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3 (8/19)

외전3

 정호에게 연락이 온 건 해정을 통해서 알았다.

 우습지만 당연한 이야기였다. 제 휴대 전화가 없어진 것은 벌써 올해 초의 일이었다. 카드와 신분증, 여권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집 안 어딘가에 있는 것 같기는 하였으나, 주인임에도 불구하고 현수는 그것들이 어디에 있는지 몰랐다. 모아 둔 돈이 꽤 있기는 했는데 아깝지는 않았다. 당장 지금 저가 살고 있는 집부터가 평생 돈을 모아도 사지 못할 집이었다. 비록 제 것은 아니나 외출할 적마다 타고 다니는 차도 마찬가지였다.

 결과적으로, 동거를 시작한 이후 현수는 한 번도 제 재산의 행방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겨를이 없기도 했다.

 [야 또라이]

 [부모님이 너 찾으셔]

 [이제야 나한테 연락하신 너네 부모님도 부모님이지만 야 너도 어떻게 6개월 동안 부모님께 연락을 안 하냐???]

 [니가 사람이냐?]

 [미친놈아]

 [잘 사냐??]

 [잘 사냐고]

 [대답 좀 해 걱정시키지 말고 정신병자야]

 휴대 전화 액정을 보여 주는 해정의 표정은 덤덤했다. 문자가 온 날짜를 확인하니 이틀 전이었다. 그에 대해 추궁할 필요는 없었다. 잠자코 정호의 문자를 읽던 현수가 “답장해도 돼?” 하고 물었다. 해정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휴대 전화를 내밀었다. 

 [응 잘살아 ㅋㅋ 걱정 말아]

 [나중에 보자]

 [연락해줘서 고맙다]

 그렇게 답장한 뒤 다시 휴대 전화를 돌려주자, 휴대 전화를 받아 든 해정이 한참 동안 액정을 바라보았다. 짧은 문장들인데도 반복해서 읽는 듯 눈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곧 휴대 전화가 소파 위로 던져졌다. 미련 없이 휴대 전화를 던져 버린 해정이 말없이 현수의 몸을 안아 왔다. 해정의 목에 자연스레 팔을 감으면서 현수가 조심히 속삭였다.

 “해정아.”

 “응.”

 꼴깍.

 침을 삼키는 소리가 스스로의 귀에서 울린다. 이내 더 조심스러운 속삭임이 입술 사이로 흘렀다.

 “……혹시, 내 카드랑 신분증…….”

 “…….”

 “돌려줄 수 있어?”

* * *

 본가로 향하는 길이었다. 해정은 운전에 집중하는 듯 조용했다. 핸들을 쥐고 있는 손 또한 수선스러움 없이 정확하고 부드러웠다. 운전하는 옆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현수가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이 시계는, 뭐야?”

 외출할 때마다 해정이 둘러 주는 시계였다. 위치 추적 장치일 것이라 어림짐작하고 있었지만 정작 본인의 입으로는 들어 본 적이 없었다. 해정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핸들을 옆으로 꺾으며 대답했다.

 “도청 장치랑 지피에스요. 이 동네 맞아요?”

 그 말에 해정의 옆모습을 보고 있던 현수가 고개를 돌려 바깥을 바라보았다. 오랜만이지만 잊을 수 없을 정도로 눈에 익은 동네였다. 어릴 적에 여기저기 누비고 다녔던, 그 동네. 새삼 새로운 느낌에 현수가 바깥을 구경하면서 “응.” 했다.

 “빼면 바로 아니까 빼지 말아요.”

 “응.”

 내비게이션이 도착을 알렸다. 타이어가 콘크리트 바닥을 묵직하게 짓누르는 소리가 났다. 차가 주차 선에 맞추어 느리게 멈췄다. 바로 앞에 익숙한 아파트 단지가 보였으나 현수는 내리지 않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차 안을 벗어난 건 해정이었다. 쾅. 운전석 문을 닫은 해정이 보닛을 돌아 조수석 앞에 섰다. 조수석 문이 열리자 현수가 무릎을 바깥쪽으로 돌렸다. 오른쪽 다리가 밖을 향한 채로 달랑거렸다. 해정이 그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오른쪽 발목을 감쌌다.

