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2 (7/19)

외전2

 웃어라. 온 세상이 너와 함께 웃을 것이다.

 울어라. 너 혼자 울게 될 것이다.

 ‘뭔가 좋다.’ 현수는 생각했다.

 좌식 의자의 등받이에 붙어 있던 등이 앞으로 기울었다. 현수가 엎드린 채로 좌식 책상 위 키보드에 팔을 뻗었다. 스페이스 바를 누르자 영화가 멈췄다. 곧바로 바닥에 지탱하고 있던 무릎이 옆으로 기었다. 철그럭. 오른쪽 발목에 매어 있는 족쇄에서 소리가 났다. 

 엎드려 있던 상체가 다시 등받이에 붙었다. 다시 의자에 앉은 현수가 무릎을 세웠다. 손에는 펜과 노트가 쥐어진 채였다. 허벅지 위에 노트를 대고 조금 전 저가 감명 받았던 대사를 써 놓는다. 팔랑거리는 노트의 반대편에도 현수의 글씨가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영화가 끝이 났다. 현수가 기지개를 켠 뒤, 옆에 내려놓았던 노트와 펜을 쥐었다. 일어나자 다시금 절그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툭. 좌식 책상 위에 노트와 펜이 떨어졌다. 둥그런 펜은 돌돌 굴러가다 기어이 바닥으로 추락했으나 현수는 상관하지 않았다.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한다. 겨우 두 시간이 지나 있었다. ‘밥 먹고, 영화 한 번 더 봐야겠다.’ 현수는 생각하면서 방을 나섰다. 이번에는 금속끼리 끌리는 소리가 났다. 벽에 설치된 파이프와 파이프 안 쇠구슬이 마찰하면서 내는 소리였다.

 거실을 가로질러 부엌으로 가고 싶었지만 발을 매고 있는 족쇄 탓에 그럴 수가 없었다. 현수는 벽, 정확히는 파이프를 따라 걸었다. 족쇄와 쇠구슬을 연결하고 있는 사슬이 바닥에 질질 끌렸다.

 “뭐 먹지.”

 현수는 공연히 소리를 내어 생각했다. 냉장고 안은 누군가가 강박적으로 채워 놓은 것처럼 먹을 게 가득 차 있었다. 대부분 불을 켜 조리해야 하는 것들이었다. “그거까지는 귀찮은데…….” 혼잣말의 끝이 길게 끌렸다. 둥글게 냉장고를 훑던 눈이 멈추었다.

 결국 집어 든 건 포션 크림치즈 하나였다. 미련 없이 냉장고 문을 닫은 현수가 반대편에 자리한 식탁으로 걸음을 옮길 때였다. 뚝, 오른쪽 발목이 멈추었다. 짧지 않게 연결된 쇠사슬이 팽팽하게 펴졌다. ‘아, 맞다.’ 현수가 고개를 내려 제 발목을 확인했다. 살은 멀쩡했다. 족쇄 안쪽에 붙어 있는 도톰한 천이 아니었다면 살이 딱딱한 쇠에 쓸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다시 벽에 가까이 선 현수가 부엌과 거실, 그리고 제 발 부근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식탁까지 가는 경로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파이프 때문인지 냉장고는 벽에 붙어 있지 않았으나, 정말 딱 파이프가 지나갈 정도만 떨어져 있었다. 사람이 지나가기에는 너무 좁았다.

 그러니까 식탁으로 가려면, 다시 거실과 방들, 욕실, 화장실까지 돌아 반대편으로 가야 한다.

 “하아…….”

 생각을 마친 현수의 입에서 작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벽을 따라 걸어 기어이 식탁 주변에 도착한 현수가 털썩, 눕듯이 의자에 앉았다. 손에 쥐고 있던 포션 크림치즈가 식탁 위에 놓였다. 곧이어 식탁 위에 밀봉되어 정갈하게 놓여 있던 빵들이 현수의 손에 의해 흐트러졌다.

