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화 (17/19)

5

차창 너머로 도시의 풍경이 지나갔다. 평소 같았으면 드물게 볼 수 있는 이 풍경을 눈에 담느라 여념이 없을 터인데, 현수의 눈은 차창이 아닌 다른 곳에 집중하고 있었다. 손에 쥐고 있는 해정의 휴대폰이다.

현수는 방금 끝난 동영상을 다시 재생시켰다. 귀에 꽂은 무선 이어폰을 통해 생명체의 심장 소리가 들렸다. 조금 전 병원에서 받아 온 아기의 심장 소리였다.

“그렇게 좋아요?”

아무 말 없이 핸들을 두드리던 해정이 물어왔다. 현수는 이어폰 한쪽을 빼내면서 “신기하잖아.”했다. 말끝에 맑은 웃음이 묻어 있었다.

그 웃음은 꾸며 낸 것이 아니었다. 진심이었다. 새 사람을 들일 마음의 준비를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뒤로 했던 노력들은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다. 현수는 아기를 보고 행복하게 웃을 해정의 모습을 꾸준히 상상했다. 노력을 거듭할수록 점점 아기에게 감정이 생겼다. 물론 좋은 쪽의 감정이었다. 해정에게 집중된 사고 회로로는 그게 당연한 감정의 인과다.

현수는 나머지 이어폰을 빼내고 케이스에 넣었다. 그리고 해정을 바라보았다.

“…….”

“너는? 안 좋아?”

그날 이후 해정을 살펴보았지만, 그는 괜찮아 보였다. 자주 현수에게 몸 상태에 대해 물어왔고, 아침을 챙겨 주었고, 정신과를 다니는 횟수가 많아지기는 했으나 일견 잠잠했다. 아무래도 아이를 ‘그거’라고 지칭했던 건 단순히 말버릇인 모양이었다.

해정이 엷게 웃었다. 운전에 집중하는 옆모습은 근사했다.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지, 혹은 그 자체로 반짝거리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나야 뭐.”

해정은 작게 중얼거리다가 슬쩍 현수를 바라보았다. 눈을 마주치는 건 찰나였다. 그는 다시 정면을 바라보며 핸들을 옆으로 돌렸다.

“형이 이렇게 좋아할 줄은 몰라서 그렇죠. 신기해서.”

목소리는 투명한 물결처럼 유려했다. 그의 옆모습을 구경하던 현수는 말없이 웃었다.

그는 굳이 해정에게 ‘네가 좋아하니까, 나도 좋아하려고 노력했어.’라고 말하지 않았다. 타인에게 무관심한 자신의 성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낼 필요는 없었다.

대화가 자연스레 끝이 났다. 창밖으로 차가 지나다니는 소리가 났다. 발을 가볍게 동동거리며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현수가 이내 손을 뻗어 카 라디오를 켰다. 클래식 채널에 바이올린 선율이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때였다.

“윽!”

별안간 차가 멈추었다. 얼마나 세게 브레이크를 밟았는지, 끼이익! 바퀴가 아스팔트에 거칠게 쓸리는 소리가 났다. 현수의 마른 몸이 순식간에 앞으로 쏠렸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퍽. 등이 시트에 강하게 부딪혔다.

“……아, 미안해요. 다른 생각하느라.”

해정이 말했다. 조금 전 현수가 켜 놓았던 라디오를 툭, 꺼 버리고 작게 입을 열어 말하는 얼굴은, 꼭 사사로운 것을 사과하듯 무덤덤했다. 현수는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숨만 색색 내쉬었다. 심장이 쿵쿵쿵쿵 방아질을 했다. 유난을 떠는 게 아니었다. 뒤차가 경적을 울릴 정도로 급작스러운 상황임은 분명했다. 평온한 건 해정뿐이었다.

현수는 쿵쿵 뛰는 심장 부근을 매만지며 “깜짝 놀랐어.”했다. 해정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다친 데는, 있어요?”

아래서 위로 훑는 눈빛이 짙고 느긋했다.

“아니, 없어. 괜찮아.”

“……그래요.”

신호가 바뀌었다. 차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부드럽게 나아갔다. 

