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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안정 (13/13)

에필로그. 안정

지운은 이제 전처럼 유나를 강제하지 않았다. 물론 다른 에스퍼를 가이딩하는 건 싫어했지만, 예전처럼 강박적으로 유나에게 화를 내는 일은 없었다. 덕분에 유나는 마음껏 가이딩 존을 만들 수 있었다.

가이딩 존을 만든 상태로 유나는 지운과 손을 잡은 채 전장을 누볐다. 이제 마음껏 능력을 쓸 수 있는 탓에, 지운은 힘 조절 없이 몬스터를 단박에 죽였다.

유나는 조금씩 몬스터가 불쌍해지기 시작했다. 인간을 해치긴 하지만 그래도 저들도 살기 위해서 인간의 영역으로 침범하려고 한다는 사실이 뭔가 마음에 걸렸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유나는 전장에서 잠깐 쉴 틈이 날 때마다 제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지운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좀 떨어져요…….”

“왜애.”

주변에 있는 다른 에스퍼와 가이드들은 익숙하다는 듯 부부를 흘긋 보았다. 이제 놀라는 기색도, 꺼리는 기색도 없었다.

“유나 냄새 좋아.”

같은 보디 워시를 쓰고, 같은 집에서 사는데 무슨.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유나는 손목을 들어 코를 박았다. 아무 냄새도 나지 않았다.

“냄새 안 나는데…….”

“아냐. 유나 냄새 있어.”

그런가. 유나는 고개를 갸웃하면서 이번에는 그녀가 지운의 목덜미에 코를 박았다. 희미하지만 그의 체향이 났다. 풀 냄새 같은 조금 시원한 향이…….

“당신 냄새도 좋아요.”

목덜미에 코를 박은 채 말을 하자, 그가 간지러운지 후후 소리 내어 웃었다. 눈을 위로 치뜨자 초승달처럼 접힌 지운의 눈가가 보였다. 이제 그는 완전히 회복해서 오히려 전보다 혈색이 좋아지고, 표정도 밝아졌다. 유나는 그의 뺨을 조심스레 매만졌다. 그가 기분 좋은 얼굴로 유나의 손에 뺨을 비볐다.

“유나 좋아.”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지는 애정 표현에는 이제 익숙했다. 전에는 가벼운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가 애초부터 애정 표현이 많은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저… 사령관님. S급 몬스터 출현입니다.”

뒤에서 눈치를 보던 지운의 수하 중 하나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유나가 그제야 아차, 하며 지운에게서 떨어졌다. 밖에서는 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도 어느새 자신 또한 지운의 페이스에 휩쓸려 있었다.

“응.”

지운이 출현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늘 그랬듯이 유나와 손을 잡고서.

전장에서의 일이 끝나면 서울에 있는 오피스텔로 향했다. 문을 열면 가정부 아주머니가 돌아온 지운과 유나를 반겼다.

“어서 오세요, 사장님, 사모님.”

아주머니 옆에는 세현이 딱 달라붙어 있었다. 세현 또한 돌아온 지운과 유나를 반겼다. 이제 세현은 간단한 단어를 말하기도 하고, 본인의 의사를 표현하기도 하는 등 날이 갈수록 쑥쑥 자라고 있었다.

“네, 아주머니.”

유나는 인사에 화답하며 세현을 쓰다듬으며 볼에 뽀뽀를 했다. 세현이 빙긋 웃었다. 지운도 뒤따라서 세현에게 뽀뽀를 했다. 세현이 이제는 꺄르르 소리 내어 웃었다.

“이제 퇴근하세요.”

“네.”

지운과 유나가 돌아오면 아주머니는 퇴근했다. 유나는 떠나는 아주머니께 고개 숙여 인사해 보내 준 다음, 부엌에 있는 지운에게 향했다.

“오늘 저녁은 뭐예요?”

“유나가 먹고 싶다고 했던 꽃게탕.”