 빵을 먹은 뒤였다. 좌식 책상 앞에 앉은 현수가 아까 보았던 영화를 한 번 더 틀었다. 또 보고 싶어서라기보다는, 해정이 컴퓨터에 넣어 준 다른 영화들은 이미 세 번은 넘게 본 상태였다. 그나마 덜 익숙한 게 이것이었다. ‘이따가 오면 영화 더 넣어 달라고 해야겠다.’ 현수는 생각하면서 등받이에 등을 기대었다.

 이런 영화는 많이 없었는데, 지금 보고 있는 영화는 두 번 보니 더 좋은 영화였다. 처음에 발견하지 못했던 장치들이 보이기도 했다. 흘러나오는 배경 음악이 좋았다. ‘자세히 듣고 싶어.’ 생각한 현수가 다시 엎드려서 팔을 뻗었다. 더듬더듬 서랍장을 뒤지던 손이 이내 헤드폰을 꺼냈다. 현수가 헤드폰의 모양새를 자세히 확인했다.

 자신이 썼던 헤드폰이 맞았다. 아니, 인터넷만 끊겼을 뿐, 본체도, 키보드도, 모니터도 다 제 것이기는 했다. 

 ……맞아. 그랬지.

 잠시 묘한 기분으로 헤드폰을 바라보던 현수가 번뜩 깨어나는 사람처럼 다시 움직였다.

 절정 부분이었다. 피가 난무하는 장면을 가만히 바라보던 현수의 등이 별안간 휘청거렸다. 갑자기 등을 받치고 있던 좌식 의자가 훅 뒤로 빠져나간 탓이었다. 가까스로 중심을 잡은 현수가 뒤를 돌아보기도 전, 서늘한 체온이 몸을 감쌌다. 등에는 의자의 푹신한 감촉 대신 딱딱한 가슴팍이 닿았다.

 익숙한 향기가 공기 위를 감돈다. 서해정이다.

 곧바로 본체에 연결된 잭이 거침없이 빠졌다. 귀를 압박하던 헤드폰도 마찬가지였다. 벗긴 헤드폰을 옆 바닥에 던져 버린 해정이 현수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마른 어깨 위에 턱이 얹혔다.

 “왔어?”

 “응.”

 “나 영화 곧 끝나.”

 뒤로 손을 뻗어 부슬거리는 머리를 매만지며 말하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다. 현수가 머리를 매만지던 손을 거두어 다시 앞으로 두었다.

 돌연 허리를 매만지던 손이 쑥 티셔츠 안으로 들어섰다. 살을 주무르는 거침없는 손길은, 꼭 조금 전 현수의 말을 듣지 못한 사람 같았다. 영화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태도가 아니다. 목을 소리 날 정도로 쭉쭉 빨아 대는 입도 마찬가지였다.

 “…….”

 쪽쪽쪽쪽, 연신 턱 끝에 키스하는 입술이 존재를 주장한다. 꼭 자신을 봐 달라고 칭얼대는 것 같기도 했다. 현수는 슬금슬금 나오려는 웃음을 꾹 참고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끝내는 허리에서 올라온 손가락이 꾹 유두를 짓눌렀다. 돌기를 세게 비벼 댄다. 동시에 콱, 성난 이가 목덜미를 물었다.

 “아!”

 “보지 마.”

 결국 질투를 참지 못한 목소리가 고집을 부린다. 제 눈앞을 가로막아 버리는 손에 현수가 웃었다. ‘그럼 그렇지.’ 하는 생각이 든 탓이었다. 눈 위로 작게 압박이 가해졌다. 새까맣게 물든 시야 탓에 귀에 느껴지는 감각이 생생했다. 귓불을 빨아 대는 입술은 성적인 의미가 다분히 담겨 있었다. 

 “섹스 하자.”

 속삭이는 목소리가 귓속을 파고들며 저를 유혹했다. 눈을 감싼 손 위에 다른 손이 겹쳐졌다. 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 * *

 성기가 빠졌다가 들어올 때마다 철퍽거리는 소리와 족쇄가 철렁거리는 소리가 동시에 났다. 벽에 짓눌린 뒤통수는 올랐다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미끄러지려는 다리를 다시 어깨 위로 얹은 해정이 한 번 더 콱, 성기를 틀어박았다.

 “아, 아읏……!”

 “하아…….”

