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외전 괴물의 착각) (9/19)

1

꼬박 이틀을 앓았다.

감기였다.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늙은이 같은 말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그 말이 절로 나오고 말았다. 해정이는 열이 오른 내 뺨을 지그시 누르면서 “에어컨 조심하라고 했잖아요.” 라고만 했다. 나는 시원한 손이 기분 좋아서 어렴풋이 웃었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비틀어 해정의 중지를 의미 없이 빨다가 그와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너희 아버지 오늘 큰 상 받는 날이었잖아. 가야 하는 거 아니었어?”

“아까 말했잖아요. 어차피 가기 싫었어요.”

해정이는 내 입술을 빤히 내려다보면서 중지를 휘저었다. 입안을 휘젓는 손가락 탓에 더 말하기가 힘들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기만 했다. 더 열심히 빨기 위해 몸을 모로 돌리자 찰랑거리는 소리가 뒤따랐다. 족쇄와 연결된 사슬이 흔들리는 소리였다.

해정이와 동거한 지 2년이 지나가고 있었지만, 여전히 나는 족쇄를 차고 생활했다. 그와 나의 연애에 있어서 달라진 건 거의 없었다. 여전히 집 안에는 감시카메라가 있었고, 여전히 해정이는 인형처럼 예뻤으며, 여전히 난 해정이를 좋아하고 있다.

그야말로 여전한 일상이었지만, 여전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기는 했다.

“왜요. 내가 가기를 바랐어요?”

“아니. 안 가서 좋아.”

해정이 젖은 제 손가락을 내 뺨에 닦으며 슬쩍 빈정거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럴 줄 예상하고 있던 터라 나는 당황하지 않았다.

위에 자리했던 해정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감기 걸릴 텐데.’ 나는 생각했고, 해정이가 걱정되어 피하고 싶었으나 잠자코 그의 입술을 머금었다. 어떤 이유에서건 해정은 제 키스를 피하는 걸 아주 싫어했다.

“내일 오후에 시험 있어.”

“응.”

짧은 키스 후, 해정은 그렇게 말하면서 뜨끈뜨끈하게 열이 오른 내 살을 마구 주물렀다.

시험이라는 건 해정이 오전부터 집을 비워 오후 늦게 오는 것을 의미했고, 해정은 점심시간 외에는 감시카메라를 보지 못했다. 그 대신 나는 해정이 귀가할 때까지 GPS가 달린 목줄을 목에 매고 있어야 했다. 가운데에 자그마한 자물쇠가 달린 가죽 목줄인데, 꽉 조여서 열쇠 없이는 벗을 수가 없었다. 족쇄와 현관문 탓에 그럴 수도 없겠지만 만약 목줄을 맨 채로 집을 벗어나면 그 즉시 해정에게 알람이 간다고 했다.

그렇다고 해정이의 시험 기간이 내게 영 불편한 것만은 아니었다. 해정이 감시카메라를 보지 못한다는 것은 내가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해정이가 공부와 과제를 하는 방. 그 방의 책상 맨 아래 서랍에 해정은 저가 보기에 쓸모없는 우편들을 종종 처박아 놓고는 했다. 그중에는 내 것도 있었다. 기껏해야 엄마가 쓰는 내 신용카드 고지서 같은 것들이었지만, 그것들이 바깥의 안부를 확인할 수 있는 나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해정의 시험 기간은 내게 그런 의미였다.

“퍼즐이랑 잡지, 새로 갖다 놨으니까 그거 해.”

“응.”

“필요한 거 있으면 또 말해도 돼요.”

더하여 여전한 일상 가운데 여전하지 않은 것은 이런 걸 의미했다.

“……없어.”

“…….”

“그냥 빨리 와. 알았지?”

완전히 생활에 적응한 내가, 비로소 해정이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알게 된 것이다.

나는 둥글고 말랑한 귓바퀴를 조물조물 매만져 주면서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그리고 파자마 위로 느껴지는 해정의 것에 슬쩍 허벅지를 비볐다. “알았어.” 근사한 목소리 위에 낮은 웃음소리가 젖어 들었다.

* * *

9시에 일어났다. 몸을 육포처럼 씹거나 빠는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성性에 무지했던 어릴 적, 아침에 일어나면 나도 모르는 새 성기를 만지작거리며 자위를 하고 있던 것처럼 내 손은 스스로 유두를 꼬집고 있었다. 무의식중에 아무런 통증이 없는 게 허전하다고 느낀 모양이었다.

