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김정우가 아무도 앉지 못하게 하겠다고 말한 그 자리에는 권윤조가 앉아 있었다. 권윤조는 짐짓 피곤한 얼굴로 김정우를 상대하고 있었다. 석경은 권윤조가 말한 ‘피곤한 새끼’가 다름 아닌 김정우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저를 위해 김정우를 대신 상대해 주고 있다는 것도 짐작할 수 있었다.
석경을 발견한 김정우가 이리 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는 옆에 앉아 있던 2학년 선배를 향해 무슨 말인가를 했다. 석경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석경을 한 번 쳐다보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2학년의 모습을 보니 자리를 비켜달라고 말한 것 같았다. 피곤했다. 왜 저렇게까지 자신을 곁에 두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여기 와서 앉아.”
석경은 하는 수 없이 김정우가 마련한 자리에 가서 앉았다. 권윤조의 찌를 듯한 시선은 모른 척했다. 일일이 아는 척하는 순간 알아야 할 일들이 산더미였다.
권윤조가 왜 저에게 키스를 했는지, 권윤조가 왜 저에게 화를 내는지, 화를 내면서도 왜 저를 놓지 않는지. 석경은 제 결심이 단단해지기 전까지는 의문들을 내버려 두기로 했다.
김정우는 그새 많이 취해 있었다. 눈 주위가 붉었고 잔을 채우는 손길이 투박하고 거칠었다.
“입술이 부었네?”
석경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던 김정우가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듯 큰소리로 말했다. 이목이 집중됐다.
석경은 저도 모르게 권윤조를 바라봤고 제 미련한 행동을 곧바로 후회했다. 순간적으로 입술을 손으로 가리지 않은 것은 그나마 잘한 일이었다.
“그런가요.”
애써 대수롭지 않게 대꾸한 석경은 표정을 가다듬고 술잔을 입술에 가져다 댔다. 잔을 비우는 내내 김정우의 끈질긴 시선이 따라왔다.
“키스라도 하고 왔어?”
“……아뇨.”
“아니야?”
“네.”
흐음. 김정우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콧소리를 냈다.
“근데 그거 알아?”
“네?”
“너 오기 전에 이 친구한테도 내가 같은 질문한 거.”
김정우가 눈짓으로 맞은편에 앉은 권윤조를 가리켰다. 큭큭.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터졌다.
권윤조의 무표정에서는 어떤 감정도 읽어내기가 어려웠다. 석경은 태연하려고 노력했고 권윤조는 딱히 노력하는 것 같지 않는데도 태연해 보였다.
김정우는 석경을 취하게 할 작정인지 계속해서 술을 먹였다. 석경이 잔을 비울 때마다 어느 정도 취했는지 가늠하는 그의 눈빛은 헛웃음이 나올 만큼 노골적이었다. 취하게 해서 어쩌려고? 아무것도 어쩌지 못하게 하려면 취하지 않는 수밖에 없었다. 석경은 흐릿해지려는 정신을 다잡았다.
“정우 형. 석경이가 형한테 뭐 죄지은 거라도 있어요?”
보다 못한 선배 하나가 끼어들었다. 김정우는 묘한 표정을 짓다가 비죽 웃었다.
“죄? 무슨 말이야?”
“꼭 벌주 먹이듯이 하잖아요.”
“아, 그러네. 죄와 벌. 죄가 있으면 벌을 받아야지.”
“야, 석경아. 뭔지 모르지만 형한테 무조건 잘못했다고 해.”
김정우는 석경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물었다.
“이석경, 네 죄가 뭔지 알아?”
석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서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김정우의 얼굴이 불쑥 가까워졌다. 물러나려 하자 어깨를 붙들고 석경의 귓가에 작게 속삭였다. ‘너 오메가지?’ 마치 석경이 지은 죄를 일깨워 주는 말투였다.
“……아닌데요.”
일단 아니라고 부정하면서도 멍들고 지친 석경의 마음은 이미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얘는 자기 죄를 인정을 안 하려고 해. 숨기려고 해.”
김정우가 과장된 제스처로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석경아. 너 선배한테 도대체 무슨 죄를 지은 거냐.”
“죄지은 거 없어요.”
“거봐, 인정을 안 하잖아.”
“…….”
“근데 우리 동아리에는 오메가 없냐?”
김정우가 자신을 공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석경은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변명조차도.
“없을걸요? 오메가가 어디 흔한가요. 전 여태 한 번도 못 봤어요.”
“봤어도 모르고 지나쳤겠지.”
“그럴 수도 있겠네요.”
“나는 오메가들이 참 불쌍해. 너희 베타들은 모르지. 걔들이 얼마나 불쌍한지. 먹이사슬 제일 밑바닥에서 어떻게든 살아 보겠다고 꾸역꾸역 정체를 숨기고. 불쌍해, 참 불쌍하다고. 근데 불쌍한 것도 죄가 될 수가 있거든. 불쌍한 걸 굳이 미화할 필요가 있어?”
김정우는 술에 취한 듯, 혐오감에 취한 듯, 내키는 대로 오메가를 마음껏 깔아뭉갤 수 있는 스스로의 위치에 대해 황홀경에 취한 듯 궤변을 지껄여댔다.
“선배, 왜 그래요. 불쌍한 게 어떻게 죄가 돼요.”
“벌레 같은 것들이야. 그래, 벌레. 사람한테 밟혀도 어쩔 수 없는 벌레.”
“좀 심하잖아요.”
이쯤 되니 선배도 뭔가를 눈치채고 파랗게 질린 얼굴로 석경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석경은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벌레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 껍질이 단단한 벌레, 물렁한 벌레. 물렁하면 불쌍하기라도 하지. 꼴값을 한답시고 단단한 것들은 하여간, 주제도 모르고. 근데 단단해 봐야 어차피 벌레야. 밟히면 별수 없어.”
정말 밟혀도 별수 없는 것일까. 별수 없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석경의 귀에 김정우가 작게 속삭였다. ‘너, 오메가 냄새 나.’ 석경은 고개를 들고 김정우를 노려봤다. ‘비밀 지켜 줄까? 그 대신 대가가 필요한데.’ 다시 작게 속삭여 오는 말이, 저를 훑어보는 벌게진 시선이 역겨웠다.
주먹을 날릴까. 어차피 두 번 다시 볼 일도 없는데. 함부로 지껄인 말에 대한 응징을 가하고 싶었다. 그러나 그것은 기분뿐이었다.
그때 누군가 석경의 팔을 잡아당겼다. 시선을 들자 권윤조가 옆에 서 있었다.
“방에 들어가.”
“…….”
“얼른.”
석경은 몹시 지쳤다. 어쩌면 김정우에게 주먹을 날릴 힘조차 없을 지도 몰랐다.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정우는 석경을 붙잡지 않았다. 김정우가 권윤조를 쉽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석경은 눈치챘다. 한참 어린 후배지만 감히 함부로 할 수 없는 거다. 저에게는 주저 없이 함부로 굴면서. 그건, 자신이 죄를 지었기 때문일까. 밟혀도 별수 없는 벌레라서?