 사정감을 느끼는지 매끈한 미간이 구겨졌다. 단단한 성기 끝이 뭉근하게 내벽을 짓눌렀다. 터질 듯 터지지 않는 자극에 현수가 몸을 뒤틀면서 살짝 허리를 흔들었다. 꽉 문 구멍 사이로 성기가 잘게 움직였다.

 엉덩이가 통통거리며 허벅지를 두드렸다. 그게 꼭 보채는 것만 같아 귀엽다. 해정이 인상을 풀고 웃자 오른쪽 눈 아래 살이 길게 파였다. 현수가 유독 좋아하는 보조개였다.

 “가까이……, 가까이 와.”

 현수는 팔을 뻗으며 그렇게 말했다. 허리는 멈추지 않은 채였다. 힘에 부치는지 가느다란 팔이 덜덜 떨렸다. 해정은 웃는 얼굴 그대로 현수의 어깨를 쥐어 내렸다. 어중간하게 떠 있던 등이 바닥에 붙었다. 어깨 위에 달랑이던 다리가 밑으로 떨어진다. 성기가 더 깊숙이 삽입됨과 동시에 얼굴이 가까이 자리했다. 팔로 몸을 지탱한 해정이 현수의 얼굴 가까이 제 얼굴을 드밀었다.

 “만져요.”

 꼭 선심을 베푸는 듯한 말투였다. 곧바로 축축해진 양 뺨에 손이 붙었다. 고급 도자기처럼 매끈한 피부를 섬세하게 매만지며 얼굴 곳곳을 바라보던 현수가 “아, 진짜, 예쁘다.” 하고 감탄했다. 해정이 웃었다. 또 한 번 보조개가 드러났다. 찰나를 놓치지 않고 현수가 얼굴을 들어 그 위에 입을 맞췄다.

 “……가만 보면 이상해. 내 얼굴 뜯어 먹고 살려고 그래요?”

 큰 손이 골반을 움켜쥐었다. 해정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빠르게 안을 휘젓는 감각에 현수가 뺨을 쥐던 손을 풀었다. 목덜미에 매달려 깍지를 끼자 해정이 “꼭 잡고 있어요.” 했다.

 “아, 아! 흐으…… 응……!”

 당부와 동시에 쑥 빠져나간 성기가 벌어진 안을 세차게 찍었다. 현수가 의식적으로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현수의 노력이 가당치도 않다는 듯이 허릿짓이 빨라졌다. 포악한 움직임이었으나 방향은 교묘할 정도로 정확히 현수가 느끼는 곳을 향해 있었다. 찰랑이는 수면이 한 번에 확 차고 흐를 것 같았다. 바싹 힘을 준 등 위로 척추뼈가 도드라졌다.

 “아으, 좀, 좀만, 천, 천천히, 흐읏……, 응, 으응!”

 “……아까, 왜, 한숨, 쉬었어?”

 감추고 있던 본심이 발가벗는다. 화를 품은 목소리가 위협하듯 물어 왔다. 

 ‘카메라로 보고 있었나.’ 현수의 머리에 그런 생각이 스쳤을 때였다. 커다란 손이 바짝 발기한 성기를 쥐었다. 위아래로 기둥을 흔들어 대는 움직임이 거칠었다. 탁탁, 마찰음이 났다. 힘줄이 불거진 손등 위로 멀건 쿠퍼액이 흘렀다. 성기를 먹은 구멍이 살을 조여 왔다. 

 “아, 아아, 아……! 너, 너무……! 으응, 응!”

 눈앞에서 노랗고 빨간 별이 튀었다. 현수가 입을 벌리고 흐느끼듯 신음했다. 퍽퍽 쳐 대는 추삽질은 멈추지 않았다. 도리어 더 거칠게 빻는 힘에 부어오른 입구와 엉덩이가 따끔거릴 정도였다. 

 “아, 해정, 아……! 아, 제, 제발……! 으, 흐으……!”

 “왜? 갑자기, 이건 아니다, 싶었어?”

 “아니야, 아니, 읏, 흑……! 아, 아아……!”

 “도망가고 싶었냐고.”

