕재 환자님.”
황경호는 웃으면서 환자를 응대했다. 저번에 엉덩이에 성인용품을 박고 왔다가 조루 치료를 하고 있는 환자였다. 딱히 조루 치료를 해도 써먹을 상대가 전혀 없어 보이는데도 괜히 돈을 버리고 있다고 다들 생각할 정도였다.
“얼굴이랑 목 왜 그러세요?”
이덕재는 뚱뚱한 손으로 황경호의 얼굴을 가리켰다. 황경호는 뺨을 손으로 감싸 가리며 난처한 듯 웃었다.
“여드름이 왕창 나서요. 보기 싫어서 가렸어요.”
이런 거짓말이야 입에 침도 안 바르고 할 수 있었다. 황경호는 그냥 그 정도로 넘어가고 싶었지만 상대는 끈질기게 물어왔다.
“그렇게 크게요? 목두요?”
“네. 가끔씩 이래요.”
“피부 진짜 좋아 보이셨는데….”
“하하. 그렇지도 않아요.”
“그거 붙이면 여드름에 좋나요?”
이덕재 환자는 저번보다도 여드름이 더 많이 나 있었다. 본인도 콤플렉스로 여기는 모양이다.
“글쎄요… 저는 이렇게 좀 두면 낫더라구요.”
“밴드는 여드름용 아니잖아요.”
“네. 일단은 보기 싫어서 붙여놨거든요.”
상당히 끈질기고 성가신 질문들인데도 황경호는 웃는 얼굴로 잘 응대해주었다. 여드름을 주제로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호구조사를 당하는 기분이었다. 황경호는 중간에 말을 끊고 싶었지만, 대화를 끊기가 굉장히 난처했다.
눈치가 없다는 것은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말이랑 동일한 말이라고 보아도 좋았다. 게다가 스스로 하고 싶은 말에 정신이 팔려서 상대방의 분위기를 알아차리지 못한다는 건 사실 예의가 없다는 것과도 동일어다. 하지만 보통은 그저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말로 예의가 없다는 사실을 덮어버리곤 한다. 불쌍하니까.
이덕재는 마치 날이라도 잡은 것처럼 황경호에게 말을 해댔다. 별로 친하지 않은 사이에서는 곤란할 질문들도 잔뜩 했다. 황경호는 그래도 얼굴색을 바꾸지 않고 잘 대응했다. 그냥 오늘 일진이 사납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몇십 분을 붙잡혀 있었다. 그제야 환자가 아차 싶은 얼굴로 말했다.
“아… 가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제가 너무 말을 많이 해서….”
“아니에요. 얘기 재밌었어요.”
황경호가 웃으면서 그렇게 말하자 이덕재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리며 갈피를 잡지 못하더니 갑자기 불쑥 말했다.
“저… 저… 혹시 게이에 편견 있으세요?”
“네? 아니요… 딱히….”
별로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황경호가 그렇게 대답하자 이덕재는 갑자기 한 걸음 다가오더니 또 뜬금없이 물었다.
“저, 저, 저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네? 어… 좋은 분이라고 생각해요. 착하신 것 같고….”
황경호는 약간 느낌이 좋지 않았지만 일단 티 내지 않고 그렇게 대답했다.
“가, 간호사님도 차, 착한 분이신 거 같다고 계속 생각했었어요…!”
그는 갑자기 말도 더 더듬고 약간 흥분한 것 같았다.
[근데 우리 아버지는 대번에 저런 건 장애인이나 다름없다고 말씀하시더라고.]
갑자기 김태형의 아버지가 했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리고 곧바로 그런 걸 생각한 걸 후회했다. 비정한 말이라고 생각해놓고. 위선자 같다. 환자에게도 괜히 죄책감이 들었다. 딱히 이 환자가 별짓을 한 것도 아닌데… 황경호는 평소대로 웃으며 응대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아…! 또 잡고 있었네요. 죄송합니다. 이제 이, 일 보세요.”
“네.”
황경호는 화장실에서 나와서 간호사실로 갔다. 진이 빠진다… 곧 정기연이 들어왔다. 그녀는 간식거리를 입에 물면서 황경호를 보았다.
“오빠, 왜 그래?”
“아니, 이덕재 환자….”
“아.”
이강유 비뇨기과에는 수많은 진상 환자들이 있었지만 그중에 탑을 꼽으라면 셋 안에 들어가는 게 강동현과 이덕재였다. 그리고 둘 다 모두 황경호의 환자다.
“진짜 오빠는 날이 갈수록 진상 환자가 많아지는 것 같아.”
정기연이 말했다.
이강유 비뇨기과에는 문자 그대로 전 세계에서 성기가 망가진 열등감 덩어리들이 찾아왔다. 당연히 타과에 비해서도 진상이 훨씬 많다고 당당하게 자부할 수 있었다. 그런 이강유 비뇨기과의 간호사들은 다들 경중의 차이가 있지만 다들 진상 환자에게서 피해를 당해 보았다. 건장한 체구의 김형세 간호사가 가장 적게 당하는 편이었다. 여자 간호사들은 지속적으로 성희롱 비슷한 말을 들을 때도 있었으나 오 간호사를 중심으로 절대 환자들을 대할 때 여자 간호사 혼자서 대하지 않도록 환자 관리 프로세스를 짜서 응대하고 난 이후로는 적어졌다. 그런 발언을 하면 바로 경고를 하고 의사까지 불러 왔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최근에 가장 진상 환자의 피해를 많이 받는 것은 황경호였다. 그는 환자들에게 가장 친절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간호사였다. 아이러니다. 아니, 아이러니가 아닌가?
“그냥 형세 오빠한테 돌리거나 아니면 뭐라고 한마디 해.”
