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12/19)

4

씻고 돌아온 침실 안은 조용했다. 최대한 배려하면서 몸을 섞었는데도, 김현수는 못내 피곤했는지 침대에 눕자마자 잠에 빠진 모양이었다. 해정은 모로 누워 자는 현수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침대에 올라 헤드에 상체를 기대앉았다. 협탁 위에 놓인 핸드폰을 들어 문자를 확인한다. 예상대로 이정호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 해정은 물기로 축 늘어진 제 앞머리를 뒤로 넘기면서 살짝 인상을 썼다.

[개새끼야]

[(사진)]

[이딴거 보내면 다냐?]

[누가 보내달래?]

[야]

[김현수 죽였지 너]

[이거 진짜 싸이코패스아냐???]

[애들 김현수 유학가서 아는체도 안한다고 욕하고 난리다]

[내가 이런걸 듣고도 모른ㄴ척해야되냐?]

[미친 새끼야 현수 어딨냐고]

사진은 자신이 김현수 이름으로 결혼식에 보낸 화환이었다. 축의금까지 두둑하게 보내 줬더니만 저 지랄이다. 해정은 성가시다는 눈으로 잠시 문자를 바라보다가 현수의 머리를 살짝 움켜쥐고 있던 손을 빼내었다. 흰 손이 검고 긴 머리칼 사이로 미끄럽게 빠져나가 핸드폰을 쥐었다. 해정이 답장을 보냈다.

[메일함 확인해봐요]

‘알려 주기 싫었는데.’ 그는 양보하기 싫어하는 아이 같은 얼굴로 쯧, 약하게 혀 차는 소리를 냈다.

김현수가 저 몰래 뭐라도 해 보겠다고 그렇게 용을 쓴 만큼 장단을 맞춰 주고 싶기도 했고, 메일함에 묻혀 영영 놈이 보지 않았으면 하는 못된 마음도 있었다. 마음만 먹으면 김현수가 보냈던 메일을 찾아 발신을 취소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게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다. 저 몰래 이정호에게 메일을 보냈을 때, 들킬까 봐 바들바들 떠는 뒷모습이 꽤 인상적이었고, 끝내는 어떤 착각에 빠진 눈으로 이따금 뿌듯한 미소를 짓는 게 귀엽기도 한 까닭이었다.

우웅. 우웅. 우웅.

문자를 보자마자 곧장 메일을 확인했는지 문자가 연달아 오기 시작했다. ‘오늘 결혼식 올린 새끼가 바쁘지도 않나.’ 해정은 벨소리처럼 진동하는 핸드폰을 협탁에 내려 두고는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잠결에 뒤척이는 현수를 뒤에서 옭아매듯 꽉 안았다.

야트막한 숨소리가 귀를 간질인다. 그는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현수의 왼쪽 손에 약하게 깍지를 껴 올렸다. 왼쪽 약지에 끼워진 반지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해정이 가느다란 손가락을 옥죄고 있는 반지를 둥글둥글 좌우로 굴리며 매만졌다.

“…….”

솔직히 자신은 이런 쓸모없는 상징에 감흥이 없을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대상이 김현수라면 이야기가 달라지는 듯하다. 이정호의 결혼식 날이니 모르는 척 프로포즈 흉내를 내서 괜한 겁을 집어먹는 얼굴을 구경할 셈이었는데, 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진지해진 것은 예상 밖이었다. 김현수에게 반지를 내민 순간 알 수 없는 절절함이 들끓었고, 그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운 순간은 황홀하기까지 했다.

‘나도 웃기네. 무슨 결혼한 것도 아닌데.’

해정은 퉁명스럽게 생각하면서도 현수의 손을 제 쪽으로 끌어 반지 위에 입술을 맞췄다. 촉. 가볍게 마찰하는 소리가 고요한 침실 안에 은은하게 퍼졌다.

“결혼 같은 건 너무 시시하지 않아?”

“…….”

“이혼하면 끝이잖아. 너랑 나는 끝이 없는데.”

