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0화 (20/21)

* * *

[어마어마한 쌍놈 : 고맙다 김준영]

침대에서 뒹굴뒹굴하던 준영은 뜻밖의 인물에게서 온 뜻밖의 문자에 얼굴 가득 물음표를 띄웠다.

[?????갑자기????]

[어마어마한 쌍놈 : 석경이랑 나 같이 살기로 했다]

[뭐????]

[어마어마한 쌍놈 : 니가 우리 싸우라고 잔머리 굴려준 덕분에]

[씨발 뭔데 알아듣게 말해]

[어마어마한 쌍놈 : 남친 갔어. 와도 돼]

[어마어마한 쌍놈 : 이거 니가 보낸 거잖아]

[아닌데?]

[어마어마한 쌍놈 : 아니긴ㅋ 석경이가 나한테 너무 미안하다고 같이 살재]

[미안한데 왜 너랑 같이 살아????? 무슨 사과가 그래???? 나 좀 이해가 안 가는 듯]

[어마어마한 쌍놈 : 암튼 개이득ㅋ]

[대답해 새꺄!!!!!]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권윤조에게 답은 없었다. 권윤조 쌍놈 새끼가 제 자랑만 하고 사라진 것이다.

며칠 전, 권윤조가 준영에게 다가오더니 고민이 있다고 말했다.

‘아, 고민 있다고? 뭔지 알고 싶지 않지만 힘내라.’

준영은 당연히 권윤조의 고민을 들어줄 생각이 없었다. 무시하고 지나가려는 준영을 권윤조가 붙잡았다.

‘산삼 잘 있냐?’

‘뭐?’

‘최승희가 준 산삼 잘 있냐고.’

‘……씨발.’

‘그거 내가 최승희한테 돌려줄게.’

‘그래, 윤조야. 고민이 뭐라고?’

권윤조는 고민을 털어놨다. 석경이가 저와의 잠자리를 피하는 것 같다고, 같이 안 자려고 한다고. 무시무시한 TMI 폭격에 준영은 귀가 썩는 줄 알았다.

‘권태긴가 보지.’

‘권태기 아니야. 석경이가 나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그럼 네가 존나 못하나 보지.’

‘나 잘해. 석경이도 잘한다 그랬어.’

‘씨발, 내가 알 바냐고.’

준영은 도저히 참지 못하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최승희 집에 산삼 몇 뿌리 더 있다더라. 그거 너 주려고 따로 챙겨 놨대.’

준영은 도로 자리에 앉았다.

‘그래, 윤조야. 우리가 어디까지 얘기했지?’

‘석경이가 나랑 왜 안 자려고 하는지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어.’

‘잘 생각해 봐. 석경이가 진심으로 너한테 만족하는지. 나는 어째 네가 똥볼 찬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건 아니야. 석경이 말로는 학기 중이라 공부해야 된대. 내가 못해서 그러는 건 절대 아닐 거야.’

‘그런 걸 우리는 정신승리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정신승리 아니라니까. 석경이가 한 말이야.’

‘아, 뭐 어쩌라고. 그럼 답 나왔네. 학생이면 학생답게 공부나 해.’

‘산삼이…….’

‘들어 봐, 윤조야. 니들 사귀기 전에 삽질한 걸 떠올려 보렴. 이렇게 혼자 끙끙 앓지 말고 석경이한테 같이 살자고 직접 말을 해 보는 건 어때?’

‘석경이가 싫다고 하면?’

당연히 싫다고 하겠지. 준영은 속으로 음흉하게 웃었다. 권윤조가 같이 살자고 하면 석경은 몇 발짝 뒤로 물러나 권윤조와 거리를 둘 게 분명했다. 그렇게 되면 석경은 다시 저와 놀아 주겠지.

준영은 떡밥을 물까 말까 망설이는 권윤조를 몇 차례 더 부추겼다. 석경이를 되찾는 장밋빛 미래를 상상하면서.

그런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가장 어처구니없는 사실은 자신도 모르게 권윤조의 조력자 행세를 했다는 거다.

“으아아아아아악!”

준영은 분한 마음을 가누지 못하고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채 괴성을 질러 댔다.

외전 2

윤조는 잠결에 제 가슴팍을 파고들며 얼굴을 부비는 석경의 애교에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다. 아, 심장 아파.

평소에는 애교도 없고 무뚝뚝한 편인 석경이지만 잠결에는 간혹 귀여운 애교를 흘리기도 했다.

인생이란 게 원래 이렇게 별 노력도 없이 즐겁고 행복해질 수 있는 거였던가.

윤조는 석경이 잠에서 깰세라 숨소리마저 죽인 채 행복을 만끽했다. 석경을 만나고 매 순간이 기적처럼 느껴졌다. 운명의 장난으로 인해 혹시라도 석경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어땠을까. 상상만 해도 모골이 송연해졌다. 잠결에 나오는 석경의 사랑스러운 애교를 저 아닌 다른 사람이 누렸을지도 모른다는 상상만으로도 실체 없는 상대에게 질투심이 활활 타올랐다.

“……윤조야.”

그렇게 윤조가 행복과 망상을 오가는 사이 어느새 일어났는지 석경이 잠이 덜 깬 눈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일어났어?”

“우웅.”

