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 채널 돌렸어?”
강동현이 대본을 읽다가 매니저가 TV 채널을 돌리자마자 말했다.
“어? 응, 왜.”
매니저가 화들짝 놀라 강동현을 돌아보았다.
“다시 뉴스 틀어. 뭐 하는 거야.”
“뭐야. 너 뉴스 안 보잖아, 원래.”
“세상일도 알고 살고 그래야지, 형.”
참 별꼴인 거 같다, 너… 그런 눈빛으로 강동현을 힐끗 본 매니저는 아서라 그 성질머리 건드릴까 봐 바로 뉴스로 채널을 되돌렸다. 강동현이 뉴스 같은 걸 보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매니저였다. 기껏해야 TV는 자기 연기 모니터링할 때나 작품을 찾아볼 때나 보는 놈인데 말이다. 매니저의 시선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인지 무시를 하는 것인지 강동현은 그저 심각한 표정으로 대본을 읽고 있었다. 이제 영화에 집중하고 있는지라 거의 매일매일 대본 삼매경인 강동현이었다. 이제 새해도 되었고 말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강동현은 거의 매일 뉴스 채널을 틀어놓는다든가 전화도 안 걸면서 스마트폰을 노려보고 있고는 하였다.
“아버지… 아버지가… 내가 그 새끼들 죽여버릴 거야…! 아, 아니야. 내가 그 새끼들… 죽여버릴 거야… 아니지. 음….”
그도 그럴게…. 강동현은 혹시나 바라지 않는 어떤 속보라도 뜰까 봐 뉴스를 틀어놓고 있는 것이었다. 혹여나 한강에 관련된 뉴스나, 마포대교 어쩌고 하는 뉴스나… 어쨌든 한강의 하고많은 다리들 중에서 하나라도 젊은 남자가 투신했다는 소식이 들릴까 봐 편집증적으로 뉴스를 틀어놓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연락을 하진 않았다. 못한 것은 아니고… 뭐, 바빠서 안 한 거다. 바빠서.
“…….”
“은혁아, 뭐하냐. 졸려? 피곤해? 커피 한 잔 타줄까?”
“아니….”
강동현은 소파에 머리를 뒤로 기대고 대본을 얼굴 위에 덮어놓고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이제 슬슬 가자. 미용실 문 열었겠다.”
회사에 와서 아침 먹고 미용실에 들른 후 촬영장소로 갈 예정이었다. 액션신이 많아서 근래엔 그거 연습한다고 액션스쿨에 붙어살았다. 이러고도 못하면 스턴트가 해야 할 부분이 많아져서 안 된다. 알다시피 강동현은 키가 엄청 큰 편인 데다가 어깨가 그만큼 넓어서 현직의 유능한 스턴트맨들 중에선 비슷한 체격의 사람을 찾을 수가 없어서 장면의 몰입감이 아주 떨어지게 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 정도의 액션 연기는 해본 적이 없어서 좀 걱정이었다. 연습은 엄청나게 하긴 했는데… 연말 정도의 스케줄은 아니라서 천만다행이었다. 그리고 몸을 이렇게 움직이는 데 신경을 써서 솔직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운동을 하고 있지 않을 때, 지금 같은 때는 이유 없이 한숨이 푹푹 나왔다. 머리가 아팠다.
“난 연초 되면 쉴 수 있는 시간이 좀 나올 줄 알았는데… 니가 이렇게 액션에도 욕심이 있었는지 몰랐다, 야.”
“하하. 그러게. 뭐 내가 연기하는 거 말곤 할 수 있는 게 있는 것도 아니니까.”
“여자 친구가 화 안 내냐.”
“저번 주에 한 이틀 같이 짧게 여행 가서 괜찮아.”
“그럼 좀 쉬었겠네? 다행이다.”
기본적인 준비를 하고 촬영지로 가서 분장팀에게 분장을 받고 좀 기다리다가 촬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강동현이 이번에 맡은 김태평이란 역할은 서울 소재 4년제 공과대학에 다니고 있는 대학생이었다. 여자는 손도 한 번 못 잡아본 전형적인 남중-남고-공대-군대-복학의 테크를 탄 평범하고 조금은 찌질한 남자 대학생이었다. 이번에 복학하며 군대에 가기 전에 휴학을 했어서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한 학번 위의 여학생에게 한눈에 반하고 말았다. 여학생은 미모와 두뇌, 집안까지 완벽한 엄친딸 중의 엄친딸이었다.
“음… 아, 안녕, 채연 누나.”
“하하, 야, 완전 잘났다, 너. 그래. 난 이번에 알고리즘 숙제 완전히 망했어.”
“내가 도와줄 수 있는데….”
“넌 내기라도 했지. 난 아예 내지도 못했다고.”
“3학년 로드가 제일 힘들다더니만. 나 실험도 완전 망했단 말이야.”
“에휴, 모르겠다. 술이나 먹자.”
“나도 술 잘 마시는데….”
평소의 강동현이라면 모자를 쓰고 선글라스를 하고 마스크까지 끼고 돌아다녀도 사람들의 시선을 잡아끌 만큼 훤칠한 남자라 저런 식으로 여자들에게 왕창 무시를 당하는 장면이 꽤나 이상할 수도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일부러 몸을 움츠리고 도수가 높은 안경을 쓰고 무겁게 앞머리를 내린 데다가 목소리마저도 자신감 없는 태도를 너무나 잘 나타내어 저렇게 사람들이 무시하고 지나가는 것이 너무나 이해가 될 정도였다.
그렇게 다 같이 들어간 강의실에서 김태평은 우채연만을 헤벌레 바라보기만 하였다. 긴 생머리에 투명한 피부, 도톰하고 분홍빛이 도는 예쁜 입술, 영민함이 돋보이는 눈동자, 강단 있는 성격도 완전 취향이었다. 김태평은 그렇게 우채연의 눈에 들기 위해 무진장 삽질을 했다. 하지만 과 퀸카인 그녀는 김태평의 존재를 그다지 인지하지 못한다.
개강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다 같이 엠티를 가는 장면도 찍었다. 복학생인 데다가 그다지 친화성도 없는 주제에 눈치도 없이 엠티를 따라간 김태평은 영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혼자서 술만 깨작깨작 마신다. 어색함에 몸 둘 바를 모르지만 우채연과 같은 장소에 하룻밤을 지낼 수 있다는 것이 두근두근해서 좋다. 그러다 밖에서 담배를 피우던 한 학번 위의 남자 선배들이 우채연을 두고 더티토크를 하는 걸 듣고 빡쳐서 싸움을 일으킨다. 이걸 계기로 우채연의 눈에 띄게 된다.
이 장면들은 맨 처음 찍었던 병원 씬보다 앞쪽의 스토리다. 그리고 이 뒤로는 아예 맨 뒤의 스토리로 앞서 걱정했던 액션 장면이 나오는 장면이었다.
“컷. 괜찮은데 한 번만 더 찍읍시다.”
강동현은 스턴트 및 다른 배우와 합을 한 번 더 맞춰보고 씬을 찍었다. 오케이를 받고 다른 각도에서 또 한 번 찍었다. 얼굴을 클로즈해서 찍은 씬들을 또 찍는다.
드라마와 달리 순서대로 스토리가 흘러가는 부분이 적어서 감정을 휙휙 바꾸는 게 좀 어색한 느낌이었다. 메인 주인공으로 영화를 찍는 게 처음이어서 그런 것 같았다.
아침에 시작해서 한밤중에 끝났다. 집에 도착해서 씻고 나서는 다른 생각할 거 없이 바로 잠들었다. 문제는 다음날이었다. 금요일인 데다 스케줄이 없었기 때문이다. 강동현은 점심때가 지나 일어나 아침 겸 점심을 먹고 나니 뭉게구름처럼 심상이 떠올랐다.
그날로부터 1주일이 지났다. 이쪽도 연락을 안 했고 저쪽도 연락을 안 한다. 새해 첫날부터 죽으려 했던 놈이 그런 짓을 당하고도 괜찮을까.
‘나도 아무리 그랬다지만…’
후회가 들지 않는다면 거짓말이다. 죽었다고 연락 올 만한 사이도 아니고 서로 아는 사람도 없어 괜찮은지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다만 그날로부터 이틀 뒤쯤에 병원에 예약하는 척 전화를 한 적은 있었다. 넌지시 물어보니 담당은 그 간호사로 된다고 해서 죽었다거나 행방불명 된 것은 아니라는 것만 확인했을 뿐이었다.
‘그래… 연말에도 바빠서 병원을 못 갔으니까… 가보자. 어차피 다 나은 것도 아니니까.’
강동현은 대충 세수만 하고 평소 가던 시간에 맞추어 차를 몰고 압구정으로 향했다. 그리고 곧바로 병원 지하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병원으로 올라갔다.
“안녕하세요, 도은혁 환자님. 오랜만에 오셨네요. 이쪽으로 안내해드릴게요.”
강동현은 꽤 돈을 많이 내고 여기를 다니고 있었다. 예약을 하지도 않았는데 자리로 안내받고 기다려야 할 시간을 가르쳐주었다. 강동현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병원 안을 쭉 둘러보았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데자뷰가 들 정도로 똑같은 순진무구한 웃는 얼굴로 환자들을 상대하고 있는 황경호를 발견했을 땐 안도감보다도 또 왠지 모를 화가 솟구쳤다.
“야, 너…!”
황경호는 강동현을 발견하자 미간을 아주 미세하게 찌푸렸다가 자기는 그런 적 없다는 듯 얌체 같은 얼굴로 돌아와 목례를 간단히 꾸벅하고 진료실 쪽으로 발걸음을 옮겨갔다. 강동현은 성큼성큼 걸어 그의 뒤를 따라잡았다. 빠른 걸음으로 도망치려고 하는 황경호의 어깨를 잡기 직전에 황경호가 상담실 문 하나를 열고 얼른 들어갔다. 강동현은 그가 문을 닫기 전에 얼른 문을 손으로 잡았다.
“오늘은 저랑 상담할 예정… 없으세요… 도은혁 환자님…!”
“그 손 놔…!”
다 큰 남자 둘이 문을 잡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꼴이었다.
“대기실로 가서 기다…리시라니까요!”
“일단 얘기 좀 하자고!”
결국, 강동현이 이겨서 문을 열고 상담실 안으로 들어왔다. 황경호가 금방이라도 다시 도망갈 것처럼 문을 힐끔거리며 강동현을 쳐다보자 강동현이 씩씩거리면서 그를 잡으려고 다가가 손을 뻗었다.
“너 도대체 무슨….”
황경호가 히익, 하고 화들짝 놀라더니 뒤로 급하게 물러나다 등을 벽에 쿵 하고 부딪쳤다. 그리고 잠시 숨을 멈추었다가 아… 하고 마음에 안 든다는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자기도 자기가 이렇게 오바 할 줄은 몰랐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황경호는 짜증이 난다는 얼굴로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저, 무슨 용건인진 모르겠고 별로 관심도 없지만, 그냥 다 없던 걸로 하죠. 계약이니 뭐니 웃기는 것도 다 그만둬요.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신경 쓰지… 뭐 원래부터 별로 신경 안 쓰셨지만, 어쨌든 네. 도은혁 환자님도 상태호전 많이 되셨으니까 이강유 선생님이랑 말씀 잘 나눠보시고 차후 진료 어떻게 하실지 생각해보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네. 빨리 쾌차하시길 빕니다.”
“…….”
“그럼 전 이만.”
황경호는 옆으로 슬슬 걸어서 강동현을 빙 돌아 얼른 문으로 가 열고 나갔다.
*
그 뒤로 강동현은 일에 열중했다. 여자 친구도 신경 써서 자주 만나고 데이트했다. 부모님께도 가끔 연락드리고 친구들에게도 신경 썼다. 안 하던 짓을 하니 사람 여럿이 어색한 티를 냈다.
병원은 가지 말까 하다가 다니고 있었다. 처음 병원에 오기 이전엔 아예 서지도 않았었지만, 이제는 될 때도 있고 안될 때도 있다. 병원을 다니지 않으면 확연히 악화되고 다니면 좀 나았다. 강동현을 담당한 병원 원장은 강동현의 병세가 잘 낫지 않아 굉장히 스트레스 받아 했다. 다른 병원을 갈까 했지만 관두었다. 예전처럼 다른 방법에도 집착하진 않았다. 병원이 작은 곳은 아니라서 그런지 그 간호사는 그 이후로 볼 수 없었다. 뭐, 이대로가 서로에게 가장 좋겠지.
사실 생각해보자면 그 간호사가 강동현을 좋게 생각할 리는 만무했다. 그저 강동현은 그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든 전혀 신경 쓰지 않았을 뿐이다. 그 간호사로 뺄 수 있으니 뭐가 어떻든 상관없었지만, 예전 한 번을 빼고는 그런 거까지 하고 싶지는… 강동현도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때도 당연히 좋은 반응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는 그 간호사가 ‘그런’ 반응을 보일지 몰랐을 뿐이다.
