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그렇다고 을이 병신이라고 생각하면 오산.
황경호는 입을 딱 벌렸다.
“이건…. 사기야. 싫어요.”
“너한테 이제 거부권 없어.”
이렇게 되면 거부권이라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는 게 되지 않는가. 강동현은 얼른 황경호를 재촉했다.
“내가 지금까지 니가 말하는 거 좋아서 들어줬다고 생각해? 장난해? 빨리 안 기어 올라와?”
황경호는 정말 보복을 당할 가능성이 하나도 없다고 자신만만해 있던 상태였는지 몹시 당황해하며 주저했다. 강동현은 짜증과 희열을 동시에 느끼며 황경호의 상의를 홱 들어 올렸다.
“빨리 벗어.”
황경호는 정말 벗고 올라올 수밖에 없었다. 황경호는 그 수많은 괴상한 짓을 강동현한테 시켜놓고 자신을 싹 외면할 정도로 뻔뻔하지가 못했다. 아마 반대의 상황이었다면 강동현은 뒤도 안 돌아보고 외면했을 테지만.
“남자 거시기 보면서 하고 싶어요?”
황경호는 마지막까지 그렇게 저항했지만 강동현에게는 턱도 없었다. 황경호는 직장에서 발가벗은 채로 남자의 위에 올라탈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앉지도 못하는 황경호의 엉덩이를 제대로 거시기 위에 푹 눌렀다. 황경호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당황한 얼굴을 했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그런 표정들이 뭔가 자극을 주었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그러고 보니 뭐하려고 맨날 뒤로 돌려서 했지? 라고 생각하며 느긋하게 그를 구경했다.
“빨리해. 기다리는 사람 돌아가시겠다.”
계속 황경호가 주저하자 강동현이 직접 황경호의 엉덩이를 잡고 자기의 성기에 슥슥 문질렀다. 황경호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일단 어쩔 수 없이 해야 된다는 기분은 든 건지 황경호는 엉덩이를 비비기 시작했다.
“하아… 이거 괜찮네.”
강동현은 또 습관적으로 손이 나갔다. 황경호의 부드러운 허벅지를 만지다가 엉덩이를 붙잡아 주물러 대었다. ‘가슴이 없으니 이거라도’라는 마인드겠지만 황경호는 굉장히 불쾌하고 싫었다. 하지만 너무 당황스럽고 부끄러워서 뭐라 말 한마디도 할 수가 없었다. 황경호는 거의 어깨까지 벌게져서 입만 꾹 다물고 겨우 움직이고 있었다. 강동현은 그 얼굴을 올려다보며 씩 웃었다. 황경호는 강동현의 그런 얼굴을 보고 아무 말 없이 그냥 고개를 돌려 피했다.
“좀 더 꽉 붙여서 해.”
강동현은 매우 흡족했다. 승리감과 부드러운 살결에 비벼지는 그곳의 느낌, 평소에는 심드렁하고 귀찮다는 얼굴이나 작위적인 미소만 띠고 있는 저 얼굴이 새빨갛게 붉어져서 난처해 하고 있는 모습. 모두 마음에 들었다. 기분 좋게 흥분하고 있었다.
첫 번째 할 때도 저런 얼굴이었던 걸까. 황경호는 강동현의 얼굴은 쳐다보지도 못하고 울 것 같은 얼굴로 강동현의 가슴팍만 쳐다보고 있었다. 주먹은 꽉 쥐고 몸을 떨고 있었다. 그 얼굴이 생각보다 꽤 왔다.
‘이게 진짜 날 호구로 봤지, 어? 내가 바본 줄 아냐. 다 자기 마음대로 될 줄 알았다면 완전 오산이다. 세상 무서운 걸 아직 모르는구만!’
황경호가 제정신에 강동현의 지금 생각을 읽었다면 죽으려고 하는 사람한테 자기 거시기나 만져 달라는 사람에게 그런 소리 듣기 싫다고 했겠지만 지금의 그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다. 어쨌든 입만 살아서 나불나불 강동현에게 대들던 이 간호사가 이렇게 자신에게 순종할 수밖에 없는 지금 이 순간이 강동현은 매우 유쾌했다.
절정이 다가오자 강동현은 황경호의 엉덩이를 직접 잡아 자신의 하체에 문질렀다. 황경호가 저도 모르게 밀어내려고 했지만 이미 제 쾌락에 흠뻑 젖어있는 남자를 무슨 힘으로 말리겠는가. 황경호는 다른 사람의 손에 의해 제멋대로 음란한 몸짓을 하고 있는 자신의 몸이 불쾌했다.
“윽… 읏… 아….”
손으로 할 때에 비해서는 직접적인 마찰은 적었는데도 비슷한 시간에 사정할 수 있었다. 황경호는 얼굴이 하얘졌다. 강동현의 그 대물이 지려버린 정액이 자기 엉덩이 사이에 엉망으로 묻어버렸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여자가 아니라지만, 여자였다면 이만큼 싸놓은 걸로 임신이라도 할 수준이었다.
설상가상으로 항상 가져오던 물티슈도 없다. 황경호는 윗도리만 겨우 입고 그걸 끌어내려서 간신히 아랫도리를 감추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다. 강동현은 벌써 옷도 다 추스르고 선글라스도 꼈다. 그리고 황경호를 돌아보면서 물었다.
“자, 요구는?”
이제 니가 뭘 더 지를 수 있는지 보자, 라는 식의 매우 거만한 태도였다. 황경호는 평소 같으면 그런 강동현의 태도를 대번에 눈치챘겠지만 지금은 정말 난처하고 당황스럽고 약해져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 한동안 그런 모습으로 강동현을 올려다보다가 그 태도에 떠밀려 더듬더듬 대답했다.
“……배, 백만 원 주세요.”
“어, 웬일이야. 카드라도 왕창 긁었냐?”
강동현이 빙글빙글 비웃는 태도로 물었다. 황경호는 옷도 제대로 입지 못하고 강동현의 정액으로 엉망이 된 모습으로 잠시 말을 머뭇거리다가 결국 말하고 말았다.
“아뇨… 저 이제 돈 달라고 할 테니까 그쪽도 그냥 손으로만 해달라고 해주세요.”
황경호는 거부권이 무효가 되었다는 것이 상당히 심각했던 모양이다. 지금까지 약한 소리 한 번도 안 했던 애가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닌가. 누가 봐도 애처로워 보이는 모습이었지만 강동현은 오히려 그것이 더욱 가학심을 끌어올리는 것을 느꼈다. 강동현은 이겼다, 라고 생각하며 대답했다.
“싫어.”
*
황경호는 일단 불쾌함을 넘어서서 도저히 이 상태 이대로 나갈 수가 없었다. 어쩔 줄을 몰라 하며 이걸 손으로 닦아야 하나, 잘못하면 시트에 묻겠다 이런 생각을 하며 맨발로 바닥에 내려왔다. 그리곤 갈피를 못 잡고 서성거리며 이 서랍, 저 서랍을 다 열어보며 뭐든 도움이 될만한 걸 찾고 있었다. 거기다가….