씨발! 우웅이래. 몽롱한 상태가 아니면 나올 수 없는 귀여운 말투에 윤조는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우리 석경이는 도대체 부족한 게 뭐지? 두뇌 명석하지, 빛나는 외모는 두말하면 입만 아프고, 성격도 좋은데 사람 애간장을 녹이는 애교까지! 사람이 이 정도로 완벽할 수가 있을까.

윤조는 가끔 빈틈없이 완벽한 석경을 보며 사뭇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빈틈이 있으면 자신이 채워 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그래서 최근 시작한 운전 연수가 윤조에게는 기꺼웠다. 석경은 운전에 정말 젬병이었다. 운전이야 자신이 평생 석경의 기사가 되어 주면 그만이었다. 오히려 석경의 취약한 부분을 볼 수 있어 좋기만 했다.

“석경아, 잘 잤어?”

“우웅, 너두?”

“아니, 난 잘 못 잤어.”

“왜?”

“꿈에 네가 안 나와서 보고 싶었거든.”

“……아.”

석경은 잠시 벙쪄 있다가 이내 피식 웃고는 몸을 일으켰다. 방금, 웃음이 약간 냉소 같았는데. 윤조의 주접 섞인 입방정에 잠이 확 깼는지 석경은 어느새 평소의 무심하면서도 차분한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석경아, 어디 가?”

“샤워해야지.”

“좀만 더 누워 있지.”

“너도 얼른 일어나. 벌써 9시 넘었어.”

“석경아, 나 8시부터 깨 있었는데.”

“응, 그러니까 얼른 일어나라구.”

“석경아, 오늘 주말인데 모닝 섹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유히 욕실로 들어가 버리는 석경을 보며 윤조는 하는 수 없이 침대를 벗어났다.

샤워를 하고 나온 석경은 말갛고 청초했다. 매일 보는 모습에도 윤조는 질리지도 않고 새삼 감탄했다.

“윤조야, 너도 씻었어?”

윤조는 제 머리카락을 말리던 드라이기를 끄고 대답했다.

“응. 저쪽 욕실에서. 석경아, 이리 와. 머리 말려 줄게.”

“아냐, 드라이기 하나 더 있으니까 그걸로 말릴게.”

동거를 결정한 석경은 윤조의 집에서 같이 살고 싶다고 어머니와 재경에게 말했다. 재경이야 반대할 것도 없었다. 오히려 고민하는 어머니를 적극적으로 설득하기까지 했다. 어머니의 허락을 받은 석경은 자취방에 있는 짐을 윤조의 집으로 옮겼다. 그렇게 두 살림을 하나로 합친 덕분에 드라이기도 두 개였다.

석경이 생활하던 자취방은 아직 계약 기간이 만료되지 않았거니와, 학기 중이라서 새로 이사 들어올 사람도 안 구해지는 바람에 그대로 방치 중이었다. 물론 월세도 꼬박꼬박 내면서. 월세가 아깝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리 와.”

석경은 결국 권윤조에게 붙잡혔다. 굳이 이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윤조는 제 다리 사이에 석경을 가둬 놓듯이 앉혀 두고 머리를 말려 주기 시작했다.

“머릿결 좋다.”

머리카락을 매만지는 권윤조의 손길이 한없이 부드러웠다.

“고마워, 윤조 너도 좋아.”

“석경아, 너 염색 한 번도 안 했지?”

“응.”

“밝은 색으로 염색해도 잘 어울릴 것 같아.”

“그럼 나 염색할까?”

“아니.”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나오는 윤조의 단호한 대답에 석경은 너털웃음 터뜨렸다.

“근데 왜 말했어.”

“그냥 예쁠 것 같아서.”

“싱겁기는.”

“석경아, 오늘도 운전 연습하러 가야지.”

얌전히 윤조의 손길에 몸을 맡기고 있던 석경은 순간 어깨를 움찔 떨었다.

“어? 운전 연습?”

“응.”

“저, 윤조야. 이번 주는 운전 연습 쉴까?”

“왜? 조금만 더 연습하면 완벽해질 것 같은데.”

완벽해지긴 개뿔. 석경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여전히 자신은 평행 주차를 못했고, 잊을만하면 급발진과 급정거를 했으며, 코너링은 늘 서툴고 거칠었다.

“아니야. 오늘은 쉬고 싶어.”

“그럼 감 잃을 수도 있으니까, 집에서 레이싱 게임이라도 할래?”

운전과 게임은 석경이 제일 자신 없어하는 분야였다. 그런데 윤조가 지금 그 둘을 합쳐 놓은 걸 하자고 말한다. 석경은 표정이 썩어 들어가는 걸 가까스로 막았다.

“……아니.”

“그럼 오늘 뭐 하고 놀까?”

“준영이랑 태정이 부를까?”

“그 새끼들, 아니 걔들을 왜 불러?”

윤조가 드라이기까지 끄고는 정색했다.

“애들이랑 같이 놀려고 그랬지. 네가 게임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나보다는 준영이랑 태정이가 게임을 훨씬 잘하니까.”

“석경아, 나 월요일부터 주말이 되기만 손꼽아 기다렸어.”

“그렇게까지?”

“어. 근데 지금 누굴 부르겠다고? 그 새끼들, 아니 걔들이 얼마나 눈치가 없는데. 아직도 우정이 최고인 줄 알아. 우정 다 뒤진 지 오랜데. 걔들은 그냥 훼방꾼일 뿐이야.”

“…….”

“난 석경이 너만 있으면 되거든.”

“응, 그래.”