방에 들어온 석경은 억제제를 먹었다. 아까 산에서 내려왔을 때 이미 먹었지만 또 먹었다. 냄새가 난다고 했으니까.
휴대폰을 확인했다. 일부러 알림을 꺼놓은 남자의 메시지가 무겁게 쌓여있었다. 석경은 메시지들을 천천히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답장을 보냈다.
[그쪽이랑 각인 안 합니다]
마침내 결심했다. 남자와 각인하지 않기로. 벌레 같은 구차한 삶이나마 억지로 이어 나가려던 의지가 말라비틀어지면서 휑한 바닥을 드러냈다. 계속 죄를 짓고 사는 것도, 참으로 못할 짓이었다.
습기가 밴 심호흡을 내쉬면서 인내를 완전히 놓아 버린 석경은 메시지를 하나 더 보냈다.
[그리고 너는 씨발새끼야]
억제제 한 알을 더 먹었다. 저한테서 오메가 냄새가 난다고 했으니까. 두 알, 세 알. 멍한 정신으로 삼킨 억제제가 어느덧 스무 알이 넘어가고 있었지만 석경은 신경 쓰지 않았다.
갑자기 바깥이 소란스러워졌다. ‘권윤조’의 이름을 외치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고, 발악 같은 처참한 비명, 무언가 부딪히고 날카롭게 깨지는 소리도 들렸다.
발작처럼 급격하게 나빠지는 몸 상태를 느꼈다. 온몸이 덜덜 떨렸다. 두려움 탓인지 분노 탓인지 알 수 없었다.
호흡이 가빠지고 식은땀이 흘렀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일어났다. 발걸음이 헛나갔다. 바닥으로 쏟아져 내릴 듯 온몸이 경련했다. 석경은 두 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쓰러졌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꽉 막힌 숨통을 트이게 하려고 무작정 목구멍에 손가락을 쑤셨다. 삼킨 지 얼마 되지 않은 억제제가 캡슐 채로 쏟아져 나왔다. 식은땀이 비 오듯 흘러내리고 손발이 굳어 갔다.
방문이 열리고 구원처럼 권윤조가 나타났다. 묽은 토사물에 섞인 수십 개의 빨간 캡슐을 보고 얼빠진 얼굴로 서 있던 권윤조가 석경을 덮칠 듯이 달려들었다.
“너, 왜…….”
“…….”
“왜 이러고 있어!”
“…….”
“왜!”
창백해진 권윤조가 석경을 흔들었다. 여기서 더 허물어질 수도 없는데 석경은 또 한 차례 까마득한 추락을 느꼈다. 그리고 시야가 까맣게 변하면서 의식이 끊겼다.
* * *
눈을 떴을 때 석경은 낯선 곳에 누워 있었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권윤조가 보였다.
“여기, 어디야?”
“펜션.”
“…….”
“그러니까, 펜션 근처에 있는 펜션이야.”
“…….”
“응급실에 갔었는데, 억제제 토했으면 별일 없을 거라고 해서.”
“…….”
“서울에…… 집에 데려다주고 싶었는데, 내가 술을 많이 마셔서. 그래서 운전을 못 해서…….”
멍한 기운 속에서 오로지 권윤조의 목소리만이 선명했다. 어쩐지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변명하는 것처럼 어미를 흐리던 그는 목이 타는 듯 입술을 핥았다.
석경은 권윤조를 가만히 바라봤다. 앞머리를 쓸어 넘기는 권윤조의 손 마디마디가 붉게 긁혀 있었다. 그 상처들을 세심하게 눈여겨보다가 다시 얼굴을 보았다. 다행히 그의 얼굴에는 상처가 없었다. 김정우는 흠씬 얻어맞으면서도 권윤조에게 손끝 하나 대지 못했으리라.
“미안해.”
석경의 죄를 추궁하던 김정우의 벌건 눈동자가 떠올랐다. 죄를 숨겨 주겠다며 대가를 요구하던 징그러운 눈길도.
석경은 매 순간 죄를 짓느라 피곤하고 지치는 기분이었다.
“뭐가?”
“나 때문에 그 선배랑 싸운 거잖아.”
깊은 새벽처럼 가라앉아 있던 권윤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너는 진짜…….”
“…….”
“누가 그런 말 듣고 싶대? 왜 자꾸 사람 속을 뒤집어?”
“미안해.”
“싸운 거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
“…….”
“싸운 게 아니라 밟아 준 거야. 그 새끼는 그냥 밟힌 거고.”
권윤조는 굳은 표정으로 일어나 냉장고 쪽으로 걸어가 생수를 꺼내 왔다. 고맙다는 말을 하려고 했는데 그만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물 마셔.”
“고마워.”
그제야 심한 갈증이 몰려왔다. 뚜껑까지 손수 열어준 생수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젖은 입술을 손등으로 닦아내자 권윤조가 손을 뻗어 물병을 도로 가져가 남은 물을 마셨다.
석경은 한결 맑아진 정신으로 펜션 내부를 둘러봤다. 구석에 있는 문이 욕실 같았다. 침대를 벗어나기 위해 이불을 걷었다. 권윤조의 의아한 눈길이 따라왔다.
“저기 나, 샤워하고 싶어.”
“어, 욕실 저쪽이야.”
바닥에 두 발을 내딛고 일어나려고 힘을 주자마자 다리가 풀썩 꺾여 도로 침대에 걸터앉았다. 놀란 권윤조가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가 침대에 무사히 안착한 석경을 보고 어정쩡하게 손을 거두었다.
석경은 권윤조를 올려다보았다. 자신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뭐든 다 들어줄 듯한 그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콧날이 시큰해졌다. 석경은 눈썹을 찌푸리며 어색하게 웃었다.
“발목 다친 거 깜빡했어.”
“업어 줄까?”
“괜찮아.”
“걸을 수 있어?”
“응.”
당연하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석경은 다친 발목을 신경 쓰며 조심스럽게 일어나 욕실로 들어갔다.
알맞게 따뜻해진 물줄기를 맞으며 몸을 씻었다. 욕실에 비치된 일회용 칫솔로 양치까지 하고 수건으로 몸의 물기를 닦아내고 있을 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기막힌 타이밍이었다. 아마도 끊긴 물소리를 알아차리고 노크를 한 모양이었다.
“다 씻었어?”
“어, 방금.”
“갈아입을 옷, 문 앞에 둘게.”
옷을 갈아입고 나온 석경은 어색한 얼굴로 침대에 앉았다. 권윤조가 덜 마른 석경의 머리카락을 보더니 욕실에서 드라이기를 가져와 머리를 말려 주기 시작했다.
“내가 해도 되는데.”
“해 줄게.”
고집스러운 권윤조의 표정에 석경의 고집이 쏙 들어갔다. 가만히 머리를 맡긴 채 창밖의 새벽어둠을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방값 이틀 치 계산했어. 내일 늦게까지 푹 자도 돼.”