처음엔 좀… 이유도 모르게 충격을 먹었고 나중엔 뭔가 짜증도 나고 억울한 것도 같고 답답했지만 뭐… 더 어쩔 수야 없었다. 차라리 예전처럼 반항하고 욕하고 소리라도 지른다면 별생각이 없었을 텐데 말이다. 찜찜했다. 그리고 그 찜찜함이 여전히 가시지 않는다는 사실이 제일 찜찜했다.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라고 강동현을 도발했던 황경호의 말은 사실 강동현이 정말로 기브앤테이크의 개념으로 계산하리라고 생각하고 뱉은 것은 아닐 것이다. 그냥 그렇게 되면 결국 둘은 서로 얼굴 보기 매우 껄끄러운 사이가 되는 거니까 말이다.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다.
뭐, 그거야 그거고. 강동현은 이러나저러나 전혀 아무렇지 않게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었다. 영화 촬영은 한창이었고 다음 작품도 열심히 고르고 있었고 연기 공부도 여느 때보다 많이 하고 있었다. 애초에 일보다 중요한 게 딱히 없는 남자였다. 이젠 시간도 석 달이나 지났고 말이다. 병원에서도 마주치지 않는다.
‘…그런데 왜 계속 생각나는 거냐고.’
강동현은 침대에 앉아 무릎에 팔꿈치를 대고 두 손바닥으로 눈을 꾹 누르고 있었다. 침대에는 여자 친구가 자고 있었다.
발기부전이나 지루나 예전보다 나아졌을 뿐 완치된 것이 아니다. 약을 먹고 서도 문제는 지루와 불감증이었다. 혼자서 하는 것도 아니고, 그것도 사랑하는 여자 친구랑 하는 것이라면 서로가 타이밍이 맞아야 한다. 강동현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여자 친구도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제대로 느낌도 나지 않고 초조하고 힘만 든다. 미안하고 자괴감도 들고 말이다. 게다가 어쩌다 한 번씩 되는 날도 마지막엔 ‘그때’가 떠오르고 사정한다.
‘미친 거 아니야, 진짜….’
여자 친구에게도 미안하고 본인도 미칠 것 같이 괴로운데 도저히 왜 이러는 건지도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도 감이 안 잡혔다. 게다가 그렇게 사정해도 절대로 ‘그때’처럼 기분 좋지가 않았다. 자괴감과 찝찝한 배설감이 합쳐져 기분이 아주 거지 같았다. 이러다 사람이 우울증에 걸리는 거구나 싶을 정도였다.
강동현은 이대로 앉아있다가 여자 친구가 깨기라도 할까 봐 일단 욕실로 들어갔다. 샤워기 물을 맞으며 벽에 이마를 박고 있었다. 몸의 상태가 안 좋아진 지도 벌써 1년이 다 되어 간다. 이미 계절은 겨울을 지나 봄을 향해 가고 있었다. 병원을 다닌 지 8개월은 넘은 것 같다. 아무리 바빠서 드문드문 다녔다지만 당최 제대로 나을 기색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이대로 평생 제대로 되지 않는다면… 진짜 생각만 해도….
하지만….
그때는 정말로 기분 좋았다. 그래. 누군가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그래도 그가 기분 좋았다고 말하는 걸 듣는다면 욕이란 욕은 다 먹겠지.
‘그래서 어쩌라고… 젠장.’
그 전에 섹스를 했을 때도 그런 느낌이었던 걸까.
아니, 전혀 아니었다.
정말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강동현같이 에고가 강한 인간이 그 순간엔 정말 앞뒤고 뭐고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오로지 희열만이 가득했다. 몇 개월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생각날 정도로. 그런 섹스는 정말 분하게도, 그때 말곤 강동현의 인생에 단 한 번도 없었다.
몸 상태가(정확히는 거시기 상태가) 안 좋아지고 나서 아주 드물게 어떻게든(그 간호사가 어떻게든) 뺄 수 있을 때면 몇 분이고 제대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기분이 좋았었다. 손으로 했을 때도 말이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섹스를 했단 말이다. 경우야 어떻게 되었든 잊을 수 없는 밤이었다.
좋아하는 사람과의 섹스밖에 모르는 강동현이었다. 정확히는 지금의 여자 친구와. 사랑하지 않는 게 아니었다. 여전히 사랑했다. 아주 많이 사랑했다. 가족들에게도 가르쳐주지 않는 집 비밀번호를 가르쳐주었고 무명시절 땐 같이 살다시피 했던 적도 있었다. 아주 많이 소중했다. 상처 주고 싶지도 않았고 함께 있고 싶었다.
그래서 그 간호사의 손으로 빼더라도 딱히 배신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남들은 웃겠지만. 그래, 웃어라. 안 되는 걸 어쩌라고. 여자 친구에게 알릴 수도 없었다. 그런데 결국 그런 짓까지 하고 말았으니 정말로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어져 버렸다.
그 간호사를 생각하면 짜증이 나는 게 대부분이었다. 아니면 화가 나거나. 정말 싫어하는 타입이었다. 무기력하고 패기 따윈 어디에도 없으면서 주변의 눈치만 살피고 자기 자신은 어디에도 없다. 그런 주제에 자존심만 강해서 다른 사람의 말은 쳐 들어먹지도 않고. 게다가 뻑하면 죽겠다고 지랄은 지랄인지. 왜 그런 놈에게 몸이 반응하는지 알고 싶은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강동현이었다.
“아오… 젠장….”
제대로 해소가 되지 않은 욕정만이 몸을 들끓게 만들었다. 미친 듯이 섹스를 하고 싶었다. 짐승같이 격렬하게.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기분이 좋아지고 싶었다. 잔뜩 사정해서 상대를 흠뻑 젖게 만들고 싶었다.
어떤 경우라도 싫어하겠지….
그래도 상관없어
억지로 밀어붙여서 옷을 벗기고 짓눌러서
싫어하는 짓은 전부 다 할 것이다.
누구를 생각하는지 알 수 없었다. 강동현의 남자다운 손이 욕실의 벽타일을 꽉 잡고 있었다. 다른 손은 이미 고간을 쥐고 있다. 그대로 멋지게 근육이 잡힌 허리가 섹시하게 움직인다. 덜커덩. 뭐가 어딘가에 부딪혀서 소리를 냈다. 아마 누군가 본다면 그의 상대가 된 자신을 떠올리며 젖어들 정도다. 한참을 그렇게 에로틱한 상상에 젖어 자위를 했다. 온몸에 열이 불덩이처럼 달아오르고 초조함과 사정감이 극으로 차올랐다. 근 1년간 혼자서 자위를 할 때 이 정도까지 느낄 수 있었던 적은 없었다.
“아윽… 젠장….”
하지만 결국 지치기만 할 뿐 결코 사정까지 도달하지를 못했다. 팔이 아파서 도저히 더 이상 못할 정도가 되자 욕실 벽에 얼굴을 처박고 남들이 들으면 아연실색할 만한 욕을 속으로 엄청나게 했다. 진짜 여자 친구만 없었으면 목이 쉴 때까지 소리를 질렀을 것 같다.
정말정말 하고 싶었다. 문자 그대로 쌍욕이 나올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안 되면 이젠 시도하기조차 겁이 났다. 사정하지 않고서 몸의 열기를 가라앉혀야 하는 이 기분은, 정말로 이 처지에 있어 본 사람만 알겠지… 빌어먹을….
그렇게 한참을 찬물로 몸을 식힌 강동현은 아까의 그 거지 같은 기분이 곱하기 천 배는 된 것 같은 기분으로 결국 침대로 돌아와 여자 친구의 옆에 누웠다. 그리고 그대로 뜬눈으로 밤을 새우고 다음 날 시간에 맞추어 병원으로 갔다.
“유태범 환자님, 진료실로 들어오세요.”
앞서 예약이 되어 있는 예의 심약해 보이는 학생 하나가 불려서 진료실로 들어갔다. 강동현은 선글라스를 낀 채 신문을 보면서 눈동자만 굴려 그가 걸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저 새끼는 조루에 과민감성이라서 문제라고… 젠장. 차라리 나도 그게 낫겠다. 그대로 병원을 쭉 둘러보았지만, 여느 때와 같이 그 간호사는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정해진 시간에 예약환자를 받는 게 대부분이니 맘만 먹으면 충분히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 뭐. 이쪽도 딱히 보면 심히 껄끄럽다.
“도은혁 환자님, 안으로 들어오세요.”
강동현은 신문을 접어 테이블 위에 두고 일어났다. 진료실로 들어가니 병원 원장이 웃는 얼굴로 맞이했다.
“오셨어요. 어떠신가요, 요즘.”
강동현은 인사도 전에 다짜고짜 따져 물었다.
“선생님, 저 제대로 낫고 있는 거 맞습니까? 벌써 다닌 지 9개월이 다 되어가는데요.”
의사는 강동현의 말에 아주 조~금 프라이드에 타격을 입은 것 같으나 그대로 웃는 얼굴로 답했다.
“병증이 더 심각해지셨나요?”
“그래도 몇 달 전까지는 한 달에 한두 번씩은 뺄 수 있을 정도는 됐는데 올해 들어서는 진짜 단 한 번도 안 됐다구요.”
한 번도. 강동현이 강조하여 말했다.
“한 번도요?”
“네.”
강동현은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로 답했다. 의사는 부랴부랴 차트를 다시 뒤져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아니, 그래도 발기부전 쪽은 확실히 나아지셨는데 그래도 사정까지가 힘들다는 겁니까?”
“힘든 정도가 아니라 아예 안 된다구요….”
강동현은 손을 지끈지끈한 눈썹 앞머리를 누르며 말했다.
“어젯밤에도… 일단 약도 먹고 어느 정도까진 했는데… 무슨 짓을 해도 나오지가 않아요… 젠장….”
“느낌은 어떠신가요? 사정감이 드는데도 사정이 안 된다는 건가요? 아님 아예 사정감이 올 때까지 자극을 느끼지 못하시나요?”
“둘 다 있는데… 대부분 사정감이 들지도 않습니다. 진짜 선생님 저 이대로 쭉 안 되는 겁니까?”
강동현의 심각하다 못해 좌절의 기색이 보이는 얼굴을 보곤 의사가 안경을 벗으며 심각하게 말했다.
“전부터 말씀드렸듯이 우리나라는 조루 환자가 압도적으로 많아 조루 환자에 대한 치료법 및 의약품들은 많이 개발되어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불감증이나 지루 환자는 본질적으로 좀 다릅니다. 발기부전 환자나 발기 강직도가 되지 않는 환자들도 많습니다만 기본적으로 남자가 불감증인 경우는 정말 드물거든요.”
나라 안에서도 손에 꼽게 잘생긴 남자가 말이다. 참 보는 사람이 다 아까울 정도다. 어쨌든 강동현과 이전 환자만큼 이강유를 속 썩이는 환자가 없었다.
“이전부터 계속 말씀드렸듯이 도은혁 환자님은 스트레스와 과로 등으로 인한 악영향과 심인성 요인이 동시에 발현되고 있다고 봅니다. 휴식을 충분히 취하시고 평소 생활적인 부분과 업무적인 부분 둘 다 조심하셔야 합니다. 아무리 의학적 치료를 계속해도 근본적인 원인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어요… 의사로선 강력하게 모든 스케줄을 접고 휴식을 취하시길 권고하는 바입니다.”
“일은 못 그만둬요.”
“그럼 업무 외적인 부분에서라도….”
“업무 외에서도 스트레스 같은 건 안 받는다구요.”
“…본인이 자각하지 못하시면 더 큰 일이죠. 어쨌든 최대한 안정을 취하시고… 장기전으로 보셔야 돼요. 특히 도은혁 환자님처럼 스트레스 요인이 해결이 안 되시는 경우는 더요.”
정말 다른 병원으로 옮기든지 해야지, 젠장. 강동현은 짜증을 숨기지 못하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몇 가지 검사를 하고 약을 처방받은 후 진료실에서 나왔다. 모자와 마스크가 답답했다. 그대로 다시 한번 병원을 둘러보았다가 왠지 짜증이 더 난 상태로 지하로 내려가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그대로 헬스장으로 향했다. 미친 듯이 운동을 하고 거의 탈진한 상태로 집에 가서 잠들었다.
*
그렇게 하루하루 쌓아가던 굴욕의 나날 중에 급작스럽게 일이 터졌다.
[은혁아, 너 무슨 기부 같은 거 했니?]
“응…? 무슨 말이야?”
오랜만에 오프라 하루종일 잠만 자고 있던 강동현은 깔깔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아니, 오늘 기사가 떴는데 니가 무슨… 잠깐만. 그래. 어떤 병원에서 널 기부 천사로 지정했단다.]
“무슨 개소리야….”
강동현이 베개에 얼굴을 묻으며 말했다.
[일단 기사가 떴는데… 사실관계 확인하고 인터뷰하고 싶다는 전화도 와서.]
“나 그런 거 한 적 없는데… 잠깐만. 그럼 이거 아니라고 다시 기사 뜨면 그것도 이상해지는 거잖아.”
강동현이 벌떡 일어났다. 그러게. 아무리 생각해봐도 니가 그럴 애가 아니라서 나도 놀랐다는 기색으로 매니저가 다시 물었다.
[진짜 뭐 짐작 가는 거 없냐. 이대로 정정보도 내달라고 해도 이상하고 저쪽에서 사실이 아니라는 걸 밝혀내도 이상하고… 어쨌든 우리가 수습하는 게 낫긴 하겠지만….]
“평지풍파도 아니고 갑자기 이게 뭐야.”