요리는 전적으로 지운의 담당이었다. 지운은 유나가 해 달라고 하는 음식은 무엇이든 간에 다 했다. 그가 능숙하게 냉장고에서 식재료를 꺼낸 다음, 요리를 시작했다. 그가 요리를 하는 동안 유나는 거실에서 장난감을 갖고 노는 세현에게 향했다.

어릴 때는 이것저것 칭얼거리는 게 많은 아이였는데, 자랄수록 세현은 점점 얌전해져서 혼자서 장난감을 갖고 노는 걸 좋아했다. 그 덕에 장난감 바구니에는 온갖 장난감이 가득했다. 실 꿰기 장난감부터 시작해서 장난감 차, 퍼즐, 아이스크림 카트, 공룡 로봇까지.

세현이는 혼자서 이것저것 잘 갖고 놀았다. 엄마가 옆에서 도와주며 말을 붙일 필요도 없을 만큼.

“세현아, 재밌어?”

“응.”

세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퍼즐을 하며 놀았다. 부엌에서는 점점 요리가 잘 되어 가는지 고소한 냄새가 풀풀 풍겼다. 부엌으로 향하자 보글보글 끓고 있는 꽃게탕이 보였다. 유나가 요리를 하고 있는 지운을 뒤에서 껴안았다. 지운이 웃으며 제 허리를 껴안은 유나의 손등 위로 제 손바닥을 겹쳤다.

“유나야, 조금만 기다려.”

“으응, 네.”

유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지운의 등에 뺨을 비볐다가 슬쩍 그의 옆으로 가 그의 뺨에 입을 맞췄다. 지운이 놀란 듯 눈을 휘둥그레 떴다가 이내 유나의 머리를 꽉 껴안았다.

“귀여운 우리 유나.”

그가 유나를 껴안고서 유나를 빙빙 돌렸다. 유나가 으악, 소리를 지르며 그의 어깨를 퍽퍽 쳤다.

“내려 줘요!”

“아, 너무 좋아.”

그가 유나의 얼굴 곳곳에 뽀뽀 세례를 퍼부었다. 유나는 으으, 신음하면서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기분 좋았으니까.

지운과 유나는 지운이 요리한 음식을 먹고, 세현은 유아용 의자에 앉아 부드러운 생선과 계란, 당근이 들어간 꼬마 김밥을 먹었다. 늘 그랬듯 평화로운 저녁이었다. 밥을 먹는 중간에 지운이 입을 열었다.

“유나야, 우리 둘째 가질까?”

마치 오늘 저녁 맛있다, 그리 말하는 듯 여상한 어조였다. 유나는 먹던 음식을 뿜을 뻔했으나 겨우 삼키고 물을 벌컥벌컥 마셨다.

“뭐, 뭐라고요?”

“우리 둘 다 외동이잖아. 세현이한테 동생이 있는 게 어떤가 해서.”

그의 말대로 자신과 그 둘 다 외동이긴 했다. 하지만 둘째라니.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기에 유나는 미간을 찌푸렸다.

“…생각 좀 해 보고요.”

어차피 낳는 건 그가 아니라 자신 아닌가. 자신의 의사가 제일 중요했다.

밥을 다 먹은 다음, 먹은 걸 정리하고 그가 설거지를 시작했다. 유나는 세현에게 교육용 음악을 틀어 주며 시간을 보냈다. 물 흐르듯 편안한 흐름이었다.

슬슬 잘 시간이 되었다. 유나와 지운 그리고 세현까지 한 침대에 누웠다. 지운은 유나가 시킨 대로 동화책을 들어 세현에게 읽어 주었다.

“그래서 라라는 여왕을 피해 달아났어요.”

세현은 아빠가 읽어 주는 이야기에 눈을 빛내며 귀를 쫑긋했다. 이야기가 무르익어 갈 즈음, 슬슬 세현의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세현이 단잠에 빠져들었다.