너도 그래? 라고 물어볼 줄 알았는데 다행히 윤조는 그러지 않고 다시 드라이기를 켜서 머리를 말려 주기 시작했다. 석경은 속으로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안 물어봐서 다행이야. 거짓말 못하는데. 물론 윤조가 가장 1순위지만. 석경은 여전히 우정도 소중했다.

토스트로 간단하게 아침을 때운 둘은 OTT 플랫폼에 새로 업데이트된 영화를 보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석경아, 너 요리할 줄 알아?”

석경의 무릎을 베고 누워 있던 윤조가 물었다. 영화에서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을 위해 요리를 해 주는 달달하고 로맨틱한 장면이 나온 참이었다.

“라면은 잘 끓여.”

“석경아, 라면은 요리가 아니잖아.”

윤조는 다정하기 짝이 없는 말투로 팩폭을 날렸다.

“그럼 넌 잘해?”

그러고 보니 두 사람은 집에서 요리다운 요리를 해 먹어 본 적이 없었다. 늘 배달 음식, 아니면 외식, 그것도 아니면 석경의 어머니가 보내 준 밑반찬으로 끼니를 챙겼으니까.

“나야 당연히 못하지.”

권윤조는 석경을 보며 싱긋 웃고는 다시 말없이 영화를 봤다. 석경도 영화 속의 행복한 연인을 지켜봤다. 여자는 남자가 손수 만들어 준 요리를 먹으며 행복하게 웃고 있었다. 석경은 시선을 내려 제 무릎을 베고 있는 권윤조를 바라봤다. 혹시 윤조가 저런 걸 좋아하나.

“윤조야.”

“응?”

“내가 요리해 줄까?”

윤조는 몸을 벌떡 일으켰다. 요리 잘하냐는 질문에 노림수가 전혀 없었다고는 말 못 하지만 석경이 알아차릴 거라고는 기대도 안 했었다. 우리 석경이 눈치가 정말 많이 늘었군. 윤조는 어쩐지 감개무량한 마음이 들었다.

“괜찮겠어?”

조심스럽게 묻자 석경이 빵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뭐가 괜찮겠어, 야. 요리가 뭐 별거라고.”

“석경아, 나는 너무 감동이지.”

“맛은 기대하지 마.”

“벌써 기대돼.”

“기대하지 말라니까.”

속전속결로, 둘은 영화를 보다 말고 마트에 가기 위해 집을 나왔다. 어차피 영화가 별로 재미도 없고 지루하던 참이었다.

“아, 맞다!”

안전벨트를 매던 석경이 손뼉까지 착 마주치며 탄식했다.

“왜?”

“무슨 요리로 할지 안 정했어.”

“마트 가서 정하면 되지.”

윤조는 그게 뭐 별일이냐는 투로 말했다.

“그래도 괜찮나?”

석경이 되물었다. 당연히 괜찮지 않다는 사실을 윤조는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었다. 장을 보러 가기 전에 메뉴를 먼저 정하는 게 효율 면에서 좋아 보였으니까. 하지만 효율 따위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메뉴는 석경이 정하고 싶을 때 정하면 되는 거다. 윤조는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

“그래도 마트 도착하기 전에 인터넷 검색 좀 해 봐야겠다.”

“역시 우리 석경이는 준비성도 철저해. 공부를 잘하는 이유가 다 있다니까.”

“야, 뭘 또 그렇게 말해.”

석경이 귀 끝까지 붉히며 쑥스럽게 웃었다.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윤조는 다시 집 쪽으로 급하게 차를 돌릴 뻔했다.

윤조는 고심해서 메뉴를 고르는 석경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말없이 운전을 했다.

“윤조야, 나 정했어.”

아직 3분 정도 밖에 안 지난 것 같은데 석경은 벌써 화색을 띠며 말했다.

“오, 진짜? 뭐 해 줄 거야?”

“크림 파스타랑 해물파전!”

“와! 그럼 점심에는 크림 파스타 먹고 저녁에는 해물파전 먹는 거야?”

“아니, 둘 다 점심에 먹을 건데? 저녁에는 귀찮으니까 시켜 먹든지 하자. 밖에서 먹어도 좋고.”

“어? 어, 그래.”

윤조는 기쁘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속으로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크림 파스타와 해물파전의 조합이, 애매했다. 어울리는 것도 같고, 어울리지 않는 것도 같고. 약간 혼란스러웠다.

둘 다 느끼한 축에 속하는 요리니까 어울리는 게 맞겠지?

“왜? 별로야?”

“아냐, 좋아.”

윤조는 환하게 웃었다. 단짠단짠의 진리를 모르는 석경이 어쩐지 귀엽게 느껴졌다.

“기대는 하지 마.”

“알았어, 알았어.”

둘 다 카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기분 좋게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석경아.”

“응?”

“네가 만든 요리, 사진 찍어서 SNS에 올려도 돼?”

“너 SNS 없잖아.”

“만들어야지. 가입하면 김준영이랑 맞팔부터 해야겠다. 참, 김준영은 네가 만든 요리 먹어 본 적 있어?”

“라면 말고는 없을 걸?”

“더 잘됐네.”

분해서 씩씩거리는 김준영을 상상하자 윤조는 웃음이 절로 나왔다. 이게 바로 사랑과 우정의 차이란다. 자신이 모르는 석경의 중고등학생 시절 이야기를 하며 우월감에 젖곤 하는 김준영의 코를 드디어 납작하게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느덧 마트에 도착했다. 주말이라 그런지 사람들로 제법 붐볐다.

