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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수는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최소한의 가구만 들여놓은 거실 바닥은 주황색 햇빛만 가득 뿌려져 있었다. 이윽고 앞뒤로 느리게 흔들거리던 의자가 멈췄다. 가지런한 손이 더듬더듬 제 배를 매만졌다. 납작한 배는 내장도 겨우 들어찰 정도로 바싹 말라 있었다.
“…….”
그래서 더욱 믿을 수가 없었다.
현수는 제 배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문득 주춤하며 손을 떼어 냈다. 언제였을까. 짐작하려고 해도 오리무중이었다. 해정과 몸을 안 섞은 날이 없었고, 또 그중에서도 콘돔을 낀 날이, 배 안에 그의 정액이 흩뿌려지지 않은 날도 없는 탓이었다.
열성 오메가는 임신할 확률이 희박했다. 그중 현수는 더 그랬다. 어렸을 적 검진을 했을 때 의사는 그에게 거의 베타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의 페로몬 농도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히트 사이클이 와도 평소보다 조금 더 성욕이 있는 정도였고, 페로몬 향도 코 박고 맡지 않으면 모를 정도로 옅었다. 해정도 늘 현수의 목에 코를 박고 킁킁거리면서 형이 향을 숨기고 있는 것 같다고, 자신만 맡을 수 있는 것 같아 좋다고 말하고는 했다.
……너무 안일했나.
비로소 현수는 인정하기 시작했다. 실수, 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축복이라고 하기에도 느닷없는 그것의 존재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였다. 한참 식탁에 앉아 턱을 괴고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해정이 일어섰다. 소리 없는 움직임이었으나 현수는 기척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몸조심해야겠네요.”
시선이 마주치자 호선을 그리며 웃는다. 잠잠한 목소리가 일상처럼 말을 걸어왔다. 현수는 눈을 크게 뜬 채로 제게 천천히 다가오는 해정을 바라보았다.
그는 병원에서 집으로 오는 내내 말이 없었다. 생각을 하는 것 같았는데, 현수는 그것이 좋은 쪽으로는 아닐 거라 짐작했다. 더하여 수술에 대한 말을 꺼낼 줄 알았다. 아직은 임신 초기니까, 해정이 그 말을 꺼낸다면 순순히 따를 것이라고 이미 마음속으로 정해 두기까지 했었다. 앞서가는 게 아니었다. 해정이라면, 그러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
그래서 방금 그의 말이 진심인지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현수는 열심히 해정의 표정을 뜯어보았다. 입 끝은 떨리지 않았고, 눈도 광기로 일렁이지 않았다. 평소와 같았다.
가까이 다가온 해정이 현수가 앉아 있는 흔들의자 앞에 주저앉았다. 천천히 팔로 두 종아리를 감싸 안고 무릎에 얼굴을 묻는다. 더 이상 그의 표정이 보이지 않았다.
‘……괜찮은 건가.’
현수는 아직 확신할 수 없는 생각을 떠올리며, 조심히 손을 들어 해정의 정수리를 매만져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