세현이 잠이 든 걸 확인한 지운이 조심스레 세현을 안아 들고 아기 침대에 세현을 내려놓았다. 그가 다시 침대에 누우며 유나를 옆에서 끌어안았다.

“유나야… 나, 하고 싶은데.”

지운이 유나의 목덜미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유나는 그런 지운의 등을 가볍게 찰싹 내리쳤다.

“세현이가 있는데 어떻게요. 조금만 참아요.”

“끄응…….”

그가 괴롭다는 듯 유나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고 신음했다. 유나는 하아, 한숨을 쉬며 선심 쓰듯 지운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호출 없는 날에 아주머니께 세현이 맡기고 호텔 잡든가요.”

“진짜?”

지운이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유나가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고 싶은 건 그뿐만 아니라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지운이 탄성을 내뱉으며 유나의 뺨과 이마에 키스를 퍼부었다. 그러고는 자연스럽게 유나의 입술로 향했다. 유나는 눈을 감고 쏟아지는 숨결을 받아들였다. 부드러운 혀가 입 속으로 들어와 입 안 곳곳을 유영했다.

“후으…….”

그의 혀가 입천장을 긁자 저릿한 감각이 척수를 타고 내달렸다. 유나가 그의 등을 껴안았다. 넓은 등과 너른 품이 느껴졌다. 혀와 혀가 얽히고, 타액이 뒤엉켰다.

유나는 그의 타액인지 제 타액인지 모를 타액을 삼키며 눈을 반쯤 떴다. 키스에 심취한 그의 감은 눈이 보였다. 시선을 느낀 것인지 그 또한 눈을 반쯤 떴다. 유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의 눈이 웃음기를 머금고 휘었다.

그 웃음을 마주하자 정지운을 처음 봤던 날이 떠올랐다. 병원 대기석에 앉아 자신을 바라보며 웃던 정지운. 그리고…….

생각의 편린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치고 지나갔다.

분명, 평생 그가 제게 했던 행동을 잊지 못하겠지. 그로 인해 고통받았던 건 사실이니까. 하지만 그걸 감수하면서까지 그와 함께하고 싶어졌다. 이유는 하나였다. 그가 좋으니까.

입술이 떨어지고 유나가 입을 열었다.

“사랑해요.”

그 말에 지운의 눈이 굳었다. 유나는 얼어붙은 그에게 다시 한번 말해 주었다.

“사랑해, 정지운.”

굳어 있던 그의 눈동자가 좌우로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순식간에 그의 눈에 물기가 어렸다. 유나가 그의 눈에서 떨어지는 눈물을 황망하게 바라보았다. 이런 반응은 예상치 못했는데.

지운의 등이 가파르게 오르내렸다. 그가 흐느꼈다. 유나가 급히 그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왜 울고 그래요.”

“몰라… 그냥 눈물이 나.”

지운이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않고 유나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그의 눈물을 본 게 이로써 두 번째였다. 한 번도 운 적 없다던 그였는데……. 어쩌다 보니 그를 계속 울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의 눈물이 마음 아프진 않았다. 그 때문에 운 눈물은 제가 훨씬 많았으니까.

“더 많이 울어야 할 거예요.”

“응…….”

“내가 당신 때문에 얼마나 많이 울었는데.”

“응.”

지운이 감내하겠다는 듯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유나 때문이라면 울어도 괜찮아.”

그가 울면서 웃었다.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한데 눈가는 휘어져 있다. 그 얼굴이 웃겨서 유나가 푸하하, 소리 내어 웃었다. 유나가 소리 내어 웃자 그제야 그가 제 얼굴을 더듬거리더니 서둘러 눈물을 닦았다.

“지금 나 못생겼어?”

“네.”