둘은 카트 하나를 끌고 마트 안을 돌아다녔다. 석경의 발길이 자꾸만 주류 코너 쪽으로 슬금슬금 향하는 것 같아서 윤조는 속으로 웃었다.

“석경아, 재료 사야지.”

“응, 그래. 파스타 재료부터 살까? 파스타는 쉽겠더라고. 면이랑 소스만 있으면 돼. 소스도 팔잖아. 라면 끓이는 거랑 비슷할 것 같아.”

윤조는 석경이 하는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석경은 요리에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하면서.

두 사람은 파스타 면과 유리병에 담긴 크림소스를 카트에 담고 해산물 코너로 향했다.

“석경아, 재료 뭐 필요해?”

“해산물은 새우랑, 오징어 정도만 넣으면 될 것 같아. 채소는 쪽파 넣고.”

“와, 전문가 같아.”

“아냐, 인터넷에 다 나와 있어. 오징어랑 새우는 많이 들어가는 게 좋겠지? 맛있잖아.”

“그래, 많이 사자.”

석경은 해산물을 고를 때도 쪽파를 고를 때도 무척 신중했다. 본다고 뭘 알겠냐마는 느낌상 조금이라도 더 싱싱해 보이고, 신선해 보이는 것으로 골랐다.

장보기를 순조롭게 끝마치고 둘은 집으로 돌아왔다. 물론 계획에 없던 소비도 많았다. 석경은 원 플러스 원 행사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하나를 더 준다니! 구입하는 게 무조건 이득 아닌가.

“장 보는 거 재밌다. 종종 마트 가자.”

“석경아, 나도 방금 그 말 하려고 했어.”

영화나 드라마에서 신혼부부의 모습을 연출할 때, 괜히 마트를 배경으로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윤조는 새삼 깨달았다. 일반적인 데이트와는 뭔가 다른, 생활감이 물씬 풍기면서도 가족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데이트 코스였다. 덕분에 석경의 새로운 면들도 많이 알게 됐다.

석경은 사은품이나 원 플러스 원에 환장했다. 그리고 시식 코너에는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오는 길에 차 안에서 슬쩍 물어보니 부끄러워서 그런 거란다. 아직은 시식 코너 음식을 먹을 수 있는 내공이 안 된다고.

“윤조야, 넌 쉬고 있어. 내가 요리 다 완성하면 부를게.”

“같이 하는 거 아니야? 내가 옆에서 도울게.”

“아니야. 도와줄 것도 없어.”

“그럼 옆에서 구경하면 안 돼?”

석경의 얼굴에 고민하는 기색이 스쳤다. 윤조는 쫓겨날세라 얼른 식탁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석경은 하는 수 없다는 얼굴로 구경을 묵인해 줬다.

* * *

윤조는 고민했다. 이걸, 사진을 찍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석경은 얼굴은 물론이고 목까지 빨개진 채로 민망해하고 있었다.

“모양이 좀 그렇지?”

해물파전을 만들 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물론 윤조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빠짐없이 지켜봤었다. 요리에 대해 잘 모르는 자신이 봐도 석경이 주방에서 깽판을 치고 있다는 사실쯤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도와줄까, 라는 말도 몇 번이나 했었다. 그때마다 석경은 펄쩍 뛰며 손사래를 쳤다. 가까이 다가가면 저를 죽일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괜찮은데?”

크림 파스타는 모양이 그나마 괜찮았지만, 해물파전은 처참했다. 거기다 대고 자신이 사진을 찍겠다고 나서면 석경이 자칫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흑역사 박제로.

“처음이라 그래.”

“응, 맛만 있으면 되지.”

“……먹을까?”

요리를 만든 장본인은 분명 시식을 주저하고 있었다.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본 윤조도 사실 주저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오징어를 덜 익힌 것 같아. 새우도.

윤조는 마음을 가다듬고 젓가락을 들었다.

“먹자. 식겠다.”

윤조는 그나마 상태가 괜찮아 보이는 크림 파스타를 향해 손을 뻗었다. 꾸덕꾸덕한 크림 양념 탓인지 결속력이 대단했다. 깻잎장아찌 떼 주듯이 누군가 옆에서 면을 잡아 줘야 할 것 같았다.

어쨌든 윤조는 파스타를 한 입 먹었다. 음식을 입에 넣은 순간 심경이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해졌다. 세상에 이런 맛도 존재하는구나. 시판 소스 말고 다른 걸 넣었을 리가 없을 텐데 어떻게 이런 맛이? 이 정도면 소스 회사를 고소해야 판이었다. 아, 파스타 면을 만든 회사도.

“……어때?”

“맛있어!”

“정말?”

“응, 내가 먹은 파스타 중에 최고야.”

윤조는 석경을 향해 엄지까지 날렸다. 저렇게 예쁜 애가 만든 요리라고 생각하니, 본심과는 정반대의 칭찬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다행이다. 해물파전도 먹어 봐.”

윤조는 불현듯 식도가 바짝 조여 오는 느낌을 받았다. 해물파전은 모양도 끔찍했지만 맛은 더 끔찍했다. 윤조는 하마터면 뱉을 뻔했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서 참았다.

빈틈없이 완벽한 석경이가 어떻게 이런 요리를……?

“어때?”

“석경아, 넌 먹지 마.”

“왜?”

“아무래도 양이 부족할 것 같아. 나 혼자 다 먹을 거야.”