죽어서도 끝이 안 날 텐데, 너랑 나는.

해정은 자는 현수의 귀에 대고 중얼거렸다. 답이 없는 귓불을 살짝 핥으면서 “그렇지?” 한다. 동시에 가느다란 허리를 거세게 끌어당기자, 결박당한 몸이 불편한지 현수가 뒤척이듯 움직였다. 눈을 감은 채 더듬더듬 손을 뻗어 해정의 뺨을 매만진다.

“……응…….”

“다음 생에는 너보다 먼저 태어나서, 평생 가둬 둘 거야.”

“…….”

“태어날 때부터 길들여 줄게.”

“……그래…….”

단순한 잠꼬대가 아니었다. 저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모르고, 잠결에 제 목소리가 들려오니 무작정 반응하는 것이었다.

그 증거로, 더 이상 해정의 목소리가 들려오지 않으니 바야흐로 뺨을 만지던 손이 툭, 시트 위로 떨어졌다. 현수는 입맛을 다시는 것처럼 입술을 오물거리다가 이윽고 색색 다시 숨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

해정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불현듯 몰아치는 흥분감에 당장 김현수를 깨워서 한 번 더 섹스라도 하고 싶었으나 참았다. 대신 슬금슬금 허리를 움직여 그의 엉덩이골 위에 성기를 살짝살짝 비비기 시작했다. 이렇게라도 쌀 수는 있었다.

“하, 하아…….”

더운 숨이 현수의 귓바퀴 위로 터졌다. 삭삭삭삭. 두 살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이불 아래로 들려왔다. 김현수는, 점점 나로 채워지고 있다. 새삼스러운 사실이었지만 2년이 지나도 짜릿한 건 여전했다.

아니, 도리어 점점 심해졌다. 시간이 갈수록 김현수의 초점이 저에게만 향하고, 시야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 걸 깨달을 때마다 미칠 것 같았다. 끝내는 저 남자의 몸 안 가득 제 이름만 남겨지는 날이 올 거라는 생각이 까마득한 쾌락을 터뜨렸다.

아무것도 모르고, 오직 나만 아는 거야.

조금만 더 있으면. 몇 년만 더 지나면.

오직 나를 위해서만 사는 거야.

내가 없으면 아무 쓸모도 없어, 넌. 그냥 죽어 버려야 마땅해.

“씨발, 헉……. 김현수, 김현수…….”

해정이 인상을 찌푸렸다. 철썩거리는 소리가 더 강해졌다. ‘씨발. 깨우기 싫은데.’ 해정은 생각하면서도 습관적으로 현수의 귓바퀴를 세게 물었다. “……흣!” 동시에 현수의 어깨가 움찔거리면서 숨을 짧게 들이마시는 소리가 났다. 역시나 깬 모양이었다. 해정은 어쩔 수 없다고 태평하게 생각하면서 그대로 성기를 구멍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현수의 몸을 돌려 그의 다리 사이에 무릎을 대고 섰다. 좀 뻑뻑했지만 아주 움직이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아, 응, 몇 시, 몇 시야?”

“몰라.”

“다음, 하아, 흣……! 다음, 날이야?”

눈을 가느다랗게 뜬 채로 멍청한 소리를 지껄이는 걸 보니 잠이 덜 깬 모양이었다. 해정은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너 30분 잤어.” 하며 현수의 무릎 뒤에 손을 받치고 바깥쪽으로 살짝 밀었다. 다리가 넓게 벌어졌다.

종일 시달리다가 기절하듯 눈을 붙였는데, 그나마 잠을 자는 것마저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는 행태에 뭐라고 불평이라도 할 만했지만 현수는 신경 쓰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저 머리를 왜 안 말렸냐며 몸이 흔들리는 와중에도 손을 뻗어 해정의 젖은 머리를 만지작거릴 뿐이었다.

“네가 안 말려 줬잖아.”

“감기 걸려, 앗, 으응……!”

“……김현수. 그거 알아?”

“아흣, 뭐? ……아, 아파.”