부우우웅. 부우우웅.
“…하아…. 여보세요? 네. 네. 죄송해요. 오 간호사님. 잠깐 일이 생겨서. 네. 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네….”
설상가상으로 전화까지 오기 시작했다. 근무시간인데 이렇게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었다. 황경호는 없는 것을 알면서도 몇 번이나 같은 자리를 뱅글뱅글 돌며 닦을 것을 찾았다. 그러다가 결국 포기하고 한숨을 푹 쉬었다.
‘역시 침대 시트를 벗겨서 대충이라도 닦고… 얼른 들고 가서 세탁하면 되겠지?’
속옷으로 닦고 노팬티로 옷을 입고 나갈까 했는데 도저히 작은 팬티로는 강동현이 싸질러 놓은 것의 반의반도 못 닦아낼 것 같았다. 일주일을 금욕하고 온 강동현의 체액은 냄새도 상당해서 옆에 지나가기만 해도 사람들이 눈치를 챌 것이었다.
손으로 할 때는 손에 직접 싸게 하지 않고 물티슈나 수건 같은 것으로 감싸서 받아냈었다. 그럴 때도 물티슈로 박박 손을 닦고 가도 너무 찜찜해서 비누로 몇 번이나 씻고는 했었는데, 지금은 정말 아직도 바닥에 뚝뚝 떨어질 정도로 엉덩이와 허벅지에 묻어 있었다.
황경호는 바지와 팬티를 홀딱 벗고 맨발인 채로 끙끙거리며 병원 침대의 시트를 벗기기 시작했다. 겨우 반쯤 벗겨내고 있는데 갑자기 누군가 밖에서 병실의 잠긴 문손잡이를 짤각짤각 돌리는 것이 들렸다. 황경호는 거의 경기를 일으킬 뻔하였다.
‘누, 누구지. 여기 진짜 아무도 안 오는데… 오면 안 되는데…!’
황경호는 침만 꼴깍꼴깍 삼키면서 팬티랑 바지를 붙잡고 지금이라도 얼른 그냥 입어야 하나 하고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있었다.
“뭐야? 갔나? 야, 문 열어.”
황경호는 그 목소리를 듣고 조심스럽게 문으로 다가갔다. 황경호는 조금 주저하다가 문 뒤에 숨어서 살짝 문을 열었다. 열리자마자 강동현이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와서, 황경호는 기겁을 하며 벽에 딱 달라붙어 밖에서 보이지 않도록 숨었다.
“뭐 하냐?”
강동현은 벽에 딱 달라붙어서 사색이 되어 있는 황경호를 정말 이상한 것을 본다는 듯한 얼굴로 내려다보았다. 황경호는 그런 시선에 아랑곳할 것도 없이 강동현이 반쯤 열어놓고 들어온 문을 황급히 쾅 하고 닫았다. 강동현은 선글라스를 벗으면서 그것을 피식하고 비웃었다.
“뭐 어때서? 좀 보여준다고 닳는 것도 아니고.”
“여긴 내 직장이라구요. 이러고 있는 모습을 다른 사람들한테 보일 순 없잖아요.”
“뭐 어때. 넌 내 이미지 망하게 했잖아.”
“그건….”
황경호는 바로 니가 먼저 시작했잖아, 라고 되받아치려다 관두었다. 말도 통하는 사람한테 해야지. 그냥 한숨을 쉬고 고개를 돌려버렸다.
“자.”
강동현은 황경호한테 무언가를 던졌다. 황경호는 얼떨결에 그것을 받았다.
“…진짜 이럴 거예요?”
황경호는 은행 로고가 선명하게 찍힌 돈 봉투를 받고 정말 재수 없는 얼굴로 씨익 웃는 강동현의 얼굴을 보았다.
“주고받는 건 정확하게 해야지.”
“…….”
황경호는 뭐라고 또 하려다가 그냥 한숨을 쉬고 입을 다물었다. 황경호는 봉투를 반쯤 시트가 벗겨진 침대 위에다 던졌다. 강동현은 그런 황경호를 꼴 좋다고 보며 킥킥거렸다. 면전에다 돈까지 확실하게 던져줬겠다, 속이 시원해진 강동현은 다시 선글라스를 끼고 나가려고 하다가 잠시 의아해서 황경호를 다시 돌아보았다.
“야, 너 근데 안 가고 지금까지….”
부우우….
“아, 응… 갈게. 오 간호사님께 죄송하다고… 아, 진짜? 어, 알았어. 지금 바로 갈게. 어. 어.”
황경호는 폰이 채 한 번도 울리기 전에 얼른 받고는 정말 미안한 얼굴이 되더니, 곧 끊고 진짜 비장한 표정이 되어서 자기 옷을 바라보았다.
‘일단… 그냥 입자. 그냥 입고 얼른 화장실로 달려가서 씻고, 간호사실로 가서 옷 갈아입는 거야. 팬티는… 나중에 사자. 설마 보이겠어?’
황경호는 잠시 손을 바지 밑에다 대어보고 비치는지 안 비치는지 보다가 결심을 하고는 속옷을 집어 들었다. 강동현은 간호사의 왼쪽 다리 안쪽에 발목까지 주르륵 흘러내려 있는 액체와 바닥에 뚝뚝 떨어져 있는 것들을 차례대로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야.”
황경호가 화들짝 놀라서 히익! 하고 어깨를 떨었다. 그는 가슴께를 붙잡고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황경호는 한숨을 푹 내쉬며 아, 깜짝이야… 라고 중얼거렸다.
“네… 아직 안 가셨어요?”
전화 받는다고 그가 나가지 않은 걸 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뭐야? 물티슈 안 갖고 왔어?”
“…네….”
가져올 새를 줬냐고 따질 기력도 나지 않았다. 황경호는 경위가 어찌 되었든 이렇게 꼴사나운 모습으로 남 앞에 서있는 게 참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연히 그것 가지고 놀림 받는 것은 더욱 기껍지 않았고. 그는 미간을 좀 찌푸리고 사선으로 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갖다 달라고 하면 되잖아?”
강동현은 그런 황경호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바라보았다. 황경호는 갖다 달라고 부탁할 새도 없이 나가지 않았냐고 말할 기운 또한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강동현도 알아차렸는지 오히려 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로 한심하다는 듯이 말했다.
“전화하면 되잖아? 내 번호 있잖아?”
그 말에 황경호는 도리어 자기도 이해가 안 된다는 얼굴로 시선을 돌려 강동현을 쳐다보았다.
“…갖다 달라고 해도 되는 거였어요?”
“뭐?”
“…….”
“…….”
강동현은 인상을 찌푸렸다.
‘이건 도대체 날 어떻게 생각하는 거야?’
강동현은 짜증스러운 한숨을 쉬며 캡모자를 한 번 벗었다 다시 고쳐 썼다.
“기다려.”