 스스로 말하면서도 화가 나는지 이가 바득 갈리는 소리가 났다. 소름이 끼쳐서 발가락이 잔뜩 움츠러들었다. 은밀한 부위를 쉴 새 없이 자극하는 감각에 시야가 뱅뱅 돈다. 잔뜩 젖어 있는 접합부가 생생하게 느껴졌다. 현수가 고개를 내저으며 허리를 더 바짝 일으켰다. “아니야, 아니야…….” 말하며 뺨에 뺨을 대고 비비적거린다.

 퍽. 성난 기둥이 다시금 벌어진 안을 세게 쳐 올렸다. 이어 해정이 현수의 배 안에 사정했다. 아까 한 번 참은 탓인지, 사정은 길게 이어졌다. 기어이 정액을 잔뜩 받아 낸 마른 배가 작게 부풀 정도였다. 현수가 가쁘게 호흡했다. 현수의 성기는 해정의 손 안에서 사정한 지 오래였다. 

 “그럼 왜 그랬어요.”

 채근하는 목소리는 작은 동요를 품고 있었다. 현수가 냉장고 앞에서 한숨을 내쉬었던 모습은 되새길수록 과장이 되었다. 며칠간 보이지 않았던 괴물이 또 보일까 봐 해정은 불안했다.

 현수가 손에 힘을 주고 해정의 목을 당겼다. 두 상체가 붙었다. 쏟아 낸 정액이 배에 맞물려 질척거렸다. 해정이 한 번 더 말을 하려고 할 때였다. 

 “나, 이러다 바보 될 것 같아.”

 현수가 해정과 눈을 마주하며 말했다. 사실 돌아가는 게 귀찮아서 한숨을 쉰 것이었으나, 곧이곧대로 말하지 않기로 했다. 해정이 이렇게 물어 오니 기회로 삼을 만하다고 판단한 까닭이었다.

 해정이 눈을 깜빡였다. 현수의 말을 곱씹으면서 생각하는 듯했다. 잠깐의 침묵이 감돈 뒤였다. 해정의 손이 현수의 등을 안았다. 그리고 삽입한 채로 몸을 일으켰다. 벽에 기대어 앉자 그 위로 현수의 몸이 올랐다. “후으…….” 다시금 끝까지 삽입된 성기가 버거운지, 현수가 낮고 길게 숨을 내쉬었다.

 “자세히 말해 봐요.”

 허리를 매만지는 손이 침착했다. 허나 그 감정이 언제 엇나갈지 모른다는 것은 손의 주인보다 현수가 더 잘 알았다.

 그러니까, 잘 달래야 한다. 현수는 스스로에게 되새기면서 해정의 앞머리를 쓸어 넘겨 주었다. 반듯하고 잘생긴 이마가 드러났다가 다시 새카만 머리 뒤로 숨었다. 어깨 위에 팔꿈치를 올려놓고 얼굴을 가까이 하자 해정이 반사 작용처럼 짧게 입을 맞췄다.

 “……방송 다시 하고 싶어.”

 긴장을 숨기지 못한 목소리가 바람에 흔들리는 풀처럼 약하게 떨렸다. 현수가 침을 꼴깍 삼켰다. 해정이 눈을 한 번 감았다 뜨는 사이에 급하게 말을 덧붙인다.

 “여기 집에 있는 거 좋아. 이, 이거는,”

 현수가 발을 짧게 흔들자 쇠사슬이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 잠시 제 발 쪽을 보던 현수가 다시 해정을 보며 말을 이었다. 

 “좀 불편하긴 한데……. 그래도 괜찮아. 정말. 네가 안 불안해하면 괜찮아. 좋아. 나 진짜 안 나가도 돼. 너랑 가끔 드라이브하는 걸로 다 좋아. 답답하지도 않아. 근데, 근데…….”

 “…….”

 종알종알 말을 하던 입이 꾹 다물렸다. 다시금 침을 삼킨 현수가 가만히 저를 보고 있는 해정의 이마에 톡, 제 이마를 맞댔다.

 “방송은, 하고 싶어.”

 “…….”

 “해정아…… 나 진짜……, 응?”