난도질된 것처럼 상처가 가득한 젖꼭지를 비틀자 현수는 몸을 바르작거리며 인상을 썼다. 잠이 깼는지 발음이 선명해졌다. 해정은 보란 듯 젖꼭지를 길게 잡아당기면서 “네 친구, 오늘 결혼했어.” 하고 말했다. 아프다며 해정의 팔을 약하게 쥐던 손이 찰나에 움찔거렸다. 해정은 그 얄팍한 동요를 눈치채지 못한 척했다.

“누구? ……정호?”

움직임을 멈추고 허리를 굽혀 오자, 현수는 해정의 뺨을 어루만지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모르는 척 천연덕스럽게 물어 오는 게 웃겨서 해정은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웃었다. 고개를 끄덕인다.

“응.”

“……그렇구나.”

“너한테 편지도 보냈더라고.”

‘편지를 봤어? 어떻게? 뜯은 흔적이 없었는데?’

순간 놀란 현수는 표정 관리를 하지 못하고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뺨에 대고 있는 손가락도 딱딱하게 굳었고, 침을 삼키는지 목울대가 울렁거린다. 이윽고 현수는 가까스로 잠잠한 얼굴을 하고는 “……그렇구나.” 했다. 그 모양을 물끄러미 보던 해정이 말했다.

“답장 보낼래?”

“……어?”

“친구가 결혼했는데, 모른 척하기도 뭐하잖아.”

“…….”

“내가 대신 전해 줄게.”

해정은 능청스레 말하면서 허리를 살살 휘젓기 시작했다. “응? 빨리 말해. 마음 바뀌기 전에.” 하고 겁을 주자, 현수는 눈치를 볼 기회조차 빼앗긴 채로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래. ……부탁할게.”

“…….”

“고마워, 해정아.”

그럴 거라고 생각하고서 떠본 건 맞는데, 냉큼 좋다고 하면서 실실 웃기까지 하니까 또 변덕스레 짜증이 인다. 진짜 웃긴 게 이거였다. 김현수는 그토록 능숙한 척하면서 항상 자신의 괜찮은 척하는 얼굴에는 깜빡 속아 넘어간다.

‘짜증 나게.’

끝내는 해정의 입이 비뚠 모양으로 일그러졌다. 북 치고 장구 치고. 시험하듯 떠보다가 진짜 넘어오면 길길이 화를 내는 미친놈 같은 짓. 스스로도 몇 년째 이런 짓을 그만두지 못하는 자신이 우스웠으나 그렇다고 참을 필요성은 느끼지 못했다. 해정은 움직이던 것을 뚝 멈추고 가만히 현수를 내려다보았다. 현수의 얼굴 위로 어렴풋한 그늘이 졌다.

정확히 말하면, 참지 못한다. 저절로 폭주하는 망상과 불안은 제 의지로 되는 게 아니었다. 예전보다 나아졌다고 해도 아예 고칠 수는 없었다. 그저 지금은, 그것들이 벌집처럼 안에 도사리고 있는 것뿐이었다. 결국 벌집이 흔들리면 전과 똑같아진다. 벌떼가 튀어나오는 것처럼 미친 듯이 생각이 몰아치는 것이다.

“…….”

고맙다고? 웃어? 고맙기까지 해? 그 새끼한테 종이 쪼가리 하나 보내는 게? 뭐가 고마워? 그렇게 만나고 싶었어?

왜?

왜 만나고 싶은데?

그 새끼를 왜 만나고 싶냐고.

그 새끼를, 왜.

“……왜 그래?”

파헤치는 것처럼 집요하게 쳐다보는 눈빛과 한순간 고요해진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삽시간에 바뀐 분위기에 현수가 웃는 입모양을 어색하게 굳혔다. 그리고 눈을 의식적으로 깜빡이며 물었다.

해정이 눈을 살며시 감았다가 떴다. 눈꺼풀을 따라 속눈썹이 펄럭거렸다. 이내 그는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

“꼭…….”

“…….”

“정분이라도 난 것처럼 구네?”

