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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열렸다. 밑창이 단단한 남색 스니커즈가 신발장에 섰다. 바깥의 뜨거운 열은 하나도 받지 않은 것처럼 창백한 얼굴이 길게 자란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문을 닫았다. 쾅, 소리가 났다. 무표정한 얼굴과는 달리 신발을 벗는 동작은 다소 신경질적이었다.
실내 슬리퍼가 은은하게 빛나는 대리석 바닥 위를 뱀처럼 질질 끌었다. 이윽고 커다란 눈동자가 소리 없이 거실을 훑었다.
“…….”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거실을 가만히 보고 있던 무표정한 얼굴이 천천히 돌아갔다. 해정이 침실로 향하려던 순간이었다. 철그럭, 하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김현수가 움직이는 소리다. 해정은 곧바로 등을 돌렸다. 돌연 조그만 동물이 풀숲 안으로 뛰어들듯 부엌 뒤에 숨어 있던 현수가 그대로 해정의 품에 안겨들었다. 해정은 반사적으로 마른 몸을 팔로 감싸 안으면서 도르륵 눈동자를 내렸다. 김현수의 얼굴이 가까이 있었다.
“놀랐지.”
“……뭐예요, 갑자기.”
이런 애 같은 짓을 하면서 배시시 웃는 꼴이라니. 어이가 없었다. 냉소적인 생각과는 달리 얼음장처럼 서늘하게 굳어 있던 얼굴 위로는 어렴풋한 미소가 녹아내렸다.
“그냥.”
현수는 제 뺨을 향해 허리를 숙여 오는 해정을 올려다보면서 대답했다. 곧이어 뺨을 깨무는 감각이 느껴졌다. 이미 표식처럼 자리 잡고 있던 잇자국 위로 또 다른 점선이 생겼다. 꽤 아팠으나 그는 인상을 찌푸리는 대신 “오늘은 일찍 왔네?” 하고 물었다.
“내일은 별 볼 일 없는 시험이라.”
“그렇구나. 저녁은?”
“괜찮아요. 기다려, 씻고 올게요.”
쪽. 입맞춤과 함께 온몸을 감싸던 체온이 떨어져 나갔다. 현수는 떨어진 해정의 몸을 다시 가까이 당겼다. 매달려 입술을 맞대자 해정은 의아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입을 벌려 키스에 응했다.
잠시 후 입술이 떨어졌다. 동시에 현수가 슬쩍 뒤로 물러났다. 셔츠 소매 끝을 약하게 펄럭이며 해정에게 제 차림을 보인다. 그제야 해정의 눈동자가 내려가 현수의 몸을 바라보았다.
“…….”
김현수가 자신의 셔츠를 입고 있다. 그를 인지함과 동시에 해정이 퍼석한 웃음을 흘렸다.
촌스러운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너무 뻔한 부추김이었다. 본인도 영 민망한지 가느다란 허벅지를 비비적거린다.
김현수와는 어울리지 않는 짓이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고는 있는지 목덜미가 붉게 물들어 있었다.
“무슨 수작이에요, 이건?”
저를 건성으로 훑으면서 어이없다는 듯 흘리는 말과는 달리 하체가 팽팽하다. 그를 확인한 현수는 해정에게로 바짝 다가가 그의 목을 안았다. 바스락거리는 셔츠 소리마저 해정에게는 자극적이었다. 해정은 가만히 고개를 숙여 볼 것 없는 몸을 바라보았다. 축 늘어진 셔츠 자락 위로 현수의 반쯤 선 성기가 툭 불거져 있었다. 맨다리는 아직도 어쩔 줄 모르고 무릎을 꿈틀거렸다.
“어때?”
현수는 몸을 붙이면서 물었고, 해정은 그의 허리를 안으며 말했다.
“싸구려 같아.”
녀석은 너무 좋으면, 괜히 못된 말을 툭 꺼내곤 했다. 못된 버릇이 든 게 꼭 애 같다. ‘이 꼴을 좋아해 줘서 다행이네.’ 현수는 해정이 오기 직전, 거울로 확인한 제 모습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저가 보기에는 그냥 정신 나간 변태 같았기 때문이었다.
“침대로 가자.”