인터넷을 확인해보니 개념 연예인이라고 기사가 계속 재생산되고 댓글도 끊임없이 달리고 있었다. 하여튼 이놈의 기자들은 쓸 기사도 더럽게 없나 보다.
[어쨌든 진짜 너 뭐 없냐? 진짜 그냥 길 가다가 자선냄비에라도 돈 넣은 적 없어?]
“내가 그런 걸 왜 해. 그런 돈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 건데.”
[아, 잠깐만. 사장님이 바꾸라고….]
[동현아.]
“아, 네. 사장님.”
[이거 진짜 너 아니니?]
“동명이인 아니에요? 저 태어나서 그런 짓 해본 적 한 번도 없는데요.”
[너희 부모님이나… 니 이름으로 했을 수도 있잖아.]
“아… 잠깐만요. 엄마한테 전화해볼게요.”
강동현은 전화를 끊고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응~ 우리 아들~.]
“어, 엄마. 내 이름으로 기부 같은 거 했어?”
[응? 아니. 뉴스에 너 기부 천사로 뭐 받았다고 봤는데. 너가 한 거 아니었어? 우리 아들 사람 됐다고 자랑 엄청 했는데.]
“하… 됐다. 끊는다.”
[아들, 밥은 먹….]
전화를 끊고 바로 다시 매니저의 폰으로 전화를 했다.
[그래. 뭐라시니?]
“안 하신 거 같은데요.”
[그래. 그럼 이거 빨리 기사 내리라고 전화 돌려야겠다. 아, 진짜 이거 뭐냐… 정정기사까지 내야 되려나? 그거 진짜 모양 이상하지 않겠니.]
“당연히 이상하죠. 아… 진짜 갑자기 뭐죠.”
[너가 지금까지 사고 한 번 없이 여기까지 왔으니… 별 이상한 게…. 알았다. 이건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네. 부탁드립니다….”
다시 매니저가 전화를 받았다. 강동현은 기사가 얼마나 떴는지 노트북으로 다시 확인을 해보았다. 이런 작은 연예기사가 웬만한 정치기사들보다 훨씬 더 조회수가 좋으니 이미 대부분의 매체 메인에 다 올라와 있었다.
“아, 씨… 진짜 이거 뭐야, 갑자기….”
[그러게. 일단 나도 전화 돌려야 하니까 끊는다.]
“어, 형… 수고해….”
그렇게 강동현은 어디 어디에 기사가 올라왔는지 확인을 하다가 갑자기 한 기사 제목에 눈길을 빼앗겼다. 좀 자세한 제목을 가진 기사였다.
<배우 강동현, Y대 병원 소아암 병동의 기부 천사로 등극>
Y대 병원? 소아암 병동? 낯설지 않은 이름이었다. 단지 거기서 영화 촬영을 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기사를 클릭해보았다.
<배우 강동현 씨가 작년 9월부터 지금까지 한 주도 빠짐없이 연고도 없는 한 어린 환자에게 기부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Y대 병원 매년 기부자들에게 표창을 하고 있으며 작년 기부 천사로 강동현 씨를 지정하기에 이르렀다.>
“어, 잠깐만 이거….”
강동현은 여러 기사를 다 클릭해서 읽어보았다. 아무리 읽어봐도… 강동현은 부리나케 다시 회사로 전화했다.
[어, 은혁아.]
“전화 얼마나 돌렸어? 잠깐만 멈춰봐.”
[어? 왜? 왜?]
“누가 했는지 알 거 같아.”
[아, 그럼 니가 한 거 맞는 거야? 일단 동명이인 같다고 얘기는 했는데….]
“그렇게 이미 전화한 데는 다시 전화하지 말고. 그냥 더 전화하지 말고 기다려. 알아보고 올게.”
[그래? 알겠다. 사장님~!]
매니저는 전화를 끊었다. 강동현은 일단 머리를 쓸어넘기며 잠깐 생각에 잠겼다. 한숨을 쉬며 일어나서는 욕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샤워기의 물을 틀고 다른 번호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점점 수증기가 자욱하게 올라왔다. 상대방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시 걸었다. 또 받지 않았다. 또 걸었다. 그래도 받지 않았다.
“왜 전화를 안 받아?”
강동현이 짜증을 내며 다시 전화를 걸었다. 역시나 받지 않았다. 휴대폰을 선반 위에다 두고 옷을 벗어 던지고 샤워부스로 들어갔다. 씻고 나서 다시 전화를 걸었다.
토요일 오후에도 그 비뇨기과 병원을 하나 헷갈려서 병원에도 전화를 해봤지만 받지 않았다. 더 이상 전화할 곳이 없어졌다. 고심하다가 Y대 병원 소아암 병동 전화번호를 검색해서 전화를 걸었다.
[네. Y대 병원 소아암 병동입니다.]
“예, 안녕하세요. 저 강동현이라고 합니다.”
[네. 무슨 일로 저… 어? 혹시 배우 강동현 씨세요?]
확실히 인지도가 많이 높아졌는지 목소리만 듣고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하긴 오늘 기사가 뜨기도 했고 말이다.
“네, 고생하십니다. 저… 제가 무슨, 뭘 받았다고 해서요. 좀….”
[아… 혹시 밝혀지셔서 곤란해지셨나요? 워낙에 미담이라… 저희 병원에서도 기부 천사 지정한다고 자료 정리하다가 얼마 전에 알게 되었는데 위에서 병원 이미지 개선에도 좋고 괜찮을 거라고 해서….]
간호사가 변명하듯 말을 늘어놓았다. 무슨 말이야? 강동현은 티 나지 않게 한숨을 쉬었다.
[하긴 생각해보니까 한꺼번에 안 주시고 일주일로 나눠서 기부하신 거 보면 안 밝혀지고 싶었던 거 같은데… 정 불편하시면 제가 위에 연락드려서….]
“아닙니다. 이렇게 됐으면… 저, 그러면 혹시 걔… 초록이는 괜찮나요?”
[아! 네! 그럼요. 애기가 워낙에 씩씩해서 한두 달 있으면 퇴원해요.]
“아… 다행이네요.”
[지금도 경호 씨가 와서 애기랑 얼마나 잘 놀아주는지….]
“잠깐만. 그 간호사 지금 병원에 있어요?”
강동현이 전화를 고쳐잡았다.
[경호 씨요? 네. 주말엔 항상 오는 걸요.]
“알겠습니다. 잘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중에 다시 전화드리겠습니다.”
강동현은 얼른 집에서 나와 차를 몰고 Y대 병원으로 향했다. 소아암병동으로 가서 뇌종양 걸렸던 그 어린애의 병실을 묻자 의심스레 보던 병원 관계자도 선글라스를 벗은 강동현의 얼굴을 보더니 안내해주었다. 이런 거 보면 진짜 우리나라 병원도 제대로 굴러가는 곳이 없다. 안내받은 대로 가자 병실에서 아이와 놀고 있는 그 간호사가 보인다. 안내한 간호사가 돌아가자마자 다짜고짜 화부터 냈다.
“넌 폰을 폼으로 들고 다녀?”
누군가 병실에 들어오자 깜짝 놀라 어리둥절한 눈으로 올려다보는 황경호와 아기였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거칠게 벗자 아기가 먼저 손가락질을 하며 말했다.
“서준!”
“아니, 넌 사람이 전화를 하면 전화를 처받아야지 뭔 일일 줄 알고 덮어놓고 안 받아?”
“전화하셨어요?”
황경호가 휴대폰을 꺼내보았다.
“무슨 거짓말도 먹히는 걸 해! 내가 얼마나 했는데!”
강동현은 어쩐지 말을 하면 할수록 화가 더 나서 언성이 높아지자 황경호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가서 얘기해요. 애 앞에서….”
병실 밖으로 쫓겨나듯 나갔다. 강동현은 다시 선글라스를 꼈다. 황경호는 미미하게 인상을 쓰면서 따라 나갔다.
“왜 전화를 안 받냐고.”
“전화 안 왔다니까요. 봐요.”
최근 통화 목록 중에 강동현은커녕 이름이 저장되지 않은 번호도 뜨지 않았다.
“너 번호 바꿨어?”
“아뇨….”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몇 개월 만에 본 남자가 다짜고짜 사람을 추궁하고 드니 누가 기분이 좋겠는가. 짜증 난다는 기색을 대충 숨긴 채 강동현 쪽은 쳐다보지도 않다가 문득 뭔가 떠올랐는지 본인의 휴대폰을 다시 쳐다보았다. 수신차단목록을 봤더니 번호 하나가 저장되어 있는데 떡하니 강동현의 번호다. 강동현은 잠깐 욱할 뻔하다가, 결국 한숨을 쉬었다. 잠시의 침묵이 흘렀다.
“…오늘 내 기사 봤어?”
강동현은 짜증을 억누르고 물었다.
“네?”
“내가 무슨 기부를 했다고 기사가 떴는데.”
황경호는 바로 그런 상도 받는 인간이었냐는 눈빛으로 대놓고 쳐다보았다. 짜증 났지만 참았다.
“난 기부 같은 거 한 번도 한 적이 없는데. 여기서 정정기사 내도 이미지가 망하는 거라… 근데 자세히 보니까 너랑 관련이 있는 거 같아서.”
“뭔 소리에요. 그게 저랑 무슨 상….”
그러다가 뭔가 짚이는 게 있는지 말을 잃었다.
“뭐야, 그래서.”
황경호는 잠깐 탄식을 내뱉었다가 한숨을 섞어 말했다.
“전에 그쪽한테 받았던 돈이요… 일주일에 백만 원씩 받았던 거….”
“그래. 그거 니가 저 애한테 들이붓고 있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길래 갑자기 나한테 불똥이 튀어?”
“아무래도 제가 번 돈도 아니니까… 그냥 그쪽 이름으로 보냈었어요.”
“뭐라고?”
강동현이 황당해서 선글라스를 벗고 그를 다시 쳐다보았다. 황경호는 일이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지 난처한 얼굴이 되었다.
“생각해보니까 도은혁 환자님 연예인인데… 예명 쓴다지만, 경솔했네요….”
별의별 걸 다 생각해봤지만, 이 간호사가 자기 이름으로 기부를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아니, 도대체 이 결벽증은 어디서 오는 거냐고. 그렇게 서로 못 죽여 안달이었으면서 이상한 곳에서 강박적일 정도로 공사를 나눈다. 정말 이해를 못 하겠다.
강동현은 황당한 어조를 숨기지 못하며 물었다.
“그럼 그 이후로는? 내가 그 돈 준 것도 몇 달 안 될 텐데.”
“그냥 습관이 돼서… 이제 와서 제 이름으로 하자니 그렇고….”
괜히 긁어 부스럼이다. 황경호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나쁜 건 아니니까 그냥 본인이 했다고 해요. 앞으론 제 이름으로 하겠습니다. 괜히 번거롭게 해드렸네요.”
“…….”
“그럼 안녕히 가세요.”
용건이 해결되자 황경호는 그렇게 꾸벅 인사를 하고 병실 문 손잡이를 잡았다. 강동현은 저도 모르게 그의 팔을 잡았다. 전처럼 오버액션을 하진 않았지만, 티 나게 싫어했다. 손끝이 어쩐지… 강동현이 말없이 멀뚱히 서있자 황경호가 빨리 꺼지라는 기색을 팍팍 내며 물었다.
“뭐 다른 거 또 있으세요?”
그렇게 말하자 손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
“이제 꽃도 피고 진짜 봄 느낌 나는 것 같아요.”
“아직 좀 춥긴 하지만.”
정기연 간호사와 오희주 간호사가 출근길에 만나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며 말을 나누었다. 4층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하니 바로 이강유 비뇨기과에 도착하게 되었다. 한 층이 전부 한 병원이다. 하지만 다른 병원들처럼 바로 병원의 내부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지는 않았다. 자동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는 프론트와 거기에 앉아있는 안내원 둘만이 보인다. 바로 대기실이 보이지 않도록 디자인되어 있는 것이다. 아마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예민하고 열등감에 절어있는 남자들이 오는 만큼 그들의 마음을 헤아린 이런 디테일이 이강유 비뇨기과를 더욱 번창하게 하는 요인 중 하나이리라.
출근 시간은 대체로 8시에서 8시 반 사이로 그날 당직이 아닌 이상 그것보다 일찍 오지는 않았다. 지금은 8시 5분 경이다. 9시에 병원 문을 연다.
“오셨어요, 오 간호사님, 정 간.”
“경호야. 오늘도 일찍 왔네.”
황경호 간호사는 커피를 마시려고 머신에서 커피를 내리고 있었다. 그때 자동문이 열리며 원장이 전화를 받으면서 들어왔다.
“네, 네.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럼요… 물론이죠. 지금 바로 오세요. 바로 접수하시고 수술하면 됩니다. 아, 물론 수술이라고 할 만한 건 별로 없어요. 근육이완제 맞고… 네, 일단 데리고 오셔서 봐야죠. 네. 언제쯤 도착하신다구요? 네,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자 먼저 도착한 간호사들이 인사를 했다.
“오셨어요, 선생님.”
“음, 잘됐다. 세 사람 지금 근육이완제 준비하고 프라이빗 입원실 하나 정리해줘. 근육이완제 아마 좀 많이 필요할 거야. 환자 8시 20분이면 도착한다니까.”
