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9화 (9/47)

8. 남자는 돈, 명예, 얼굴. (1)

첫 번째 작품은 강동현의 데뷔작인 <진주>였다. 거기서 남자 주인공 ‘차기흔’의 어린 시절을 연기했다. <진주>는 70년대 격동의 시기에 돈과 권력에 대한 욕망의 끝에 파멸해가는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였다. 주인공 ‘차기흔’의 아역으로 고등학교 시절의 그를 연기한 강동현을 볼 수 있다. 확연히 어린 티가 나지만 워낙에 훌륭한 외모와 나이치고는 꽤나 준수한 감정 표현으로 화제를 모았으나 그 이후 무슨 이유 때문인지 군대에 가고 사람들에게 잊혀진다.

두 번째 작품은 <수양>에서 소년 시절의 수양대군 역할을 맡았다. 군대를 갔다 와서 찍은 대하 드라마에서 또한 메인 남주인공의 아역을 맡아 눈길을 끌었다. 20대 남자 배우가 걷는 흔한 길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때는 첫 작품보다 훨씬 뚜렷한 연기력으로 확실히 눈도장을 찍고 화제도 모았다.

세 번째 작품은 하이틴 드라마에서 서브 남주인공 역할이었다. 드라마 이름은 <하이스쿨호러>. 이름은 ‘강양기’. 특이하게도 수사호러물이었다. 학교와 얽힌 죽음에 대한 의문과 그것을 풀기 위해 강령과 퇴마를 통한 수사를 하는 이야기였다. 가볍고 활기차며 생각 없는 캐릭터였다. 정말 저런 애인가 싶을 정도로 어리고 순진한 인물을 너무나 잘 연기했다. 너무 세련되게 잘생긴 미남자였는데도 그런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이때 강동현의 나이가 23살이었다.

그리고 네 번째가 강동현을 메인급 주인공으로 만들어준 <서리>였다. 세손이자 나중에 왕이 되는 ‘이영’ 역을 맡았다. 어떤 여자아이를 궁에 들여왔다가 세자인 아버지가 악귀에 씌고 만다. 아버지가 패악을 부리다 결국 할아버지의 손에 죽게 된 가족의 비극을 뒤로하고 성인이 되었지만 어렸을 때 겪은 일들에 대한 의문과 상처는 여전히 가슴 속에 지닌 채다. 그러다 성인이 된 그 여자아이를 발견하게 되고 어렸을 때의 일을 추적해나간다. 그러면서 동시에 알 수 없는 강한 끌림을 느낀다. 미스터리가 가미된 로맨스 궁중 스릴러로 굉장한 인기를 끌어 강동현을 인기 배우 반열에 올렸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어머니를 죽인 아버지에 대한 분노, 믿음, 증오 등이 혼재되어 복잡한 감정선을 너무나 생생하게 잘 연기했다. 결국 마지막에 사랑을 위해 담담하게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까지 더해 많은 여성 시청자들의 애간장을 태웠다. 확실히 사극이 현대극보다 극단적인 감정을 표현할 수 있어 강동현이 자신의 연기력을 뽐내는데 한몫을 했다.

다섯 번째 드라마가 <연애출사표>로 ‘서준’이란 재벌 3세 역을 맡았다. 경영 수업을 일환으로 말단사원부터 일을 시작하나 열의가 없다. 상사였던 여자는 실연의 아픔으로 독기를 품고 다이어트를 하여 전 남자 친구를 다시 꼬시려고 한다. 방만한 근무 태도로 인해 한껏 찍혔던 서준은 이에 덜미를 잡혀 여자 주인공을 돕게 되며 그녀에게 애정을 느끼게 되는 코믹한 로맨스드라마다. 이 드라마도 서리만큼이나 대박이 났다.

그다음으로 아직 개봉하지 않은 <해결사>라는 영화와 이제 막 방영을 시작한 <코드명: 울프>라는 드라마가 있다.

“은혁아, 이건 진짜 니가 한 거야?”

매니저는 TV를 보다가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켰다. 강동현이 웃는 얼굴로 의사가운을 입은 의사와 판넬 하나를 들고 사진을 찍은 게 뉴스를 타고 있었다.

<연예인 강동현 또다시 Y 대 병원 소아암 병동 1억 쾌척>

“어.”

강동현은 무심히 말하며 대본을 읽고 있었다. 머리에 색색의 핀을 집은 채 촬영을 대기하고 있었다.

“전에 거 찝찝했잖아. 하려면 확실하게 해야지.”

돈 몇 푼 안 되는 걸로 생색내는 것처럼도 보였고. 이번 드라마 <코드명: 울프>에서 보디가드 역할을 맡았다. 한류스타인 약간 싸가지없는 사차원 여자 연예인을 전담하여 한중일 콘서트 투어를 다닌다. 여자 연예인은 신유진으로 이제 막 30대 들어 전성기를 달리고 있는 여자 배우였다. 한국에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반드시 들만한 S급 여자 배우였고 중국과 일본 모두에서 인지도가 있는 배우였다. 이젠 진짜 상대 배우 복이 넘치는 남자 배우로 이름을 올리게 생겼다.

강동현은 키가 크고 화면에서 보이는 것보다 덩치도 있는 편이기 때문에 슈트를 전부 맞춤으로 새로 만들어야 했다. 드라마에서는 좀 더 슬랜더하게 보이는 게 좋기 때문에 살을 살짝 뺐다. 한 5킬로 정도. 영화 찍느라 좀 벌크업 했었으니. 마지막 영화 촬영을 마치고 급하게 뺐다.

강동현은 분장을 좀 고치고 거울을 보았다.

‘확실히 좀 얼굴이 상하긴 한 거 같은데. 큰일이네. 보약이라도 지어먹어야 하나… 좋은 거 먹고 잘 자려고 하긴 하는데….’

병원을 다닌 지 거의 1년이 다 되어가니 드디어 슬슬 의사가 그렇게 목에 핏대를 세우며 설파했던 스트레스의 위험성을 깨달을 수 있었다.

확실히, 강동현은 스트레스 관리가 거의, 아니, 하나도 되지 않았다.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30%, 성 기능에 관련된 게 40%, 나머지는 휴식을 제대로 취하지 못해 오는 스트레스일까. 그리고 이런 스트레스들을 받는 시간이 일상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점점 갈수록 두통은 심해지고 피로감도 증가한다. 자고 일어나도 피곤함이 가시질 않았다.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산 게 만 2년이 넘었다. 아무리 강철도 씹어먹을 나이라지만 한계가 온 것이다. 하지만 강동현이란 남자는 도대체 어떻게 휴식을 취해야 하는지를 모른다. 사실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이 뭘 하려고 해도 배워야 아는 것이다. 쉬는 방법조차도 변변찮게 가르쳐주지 않는 나라다, 이 나라가.

“스트레스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형.”

“응? 갑자기 왜.”

“병원에서 전부터 계속 스트레스 줄이라고 나한테 그랬는데. 나 내가 스트레스 받는지도 몰랐거든.”

“너… 스트레스 그렇게 받았어?”

“아니… 그러니까. 그렇지?”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아니더라도… 그래. 너 잠도 못 자고 밥 먹는 시간도 들쑥날쑥하고 하니… 몸 망가지지. 진짜 이거만 찍고 좀 쉬자… 여행이라도 좀 다녀와.”

“그래… 6월 중순쯤에나 쉬러 나갔다 와야겠다.”

음… 영지랑 같이 가면 되려나… 이렇게 생각을 하며 촬영에 들어갔다. 아직은 스케줄이 괜찮았지만, 앞으로 쪽대본이 나오기 시작하면 아마 잠잘 시간도 없을 정도로 강행군이 시작될 것이다. 강동현은 스트레스에 좋다는 음악을 틀고 욕조에 물을 받아 따뜻하게 몸을 담갔다. 하여튼 좋다는 건 일단 다 해야지. 그렇게 반신욕을 하며 확인하지 못했던 전화나 문자들을 확인하는데 깜짝 놀랐다. 그 간호사의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다. 이쪽에서 저쪽으로 미친 듯이 연락을 했던 적도 있지만 저쪽은 절대 답장도 연락도 하지 않았었다.

“뭔 일이래….”

상당히 의아하여 저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리곤 메시지를 확인했다. 확실히 전의 차단은 푼 것인지 메시지가 와있었다.

<전화 왜 안 받아요? 무슨 말도 없이 1억이나 기부를 하세요? 무슨 꿍꿍이 있어요??>

메시지는 그렇게 길지 않았다. 카카오톡은 절대 친구추가 안 할 생각인가 보다. 강동현도 그냥 SMS로 답장을 보냈다.

<내 돈 내가 쓰겠다는데.>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상투적인 말을 날리고는 픽 웃었다. 내가 무슨 꿍꿍이 있어야만 돈 쓰나. 사람이 좋은 일도 하고 그럴 수도 있지.

<이거 병원이 아니라 초록이한테만 쓰라고 준 거라면서요. 이렇게 많이 주면 어떻게 해야 할지….>

웬일로 바로 답장이 왔다. 꽤 늦은 시간인데도 말이다. 강동현은 당황해하고 있을 그 간호사의 모습이 떠올라 유쾌해졌다.

<어차피 아픈 애 돈 들 데도 많고 이제 공부든 뭐든 해야 할 거 아냐. 그리고 니가 돈 쓰냐? 어련히 고아원이랑 병원에서 알아서 하겠지.>

그러니 몇 분 동안 답장이 없었다. 안 읽은 건가? 입욕제를 풀고 욕조에 앉아 편히 눈을 감고 있다가도 간혹 폰을 확인했다. 답장이 왔다. 폰을 들어 확인을 했다.

<네. 알겠습니다. 어쨌든 감사합니다.>

이걸 못 써서 그렇게 시간이 걸린 건가… 강동현은 피식 웃으며 휴대폰을 다시 옆에 내려놓고는 눈을 감았다.

*

“와. 저 삼촌 연기 잘하네. 그치?”

물어봐 봤자 다섯 살짜리가 뭘 알겠는가. 초록이는 그저 집어주는 대로 과일을 먹었다. 김형세가 대신 대답했다.

“쟤는 잘 모르겠는데.”

강동현이 1억이나 초록이에게 기부를 해서 다행인 점은 애한테 좋은 걸 먹일 수 있게 됐다는 것과, 이 육식계 바보 돼지가 자꾸 뭘 처먹어도 상관없을 정도가 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다 같이 TV를 보고 있었다. 아직 아픈 아이를 데리고 할 수 있는 일은 TV를 보거나 병원 앞을 산책하는 게 전부다.

“너 가만 보면 잘생긴 배우들한테 후하단 말이야.”

“아, 초록이 먹으라고 사 온 거야!”

황경호는 그래도 과일을 계속 먹는 김형세의 손을 쳤다. 애가 고아원에 병원에만 있다 보니 과일이라곤 바나나나 수박 말곤 거의 먹어본 것이 없었다. 1억 받고 강동현한테 전화를 해서 이게 다른 속셈이 있는 것이 아니란 걸 확인한 후, 백화점에 가서 딸기와 블루베리를, 그것도 엄청 알이 커서 1kg에 4만 원, 5만 원 하는 걸 한번 사와 봤다. 황경호도 그런 건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어 살 때 몇 번을 주저했다.

‘돈이 좋긴 좋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약간 씁쓸했는데 애한테 먹이니 기분이 좋아졌다. 엄청 좋아했다.

“이거~ 현아 언니랑~ 해숙이한테~ 조야지!”

“어이구. 우리 초록이 착하네. 근데 과일은 상하니까 지금은 먹고 나중에 오빠랑 같이 사러 가자.”

“으응으으응.”

“음, 그럼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선생님한테 갖다 주라고 할까?”

“응!”

“그래. 그러자.”

병실에 있는 냉장고에 과일을 초록이와 같이 넣었다. 김형세는 초록이를 한 손으로 번쩍 들어 목말을 태웠다. 아이랑 바보는 높은 데를 좋아한다고 초록이가 무척 좋아했기 때문이다.