 “아……! 아파.”

 자그마한 압박에도 찌릿, 전기가 통한 것처럼 발목에 고통이 올랐다. 현수가 작게 인상을 그었다. 허나 움찔거리는 발목은 고통보다는 어젯밤의 공포를 기억하는 듯했다. 그를 아는지 모르는지, 해정이 작게 혀를 차면서 발목을 살폈다.

 “새벽보다 좀 부었네. 많이 아파요? 못 걷겠어요?”

 “……아니야. 나 그냥 목발 좀 꺼내 줘.”

 해정의 손이 올라 정강이를 감쌌다. 살짝 다리를 들어 복사뼈에 키스한 해정이 그대로 일어섰다. 다리를 만지던 손의 감촉이 없어지자 현수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뒷좌석으로 향하는 해정에게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미미한 한숨이었다.

 목발을 꺼내 차체에 기대어 세운 해정이 다시 조수석 앞에 섰다. 팔을 벌리며 상체를 숙이자 현수가 목에 매달려 온다. 지척에서 따뜻하고 달콤한 숨결이 느껴졌다. ‘보내지 말까.’ 해정은 스치는 생각을 가까스로 억누르며 제게 매달린 현수의 몸을 안아 일으켰다. 바닥에 선 현수가 오른발을 띄운 채로 팔을 뻗었다. 목발을 건네자 겨드랑이 아래에 받친다. 익숙하지 않은지 폼이 영 어색했다.

 “위까지 데려다줄까요? 혼자 엘리베이터 탈 수 있어요?”

 “괜찮아. 목발 있으면 상관없어.”

 현수의 말에 더 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인 해정이 제 손목을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오전 11시. 

 “2시까지는 와요.”

 걱정 어린 목소리는 싹 가시고 금세 명령조였다. 현수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현수의 볼을 스치듯 쓰다듬은 해정이 옆으로 비켜섰다. 탁. 탁. 바닥에 목발이 부딪치는 소리가 불안정했다.

* * *

 “진짜 아니지?”

 밥을 먹기 시작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다섯 번째 이어진 물음이었다. 끝내 현수가 인상을 찌푸리면서 “아니라니까. 대체 무슨 일이 있어, 내가.” 했다. 입에 넣은 복숭아 조각 탓에 발음이 분명하지 못했다. 과육을 씹자 입 안에 달콤한 맛이 퍼졌다. 현수가 손목을 바라보았다. 1시 20분. 아직 괜찮다.

 잠시간 현수를 바라보던 현수의 엄마가 끝내 물러서듯 상체를 등받이에 기댔다.

 “뭐 그렇게 화를 내고 그래. 그럴 만도 하니까 계속 묻지.”

 “…….”

 “연락도 안 되던 녀석이 갑자기 목발에, 바싹 말라 가지고, 응? 이걸 갑자기 툭. 안 수상해?”

 현수의 엄마가 식탁 위에 놓인 두툼한 봉투를 팔락거리며 다시 한 번 따졌다. 현수가 뒷머리를 긁으며 “그냥, 효도라니까.” 했다.

 “너 결혼 자금이라도 깬 거야? 왜 이렇게 돈을 많이 주냐구, 불안하게.”

 “아니야. 모으는 건 따로 있어. 이건 또 다르게 모아 둔 거야. 나 돈 잘 벌잖아.”

 물론 거짓말이었다. 식탁 위에 놓인 봉투는 어젯밤 불안해하는 해정을 몸으로 견디면서까지 겨우겨우 손에 얻어 낸, 제 전 재산이었다. 

 현수의 대답에 잠시 조용히 봉투를 바라보던 현수의 엄마가 푸드득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야. 못 받아.”

 “여사님. 후회하지 말고 받으세요. 돈도 좋아하시는 분이 왜 이래.”

 “현수야. 너 대체…….”

 “아, 그리고 엄마 통장으로 자동 이체 돌려놨으니까 그것도 써. 한 달에 삼백은 들어갈 거야.”