일단 분위기를 계속 살려 둬야 했다. 현수는 공연히 엷게 웃으며 해정의 입술을 가볍게 쪼았다. “얼른.” 하고 보채는 목소리를 내자 허리를 끌어당기는 힘이 강해졌다. 조각상 같은 얼굴 위로 바짝 서 있던 경계가 허물어진다. 조급해진 손이 셔츠 안을 서슴없이 침범했다.
* * *
침대 헤드에 상체를 기대고 앉은 해정은 제 앞의 광경을 퍽 흥미로운 얼굴로 감상했다.
“아…… 읏…….”
젤로 젖은 손가락이 부드럽게 엉덩이를 쑤셨다. 무릎으로 몸을 지탱한 탓인지, 아니면 감각 탓인지 마른 허벅지가 바들바들 떨렸다. 현수는 못내 힘겨워하면서도 계속 제 안을 쑤셨다. 반대 손은 해정의 어깨를 짚은 채였다.
“뭐 어쩌자고 이러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읏, 보여 주려고…….”
“섹스하는 법 알려 주는 거예요, 이제 와서?”
어깨를 짚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렇다기보다는, 해정의 정신을 빼놓기 위해 나름대로 유혹하는 것에 가까웠으나 현수는 아랫입술을 깨물면서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손가락 세 개를 한꺼번에 머금은 구멍을 가만히 바라보던 해정이 시선을 올려 다시 현수와 눈을 마주했다. “친절하네.” 하며 끼고 있던 팔짱을 풀고 현수의 허리를 가볍게 쥔다.
“알았으니까 그만 넓히고 넣어 봐. 어차피 아까 낮에 혼자 쑤셔서 넓힐 필요 없잖아.”
“그건, 응……, 읏, 그건, 너 보라고…….”
간혹 카메라에 대고 자위를 하는 걸 보여 주고는 했지만, 물론, 오늘도 그랬지만 그건 자기만족이 아니었다. 온전히 해정을 위한 재미였다. 애초에 녀석의 요구에 이기지 못했던 게 처음 시작이었다. 현수는 억울하다는 듯 대답하면서도 손가락을 느리게 빼냈다. 그리고 무릎걸음으로 해정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냥 앉아.”
“아냐, 잠, 깐…… 아, 흐…….”
해정은 천천히 내려앉는 허벅지를 한 손에 쥐어 양쪽으로 벌리면서 심술 맞게 장난을 걸었다. 마침내 완전히 몸 안에 해정의 것이 가득 들어차자 현수는 참았던 숨을 깊이 내쉬었다. 헐떡이면서도 뺨에 바쁘게 키스를 한다.
“진짜 왜 그러는데?”
아무래도 현수의 태도가 못내 이상한지 해정이 얼굴을 가까이하고 물었다. 현수는 고개를 느리게 저으며 “그냥…….” 하면서 얼버무렸다. 침을 삼키더니 해정의 어깨를 쥔 채 부드럽게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한다. 성기를 오물오물 주무르는 감각에 해정이 움찔 허리를 떨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아, 씨발…….”
“해정아, 으, 응…….”
서툴고 약한 힘이 허벅지를 착착 때렸다. 현수는 해정의 목에 팔을 걸면서 더운 숨을 색색 불어넣었다. 몸처럼 이리저리 흔들거리는 목소리가 귓가에 머물렀다.
“하, 윽……. 하아…….”
“수작, 같은 거 없어, 하, 으읏…….”
속닥거리는 목소리가 은밀했다. 동시에 해정의 눈이 한순간 거꾸로 뒤집혔다. “아.” 하고 소리를 낸 그 짧은 순간에 몸이 매트리스 위로 놓였다. 목을 안고 있던 손은 어느새 해정의 손에 짓눌린 채로 결박당했다. 그대로 성기가 깊은 곳을 쳐올렸다.
“아, 읏!”
“맨날, 씨발……, 맨날 나 갖고 놀면 재밌어?”
김현수는 수작 같은 게 없다는 말조차 어설픈 주제에 존재 자체로 저를 쥐락펴락한다. 해정은 약이 오른 사람처럼 이를 바득 갈았다. 현수는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다리를 힘껏 벌려 해정을 받아 냈다.
“아니, 아니야, 하으, 윽!”
“내가, 우습지, 맨날, 어? 개처럼, 너만 보면 침부터 질질 흘리니까. 아무 생각도, 못 하니까.”
“해정, 흣, 해정아. 아니야, 응…… 응……!”