 아무리 얼굴을 모르는 사람들이어도 9년이란 세월은 무시하지 못했다. 9년 동안 빠지는 날도 있었지만 거의 매일 밤 했던 일이었다. 그걸 몇 개월째 못하고 있으니까 몸 어딘가가 잘려 나간 것처럼 휑했다. 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까지 드니까 더 그러했다.

 “…….”

 침묵이 길었다. 별안간 학습된 것처럼 심장이 둥둥 기분 나쁜 투로 몸을 울렸다. 경고하듯 발목이 지끈거린다. 몸이 기억한 불안이다. ‘괜히 말했나.’ 그런 생각이 스치자 무섭기까지 했다. 현수가 다급하게 턱을 밀어 해정의 입술과 턱에 연이어 키스했다. 쪽, 쪽, 쪽, 쪽. 작은 마찰음이 급박하게 새어 나왔다.

 “부탁이야, 해정아. 형 안 도망가. 정말로, 정말로……. 그냥 방송만. 너무 허전해서 그래. 너도 형 방송 좋아했잖아. 마이크 쓰지 말라면 안 쓸게. 한 시간만 하라면 그렇게 할게. 아니, 네가 싫으면 안 할, 안 할 건데……. 그래도, 그래도…….”

 키스 사이에 흐르는 음성들은 부탁보다는 구걸에 가까웠다. 스스로도 이렇게까지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잘 알았다. ‘내가 왜 이렇게 말하고 있는 거지.’ 그런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그런데도 감정 조절이 잘 안 됐다. 세상과 분리되어 방치된 머리가 이제야 고장 난 티를 내면서 삐걱거린다. ‘몇 주 동안 계속 영화만 봐서 이러나.’ 현수는 생각했다. 아니면, 그만큼 방송이 간절한 탓일 수도 있었다. 말하면 말할수록 망울망울 그리움이 피부 사이로 새어 나왔다.

 쪽.

 한 번 더 키스한 입술이 짧게 떨어졌다. “생각이라도…….”까지 말을 뱉은 입술이 가로막혔다.

 입술을 막은 건 해정이었다. 현수의 볼을 붙잡은 그가 별안간 잡아먹듯 키스해 왔다. 밀리는 볼을 다시 당겨 혀를 빨아내자 음란한 소리가 울렸다. 현수가 그대로 팔을 굽혀 목을 안았다.

 진한 키스가 끈질기게 이어졌다. 안에 들어 있던 성기가 다시 딱딱하게 부푼 게 느껴졌을 때야 입술이 떨어졌다. 해정이 현수가 그랬던 것처럼 그의 앞머리를 쓸어 넘겨 주었다. ‘미용실 데려가야겠다.’ 생각하면서 입을 뗀다.

 “왜 그렇게까지 말해요. ……당연히, 형이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

 “방송할 때 인터넷 연결해 줄게요. 나 나가 있으면 안 되겠지만…….”

 괜찮지?

 조곤조곤 묻는 목소리에 현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화나지 않았다.’ 그 생각이 들자 지끈거렸던 발목의 감각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 * *

 처음 방송했을 때처럼 심장이 쿵쿵 뛰었다. 좌식 책상이라 좀 불편하겠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방송을 켜자 시청자들이 물밀듯 들어왔다. 채팅창이 물음표로 도배되었다. [미친] 누군가가 그리 말하자, 뒤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현수를 안고 있는 해정이었다. 현수가 살짝 뒤돌아 해정을 바라보았다. 해정은 모니터를 바라보는 시선을 떼지 않고, 어깨에 턱을 얹으며 “말해야죠.” 했다. 현수가 서둘러 고개를 돌리고 마이크를 끌었다. 약지가 익숙하게 마이크의 전원 버튼을 눌렀다.

 “안녕하세요. 너무 오랜만이죠?”

 현수의 목소리가 들리자 채팅이 더 빠르게 올랐다. 현수가 목을 가다듬고 준비해 둔 변명을 늘어놓았다.

 “제가 아팠어요. 좀 많이 아파서 예고도 없이 방송을 오래 쉬었네요. 너무 죄송해요. 그래도 아픈 건 다 나았으니까……, 윽……!”