 공연히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현수가 말했으나 효과는 없었다. 현수의 엄마가 놀란 얼굴을 했다.

 “뭐? 삼백? 그러면 너는?”

 “……아이고 참. 여유 있으니까 주는 거지.”

 “엄마 삼백 주면 너 삼천 원 남는 거 아니야? ……너 혹시 로또 맞았니?”

 “엄마 삼백 줘도 차고 넘쳐. 걱정 마세요.”

 이것도 물론 거짓말이다. 한 달 수익에 가까운 돈을 어림잡아 자동 이체를 신청해 놓은 것이었다.

 배포 좋은 태도에도 영 찜찜한지 현수의 엄마는 망설이는 얼굴을 했다. 그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현수가 못을 박듯 목소리를 낮췄다.

 “……엄마. 진짜 나 별일 없어. 진짜로. 걱정하지 말라니까?”

 “네가 안 하던 짓을 하니까 이러지, 갑자기 나타나서는.”

 “우리가 뭐 연락을 그렇게 자주했었나. ……엄마 6개월 만에 나 찾았다면서. 어떻게 아들 핸드폰 없어진 걸 6개월 만에 알아?”

 “엄마도 바쁘니까 그랬지. 그 양반도 마찬가지고.”

 “이참에 일 그만해. 그냥 이걸로 놀고먹고 다녀. 혹시 모르니까 아빠한테는 비밀로 하고. 나도 훅 가면 답 없잖아.”

 “일을 왜 그만둬. 그냥 모아 둬야지. 그래, 너 결혼할 거 엄마가 대신 모아 두고 있을게. 그게 낫겠다.”

 현수의 엄마가 타협점을 찾았다는 듯 박수를 치며 말했다. 결혼. 그 말이 너무나도 현실감이 떨어졌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는 멀기는 하였어도 제 현실과 같이 숨을 쉬는 것 중 하나였는데, 이제는 딴 세상의 것이 되어 버린 단어다. 세상을 옮긴 건, 단어가 아닌 자신이었다.

 애매하게 웃는 얼굴로 식탁을 손가락 끝으로 빙빙 만지던 현수가 “그래요.” 했다. 딱히 뭐라 할 말이 없었다.

 현수가 고개를 들었다. 손을 뻗는다. 곧이어 가지런한 손이 작고 주름진 손을 감쌌다. 살살 매만지는 손길이 다정했다.

 “엄마. 정호한테 물어봐서 내 방송도 봐. 내가 핸드폰이 없어져서 연락을 잘 못 하니까……. 방송으로라도 자주 보라고. 얼굴은 안 나오지만.”

 “너 핸드폰 새로 만들 거 아니었어?”

 “……귀찮아서 안 만들어. 메신저로도 충분하고…… 계속 장난 전화 와서.”

 이 변명은 못내 억지스러웠는지 현수의 엄마가 또 한 번 미간을 찌푸렸다. 질문을 피하듯 현수가 “가야겠다.” 말하며 목발을 잡았다.

 “나오지 마요.”

 “알았어. 조심하고. 어디서 또 다쳐 와서는…….”

 “아 진짜. 그냥 넘어진 거라니까.”

 알았어, 알았어. 뒤이어 무릎을 굽혀 신발을 신겨 준 현수의 엄마가 천천히 일어섰다. 그리고 살갑게 그의 품에 안겨들었다. 현수가 왼손으로 그녀의 등을 토닥였다. 

 “현수야. 너 정말…….”

 “엄마, 그만. 응?”

 “…….”

 “아빠한테 안부 전해 줘요. 일 좀 적당히 하라고도.”

 어깨를 부드럽게 밀어내자 말을 꺼내려던 입이 머뭇거리며 다물렸다. 현수의 말에 결국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다시 한 번 “조심히 가.” 했다. 현수가 흔들던 손을 거두고 현관문을 닫았다.

 그간 아무도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았는지, 엘리베이터는 층에 그대로 있었다. ‘평일 낮이라 그런가.’ 무신경하게 생각한 현수가 절뚝거리며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조용한 복도에는 탁탁거리는 소리만 차갑게 울렸다.