“많이 먹었겠다. 밖에 벚꽃 피었던데 나가볼까.”

“잠깐잠깐. 옷. 옷.”

황경호는 초록이의 옷을 챙겨서 까치발을 들어가며 아이에게 입혔다.

“너 진짜… 무슨 애 가진 엄마 같아진다, 점점.”

“…나도 자각하고 있으니까 말하지 마.”

“그럼 형세 오빠가 아빠야?”

초록이가 끼어들었다. 김형세가 하하, 하고 웃으며 그럴까? 하고 반문했다. 그랬더니 초록이가 김형세의 머리를 끌어안으며 애교를 떨었다.

“아빠~~!”

“응, 우리 이쁜 초록이~”

이제 고작 26살이 된 총각이 꽤나 그럴듯하게 젊은 아빠 같다. 그러고 보면 둘 다 매우 생각 없이 긍정적이고 밝은 게 또 닮았다 싶기도 하고 말이다. 김형세의 어깨 위에서 들쳐메졌다 목말을 다시 탔다가 거꾸로 매달렸다가 이리저리 장난을 치다가 한쪽 발목을 잡힌 안정적인 자세로 나뭇가지를 손으로 만지는 초록이였다.

“야야. 애 다친다.”

황경호가 마음을 졸이며 옆에서 타박을 하다가 결국 한숨을 쉬며 애한테서 시선을 잠시 떼고 벚꽃을 바라보았다. 이제 꽃망울이 막 트기 시작했다.

아이는 이미 2차 수술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거의 회복이 된 상태였다. 지금은 재활훈련에 집중하고 있다. 2차 수술을 마치고는 정말 확연히 다리를 절게 되어 황경호는 며칠 밤이나 제대로 잘 수가 없었다. 하지만 역시 아이들이란 몸도 마음도 정신도 어른들보다 훨씬 강해서 금방 나아가고 있었다. 몇 번이고 넘어져도 표정 한 번 찌푸리지 않는 아이를 보면, 황경호는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많은 것을 느꼈다

그리고 작년 말부터 같이 아이를 살피러 오는 많은 이들도 황경호에게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그냥 지금까지 동료로, 그저 아는 사이로 있었던 이들이 좀 더 입체적인 사람들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건 절대 우울하지도 기분 나쁘지도 않은 일들이었다.

김형세도 마찬가지다. 평소에는 직장동료에 동갑이고 가끔 술 한 잔씩 하는 그런 친구로 생각했다. 멀끔한 생김새에 큰 키에 심각할 정도로 긍정적이고 생각이 없어 항상 이놈처럼만 살면 인생 정말 무슨 걱정으로 살겠냐, 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초록이가 수술에 들어가기 전후로 평소와는 완전 딴판으로 몹시 불안해하며 초조해하는 황경호와 달리 그는 정말 강했다. 아이나 훨씬 더 불안해하는 어른들을 다독이며 정신적 지주 같은 역할을 했다. 아이가 다리를 크게 절기 시작했을 때 황경호는 절망했으나 오히려 김형세는 웃으며 아이를 일으켜 세웠다.

[우리 초록이, 내년에 자전거 타야 하니까 얼른 잘 걸어야겠다. 그치? 초록이는 어떤 자전거 가지고 싶어?]

아이는 다리를 절어도 활짝 웃었다.

그때는, 정말 다시 봤다.

“너 진짜… 아빠 되면 잘할 거 같다. 멋진 아빠 될 거 같아.”

황경호가 말했다. 김형세가 황경호를 돌아보았다.

“그지?”

김형세가 초록이를 두 손으로 들어 높이 들어서 마주 보았다.

“우리 초록이 동생 만들어줘야지~.”

위로 들어서 던졌다 받으니 초록이가 엄청 좋아했다. 황경호는 깜짝 놀랐다가 결국 안 말렸다. 그러니까 저런 점이… 저런 행동이나 말들은 정말, 황경호가 절대 하지 못할 것들이다. 사람들은 다른 것이다. 사람들이 달라서 좋은 것이다. 그저 멀리서 나를 둘러싸고 지켜보고 있기만 한 존재들만은 아니란 소리다.

“그나저나 도은혁 환자 다시 내 담당 됐더라.”

“아… 그래? 왜?”

“계속 병원 안 와서 아예 담당을 안 썼는데 다음 주 금요일부턴 계속 올 건가 보더라.”

“그래? 드라마 방영 시작해서 바쁠 텐데.”

“아, 너도 그거 보냐, 울프? 우리 엄마도 강동현 엄청 팬이라 매일 재방송 봐.”

“아… 뭐, 딱히 보는 건 아니고….”

“하긴 너 연기 잘하는 배우들 좋아하지.”

“별로….”

예전부터 영화 보는 거 아니면 딱히 취미랄 것도 없는 황경호였으니 자연스러운 루트였을지도 모른다. 황경호는 그냥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가 말을 돌렸다.

“그나저나 너 살찐 거 아냐?”

“아, 역시 티 나냐?”

“돼지처럼 먹어댈 때부터 알아봤다.”

*

강동현은 다리를 달달 떨면서 병원 카우치에 앉아있었다.

‘이건 말도 안 돼… 이건…! 진짜 말도 안 된다고!! 젠장!!’

그가 속으로 얼마나 비명을 지르고 욕을 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오늘따라 유달리 얼굴을 꽁꽁 둘러싸고는 미친 듯이 다리를 떨며 앉아있는 강동현이었다. 그때 누군가 혼이 빠진 것 같은 기색으로(이 남자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꽁꽁 싸매고 있었다) 강동현의 옆에 살포시 앉았다.

“형… 뭐래?”

“맞…대….”

“뭐?!”

그대로 그 남자, 한기석은 머리를 감싸 쥐며 허리를 숙이며 좌절한 남자의 제대로 된 자세를 보여주었다.

“도은혁 환자님~.”

병원을 오며 자주 본 젊고 건장한 남자 간호사가 강동현을 불렀다. 강동현은 도저히 떨어지지 않는 발을 질질 끌며 진료실로 들어갔다. 옷을 갈아입고 들어갔다.

“이번엔 후딱 해치웁시다.”

“…네….”

갈라진 목소리로 전혀 내키지 않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강동현이었다. 그리고 질질 끌듯 올라가 엎드렸다. 간호사가 친절한 어조로 설명을 하며 엉덩이를 깠다.

“저번에 한 번 받아보셨으니 아시죠? 손가락 들어갑니다.”

“윽….!”

그렇다.

강동현은 전립선염이 재발하고 말았다.

강동현은 굴욕을 참으며 머리를 시트에 박고 있다가 갑자기 진료실 문이 벌컥 열리자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그쪽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선글라스와 마스크는 벗지 않은 상태였으나,

“선생님! 응급환자 실려 왔습니다! 성인기구에 걸려서 성기가 반쯤 잘렸어요.”

라고 외치며 다급하게 진료실로 들어온 간호사는 갑자기 자신을 홱 돌아보는 환자를 저도 모르게 확인하고 말았는데. 황경호는 엎드려 누워 엉덩이를 까고 있는 강동현을 발견하고 저도 모르게 풋, 하고 웃고 말았다. 황급히 손으로 입을 가리며 고개를 돌렸다.

“~~~!!!”

강동현은 마스크 밑으로도 얼굴이 벌게져서 이를 악물었다.

“아, 그래? 죄송합니다, 환자님. 가봐야 될 것 같습니다. 김 간호사가 마저 마무리하는 걸로 괜찮겠습니까?”

“…….”

의사는 대답 없는 환자의 반응을 긍정으로 알아듣고 강동현의 전립선을 촉진하던 손가락을 빼고 장갑을 벗으며 일어났다. 그리고 황경호의 옆구리를 안 보이게 살짝 찔렀다.

“…환자 앞에서.”

“…죄송합니다… 쿡….”

그렇게 의사와 간호사가 진료실의 밖으로 나갔다.

“염증 떄문에 전보다도 전립선 비대해졌다고 이강유 선생님이 말씀하신 거 들으셨죠? 젊다고 방심하면 큰일 납니다. 남성 암 중에 상위권 안에 드는 게 전립선암이라구요. 증상을 봤을 땐 전립선염은 확실하신 것 같고… 몇 형 세균인지 확인해보고 다시 전립선 마사기와 약으로 치료 병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네….”

*

“큭큭큭. 와 … 저 인간 전립선염 재발한 거예요? 큭큭큭.”

황경호는 진료실을 나오자마자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뜨렸다. 갑자기 너무 웃었더니 배가 걸렸다. 눈물을 닦아내며 한참을 웃었다.

“아무리 친하다지만 그렇다고 거기서 웃으면 어떡하냐. 도은혁 환자 성질 알면서.”

“큭큭큭. 하하하하. 아니, 진짜… 큭큭큭. 이번에는 안 한다고 난리 안 쳤어요? 얌전히 누워있는 게 더 웃겨, 큭큭큭.”

저번에 처음으로 전립선염이 걸렸을 때 진단 거부와 진료 거부로 몇 번이나 의사와 간호사들을 곤혹스럽게 했던 강동현이었다. 황경호와의 계약 때문에 치료를 받을 때도 얼마나 질색을 했던가. 강동현도 은근히 진상 환자로 병원 내에서 소문이 자자한데 말이다.

“표정 보니까 완전히 똥을 씹었지. 뭐 어쩌겠어. 전립선염이 얼마나 짜증 나는지는 걸린 사람들이 더 잘 아는데. 친구랑 손잡고 왔더라.”

“친구도, 큭큭, 걸렸어. 하하하.”

수술실로 자리를 옮기며 이강유가 그렇게 말하자 황경호는 실려 온 환자의 신상을 말하다가도 계속 웃어서 이강유한테 또 꾸지람을 들었다.

“수, 수고하세요, 선생님. 수술 화, 화이팅. 큭큭.”

“그만 웃어라. 도은혁 환자 또 볼라.”

수술실에 들어가면서 이강유는 마지막까지 혼냈지만, 황경호는 그 뒤로도 벽에 기대서 한참을 웃다가 겨우 허리를 폈다. 옆구리가 엄청 아팠다.

‘아, 완전 꼬시다….’

황경호는 혹여나 다른 환자들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봐 태블릿으로 얼굴을 가리고 카운터로 복귀했다. 계속 웃었기 때문이다.

“야… 도은혁 환자… 큭큭. 또 전립선염….”

“아, 진짜? 이번엔 얌전히 치료받는데?”

정 간호사가 물었다. 황경호는 너무 웃어서 모든 기력을 다 뺀 상태로 늘어졌다. 이렇게 웃은 게 도대체 얼마 만이지… 자다가도 일어나서 웃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가 안 받으면 어쩔 거야.”

“하긴… 좆 작은 거보다 전립선염이 더 힘들다고 어떤 환자가 말하는 거 들은 적 있어, 나. 그 정도면 인정할 만하지.”

“전에 그 인간 전립선염 걸렸을 때 나한테 얼마나 지랄했는지 생각해보면 진짜. 큭큭.”

“그러게. 사람 착하게 살아야지. 그나저나 재발이면 나아도 또 금세 재발되는 거 아냐? 연예인이라 더 그런 건가. 그렇게 생겨도 제대로 계속 못 한다는 거 아냐.”

와꾸가 아깝다, 정기연은 그렇게 키득키득 웃었다. 둘이서 그렇게 한참을 웃었다.

강동현은 그 바쁜 스케줄에도 꼬박 1달을 치료를 받으러 병원을 다녀야 했다. 황경호는 그런 그를 발견할 때마다 저도 모르게 자동으로 폭소가 터져서 스스로도 좀 놀랐다. 아마 어지간히 그 남자가 싫은 거겠지. 치료를 받기 전에 대기실에 기다리고 있는 그 인간만 봐도 웃음이 터져서 친한 환자들도 얼른 지나치고 가는데 뚫어져라 황경호를 보던 그 인간이 갑자기 황경호의 손목을 붙잡았다.