그 말에 지운이 눈을 빠르게 깜빡이더니 두 손에 얼굴을 파묻었다. 유나는 또 소리 내어 웃었다. 잘생겨서 좋다고 한 뒤부터 그가 저 몰래 자기 전엔 꼭 팩을 하고 외모에 부쩍 신경 쓰는 건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일부러 모른 척하고 있지만.

“농담이에요. 안 못생겼어요. 괜찮으니까 이리 와요.”

“진짜?”

그가 두 손에 파묻었던 얼굴을 떼고 정말이냐는 듯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유나를 바라보았다. 유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팔을 벌렸다. 그가 천천히 그 품에 빨려 가듯이 몸을 구겼다.

유나는 그 너른 품에 뺨을 비비면서 또 웃었다. 따듯하고 편안했다.

* * *

호출이 없는 날, 지운과 유나는 세현을 가정부 아주머니에게 맡기고 호텔 방을 잡았다. 오래간만의 제대로 된 휴식에 지운과 유나 모두 편안한 얼굴로 침대에 누웠다. 지운은 당연하다는 듯 유나를 껴안고 가슴에 뺨을 비볐다.

“유나 냄새.”

“맨날 냄새 타령이야.”

유나가 지운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며 툭 내뱉었다. 지운은 유나가 제 머리카락을 만져 주는 게 기분 좋은지 눈을 휘며 웃었다.

“유나야.”

“왜요.”

“유나야아아아.”

“왜.”

“나 진짜 사랑해?”

“…….”

유나가 입을 다물고 지운을 빤히 바라만 보자 지운이 눈을 빠르게 깜빡였다.

“…안 사랑해?”

유나가 하아, 한숨을 쉬며 지운의 이마를 툭 쳤다.

“사랑해요. 됐죠?”

“뭐야, 왜 선심 쓴다는 듯 그렇게 말해. 제대로 말해 줘야지.”

“어제 말해 줬잖아요.”

“계속 듣고 싶단 말이야.”

“당신이 애예요?”

지운이 세모눈을 뜨고서 유나를 노려보았다. 그래 봤자 하나도 안 무서웠다. 유나는 또다시 한숨을 쉬었다. 정말 예전이나 지금이나 애 같은 남자였다. 지운의 어머니께는 미안한 말이지만, 아무래도 가정 교육이 조금 부족한 남자였다.

여전히 지운이 유나를 노려보았다. 유나가 다시 어휴, 한숨을 내뱉었다.

“알겠어요. 지운 씨, 많이 사랑해요. 진짜 많이. 거짓말 아니고 진짜로.”

“그게 뭐야.”

“사랑해. 응?”

지운의 세모눈에 힘이 풀렸다. 유나가 팔을 들어 지운을 꽉 껴안았다. 지운이 곧바로 그 품으로 더 깊이 파고들었다. 그러고는 목덜미에 입술을 댔다. 그가 혀를 내어 유나의 목을 핥았다.

“유나 맛.”

그의 혀가 연신 유나의 목덜미를 핥아 대더니, 이어 쇄골 쪽으로 내려갔다. 그의 손이 자연스럽게 유나의 허리를 쓰다듬으며 가운의 끈을 풀었다. 원래 같았으면 밀어내는 시늉이라도 했겠지만,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유나는 그의 목을 휘감아 안으며 그의 애무를 반겼다.

지운의 입술이 닿는 곳마다 붉은 자국이 남았다. 지운은 아예 유나의 가운을 벗기고서는, 드러난 나체를 황홀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예뻐.”

그 말에 유나의 귓바퀴가 발갛게 물들었다. 왠지 낯부끄러웠다. 지운은 유나의 드러난 가슴을 빨아들였다. 하얀 살을 부드럽게 빨던 그가 이어 정점에 혀를 대었다. 뜨거우면서도 축축한 혀가 유두를 꾹, 누르자 유나가 흐읍 신음하며 목을 휘감은 팔에 힘을 주었다.

“아으읏…….”