 다시 입을 뗀 순간부터 목을 지분거리기 시작했던 입술이 별안간 살을 약하게 깨물었다. 현수가 급히 입을 막고 뒤를 돌았다. 해정을 바라보자 “미안해요. 실수.” 작게 말해 온다. 현수가 다시 고개를 돌려 마이크 앞에 입을 대었다.

 “아, 죄송해요. 갑자기 발에 뭐가 떨어져서. 그, 뭐지, 네, 그……, 아, 네. 아픈 건 다 나았으니까 걱정하지 마시라고, 네, 그 말 하려고 했어요. 저 잠시만요.”

 툭. 마이크가 꺼졌다. 다시 뒤를 돌아보자 해정이 천연하게 눈을 깜빡이며 현수를 보았다. “왜요?” 묻는 목소리가 얄궂게 느껴졌다. 현수의 눈이 가늘어졌다.

 “왜 그렇게 봐요.”

 다시금 묻는 목소리는 웃음기가 가득했다. 현수가 몸을 뒤틀면서 제 등에 밀착되어 있는 해정을 떼어 내려고 했다. 허리에 감긴 팔이 더 강하게 현수를 끌어당겼다. 등 아래로 딱딱한 게 느껴졌다. 

 “……너 흥분했잖아. 이따가. 형 방송만 하고. 어?”

 “누가 따먹는대요? 그냥 목에 뽀뽀만 하는 건데 왜. 좆 선 건 그냥 있으면 가라앉아요.”

 그냥 목에 뽀뽀. 그 수준이면 마이크를 끄지도 않았다. 저가 마이크를 끈 이유는 기어이 할짝거리는 혀의 감촉 때문이었다. 게다가 언사가 거칠어진 걸 보면 도저히 가라앉을 수준의 흥분이 아니었다.

 어떡하지. 현수는 잠시 고민했다. 이 와중에도 허리를 집요하게 매만지는 손가락이 느껴졌으나, 방송을 끌 수는 없었다. 가뜩이나 두 번이나 이상 행동을 해 버린 바람에 채팅창에 걱정 어린 반응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거기에 게임도 안 하고 꺼 버린다면…….’ 생각하던 현수가 결심한 듯 손을 뻗었다. 마이크가 켜졌다.

 “방송 준비를 덜 한 게 있었네요. 이제 됐습니다. 잡담 그만하고 게임 바로 할게요. 오늘 할 게임은요…….”

 “…….”

 서해정은 아예 작정한 거다.

 현수는 급기야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게임을 하는 내내 얼마나 목을 깨물고 빨아 대는지, 제 살에서 무슨 단맛이 나나 싶을 정도였다. 나오는 신음을 헛기침으로 대신하면서 참으면 더 세게 물어 오는 탓에 죽을 맛이었다. 결국 중간에 한 번 더 마이크를 끄고 달래 보기까지 했으나 해정은 목에 얼굴을 묻고 모르는 척, 안 들리는 척 가만히 있었다. 눈을 숨기고 대화를 피하는 게 묵언 시위라도 하는 것 같았다.

 두 시간이 흘렀다. 간단하게 시작한 어드벤처 게임은 이미 끝이 난 상태였다. 이대로 방송을 끝내는 게 수순이었으나 왜인지 좀 아쉬운 마음에 현수는 커서만 빙빙 돌렸다. 채팅창에도 미련이 남는 듯한 말들이 많았다. 오랜만에 켠 방송이라 더 그런 듯했다. 

 “음……. 어떻게 하지.”

 현수는 혼잣말처럼 말하면서 뒤돌아 해정을 바라보았다. 시청자들에게는 혼잣말처럼 들릴지 몰라도, 그에게 묻는 것이었다. 해정은 저가 한 짓도 잊었는지 상관없다는 듯 어깨를 들먹였다. 그러고는 마구 뛰어다니며 산책하다 지친 대형견처럼 숨을 길게 내쉬면서 현수의 어깨에 턱을 묻는다.

 ‘이제야 좀 순순해진 건가.’ 현수는 생각했다. 그도 그럴 만했다. 거의 두 시간 내내 삽입만 안 했지 꼭 섹스를 하는 것처럼 제 몸 여기저기를 만져 대었던 해정이었다. 아까는 조르듯이 입 끝을 쪼아 대기에 멘트 사이에 얼굴을 틀어 입을 맞춰 주기까지 했었다.