약해진 몸은 돌발 상황에 적잖이 놀란 듯했다. 현수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침대에 누웠다. 몸 상태가 좋지 않았다. 오늘 병원에서, 열성 오메가는 이 시기에 계류 유산이나 자연 유산의 확률이 높으니 조심하라고 당부했던 게 떠올랐다. 괜한 불안감일 터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거였다. 

“……하아…….”

현수는 이불을 턱까지 끌어당기면서 작게 한숨을 쉬었다. 제 몸도 몸이었지만, 아이에 대한 걱정이 더 컸다. 사람의 마음이란 참 신기했다. 존재를 모르고 있던 건 아니었는데 심장 소리를 듣게 되니 새삼 덜컥 진지해진 듯하다. 존재에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그냥 존재가 아니었다. 제 배 속에서 온전한 사람이 되기를 준비하는, 제 아이였다. 자신과 해정의 아이.

건강해야 할 텐데.

현수는 걱정의 꼬리를 물다가 기어이 그렇게 생각했다.

이윽고 등 뒤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샤워를 마친 해정이 들어오는 소리일 것이었다.

“…….”

현수는 움직이지 않았다. 몸이 피곤하기도 했고, 임신 때문인지 예민해진 신경이 자꾸만 아까의 해정을 탓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는데, 고요한 수면처럼 무덤덤했던 그가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야속하게 느껴졌다.

발걸음이 천천히 침대로 다가오는 소리가 났다. 현수는 옆으로 누워 가만히 벽을 바라보기만 했다. 곧이어 매트리스 위로 무게가 실렸다. 지척에서 체온이 느껴진다. 평소보다 훨씬 서늘한 몸이 등 뒤로 붙어 왔다. 현수는 흠칫 몸을 떨었다. 탄탄한 팔이 거침없이 허리를 끌어안았다.

“……아, 해정아. 잠깐.”

손이 뱀처럼 쑤욱 티셔츠 안으로 기어 들어왔다. 차가운 감촉에 현수가 허리를 비틀며 해정의 팔목을 더듬었다. 그러나 커다란 손바닥이 배 위를 덮는 게 더 빨랐다. 냉기가 살갗을 한꺼번에 감싼다. 이어 지그시 누르는 힘에 현수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흡. 이상한 긴장감에 현수가 숨을 멈추었다. 해정의 숨결이 귀 뒤로 느껴졌다. 

“현수야.”

“응, 해정아. 나 배……, 배 차가워.” 

낮은 목소리는 다정했다. 해정은 현수를 종종 이런 식으로 부르곤 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부르는 경우는 두 가지였다. 화가 많이 났을 때. 또 섹스를 하고 싶어 할 때. 아니, 섹스를 꼭 해야만 할 때. 현수는 지금이 후자의 경우라고 여겼다.

“요즘 왜 이렇게 들떴어.”

“배 너무, 누르지, 으응…….”

“왜. 누르면 아프대?”

귓바퀴를 콱콱 물어 대는 이와 배를 자꾸만 누르는 손바닥이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현수는 바르르 떨면서도 제 손보다 훨씬 큰 해정의 손을 덮고 달래듯 슥슥 손등을 손가락으로 매만졌다. 뒤에 붙은 몸은 꼭 제 전신을 압박하는 것만 같았다. 엉덩이에서 딱딱한 것이 느껴졌다. 해정은 존재를 주장하듯 그것을 현수의 엉덩이와 허벅지 쪽에 비볐다.

“아니, 내가 아파서 그래. 저기, 해정아, 오늘은…….”

“안 돼?”

귓바퀴와 뒷목에 입술을 찍어 누르던 움직임이 멈추었다. 성관계는 당분간 하지 말라고 했던 의사의 경고는 몇 시간 전 병원에서 같이 들었다. 그러나 해정은 모르는 척, 꼭 현수에게 들어야 멈추겠다는 듯 굴고 있었다.

현수가 해정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몸의 방향을 바꾸기 위해 허리를 살짝 비틀었다. 그러나 붙은 몸은 꼼짝하지 않았다. 

“해정아, 얼굴 보게 팔 좀 풀어 봐.”

“대답부터 해 봐. 안 돼?”