현수는 해정을 따라 허리를 흔들면서 매달렸다. 성난 손가락이 현수의 유두를 세게 비틀었다. “아흣!” 현수가 얼굴을 찌푸리며 턱을 치켰다. 손이 머리에 따라붙었다. 머리채를 움켜잡은 해정이 제 얼굴 앞으로 현수를 끌어당겼다.
이글이글 타는 눈이 현수를 빤히 바라보았다. 불현듯 입술이 한꺼번에 삼켜졌다. 현수는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키스를 받아 내면서 안정시키듯 해정의 등을 쓸어내렸다.
“씨발……, 짜증 나…….”
“하아, 하아…….”
……너무 좋아.
김현수, 너무, 좋아.
기어이 해정이 현수의 목에 얼굴을 묻으며, 항복 선언처럼 나지막하게 말했다. 현수는 웃음을 삼켰다. 등을 쓰다듬는 걸 멈추지 않은 채였다.
* * *
해정이 귀가한 건 6시였고, 그 이후로 해정과 현수는 5시간을 내내 침대에서 뒹굴었다. 그들은 섹스를 하다가, 키스를 하다가, 몸에 흔적을 남기기를 반복했다. 중간에 배가 고파 침대를 벗어나 주방에서 식빵을 꺼내 먹을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현수는 식빵을 문 채로, 식탁에 엎드려 해정의 것을 받았다. 해정이 물을 마실 때는 성기를 빨아 주었다. 넓은 집 곳곳이 정액과 가끔 쏟아 낸 체액으로 젖었다. 가히 짐승이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언뜻 스쳤으나 녀석을 기분 좋게 만들기 위해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11시. 방송이 시작하기 전까지는 무조건 해정의 예민한 신경을 조금이라도 무디게 만들어야 한다.
“형, 김현수, 현수야…….”
“응, 해정아, 잠깐만. 형 방송…… 방송 켜도 돼?”
그리고 그 ‘수작’은 성공이었다. 해정의 목소리는 넋이 빠져 있었다. 현수가 은근한 목소리로 물으면서 엉덩이를 콩콩 박아 대자 해정은 “어.” 하고 대충 대답하며 어깨를 물었다. 팔을 뻗어 자물쇠가 달린 서랍의 잠금을 푼다. 그 안에 랜 케이블이 있었다.
행위에 집중한 몸은 랜 케이블을 본체와 벽면에 연결하는 그 단순한 일조차 바로 해내지 못했다. 자꾸 손이 엇갈리자 현수가 직접 본체에 랜 케이블을 연결했다. 해정은 허리를 흔드는 걸 멈추지 않으면서 컴퓨터 앞에 앉았다.
“해정아, 잠깐, 흐, 잠깐만…….”
“하아, 왜…….”
“방송, 20분 만에, 끝낼 테니까……. 응? 잠깐만……, 으응, 멈춰 줘…….”
성기를 꽂은 채로 방송을 할 생각은 없었으나 빼라고 한다면 해정은 금방 정신을 차릴 것 같았다. 현수는 애교를 피우듯이 해정의 뺨에 제 뺨을 비비적거리며 말했다. 해정은 불룩하게 솟은 현수의 배를 만지작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쪽. 현수는 보답처럼 고개를 비틀어 그의 뺨에 키스하고는 인터넷을 켰다. 긴장을 숨기지 못한 손이 주먹을 쥐었다가 폈다.
“해정아.”
“왜.”
현수는 마른침을 삼키고는 넌지시 그를 불렀다. 돌아오는 목소리에 노곤함이 묻어 있었다.
“그…….”
“…….”
하지만 아직 긴장을 완전히 놓을 수는 없었다. 급기야 심장이 미친 듯이 진동했다. 현수는 제 표정을 해정에게 보이지 않고 있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열었다.
태연하게. 태연하게. 평소처럼. 무조건, 무조건 자연스럽게.
“나, 목마른데…….”
“…….”
“물 마시고 싶어.”
비로소 말끝이 희미하게 떨렸으나 운이 좋으면 해정이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그것만 빼면 완벽하게 자연스러운 목소리였다. 현수는 의미 없이 마우스를 빙빙 돌리면서 간절하게 해정의 반응을 기다렸다.
“읏……!”