눈을 감았다 뜬 그사이에, 다갈색 눈은 차갑게 식다 못해 얼어 있었다. 그 변화는 경각이었다.

“……어?”

“내가 걸레짝 되도록 박아 줬는데도 허전한가 봐, 너는.”

“…….”

“그래?”

찰거머리 같은 손이 턱에 착 달라붙어 얼굴을 빳빳하게 고정시켰다. 장난은 아닌 것 같았다. 그러기에는 목소리가 아주 낮았다. 해정의 머리가 이상한 곳으로 튀는 순간에는 늘 저런 목소리였고, 저런 눈빛이었다. 더하여 그 순간은 굉장히 급진적이었으며 가늠할 수도 없었다.

‘아, 실수했다.’

현수는 곧바로 깨달았고, 동시에 입을 열었다.

“아니야.”

“…….”

“그냥, 네가, 네가 모른 척하기 뭐하다고 했잖아. 그래서…….”

“…….”

황급히 변명을 이어 갔지만 해정은 듣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는 천천히 몸을 떼어 내며 침대 위에 앉았다. 현수를 가만히 바라보는 얼굴이 얼음상처럼 꼿꼿했다. 기어이 앙다문 입에서 아드득, 이가 갈리는 소리가 났다. 동시에 현수는 반사적으로 팔을 벌려 씨근덕거리는 목을 껴안았다. 몸을 바싹 붙이며 달래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해정아, 미안해.”

“…….”

“화났어?”

“…….”

“형이 어떻게 해야 화가 풀릴까, 해정이가.”

“…….”

비위를 맞춰 주는 다정한 속삭임이 이어졌으나 해정은 침묵을 일관한 채로 현수의 입술을 응시했다. 그 얼굴은 다른 생각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분명 망상일 터였다.

‘안 되겠다.’

어디까지 솟는지 모를 망상의 줄기를 끊어 내야 했다. 조마조마한 얼굴로 해정의 얼굴을 올려다보던 현수가 상체를 밀어 침대 헤드에 기대어 앉았다. 그리고 더듬거리며 제 티셔츠를 가슴 위까지 걷었다.

“해정아, 여기 봐봐.”

여기 보라는 말에 불퉁한 얼굴이 돌아갔다. 바로 정면에 얼룩덜룩한 맨가슴이 탐스러운 과일처럼 매달려 있었다. 가슴을 무심한 눈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던 해정이 눈만 올려 현수를 바라보았다.

태연한 척 유혹하고 있지만 귓바퀴와 목이 터질 듯 붉어져 있을 게 분명했다. 현수는 솟구치는 민망함을 필사적으로 숨기며 말했다.

“안 빨아 줄 거야?”

“…….”

“우리 해정이가 여기, 제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능청스러운 그 말에, 비로소 뇌에 박혀 조용히 뿌리를 뻗어 나가던 검고 질척한 것이 주춤했다.

다그쳐야 하는데. 확인해야 하는데. 진짜 그 새끼랑 아무 사이도 아닌지, 알아내야 하는데. 진짜 김현수가 개 같은 짓을 했으면 어떡해. 김현수가 날 속인 거면. 씨발, 진짜 그런 거면 어쩌려고.

그런 생각들이 뇌를 미친 듯이 쏘아 대는데도 몸은 김현수에게 모조리 휘둘렸다. 해정의 팔이 망설임 없이 마른 허리를 잡아 현수의 상체를 바싹 끌어당겼다. 솔직히 볼 거 하나 없는 꼭 나무토막같이 판판하고 뻣뻣한 가슴인데 왜 이렇게 볼 때마다 미칠 것 같은지 모르겠다. ‘젠장.’ 해정은 군침을 삼키며 자그마한 유두에 입을 박았다.

“읏, 아…….”

현수는 둥그런 머리통을 꼭 안은 채로 해정의 입을 느꼈다. 습한 기운이 가슴 위로 스며들었다. 끈질기게 가슴을 빨면서도 드문드문 화를 풀듯 젖꼭지를 아프게 깨물던 해정이 얼굴을 떼어 낸 건 그로부터 한참 뒤였다. 무표정했지만 뺨이 발그스름하고 숨이 살짝 흐트러져 있었다. 그는 잡고 있던 허리를 풀어 주며 말했다.