대체 왜 묻는 거지. 같이 들었잖아. 이상한 태도에 의문이 커졌으나 되물을 마음이 들지는 않았다. 지금 당장은 몸이 꽤나 지친 상태이기도 했고 또 해정을 적극적으로 달래기에는, 자신도 어느 정도 기분이 상한 상태였다. 그가 저를 사랑해서 몸을 해하려고 하는 건 기꺼이 견딜 수 있으나 제 몸이 상하든 말든 관심이 없는 건 싫었다. 아니, 조금 화가 났다. 본디 차가운 서해정은, 제게만은 늘 뜨거워야 했다. 그건 자신이 유일하게 세상에 드러내는 이기적인 욕심이기도 했다.

현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안 돼. 나 임신했잖아. 애한테도 안 좋다고 의사 선생님이, 읍……!”

별안간 커다란 손이 올라 듣기 싫다는 듯 우악스레 입을 틀어막았다. 놀란 현수가 어깨를 굳혔다.

“알았으니까 그만 말 해.”

 뒤이어 따라오는 목소리가 서늘했다.

 분위기가 이상했다. 생각보다 더 험악한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당황한 현수가 눈을 굴리는 사이, 손과 몸이 떨어졌다.

“…….”

현수는 잠시 고민했다. 결국 상해 있던 기분을 뒤로 미루고 천천히 몸을 돌린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현수에게는 제 기분보다 해정을 달래는 게 우선이었다. 그것은 생존 본능에 가까운 우선 순서였다.

해정은 제 뒤통수를 빤히 보고 있던 듯했다. 몸을 돌리자 곧바로 눈이 마주쳤다. 현수는 조심스레 그의 목에 팔을 감았다. 부드럽게 밀착해 오는 마른 몸을, 해정은 잠자코 바라보기만 했다. 시트가 느긋한 속도로 움직이는 소리가 났다.

“왜 그래. 화났어?”

“…….”

해정은 답하지 않았다. 그저 빤히 현수를 바라보기만 했다. 그 눈을 들여다보고 있어도 도무지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현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의도적으로 덧칠한 것처럼 그의 눈은 새카맣고 불투명했다. 해정은 똑똑하다. 작정하고 숨긴다면 저처럼 그렇게 예리하지 못한 사람은 무엇도 파헤칠 수가 없었다.

“못 하는 거…… 알면서. 알면서 왜 그렇게 물어봤어.”

“…….”

“혹시 기분 안 좋은 일 있어? 내가 뭐 잘못했으면 말해 줘. 나 그런 거 잘 모르는 거 알잖아……. 해정아, 응?”

그러니까 차라리 이런 정공법이 나았다. 그를 상대로 떠보거나, 머리를 굴리는 건 맨몸으로 갑옷을 입은 상대와 싸우는 것과 같았다. 또 그럴 필요가 없기도 했다.

현수가 해정의 입술에 쪽쪽 뽀뽀하며 나긋하게 속삭였다. 눈을 깜빡이며 감질 맛 날 정도로 입술 끝을 할짝거리자 기어이 해정이 언제 얼굴을 굳혔느냐는 듯 입꼬리를 미끄러뜨렸다. 곧은 손가락이 척추를 따라 일직선으로 천천히 내려갔다.

“……형이 뭘 잘못해요.”

해정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현수는 공연히 눈꼬리를 늘어뜨렸다. 제가 보기에는, 또 객관적으로는 별것 아닌 표정이었는데 해정은 이 표정을 좋아했다.

“기분이 안 좋아 보여서 그러지.”

“형이 안 좋아 보였는데? 시위했잖아. 나 들어와도 모르는 척.”

그 때문에 심술을 부렸나. 현수는 짐작하면서 역시 서해정답다고 생각했다. 그는 결코 제게 틈을 주지 않았다.

시인할까, 아니면 변명을 할까 잠시 고민하던 참이었다. 돌연 해정이 현수의 턱을 가볍게 잡아 왔다. 얼굴을 당겨 깊숙이 입을 맞춘다. 느릿하고 끈질기게 섞이는 혀가 입 안의 여린 살을 다 녹이는 것 같았다. 현수는 적극적으로 키스를 받아 주면서 해정의 뒷목을 엄지로 살살 매만졌다. 

한참 뒤 입술이 떨어졌다. 눈은 여전히 가까웠다. 키스 후 해정은 한결 풀어진 얼굴이었다. 그게 가식인지, 진심인지 현수는 알지 못하고 내심 안심했다.