“아직 병원 문 열려면 시간 좀 남았는데요?”
황경호가 시계를 보며 물었다. 원래 출퇴근 시간이나 점심시간 같은 데 아주 철저한 원장이라 절대 먼저 일을 시작하거나 늦게 일이 마치지 않아 고용인들이 만족도가 아주 높은 직장이었는데 말이다.
“그렇게 됐어. 아는 분 아들이 항문에다가 뭘 집어넣어서 지금 이리로 오고 있거든. 나도 아침에 전화 받고 빨리 온 거야.”
“아니… 그 정도면 그냥 응급실 가시지 뭐하려고 저희 병원까지….”
정기연 간호사가 흔한 일에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 그렇다. 이것은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흔한 일이었다. 엉덩이에다 뭘 처박고 병원에 실려 오는 남자들 말이다. 하지만 이강유 비뇨기과는 음경확대 및 조루, 지루, 발기부전, 전립선염, 요도하열 등의 남성기 관련 질환 및 성형에 특화된 곳이었다. 그 정도 가지고 굳이 여기까지 오는 건 오버라는 얘기다.
“말했잖아. 아는 분이라고. 큰아들인데… 하여튼 문제 많은 집이야. 쪽팔려서 오는 거니까 그렇게 알고 안 웃게 조심하고.”
“아, 힘든데요. 그거.”
정기연이 벌써부터 웃기려고 하는지 커피를 내리며 키득거렸다.
“아니, 도대체 우리나라에 항문 자위하는 남자들이 얼마나 있다는 거야? 이렇게 잊을만하면 실려 오고 말이야. 우리 병원에 응급실이 있는 것도 아닌데… 응? 오빠, 어떻게 생각해?”
황경호와 정기연은 입원실을 확인하러 한 층을 내려갔다. 공용 계단 말고 병원 내에 있는 계단을 이용했다.
“으, 응? 그, 글쎄… 남자들 세 명 중의 하나가 게이라는 말도 있으니… 생각보다 많을지도….”
황경호는 그렇게 얼버무렸다.
“진짜? 어제 인터넷 신문에서 우리나라 남자들 80퍼센트가 남자끼리 한 번은 해봤다는데. 이것도 진짜야? 80퍼센트?”
너도 80퍼센트에 들어가는 거냐! 정기연이 눈을 반짝거리며 물어보았다. 황경호는 왜 내가 찔려야 하는 거냐… 라고 생각하면서 VIP 입원실의 문을 열었다.
“군대에서 많이 할 것 같긴 하다… 나 군대 있을 때도 옆 소대나 옆 옆 소대에 한두 명 정도 후임 들어오면 꼭 그런 짓 해서 문제 일으켰거든. 중대장은 그런 거 밖으로 새어나가면 자기 진급 날아갈 수도 있으니까 입단속 엄청 시키고 그랬지.”
“와, 쩐다… 다들 미친 거 아냐? 남자들끼리 뭐하는 짓이야.”
정기연이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동감이다….”
황경호가 한숨을 섞어 그렇게 동의했다.
“그나저나 내기나 할까 오랜만에?”
“음… 그럴까. 평소대로 만원빵.”
“콜.”
항문에 뭘 처넣고 오는 환자들이 잊을 만하면 한 명씩 있기 때문에 이벤트가 터지면 다들 삼삼오오 모여 내기를 했다.
“음… 나의 경험상 확률로 볼 때 이번엔 쉐이빙크림통이라고 본다.”
“에헤이. 오빠 너무 상상력이 빈약한 거 아냐? 우리 병원까지 올 정도면 꽤 큰 거지 않을까…. 맥주병?”
“야, 아무리 그래도 그게 사람 항문에 들어가겠냐?”
그게 그, 생각보다 굉장히 민감하고 아픈 부위라…. 황경호는 마치 엄청난 치질에 걸려봤던 사람처럼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또 모르지. 전에 이따만한 화장품 병 넣고 온 아저씨 못 봤어? 그 정도도 들어가는 구멍이라고 거기가.”
“말도 안 돼… 그래도 맥주병은 오바다.”
“보면 알겠지.”
두 사람이 다시 4층으로 올라갔을 땐 예의 그 환자가 벌써 도착해있었다. 진료실에 노크를 하고 입원실이 준비되었다고 말했다.
“흐어어엉! 서, 선생님, 훌쩍. 저, 저 이제 똥구멍 못 쓰는 거예요? 흐엉엉엉!”
주변에 가족이 없어지자 이제 말이 나오는 모양인지(대부분의 이런 환자들이 그랬다) 환자는 대성통곡을 하면서 그렇게 말했다. 나이는 20대 중반 정도로 보였다.
“아닙니다. 근육이 그렇게 상한 걸로는 보이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앞으로 이런 식으로 커다란 물건을 집어넣는 일은 하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겁니다.”
원장은 의사답게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환자에게 근육이완제를 주사하고 엑스레이를 바라보았다. 의사가 그렇게 말하자 울고불고하던 놈이 헉하곤 의사를 쳐다보았다.
“그럼 저 섹스 못 하는 거예요?!”
“…….”
잠깐 진료실 안에 정적이 돌았다. 본인도 아차 싶었는지 얼굴을 벌겋게 붉히고 입을 다물었다.
“원래는 거기가 그러는 곳이 아니라 많이 조심하셔야 하고 웬만하면 하지 않으시라고 권하고 싶습니다만 정 하시겠다면 꼭 주의하고 콘돔을 착용하시고 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의사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는 듯이 아주 프로답게 답했다. 웃겨서 허벅지를 꼬집던 정기연은 역시 원장은 다르구나, 라고 생각했고 오 간호사는 연륜 있는 간호사이다 보니 웃기면 그냥 고개를 좀 돌리고 대놓고 웃었다. 예전 같으면 같이 허벅지를 꼬집었을 황경호였지만 이번엔 웃기진 않고 환자가 아주 한심하게 느껴졌다. 병신.
“네….”
환자는 아주 모기만 한 목소리로 그렇게 답했다. 그리고는 의료진을 바라보며 간절하게 말했다.
“저… 이거 가족한테는 제가 이상한 짓… 해서 이런 게 아니라 사고로 들어갔다고 말씀해주시면 안 될까요?”
“…….”
“그냥 병 위로 엉덩방아를 찧어서….”
“…….”
너 같으면 믿겠냐, 이 병신새끼야… 넷 중 하나 이상은 분명 이런 생각을 숨기지 못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원장은 아니었다.
“어떤 경위로 이런 상태가 되었는지에 대해선 환자분께서 직접 설명하시는 게 나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의료적 상황에 대해선 의사 환자 간 비밀조약으로 외부에 발설할 순 없으나 그렇다고 거짓말을 해도 되는 건 아니거든요.”
“아니…! 그게 거짓말을 하라는 게 아니라요! 제가 진짜 샤워를 하고 나서 엉덩방아를 찧어서 이렇게 된 거라고 말하기가 쪽팔려서 의사 선생님이 말씀해주시면 고마울 것 같아서… 진짜 오늘 잘못 넘어져서요….”
“…….”
도저히 이것까진 받아줄 수 없겠는지 환자를 대하는 프로의식이 아주 뛰어난 이강유조차도 결국 환자를 무시하고야 말았다.
“음… 근데 이게 뭡니까? 금속 재질입니까? 아님 유리입니까?”
“그게… 돌인데요….”
“돌이요??”
맥주병도 쉐이빙크림통도 아니다. 돌은 처음 들어봤다. 정기연과 황경호는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게….”
환자는 아주 당황하다가 얼굴을 벌겋게 하고 모기만 한 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저희 아빠가 수석을 모으시는데 그중에서 크기가 적당… 이 아니라 매끈…도 아니고… 하여튼 그거예요….”
똥구멍보다도 머리가 안 좋은 걸까… 그렇게 또다시 자진 납세를 하며 멍청한 말을 하는 환자였다.
“그렇군요. 그러면 깨지거나 할 위험은 없겠네요. 다행입니다.”
“아, 안에서 깨지는 경우도 있어요??”
“유리병 같은 거는 종류에 따라서 깨질 수도 있죠. 하지만 돌이라면….”
“꺼내는 도중에 그래도 문제가 생기지 않겠죠…?”
“몸에는 크게 문제가 생길 크기는 아닌 걸로 보입니다.”
“아뇨… 몸 말고 돌에요….”
“네?”
“이, 이거 아버지가 아끼시는 건데 지금 이건 줄은 모르셔서… 이거 걸리면 저 아버지한테 죽어요, 선생님…!”
풉…! 결국 황경호도 돌아서며 웃었다.
*
“너 이 새끼 문 안 열어!!!”
“아, 아빠 잘못했어요!”
“너 아빠 엿 먹이려고 일부러 그런 거지!!”
“아니에요!”
VIP 병실 문을 사이에 두고 부자가 대립하고 있었다. 양쪽 모두 의료진이 달라붙어 말리고 있었다.
“그… 그게! 하필이면 그, 그때! 딱 눈에 띄어서…!”
가족에겐 계속 숨겨달라고 그렇게 애걸복걸하더니 계속 스스로 이실직고하는 이 멍청한 환자는 아버지가 아끼는 2천만 원짜리 수석을 똥구멍에 처박은 죄로 호적에서 파이게 생겼다.
“그거 내가 돌아가신 니 할아버지 유품이라고 몇 번이나 말했는데!!! 니가 거기다 똥칠을 해?!”
문자 그대로!! 아버지는 펄쩍펄쩍 뛰셨다. 우아한 사모님은 한숨을 쉬며 지켜보고 있었고 여동생은 본인이 더 쪽팔린 지 고개도 들지 못했다.
“보호자님…! 진정하시구요…! 좀 있으면 환자분들도 오셔서…!”
“지금 내가 진정하게 생겼나고!!”
이 난리를 치고 싶으니까 굳이 응급실 안 가고 지인 병원에 온 것일까. 그들을 겨우겨우 말리면서 VIP 대기실로 가족들을 데리고 가서야 한숨을 덜었다.
“새삼 말인데요… 우리가 병원들 중에서는 가장 극한 직종이 아닐까요.”
황경호가 아침부터 기운이 달려 힘없이 말했다.
“한두 번이니 저런 사람… 그러려니 하는 거지.”
“새삼 이해가 안 되네요. 그거 뭐가 좋다고….”
황경호는 흐릿하게 말을 흘렸다.
벌써 춘삼월이다. 며칠 전에 뜬금없이 초록이의 병원에서 그놈을 만났다. 너무 급작스러우니까 채 놀라지도 못했다. 그래서인지 잔잔하게 그 충격이 미분 되어 며칠간 느껴지는 것 같다. 오늘도 아침에 너무 일찍 깨고 한 시간이 넘게 샤워를 했다. 며칠을 그랬더니 살이 터서 아프다.
짜증 났다. 잘 잊고 살고 있었는데 말이다. 어차피 그런 인간 따위 사는 세계도 다르고 만날 일도 없는 사람이다. 원래도 싫어하긴 했지만, 오히려 보지 않기 때문에 더 싫어지는 건 왜 그런 것일까.
이제 병원 진료시간이라 다른 간호사들은 원래 대기실이 있는 쪽으로 갔고 황경호는 VIP를 관리하려고 그대로 남아있었다. 아래층에서 몇몇 회복실에 있는 다른 환자들에게 양해 말씀 돌리고 돌아오니 이제 VIP실에서 가족들끼리 싸운다.
“아니! 그러게 당신은 저번에 그런 일이 있었으면 애를 더 신경 써서 봐야 할 거 아냐.”
“아니, 아빠는 오빠가 병신인 걸 왜 계속 엄마 탓을 해?! 오빠가 아빠 닮아서 저런 거잖아!”
“넌 뚫린 입이라고!”
VIP 대기실에는 50대 후반의 남녀 두 사람과 아주 젊은 여자 하나가 있었다. 우아하게 생긴 어머니는 아무런 말 없이 수심에 가득한 얼굴로 한숨만 쉬었다. 그리고 일어나서 부녀가 말싸움을 하는 동안에 VIP 대기실에서 나왔다.
“간호사 씨, 혹시 여기 흡연실은 없나요?”
“저희 병원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제 법 바뀌어서 건물 내에서는 전부 금연입니다.”
“아, 그렇죠… 그럼 건물 밖에 따로 흡연 부스는 있나요?”
“여기가 따로 그런 건 없어서요. 아, 1층에 커피숍이 있는데 거긴 흡연실이 있어요.”
“아,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우아하게 생긴 어머니는 부녀의 소란과 아들의 병신 짓을 뒤로 한 채 한숨을 쉬며 흡연을 하러 가셨다. 질질 울고 있는 병신 같은 아들과 남의 병원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고 있는 부녀보다도 조용한 어머니가 왠지 더 걱정되었다.
“밖에 이제 다른 환자분들도 오셨는데 죄송하지만 조금만 조용히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니 흥분해있던 딸이 송구스러운 얼굴로 사과를 하고 아저씨는 그저 고개를 홱 돌리며 씩씩거리고 있었다. 그러려니 하고 슬 밖으로 나갔다. 비뇨기과 간호사를 나타내는 윗옷을 벗어놓고 긴 팔 흰 티셔츠를 입은 채로 1층으로 내려갔다.