권윤조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헤집는 손길에 기분이 이상해졌다. 이윽고 드라이기의 요란한 소음이 멎고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몇 시나 되었을까. 권윤조는 지금까지 안 자고 있었던 걸까. 석경은 휴대폰을 찾았다.
“뭐 찾아?”
“……폰.”
권윤조가 테이블 위에 있던 휴대폰을 석경에게 내밀었다. 손을 뻗어 휴대폰을 잡았다. 그런데 권윤조가 휴대폰을 놓지 않고 계속 붙잡고 있었다. 의아한 눈길로 바라보자 그가 입을 열었다.
“이석경.”
권윤조의 눈동자 안에서 무언가가 맹렬하게 끓고 있었다. 어쩐지 피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석경은 그의 흥분을 감지했다.
“어?”
“억제제를 왜 그렇게 많이 먹었어?”
“…….”
“죽을 수도 있다는 거 너도 알잖아.”
“…….”
“죽으려고 그런 거야?”
내가 죽으려고 했던 건가. 그렇지 않다. 그저 홀린 듯이 시커먼 아가리를 쩍 벌리고 있는 암흑 속을 향해 나아갔을 뿐이었다. 아무도 저를 발견할 수 없는 암흑 속에 자신을 숨기고,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을 뿐이었다.
“아니야.”
“그럼 왜…….”
“오메가 냄새…… 나는 것 같아서. 냄새 없애려고.”
“그 이유가 다야?”
“……어.”
한숨 소리가 석경을 무겁게 짓눌렀다. 석경의 휴대폰을 도로 가져간 권윤조가 액정을 몇 번 터치하더니 휴대폰을 건넸다.
[매칭상대 : 너 나 무시하냐 왜 무시해 오메가 주제에]
[매칭상대 : 내가 니년 먹고 싶다는 신호를 얼마나 많이 보냈는데]
[매칭상대 : 남자들이랑 재미 좋냐? 걸레같은년]
[매칭상대 : 나도 너 맛 좀 보자]
[매칭상대 : 너 오늘 남자들 몇 명이나 받았냐? 씨발 허벌창 된 거 아니지? 별로 조이는 맛도 없겠네]
석경은 화면에 떠오른 메시지 창을 보고 다시 고개를 들었다. 말없이 올려다보자 권윤조의 얼굴에 선득한 분노가 차 있었다. 그의 분노가 석경을 넋 놓게 했다.
석경 쪽에서 충분한 빌미를 제공했을 거라고, 그러니 이런 말들을 들어도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적 없다고 말하면 믿어 줄까. 내가 그런 게 아니라는 말이 어렵게 기어 올라왔다가 목구멍에서 턱 막혔다.
“……감히 누구한테.”
“…….”
‘누구’가 자신을 지칭한다는 사실은 조금 뒤늦게 깨달았다. 권윤조는 남자가 보낸 메시지에, 수많은 모욕과 폭언들에 분노하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석경이 아닌 남자에게 분노하고 있었다.
“이딴 새끼랑 각인하려고 했어?”
석경은 고개를 떨구었다. 바지를 움켜쥔 손등 위로 물방울이 떨어졌다. 울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는데 영문을 알 수 없는 눈물이 느닷없이 터져 나왔다.
흐느끼는 소리도 없이 눈물만 뚝뚝 떨구는 석경을 권윤조는 신기하게도 바로 알아챘다.
“석경아.”
“…….”
권윤조는 석경의 젖은 두 뺨을 감싸고 정면을 향하게 했다. 석경은 아무런 저항 없이 권윤조가 하는 대로 내버려 뒀다.
“내 말 잘 들어.”
“…….”
“김정우 그 자식, 마약 했어.”
“뭐?”
“며칠 내로 클럽에서 마약 하다가 현행범으로 붙잡혀서 조사받고 수감될 거야.”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권윤조는 석경을 감싸고 있던 손을 거두었다. 눈동자에 서늘한 기운이 스쳤다.
“벌을 주려면 죄가 있어야 하니까. 죄는 아무렇게나 갖다 붙이면 그만이야. 김정우 그 자식이 너한테 말했던 것처럼.”
“…….”
“마약류 유통 및 투약. 그게 김정우가 저지른 죄야. 초범 참작돼서 형은 얼마 못 살 텐데 상관없어. 나오면 또 새로운 죄를 만들어서 집어넣을 거니까. 사회에서 그 어떤 하찮은 힘조차 행사하지 못하게, 철저하게 밑바닥 인생이 될 때까지.”
담담한 목소리로 말한 권윤조가 이번에는 석경의 휴대폰을 손에 들었다. 그의 분노 띤 눈동자에 윤기가 돌았다. 그러나 석경에게는 조금도 위협이 되지 않는 든든한 분노였다.
“그리고 이 새끼한테도 죄를 만들어 주려고.”
“흐으……윽.”
석경은 주먹을 그러쥐었다. 목울대가 요동쳤다. 소리 없이 눈물만 뚝뚝 흘리던 석경의 입 밖으로 울음이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석경아, 어떤 죄가 좋을까? 응? 말해봐. 네가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만들어 줄게.”
“…….”
“너를 위협하는 알파들은 내가 다 짓밟아 줄게.”
권윤조는 석경의 힘으로는 절대 할 수 없는 응징을 대신해 주려 하고 있었다. 그러지 말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진심도 아니니까. 머리가 식고 나면 아마 권윤조를 말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기 싫었다. 현재 석경의 진심은 남자의 좆을 으깨 버리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의 인생이 송두리째 으깨진다 해도 상관없었다.
“흐윽……. 흐으으윽. 그 새끼는 씨발새끼야.”
“응, 맞아. 씨발새끼야. 울지 마. 내가 대신 혼내 줄게.”
달래는 말투에 울음소리가 드세게 목구멍을 타고 넘어왔다. 눈물이 거침없이 흘러내렸다. 왜 우는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복받친 격정과 서러움이 터져 나왔을 수도 있고, 궁하기 짝이 없는 사소한 이유 때문일 수도 있었다. 그런 시시콜콜한 이유를 파헤치고 있을 겨를도 없이, 어쨌든 석경은 울고 있었다.
이렇게 소리 내어 울어 본 적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아버지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사내자식이……’에 담긴 수많은 의미를 읽어내고부터 눈물은 금기나 마찬가지였다.
석경은 눈과 코는 물론이고 얼굴 전체가 빨개지도록 엉망으로 울었다. 거리낌 없이 우는 동안 기이하게도 자신을 결박하고 있는 무언가가 한 꺼풀씩 벗겨지는 느낌이 들었다.
겨우 울음이, 아니 통곡이 잦아들었을 때 석경은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권윤조를 힐끔 올려다봤다. 권윤조는 터무니없이 다정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 울었어?”
“……어.”
석경은 잔울음마저 전부 거둔 뒤에 작게 대답했다.
“이마 만져 봐도 돼?”
“내 이마?”
“열 내렸는지 보려고.”
“나 열났었어?”