“엎드려서 벌려.”

딱딱하면서도 은근한 조바심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이 말은 침대에서 벌리라는 뜻이 아니었다. 현수는 그대로 침대에서 내려와 해정의 말대로 했다.

러그 위에 맨 무릎과 이마가 닿았다. 볼품없는 엉덩이가 허공 위로 바짝 섰다. 짧게 손톱이 깎인 단정한 모양의 손가락이 볼기를 힘껏 붙잡고 양옆으로 벌렸다. 구멍이 보란 듯 드러나자 해정이 현수의 뒤에 흘레붙는 것처럼 몸을 밀착했다. 귓바퀴에 입술을 누른 채로 경고한다.

“김현수.”

“응.”

“걸리기만 해. 진짜 죽여 버릴 거야.”

“형 죽일 거야?”

‘대체 뭘 걸린다는 건지. 대체 생각이 어디까지 나아간 걸까.’ 싶은 생각에 속없게도 금세 웃음이 샜다. 현수는 제 엉덩이를 벌리는 와중에도 푸스스 웃으면서 되물었고, 해정은 굳은 얼굴 그대로 말랑한 뺨에 잇자국을 남겼다. 성이 덜 풀린 손이 아래를 스스럼없이 움켜쥐었다. “아, 으응…….” 현수가 신음을 흘리며 등을 떨었다.

“너 말고, 그 새끼 죽여 버리겠다고.”

“……읏, 그렇게 만지면…… 아……!”

“내가 죽기 직전까지는 살려 둬야지, 넌.”

음산하게 덧붙이는 목소리가 불그스름해진 뺨 근처를 맴돌았다.

콱, 메마른 구멍을 위협적으로 쑤시는 감각이 이어졌다. 해정의 손가락이었다. 현수는 움칠 몸을 떨면서도 한편으로는 안도했다. 그는 해정이 더 세게 쑤시기 편하도록 엉덩이를 더 바짝 들었다. “나한테 존나 박히고 싶어서 이러지. 응?” 하고 조급하게 물어 오는 낮은 목소리에 고개를 끄덕이며 “응, 존, 나…… 박아 줘.” 하고 꼬드기자 그에 호응하듯 손가락이 하나 더 늘었다. 해정의 숨소리가 거친 질감으로 선명해진다.

“읏, 좋아, 아, 해정아.”

“걸레 같은 게, 씨발, 어딜…….”

헐거워진 구멍은 몇 번 풀어 주면 쉽게 좆을 넣을 준비가 끝났다. 제 것밖에 넣지 않은 것을 아는데도 이상하게 짜증이 났다. 이대로 점점 더 야해진다면 진짜 감당 못할 정도로 화가 날 것 같았다. 해정은 어리광처럼 짐짓 못된 말을 내뱉으면서 손가락을 뺐다. 그리고 쉬지 않고 거칠게 제 것을 쑤셔 박았다. 일부러 느끼지 않는 곳을 향해 박았는데도 김현수는 쾌감에 젖은 목소리로 울었다.

“……김현수. 김현수. 하, 윽…….”

“아, 천천, 흐읏, 해정아, 천천히……, 아, 아……!”

“빨리…… 빨리, 하아, 말해. 어? 빨리…….”

“사랑해, 해정아, 응, 사랑, 해……. 아, 흣……!”

겨우겨우 흐른 그 한마디에 해정은 기꺼이 만족했다. 그는 그제야 현수가 느끼는 부분을 성기 끝으로 찔러 주었다. 제가 아까 물어뜯은, 피 묻은 귀를 쪽쪽 게걸스레 빨자 움직임을 따라 흔들리던 마른 몸이 자지러지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현수는 러그에 볼을 비비적거리며 콱콱 들어차는 성기를 받았다. 하여간, 어떻게 봐도 서해정은 아직 어린 게 맞다는 생각과 함께였다.