강동현은 정말 금방 나갔다가 돌아왔다. 그리고 황경호에게 아까 돈 봉투를 던지는 것과 비슷하게 물티슈를 휙 던졌다. 황경호는 몇 번 손에서 튀어서 떨어뜨릴 뻔했다가 겨우 제대로 잡았다. 황경호는 물끄러미 그걸 내려다보았다. 숨을 한 번 크게 들이마셨다가 후우,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고맙습니다, 도은혁 환자님.”
그것만으로 황경호는 얼굴이 확 폈다. 간호사는 얼른 물티슈를 뽑아 허리를 숙여 자기 발목부터 닦아 올리기 시작했다. 손에 닿기는 싫은지 몇 장씩이나 뽑아서는 꼼꼼히 닦았다. 종아리를 지나 왼쪽 허벅지를 닦아 올리다가 티슈가 모자라서 새것을 몇 개 다시 뽑는데 강동현이 자신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물티슈 갖다 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사오신 거면 제가 다음에 돈 드릴게요. 이제 가셔도 돼요.”
“…….”
강동현은 정중하지만 어쨌든 안 가고 뭐 하냐, 라는 뜻의 말에 화가 살짝 나는 기분이었다. 강동현은 선글라스의 안에서 눈살을 찌푸리고는 몸을 돌려 인사도 없이 그냥 나갔다. 안녕히 가세요, 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것도 짜증이 났다.
전에 황경호가 멀쩡한 얼굴을 하고도 한강 다리로 달려갔었던 때와는 느낌이 완전 달랐다. 오늘의 그는 괜찮았기 때문이다. 전의 황경호는 당황하다 못해 수치심과 자학심에 물들어 있었다. 그것을 남에게 보였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자기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끔하게 표정을 정리하고 돌아섰다. 병원 식구들에게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얼굴로 웃으며 인사를 하곤 곧바로 한강으로 가버렸었다.
하지만 오늘은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전화, 그러니까 정확하게는 오늘은 그때와 다르게 병원 일이 끝나지 않을 때였고 해야 할 일이 있는데 하지 못해서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이 죄송스러워 강동현에게 화가 나고 짜증이 나는 것도 잊어버렸다. 심지어 지금의 상태가 그가 일으킨 것이라는 것도 일단 한 수 접어두고 저렇게 대할 수 있는 간호사의 정신머리에 정이 떨어졌다.
‘뭐 떨어질 정이랄 게 있는 것도 이상하지만….’
강동현은 그 간호사가 자기한테 시킨 일들이 억울하고 화가 나서 화병까지 나서 병원에 실려 갔었다. 하지만 강동현이 아무리 복수심에 불타서 엄청 괴롭힌다고 해도 또 물티슈를 가져다주면 저 간호사는 아마 또 저렇게 고맙습니다, 도은혁 환자님, 하고 말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강동현은 분명 그 간호사에게 한 방을 먹였는데도 찜찜한 것이 기분이 나빴다. 생각을 해보면 자기가 당한 것의 십 분의 일도 제대로 돌려주지 못해서 그런 것 같았다. 아무리 성질을 부려도 강동현은 계약상 을이라 그 간호사에게 되돌려줄 수 있는 복수가 한정되어 있었다. 그 간호사는 무엇이든 자기가 원하는 것을, 강동현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요구할 수 있는 반면, 강동현은 고작해야 몸으로 때우는 것 정도밖에 요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기분이 나쁜가 보다.
강동현은 그 간호사에게 엿을 덜 먹인 게 전립선염에 걸려 화장실을 오고갈 때 마냥 찝찝했다. 다음번엔 무엇으로 그 간호사에게 물을 먹여야 할지 절로 고심하게 되었다.
‘남의 건 막 만지면서 자기 만지는 건 싫어하지? 울 것 같은 얼굴이나 하고 말이야. 흥, 다른 사람들한텐 간도 빼줄 것 같이 굴면서 나한테만 왜 그렇게 비싸게 구는 거야? 진짜… 다음엔 뭐 할까? 뭐 하지?’
강동현은 아주 잘생긴 얼굴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아주 되먹지 못한 상상을 하기 시작했다.
‘전에 상담실로 끌고 가서 선 채로 할 때 보니까 얼굴이 가까워서 괜찮던데. 내 걸 만지면서 화난 얼굴로 노려보는 것도 같잖고. 아무 곳에나 끌고 가서 벽에다 짓누르고 억지로 벗겨서 내 걸 만지게 하는 거지. 누가 올까 봐 전전긍긍하겠지만, 어쨌든 내가 원하는 걸 피할 수 없으니까. 아. 아니면 억지로 벗겨서 깔아 누르는 거야. 생각해보니까 맨날 내 위에 태웠지 내 밑에 깔린 건 본 적이 없네. 분명 엄청 싫어하겠지…. 큭큭.’
“얘 봐라… 너 얼마 전에 화병 나서 병원 실려 갔으면서 지금은 컨디션 좋나 봐?”
머리를 해주고 있는 미용실 디자이너가 팔짱을 낀 채 눈을 감고 피식피식 웃는 강동현을 보고 그렇게 말했다.
“아, 그럴 일이 있었어요.”
“나 너 화병 나서 실려 간 거라는 소리 듣고 너무 웃겨서… 킥킥.”
“복수했더니 좀 괜찮아졌어요.”
“누가 너한테 나쁜 짓 했었어?”
“뭐 그런 거였죠. 불공정 계약 때문에 고통받다가 이제 정의가 좀 바로 섰어요.”
“뭐야, 소속사 문제야?”
강동혁이 피식 웃으면서 아니라고 대답했다.
“개인적인 일이에요.”
정말 이놈의 병만 고치고 나면 그 병원 쪽으로는 돌아눕지도 않을 것이다. 정말 이것만 제대로 나으면….
[그리고 그때 갑이 원하면 을이 갑을 죽여준다.]
“…….”
“어머, 동현아. 갑자기 움직이면 어떡해?”
“어? 아, 죄송해요.”
강동현이 갑자기 심각한 고민을 하듯 턱을 괴어서 디자이너가 한소리를 했다. 다시 허리를 펴고 제대로 앉았다.
‘걔… 이제 좀 괜찮지 않아? 아직도 그렇게까지 죽고 싶어 하는 것 같이 보이진 않던데. 저번에도 금방 우울해져서 죽겠다고 한강 달려가는 거 아닌가 싶었는데 의외로 멀쩡히 일 걱정이나 하고 있고… 죽는 게 그렇게 쉬운 일도 아니고….’
일단 계약상 날짜가 다 될 때까지는 그 간호사가 강동현의 거시기 수발을 들어줘야 하는 입장이었다. 그날이 다 되어 그 간호사의 기분이 바뀐다고 해도 아니, 바뀌면 강동현의 입장에서도 훨씬 좋았다. 죽기 싫다는 인간을 억지로 죽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그래, 그때쯤 되면 기분이 바뀌지 않겠어? 좀 치사하긴 하지만… 그때쯤이면 생각이 바뀔 거야.’
강동현은 그렇게 애써 생각했다.
*
“도은혁 환자님, 많이 좋아지셨네요.”