“삽입은 안 되니까, 내 허벅지 사이에다가 할래?”

유혹적으로 헐떡이는 목소리가 숨이 섞인 좁은 틈 사이를 메웠다. 해정이 약하게 웃었다.

“나는 삽입하고 싶은데.”

잔뜩 흐트러진 현수의 목소리와 달리 해정의 것은 또렷하고 정갈했다. 해정은 티셔츠 안에 손을 넣고, 갈비뼈를 집요하게 매만지며 말했다. 현수는 그것이 갈등 뒤에 경직된 분위기를 풀기 위한 장난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짐짓 난처하다는 듯 웃었다. 그리고 해정의 뒷머리를 매만졌다. 키스를 하기 위해 얼굴을 가까이 했을 때였다. 

“윽……!”

돌연 갈비뼈를 꽉 쥐는 손아귀에 왈칵 숨이 막혀 온다. 갈비뼈가 당장에 박살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우악스러운 힘이었다. 목줄기에 칼날이 닿은 것처럼 아슬아슬한 감각이 엄습한다. 현수가 가까이 가던 얼굴을 멈추었다. 대신 해정이 다가왔다.

“나는 넣고 싶어, 현수야.”

“해정아, 갑자기 왜…….”

“섹스하고 싶다니까?”

손에 힘이 더 세게 들어갔다. 두려움에 턱이 덜덜 떨려 오기 시작한다. 현수가 떨리는 목소리로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나 진짜 무서워, 해정아, 손 좀…….”

“김현수. 닥치고 들어 봐.”

“…….”

별안간 험악해진 목소리가 피를 가시게 했다. 갈비뼈를 꽉 쥐는 건 힘 조절에 실패한 게 아니었고, 이 또한 장난이 아니다. 들끓는 목소리가 목숨 줄을 위협하는 듯했다. 깨닫자 팔뚝에 소름이 끼쳤다.

해정이 당장에라도 갈비뼈 사이에 손가락을 후벼 넣을 것처럼 움직였다. 현수는 침조차 삼키지 않았다.

잠깐의 간격을 두고, 해정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네 후장에 처박고 싶다고. 네 배 안에 뭐가 있든 없든.”

“…….”

“못 알아들어?”

기어이 새카만 눈에 불투명한 색의 막이 벗겨진다. 의도적으로 가리고 있던 그 감정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했다. 그러나 좋지 않은 것임은 분명하다.

뭔가가, 잘못됐다. 현수는 그제야 깨달았다.

서해정이 저를 현수야, 라고 부르는 두 가지 경우. 화가 많이 났거나, 혹은 섹스를 해야만 하거나. 지금은 후자가 아닌, 전자였다.

대체 왜?

“……하지, 잠깐, 서해정!”

해정은 현수에게 고민을 할 틈도 주지 않았다. 그 정도로 자비로운 성정은 아닐뿐더러 그럴 필요도 없었다. 김현수는 내 건데 왜. 해정은 분노로 벌겋게 물든 머리를 굳이 식히려 하지 않았다.

갈비뼈를 압박하던 손이 빠져나갔다. 곧바로 거칠게 바지를 벗겼다. 해정은 지금 성욕을 이기지 못한 게 아니다. 자신을 해하려고 하고 있다. 그 의도가 노골적으로 느껴져서 현수는 몸을 떨었다. 본능적으로 해정의 어깨를 밀어냈으나 단단한 몸은 밀려나기는커녕 더 강하게 현수를 압박했다. 긴장한 탓인지 복통이 밀려왔다. 몸을 웅크리려던 찰나 해정을 밀어내던 두 손목이 한 손에 잡혔다. 

“갑자기, 왜 그래. 해정아, 나 무서워……. 하지 마. 잠깐 얘기 좀…….”

“무슨 얘기. 그 기생충 얘기?”

갑작스러운 상황에 목을 쥐는 공포가 눈물샘을 터뜨렸다. 현수가 바들바들 턱을 떨면서 말하자 해정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그 얘기는 재미없는데. 그만 좀 하자.”

