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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을 찾은 현수는 병원에 있었다. 그는 몇 차례 토했다. 고열 탓에 귀가 멍멍했는데, 차가운 손이 귓바퀴를 연신 쓸어 주면 조금 괜찮아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현수는 그 손이 해정임을 알자마자 고개를 비켜서 피했다. 손은 따라오지 않았다. 해정은 말없이 색색 거리며 허공을 바라보는 현수를 내려다보기만 했다.
현수는 시체처럼 누워 있기만 했다. 의사와 간호사가 상태에 대해 질문해도 대답하지 않았다. 팔에 뭐를 꽂든 상관하지 않았고, 해정이 입으로 약을 먹여도 가만히 두었다. 그는 멍하니 벽을 바라보며 시간을 죽였다.
해정은 그런 현수의 옆에 잠자코 앉아 있기만 했다. 현수도 해정에게 나가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눈을 마주치지 않을 뿐이었다. 그는 가만히 누워서, 입을 닫은 채로 제 감정에 대해 생각했다.
자신이 느끼고 있는 건 배신감이었다.
본능적으로 느꼈다. 해정은 진심으로 아이를 혐오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이를 품은 저를 더럽다고 했다.
내가 임신했던 내내 그런 생각을 했던 걸까.
내가 더럽다고?
“…….”
단순히 화풀이를 하다가 뱉은 말일 수도 있다. 해정은 머리가 돌면 곧잘 못된 말을 내뱉곤 하니까. 하지만 설움이 북받치는 건 이성과는 별개의 문제였다.
현수가 눈을 깜빡이자 조용히 눈물이 흘렀다. 현수의 얼굴을 내려다보고 있던 해정이 미묘할 정도로 작게 눈썹을 찌푸렸다. 손을 뻗어 그의 턱을 잡아 돌린다. 수직으로 눈이 마주쳤다.
“왜 울어?”
“…….”
해정은 고요한 얼굴로 물었다. 현수는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반대편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턱을 쥔 손은 그를 허락하지 않았다. 도리어 조여드는 힘이 강해지자 현수가 해정의 손목을 저지하듯 잡았다.
“……이거, 놔.”
“그거 때문에? 진짜 그거 때문에 우는 거야?”
“놓으라고……!”
그의 악력은 여러 번 겪어도 좀체 익숙해질 수가 없을 정도로 강했다. 턱이 아팠지만 아프다며 호소하기는 싫었다. 해정을 상대로 이런 고집을 부리는 건 동거 이후 처음이었다. 어쩌면 그를 만난 뒤로 처음이다. 하지만 그만둘 생각은 나지 않았다. 자꾸 그에게 반감이 들었다.
“김현수.”
“……나쁜 새끼.”
현수가 이를 짓이기며 그를 비난했다. 숨은 속셈은 없었다. 단지 서해정에게 자신의 진심을 말해 주고 싶었다.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을 해하는 서해정은 나쁘지 않지만, 그런 식으로 해하는 서해정은 나쁘다. 적어도 자신의 가치관으로는 그러했다.
“…….”
차갑게 굳은 얼굴은 미동이 없었다. 그는 계속해 보라는 듯 현수를 가만히 내려다보기만 했다. 현수는 손목을 붙든 손을 더 세게 쥐면서 덧붙였다.
“너, 진짜 싫어.”
이건, 거짓이었다.
물론 그를 벗어날 생각은 없었다. 그저 벗어날 수 없으니까, 상처라도 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어쩐지 스스로의 말에 심장이 손톱으로 긁힌 것처럼 아팠지만 현수는 해정도 그만큼 아플 거라고 짐작했다. 그리고 그 고통을 애써 외면하며 눈을 감았다가 뜬, 그 찰나였다.
해정의 눈빛이 얼었다. 직후 짜악! 거친 마찰음과 함께 현수의 고개가 돌아갔다. 뺨이 불에 덴 것 같았다. 얼굴 한쪽이 다 날아갔다고 해도 믿을 만큼, 옆얼굴 전체가 얼얼했다. 현수가 반응을 하기도 전, 언제 험악했느냐는 듯 두 손가락이 가볍게 턱을 원위치로 돌렸다.
“다시 말해 봐.”
차분한 목소리가 물어왔다. 폭력은 상처에 대한 입증이기도 했다. 현수는 망설임 없이 입을 열었다.
“너, 싫다고.”
짜악!
다시 한번 뺨이 돌아갔다. 큰 손은 현수의 얼굴을 감싸고도 남았다. 그 탓에 귀까지 멍멍했다. 이명이 머리를 어지럽힌다. 그리고 다시 원위치였다. 해정이 눈을 깜빡이며 입을 열었다.