“너… 돈 안 필요하냐.”

뭐래, 이 미친놈이

“…아, 미안.”

“…….”

그러고 자기도 아차 했는지 손을 금방 떼면서 시선을 피했다. 황경호는 미친놈… 이라는 눈빛으로 그를 보다가 그냥 지나쳐가 버렸다. 하지만 문제는 오히려 뒤에 있었다. 강동현은 또 담당 간호사를 바꾸었다.

“…….”

전립선염은 빠른 체념으로 한 달 만에 완화되었으나(죽어라 싫어하면서도 이번엔 군말 없이 끝냈다고 한다. 결심이 서면 다 하는 남자라서인지, 쪽팔려서인지). 드라마 촬영한다고 바쁠 거면서 발기부전과 지루, 불감증 치료한답시고 매주, 아니 거의 3일에 한 번씩은 병원에 오는 것 같았다. 결국, 이게 원인이니 말이다. 시간은 들쑥날쑥했고 그러니 바쁜 의사를 만날 순 없었으나, 다른 진단 없는 치료는 간호사들이 할 수 있는 부분이라. 황경호만 줄창 불렀다.

전처럼 치료 중에 말로 성희롱을 하거나 하지도 않았고 엉덩이도 만지지 않았다. 그 거지 같던 계약도 끝났으니 당연히 치료를 마치고 또 다른 치료 같은 걸 요구하지도 않았으나.

“차갑습니다.”

“…….”

수술용 장갑을 낀 손으로 젤을 바르는데 강동현의 치골 부근이 살짝 경련하는 게 보였다. 황경호는 인상을 찌푸리지 않고 최대한 무표정한 얼굴을 견지했다.

강동현은 황경호가 치료기로 마사지를 하는 근 15분 내외의 시간 동안 황경호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뚫어져라 쳐다보기만 했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그 뒤로 두세 번 치료를 더 받으러 왔는데 그때도 똑같았다.

15분 동안 한마디의 말도 없이 황경호는 하필이면 강동현의 거시기만 쳐다보고 있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고 강동현은 황경호를 말 그대로 핥듯이 쳐다보았다.

그런 짓을 한 남자가 뻔뻔스럽게 병원을 통해 이런 걸 강요하는 것도 어이가 없을 일이지만 황경호는 최대한 좋게좋게 생각하려고 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 굳이 환자와 트러블이 있다는 걸 알리고 싶지도 않았던 황경호는 담당 간호사가 되었다는 말을 들었을 때도 군말하지 않았다. 또 이상한 짓을 할 것 같지도 않았고… 어쨌든 좋게좋게.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며 치료에 임했다.

진동기를 대고 부드럽게 그의 남성기를 어루만지듯 움직였다. 사실 지루에 크게 효과가 입증된 것은 아닌 음이온 저주파 치료기다. 혈액순환을 돕는다. 서혜부와 성기 전체를 마사지한다. 젤은 차갑고 마사지기는 살짝 따뜻하다.

황경호는 강동현의 시선에서 조금이라도 신경을 돌리려고 입을 열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하거나 하는 건 그의 특기 아닌 특기다.

“…지루나 발기부전은 혈액순환이랑 크게 관련이 있습니다. 잘 먹고 잘 자고 유산소 운동과 스트레칭을 많이 해서 서혜부 주변으로 혈액순환 잘 되게 하시구요.”

“…요새 반신욕 하는데.”

“좋습니다. 하지만 너무 오래 하는 건 안 좋아요. 남성의 성기는 체온보다 2~3도 떨어지는 게 좋거든요. 냉수와 온수를 번갈아가며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알았어.”

“그리고 무엇보다 도은혁 환자님은 스트레스가 문제라서… 이강유 선생님도 누차 말씀드렸겠지만 병변적인 요인이 있는 것보다 심인성이 더 고치기 힘들어요. 게다가 지루는 더 그렇구요. 조루야 나중에 신경이라도 끊으면 개선이 확연하게 되지만 지루는 그럴 수도 없잖아요.”

물론 그런 수술은 아무리 심각한 조루 환자라도 그렇게 추천드리진 않는다만. 하여튼 이 인간은 가진 거 다 가진 주제에 뭔 스트레스를 그렇게 받는다고 이때까지 이 난린지. 진짜 사람이 다 가질 순 없어서 이러는 거야, 아니면 이러니까 다른 거라도 다 가지는 거야.

“파트너와 마음을 놓고 다양하게 도전해보는 게 좋아요. 스스로에 대해서 너무 자학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게 중요하구요. 안 되더라도 크게 실망하거나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무조건 다 편하게 생각하세요.”

강동현 게 꽤 섰다. 이건 약도 안 먹어도 이럴 땐 잘만 서네. 황경호는 결국엔 미간을 아주 살짝 좁혔다. 그런데 그때 확 하고 갑자기 완전히 발기가 됐다. 깜짝 놀라서 손을 황급히 물리고 저도 모르게 강동현의 얼굴을 보았다.

전국 방방곡곡에 팔린 얼굴인데도, TV에서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얼굴이다. 초조한 듯 섹시한 얼굴로 황경호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이 인간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계속해서 외면하고 있던 의문이 저항할 새도 없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의문은 즉각적인 대답을 불러일으켰고 그건 황경호를 꽤 많이 심란하게 만들었다. 저도 모르게 환자에게서 한 발자국 물러났다.

삐빅. 삐빅. 삐빅.

그때 다행스럽게도 마사지기가 시간 종료를 알리는 비프음을 냈다. 강동현은 황경호를 한 번 더 보았다가 꽤나 깊은 한숨을 내쉬며 허리를 일으켰다.

“이거 연장은 안 되냐? 돈 더 낼게.”

강동현은 오랜만에 풀 발기된 자기 거시기를 내려다보곤 진짜 진지하게 황경호의 얼굴을 보면서 그렇게 물었다.

‘여기가 무슨 안마방이냐. 연장 같은 소릴 하고 앉아있냐고.’

“야, 나 진짜 농담 아니고 지금 4개월 만에….”

뭐라고 말을 하면서 황경호의 손을 잡아 왔다. 강압적인 손길은 아니었던 거 같지만, 황경호는 정말 기겁을 하며 마사지기를 그 잘난 얼굴에다가 명중시키곤 빛의 속도로 도망갔다.

*

“아~~.”

강동현은 짜증스러운 얼굴로 뒤로 팍 기댔다. 꽤나 질량감이 있는 물건에 맞았더니 얼굴이 욱신거린다. 드라마 촬영 중인데 부으면 안 되는데. 그래서 대충 광대뼈 근처를 만져보다가 일단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건 뭐 말도 끝나기 전에 배우 얼굴에다 물건을 집어 던져?’

짜증과 화가 급격하게 치밀어올랐지만 나가서 그 간호사에게 따질 수도 없는 일이고. 그것보다도 시급한 일은 4개월 만에 자연 발기한 거시기다. 이대로 화장실로 가서 빼야겠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강동현이 선글라스에, 마스크만 쓴 채로 진료실 문을 벌컥 열고 나왔다. 의료용 가운을 입을 채로 화장실로 뛰듯 걸어갔다. 그 간호사는 어디로 숨었는지 눈만큼도 안 보인다.

일단 강동현은 화장실 문을 닫고 들어가 변기 위에 앉았다. 아직은 발기가 유지되고 있었다. 아까 그 간호사가 인상을 좀 썼을 때 뭔가 느낌이 확 왔었다. 강동현은 그대로 자세를 잡고 두 손으로 자신의 것을 잡았다. 강동현은 꽤나 큰 물건을 가졌는지라 꽤나 자유도 높게(?) 자위를 할 수 있었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귀두를 중심으로 빠르게 문지르기 시작했다.

“하아….”

연예인인 강동현 입장에서야 남자든 여자든 아름다운 얼굴들만 내도록 보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리고 아름다운 얼굴이란 이골이 날 이유가 없다. 질리지도 않는다. 아름다운 것은 그런 것이다. 그런 강동현의 입장에서야 황경호같이 평범하고 볼품없는 간호사야 딱히, 별생각도 들지 않을 수준이었다.

말랐고 얼굴은 어리게 생겼다. 보송보송한 피부라 청결해 보이는 인상이다. 웃으면 청소년 계도포스터에 들어갈 것 같다. 웃지 않으면 그저 군중 속에 묻힐 것 같은 인상이다. 못생긴 것은 아니다. 동갑인데도 소년티를 벗지 못한 몸과 얼굴이다.

말끔하고 청결할 것 같은 느낌이 나는 몸과 얼굴이라… 털도 별로 없고 만지면 살짝 건조한 듯 부드러운 피부다. 선은 가늘고 깔끔하다. 웨이트 같은 건 한 번도 안 했을 것 같은 말랑말랑한 몸이다.

무표정할 때는 잘 모르겠는데 표정이 확 잘 드러나는 얼굴이라. 표현이 풍부하다고 해야 하나 새하얀 도화지처럼 잘 도드라진다고 해야 하나. 배우로선 부러울 만한 특성이다.

가면 쓴 것 마냥 웃고 다니지만, 인상을 찌푸리거나 짜증을 내는 얼굴이 마음에 든다(그 적대적인 감정에 짜증이 나는 게 주긴 하지만).

게다가 할 때….

[앗… 싫어… 하으… 빼….]

어깨까지 빨개진 몸이나 얼굴이나… 전부 마음을 끌었다. 피부가 닿는 느낌이 환상적이었다. 그런 게 말로만 듣던 합이라는 걸까.

‘아… 남자 같은 거 진짜 관심 없는데….’

워낙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 천지인 곳이라 심심찮게 동성연애를 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연예인들이 있지만, 강동현은 아무리 잘생겨도 남자한테 성욕이 들거나 하진 않았다.

강동현은 인상을 확 쓴 채로 머릿속에서 작년 12월 31일 밤의 일과 망상을 총체적으로 합쳐서 상상하기 시작했다.

흐앗… 싫어… 거기 싫다니까… 하으. 좋으면서 뭘 그래. 하… 빼주세요… 하으… 커… 안 돼. 아응. 앙… 하… 갈 것 같아…! 그만 하라고, 이 변태…! 아으응… 찢어져… 하아… 너무 세… 크윽. 쌀 거 같아. 싼다. 흐으앙… 안에 하면…! 아아앙!

등은 원래 보송보송했지만 열기에 젖어 미끈해진다. 닿는 느낌이 좋아서 몇 번이고 핥았다. 예민하게 몸을 부르르 떠는 게 좋다. 무척이나 감도가 좋은 상대랑 하면 그런 기분일까.

무엇보다도 우는 얼굴이 정말 꼴렸다. 이상한 성적 취향 같은 건 없었는데. 괴롭힌다는 걸 알면서도, 괴롭힐 수 있는 게 좋았다.

“으… 하….”

간호사복을 입힌 채로 엉덩이를 까서 진료를 보는 딱딱한 침대에 밀어붙이고 싶다. 엄청 싫어하겠지. 그게 포인트다. 악을 쓰며 반항을 하지만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들킬까 봐 제대로 저항하지 못한다. 발기한 것을 보송보송하고 살짝 건조한 엉덩이 사이에 비비다가 바로 끝까지 찔러넣을 것이다. 금세 체액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박을 거다. 부드러운 목덜미를 깨물고 귀에다가 그가 싫어할 만한 말은 전부다 하면서. 진료실에 들어가 20여 분 동안 밖의 사람들은 치료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간호사를 신나게 따먹는 것이다.

허리가 들릴 정도로 열중해서 세게 치고 있었다. 갈 것 같다.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지고 있었다. 사정감이 치밀어 오른다.

“음… 저… 여기 사람 있나요?”

…욕할 뻔했다. 강동현은 완전히 흥이 깨져버렸다. 아마 상대는 화장실에 들어왔다가 들리는 민망한 살 부딪치는 소리에 매너 있게 사람이 들어왔음을 알린 것이겠지만, 강동현은 올해 처음으로 사정다운 사정을 할 뻔하다가 실패했다. 그대로 숨을 헐떡거리며 뭘 어쩌지도 못한 채 등을 기대고 있었다.