권윤조는 대답 없이 커다란 손바닥을 이마에 갖다 댔다. 없던 열도 생길 정도로 순식간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얼굴이 빨간데. 열도 아직 있고.”
“울어서 그래.”
“알아.”
“뭐야. 놀리는 거야?”
“아니. 그냥 그 핑계로 만지고 싶어서.”
권윤조는 제가 지금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모를 것이다. 모르니까 이런 얼굴을 하는 것이다.
“권윤조, 너는 왜 그런 얼굴로 나를 봐?”
“…….”
모르니까 저를 만지고 싶다는 말을 함부로 하는 것이다.
“왜 나한테 그렇게 말해?”
“……그럼 어떻게 말해.”
가만히 바라보자 권윤조의 표정이 드러나게 굳었다. 화가 난 것처럼 보였다. 관통하는 듯한 깊은 시선, 권윤조의 얼굴에서 종종 발견했던 낯설지 않은 그 표정을 석경은 이제야 조금은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건 허기진 맹수의 얼굴이었다.
양 볼을 붙잡히고 입술이 포개졌다. 윗입술과 아랫입술을 차례대로 깨물리고 동시에 빨아 먹히기도 했다. 입속을 가르고 들어온 혀가 다급하게 석경의 것을 찾아냈다. 서로의 혀가 뜨겁게 엉켰다.
좋아서, 권윤조가 너무 좋아서 발끝까지 저릿해졌다. 세상에는 아무리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 없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석경은 깨달았다.
“……먹고 싶다고 말할까.”
한참 만에 입술을 뗀 권윤조가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차라리 그에게 어울리는 말이었다. 그런 허기진 얼굴을 할 바에는.
석경은 저를 향한 권윤조의 탐욕을 여실히 알아차렸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의 마음을 확신할 수 없었고, 촌스럽게도 탐욕만이 아닌 순정을 그의 눈에서 찾고 싶었으며, 여전히 혼란스러웠고, 따라서 겁이 났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석경은 지금 이 순간, 혼란에 종지부를 찍을 작정이었다.
“권윤조.”
석경은 저항할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응?”
“이런 말 해서 진짜 미안한데…….”
순간 권윤조는 눈에 띄게 겁먹은 얼굴을 했다. 미안한 얘기를 꺼낼 사람은 정작 따로 있는데 자신이 크게 잘못을 저지른 듯한 얼굴이었다.
“안 들으면 안 돼?”
“왜?”
“너 전에도 그런 식으로 미안하다고 말문 열어놓고 나한테 그만하자고 했잖아.”
“…….”
“석경아, 나 너랑 아무것도 그만하기 싫어.”
“윤조야.”
“…….”
다정하게 이름을 부르자 버림이라도 받은 듯 깊게 상처받은 눈동자에 놀라움이 번졌다. 미묘하게 달라진 공기의 파동이 석경의 심장까지 전해졌다. 윤조야. 그가 들은 것은 이름이겠지만, 석경이 전하고자 한 말은 고백이었다. 하지만 겨우 그 정도로 권윤조가 제 고백을 알아들을 수는 없으므로 한 번 더 용기를 냈다.
“윤조야. 내가 너를, 좋아해.”
“……뭐?”
“좋아해, 윤조야.”
권윤조는 석경이 그만하자고 말했을 때보다 훨씬 더 충격받은 얼굴을 했다.
“석경아, 너, 지금 뭐라고…….”
“…….”
“……농담이지?”
석경은 강한 힘에 떠밀려 침대에 눕혀졌다. 몸을 타고 올라온 권윤조가 석경의 양쪽 어깨를 틀어쥐고 대답을 재촉했다.
왜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걸까. 내가 좋아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몰랐던 것처럼, 왜? 설마 고백까지 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걸까. 왜 이렇게 화가 난 걸까. 농담이었다고 하면 분노를 거두어줄까? 수많은 의문들이 한꺼번에 머리를 어지럽혔다.
‘농담이지? 대답해, 이석경.’ 권윤조는 그렇게 물으면서도 농담이라고 대답하면 당장이라도 목을 물어뜯을 것처럼 사나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농담 아니야.”
“그럼 다시 말해 봐.”
“좋아해.”
“내 이름도 넣어서 다시.”
“좋아해, 윤조야.”
권윤조의 얼굴이 환해졌다. 환희에 젖은 그의 눈빛이 저만의 착각이 아니기를 석경은 바랐다.
“석경아, 그럼 나 이제 안 참아도 돼? 그만 안 해도 돼?”
“……어?”
“나도 너 좋아한다고 말해도 돼?”
이번에는 석경이 놀랄 차례였다. 어안이 벙벙하여 눈을 크게 뜨고 올려다보자 흥분으로 가득 찬 얼굴이 보였다.
“어? 어.”
“좋아해, 석경아.”
“어…… 고마워.”
석경은 너무 놀란 나머지 엉뚱한 소리나 해 댔다.
“키스해도 돼?”
“……읍!”
권윤조는 대답을 듣지도 않고 석경의 턱을 쥐고 입을 맞췄다. 놀란 숨이 성급하게 겹쳐진 입술에 먹혀들어갔다. 격렬하게 석경을 몰아붙였던 키스는 석경뿐만 아니라 권윤조의 숨결까지 흩트려 놓았다.
“……석경아, 키스해도 돼?”
한참 만에 입술을 떨어뜨린 권윤조가 어색하게 눈길을 피하는 석경과 기어코 눈을 맞추며 물었다.
“이미 했잖아.”
“또 해도 돼?”
“응.”
“…….”
“해도 돼.”
다시 권윤조의 입술이 다가왔다. 조금 전보다 덜 거칠고 덜 성급했지만 훨씬 더 농밀하고 짜릿한 키스였다.
* * *
그 농밀하고 짜릿한 키스는 한 시간 넘게 지속됐다. 아무리 해도 갈증이 채워지지 않고 감질났다. 춥춥거리는 물기 어린 마찰음과 애끓는 가느다란 신음이 방안을 메웠다. 숨을 고르기 위해 가끔씩 입술이 떨어졌지만 그 잠깐을 못 참고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도로 입술을 겹치곤 했다.
“석경아, 너무 좋다.”
마지막으로 석경의 아랫입술을 한 번 빨았다가 놓은 권윤조가 약간 쉰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맞닿은 아랫도리가 신경 쓰였다.
“……응.”
권윤조의 눈동자가 키스 이상의 것을 바라는 모양으로 짙어졌다. 석경의 몸이 저절로 떨렸다. 떨림을 진정시키려고 심호흡을 했다.
“석경아, 추워?”
“아니.”
“그럼 왜 떨어?”
“몰라.”
“안 추우면, 옷 벗겨도 돼?”
“너부터.”
권윤조는 웃으며 셔츠를 훌렁 벗어 던졌다. 그리고 바지를 벗으려던 손을 멈칫하더니 제 행동을 빤히 지켜보고 있는 석경을 바라봤다.
“너무 그렇게 쳐다보면 쑥스러운데.”