“아, 뭐야? 그 정도로 맛있어?”

윤조는 석경이 해물파전을 먹는 걸 필사적으로 막고 싶었다. 이런 걸, 이런 음식 쓰레기를 석경이 먹게 할 수는 없었다.

“응, 내가 다 먹을게.”

“그래도 맛만 볼게.”

윤조가 말리기도 전에 석경이 해물파전을 크게 떼서 입에 넣었다. 망했어. 석경이는 이제 자책하겠지. 힘들게 만든 요리도 다 버리려고 하겠지. 아, 물론 버리는 것은 윤조도 찬성이었다. 석경이 만든 요리라는 타이틀은 잠시 모르는 척하면 그만이다.

석경이 천천히 맛을 음미했다. 안 돼! 절대로 음미해서는 안 돼. 윤조는 속으로 안타까운 비명을 질렀다.

“…….”

“…….”

“석경아, 요리라는 게 사실 그렇게 쉬운 게 아니…….”

“생각보다 괜찮은데?”

“……어?”

“먹을 만하다.”

“…….”

윤조는 할 말을 잃었다. 석경은 해물파전을 한 입 더 먹었다. 괜찮다는 말이 진심이었던 모양이다. 윤조는 큰 충격을 받았지만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동의한다는 듯 미소를 지었다.

제 입맛이 많이 까다로운 편이었던가? 윤조는 자신의 미각을 의심하며 해물파전을 조금 더 떼어 먹어 봤다. 이건 역시 쓰레기야. 윤조는 거침없이 결론을 내렸다.

근데 석경이는 왜 아무렇지도 않은 거지? 윤조는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혹시? 한 가지 추측이 떠올랐다. 혹시 억제제 부작용으로 미각이 상한 것은 아닐까.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이보다 더 슬픈 일은 없을 거라고 윤조는 생각했다.

* * *

다음날 윤조는 초췌한 몰골로 일어났다. 석경에게 끝내 요리가 쓰레기라는 사실을 밝힐 수 없었던 윤조는 그것들을 다 먹어 치워야 했다. 그리고 결국 탈이 나고 말았다. 석경 몰래 새벽에 화장실에 들락거리며 속에 든 것을 게워 내느라 잠도 설쳤다.

“윤조야, 컨디션 안 좋아?”

아침부터 석경과 찰싹 달라붙어서 김준영이 추천해 준 드라마를 정주행하던 윤조는 점심 무렵부터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응? 전혀.”

망할 김준영. 이게 다 김준영 때문이다. 뭐 저딴 지루한 드라마를 추천해줘서.

“윤조야, 졸리면 침실에 가서 자.”

“아니야. 나 안 졸았어.”

석경과 함께 보내는 꿀같은 주말 시간을 낮잠으로 허비할 수는 없었다. 윤조는 정신력으로 버텼지만 속절없이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막을 힘이 없었다.

“윤조야, 침실에 들어가서 자라니까.”

“나 안 잤어, 석경아.”

“…….”

“파란 옷, 저 새끼가 범인이잖아. 내가 다 보고 있었다니까.”

“무슨 소리야. 진범 30분 전에 밝혀졌는데.”

“아, 그래?”

“얼른 들어가.”

“석경아, 나 딱 30분만 자고 나올게.”

윤조는 하는 수 없이 침실로 향했다. 그런데 막상 침대에 눕자 졸음이 깨고 정신이 말똥말똥해졌다. 딱 3분만 이대로 누워 있다가 잠이 안 오면 다시 거실로 나가야겠다고 생각하던 윤조는 3초 만에 잠들어 버렸다.

“…….”

윤조는 하반신을 짓누르는 익숙한 무게와 성기에 가해지는 뜨겁고 축축한 자극에 설핏 잠에서 깼다. 하반신 쪽으로 시선을 내리자 제 성기를 할짝할짝 핥는 석경이 보였다. 순간 몽롱했던 잠기운이 확 달아났다.

“……석경아.”

“…….”

이름을 부르자 석경의 기다란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눈만 들어 올려 저를 보는 석경이 어쩐지 낯설었다. 내가 지금 꿈을 꾸는 건가. 거의 매일 석경의 몸을 탐하는데도 욕구불만이라도 쌓인 것처럼 이런 꿈까지 꾸는 스스로에게 실소가 터져 나왔다. 그러나 즐겁고도 달콤한 꿈임은 분명했다.

“예쁘다, 우리 석경이…….”

“……윤조야.”

성기에 닿는 석경의 뜨거운 숨결이 지나치게 사실적이었다. 제 이름을 부르는 물기 섞인 목소리도 생생했다. 벅찬 느낌에 시장이 요동쳤다.

“이리 와, 석경아. 키스하자.”

“…….”

손을 아래로 뻗어 부드러운 머리칼을 만지자 그 감촉마저도 선연했다. 아지랑이를 만지는 느낌이 결코 아니었다. 이리 오라는 말에 제 몸을 타고 올라오는 기분 좋은 무게감 또한 금방이라도 흩어질 듯한 신기루가 아니었다.

두 개의 몸이 위아래로 포개지고 석경의 아름다운 얼굴이 눈앞에 가까워졌다.

“아…….”

“…….”

“꿈이 아니었구나.”

“……윤조야.”

“꿈이 아니었어.”