의사는 이가 드러나는 시원한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강동현에게 말했다.
“특히 발기부전 쪽으로는 정말 많이 나으셨군요. 조금 둔하기는 하지만 이제 약을 먹지 않아도 발기가 될 수 있을 정도는 된 것 같습니다.”
“…….”
검사를 할 때 얼핏 서는 것은 나아서 그런 게 아니라 저 간호사가 있어서 그런 것이다. 강동현은 전극으로 자극을 받아 발기가 되는지 검사할 때마다 그 작업을 하는 간호사가 자신에게 해줬던 것을 생각하며 겨우 조금 세우곤 했다.
“저희 병원 오시고 나서부터 한 번이라도 약 없이 애인분과 성관계를 시도한 적이 있으신가요?”
“아뇨… 아직.”
의사가 굳이 억지로라도 성관계를 시도해보라고 말하지 않아서 은근히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환자 1호였다. 강동현은 아직 그다지 자신(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자존심이 상했지만)이 없는 상태에서 혹여 약을 먹지 않고 영지와 성관계를 시도해보라는 소리를 들을까 봐 살짝(몹시) 중압감이 들었다. 솔직히 약을 먹고 하는 것도 엄청나게 자존심이 상한다.
“도은혁 환자님은 병리적 장애라기보다는 아무래도 심리적인 부분이 크니까요. 처음에 병원에 왔을 때 도은혁 환자님께서는 스트레스 관리를 잘하는 편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제가 진단하기에는 도은혁 환자님께선 지금 스트레스가 과중해서 병에 걸리신 겁니다.”
“…그렇습니까? 하지만 전 정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는 생각해본 적이….”
“불규칙한 수면과 식사 습관은 아무리 스스로는 익숙하다고 생각해도 신체에는 무리가 갑니다. 게다가 도은혁 환자님은 연예인이라 많은 사람의 시선을 항상 신경 써야 하죠. 그게 생각보다 큰 스트레스일 겁니다. 애인도 오래전부터 사귀고 계시다고 하니 응당 상황에 변화에 따른 스트레스가 존재하고 있을 겁니다.”
의사는 뭐라도 꿰뚫어보고 있는 양 물 흐르듯이 말했다.
“사실 도은혁 환자님처럼 자기는 스트레스를 안 받는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스트레스를 엄청 많이 받는 경우가 많아요. 자기가 어디서 스트레스를 받는지도 잘 모르니까 자신은 스트레스를 안 받는다고 생각하죠. 그러니까 제대로 풀 수도 없고. 해소가 안 되니까 쌓이기만 하다가 문제가 생기면 아뿔싸, 하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정말로 자신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강동현은 잠시 생각에 빠져들었다.
다른 사람에 비하자면 짧은 무명생활일지도 모르겠지만, 강동현은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배우가 되기 위해 여기저기 발품을 팔고 다녔다. 그러니까 데뷔로 치면 지금 8년 차쯤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아역이 아닌 준주연급의 배역을 받았던 것은 2년 전부터였고 작년의 드라마가 대박이 나면서 스타 반열에 올랐으니 햇수로 약 5년은 꼬박 무명생활을 했다는 결론이 나왔다. 중간에 군대를 갔다 오긴 했지만.
무명 시절에는 솔직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미래가 불투명했고 잘 될지도 알 수가 없었고 원하는 배역은 안 떨어지고 열심히 하려던 것이 오히려 화를 불렀던 적도 있었다. 중간에 소속사 문제도 크게 한 번 있었고 아예 그만두자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고… 누군가의 연기는 너무나도 훌륭해서 입이 딱 벌어질 정도인데 자신의 작품을 보면 가끔 얼굴이 붉어질 정도로 부끄러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너무나 정신없이 자신을 단련하기 위해 살았기 때문에 스트레스라는 단어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작년 이래로 크게 잘 풀리고 나서는 일도 더 재미있고 그것을 사람들이 많이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기뻐서 또한 스트레스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살았다. 너무나 꿈꿔왔던 일이 점점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강동현은 그것을 스트레스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몇 시간도 자지 못하고 밤샘 촬영을 하더라도, 아무리 힘들어도 그것을 스트레스라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이건 강동현의 일이었고 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제가 일을 바꿀 수도 없는 거고….”
“짬짬이라도 운동을 하신다든가 좋아하는 취미 생활을 하시든가 정말 말 그대로 스트레스 상황에서 벗어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운동도 일 때문에 하는 게 아니라 정말 즐길 수 있는 것 말이죠. 요새 그런 일을 찾으셨던 것 아닌가요? 경과가 좋아서 도은혁 환자님이 따로 스트레스를 풀 계기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던 데요?”
“스트레스를 푼다고 해봤자….”
그 간호사? 강동현은 그의 얼굴을 퍼뜩 떠올렸다가 말을 멈추었다.
‘내가 그 간호사한테 스트레스를 풀고 있었던가?’
강동현은 그다지 친절하지도 상냥하지도 배려심이 깊은 성격도 아니었다. 딱히 막 산다는 소리가 아니다. 그냥 필요 이상으로 오버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대외적으로는 깍듯하고 인성이 바르고 매력적인 성격으로 정평이 나 있었다. 어느 정도 신비주의가 섞여 있기도 하고, TV에서 나오는 모습이 모두 거짓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신경을 써서 다듬은 모습인 것은 당연하다.
모든 사람이 대외적 이미지와 본성에 차이가 있겠지만, 실제 도은혁은 자기 의견이 강하고 고집스럽다. 이것도 항상 여자 친구랑 싸우면서 깨닫게 된 것이었다. 게다가 자기 사람과 아닌 사람의 경계가 확실해서 자기 사람이 아니라면 확실히 가차 없어지는 성격이라는 말도 그녀에게서 들었다.
알려진 배우가 되고 나니 불특정 다수에게 친절하게 대해야 하게 되었지만, 기본적으로 그는 가족이나 친한 친구들에겐 꽤 허물이 없다. 이젠 가족이나 친구에게도 그렇게 할 시간조차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다들 모르는 것뿐이다. 게다가 이 나이가 되어서는 시간을 주고 일부러 하라고 해도 하기 힘들다. 사회적 지위와 나이가 요구하는 행동이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간호사는 솔직히 강동현이 지금 생각하여도 정말 성질대로 대했다. 아니, 좀 더 나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평소에는 다른 사람의 감정을 쉽사리 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 그래도 신경을 썼다면 그 간호사는 그러거나 말거나, 솔직히 그가 마음 상하는 것은 눈치를 채더라도 그냥 그런가보다 싶었다. 잘못한 것이 있어도 사과하는데 그다지 부채감을 느끼지도 않았다. 성가시게, 라는 생각을 더 많이 했었다.
“어쨌든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약 없이 성관계를 시도는 해보실 수 있을 겁니다. 정 안되면 약을 먹어도 되구요. 그것에 너무 자존심이 상해하시거나 큰 의의를 두시지는 마시고 그저 한번 연습해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해보시는 겁니다.”