그 간호사가 치료를 받는 그를 보고 비웃었을 땐 전립선염에 걸린 것보다도 더 짜증 났는데, 볼 때마다 웃음을 못 참으니까 화가 나는 것보다 그에게 자꾸 눈길이 갔다.

잘 안 웃으니까 말이다. 아니, 그러니까 잘 웃긴 하는데… 진짜로 웃지는 않는 애니까 말이다. 병원에서 접객을 하는 그 만들어진 화려한 웃음이 아니라 진짜로 웃는 건 전에 Y 대 병원 앞에서, 별것도 아닌 거에 웃었다.

그래서 홧김 반반 해서 담당 간호사를 바꾸었다. 지루 환자용 마사지기를 들이고 첫 환자로 치료를 받기로 하며 혹여나 전립선염 치료만큼이나 치욕적인 건 아닌가 걱정했으나 꽤나 마음에 들었다.

어쨌든 강동현 거시기 따윈 절대로 만지고 싶지 않을 그 간호사가 표정 싹 숨기고 다시 만지고 있는 거니까 말이다. 가만히 그 얼굴이나 몸을 보고 있는 게 마음에 든다. 꼴리기도 하고.

‘근데 이 정도로 됐는데도 자위도 안 되는 거야? 아, 도대체 진짜 어떻게 살라는 거냐. 머리 깎고 중이라도 되라는 거냐고. 뭐가 문제인 거냐, 나….’

강동현은 그렇게 처참함을 곱씹다가 결국 일종의 결심을 세우고 만다.

‘꼬셔야겠다.’

*

“자.”

황경호는 갑자기 뒤를 지나가던 남자가 손에 뭘 쥐여줘서 깜짝 놀랐다. 뭐라고 반응을 하기도 전에 남자는 병원 밖으로 나가는 문으로 향했다.

“무슨 일이야?”

상대하고 있던 50대 환자가 인상을 썼다. 황경호는 웃으면서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이쪽으로 오시죠.”

그 환자를 의사한테 인계하고 나서야 손에 쥔 게 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초콜릿?”

작은 상자 안에 담긴 건 초콜릿이었다. 게다가 카운터에 가니 본체가 있다.

“이거 도은혁 환자가 두고 갔더라.”

김형세가 카운터에 있는 납작하고 커다란 상자를 내밀었다. 고급스러운 짙은 코발트색이다. 열어보니 작은 상자로 소포장 된 같은 종류의 초콜릿들이 있었다. 정확하게는 다양한 초콜릿이 같은 형식의 작은 상자에 담겨 포장되어 있었다.

“와. 예쁘다. 뭐야, 이거?”

정기연 간호사와 조한나 간호사도 관심을 보였다.

“와. 이거 진짜 비싼 초콜릿인데.”

안에 쪽지가 있어서 읽어보았다.

<우울증에 좋대서. 오늘은 바빠서 그냥 간다.>

“뭔 꿍꿍이야, 또….”

황경호는 에비, 하고 손에 들고 있던 것까지 놓았다.

“다들 나눠 먹으세요.”

“어, 진짜? 이거 진짜 비싼 건데….”

“아, 소태영 환자님.”

황경호는 곧바로 신경을 끄고 일을 하러 돌아섰다. 그리고 퇴근 시간이 되어 오랜만에 칼퇴를 해 집으로 돌아갔다. 지하철에서 내린 뒤 아무 생각 없이 기계적으로 걸어갔다.

뭐지. 이 차…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황경호는 빌라 앞에 서있는 차를 빙 돌아가며 고개를 갸웃했으나 곧 신경을 껐다. 하지만 비싼 차다운 묵직한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려 황경호의 시선을 끌었다.

“퇴근하자마자 바로 오네.”

이제 6월이다. 가벼운 옷차림은 오히려 잘난 남자가 왜 잘났는지를 보여준다. 목깃이 넓고 긴 팔을 가진 티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있었다. 큰 키와 쭉 뻗은 목이 근사하다. 바라보는 눈빛이 어쩐지… 느끼하다.

“여기서… 뭐 하세요?”

“이제 뭐 해?”

“무슨 상관이세요?”

“초콜릿은 먹었어?”

“아뇨.”

“왜? 맛있는 건데. 초콜릿이 우울증 완화에 좋다길래.”

“갑자기 왜 그런 건 주세요?”

강동현은 차를 돌아서 황경호 쪽으로 오더니 조수석 문을 열어 뭔가를 꺼냈다.

“자.”

강동현은 무언가를 황경호의 품에 안겼다. 굉장한 양의 빨간 장미 꽃다발이었다. 꽃송이가 굉장히 커서, 이런 건 실제로 처음 보았다.

“갑자기….”

“이건 마음에 들어?”

예뻤다. 그리고 굉장한 향기. 장미가 이렇게 예쁜 건지 처음 알았다.

“…무슨 꿍꿍입니까?”

황경호는 장미에서 눈을 떼고 그걸 그의 가슴팍에 밀었다. 강동현은 어쩔 수 없이 일단 받았다.

“뭐 좋아하는 거 있으면 말해.”

어이가 또 없어지네. 황경호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쳐다보니 강동현이 장미를 든 채 웃었다. 황경호는 그가 마치 TV에 나오는 것처럼 근사해 보여서 깜짝 놀랐다. 남자든 여자든 매력을 느낄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황경호는 경계를 하며 뒤로 물러섰다.

“무슨 생각이신지 모르겠는데 벌써 부담스러우니까 그만두시죠.”

“일단 이건 가져가. 너 주려고 산 거니까. 다른 사람 줘도 좋고.”

그렇게 다시 장미를 떠넘기고 강동현은 차를 타고 시동을 걸었다. 금세 사라졌다.

“도대체 왜 온 거야, 저 인간?”

그날은 그렇게 결국 장미를 들고 들어갈 수밖에 없었으나,

“와….”

그날부터 끊임없이 뭔가가 왔다. 꽃, 음식, 시계, 고급 목욕용품이나 화장품도 있었다. 다들 무척 고가에 황경호는 듣도 보도 못한 것들이 많았다. 무슨 이유에선지 음식들이 많아서 나중에 돌려주려고 해도 그럴 수 없는 게 많았다. 이 비싼 걸 다 버릴 수도 없고 음식은 사람들에게 돌리거나 했다.

그리고선 그 범인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병원에 와있는 걸 보니 성질이 났다. 젤을 손에 들었다가 한숨을 팍 쉬면서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 해요.”

“뭘?”

“이상한 거 사서 보내는 거요.”

“왜? 마음에 안 들어? 사람들한테 줘. 그럼.”

“도대체 왜 이러는 데요?”

계약 기간 때까지만 해도 어떻게든 그를 착취하지 못해 안달인 인간이었다. 그런 놈이 절대 대가를 바라지 않고 이런 짓을 하는 게 아닐 것이다.

“물건들 다시 다 돌려드릴 테니까 들고 가세요.”

“싫은데.”

“그럼 적어도 앞으론 더이상 보내지 마세요.”

“싫은데.”

“지금 저랑 뭐하자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못 가져서 안달인 것들이야. 맘 편히 써. 또 뭐 필요해. 원하는 거 있으면 말해.”

황경호는 누군가에게 빚을지는 건 질색인 성격이었다. 사람 사이가 찝찝한 것도 완전 싫고 말이다. 이 인간이 무슨 생각으로 이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부담스럽고 싫었다. 병원에서 마주쳐서 치료를 하는 거 일주일에 30분 정도만 해도 충분한 스트레스다. 무슨 목적인지도 모를 강동현의 물량 공세는 일주일 내내 사람을 짜증 나게 만들었다.

“후우….”

황경호는 짜증스럽게 젤을 짜서 마사지기에 얹으며 말했다.

“제가 어떻게 하면 그만두실 건데요.”

황경호는 인간관계에 트러블이 생기면 차라리 내가 좀 손해 보고 말지, 라는 생각을 하고 마는 성품이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당연하게 한숨 섞어 저 말을 하고 말았다. 그리고 하자마자 헉, 했다. 그 이유를 명확히 짚을 수도 없었는데 말이다. 황경호는 강동현의 얼굴을 보았다. 강동현이 대답했다.

“일단… 장갑부터 벗을래?”

강동현이 주변이 환해질 정도로 멋진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말했다.

*

예전에 그 괴상한 계약 기간 때도, 황경호는 강동현을 뜯어먹으려고 했다면 엄청나게 뜯어먹을 수 있었다. 다만,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황경호는 소비에 대한 상상력이 부족하고 욕구도 적었다.

그래서인가. 이번의 강동현은 아예 물질이란 이런 것이라며 황경호에게 떠먹여 주었다. 황경호는 더 질색을 했다.

“…….”

“아, 뭐. 안 벗어도 되고. 오늘은 소고기 세트로 보낼까?”

황경호가 욕을 퍼부으려는 순간 강동현이 그렇게 치고 나왔다.

그럼 그렇지. 이런 놈이 바라는 거 없이 그런 짓을 할 리가 없다. 그러니 그 좋은 물건들도 꺼림칙할 수밖에.

황경호는 몇 번이나 입을 뻥긋뻥긋하다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에서 약세를 느낀 모양이었다. 사람이 서로 밑바닥을 보면 결국 나중엔 먼저 체념하게 된다.

“뭘… 하라는 건데요….”

결국 매 먼저 맞는 아이의 심정으로 그렇게 물었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손을 잡아끌었다. 황경호는 움찔하며 싫어하는 기색이었지만 뿌리치거나 도망가진 않았다. 강동현은 벌써 흥분감을 감추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내가 뭐 하라고 하면… 할 거야?”

다리를 벌리고 비스듬히 앉아있는 의자에서 허리를 일으키고 황경호를 다리 사이로 확실히 들어오게 했다. 얼굴이 가까워서, 강동현은 코를 황경호의 뺨에 살짝 스치며 체향을 맡았다.

“그럼 물건들은 다 들고 갈 거예요?”

강동현의 검지가 오른손의 장갑 안으로 은근히 밀고 들어왔다. 흥분해서인지, 예전과는 다르게 접근이 어째 섹슈얼했다. 계약이란 게 있어서 전에는 명령조로 사람을 마구 부려먹었는데 말이다. 지금은 그럴 수 없어서 이러는 것이다. 황경호는 그렇게 생각했다.

“글쎄….”

“그럼 이런 거…!”

황경호는 기겁을 하며 손을 빼내려고 했다. 하지만 강동현은 왼손만 놓아주고 오른손은 마저 장갑을 벗겨 엄지로 손바닥을 긁었다. 그리고 끌어당겨서 손바닥에 입을 맞추며 황경호의 눈을 직시했다.

“!”

강동현이란 배우는 한 번도 그런 쪽으로 소비된 적이 없지만, 저번 화보 촬영 때도 그렇고 남성적 섹시함을 굉장히 강하게 풍길 수 있는 배우였다.

황경호는 그의 그런 섹시함에 진저리를 치면서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날 밤이 생각났다. 그러면서 동시에 느끼는 이상한 인력에 소름이 끼쳤다.

배우로서의 그는 인정을 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최악에 최악의 짓만 하는 남자가 아주 조금 덜 최악의 짓을 했다고 이상한 호감이 드는 매 맞는 아내 신드롬이라도 걸린 걸까. 어떤 경우든 짜증 나고 소름 끼친다.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어쩐지 실감이 났다. 겁이 났다.

“이상한 짓… 하지 마세요….”

결국 모든 건 정신적인 문제다. 여기도 저기도. 목소리를 떨면서 작게 속삭이듯 말하는 걸 듣고 강동현은 오히려 웃으면서 끌어당겼다.

“뭘 그렇게 쫄고 그래.”