아직 8시 35분 정도라 1층의 대형 커피숍에는 테이크아웃 손님만 간혹 있을 뿐 손님이 거의 없었다. 황경호는 안면이 있는 남자 사장한테 인사를 하고 흡연실을 찾아갔다. 거기엔 아까 보았던 우아한 사모님이 줄담배를 피우고 계셨다.
“저….”
“어머… 혹시 무슨 일 있나요?”
“그게 아니라… 괜찮으신가 해서요.”
“아… 고마워요. 이렇게 신경 써줘서. 강유 씨한테도 우리 바깥사람이 억지를 부려서 이렇게 오고….”
“아니에요. 환자가 오면 당연히 의료진은 도와야죠. 그것보다도… 저… 이런 일 그렇게 드문 일도 아니구요. 크게 걱정 안 하셔도 금방 뺄 수 있거든요.”
발기부전이거나 혹은 조루거나 또는 발기 강직도가 안 나오는 수많은 아저씨들의 섬세한 마음을 케어해주는 황경호였으나 이런 곳에 이런 여성이 오는 것은 처음이라, 그것도 이런 괴상한 사고를 치는 아들에, 남편이나 딸이나 속을 박박 긁는 것 같은데도 그저 혼자서 담배를 피우며 속을 삭이는 모습을 보니 어쩐지 마음이 쓰인다. 평소엔 이 정도까지 오지랖이 나오진 않는데도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다. 보통 황경호의 프로의식은 환자인 남성들에게(어쩔 수 없다. 비뇨기과다)만 발현했으니 말이다. 이런 날도 오는구나.
“후우. 아, 괜찮나요? 담배 피워도.”
“네. 흡연실인데요, 뭐.”
황경호는 미소를 지으면서도 이런 상황의 상대방에게도 반감을 가지지 않도록 처신하며 환자의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어머니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은 마음이 있거나, 설사 없더라도 말하다 보면 또 마음이 조금 풀릴지도 모른다.
“아들이… 게이일 수도 있다는 건 꽤 오래전부터 눈치를 챘었지만, 저번에도 그렇고… 오늘도 이런 일로 병원을 찾게 되니 안 좋게 생각하지 말아야되는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참… 마음이 그래요.”
“아휴, 당연한 거죠. 이건 게이이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의 몸을 학대하는 거니까 이런 것까지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면 큰일 나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비뇨기과에 이런 일로 실려 오는 젊은 남성들이 진짜 많아요. 그런데 다들 이상한 데서 성 지식을 배워서 그런지 아니면 정말 변태성욕인 건지 모르겠는데 꼭 그런 짓을 해서….”
황경호가 한숨을 쉬었다.
“아드님이 정말 게이시라면 꼭 항문으로 자위를 하거나 혹은 성관계를 가지는 건 자제하라고 말씀드리세요. 나중에 나이 들어서 큰일 날 수도 있어요.”
“그런 건가요? 참… 저도 이런 쪽으론 전혀 몰라서. 저도 제 아들이 게이일 줄은 상상도 못 했으니까… 우리나라에서 그런 걸 어디서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구요….”
“그렇죠… 참….”
“게다가 딸은 오빠가 게이라는 걸 눈치채고는 거의 혐오하는 것 같고, 남편은 죽어도 인정을 안 하니… 아들이 불쌍하다가도 이런… 어이없는 사고를 치니… 남부끄러워서 진짜….”
“어머니께서 고생이 많으시네요.”
그렇게 하소연을 들어주고 나서 같이 위로 올라갔다. 부인이 올라오니 남편은 더 이상 있기 쪽팔린 지 부인에게 전부 미뤄두고 벌떡 일어나서 나갔다.
하여튼 이 병원에 오는 남자들은 병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죄다 싸가지를 밥 말아먹은 모양이다. 이렇게 되면 이 사모님이랑 강유 쌤은 어쩌라고.
“미안해요, 강유 씨. 우리 그이도 참… 나이 먹어도 성격이 저래서….”
“아닙니다. 형님이 화나실 만도 하죠. 어쨌든 민석이는 크게 문제는 없을 겁니다. 물건도… 일단 물로 세척한 겁니다만….”
2천만 원짜리 수석이 의료용 비닐에 둘러싸여 있었다. 사모님은 한숨을 쉬더니 고개를 저었다.
“그냥 민석이한테 주세요. 어차피 남편 시댁에서 남자들한테 물려주는 거니까 결국 민석이 거죠, 뭐.”
아무리 아들이라도 이런 건 손대기 싫은 모양이었다. 황경호가 입원실로 모녀를 안내했다. 문을 열었다.
“헉…!”
“…….”
“…….”
하필이면 침대 위에서 환자가 손거울로 자신의 똥구멍을 확인하고 있었다. 마음이 이해 가지 않는 바는 아니었다만… 황경호는 일단 문을 닫았다.
“하하하. 환자분께서 환부를 체크해보실 수도 있는 거죠. 이제 소중함을 느껴 앞으론 그런 짓은….”
“아오! 저 병신새끼를 그냥…!”
환자의 여동생을 황경호를 옆으로 밀고 문을 열었다. 반쯤 바지를 올려 입고 있는 당황한 얼굴을 한 오빠의 엉덩이를 발로 찼다.
“억!”
“자, 잠깐만요…! 환부를 발로 차시면…!!”
황경호가 기겁을 했다. 억! 하고 엉덩이를 깐 채 앞으로 넘어진 환자 위로 여동생이 올라타 손바닥으로 마구 때렸다.
“죽어라, 죽어! 왜 사냐! 왜 우리가 너 때문에 이렇게 쪽팔려야 하는데! 이 미친놈아!! 저번에 한 번 그랬으면 정신을 차려야 할 거 아냐!! 왜 계속 똥구멍에 이상한 걸 처박아!!! 이 새끼 이거 비뇨기과가 아니라 정신병원에 가야 하는 거 아냐?!”
그건… 참 맞는 말씀이십니다만… 예전 같으면 득달같이 가서 말렸겠지만, 알다시피 저 환자는 근육이완제를 맞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런 고로….
“저… 여동생님… 흥분하고 화나신 마음 백번 이해합니다만… 지금 오빠 분이 근육이완제를 맞으신 지 얼마 되지 않으셔서… 계속 그러시면… 샙니다(?).”
“네?!”
여동생이 안경 밑으로 눈을 부라리며 황경호를 돌아보았다. 황경호는 손가락으로 환자의 엉덩이를 가리켰다.
“샌다구요.”
“!”
그러자 여동생의 얼굴이 핼쑥해지더니 못 만질 걸 만진 사람처럼 양손을 몸에서 멀찍이 떼며 주춤주춤 일어났다.
“….으아악! 진짜 이 더러운 새끼야!!! 너 앞으로 내 눈에 띄면 내장 다 뽑아버릴 테니까 얌전히 살아라!!”
그렇게 오빠한테 욕이란 욕은 있는 대로 내뱉고 병실을 나가는 괄괄한 여동생이었다. 딱 봐도 딸도 아빠를 닮은 듯하다. 이제 병실엔 우아한 사모님과 아들과 황경호만 남아있었다. 환자는 바지를 끌어올리며 훌쩍훌쩍 울면서 다시 침대 위로 올라갔다.
“민석아.”
우아한 사모님이 드디어 입을 열었다. 황경호는 나갈 타이밍을 놓쳤다.
“엄마는 니가 게이라도 상관없이 우리 아들 사랑해.”
면목이 없어 고개를 숙이고만 있던 아들이 고개를 들어 엄마를 보더니 결국 눈물을 펑펑 쏟았다.
“어, 엄마… 흑… 엄마아… 미안… 흐윽.”
“그래도 앞으론… 집에 있는 물건 가지고 그러지 말고 정상적인 성인용품 사서 해.”
“으, 응… 미안해, 엄마….”
감동…적이라고 해야겠지? 황경호는 어정쩡하게 서 있었다. 그리고선 우아한 사모님은 아들에게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황경호도 그 김에 우는 환자를 두고 밖으로 따라 나왔다. 우아한 사모님은 곧바로 비싼 백에 손을 넣더니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가 아차 하며 황경호를 돌아보았다.
“병원에서 담배 피우면 안 되죠….”
“그렇죠….”
황경호는 그 순간 ‘부모란 자식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하는 걸까’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심지어 사랑한다는 말조차도 말이다. 그렇게 위대한 어머니의 사랑(?)을 목도하고 황경호는 한숨을 쉬고 다시 정상적인 업무로 돌아갔다.
“어헛! 어~ 거기거기…! 읏, 그래. 거기얏…!”
위이이잉. 50대 초반 정도로 보이는 아저씨였다. 조루는 젊은 애들이 많을 것 같지만 사실 연령대 상관없이 많다.
‘사실 지루도 많지. 발기부전도 많다.’
정말 일본이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방사능이 터진 걸까. 물론 덕분에 연일 문전성시가 따로 없다만. 어쩐지 오늘따라 진상이 많다. 어린애들이면 부끄러워라도 하지 나이가 들수록 얼굴이 얼마나 두꺼워지는 건가.
“하으읏. 오늘도 좋네. 습관 되겠어. 황 간이 좀 닦아줘.”
“…….”
이런 환자들이 예전에도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닌데 요새 유달리 많아진 것 같다. 괜히 내가 예민해진 것인가. 황경호는 티슈로 벅벅 환자의 성기를 닦았다.
“아흣…! 역시… 좀 다른 분야긴 하지만 이거 자주 만지는 사람들은 손놀림이 다르다니까. 어흐~”
이런 환자들은 기본적으로 남자 간호사들이 맡는다. 여자 간호사들에겐 성추행이나 다름없는 짓이 번번이 일어나는 것이니 말이다. 원장은 경영 마인드가 투철함과 동시에 직원복지에도 많이 신경을 쓰는 편이라 그런 쪽으로 여자 간호사들이 힘들지 않도록 프로세스를 짰다. 이건 배려가 아니라 생각해보면 너무 당연한 것이다.
하지만 비단 성추행으로 고통받는 건 여자로 한정되는 건 아니니 문제인 것이다. 물론 그래도 여자 간호사들이 하는 것보단 낫지만. 황경호는 기계적으로 웃으며 환자를 의사가 있는 진료실로 안내했다. 태블릿에 의료정보를 깔끔하게 기입해 업로드하니 환자의 정보가 갱신되었다. 들어가서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의사가 태블릿을 보고 환자의 상태를 체크할 수 있다. 50대 초반의 조루 환자는 간호사 앞에서는 그렇게 당당하더니 의사를 보자 초조한 기색으로 자리에 가서 앉는 게 보였다. 황경호는 스케줄을 확인하고 입원실로 향했다.
“네. 링겔도 끝났고 이제 퇴원하시면 되겠네요. 고생하셨습니다.”
“벌써 가도 되나 모르겠어. 이렇게 빨리….”
웬 할아버지 하나는 음경확대수술을 받고 회복실에 이틀 동안 있다가 오늘 퇴원을 한다. 원체 고령이라 이강유가 몇 번이나 만류를 했었다. 그런 주제에 이제 와서 불안해한다니.
“한번 봐줘.”
할아버지는 바지를 앞으로 쭉 당겨 내렸다. 황경호는 전혀 아무렇지 않은 듯 환부를 체크했다.
“괜찮으세요. 다만 수술 앞에도 말씀드렸듯이 원체 고령이시라 관리에 만전을 기하셔야 해요. 앞으로 술, 담배 이런 거 하시면 안되구요. 특히 일주일 이상은 입에 대는 것도 절대 안 됩니다. 충격에도 주의해주시고 청결에도 주의하시구요. 성생활도 2주 정도는 자제하셔야 하는 거 잊지 않으셨죠?”
“알았어… 그럼 간다.”
“네. 일주일 뒤에 시간 맞춰 오시구요.”
할아버지 환자를 배웅하고 나선 아침에 왔던 그 젊은 환자를 찾아갔다. VIP실이라 시설이 아주 좋다. 그는 TV를 정신없이 보고 있었다.
[봄잠에 취해 날 밝는 줄 몰랐더니, 여기저기 들리는 새 우는 소리. 밤새 비바람 소리 거세더니, 꽃은 또 얼마나 떨어졌을까.]
[…저건 무엇이냐. 기생이더냐?]
[시를 읽어주거나 편지를 대신 읽어주고 돈을 받는다 합니다. 목소리가 고와서 글을 읽을 줄 아는 이들도 돈을 주고 글을 읽게 한다고 하더군요.]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아.]
많이 들어본 대사였고 듣는 순간 바로 어떤 드라마인지 떠올랐다. 강동현이 주연한 <서리>다. 아까 확인하러 왔을 때도 저거 보고 있었던 거 같은데 그대로 쭉 연달아 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황경호도 기억나는 것만으로도 5번은 봤었기 때문에 대사는 외우고도 남았다. 올해 들어서는 보지 않았다.
“몸은 어디 불편하거나 아픈 데는 없으세요?”
“네? 네! 오랜만에 독서실 말고 다른 데 있어서 그런지 괜찮네요.”
의외로 회복력이 빠른 환자다… 특히 멘탈이 말이다.
“약도 30분 뒤면 다 들어갈 것 같으니까. 그때쯤 퇴원하시면 될 것 같아요. 중화제 맞고도 살짝은 이완되어 있을 수도 있으니까 기저귀는 하루 정도는 더 차고 계시구요.”