윤조는 완전히 잠에서 깨어났다. 손을 올려 석경의 두 볼을 감싸 쥐고 입술을 빨았다. 성기에 닿는 숨결이 왜 그렇게 뜨거웠는지 알 것 같았다. 석경의 입 안은 펄펄 끓는 것처럼 뜨거웠다.

윤조는 잠시 입술을 떼어 내고 석경의 얼굴을 살폈다. 약간 초점이 어긋난 듯한 몽롱한 눈동자를 깊숙이 들여다봤다. 예쁜 눈동자 안에 자리 잡은 열기가 보였다. 색색거리며 가늘게 내쉬는 호흡에는 정염이 섞여 있었다.

윤조는 한동안 석경의 얼굴을 물끄러미 봤다.

“…….”

부풀어 터질 듯한 욕망과 쾌락을 갈구하는 석경의 두 눈을 그저 관망했다.

“……흐으.”

몸을 작게 뒤척이며 단단하게 불거진 아랫도리를 제 것에 비벼 대는 석경의 몸짓에 윤조의 한쪽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갔다. 조금만 더 지켜볼까.

“석경아, 뭐 해.”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묻자 기분 좋은 허락으로 받아들였는지 석경의 몸짓이 조금 더 적극적으로 변했다. 바지가 거추장스럽게 느껴졌는지 석경은 윤조의 바지를 끌어내렸다. 허리를 살짝 들어 바지를 쉽게 벗길 수 있게 도와주자 팬티까지 야무지게 끌어내리더니 자신의 바지도 벗는 게 아닌가.

이미 흥분이 극에 달해 핏줄까지 울퉁불퉁 불거진 윤조의 성기를 본 석경이 오래 굶은 사람처럼 입부터 갖다 댔다. 춥춥대며 게걸스럽게 성기를 핥은 석경이 그걸로는 성에 차지 않은지 삼키려고 입을 크게 벌렸다. 하지만 버거운 크기에 얼마 삼키지도 못하고 미간을 찡그리고 말았다.

“하아…….”

“석경아, 너 입으로는 잘 못 먹잖아.”

일깨워준 보람도 없이 석경은 윤조의 것을 꾸역꾸역 입에 넣었다. 저러다 입술이 찢어지기라도 할까 걱정이었다. 윤조는 몸을 반쯤 일으켜 석경의 갸름한 턱을 손끝으로 들어 올렸다.

“…….”

석경은 잘 먹고 있는데 왜 그러냐는 듯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윤조를 올려다봤다.

“다치면 안 되니까.”

“…….”

“뒤로 먹자, 석경아.”

“……으응.”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석경을 보며 윤조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리고 속으로 석경의 히트사이클을 셈해 봤다.

“석경아.”

“……응.”

“작열통은?”

“……없어.”

석경이 고개를 저었다. 쌍방 각인 이후로 처음 맞는 석경의 히트사이클이었다. 쌍방 각인이 되면 작열통 증상이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석경의 대답에 윤조는 크게 안도했다.

“다행이다.”

고통 없이 욕정으로만 가득한 석경이 윤조로서는 무척이나 달가웠다.

윤조는 석경의 셔츠까지 완전히 벗기고 침대에 눕혔다. 저 역시도 나신이 되어 석경의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새하얀 엉덩이를 양손으로 잡아 벌리자 애액으로 흠뻑 젖은 입구가 뻐끔거렸다. 보고 있는 중에도 물기가 자꾸 생겨서 입구에서 고이다 못해 엉덩이 골을 타고 주륵 흐르기까지 했다.

“하아, 윤조야…….”

뭐든 빨리 달라고 보채며 석경이 허리를 비틀었다. 입술을 핥은 윤조가 손을 뻗어 젖은 입구를 문질렀다. 아직 넣지는 않고 입구를 문지르기만 했는데 촘촘한 주름이 입이라도 벌릴 듯이 요동쳤다. 애액은 숫제 뚝뚝 떨어질 것처럼 흥건했다.

“왜 이렇게 많이 젖었어.”

윤조는 손가락 하나를 넣었다. 손가락이 축축한 내벽 안으로 흡사 빨려 들어가듯 파고들었다. 뭐라도 먹었다는 기쁨 탓인지, 여린 내벽을 침투한 자극 탓인지 석경의 허리가 움찔 튀었다. 내벽 안을 긁어 주듯 손가락을 깔짝거리며 살짝 굽혔다 폈다를 반복하자 석경이 본격적으로 자지러지기 시작했다.

“흐읏!”

“석경아, 아직 하나밖에 안 넣었는데 벌써 그러면 어떡해.”

다리를 더 벌리고 엉덩이를 치켜드는 꼴이 영락없이 더 달라고 조르는 모양새였다. 손가락을 하나 더 넣자 끄응 앓는 소리가 울렸다. 아파서 나오는 신음은 아닌 듯해서 손가락을 세 개까지 늘렸다.

“읏! 흐읏!”

빠르게 피스톤질을 하자 철벅철벅 물소리가 났다. 입구에 하얗게 거품이 일 정도로 제법 격렬하게 안을 괴롭혔는데도 아프다는 소리 없이 잘 받아먹는다. 아니, 아파하기는커녕 내뱉는 신음이 갈수록 야릇해졌다. 꺼떡꺼떡 흔들리는 석경의 성기 끝에 물방울이 맺혀 있었다.

“석경아…….”

“……으응.”

“나 오늘 노팅 할 수도 있겠는데.”

“……응.”