돌연 몸이 슬쩍 위로 들렸다. 제 속셈을 들킬까 잔뜩 긴장하고 있던 현수가 놀라 화들짝 떨었다. 이윽고 성기가 빠지는 감각이 느껴졌다. 툭. 엉덩이가 맨바닥에 놓인다.
현수의 안에서 빠져나간 해정이 일어섰다.
“물이면 돼요?”
“……아, 어, 그…… 그, 아까 먹던 빵도.”
잠자코 몸을 돌려 걸어 나간다. 방을 나서는 뒷모습을 확인한 현수가 황급히 다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
해정이 돌아오기까지는 약 40초.
이 40초를 벌기 위해, 오늘 5시간을 매진했다.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나쁜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니지만 해정 몰래 무엇인가를 하는 것 자체가 겁이 났다. 현수는 스스로를 진정시키려 애쓰면서 인터넷을 켰다. 미친 듯이 떨리는 커서 때문에 잘못된 곳을 두 번이나 눌렀다.
그나마 인터넷이 빨라서 다행이었다. 현수는 로그인을 한 뒤 메일함을 켰다. 그동안 10초 정도가 지난 것 같았다. 예상은 40초였으나 해정이 더 빨리 돌아올 수도 있었다. 주방에서 냉장고를 뒤적이는 소리가 났다. 조바심이 온몸의 세포를 뜯어내는 듯했다. 떨림이 더 심해진 손이 드르륵드르륵 스크롤을 내렸다. 메일 주소록에서 정호의 아이디를 찾는 것이었다.
jungho0502
찾았다.
동시에, 쾅, 냉장고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현수의 손이 더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받는 이] jungho0502
[제목] .
[내용] 정홍야 나 김현수
결혼 축하해
해정이몰래 한거니가 답장읂 하지마
축의금 ㅁ못줘서 미안해 ㅇ아무리 생각해도 전달할 방법이 없ㄴ[
때봐서 다ㅅ;연락할게
결혼축ㄱ하해^6
돌아오는 발걸음 소리가 났다. 터벅. 터벅. 터벅. 둔탁하게 공기를 때린다. 메일은 오타투성이에 문장마저 횡설수설 엉망이었으나 이 이상 더 손볼 수도 없었다. 오늘은 운이 좋아 해정의 넋을 빼는 데 성공했지만, 또 이렇게 만들 수 있을 거라는 확신도 없었다. 그는 메일을 전송한 뒤 보낸 기록을 삭제했다. 조급증에 짓눌리던 아랫입술이 터졌다. 피냄새가 입안에 맴돌았다.
비로소 해정이 돌아왔을 때, 현수는 손을 그러쥔 채로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해정은 책상에 물과 식빵, 그리고 블루베리 잼을 올려 두면서 그의 뒤에 앉았다. 그리고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는 몸을 그대로 안아 들어 제 허벅지에 올렸다.
“방송 왜 안 하고 있어요?”
허리를 끌어당기며 묻자 현수는 잔뜩 지친 기색으로 몸을 돌려 해정의 몸에 파고들었다.
“……잠깐만 쉬고. 갑자기 너무 피곤하네.”
“그래요?”
“응…….”
평생 집어먹을 겁을 너무 짧은 시간 안에 다 먹은 것만 같았다. 체한 것처럼 눈앞이 울렁거렸다. 힘이 쭉 빠진 목소리가 흐느적거리며 파고든 몸 사이로 새어 나갔다. ‘그래도 성공했다. 이거 완전 미친 짓이었어.’ 현수는 생각하면서 해정의 몸 안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대로 눈을 감았을 때였다. 갑자기 차가운 손이 얼굴을 쥐어 올렸다. 편안히 감겼던 눈이 금세 번쩍, 벼락을 맞은 것처럼 뜨였다.
“…….”
“……왜?”
잠시간 안도하고 있던 솜털이 다시 빳빳이 경계를 세웠다. 현수는 저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해정에게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해정이 입을 연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형 입술 터졌다. 왜 터졌지?”
“…….”
“오늘은 방송 못 하겠네. 말하면 아플 것 같아요.”
단지 그것뿐이었다.
해정의 얼굴이 다가와 터진 아랫입술을 빨았다. 심장이 조각난 것 같았다. 현수는 잠시 참고 있던 숨을 터뜨리며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다 됐다. 성공한 거야.
그는 기묘한 성취감을 느끼며 혀를 내밀어 해정의 윗입술을 핥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