강동현은 황경호의 맨손을 천천히 끌어 자신의 자지를 잡게 했다. 이미 반쯤 섰다. 황경호는 손을 뒤로 잡아 빼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물컹하고 미끄러운 점막의 느낌. 매일같이 보고 느끼는 건데도 무슨 영화 속 에일리언마냥 징그럽다.

왼손으론 그렇게 황경호의 오른손을 잡아 자기 자지를 만지게 강제하고 남은 손으론 황경호의 목덜미를 잡아 끌어당겼다.

“아….”

“너무 떨지 마… 만져줘.”

귓가에 그렇게 속삭이는데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혐오스럽기도 하고, 너무 섹시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대로 황경호의 간호사복 단추를 열어 맨 목덜미에 얼굴을 박고 숨을 들이켰다.

“진짜 댁 같은 인간… 죽어버렸으면 좋겠어….”

결국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황경호가 목덜미를 핥는 강동현을 느끼곤 움찔 떨며 작게 중얼거렸다. 강동현이 웃었다.

강동현은 젤까지 위에다 짰다. 황경호의 손이 금세 질척해졌다. 황경호는 인상을 왕창 구겼다. 그리고 우물쭈물한 황경호의 손을 자신의 손으로 같이 잡고 빠르게 움직였다.

“잠깐…! 잠깐만요. 싫….”

“시간 얼마 안 남았잖아. 빨리해.”

“이 변태! 임포지루고자 주제에…!”

강동현이 고개를 들고 인상을 팍 썼다. 황경호도 지지 않고 노려보았다. 강동현은 그의 멱살을 잡아끌어 입을 맞추었다. 황경호는 기겁을 하며 밀어내려고 했지만 당해낼 수가 없었다. 저항을 했더니 몇 번이나 입술이 이에 부딪혀서 아팠다. 혀가 밀려 들어오며 황경호의 혀를 핥아 올렸다. 입술을 깨물고 혀를 깨물고, 거친 입맞춤이었다. 눈을 떠보니 이 인간이 그의 얼굴을 보고 있었다. 왜인지 모르게 얼굴이 확 붉어졌다.

그 사이 이미 강동현의 남성기는 완전히 발기하여 뜨끈뜨끈해져 있었다. 체액이 흥건히 젖어 나와 민망한 소리를 냈다. 강동현은 점점 더 흥분해서 황경호의 허리를 끌어당겨 안으려고 했다. 옷이 더러워질 뻔하여 황경호는 그를 어렵사리 밀어내었다. 민망한 소리를 내며 입술이 떨어졌다.

“하… 크윽… 나올 거… 같아… 하….”

거친 신음을 내뱉으며 강동현은 성적 욕망에 사로잡혀 거의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계속 황경호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허리 쪽에서 옷으로 손이 들어가려고 해서 황급히 그 손을 잡아 저지했다. 그 상태로 강동현은 장갑을 아직 끼고 있는 그 손까지 끌어당겨 자신의 남성기를 잡게 했다.

“조금만 더… 하아… 기분 좋아… 윽….”

자신의 성감에 집중하고 있는 강동현의 얼굴은 굉장히 섹시했다. 강동현의 자지에 두 손마저 묶이고 나니 강동현은 자유로운 한 손으로 황경호를 마구 만졌다. 황경호는 기겁을 하며 얼른 손을 움직였다. 빨리 싸게 만들어야 빨리 끝났다.

잘난 얼굴 있으면 뭐해. 배운 거 없고 딴따라에다 멍청한데. 성격도 더럽고 싸가지없고 마인드가 완전 범죄자. 이 임포고자새끼. 지루에 전립선염까지 오는 병신인 주제에.

황경호는 속으로 할 수 있는 욕은 다하면서 맨손으로 자지를 콱 잡고 장갑을 낀 손바닥으로 귀두를 빠르게 비볐다. 강동현이 황경호의 옷을 콱 잡으며 섹시한 신음을 흘렸다.

“아… 젠장… 큭… 왜 이렇게… 잘해… 으윽….”

황경호의 머리를 잡고 끌어당겨 입을 맞췄다가 뺨을 핥아 올리곤 그대로 끌어안았다. 황경호는 너무 싫어서 눈을 질끈 감고 견뎠다.

“!!”

그리고 강동현이 드디어 사정하기 시작했다. 의자가 덜컹거리며 움직였다. 너무 큰 사정감에 강동현은 황경호의 목덜미를 있는 힘껏 물었다.

“아윽….”

커다란 자지가 맥동치면서 손을 흥건히 적셨다. 강동현이 움켜쥐고 있는 옷이 거의 찢어질 듯 팽팽했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손을 잡고 그대로 몇 번이고 자기 자지를 만지게 했다.

그렇게 오랜 사정 끝에 강동현이 드디어 숨을 들이켜며 황경호의 목덜미에서 입을 뗐다. 그리고 황경호를 꽉 끌어안았다.

“자, 잠깐만요. 옷에…!”

정액 범벅인 손과 그의 대물이 옷에 닿는다. 황경호는 어떻게든 옷과 그의 성기 사이에 공간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하아… 윽… 더 하고 싶어….”

강동현은 아예 정신을 못 차리며 옷 위로 황경호의 몸을 만졌다.

“괴롭히고 싶어… 하아… 우는 얼굴 보고 싶어… 이대로 넣고 싶어….”

“정신 차려요! 이 미친놈아…! 벌써 끝날 시간 한참 넘었단 말이야! 놔!”

“…먹이고 싶어… 하아… 여기서….”

“이 고자 새끼야! 정신 차리라고!”

손이 묶여서 팰 수도 없다. 겨우 몸부림을 쳐서 간신히 떨어져나왔다. 의료용 티슈에다가 손을 벅벅 닦고 장갑 채로 쓰레기통에다 버렸다. 황경호는 벌써 이것만으로 몇 번은 겁탈당한 사람처럼 머리와 옷 가짐이 엉망이었다. 황경호는 다시 다가가서 강동현의 멱살을 끌어당겨 따귀를 때렸다. 누구 따귀를 때려보는 건 처음이다.

“정신 차려요.”

고개가 돌아갔다가 다시 황경호를 보는 강동현이었다. 드디어 눈빛이 살짝 돌아왔다. 황경호가 티슈 박스를 던지자 겨우 받았다.

“아, 죽는 줄 알았다….”

강동현은 아직도 몸과 손이 떨렸다. 겨우 자신의 성기를 닦고 일어섰다. 다리가 후들후들한 지 주변의 가구를 잡으며 발을 질질 끌었다.

“빨리 나가요…!”

황경호는 어기적거리는 강동현의 등을 밀어 곧장 탈의실로 보내고 황경호는 바닥에 남은 정액과 다른 것들을 빨리 치우고 정리했다. 그리고 세면기로 달려고 손을 빠르게 벅벅 씻고는 겨우 머리와 옷을 빨리 정돈하고 진료실 밖으로 나갔다.

“너 왜 이렇게 늦게 나와? 금방 들어가 보려고 했어.”

다음 순번 환자를 담당한 간호사가 그렇게 말했다. 예정시간을 20분이나 넘겼으니 당연히 한 소리 들을 만하다. 황경호는 죄송하다고 말하곤 얼른 화장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시 손을 씻었다. 목덜미와 얼굴도 여러 번 씻었다. 입도 물과 가글로 계속 헹구었다. 그리고 거울을 봤더니 물렸던 목이 엄청나게 빨갰다. 피멍이 들 것 같다.

황경호는 얼굴을 확 붉히곤 손을 닦는 페이퍼로 얼굴과 목덜미를 닦고 단추를 목까지 단단히 채웠다. 그리고 화장실을 나오려는데 마침 화장실로 들어오려는 강동현과 마주쳤다. 황경호는 기겁을 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러면서 소리쳤다.

“빨리 물건이나 챙겨가요! 그냥 주소 불러요! 택배로 부칠 테니까!”

“알았어. 니가 말하는 거 다 해줄 테니까….”

강동현이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벗어 세면대에다 던졌다. 화장실의 문을 잠그고 황경호 쪽으로 걸어왔다. 황경호는 깜짝 놀라서 뒤로 황급히 물러났다. 강동현은 그대로 황경호를 벽에 밀어붙여 끌어안았다.

“좀만 더 하자….”

“왁!! 이 인간이 미쳤나봐…! 사람 온다구요!”

이 미친놈이 진짜! 아무리 반년 만에 성공한 거라지만 자기 배우 커리어 날리려고 작정을 한 모양이다. 황경호는 그가 하체를 황경호의 하반신에 꾹 눌러서 깜짝 놀랐다. 그대로 황경호의 한쪽 다리를 자신의 허리에다 걸치게 하는 엄한 자세를 취했다.

“으악…! 잠깐만…! 앗…!”

그대로 옷도 벗지 않은 채로 섹스하듯이 움직였다. 황경호는 얼굴이 무슨 토마토처럼 빨개졌다.

“잠깐…! 악! 이 미친놈아…! 그만하라고! 읍…! 으읍읍!!”

강동현의 옷깃을 잡아당기고 밀어대도 체격 차 등으로 인해 꿈쩍도 안 했다. 무엇보다도 지금 이놈이 미친놈이나 다름없는 상태라는 걸 감안할 때, 당연히 정상인은 당해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때 강동현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강동현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황경호는 겨우 이 인간의 얼굴을 떼어내고 기침을 했다. 강동현은 아까 물었던 데를 또 물었다. 온몸에 전기가 흐르는 것처럼 굉장한 아픔이 밀려왔다. 황경호는 고통의 신음을 참으며 강동현의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화면을 보니 매니저한테서 온 전화다. 부재중도 있다. 황경호는 그걸 강동현의 눈앞에 들이밀면서 소리쳤다.

“전화 왔어요! 전화!! 촬영 가야 하는 거 아니에요? 촬영!”

그러자 우뚝하고 강동현이 행동을 멈추었다. 황경호의 얼굴을 보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라 다시금 그의 눈앞에 휴대폰 화면을 들이댔다.

“촬영 가야 하는 거 아니냐구요.”

“아….”

강동현은 표정을 구겼다. 곧바로 평소의 그라는 걸 깨달을 수 있을 정도로 강한 변화였다. 그는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은혁아, 너 어디야?]

“아, 미안, 형. 완전 늦었네. 아직 병원이야.”

강동현이 떨어져 나갔다. 고관절이 아프다. 황경호는 그가 전화통화를 하는 동안 슬금슬금 그를 빙 돌아갔다. 그리고 화장실 문을 열고 도망가려는데 뒷덜미를 잡혔다.

“어. 거기로 바로 갈게. 형이 먼저 가있어. 어. 죄송하다고 전해주고.”

강동현은 전화통화를 끝마쳤다.

“나… 저녁부터 다시 바빠. 다음 주는 병원 못 와.”

“그, 그러세요….”

이 남자가 언제 미친놈처럼 달려들까 봐 겁이 나서 저도 모르게 저자세가 되어버렸다. 황경호는 화장실 문을 무슨 금덩이처럼 꼭 잡은 체 대답했다.

“다음 주 토요일 점심부터 시간 나니까. 시간 비워.”

“그날은 초록이….”

“일요일에 가.”

“제가 왜….”

“비워.”

강동현은 그렇게 말하곤 앞서서 화장실을 나갔다. 한바탕 폭풍이 몰아치고 간 것 같다. 황경호는 어이가 없어서 실소하고 말았다.

*

이상한 상황이다. 물건을 받고 그런 걸 해줘도 이상한데 물건을 도로 돌려주기 위해 그런 걸 해주다니.

‘그래… 그냥 1억 때문이라고 치자… 그 돈도 무지하게 찝찝했지….’

황경호는 물건들을 전부 택배 박스에다가 쌌다.