 멍하니 엘리베이터 문을 보고 있으니 금방 띵, 소리가 났다. 오래된 엘리베이터인 탓인지 도착했음을 알리는 소리와 문이 열리는 순간의 간격이 길었다. 현수는 가만히 눈을 깜빡이며 갈라진 틈을 보았다. 서서히 틈이 벌어졌다.

 해정의 차가 시야 끝에 보였다. 그도 마찬가지였는지 운전석 문이 열렸다. 해정은 거의 두 시간 반 동안 여기 앉아서 저를 기다렸던 듯했다. 놀라울 것도 아니어서 현수는 따로 물어보지 않았다.

 “조심히 타요.”

 해정이 조수석의 문을 열며 말했다. 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느리게 좌석에 엉덩이를 붙이는 몸이 삐걱거리는 것처럼 어수선했다.

 차가 아파트 단지를 빠져나갔다. 현수가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꿈을 꾼 것처럼 멍한 눈이 멀거니 아파트를 바라보았다.

 이상했다. 정신은 멀쩡한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조금 전의 일이, 엄마가, 집의 공기가, 지금 제 옆에 앉아 있는 해정을 제외한 모든 게 꼭 꿈만 같았다. 왜 이런 기분, 또 이런 생각이 드는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빠르게 작아지고 있는 건물은 아까까지 저가 존재하고 있었던 현실의 공간임에도 신기루를 보는 것 같았다.

 “…….”

 “결혼 자금 모아서 어디다 쓰게요?”

 사거리에 차가 멈춰 섰다. 아파트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창문 너머를 바라보던 현수가 해정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제가 입혀 준 대로 얇은 니트를 입은 해정은 근사하다 못해 그림 같았다.

 “그러다 엄마가 쓰겠지. 뭐라 할 말이 없어서 그렇게 말한 거야.”

 “…….”

 목발을 짚고 다녔는데도, 불현듯 발목이 욱신거렸다. ‘병원 또 가 보자고 할까.’ 현수는 생각하며 고개를 숙여 제 발을 내려 보았다. 그때였다.

 “결혼 자금 모았었어요?”

 제 대답에 잠시간 침묵을 지키던 해정이 불쑥 그렇게 말했다. 발 부근을 바라보고 있던 현수가 고개를 들어 해정을 바라보았다. 평온한 줄만 알았던 옆얼굴이 미미하게 굳어 있었다.

 ‘어딘가 짜증이 나는구나.’ 현수는 생각했으나 모르는 척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그냥 돈 모았던 거지.”

 “결혼하고 싶었어요?”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못 해서 어떡해요?”

 “못 하는 게 아니라…….”

 “도망가고 싶어요?”

 “아니야.”

 “…….”

 현수가 달래듯 쏟아지는 질문들에 성실히 대답했으나, 이미 엇나간 정신은 궤도를 훨씬 벗어난 모양이었다. 핸들을 쥔 큰 손이 우악스레 힘을 준다. 가죽이 조여드는 소리가 들렸다. 현수가 뭐라고 한 번 더 말하려던 찰나, 제 아랫입술을 꾹 물고 있던 해정이 입을 열었다.

 “……집 가면,”

 “…….”

 “한 달 동안 안 내보낼 거예요.”

 애처럼 화풀이를 하기 시작한다. 바로 앙다무는 입술이 고집스러웠다. 현수는 새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푸스스 웃었다. ‘언제는 안 그랬다고.’ 하는 생각이 든 탓이었다. 정면을 노려보는 눈이 꿈틀거리며 인상을 쓴다.

 “그렇게 해.”

 “……묶어 놓을 거야.”

 고집을 더한다. 약이 오른 목소리는 바닥을 긁을 것처럼 낮았다. 현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침대에 묶어서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가게 할 거야.”

 “알았어.”

 “동영상도 찍을 거고, 네 구멍에 아무거나 처박고 쑤셔서 괴롭힐 거야.”

 “그래.”

 “다 찢어 놔서 걸레짝 만들어 놓고, ……개같이, 씨발, 발목도 진짜 부러트릴 거야.”