석경이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다가 끝내 눈을 감아 버리자 낮은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바지를 벗는 기척이 느껴졌다.
석경은 눈을 감은 채로 제 셔츠를 벗겨 내는 손길 아래서 계속 몸을 떨었다. 바지와 속옷이 한 번에 내려갔다. 전신이 크게 움찔했다.
“석경아, 해도 돼?”
“뭘.”
“…….”
권윤조는 석경의 몸을 열고 싶어서 달아오른 눈빛을 하고는 정작 아무 말도 못했다. 그런 권윤조를 보며 웃던 석경은 시야에 들어온 그의 거대한 성기를 보고 웃음을 뚝 그쳤다. 몸이 얼어붙고 권윤조를 놀리려던 혀가 굳어 버렸다.
석경의 표정이 급변하자 눈길이 닿아 있는 곳에 권윤조의 시선도 따라갔다. 익숙한 자기 것을 낯설게 내려다보는 권윤조의 모습이 묘했다.
“……너무 큰데.”
속엣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응? 뭐라고?”
“…….”
석경이 겁먹은 눈을 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권윤조가 피식 웃었다.
“무서우면 하지 말자.”
권윤조는 의외로 쉽게 포기했다. 여전히 석경을 잡아먹을 듯한 눈을 하고서는 입으로는 포기의 말을 내뱉었다.
“…….”
“지금은.”
덧붙이는 말이 의미심장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올려다보자 권윤조가 웃었다. 입술에 말랑한 것이 닿아 와서 석경은 더 깊게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뭐, 괜찮겠지. 지금은 아니라는데. 뜨거운 혀가 머리를 멍하게 만들었다.
손을 들어 올려 권윤조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움켜쥐었다. 서로의 입술이 더욱 가깝게 밀착되었다. 권윤조의 손이 석경의 목뒤를 부드럽게 감쌌다. 입술을 겹친 채로 목뒤를 감싼 손에 힘을 실어 석경의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마주 보는 자세가 되었다. 목 뒤쪽을 지분거리던 손길이 등줄기를 은근하게 따라 내려가다 엉덩이 골 위쪽을 배회했다.
석경은 멈칫하며 엉켜 있던 혀를 풀었다. 도망치듯 혀를 물리고 고개를 뒤로 빼려 하자 권윤조가 다른 손으로 뒤통수를 고정시켰다.
“으읍, 읍읍!”
발악하듯 웅웅거리자 겨우 입술이 떨어졌다. 젖어서 부푼 권윤조의 입술이 열렸다.
“왜.”
“네가 자꾸 만지니까.”
“만지면 안 돼?”
“되는데 거긴 좀.”
“안 넣을게. 안 넣으려고 너 이렇게 앉혀 놓은 거잖아. 너 누워있으면 나도 모르게 넣을까 봐.”
“너도 모르게 넣는 건 또 뭐야.”
어이가 없어서 웃어 버리자 권윤조도 따라 웃었다. 잠시 풀어졌던 긴장은 석경의 허리를 두 손으로 잡은 권윤조 때문에 다시 팽팽하게 조여졌다.
권윤조는 석경을 번쩍 들어서 제 허벅지 위에 앉혔다.
서로의 물건이 닿을 듯 말 듯 가까이 마주 보는 자세가 되었다. 석경은 젖은 엉덩이가 신경 쓰였다. 권윤조도 분명 알아챘을 것이다. 석경의 뒤가 흠뻑 젖었다는 것을. 목구멍 너머로 침을 꿀꺽 삼키고 떨리는 손으로 권윤조의 물건을 감싸 쥐었다.
“윤조야, 한 발 빼 줄까?”
“석경아. 너 왜 그렇게 야하게 말해.”
“뭐가 어때서. 준영이는 맨날 그렇게 말하던데.”
수줍었던 권윤조의 표정이 빠른 속도로 냉랭해졌다.
“석경아, 내가 너랑 홀딱 벗고 있으면서 김준영 얘기를 들어야겠어? 그리고 김준영이 너한테 왜 그런 야한 말을 하는지 나 지금 전혀 이해를 못 하겠는데.”
“그냥 일상적인 대화야.”
“그러니까 그게 어떻게 일상적인 대화가 되냐고.”
“화났어?”
“화는 안 났는데, 김준영 때려도 돼?”
“그건 안 되는데.”
권윤조가 웃으며 다부진 손으로 석경의 허리를 당겼다.
잔뜩 발기한 두 성기가 이내 맞닿았다. 슬쩍 내려다보자 둘 다 선액을 흘려서 귀두가 번들거렸다. 권윤조의 커다란 손이 두 개의 성기를 한꺼번에 감싸 쥐었다.
두 개의 기둥이 빠르게 비벼지면서 온몸에 열기를 피워 올렸다. 여태 차곡차곡 쌓인 흥분으로 인해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몸에 쾌감이 금세 채워졌다.
저절로 허리가 들썩였다. 끈적한 물을 흘리는 뒷구멍이 움찔거리며 석경의 욕구를 자극했다. 달래 줄 곳이 앞에만 있는 게 아니라 뒤에도 있다고 물을 질질 싸대며 존재를 드러냈다. 석경은 입술을 꾹 깨물고 간신히 이성을 붙잡았지만 점차 그럴 힘마저도 사라졌다. 절정이 빠른 속도로 달려왔다.
“읏, 하아, 너무 빠, 빨라.”
“하아, 괜찮아.”
“뭐가, 괜찮, 으읏, 그만!”
탁한 정액이 팍 튀어 올랐다. 권윤조가 피스톤질을 멈추고 정액이 튄 석경의 가슴을 문질렀다. 단단해진 젖꼭지에 권윤조의 손이 스쳤다. 움찔대자 미소를 지으며 젖꼭지를 비틀고 굴렸다.
솟은 유두에 권윤조의 입술이 닿았다. 혀로 부드럽게 깔짝대다가 강하게 빨아 당겼다.
“읏! 야아!”
강하게 빨리던 힘이 조금 느슨해지나 싶더니 이번에는 이를 세워서 잘근잘근 깨물기 시작했다. 민망해져서 눈을 꽉 감으니 감각만 적나라해졌다. 전기가 찌르르 혈관을 타고 흘러 아랫배까지 도달했다.
한 차례의 사정으로 늘어졌던 성기가 뻐근해지며 스멀스멀 일어났다. 몸의 변화를 귀신같이 눈치챈 권윤조가 다시 두 개의 성기를 맞잡고 흔들었다. 사정한 지 얼마 안 된 터라 자극이 날카롭게 전해졌다. 그럼에도 착실하게 쾌감이 리셋됐다. 석경은 제 젖꼭지가 성감대인 줄 오늘 처음 알았다.
“이번에는 같이 싸자. 혼자 가지 말고.”
석경의 젖꼭지를 집요하게 괴롭히던 입술이 얄밉게 말했다. 혼자만 먼저 사정한 석경은 같은 남자로서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네 손으로 해서 그래. 내 손으로 했으면 안 그랬을 거야.”