강동현은 의사의 말을 귓등으로 흘려 듣다가 문득 입을 열었다.
“저… 선생님.”
“네?”
“사실… 약을 안 먹어도 발기할 때가 있는데요.”
“자연적으로요?”
“네.”
“물리적 접촉 없이 시각적 자극이나 상상만으로도 발기가 되는 것인가요? 아니면….”
“물리적 접촉 없이도 발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만 요새는 그 사람이 만지면 서기는 하는데… 그리고 예전보다 늦기는 하지만 사정도 제대로 합니다.”
“오, 축하드립니다. 이미 약 없이 도전을 해보셨네요. 왜 말씀을 안 하셨어요?”
의사는 갑자기 차트에다 이것저것을 마구 적기 시작하며 관찰하듯이 강동현을 바라보았다.
“근데 그게 제 애인이 아니라서…….”
강동현이 아무 생각 없이 그 말을 했다가 헉, 하고 입을 다물었다. 의사도 잠깐 당황한 것처럼 보였지만 금세 그 기색을 숨겼다. 예전 강동현이 아무리 자신이 배우라지만 색안경을 끼고 보지 말라며 큰소리까지 쳤었는데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어찌 부끄럽지 않겠는가. 강동현은 인상을 찌푸리며 미간을 손으로 문질렀다.
“아, 그게 제가 양다리를 걸치거나 그러는 것이 아니라 하도 답답해서… 창녀나 그런 것도 아닙니다. 아는 사람이 그냥 손으로 해주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좀 있어서… 친구 같은….”
“네, 그러시군요. 섣불리 판단하기는 그렇지만 역시 아까 얘기했던 대로 그 친구분과 함께 하실 때는 스트레스 상황이 아니라서 그런 것 같군요.”
그러자 강동현이 퍼뜩 고개를 들며 물었다.
“그럼 제가 영, 아니, 제가 제 여자 친구랑 함께 하는 건 스트레스 상황이라는 겁니까?”
의사는 말실수를 했다는 듯이 얼른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여자 친구나 부인 같은 경우는 만족을 시켜줘야 한다는 강박감이 어느 정도 있는 편이죠. 때에 따라서는 그것이 스트레스 상황이 될 수 있구요. 아무리 피곤하고 오늘은 하고 싶지 않아도 애인을 상대해야만 하는 순간이 오면 그게 사실 그 어떤 일보다도 스트레스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도은혁 환자님은 젊으시니까 그런 생각 아직 해보지 않으셨을지도 모르지만요.”
“선생님은 그랬던 적이 있습니까?”
“왜 없겠습니까. 병원 일이 바쁠 때면 솔직히 아무리 애인이라도 신경 쓸 새가 없죠. 몸도 힘들고 머리도 아프고. 그런데 왜, 그래도 해야 할 때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그러면 딱 피곤해지는 거죠.”
의사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딱 해소만 하기 위한 섹스가 가끔 생각날 때가 있죠. 그렇지만 리스크가 커요. 사랑하는 애인을 잃을 수도 있고 지금까지 쌓아왔던 체면을 구기고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죠. 딱 한 번 그런 마음이 들었다고 다 날려 버리기엔 아까우니까 참기는 하는데, 제 말은 일단 남자들의 마음속에는 일종의 그런 본능이 있다는 거죠.”
본능대로 모두 다 행동한다면 여자든 남자든 팔자가 사나워질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 그렇기에 사람이 이성적인 동물이라는 것이지만… 아니, 사실 사람들은 그렇게 이성적인 동물이 아니다. 불완전하고 본능적이고. 그래서 다들 아차 하는 사이 순간의 유혹에 빠져버린다.
“그래도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설명을 하자면 그렇다는 것이죠. 아무리 멋진 여자를 애인으로 데리고 있는 남자도 보잘것없는 창녀들이랑 자서 다 잃어버리곤 하죠. 하지만 노력도 필요 없고 상대를 만족시킬 필요도 없는 그런 것들을 원하는 남자들이 존재한다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의사는 웃는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그 친구분도 도은혁 환자님께서 그런 중압감을 가질 필요가 없는 상대이니까 스트레스도 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발기도 되신 것 같습니다. 그 친구분과 삽입섹스까지 해보신 것입니까?”
“아뇨. 그 녀석은 남….”
너무 물 흐르듯이 말해서 저도 모르게 대답할 뻔하다가 헉, 하고 말을 멈추었다. 의사는 차트에 무언가를 쓰기만 할 뿐이었다.
“어쨌든 이로써 정말 병리적 기능 장애는 아니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어 기쁩니다. 인간관계의 스트레스나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 같은 경우는 솔직히… 저는 여행을 훌쩍 가버리고 싶더라구요. 휴대폰 꺼버리고 혼자서. 너무 몸을 혹사하지 마시고 한두 달 정도 스케줄 조정하실 수 있다면 그냥 푹 쉬시는 것도 추천해 드립니다. 많이 나아지고 계시니 이 김에 확실히 낫게 하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예… 생각해보겠습니다.”
“예. 그럼 다음 주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
‘정말 그 변태 오늘도 이상한 거 시키는 건 아니겠지? 설마?’
황경호는 신경질적으로 차트를 전부 디지털화시키기 위하여 컴퓨터에 딱 달라붙어 하나하나 오름차순으로 기록하면서 생각했다. 차트가 너무 많다 보니 카운터가 지저분하고 색인이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원래 이강유가 논문을 쓸 때나 필요한 환자들을 정리했는데 이김에 모든 환자의 진료기록을 전부 디지털화하고 있는 것이었다. 강박증이 있는 황경호는 누구보다도 빠르고 많은 양을 전산화하고 있었다.
‘하기 싫어. 그딴 거 절대 하기 싫어.’
계약상으로 을에게 단 하나 유리했던 것은 계약만료일까지는 황경호가 마음대로 그만둘 수 없다는 것 하나뿐이었는데 지금은 거부권까지 실효되어 황경호는 무척이나 손해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날은 일단 일이 급해서 그 남자에게 뭐라고 따지지도 못하고 다른 데 정신이 팔려 있었는데 지금이라면 엄청나게 퍼부어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당황스럽거나 자기가 생각하던 것 이상의 일이 일어나면 황경호는 언제나 쪽도 못 쓰고 당하는 것만 같았다.
저번 주의 상황이 부글부글 짜증이 나고 오늘 당장 그 남자의 얼굴을 보면 면전에 대고 악담을 퍼부어 주리라 마음먹었었지만, 또 거부권이 제대로 안 먹히고 오늘도 그런 일을 하라고 요구받느니 차라리 참고 말겠다는 게 황경호의 솔직한 심정이라 더 짜증이 났다. 스스로가 참 패기도 없고 겁쟁이인 것처럼 느껴졌지만, 황경호는 본인이 강동현처럼 앞뒤도 볼 것 없이 지르는 성격이 절대 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일단 무엇보다도 정말 하기가 싫었다. 아무리 자포자기했다지만 그날 왜 그딴 말도 안 되는 계약서에다 지장을 찍었냐는 말이다. 이제 와 절실히 후회했다. 평소 앞뒤 생각 없이 그런 일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분명 후회할 것이 분명했던 그 일을 왜 그렇게 쉽게 동의를 했냐는 말이다.