“그것도 잘 받아먹을 수 있겠어?”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석경을 확인한 윤조는 손가락을 빼내고 입구에 기둥을 갖다 댔다. 저도 더는 여유를 차릴 수가 없었다.

“하앗!”

퍽! 단숨에 뿌리 끝까지 꿰뚫었다. 빠질 것처럼 아슬아슬하게 선단까지 빼냈다가 다시 쾅 처박았다. 그렇게 세 번쯤 왕복하자 성기가 서서히 부풀어 오르는 게 느껴졌다. 이렇게 빨리 노팅이 온 적은 처음이었다. 거의 넣자마자였다.

“……석경아. 힘 빼.”

격하게 치받을 때도 잘 견뎌냈던 석경이 급속도로 커지는 아래를 느끼고 하얗게 질렸다. 내벽까지 잔뜩 경직되어 잘못하면 이러다 다칠 것 같았다.

윤조는 일단 추삽질을 멈추고, 뿌리까지 삽입한 상태로 가만히 있었다.

“아, 아파.”

“많이 아파?”

많이 아프냐는 말에는 또 아니라고 고개를 젓는 석경이 귀여워서 윤조는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움직여도 돼?”

“응, 천천히.”

“그래, 천천히.”

처음에는 천천히 하다가 크기에 적응이 되면 어느 정도 속도를 올려도 석경이 잘 버텨 준다는 사실을 윤조는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윤조는 천천히 허리를 움직였다. 느긋하고 나른한 움직임에 석경도 점차 긴장을 풀었다. 경직됐던 내벽이 풀어져 다시 쫄깃쫄깃 빨판처럼 윤조의 성기를 감쌌다. 그러고 보니 석경의 안이 여느 때보다 유독 뜨거웠다.

“석경아, 기분이 어때.”

“아직 아파.”

“아니, 그거 말고.”

“……응?”

“히트사이클 맞지?”

윤조는 계속 느리게 허리를 움직였다. 석경이 빠른 속도의 삽입을 받아들일 준비가 될 때까지는 서두르지 않을 작정이었다.

“흐읏, 그런 것 같아.”

비록 속도는 느렸지만 깊숙이 쳐올릴 때 묵직하게 힘을 실었다. 석경은 그런 행위에서도 자극을 많이 느끼는 편이었다. 안쪽 깊은 곳까지 박고 뭉근하게 돌리자 석경이 목을 뒤로 젖히며 신음을 길게 내뱉었다. 그 모습에 살짝 이성을 잃은 윤조의 움직임이 조금 더 빨라졌다. 그러나 윤조는 제 움직임이 빨라졌다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했다.

“그래서, 기분이 어떤데.”

“흐읏! 처, 천천히!”

석경이 다급한 손길로 윤조의 어깨를 붙잡았다. 윤조는 그제야 빨라진 움직임을 알아차리고 속도를 줄였다. 다시 느릿하지만 묵직하게 석경의 안을 채우며 윤조는 조급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았다.

각도를 약간 틀어 석경이 느끼는 부분을 집요하게 문지르자 석경이 신음조차 흘리지 못하고 입을 벌린 채 꿈틀거렸다.

“석경아, 기분 좋아?”

“흐……. 으응.”

“평소보다 더?”

“으응.”

“그렇구나.”

윤조는 약간 속도를 높였다. 굳이 대답을 듣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석경의 분위기는 평소와 많이 달랐고 반응도 훨씬 민감했다.

평소 때의 석경이 ‘권윤조’를 원하는 ‘이석경’이었다면, 지금은 ‘알파’를 원하는 ‘오메가’에 가까웠다. 그런 석경의 분위기를 감지해서인지 윤조 역시도 기분이 묘하게 달아올랐다. 제가 아니면 안 되는 나만의 오메가 이석경. 소유욕이 들끓었다.

더 애타게 매달리는 모습을 구경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던 게 아쉬웠다. 저 역시도 여유가 하나도 없었으니까. 시간을 다시 되돌린다고 해도 자신은 역시 그런 여유 따위는 부리지 못할 터였다. 잠든 제 것을 핥는 이석경을 알아챈 순간 머릿속에서 뭐가 하나 끊어져 버렸는데 참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흐응…….”

진득하게 허리를 쳐올리자 석경이 평소보다 훨씬 끈적끈적한 신음을 뱉었다. 어느새 땀으로 젖은 앞머리가 이마에 달라붙어서 관능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이건 정말이지 속도가, 빨라질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조금 빠르게 움직이자 새초롬한 석경의 눈매가 빨갛게 달아오르는 게 보였다. 하지만 아프다거나 힘들다는 말은 하지 않고 끙끙 앓기만 했다.

“석경아.”

“으응, 응.”

석경의 앓는 신음이 쾌감에 절여진 것처럼 눅눅했다. 아득하게 쾌감을 좇는 눈동자에는 고통에 대한 긴장이 보이지 않았다. 윤조는 안심하고 속도를 더 높였다.

퍽! 퍽! 퍽! 제법 빠르게 드나드는데도 석경의 아래는 기쁘게 윤조의 것을 받아 물었다. 노팅을 한 크기에 적응해서 내벽이 녹진하게 풀어진 모양이었다.

“사랑해.”

“흐응, 하으읏……!”

“사랑해, 석경아.”

“으읏! 하으, 유, 윤조야.”

“응, 석경아.”

“나, 나도, 하아읏!”

“응.”

“사랑해.”