권윤조는 말없이 가만히 웃기만 했다. 무슨 말인지 충분히 이해했다는 눈빛이라 괜히 쪽팔렸다. 그냥 입 다물고 있을걸.
말을 주고받느라 잠시 느려졌던 권윤조의 손길이 도로 빨라졌다. 그가 엄지로 요도 입구를 후비고 문질러 오자 석경은 또 미칠 것 같았다. 진짜 제 손이 아니고 권윤조의 손이라서 그런지 자위할 때보다 더 빨리 달아오르고 심하게 느끼는 것 같았다. 허리가 바르작거리며 허벅지가 조여들었다.
“흐으……, 으응, 으읍,”
이를 악물어도 잇새를 비집고 신음이 자꾸 터져 나왔다. 권윤조도 낮게 신음을 흘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석경은 애꿎은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다가 권윤조의 어깨에 슬며시 올렸다. 그러자 쥐고 훑고 흔드는 일에 집중하던 시선이 석경을 흘끗 바라봤다.
이렇게 받기만 해도 되나. 뭐라도 해야 하나 싶어서 어설픈 손길로 단단한 어깨를 꾹꾹 주물렀다. 권윤조의 눈매가 진해졌다.
“하아, 뭐 하는 거야?”
“아니, 너 팔 아플까 봐.”
“…….”
석경을 바라보는 눈에 이채가 돌더니 갑자기 난폭하게 입을 맞췄다. 아까는 젖꼭지를 깨물더니 이번에는 혀를 잘근잘근 깨물고 아프게 빨아 당겼다.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키스에 온몸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허물어지지 않기 위해 어깨를 잡았던 손으로 권윤조의 목을 껴안고 몸을 지탱했다. 위아래로 쾌감이 팡팡 쏟아졌다. 성기가 꿈틀거리며 선액을 찔끔찔끔 내보냈다. 맞닿은 기둥의 불거진 힘줄이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크기가 커서인지 힘줄도 유독 두꺼웠다. 그게 일종의 돌기 같은 역할을 해서 비벼질 때 자극이 배가 됐다.
권윤조에게 틀어막힌 입에서 끙끙 앓는 신음이 뭉개져 나왔다. 숨이 가빠서 어깨를 밀어내자 엉덩이를 콱 잡아 쥐었다. 석경의 몸에서 유일하게 살집이 있는 부위였다. 엉덩이를 거칠게 주물럭거리는 손길에 기분이 야릇해졌다. 헐떡거림이 심해지자 겨우 입술이 떨어졌다.
“읏, 윤, 조야, 나, 또 쌀 것 같, 으으, 어, 떡해, 아…….”
“석경아, 나도…….”
거의 동시에 사정했다. 권윤조가 어떤 표정으로 가는지 보고 싶었는데 석경도 싸느라 정신이 없어서 그러지 못한 게 아쉬웠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정액이 가슴과 배에 흥건했다. 석경의 젖꼭지에 맺혀있던 진득한 백탁액이 젖물처럼 주르륵 흘러내렸다. 흘러내리는 점액을 바라보는 권윤조의 눈동자가 흥분으로 절절 끓었다. 이제 막 절정을 맞아 나른한 포만감에 젖어 있어야 할 눈에 여유라고는 한 톨도 없었다.
석경은 연속으로 두 번을 뺐더니 기운이 몽롱해졌다. 경험도 없고 자위를 그다지 즐겨 하는 편이 아니라 이쪽으로 워낙 내성이 없는 편이었다. 사정의 여운에서 깨어나자 그제야 권윤조에게 올라탄 자세가 민망해졌다.
“내, 내려갈래.”
“석경아.”
내려가려고 허리를 틀던 석경은 엉덩이를 강하게 틀어잡히는 바람에 올라탄 자세를 유지해야 했다. 어찌나 세게 쥐었는지 손가락 틈으로 엉덩이 살이 툭툭 삐져나왔다. 불가피하게 양옆으로 벌어진 엉덩이로 인해 야무지게 다물리지 못한 뒷구멍이 신경 쓰였다. 애액이 질질 새기라도 할까 봐.
“이제, 놔 줘.”
“너는 순진한 거야, 앙큼한 거야?”
“왜 또. 둘 다 아니야.”
“내가 살면서 딸 치다가 안마를 받게 될 날이 올 줄은 몰랐어.”
“…….”
석경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석경이야말로 그 일로 트집을 잡힐 줄 몰랐다.
흥분한 건지 화가 난 건지 모를 권윤조의 사나운 표정에 석경은 대거리도 못하고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분노든 흥분이든 언제 폭발할지 모를 그것이 아슬아슬하고 두려웠다. 벗어나려고 허리를 비틀자 오히려 부추김이 되었는지 권윤조가 무언가 툭 끊긴 얼굴을 했다.
“석경아.”
“…….”
“왜 이렇게 많이 젖었어?”
질문의 뜻을 헤아린 순간 푹 젖은 뒷문의 주름이 꿈틀거렸다. 꿈틀대는 구멍과는 반대로 석경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수치심이 몰려왔다. 앞으로 사정을 한 것과는 또 다른 이야기였다. 엉덩이를 틀어쥔 손이 애액을 질질 흘려 대는 안쪽으로 느릿하게 이동해 손끝으로 입구를 두드렸다. 석경이 파드득 몸을 떨자 진정이라도 시키듯 목덜미에 입술을 꾸욱 눌러왔다.
“야아…….”
권윤조가 입구를 두드리던 손가락을 눈앞에 가져와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손가락에 묻은 투명한 점액을 엄지와 검지로 비벼 보기도 하고 떼었다 붙였다 하며 점성을 확인했다. 석경은 지금 뭐 하는 거냐고 항의하려다가 그냥 내버려 뒀다.
“석경아, 이거 아무래도 정액보다는 묽은 것 같아.”
“……안 물어봤어.”
“나 손가락 넣어 봐도 돼? 하나만 넣을게.”
이게 무슨, 뻔한 개수작이지. 석경은 고민했다. 그래도 하나만 넣는다는데 뭐. 손가락 하나 정도는 충분히 젖어 있어서 괜찮을 것이다.
“……넣어.”
제 귀에도 들릴 듯 말 듯한 작은 소리를 용케 알아들은 권윤조가 기다렸다는 듯이 엉덩이로 손을 가져갔다. 바깥의 주름을 매만지며 틈을 찾아 쑥 비집고 들어왔다.
“흣.”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음에도 신음이 터졌다. 권윤조는 바깥의 주름보다 훨씬 여리고 예민한 내벽의 주름을 집요하게 짓눌렀다. 찌걱찌걱 피스톤질을 하기도 하고 손마디를 제법 구부려 내벽을 넓히기도 했다. 그러다 하나로는 못내 아쉬운 모양인지 바깥에 있는 중지로 입구를 비볐다.
“석경아, 하나만 더 넣을게.”
“흐으……. 으응.”
비좁은 틈을 벌리고 손가락 하나가 더 들어왔다. 두 개의 손가락이 내벽 안에서 휘휘 돌았다. 휘젓는 손길에 여린 살이 푹푹 뭉개졌다.