게다가 그렇게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그 인간을 차마 신고할 생각도 못 하는지 모르겠다. 분명히 계약이고 자시고 싫다면 그 방법이 직방일 텐데도. 황경호는 사람 하나 인생 망칠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자의식이 강하지 못했다. 큰소리를 내며 다투거나 싸우는 것도 제일 싫었다. 딱히 스스로가 착해서 그런 것은 아닌 거 같은데. 그저 남들 눈에 띄고 싶지 않아서 이러는 것일까.
‘어떡하지….’
아무리 머리를 돌려보아도 지금까지 황경호가 화풀이 삼아서 했던 일들 때문에 강동현이 그렇게 쉽게 그를 봐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다음에 황경호가 또 말도 안 되는 걸 강동현에게 시킬 수는 있겠지만… 실제로도 황경호가 뭐든지 시켜버렸는데도 불구하고 그 인간은 그만두기는커녕 그냥 진짜 겁이 없었다.
‘난 절대 그렇게 못 해… 아, 진짜 어떡하지.’
황경호가 맹렬히 타자를 치면서 생각하고 있던 와중이었다. 똑똑. 황경호가 컴퓨터에서 눈을 떼고 시선을 들어 올렸다. 캡모자에 선글라스, 마스크까지 쓴 남자가 커다랗고 멋있게 생긴 그의 손으로(질린다, 이 인간. 손도 예쁘구나) 카운터에 노크를 하듯 두드렸다.
“아, 예. 도은혁 환자님. 뭔가 도와드릴 일이라도….”
“모르는 척하지 말고 빨리 기어 나오지?”
“…….”
황경호는 한숨을 푹 내어 쉬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발을 질질 끌며 카운터 밖으로 나갔다. 강동현은 별말 없이 앞서갔고 황경호도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 그냥 그 뒤를 따라갔다. 그런데 막상 예의 안 쓰는 환자용 침대와 기계들이 마구잡이로 들어가 있는 그 방을 보자 황경호는 정말 싫다, 는 느낌에 주저하며 문밖에 서있었다.
“뭐해, 안 들어오고?”
강동현은 모자를 벗으며 그렇게 말했다. 황경호는 한숨을 쉬었다.
“…오늘은 뭐할 건데요.”
딱딱하게 굳은 얼굴에 인상을 찌푸릴 듯 말 듯 한 표정이었다. 황경호는 아주 앳된 인상이었고 그런 표정은 쉽사리 그의 얼굴에 뜨지 않는 종류라 애처롭게 봐줄 법도 했지만, 강동현한테는 턱도 없었다. 그는 그저 무심하게 대답했다.
“뭐라고?”
“…….”
제대로 들을 생각이 없는 사람이지… 황경호는 질질 끌듯이 안으로 들어왔다.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들어와서 침대를 보다가 왜 자신이 이렇게 꿀리는 듯한 기분을 느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황경호는 인상을 찌푸리며 제풀에 지쳐 짜증스러운 말을 자아내기 시작했다.
“솔직히 전 도은혁 환자님 잘 이해가 안 되거든요. 왜 저 가지고 그러는지도 잘 모르겠고… 그냥 편하게 할 수 있는 거면 좀 더 편한 다른 방법들 많지 않나요? 잘은 모르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거 많잖아요. 그리고 솔직히 도은혁 환자님 정도면 그냥 지나가는 여자들도 낚아서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뭐라는 거야.”
강동현은 침대에 앉았다.
“저랑 이러는 거 피곤하지 않냐구요. 이강유 선생님이 도은혁 환자님은 스트레스로 인한 심인성 증상이라고 이제 확신하시는 것 같던데….”
“환자 신상 가지고 서로 떠벌거리지 말라니까, 진짜 이 병원….”
“요새 전산화 작업해서 도은혁 환자님 차트 제가 금방 정리해서 넣었거든요. 어쨌든 스트레스 받지 않는 상대랑 편하고 해소할 수 있을 만한 그런 거 하면 된다는 거잖아요. 깔끔하게 몇만 원 주고 그런 여자들이랑 쉽게 하시는 게 어때요? 아무 상관도 없는 일반인인 저한테 이러시지 마시구요.”
그렇게 말하고 있는 사이 훅하고 왼팔에 강한 힘이 느껴져 끌려갔다. 강동현은 마스크와 선글라스까지 다 벗은 그 잘생긴 얼굴로 심드렁하게 황경호를 올려보고 있었다.
“오늘은 내 거 빨래?”
황경호가 기겁을 해서 펄쩍 뛰었다.
“미쳤어요!! 싫어요!!”
“누구 듣겠다.”
“!!”
황경호가 인상을 팍 쓰며 입을 다물었다. 강동현이 빙글빙글 웃으며 침대에 앉아 거만하게 뒤로 몸을 기울였다.
“콜?”
“…미쳤어요, 진짜….”
“거부권?”
황경호는 주저하다가 깊은 한숨을 쉬듯 대답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못해….
“네….”
강동현은 아까부터 안절부절못하는 게 그대로 드러나는 황경호의 얼굴을 보는 것이 기분이 좋았다. 언제나 생긋생긋 착한 척 웃기나 하고 친절한 척 위선을 떠는 꼴이 언제나 같잖았다. 그런 작위적인 얼굴보다 차라리 제대로 감정이 드러나는 게 더 마음이 놓인다고 해야 하나? 언제나 만들어진 거짓 얼굴만 보는 것은 피곤한 일이니까. 게다가 강동현의 거시기가 반응하는 것도 이 간호사의 그런 얼굴들이었다.
“헤에, 걱정되나 보네?”
황경호가 제대로 자신의 눈도 마주치지 않고 입만 꾹 다물고 있으니 강동현이 웬일로 그런 황경호의 기분을 신경 쓰듯 그렇게 말했다. 강동현은 피식 웃으면서 뚱한 그 얼굴로 손을 뻗어 피부를 만지려고 했다가 그러려고 한 자신에게 놀랐다. 얼굴 가까이 다가왔다가 멀어지는 멋지게 생긴 손을 황경호는 뭐지, 하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바지 벗어.”
강동현은 짜증이 팍 난 것 같은 얼굴로 인상을 쓰며 황경호한테 말했다. 황경호는 저도 모르게 옷깃을 꽉 쥐며 불안함을 감추지 못했다.
“뭐, 뭐할 건데요….”
그랬다가 후우, 하고 심호흡을 한 뒤 불안함을 심기 불편함으로 가리고 말했다.
“이제 많이 나아지셨다면서요. 저 남자라고요. 애인분도 계시다면서요. 애인분이 도은혁 환자님이 이러고 다니시는 거 알면 얼마나 마음 상하시겠느냐고요.”
“내 애인은 내가 알아서 해. 바지나 벗어.”