자기가 ‘충분히’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결국 자신이 소비되거나 착취당하는 거나 부당하게 취급당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생각할 만한 경험이 많아질수록 더 헤어나오질 못한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에겐 매 맞으며 버티는 아내들이 너무나 이해가 되지 않고 답답해도 전 세계적으로 만연한 이유다. 그리고 아무리 주변에서 정신 차리라고 해도 대부분 그러한 취급을 당하고 사는 자신을 그저 받아들이며 살다가 극단적인 경우까지 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치명적이진 않을 수준에서 학대가 이루어질 때는? 그저 받아들이며 산다. 당신도 그렇지 않은가? 당신에게 행해지는 모든 학대에 굴복하고 그저 받아들이고 살고 있지 않은가?

단지 치명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저항하는 걸 두려워하는 자는 결국 모두 그렇게 된다. 매 맞는 아내뿐만 아니라, 꾸준한 성추행을 당하는 간호사뿐만 아니라. 어머니, 아버지가 딸에게. 선배가 후배에게. 교수가 대학원생에게. 사회가 당신에게.

당신도 불합리한 일을 그저 참고 살고 있다. 저항하지 않는다. 학대당하는 자신을 합리화한다. 부모는 나를 기르기 위해 고생하니까. 원래 학교 전통이 그러니까. 그게 교수가 가진 권력이니까. 사회는 그런 거니까.

당신도 그렇다.

“아오… 그 인간 생각나는 건 머리카락 하나도 싫어.”

황경호는 비싼 물건들에 뽁뽁이까지 잘 둘러 강동현의 집으로 모조리 다 부쳤다. 뭔가 짐이 하나 덜어진 느낌으로 홀가분해졌다.

그 인간이 아무리 자신에게 어떤 짓을 하든, 그렇기 때문에 아무것도 받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예전 돈을 받았던 것도 한 푼도 쓰지 않고 전부 기부를 했다. 그가 주는 물질적인 걸 받는다면 그거야말로 마지막까지 지키고 있던 무언가를 부정당하는 기분이 들 것 같다. 마지막 자존심 같은 거일지도 모른다.

황경호는 퇴근할 때마다 조금씩 택배를 싸서 택배기사를 불러 보내다가 드디어 토요일이 되어서야 전부 보낼 수 있었다. 직장을 다니는 사람에게 택배를 부치는 건 너무 힘든 일이다. 오전 10시다. 황경호는 시간을 확인하고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네. 형. 준비 다 됐어요? 초록이 데리고 가게로 갈까요?”

[응. 그래라. 도착하려면 얼마나 걸릴 거 같냐?]

“한 시간 좀 더 걸릴 거 같아요.”

[그래. 조심해서 오고.]

황경호는 미리 병원과 고아원에 말하여 아이를 데리고 외출을 하겠다고 말했다. 아픈 아이를 데리고 나가는 건 이것저것 귀찮은 일이 많지만 그래도 바깥을 한번 보여주고 싶었다. 호프집 사장 김태형의 차를 타고 용인으로 가기로 했다. 에버랜드에 가기로 했는데 장미 축제가 한창이라고 한다. 황경호는 그 용건을 끝으로 휴대폰을 아예 꺼버렸다. 그리고 얼른 병원으로 가서 아이를 챙겼다.

“아, 경희 누나. 혹시 누가 저 찾아오면 모른다고 말씀해주세요. 그리고 연예인이 와서 물어보면 DMZ 갔다고 해주세요.”

어디를 가는지 유일하게 아는 간호사를 잡고 그렇게 신신당부를 하고는 신난 아이를 안아 들고, 다른 손엔 여러 가지 약과 비상품들이 든 가방을 들고는 병원을 빠져나갔다.

“우리 초록이 지하철 처음 타지?”

“응!”

지하철로 내려가 카드를 찍고 들어갔다. 주말이라 사람이 꽤 있어서 아이는 계속 안고 갔다. 운동이라도 해야겠다. 초록이는 제 또래보다 훨씬 작은 편이었지만 그래도 계속 들고 다니니 무겁다. 아이를 들고 다니니 금세 자리를 양보해준다.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몇 살이야? 4살?”

옆에 앉은 아주머니가 초록이의 손가락을 만지며 물어봤다. 초록이는 아주머니를 올려다보며 대답했다.

“여서쌀!”

“여섯 살이야? 오빠야, 아빠야?”

“오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나 보네. 어디 가?”

“응~ 꽃 보러!”

황경호가 아이를 추슬러 안으며 말했다.

“존댓말 써야지.”

“괜찮아요. 아기들 원래 초등학교 들어갈 때까진 아직 그런 거 잘 모르는 게 당연하죠. 그래. 사탕 줄까?”

“응!”

애가 생글생글 웃으며 붙임성이 좋아서 귀여운가 보다. 초록이는 냅다 받았다.

“고맙습니다, 해야지.”

“고맙습니다.”

“아유. 애가 붙임성이 좋네. 우리 손자도 좀 그러면 좋을 텐데. 애가 낯을 많이 가려서.”

“아, 그러세요. 몇 살인데요?”

“동갑이야.”

어떻게 하다 보니 아이를 가지고 얘기를 나누는 애 엄마들 모임 같아졌다. 그러다 아주머니가 먼저 내리고 그다음에 황경호와 초록이가 내렸다.

“형.”

“아이구. 우리 초록이 왔어요!”

이신현이 초록이를 번쩍 안아 들며 반가워했다. 김형세도 왔다. 다 같이 김태형의 경차에 낑겨서 탔다.

“애 카시트가 없어서….”

김태형이 걱정을 했다.

“애 안고 탈 거라 괜찮아요.”

힘 좋은 김형세가 목말을 태우고 있던 초록이를 무릎 위에 앉혔다. 그리고 그대로 용인으로 달려갔다. 주말이라 사람은 엄청나게 많았지만, 놀이기구를 탈 게 아니라서 그럭저럭 다닐 만했다.

“와. 내가 놀이동산을 다 와보네, 이 나이 먹고.”

김태형이 감탄사를 냈다. 이신현이 답했다.

“저도 군대 갔다 와서 처음이에요.”

김형세도 답했다.

“전 처음 와요.”

“애 생기면 다 그런 거지.”

황경호가 그렇게 말하며 빌려온 유모차와 물건들을 바리바리 꺼냈다. 확실히 애가 있으면, 그것도 미취학 아동이 있는 무리는 애가 상전이다. 햇볕이 너무 내리쬐는 건 아닌가 걱정하고 배는 고픈지, 화장실은 가고 싶은지 계속 살폈다.

“와… 이렇게 보니까 진짜 예쁘네. 가게에도 꽃 좀 사놓을까?”

장미가 한창 필 때라 굉장히 예뻤다. 관리를 잘하는지 송이가 큰 것도 제법 있었다. 터널을 만들어 놓거나 아치형의 조각을 타고 장미가 피어 있었다. 하얀색, 분홍색, 노란색, 빨간색. 색색의 장미들이 모두 다 있다. 잘은 모르지만, 품종도 다른지 모양도 제각각이다.

“초록아, 마음에 들어?”

아이를 위해 나온 건데, 그게 아니더라도 나오기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세상도 있는 건데, 뭐가 귀찮다고 그렇게 한 치 밖을 벗어나지 못했던 걸까.

“친구들이 하는 말 생각나네. 애가 있어야 바다도 가고 풀도 보고 나무도 본다고. 애한테 보여주려고 하는 건데도 가면 정말 좋아서 왜 지금까진 안 보고 살았을까 싶다면서.”

김태형이 황경호가 한 생각과 비슷한 말을 했다.

“그러게요.”

“결혼도 안 한 우리들이 벌써 이런 거 알 수 있는 것도 다 초록이 덕분 아니겠냐. 초록이가 복덩이다.”

“맞아요.”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김태형이 또 거하게 싸 온 도시락을 먹었다.

“아, 진짜 형님 밥 먹으니까 다른 가게는 못 가겠어요.”

김형세가 그렇게 말했다. 안 그래도 사람이 많아 음식을 많이 했는데도 원체 엄청 먹는 놈이라 아슬아슬하다.

“초록이, 아~.”

“너도 좀 먹어라, 경호야. 애 젓가락질 좀 하게 내버려 두고.”

밖에 아픈 애를 데리고 나왔다 보니 안 그래도 살짝 과보호 끼가 있는 황경혼데 애가 손도 까딱 못하게 하고 있었다. 밥을 다 먹고 동물원도 다 같이 갔다가 불꽃놀이까지 보고 돌아갔다. 저녁은 외식이었는데 초록이는 외식이 처음이다.

“재밌었떠.”

다들 차에다 짐을 싣고 있을 때 초록이가 가만히 황경호의 얼굴을 보면서 웃더니 그렇게 말했다. 괜히 너무 데리고 다녀서 애 힘들게 한 건 아닌가 했는데. 황경호는 너무 깜짝 놀라고 기뻐서 초록이를 안아 들며 다시 물었다.

“어땠어? 재밌었어?”

“재밌었떠. 꽃도 예쁘구 불꽃놀이도 예쁘구. 또 오고 시퍼.”

“또 오고 싶어?”

“응.”

“초록이 재밌었대요.”

“그래? 우리 초록이 재밌었어요? 어이구. 다음에 또 와야겠네.”

아이가 재밌다고 하니 다들 지쳤을 텐데도 웃었다. 초록이가 부르는 노래를 들으며 서울로 다시 돌아갔다. 황경호는 초록이랑 같이 자기로 했다. 병실에 들어와서 애를 씻기고 옷까지 갈아입히니 11시다. 아이는 눕히자마자 잠들었다. 황경호도 간이침대를 펴고 누웠다.

그리고 드디어 휴대폰을 켰다. 부재중 전화가 엄청 와있다. 메시지를 보니 어디냐, 뭐하냐, 전화 받아라, 병원이다, 집 앞이다, 등등 왕창 와있다. 황경호는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이제 좀 그만해요.>

보냈다.

*

“…….”

“차갑습니다.”

강동현은 자신이 너무 흥분했었다는 걸 인정했다. 그때 이 간호사를 낚아서 반년 만에 사정을 제대로 했더니 지금 생각해보면 스스로도 깜짝 놀랄 정도로 정신을 못 차렸다. 일에 늦은 건 둘째 치더라도 그때 누군가에게 들켰다면 어떻게 할 뻔했는가.

“야….”

“네.”

강동현은 최대한 노력하여 말본새에 싸가지를 함양하도록 노력하며 입을 열었다.

“토요일엔 미안했다. 생각해보면 엄청 부담스러웠을 텐데….”

“아시면 됐어요.”

황경호는 그렇게 심드렁하게 말하며 그저 기계적으로 손을 놀려 마사지를 했다.

“…너 말이야. 진짜 나 한 번만 더 도와줄 순 없겠냐?”

“…….”

황경호가 어이가 없는 얼굴로 드디어 오늘 처음으로 강동현의 얼굴을 보았다. 마치 무장하지 않았다는 제스처처럼 양 손바닥을 내밀며 강동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 니가 얼마나 어이없을지는 나도 이해한다.”

강동현은 마사지기를 잡지 않은 황경호의 손을 두 손으로 잡았다.

“근데 진짜 사람 한 번만 살린다고 생각하고 진짜로 도와주면 안 되겠냐? 내가 이제 진짜 죽을 거 같아.”

왠지 묘한 기시감이 든다. 황경호가 쓰러져서 병원에 가서 같이 하룻밤 지새웠을 때, 그때도 비슷하게 엄청나게 매달려왔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때와 다르게 황경호는 여러 일을 겪으며 멘탈이 꽤 단단해졌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황경호는 손을 빼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뭐든 해줄게.”

또 나왔다. 이 인간 전매특허 대사다. 뭐든 해주겠단다. 돈 많아서 유세 떠는 거야, 뭐야. 황경호는 대꾸할 가치도 없다는 듯이 입을 다물었다.

“나 진짜 작년보다 상태 더 안 좋아진 거 같아. 약 먹으면 서기도 서는데 진짜 끝까지가 안 돼. 작년엔 억지로라도 됐었는데… 정말 니가 안 해줘서 그런지 정말 저번에 했던 게 올해 들어서 처음이었다니까….”

