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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원은 아주 오래 걸렸다. 현수의 회복이 더딘 탓이었다.
유산 때문에 몸이 많이 약해졌다고, 퇴원 후에도 건강에 유의해야 한다고 의사는 말했다. 해정은 의사의 잔소리를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현수의 어깨 위에 제 재킷을 걸쳐 주었다. 의사와 해정은 아는 사이인 것 같았다. 현수는 의사의 눈치를 보며 해정에게 작게 고맙다고 말했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현수는 의식적으로 배를 만지지 않으려고 했다. 해정이 본다면 또 벌을 주겠다고 할지도 몰랐다. 벌. 잠시 그 단어를 떠올리던 현수가 살짝 몸을 떨었다.
해정은 죽 집 앞에 차를 정차시켰다. 현수의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 반대쪽은 내부 손잡이에 연결하며 그는 현수에게 무슨 죽을 먹고 싶은지 물었다. 현수는 “아무거나.”라고 대답했다. 해정은 군소리 없이 제 휴대폰을 현수에게 내밀었다. 현수는 자유로운 손으로 휴대폰을 받아 들었다.
현수는 죽 집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다가, 해정의 휴대폰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진첩으로 들어가니 제 사진과 동영상이 가득 차 있었다. 그에 대해 모르는 건 아니어서 놀랍지는 않았다.
무심하게 액정을 밀던 손가락이 멈추었다. 언제 찍었는지 모를 정도로 낯선 제 모습들 사이에 익숙한 동영상 하나가 있었다. 멀지 않은 과거의 어느 날에, 계속 돌려 보면서 기뻐했던, 조금은 설레기도 했던 그 동영상이었다. 살짝 떨리는 손이 재생 버튼을 눌렀다. 보잘것없을 정도로 미약한 소리가 났다. 미약했지만 규칙적이었고, 생동감이 있었다. 살아 있었다.
그래. 살아 있었다.
“…….”
손가락은 중간에 동영상을 멈추었다. 그리고 곧바로 파일을 삭제했다. 울컥. 무엇인가가 명치에서 솟아났지만 현수는 그를 힘껏 짓눌렀다. 떨쳐 내듯 해정의 휴대폰을 운전석 시트로 던졌다.
그는 멍하니 창 너머를 바라보았다. 통유리 너머로 죽 집의 내부가 보였다. 해정은 계산을 하고 있었다.
볼이 뜨거웠다. 현수는 눈물을 훔쳐 닦으며 얼굴을 정돈했다.
잠시 후, 해정은 죽 집 로고가 새겨진 종이봉투를 들고 차로 들어섰다. 뒷좌석에 봉투를 내려놓은 그는 배려를 베푸는 선인의 얼굴을 하고 수갑을 풀어 주었다. 그리고 현수의 얼굴을 가까운 곳에서 물끄러미 보았다. 울던 것을 들킬까 봐, 현수는 필사적으로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도착한 곳은 전에 살던 곳이 아니었다. 낯선 빌딩이었다. 최신식 빌딩이었는데 이상할 정도로 황량했다. 널찍하고 깨끗한 지하 주차장에는 아무런 차도 없었다.
입구와 가장 가까운 곳에 주차를 한 해정이 문을 열었다. 현수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해정은 트렁크에서 휠체어를 꺼냈다. 그리고 조수석까지 끌었다. 조수석 문을 열자 현수가 보였다. 마른 몸은 기어이 전신을 벌벌 떨고 있었다. 어찌나 떠는지 가여울 정도였다.
“……해정아.”
“이리 와요.”
그 모양을 구경하듯 물끄러미 보던 해정이 이윽고 다정한 얼굴로 허리를 숙이고 다가갔다. 그리고 현수의 몸을 가볍게 안아 들었다.
“해정아,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추워요? 왜 이렇게 떨어.”