 “…….”

 “너 병신 만들 거라고, 내가.”

 그것만은 그렇게 하라고 하지를 못하겠다. 빈말이라도 어려웠다. 어젯밤의 일이 머리를 빨갛게 물들인다. 기어이 할 말을 잃은 현수의 얼굴이 당황으로 굳었다. 꼴깍. 침이 목 뒤로 넘어갔다.

 “…….”

 무섭다.

 그리고 무서웠었다. 어젯밤은 정말 발목이 부러질 거라 생각했던 탓이었다.

 —형 카드랑 신분증?

 상냥한 목소리는 잠시였다. 고개를 끄덕이자 마침내 폭주해 버린 해정은 이럴 줄 알았다고 했다. 이를 가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시야가 돌았다.

 눈을 깜빡이니 소파 위였다. 저를 소파 위로 던져 버린 해정이 곧바로 발목을 쥐어 왔다. 턱이 덜덜 떨리고 심장에 피가 싹 가시는 느낌이 났다. 그나마 남은 가느다란 이성 하나를 붙들고 현수는 가까스로 해정을 달랬으나, 결국 오른쪽 발목이 꺾이고 말았다.

 한참 뒤라도 그나마 응급실에 가서 다행이었다. 뼈가 끊어질 것처럼 아팠으나 현수는 몸을 뒤틀지 않았다. 반항하는 거라고 느끼게 하면 안 되었다.

 대신 그는 해정의 목을 안으면서 엄마에게 주려는 거라고 끊임없이 말했고, 너밖에 없다고, 도망가지 않는다고 계속 애걸했으며, 또 엉엉 울었다. 아픔이 절정에 다다를 쯤에는 이성을 잃어 한 번만 봐 달라고, 살려 달라고, 너무 아프다고 했던 것도 같다. 덜덜 떨리는 턱 끝까지 사랑스럽다는 듯 키스해 오는 해정이, 제 말을 듣지 않는 것 같은 그 눈이 무서웠다. 그래도 피하지 않았다. 도리어 더 세게 해정을 안았다. 반쯤 정신을 놓기는 했지만, 아예 놓지는 않은 것 또한 다행이었다.

 그대로 정신을 놓았으면 해정을 멈추지 못했을 것이다.

 “…….”

 그리고 지금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목 뒤가 오싹했다. 정신을 놓으면 안 된다. 정말 이대로 집에 도착하면 꼼짝없이 발목이 뒤틀릴 수도 있다.

 잠시 굳은 손가락을 오므렸다가 편 현수가 더듬거리며 제 턱을 매만졌다. 이내 툭, 허벅지 위로 손이 떨어졌다.

 “해정아.”

 “왜.”

 여전히 화가 난 목소리가 툭 불거졌다. 가늘게 떨리는 검지가 망설이는 것처럼 바지의 앞섶을 둥글게 쓸었다.

 “……나, 섹스 하고 싶어.”

 “집에서 할 거야. 네 구멍 다 찢어 버린다고 했잖아.”

 “아니. 지금.”

 끝을 모르고 폭주하는 해정의 불안을 잠재울 방법은 저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원인도 저였고, 해결책도 저였다. 해정에겐 모두가 다 자신이었다. 현수는 그걸 잘 알았다. 

 그러니까, 저가 고립되기 전에 돌진하는 정신을 흩어 놔야 한다.

 집에 도착하기 전에. 

 앞섶 주변에 머무르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돌연 바지의 단추를 풀어낸다. 지익. 지퍼가 내려가는 소리에 해정이 고개를 돌려 현수를 보았다. 현수가 고개를 푹 숙인 채로 엉덩이를 들썩여 브리프와 바지를 허벅지 반까지 내렸다.

 뭐 해. 해정이 물었으나 현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제 검지를 쪽쪽 빨더니 급히 손을 내린다. 손이 다리 사이를 비집었다. 덜덜거리는 손가락이 입구 쪽 주름을 매만졌다. 곧 구멍 안으로 손가락 하나가 쑥 들어갔다.

 “너 뭐 하냐고.”