그가 능숙하게 정점을 애무했다. 혀끝으로 유두를 꾹, 눌렀다가 이내 유륜을 핥았다. 다른 한 손으로는 부드럽고 몰캉한 가슴을 움켜쥐고서는 가볍게 주물렀다.

“부드러워, 좋아…….”

오래간만의 정사라 그런 걸까. 유나의 아래가 벌써 푹 젖어 들었다. 아래로 열기가 몰렸다. 유나는 괜스레 다리를 모으며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가슴을 한참이나 괴롭히던 그가 입술을 내려 유나의 납작한 배에 입을 맞췄다. 이 배에서 세현이 나왔다. 그리 생각하니 그의 가슴에 미안한 마음과 고마운 마음이 가득 차올랐다.

“유나야, 사랑해.”

그의 손이 유나의 오므린 다리를 벌리며 드러난 허벅지를 천천히 어루만졌다.

“사랑해.”

“후으으…….”

쏟아지는 애정 표현과 부드러운 애무에 유나의 머릿속에 불빛이 깜빡였다. 금방이라도 입 밖으로 비명 같은 신음이 터질 것 같았다.

지운의 손이 안으로 들어갈 듯 말 듯 애태우듯 허벅지 안쪽을 섬세하게 어루만졌다. 애가 닳은 유나가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왜 안 넣고…….”

겨우 나온 목소리가 가느다랗게 떨렸다. 재촉 아닌 재촉에 지운이 풋 웃음을 터트렸다.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그는 그녀의 재촉에 힘입어 벌어진 다리 사이로 얼굴을 파묻었다.

“흐윽!”

그의 혀가 유나의 벌어진 살을 핥아 내렸다. 그의 혀와 입속이 유나의 애액으로 흥건해졌다.

“많이 젖었네.”

“…당신 때문, 이잖… 하읏…, 아요.”

“응.”

너를 이렇게 만들 사람은 나밖에 없어.

지운이 속으로 중얼거리며 유나의 붉은 속살을 연이어 빨아들였다. 지운의 입술과 혀가 움직일 때마다 질척거리는 소리가 방 안을 메웠다. 안에서 흐르는 액을 모조리 핥아버리겠다는 듯 그가 오래도록 아래를 핥다가, 이어 동그랗게 튀어나온 살을 혀끝으로 눌렀다.

“아앙!”

유나가 참지 못하고 신음을 내질렀다. 짜릿한 감각이 척수를 내달렸다. 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흐, 흐읏, 아, 아아!”

지운이 유나의 허리를 단단히 틀어잡고 정점을 거침없이 누르고 빨았다. 달아오른 몸에 쾌락이 폭우처럼 쏟아져 내렸다.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했다.

“하아앙… 흐으… 그만, 그마안…….”

유나가 애원해도 지운의 혀는 멈추지 않았다. 그는 그것으로도 모자라 혀로는 여전히 클리토리스를 괴롭히며 질구 안으로 중지를 넣었다.

“후으응!”

찌걱거리는 소리와 질척거리는 소리가 한데 섞였다. 내벽이 중지를 수월하게 감싸자, 그가 이번에는 검지도 함께 넣었다. 손가락으로 피스톤질을 하며 혀로는 쏟아지는 애액을 빨고 클리토리스를 애무했다. 유나가 몸을 비틀어댔다.

“그만, 그만, 아, 아!”

한계였다. 더 이상은 무리였다.

유나는 극치에 다다른 쾌감을 견디지 못하고 허리를 휜 채 그대로 절정을 맞이했다.

“후으으, 아, 아…….”

아래에서 물이 분수처럼 솟아올랐다. 시트가 푹, 젖었다.

절정은 오래도록 파도처럼 이어졌다. 유나의 아래에서 얼굴을 뗀 지운이 혀로 애액으로 범벅이 된 제 입술을 핥았다.

“귀여워.”