현수는 해정의 목을 안으며 필사적으로 말했으나 돌아오는 건 결국 아무것도 바뀌지 않음을 암시하는, 부드러운 웃음뿐이었다.
휠체어에 그의 몸을 앉힌 해정이 “아.”하는 소리를 내며 뒷좌석 문을 열어 죽 봉투를 챙겨 현수의 허벅지 위에 올렸다. 그 자그마한 자극에도 현수는 공포를 집어삼킨 얼굴을 했다.
엘리베이터 안은 금색으로 은은하게 빛났다. 현수는 울고 있었다. 꼭대기 층을 누른 해정이 한숨을 쉬며 휠체어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갸륵한 것을 바라보듯 현수를 올려다본다.
“미안해. 너 싫다고 한 건……. 미안해, 미안해…….”
“알았다니까. 몇 주 전 일을 아직도 말해요.”
커다란 손이 가느다랗고 연약한 발목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만져지고 있었다. 하지만, 감각이 없었다. 현수는 다시 한번 좌절했다. 울음이 다시 크게 터진다. 조금 전보다는 더 직관적인 감정에서 비롯된 울음이었다. 현수의 머리를 지배한 건 그저 공포, 그뿐이었다.
“병원, 다시……. 다시, 데려다줘. 나, 나 너무 무서워…….”
말하는 것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의사가 일부러 제 발목의 상태를 봐주지 않았다는 걸 눈치챈 모양이었다.
‘이런 눈치는 빠르네. 아니, 모르는 게 바보인가.’ 해정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현수의 허벅지를 어르듯 매만졌다.
발목을 영구적으로 쓰지 못하게 만들어 버린 건, 조금 감정에 휩쓸린 짓이었으나 후회는 없었다. 어떤 변명이 뒤따르든 김현수가 자신을 싫다고 한 건 명백한 사실이었다. 발목을 정반대로 뒤틀면서 그에 대한 벌이라고 그에게 일러 주기도 하였다. 그러니까 고쳐 줄 생각은 없었다. 벌은 벌이다.
해정은 허벅지를 만지던 손을 들어 젖은 볼을 훑었다. 그리고 말했다.
“병원 가도 못 고쳐요.”
“해정아, 해정아…… 제발, 제발…….”
“……말이 다른데? 내가 너무 사랑해서 해하는 건 괜찮다며.”
싸늘한 목소리였다. 순간 눈에 이채가 스쳤다. 매달림이 너무 과했던 모양이다. 현수는 입을 다물었다. 등을 바르르 떨면서 울기만 하는 얼굴을 바라보던 해정이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에게 매달리는 것밖에 하지 못하는, 그 보잘것없고 버석한 몸을 안아 들었다. 엘리베이터 벽에 등을 대게 하자 허벅지가 경련하는 게 느껴졌다.
무섭겠지. 이제 두 다리로 서지도 못하게 됐으니. 해정은 생각했다. 지금 저가 떨어뜨린다면 현수는 그대로 바닥으로 추락하고 말 것이었다.
해정이 보란 듯 현수의 허벅지와 엉덩이를 단단히 받쳐 들었다. 현수는 필사적으로 해정의 목을 안았다.
“무서워, 내려 줘…….”
해정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메마른, 또 너무나도 연약해서 사랑스러운 입술에 키스했다.
키스는 엘리베이터가 층에 도달한 뒤에도 계속되었다. 해정은 키스를 멈추지 않으며 엘리베이터를 빠져나갔다. 곧이어 현수가 해정의 어깨를 밀어 입술을 떨어뜨렸다. 그리고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휠체어는……!”
그 간절한 외침이, 해정은 귀엽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 쪽. 짧게 입을 맞췄다. 눈을 마주하며 작게 속삭인다.
“필요 없어.”
그 말은, 완전한 고립을 선고했다. 더할 나위 없이 감미로운 목소리는 틀림없는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현수는 엘리베이터에 덩그러니 놓인 휠체어가 문에 의해 사라지는 것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