“다시 말해.”
“너 싫다고. 싫……!”
말을 채 다 끝나기도 전에 한 번 더 뺨을 맞았다. 가뜩이나 헐어 버린 입 안이 터졌다. 피 맛이 났다. 해정이 “다시.”했다. 현수가 입을 열었다.
그때였다. 현수의 대답을 예상이라도 한 듯 커다란 손이 가느다란 목을 로프보다 더 강하게 압박해 왔다.
“콜록, 콜록!” 갑작스러운 무게에 현수가 바르작대며 기침했다. 해정이 가벼운 몸짓으로 침대 위에 올라왔다. 현수의 몸 위에 자리를 잡아 무릎으로 몸을 지탱하고 더 강하게 목을 조였다.
“콜록, 크, 흑……!”
“다시, 말해 봐.”
“허억, 헉……, 콜록!”
“그런 말을 하면 안 되지, 현수야.”
말투는 느긋했으며, 목소리는 살짝 떨렸다. 웃고 있는지, 울고 있는지 모를 정도로 미묘했다. 힘은 점점 더 강해졌다. 현수는 손을 쥐었다가 폈다.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
“흑, 큽……!”
“그런 소리 하면 너 죽는 거 몰라? 왜, 갑자기 뒤지고 싶어졌어?”
하얗게 질렸던 얼굴이 이윽고 퍼렇게 물들었다. 방금 죽은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만큼 핏기는 싹 메마른 채였다. 허나 해정은 힘을 풀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강하게 무게를 실었다.
벌어진 입에서 침이 흘렀다. 머리에 경고조의 붉은 빛이 번쩍거렸다.
‘이대로면 죽는다.’ 현수의 본능이 말했다. 화르륵 타올랐던 감정이 삽시간에 소화된다. 이내 해정의 손을 급하게 더듬거리던 손이 퍽퍽 손등을 내리쳤다.
“……잘, 잘못했……, 해, 해정, 헉……!”
“죽여 줄게, 그러면. 그게 낫겠지?”
별안간 볼 위로 차가운 게 투두둑 떨어졌다. 눈물 같았다. 눈물은 두어 번 더 떨어졌다. 해정은 우는 표정을 하고 있지 않았다. 얼굴을 일그러뜨리지도 않았고, 눈썹도 찌푸리지 않았다. 다만 방울처럼 큰 눈 위로 감정의 응어리만 툭툭 떨어질 뿐이었다.
“해정, 허윽……, 컥……!”
“걱정 마. 너 죽이고 나도 죽을 거야. 말했잖아. 너 죽어서도 쫓아갈 거라니까.”
어때? 존나 지겹겠지.
해정이 킥킥거리면서 속삭여 왔다. 물기 어린 목소리가 귀에 달라붙는다. 울면서 웃는 모습은 기이했다. 눈빛은 명백하게 진심이었다. 현수는 몸을 떨었다. 성대가 조여서 더 이상 말을 하기 힘들었다. 눈이 핑핑 돌아갔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늪처럼 몸을 침잠시키고 있었다.
화가 나서 그랬어. 네가 날 잠시라도, 사랑하지 않은 것 같아서 화가 났다고.
그 아이도 나의 일부잖아. 그걸 혐오하는 게,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 같았어. 그래서. 그래서…….
무엇이든 말하고 싶었다. 아니, 말해야 한다. 어떤 말이라도 꺼내면 해정이 조금이라도 힘을 풀 것 같았다. 현수는 급히 입을 열었으나 그대로 시야가 까맣게 물들었다. 냉정하게 생각하자면 지금 저는 죽어 가고 있는 것이리라.
죽을 거야, 나는.
“……하윽, 콜록! 큭, 헉…….”
“…….”
“헉, 허억, 흐으, 흐…….”
“…….”
그러나 그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현수가 다시 눈을 뜬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피가 고인 입이 작게 기침했다. 아예 의식을 잃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은 듯 제 위에 아직도 해정이 있었다. 현수가 눈을 깜빡였다. 미지근한 눈물이 흘렀다.
목을 조르는 힘은 없었다. 해정은 가만히 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가,”
그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눈물을 흘렸던 건 환각이 아니었던 듯, 길고 풍성한 속눈썹이 잔뜩 젖어 있었다. 해정이 눈을 깜빡이자 눈 아래로 물기가 묻었다.
“내가, 왜…… 형을 왜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해정이 물었다. 못내 당황한 기색이었다. 말하고 싶다고 생각한 줄로만 알았는데, 정말 말한 모양이었다.
“…….”
“말해 봐요, 형.”
본능적으로, 현수는 그 말 덕에 아직도 제 목숨이 붙어 있다는 걸 알아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