 “네가 섹스 안 하면, 나 혼자, 읏……. 혼자, 하려고.”

 아무리 타액으로 적셨다 한들, 바싹 메마른 구멍은 뻑뻑했다. 현수가 자세를 잡으며 몸을 뒤틀었다. 가죽 시트가 눌리는 소리가 났다. 손가락이 짧게 피스톤 질을 하면서 구멍을 넓혔다. 조금 성급한 움직임이었다.

 “으, 으읏…….”

 “김현수.”

 공교로웠다. 조금 전의 일보다, 이 새파란 낮에, 차에 앉아 스스로 제 구멍을 넓히면서 외설스러운 신음을 흘리는 게 더 현실감이 있다는 게 그랬다. 이제 자신은 그렇다고, 현수는 인정했다.

 도무지 잘 넓혀지지 않는 구멍에 조바심이 났다. 현수가 조금 거칠게 구멍을 퍽퍽 치댔다. 좁은 입구가 마른 손가락에 쓸려 쓰라렸다. 

 “흣…… 으…….”

 “……씨발…….”

 몸이 긴장을 한 탓인지 여기저기 눌러 보아도 쾌락은커녕 아픔에 내몰리기만 했다. 목이 떨렸다. 뻑뻑한 내부에 먹힌 손가락이 안에서 둥글게 돌았다.

 “하, 해정아……. 해정아.”

 “…….”

 “섹스, 읏……. 섹스 하자, 지금.”

 이대로는 안 될 것 같았다. 결국 현수가 반대편 손으로 제 성기를 감쌌다. 흥분해야 해. 원초적인 공포에 질린 머릿속에 그 말만을 주입하며 성기를 마구잡이로 흔들었다. 슥슥, 살이 마찰하는 소리가 차 안에 울렸다.

 좌석 시트에 상체를 완전히 묻은 현수가 고개만 슬쩍 돌려 해정을 보았다. 정면을 바라보는 해정의 목울대가 움직였다.

 “빨리 차 세워. 흐으……, 빨, 리……. 응?”

 기어이 울컥울컥 귀두 끝이 쿠퍼액을 뱉어 냈다. 현수가 끈적한 액체를 구멍 주변에 묻혔다. 짧게 구멍을 드나들던 손가락과 입구가 비벼지면서 찌걱 거리는 소리가 났다.

 “아……. 흐읏…….”

 해정의 옆모습을 보며 다시 한 번 신음을 내뱉은 현수가 푹, 세게 손가락을 끝까지 쑤셨다. 허벅지 안쪽이 움찔 떨렸다. 

 “아……!”

 별안간 밝았던 내부가 불을 끈 것처럼 어두워졌다. 끽. 급히 선 타이어가 비명을 지른다. 

 해정이 운전석을 벗어났다. 쾅. 문이 닫힌다. 현수가 침을 삼키며 고개를 돌렸다. 차가 선 곳은 굴다리 아래였다. 곧바로 문이 열렸다. 현수가 해정을 올려다볼 새도 없이 순식간에 몸이 들렸다.

 구멍에 넣고 있던 손가락이 쑥 빠졌다. 현수가 두 손으로 해정의 목을 안았다. 해정이 현수를 안은 채로 몸을 구겨 조수석에 앉았다. 허벅지 끝에 현수를 앉힌 해정이 그대로 제 벨트를 풀기 시작했다. 문을 닫은 건 현수였다.

 “하아, 하아…….”

 가까이서 느껴지는 해정의 체온은 그답지 않게 뜨거웠다. 흥분을 참지 못하는, 설익은 호흡이 느껴졌다. 벨트를 풀고 앞섶을 헤치는 손은 몇 번이나 엇나갔다. “씨, 발.” 마음처럼 되지 않는 손이 못내 짜증이 나는지, 해정이 중간에 들끓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현수가 한쪽 뺨을 감싸고 반대편 뺨에 입을 맞췄다. 