삽시간에 싸늘하게 돌변한 목소리가 덧붙였다. 두 팔이 매트리스 위로 짓눌렸다. 이미 바지와 속옷은 벗겨진 상태였다. 임신한 뒤로 더 살이 빠진 모양인지 볼품없이 마른 다리 사이에 해정이 자리를 잡았다. 자연스레 손목이 풀렸지만 곧바로 골반을 쥐어 오는 통에 현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배도 너무 아팠다. 눈물은 멈출 줄 모르고 줄줄 흘러 정신을 어지럽혔다.

“그거 말고 재밌는 거 더 많잖아.”

“해정아, 흑……. 왜, 왜 갑자기 그래…….”

현수는 애원했으나 해정은 듣지 않았다. 무식할 정도로 강한 손이 허벅지 안쪽을 한 번에 움켜잡아 바깥으로 벌렸다. 허리 아래가 번쩍 들리는 통에 복통이 심해졌다. 현수가 짧게 소리를 질렀다. 해정은 아랑곳하지 않는 기색으로 벌어진 사이에 얼굴을 가까이 했다.

“아, 이거 봐. 존나 더럽잖아.”

“해정아……. 나, 나 배가, 배, 아프단 말이야…….”

해정이 못 볼 걸 봤다는 듯 눈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현수가 훌쩍거리며 말했으나 효과가 없었다. 기다란 손가락이 망설임 없이 구멍을 살짝 벌리고 콱 쑤셨다. 척추에 천둥 같은 고통이 내리친다.

“아윽!”

“너 여기 존나 더러워졌다. 벌레 새끼가 몸 다 더럽혀 놨나 봐.”

벌레 새끼?

한 번 내벽을 쑤신 손가락은 미련 없다는 듯 쑤욱 빠져나갔으나 현수는 더 이상 몸을 뒤틀지 못했다. 해정의 말을 이해한 탓이었다. 정신이 없었는데, 생각해 보니 분명 방금도 그렇게 말했었다.

기생충, 이라고. 

내 몸에 사는 벌레. 기생충.

……설마.

현수의 눈이 경악으로 물든 건 찰나의 일이었다. 이제야 자신이 커다란 착각을 하고 있었다는 걸 그는 깨달았다.

“서, 해정, 너, 어떻게……!”

“배 속에 그딴 거나 키우니까, 씨발. 어? 몸이 이렇게 더럽지.”

“서해정!”

현수는 소리 질렀다. 저가 아이에 대한 애정을 갖게 된 계기는 물론 해정이 맞았지만, 그 후 생긴 애정은 별개의 문제였다. 현수는 아이를 좋아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가 아이를 싫어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었지만 아이에게 애정을 느끼고 있는 지금은, 해정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그의 말이 충격적이었다. 배신감마저 들었다.

현수가 어떻게 느끼든지 해정은 관심이 없어 보였다. 그의 눈은 기어이 광기에 가까운 분기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현수는 이런 눈을 종종 보곤 했다. 이런 눈을 할 때의 서해정은 아무 말도 듣지 않았다. 

“안 되겠다. 씻어야겠네.”

“윽!”

해정은 30분 전 샤워를 한, 깨끗하고 건조한 몸을 한 번 쓸더니 팔을 꽉 쥐었다. 팔뚝 뼈가 금방이라도 두 동강이 날 것 같았다. 압도적인 힘이 현수를 이리저리 휘둘렀다. 쿵. 커다란 소리와 함께 버석한 몸이 바닥에 부딪혔다.

“싫어!”

욕실로 끌려가던 현수가 돌연 발바닥에 힘을 주고 버텼다. 이성은 이제라도 해정을 달래는 게 그나마 나을지도 모른다고 주장하고 있었으나, 그러기가 싫었다. 악을 지르는 목소리는 섭섭함에 기인된 것이었다. 아니, 다른 감정들도 함께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

어떻게, 나와 너의 아이를 그렇게 말할 수가 있어. 그걸 품은 내가 어떻게 더럽다고 할 수 있어. 덧붙이고 싶었으나 목이 울음으로 막혀서 길게 말하기는 힘들었다.

힘을 주고 버텨도 가느다란 몸은 속절없이 대리석 바닥 위를 질질 끌었다. 현수가 다시 한번 “놔!” 소리를 지르자 돌연 해정이 우뚝 멈춰 섰다. 현수의 몸이 털썩, 뒤로 넘어졌다.