석경의 손이 윤조의 팔꿈치를 더듬어 어깨를 타고 목까지 올라왔다. 석경은 윤조의 목에 간절하고 애타게 매달려 윤조가 움직이는 대로 흔들렸다. 놓치면 큰일이라도 날 것처럼. 이렇게 자신을 원하는 사랑스러운 오메가에게 윤조가 지금 해 줄 수 있는 건, 원 없이 자신을 채워 넣는 거였다.

“우리 석경이…….”

“읏! 아읏! 읏!”

“잘 받아먹네.”

제 것을 배불리 먹게 해주는 거였다. 물론 윤조는 석경을 배부르게 해 줄 자신이 있었다.

속도를 더 높여 퍽퍽 내벽을 짓뭉개자 석경은 이제 매달릴 힘조차도 없는지 침대에 늘어진 채 자지러지는 신음을 내지르며 맥없이 흔들렸다.

“아앗……! 하으……! 으……읏!”

절정이 다가오는지 등줄기가 짜릿짜릿했다. 윤조는 더 강하고 빠르게 석경을 몰아붙였다. 성기가 터질 것처럼 팽팽해지더니 경련과 함께 탁한 물줄기가 쏟아졌다. 아주 오래도록. 석경이 충분히 배부를 수 있도록.

“하아…….”

“하앗!”

석경 역시도 거의 동시에 사정을 했다. 평소보다 몇 배나 많은 양이었지만 석경 본인은 정신이 없어서 모르는 듯했다.

파르르 떨리는 속눈썹과, 가쁜 숨을 내뱉느라 헤벌어진 입술, 호흡에 따라 들썩거리는 하얀 어깨를 천천히 눈에 담은 윤조는 성기를 삽입한 채로 석경의 입술을 할짝할짝 핥았다.

“……석경아.”

“으응.”

윤조는 입술을 내려 석경의 섬세한 턱선을 잘게 깨물었다. 그리고 조금씩 입술을 옮겨 귓불을 입에 머금었다. 혀를 내밀어 예민한 귓바퀴를 훑자 잦아들었던 석경의 숨결이 다시 거칠어졌다. 공들여 후희를 하자 석경의 아랫도리가 다시 일어서기 시작했다. 몸은 기운 없이 축 늘어져 있는 주제에 성욕은 살아 있는 게 기특했다.

여전히 석경의 안에 성기를 넣고 있었던 윤조가 허리를 움직이자 사정의 여운이 가시지 않았는지 석경이 몸을 바르르 떨었다. 윤조는 손을 내려 석경의 허리춤을 쓰다듬었다. 이어서 골반을 감싸 쥐자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견한 듯 석경이 눈동자가 윤조에게 향했다.

“또 하려고?”

묻는 얼굴에 작은 경악이 어려 있었다.

“응.”

“이렇게 바로?”

“석경이 네가, 이렇게 또 바로 세웠잖아.”

윤조가 미소 지으며 빳빳하게 서 있는 석경의 성기를 눈짓으로 가리켰다.

“이건…….”

석경은 할 말이 궁했는지 말을 잇지 않고 두 뺨을 붉혔다.

“이건 뭐?”

석경은 말없이 입술을 감쳐물더니 이내 결심한 듯 말했다.

“살살 할 거지?”

“노력할게.”

“거짓말.”

“응, 거짓말이야.”

석경이 어이가 없다는 듯 픽 웃음을 터뜨리더니, 윤조의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려는 듯 몸을 이리저리 뒤척였다. 그럴수록 윤조는 석경의 골반을 양손으로 단단히 붙잡아 고정했다.

“석경아, 어디 가려고?”

“어디 안 가.”

“그럼?”

“또 할 거면, 안에 있는 거 빼고 하자.”

석경의 요구에 윤조는 곰곰이 생각하는 시늉을 하다가 대답했다.

“싫은데.”

“야, 권윤조.”

“다섯 번만 더 하고 빼 줄게.”

“다섯 번을 어떻게 더 해.”

“어떻게 더 하는지는 직접 보여 줄게.”

윤조는 석경의 골반을 꽉 잡아 쥐고 성기를 거의 끝까지 빼냈다가 깊숙이 쑤셔 넣었다.

“하읏!”

석경이 이리저리 몸을 비틀었지만 미약하기 짝이 없는 몸부림이었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굴 것 같은 눈동자가 윤조를 원망스럽게 쏘아 봤지만, 그래봐야 소용없었다.

빠르게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찰박찰박 물소리가 들렸다. 이 소리를 석경이 얼마나 민망해 하는지 알기 때문에, 윤조는 더더욱 짓궂어질 수밖에 없었다. 안에 있는 정액을 빼고 하자는 요구를 묵살하는 것도 당연했다.

“석경아, 싫어?”

석경이 끙끙거리면서 너무 수치스러워 하니까, 윤조는 마치 자신이 석경을 강제로 범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니, 으읏, 안 싫어.”

“…….”

“좋아. 윤조 네가 하는 건 다 좋아.”

그 순간 윤조의 머릿속이 새카맣게 정전됐다. 아마도 그랬던 것 같다. 솔직히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이석경을 절대로 가만두지 말아야겠다는 어긋난 욕망만이 윤조를 지배하고 있을 뿐이었다.

석경은 윤조의 밑에서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고, 목이 쉬도록 신음을 내질렀다. 다리에 힘이 풀려 한 걸음도 내걷기 힘들 정도로 오랜 시간 혹사당했다. 욕실에 갈 때도 윤조의 품에 안겨서 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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