“네… 아침부터 안 좋은 모습 보여드려서 죄송합니다….”
기저귀란 단어에서 자신의 상태를 다시금 떠올렸는지 우울하게 말하는 이민석 환자였다.
“저… 혹시 환자들 많은 거 아니라면 입원실에 좀 더 오래 있어도 괜찮을까요?”
“지금 VIP 환자실이 모자란 건 아니라서 아마 여쭤보면 되긴 할 거예요. 시간당 수납은 더 하셔야겠지만요.”
“아, 그럼 있을 수 있을 때까지 있다 가야겠어요. 오랜만에 서리 정주행하니까 살맛 나네요.”
“드라마 좋아하시나 봐요.”
“한국드라마 별로 안 좋아하는데, 강동현이 좋아서요.”
“아… 네….”
“어? 강동현 안 좋아하세요?”
환자가 돌아보았다. 황경호는 어쩐지 말문이 막혔다. 약간 버벅거리다가 대답했다.
“연기하는 건 괜찮은 거 같은데 사람은 좀….”
“왜요? 인터뷰하는 것도 보면 또 매력 쩔던데요?
강동현이 인터뷰를 하는 걸 보면, 뭐 당연하겠지만, 상당히 근사하다. 자신의 매력이 어디에 있는지 잘 알면서도 상대방에게 거부감이 들지 않게끔 잘한다. 그러면서도 여타 다른 연예인들이 그렇듯 비굴하게 행동하지 않기 때문에 상당히 몸가짐이 단정해 보인다.
개인적인 그 인간은 아주 극도로 혐오하는 주제에 연예인으로서의 그에게는… 팬질이라고 해야 할 만한 것들을 잔뜩 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슨 비위였나 싶다.
“진짜 우리나라 보면 남성적인 남자 연예인이 잘 안 나오잖아요. 다 이게 여잔지, 남잔지 모를 얼굴에다가 뼈다귀같이 말라서. 원빈 이후론 이제 저런 정말 미남 배우는 안 나오는 건가 했는데 제가 강동현보고 정말… 절했습니다, 절.”
“아… 네.”
이민석은 아마도 게이라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냥 순수한 마음인지는 모르겠지만, 강동현에게 열렬한 팬심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연기도 잘하고 키도 크고 몸도 좋고… 얼굴이 진짜 조각 같아요. 한 번만 실제로 봤으면 좋겠다.”
“그러시구나….”
어렸을 때 멋도 모르고 궁에 들였던 사냥터에서 만난 여자아이. 그 아이에게 붙어있던 마귀가 아버지에게 붙어 궁내에서 패악질을 하다가 죽었다. 원손이던 주인공은 어렸을 때의 그 아픔을 끌어안은 채 성인이 되고 세손으로 책봉된다. 그리고 미행을 나가다가 문득 궁에서 사라져버렸던 그 여자아이와 닮은 목소리를 가진 여자를 발견하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열심히 살고 있다는 그 느낌이 좋더라구요. 노력하는 거 무서워하지도 않고. 패기 있어 보이는데도 허세 같지 않은 남자 요즘에 드물잖아요.”
“아, 네….”
게이라서 그런지 남자를 평가하는 데 있어서 성적으로 대상화하는 시각이 많이 느껴지는 것 같다.
그렇게 VIP 입원실을 나와 일을 하다가 쉬는 시간에 문득 예전에 자주 가던 인터넷 카페를 들어가 보았다. ‘내가 쓴 글’ 목록을 눌러보니 열심히 한 자 한 자 써 내린 감상문들이 보였다.
‘…새삼… 무슨 자학이었지….’
현실의 그는 그렇게나 싫어하면서 TV 화면에서 나오는 그는 스토커마냥 졸졸 찾아다녔다. 그가 나오는 영화, 드라마, 인터뷰 등 안 본 것이 없었다. 물론 그나마도 올해가 들어오면서 뚝 끊기긴 했지만. 그런 식으로 마주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정말 좋아하는 연예인으로 계속 남았을지도 모른다.
꿈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해서 그 스트레스로 병에 걸릴 정도다. 열심히 사는 걸로는 그만한 인간을 본 적이 없다. 작품을 볼 때도 굉장하다든가 근사하다든가 그런 생각이 들지만, 특히 인터뷰 같은 거나 예능에서 나오는 인간 강동현을 보면 반짝반짝 빛이 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창 팬질할 때는 강동현이 인터뷰나 예능에서 보이는 것 같은 캐릭터로 연기를 해도 좋을 거라고 감상문에 적기도 했다.
황경호가 이강유를 존경하는 이유는 그가 잘나고 인생을 열심히 살면서도 인간적이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여유가 있어서였다. 물론 강동현은 딱히 남을 배려할 줄 알 거나 하는 성격이 아니지만, 아마 이건 실제로 마주치고 서로 알게 되지 않았더라면 몰랐을 점이니까 말이다. 하긴, 선생님을 존경하는 면은 인격적인 면이 크니.
무엇보다도 마주치지 않았더라면 강동현은 황경호라는 인간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을 것이다. 시간을 되돌려 그 쓰레기 같은 인간과 만나기 전으로 간다면 기필코 반경 3미터 안에 들어가지 않을 테지만. 사실 강동현이 싫은 가장 큰 이유는 죽고 싶어 하는 자신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지금 든다, 지금.
마음의 준비 없이 그 인간이 나오는 광고나, 금방같이 환자가 보는 드라마를 마주치면 어쩔 수 없이 그날 밤이 자동 떠오르지만… 되도록 외면하고 있었다. 깊이 생각하기도 싫고 떠올리기도 싫다. 근 3개월간 절대 그 인간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으려고 엄청나게 노력했는데, 그 인간을 좋아하는 게이 팬을 만나다니. 운이 없었다.
“어휴. 일하자. 일!”
간호사 휴게실에 누워있다가 벌떡 일어났다. 좋은 거 생각하자, 좋은 거~~~! 양손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휴게실 문을 열고 나왔다가 누군가와 부딪쳤다.
“앗… 죄송합니다, 환자님. 많이 쏟으셨어요?”
생각 없이 문을 열고 정신을 딴 데 판 채였다. 하필이면 손에 커피를 들고 있는 환자였다.
“그렇게 많이는….”
선글라스와 마스크, 그리고 캡모자까지 눌러 쓴 키 큰 환자는 대답을 하려다가 멈추었다.
*
모두들 알다시피 강동현이란 남자는 아주 정력적으로 인생을 사는 남자다. 하고 싶은 것, 가지고 싶은 것,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열정을 다 하는 엄청난 노력가이기도 하다.
그가 어떤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채 지속되는 것을 좀 더 참을 수 있는 성격이었다면 그 젊은 나이에, 유명인이라는 그의 신분을 생각하여 병원 따위는 쳐다보지도 않았을지도 모른다. 대한의 땅에 사는 수많은 남성들처럼 말이다.
그래서 억지인 것을 알면서도 그 간호사에게 매달리며 별별 수상한 짓을 다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제 그것도 선을 넘어버렸다. 그날 그 도발 같지도 않은 도발에 넘어가서 정말로 그가 말한 대로 이쪽이 떨어져 나가는 것밖에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지 않았더라면 차라리 지금도 무슨 억지를 써서라도 계속 그 요상한 치료를 계속하게 했을 것이다. 논리적인 이유 따위 없는 게 당연했다. 다만 그 간호사가 맛이 간 그의 성기를 발기시키고 느끼게 만들어서 사정할 수 있게 해준다는 것만 알았다.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스트레스와 병이 완화되는 게 몸으로 느껴졌단 말이다. 본능적인 선택이었지만 옳은 선택이었던 것이다. 그게 논리가 되었다.
“아프진 않아?”
“으응…? 응… 조금? 그렇게 아프진 않아.”
“이건?”
“그냥 그래.”
오늘도 오히려 욕구불만만 하늘을 찌르게 하는 성관계를 가지고 나서 강동현은 아예 얼이 빠진 얼굴로 천장을 바라보며 누워 있었다. 허벅지 사이로 하는 스마타, 조금 거친 애무 등등 저도 모르게 여자 친구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고 요 근래 여러 사랑을 나누었다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그래서 엄청난 자괴감에 빠져있었다.
다음날 촬영에 가서는 메이크업 아티스트에게 한 소리 들었다.
“얼굴이 왜 이렇게 칙칙해! 정말!”
누가 봐도 게이 같은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다크서클이 패이고 거칠해진 강동현의 얼굴을 보고 볼멘소리를 냈다.
“어쩔 수 없어… 형….”
오히려 여자 친구와 크게 노력을 하지 않았던 때보다 지금이 더 힘들다. 바쁘다는 핑계로 여자 친구와의 만남을 자제하고 몇 개월 버틸 때는 오히려 병에 걸렸다는 자각도 별로 없었을 때였으므로 괜찮았다.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을 때도 그 간호사가 있어서 어떻게든 뺄 수 있었다. 하지만 병원을 가더라도 그 간호사를 만날 수는 없고 반쯤 눈치를 챈 것 같은 여자 친구와는 엄청나게 노력을 하고 있는데도 오히려 약을 먹고 넣은 채로 죽기도 한다. 그럴 때는 그냥 이것도 저것도 다 내버리고 딱 죽고 싶다. 자괴감이 엄청나다….
지금 강동현이 맡은 김태평이라는 역할은 평범한 대학생이었으나 아버지에게 닥친 사고로 인해 아버지가 맡고 있던 히어로 직책을 얼떨결에 물려받게 되어 아버지를 사고로 밀어 넣은 정재계의 거악을 물리치는 내용이었다. 개그가 가미된 호쾌한 액션 영화라 몸을 쓰는 일이 많다. 개그적 역할로 유명한 선배 배우진이 빵빵해서 배울 맛도 나고 연기하는 것도 즐겁다.
“이것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내가 느그 아버지를 위해서 특별나게 준비한 아이템이라는 것이지.”
“그냥 휴대폰이잖아.”
“어허. 봐봐라.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스~마트폰이지만 여기 보이는 이 앱을 누르면 통제실에 있는 나와 바로 연결이 딱 되지. 그리고 니 주변의 CCTV, 무전도 원하는 대로 선택해서 들을 수 있고 말이지.”
“이 앱은 뭐야? 못 보던 건데.”
하트 모양의 앱을 누르자 급작스럽게 야동이 뜬다.
“어헛…! 그건 니네 아버지가 특별나게 요청해서 넣은 거지 내, 내 취향은 아니다. 어험!”
“…내가 이걸 진짜 꼭 해야 하는 거야, 아저씨? 응? 그… 다시 한번만 말해줘. 내가 이거 왜 해야 한다고?”
김태평이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용식이라는 아버지 친구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니네 아부지가 원래는… 그, 거거 있잖아. 작년에 사성 게이트나 저번 달에 재건축 용역들 단체로 파업하고 한 것도 다 니네 아부지 작품이야. 사회 평화와 정의 구현을 위해서 니네 아버지가 지금껏 열심히 일해 온 결과지.”
“그러니까 그걸 뭘 어떻게 해서 한 거라는 건데?”
“아… 그건… 그래. 너네 아버지랑 파트너로 일하는 아저씨 하나 더 있거든. 걔한테 듣는 게 빠르겠다. 너도 어렸을 때 본 적 있을 거야. 송태열이라고… 이 새끼가 왜 이렇게 안 오냐.”
그러고 있을 때 전자상가의 유리문이 열리며 짱깨집 오토바이에 하이바를 쓴 젊은 애 하나가 하이바를 벗으며 나타났다.
“저… 이용식… 아저씨세요? 저희 아빠가 오늘 허리가 나가셨는데 저보고 대신 와서 일 좀 하라고….”
이용식과 김태평은 그를 돌아보았다.
그 고물 전자상가에서 촬영을 10시간이나 더 하고 나서야 끝났다. 초반 장면부터 후반까지 그 전자상가가 간간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옷도 몇 번이나 갈아입고 분장도 몇 번이나 고쳤다. 마지막에는 거의 전자상가를 다 때려 부수다시피 한 장면이라 체력이고 뭐고 남아날 지경이 아니었다.
“오케이. 수고하셨습니다. 오늘은 이걸로 끝내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강동현은 아직 꽃샘추위가 기승인 춘삼월에 몸에서 증기가 나올 정도로 움직였다. 매니저나 메이크업 아티스트 등이 달려와 땀을 닦아주고 겉옷도 입혀주었다.
“이제 촬영도 거의 막바지네. 인천이랑 담양댐 있는 데서 한 번씩 찍고 벚꽃 날릴 때 한 번 찍으면 되는 거 아냐.”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말했다. 매니저가 고개를 끄덕였다.
“1월까지는 촬영 빡셌지만 그래도 2월 들어선 괜찮았지. 좀 쉬었겠네?”
“쉬기는. 그동안 밀린 화보 촬영에다가 예능도 두 개 했지. CF는 5개나 찍었지. 그중에 2개는 중국 거라 중국 왔다 갔다 했지.”
“오. 동현 씨 중국에도 인지도 있었어? 일본은 이번에 드라마 좀 인기 있었다고 듣긴 했는데.”