 “그러면…….”

 현수가 해정을 내려 본 채로 입을 열었다. 해정은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

 “조금만 더 할까요?”

 떠보듯 나온 말이었다.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해정의 얼굴을 꼼꼼히 훑어본 현수가 곧이어 정면으로 고개를 돌렸다. 

 켠 게임은 종종 하던 FPS 게임이었다. 채팅창에서는 더럽게 못하는 총 게임을 왜 하느냐며 현수를 놀렸지만, 그는 이게 시청자들이 좋아하는 게임임을 알았다. 해정은 어깨에 입을 묻은 채로 물끄러미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두 번을 죽었다. 이기기가 힘든 게임이라 할 때마다 이긴 건 아니었으나, 그래도 이렇게 금방 죽지는 않았다. “제가 손이 많이 굳었나 봐요.” 현수가 멋쩍은 듯 말하면서 재시작 버튼을 눌렀다.

 대기 중이었다. 잠든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한참을 조용하게 있던 해정이 불현듯 낮게 물어 왔다.

 “언제까지 할 거야?”

 무덤덤해 보였지만 사이사이 툭툭 불만이 불거져 있었다. 현수에게는 들렸다. 현수가 고개를 돌려 해정의 머리를 매만지며 “피곤해?” 속삭였다. 해정이 눈을 깜빡였다. 물기 많은 눈 위로 모니터가 반사되었다. 길고 풍성한 속눈썹이 팔랑인다.

 “섹스.”

 “……그럼 형 이번 판만. 너무 어이없게 죽어서 사람들이 싫어할 것 같아. 재미도 없고.”

 응?

 재차 묻자 해정이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현수가 달래듯 머리를 한 번 더 매만져 주고는 마우스를 쥐었다. 이번엔 쉽게 죽으면 안 된다는 압박감이 손가락 관절을 짓눌렀다.

 다시 시작한 게임은 다행히도 아쉽다는 느낌을 빗겨난 죽음으로 끝이 났다. 어차피 우승을 바랐던 건 아니라 현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몸을 고쳐 안는 팔에 힘이 들어갔다. 현수가 서둘러 게임을 끄면서 방송을 마무리했다.

 “그럼 내일 봐요.”

 방송을 끄자마자 우악스러운 힘이 어딘가를 쥘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해정은 잠잠했다. 컴퓨터 전원까지 끈 현수가 슬쩍 고개를 돌려 그의 얼굴을 확인했다. 여태껏 모니터를 보고 있던 눈이 저에게 향해 있었다. 또렷이 세운 시선이 무언가를 원하는 것 같았다. 왜 그러냐고 묻기도 전에, 해정이 입을 떼었다.

 “봤죠, 나 기다린 거.”

 느닷없는 말이었다. “어?” 현수가 되물으며 해정의 품에서 벗어나 몸을 돌렸다. 해정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해정이 현수의 손을 잡아끌어 제 뺨에 갖다 대었다. 메마른 입술이 손바닥 위에 뭉개진다.

 “나는 형 존중해요. 형이 바라는 건 어떻게든 다 들어주고 싶어요.”

 맑은 물이 일정한 양으로 쏟아지는 것처럼 목소리가 차분하게 흘렀다. 쪽. 한 번 더 손바닥에 키스한 해정이 그대로 제 뺨에 손바닥을 대고 살살 문질렀다.

 “…….”

 “마음은 그래요. 그래서 나도 노력한다고요.”

 무엇을 염두에 두고 말하는 것 같았다. ‘뭘까.’ 현수는 고민하며 잡힌 손의 손가락을 움직여 해정의 눈가를 살살 쓸었다. 그게 기분 좋은지 해정이 살짝 눈을 감았다. 속눈썹이 눈 아래에 가지런히 누웠다.

 “…….”

 이만큼 저의 행동, 말 하나하나를 다 파헤치고 면밀히 파악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마침내 고민의 끝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섭다기보다는, 그만큼 제게 온갖 신경을 다 쏟는 해정이 신기해질 정도였다.