지운은 오르가슴으로 몸을 떠는 유나를 꽉 껴안았다. 유나가 숨을 가파르게 몰아쉬었다.

“흐으으…….”

지운이 벙긋거리는 유나의 입술을 삼켰다. 유나는 쏟아지는 키스에 허우적거리며 지운을 껴안았다. 지운이 유나의 아래에 제 아래를 비볐다. 이미 곧추선 성기는 액을 뚝, 뚝 흘리며 안에 들어갈 준비를 모두 마친 상태였다.

“…넣어 줘요.”

유나가 잇새로 속삭이듯 말했다. 지운이 눈을 초승달처럼 휘며 웃었다.

“응.”

성기가 젖은 아래로 푹, 순식간에 들어갔다. 젖은 상태여도 워낙 크기가 큰 터라 압박감이 장난 아니었다. 하나 기분 좋았다. 유나는 고개를 젖히고선 나른한 한숨을 내쉬었다. 내벽이 지운의 성기를 뿌리까지 삼켰다.

“하아, 좋아.”

지운이 중얼거리며 천천히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나는 내벽을 긁으며 안으로 더 들어오는 감각에 입술을 안으로 말았다. 한 차례 절정에 달했는데도 다시 스멀스멀 아래로 열기가 몰렸다.

느릿하게 움직이던 허리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동작이 빨라졌다. 유나는 시트를 움켜쥐며 고개를 위로 들어 지운을 바라보았다. 지운이 미간을 좁힌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이마에는 땀이 맺혀 있었다. 눈이 마주쳤다.

“후우, 왜… 유나야?”

“으으응…….”

“응?”

그가 웃으며 몸을 아래로 내렸다. 유나가 고개를 젓자 지운이 유나의 뺨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그 간질거리는 느낌에 유나 또한 웃음을 흘렸다. 지운의 눈에 애정이 넘실거렸다.

생각해 보면… 그의 눈은 늘 이랬다. 언제나 좋아 죽겠다는 듯, 귀엽다는 듯, 애정을 품고서 바라보는 눈이었다. 유나는 그런 그의 목을 꽉 껴안으며 그의 입술에 먼저 입을 맞췄다. 움직이던 그의 허리가 멈췄다.

그가 놀란 듯 토끼처럼 눈을 휘둥그레 떴다가 이내 다시 웃으며 유나의 입 속으로 혀를 넣었다.

“아…….”

움직임도 다시 재개됐다. 퍽, 퍽, 퍽. 아래에서는 쳐올리는 소리가, 위에서는 혀와 혀가 섞이며 끈적이는 소리가 났다. 유나는 숨을 헐떡이며 들어오는 타액을 모조리 다 삼켰다. 혀가 입천장을 긁고 아래에선 성기가 내벽을 긁으며 연신 안으로 치받았다가 빠져나가길 반복했다.

발가락이 절로 곱아 들고 허리가 쾌락을 좇아 움직였다. 지운이 움직이는 유나의 엉덩이를 꽉 쥐었다.

“귀여워, 유나.”

지운이 입술을 떼며 말했다. 그러고는 다시 쪽, 가벼운 키스를 했다.

“많이 사랑해.”

지운은 매일 유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했다. 지겹다고 생각하면서도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유나는 피식 웃으며 나도, 라고 대답할까 하다가 하지 않았다. 지운은 대답 없는 유나에게 서운한지 움직임을 멈추고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유나도, 응?”

“잔말 말고 빨리 움직이기나 해요.”

유나가 지운의 어깨를 툭 쳤다. 지운이 여전히 뽀로통한 얼굴로 유나를 바라보다가 이내 다시 허리를 움직였다.

“아앙…….”

기분 좋았다. 유나가 고개를 젖히며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두꺼운 귀두가 안쪽 깊은 곳을 찌를 때마다 눈앞에서 섬광이 터지는 듯했다. 유나는 다시 밀려오는 쾌락의 파도에 눈을 질끈 감았다.