어린애. 복잡한 듯하면서도 결국은 누구보다 단순한 서해정.

귀여워.

그는 우는 신음성을 높이면서도 웃었다.

* * *

현수야, 형님 결혼한다.

이 편지가 너한테 갈지 안 갈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청첩장 보낸 김에 써 본다. ㅋㅋ 내가 얼마나 너를 생각하는지 알겠냐?

너한테 수영이를 소개시켜 줄 기회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게 좀 아쉽네. 너랑 잘 맞을 것 같거든. ㅋㅋ

작년에 만났을 때 말했던 것 같은데 네놈 새끼가 까먹을까 봐 한 번 더 말해 준다. 수영이는.. 혜원이 알지? 내 대학후배. 혜원이 소개로 만나게 된 여자고, 우리랑 동갑이야. 되게 똑똑하고 멋있다. 1년 사귀다 보니까 뭔가 느낌이 딱 오더라고. 아, 이 여자랑 결혼해야겠다, 하는 확신 같은 게. 왠지 너라면 직업이 뭐냐고 물어볼 것 같아서 말하자면 인테리어 회사 다녀. 신혼집 인테리어는 문제 없다ㅋㅋ

청첩장 핑계로 내 안부만 얘기하고 있는데.. 사실 난 네 안부가 더 궁금하다. 넌 잘 지내냐?

이젠 문자도 답 없고.. 그 자식한테 네 안부 물어봐도 답장도 안 하고 전화도 안 받는다. 그럴 거면 그날 전화번호는 왜 준 거냐? 대체 그 새끼 왜 그러냐? 너 살아는 있는 거지?

걱정된다 현수야. 나는..

다 지나서 하는 얘긴데, 작년에 너 만난 날 말이야. 티만 안 냈지 솔직히 진짜 쇼킹했어. 친구도 못 만나게 하는 것부터가 미친 것 같은데 따라와 가지고 죽일 것처럼 노려보고, 너는 걔 눈치 보느라 커피도 안 마시지, 나랑 눈도 안 마주치지, 옴짝달싹 못하는 거 보이지, 결국 30분도 못 채우고 너 끌고 가는 거 보고 진지하게 경찰에 신고할까 생각도 했다.

그만큼 이상하다는 거야. 이상해 현수야.. 이건 진짜 비정상이야. 진짜 괜찮은 거냐? 협박당하고 있는 거면 도와주고 싶어서 그래. 너 그렇게 산 지 2년이나 지났다고.. 인간이 버틸 수는 있어?

모르겠다. 난.. 내가 이렇게 방관하고 있는 게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어.

괜찮다고 계속 말했던 거 알아. 문자로도 그랬고 그날 만나서도 그랬잖아. 괜찮다고. 그 새끼 사랑한다고. 근데.. 이게 과연 사랑인가 생각한 게 한두 번이 아니야. 게이라서가 아니라.. 너네 둘 하는 게 그래. 사랑한다고 꼭 갇혀 살아야 되는 건 아니잖아.

너무 내 생각만 말했다면 미안하다.. 걱정돼서 그랬어. 우리 고등학교 때 그런 말 많이 했잖아. 그냥 중간만 가면 행복한 인생이라고. 평범한 게 제일 행복한 거라고. 네가 제일 많이 그랬잖아. 그게 요즘 자꾸 생각나서 한 말이야. 그러니까 너무 기분 나쁘게 듣지 말아 줬으면 좋겠다.

답장 줄 수 있으면 답장 줘. 건강 챙기고. 너 너무 말랐더라. 우리 삼촌 건강원 하는 거 알지? 녹용 필요하면 보내 줄게. (장어즙 추천)

결혼식도 올 수 있으면 와라. 얼굴 좀 보자. 우석이, 경태도 너 보고 싶대. (경태 자식은 아직도 여친 못 사겨봄ㅋㅋ 결혼식 오면 같이 놀리자ㅋㅋ)

꼭 와! 기다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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