현수가 팔로 몸을 지탱할 새도 없이 해정이 그의 머리채를 쥐었다. 큼지막한 손에 까만 머리털이 한껏 구겨졌다. 현수가 숨을 들이 삼켰다. 온몸이 오싹거렸다. 그의 힘은 너무 셌고, 자신의 몸은 지금 너무 약했다. 자칫하면 정말로 목숨 줄이 끊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현수를 공포로 몰았다. 칼이 푹푹 쑤시는 것처럼 배가 아팠다.

“아파, 하, 악!”

“좀 닥쳐 봐. 귀 째지겠네.”

냉정하게 읊조리는 목소리는 타인의 말을 들을 상태가 아니었다. 두피가 벗겨 나갈 것처럼 지끈거렸다. 현수는 고통으로 헐떡거리면서 해정의 손에 이끌렸다.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크고 황량한 집을 메웠다. 얼굴이 화끈거렸다가, 식기를 반복한다. 

곧이어 욕실 문을 연 해정이 현수의 머리칼을 놓았다. 현수가 욕실 바닥에 쓰러졌다. 쾅. 욕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동시에 머리 위로 차가운 물이 쏟아진다. 오락가락하던 체온이 삽시간에 얼었다. 해정이 현수의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그리고 젖은 티셔츠 위로 드러난 유두를 꾹 짓누르더니 한 손으로 티셔츠를 벗겼다. 현수는 덜덜 떨면서 우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눈물과 쏟아지는 물이 섞여 턱 아래로 뚝뚝 흘렀다.

“흐윽, 흑……. 흐으…….”

“형도 진짜 너무해. 내가 많이 참아 줬는데.”

정신이 위태로웠다. 정말 칼이 배를 쑤신 건 아닐 텐데 다리 사이로 피가 섞여 흘렀다. 현수는 눈을 끔뻑이면서 흘러가는 벌건 물줄기를 바라보았다.

창백한 손에 의해 다리가 벌어졌다. 의식이 깜빡깜빡, 꺼졌다가 켜지기를 반복하였다. 쏴아아. 물줄기가 쏟아지는 소리 사이로 해정의 목소리가 들려왔으나 그도 역시 들렸다가 들리지 않았다.

“왜 기어이 빡 돌게 하냐고, 사람을.”

“아, 흐, 으…… 흡……!”

지퍼를 여는 소리가 귀를 긁는다. 젖은 몸이 발발 크게 떨렸다. 해정이 제 속옷을 내렸다. 검붉은 성기가 우뚝 솟은 채로 튀어나왔다. 

“네 몸 걱정해서 참아 준 건 생각도 안 해 주고.”

“하지, 하지 마, 하지 마!”

“뭘 하지 마. 자꾸 좆같이 말할래?”

“하, 아……, 안 돼, 안……, 아아, 으, 윽!”

해정은 책망하듯 말하다가 끝내 조소했다. 성난 성기가 망설임 없이 좁은 입구를 비집고 꿰뚫었다. 피는 계속 흘렀다. 입구가 찢어진 건 아니었다.

현수는 숨을 쉬기 위해 입을 벌렸다. 물을 벗어난 물고기의 아가미처럼 가슴팍이 팔딱거렸다. 의식이 꺼지는 간격이 길어졌다. 철퍽. 등이 욕실 바닥에 떨어진다.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연신 안을 쑤시는 성기만 느껴졌다.

“흑, 흐윽, 아, 아, 아……!”

“걱정 마. 이미 뒤졌어.”

“흐으, 으, 아, 아파, 으읏……!”

“이러고도 살아 있으면 내가 그냥 죽여 버리려고.”

낮게 쉰 목소리가 속삭였다. 몸이 계속 흔들렸다. 욕실 안은 피비린내로 가득했다. 현수는 기어이 제 숨이 멎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도 그럴 게 코와 입이 틀어막힌 듯했다. 더 이상 힘이 나지 않았다. 우물 아래로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눈앞이 보이지 않는다. 암흑이었다. 그 뒤로 들려온 해정의 목소리는 흐릿했다. 귓속으로 물이 들어찼다.

현수가 의식을 놓친 건 다음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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