“중국은 아직 인지도 없는데 동현이 눈여겨본 광고주가 몇 명 있는 거 같더라고. CF 두 개 찍고 몇 군데 눈도장 찍고 오고… 하여튼 <서리> 이후로 쉬는 날이 없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랑 매니저랑 얘기를 나누며 차로 이동하는데 진심 강동현은 손가락 하나도 까닥하기가 싫었다. 전신이 무거웠다. 머리랑 허리는 더 무겁고.
“다음 주에 봬요, 형.”
“그래, 쉬어.”
밴에 타서는 바로 드러누웠다.
“고생했다, 동현아.”
“형이 더 고생했다. 새해 돼서도 전혀 못 쉬네, 형.”
“나야 뭐. 너 연기하는 동안엔 편하게 쉬는데… 니가 아이돌도 아니고. 너 처신도 잘하니까 일일이 손도 안 가는데. 내가 말했잖아. 나 전에 트리스라는 남자 아이돌 그룹 하나 맡았었는데 진짜 진 빠지더라. 아이돌은. 애들 하나하나 관리하기 얼마나 힘든지.”
“어….”
그렇게 매니저 형이 얘기하는 목소리를 들으며 서서히 잠에 빠져드는 강동현이었다. 그대로 기절하다시피 잠들어 집에 도착해서 깨워졌을 땐 진짜 머리가 핑 돌면서 손가락 하나도 까딱할 수가 없었다.
일에서 오는 건전한 스트레스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여자 친구와의 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 불감증 및 발기부전으로 인한 스트레스 등등 그의 스트레스는 <서리> 종방연 이후로 쌓이기만 할 뿐 하나도 풀리지가 않았다.
그는 추구하는 바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강해서 스스로의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전혀 감을 잡고 있지 못했다. 담배나 술로 간간이 휴식을 때우기 일쑤였고 그렇게 몸을 망치고 있는 것이다.
겨우 발을 질질 끌고 내려 집으로 가서 억지로 씻고는 침대에 그대로 엎어졌다.
‘진짜 내일은 병원 가자….’
*
하지만 병원에 갈 시간이 없었고 낮에는 다른 영화 시사회에 참석했다. 같이 <서리>를 찍었던 배우가 출연한 영화라 꼭 참석해줬으면 한다는 말을 듣고 왔다. 영화는 그저 그랬다. 피곤했지만 중간에 졸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서는 영화인들끼리 식사를 하고 술을 한잔했다.
“와… 안녕하세요.”
모델 출신의 아이돌이자 배우인 여자 연예인이 말을 걸어왔다. 자리를 섞다 보니 옆에 앉은 것이다.
“저 강동현 씨 진짜 팬이에요. 이렇게 사석에서 뵙게 돼서 진짜 영광이네요.”
“아… 그… 와이즈 멤버시죠? 성함이….”
겨우겨우 그룹 이름은 기억해냈으나 정작 이 여자의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나마도 그 그룹의 간판급 멤버라 얼굴을 본 기억이나마 나는 것이지 다른 멤버였으면 아무것도 기억을 못 했을 것이다.
“수연이에요. 본명은 채수연이구요.”
“아, 죄송해요. 제가 사람 이름을 잘 못 외워서….”
“아니에요. 아니에요. 기억 못 하실 수도 있죠. 저희 그룹이 아직 인지도도 그렇게 많지는 않고… 그래도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엄청난 미인이라는 느낌은 아니지만, 키가 크고 늘씬하고 세련되게 생겼다.
“한 잔 드릴까요?”
“아, 네. 감사합니다.”
채수연은 강동현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고 강동현도 채수연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짠하고 술잔을 부딪치고는 마셨다.
“아까부터 보니까 술을 엄청 잘하시나 봐요. 감독님이랑도 잘 계속 마시고 작가님이나 다른 분들이랑도 계속 같이 드셨잖아요.”
“동현이 술 잘해. 완전. 나 쟤 취하는 걸 못 봤어.”
옆에서 누군가 그렇게 끼어들었다.
“와, 부럽다. 전 술 잘 못 하거든요. 술이 잘 안 받나 봐요.”
“아, 그러면 많이 마시지 마세요. 여긴 강요하고 그러는 사람들 없으니까요.”
오늘 같은 날은 감독이나 작가 같은 사람들보다도 면식 없는 이쪽이 더 편한 느낌이었다. 도회적인 이미지라도 말을 해보니 소탈하고, 어리더라도 역시 이쪽 물을 먹은 사람답게 굉장히 매력적이다.
그래서일까. 자리를 파하고. 더 마시고 싶은 사람들끼리 뭉칠 때 채수연이 은근슬쩍 옆으로 다가와 손을 잡았을 때 바로 뿌리치지 않았다.
“저… 동현 오빠. 동현 오빠 정말 제 이상형이신 거 알아요?”
손이 부드러웠다. 연기를 하면서 느꼈지만… 여자 연예인들은 웬만하면 다들 일반인들은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아름답다. 강동현이 연기를 하면서 <서리>나 <연애출사표>에서 워낙 미녀로 유명한 여자 배우들과만 작업해서 그렇지 채수연도 굉장히 미인이고 게다가 어리다.
누구는 마누라만 아니라면 된다는데 이런 예쁜 여자라면… 그런 생각이 안 들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래서 술을 거의 먹지 않은 채수연의 차에 타고 후미진 곳으로 자리를 옮겨 차 안에서 입을 맞추기 시작했을 때, 어쩐지 강동현은 술이 슬슬 깨는 게 느껴졌다.
“오빠?”
“…미안. 나 여자 친구 있어.”
여자 친구랑 할 때보다 반응이 더 있기는커녕 미동도 없다. 그리고 여자 친구가 아닌 여자랑 입을 맞췄다는 사실도, 자괴감만 더할 뿐이었다. 강동현은 곧바로 차에서 내렸다. 빠르게 걸으며 입술을 손등으로 훔치고는 바로 여자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은혁아? 지금 몇 신데 전화야….]
잠에 취한 목소리로 여자 친구가 전화를 받았다.
“영지야….”
한숨을 쉬고는 뭐라고 말을 하려다가 관두었다.
“미안. 갑자기 목소리 듣고 싶어서 전화했어.”
사실대로 바로 말을 하려고 했으나 못했다. 이렇게 미안할 일만 또 만들고 만다. 강동현은 갑자기 연말에 있었던 일부터 지금까지, 남자 친구 노릇도 제대로 해주지 못한 것이 여자 친구에게 너무나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미안해.”
[응? 뭐가 미안해?]
“그냥 다… 너 힘들게만 하는 거 같아서 내가….”
[무슨 일 있었어? 술 많이 마셨지? 너 진짜 술 좀 줄여~ 담배도 끊고. 지금도 담배 피우면서 전화하는 거지?]
어느샌가 오른손에 쥐어져 있는 담배였다. 강동현은 곧바로 반쯤 태운 담배를 바닥에 떨어뜨려 밟았다.
“금방 껐어. 금연할게.”
[으휴… 너 처음에 연극단 선배들한테서 담배 배울 때 내가 그렇게 시작하지 말라고 했는데… 군대 갔다 왔을 땐 완전히 골초 돼서 제대했구… 너 오래 연기하고 싶다며. 관리해야지.]
“응.”
그렇게 새벽에 2시간이 넘게 전화기를 붙잡고 통화를 하고서야 아쉬운 듯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어쩐지 여자 친구랑 오랜만에 허심탄회하게 얘기한 느낌이라 좀 마음이 편해졌다.
‘내일은 진짜 병원 가야겠다. 진짜 빨리 나아서 영지 다시 느껴서 기절시켜 줘야지.’
*
“…….”
그리고 병원에 왔다가 마주쳤다. 정말 이번엔 병원 오면서 여자 친구 생각만 했지 이 간호사 생각은 하나도 안 했는데 말이다.
“아, 잠시만요.”
전에 한창 강동현에게 엿을 먹였을 때처럼 활짝 웃거나 하진 못했다. 하긴, 그러는 게 더 이상하지. 하지만 담담한 얼굴로 휴게실에 다시 들어갔다가 물티슈를 가지고 나왔다.
“커피 이리 주시고 손 닦으세요. 옷에는 안 튄 거 같네요.”
강동현에게서 커피를 건네받고 강동현은 받은 티슈로 손을 닦았다. 황경호는 커피잔 겉에 묻은 걸 닦았다.
“…살 빠진 거 같다.”
“그래요?”
강동현은 선글라스를 벗었다. 그리고 황경호를 잠깐 보았다. 황경호는 커피를 다시 돌려주었다.
“그럼 치료 잘 받으시고 가세요.”
“아… 저….”
강동현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쌩하고 사라졌다. 갑자기 몹시 기분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아… 머리 아파.”
강동현은 두통이 도져 대기실 카우치에 앉아 캡모자를 벗고 관자놀이를 주물렀다. 의사랑 얘기를 할 때도 머리가 아파서 도저히 집중할 수가 없었다.
“도은혁 환자님? 괜찮으십니까?”
“네… 머리가 좀 아파서요.”
“많이 아프신가요?”
의사는 잠깐 강동현을 살펴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머리 부근의 근육이 많이 뭉치셨네요. 같은 건물에 통증 관련으로 잘하는 한의원이 있는데 한번 가보시겠어요?”
그래서 엉겁결에 한의원까지 가게 되었다. 물론 어디서 추천받아 왔다는 말 따윈 하지 않았다. 연예인 왔다고 잠시 호들갑이 있어 이강유 비뇨기과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를 느꼈지만 사람이 지치니 별 신경을 못 쓰겠다. 영화 찍는다고 몸도 엄청 만들었겠다… 근데 왜 이렇게 머리가 아프고 피로할까.
“요즘 스트레스 많이 받으시죠? 외로움도 많이 타시나요? 이게 사람이 외로울 때 뛰는 맥인데….”
연예인같이 주변에 사람이 많은 직업이 무슨 외로움이 있겠는가. 그런 눈빛으로 의사가 강동현을 보았다가 다시 찬찬히 맥을 살핀다.
“이성 관계로 고민이 많으신가요? 계속 이쪽으로 맥이 짚이는데.”
“하하… 잘 모르겠네요.”
조금 뜨끔했다.
“일단 수납하시고 치료실에 가서 누워 있으시죠. 곧 가서 침 놔드리겠습니다.”
일단 침대에 누우니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이대로 침대에 파묻힐 것만 같다. 오늘은 잠도 많이 잤는데 왜 이러는 걸까. 엎드려 누운 채로 뒤통수와 어깨, 목에 침을 맞았다.
“근육 침이라 좀 아픕니다. 침 몸살 날 수도 있구요. 백태 쪽이 꽉 막혔네요. 이러니 머리가 아프죠.”
침을 놓는데 근육이 경련하는 게 느껴진다. 뭔가로 찌른다기보단 맞아서 멍이 든 것 같은 느낌이다. 그대로 누워서 전기자극을 받다가 일어나니 머리가 한결 가볍다.
‘이거 좋은데? 괜히 엄마가 침 맞으러 다니는 게 아니었네.’
강동현은 자주 와야겠다고 생각하며 머리를 움직여봤다.
“잠 제때제때 자시고 밥 제때제때 먹고 스트레스 줄이면 나을 거예요. 침 맞고 괜찮아졌다고 여기 의존하면 별로 안 좋으니까 꼭 생활습관 바로 잡으세요.”
“네. 감사합니다.”
그렇게 싸인까지 몇 장 해주고 나왔더니 훨씬 기분이 나아졌다. 병원을 나서며 선글라스를 꼈다.
‘비뇨기과 돌팔이보다 여기가 훨씬 나은 거 같은데….’
어깨를 움직여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건물을 나오자마자 담배를 꺼내 물었다.
“후우….”
담배를 끊기로 약속한 건 잊은 모양이었다. 곧 다 피우고 두 개비째를 입에 물었다.
며칠 전에 초록인가 뭔가 하는 애 때문에 병원에서 마주치고 오늘은 이강유 비뇨기과에서 마주쳤다. 저번에도 확실히 살이 빠진 것 같다는 느낌이었는데 간호사복 입고 있는 걸 보니 더 그렇다.
안 죽고 살아있길래 뭔가 마음이라도 다잡았나 보다고 생각했는데 얼굴색이 파리한 게 영 아닌 것 같다. 하여튼 간에 칠칠찮게 신경 쓰이는 놈이다.
“…….”
역시 그날 밤 때문인가, 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복잡해진다. 강동현 본인도 맨정신에 그런 짓을 저지른 게 충격적인데 당한 쪽이야… 그것도 죽으려고 곧장 마포대교로 달려가 그전과는 다르게 도착하자마자 뛰어내리려고 했던 날인데.
‘왜 그랬지….’
강동현은 짜증이 슬금슬금 나는 걸 느꼈다. 인상을 찌푸렸다. 강동현도 황경호만큼이나 그날 밤의 일을 외면하고 싶어 했다. 그래서 제대로 생각하려고 하지 않고 여자 친구나 가족들에게 안 하던 짓을 하며 신경을 쓰고 시선을 돌리려고 했다.
그냥 넣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 있었다. 그때도 그대로 걔가 한강 다리로 뛰어가서 식겁했었지만. 한창 그런 짓을 하다가 그런 생각이 든 거라 크게 이상하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나중에 되어서야 ‘아, 이런 정신 나간 놈한테 그런 마음을 먹다니’라고 스스로 질리기는 했지만.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던 건 인정한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여자 친구를 배신하고 싶었던 건 아니다. 어제 그런 식으로 다른 여자에게 유혹당해도 다른 생각은 들지도 않았는데 하필이면 저런 볼품없는 거 때문에 이런 고민을 해야 하는지. 진짜 발기부전과 불감증 때문에 사람이 이렇게까지 되어야 하나….