 검은 브리프가 척척하게 젖어 있었다. 해정이 브리프를 내리자 흉흉하게 커진 채로 질질 쿠퍼액을 흘리는 성기가 드러났다. 해정이 골반을 잡아 내기도 전에, 현수가 무릎걸음으로 그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바짝 선 성기 끝에 제 애널을 맞춘다.

 “아……! 흣……!”

 “아, 씨발……. 읏…….”

 왈칵. 삽입되는 느낌에 내장이 출렁였다. 목 끝까지 치닫는 듯한 감각. 구역질이 날 것 같아서 현수가 급히 제 입을 틀어막았다. 곧이어 손을 떼어 단단한 어깨 위에 양손을 얹는다.

 그대로 엉덩이를 들썩였다. 이미 잔뜩 젖은 성기와 구멍은 서로를 빨아들인 채로 맞붙었다 떨어지기를 반복했다. 

 “아, 해정, 해정아, 아, 흣! 으응……!”

 “미…… 친, 씨발…….”

 철퍽, 철퍽. 마른 몸이 일직선으로 위로 올랐다 내려갔다. 성기를 쫀득하게 빨아들이는 내벽이 감도를 높인다. 현수가 턱을 민 채로 눈을 꾹 감았다. 제 움직임에 의해 미친 듯이 찔러 오는 흉포한 기둥이 자꾸 제 발끝을 벼랑으로 내몰았다. 발바닥에 찌르르, 탄산이 튀는 듯했다. 어딘가에 자꾸 닿는 건지 발목이 아팠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아, 아, 아흣, 으……! 응! 응……!”

 “하아, 하……. 윽…….”

 기둥을 잔뜩 조이다가 푸는 구멍이 음란했다. 턱을 꽉 문 해정이 뒤로 손을 뻗어 엉덩이를 콱 움켜쥐자 놀란 아래가 세게 성기를 물었다. 꿈틀거리는 감각이 사정을 부추긴다.

 “으응, 응……! 아, 흑, 으, 으응!”

 “이리, 와.”

 마른 목 뒤에 큰 손이 붙었다. 고개를 끌어 내린다. 허리가 파들거리며 굽었다. 현수가 붉은 입술을 한꺼번에 머금자 해정이 기꺼이 입을 벌렸다. 두 혀가 정신없이 섞였다. 흥분한 내벽이 자글거리며 진동했다. 엉덩이를 움켜쥔 손이 자국을 남길 것처럼 더 세게 살을 짓눌렀다.

 축축한 두 개의 살덩이가 떨어졌다. 그 순간, 해정이 허리에 힘을 주고 퍽! 세게 성기를 쳐 올렸다. 현수가 엉덩이로 방아를 찧을 때보다 확실한 힘이었다. 

 “아, 아, 아아……!”

 벼랑 끝으로 떨어진다.

 추락이었다. 끝을 알 수 없는 아래에 발가락 끝부터 발꿈치까지 차가운 물이 흐르는 듯했다. 두려울 정도로 새빨간 감각이 각막을 스쳤다. 동시에 정체를 알 수 없는 허여멀건 액체가 귀두 끝에서 소변처럼 흘렀다. 금세 젖은 눈이 서서히 내렸다. 떨리는 눈동자가 제 아래를 바라본다. 

 “…….”

 말도 안 돼.

 현수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키득거리는 웃음이 귀 주변을 간질였다. 엉덩이를 움켜쥐던 손이 더듬거리며 골반을 감쌌다. 쳐 올리던 허리가 다시 부드럽게 회전했다. 놀라 굳은 몸이 허리의 움직임을 따라 유연하게 흔들렸다.

 현수가 눈을 깜빡이며 저가 질펀하게 싸 놓은 액체를 바라보았다. 역겨울 정도로 진한 비린내가 차 안에 진동하는데도, 해정은 퍽 즐거워 보이는 눈치였다.

 “아래로 싸 버리고 놀랐어?”

 속삭이는 목소리는 희롱하고 있었다. 곧이어 귓불을 쭉쭉 빠는 입이 목마른 개처럼 게걸스러웠다.

 “으응, 읏…….”

 “……하아…….”