그새 물이 더 차올라 안이 질퍽거리는 느낌이 생생했다. 가위질을 하듯 손가락을 크게 벌렸을 때 석경은 학, 거친 숨을 토해내며 권윤조의 어깨에 이마를 박았다. 야릇한 감각을 감당하기가 힘들어 어깨에 이마를 비볐다.
“아파?”
“……아니, 그냥 좀 이상해.”
“석경아, 나.”
“으응.”
“하고 싶어.”
고개를 든 석경은 놀란 숨을 집어삼켰다. 권윤조의 눈이……, 그러니까,
“윤조야, 너 눈이……. 갔는데?”
맛이 갔다는 게 바로 저런 건가. 저런 눈으로 하고 싶다고 하니 무서워서 그러라고 대답할 마음이 안 들었다.
“나 할래.”
“오늘은 안 한다며…….”
“내가 언제. ‘지금은’ 안 한다고 했지.”
“윤조야, 일단 손 좀 빼 봐. 빼고 얘기하자.”
권윤조는 빼는 대신에 짓궂게 손가락을 쫙 펼쳤다.
“으읏, 하지 마.”
“하기 싫어?”
“…….”
벌어지는 내벽에 거절의 말이 삼켜졌다. 그런데 침묵을 거절로 해석했는지 권윤조가 아쉬운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을 빼냈다. 안에 들어갔던 손가락은 물론이고 손등까지 애액으로 흥건하게 젖어 있는 모습에 석경은 얼굴을 붉혔다.
“손 씻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하자 권윤조가 웃음을 터뜨렸다.
“석경아.”
웃음을 지운 권윤조의 얼굴이 더없이 진지했다.
“……응.”
“나 너랑 하고 싶어.”
“…….”
여기서 앞으로 나가야 할지 뒤로 물러나야 할지 섣불리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욕심으로는 앞으로 나가고 싶었지만 욕심을 채우다가 비참한 결과를 맞게 될까 봐 두려웠다.
“석경아, 응?”
“……그래.”
석경은 앞으로 나가는 쪽을 택했다. 언젠가 버려지더라도 그토록 원하던 권윤조를 한 번쯤은 갖고 싶었다.
“분명히 대답한 거다.”
“으응.”
“각오 단단히 해. 이제부터 내 마음대로 할 거야. 멈추라고 해도 안 멈출 거야.”
권윤조의 얼굴은 웃음기 하나 없이 진지했다. 다정한 미소보다 뭔가가 어긋난 듯 냉랭한 얼굴이 권윤조의 본성에 가까워 보인다고 석경은 생각했다. 차가운 얼굴을 하고서도 눈빛만큼은 델 것처럼 뜨거웠다.
“그래, 네 마음대로 해.”
“석경아, 그렇게 순진한 얼굴로 마음대로 하라고 하면 어떡해.”
“나 안 순진한데.”
스스로 판단하기에 결코 순진하지 않은 석경은 손을 뻗어 권윤조의 얼굴을 만졌다.
고백 직후 좋아하는 마음을 주체하지 못해 만지고 싶고 닿고 싶어서 물고 빨던 때와는 사뭇 다른 기분이었다. 본격적으로 하자는 말로 시작하려니 아무래도 부끄럽고 민망했다.
기분이야 어떻든 출발선에 섰으니 일단 시작은 해야 할 것 같아서 석경은 권윤조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나 엎드릴까? 엎드리는 게 편할까?”
허, 바람 빠진 웃음을 터뜨린 권윤조가 골 때린다는 표정으로 석경을 봤다.
“누가 편해? 네가? 내가?”
“몰라. 엎드리는 게 편할까 해서.”
“석경아.”
“응?”
“내가 다 알아서 할게. 입 다물어.”
권윤조는 농담하듯 웃으며 말했지만 눈에 여유가 전혀 없었다. 석경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권윤조는 석경을 조심스럽게 침대에 눕히고 위에 올라탔다.
뭐가 됐든 바로 시작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석경의 몸을 올라탄 그는 잠잠했다.
“어떡하지, 석경아.”
“왜?”
“다 예뻐서 어디부터 손을 대야 좋을지 모르겠어. 입술도 예쁘고, 젖꼭지도 예쁘고, 일단 여기부터 빨까?”
여기저기를 헤매는 눈동자가 그가 지금 얼마만큼이나 긴장하고 있는지 보여 줬다.
“윤조야.”
“응?”
“혹시 긴장했어?
“어, 좀.”
“…….”
“사실 많이.”
“긴장했다고 너무 아무 말이나 하는 거 아니야?”
권윤조는 싱긋 웃더니 얼굴을 내려 석경의 입술부터 빨기 시작했다. 입술과 혀를 빨면서 맞닿은 성기를 슬쩍슬쩍 비벼댔다. 마치 성기를 박는 것처럼 허리를 팍팍 쳐올리기도 했다. 좋으면서도 민망했다. 권윤조 진짜 야하다. 속으로 생각하며 석경은 권윤조의 혀를 할짝할짝 핥았다.
격렬한 키스로 숨이 제법 가빠지자 권윤조가 입술을 떨어뜨리고 석경의 목을 핥았다. 빨고 싶은지 입술로 여린 살을 머금었다가 주저하는 기색을 보이더니 눈만 들어 석경을 봤다.
“목에 자국 남기면 안 되겠지?”
“응.”
“흥분해서 힘 조절 못할 것 같은데.”
“……그럼 하나만 남겨.”
마지못해 허락해 주자 권윤조는 기분 좋은 듯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목을 빠는 대신 입술을 좀 더 아래쪽으로 내려 젖꼭지를 빨았다.
“으읏.”
아까 하도 많이 빨려서 이미 퉁퉁 부어 오른 젖꼭지에 강한 자극이 가해지자 석경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권윤조는 이갈이라도 하듯 잘근잘근 깨물어가며 성에 찰 때까지 쭉쭉 빨아댔다. 아픈데 이상하게 쾌감이 자꾸 고개를 내밀었다. 몸이 점점 예민해지는 느낌이었다.
젖꼭지에 입술을 박고 있던 권윤조가 고개를 들자마자 석경은 저도 모르게 다른 쪽 가슴을 쭈욱 내밀었다. 여기도 빨아 달라는 듯이. 의식해서 한 행동이 아니라 정말 몸이 저절로 그런 거였다.
“…….”
“…….”
가슴을 쭉 내밀고 있던 석경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굳어 버렸다. 미쳤다. 내가 지금 뭘 한 거야.
눈동자를 굴리며 권윤조의 눈치를 슬슬 살폈다. 권윤조가 제 추태를 못 봤기를 바랄 뿐이었다. 봤더라도 이해하지 못하고 넘어가기를. 하지만 석경의 바람과 달리 권윤조는 보았고 충분히 이해도 한 모양이었다.
권윤조의 눈이 또, 갔다. 이번에는 좀 더 위험해 보였다.
“와아, 씨발.”