이미 심술보가 못되게 올라온 강동현이었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바지 허리 부분에 손가락을 넣어 잡아당겼고 그것이 꽤나 무례하고 기분 나쁘게 느껴지는 황경호였다. 황경호는 그의 손을 쳐내고 스스로 바지 버클을 풀었다.
“벗기지 마세요. 제가 할 테니까.”
황경호는 어금니를 꽉 깨물고 팬티까지 벗고는 강동현의 얼굴을 노려보았다. 강동현은 그 눈빛이 담은 원망과 화가 짜릿하게 등골을 휘감는 걸 느꼈다. 조금 선 것 같았다.
“제가 이거 대가로 뭘 시킬지 무섭지도 않아요?”
“시켜 봤자 지금까지 한 것처럼 초딩들이나 생각할 법한 거겠지.”
황경호가 이를 갈았다. 이 인간이 자신을 얕보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었지만 다시 깨달을 때마다 몹시나 기분이 나빴다. 강동현은 햇빛을 잘 보지 않는 황경호의 허연 다리를 물끄러미 보다가 손을 움찔하고 주먹을 쥐었다.
“침대 위에 엎드려.”
“…….”
금방이라도 불만을 토해낼 뻔했다가, 그럴수록 강동현을 자극하고 의기양양하게 한다는 것이 기분이 나빠서 입을 다물어버렸다. 쓰레기 같은 남자. 황경호는 입 안으로 그렇게 짓씹으며 침대 위로 올라갔다.
“뭐할 건데 그러는 건데요… 진짜 사람이 치사하게….”
말을 안 하고 그렇게 있으면 황경호는 불만도 제대로 말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면 훨씬 심한 거로 할까 봐… 내가 왜 이런 걸 걱정하고 있어야 되냐는 말이다. 도대체 왜.
‘…죽여 주기로 했으니까.’
“빨리 엎드려.”
얼굴이 벌게졌다. 황경호는 태어나서 이렇게 굴욕적이고 수치스러웠던 적이 없었다. 손등으로 마른 입술을 한 번 닦고는 네 다리로 짚고 엎드렸다. 황경호는 저도 모르게 창피함에 몸을 떨면서 말했다.
“이상한 거 하지 마세요….”
‘얘가 처녀처럼 굴어서 내가 괜히 꼴리는 건가?’
강동현은 황경호의 엉덩이 바로 앞에 자리를 잡았다. 지퍼를 내리는 소리가 들리자 황경호가 어깨를 움찔하며 떨었다. 정말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애처로워 보일 만도 한데. 강동현은 입술을 핥으며 만지지도 않았는데 직립한 자신의 성기를 자랑스럽게 느끼고 있었다.
‘내가 처녀를 따먹는 취미라도 있었던가? 영지 말고는 안 해봐서 몰랐는데. …처녀는 무슨. 얘는 남자잖아.’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하얀 엉덩이를 드디어 한 번 만졌다. 동그랗게 보송보송하고. 솔직히 말하자면 마음에 들었다. 여자들처럼 물기 있는 피부는 아니었지만, 사내자식들 피부처럼 거칠지는 않았다. 어린애들의 솜털 난 피부처럼 보송보송….
부드럽잖아. 강동현은 부들부들 떠는 황경호의 엉덩이와 결국 허벅지도 몇 번 만졌다. 그럴 때마다 황경호는 마치 딸꾹질을 하듯이 움찔거렸다. 간만에 스스로 직립한 자신의 대물을 잡고 강동현은 그것을 황경호의 엉덩이에 대었다. 황경호는 경기를 일으키듯 쇳소리를 내더니 결국 뒤를 돌아 강동현을 마구 노려보았다.
“이 변태…! 이상한 짓 하지 말랬잖아!”
황경호는 강동현의 손을 제 손으로 퍽 쳐서 치워버리고 결국 다리를 오므리며 방어적으로 돌아앉았다. 강동현은 오히려 더 흥분해서 그를 내려다보았다.
“잔말 말고 엉덩이 대. 이제 너한테 거부할 권리 같은 건 없다니까.”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
“해 봐. 니가 경찰에 신고할 것 같으면 벌써 했지.”
“익…!”
강동현이 황경호의 발목을 잡아 억지로 끌어내렸다. 앗, 하고 끌려 내려간 황경호는 억울하고 겁먹고 화가 난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
“너 죽고 싶다며. 이젠 죽기 싫은 거야?”
“…….”
진짜 개 같은 놈. 황경호는 떨어질 정도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이 딱 떨어지고 맥이 탁 빠졌다.
‘내가 사람을 상대로 얘기를 해야지 도대체 누굴 상대로…’
황경호는 고개를 모로 돌리며 그냥 눈을 감아버렸다. 강동현은 황경호의 허벅지를 잡고 끌어당겼다. 그리고 다시 엎드리게 했다. 강동현이 자신의 남성기를 회음부 쪽에 갖다 대자 황경호가 움찔했지만, 아까만큼 부들부들 떨거나 하진 않고 잠잠했다. 강동현은 또 자신을 꽁꽁 숨기고 아닌 척하는 이 간호사를 곧바로 알아차렸다. 심술이 솟아오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윽…!”
강동현은 황경호의 등을 짓눌렀다. 엉덩이만 솟은 자세가 되었다. 얼굴이 머리맡에 짓이겨 옆얼굴이 강동현에게 드러났다. 미간만 조금 찌푸렸을 뿐 그저 시간이 지나가라 비는 것이 딱 보이는 얼굴이었다.
“다리 오므려.”
강동현이 반은 힘으로 오므리게 하였다.
“허벅지에 힘줘.”
가면을 쓴 것 같은 얼굴로 아무것도 안 느껴진다는 듯이 하고 있었지만 조그맣게 변하는 그 표정이 시시각각 동통을 일으켰다. 아주, 아주 가까이 있으니까 다른 사람이라면 볼 수 없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아무도 이 간호사의 이런 표정은 본 적이 없겠지. 굉장히 본능적인 기분이었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신경 쓰고 싶지 않아….
“윽….”
“하아… 큭… 괜찮은데? 더 힘줘. 조여 봐.”
강동현은 황경호의 양 허벅지를 꽉 잡아 붙이고 계속 허벅지에 힘을 주라고 종용하였다. 다리 사이의 부드러운 살과 회음에 비벼지는 느낌은 좀 뻑뻑해서 그렇지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강동현의 물건은 꽤 큰 편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정도니.
“살 좀 쪄야 되겠어. 너 몇 킬로냐?”
강동현은 다리에 살이 좀 없는 것이 아쉬워서 그렇게 물었지만, 황경호가 대답을 할 리가 없었다. 앞뒤로 마치 여자에게 하는 것처럼 허리짓을 하였다. 뜨겁게 달아올라 땀이 배어 나오는 강동현의 몸에 비해서 황경호의 피부는 보송보송하고 차가웠다. 강동현은 황경호를 옆으로 눕혀서 다리를 잘 오므리게 하고 계속 추삽질 하듯이 허리를 움직였다.