“아흐윽, 읏, 아!”

움직임이 더욱 빨라졌다. 몸이 위아래로 미친 듯이 흔들렸다. 유나는 시트를 움켜쥐고서 허리를 비틀었다. 지운이 몸을 위로 들고서는 유나의 벌어진 다리를 모아 제 어깨에 걸쳤다.

“앗, 으응!”

안을 찌르는 감각이 선연했다. 지운도 사정에 임박했는지 미간을 완전히 좁히고서는 거친 숨을 내뱉었다.

“흐윽, 아, 아, 갈 것, 같아요, 응!”

유나가 헐떡이며 움켜쥔 시트를 엉망으로 구겼다. 유나의 눈가가 발갛게 물들었다. 꽉 조이는 내벽에 지운은 그대로 유나의 안에 사정했다.

“아!”

유나는 안에서 퍼지는 미지근한 정액을 느끼며 그녀 또한 절정에 다다랐다. 연이은 절정에 유나의 몸이 잘게 떨렸다.

“흐으…….”

유나가 흐느끼며 다리를 침대 위로 툭, 떨어트렸다. 지운이 사정의 여운을 만끽하는 듯 유나의 안에 파묻은 채로 고개를 내려 그녀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유나는 제 가슴 위로 엎어진 그의 새까만 머리카락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유나야. ……이제 안 떠날 거지?”

“……갑자기 무슨 소리예요?”

유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지운이 고개를 들고서 유나와 눈을 마주했다.

“이렇게 행복한데… 갑자기 유나가 사라져 버릴까 봐 무서워.”

“…….”

“갑자기 내가 싫어졌다고, 필요 없어졌다고 할 것 같아. 또 그때처럼… 도망갈 것 같아.”

지운의 눈이 떨렸다. 지운의 머리를 쓰다듬던 유나의 손이 멈췄다. 그녀가 물끄러미 지운을 바라보았다.

“불안해요?”

“……응.”

아래로 늘어트린 눈, 제 표정을 살피는 눈초리, 떨리는 숨, 눈동자. 모든 게 그가 불안하다는 걸 여실히 보여 주고 있었다. 유나는 그런 그에게 무어라 말할까, 하다가 아래로 시선을 내렸다.

…그는 불안할 필요가 있었다.

“또 예전처럼 나한테 함부로 굴면 그럴 수도 있겠죠.”

“유나야.”

“그러니까 잘해요. 알겠죠?”

지운이 몸을 일으켜 유나의 옆에 달라붙었다. 그가 유나의 허리를 껴안고서 여전히 떨리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 이상 어떻게 잘해?”

“더.”

지금도 충분하지만, 유나는 괜히 심술을 부렸다.

“내가 실수하면 어떡해? 나도 모르게 유나가 싫어하는 행동을 할 수도 있잖아. 유나가 알려 주지 않으면 모른단 말이야.”

“그럼 사과해요. 미안하다고. 그리고 다신 안 그러면 되죠.”

“…그래도 내가 싫어지면?”

“글쎄요.”

유나의 모호한 대답에 지운이 고개를 내저으며 유나의 품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러지 마, 유나야. 가슴이 아파.”

“아파해요. 나도 예전에 많이 아팠어요.”

“…미안.”

아이 같은 남자. 유나는 손을 들어 그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그 손길만으로도 그가 안정을 찾을 거라는 걸 유나는 잘 알았다. 역시나 떨리던 숨이 점차 고르게 변했다.

사랑의 종착지가 어디가 될지 유나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전처럼 변하지 않는다면 유나는 오롯이 자신의 마음을 그에게 줄 생각이었다. 어쩌면 평생.

그러나 유나는 굳이 입 밖으로 내어 말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입술을 내려 그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그러고는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그 가이드가 미친 에스퍼에게서 도망치는 방법 완결)

그 가이드가 미친 에스퍼에게서 도망치는 방법 2권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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