“왜, 왜 욕을 해.”
“석경아, 나는 네가 숨만 쉬어도 꼴린다고.”
“…….”
“그니까 나도 좀 생각해 줘.”
권윤조는 그렇게 말하며 맞닿은 성기를 거칠게 비벼댔다. 석경은 예민한 살갗이 쓸리는 고통에 미간을 찌푸렸다. 숨만 쉬어도 꼴린다는 말을 들어서인지 석경은 신음을 뱉는 것조차 조심스러워져서 입술을 꾹 깨물고 참았다.
석경이 무의식중에 내밀었던 가슴에 입술이 닿았다. 집요하게 빨린 젖꼭지가 처음에 빨렸던 젖꼭지만큼 퉁퉁 부어올랐을 무렵 권윤조가 입을 뗐다.
권윤조의 입술이 배 위를 훑어 내려가더니 잔뜩 민감해진 성기에 닿았다.
“아, 윤조야 거긴…….”
“응, 여기.”
건성으로 대꾸한 권윤조는 선액으로 번들거리는 귀두에 쪽쪽 입을 맞추고 기둥을 길게 핥아 올렸다.
“흐으, 아아…….”
앓는 듯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손을 뻗어 권윤조의 어깨를 밀어내다가 단단히 붙잡혔다.
성기가 입안에 삼켜졌다. 선단이 권윤조의 목구멍까지 닿을 만큼 깊게. 석경은 차라리 눈을 감았다. 그러자 성기를 빨리는 감각이 한층 더 적나라하게 느껴져서 다시 눈을 떴다.
성기에 이가 닿지 않게 입술을 만 권윤조가 본격적으로 고개를 움직였다. 창피하게도 몇 번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쌀 것 같았다. 허리를 비틀며 다급하게 권윤조의 얼굴을 떼어 내려고 했으나 꿈쩍도 하지 않았다.
“흐, 아, 흐으읏, 으으, 쌀 것 같…….”
“으응.”
“으, 윤조야, 비, 비켜. 흐으…….”
결국 권윤조의 입안에 사정하고 말았다. 석경은 수치심과 미안함에 몸을 바들바들 떨며 천장을 멍하니 보다가 꿀꺽 삼키는 소리에 감전이라도 된 듯 허리를 반쯤 일으켰다.
“너, 삼켰어?”
“응.”
“야아, 그걸 왜…….”
석경은 울 것 같은 얼굴로 권윤조의 어깨를 툭 밀쳤다. 아무리 작은 힘으로 밀었다지만 권윤조의 커다란 어깨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진짜 삼켰어?”
다시 묻자 야무지게 고개를 끄덕이고 입까지 벌려 보이는 권윤조의 모습에 석경은 침대 위로 털썩 드러누워 버렸다.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아직 본 게임은 시작도 안 했는데.
그러고 보니 오늘만 세 번째 사정이었다. 권윤조가 삼킨 게 첫 번째 사정액이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었다. 양이 적은 편이었을 테니까.
연이어 사정을 세 번씩이나 했더니 극심한 피로가 몰려왔다. 조금만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무거운 눈꺼풀을 느릿느릿 깜빡거리는데 엉덩이 쪽으로 파고드는 손길이 느껴졌다. 몽롱한 기운 확 달아났다.
“석경아.”
“……으응.”
“설마 졸았어?”
권윤조가 추궁하는 어조로 말하며 엉덩이를 콱 움켜쥐었다. 아프지는 않았지만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는 스킨십이라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권윤조가 제 볼기 살을 터트릴 것처럼 틀어쥐고 있는 상황이 아무래도 어색하고 부끄러웠다.
“안 졸았어.”
권윤조가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은 채로 젖은 입구를 손가락으로 더듬었다. 비좁은 구멍으로 손가락 두 개가 한꺼번에 파고들었다. 하나만 넣을 줄 알았는데 두 개가 들어와서 석경은 적지 않게 놀랐다. 흡. 숨을 들이켜자 권윤조가 석경을 보며 씨익 웃었다.
“너 졸았으니까.”
졸았으니까 복수라도 했다는 건가. 한껏 억울한 얼굴로 바라보자 권윤조가 풉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곧 진지해진 얼굴로 손가락을 움직였다.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안쪽에서 민망한 물소리가 찌걱찌걱 났다.
권윤조의 긴 손가락은 제법 깊은 곳까지 들어와 예민하고 여린 주름을 누르고 헤집었다.
“흐으, 으읏.”
권윤조가 민망하게 벌려진 다리 하나를 제 어깨에 걸쳤다. 엉덩이가 더 위로 들렸다.
“아프지는 않지?”
“응.”
“일단 좀 찾고.”
“……뭘?”
“너 기분 좋아지는 곳.”
권윤조는 좁은 내벽을 열심히 헤집었고 마침내 기분 좋아지는 곳을 찾았다.
“흐앗!”
뭉근하고 나른한 자극을 찢고 나온 쾌감에 석경의 허리가 움찔 떨렸다. 한 번 더 같은 곳을 누르자 쾌감이 척추뼈를 타고 올라와 목덜미를 콱 물어뜯었다.
석경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뒤로 젖혔다. 반쯤 일어나 있던 성기가 선액을 흘려 댔다. 앞뒤로 난리가 난 느낌이었다. 섹스가 이런 거라고? 석경은 얼떨떨했다. 많이 아플 줄 알고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했는데 이득을 본 기분이었다.
권윤조가 몇 번 더 같은 곳을 눌렀고 석경은 마냥 좋아서 자지러졌다.
“석경아, 좋아?”
“허어으, 조, 좋아. 거기, 으으응…….”
내벽을 채워주던 손가락이 쑥 빠져나갔다. 아쉬웠다. 왜 그만두냐는 눈빛으로 바라보자 권윤조가 눈짓으로 제 것을 가리켰다. 위협적인 크기의 성기가 잔뜩 열이 받아서 투명한 물을 질질 흘려 대며 꺼떡거리고 있었다.
“나 넣어도 돼?”
석경은 좀 전의 쾌감을 떠올렸다. 저 커다란 걸 받아들여야 한다는 두려움보다 쾌감에 대한 기대가 약간 더 컸다. 권윤조가 아프게 할 것 같지도 않았다.
고민 끝에 넣어도 된다는 대답을 하려고 했는데 권윤조는 이미 협탁 위에 있는 바구니 안에서 콘돔을 꺼내고 있었다.
석경은 그가 콘돔 포장을 뜯고 성기에 끼우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콘돔과 꽤 오래, 한참을 씨름하던 권윤조가 당황한 얼굴로 석경을 바라봤다.
“석경아.”
“응?”
“콘돔이 작아서 안 들어가.”
콘돔이 작아서 안 들어간다니. 또다시 현실적인 공포가 밀려왔다. 내 구멍은 콘돔보다 훨씬 더 작을 텐데. 그러나 석경은 잔뜩 달아오른 권윤조를 상대로 차마 하지 말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냥 해.”
“…….”
“히트사이클 아니니까 괜찮을 거야.”