 왜 그렇게까지 말해요. 형이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해정은 저가 했던 말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 여태껏 이렇게 참은 것이었다. 깨달은 건 조금 전이었다.

 참은 것. 적어도 현수에게는 그리 보였다. 비록 감시 카메라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비밀번호를 모르면 열지 못하는 현관문에, 발목에 족쇄를 달고 다니게 하지만 해정은 참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 말은 진심이다. 

 무슨 말을 해 줘야 할까. 잠시 생각하던 현수가 조심스레 입을 떼었다.

 “……네가 방송하는 거 싫어할 줄 알았어. 그래서 그렇게 부탁했던 거야. 네가 나 존중하려고 노력하는 거, 알아.”

 현수가 잡히지 않은 손까지 해정에게로 뻗었다. 양 뺨을 감싸자 눈이 올랐다. 시선이 정면으로 부딪혔다. 

 “머리 굴렸잖아요.”

 어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구걸하듯 부탁했던 제 모습이 해정에게는 그렇게 보였던 모양이다. 현수는 짐작했다.

 예전에는 잘 몰랐는데, 해정은 너무 분석적인 나머지 도리어 사람의 의도를 잘못 파악할 때가 있었다. 사회성이 결여된 탓이다. 사람의 감정은 로봇이나 기계처럼 인과가 정확하지 않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했다.

 ‘차라리 사실대로 말하는 게 낫겠지.’ 생각한 현수가 느리게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야. 그냥 정말 방송이 그리워서 그랬던 거야. 네가 싫어할까 봐 좀 무섭기도 했는데, 아니 무섭다기보다는 그냥, 갑자기, 좀 막 울컥해서…… 아무튼 머리 굴리고 그런 거 아니야.”

 거짓말을 하는 건지 보려는 것처럼 해정이 빤히 그의 눈을 들여다봤다. 현수는 피하지 않았다. 그저 엄지로 보드라운 살을 매만질 뿐이었다. 한 번 더 “정말 아니야.” 하자 해정의 눈이 한 번 깜빡였다.

 “……그런 걸로 안 싫어해요.”

 한숨처럼 말이 흘러나온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해정이 현수의 허리를 잡아 제 앞으로 가까이 끌었다. 마른 몸이 저항 없이 앞으로 끌려갔다. 가느다란 다리가 자연스레 벌어져 해정의 몸을 감쌌다.

 “그랬구나. 형이 잘못 생각했었네.”

 “그렇잖아요. 다른 새끼들이 나처럼 형 목소리 들으면서 딸 치든 뭐 하든 알 게 뭐예요.”

 얼굴이 다가와 현수의 귀 아래에 키스했다. 과장되게 여유로운 목소리였다. ‘너 같은 애는 또 없을 것 같은데.’ 생각했으나 현수는 입을 다문 채 작게 웃고 말았다. 해정이 말을 이었다.

 “어차피 김현수 구멍은 나밖에 못 뚫는데. 그죠.”

 “그래.”

 괘념치 않는다는 어조치고는 여유로움 사이 바득바득 살기가 들어찼다. 현수는 모르는 척 긍정했다. “어, 맞아. 맞아…….” 해정이 스스로를 설득하듯 연이어 중얼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칠어진 숨이 느껴졌다. 

 잠시 후, 해정이 눈을 내리깐 채로 얼굴을 떼어 냈다. 지친 기색이었던 눈은 서서히 오르면서 다정한 빛으로 꾸며졌다. 제 연기에 현수가 속을 거라고 여기고 있는 모양이었다.

 눈이 마주했다. 동시에 해정이 의식적으로 입꼬리를 끌어 웃었다.

 “뭐가 문제예요. 난 그런 거 안 싫어해요.”

 “…….”

 “노력한다고 했잖아요.”

 입꼬리는 괴이할 정도로 어색했으며, 눈빛은 짙었다. 심지어 몸 여기저기를 매만지는 손은 잘게 진동하고 있다. 

 본능이 의지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게 안쓰러워서, 현수는 뭐라고 지적하는 대신 해정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심장이 맞닿았다.

 “응. 고마워.”

 이 순간 그에게 할 말은 이것뿐이었으며, 가장 투명한 진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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