“윽… 큭… 야… 얼굴 가리지 마.”
강동현은 왼팔로 얼굴을 가리고 있는 황경호를 발견하고 억지로 팔을 떼어내었다. 찹찹찹 살이 부딪쳤다 떨어지는 소리가 노골적으로 울렸다. 섹시하고 낮은 숨소리도 그 흥분을 나타내듯 야하게 퍼졌다. 황경호는 불쾌하고 혐오스러워 정말 인고의 마음으로 눈만 감고 있었다. 그러다가 불쑥 강동현을 올려다보았다. 흥분에 찬 남자의 눈과 마주치자 자신과의 그 괴리감에 더더욱 마음이 차갑게 굳어지는 것만 같았다. 황경호는 마른 혀를 움직여서 조용히 물어보았다.
“정말 날 죽여줄 거죠?”
강동현은 허리짓을 멈추었다.
“…그렇게 계약서 썼잖아.”
강동현은 인상을 찌푸리고 허리짓을 했다. 황경호는 미간을 좁히고 꽉 쥔 자신의 주먹만 쳐다보고 있었다. 격렬히 흔들리다가 울컥 강동현이 사정하자 황경호는 황급히 윗옷을 끌어올렸다. 배와 허벅지에 왕창 또 강동현의 체액이 묻고 말았다. 황경호는 그 기분 나쁜 느낌에 이를 악물고 견뎠다. 황경호가 잠시 비참한 자신의 상황을 곱씹고 있을 때 강동현은 이미 옷까지 다 추스르고 선글라스까지 꼈다.
“저기… 잠시만요.”
“아, 그래. 요구할 거 있으면 요구해.”
강동현은 무서울 것도 없다는 식으로 그렇게 말했다. 황경호는 그 태도부터가 딱 짜증 났지만, 한숨을 쉬어 마음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제가 홍대에서 고자라고 외치고 오라고 했던 거나, 예능 나가서 그렇게 하라고 한 거 다 죄송하게 생각해요. 생각해보면 도은혁 환자님 연예인인데 그런 게 얼마나 힘드셨겠어요. 들켰으면 정말…. 제가 그때는 화가 나서 아무 생각도 없이 그렇게 했는데….”
“됐고. 그래서 요구사항이 뭔데?”
황경호는 또 울컥 올라올 뻔했지만 불편한 자세로 계속 있었던 덕분에 엄청 뻐근한 허리를 일으켜 자리에 또 불편하게 앉아(침대 시트에 최대한 정액을 안 묻히려고) 물티슈를 빼서 얼른 침대보부터 처리했다.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거 정말 죄송하다구요. 그건 제가 아무리 화가 나도 해서는 안 되는 짓이었던 것 같아서요.”
침대보에 일단 물티슈로 닦고 새 물티슈로 눌러놓은 뒤에 배를 닦았다. 강동현은 그런 황경호를 돌아보았다. 마지못해 사과를 하는 것 같아 보이기는 했지만, 그 말에 진심은 느껴졌다. 황경호는 한숨을 쉬고 말했다.
“그러니까 앞으로는 그냥 예전처럼 손으로 해달라고 해주시면 안 될까요? 그러면 앞으로 요구 같은 거 안 들어 주셔도 되는데….”
그러니까 딜을 하자는 거였다. 강동현은 그러면 그렇지, 라는 얼굴로 픽 비웃었다.
“죄송할 게 뭐 있어? 웃기고 있네. 난 죽으려는 너한테 내 거시기나 고쳐달라고 했고, 내가 니 몸으로 일주일에 한 번 빼는 대신에 넌 날 병신 만들 수 있고 그런 게 계약 조건 아니었어? 왜 너만 실컷 골탕 먹일 거 다 먹이고 이제 너 좀 당한다 싶으니까 그렇게 불쌍한 척 발 빼려고 하는 건데?”
“그런 말이 아니라… 이렇게 계속하는 건 결국 서로한테 손해잖아요….”
황경호는 또 울컥하려는 걸 간신히 참는다는 얼굴로 또박또박 그렇게 말했다.
“난 니 말대로 엉덩이에 이상한 기계도 꽂고 그 빌어먹을 사진도 찍고 홍대 앞에도 가고 예능도 망쳐버렸지. 그럴 때마다 너 엄청 비웃고 좋아했을 거 아냐? 나도 좀 그래 보자고.”
강동현이 빈정거리는 어조로 말하자 결국 황경호가 째릿 강동현을 노려보았다.
“도대체 사람 성질머리가 왜 그런 거예요? 사람이 굽히고 들어가면 받아줄 줄도 알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 저만 잘못한 건가요? 댁 말대로 내가…!”
황경호가 정말 울컥했는지 마지막에 목소리가 확 높아졌다.
“내가 겨우 용기를 내서 거기까지 갔었는데…! 다시는 없을 기회였는데…! 그때 내가 그냥 뛰어내릴 수 있었다면 이런 더럽고 바보 같은 짓 안 해도 되는 거였는데…!!”
얇은 피부 아래로 혈액이 확 모였는지 갑자기 확 붉어져서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강동현은 등골이 오싹하게 전류가 흐르는 것 같았다. 숨을 멈추고 자신의 앞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원망을 토하는 황경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윽… 하… 그러니까….”
황경호는 숨을 들이마시며 마음을 컨트롤했다. 얼굴색이 다시 확 빠져서 다시 하얗게 변했다.
“그러니까 제 말은… 소모적으로 되지 말자구요, 서로. 어차피 손으로만 해도 괜찮으시잖아요. 굳이 그런 변태 같은 짓으로 더 흥분하고 그러시는 거 아니잖아요. 그냥 저 골탕 먹이려고 그러는 거 아니까 이제 서로 그냥 그러지 말자구요.”
강동현은 거의 넘어갈 뻔했다. 하지만 황경호가 상대의 격을 높여주고자 한 말이 도리어 화를 불렀다. 강동현 본인도 인정하기 싫었지만, 이 간호사가 손으로 하는 것보다도 그가 말하는 그 변태 짓에 더욱 흥분되었다. 분명 자신은 남자한테 성욕을 느끼는 변태도 아니었고, 단 한 번도 누군가를 이런 식으로 희롱해서 성적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이 아니었는데도 불구하고 유독 이 간호사에게만 그런 성향이 표출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갑자기 당사자에게 지적당하는 느낌이라서 깜짝 놀라면서 동시에 불쾌감이 들었다.
“그건 니 사정이고.”
그래서 정말 생각 없이 그 말이 툭 튀어나갔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던 간호사는 그 말을 듣고 홱 하고 강동현을 돌아보았다. 믿을 수가 없다는 눈이었다. 그것은 곧 분노로 바뀌었고, 그는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한강에 뛰어내려요.”
“…뭐?”
황경호가 이보다 더 싫어할 수 없다는 듯한 눈으로 강동현을 노려보며 다시 한 자 한 자 힘주어 말했다.
“내가 뛰어내리려고 했던 마포대교에서 뛰어내려 보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