 퍽, 퍽. 끈질기게 위로 치대던 해정이 끝내 사정했다. 배에 퍼지는 노곤할 정도로 뜨거운 감각은 이제 익숙했다. 현수는 여전히 놀란 눈을 깜빡이면서도 해정의 목을 안았다. 젖은 입술이 촉촉 현수의 뺨에 키스했다. 그 감각이 생생해서, 현수는 확인하는 것처럼 다시 고개를 뒤로 빼고 해정의 얼굴을 가까이서 바라보았다. 두 눈이 마주했다.

 “……너는?”

 “어?”

 “너는 어떤데?”

 현수의 물음이 이해가 가지 않는 듯 해정이 턱을 밀어 입술에 키스하곤 “뭐가 어떠냐는 거야?” 하고 물었다.

 “내가 아래로 느끼는 게 어떠냐고.”

 “…….”

 “변태 같아? 정 떨어져?”

 조곤조곤히 추궁해 오는 투에 해정이 웃음을 터뜨렸다. 땀으로 축축한 등을 슬금슬금 매만지다가, 손장난을 하는 것처럼 손가락 관절로 날개 뼈를 톡톡톡 두드린다.

 “글쎄. 난 형이면 다 좋은데……. 형이 내 생각으로만 싸도 좋아. 상상만 해도 귀여워.”

 “……그럼 됐어. 추해져도 괜찮아.”

 날개 뼈를 두드리던 손가락이 멈췄다. 이어 가운데로 옮겨 위에서부터 아래로 주욱, 느릿하게 쓸어내리는 감촉에 반응하듯 현수의 구멍이 느긋하게 오물거렸다. 현수가 해정의 뺨에 다정하게 입을 맞췄다. 그리고 속삭였다.

 “오늘 나, 내가 가진 거 다 엄마 아빠한테 줘 버렸어.”

 “응. 들었어.”

 “나 빈털터리야.”

 그리 말하는 목소리는 낙담하거나 슬퍼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저 담담하게 현실을 읊고 있었다. 해정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다시 입술이 살갗을 눌렀다. 현수가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너 때문에 난 빈털터리가 된 거야, 서해정.”

 “…….”

 “이제 난 아무것도 없어. 내 세상에는 진짜 너밖에 없어. 내가 가진 건, 이제 진짜 너뿐이라고.”

 결국에는 이렇게 되었다. 오늘에서야 정말 서해정이라는 꿈같은 존재를 제 현실로 완전히 들여 버린 것이다.

 족쇄도, 감시 카메라도, 열리지 않는 현관문도, 머릿속의 아주 작은 사념까지 통제하려는 그 집념까지도 이제는 정말, 꿈으로 치부할 수 없다. 꿈으로부터 도망치면 현실이 되겠지만 현실은 도망쳐도 현실이다. 아주 작은 틈까지 막혔다.

 이제 자신은 갈 데가 없다. 서해정의 강요가 아니다. 스스로 그렇게 만든 것이었다.

 “…….”

 “그러니까 이제 와서 관둔다고 하면. 너,”

 반듯한 이마 위로 이마가 가볍게 닿았다. 깔끔한 모양의 눈 안에는 검고 깊은 늪이 있었다. 그 눈이 무엇인가와 닮았다고 해정은 생각했다.

 이윽고, 그토록 단정한 입술이 느린 속도로 떨어졌다.

 “내가 죽여 버릴 거야.”

 눈이 품은 늪은 저와 닮아 있다. 해정은 어렵지 않게 깨달았다. 동시에 또 한 번 웃음이 터져 나왔다. 협박하는 입이 이토록 사랑스러울 수 있을까.

 저 또한 족쇄가 채워졌다. 김현수가 채운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자 견딜 수 없는 행복감이 물밀듯 심장을 채웠다. 해정의 입술이 정신없이 현수의 얼굴 곳곳을 내리찍었다. 쪽쪽거리는 소리가 요란스러웠다.

 사랑한다는 말이 그 소리 사이로 새어 나왔던 것도 같다. 이윽고, 키스해 오는 제 연인의 혀를 빨아들이며 현수는 그 맛을 음미했다.

 달다.

 현실은 저리도록 단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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