“아, 그게 참….”
이덕재는 누가 봐도 불쌍하기 짝이 없는 사회의 약자, 소수자, 부적응자로 보이는 사람이라 오히려 더 함부로 할 수가 없었다. 평범한 말도 보통 사람들과 다르게 어떻게 반응할지 알 수가 없어서 할 수가 없었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고 죽으러 들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당하는 건 이쪽인데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단호하게 거절을 하거나 뿌리치거나 무시를 하면 이쪽이 더 나쁜 사람이 될 것만 같았다.
“딱히 뭘 더 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으로도 안 보이는데, 뭐. 그냥 단호하게 뭐라고 해. 아님 오 간호사님께 말해서 블랙리스트 올리던가.”
황경호는 정기연이 건네주는 과자를 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과자 맛이 평소보다도 엄청 달게 느껴졌다. 정말 피곤하긴 한 모양이었다.
“난 저런 타입이 오히려 더 소름 끼치던데. 징그러워.”
정기연은 어깨를 부들 떨며 말했다. 그때 간호사실의 문이 열렸다. 조한나가 고개만 들이밀고 말했다.
“경호 오빠, 전화 왔어.”
“응? 병원으로?”
“도은혁 환자님. 바꿔 달래.”
“…….”
황경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카운터로 가서 전화를 받았다. 수화기를 들자마자 말했다.
“왜 병원으로 전화해요? 차라리 휴대폰으로 해요.”
[그러니까 왜 휴대폰을 꺼놔?]
“…알았어요. 제가 걸게요.”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황경호는 다시 간호사실로 들어왔다. 정기연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았다.
“오빠, 진짜 도은혁 환자랑 친해졌나 보다.”
그 인간은 진상 환자인 건지, 아닌 건지… 정기연이 그렇게 말하자 황경호가 고개를 저었다.
“아냐.”
황경호는 본인의 락커에서 휴대폰을 꺼내서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또 병원으로 전화를 할까 싶어서 바로 전화를 하려는데, 갑자기 엄청난 피로감이 엄습하며 기운이 쭉 빠졌다. 저도 모르게 크게 한숨을 쉬었다. 오늘은 진짜 모든 게 피곤하다. 아침의 일은 생각도 하기 싫어서 계속 일만 했다. 환자 하나도 솔직히 성가셨다. 그런데 이 사나운 일진의 원흉이 직장에 전화까지 하다니.
‘정말 그 인간을 벽돌로 쳐버려야 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내가 뛰어내려야 끝나는 건지….’
황경호는 정신을 차리려고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아니… 정말로 끝을 내자. 집도 옮기고 병원도 옮기고 휴대폰 번호도 바꾸고… 그러자. 그래야겠다. 이제 와서 큰소리 내기도 귀찮고 피곤하다…. 뭐라고 할 건데. 뭐라고 하면 그놈이 뭐라고 할지 뻔한데. 그냥 뭐라고 하든 알겠다고 하고 넘어가자. 그냥… 그러자.’
황경호는 잠깐 그렇게 눈을 감고 차가운 콘크리트 벽에 기대어 있었다. 그리고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용건이 뭔데요.”
황경호가 빠르게 말했다. 그러자 상대방은 잠깐 말을 하지 않았다.
“용건 없으면 끊습니다.”
[아니… 잠깐만.]
깊은 한숨 소리가 들린다. 황경호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 괜찮냐고… 몸이나….]
“괜찮습니다.”
[기분은? 혹시 또 우울해지거나 한 거면….]
“괜찮습니다.”
[…니가 계속 전화를 안 받아서… 음… 내가 또 바빠서 사흘 뒤나 잠깐 볼 수 있을 거 같은데 그때 잠깐 보자.]
“저도 바쁩니다. 어제 일 때문에 그러는 거면 그냥 없던 일로 해요. 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기억도 안 나고. 신경 안 쓰셔도 돼요.”
[기억 안 난다고?]
강동현의 목소리가 커졌다. 깜짝 놀란 모양이었다.
“네. 처음에 술을 같이 먹으려고 했던 것까지밖에 기억 안 나요.”
[진짜야? 너 진짜 멀쩡했잖아. 거짓말하는 거지? 다섯 번이나 했는데?]
곱게 말하고 이 지긋지긋한 관계를 청산하려고 했던 황경호는 우습게도 강동현의 금방 그 말에 폭발했다. 생각도 전에 큰소리가 먼저 났다.
“…이 변태 새끼가 지금 그걸 자랑이라고 얘기하는 거야?! 그래, 내가 너 같은 새끼 뭘 믿고 집에 들였는지 내가 미친놈이고 내가 병신인 거 맞는데! 술 먹고 정신 못 차린다고 바로 강간하는 너도…!”
황경호는 왼손으로 입을 막았다. 눈을 감은 채 화를 억눌렀다. 몸을 미세하게 떨렸다. 손끝이 차갑다.
“아니… 아니에요. 끊을게요.”
[…잠깐만.]
“더 말씀하실 거 있으세요?”
참자. 참자… 머리가 아프다. 강동현이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어제는 내가 실수한 것 같다. 미안.]
“네. 알겠습니다. 저 이제 일해야 해서….”
[사흘 뒤에는 진짜 잠깐이라도 보자. 병원으로 가든 집으로 가든 내가 갈게.]
“아니에요. 괜찮으니까 진짜 신경 쓰지 마세요. 바쁘시잖아요.”
[아니, 진짜로 할 말이 있어서 그러니까….]
“아, 저 지금 들어가 봐야 돼서요. 나중에 다시 연락드릴게요.”
황경호는 그렇게 전화를 뚝 끊었다. 그리고 곧바로 지금 사는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