침대 위에는 역시나 해정이 없었다. 나는 등을 웅크리고 밝은 회색 이불 위로 첨벙거리는 햇빛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잠시 후, 멍한 머리 위로 오늘부터 시험기간이라고 했던 해정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나는 천천히 침대를 벗어났다. 해정이 물어 주지 않은 유두와 허리 부근이 벌레에 물린 것처럼 간헐적으로 간지러웠다. 어지간히 몸이 길들어졌다는 생각에 피식 웃음이 샜다. 욕실을 향하는 동안 다리 사이로 주르륵 흐르는 정액조차도 이제는 아무렇지 않았다. 심지어 정액이 무릎까지 흘러 내려왔을 때 욕실에 도착할 것까지 예상했고, 그 예상은 정확했다. 내가 자거나 기절했는데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면 해정은 이렇게 제 정액을 넣어 두고는 했다. ‘네가 자는 사이에 넣고 흔들었다’고 내게 알리고자 하는, 녀석 나름의 기록 방식이었다.

집 청소를 하고 밥을 먹으니 11시였다. 12시면 해정이 감시카메라를 볼 것이다. ‘새로운 우편 있나 봐야지.’ 재즈를 배경음 삼아 커피를 홀짝거리며 발목을 까딱거리던 나는 벌떡 일어나 해정의 방으로 향했다. 재즈의 드럼에 맞춰 여유롭게 찰랑거렸던 사슬이 탬버린처럼 바쁜 소리를 내면서 방 안으로 따라 들어왔다.

나는 바닥에 앉아 해정의 서랍을 뒤졌다. 신봉들 사이에 종이 한 장이 손에 걸렸다. 꺼내어 보니 저번 학기 해정의 학점이 인쇄된 성적표였다. ‘대학교에서도 이런 걸 나눠 주는구나.’ 나는 생각하면서 그것을 읽어 보았다. 학점 옆에는 석차도 적혀 있었는데, 모조리 1등은 아니었으나 대개 1등이었고 아닌 것들은 상위권을 유지했다.

“…….”

공연히 뿌듯한 마음이 들어 몇 분간 그것을 바라보다가, 해정이 집에 오면 모르는 척 은근슬쩍 성적을 물은 다음 칭찬해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접힌 부분 그대로 접어 서랍에 넣었다.

다시 서랍을 뒤지던 중이었다. 맨 밑에, 다른 신봉들과는 다르게 빳빳한 재질의 종이봉투가 손가락에 닿았다. 꺼내어 보니 색도 흰색이 아닌 연한 하늘색이었다. ‘이게 뭐지.’ 나는 생각하면서 봉투를 뒤집었다. 받는 이가 김현수였다. 주소와 이름은 인쇄된 게 아니었다. 사람이 쓴 글씨였다.

‘어디서 본 글씨인데.’

그런 생각이 스쳤으나 추정할 수가 없었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글씨체는 지금으로선 해정이의 것밖에 없었다. 나는 다시 풀로 붙일 수 있도록 살살 접착면을 떼어 냈다. 봉투 안에 든 종이도 빳빳하고 두꺼웠다. 마치 초대장 같았다.

‘설마.’ 나는 조금 성급한 동작으로 종이를 꺼냈다.

“…….”

예상대로였다.

상아색 종이 위에는 ‘저희 결혼합니다.’ 라고 쓰여 있는 글씨가 금색으로 반짝거리고 있었다.

* * *

해정의 점심시간이 지난 뒤, 나는 소파에 엎드린 채 쿠션 아래로 청첩장과 편지를 만지작거렸다. 청첩장은 정호로부터 온 것이었고, 편지도 마찬가지였다. 봉투 안에는 청첩장과 함께 정호의 편지가 있었다. 읽어 보니 내게 쓴 것이었다.

봉투를 뜯은 흔적이 없었으니 해정은 편지를 보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청첩장이겠거니 하는 어림은 했을 것이다. 1년 전 해정이와 함께 정호를 만났을 때, 정호는 지금 만나고 있는 여자와 결혼할 것 같다면서 주소를 알려 달라고 했었다. 주소는 내 옆에 앉아 있던 해정이가 나 대신 직접 적어 주었으니 녀석이 그때를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 당시 해정이 정호에게 제대로 된 주소를 적어 주었다는 게 놀라웠다. 그렇다고 녀석이 나를 정호의 결혼식에 보내 주려던 건 아닐 터였다. 이건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오래전에 온 듯한 청첩장을 여태까지 서랍에 처박아 둘 리가 없었다. 정호의 결혼에 관한 이야기 역시 해정이에게 실마리조차도 들어 보지 못했다. 아니, 그런 것까지 거론할 필요가 없다. 단순하게, 해정이는 그러는 게 당연했다.

“…….”