강동현은 그런 식으로 황경호에게 드는 죄책감에서 계속 눈을 돌리려 했다.
*
4월이 되니 진짜 봄이 된 거 같다. 벚꽃도 봉오리가 져서 곧 필 것 같다. 영화 촬영은 마지막 한 장면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벚꽃이 개화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한 손엔 담배, 책상엔 커피, 다른 손엔 대본. 살짝 눈이 충혈된 미남자는 그렇게 집중해서 대본을 보고 있었다.
올해 들어오며 드라마 대본을 엄청 받았다. 강동현은 재작년부터 주인공을 했던 드라마를 두 개나 대박을 쳤기 때문에 남자 주인공으로 캐스팅하고자 하는 작가나 제작사들이 많았다. 올해 들어서 화보 촬영이나 CF 촬영, 영화 촬영 등으로 바빴지만, 무엇보다도 제대로 된 차기작을 고르려고 무척이나 고심했다. 3월이 되기 전에 결국 하나를 정했고 3월 중순에 크랭크인 했다. 4월 말부터 방영이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갈 때쯤 되니 다음 영화 대본이 우수수 들어온다. 강동현은 스스로 대본을 정하고 싶어 했기 때문에 들어오는 대본들을 전부 다 읽는다.
“올해 되면 좀 쉬려고 했는데… 아무리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지만 너 괜찮냐? 요즘 진짜 피곤해 보이는데.”
본격적으로 방영에 들어가면 쪽대본과 그에 따라 꼬인 촬영스케줄 때문에 더더욱 컨디션 관리하기가 힘들어질 것이다. 모니터링을 위해 틀어놓은 TV에서 재방송 프로그램 하나가 방영된다.
『네, 여러분! 에어리어TV입니다.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CF가 있죠. 그렇습니다. 바로바로~ I 화장품의 이 광고죠!』
한국에 여자를 성적 대상화한 CF나 광고는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여성의 몸을 부각한 판넬이나 포스터가 도난당하기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이번 화장품의 광고는 여성 화장품을 광고하는데 육감적인 남자 배우가 등장한다.
짧은 드라마를 연상시키는 광고는 5부작으로 지금은 1편만 TV에서 방영되고 있었다.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에 업로드된 광고 영상의 조회 수가 200만을 넘으면 다음 편을 방영하겠다고 알린 상태다. 이미 조회 수는 500만이 넘었다.
세련되고 도회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얼굴을 가진 여자 모델은 그렇게 많이 알려지지 않은 신인 모델 겸 배우였다. 음악은 경쾌하면서도 부드럽다. 침대에서 막 잠에서 깬 여자는 햇살에 눈이 부셔서 손으로 눈을 가린다. 그때 커다란 남자의 손이 여자의 얼굴을 감싸 부드럽게 매만졌다. 곧 화면을 가리며 근육질의 커다란 등이 나타난다. 그는 침대에 앉은 채 허리를 숙여 여자의 뺨에 입을 맞춘다. 얼굴은 잘 드러나지 않았다. 그 사이 카메라는 남자의 팔을 잡고 있는 여자의 손톱에 발린 매니큐어, 잘 염색된 머리카락, 고운 피부, 입술, 눈썹 등을 비추었다.
『넌 아침에 제일 예뻐.』
남자의 속삭이는 목소리가 음악을 뚫고 크게 울린다. 여자는 밝게 웃으면서 남자를 끌어안으며 그의 어깨너머로 카메라를 직시한다. 그러면서 화장품 브랜드 이름이 떠오르고 끝난다.
『두 모델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죠. 광고로 인해서 모델들이 이렇게까지 주목받는 것은 이례적인데요.』
리포터의 설명을 끝으로 스튜디오로 돌아온 화면에서 메인 MC들과 패널들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마 짧은 드라마 형식으로 만든 CF라 우리나라에선 선보이지 않은 새로운 방식이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얼굴이 드러난 여자 모델은 CF를 처음 방영한 날 곧바로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하며 큰 관심을 끌었는데요.』
『<신디>라는 드라마에서 단역으로 잠깐 출연한 적이 있다고 하죠. 그때도 단역임에도 불구하고 굉장한 미모로 화제가 되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대세 여자 연예인들만 한다는 화장품 광고 출연까지 하는군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터넷에서 그럼 남자 모델은 누구냐! 라고 화제죠. 화장품 회사 홈페이지를 들어가 보면 화장품 회사의 이름과 함께 언급된 남자 연예인들의 이름을 모아 두고 투표 또한 할 수 있게 해두었죠. 보면 강동현 씨, 박도진 씨, 주인제 씨 등등 대세 남자 배우들의 이름도 많이 보이고 여자 모델과 같이 무명의 모델일 거란 말도 많습니다. 내일 2편이 방영된다고 하니 다들 궁금증을 푸실 수 있겠죠?』
강동현은 앉은 자리에서 내리 담배 반 갑과 대본 3개를 끝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슬슬 준비해야지?”
시계로 시간을 확인하고 그렇게 물었다. 남성복 화보 촬영 겸 인터뷰가 있었다. 담배를 너무 많이 피워 냄새가 배 샤워를 하고 면도도 다시 했다. 편한 복장이지만 옷도 갈아입고 촬영지로 향했다.
쓰리 버튼, 투 버튼 등등 옷을 엄청 갈아입으면서 사진을 찍었다. 잡지에 같이 넣을 인터뷰도 같이하고 끝날 때쯤에 매니저가 좀 굳은 얼굴로 강동현을 불렀다.
“은혁아.”
“응? 왜?”
“금방 아는 기자한테서 연락이 왔는데….”
“응.”
강동현은 마지막으로 코트에 캐시미어 스카프, 장갑에다가 빨간 장미 꽃다발까지 든 채로 사진을 찍고 있던 찰나였다. 겨울용이었지만 한번 느낌을 보고 싶다며 추가 촬영을 하고 있었다. 강동현은 사진사의 요구에 따라 포즈나 시선 처리를 했다.
“그… 니가 후원하는 그 꼬마애 있잖아. 머리에 종양 있다던….”
“응? 걔가 왜.”
강동현은 촬영을 하다가 고개를 돌렸다. 사진사나 다른 사람들도 매니저의 말을 들었는지 그에게 시선을 돌리며 촬영이 중단되었다. 강동현이 카메라 앵글에서 나와 매니저에게 다가갔다. 강동현이 다가오자 매니저가 작은 목소리로 말을 했다.
“그 기자가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고… 걔… 죽었다고… 오늘… 기사 내도 되냐는데.”
강동현이 매니저의 얼굴을 다시 보았다. 강동현은 사진사에게 뛰듯 걸어갔다.
“오 작가님, 저 사진 더 촬영할 거 남았나요?”
“응? 아니… 이것도 추가 촬영이었으니까… 왜. 무슨 일 있어?”
“저 급하게 병원 좀 가봐야 할 것 같은데…. 옷은 갔다 와서 바로 드릴게요…!”
강동현은 이미 뒷걸음질을 치듯 뛰어 촬영장을 나갔다.
“은혁아, 지갑!”
강동현의 지갑을 가지고 있던 매니저가 황급히 따라붙어 지갑을 던져주었다. 강동현은 그것을 받아서 얼른 엘리베이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 택시를 잡았다.
“Y 대학 병원이요. 빨리 가주세요.”
급하게 나오다 보니 꽃다발까지 가지고 나왔다. 강동현은 버릴 수도 없어 그대로 쥔 채 휴대폰을 찾았다. 놔두고 왔다. 인상을 팍 찌푸리며 한숨을 쉬었다. 초조하게 다리를 떨며 도착하기만을 기다리다 도착하자마자 지갑에서 지폐를 잡히는 대로 내고 잔돈도 받지 않고 내렸다. 그리고 무작정 소아병동으로 달렸다. 대충 기억나는 대로 저번에 왔던 병실 미닫이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 아무도 없었다. 식은땀이 흘렀다. 나가서 아무나 붙잡았다.
“여기… 헉… 여기 병실에 있던 꼬마애… 걔 어떻게 됐어요?”
“네… 네?”
갑자기 연예인이 뛰어와 이런 소리를 하니 누가 놀라지 않겠는가. 강동현은 숨이 차서 겨우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 죽었다고… 후우. 헉.”
“아, 걔요. 그 환아라면 벌써 영안실에….”
“그럼 환자 가족들은요?”
“다 그쪽에 있을 텐데요.”
“영안실이 어딘가요?”
“본 건물 지하 2층인데….”
강동현이 곧바로 다시 달려갔다. 대기실을 지나 밖으로 나가 본 병원 건물로 달려가다 무언갈 발견하고 멈춰섰다. 해는 예전에 졌고 밤이었다. 쌀쌀했다. 병원 앞은 주홍빛 가로등만 줄지어 거리를 비추고 있었다.
어린 여자아이와 젊은 청년 하나가 손을 잡고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강동현은 그쪽으로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소아병동 건물 앞에서 주차장 쪽으로 가로등 세 개 정도 떨어진 위치에서, 강동현이 불빛 아래에 서자 드디어 그 둘은 강동현을 발견했다.
장미꽃은 전속력을 다해 달리느라 이제는 조금만 걸어도 꽃잎이 떨어진다. 꽤 비싼 꽃다발일 텐데 말이다. 주홍빛 가로등 아래로 훤칠한 남자는 겨우 숨을 고르고는 당황한 목소리로 물었다.
“애 죽은 거 아니었어?”
황망하게 갑자기 나타난 강동현을 아이나 어른이나 할 것 없이 약간 얼빠진 얼굴로 보고 있었는데 강동현이 그렇게 입을 열자 황경호가 기겁을 하며 아이를 안아 들고 귀를 막았다.
“애 앞에서 갑자기 무슨 소리에요!!”
“아… 뭐야… 죽은 거 아니었잖아….”
강동현은 땀이 흥건히 잡힌 장갑을 벗고 턱을 손등으로 훔쳤다.
“계속 애 앞에서 죽…! 그런 말 하지 말라구요! 갑자기 나타나서 뭐하는 짓이에요!!”
쟤가 이렇게 큰소리로 소리 지르는 거 진짜 오랜만에 듣는다. 강동현은 그렇게 잠깐 아이랑 황경호 둘 다 빤히 쳐다보다가 깊게 한숨을 내쉬며 시선을 돌렸다.
“안 죽었으면 됐어.”
“뭐가 됐다는 거야!!”
애 앞에서 못 하는 소리가 없는 놈이다. 황경호가 황당함과 화가 적절히 섞인 얼굴로 강동현을 쳐다보고 있자 강동현은 좀 신경질적인 어조로 인상을 찌푸렸다.
“아는 기자가… 후… 아는 기자가 걔가 죽었다고 연락을 해서… 아니면 됐다.”
“…….”
황경호도 말문이 막힌 표정이었다. 잠깐 서로 어떻게 할 수 없는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간다.”
“…잠깐만요.”
황경호가 아이를 다시 추슬러 안으며 뭔가 골치 아픈 표정이더니 그렇게 말했다.
“잠깐만 기다려요.”
황경호는 그렇게 말하고는 아이를 안고 빠른 걸음으로 소아병동으로 갔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바로 나왔다.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뭔가 뚱한 얼굴로 서있는 남자였지만, 모르는 사람이 봤을 때는 아마도 화보 촬영이라도 하는 줄 알 것이다. 아무것도 안 해도 그림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남자인데 일이라도 하다 온 건지 메이크업에 옷까지 저렇게 입고 있으니 안 그래도 위화감 들 남자가 더하다.
“…여기요.”
황경호는 들어갔다 나오면서 뽑아온 커피 캔을 강동현에게 주었다.
“오늘 초록이 옆방에 있던 남자애 하나가… 죽었어요. 아마 잘못 알고 연락이 간 모양이네요.”
저번에 강동현이 Y대 병원 소아병동에 돈을 기부한다고 뉴스가 나서 이쪽을 체크하는 기자가 있는 모양이다. 강동현은 커피를 건네는 황경호의 얼굴을 보았다가 커피를 받아들었다.
“…….”
“…….”
“…….”
“…그래서… 애는 괜찮은 거야?”
“아, 네. 뭐…. 잘 낫고 있어요. 잘 걸어 다니고 이제….”
“…….”
“…….”
“…너는.”
“네?”
“넌 잘 지내냐고.”
전에 병원에 달려왔을 때는 짧은 용건만 말하고는 아무것도 얘기를 나눌 수가 없었다. 이강유 비뇨기과에서 마주쳤을 때도 마찬가지다. 못 볼 걸 봤다는 태도로 그렇게 스쳐 지나갔었다.
“잘 지내요.”
“그래….”
이번이 뭐가 다른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서로 어울리지도 않는 이런 대화나 하고 있다.
“…….”
“…….”
짜증 나… 강동현은 인상을 찌푸리며 한숨을 쉬었다.
“간다.”
“아, 네… 안녕히 가세요.”
강동현은 옆의 쓰레기통에 반쯤 먹은 커피 캔을 버리곤 곧장 앞으로 걸어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