말하다 보니 좀 창피한 모양이었다. 강동현은 잠깐 입을 다물었다가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내가 어떻게 하면 도와줄래?”

“필요 없어요.”

“제발….”

다시 황경호의 손을 살짝 잡으며 눈을 맞췄다. 그러면서 그런 목소리로 애원하듯 말했다. 알다시피 강동현이란 남자, 이러니저러니 해도 인력이 굉장히 강한 남자라 황경호는 더 기분이 나빠져서 인상을 팍 썼다.

“지금도 그렇게 상태가 좋다고 말할 순 없지만 그래도 작년만큼 상태가 안 좋은 것도 아니구요. 죽고 싶다는 생각도 그렇게 안 하구요. 그리고 결정적으로 전 도은혁 환자님이 진짜 싫어요.”

강동현도 살짝 인상을 쓰면서 한숨을 쉬었다.

“죽는 걸 도와주겠다는 게 아냐. 작년엔 내가 좀… 미쳐서 그렇지. 이번에도 죽는 걸 도와주겠다느니 그런 말은 안 해. 아마 니가 또 한강 달려가면 난 또 막겠지.”

“왜요?”

강동현은 잠깐 황경호에게서 눈을 돌렸다가 한숨을 쉬듯 대답했다.

“사람이 죽겠다고 하는데 진짜 죽으라고 내버려 둘 수 있겠냐, 사람이.”

“다른 사람 찾아요.”

“니가 소개시켜줄래? 나야말로 너 안 괴롭히고 끝낼 수 있으면 그러고 싶다. 내가 아무리 염치가 없다지만 계속 너한테 이렇게 매달리는 거 엄청 부담된다는 거 알아. 싫어할 거라는 것도 알고.”

“싫어요. 끝났습니다. 옷 갈아입으세요.”

황경호는 마지막으로 말끔하게 강동현의 성기를 닦아주고는 얼른 챙길 거 챙겨서 나가버렸다. 강동현은 부글부글한 얼굴로 그 뒷모습을 보다가 땅이 꺼지라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이 인간, 이렇게 얼굴에 철판 깔아버리면 사람이 부끄러운 줄도 모른다. 황경호 한정으로 더 그러는 것이지만 황경호는 그 사실을 모른다. 강동현은 그날 이후로 병원에 올 때마다 황경호에게 애걸복걸하며 도와달라고 매달렸다.

“아~ 진짜 손으로만! 손으로만 해도 좋다니까. 몸도 안 만질게.”

냄새는 좀 맡을지도 모르겠지만… 강동현은 절대로 자기 얼굴을 안 보는 황경호의 시선 안에 들어가려고 이리저리 고개를 움직여댔다. 그렇게 매번 올 때마다 그러자 황경호는 드디어 화를 냈다.

“아오! 다 큰 남자가 징징거리지 좀 마요! 듣기 싫으니까!”

“내가 징징거리는 거 듣기 싫으면 좀 도와주라. 어? 너도 남자니까 내가 얼마나 괴로울지 짐작 갈 거 아냐.”

“안 갑니다.”

결국 오늘은 포긴지 강동현이 의자에 탁 기대었다. 그리고 눈 위를 손으로 덮었다. 어째 오늘은 엄청나게 빠른 포기다. 이겼다. 황경호는 콧김을 내었다.

“끝났습니다. 옷 갈아입으세요.”

15분가량이 지나고 그렇게 말했다. 그때 손으로 해주고 난 이후론 눈으로 보는 것만으론 너무 성에 안 차는지 시선으로 황경호를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것도 관두고 계속해달라며 징징거리던 남자였다.

“도은혁 환자님?”

황경호는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는 잠들어 있었다. 뭐하는 거야, 이 인간. 황경호는 목소리를 높였다.

“도은혁 환자님, 일어나세요. 끝났습니다.”

안 일어난다. 황경호는 짜증이 팍 났다. 그의 어깨를 잡고 성의 없고 거칠게 흔들었다.

“도은혁 환자님!”

그러자 강동현이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황경호를 먼저 보고 주변을 둘러보더니 눈머리를 강하게 누르며 일어났다.

“아, 졸려.”

일어나자 정말 휘청해서 황경호가 깜짝 놀라 그를 부축할 정도였다. 확실히 피로함이 점점 더 역력해지고 있는 강동현이었다. 황경호는 저도 모르게 간호사로서 걱정스런 충고를 하고 말았다.

“일 좀 쉬엄쉬엄해요. 얼굴로 밥 벌어 먹고살면서 몸 관리가 이러면 어떡해요.”

“그러니까 말이야….”

현기증이 꽤 도는지 한 손으로 두 눈을 그대로 덮은 채 황경호한테 반쯤 의지하여 서 있었다.

“이번 드라마 끝나면 진짜 쉬려고.”

“강장제 같은 거라도 처방해드릴까요? 좀 센 걸로?”

“됐어.”

“병원 올 시간 있으면 차라리 잠이나 자요.”

별 차도도 없는 걸 여기까지… 황경호가 들으라고 중얼거리자 강동현이 의외로 피식 웃었다.

“니가 여기 있잖아.”

금방 등에 소름이 돋았다. 강동현은 황경호를 놓고 기지개를 켜며 고개를 이쪽저쪽 돌리며 근육을 풀었다.

“그럼 나 진짜 머리 깎고 중이나 되거나 신부라도 돼야 하는 건가.”

강동현은 그렇게나 난리를 치더니 본인도 이제 꽤나 지치는 모양인지 그렇게 말했다.

“…안타깝지만 그런 사람도 있을 수도 있죠.”

“와. 남 일이라고 막말하는 거 봐라.”

강동현이 정색을 하고 돌아보았다가 한숨을 쉬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지금은 아예 싸울 기력도 없는 모양이었다.

“왜….”

탈의실을 막 들어가려는 강동현의 뒤통수에다 대고 황경호가 중얼거리듯 입을 열었다.

“저한테만 이러시는 건데요?”

묻고 나서 바로 후회했다. 저질스러운 답이 돌아올 게 뻔한 질문이었다.

“…….”

강동현은 바로 입을 열었다가 그냥 다물었다. 잠깐 생각을 하더니 몰라, 라고 짧게 답하고 탈의실로 들어갔다.

*

“…….”

황경호는 의자에 앉자마자 잠이 들어버리는 강동현을 보고 어이가 없어서 마사지기를 든 채 가만히 있었다. 이걸 해야 하는 거야, 말아야 하는 거야….

‘뭐… 당연히 해야겠지.’

황경호는 바로 그렇게 생각을 고쳐먹고 젤을 짜놓은 강동현의 서혜부를 마사지했다. 어차피 잘 서지도 않는 거 잠까지 들었으니 꿈쩍도 안 한다.

젊은 애들은 치료를 꺼려서 병을 키우는데, 물론 강동현도 한 4개월을 뻗대다 오긴 했지만, 그래도 꽤 열심히 병원을 다녔는데도 이 정도까지 차도가 없다니. 이강유 선생님이 금요일만 되면 한숨이 느는 것도 당연하게 느껴졌다. 차도가 없는 조루 환자에게 더 스트레스를 느끼시는 것 같긴 하지만.

15분이 끝나고 정리를 하고 옷까지 여몄는데, 너무 곤히 자고 있어서 깨우기가 좀 그랬다. 드라마가 24부작이라 아직도 촬영을 하고 있었고 잠을 어지간히도 못 자는지 황경호의 앞에서는 점점 인간이 죽을상이 되어간다. 게다가 최근 이틀은 이렇게 오자마자 잠부터 들어버린다.

아니, 그러니까 여기 올 시간에 그냥 잠이나 자라니까… 병원 올 때는 매니저 대동해서 오는 것도 아니고 자기가 직접 운전해서 오는 것 같던데. 그나저나 드라마 촬영이 원래 이렇게 빡센 거야? 그거 일주일 내내 찍는 건가. 황경호는 잘 알 수가 없었다. 시계를 보았다가 한 5분쯤은 이대로 둬도 괜찮겠다 싶어서 여분의 의자를 끌어당겨 앉았다.

‘참나, 나 같으면 그냥 포기…. 하긴 그게 안 되니까 우리 병원이 돌아가는 거겠지.’

황경호는 쉽사리 그렇게 생각하려다가 고개를 저었다. 여긴 이 땅의 고개 숙인 남자들의 성지다. 어떻게 보면 이 성지를 수호(?)하는 가디언(?) 중의 하나인 자신이 이런 생각을 해선 안 되는 거겠지. 하여튼 싱숭생숭한 기분으로 5분을 기다리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처럼 팍 깨우려다가 얼마나 피곤하면 이러겠냐, 싶어서 강동현의 오른쪽 어깨를 살짝 흔들며 그를 불렀다.

“도은혁 환자님, 다 끝났어요. 도은혁 환자님.”

그의 가지런하고 긴 속눈썹이 움찔하며 떨렸다. 정말 실제로 본 사람들 중에서 손에 꼽을 정도의 외모라 그런지 새삼, 자고 있는 이 인간이 그렇게 자기를 괴롭히던 그놈이 맞나 싶다. 황경호는 한 번 더 그를 흔들면서 이름을 불렀다. 그러자 서서히 그가 눈을 떴다.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황경호는 기분이 나빠져서 미간을 찌푸렸다. 이유는 알 수가 없었다. 곧바로 표정관리를 하며 그의 눈과 마주친 시선을 돌렸다.

“일어….”

그 순간 입술에 부드러운 것이 닿았다. 그리고 곧바로 혀가 들어와서 안에 있는 혀를 진하게 한 번 핥아 올렸다. 황경호는 한 박자 늦게 소스라치게 놀라 입을 막으며 뒤로 물러났다.

“~~~!!!!!”

“…아, 미안.”

강동현은 잠깐 주변을 둘러보더니 병원이라는 걸 깨닫고 두 손바닥을 내보이며 그렇게 말했다. 황경호가 인상을 팍 쓰고 노려보자 한 번 더 말했다.

“진짜 미안.”

“…매번 미안하다면 답니까? 예??”

황경호는 그렇게 쏘아붙였다. 강동현은 한숨을 쉬며 대꾸했다.

“잘못했어. 잠결에….”

드물게 저자세로 나오니 더 화가 슬금슬금 치밀어올랐다. 아마 지금까지 쌓였던 억하심정이 다 몰려오는 것이다. 이런 인간 뭐가 예쁘다고 더 자라고 기다려주기까지 하냐. 내가 병신이다, 병신이야.

“잘못했다고 하면 다냐구요.”

“미안하다니까.”

“앞으로 다시는 이런 짓 안 하겠다고 해요.”

“…….”

“담당 간호사도 바꾸고 이제 저 좀 내버려 둬주세요.”

“…….”

강동현이 인상을 좀 썼다. 그가 대꾸를 하려는데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황경호는 시계를 보더니 강동현한테 말했다.

“탈의실로 가서 옷이나 갈아입어요.”

강동현은 한숨을 쉬며 탈의실로 향했다. 황경호는 다음번 환자를 안으로 들이며 본인도 밖으로 나갔다.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에 진동이 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 병실로 와>

황경호는 인상을 팍 쓰며 속으로 욕지거리를 했다. 꺼지라고 답을 다 쳐넣기도 전에 문자가 또 왔다.

<얘기 좀 하자>

그래. 오늘 너 죽고 나 죽어보자, 이 개새끼야.

“나 잠깐만 휴식.”

카운터에다 그렇게 말하고 황경호는 머릿속으로 그 인간에게 어떤 식으로 퍼부을지 하나하나 꼽으면서 한 층 올라갔다. 구석에 있는 안 쓰는 병실로 갔다. 강동현은 얼굴을 가리지 않은 채 침대에 앉아있었다.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 놈인지 니가 제일 잘 알잖아.”

굉장히 피곤한 얼굴로 강동현은 그렇게 대화를 시작했다. 황경호는 수많은 말을 생각해왔는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말문이 탁 막혔다.