나는 꾹, 턱에 힘을 준 채 양면이 뻑뻑하게 채워진 편지지를 한 번 더 읽어 보았다. 제 결혼에 대한 이야기는 적었고, 반 이상이 나에 대한 걱정으로 쓰여 있었다. 그러니 미안함이 자꾸 명치를 콕콕 찌르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2년 전 해정이와 동거를 시작한 날부터 지금까지 세 번 해정을 통해 연락했고, 딱 한 번 만날 수밖에 없었지만 어쨌든 정호는 아직도 내게 제일 친한 친구였다. 축하의 말 한마디라도 전해 주고 싶었다.

어떡하지. 어떻게 안 될까. 나는 다시 편지지를 접으면서 쿠션에 얼굴을 박았다.

‘한마디라도…….’

‘해정이한테 부탁할까. 그러면 서랍을 뒤진 것까지 말해야 하는데…….’

‘그건 안 돼. 절대 안 돼.’

‘편지, 메일이라도……. 해정이 몰래…….’

해정이 몰래?

쿠션에 박고 있던 얼굴이 번뜩 들렸다. 나는 푹신한 솜 위에 턱을 얹으면서 살며시 인상을 구겼다.

그게 가능한가. 가능할 리가 없었다. 생각을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해정이 몰래 정호에게 메일 하나만 보내면 되는데, 그 간단한 일이 내게는 어려웠다. 애당초 인터넷도 되지 않는, 동시에 해정이 카메라로 감시하고 있는 집에 종일 족쇄로 묶여 있다가 해정이 돌아오면 그제야 인터넷이 연결되고, 녀석이 보고 있는 가운데 불과 30분간 방송을 하는 삶이다. 이 생활 속에서 ‘서해정 몰래’ 무엇을 한다는 게 나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24시간 내내 해정의 시야 안에 들어가 있다. 이건 사실이었다.

‘포기해야 하나.’

‘정호가 섭섭해할 텐데.’

‘너무 미안한데.’

나는 소파에서 일어나 해정의 서재로 터덜터덜 들어갔다. 그리고 청첩장과 편지를 제자리에 두었다.

지금 상태로는 퍼즐이든, 잡지 스크랩이든, 영화 감상이든 뭐든 집중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서재에서 나온 나는 거실에 엉거주춤 서 있다가 드레스룸으로 갔다.

기분이 조금 우울할 때, 해정의 옷을 정리하면서 그의 섬유유연제 향기를 맡으면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 작년, 정호와 만나고 온 뒤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해정이 나를 열흘간 침대에 묶어 두었는데,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공포에 대한 후유증 탓에 나는 풀려난 뒤에도 한동안은 약한 우울감에 얽매여 있었다. 그 때문에 그 시기에는 해정이 외출만 했다 하면 해정의 옷을 입고, 덮고, 주먹밥처럼 뭉쳐서 그 위에 얼굴을 박고 있었다. 그러다가 막바지에는 이상할 정도로 급격한 흥분감에 휩싸여서 성기에 해정의 옷을 감싸고 흔들다가 사정했다. 갑자기 왜 그랬는지는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분명히 그 광경을 보았을 해정도 따로 왜 그랬냐고 물어보지 않았다. 다만 ‘넌 구멍으로 박히는 자위가 더 어울려’라고만 했다.

치익.

다리미가 증기를 뿜었다. 나는 방치되어 있던 해정의 셔츠를 다리미판에 놓은 뒤 다림질을 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할 일도 없으니 해정이가 잘 안 입는 것까지 정리해 둘 셈이었다. 해정의 옷은 넓은 드레스룸을 꽉 채울 정도로 개수가 많았다. 모두 내가 고른 것이었고, 편한 옷을 좋아하는 해정은 셔츠를 잘 안 입었다.

‘입으면 예쁜데. 많이 불편한가.’

‘하긴. 해정이는 티셔츠 라벨도 다 뜯고 입으니까.’

사사로운 생각들이 지나갔다. 이윽고 재봉선에 맞게 다리미가 내려앉았다. 뜨거운 쇠가 주름을 밀고 나갔다.

“…….”

치익-.

한 번 더 증기가 공기 중으로 치솟았다. 뿌옇고 축축한 것이 얼굴에 퍼졌다. 어느새 초점 없는 눈으로 셔츠를 바라보던 나는, 돌연 다리미를 세우고 빳빳해진 셔츠를 들어 올렸다. 해정의 체격에 맞게 큼지막한 셔츠가 나긋한 향기를 내면서 얼굴 앞에 펼쳐졌다. 뜨끈한 공기가 콧등에 퍼졌다. 나는 셔츠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

김현수. 드디어 정신 나갔구나.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고, 동시에 나는 스스로가 혐오스러운 기분이 들어 얼굴을 찌푸렸다. 목덜미가 홧홧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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