그렇다. 강동현은 그 말도 안 되는 계약서를 썼을 때 황경호가 시키는 말도 안 되는 짓들을 전부 했었다. 다리에서 뛰어내리기까지 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라면 십 년쯤은 감수해도 상관없다는 저 삶의 방식도, 보통 사람이라면 하지 못할 것들이다.

“…그러니까 좋은 말로 할 때 그냥 대라?”

황경호는 몸이 떨리는 게 느껴졌다. 화가 났다. 어디까지 이 남자는 그를 무시하고 짓밟는 것일까 생각하면 정말이지 치가 떨린다.

“그렇게까지 말하진 않았잖아.”

“그 말이 그 말이죠.”

“그냥… 좀 도와달라는 거야.”

강동현은 머리를 쓸어넘기며 말했다.

“저번 같은 그런 건 절대 없을 거야. 작년같이 너한테 일부러 못되게 굴지도 않을게.”

“그냥 저는 도은혁 환자님이 싫다니까요.”

“그때도… 진짜 미안하다. 진짜 맘먹고 죽으려던 사람한테 그렇게 손대면 안 되는 거였는데….”

“…….”

황경호는 인상을 쓰며 입을 다물었다. 그 얼굴을 보고 강동현은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로 몇 번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같이 인상을 쓰며 입을 다물었다.

“…….”

“…….”

잠깐 침묵이 흘렀다.

“그래도 싫다고 하면 어쩔 건데요.”

황경호가 물었다.

“저번처럼 돈 지랄이라도 하게요?”

이번엔 눈 하나 꿈쩍 안 하겠다는 기세다. 강동현도 그걸 느꼈나 보다. 근래 최대한 성격을 죽이려고 노력하던 그였으나….

“그 애한테 줬던 돈. 다른 병든 애들한테 돌릴 거야.”

황경호는 눈을 크게 떴다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걔 아직 돈 더 필요하잖아.”

“…야 이 나쁜 새끼야!”

황경호는 강동현한테 달려들어서 그의 멱살을 잡았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무게에 뒤로 넘어졌다. 침대에 드러누워, 황경호가 그 위에 올라탄 자세가 되었다. 주먹을 치켜들자 강동현이 눈을 감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얼굴 말고 딴 데 쳐.”

황경호는 이를 갈았다.

“이 나쁜 새끼. 저질. 개새끼. 색마. 변태!”

황경호는 강동현의 어깨를 퍽퍽 쳤다. 너무 화가 나서 눈물이 나왔다.

“진짜 너 언젠가 내가 죽여버릴 거야…!”

“그래.”

“죽여버릴 거라고!”

“알았어.”

강동현은 몸을 반쯤 일으켰다. 화를 참지 못해 얼굴이 상기되어 눈물을 흘리는 황경호의 얼굴을 보며 천천히 그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뺨에 입을 맞추었다.

“진짜 세상에서 제일 싫어….”

황경호가 눈물을 멈추려고 안간힘을 쓰며 목소리를 떨었다. 눈물을 닦아내는 그의 손목을 잡으며 강동현은 그에게 키스했다.

*

갑자기 다른 진상 환자들이 별로 안 힘겹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올해는 그런 사람들이 정말 힘들었었는데 말이다. 초록이가 정말 보살같이 여겨졌다. 사람들이 똑같은 상황, 더한 환경에 있다 하더라도 상황 같은 건 결국 핑계밖에 되지 않는다. 꼴 보기 싫은 변명일 뿐인 것이다.

“괜찮으세요, 우석영 환자님?”

“괜찮습니다. 번번이 죄송하게 됐습니다.”

이 환자도 음경확대 무리하게 하더니 계속 고생한다. 그런 은밀한 욕망을 지닌 사람 치고 배운 사람티가 확확 나는 젠틀한 느낌이다. 물론 안경 쓴 50대 이런 엘리트 아저씨조차 어디다 써먹고 싶은지 모를 음경확대수술을 한다. 창녀들을 괴롭힐 생각인가. 그렇게 생각하면 싫긴 하다.

“황 간호사, 담당 환자 오셨어요.”

“네~”

황경호는 밝게 대답했으나 도착한 환자를 보고 웃는 얼굴 그대로 살짝 표정이 굳었다.

“어제도 왔으면서… 왜 또….”

복화술을 하듯 그렇게 말하자 강동현이 알아서 4번 개인 치료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음 주 아예 못 와서.”

강동현은 마지막까지 최악인 남자가 어디까지 최악인지 보여줬으나 그날은 입만 몇 번 맞추다가 돌아갔다. 밤샘 촬영이 있다고 했다.

그 뒤부터는 치료를 받으러 올 때마다 마사지기로 마사지를 하는 대신에 황경호가 손으로 빼줬다. 일단 빼주는 것만 해준다면 나머지는 마음대로 하란다. 아예 전제부터가 글렀는데 선심 쓰는 척은. 이기적인 놈. 강동현은 탈의를 하고 가운으로 갈아입은 후 진단 및 치료용 의자로 가서 앉았다.

“…마스크는 좀….”

황경호가 눈을 부라리자 강동현은 입을 닫았다. 황경호는 장갑을 끼고 수술용 마스크를 꼈다. 그리고 어디서 공업용 타이를 가져와 꺼냈다.

“그건 뭐야?”

“제가 분명히 만지지 말라고 했잖아요.”

“야,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해야겠냐?”

“이것보다 더하게나 만들지 마세요.”

황경호는 기어코 그의 양 손목을 양 의자에다 묶었다. 강동현은 손목을 당겨봤다. 진짜 딴 건 몰라도 타이는 이렇게 묶으면 풀 수가 없다. 그는 한숨을 쉬었다.

“재수 없으니까 한숨 쉬지 마요. 지금 누가 한숨이 나오는데.”

“네. 네.”

강동현이 건성으로 대꾸하자 콱하고 강동현의 자지를 꽉 잡았다. 아파서 펄쩍 뛰었다.

“야…!”

그대로 젤을 발라 전체에 발랐다. 그리고 한 손으로 불알을 굴리면서 다른 손으로 귀두를 매만지고 기둥으로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건성에다 아파서 강동현은 인상을 팍 썼지만, 서서히 서기 시작했다.

“키스하면… 윽… 좀 더 빨리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싫어요.”

“나 원래도 잘 안 되는데… 이것만 해가지고 시간 내에 끝날 거 같냐… 아, 그리고 아파! 좀 제대로 해!”

강동현이 짜증을 냈다. 10분 정도 걸려서 겨우 다 세웠다. 진짜 묶어서 그런가. 오늘따라 더 더디다.

“하아… 윽….”

강동현은 인상을 쓴 채 황경호를 보면서 머릿속으로 온갖 판타지를 펼쳤지만, 실물이 앞에 있는데도 얼굴을 저렇게 다 가리고 있으니 오히려 더 힘들다.

강동현은 저도 모르게 앞으로 몸을 기울여 황경호의 머리카락 근처에 얼굴을 가져다 댔다. 황경호는 미간을 좀 찌푸린 채로 강동현의 성기만 보고 있었다.

“왁…! 뭐하는 거예요??”

가까이 다가온 강동현을 이제야 발견하고 황경호가 ‘극혐’이라고 써 붙인 것 같은 얼굴을 했다. 강동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팔길이 관계상 이 이상 떨어질 수 없었던 황경호는 인상을 팍 찌푸렸다.

“떨어져요.”

“아… 진짜… 좀만 봐주라….”

냄새를 좀 맡더니 뭔가 느낌이 오는지 상기된 얼굴로 그렇게 말하곤 마스크 위로 입을 맞추었다.

“싫다니까…!”

황경호는 고개를 돌렸다. 강동현은 그대로 황경호의 귀를 깨물고 혀로 핥았다.

“하아… 만지고 싶어… 손 풀어.”

낮고 감미로우면서도 아주 섹시한 목소리다. 귓가에 대고 바로 속삭이니 진짜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소름이 쫙 돋아서 황경호는 후다닥 뒤로 물러났다.

“뭐하는 거야. 빨리 이리 와.”

강동현은 완전히… 그런 눈빛으로 황경호를 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황경호는 주춤거리다 결국 다시 다가갔다.

“진짜 손 풀어. 나 이대로는 안된다고.”

“시, 시끄러워요.”

“그럼 마스크라도 벗어. 나한테 키스해.”

“싫다니까요!”

“시간도 얼마 안 남았잖아. 손을 풀든가 키스를 하든가.”

그러니까 선택지를 니 맘대로 늘어놓지 말란 말이다. 황경호는 아까부터 왜 이렇게 당황스러운지 알 수가 없었다. 강동현은 손목을 한 번 더 잡아 당겨봤으나 아프기만 했다. 그리고 오랫동안 만졌는데도 사정감이 들지 않아 답답하고 초조해했다.

“손 풀어.”

“아… 잠깐만요….”

황경호는 강동현의 성기를 두 손으로 감싸고 열심히 비비고 당겨보았지만 반응이 신통치 않다는 걸 느끼고 왠지 더 당황했다. 진료실 문을 한 번 돌아보았다가 다시 강동현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고자 새끼….”

“뭐라고?!”

황경호는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중얼거리고 말았다. 강동현은 펄쩍 뛰었다. 황경호는 짜증이 그득한 얼굴로 말했다.

“키스로 할게요. 마스크는 저도 못 벗어요. 손이 이래서.”

그러자 곧바로 강동현이 입을 맞추었다. 마스크의 위로 그의 입술이 움직이는 게 느껴진다. 그리고 그는 그대로 눈을 한 번 맞춘 뒤 이로 마스크를 물어 잡아당겼다. 마스크의 한쪽 귀가 떨어지며 벗겨졌다. 그리고 입술에 다시 입을 맞추었다.

“입 벌려.”

황경호가 인상을 쓰면서 노려보자 다시 한번 더 말했다.

“입 벌리라고.”

다시 거칠게 입술을 빼앗았다. 강동현의 숨이 다시금 거칠어지는 게 느껴졌다. 혀를 마음대로 핥아 올리고 빨았다. 깨물고 희롱했다. 그렇게 한참 동안 입술과 입술이 내는 야한 소리가 조용하던 진료실을 가득 메웠다. 강동현은 숨을 들이켜며 입술을 뗐다. 그는 황경호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으며 신음을 흘렸다.

“아… 크윽….”

황경호는 어깨에다 입술을 닦았다.

“하아… 너한테 넣고 싶어….”

강동현이 갑자기 귓가에 입을 맞추며 밀어 넣듯 그렇게 속삭였다. 황경호는 깜짝 놀라서 이 남자가 사정을 할 때 제대로 대비를 못 했다. 의자가 덜컹거리며 강동현이 황경호한테 거의 매달리듯 몸이 구부러졌다.

“윽… 하아… 하아… 으….”

강동현은 얼굴이 상기된 채 괴로운 듯한 얼굴로 몸을 떨었다. 그의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린다. 쭉 뻗은 목이나 탄탄한 가슴이 거친 숨소리와 함께 오르락내리락했다.

“…….”

황경호는 이제야 장갑을 벗기 시작했다. 강동현을 밀치고 쓰레기통에다 장갑은 던져넣고 세면대로 향했다. 옷에 정액이 묻었다. 옷을 정리하고 바닥까지 정리하고 강동현을 보니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이러니까 섹스에 아예 목숨을 거는 거야, 아니면 제대로 안 되니까 이렇게 된 거야?’

황경호는 절정에 이르면 수 분에서 20분이 넘게 정신을 못 차리는 강동현을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타이를 끊어서 주머니에다 넣었다.

“정신 차려요. 거긴 알아서 닦든가 말든가.”

강동현은 비틀거리며 의자에서 내려왔다. 진짜 뒤통수 한 대만 빡 때릴 수 있으면 여한이 없겠다. 느정느정한 그의 등을 밀어 탈의실에 집어넣고 문을 쾅 닫았다.

‘아… 냄새 많이 안 나겠지?’

옷 냄새를 킁킁 맡아보고 진료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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